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02. 7. 22. 22:32

[전일시론 2002년]            노블리스 오블리제

국회의 국무총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가동되었다 한다. 본회의 투표 전 10여일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가관은 적반하장의 행태들이다. 한 마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부재 탓이다. 이것은 ‘귀족의 의무’ 라는 뜻이지만 혈통귀족이 아니라 정신귀족으로서의 의무요, 출신성분이 무효화한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를 말한다.

단어가 서양에서 나오고 보니 서양문화권에서는 당연한 덕목이다. 최근 영화화로 유명해진 타이타닉 호의 침몰시(1912년 4월) 추운 밤바다에서 노약자들을 보호하며 생명의 보트를 양보한 것은  세력 있는 신사들이었다. 이들은 1852년의 버컨헤드 호를 기억했을 것이다. 영국해군의 자랑스러운 수송선에서 세튼 대령 이하 사병 전원이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숭고한 전통을 세우며 죽어갔으니까. 20년전 영국의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헬기의 역할은 전함 주위에 떠서 날아드는 아르헨티나의 미사일로부터 전함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당시 전쟁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국의 핵잠수함에 의해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제네랄 벨그라노 호가 격침되고, 아르헨티나의 막강 프랑스제 엑소세 미사일은 영국 구축함을 두 척이나 침몰시켰다. 이러한 전쟁의 전면에 왕자가 참전하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러한 예가 없지 않다. 1965년 10월 4일, 수류탄 투척 연습 중이던 한 병사가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놓치고 말았을 때, 수류탄 위에 몸을 덥쳐서 부하들을 살리고 산화한 숭고한 강재구 소령의 행동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나라가 불안하다 하면 외국으로 빠져나갈 궁리부터 하는 부유층과 지도층이 적지 않다. 오죽하면 해외 원정 출산을 중개해 주는 여행 상품이 인기를 모으고 있을까. “베이비인유에스에이” 등의 웹싸이트는 “출장이나 여행중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국에서 출산하게 되는 한국인들을 돕는 명목으로 “유아시민권” 메뉴까지 달아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친절을 보이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이라면 누가 왜 위화감을 갔겠는가. 그 동안 하필 모 정당의 대통령 후보 손녀가 미국에서 출생하자 끓어올랐던 서민들의 배신감과 좌절감은 오래 갈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으로, 죄 지은 것이 없으나 죄지은 것으로 오해를 받았겠지만, 아무래도 떨떠름한 건 감출 길 없다. 그 아들들의 병역기피 논란 이후에 터진 연속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서 말이다. 이득은 명쾌할 때만 가치가 있다. 

거제에 가면 시목리에 팥죽논이란 논이 있는데, 을유(1885)년 큰 가뭄으로 흉년이 되어 팥죽 한 그릇과 바꾸어 먹었다는 논이다. 그러길래 바른 집안의 가르침으로는, 아무리 재산을 늘리려 해도 흉년에는 남의 논을 사지 말라 했고, 파장에는 물건을 사지 말라는 금도가 있었다. 학문을 해도 지조와 의리를 꺾으면서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 명예를 목숨처럼 지키려는 집안이 존경을 받았다. 청렴, 강직, 기개, 남에 대한 배려, 예의범절 등 전통사회의 명문가들이 지녔던 이 같은 선비정신을 회복할 때이다. 물질의 부(富)와 정신의 귀(貴)를 맞 트레이드해야 살 맛 나는 세상이 된다.

사족으로, 트레이드라면 월드컵을 빛낸 선수들의 현안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세계 유수의 팀으로 이적되어 온갖 기량을 펼치기를 누가 바라지 않을까. 한편, 당연한 온갖 포상에 당연하지 않은 ― 특혜든 특권이든 당연은 아니다 ― 병역면제까지 받은 이들의 앞날 역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 속에서 보고 싶다. 누구도 이들의 병역면제를 사회지도층의 특혜라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이들의 역할이 전무후무한 애국심 고취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스포츠 명인이든 사회의 지도적 가치를 휘몰고 다니는 것은 마찬가지인 세상이다. ‘너무 훌륭하였으므로’ 당연히 병역도 면제해주어야 하는 것은 뭔가 아니다. 병역의무란 ‘훌륭하지 않은 보통 또는 보통 이하의’ 아들들에게만 해당되어서는 살 맛 나는 세상이 될 수 없다. 너무 훌륭한 아들들이 보통 아들들이 하는 병역의무도 수행할 때 더욱 훌륭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스포츠 명인들의 병역면제는 귀하신 아들들의 병역면제와 더불어 그들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기회를 다소 박탈한 것이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한 개 더 주랬으니, 옛 가르침은 멋스럽기까지 한다. (2002년 7월 22일)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2. 6. 25. 22:34

