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시2017. 10. 7. 01:11

2017. 9.8.

 

창작 노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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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나의 심장에서 이웃들의 심장에서 일렁이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왜 우리는 저 혼자서 제 삶을 생경해하는 것일까. 가을 비 차갑게 내리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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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서평/논문에 대한 페친의 글을 읽다가 글쓰기와 서평/논문의 관계가 생각나서 옛날에 썼던 글을 올린다. 2004년 『한국소설』 11월호(64호)에 단편 「건들장마」를 발표할 때 함께 쓴 글이다. 그때는 ‘창작 노트’를 따로 써달라고 했다.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몇 해 안 되는 때로, 만나는 사람마다 안정된 교수직에서 왜 느닷없는 소설 쓰기로 곁눈질인가 하는 질문을, 최소한 그런 눈초리를 보내던 때였다. 나는 분명 다른 사람들의 소설 파먹고 사는 일에 지쳐 있었다. 결국 정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강단을 떠났다.

지금은 그럼 행복하냐고? 또 그런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슬쩍 비웃으면서. 왜냐하면 여태 완전 무명이니까.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에서 완전 무명이라는 것을 참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이 오니까 그렇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다.

내리는 비는 맞는다는 것, 오명만도 못한 무명의 비라 할지라도 내리면 맞는 것이다. 또 영영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려니.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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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3. 11. 25. 21:23

삼포세대 

 

 

 

 

 

솔직히, 나는 정복한 것보다는 패배한 것이 낫고, 영구적  소유의 독점적 고형성보다는 임시성과 불확정성의 느낌이 좋다. - 에드워드 사이드, 『도전 받는 오리엔탈리즘』 중에서

 

   

  삼포세대라네, 삼포!

  삼천포가 아니고?

  삼천포는 무슨, 삼포라니까. 우리 같은 루저를 삼포세대라요!

  삼포? 어디선가 듣긴 들었는데.

  그래요, 쓰리 포세이큰 제너레이션!

  뭐요, 셋을 포기한 놈들이라고?

   쳇, 영어라야 얼른 소통되는 우린 바로 바나나족이지, 무슨 삼포족. 겉만 누런, 속은 허여니 뼛속은 양놈들이지.

   김박은 삼천포로 빠지는 게 특지지. 뭘 포기해서 삼포냐, 그럴 물어야지요!

   뻔한 것 아뇨.

  이박, 그래도 읊어 봐요!

  입에 담기도, 그게. 그러니까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모두 포기한 세대란 말이외다.

하나마나 한 소리. 그게 다 직장 문제, 돈 문제 아뇨.

  그래도 그게 ‘불안정한 일자리, 학자금 대출상환, 기약 없는 취업준비, 치솟은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인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청년층’ 그 비슷한 정의가 있어요. 재작년인가, 신문의 취재팀이 만든 신조어이지만 정곡을 찌를 밖에.

 

  우린 그렇게 삼포세대라 낙인찍혔다. 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공부 때문에 공부에 심취해서, 그러니까 제법 고상한 삶의 방식 때문에 연애도 안하고 사는 줄로 착각했었다. 그러나 나도 그들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꼼짝없는 삼포세대.

 

 

  평균인 - 평균인은 누굴까.

  그날 저녁도 외주둥이 굶는다고 소보로빵 한 개로 끼니를 때웠다. 소주와 냉수를 1:3으로 타서 음료수 대신 마셨다. 왜소한 저녁상을 물리고 - 상에서 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 하릴없이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다. 헤아릴 수 없는 아메바들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나 아메바는 갑자기 이 시대 평균 아메바 상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평균치는 수많은 통계에서 찾아보아 골라내면 될 것 아닌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우리’ 중에서 평균적 수입을 갖고, 평균적 자녀 수, 평균적 기대 수명, 평균적 학력, 평균적 직업, 평균적 취미활동 …… 등을 고려하여 대표적 가정의 대표적 사람을 꼽는 일이다. 무엇부터 찾을까. 잠시 통계의 무시무시한 망망대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어떻게 먹고 사는가가 우선일 것이었다. 우선 가족의 평균 수입, 그런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수치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므로 통계를 찾기도 쉽고 평균이나 적절한 대표를 찾기도 분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중소기업을 가정하자! - 사장을 포함한 직원 전체는 70명이고 이들의 총 급여의 합은 2억 1000만원이다. 그러면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월급은 300만원이다. 이 통계는 산술평균에 의거한 것으로 결코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자. 대부분의 직원들은 월 300만원은 평생 가도 못 만져 볼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한다. 직원 50명이 100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10명의 작업반장들도 겨우 150만원씩 받을 뿐이다. 이들에게 300은 비현실적인 수치이다. 왜 그런 300만원 평균치가 나오는가. 그것은 과장들 3명이 500만원씩을, 부장 5명이 1000만원씩을, 부사장은 2000만원, 사장은 5000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70명 중 50명이나 되는 최빈수가 받는 월급은 고작 100만원, 그러므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통감하는 월급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70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중앙에 있는 35 또는 36번째 높은 월급을 받는 사람을 대표라고 한다면, 대푯값 역시 100만원에 불과하다. 이 회사의 최빈수와 대푯값은 100만원 월급인데, 평균 월급은 300만원이다. 나는 초장에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열이 났다. 좀처럼 찬물 샤워를 못 하는 내가 찬물 샤워를 하고 나왔다.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 있었지만 지나쳐서 창 쪽으로 향했다. 밖은 이미 칠흑처럼 어두웠다. 지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아스팔트의 미세 먼지가 날아오른다. 작은 도로라서 저 아래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보인다. 저들이 평균인일까. 운전자가 평균인일까.

 

  다음 순간, 대한민국 평균인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을 예감이 들었다. 일을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려니 한참을 물러서고 만다. 처음 자리가 아니라 마이너스 어딘가로. 도대체 누가 ‘우리’인가. 우리 국민이라 함은 대한민국 국민을 말한다. 그러나 간단하지가 않다.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선언에서 비롯되어 그 해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현 우리나라의 건국은 참 오래 걸렸다. 1945년 광복을 맞았어도 다시 미군정의 주둔시기를 거쳐서 1948년 8월 15일에야 정부 수립이 선포된 나라다. 독립 선포 후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부 수립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것도 우여곡절 끝에 100,210㎢ 땅에서만. 그러니까 함께 독립선언을 했던 반쪽 123,138㎢를 북에 두고, 이제와 그들의 일인당 국내총생산 1,900달러를 살짝 조롱하면서. 우리는 그들보다 10배 이상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를 우리에 한정한다.

