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교수회2010. 4. 8. 21:00

<한국작가교수회> 라는 곳이 있다.

문자 그대로 작가이면서 교수인, 소설을 쓰며 소설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학교를 떠났지만 소설가를 멈출 수 없기에 이곳의 일을 맡게 되었다, 대 선배님들의 강권에 떠밀려서.

물론 문창과는커녕, 국문과도 국교과도 아닌 교수경력에, 소설가 경력도 일천하여 심산하다. 우습지 않은가, "장"을 절대로 못하는 사람이 인생 다 저녁에 느닷없이 무슨 책임을 맡아서. 결국 이런 인사말도 써야했다.

 

http://cafe.naver.com/pronovel.cafe

 

저희 홈을 방문해주신 여러분들,

그리고 언제나 회원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국작가교수회>는 소설 창작과 그 교육에 관한 연구와 정보를 교환하며 후진을 양성 지원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서 2000년 2월 25일 창립총회를 가지며 정식으로 출범했으니, 이제 온이로 열 살을 먹었습니다. 인문학 일반이 인류의 정신세계를 위한 지도적인 힘을 상실해 가는 동안, 우리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정보오락의 시대’’(닐 포스트먼)는 우리가 인간성을 기억하며 그저 인간답게 사는 일조차 어렵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거대 우주를 품기 위해서 라면 우선 그 작은 파편인 이 지구와 먼저 화해하고 섞이는 일부터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쉬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첨단과학기술을 자연정복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하나 되게 하는 데 써야함은 우리 모두 깨닫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공룡처럼 화석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몸을 낮추고 키를 줄이며 자연 속으로 흡수되어 살아남기를 모색해야 합니다. 다만 그 첩경은 무엇 보다 우리를 공룡이 되라고 부추기는 파괴적 세력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항할 정열을 키워가려는 꿈을 꾸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꿈을 꾸는 한, 인생은 늘 불발입니다. 유토피아는 아무데고 없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이 불발을 성찰하고 이 결핍을 생채기 나도록 파헤집는 문학, 문학 활동이 인류의 꿈을 위한 마지막 보루임을 자각합니다.

 

그 동안 이 회를 이끌어 가신 선배님들의 열정이 이제와 물거품이 되는 일이 없도록, 부디 동참을 바랍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흔들리는 인간이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러분의 좋은 생각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의 기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2010 봄,

회장 서용좌 올림.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0. 4. 1. 23:00

무거운 책들


뭘 많이 들고 다니시네요, 무겁게!

머리가 가벼우면 책이라도 무겁게 들고 다녀야지요.

남보다 느린 걸음으로 늘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오갈 때면 주고받는 인사말이었다. 그런 나날, 겨울이었다. 12월 중순 들어서야 시험지 보퉁이를 끌어안고 연구동 층계를 내려오는 늦은 오후, 해지는 저녁. 나는 그날 퇴근길에, 바로 그 층계참에서부터 퇴직을 결심했다. 아무 쓸모없다는 문학수업을 해놓고서 또 아무 쓸모없을 등급으로 나누는 작업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아니, 그만 하겠다고.

해방은 이렇게 아주 급격한 염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염증이란 순간에 도를 넘는다. 펌프로 물을 길어 물탱크에 채우는 것을 바라보던 아이. 그렇게 저 만치 아래에서 천천히 조바심 나게 높아지던 물은 찰랑찰랑 가장자리에 차오르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밖으로 넘칠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탱크를 넘치게 할 생각이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슬아슬하게 물이 넘치는 순간, 그 순간을 기다리던 심정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물이 입 속에까지 차올라와 익사당하기 전에 성큼 일어나 물 밖으로 나와 버렸다. 설마 하던 학과 식구들은 평상시 내 분별없는 고집을 떠올렸는지 곧 퇴직을 기정사실화했다. 한 겨울 숨 막히게 애쓴 제자들 중심의 간행위원회에선 내게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 이름 하여 『창작과 사실. 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라는 논문집과 『반대말 ․ 비슷한말』이란 소설집이다. 여러 의미로 양장도 사양하고 흑백을 고집했더니, 책들은 내용 어슷하게 외형도 왜소하다. 표지만큼은 미술전공의 둘째아들이 많은 시간 공들여 만들어준 예술품이다.

나는 3월 한 달을 그 간행위에 참여한 78인에게 각각 책 두 권에 사인을 해서 보내는 일로 살았다. 이름마다 - 더러 동료도 섞이었지만 - 생각해 보았다, 이 젊은이들을 밥벌이 못하는 무능력자로 키워낼 뿐이라는 오명을 듣는데 지친 우리는 인문학을 송두리째 버려야한단 말인가. 인류의 원천적인 무엇, 시공간을 초월한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믿음을. 인간을 효용성의 수치로 파악하려는 시대의 어리석음에 그리 쉽게 굴복해버리기에는 청춘이란, 아니, 생이란 너무 아까운 것임을.

책을 나누는 일은 대강 마무리되었지만 새로 서가 정리는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 버리고 온 것 같았는데 널부러진 짐짝인 채로 불어난 서가를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무소유의 가치가 다시 우리를 일깨운 즈음에 더욱. 누군가 신문에 ‘목침용으로도 쓸모 있을 것’이라 평을 한 1296g짜리 번역서나 그 두 배에 육박하는 양으로 써낸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 더욱. 이렇게 별 쓸모도 없이 무거운 책들은 기껏 지나온 세월의 나를 나타내주는 이정표에 불과하리라. 나는 이 시간을 살고 있고, 내일을 살고 싶다. 아직 꿈이 꿈틀대는 내일을. 제대로 교수도 소설가도 아닌 박쥐인생을 이제는 털고 동굴 밖으로 나가고 싶다. 아무튼 박쥐에게도 날개는 있으니까. 마음은 벌써 알 수 없는 자유로움과 환희와도 같은 떨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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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연>에서 청탁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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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평2010. 3. 17. 23:30

      광주일보                                 

獨문학자 서용좌씨 소설·논문집 동시 출간

2010년 03월 17일(수) 00:00

독일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용좌(64 ·전 전남대 독문과 교수)씨가 소설집 ‘반대말 비슷한말’(전남대학교출판부 펴냄)과 논문집 ‘창작과 사실’을 동시에 출간했다.

소설집 ‘반대말 비슷한 말’은 늦깎이 소설가의 십 년에 걸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단편‘쪽지 붙였음’, ‘네번째의 죽음’, ‘마리아 막달레나’, 중편 ‘부나비’, ‘태양은’ 등 12편의 중·단편을 엮었다.

표제작 ‘반대말 비슷한 말’은 명예퇴직을 고려하는 교사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제자를 통해 옛 동료와 시공을 뛰어넘어 펼치는 감성과 지적유희를 다룬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논문집 ‘창작과 사실-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은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서씨가 그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발표한 연구성과를 엮은 것이다. 서씨의 전공분야인 하인리히 뵐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페터 슈나이더, 파울 첼란 작품연구 등 학회지와 잡지 등에 발표한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독일어 원문 논문도 실렸다.

광주 출신인 서씨는 전남여중고와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독어교육과, 전남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하인리히뵐학회장을 역임했다.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과 연작소설 ‘희미한 인(생)’, 중편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이번 소설집과 논문집은 서 교수의 갑작스런 명예퇴임을 맞아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간행위원회를 꾸려 석별의 정으로 펴낸 것이다.

/김대성기자 bigkim@kwangju.co.kr
Posted by 서용좌
독문학2010. 2. 25. 23:30

창작과 사실 - 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

서용좌서용좌교수명예퇴임기념 논문집소설집간행위원회편,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차례


간행사  ........................ 5


머리글  ........................ 6


하인리히 뵐과 쾰른  ........................ 11


길항작용에서 정체성 추구로

- 하인리히 뵐의 『어느 광대의 견해』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세대 간의 문제........................ 25


창작과 사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나타난

                                                           언론보도의 문제        ........................ 49


행동으로서의 부적응 - 하인리히 뵐의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 76

 

인도주의와 미학의 긴장: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에서 본 서술전략 ....................... 93


“Was ist der Mensch ohne Trauer?”

- Heinrich Bölls Stimme klingt weltweit.   ....................... 113


에.테.아. 호프만의 「모래귀신」의 서술자 ....................... 131


하인리히 뵐의 작가 정신: 예술가 - 시민간의 정체성 문제 ....................... 156


하인리히 뵐의 「검은 양들」과 47동인의 “정신” ....................... 183


하인리히 뵐의 유토피아의 가능성  ....................... 203


하인리히 뵐의 『흔적없는 사람들』의 사제의 침묵: “소수에 대한 이해”....................... 224


기구화된 사회속에서 원시기독교정신의 회복: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 「무르케박사의 침묵수집」 ....................... 251


독일의 전후 상황에서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등장하는

부적응의 인물들의 기능  ....................... 276


페터 슈나이더의 『렌츠』 연구: 개념과 인지의 불일치      ....................... 302


Heinrich Böll의  『Das Brot der frühen Jahre』에 있어서

 “Aussteigen”의 의미  .......................331


Peter Weiss의 『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 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s zu Charenton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 연구

- 시민사회의 억압하에서 예술의 표현자유를 위한 실험 ....................... 357


Heirich Böll의 『Gruppenbild mit Dame』: 성취거부의 생활원칙  ....................... 400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에 있어서 대위법적 구성의 기능과 효과....................... 439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에 있어서의

순간과 현실에 대한 의미 분석 .......................      471

 


 

간 행 사

 

늘푸른 나무가 고목이 되어도 아름다운 것은, 오랜 세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늘을 넓히고 그 그늘아래 수많은 사람들을 쉬어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저 굽어가는 것이 아니라 표 나지 않게 그 안에 수많은 생명을 품고 키워낸, 조용하고도 뜨거운 열정 때문일 것입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독문학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신 서용좌 교수님의 명예퇴임에 많은 동문들과 한 목소리로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가을밤이면 우리의 전통이 된 독문학제를 함께 기뻐하시던 선생님, ‘적나라한 동영상을 접할 때 보다 암시적인 문자책을 읽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무한대로 확장된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손가락 하나만 클릭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미디어시대에 책과의 소통과 대화의 즐거움을 선물하기 위해 손수 창작활동에 매진하여 자신의 그늘을 넓히신 선생님의 모습에도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이러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모아 그동안에 선생님이 남기신 열정을 두 권의 책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이 책 안에는 선생님의 냉철한 비평가로서의 모습과 상상력 가득한 창조적인 작가로서의 모습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캠퍼스를 떠나시는 선생님께 후학들과 제자들의 작은 정성이 기쁘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안에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아쉬운 마음도 함께 담아봅니다.

이후에도 선생님의 열정은 변함없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이 책들에 아직 담기지 않은 아름다운 작품들이 선생님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태어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전남대학교인문대학독일언어문학과 동창회장

김낙현


머 리 글

 

뭘 많이 들고 다니시네요, 무겁게!


남보다 느린 걸음으로 늘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오갈 때면 듣는 인사말입니다. 그러면 그냥 웃고 말 때가 많지만, 조금 힘이 남아있을 때는 대꾸합니다. 머리가 가벼우면 책이라도 무겁게 들고 다녀야지요. 그러고는 함께 웃습니다.


둔탁한 울림부터 멋스런 도이치 - 거기에다 제대로 사람이 되려면 『순수이성비판』 쯤은 원서로 읽어야 하리라는 막연한 선택으로 독문학도가 되어 그렇게 규정되어 살아온 밤낮, 한 세월. 어느 결에 인문학이란 젊은이들을 밥벌이 못하는 무능력자로 키워낼 뿐이라는 오명 속에 어딘지 부끄러운 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질의 막강한 권세에 눌려 인간이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져버린 오늘. 나•너의 유일무이한 소중함을, 문학•예술의 무궁한 가치를 논하다보면, 조금 엇박자라고 취급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가 이렇게 바닥에 주저앉은 지금이야 말로 시쳇말로 출구전략을 내놓아야할 때임을 절감합니다. 더 늦기 전에 목소리를 높여 말해야겠지요. 이 물질적•기계적 인생관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가치를 수호할 유일한 균형의 역할로서 인문학이야말로 진정 유용한 학문임을. 인류의 원천적인 무엇, 시공간을 초월한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믿음을. 인간을 효용성의 수치로 파악하려는 시대의 어리석음에 그리 쉽게 굴복해버리기에는 청춘이란, 생이란 너무 아까운 것임을.


그런데 저에게는 이 모든 것이 벅차다고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궂은 일, 힘든 일 면해준 동료들 덕분에 일없이 그저 강의와 글쓰기에 몰두해온 미온적 자세로는 이제 부족합니다. 지구상에서 우리를 누르고 있는 바위산보다 무거운 세력, 기술에 바탕을 둔 거대자본과 권력이라는 이름의 괴물과 맞싸워 인간의 가치를 찾는 데 힘을 더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새로운 피, 들끓는 정열이 사람냄새 나는 새 기운을 일으키는 모습을 이제는 간절히 지켜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해방은 간단한 일입니다.