[전일시론 2002년]      오~ 필승 코레아 - 신화와 현실 

 

유월은 온통 뜨거움의 도가니였다. 우리는 신화를 창조해 냈다. 미지의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던 첫 경기의 승리는 섬광처럼 우리들 가슴에 희망을 불질렀다. 푸른 구장의 빛나는 기록은 회를 거듭할수록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강호 이탈리아를 상대로 실로 월드컵 역사에 남을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리자, 온 나라는 정말 하나로 이글거렸다. 감동의 물결은 광장이고 골목이고를 가리지 않고 거리마다 넘쳐났다.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하나가 되었다. 오~ 필승 코레아! 대~한민국 따다~따 따따~


실제로 88올림픽이다 2002월드컵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국제경기 유치가 성사될 때에도, 말없는 어딘가에는 스포츠 정치에 대한 일반적 회의론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산적한 대내 문제들을 묻어두고서 세계 속의 이미지에만 주력하는 것은 외화내빈이라는 시각이었다. 동포 북한은 멀리 두고 일본과의 공동주최도 실은 빈 허의 화려함이거니 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어쩌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정치보다 스포츠에 정신을 쏟는 나라가 되었나 보다. 지자제의 중요성을 부르짖었던 민주정치 염원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민주시민의 기본권인 선거권도 아랑곳없다. 누가 단체장이고 누가 의원인가에 관심은 미미한 채, 선거는 이해관계에 얽힌 집안 잔치처럼 조촐하다 못해 빈약하게 치러졌다. 권력자 주변의 추악한 비리도 아랑곳없다. 오늘 아침이라고 새삼 6.25의 비극을 일깨우면 뭣하냐. 아무렴 어떠랴!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 쾌남쾌녀 한국인! 대~한민국 따다~따 따따~


4강의 문턱에 섰을 때 우리는 정말 한 마음으로 뭉쳤다. 시내 일원 초중등학교의 임시 휴업까지하면서, 전국 또는 세계에서 몰려들 손님들에 대한 배려이자 학생들의 나라사랑 마음 고취의 일환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했다. 나라사랑은 하늘을 찌를듯 높아만 가고, 20년 태극기 판매고를 올 유월 한 달에 만회했다는 기록이라 한다. 사실상 우리의 태극기를 그렇게 사랑해본지 몇 십해 만인가. 유관순누나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태극기는 얼마나 추상적이었던가. 태극기가 광복 이후에는 관제 행사 이외에 이토록 사랑받은 적이 있었던가. 최소한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의 의미도 이해하기보다는 비미학적이라는 시선으로 시큰둥했던 터였다. 그러던 태극기가 동네마다 펄럭이고 처녀들의 앞치마에 소년들의 날개로 둔갑하여 우리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필요하다면 석전(石戰)에 돌이라도 싸다 날라 행주대첩을 이뤄낼 기세였다. 어느 외신은 “너무 관제적”이라는 오보도 한다지 않는가. 월드컵 축구가 가져다준 성과는 태극기 사랑 하나 만으로도 더 없이 값진 일이다.


빛고을의 4강 신화는 온 나라를 폭발하게 했고, 오죽하면 이를 일컬어 “단군이래 가장 기쁜 날”이라는 찬사가 나왔을까. 설마하니 스포츠 우승을 혹은 “월드컵을 거머쥡시다!”를 우리민족의 최종목표라 하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칭찬에는 과장이 따르는 법이니까. 꿈같은 4강신화가 이루어진 그날 우리는 모든 것이 옳고 모든 것이 좋았다. 결승신화도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도청 앞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나누어준 종이 깃발들에는 놀랍게도 “오 통일 코레아”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은 필승을, 내일은 통일을 염원하는 것이다.