  그 한정된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수출입 선 순위권에 진입했다고 희희낙락이다. 1961년 우리가 여전히 전후의 비참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 탄생한 기구에 30년도 넘게 뒤늦게 합류한 우리가. 하지만 동시에 평균 자살률도 거의 3배나 더 이룩해(?) 냈다. 인구 10만 명 당 11명이 평균인데 우리나라는 서른 명이 넘는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경제 위기로 유럽공동체에서 퇴출 위기에 내몰렸다는 그리스는 세 명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러니 경제가 행복을 절대적으로 지배하지는 않는다. 국민총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된 것과 자살자의 숫자는 비례하여 증가 일로에 있다.  

  왜?

 

  정말이지 평균 수입을 알아보고자 했던 내 의도는 한 순간에 좌절했다. 대신 여러 경제 지표를 조금 알게 되었다. 국민총생산이란 개념은 어느새 국민총소득으로 바뀌었다. 보다 합리적으로 바뀐 것이란다. 국민총생산은 한 국가의 거주자 - 국민 - 가 일정 기간 동안에 생산한 모든 재화와 용역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것이다. 생산과정에서 마손된 고정자산의 소모분을 포함한 개념이고, 또 예컨대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 진출해서 생산한 것도 모두 포함된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의 대외수취소득을 제때에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어,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 이루어진 총생산만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으로 바뀌었단다. 그것이 또 1995년에는 국민총소득으로 바뀌었는데, 한 나라의 국민이 일정 기간 생산 활동에 참여해서 벌어들인 소득의 합계란다. 실질 국민총소득은 실제 재화나 용역을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실제 구매력을 측정하기 위해서 산출한다. 이 지표는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를 보다 잘 반영하기 위해 실질 국내총생산에다 교역조건 변화를 반영한 실질 무역손익을 차감하고 여기에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을 더해서 산출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국민총생산이냐 국민총소득이냐는 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다. 국민총소득이 2만 달러가 넘어도 왜 이렇게 허한가. 2012년 국민총소득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34위, 오매불망 우리가 모델로 삼는 미국은 5만 달러에 육박하면서 12위로, 여전히 우리를 훨씬 앞지른다.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에는 뒤지지만, 34위라면 대단하다. 물론 2007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21,632달러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3만 달러 시대가 멀지 않다고 호들갑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만 달러대로 떨어졌다가 2010년 2만 달러대에 재진입할 수 있었고, 3년째 2만 달러대 초반에 머물고 있지만 후퇴는 아니라는 것.

 

  문제는 불평등 성장이다. 한은에 따르면 1991에서 2011년까지 20년간 국민총소득이 연평균 9.3% 늘어났는데, 그동안 기업소득의 증가율은 11.4%인데 비해서 가계소득의 증가율은 8.5%에 불과했다고 한다. 개개인의 실질적인 주머니 사정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성장의 후퇴 때문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임을 역설해주는 증거가 아닌가.

  또 1인당 국민총소득 22,708달러 중에서 기업과 정부 몫을 빼고 개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은 얼마일까. 개인의 근로소득과 재산소득을 합쳐서 거기에서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을 뺀 것을 개인총처분가능소득이고 하는데, 우리의 주머니 사정과 가장 밀접한 지표다. 그런데 지난해 1인당 개인총처분가능소득은 1인당 국민총소득의 57.9%에 그쳤다. 한 나라의 소득은 크게 자본에 대한 보수 - 영업 잉여라고도 한다 - 와 노동에 대한 보수 - 피용자 보수라고도 한다 - 로 나뉘는데, 전체 소득 중에서 피용자 보수가 차지하는 비율, 즉 노동소득분배율이 57.9%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미국은 75.3%로 세계 1위, 왜 그 많은 모순을 안고서도 미국이 제일가는 나라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이다. 스페인이나 일본 등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인 62.3%에도 못 미친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총소득이 별로 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정부와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전체에서 40%를 넘다 보니, 우리 개개인의 주머니는 허할 수밖에 없는 일. 그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의 61.1%에 비해서도 낮아졌다. 그만큼 근로자 몫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국민총소득 22,708달러 중 개인총처분가능소득은 13,148달러 - 그러니까 지난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실제로 소비에 쓸 수 있는 돈은 (발표 당시 환율 1,126원으로 환산해서) 연간 14,80,457원으로, 대략 월 123만원에 불과했다.

 

  평균급여 - 월 123만원.

이 통계는 나를 울렸다. 마치 경제를 조금은 아는 사람모양, 나라 전체의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관한 상심 때문에? 그랬다면 그것은 조금은 사치였다. 수치는 통계 속에서 존재했고, 나는 양심적으로 사고하면서 양심적으로 사고한다는 자존감을 지닐 수 있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개인적인 모멸감이었다. 나는 평균 123만원 세대에도 끼이지 못했다. 교양학부의 한국어 강의까지를 내려놓은 지금은 부정기적인 수입이 내 생활을 지탱해 주는 수입의 전부였다.

   『88만원 세대 : 절망의 세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을 감히 들춰 읽지 못하는 것도 자격지심이다. 그 책이 처음 나온 2007년까지도 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영순위 강사의 신분을 누리면서 세상 물정 모르고 인문학에 파묻혀 살았다. 승자독식 게임의 법칙도 예감하지 못한 채. 그러다 곧 닥쳐온 나의 추락은 부끄러움에 무조건 움츠러들게 했다.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 119만을 20대의 평균 소득비율 74%로 곱한 값이 88만원이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 40을 바라보며 88만원 수입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자리를 비집고 든다 해도 - 아직 가능성은 있다. 국립대학은 매 학기 공채가 있기 때문에. - 동료들 사정을 보면 비정규직 평균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일이 있고, 책상이 있고, 동료가 있는 것, 그것이 그들을, 어쩜 나도 그 속에 다시 끼인다면 나를 지탱해 주는 끈이다. 가족들로부터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소원해지는 세월이다.