지난 가을학기의 마지막 수업들은 언제나처럼 시험답안지 보퉁이를 껴안고 끝났습니다. 교수직의 나날 중 가장 우울해지는 계절병을 앓는 시간. 아무 쓸모없다는 문학수업을 해놓고서 또 아무 쓸모없을 등급으로 나누는 작업을 더 이상은 견디고 싶지 않았습니다. 해방은 이렇게 아주 급격한 염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행복합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것도 - 무엇보다 불합리를 - 참을 수 없는, 참고 싶지 않은 세월을 살았나봅니다. 정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려는 몸살도 시들하고, 그렇게 얻은 시간들을 허송하게 될까 두려움도 일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가르침을 주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늘 미안함에 더해서 이제 논문집․소설집 출간에 마음써준 모두 - 전남대학교독문과 제자들과 동료들, 전북대학교사범대학독어교육과 그리고 광주제일고등학교 제자들 - 에게 감사마음을 전하자면, 어중간한 교수의 어떤 논리로도 늦깎이 소설가의 어떤 필력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또한 아무 것도 아닌 이 부피의 논문들을, 또 다른 무턱대고 엄청난 양의 글들을 쓴답시고 혼자 몰두한 그 시간들을 곁에서 참아준 가족들에게도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분에 넘치는 정에 감사하며……


2020년 2월

 

                             서용좌교수명예퇴임기념 논문집•소설집 간행위원회



고창수 공양환 김낙현 김동중 김득환 김명희 김미선 김민근 김선규 김순임 김용대 김윤숙 김은주 김중웅

김태훈 김형국 김홍섭 남경호 노재봉 류성호 문광일 문미영 문영희 민춘기 박도하 박병옥 박양희 백경철

서기수 서명희 서선호 소현숙 송경안 송원근 신유진 심공섭 심택성 심현주 안영근 안평환 양미경 양우천

유명희 윤중원 이공근 이상훈 이상희 이선화 이소림 이연정 이재인 이희동 임우정 전경수 전영희 정구수

정명순 정문화 정선경 정숙미 정신석 정찬만 정찬종 정현정 정호길 정후식 조경화 조길예 조윤재 조자경

최명규 최   숙 최유영 최향동 하희자 한봉수 한창환 홍진선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0. 2. 25. 23:00

 

반대말 • 비슷한말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차례 

머리글 ―――――4

반대말•비슷한말 ―――――8

쪽지 붙였음 ―――――31

네 번째의 죽음 ―――――55

콩나물 ―――――76

조사 ―――――97

마리아 막달레나 ―――――119

오늘과 이별하다 ―――――140

행복한 수요일 아침 ―――――167

춤꾼 ―――――194

건들장마 ―――――214

부나비 ―――――236

태양은 ―――――263

새롭고 낯선, 그래서 신선한 세계 ―――――315
   - 서용좌 소설의 특성 / 유금호

 

머리글


소설쓰기는 이 정보오락의 시대에 무엇일까요?

유명한 정도가 매년 한국의 노벨문학상 예상 인물들 중의 하나로 꼽히는 한 소설가가 학교에 초빙된 적이 있었습니다. 소강당 강연 중에 그는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 하고, 소설도 못 쓰는 사람이 평론한답시고 하고,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교수한다고 공언하더군요. 물론 유머였겠지만 가슴이 막혔습니다. 별 볼일 없는 문학 강의 시간 줄여서라도 학생들에게 유명작가를 만나게 하려던 저는 하릴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렇다고 그제서 분발해서 소설을 쓰기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얼떨결에 소설가가 되긴 했지만, 아무도 저를 소설가라 불러주지 않은 때였습니다.


기자본주의사회에서 교수는 허위의식의 극치의 하나입니다. 어설픈 존경이라는 것도 허울 뿐, 그에 전혀 걸맞지 않게 그들이 하는 노동의 양을 생각해보십시오. 취미 하나 개발하기는커녕 마음 편히 밤잠을 자보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더 많은 시간 글에 매달려도 더 알아주는 사람 없는 소설가의 길에 빠져든 것은 저로서는 실존적 선택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소설들을 파먹느라 밤을 지새우는 하이에나이기를 멈추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친 하이에나는 완전히 생경한 글쟁이의 길로 접어들자 표범은커녕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박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늘 선택 앞에 깜깜한 채 내팽겨진 우리들의 무력감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앞을 향하고 걸어도 불안한 걸음을 계속 뒤돌아보느라 터덕거리는 어리석음을. 가끔은 먼 데 하늘을 바라며 전혀 다른 상황을 꿈꾸는 우리들의 모습을.


꿈을 꾸는 한, 인생은 늘 불발입니다. 유토피아는 아무데도 없는 곳이니까. 그런데 삶이 점점 녹록치가 않습니다. 한 겨울에도 반쯤 벗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나, 우리들 어디에도 온기라고는 없습니다. 행여 내일 실패하지 않으려고 뇌세포는 주판알로 피범벅입니다. 그러나 그냥 살아있는 것은 모든 생물체에게 주어진 우연한 권리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나에게만 주어진 한 가닥 미미한 권리로서, 나는 나로서 살기를 망설이고 싶지 않습니다. 지식산업의 대열에서 살아남느라 정신에 대한 죄악이라고 홀대했던 이미지 - 이제서 이미지에 들려 나로서 상상하기는 어떤가요.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오래 망설이며 겁냈던 글쟁이로서의 실존 -

어딘지 산만한듯하면서도 응집력을 지닌 소설쓰기에 몰입하고 싶습니다. 서사텍스트란 겉보기에만 하나의 통일체일 뿐, 실제로는 사건의 객관적 세계와 서술자의 주관적 세계가 씨줄날줄처럼 얽힌  꿰뚫어보기 어려운 혼재의 장입니다. 등장인물이 느끼는 불평등, 장애 또는 결핍은 서술자를 긴장시키는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여기에 또 작가의 유희충동에 의한 개입이 의도적으로 시도된다면? 소설을 쓸 때면 저는 거의 전율을 느낍니다, 길은 멀지만 박쥐도 아무튼 날개는 있으니까요.


                                                              ※

 

새롭고 낯선, 그래서 신선한 세계

                         - 서용좌 소설의 특성


           유금호 (소설가 / 한국작가교수회 전 회장)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문학 표현 양식에 대한 슈클로프스키(Shklovky)의 괘묵은 이 이론은 지금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입장이 아니라 독자입장에서도 낯설게 표현된 언어구조물을 통해 원래의 작가 심상에 접근해가는 그 과정 자체를 ‘예술행위’로 파악하는 데 묘미가 있다.

솔직히 서용좌의 소설들을 처음 대하는 일반 독자라면 부분적으로 당혹해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 서사물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문맥 속에 끼워드는 작가의 맨 얼굴의 언술과 현학적 수사들이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소설들이 작가 메시지를 객관적 서사 속에 용해, 육화시켜 내보여왔다면 서용좌 소설에서는 서사의 행간 속, 작가의 자유로운 사유와 분석, 예증들이 ‘바슐라르’ 이상의 상상력을 가지고 풍요롭게 부유한다.


소설이 꼭 객관화된 서사 속에서 작가의 영혼을 간접적으로 표출해야 하는가,는 현재로도 얼마든지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근래 소설 이론서들 목차에 과거 앞자리를 차지하던 ‘주제’ 항목이 뒤로 밀리거나 삭제된 경우를 본다. 그만큼 소설양식 자체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잘 빚어진 찻잔 같던 19세기 식 단편들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속에 용좌의 소설이 놓인다는 것은 현재의 한국문단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


사소한 것에서 의미 찾기


아주 작은 사물이 특정한 작가의 촉수에 잡혀 엄청난 질량으로 확대 생산되는 현상을 가끔 볼 수 있다. 영민한 작가일수록 그 사소함에 의미를 확장시키는 능력을 지녔다고 하면 조금 과장된 주관일까. 이 소설집을 읽어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서용좌의 촉수는 그런 면에서 매우 민감하다. […]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나의 심장에서 이웃들의 심장에서 일렁이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왜 우리는 저 혼자서 제 삶을 생경해하는 것일까. 가을 비 차갑게 내리면 더욱.>

      

이 글은 작가가 한국소설가협회에서 발간되는 잡지에 처음 소설을 발표하면서 쓴 글의 일부이다.

이 작가가 소설쓰기 보다 독일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교수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기감정의 글쓰기보다 판단하고, 분석, 비교하는 위치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독일 철학자와 문학가들의 삶과 사상 속에 깊이 천착해 온 작가의 소설쓰기는 그래서 서두에서 언급했듯 서사 안에서 때로 현학적 사유들이 출몰하고, 서사의 행간에 직접 언술의 흔적까지 많이 들어난다. 그렇지만 시험 삼아 서용좌 이름을 지워도 서용좌 소설은 서용좌라는 작가를 떠 올리게 할 것임에랴.


분명한 것은 모든 예술이 그렇듯 과거는 늘 새로운 시도들에 의해 파괴되고 창조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한국소설의 영역 확대를 위해서도 신선하고 개성 있는 이 작가의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되고 그런 의미, 과감한 도전들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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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독문학2010. 2. 24. 23:30

통일 도이칠란트 문학의 변화 추이


11회 영호남문학인 교류한마당

2009년 5월 30일~31일

 

 

1. “하나의” 도이칠란트

21세기로의 길목에서 ‘정보오락 Infotainment’의 시대라고 하는 범세계적 문화 패러다임의 교체보다 중요한 문제는 도이칠란트의 경우 통일이라는 변수에 있다. 양 도이칠란트 국가의 정치적 통일이 곧 ‘하나의 도이칠란트’라는 통합으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속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합의가 없는 통일”이고, “장벽은 무너졌지만 분단은 계속”되고 있고, “문화적 식민화” 속에서 “통합이 신속히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는 환상”이었다는 생각에서 ‘동인-서인 Ossi-Wessi’이 “머리속 장벽”을 두고서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전후문학은 패전과 함께 양심의 가책으로 전쟁포로상태로 귀향한, 또는 히틀러소년• 소녀단 유니폼을 벗어던진 세대에 의한 문학이었다. 그러나 친서방정책으로 경제재건을 우선시한 서쪽과 사회주의 이상 실현을 위해 독서대중의 교양화를 꾀하던 동쪽에서, 도이치문학은 크게 다르게 발전할 운명이었다. 서독의 입장은 보수적 문학비평의 취지에서 도이치문학의 통일성이 존재한다고 간주했다. 서독의 자유문학과 동독의 몇몇 비판적이고 수준높은 문학을 포함하면서, 동독의 문학 일반은 정치적으로 교조적이며, 미학적으로는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전혀 문학이 아니라고 간주해왔다. 반대로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본주의에 문학적 상상력을 저당잡힌 서독의 문학은 작가를 먹여 살리는 상품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동독에서는 문학이 인민대중의 사회주의 정향을 고무시키는 교육적인 사명감에 찬 위대한 그 무엇이었고, 작가 또한 약간의 특권계층으로 대접되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역사의 승리자로서 문학의 황금시대를 맞았던 동독의 경우, 도이칠란트의 통일은 그 자체로서 충격이었다. 통일은 동독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해체라는 의미에서 문화체제의 해체를 포함하기 때문에, 통일 후 소위 청산작업과 변화의 대상은 곧 동독의 문학인 것이다. 서방에서는 ‘이데올로기문학’이라고 격하되는 동안 스스로는 도이칠란트 정신사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믿어온 문학이 청산되어야 했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글쓰기 방식의 붕괴와 더불어 문화의 시금석이 사라진 공황기를 초래했다.

 

 

1) 통일의 순간 -  폴커 브라운

통일의 순간에 시집 『우리들이지 그들이 아니라 Wir und nicht sie』(1970), 장편 『미완성의 이야기 Unvollendete Geschichte』(1975) 등이 어렵게 출판되어 동• 서독에서 호평 속에 팔리고 있던 중견작가 브라운 Volker Braun(1939~  )은 울먹였다.

 

 

추도사 Nachruf」 (1)

나는 그대로 있는데 내 나라는 서쪽으로 떠나간다.

오두막집에는 전쟁을 왕궁에는 평화를. (2)

내가 내 나라에 발길질을 해댔구나.

내 나라는 몸을 던지고 알량한 장신구마저 던져 버린다.

겨울이 지나면 탐욕의 여름이 오겠지,

그러면 나는 어디론가 먼 곳으로 사라지리라.

내가 쓴 모든 글도 이해될 수 없으리.

나는 여태 한 번도 지녀보지 못한 것을 빼앗길 것이고,

아직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것을 영원히 아쉬워하리라.

희망은 덫이 되어 내 갈 길을 가로 막고 있다.

나의 소유물을 이제 너희가 움켜쥐고 있구나.

언제 다시 내 것이라고 말하며 모두의 것을 의미하게 될까.