                               

이제 이 들끓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식혀주려는듯이 일요일 아침엔 서늘한 비가 내렸다. 상극상생의 원리에 따르면 물을 이기는 불은 없다지 않는가. 웬만한 냉기로는 식힐 수 없을 열기도 그것이 꿈속의 일이려니 하면 쉽게 냉정을 찾아질 것이다. 현실이 결빙의 우박처럼 강타해오기 전에, 우리는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신화를 역사로 바꿔 쓰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라도 꿈과 현실을 바로 가늠해야 한다. (2002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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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2. 6. 4. 22:36

[전일시론 2002년]              

조국과 모국어 

 

6월 한 달은 어느 때 보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세상이 들끓었다. 여느 해 같으면 분단조국을 뼈저리게 의식하게 되는 6.25도 축구의 열광 속에서 잊고 지냈다. “괴뢰군의 남침으로 인한” 6.25전쟁을 겪으며 자란 대한민국의 건전한 세대는 “거지가 득시글득시글 하는 남조선”에 대한 비방에 어처구니없어 한다. 실로 노숙자가 득시글득시글하는 장면도 뉴스에 나오는 사건처럼 의식되기에 우리의 일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은 건강식 걱정이요 다이어트라서, 배고픔을 걱정하던 시절은 아득한 옛날로 생각된다. 더 많이 생산해서 더 잘 분배하여 더 잘 살아보세... 하는 따위의 구호는 쉰 세대의 열정일 뿐, 신세대는 온통 지구촌의 IT에 집중되어 있다.


새것을 좋아하기는 신세대만이 아니다. 우리는 신사조에 민감한 민족이다. 이데올로기라도 새것일 수록 효과가 좋다. 6.25를 지나서 남쪽에 분류된 우리는 미국식 시장경제 아래에서 열렬한 민주주의자로 성장했다. 적어도 우수한 사람들은 그랬다. 모르긴 몰라도, 6.25를 지나서 우리가 북쪽에 분류되었더라면, 우리는 또 다른 보호세력 아래에서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적어도 우수한 사람들은 그랬을 것이다. 사회의 중심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신사조를 더나 좋아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에서 후회를 배운 덕일까? 우리는 열심히 문호를 개방하여 모든 사조가 범람하고 모든 자유가 넘치는 조국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98년 경제위기 이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좋은 조국에서 모국어로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대학가는 영어와 컴퓨터가 최고의 가치이고, 실제로 졸업시기가 닥쳐오면 다른 능력은 갑자기 무용지물로 변한다. 다른 능력과 관련된 학업은 갑자기 찬밥신세가 되다 못해 원망의 대상이 된다. 우리 조국을 사수할 모국어조차 마찬가지이다. 모국어는 조국을 사수하지도 못하고, 조국 또한 모국어를 보호하지 못한지 오래이다. [이렇게 조국에 살면서 “모”국어를 강조하는 것도 바른 국어사용은 아님을 안다. 우리나라 말은 그냥 국어이니까.] 


“국어국문학과는 국어국문학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와 교육, 이를 통한 언어 기능 계발 및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과이다. 국어학과 국문학의 학문적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중략] 또한 이와 같은 전공 영역의 연구, 교육과 더불어 국민 일반의 모국어 사용 기능을 높이고, 정서 함양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창달에 기여하게 된다.” 올해로서 만 50세가 되는 한 국문학과 홈에서 학과를 소개하는 글에서 발췌해온 글이다. “국민 일반의 모국어 사용 기능을 높이고 정서함양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창달에 기여하리라”는 계획은 그러나 꿈처럼 아득해져간다. 국민 일반이 모국어에 별 관심이 없는 바에야. 이제는 조국을 모국을 고국을 떠나 살거나 서로 혼동해서 사용하고, 또 그런 것에 마음을 쓰면 좀생이 취급을 당하게 된다.


