시베리아 아님 블라디보스토크
오늘도 꼭 밖에 나갔다 오고 그래요! 날씨도…….
대문이 닫히면서 남편의 녹음기 소리가 함께 잘린다.
피플 토킹 위드아웃 스피킹, 피플 히어링 위드아웃 리스닝.
우리의 대화다. 침묵의 소리. 노랫말이 인생을 대변할 때가 있다. 많다. 말하고 있지만 말이 아니다. 듣고 있지만 듣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에도 세월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동안 많은 대화들이 저절로 녹음되었다. 녹음되었다가 적당한 장소 적당한 시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녹음 대목을 찾느라 고심할 필요도 없다. 그 일에 관한 한 로봇의 정교함을 넘는다.
걱정 말아요.
아주 적당한 말을 내뱉고 돌아서는 나의 역할놀이도 만점이다.
맨날 어딜 가래! 맨날 혼자서 어딜 가?
혼자 중얼거리면서 식탁으로 돌아오려다 말고 거실에 앉아서 광주극장 상영작을 네이버에 쳐본다. 정말 영화관에라도 가볼까. 오늘처럼 혼자 가려면 광주극장이 낫다. 평소에 영화관 가려면 백화점 가면 될 일이다. 몇 개씩 되는 상영관이 있으니 골라 보면 될 일이고, 친구도 만나고. 그런데 친구들이 발칸반도에 가 있다. 미순은 평일에는 시간이 없을 것이고.
사실 미순과 내가 여행에 동참하지 못한다 했을 때, 친구들은 시큰둥했다. 대부분 그러려니 했고, 누가 나서서 가자고 채근하는 이도 없었다. 미순은 일찍 못 간다고 말했었다. 벌써 지난해 여행계획이 나올 때부터였다. 친구들 전체가 비싼 성수기 요금으로 여행을 하게 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말로는 여름방학에도 잠시 중한 일정이 있다고 했다. 나는 늘 빠지는 축이다. 그게 실은 나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단체여행을 가는데 누구랑 함께 자게 되면 한숨도 안자고 있다가 다음날 비실대면서 일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누가 나랑 함께 자고 싶어 하겠는가. 그러니 무슨 무슨 핑계거리를 만들어 빠지는 것이 상책이다.
오래전부터 해외여행 운운 하다 보니 며칠 전에는 이야기가 그이 귀에도 들렸나보다. 결국 참견을 했다.
크슬보라고? 발칸을 말하는 거죠? 그런데 꽤 멀리들 가네.
그래요, 가까운 데는 다들 갔다 와서요. 어디는 누가 갔다 오고, 또 어디는 누가. 그러니 많이들 안 가 본 곳으로 낙착된 거죠. 동유럽 돌 때 슬쩍 크로아티아에 갔던 애들은 거긴 또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오히려 반겼다고도 하고.
그렇게들 다니나?
자그레브 같은 데는 팬도 있어요. 가톨릭도 아닌데 거기 고딕식 높은 성당에 저절로 들어가게 되었다나, 암튼 거긴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라 그랬대요.
아, 크로아티아란 곳이 그런 매력이 있나? 그럼 발칸에 지금 여섯 나라, 일곱이라던가? 우리가 유고슬라비아라고 그렇게 배울 때는 요상한 나라였지. 민족은 다섯, 언어는 넷, 문자마저 둘로 갈라졌다고 하더니만 결국 따로 살게 된 거네.
언어가 다르다는 건 좀 문제겠지요. 같은 언어를 써도…….
그건 그러네, 소통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말이 통해야 소통이. 헌데 당신도 참, 무슨 핑계를 대고라도 여행을 가려고 할 일이지, 왜 단체여행마저 빠지려고 해요? 사람이 바람을 쐬러 나다녀야 한다니까 그러네. 난 혼자서 일주일은 끄떡없어요. 어려서 못 해본 보이 스카우트 하지 뭐.
보이 스카우트라고? 저녁마다 어머니한테 갈 거면서. 얼마나 좋아하실까. 눈에 선하다. 스치는 생각과는 다르게 말은 평이하게 나간다.
발칸이면 일주일 더 걸려요. 혹시 중간에 멀미라도 나면 친구들 보기 난감하죠.
왜 멀미가 날 거라고 생각해요? 요샌 멀미 잘 안하더니만. 하긴 어딜 가야 멀미를 하거나 하지.
이건 일주일도 넘게 9일이래요. 그냥 힘들어요.
당신 참 특이해. 다들 기회가 없어서 야단인 것을. 참, 우리 여행은, 그건 내가 알아서 추진합니다. 올해가…….
뭣 하러요.
저번에 약속 했잖아요. 이번엔 간다고. 이제와 안 간다는 핑계 찾기 어려울 거요.
그이가 쐐기를 박았다.
카톡 카톡.