  지금까지는 전통적으로 가족이 가족의 복지를 떠맡았다. 대학생들은 FM(아버지 어머니)장학금에 기대고, 결혼까지를 부모에게 의존한다. 부모 세대는 어렵게 마련한 집을 자녀들 대학 뒷바라지와 결혼자금으로 다시 팔아야 한다. 그러고도 둘째나 셋째에겐 더 이상 뒷받침할 여력이 없다. 중산층에서 이미 밀려나 내려앉았다. 이제는 가족의 부담이 한계점을 넘어섰다. 가족은 소리 없는 신음 소리를 낸다. 가족의 구조와 성질이 이 시대 한국의 특별한 온도와 압력에 이르러 다른 상태로 바뀌는 임계점에 이른 것이라고.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도 일류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면 루저가 되는 세상, 연애는 사치의 극이요, 결혼 또한 비즈니스이다. 딩크족(더블인컴노키즈)은 삼포세대의 로망이다. 너 자신을 알라, 삼포족. 형언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루저인 나 자신을 향해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엉뚱한 곳으로, 정말로 삼천포로 빠졌다. 잠깐, 삼천포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변명이 필요하다. 옛날에 한 장사꾼이 진주장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한산한, 혹은 장날이 아닌 삼천포로 가게 되어 낭패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시발일 뿐, 나는 삼천포에 아무런 유감이 없다. 발길 가본 적도 없으니 좋고 나쁠 수도 없다. 그래도 그 이름 때문에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 목록에 든다. 진주이건 삼천포이건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데, 종류를 가늠할 수 없는 화가 치민다.

 

 

  화 - 화가 나는 일을 당하여 우리는 주로 화를 참는 것이 인자의 길이요, 인자의 도리를 모르면 화로써 망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주입되었다. 하지만 화를 끓이고만 있으면 병이 된다고도 하질 않는가.

 

  분노는 많은 경우에 백해무익이지만, 사람이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거나 분노를 모른다면 더 큰 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있다. 2차 세계계대전의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을 대변하는 노익장이 남긴 짧은 글, 바로 『분노하라!』는 글이다. 스테판 에셀. 1917년생이니 90을 넘어서 쓴 글이다. 유명한 1917년생들이 다 떠나고 없는 세상에서. 정치라면 러시아혁명도, 케네디도, 박정희도. 문화라면 윤동주도, 윤이상도, 하인리히 뵐도. 에셀은 독일계 유대인으로 일찍 파리에 정착해서 거의 한 세기를 살다간 지성인. 그냥이라도 90 노인의 발언은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이고 그림이고 저작자가 죽으면 값이 올라가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신속하게 번역되었다. 노익장의 분노 예찬 발언은 애늙은이들이 대접받는 동양적인 관점에서는 다소 색다를 수 있다. 아니 온 세계가 난공불락의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무장된 글로벌 경제시스템 하에서는 분명코 내민 돌에 정 박힐 일이다.

  프랑스의 현실에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모양이다. 알제리를 비롯하여 비 코케시언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도 갈수록 산이다. 이건 엊그제의 일이지만 명색 프랑스 하원의원 질 부르둘레라는 인물이 히틀러가 로마족, 그러니까 쉬운 말로 집시족을 충분히 못 죽였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일에는 장-마르크 애로 총리조차 법에 따른 처벌을 운운할 지경에 이르렀다지만. 세상은 금권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권력들이 세포분열을 하는 장에 불과하다. 성실한 근로세 납세자는 없다. 바보들이 있을 뿐이다. 세상은 갑과 을만 존재한다.

 

  을순이 - 내 이름은 한금실이 아니고 통상 을순이가 되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을식이와 을순이들의 하나. 그러므로 거의 무명 씨. 나에게 분노의 여력이 있을까. 어떻게 분노해야 할까.

 

  첫 발걸음은 관심이다. 반세기 전에, 1960년대 유럽의 사회주의대학생연맹의 여대생들은 ‘사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외쳤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의 여학생들은, 여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그들의 관심은 외모와 이력을 통한 개인적인 성공에 있을 뿐이다. 여자 특유의 외모로서 남성 세계를 공략하거나 남성들과 똑같은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 권력에 이르는 길이다. 그 이외는 무관심하다.

스물 세 명인가 네 명인가, 미스코리아 본선 진출자의 외모 사진들이 똑같다고 세계 여론에서 비웃는다. 몇 년 전에는 「한국의 미의 비용」이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유수 저널이 한국의 성형수술 풍토를 대서특필했다. 얼굴에 독을 주입하는 것은 일상이고, 가정주부가 심지어 종아리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곳이라고.

 

  그뿐인가. 얼마 전 폴라 비라운인가 그 비슷한 이름의 화장품 경찰관(?)이란 별명의 전문가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이 바로 화장품 종류였단다. 스킨,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영양크림이라는 필수(?) 코스도 모자라서 앰풀, 트리트먼트, 마사지 제품, 기능성 제품의 홍수들을 보고서 하는 말이, 수많은 종류의 기초 스킨케어 제품들이라야 파격적으로 말하자면 보습제 한 종류란다. 수많은 과정의 덧바름은 오히려 모공을 막아 트러블을 일으킬 수도 있고, 과한 영양분은 타고난 피부 루틴을 방해해서 자연스러운 재생력과 유수분 유지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데……. 나처람 단순 무식한 사람에겐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피부도 인체의 일부이라면, ‘소식하면 장수한다!’라는 말이 적용될지도 모른다, 정말로.