무엇이건 새것이 좋고, 새로운 사조는 그래서 우리 땅에서 항상 세력을 얻는다. 이차돈의 불교도, 정약용의 실학도 이어서 천주교도, 마침내 개신교도 세력을 얻었다. 신의 위력이기도 하겠지만 수용 자세가 우리처럼 좋은 민족도 드문 것이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혁명도 크나 작으나 대개 성공한다, 새것이니까. 더불어서 영어도 컴퓨터도... 김치처럼 무슨 인이 박혀서 먹지 않으면 안되는 세대가 아직 남아는 있지만, 김치는 반찬도 아닌 세대가 얼마든지 자라나고 있다. 김치는커녕 밥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학교 캠퍼스에 통치마 한복이라도 입고 근무하면 무슨 날인가 물어오는 것이 요즈음이다. 우리가 우리 옷을 입는 것이 이상한 일이고 잘 해야 특별한 일이 되었다. 좋은 새것 때문에 너무 쉬이 버려버린 옛것들 중에는 꽤 좋은 것들도 있었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새 세대의 특성중 하나이다. 이렇게 몇십 성상을 지나고 보면 조국도 모국어도 잊힐 날이 올까?

(2002년 6월 4일?)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2. 5. 27. 22:39

[전일시론 2002년]               성장

 

오월이 무르익었다. 며칠이면 여름에 자리를 내준다. 나무들은 새 잎을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껏 자랐다. 이젠 그 그늘로 우리를 덮을 태세다. 


사람은 봄마다 새로 자라나는 나무만 같지 못하다. 연륜은 체험과 비례하지 않는다. 지식과는 더더욱 아니다. 더구나 다매체의 홍수 속에서 장님 코끼리 보기만큼도 세상을 알지 못하고 죽는다. 이 주눅든 말을 하필 성장의 대명사인 신록의 계절 끝자락에서 내뱉어야 하는지, 그것 또한 기이한 일이다. 생각해 보니 바로 자연의 놀라운 성장 때문에 우리의 성장을 생각하게 되는가 싶다.


한껏 자라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괴테의 『시와 진실』이라는 상당한 양의 글은 작가의 자서전쯤 되는데, 그중 한 단원에 “나무는 하늘만큼 자라지 않게 되어있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나무들이 제각기 제 키를 제 양을 자랑하면서 자라나지만, 하늘을 찔러 스스로 부러질만큼 자라는 나무는 정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수명 또한 그렇고 우리의 능력 또한 그렇다. 어느 새 우리는 나무의 키를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하늘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고층건물은 얼마나 높이 가능할까? 사람은 얼마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창세기의 바벨탑 교훈을 들어야 할까? 노아의 자손들이 다음 홍수를 피하기 위하여 하늘까지 닿는 돌탑을 쌓으므로, 여호와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이들의 통솔력을 중지시키시므로 이름을 바벨이라 했다(창11:1-9). 고대 바빌로니아 또는 그리스의 기록에 의해 추정되는 이 건축물의 높이는 210m 이상이라고 한다. 현대의 층 개념으로 환산해도 70층 정도는 된다. 그러니까 고대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룩했다는 니므롯이 시날평지에 성읍을 세우고 탑을 구축하려 했을 때, 성장은 그곳에서 멈춘 것이다. 성서적 해석으로는,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인 인간들이 경영하는 일을 금지하고자 했던 신의 의지로 풀이되겠지만, 자연 속에서는 더 쉬운 말로 ‘하늘까지 자라는 나무는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수천년이 흐른 오늘도 지구촌 어디에도 바벨탑 보다 더 높은 건축물은 드물고, 또 위태롭기까지 하지 않은가. 자연은 스스로 성장을 통제한다. 사람들은 고층 하늘 속에 사는 대신, 나무의 키를 넘지 않게 만큼 땅에 붙어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회 또한 거대한 생명체이다. 경제학자들의 의미있는 주장, “성장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라는 명제도 영원불멸한 명제는 아닐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재는 척도가 성장률뿐이겠는가. 우리 사회의 건강함이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타격을 주지도 타격을 받지도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라야 할 것이다. 우주같은 거창한 단어를 회피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다만 자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평형상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욕심 아닌 현 상태에서의 조화 같은 무엇. 이름하기 어려운, 찾기 어려운 어떤 평정상태를.