그냥 마저 밥을 먹는다. 황태국이 오늘은 당기지 않는다. 콩나물이 늘 고소하고 깔끔하다. 조금 꺼내서 무침으로만 했다. 나머지는 국물 째로 아껴 두었으니 저녁에는 찰밥을 해도 좋겠다. 가만, 오늘 금요일인데 그인 늦으려나? 하긴 찰밥이야 해 놓았다 내일 먹어도 뭐.
카톡 카톡.
웬일들일까. 그러고 보니 오늘이 출발일이다.
나남이, 우리 지금 비행기 탔다. 30분 뒤 출발. 이제 핸폰 끌 거야. 정인이다.
남아, 남겨두고 가서 미안, 잘 다녀올게. 쏘리(이모티콘). 유향이, 지금 회장이다.
다들 잘 다녀와. 여행가방+선글라스(이모티콘). 나도 답을 보낸다.
젓가락을 들려고 하는데 또 울린다. 이번엔 단톡 방이 아니라 그냥 카톡이다.
남아, 오늘 시간 있지? 나올래, 흰밥 먹자.
성주다. 아차, 성주도 못 간댔지.
성주는 가끔 흰밥 먹자는 소리를 한다. 남편이 당뇨라서 꽁보리밥만 씹는다고 너스레다. 꽁보리밥은 아니지만, 검은콩에 수수다 귀리다 이상한 잡곡들 죄다 섞는다고. 귀리 좀 씹어 봐! 밥도 아니야. 우리들은 모두 웃는다, 요즘 흰밥 먹는 사람들 어디 있다고! 그럴 땐 미순의 말이 제일 웃긴다. 나 혼자라도 스스로 발아현미밥 해먹거든요! 현미밥을 하기는. 햇반 종류가 그렇다. 발아현미밥 작은컵은 나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데울지 유리그릇에 옮겨서 데울지 그게 늘 고민이다. 참, 성주에게 답 해야지.
오늘 말고 내일, 낼 봐.
왜? 알써. 낼 봐. 굴비 먹자.
또 굴비 타령이다. 이밥에 소고기 대신, 이밥에 굴비. 성주가 좋아하는 밥이다. 오늘은 사실 일감이 좀 있다. 숙제를 두고 나가는 건 편치 않다.
굴비 먹자 응? 집에서 굽는 것 징글징글하다. 구어 주는 것 좀 얻어먹자. 우리 둘 다 고긴 별로잖아.
성주는 만나자마자 또 굴비 타령이다.
그래 그러자, 난 집에서 굴비를 잘 안 먹게 돼. 그인 삐쩍 마른 것 말고 탕을 좋아하거든. 그런데 넌 또 왜 여행을 안 갔어? 첨엔 가는 것 아녔어? 지한 씨 때문에?
아냐, 응.
아냐는 뭐고 응은 뭐야?
그래, 우선 먹자니까.
그랬다. 성주는 지한 씨랑 동갑내기라서 함께 회갑이 되니까 둘이 여행을 가게 되었단다. 딸이 벌써 어른스럽게도 ‘엄마아빠 해외여행’을 선물로 내놓았단다. 그런 차에 두 번의 해외여행은 무리라고.
그래, 어디로 가려고?
그게 말이야, 지한 씨는 무조건 시베리아래.
왜 지금 시베리아를 가? 분위기들은 곧 철도가 뚫릴 거라니까 기다렸다가 가겠다는 것 아닌가.
글쎄, 지한 씨가 자신 없는 소리를 하면서 고집을 부리네.
고집을?
지병 때문이지 뭐.
당뇨가 무슨 큰 병이라고 그래. 혈당 좀 있는 걸 가지고. 고혈압이다 고지혈증이다 하나씩은 다 있잖아, 우리 나이면.
언제 기다려! 철조망 뚫렸을 때, 그러니까 몇 년 후면 내가 여행을 갈 수나 있을지 알아? 갑자기 성주에게 말하는 지한 씨 목소리가 또렷하게 귓가에 들려온다. 너무 놀라서 고개를 흔든다. 성주네 둘의 대화를 훔쳐 들을 마음은 없는데, 왜 들려올까. 아, 나남이 살려줘! 온 힘을 다 해서 앞이마 중심에 두 눈을 고정시키니까 소리가 사라진다. 성주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 들킨 것 같지는 않다.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간다.
해서 시베리아에 간다고? 올해 안에?
으응, 그럴 셈이야. 가까운 무안공항에서 직행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패키지들도 나와 있나 봐. 춥기 전에 가면 될 거라고.
그렇담.
그렇담 뭐?
나는 우리도 거기 따라갈까 말하려다가 말았다. 그이는 분명히 여행을 가자고 하고 있지만, 아직 무슨 계획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 생각만 해도 성가시다. 뭣 보다 이런 순간에는 내 귀가 무섭다. 들은 것은 못 듣고, 듣지도 않은 것을 듣는 불안한 청각에 이젠 좀 떨린다. 춥다, 늦은 봄날에.