  피부나 외모가 아니지만, 나만의 이력에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나 또한 사회적 무관심자에 속했다. 죽어라, 아니 충분히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그러고도 갑의 근처는커녕 을의 세상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벌이라면 벌이다. 지식을 생보다 우위에 놓는 죄를 범한 일, 지식에 종사함에 우월감을 가졌던 일에 대한 벌. 이 창살 없는 수감생활 중에 나는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제서 무엇에 관심을 가질까. 무엇을 분노해야하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시작, 모든 새로운 시작은 반성이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반성 시작 -

  나는 공부만 했다. 학문이 생을 의미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공부만 했다. 목표를 초월한 학문. 유용성을 생각하는 것은 저열하리라고 믿었다. 쓸모없음 때문에 쓰임이 되는 것이라고, 어쭙잖게 노자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집의 쓰임은 벽이 아닌 빈 공간 때문이라고, 내가 두 발로 설 수 있는 것은 발바닥 크기의 땅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땅, 내가 밟지 않고 있는 너른 땅 때문이라고.

  나는 사치스러웠다. 욕심을, 특히 물욕을 초월한 삶. 그 무슨 사치였는가. 착각 아니면 거짓말. 세 끼 굶으면 군자 없고,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할 놈 없다는데. 취직을 하든지 시집을 가든지 - ‘취집’을 향하여 전진을 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취직을 향한 노력은 적잖이 해왔다. 결과가 없을 뿐이다. 일단 안정된 직장이, 돈이 없으니. 그러면 곧 삼포세대에 속한다. 연애는 무슨. 혹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쳐도 - 그 정도는 생물학적 짝짓기 본능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렷다, 희망하건대. 하지만 결혼에 이르는 것은 사투에 가깝다. 생물체는 살아남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할 것이므로, 남녀 관계라는 것도 다분히 계산적이 될밖에. 생물체의 상호작용에는 다소간 이해의 충돌이 내재한다고, 어디선가 읽었고, 또 동의한다. 자기 복제를 시도하려는 충동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미화되어…….

 

  틀렸다. 나는 반성 대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정작 중요한 반성은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있다. 죽어라 공부하고도 일자리가 없는 것을 내 못난 탓으로만 돌리는 반성은 무의미하다. 부족하다.

  무엇을 더 분노해야 할 것인가. 내 탓은 제 앞가림 못한 데 대한 분노, 제 욕심에서 나온 분노에 불과하다. 애초에 나를, 우리를 대학입시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던 이 사회. 대학정원을 너무 부풀렸던 이 사회에 분노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그것이 에셀이 말하는 분노, 진정한 사회참여에서 오는 분노이다.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이름의 한 줄서기를 주입시킨 교육. 살벌한 경쟁심을 자유라는 당의정을 우리에게 먹였던 교육. 제 앞가림에만 매진하라고, 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평생을 달리라고 가르쳤던 교육 말이다. 그것도 분노해야 한다. 분노해야 바로잡을 것 아닌가.

  어찌 보면 우리가 독문학을, 프랑스문학을 선택했던 대입에서 어른들 - 그런 곳을 진학하게 권했던 담임선생님이나 그런 학과의 대문을 너무 홀짝 열어놓고 우리를 습인했던 대학들 모두 - 그때 어른들은 우리가 바나나족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몰랐다는 말인가.

 

  바나나 - 바나나를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바나나는 병문안과 관련된 이미지였다. 아프면 바나나를 사주셨다. 조금 더 자라서는 해괴한 모양이 눈에 들어온 때문에 싫어하게 되었다. 여자아이가 바나나를 먹기는 뭔가 민망한 노릇이었다. 금방 바나나 송이에 꼬이는 하루살이들도 성가셨다. 하필 그 싫은 바나나로 지칭되는 우리들.

가야금과 거문고의 구별도 모르면서 현악기 종류들은 정확히 배워 알았다. 피아노 연습은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필수다. 자연 단음계, 화성 단음계, 가락 단음계 구별도 배웠다. 자진머리, 휘머리, 중중머리는 구별할 줄 몰랐다. 조금 알았더라도 엇중머리 라고 하면 멍했다.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을 한국어교원양성과정 공부하면서야 제대로 알았으니, 지식분야인들 바나나 타령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 분야가 더했다. 개화기에 생산된 신문학은 어땠는가. 신소설, 신체시, 신파극 범주를 통틀어 서구문학과의 관련 양상이 문제가 되었다. 비록 김현과 김윤식의 자생적 근대화론이 정설로 굳었지만, 해방 직후에는 이식문학론도 만만치 않았다. 신문학을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 문학의 이식이라고 단언했던 임화의 논의는 그의 정치적 이력으로 묵살되고 만 것이니. 정치는 문학이론 위에 존재한다.

 

  쇼와 시대 이전, 그러니까 1870년대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일본 개화기의 서양 추종 문화가 조선에 그대로 수입 또는 주입되었다는 견해는 왜 백안시 되었을까. 메이지유신의 이름으로 서구의 자유주의 이론을 통한 근대화는 한 마디로 문명개화의 기치아래 수행되었다지만, 사실 일본의 경우는 무사들의 충성심과 사회적 조화라는 전통적 가치도 여전했거늘. 오히려 수입을 통한 수입에 해당되는 우리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한 동안 망각했었고, 그 기간은 사뭇 길었다.

  예컨대 무당이나 사당패처럼 홀대받던 것이 풍물이었다. 꽹과리, 징, 장구 그리고·북 어느 것도 손데 대면 천하다고 업신여겼다. 그게 사물놀이라는 새 이름으로 거듭 난 것이 1978년의 일이었으니, 장구재비 김덕수 패거리가 - 정식명칭 김덕수사물놀이패 -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또 돈을 벌자 그때서야 사람들은 풍물도 사물도 돈이 되는구나, 성공이 되는구나 하고서 관심을 보였던 셈이다. 우리 고유의 정서라거나 문화의 발흥이어서가 아니라, 돈이, 성공이 되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가락을 연주는커녕 감상도 할 능력을 잃은 채, 국적불명의 음악에 취해서 산다. 글로벌음악, 글로벌문화.

 

  일찍이 매슈 아널드 같은 고급문화론자들이 세속적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문화’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유럽의 제국주의 문화였음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확실히 깨달았다. 벌써 반세기 전에. 그 반세기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에 종속되어 왔다. 유럽세계와 아시아세계의 차이에 관한 감각을 더욱 경직화시키는 압력에, 동양이 지닌 (서양과의) 이질성을 그 약함에 관련시켜 무시하고자 하는 사고에, 학문적으로 동양 위를 억누르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그런 교의에. 그러므로 (서양)문화에 근접할수록 고급문화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착각에.