현대 사회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이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위(無爲) 예찬이라도 필요하리라. 무위는 자연법칙에 따라 행위하고 인위적인 작위를 하지 않음을 말한다. 목적 추구의 의식적 행위인 유위(有爲)를 인간의 후천적인 위선 혹은 미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무위에서야말로 완성이 있다’는 역설은 성장 일변도의 오늘날 우리 가치표준에 시사하는 바 크다 할 것이다. 푸르른 오월, 한껏 푸르되 자랄 수 있을 때까지만 자라는 나무들을 보자. 자랄만큼만 자란 다음 그 그늘로 한 여름 우리를 식히고 그 열매로 가을 겨울 우리를 살찌우는 나무들을. (2002년 5월 27일)

Posted by 서용좌
낙서2002. 5. 15. 14:18
설레는  (옛)

 

안녕하세요, 교수님.

1학기때 수업을 한 번 들어보았던 독문과 학생입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인지라
이름을 밝히기도 부끄럽네요.
과생활을 하지 않아 교수님들은 물론,
다른 학생들도 잘 알지 못하는 마당에
이름을 밝히고 안 밝히고의 차이도 없겠지만..
그래서 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익명을 고수하겠습니다.

이렇게 교수님 홈페이지까지 들어오게 된건,
전대 홈페이지에서 교수님이 '태양은'이라는 중편 소설로
등단하셨다는 소식을 읽어서였어요.

'등단'

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답니다.
교수님께서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음은 물론,
관심에 있어서도 다른 독문과 교수님들과 또 다르다는 걸 조금은
느끼고 있었지만, 글쓰기를 하시는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터라
가까운 곳에 계시는 분이 소설가로서 등단했다는 소식은
참 반갑고도 기쁜 일이었어요.
특히 서용좌 교수님이셔서 더욱.....
얘기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꼭..축하의 말을 드리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왔지요.

때가 늦은 건 아니겠지요?
서용좌 교수님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릴게요.

교수님의 등단 소식을 보고,
제 자신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등단 소식이 더욱 깊이 와 닿았는지도 모릅니다.

국문학을 특히 좋아하던 저인지라..
고교 3년 내내 국문과만 바라보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시때 단 한번의 실수로, 성적이 떨어져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르고 골라 하향지원한 곳이 바로 전대 독문과였지요.
전대 국문과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혹시나..하는 생각에
안정적인 하향지원으로...
전혀 흥미나 관심도 없던 독문과를 지원했지요.
예상대로 합격하긴 했지만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학과를 다닌 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는 국문과..국문과...미련이 남아있어서 말이지요.
다시 대학 입시를 치를까, 학교를 그만 둘까,
여러 생각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소설가가 되어야지 하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국문학이란..제겐 정말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이었나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수전공도 있고, 편입도 있고...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길도 많은데
왜 꼭 그것만을 고집했는지..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학교는
처음 입학했을때보다 더 낯설었습니다.
다시 배우는 독어는 고교때 2외국어로 배우던 시절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지요.
그나마 나았던건 독문학 수업때문이었답니다.
독어를 잘 몰라도 되니까요.
그리고 좋아하는 문학분야이니까요.
그래서 서용좌 교수님이 더욱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문학을 전공하시고
소설가로 등단하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독문과를 다니며 암담해 했던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학사경고만 면하려고 학교에 겨우겨우 출석만 하러 왔다갔다 했던
제 자신이 말이지요.

현재의 제 처지가 너무나 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생각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고교시절에 비해,
대학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생각에 잠기는 일을 꺼려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비참해 지는 것 같아서,
현실에서 도피해보고 싶은 마음에 말이지요.
저는 스스로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을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고정관념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어도 공부하면서 문학도 공부하는,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교수님 덕에 왠지 새로운 희망이 피어오르는 듯 합니다.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니 아닌 듯 합니다.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다시 제가 원하는 곳을 향해 방향을 바꿀 수 있겠지요.
교수님의 등단이 제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교수님께서도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열정을 잃지 않고 쉼 없이 달리는
교수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교수님, 다시 한번 등단하신 것 축하드릴게요.