건 그렇고 다다음 월요일 저녁, 나올 수 있지?
저녁이지 참.
응, 밥 좀 일찍 먹고 시민회관이야. 그땐 발칸 간 애들도 돌아왔을 거고, 여럿이 거기 갈 거라고. 정인이 당부 안했어?
했지 벌써. 나 저녁에 잘 안 나가는 줄 알면서도, 웬 일로 졸라 대더라고.
정말 시베리아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시베리아가 오고 있다. 뉴스에서만이 아니다. 정인을 따라 간 음악공연에서도 시베리아, 시베리아, 시베리아가 울려 퍼졌다. 정인은 통기타로 배우는 발라드 교실에 노래를 배우러 다니는데, 어느새 강사의 팬이 되었단다. 나름 이름 있는 가수의 통기타를 듣는 것도 남다른 즐거움이고, 공감되는 것이 많다고. 그가 달마다 음악공연을 하는데 이번엔 특별 이벤트가 있으니 꼭 함께 가보자고 모두를 졸랐고, 정인이가 대놓고 조르면 그냥 따르게 된다.
월요일, 음악공연과는 어울리지 않는 월요일 저녁이었다. 입장료는 없고, 공연을 위해서이거나 북녘어린이를 위한 빵공장에 후원금을 내는 시스템이란다. 알아서 형편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그런 방식도 그런 빵공장의 존재도 신선한 느낌이었다. 강당 안에는 온통 시베리아가 공기방울처럼 날고 있었다. 붉고 푸른 조명에 밀려 천정으로 날고, 관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눈동자 속으로도 날았다.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 나타샤와 함께 춤을 추고……
노래 가사마저 웬 시베리아? 우리말 노래 속 시베리아는 가까운 곳처럼 느껴졌다. 나타샤는 또 왜? 하긴 백석이 불러온 나타샤겠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 때문에 미순에게서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시가 사람들 입에 오르던 때였으니 꽤 오래 전 일이다. 내 말이 멍청하긴 했다. 사랑과 눈이 무슨 상관이래? 누군 사랑하면 눈이 오고, 누군 사랑하면 새가 운다냐? 그랬더니 미순이 한참 한심해 했다.
시에서 무슨 논리며 합리야! ‘내 마음은 호수요’하면, 마음이 어떻게 호수야, 그래도 호수지. ‘동해 쪽빛 바람에……’ 바람이 어떻게 쪽빛이냐고 따질 테냐? 바람이라는 촉각이 쪽빛 시각으로 전이되는 것, 그런 것이 시어야. 시의 심상이라고. 하물며 누군가 사랑을 하면 눈도 푹푹 내리라지.
그때 미순은 우리에게 아예 강의를 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백석은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의 영어사범과에 다니면서도 러시아어를 죽자 사자 공부했다고. 고향인가 함흥에선가 영어교사를 할 때도 시내 양복점이건 서점이건 러시아 사람이 있는 곳이면 늘 쫓아다니며 러시아말을 배웠다고. 『테스』 말고 러시아 작품 번역도 있었다고!
알았어. 너 요새 전공 바꿔 러시아어냐? 나타샤,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 톨스토이의 손끝에서 태어난, 아니 그의 영혼 속에서 태어난 나타샤에게 러시아어 광팬이 매료되었다는 강의, 잘 알아들었네요!
더 있어. 나타샤 말고 안드레이 볼콘스키를 봐.
아, 그 그윽한 눈빛의 멜 화라!
누군가 끼어들었다. 우리가 대개는 전집 빌려다 놓고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해버리고는 영화만 봤던 것이 들통 나는 순간이었다. 미순도 따라 웃어버렸다.
햅번을 버린 그 바람둥이 배우는 냅두고. 볼콘스키 그 이름이 우연이 아니거든. 톨스토이의 외가 쪽 실존인물이었던 세르게이 볼콘스키 공작이 작품에서 되살아난 거야. 러시아의 미래를 농민에게서 본 그의 사상도 ‘농민공작’ 볼콘스키의 영향이라지. 데카브리스트 반란에 참여했다가 30년도 넘게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고서 풀려난 그를 만나보고는 그 고결함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그랬대.
뭐, 데카브리스트?
데카브리가 디셈버니까, ‘12월 혁명당원’을 그리 불러. 나폴레옹전쟁 때 유럽의 자유주의 공기를 흠씬 맛보고 돌아온 청년장교들이 조국의 반동정치에 회의를 품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 일단 입헌정치와 농노제 폐지를 목표로 비밀결사를 만들었어. 제정러시아 최초의 반란이지만 허망하게 불발로 끝났지. 처형에 시베리아 유형에. 볼콘스키 공작은 주동자급이었지만, 젊은 새 황제 니콜라이 1세랑 어려서 친구처럼 지냈던 배경으로 교수형은 면했던 거래. 어떤 지식인도 시인도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는 거야.