 

강한 자의식의 소유자인 브라운은 동독의 이념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거기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이 소유물은 다름 아닌 “여태 한 번도 지녀보지 못한” 진정한 사회주의 유토피아이다. 현실사회주의가 허위라는 사실이 최종적으로 판명된 뒤에도 진정한 사회주의는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고집스런 우울은 수십 년에 걸쳐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의 비전이었던, 기회가 균등한 곳, 생산적인 인간들의 연대공동체를 집요하게 그린다. 이 시의 정취는 통일과 더불어 발아래 땅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과 일치했지만, 브라운은 양쪽 비평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마당에 ‘진정한 사회주의’가 도래하리라는 환상을 떨쳐버리지 못했고, 또 새로 얻은 개인주의적 자유를 예찬하지 않았다고 해서.

 

2) 통일소설 / 전환기소설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동쪽 도이칠란트 문단의 새로운 변수는 작가들의 세대교체를 들 수 있다. 동독 최고의 극작가 뮐러 Heiner Mueller(1929~1995)나 “비유적 사고”의 모르그너 Irmtraud Morgner(1933~1990)는 유명을 달리했고, 통일을 불안과 불만으로 받아들이는 브라운이나 아예 하임 Stefan Heym(1913~2001)볼프 등 기성세대는 좌표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대신 젊은 작가들에게 통일은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강요받아온 소위 문학에 대한 외세로부터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통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했다. 그들만이 가진 ‘두 체제’와 ‘두 사회’의 경험은 서독의 작가들에 비해 유리한 관점을 확보하는 것도 사실이다. 통일 후 가장 성공적인 신진이라 할 브루시히 Thomas Brussig(1965~  )는 아예 동독은 이야기하기에 좋을 것이라며, 지루한 자본주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의 무궁무진한 보고라서 “소설가의 천국”이라 호언했다. 이것은 연령의 의미에서의 세대교체 뿐 아니라, 관점의 차이를 반영한다.

그의 『우리같은 영웅들 Helden wie wir』(1995)이 대중적인 괄목한만한 성과를 낼 때, 시대소설로서 ‘통일- 또는 전환기소설 Wenderoman’(3)이 화두로 떠올랐다.


 

소설은 울치트 Klaus Uhltzscht라는 일인칭 서술자의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시작된다. 장벽붕괴 후 2년쯤 되었을 때 그는《뉴욕 타임즈》기자와 인터뷰를 자청하여, 그의 비정상적 ‘물건’이 전적으로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울치트의 21살 생애가 이야기되는데, 그가 태어난 것은 하필 1968년 8월 20일. 바르샤바조약군이 체코에 진입한 날이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은 이기적인 관점과 한편 봉사하고자하는 이타적인 관점에서, 사회주의 선전에 기울어 슈타지(4)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지만, 아버지 역시 슈타지였다는 사실에 놀란다.

특히 마지막 장 “분단된 성기 Der geteilte Pimmel”는 동독 최고의 소설가 볼프의 

<분단된 하늘 Der geteilte Himmel>(1963)을 그대로 조롱한다. 슈타지요원 울치트는 1989년 11월 4일 베를린 알렉산더광장에서 장벽붕괴가 임박한 순간에도 여전히 사회주의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연설자를 비웃는다.  연설자는 유명 피겨스케이팅 선수출신의 트레이너 뮐러 Jutta Mueller(1928~  )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음 날 밝혀지기로는 볼프였다. 주인공은 분노하여 외친다. “‘장벽은 없어져야 한다!’라는 한마디 외침이면 되는 것인데 그런 외침은 크리스타 볼프의 입에서가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의 입에서 나왔다.” 작가는 이처럼 적당히 소신을 기피해온 볼프가 국민작가로 존경받았던 사실에 분개하며 볼프의 전 작품활동을 ‘얼음 위에서 미끄럼타기’(피겨스케이팅)로 비하한다.

문제는 공격당하고 매도되는 동독의 대들보 작가들이다. 그들은 이처럼 직접 동쪽의 후배 작가들에게서 또는 외곽에서 직격탄을 맞으며, 또한 서쪽으로부터는 “길들여진 반대자들”이었다고 매도당하는 협공에 처해있다. 동독이 “문화보호지역”이었다고 보아도 되는가? 민족의 대변자로서 ‘인간적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를 당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견지했던 지식인 작가유형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의구심은 폭등하고 있다.


2. 분단기의 거장들

1) 도덕성 시비 - 크리스타 볼프

누구보다도 통일과 더불어 논쟁에 휩싸인 볼프 Christa Wolf(1929~  )의 문제의 1989년 11월 28일의 베를린광장 연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독의 독립을 고수할 것인가? 우리의 재정적 도덕적 가치의 폐업 정리세일을 할 것인가? 조국을 위하여 아직도 우리에겐 기회가 있습니다. 아직도 출발점이었던 반파시즘적 인본주의적 이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파시즘적 인본주의적 이상’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하자는 취지의 발언이라면, 중견 지식인 성직자 정치가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는 해야 하는 발언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남은 것 Was bleibt』(1990)의 출판이 그로서는 악의적인 숙명과도 같았다.


 슈타지로부터 공개적으로 추적/감시되는 여성작가의 하루가 이야기되면서 감시와 그로부터 파생된 감정들, 불안, 변화의 결과가 보고된다. 작가는 내면의 독백, 끊임없는 자문과 자기시험을 통해서 정신분열적인 행동을 보인다. (자아의 분열은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 볼프의 분열성을 말한다.)

볼프에게 실제로 ‘남은 것’은 거짓과 자기기만, 굴욕에 속수무책으로 내맡겨지는 일이었다. 이미 볼프에 대한 평가는 서독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1987년 11월 FAZ에서 비평계의 황제 라이히-라니츠키의 Marcel Reich-Ranicki(1920~ )는 볼프를 “동독-국가시인”이라고 폄하하더니,『남은 것』이 출판되어 시중에 깔리기도 전에 ZeitFAZ에 악의적 서평이 실렸다. 국가시인이 감시를 받았다니 어이가 없다는 논조에, 국가와 가족처럼 지냈고, 국가로부터 혜택을 누린, 나치스에 복무한 지식인의 후예라고 비판되었다. TV 프로그램 문학 4중주는 “도이칠란트에 혁명이 일어났다. 동독의 작가들은 승리했는가, 불발인가?”라고 비꼬았다. 이는 동독의 작가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로서, 이 순간에는 마치 작품의 질이란 글이 쓰인 장소와 동의어인 것 같았다.

논쟁의 제2기는 정치적 참여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의 상호 공격으로 번졌고, 1993년에 터진 슈타지 서류철 문제는 볼프의 ‘비공식 협조자 IM’ 활동(1956~1962) 고백으로 비롯되었다.(5)볼프 자신은 이 모든 혹독한 비판을 전환기의 청산이라고 받아들였다.  상당 기간을 미국에 체류함으로써 언론을 피했고, 육신의 병으로 반응했다. 

이것은 『화신 Leibhaftig』2002)에 기록되어 있다. 『메데이아. 목소리들 Medea: Stimmen』(1996)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번갈은 독백에서 메데이아신화가 재창조된다. 그리스신화, 아니 세상의 모든 신화와 전설 가운데 최고의 악녀로 각인된 메데이아가 이 작품에서는 강한 자의식의 여성으로 묘사된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근거한 사건들은 다른 방향에서 해석되며, 다른 시각으로 조명된다. (『카산드라 Kassandra』1983)를 그리스 아닌 트로이의 시각에서 쓴 것과 상통한다.)

볼프는 12권 전집의 출판과 특별호 등을 출판하고 있고, 에세이, 대담, 서간모음집에서는 그 시대에 증후적이고 감동적인 열정이 확인된다. “문학은 오늘날 평화연구이어야 한다.”(뷔히너문학상, 1980)는 입장은 2002년의 도이칠란트 서적상 수상에까지 변함없이 이어진다.



 

2) 신념문학. 신념의 변화? - 귄터 그라스

도이치문학 특유의 전통인 ‘신념- 또는 신조위주의 미학’에서 출발한 전후의 작가들은 이제 거의 역사적 위치에 들어갔다. 하인리히 뵐 Heinrich Boell(1917~1985), 렌츠 Siegfried Lenz(1926~ ), 그라스 Guenter Grass(1927~  ), 발저 Martin Walser(1927~  ) 등 대부분 ‘47동인’과 관련된 서독의 전후문학은 끈질기게 책임의 문제를 공개함으로써 민족의 양심이 된 세대였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은 대체로 ‘양심으로서의 작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념 자체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하다.

 1959년 프랑크푸르트서적박람회에서, 뵐의 『아홉시 반의 당구 Billard um halbzehn>와 더불어 그라스는 『양철북 Die Blechtrommel』으로 세계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통일의 순간 뵐은 세상을 떠나있었고, 그라스는 콜 수상 주도의 (흡수)통일 방식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통일 후 그는 통일이 작가에게 그 신념에 따라 소재상의 전환기는 될지언정 흥망성쇠의 분기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무당개구리 울음 Unkenrufe』1992)에서 정년을 앞둔 홀아비 노교수와 예술품복원사인 홀어미의 로맨스그레이를 전경에 배치하고, 통일 후 정치 및 경제적 현실을 형상화하면서 화해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장편을 썼다.

  때는 전환기로 도이칠란트 남자와 폴란드 여자의 만남은 민족적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이 둘은 각각 실향민들이고, 각각의 양친들은 언젠가 고향 땅에 묻히기를 소원했었다. 그래서 ‘도이칠란트-폴란드 공동묘지’라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실향민들은 시신으로나마 “화해의 묘지”에 되돌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결말은 이들의 사고사로 끝난다.

 

『넓은 지평 Ein weites Feld』(1995)에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기류에 따라 끊임없이 좌우되는 도이칠란트인의 성향을 ‘배신’이라는 낱말로 함축했고, 『나의 세기 Mein Jahrhundert』(1999)에서는 20세기 100년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매번 다른 서술자에 의해 연대기적으로 서술된다. 이 작품 후에 그라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6)

그라스의 사회활동은 나이가 들어서도 엄청나다. 동ㆍ서독 통일방식에 대한 이견으로 수상의 정책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1997년에도 콜의 5차 연임을 저지하기위해 전 도이칠란트 지식인들의 결집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 그의 장편 『게걸음으로 Im Krebsgang』(2002)는 2차대전 말에 민간인 9천명 이상이 숨진 선박침몰사건을 다루어, 발표되자마자 독자와 비평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성공작이란 평가 외에도 도이칠란트 사회의 깊은 터부였던 소재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정전 무렵에 발트해에서 발생한  ‘빌헬름 구스틀로프’의 침몰사건은 우선 참사의 규모에서도 1912년의 타이타닉호 침몰사건 때보다 사망자 수가 무려 5~6배나 되는데도 역사적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해왔다. 구스틀로프호는 ‘대도이칠란트제국’이란 오만한 꿈의 상징이었고 ‘히틀러의 타이타닉’이었다. 따라서 그 배의 침몰은 나치스 범죄에 대한 당연한 응징으로 조용히 덮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라고 간주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구스틀로프호의 비극 등은 곧 잊혔다. 그와 함께 소련과 동유럽에서 추방된 1250만 도이칠란트 민간인이 겪은 고통도 잊혔다. 특히 나치스 파시즘의 청산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68세대’는 도이칠란트를 희생자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 그런데 이제 소설 속에서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노인의 입을 빌려, 그라스는 “동프로이센 피난민의 참상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세대가 해결할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제 게의 옆걸음, 가능한 한 적을 속이려는 걸음이 어제와 오늘을 왔다갔다하는 서술관점을 상징하며, 긴장을 지닌 짜임새로, 예술적이고 유머러스한 대작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팔이란 안으로만 굽을지라도, 한 번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던 그라스가 이 터부를 건드려 도이칠란트인을 감싸려는 속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행동주의 지식인에게서도 노년의 향수란 결국 고향과 동향인이라는 보편감정에 파묻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경향은 그라스의 동년배이자 동지적 정서를 지녔던 발저에게서는 더욱 노골적이다.(7) 1960년대와 70년대를 공산당에 동조했던 전력과는 다르게, 그는 80년대 후반부터는 나치스 과거에 대한 논란에 결정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표방했다. 통일 후 베를린에 ‘홀로코스트기념관’을 건립하려는 거대한 계획에 대해서도 맹공을 펴면서, “축구장 크기의 악몽”이 될 기념관 따위를 건축하는 것은 수치를 “기념화”하는 것이므로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실제로 1980년대 소위 ‘역사가논쟁’(8)을 거치면서 도이칠란트인들의 정서는 바뀌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베를린대학의 법학교수 슐링크 Bernhard Schlink(1944~  ) 또한 나치과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들세대의 성찰을 담은 『책 읽어주는 남자 Der Vorleser』(1995)로 세계의 문학시장을 휩쓸었다.(9) 슐링크는 문학계에서는 신인이다. 그는 외도(?)로서 이러한 성공을 거두면서 엄청난 걸음을 내딛는다. 나치스의 집중수용소 간수였던 주인공을 모든 괴물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면모를 지닌 가해자로 창작해서만이 아니다. 일인칭 서술자가 세대간의 길항작용을 극복하고 전후세대의 자기정체성을 확보해냈기 때문이다. 제3제국의 범죄적 계책에 얽혔던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를 도이칠란트의 죄과와 관련시키고, 그것을 앞 세대에게 “밀쳐두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 안에 보듬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한편 온 세계를 통틀어 전반적인 문학계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도이칠란트의 도서박람회는 위용을 유지해가고 있다. 또 수많은 문학상들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지닌 뷔히너문학상 수상 면면을 보아도, 시장성과는 다른 치밀한 발굴과 격려 그리고 존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통일 이후 수상자들에는 이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작가들의 이름과 함께 더러는 생소한 이름들이 들어있다. 헝가리 혈통의 극작가 타보리 George Tabori(1914~2007), 스위스 작가인 무슈크 Adolf Muschg(1934~  ), 동독 출신의 힐비히 Wolfgang Hilbig(1941~2007), 남쪽 튀빙엔 출신의 슈타들러 Arnold Stadler(1954~  ), 루마니아 계로 다다이즘의 음향시 영향을 간직한 파스티오어 Oskar Pastior(1927~2006) 등이 그들이다. 최근 수상자 모제바흐 Martin Mosebach(1951~  )는 『무형식의 이단. 로마 리투르기와 그 적 Haeresie der Formlosigkeit. Die roemische Liturgie und ihr Feind』(2002)에서 가톨릭 신앙의 전사처럼 옛 미사전통의 부활을 외치며 수상했다. 2008년의 오스트리아인 빙클러 Josef Winkler(1953~ )는 죽음과 동성애를 주요 테마로 쓰며, 올해의 수상자 카파허 Walter Kappacher(1938~  ) 역시 오스트리아인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낙관론자는 종종 비관론자이다 Hellseher sind oft Schwarzseher』2007) 등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기층 근무자들의 일상을 써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