  그뿐인가. 바나나족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글로벌문화 창달에 매진하며 산다. 미국 기업과 맞선 우리 기업이 자랑스럽기만 한가. 스마트폰은 주인의 자리를 넘본다. 눈을 뜨면서 스마트폰을 찾고, 머리맡에 놓고서야 잠든다. 그것도 ‘엘티이’라야 하지, 행여 ‘쓰리지’는 큰일이 난다. 여전히 ‘투지’를 쓰고 있다면 영락없이 비사회적 죄인이 되고 만다. 인간은 가까운 장래에 번호와 기호로 분류된 코드를 팔이거나 뇌 어딘가에 이식받아 글로벌하게 통제되어 살게 될 것이다. 인간로봇, 아니 아예 로봇으로 진보하기 전에 아직은 바보 같아도 사람 같은 사람이 남아있는 세상을 음미해야할 것 같다.

 

 

  음미 - 또는 삶을 살아가는 일은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의 몫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도 굶어 죽는다 하질 않는가. 돈을, 성공을 향한 허기는 끝을 모른다. 산비탈을 한번 돌면 사람들 절반이 사라진다는 무서운 동화가 현실이 되어 있다. 한 단계를 지나면 절반이, 다음 단계에선 또 절반이 탈락하고 우량종만 남는다. 우량종들도 피터지게 경쟁하여 궁극에는 일인자만 남는다. 그 한 사람은 무엇을 향해 살리.

  차라리 삼포세대 바닥 헌장으로 삶아 읊어도 좋을 시가 있다. 스물일곱에 요절했다는 천 년 전 당나라의 문인 이하의 작품이다.

 

    장안에 한 젊은이 있어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늙어 버렸네.

    […]

    곤궁하고 못난 인생

    해질 녘이면 애오라지 술잔만 기울이네.

    지금 길이 이미 막혔는데

    백발까지 기다려 본들 무엇하리.

    […]

    서리 맞으면 잡목되고 말지만

    때를 만나면 봄버들 되는 것을,

    예절은 내게서 멀어져만 가고

    초췌하기가 비루먹은 개와 같네.

 

  비루먹은 개. 이삼십 대 젊은 사람들 거의 절반이 이 무기력에 굴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었다. 어느 온라인 취업포털의 설문에. 이제 사람들을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무서운 적응인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자기암시로서 통제하는 적응력. 어찌어찌 결혼에 이른다 해도 출산은 망설인다. 출산율은 2012년 기준으로 1.23명, 사람을 세는 정수로 말하자면 한 명이다. 세계 최하위 수준이란다.

 

  난 그렇게 끝나고 싶지는 않다. 비록 객관적인 눈으로 삼포세대 일원이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으련다. 쓸 돈, 쓸 수 있는 돈을, 주머니 사정을 잠시 잠깐 망각하는 바보이고 싶다. 미래를 계획하느라 미리 겁에 질리고 싶지 않다. 겁에 질리지 않으면 포기가 아니다. 다른 유형의 삶. 신자본주의 이론으로 평가받지 않을 삶도 삶일 것이다. 자본주의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살았다. 자식이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고 믿었던 한참 낙천적인 시절에도.

  낙천적이고자? 설마. ‘모든 것이 부조리함을 의식하는 인간’에게 어차피 실존은 이유도 종극적인 목적도 없을 것이니. 그냥 살 수밖에, 그래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리라, 그래야 한다. 둘이 모여서 여섯을 포기하더라도. 셋이 모여 아홉을 포기하더라도. 허기의 노예가 되지 않고서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는. 봄버들이 되는 꿈을 꾸기 위해서라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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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펜문학 2013  Vol.9., 2013.11.20. 29-42쪽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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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2. 13. 00:13

 

3일


 

4월의 어느 수요일.

자매는 서둘러 집을 나서면서 둘 다 그것이 그 첫 날의 시작인 줄은 몰랐다. 언니는 자꾸 집을 돌아본다. 혼자 있는 남편이 마음에 걸려서다. 오늘은 그가 외출하는 날이니 점심 염려는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점심 걱정이다. 혼자서는 밥을 챙겨먹지 못하는 남자인 셈. 챙겨먹지 못하기야 할까만, 그러면 슬퍼지는 남자니까,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손수 제 식사준비란 한국남자들에겐 치명적인 설움이요 수치의 근거였다. 동생의 남편은 하루쯤 아내를 언니 집에 두고 갈 만큼은 속이 넓다. 언니 집은 병원 가까이 있으니까, 게서 장모님이 오늘내일 하는 터에.


병원 입구부터 둘은 종종걸음이다. 간호사가 알아보고 웃는다.

뛰지 마세요, 밤새 많이 좋아지셨어요!

밤새 좋아지셔요?

좋아진다니? 불가능한 단어다. 그래도 간호사의 단호한 어조에 작은 안도를 느낀다. 둘은 숨을 돌리며 어머니의 병실로 향한다.


아침 인사.

어머니, 엄마!

그대로다. 급격히 악화된 상태라는 통에 자식들이 밀물처럼 닥쳤다. 몇은 남아서 밤새 곁을 지켰다.


어머니, 엄마!

좀 어떠셔요? 많이 아프셔요?

말을 끊다시피 한 것이 하루 이틀. 다만 무표정의 인사. 인사도 아니다. 듣기는 하실까?


언니가 서둘러 병실을 나간다, 일 때문에. 동생이 따라 나간다.

혼자 괜찮겠어?

걱정 마, 언니. 이따가 또 오빠랑 동생도 다시 들른다는데.

그래, 난 어제 해 줘야 할 일을 못해서.

알고 있어, 해 줄 일은 해 줘야지. 뭔만 안 나면…….

설마 뭔 일이야, 오늘은 아닐 거야.


점심시간이 지났다. 다시 언니와 동생이다, 어머니랑 함께.

어머, 혼자 있어?

아니, 응. 다들 다시 왔었는데, 언니 올 거라고 가라 그랬어. 교대해야지 어떻게.

그래, 너도 오늘은 집에 가 봐.