그렇구나. 백석만 해도 해방 후 고향에 남은 건 자연스런 일인데 월북 작가네.
월북은 아니지. 해방된 땅에서 러시아어 통역하면서 신 났겠지. 그래보았자 부르주아라고 크게 쓰이지도 못하고. 그러니 평등이란 뭘까.
그냥 북에 남은 것, 납북도 월북도 아닌 그것은 뭐라 한다냐.
모릅니다요. 월북 납북 작가들의 해금조치도 88올림픽이라는 배경 덕택이었지.
그랬다. 문화는 역사의 바람을 탄다. 해금되어서 불쑥 나타난 김기림, 정지용, 백석…… 들. 목마른 데 해갈처럼 많이들 좋아했었다. 그러고도 벌써 한 세대가 흘렀구나.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 나타샤는 영원한 여인이고, 연인들은 시베리아 유형지 같은 산골로 들어간다.
나는 바이크 타고 시베리아에 간다…… 숲 속의 짐승들 시퍼렇게 불을 켜고 나를 노리네 하여 나는……
노래는 바뀌어 시베리아의 바이크가 나온다. 실제로 청년 탐험가가 시베리아를 자전거로 여행했고, 그것을 기념하여 노래한 것이라고 가수가 설명한다. 자전거로 시베리아를? 환상특급에 들어온 것 같다.
정인아, 저거 사실이야?
사실이지 그럼. 작년엔가 그 탐험가가 저 무대에 나왔어, 다부진 젊은이던데. 96년이었다던가, 암튼 12,000km를 모터바이크로 달렸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다섯 달을.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나왔을지. 특별한 사람이네.
대학 때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을 읽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던가.
책을 읽고 탐험을?
소설이 아니라, 유형지 현실을 실증적으로 기록한 데서 크게 감동했더래.
내게 시베리아는 뭘까. 에너지도 용기도 없는 내게는 정복의 대상이기는커녕 꿈의 관광지도 아니다. 그냥 한 죄인이 ‘점차로 소생되어가는’ 유형지 시베리아이다. 오래 오래 전에 읽었지만 각인된 구절,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의 삶이란 무엇일까. 그때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지금의 대도시들이나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물질적인 상황이 정신적인 상황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단순하지만 솔직하다. 멀쩡해야할 법학도가 출구 없는 상황에서 병적인 사색에 빠져들고, 나폴레옹적인 선택된 강자라고 스스로 세뇌된다. 자만심이 오죽하면 인류전체를 위하여 사회의 도덕률 쯤 넘어 설 권리가 있다고 믿게 될까. 노파의 죽음으로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건 산술적 계산인가 감상인가.
바보같이! 이나 벼룩 같은 인생이라고 하여 네가 죽여도 된다? 이나 벼룩을 죽인 대가로 결과적으로 네 인생을 박살내? 박살났는가? 적어도 사회적 의미에서는 그렇다. 라스코리니코프의 깨달음, 절대적 고립의 체험은 오직 죄의 결과다. 죄인은 그렇게 점차로 소생되어 간다. 그렇다면 죄는 그에게 성숙의 과정을 위한 필요악이었나? 이 무슨 망발. 이런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난 아직 아무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기억은 어쩐다?
살인에 관한한 카라마조프 아들들은 더 하다. 살부의 죄. 아들마다 트라우마가 있고 아들마다 살부의 이유가 있다. 아들마다 죄인이다. 누가 더, 누가 덜 죄인인가? 어머니의 유산을 두고, 아버지의 정부를 두고, 실제로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고, 죽여 버리겠노라 떠들었던 너절한 아들이 죄인인가. 이 호색한 아버지를 벌레처럼 혐오하는 유럽 유학파 냉혈한이 죄인인가. 살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가능하다니, 신만 없다면 그렇다고 했지. 그래서 니힐리즘으로…….
저 있잖아, 5월 영령들을 위해서 어느 해 가을엔가 49일간 노래를 불렀단다, 저녁마다 망월동에 가서.
으응, 누구?
노래를 듣다말고 멍하니 시베리아 유형지에 가 있던 나는 정인의 말에 놀란다.
저 가수지 누구야.
뭔가 대단하다아.
155마일 철조망이 꽃나무였으면 좋겠어/ 꽃 한 송이 들고 경계를 넘어 가는 거야/
앞으로 앞으로 가는 거야 ~~
휴전선에 꽃나무를 심자고? 언감생심, 지뢰나 없애라지. 목함지뢰 사건으로 상이군인이 된 젊은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래, 나무를 심는 날이 오겠지. 와야 하겠지.