통일이 가져온 지각변동의 일렁임을 살던 젊은 문학도 장년기를 맞은 지금, 여러 의미에서 (도이치)문학의 현재는 한 마디로 무질서한 복수성 또는 무한대의 다양성 속에 있다. 최소한의 공통점이라면 문명비판적인 기본자세, 한때는 그렇게도 익숙했었던 진보의 믿음에 대한 거부, 단순한 의미구성에 대한 회의 등이다. 다양성은 획일성에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일이다. 각자 나름대로의 고유한 입장과 방향을 선호하는 가운데, 철저한 미학적 구상, 글쓰기의 실천 방식, 다양한 지역들과 사회적 기능들, 다양한 작가 세대들과 그 정치적 입지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은 유의미하지 않겠는가.

※ 졸저: 『도이칠란트 •  도이치문학』, 전남대학교출판부 (2008), 846~966쪽 발췌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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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중에 「소유물 Das Eigentum」로 개칭되었다.

2) 뷔히너 Georg Büchner의 『헤센 전령』(1834) 중 “오두막에 평화를! 왕궁에 전쟁을!”이란 글의 패러디이다.

3) ‘Wende’는 특히 도이칠란트 통일과 관련해서는 1989년 5월 도이칠란트민주공화국의 부정선거로 인한 동요에서부터 시작되어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변혁기를 총칭하는 넓은 의미의 통일기라고 쓴다.

4) 1950년에 발족한 국가안전부[Stasi]. 자체적으로는 “회사”라 불렀고, 국내외 첩보국과 특정범죄수사국을 겸했다.

5)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2006) 참조.

6) 뵐의 1972년 노벨상수상은 전범국가 도이칠란트에 대한 국제적인 문화적 면죄부라 평가되었다.

7) 이 노벨상 지명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유럽주의자’ 그라스와 도이칠란트의 ‘민족주의자’ 발저가 경합했다는 후문도 있다. Cicero가 선정한 500대 지성인 명단은 교황 베네딕트 16세 - 발저 - 그라스 순이다.

8) 1986년 놀테 Ernst Nolte(1923~  ) 교수는 「사라지지 않을 과거」라는 짧은 글에서 나치스범죄는 볼셰비키 혁명의 “아시아적 야만”에 대한 반응에 불과했다고 주장해서 역사가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9) ‘죄없이 죄의식을 느끼는’ 한 젊은 도이칠란트인의 보고서는 도이칠란트 내에서 50만부, 미국에서는 100만부가 팔렸다. 그라스의 『양철북』이래 처음으로 대영제국 한 해의 베스트셀러목록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뉴욕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슐링크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초대된 최초의 도이칠란트 작가가 되었다.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9. 12. 12. 02:51

 

평행선

                                                    『사랑은 아무나 한다』2009 (이화에세이)

 

 

사랑을 주제로 받은 순간 평행선이 떠올랐다. 평행선을 화두로 삼을 량이면 그건 이미 시시한 시작이리라. 그렇다. 하지만 “종교적인 긍휼”이라거나 “아끼고 위하는 정성스런 마음” 같은 보편적 사랑이 아닌, “남녀가 서로 정을 들여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하려는데 대뜸 평행선이 떠오른 것을 어쩌랴. 심장도 머리도 둘인 두 개체 간의 사랑이라면 서로 다른 선의 만남을 의미할 터인데, 그것이 잠시라도 우연이라 해도 평행선이 되어야 서로를 건네다 볼 수 있고 사랑 등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말이다.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선은 질풍노도처럼 만났다하더라도 곧 비껴가버리지 않겠는가 말이다.

물론 이러한 염세적인 견해는 한 개체가 그리는 선이 곡선이라기보다는 직선 쪽에 가깝다고 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만일 길가다 동무를 만나서 한 눈 팔 량으로 멈칫거리거나 굽어져 어울릴 수 있다면 사랑의 감정도 보듬고 어우러져 다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으련만, 어쩐지 그것은 희망이나 꿈같은 말로 들린다. 태어나면서 손발을 버둥대던 우리는 늘 어딘가로 버둥대면서 나아가고 그래서 그 길이 우리의 인생이 된다. 기껏 잘해야 비슷한 각도로 움직이고 있는 다른 길손을 동무 삼을 수 있으면 그게 낙일 것이다. 어쩌다 불꽃이 튀어 한데 어우러진 두 길이 있어, 다시 서로에게서 영 멀어지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주변에서 서성대며 길을 간다면 그것 역시 축복 아닐까. 함께 세상에 새로운 길손을 퍼뜨리기라도 하면 그 또한 잊히지 않아 더욱 버벅대고 주저앉아 그렇게 살아가는 삶. 사랑은 제 본디를 깨닫게 하는 일에도, 길을 계속 가게 하는 일에도 무르다. 사랑은 사람을 물러터지게 하고도 그것에 만족하게 한다. 사랑은 허술하고 바보스럽다. “현명한 이가 말하길, 바보들만 사랑에 빠지는 법이라 했지”라던 노랫말이 진리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무슨 그런 평생을 갈 중증의 바이러스에 옮는단 말인가.

이 병은 『폭풍의 언덕』 같은 중독된 사랑이나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치명적 사랑으로 소설 속에나 파묻혀 영생한다. 이 병은 실 인생에서는 애절하게 끝날 때가 많다. 중세 철학자 아벨라르와 제자 엘루아즈처럼 사랑 속에 결혼하여 아들을 두고도 생이별하는 연인들. 문중의 간섭으로 각각 수도생활에 들어갔으니, 그들의 “사랑의 서간”이 수백 년을 넘어서까지 세상의 연인들을 감동시키면 무엇 하리. 더러는 공권력도 사랑을 죽이는 변수다. 2차 대전 후, 보통 사람들처럼 십대에 만나서 몇 년 후 결혼하고 아들 둘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느닷없이 원자무기 비밀을 소련에 건넨 스파이혐의로 체포되어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한 로젠버그부부. 폭력은 사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흑인이면서 명 쿼터백으로 이제 은퇴한, 네 아들의 아버지이자 멀쩡한 남편. 자선활동에서까지 돋보인 남부러울 것 없던 그가 별장에서 잠든 사이 갓 스물을 넘긴 여친에게서 네발의 총격을 받는다. 순수했던 첫 사랑을 접고 명사와의 인생을 꿈꾸었던 여자의 종말, 참혹한 비극. 허황한 것이 사랑일까. 사랑은 치기다. 사랑은 없다.

아니, 동서고금 세기적 스캔들을 뿌려댄 이들의 숨 막히는 열정들을 생각하면 사랑은 그 무엇인 것 같기도 하다. 정직하게 말하면 가끔은 가까이 이웃에서도 힘든 길을 선택한 대단한(?) 사랑도 없진 않다. 기어코 첫 연인을 기다렸다가 그녀가 아이 둘 데리고 고향 내려오는 기차간에서 훔쳐 달아난 집안 오라버니가 있었다. 그 아이들 둘하고 나중에 낳은 아이들 둘, 해서 네 자녀를 흠 없이 길러냈고, 아내의 조금 이른 임종까지 잘 지켜낸 오라버니. 더 기막힌 쪽도 있었다.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대처에 나와서 대학에 다니던 남자가 처녀 유치원선생님에게 반했다. 유치원선생님은 유부남의 구애에 발끈하여 보란 듯이 서울로 시집을 가더니만, 딸 하나를 낳았다는 소문과 더불어 곧 다시 낙향했다. 결국 각각 아들과 딸을 버리고서야 두 사람이 결합하더니 네 자식을 더 낳아서 남달리 유별나게 키워냈다. 70대, 80대 할아버지들의 청춘시절 이야기다 참. 그런 형질은 드물게 유전되는지, 속 좁은 내겐 불가사의다.

베란다 쇠창살을 저 너머로 바라보며 일요일의 늦은 아침을 먹는다. 조밀한 영국식 화단엔 이름 모를 푸르름이 가득하다. 창살 밖으로 선반에 내어놓은 몇 화분들에도 초록이 어우러져 있다. 그 밖으로는 짙푸른 나뭇가지들이 무겁게 흔들린다. 이십년도 넘은 낡은 닭장 아파트 2층에 앉아서 쇠창살 사이로 건너다보는 하늘도 하늘이다. 그런데 쇠창살 너머로 여름을 맞은 건 처음이다. 작년 추석에 다니러온 아이들의 걱정에 그제서 창살을 두른 것이다. 여름을 유난히 타느라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두고서야 잠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는 아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한숨을 쉰다니까요, 아버님 어머님 걱정에!”라던 며늘애 말이 주효했다. 원래 학교가 있었던 터에 지은 아파트라서 고목들이 즐비하고, 창살은커녕 창밖으로 너울거리는 푸른 나뭇잎은 성냥갑 아파트인 것을 못 느끼게 했다. 바로 창밖에 새들까지 집을 지어 새끼를 낳고 길러가지고 함께 날아간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꼭 네 마리를 낳아 데리고 날아갔는데, 이듬해에도 그 이듬해에도 항상 같은 울음소리의 그 새들이 날아든다. 베란다 바깥으로 내어단 화분 턱에 내어놓은 춘백 꽃잎을 갉아먹으러 와 앉는 놈들도 꼭 그런 꼬마들이다. 모양새도 목소리도 안 예쁜 놈들이 왜 예쁘기만 할까. 새들이고 사람이고 꼭 예쁠 필요가 없다 싶다. 어디 예쁜 사람들만 사랑을 하고 그러는가. 창살 속에 들어앉아 바라보는 새도 화초도 하늘도 뭐 다 괜찮다. 섬세한 감각들이 나이 따라 누그러진 탓도 있겠지만, 애들 사랑에 못 이겨 해 붙인 것이라서 창살도 답답치 않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아마도 창살에 갇힌 채로 적응하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살기 시작하면 그렇게 창살 속에서도 갇힘을 모른다. 신기하게도 새 생명들이 태어나면 아예 바깥세상은 바라다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현혹되어 산다. 그때부턴 그리 많이 흔들리지 않고 평행선을 이루어, 왼쪽에서 오른 쪽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따라가며 산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우리를 걱정할 만큼 더 커버렸는데도, 우린 그저 그들을 뒤쫓느라 ‘거의 반듯이’ 평행선을 그리며 산다. 아주 엇갈리지 않으려면 조심히 평행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너무 서로에게 끌려 들어가면, 그 각도로 조금 더 내달으면, 그만 상대를 뚫고 지나가버리게 되니까. 그래서 조금 비겁한 채로 평행선을 따라 산다. 혹시 우리들의 가슴 한 편에 묻힌 작은 파편 같은 추억 하나도 진정 어떤 사랑의 증거가 되기엔 미미하다. 그건 그저 잠시 호수에 비친 구름의 그림자이거나 아예 호수 저 혼자의 일렁임이거나.