 200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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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낙서2002. 1. 31. 14:17
 
2002.1.31                                

  
 
것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생일 축하 편지 중의 하나였다.

자중자애  ---

참 어려운 주문을 자신에게 확인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공개한다.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은 아직은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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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낙서2001. 11. 13. 14:05

이 편지는 누군가 생각나는 사람하고 읽어야 한다.
또한 이 편지가 쓰여지는 첫 순간부터 함께 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Subject:
    Date: Tue, 13 Nov 2001 23:10:36 +0900 (KST)
   From: nn <99s......@hanmail.net>
      To: <yjsuh@chonnam.ac.kr>

안녕하세요...
nn....이예요. 여기는 벌써 겨울이예요. 그제는 첫눈이 내렸어요.
11월인데 말이죠.
어떻게 지내세요.
저는 독일 생활이 마음에 들어요.

지난번 교수님께서 젊은이가 어딘가에서 공부만하는 것만으로도
사는 이유가 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열정적이고 분출하는 젊음 외에도 배워가고 성숙해가는 젊음이라는
것은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언제나 동기들 또래들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공부해
왔지만, 이 곳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히고 그들을 이해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지
알게되요.
그리고 지금까지 열어보지 않았던 제 마음속에 또 다른 문을 열어
가고  있어요. 물론 독일어 공부는 정말 즐겁구요.

지난 9월과 10월에는 여행을 많이 했어요.
동료들과 또는 혼자서요. 각각의 즐거움이 있드라구요.
여태껏 한국에 있을 때 까지는 여행이 즐거운 것인지 몰랐어요.
그냥 집 떠나면 귀찮지
그런 생각이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여행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떤지. 이제 제 취미 중에 하나를 여행으로 하려구 해요.

어제는 영하 3도보다 기온이 더 내려가서 귀가 다 시려웠어요.
서울이 광주보다 춥다춥다 생각했었는데 여기는 서울만큼 아니
그것보다 좀 더 추울까요? 뜻뜻한 보일러에 방바닥이 아니라 라지
에이터와 기숙사 생활이라서 그래요.  
그런데 독일에 온 후로 영어가 잘 생각이 안나요.
교수님도 그러셨어요?
얼마전에는 예전에 만났던 타이완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그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려고 편지를 쓰는데 도무지 영어가 생각이
안났어요.
지금은 독일어 공부에 충실한게 우선의 목표여서 그 걱정은 보류
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영어도 잘 해야 되는데.

이 곳에서 작문 시간에 가끔 각자의 Heimat에 대해서 쓸 때가
있거든요. 광주에 대해서 이것 저것 쓰다보면, 광주의 공기가 생각
나요.
지금 광주는 어떤지요.

교수님,
그럼 또 편지 드릴께요.
뮌헨에서 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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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낙서2001. 5. 30. 14:04

우린 꽤 성급함으로 친구가 되었다.
내면이 공개되는 데 대해 친구의 자긍심이 상처날까 하여, 조금 생략한다.
나머지는 원전 그대로이다.

 

Subject:   
   
 Date:    Wed, 30 May 2001 16:43:42 +0900
   
 From:  "nn" <nn @hotmail.com>
      
  To:  yjsuh@chonnam.chonnam.ac.kr

먼저...죄송하네요.
말씀을 듣고서야..홈에 들어가서 보았어요.
제가...사실 게으르거든요.
새로 홈단장을 하신..줄도 몰랐어요.
저..사실 선생님 홈페이지 한두번..정도 들어갔었고
사실..자세히 보지도 못했어요. 그리 많은 편견을 갖고 시작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