가만, 꽃나무 철조망이라. 모순형용도 형용이고, 불협화음도 화음이다. 격정적인 흑조의 춤은 사악하지만 아름답다. 〈세례 요한의 목을 들고 있는 헤로디아스〉. 머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서서, 꽃다발을 안듯이, 한 손으로는 목에서 흐른 피를 닦고 있는 얼굴 표정은 담담한 미녀. 이런, 목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 핏방울들을 왜 감상하는가. 예술의 권능은 무한대인가. 소설 속 미친놈들, 죄인들은 또 왜 이리 오래도록 살아있는가. 그들이 어찌해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가. 아무 ‘쓰잘 데기’ 없는 소설인데, 겨우 소설인데, 신의 권능을 감히 넘본 자들, 죄인들이 넘쳐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가 왜 불멸인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불가사의 한 일들, 그 중에서도 가장 경악할 일들이 오래 살아남아서 우리의 정신을 영혼을 지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는 일에 애당초 의미가 있을까만.
얼결에 음악회는 끝나고 있었다. 시베리아밖에 들은 게 없다. 마지막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왔던 메시지를 그대로 노래했는데, 상당 수 청중들이 따라 불렀다.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가사도 멜로디도 단순하고 반복적이라서 쉽게 따라하는가 보다. 광주 서울 평양 시베리아 모스크바 베를린…… 그러다가 독특하게 암스테르담으로 끝나는 가사였다. 정인이 말했던 그 특별 이벤트, 시베리아대륙횡단공연이라는 프로젝트가 이 노래로
서 시작된단다. 코리아-유라이사 프로젝트, 그 정식 발표회인가 발족회인가는 따로 금요일 밤에 열린다고 했다. 취지에 박수를 친다 해도 거기까지 따라나설 일은 아니다. 연속해서 밤 외출도 싫고.
음악회 어땠어요?
다음 날 느지막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음악회라기보다는, 예, 음악회죠. 문예회관 음악회하곤 다른, 무지 다른.
대중음악이라서?
그것보다는 무슨 문화행사 같았나. 모래그림인가 음악회하곤 아무 상관없는 것도 있고, 시작하자마자 남북 두 정상 얼굴을 그렸어요. 그려 왔던가, 복사처럼.
음악회에 샌드 애니메이션?
전형적인 음악회는 아니더군요. 암튼 모래는 난 원래 별로예요. 좀 만화 같고,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 늘 같은 선에, 표현이 한정되어 있어서인가 어디서 봐도 판박이죠.
만화 맞지요. 헌데 음악회 얘기 하다가.
그래요, 거기서도 시베리아입디다. 노래마다 시베리아라, 계속 계속 시베리아가 튀어나오드만. 게다가 코리아-유라시아, 코리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유럽까지 땅으로 땅으로 공연여행을 떠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멈춰 서면 공연무대가 되도록 제작된 초대형 버스가 있대요. 그 버스를 몰고 대장정에 오를 거라고. 우선은 국내를 한 바퀴 돌고, 철조망 터지면 떠난다나요. 청중들도 함께 출발해서, 평양까지 가서 돌아올 사람 돌아오고, 블라디보스토크 가서 멈출 사람 멈추고. 힘 닿고 마음 닿으면 암스테르담까지래요.
웬 암스테르담?
모르죠. 모스크바, 베를린까진 그러려니 했다가, 왜 하필 암스테르담일까, 혹시 동화 때문인가 했어요. 풍차가 연상되기도 하고!
아하,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풍차 하면 암스테르담이지. 그럼 에펠탑의 파리는 어쩐다?
우리가 뭘 걱정해요! 파리보다는 여기선 베를린이 더 어울리죠. 베를린장벽에서 죽어간……
에이, 베를린장벽 이야기가 왜 나와요. 그건 확실한 과거이고, 독일 사람들이야 이제 덮을 만하지요. 거기 몇 십 년 동안의 희생이 5.18 일주일 때와 맞먹는 정도 아녔나. 아차, 숫자 이야긴 하는 게 아닌데. 어쨌든 그쪽 일은 잊어요. 그럼 우리도 그럼 그 공연을 따라서 갈까?
우리가 모래사막 대상들 따라가는 상인들도 아니고 어떻게 그 일행을 따라가요? 당신 병원은 어떻게 하고요?
어, 병원 걱정이에요? 일 년쯤 쉬지 뭐. 나도 늘 꿈꾸는 여행이 있어요. 두어 달 계획으로 떠나는 여행. 동쪽이냐 서쪽이냐 그것부터 늘 왔다갔다지만.
우리에게 동쪽이 어디 있다고. 우리가 극동 아닌가.
에이, 지도를 봐요. 우리 동쪽에 드넓은 태평양 아냐. 그 건너 미국, 캐나다. 일단 상식적으로 미국을 끝까지 가서 나이아가라폭포를 생각하지. 그러고는 알라스카까지 올라가는 거요. 아니면 아래로 헤밍웨이의 쿠바, 잉카 유적들. 하지만 또 서쪽으로 쏠리면,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시베리아, 그 다음 유럽들, 어딘지 음산한 북구, 햄릿의 덴마크도.