복숭아 껍질을 벗긴다. 아직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따 들인 것들이라 당도도 높고 무엇보다 벗겨 드러난 속살에서 물기가 둑 둑 듣는다. 두 개를 벗길 양이면 늘 어느 하나가 더 먹음직스럽다. 너무도 당연히 더 맛있어 보이는 쪽을 당신의 접시에 올려놓으면서 느낀다, 누군가에게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을 내밀면 그것이 사랑일 것. 나란한 두 베게 깃을 새로 갈아놓으면서 풀기 더 고슬고슬한 쪽을 그리로 밀어놓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 이 시시한 진부한 존중이 어우러져 나란히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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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영어2009. 12. 1. 03:00

More Vegetarians to save ourplanet!
 
 --- Can the global community reduce hunger?
---

                                                                clover.gif
 


     
mush01b.gif  Climate Change     mush01b.gifmush01b.gif  Vegetarian Diet
     
mush01b.gifmush01b.gifmush01b.gif   Shall we.......? 
 


 

 mush01b.gif Climate Change

  • "Give up meat to save the planet!" 
    (UK's climate cheaf Lord Stern, The Times,  Oct 27, 2009)
                                 arrow02b.gif  Vegetarianism and Climate Change
  • A report, Livestock's Long Shadow,  estimates that 18 % of annual  worldwide GHG emissions are attributable
    to cattle, buffalo, sheep, goats, camels, pigs, and poultry.
                         arrow02b.gif FAO (Food & Agriculture Org.)(2006)
  • Recent analysis finds that livestock raising is  responsible
    for  at least  
    51 % of global warming.
                         
     arrow02b.gif  World Watch Magazin (11/12 2009)
     

 lip01c.gif  70% of previously forested land in South America is used
    for livestock production.
  

lip01c.gif Nearly 60 billion animals a year used to produce meat & dairy.
   
The human population is 6.7 billion.

 

 Solution?    
'
United Nations Climate Change Conference' in Copenhagen

                               [between December 7 and December 18]


PEOPLE

 

flowe03c.gif John Robbins, Diet for a New America, 1987
                    an expose on connections between diet, physical
                    health, animal cruelty, and environmentalism
                                                     
arrow02b.gif  EarthSave            The Food Revolution, 2001
             
information on organic food, genetically modified food,
              and factory farming
 
 
flowe03c.gif Michael Greger, "The Human/Animal Interface,"

     in: Microbiology  - our mistreatment of other species is

         contributing to the emergence of human infectious disease
       - new forms of influenza viruses which frequently originate
         from factory  farmed animals who are made to live
         in utterly appalling conditions
  arrow02b.gif A photo!


 

Because of Flus like H5N1 or H1N1 recently,
livestock industry has turned into hot concern.
We begin to think widely about our immune system
to keep away germs.


mush01b.gifmush01b.gif Vegetarian Diet Vegetarian Health Benefits      
* Healthy Heart            

* Lower Blood Pressure

* Control of Diabetes    

* Prevention of Cancer

* Elimination of Toxins from the Body     

* Easier Digestion of Food  

* Improvement of Overall Health


   
Various Types of Vegetarianism

Diet name

Meat, poultry, fish

Eggs

Dairy

Honey

Lacto-ovo

vegetarianism

No

Yes

Yes

Yes

Lacto

vegetarianism

No

No

Yes

Yes

Ovo

vegetarianism 

No

Yes

No

Yes

Veganism

No

No

No

No

 

 

  The Vegetarian Society, UK, since 1847

 Older (religious) organizations in Asia:
    promote abstinence from meat and prohibit the harm of animals
 
Concept of conservation:
     human should live in harmony with nature



 mush01b.gifmush01b.gifmush01b.gif   Shall we.......?

 
Be vegan?

 One meat-free-day a week!   
            
Vetarian Resource Group, Feb 1994
Roper Poll

Never Eat

Total

Mail

 Femail

Meat

6%

 5%

7%

Poultry

3%

3%

 3%

Fish/Seafood

 4%

3%

5%

Eggs

  4%

 4%

5%

Honey

15%

15%

15%

Eat Them All

75%

77%

74%


 
 "Sticking to vegetables once a week would have more beneficial
     effects than reducing car journeys."
                                     
(Rajendra Pachauri,
Nov 27, 2009)

A vegetarian driving a gas guzzling SUV car is
more environmentally friendly
than

a carnivore riding a bicycle.

arrow02b.gif fact file!

                                                               

                                           arrow02d.gif                     arrow02d.gif

EarthSave!   Vegetarian Society   Worldwatch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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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9. 10. 14. 02:45

 쪽지 붙였음

펜문학 2009


쪽지 붙였음. ― ‘우편물 넣지 마세요. 새가 살고 있어요.’ 토기로 구워낸, 입구가 제법 벌어진 통 주변으로 이름 모를 풀들이 뒤엉켜 자라있는 사진 아래에서 찾아낸 글귀다. 그러니까 이건 하얀 치자꽃 흐드러진 낮은 담장아래 숨은 편지함이다.

눈이 푹푹 내리던 어느 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이라는 시 구절이 느닷없이 생각났던 날. 일없이 검색창에 시인의 이름을 써넣다가 「꿈꽃」이라는 시도 건졌는데, 작은 풀꽃들의 사진도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이타심 덕택에 그 하얀 다섯 꽃잎의 벼룩이자리꽃 한 송이를 측면에서, 네 송이를 하늘에서 바라보려니 절로 미소가 난다. 지친 하루가 녹는다. 그렇게 꿈꽃을 따라가다 꽃들이 만발한 누군가의 블로그에 홀린 듯 들어가게 되었다. 어라? 쪽지 붙였음. ― ‘우편물 넣지 마세요. 새가 살고 있어요.’


 clover.gif


나는 “어느 조그만 산골 마을에 들어가 초가지붕에 박 넝쿨 올리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 놓을” 생각이 없었다. 밤이면 실컷 별이나 안고서 행복해 하려 하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아니 꿈도 아니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그런 바보 같은 꿈을 꾸고 사는 애들은 하나도 없었다. 꿈은 적어도 산골을 벗어나서 대처로 나가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었다. 내가 드디어 대처의 내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할머니는 방에서 거실로 왔다 갔다 하시며 알 수 없이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셨다. 용타, 용타, 저 우게 느 엄니도 인자 참말로 눈 감겄다.


할머니는 1929년생인데, 호적에는 1924년 갑자생으로 되어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호적에 올라 있던 내력은 눈물 난다. 앞서 갓난애 태를 못 벗고 죽은 딸애가 호적에 남아 있었고, 또 딸을 낳아 그대로 두다보니 죽은 딸 이름으로 작은 애가 살아간 것이란다. 집토끼나 돼지나, 그 가축들만큼이나 딸들이 중했는지 그도 모를 일이다. 식량도 자라지 못한 빈농에서 할머니 또래 여자애들은 호적도 이름도 별 상관없는 주목받지 못한 생명들이었다.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자라고서도 할머니는 실제 나이보다도 고우신 편이니, 고생하면 늙는다는 것도 헛소리다. 입 하나 덜자고 밥이라도 먹는 벙어리께 팔다시피 딸을 보낸 친정. 벙어리남편 성깔 못 견딘 각시가 둘이나 도망갔어도, 새 며느리 본 시어머니자리는 시어머니자리만한 냉대를 알았고, 여전히 배고픈 나날.

일은 죽어라 시켜도 좋응게, 밥이나 좀 묵으먼 했지야. 밥이 작응게 그랬제, 느 증조할마니도 꼭 나쁜 사람이여서 그랬것냐. 장대같은 자식들도 배를 못채워중게 그랬것제. 밤은 질고 물레질 바느질 허고 안잤을라믄 배는 왜 그리 속없이 꼬르륵 소리를 내넌지, 부뚜막에 멀건 숭늉 둘러마셔도 속이 안 가라앉으면 싱건지 독으로 가제. 살얼음 살살 언 것을 바가지로 젓고 무시 두어 개 건져 갖고와 그놈 깍도 않고 대충 잘라서 묵으면 살 것 같제. 그 맛은 지금은 못 맛봉게 아쉽다. 어째 그 맛이 안 날꼬 몰라. 무시들은 쪽 바르고 훨씬 더 좋은디. 허기사 반백년도 훨썩 넘은 일인디 요 손맛도 가부렀겄제.

반백년? 하긴 아부지 환갑이 넘었으니까.

훨 넘었제. 그래 이 할매가 참말로 오래 산다. 느 어멘 그리 일찍으나 갔는디.


어려서 어머닐 몰랐고, 일찍 병들어 죽었다는 어머니 이야기에 나는 간호원이 되어야지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자랐다. 하지만 누가 결심대로 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간호사는커녕 간호보조사도 될 운명이 아니었다. 웬일인지 병아리가 종종대다가 비틀거리는 것만 보아도 현기증이 났고, 꿈틀대는 것들에선 어딘가를 찔리거나 다치거나 피를 흘릴 수 있을 가능성만 미리 떠올랐다. 피 생각이 나면 고소하게 유혹하는 핫도그 막대도 삼킬 수가 없게 되었다. 원래 피를 지녔던 것, 그것을 먹는 상상은 무서움 자체였다. 어린 시절의 아린 기억인 살타는 냄새가 나중에 들어 알게 된 벌건 핏물을 토하고 죽었을 어머니의 이미지와 한데 섞여 더욱 끔찍해지면서 동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굳어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접해야하는 이상한 해부도에 눈앞이 깜깜해진 나는 산수라는 탈출구를 찾았다. 아무런 의미도 붙지 않는 숫자는 가장 안전한 구원이었다. 숫자의 무더기 속에는 맘 편한 순수한 놀이의 법칙만 있었다. 게다가 수학공부 덕에 우리 쪽에겐 꿈꾸기 어려운 여상고 진학까지 해냈으니.

우리 식구는 크게 두 편으로 나뉘었는데, 한쪽은 할머니와 나와 동생 이순이고, 다른 한쪽은 새어머니와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 셋이다. 아버지는 중간이라기보다는 약간 수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그쪽에 치우쳤다. 아마 정중앙에 계셨어도 내가 그리 느꼈을 것이다.

이순은 내 생각엔 뭐든지 나랑 비슷한 줄 알았지만 자라다 보니 한참 나긋한 품성으로 제법 사랑을 받았다. 중학교 졸업하고도 나처럼 어렵사리가 아니라 당연히 고등학교 진학을 했고, 또 기어코 인문계를 고집했다. 물론 그 애라고 이어서 대학진학까지는 꿈꿀 리 없었다. 뛰어난 성적도 아니고 했으니까. 하지만 별 자격증이 없이도 졸업도 채 하기 전에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했던 통신회사라던가 사무실에 취직을 하더니만, 거기서 점장이랑 소문을 내면서 언니인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할머니의 회갑도 못 치르게 하고서 시집을 갔다.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신랑은 점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동생은 나와 연년생으로 그때 갓 스물이었다.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른다는 뉴스로 세상이 변해가는 가을이었다. 또 다른 먼 데 분단국가에선 장벽이 저절로 허물어졌다는 더 놀라운 소식도 이어졌다.


세월은 쏜 살이다. 이 봄이 지나면 할머닌 팔순이시다. 할머닌 딱 나만한 나이에 첫 손녀딸을 보셨고, 생일마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루 사이다. 어려운 형편엔 할머니 생신 덕에 내 생일 하루 전에 미역국에 팥시루떡 한 입을 먹어도 신이 났다. 다른 동생들은 아예 그것도 안 되었으니까. 그러다가 어머니가 식구들 생일에 매번 미역국이라도 끓일 만큼 되자 내 생일에만 빠졌다. 연속해서 미역국을 끓이지 않는 것이 당연타? 난 결국 단 한 번도 생일을 가져보지 못했다. 물론 불평은 다 속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였다. 어려서 뭔가 투정을 해댈 어머니를 가진 사람들은 제대로 호사를 한 것이다.

내 어머니는 어머니를 기억도 못하는 어린 나를 떠나버렸다. 곧 새어머니가 있었지만, 새어머니는 세 아이들을 낳아 기르느라 배가 부르거나 젖을 물린 모습이 내 기억의 전부였다. 아니라도 항상 어른들은 분주했다. 아무도 잠시 앉아서 나를 바라볼 시간은 없었다. 할머니도 종일 부산했고, 저녁 먹고 나서도 또 무슨 자잘한 손일을 하시는 걸 보면서 잠들어야 했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으니 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도 말이 없으니 벙어리할아버지 닮았을까 걱정하는 동네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야가 목소리는 또렷한데 말을 잘 안한다요. 노래람 곧잘 하는디․…….

새어머니가 변명해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더 말이 막혔다. 한편 아무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보곤 했다. 내 목소리가 또렷해? 