그래야지. 참 막내가 퇴근해서 오면 7시에는 온다네. 그때까지는, 그때까진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엄마, 저 오늘은 집에 다녀와요, 낼 뵈어요. 언니랑 계셔요.


어머니가 뭐라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으응. 그렇게까지 정확한 단어는 아니지만, 무슨 웅얼거리는 소리, 희미하게나마 알아듣는 척하는 소리인 것 같다.


*


나는 당번이 되어 일지를 쓰는 기분으로 어머니의 병상을 지킨다. 내가 원래 그 모양이다. 숨소리는 고르다, 다만 아침 보다 조금 커진 것 같다. 두 발과 다리는 여전히 부어있고, 가만, 창백한 발이 어쩐지 푸르스름하다. 배 위에 올려놓은 손은 자꾸 미끄러진다. 아예 내려놓는 것이 나을 듯싶다. 두 눈은 감겨있다. 주무시는 걸까?


어머니!

…….

어머니!

눈을 뜨시지도 않는다. 더 좋으실 때에도 나랑은 별 말씀이 없으셨다. 미열이 있는 듯. 혈압은 낮다고, 간호사가 그런다. 원래도 그런 것이, 집안 내력 중 하나인 걸 안다. 어쨌거나 무변화, 무반응.

뭘 하지, 뭔가 뜨개질거리라도 가져올걸 그랬다 싶다.



네 시경.

주렁을 집으신 백모님이 들어오신다. 사촌이 모시고 왔다.

꿈자리가 며칠 너무 안 좋아서야.

그렇다고 고맙게도 어떻게 걸음발을 하셨어요, 큰엄니!

느그 어무니 영 사람 못 알아보는 갑다.

글쎄요. 어째 말씀이 없으시네요, 어제 오늘.

젊어 이래 육덕 좋아, 기운 좋아, 멋대로 쓰며 살더니만. 나이 들어서도 펄펄 날고 다니던 사람이…….

큰엄니라도 건강하셔야 해요!

나가 먼저 가야하는디. 이 망령, 산송장이.

뭔 말씀을.

결국 어머니가 아무런 소리도 못 알아듣는다 싶으니 그냥 나가신다. 멀리 주렁의 여운만 남는다. 여운은 내 마음에 과거를 불러낸다.



어머니야 신나게 사셨지. 문자 그대로. 그렇다고 그렇게나 사사건건 어머니한테 대들었을 건 뭔가. 쌀쌀맞은 큰딸이 서운했을까, 콕콕 찔러대는 불평이? 어머니를 실망시킨 큰아들이 더 서운했을까? 어쩌면 그 배신의 대가로 더 잘 먹고 잘 사는 아들이? 

어머니는 전통적 가정부인의 삶을 일찍이 거부했다. 진부한 집안일 대신 새빨간 매니큐어가 자유부인의 상징이었다. 그래, 난 그냥 어머니를 용서 못했지. 아니, 어머니를, 정상적인 어머니를 원했을 뿐이다. 어머니가 없는 순간에. 어머니는 그렇다고 여성해방론자들과 가깝지도 않았고, 어머니의 삶은 자율권을 가진 여성의 정점에 이른 것 같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그냥 없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냥 삶의 진부함을 잊는 것. 두부와 콩나물을 사고 마루를 훔치는 이미지를 간단히 버렸다. 너무 멋진 어머니는 늘 죄스러웠다, 내가 어렸던 그 시대에는. 난 알고 있었다, 다른 어머니들은 더러 굶고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서. 젊어서 더러 굶었을 어느 어머니가 옆 침대에 누워있다. 그런 상상에, 저 새까맣게 말라빠진 저 손등을 보기가 부끄럽다. 간병 의자에 앉아서 멍한 상념에 빠진다, 점점 더 깊이.



그래, 언제였을까? 희미한 방, 서랍 속의 사진. 왜 그 방에를 갔을까? 그곳이 어머니의 방은 아니었다. 뜰의 샘가에서 가까운 동생들의 방. 집에 수도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우물이 식수의 유일한 원천이었으니까. 샘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어쩌고 - 분명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 무심코 그 방문턱에 앉았다가……. 그게 왜 그 서랍에서 나왔을까? 이상한 사진 한 장. 얼굴을 뒤로 한, 지금 생각하면 누드화의 모델 포즈? 피사체는 어머니? 그 반지, 보석 알이 큰 반지는 분명 어머니임을 알아보게 했다. 분명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다른 보통 어머니답지 않게 발이 넓었다. 어머니에게 화가 친구도 있었을까? 어린 마음에 화가 생각은 못했다. 예술적 시도라고 상상했다면 더 이해하기가 쉬웠을까? 분명 예술작품이었다! 사진을 누가 찍었을까? 그 의문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누가 찍었는지 모를 사진. 사진이 찬미하는 대상은 곧 나의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미움은 더욱 자라나기만 했다.


왜 지금 와요?

응, 조금 전에 나갔다.

미리 나갔다가 우리들보다 먼저 오지 왜. 왜 이제야 오느냐고, 이리 늦게!

몇 신데 그래? 무슨 일인데? 조금 전에 나갔다니까. 저녁들 잘 먹었지, 응?

저녁? 제때 밥이면 다야? 엄마가 날마다 늦게 오는 집이 어딨어! 놀다가!

다른 집 딸들도 이런다냐, 제 엄마한테. 이 쌀쌀아. 오빠동생들도 조용하고만.

다른 집은 딸들이 늦어 야단이지, 뭐 이런 집이 다 있어. 이렇게 사는 것 싫어.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할퀴어댔다. 어머니 나들이에 잔소리를 하는 딸. 어른들에게 말대꾸는 영 버릇없다는 사회에서, 아주 이상한 관계. 출구를 모를 악순환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러므로 온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우울한 세월이었다. 나는 내 삶이 정말로 싫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모른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존재하니까. 어머니는 발이 넓었다. - 아차, 이게 뭐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나는 왜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지? - 반대로 나는 사람들을 피하는 편이다. 내 결혼식에 온 수백 명 손님 중에 내 손님은 단 네 명이었으니, 한 신혼부부와 두 동창생. 나는 집에 집중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언젠가 딸에게 질책당하는 엄마가 되는 것은 싫었다. 어느 정도 성공했을까?