그렇구나. 난 어쩐지 우주의 배꼽…….
우주? 배꼽이라고?
아니, 세계의 배꼽 델포이가 궁금해요. 신의 뜻이 전달되는 산꼭대기의 신전, 파르나소스는 무등산의 두 배쯤은 높을 걸요. 내가 등반하는 건 아닐 테고, 안개 낀 작은 숙소의 창가…….
뭐야, 벌써 다 다녀왔네. 왜 숙소가 작은데?
높은 산중이잖아요. 산길이 넓겠어요? 좁은 산길에 서있을 숙소가 작을밖에.
상상도 참.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요. 세계의 중심으로 날거라! 그랬더니 이 두 마리가 바로 델포이에서 만났죠. 제우스가 직접 옴파로스를 그 자리에 놓아요. 옴파로스, 배꼽을. 100년 전 쯤 그 돌이 실제로 발굴되었다니, 신화란 신화가 아녜요. 나중에 도난 사건이 있었다던가, 지금 산에 놓인 건 평범한 바위, 모조품이래요. 모조품이라 해도 배꼽자리는 배꼽자리, 한번 가만히 만져 보고 싶은.
당신 신화 좋아하는 것 여전하네.
실제로 발굴되는 것들이 신화예요? 역사지!
그렇다 치고, 우리 여행지는 투표해야겠네요, 민주적으로.
민주적으로?
우리나라도 민주적 체제에 산다고 분류되었던데. 내과 우 원장 알죠, 〈타임〉지 팬이잖아요. 엊그제 떡 하니 펴놓고 설명하더라고요. 세계지도에 푸른 색 짙은 곳이 민주적 체제라고. 우리나라도 푸른 쪽은 분명하더구만. 서양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그런대로 명색이 민주주의가 실행되고 있는 곳이란 설명이 붙어있긴 해도.
그럼 정말 북한은 하얀 색이던가요?
그러게. 가까운 라오스, 아프리카 몇 나라, 차드, 콩고랑 심각한 독재라고 되었더라고.
콩고민주공화국 아닌가?
이름은 북한도 민주공화국이지. 아, 재밌는 건 미국이 캐나다나 북구 나라들에 비해 푸른색이 살짝 엷더라고.
설마요.
이 눈으로 봤어요.
하긴 요즘 미국 꼴이. 참, 멜라니아 부모가 시민권 얻었다면 특별대우죠. 자유만 가지고는 안 돼. 평등해야 민주주의죠.
그러게. 트럼프도 참. 자기가 기필코 없애겠다고 떠드는 연쇄이민제도를 장인장모에겐 대놓고 이용하다니. 장인이란 사람, 유고슬라비아 살 때 공산당원 전력도 있었다지만 멀쩡하게 통과되고. 세상이 그래요.
맞아, 미국도 말도 안 되게 불공평한 나라야. 군인신분인데도 쫓겨날 뻔했던 한국계 여자애 이야기 들었죠? 기도 안 막히던데요 뭐. 어떻게 아홉 살부터 거기 살고 학교 다닌 애를, 그러니까 20년을 미국말로 미국서 산 사람을 미국시민이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미국시민인가.
뭐 잘 되었다면서. 그리 어렵다는 시민권 받았으니까요.
암튼 여행은 둘이서 투표해서 50대 50이면 영원히 결론은 글렀네요. 답이 안 나오면 안 가는 것으로!
나중에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날 때. 그때 가서 이 설득의 천재가 나서지요 뭐.
설득의 천재.
그는 설득의 천재다, 맞다. 우물쭈물 청혼이 결혼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내가 남이랑……, 그만큼 오빠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더니, 제가 남이 씨랑…… 그런 정도로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말씀드린 것이 전부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왜 내 귓속에 박힌 청혼의 말을 모른 채 하고 다른 소리를 들었을까. 다른 소리에 나는 설득 당했고, 결혼을 했다.
나랑 결혼해, 괜찮겠지? 그렇게 가까운 소리를 흘려들으면서 나는 나무 위 새 소리를 듣고 있었다. 괜찮겠지? 너 나랑 결혼하자고! 난 정말 못 들었다. 나무 아래 함께 서 있었던 선배의 목소리는 잘 못 들었다. 하늘을 향해 내지르던 새 소리만을 기억한다. 나뭇가지 꼭대기, 먼 데 새소리만 들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날로 나는 아예 그 장면을 도망쳤다. 생물교육과가 있는 사범대학 쪽은 얼씬도 하지 않았고, 선배가 인문대 쪽에 가만히 나타나는 화요일 오후나 금요일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미리 도망쳤다. 아예 수업시간을 빼먹었다. 과 친구들 사이에선 그리 단짝이 없어서 누가 날 찾지도 않았고, 그렇게 잘도 피해 다녔다. 다른 친구들도 내 속마음을 잘 몰랐으니까 괜찮았다. 그 즈음부터였을까. 들은 것 안 들은 것들이 혼재하는 상태에 어리둥절한 것만 문제였다.