우연히 노래를 조금 잘하고 일부러 산수를 조금 잘했을 뿐, 나는 음악에서도 수학에서도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혼자서 하는 노래도 반주에 맞추려면 잘 못했고, 수학도 수만 좋아하지 응용문제에 가거나 실전에선 약했다. 특출한 것이 없는 여상고 졸업생을 면하고자 재학 중에 자격증 취득에는 열심이었다. OO화재보험회사. 지방 여상고 졸업생 치고는 괜찮은 보험회사에 취직하는 것으로 내 청춘시절은 시작되었다. 물론 S자로 시작하는 대회사의 면접시험에 떨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그때 확인하게 된 것이 내 촌스러움, 앙상한 몰골에 뚝한 말투였다. 좁은 어깨도 컴퓨터와 의자 사이에서 굳기는 마찬가지다. 직업병이란 게  꼭 전자파니 나쁜 자세니 그런 물리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라고, 그쯤은 나도 안다. 어깨가 굳어가는 것은 그 어깨 주인의 생이 굳어간다는 의미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사무실에서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간 내 청춘. 그렇게 아무런 매력도 갈등조차도 없어보였을 이십대를 나는 절절히 어머니의 환영에 눌려 살았다. 시집을 왔을 나이, 나를 낳았을, 둘째 딸을 낳았을 어머니, 또 아이를 가지게 된 어머니, 불안한 어머니, 서러운 어머니, 세 살, 네 살 아이들을 두고도 떠났을 어머니……. 그렇게 어머니를 다 살아내고도 아직 나는 여전히 이십대였다. 마음에선 아이도 낳아보았는데, 벌써 죽어버린 느낌으로 무엇에 기댈까? 그렇게 서른 살 생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퇴직을 결심했다. 나인 투 파이브, 파이브가 뭔가. 상급자 눈치에 퇴근은 마냥 늘어지기 일쑤고, 월말이나 감사가 닥치면 별빛도 없는 밤길 퇴근. 아침이면 그대로 시계만큼 규칙적으로 일어나 버스정류장으로 내닫는 자동인형의 삶. 뭔가 이 틀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유로운 시간을 좀 갖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모든 직장은 월급생각으로 있는 한 감옥이다. 월급에서 엄청난 적금을 부어넣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자동인형도 변신을 감행해야지. 퇴직금은 별 것 아니겠지만, 내 급여에 비하면 엄청난 적금이 불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퇴직을 결심하고도 바로 그 적금들에 묶여서 4년 반을 더 근무해야 했다. 적금들을 중도에 해약하는 것은 바보천치나 할 일이니까.


막상 사무실을 벗어난 서른다섯 살의 여자가 일 년을 놀기로 결심했을 때. 그런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사치이자 고문이었다. 내 또래들은 여전히 일의 쳇바퀴 아니면 결혼의 굴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와 더불어 단 한참을 놀아줄 친구가 없었다. 물론 진짜 노는 아이들, 진짜 자유를 만끽하는 내 또래의 세계가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었다. 보이지도 잡을 수도 상상조차 할 수도 없을 머나먼 어딘가에. 두어 달을 그렇게 멍하니 버티고 있자니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할머닌 그랬다, 그래도 인자 결혼을 서둘러야제. 허나 억지로는 말거라. 칠십 중반의 노인으로서는 개방된 의견이었다. 할머닌 그 뒤로도 한 오년 내 허송세월을 심하게 나무라시지도 않았다.

나는 우선 운전면허를 땄고, 할 일을 찾아 궁리에 들어갔다. 처음엔 자유업에서 탐색을 시작했다. 자유업 ― 고용자 생활 15년에 얼마나 근사한 단어인가. 사전적인 정의는 그러나 내게 한숨을 안겨주었다.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과 재능에 근거한 독립자영업자 또는 그 직업.” 내겐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없다. 전의 직장선배나 동료들은 일단 계약직으로 복직할 것을 권했는데, 그건 싫었다. 막상 뭔가를 찾아보려 해도 하나 같이 난관에 부딪혔다. 가진 돈도 빠듯했고, 또 내가 가진 전체를 투자할 생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동안 한 해가 두 해가 갔다. 대신 가끔 스산하면 고향의 할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닌 요즈음엔 마을 경로당이 좋으니 하루 종일 집을 비우신다. 낮엔 마을 입구에서 밥장사 하는 며느리, 우리 새어머니에게 가서 한 술 뜨시면, 다시 나물바구니라도 들고 경로당으로 나가신단다. 콩나물이나 미나리 다듬기, 감자대나 토란대 껍질 벗기기는 지금도 일도 아니다. 게서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폭소라는데,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는 우리도 꽤나 많이 들어서 외울 지경이다.

박샌덕 안 있었든가, 나이롱바가지 첨 나왔을 적 말여. 거그다가 감자 쪄묵을라고 헌 사람이 박샌덕 아닌가. 바가지들 아 곰팡나고 쪼개지고 헌다고 죄다 내불더니, 감자 쪄묵을랑게 나이롱바가지라도 써묵어야제. 그것이 어쩌게 되었겄어. 냄새하고는, 사람 못 살제. 그러고서 헌단 소리가, 나이롱은 나이롱이네 지대로 안되는거 봉게, 그랬대야.

진짜가 아님 다 나일론이어요?

그라제. 긍게, 바가지만이 아니라 요새 시상 사람들 다 나이롱 아녀? 아따 농사라도 풀을 맹가 벌레를 잡능가, 머시든지 약만 줄줄 뿌려불제. 공부도 요새는 나이롱으로 한다며. 학교가믄 나이롱으로 놀아불고는 또 새로 돈 타서 학원댕기고. 하마 놀기도 나이롱이제. 아들이사 학원 아님 친구들 만나 놀다오곤 그라는디, 몰려는 다녀도 함께 노는 법이 없대야. 느 조카 말여, 고것 말이 껨방에 가서 각자 자기 껨하고 왔대야. 아들이 모타서도 각자 이녘 손구락 두들기며 논다 그말 아녀. 입도 뻥긋도 안허고. 나는 입도 뻥긋도 안허는 사람이 제일 미운디, 느그 할아부진 헐라도 못혀서 못혔지만, 왜 사람들이 입뒀다 뭣헐라고 말을 안헌디야. 나는 집에 들면 그렇다 쳐도 나감사 말로 산다. 사람이 뭔 말을 혀야 살제. 속에서 단내 올라와야, 말 안허고 사는 사람들은.

속에서 냄새 올라온다고? 헛구역질 비슷한 것이 올라오긴 한다, 내 경험으로 보아도. 그것은 뭔가 어지럼증 같은 토악이다. 하고 싶은, 꼭 내뱉어야 할 말을 참으면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행하게도 우스개 반 진담 반 이야기를 풀어서 타들어 가는 속내를 삭이신다. 아버지조차 거의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는 요즈음, 할머니는 많이 외롭다. 막둥이까지 장가가고 나자 여덟 식구가 북적거리던 집안에서 덜렁 혼자 잠을 청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뭐 잡숫고 싶은 것 있음 나 아직 놀 때 할머니랑 먹으러 갑시다.

사람이 묵어 조지면 안된다. 다 묵어감서 어쩌게 새끼들 키운다냐.

할머니, 그래도 할머니가 뭣 좋아 하신가는 알아야죠.

글먼 거 비싸기만 허고 한 접시다 이것저것 쓸어다 먹는 것 말고, 잘 차려다 준 밥상이나 받아봤음 좋겄다. 떡갈비나 한 대 뜯고.

할머니 무릎 때문에 큰 병원에 가려고 읍내로 나온 날, 나는 살아서 피를 흘렸을 벌건 살코기를 먹기로 결심했다. 할머니를 위해 단 한 번도 고기를 사다드린 적이 없었다는 죄책감을 함께 고기를 먹는 것으로라도 씻고 싶었다.

할머니, 소주 한잔 하실래요?

소주야? 어쩠거나, 너 소주랑 다 묵냐? 나이 묵어도 처년디, 처녀가 소줄 묵어!

아니, 갈비 드시려면 반주 하셔야지요.

그렇게 소주를 들여놓고 두 잔을 거푸 마셔도 고기가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화장실 핑계로 가운데 홀로 빠져나온 나는 소주를 하나 더 시켜 반병을 그대로 들이켰다. 그리고 재빨리 방에 들어가 할머니 앞에 앉았다. 다 구어서 나온 갈비인데도 조금 헤집으니 피 같은 물이 보인다. 죽을 맛이다.

야가 고길 잘 안묵어라우. 요놈 좀 다 익혀갖고 오쇼. 그렇게 사람 불러 시킨 할머니가 계속했다.

너 인자는 툭툭 털어야 헌다. 말도 시켜야 겨우 허고, 먹을 것도 도통 가려쌓고. 그럼 살기가 폭폭해야. 느 동생 봐라 이순이. 니 눈엔 위태위태혀도 애기들 낳아놓고 알콩달콩 잘만 살제. 형지간에 왜 이리 다를꼬. 그아는 말이 연해야. 사람이 헐 말도 안 헐 말도 좀 허고. 묵고 잡은 것도 묵기 싫은 것도 묵고. 할맨 이 세상 두 가지만 못 묵는다.

뭔데 할머니?

뭐기는. 없어 못 묵고, 안 줘 못 묵제. 세상없이도 못 묵는 건 그 두 가지라…….

그 두 가지. 그 말이 그 말이다. 번개에 맞은 듯, 할머닌 그 말로 나를 고치셨다. 물론 난 아직 육식에 서툴다. 여전히 햄 소시지보다는 어묵이 낫고.


할머닌 소주가 들어가서인지 그날따라 옛 생각에 깊이 빠지셨다. 느 새엄니가 그 일을 다 봤단다. 그러니 느 새엄니 된 것도 다 명이제.

그 일이라뇨? 

아따 느 엄니 그리 간 사정 말여.

난 또…….

옆집 연이 아부지가 느 엄니 쫒아가는디, 느 엄니가 한참을 못달려가고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것부텀 나중에 느 새엄니될 처녀가 이모네 거들러 와갔고 밭 메고 있다가 멀리로 다 보았대야. 그라고도 그 자리에 재취 들다니 그 명운도 참. 연이 아부지 말로는, 그날 아침 멋허다가 늦었는디 우리집 앞 돌아나오는 순간 섬뜩하드래야. 아까참 동네가 떠들썩혔던디 이상케 조용하드래야. 어째 꽉닫힌 방쪽이 괴괴허고. 혀서 가만히 방문을 당겨 봉게 잠겼드래야. 놀래서 문고리를 독으로 찍어 문짝을 열고 들어가 봉게 벌써 꼬구라져 누었드래야, 제초제병은 나딩굴고. 헌데 그새 옷이랑 갈아입었드래야. 놀래갖고 흔등게 눈 딱 감고, 놔두쇼 놔두쇼 지는 더는 못살어라 이왕 갈랑게, 하드래야. 연이 아부지가 이람 안되라 험서 우왕좌왕하는디 그렇게 나서서 밖으로 내닫드래야.

소주 기운이 도는지 할머닌 금했던 보따리를 푸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를 난 벌써 어려서 다 알게 되었다. 울지 않을 만큼은 자라 있을 때였다.


옆집 연이는 나보다 한 살 위로, 내가 여상고 진학을 계기로 그 마을을 빠져 나온 것 모두가 연이 덕이었다. 중학교만 졸업한 연이가 일 년을 쉬며 기어코 여상고 진학을 우겼기 때문이고, 또 여상고라면 읍이 아니라 대처로 나가야했는데, 동네에서 혹시 나랑 둘이 함께라면 내보내도 될 거라고들 말이 돌았다. 해서 우리아버지에게서도 허락이 났다.

아버진 사실 꼼꼼하시다 못해 강압적인 데가 있었다.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은 우리 어머니가 불쌍타 했다. 그래도 새어머니가 잘 사는 걸 보면, 탓을 아버지한테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딸만 내리 둘 나은데다가 거푸 셋째를 가졌을 때 그 가족계획이란 것이 어머니 목숨을 가져갔다고들 했다. 따져보면 외할머니가 화근이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 입덧소식에 또 딸 낳을까 걱정되어 어디 가서 물어보니 여지없이 또 딸이라 했다는데, 외할머닌 앞장서서 어머닐 데리고 뱃속의 아기를 지우러 갔단다. 물론 아버지 몰래. 외할머니 생각으로야 둘째 딸 낳은 것 보고 휑하니 나가서 이틀을 집에 안 들어왔다는 깐깐한 사위가 미리 걱정도 되었고, 시간을 두고 나으면 아들딸이 섞바뀐다는 애매한 말도 믿고 싶으셨을 게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엘 다녀온 것을 알고는 아버지는 완전히 노발대발이셨단다.

남새스럽다아. 으쩌자고 여편네가 의사놈한테 가랭이 벌리고 추잡한 짓을 한디야! 그라고서 집엘 기어들어 온디야!

날이 가도 달이 가도 아버지의 냉대는 더해갔다고 한다. 으째 소죽이 이 모양이랑가. 곧 있음 새끼 밸 소를 잡아 뉩히고 싶나. 사람 얼굴 참 두껍제! 잡O이 성항게 잡풀이 이리 성채! 못마땅한 건수가 있음 건수가 있는 대로, 건수가 없음 건수가 없는 대로, 듣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아버지는 그렇게 화풀이를 계속 하셨더란다. 심심풀이 후렴마냥 매사에 병원 다녀온 일을 빗대어서. 이웃들 말로는 저녁으로 사립문 밖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는 어머니를 본 적이 더러 있었다 했다. 개울가 빨래터에선 웅크리고 앉아서 빨래랑 두 손이랑 다 담근 채 물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많았다 했다.