7시 10분 전.

내 눈은 벽시계로 간다. 어머니는 규칙적인 숨소리만으로 살아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과거형으로 말했던 죄책감에 떤다. 어머니는 무표정. 다행하게도 고통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간호사가 고무호스로 코로 죽을 집어넣는 순간마저도 아주 조용하다.

은근히 집 저녁 걱정이 인다.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고 아무런 준비도 안 해 놓았다. 휴대전화 벨 소리.


언니, 어머닌 어떠셔? 나 터미널에 도착했어. 나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 봐. 곧 병원이야.

응 그래, 뭐 아직은. 서둘지 마.

염려는. 다 왔다니까.

그래, 그럼 밤새 고생 하겠구나.

아니 걱정 마, 큰오빠도 올 거라 그러던걸. 



큰오빠도 올 거라니, 정말? 의아해 하면서 어머니를 바라본다. 오빠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을꼬. 병실 생활 7개월째를 접어들면서는 포기하신 줄 알았다. 적어도 말씀으로 그러셨다.


연락할까요? 

…….

연락할까요?

관 둬라.

연락해야죠?


묵묵히 고개만 가볍게 돌리시더란다, 동생 말이었다. 어머니는 오빠가 그 사건이래 모든 상황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줄 다 아시는 게다. 게다가 오뉴월 녹두 깝대기 터지듯 하니, 큰오빠에겐 사실 누가 말을 붙이지도 못한다, 하고 싶지도 않고.


오빠가 온다고?

아무튼 갈 시간이다. 나가려다 말고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또 시계를 본다. 아직 2, 3분이 남았다. 간호사가 그냥 가란다. 하긴 간호사 둘이 번갈아 붙어있다. 그걸 보면 위험하신 상황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막내가 곧 도착한다지 않은가. 


차로 향한다. 계기판에 표시등이 들어온다. - 기름이 바닥이다. 아차, 어제부터였지. 주유소까지 들리다 보니 마음이 더 바쁘다. 막내는 벌써 병원에서 전화다.

엄마 병실에 도착했어. 걱정 말고, 언니나 안심 해.

안심? 

최소한 아무도 없이 운명하시게 놔 둘 수는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 임종 자식이 효자다, 뭣보다 우선하는 효다. 유교에선 부모에 표시하는 최고의 존경이다. 관습이 그렇다. 어떤 탕자도 임종 시에는 용서된다. 아무튼 어머닌 숨을 규칙적으로 쉬고 계시는데. 큰 염려야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점심때부터는 삼키는 기능도 떨어졌다는 생각이 난다. 저녁식사는 호스로 직접 위에다 공급했지 않은가. 간호사는 그랬다, 호스공급은 필요하고 또 꼭 위험하지도 않다고. 그러고도 보통 몇 달을 가는 환자들도……. 왔다갔다 상념 속에 집에 이른다. 늦었다.



어머닌 참 안 좋으시네요. 하필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까지 들르느라고.

누가 늦었다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혼자 중얼거린다, 무언의 고발에 대한 보이지 않은 변명처럼. 그러면서 서둘러 쌀을 앉힌다. 불린 쌀이라 금방 끓어오르고, 뜸이 드는 동안 반찬들을 챙긴다. 김치만큼은 매번 새로 썬다. 간단하면서 전통적 맛내기 방식이다, 톡 쏘는 풍미를 살리려면. 또 그인 그래야 한 젓가락 먹을 것이다. 귀는 전화 쪽으로 향해 있다. 설마 하면서도.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따르릉. 차분하게 전화를 잡을 수가 없다. 갑작스럽게 종점에 다가왔다는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전화 쪽으로 내닫는다. 올 것이 왔단다. 기다리던 것이었을까? 희망 없는 싸움을 끝내는 것.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심각하게 아프셨다. 어머니는 그간 특별한 고통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기적이나 같죠, 의사들이 우릴 위로했다. 그렇다고 그건 어머니 병실을 나선지 겨우 30분만이라는 생각이 났다. 그 30분으로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놓쳤다. 제 식구 저녁식사 준비하느라. 말이나 되는 소린가?


니 언니는 참 쌀쌀해야.

불과 며칠 전 겨우 말하실 때 그러시더라는 동생의 말. 내가 늘 어머닐 비난만 했다는 말씀이시렸다. 그 말이 이젠 귀가 아니라 가슴에 박힌다. 쌀쌀함을 그만 둘 기회가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난 거기에 없었다.



다시 서둘러 사방에서 모여든 자식 손자들은 다들 놀라는 것 같았다.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회복불능 환자의 끝은 예견되던 것이었을 뿐인데, 아니면? 빠르건 조금 느리건 다가온 일. 그래도 놀라웠다. 세상에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 그것은 진정 회복불능의 손실이었다. 아무렇더라도 자식들을 믿어준 존재. 자식들을 어쩌면 과장해서 믿어준 존재. 쌀쌀맞은 놈도, 살가운 놈도, 배신 때린 놈까지도……. 어머니에게는 다 같이 가슴 아픈 암시였을 것이다. 부족한 부분만 보여서. 어머니가 무시하고 싶었던 부분까지를 더해서.

 

다행이다. 살갑지는 않아도 도리를 잘 알던 막내가 있어 임종을 지켰다니. 임종이라야 평화스러운 끝이란다, 말씀 한마디 없고 소리 한 토막 없이 그냥 끝.

숨 안 쉬시네요.

함께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말했는데, 정말 숨이 그치셨더란다. 어쩌면 단 한 마디도.

큰오빠 연락할까요? - 관 둬라.

며칠 전 그것이 마지막 대화셨다. 유언은 없었던 셈.