무서웠을까. 결혼, 결혼이라는 것 자체, 그 개념이 안 생겼을 때였다…… 라고 하면 변명이 될까. 스물이 넘은 애, 대학생, 선배랑 함께 걸어 다니면 기분 좋았고. 더 무엇이 필요했을까. 확신? 둘이서 일생을 함께 한다는 상상? 아니 상상을 하기 이전이었다. 선배는 군필 대학생이었으니까 결혼을 생각하는, 생각해도 되는 나이였겠다. 청력장애를 가지고 돌아왔으므로, 대학생활이, 생활 자체가 쉽지만은 않았을 터다. 나는 곧잘 그의 청력장애에 적응했다. 적응이라기보다는 내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미 장애였다. 어쩌면 나는 그 장애를 즐기기조차 했다. 혼자 중얼거리기 좋아하는 내게 편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기도,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한 이야기들. 나 혼자서 하는 둥 마는 둥 지껄여도 선배는 크게 궁금해 하지 않았다. 내용은 잘 몰라도 뭔가 조잘거린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어도 묻지는 않았다. 나는 어쩌면 선배를 살짝 이용했다. 혼자서 지껄인다는 것은 혼자서 답을 찾게 되는 과정이었다. 선배는 내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나는 이 모두를 과거형으로 말한다. 그것은 먼 과거에 속했다. 나의 미래를 장애를 가진 선배랑? 그런 일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난 그런 애였다. 밴댕이 속아지에, 겁이 많기로는 토끼나 사슴 저리 가라다. 일단 움츠리기, 그건 정말 못난 짓이다. 지금도 별 나아진 것은 없지만, 젊어서는 정말 심했다. 그 어떤 용기도 없었다. 용기 없음을 느끼지도 못했다.
막상 결혼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을 때에도 의사라는 직종이 살짝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이는 의사라기보다는 내게 오빠 친구로 여겨졌고, 오빠 친구라서 겁이 덜 났다. 사실 의사들은 환자와 죽음과 가까이 사는 한에서 내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신과 타인의 죽음을 관장하는 군인도, 범죄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판검사도, 예술에 빠져서 실 인생을 모를 예술가도, 돈과 성공을 목표로 가정도 경영하고야 말 사업가도, 이들 모두는 결혼과 관련해서 기피 인물들이었다. 못났다. 그럼 누구, 어떤 부류와 결혼을 해야 할지. 생물과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던 선배가 제격이었는데 그걸 몰랐다고? 아니, 선배는 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장애를 지닌 사람과 평생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은 극한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따뜻한 물을 좋아하고 단순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맹꽁이다. 맹꽁 맹꽁 울어서가 아니라, 흐리멍덩해서 맹하고, 꽁한 성격이니 꽁하다. 흐리멍덩하려거는 꽁하지나 말지. 드디어 꽁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난 아녜요. 시베리아 안 갈 거예요.
빈 그릇들을 들고 일어나면서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무래도 난 얼음공화국에 가고 싶은 맘은 없어요.
왜 또오! 무작정 반대는 안돼요. 어디든 가기는 갈 테니까, 배꼽이든 어디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거든 날 설득해요!
난 설득과가 아닌데……. 다시 중얼거리지만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이 소리는 어디에 녹음이 되려나.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 않고 녹음해둔 말들과 이렇게 저렇게 들어서 저장해둔 말들로 내 해마는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가 언제까지 견딜까. 해마에 실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릇 딸그락 소리, 물소리가 새소리들만큼 시끄럽다. 소리를 뚫고 온기를 만끽한다. 따뜻한 물이 이렇게 좋은데……. 물이 따뜻하지 않다면, 세제를 아무리 퍼부어도 이렇게 말갛게 그릇이 씻길 리가 없다. 온도의 법, 온도의 마법이다. 스물 네 시간 따뜻하고 찬 물이 흐르는 이 부엌이 그이 덕분이다. 그이는 내게 그 나름대로 아늑한 가정을 주고 있다. 답답하지 않은 집, 넉넉한 밥을 위해서 그이는 감기환자들의 콧물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수입이 괜찮은 편에 속하는 직업군이라 해도, 공중에 흩어져 떠도는 돈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번다는 일은 성스러운, 존경스러운 일이다. 남편을 존경할 일이다.
물론 우리 집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업그레이드 된 것은 맞다. 여름에도 발 시리면서도 땀을 못 견디는 건 어쩔 수 없다. 씻어야 잠을 청할 때 따뜻한 물이 얼마나 좋은가. 옛날에야 여름 철 따뜻한 물이 어디 흔했나. 젊어서도 찬 물은 힘들었었다. 주전자 물이라도 데우지 못하면, 허겁지겁 물 끼얹으며 얼마나 시렸던가. 어유, 저 오리새끼, 여름감기나 안 들면서 저러지 원.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었던 여름밤들. 좁은 가슴팍이 얼음물에 담근 풍선처럼 오므라들던 때를 생각한다.