이순이 시집가던 날 연이어머닌 새어머니 눈총도 모르는지 많이 우셨다.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나서 그 옆에 앉으시려는 연이어머니를 연이가 한 줄 뒤 내 옆으로 모시고 와서 함께 앉았다. 연이어머닌 평소에도 이모도 아니면서 이모 같았다. 우리와는 다른 고향말을 하는데도 그랬다.

너이 어무이 가슴 새까매져 갔다. 미안한 말이다마넌 너이 아부지가 쪼매 그렇다. 조선 양반도 아이고 머이 그리 뻑뻑한지. 평소에도 참말 그랬다. 나이 차도 별 없으며이, 여자를 어찌 그리 알로 봤는지. 아예 무시한기라. 각시가 사사건건 눈에 안찬단 거이 되나. 또 어찌 남남이 사사건건 눈에 찰꼬. 사람은 서로 그런가부다 해야 된다이. 한 이불에서 자도 잠들면 따론 거이, 그기 각자란 이야그다. 금슬 아무리 좋아봐야 죽을 때는 따로 안 가나. 너이 어무이, 참 연하디 연한 사람인 줄로 알았다가 그리됐다. 계속 타박이 쌓여도 속말 털어놓을 데도 없제. 한 번은 이 악물고 대들라고 작정했다드라마넌, 너이 할무니 나무라신 소리에 목이 꽉 막히더란다. 부부쌈 한 번 못해보고 늙어죽을 어메 앞에서 많이들 다퉈보거라, 느들 참 재밌게도 산다, 뭐 그랬다카던가. 너이 어무이 내한테는 한두 번 속말을 했다. 그라곤 똑 입닫고 사는데 나중엔 참 못 견딜 말로 듣다가 복받친 거라. 암튼 너이 아부지 만날 허시는 거이 핀잔소린데 그날은 아침도 기운데…….

연이어머니, 고만 하셔요. 불쌍한 울어머니 오늘은 여기 어디 와 계실 거예요. 가만히 있음 알 것 같아요. 그냥 저 가만히 있을게요.

그래, 그렇고마. 연이도 니도 인자 곧 시집들 가야제. 자가, 저 쬐만한 이순이가 언니들을 앞설 줄야…….


그리고 몇 년 뒤 연이도 결혼했다. 상고시절부터는 대강 말을 놓고 지냈고, 내가 먼저 화재보험에, 이어서 연이는 농협에 취업이 되었다. 연이는 사내커플이 되었다. 연이 결혼식에서 연이어머닌 날 보시더니 또 눈물을 내보이셨다.

너이 아부지 지금도 그라시자? 부부계에 더러 보다가, 나가 연이한테 와가 잘 안가니까는 본지도 오래다. 너이 아부진 말 한번 떼면 법이라. 연이아부지도 너이 아부지라믄 학 띠었다제. 클 때도 한 번 수틀린 친구하곤 두 번 다시 안보기 선수였단거라. 다 어른들 돼갖고는 너이 아부지가 할부지랑 말 못해보고 커서 그란다카고 친구들이 이해했다제. 참 나나 너이 어무이나 돼지띠 아이가. 살았음 환갑잔치도 한 번에 묵었을 긴데. 나가 어짜다 여까지 시집온 이듬 해 너이 어무이 시집오니 동네가 복돼지들 줄줄이 들어온다 했제. 아무 소용도 없는 덕담이었제.

연이 결혼하고 나면 이제…….

참 그란데, 니는 그래 은제 시집갈래. 너이 어무이가 오늘따라 얼매나 서운할꼬. 내가라도 서들어야지 싶다. 참 너이 동생마다, 이순인 아들로 연속 턱턱 낳았으니 너이 어무이 원 풀었을 기다. 너이 어무인 거서도 어찌 사는지 모르겠다. 딸래미들 학교댕기는 것도 몬보고 가서는. 이순인 잘 걷기나 했나. 이라고 커서 애어메되았으니 알아나 볼까. 설마 즈 자석은 알아보겄제. 으짜노, 부껜가는 와 니가 안 받나. 니가 한 동네 젤로 친한 소꼽친구 아이가.


그날의 부케는 그냥 던져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남자친구 붙잡을 애가 받았다. 다들 그렇게 한다. 부케를 받고 석달인가 반년인가 기간 내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하게 된다는 말에 누군들 선뜻 부케를 받으려 하겠는가. 그 결혼식에 모였던 우리들 지방 여상고 졸업동기들도 몇 번 더 그런 자리에서 만나다간 시들해졌다. 세월이 세월이라 사방으로 흩어져서 예상외의 모습들로 살아간다. 고3교실은 취업내신으로 초긴장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어른들이 말하던 복불복이니 새옹지마니 하는 말들이 일리가 있었다. 내신이 빨라서 꼭 좋은 직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러는 한참 늦게라도 썩 괜찮은 회사에 되기도 했다. 분명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뭔가 사람들이 알파라고 대충 넘기는 묘한 작용이 진짜 힘인 듯 했다. 보통 우리 정도의 가정과 우리 정도의 학력으로는 바닥을 못 면하고 살아간다. 신데렐라는 동화나 영화다. 죽도록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우리들. 그러나 일치감치 우리한텐 그 좋은 월급을 포기하고 엉뚱한 반전으로 멀리 뛴 애들도 있긴 하다. 뉴욕이라는 데서 네일숍을 한다는 애도 있고, 특이하기로는 교회 관련해서 독일에 갔다가, 거기서 만난 성악가의 아내가 되어 돌아온 애도 있다. 미술치료학? 치료미술학? 그 둘 중 하나를 공부해 와서 전문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는. 그만하면 세상은 제 하기 나름 아닌가. 그러니 내 제자리걸음은 순전히 내 문제다.

세월은 무심타. 그러다 졸업이 20년이나 흘렀고 홈커밍행사를 하겠다고 준비하는 동창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컴퓨터라면 다들 전문가인 우리들 아닌가. 벌써 개설해둔 홈페이지에는 그 나름대로 시집 잘 간 몇이서 날마다 음악이다 시다 좋은 것들을 ‘펌’해다 놓고 있었다. 「시월의 어느 좋은 날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어딘지 성스러운 교회냄새도 나는 클래식 취향의 음악들. 교회에 다닐 여가도 클래식을 들어 볼 기회도 없이 주산ㆍ부기자격증, 정보처리사 자격증에 또 무슨 무슨 자격증들에 매달렸던 우리들이 어느새 교양 있는 클래식을 탐하고 있다. 업그레이드 된 세상. 하지만 난 아직도 심정적으로 자격증에 매달린 신세다. 예상보다 높은 아파트 관리비를 보면 주택관리사자격증도 괜찮겠다 싶어지고. 아니다, 한 학기 남은 방통대학 보육과를 마치면 그 길을 가리라. 실은 재테크의 달인인 ‘아줌마직원팀’에 묶어둔 ‘재’가 쏠쏠하게 불어나고 있었기에, 종일 근무 하지 않고서도 연봉처럼 수익을 늘리는 방법을 알아버렸기에, 지금 굳이 일을 갖는다면 어린이집이다. 혹시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 올지도 모르는 집.


사무실을 나오고서도 수입이 된다? 우스운 세상이다. 난 그러니까 자유업에 종사한다. 무엇 때문에 근로소득에 애달았을까? 가만있어도 근로소득을 넘는데. 난 물론 투기꾼은 못된다. 투기할 자본도 통도 없으니까. 그저 조금 길을 알고 나니 불안 가운데도 한가했다. 어찌하다가 대학가 문화도 곁눈질했다. 근처 단 하나 있는 서점을 기웃거려보아도 별게 아니다. 영어를 포함해서 취업과 성공이 화두이다. 재테크 관련 책들에 재테크강좌들 포스터도 눈에 들어온다. 내 눈이 그런 것만 입력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방통대가 아닌 진짜 대학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지 캠퍼스 내의 평생교육원까지 기웃거렸다. 그게 이태 전이었다. <소자본 투자전략>에 곁들여 미래의 내 어린이들을 위해 <POP - 예쁜 글씨강좌>에 등록했다. 그다음 학기엔 <우리문화유적의 이해>와 <교양전략 - 서구문화의 이해>에 등록했다. 유럽여행도 뭘 알고 가야 무식을 면한다는 둥, 수강생 아주머니들의 말을 귀동냥한 터였다. ‘그’는 서구문화를 처음 두 시간만 강의한 진짜 대학교수에 이어서 그 강의를 전담한 평생교육원 교수(?)였다.


후후, 피가 없기론 쇠고기에 비해 뱀 먹기가 일순씨 이론상 쉬운 겁니까?

진짜 대학생들을 흉내 낸 쫑파티자리에서 이렇게 놀리면서 시작해온 그는 교실 외의 말투로도 지식인이었다. 사람은 잡식성임다, 원래.


내가 잡식성이 아닌 특수종이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분명히 살이 타는 냄새를 기억하는 어린 시절 내내 살 느낌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다 상에 오른 살코기는 그리 익숙한 좋은 맛이 아니었다가, 대모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떠난 이후 내게 친구 같은 낙이 된 것은 뭘 모르는 꼬맹이 이순이 아니라 대모였다. 대모는 이순이 몸통보다 더 큰 개 이름이었다. 원래는 이름도 없이 그냥 누렁이였는데, 내가 그 놈만 따라 다니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엄마가 쓰던 물건이었을 털실뭉치를 어디선가 발견해서 그것으로 공 던지기 하듯이 대모랑 장난을 했던 기억. 그 끝은 처참했다. 내가 잘 못 던진 털실뭉치는 하필이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고, 대모는 순간 빨려 들듯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아궁이에 남았던 지지부진한 불씨들이 대모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 그날은 동네잔치가 되었다. 아버지랑 동네 아저씨들은 그 좋은 양식을 버릴 리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 치마폭에 숨어서 울기만 하면서도 그 날의 즐거운 양식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었다. 치마에 베인 퀴퀴한 냄새도 살타는 냄새를 가려주지는 못했다. 새엄만 할머니 쪽을, 그러니까 내 쪽을 흘겼다. 아이코 저것이!


좋소, 고기를 못 먹는 사람 앞에서 할 소린 아니지만, 사람은 먹으려고 사는 것 아뇨? 살기위해 먹는다면 이렇듯 경쟁사회가 되지는 않았슴다. 내력은 좀 길지만 농경사회가 정착된 이래 인간은 양식을 비축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됬슴다. 유목민 때는 살코기를 비축해놓을 수 없으니 적당량만 사냥을 했고, 일단 사냥한 건 나누어 먹었다는 말임다. 사냥시대엔 내일을 위해 서로 사냥감들을 살려두는 것이 유리했지만, 농경시대가 되어선 다른 부족의 비축식량까지도 빼앗기 위해 전쟁이 시작된 검다. 줄여 말해도 인간은 타인들보다 더 많이 더 잘 먹겠다는 의지 때문에 피 튀기는 팔꿈치경쟁을 한다는 말임다. 그런데 누구는 라면으로 서둘러 저녁을 때우는 시간, 다른 누군가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서비스로 나온 들큼한 와인을 마시며 대충 고기요리를 먹는다고 칩시다. 중산층은 되어있다는 만족감. 그러나 허위의식임다. 우리를 말아먹는 것이 바로 그 허위의식임다. 돈피가죽도 가죽이라고,  헝겊으로 만든 싸구려 인조스웨이드 롱부츠를 신고, 다이아처럼 빛나는 알이 박힌 귀고리나 양식진주 목걸이를 연인에게 선물하고. 마틸드 르와젤의 신세가 안 된다는 보장이 있슴까? 진짜 상류가 보면 이 가짜 중산층이나 아주 바닥치는 프롤레타리아 인생이나 별반 차이가 없슴다. 0점짜리 인생이나 10쯤으로 위장한 2, 3점짜리 인생이 90점짜리가 보기에 뭐가 다르겠소?

마틸드 르와?

모파상의 「목걸이」말임다. 남편과 자신의 십년 세월을 좀먹은 허영심. 우리는 분명 현혹되어 있슴다. 아 그 프랑스문학 얘긴 교실용임다. 자 어서들 드시죠!


그날은 그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서 왜 그와 말을 섞게 되었을까.