어쨌든 책...겉표지 처음 보고..요 그 이야기 생각났어요. 엄마 말씀...그렇게도 안..들었다던 청개구리... 그리 어색하거나 멀리 느껴지는 표지가 아닌..친밀하고 또 바른생활표지이든 아니면 즐거운 생활에서 보았던....표지...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타이틀은...뭔가 저한테는 막연하고 어려운..느낌이 큽니다.
아래에 쓰인 글을 읽으면 뭔가 내가 책 타이틀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는데 저한테는 감...잡기가..약간 어렵네요.
하지만..책을 읽어보면..뭔가 잡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맘..같아서는 정말...요...당장 읽고 싶은데 사정이....
그래도 여름방학내에..제가 독후감..이라는 것...보내드리로...약소할께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실..인내심은 있으시리라 기대해..봅니다.
아 참! 선생님이 커피를 그리고 좋아하신다고 하셔서.....요.
어떤 종류의 커피를 좋아하시나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제가 담에 우연히 만나 뵐..날 커피 사..갖고 가면...참 좋아하시겠네요, 그렇죠?
전.... 메일 받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보다..더 좋아하는 것은...
사진 찍는 것이랍니다. 뭐 특별히 배운 것도 아니고 수동카메라 작동할..줄도
모르고 자동카메라로 거의 맨날... 제 얼굴을 찍어요..히히..재밌죠.
나중에 현상되어 나온..사진을 보면..그렇게 즐거울..수가...없답니다.
참..재미있죠..저라는 사람...말예요.
항상....간단한 카메라는 갖고 다니니깐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는 친구들은
참...힘들고 피곤하겠죠..
이런... 지금 약속시간...3분..전...입니다.
오늘까지 숙제를 이메일로 보내기로 했는데 도와주기로 한 친구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오늘은 짧게 쓰고 담에 또 이야기를 이어...하지요...
저 재미있죠? 아닌가.. 사람들이 저...재미있다고..하더라구요.....
그럼, 하루...후에...다시 뵙기를...

 
 젊은이들은 만남을 치명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젊지 않는 나는 그들에게서 경쾌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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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1. 5. 15. 23:30

도서출판 이유, 2001. 272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말하기를 주저한다. 하나 씩 따로 존재하는 열 하나 조각그림 그 틈새에서 서툴게 존재하는 주인공은 ― 작가의 의도 때문에 주인공다운 주인공은 아니지만 ― 자신을 말하기에서 주저하는 우리를 대신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 다른 등장인물들 또한 거의 이름이 없다. 시간과 장소 또한 의도적으로 거명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법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래 잊고 있었던, 그러나 무의식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그리하며 현재의 나를 이루는 '사랑의 기억'들이 열 한 개의 퍼즐로 짜맞춰져있는 소설이다. 두렵지만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상처받지만 그 상처로 해서 또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여기 있다. 해체되어 있는 열 한 개의 퍼즐들을 짜맞추어 가보면, 굳이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의 인생들이 돋을새김 되는 기쁨을 얻게된다. 열 한 개의 퍼즐을 맞춰 가다보면, 사랑에의 사투는 결국 생존에의 사투와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그리하여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임을. 

                                         ― 소설가·공선옥



 

이 글을 쓰면서: 



기억으로서의 꿈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있다”― 내 엉성한 학문적 글읽기와 글쓰기의 시발점이 된 하인리히 뵐의 소설작품에서 나오는 말이다. 번역 투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개체로서의 인간, 다른 누구도 대체해줄 수 없는 절대적 고독의 숙명으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한다고 해석했다. 도덕적인 공동체에서도, 사랑의 환영 속에서마저도 사람은 혼자다. 사람은 사람의 밖에 있다고 말하니까 좀 쓸쓸해진다. 진실은 항상 좀 쓸쓸한 것이다.


거창하게 철학자 이름을 대지 않아도 그저 맹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다. 목적은 허상, 가상이요, 잘해야 꿈이다. 꿈은 이루지 못할 전제의 목적이다. 이룰 수 있는 전제라면 목적일 것이니까. 그러므로 꿈을 꾼다는 것은 조금은 도피라 할 것이다. 도피가 아니더라도 삶의 유보, 그래서 꿈이란 생을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무지개와도 비견되지만, 실제로는 “다른 상황”에 대한 소망이기 때문에 이 생을 좀먹은 도구이다. 꿈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 꿈에 매달리는 인간일수록, 예컨대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고통에 갇힌다. 꿈을 접으면 사라질 고통을 꿈 때문에 끌고 다니는 것을 달리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그러므로 꿈을 버렸을 때 어엿한 인격의 인간이 된다는 가정이 설립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이 옳은 것이다.