시베리아라고? 씻기도 힘들다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사흘 밤낮을 덜컹거리면서 무얼 구할 것인가. 바이칼 호수가 여러 날의 덜커덩 소리와 추위와 더러움을 상쇄할 마력이 있나. 데카브리스트박물관에 가면 유형지에서도 고귀함을 잃지 않고 살았던 옛 사람들의 발자취가 잘 간직되어 있단다. 하지만 그걸 꼭 눈으로 보아야 감동하는가. 난 듣는 것만으로도 벌써 으스스 떨릴 만큼 감동해 있다. 귀족의 몸으로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또는 친정의 보살핌 속에서 유형지로 따라나선 몇몇 아내들의 사랑과 헌신, 그 이야기도 내겐 이야기로 충분하다. 오지의 은광산에서 중노동을 감수해야했던 그들의 12kg짜리 족쇄를 두 눈으로 보는 기분은 어떨까. 나라면 오히려 그런 적나라한 물증들을 눈으로 보면서 아파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눈으로 보아서 기억하고 싶은 것이라면 푸른 들판, 설마 설마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넓게 펼쳐지는 평원들이다. 수수만년 특별할 리 없는 무수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대지들이 경이롭다. 그래, 내게는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도 자작나무 숲들도 상상만으로 충분히 되었다. 신비를 품은 우주의 배꼽이 아닌 그냥 평범한 땅을 보듬자. 풀이며 지렁이며, 미생물부터 온갖 생물들이 살고 죽어가는 땅, 버드나무 늘어진 천변의 풀 무성한 보잘 것 없는 땅이면 되었다. 봄까치꽃을 피워내는 땅이면.
나를 설득해 보라니까요. 멋진 곳! 내가 유혹 당할만한 그런 곳!
그이는 여태 내 대꾸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내가 약한 구석 있잖아!
당신 약한 구석이라고? 뭘까, 그런 게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다 보니 입이 열리지 않는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을 해 놓고서 답을 하라면 어떻게 해.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무슨 말을 하느냐고. 내 입은 더욱 닫힌다.
남이씨, 조옴, 나남이씨!
그이가 내 이름 석 자를 불러 댈 때는 상기된 채 속으로 혼잣말을 내뱉고 있을 때다. 내 귀는 마이크로 증폭된 소리를 듣는다.
나남이 넌 뭣이 그렇게 복잡해! 여행 한번 가자는데, 병원을 잠시 쉬고라도 내가 가겠다는데. 무슨 말에 쉽게 한번 따라오면 큰일이라도 나느냐고. 뭘 생각할 게 그리 많으냐고! 망쳐버린 신혼여행부터 꼭 다시 말로 해야 해?
짐작만으로도 미안해진 나는 우물쭈물 말을 시작한다.
왜 이름은 부르고. 알았어요.
일단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싫은 이유부터 말해 봐요, 내가 설득 당할지. 아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도 아예 비행기를 이용하든가.
하지만 당신 정말 가고 싶은 것은 전체잖아요. 9,000km가 넘는다는 시베리아횡단철도 전체를 가보고 싶은 것.
거야 그렇지만 그렇게는 스무날은 걸릴 것이고, 아 물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끝가지 바로 달리기만 한다면, 로시야호라든가, 그 열차로는 일주일이면 직통으로 간다더라고. 하지만 여행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요. 어째도 바이칼은 이르쿠츠크는 보고 싶고. 그러니 우선 거기까지 만이라도. 아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일단 가서, 거기서 러시아 맛을 보고 그 다음에 결정을 해도.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무슨 자유여행을, 유럽도 아니고 낯선 땅을 자유여행이라니. 뭐 당장 낼모레 가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얘기해요.
아무튼 간다고 약속 했어요!
그래요, 천천히요.
속으로는 나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보세요! 자유여행이라면 우리 자유로 여행하기, 어때요? 자유로! 시베리아 아님 블라디보스토크는 그냥 당신 혼자서 가면 안 되나요. 친구들하고든지. 여행을, 해외여행을 왜 부부가 함께 해야 하나요. 집에서 보다 더 서로에게 갇혀있게 될 여러 날들을. 여행지에서 단둘이란 통째로 교집합이 되어버리니 숨이 막히잖아요. 헤쳐모여 해서, 자유롭게, 가고 싶은 사람들끼리 가는 것이 왜 안 되냐고요. 아예 방콕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혼자서 일주일 이주일. 대문을 걸어 잠그고! 그것도 꽤 좋은 여행일 텐데, 내면으로 내면으로. 최소한만 먹고 최소한만 자고. 무엇을 할까. 무엇이 하고 싶은가.[8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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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시베리아 아님 블라디보스토크」, 『블랙 시베리아』, 광주전남소설가협회 76~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