우리 자랄 땐 아시다시피 과외가 법으로 금지되었었죠. 그 덕에 과외 같은 것 꿈도 못 꾼 나 같은 ‘어둠의 자식들’이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슴다. 그 덕에 손에 흙 안 묻히고 밥 벌고 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청소년기란 없었슴다. 오직 성공하여 부모세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선생님들 말 잘 듣고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간 거죠. 고3에도 조금 지루했을 뿐 흔들림도 없이, 이를테면 나 모범생은 심화반에서 돌아오는 대로 여름 겨울 없이 축축한 방 벽에 붙어 앉아 교과서와 참고서만 외웠슴다. 그 아픈 진통의 80년대를 그렇게 코앞만 보고 살았단 말임다. 이 기회균등한 사회에서 열심 하나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헛된 믿음으로. 그리고서 대학에 가서야 깨달았슴다. 말도 아니다, 말도 아니다. 불과 1, 2년 전, 바로 이 캠퍼스의 학생이 경찰에 끌려가 고문당해서 죽은 날에도, Y대학 정문에서 학생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날에도 대학입시만을 위해 살아왔던 나. 이제 진짜 경쟁의 시대가 열렸을 때 나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슴다. 결과는 요 꼴임다, 울 어머닐 배신하고. 물론 처음엔 갈등했죠. 여기서 중단하면 어머닌 뭔가. 나는 홀로자식에, 어머니에게도 통틀어 하나뿐인데. 더구나 어머닌 법복을 입은 아들을 소원하셨슴다. 얼마나 많은 이 나라의 어머니들이 법복을 입은 아들을 원하는지.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이요. 그게 얼마나 많은 보통 사람들이 법에 억울해 법을 불신하며 살았는지를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혹시…….

아니 뭐, 꼭 내 아버지의 경우라기보다는.


그는 어쩌다가 자신에 대해 조금씩 털어놓았다. 어느 해 겨울, 눈 덮인 동네가 조용해졌다 싶은 섣달에 들어서 어느 날 사라진 아버지가 설날 산마루 돌아올라 산소에 갔던 이웃들에게 발견된 일. 아버지 초상 중에 어머닌 유산까지 겹쳐 보건소에 실려 가시고, 줄초상 면한 것이 다행이라는 동정의 눈빛을 이겨내지 못한 어머니와 고향을 떴더라는 이야기 등.

함바집 귀퉁이에서 어머니와 달랑 둘이서 먹고 자며 또래 친구 하나 구경도 못하고 사는 동안, 나는 세상은 후덥지근한 냄새를 풍기는 덥수룩한 사내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자랐슴다. 옮겨가도 사람들은 그저 그런 아저씨들뿐이었으니까요. 난 몸집이 작아서 취학나이가 넘어도 눈에 띄지 않았었나 봐요. 그러다 어떤 곳 사장님이 애 그리 키우면 안된다고 뭐라 그랬담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도 큰 죄라고. 내가 아홉 살이 되어서야 1학년이 되었으니, 못났어도 선생님 말은 좀 탔겠죠. 집엔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못 샀는지 맹모심정으로 안 샀는지, 신문도 당연히 없었죠. 나는 상식이고 뉴스고 아는 것이라곤 없이 공부에만 매달렸죠, 법으로 억울한 사람 없는 세상 만드는 데 일조할 훌륭한 판사가 되기 위해서.

그럼 왜 중간에?

다들 미친놈이라죠. 헌데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 하늘을 처음 보았을 검다. 숨 쉬고 하늘을 보니 어지러웠어요. 멋모르고 학교근처 복작거리는 술집에도 따라 다녀봤죠. 학교간판으로 빛 좋은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그러다 첫 학기가 가기 전에 내 두더지 인생을 간파했죠. 이런저런 세상사 외면하고 공부에 집중하면, 육법전서를 파다보면 조만간에 사시에 합격은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엔?

다음엔?

그런 다음에 인생이 달라질 것인가? 확실한 성공을 보장받는 데는 사시합격이 전부가 아닐 것이 눈에 보였슴다. 아들 없는 법조인의 딸과, 법적인 보호가 필요한 아니면 그냥 판사 따위가 구색으로 필요한  준재벌가 딸과 그렇게 결혼하게 되겠지요. 나는 팔려가고, 어머니는 버려지는 거죠. 판사아들 두었다는 허명 하나로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보장받죠. 이름 좋은 하눌타리. 나는 계급이동이 완결된 것으로 착각하고, 새로운 계급의 취향 따라가느라 버벅거리며, 어색한 여유로움을 가장하고도 가슴 한 구석에선 어머니로 대변되는 내 진솔한 삶을 그리워하면서, 기름진 얼굴로 속은 말라갈 것이죠. 수소풍선이 터질까 수소가 빠질까 조바심하며……. 아니 난 그건 못함다. 결국 사시는 외면했지만 등록금 없이 졸업할 만큼은 공부했죠. 이어 외국장학금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하기로 했죠. 저들 세상에 턱걸이 밖에 못할 바에는 뭔가 이 부조리한 토대를 전복시킬 가치와 증거를 기대하며.

다른 가치?

그게 말하자면 덫이었슴다. 열등감을 만회하려던 또 다른 허영의 덫. 십년 세월 바치고서야 깨달은 귀한 답이지만, 답이 정말 아무 것도 들여놓지 못하더군요. 판검사는커녕 보따리장사가 된 아들인대도 우리 어머닌 박사아들 이름으로 허리를 세우신다오. 마른 등을 세워도 애들 키뿐이지만요.


몸이 아주 작고 마른, 나이 보다 늙은 여자. 그는 내가 그런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눈깔사탕 맛을 기억할 수 있어야 고깔사탕 맛을 상상하지! 그에게는 마른 등으로 살아있는 어머니가 있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 산만큼 큰 바퀴달린 괴물에 놀라 풀밭인지 보리밭인지 풀 속에 숨던 내 기억의 파편들에 섞인 한 아련한 여자. 마루 끝에서 아기를 가슴께에 안고서 불그스레한 수박 속을 연신 아기 입에 넣어주던 여자. 머리에 무언가를 얹으면 갑자기 키가 커져버린 여자. 나는 수숫대처럼 비실거리건 돼지처럼 뒤뚱거리건 엄마라고 부를 엄마가 있었음 좋겠다. 주름이 할머니보다 더 많아도 좋으니 엄마라고 부를 엄마가 있었음 좋겠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는 어머니타령을 계속했다. 이제 나는 불효자요. 학교다닐 때 효자가 졸업하고는 불효자요. 나는 울 어머니와 어머니의 소원을 버리고, 삶의 이 진부성에 넌더리를 낼만큼 정신과 관련된 인류의 궤적을 탐닉했소. 파렴치한 돈귀족이나 권력귀족이 되느니 정신의 귀족이 되는 길에 서서, 돈도 권력도 비웃을 수 있기를 탐했소. 왜 과거형으로 말하느냐고 물을 테요? 예, 그랬더랬소. 지금 난 이것이냐 저것이냐 갈림길에 섰소. 두 성공의 길이 아닌, 성공과 패배의 갈림길이오. 내게 핑계만 더 생기면 확실한 길을 택하겠소. 대학동기들 고시마치면 판검사 아님 변호사지만, 변호사나 교수하다가 정치에 들어가는 길이 즐비하죠. 의원공천 따놓은 친구가 하필 나를 필요로 한다네요. 정치권 사법권 밖에서 이미지 관리할 인사가 필요하다고. 그 친구 말로는 그건 시작일 뿐이라고. 부패와 부도덕의 누명인지 오명인지를 쓴 당의 윗선에서 나 같은 순종을 필요로 한다나. 그런데 난 전혀 순종이 아니죠. 오히려 순종 이미지를 가장한 것일……. 아무튼 “자본에도 권력에도 초연한 엘리트들”이 나서준다면 당 이미지개선에 딱이라고. 이번에만 도와주면 원하면 정치계로, 다시 돌아가려면 학계의 자리쯤은 우스운 장난이라고. 그래 이젠 보따리장사도 지쳤으니 두 손 들고 투항하는 거요. 여러 의미로 배부른 자들의 화동노릇일지라도. 호랑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미명으로. 단 한 가지 내게 핑계만 하나 더 있으면.

핑계?

난 뭔가 알리바이로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거요. 세상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번쩍거리는 데도 눈을 치켜뜨는 법이 없는 당신. 오페라나 뮤지컬 가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것을 몰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상고졸업학력을 단 한 번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진짜 순종. 이 순종을 유혹하고 싶은 내 비뚠 심보를 멈출 수가…….

비뚤어진?

나는 오염되지 않은 당신을 흔들어 보겠다 그 말이요. 내 정신으로 안 되는 것을 내 돈과 권력으로 되게 만드는 길을 가겠단 말이요. 당신인들 조건이 되면 세상 사람들이 탐하는 것들을 탐하게 되지 않을까, 아니 세상 사람들이 탐하는 모든 것들을 더나 탐하게 해주고 싶소. 당신이라고 그럴 권리가, 탐욕의, 흥청망청 타락할 권리가 없다는 건…….

그만 하세요. 쉬운 말로 나 호강시켜 주겠다는 핑계로 새로운 전기를 잡겠다? 유식하신 분치고는 치졸한 변명이네요. 탐욕은 어려운 말이구요, 욕심? 그래요, 전 욕심이 적죠.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그러대요. 하나 곱하기 욕심은 욕심하나, 둘 곱하기 욕심은 욕심둘…… 하지만 영 곱하기 욕심은 영이죠. 내 출발은 영이었어요. 영에는 그 무엇을 곱해도 영이더군요. 어머니 없이 시작한 인생은 영영 영이죠. 불쌍한 어머니, 불쌍한 여자, 핑계대지 마세요. 그냥 가세요. 영이 아니라, 하나에다 곱하기 이번엔 권력이든 자본이든 곱하세요. 아예 권력에다 자본을 곱해서 무슨 제곱이 나오나 보든지요. 세상에 태어나 40이 넘도록 공부만 했으니, 이제 뭘 들이려 한다고 아무도 당신을 탓하지 않을걸요. 세상은 결과주의죠. 내가 무슨 주의 운운하다니, 정말 공자 앞 문자쓰기네요. 빈정대려는 것 아니구요, 정말 결과주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결과를 위해 애쓰지만 잘 안될 뿐이죠. 나의 불발은 순종이어서가 아니라 조건 탓이죠. 나도 보험회사라는 자본의 흐름 가운데서 십수년을 살았어요, 그러니 내가 보험을 더는 들지 않죠. 적금이나 저금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는 거예요. 난 오히려 돈이 없이 돈을 너무 많이 보아서 불행타 못해 비참해요. 물론 영에서 시작한 인생이 이만하면 되었죠, 우리 할머니 눈감고 돌아가실 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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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기껏 지방도시의 ‘내’ 49㎡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할머니는 두선두선 알 수 없이 감사합니다를 되뇌셨다. 참 용타, 아가, 저 우게 느 엄니도 인자 참말로 눈 감겄다. 그리고는 한참 후 덧붙이셨다. 방도 두 개나 되구만, 근디 느 짝은 대체 어디 있다냐.


내 짝은요, 할머니. 나는 속으로 되뇐다. 어머니 가난에 절은 내게 아버지 가난으로 시린 그가 어울렸을 까요? 그는 머리가 구름까지 닿은 괴물이 되어버렸네요. 공부가 뭐랍니까? 머리만 괴물로 변한 그. 내가 그를 원한다면 난 그를 통째로 원하죠, 그런데 그의 머리는 계속 뭉게구름 속으로 흩어져 가네요. 허위의식?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죠. 그가 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는 내가 “꾸밈없다고”, 더도 덜도 맞춰서 말할 필요 없는 때문에 내게 온대죠. 난 꾸밈없는 게 아니라 꿈이 없죠. 꿈을 꾼다는 것이 내겐 항상 사치였으니까요. 꿈은 한 치라도 내일을 보는 사람의 특권, 그렇죠? 난 오늘이 힘든걸요. 그저 못 올라갈 나문 쳐다보지도 말라던 할머니 말을 새기며 사는 것뿐. 아프기 싫어서 욕심을 못 내죠. 가슴 한 구석은 내내 아리죠. 그는 나를 아마 학문연구 과정에서 발견한 특이한 종류라고 생각하나 봐요. 꿈이 없는 양 꾸민 날 그가 몰라요.


고향에 있는 할머닌 대답이 없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났다. 오늘 봄날이 저문다.


할머니, 것도 다 변명이죠. 사실은 난 온전한 어머니가 못 될 것이 두렵답니다.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하는 어머니. 무서워요. 차마 말로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엉뚱한 소원이나 하나 말하죠. 난 그 ‘우편물 넣지 마세요. 새가 살고 있어요.’라는 쪽지가 붙은, 토기로 구운 편지함이 있는 그 집엘 가보고 싶답니다. 난데없이. 편지들은 담장의 나뭇가지 아래 흩어져있을까요? 까치밥 넉넉히 달린 아름드리 감나무엔 그림 같은 그물침대가 매어 있겠지요? 요람 속의 아기는 졸려도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제 어머닐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겠지요? 꼭 붙들어, 아가! 어머니도 순간 바람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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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09. 7. 15. 11:31
 

아이들 - 아이들이 오면 천국이 된다! (2009년 여름)


* 연잎이 신기해! 수빈 - 우빈

* 도레미파 - 2003년생 수빈/ 2004년생 우빈/ 2006년생 형빈/ 2007년생 성빈/

* 연구실에서 - 성빈은 잠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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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