이 비관적 결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꾼다. 그것은 기억으로서의 꿈이다. 기억이 있는 한 꿈을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을 가지지 못하면 꿈을 꾸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이가 꾸는 꿈이라 해도 그의 유전자 안에 남은 유산들의 기억이리라. 태초에 처음 태어난 인간은 꿈을 꿀 수 없었으리라. 젊은이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살아갈 수록 꿈이 많아지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도 오랜 문화를 간직할 수록 원대한 꿈을 꾼다. 우리들의 꿈을 위하여는 기억을 들추어 낼 일이다. 삼가 들추어냄의 변명이다.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꿈을 꾼다. 꿈을 꾸기 위해서 기억을 버리지 못한다. 기억 속의 파편들은 항간의 목소리들에  필적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게도 무미하다. 그들은 생동한 에너지와 화려한 외모와 불가항력적인 성증으로 전혀 치장되어 있지 않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음으로써 사람을 사로잡는, 아니 사람은 사람에게 여간해선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저 다가가다 만다. 대개는 자신 속에 갇혀 있고, 그래서 안될 까닭도 없다. 소위 실패라고 불리는 것들이 가장 자연스럽다. 


내 부실한 언어는 이런 내 부실한 기억 탓이다. 언어라는 체계라기 보다는 조각그림에 불과할 기억들의 들추어냄. 이 조각들을 활자화해보겠다는 옛 제자들 숙미와 찬종들의 막무가내 신뢰에 떠밀려서. 신중해라~ 하셨을 은사님의 침묵을 마음대로 오해하여. 옛적에 시작했던 그이에 앞서, 언젠가는 소설을 쓸 것이라는 아들에 앞서, 서두는 사람은 그저 그렇다는 진리를 남기며. 또한 앞으로 어안이 벙벙할 독자들 ― 혹시 있다면 ― 앞에서, 내 부실한 자의식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지막 말마저 타인에 기댄다. 그는 너무도 오랜 옛날부터 나를 부추겼던 죄목 뿐으로 이렇게 자꾸 불려 나온다.



                           무의식적 기억만이 시간을 초월하여 진실성을 갖는다.

                                                              ― 플로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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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낙서2001. 1. 1. 23:30

 내가 쓴 것
 What I have written

<내가 쓴 것>이란 병적 집착의 남자를 다룬 영화가 있었다. 흔들리는 남편과
그의 아내를 마음속에 둔 그의 친구, 남편의 회의와 "정신적" 편지왕래에 의한
소위 바람을 적나라한 추한 관계로 변형시켜서 그 일로 상심할 아내를 얻으려던
비열한 집착증 환자의 이야기다.

인상적인 것은 친구를 믿고 친구에게 자신의 방황을 얘기하곤 하던 남편의 이야기 -
"내가 찾고 있던 것은 이상의 여자였나 봐, 실제 사람이 아니라........"
실제 사람, real person 이란 단어가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와 화해한다. 죽음을 맞는 것은 우연일 뿐이다.

현실에서도 그런 방황의 인물들을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이상 속의 어떤 사람을 누군가에게서 찾다가 , 찾았다고 착각했다가,
죄없이(?) 그 착각 속에 덩달아 빠져버린 상대방을 어느 날 갑자기 놓아 버리는.......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의식하는지 못하는지, 이성적으로야 상대가 그 혼란에
빠져 버린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므로 그렇게 중단하고 마는.
그런 사람은 현상에서 100% 행복을 찾기로 하는 것일까?
여전히 이상적인 다른 어떤 사람을 찾아 헤맬까?

What I have written     
[열 준비가 아직 안되어서....]     

나는 그 동안 프랑스여인 역할을 했다고 느낀다.
영화 속의 프랑스여인은 단 7통의 고차원적 편지를 쓴 데 비해서 난 저질의 500페이지를 썼다.
그러니까 그 병적 친구가 한 권의 소설로 불려낸 것보다 더 많은, 게다가 소설로 출판할 정도의
미려한 문체도 아닌 - 노골적이지만 일단 출판할 만한 질을 갖춘 -  아무 것도 아닌 독백에 불과한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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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