아니, 유언이 있었다, 오래 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큰살림을 정리하시던 무렵. 나는 그때 울고 또 울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새빨간 손톱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 돌아가셨다고 믿었다. 어머니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했다. 어머닌 아들들에겐 그때 벌써 상당한 유산을 분배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재산 - 상당한 큰 건물은 어머니 사후 전적으로 딸들 몫이라고 공언하셨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상황은 바뀌어 어머니는 건물을 남기시지 못했다. 대부금 상환 때문, 큰아들 때문에 건물은 넘어갔다. 어머니는 난처해하시는 것 같았다, 특히 딸들 앞에서는. 아들 딸 차별 않는 관대함을 노래를 하셨던 평상시의 유세를 못 떨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딸들이 아니라 정작 큰오빠가, 정확히는 큰며느리가 어머니가 재산 잃은 것에 분기탱천했다. 분명 딸들의 몫이라고 천명했던 건물이었지만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용서할 수도 용서되지도 않았을까. 어머니의 유지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자신의 몫이라고 기대했던 터여서? 웃겼다. 그렇게 어머니는 마지막 건물과 더불어 큰아들을 잃었다. 어머니에겐 마지막 몇 년은 행운이 저물어 갔다. 더구나 상상해 보라, 어머니가 가끔은 손수 밥을 지으셨으니! 단 몇 번이라도! 그렇지만 어머니는 결코 두부나 콩나물을 사러 나가지는 않았다, 결코. 그런 건 어머니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시길 잘 했다. 어차피 그렇게 어머니 나름의 자존심을 지니셨기를. 밖으로 향한 허영심이 어머니 몸속으로 들어가서 암세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화려했던 과거와 점차로 고갈되어가는 현재의 불협화음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분명한 것 하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큰오빠를 못 보고. 하지만 이제 장례절차를 생각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차가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문을 나선다. 아, 이젠 정말 끝이다. 다시금 아득하다. 이제는 세상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 이제 우리는 고아다. 쌀쌀맞아도, 배신 때려도 사랑해준 어머니가 없다. 다만 어머니의 미토콘드리아, 세포의 발전소나 같은 그것은 어머니를 사랑할 줄 몰랐던 딸에게도 남아서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가 사랑했던 큰아들에게서가 아니라, 그는 미토콘드리아를 나르는 딸의 계보가 아니니까.


그런데 어쩐다? 몸을 버리는 절차가 남았다. 우리는 갑론을박, 큰오빠에게 연락을 해? 말아? 누가 결정하는가? 작은 오빠 책임이야, 당연히. 원칙적으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 여부라는 단어는 어불성설이다. 만장일치로 알려야 한다는 쪽이었다. 우리 모두 선할 수도 악할 수도 다 가능하니까, 누군가가 흘렸다. 배신 때린 자식이라 해도 마지막 이별의 자리에서 용서를 빌 시간은 있어야 한다는 것.


온대?

글쎄, 일단 알리기는 했으니까.

전화를 받긴 했어?

그러게, 어떻게 어젠 전화를 받데.


소식 있어?

응, 온다고는.

언제?

글쎄, 오겠다고 했으니 오겠지.

설마 싶은데.

설마 안 올까.

다음 하루 종일 화제는 문제의 아들이 초상마당에 오는가 아닌가에 집중된다.


소식 있어?

응, 온다고 했다니까.

언제?

글쎄, 조카 말이 아버지 모시고 온다 했다니까.

어머닌 맏손자를 무척 좋아하셨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이렇다 할 아파트에 새시까지 새로이 해주셨다던 생각이 난다.


그럼 입관 시간을 미룰까?

어떻게 그래?

그래도 와서 어머니 얼굴도 못 보면?

그렇다고 입관 시간을?

하긴 상복을 입으려면 미룰 수도 없고.


얼떨결에 입관 시간이 닥쳤다. 곱게 화장하신 얼굴에 평소에 준비해둔 연분홍과 연하늘의 수의를 입으신 모습은 옛날 궁중의 여인 같았다. 관속으로 내려가기에는 아까운 모습이다, 잠을 자는 듯, 아름답기까지. - 이상하다. 나는 평생 한 번도 어머니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곧 몸이 관 속에 내려진다. 그리고는 못들이 박힌다. 정말 끝이다.


못을 다시 뽑을 수도 있는 거야? 그때 누군가 자신 없이 물었다. 

무슨 못?

아니, 입관 식을 해버려서. 나중에 어머닐 보겠다고 우기면?

글쎄 뭐.

오긴 올까?

온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말없이 그 애가 왜 그런 엉뚱한 질문을 했는가를 느꼈다. 상주가 오기 전에 입관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호통 칠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다들 슬슬 출입문 쪽을 힐끔거렸다. 그렇게 이틀째 하루가 저물었다.



다음날 아침, 발인 식.

장례행렬은 10시에 장례식장을 출발할 예정이다. 조객들로 북적대던 어제에 비해 텅 빈 공간에는 조용하다 못해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피한다.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아무도 어제의 그 질문을 꺼내는 사람은 없다. 둘째오빠가 여전히 두 줄짜리 완장을 여벌로 손에 들고 안절부절못한다. 여차하는 순간에 형의 팔에 끼울 태세다. 시계는 똑딱똑딱 잘도 간다.


종일 비가 내린다. 무심한 봄 녘. 여린 초록빛 너른 들판 한 구석에 두루마기 대신 허연 비닐 비옷들이 춤을 춘다.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그렇게 셋째 날 하루도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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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Three Days」, 『펜광주』 9호, 2011.12.12. 19-32, 3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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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1. 17. 21:27

그들의 고통과 우리들의 당혹감 - 서용좌, <배달민족> 
                               
                                                                                     장두영
        

 

서용좌의 중편 <배달민족>은 개인사적 고통이 민족사적 혹은 세계사적 고통과 맟닿아 있도록 조직되어 있어 고통의 무게가 육중하다. ‘아비 찾기’라는 전통적인 모티브를 활용하여 과거에서 현재에 걸쳐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굵직한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독일 남자와 한국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배요한의 아비 찾기와 배요한의 아버지 요하네스 베르너의 아비 찾기라는 두 개의 임무를 겹쳐 놓는 자리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배요한과 요하네스의 아비 찾기는 고스란히 배요한의 동생 배승한이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남긴 메모에 담기고, 형식상으로 서술자의 역할을 떠맡은 지방대 불문과 강사는 배승한의 메모를 받아 적은 필사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작가의 권위를 단순히 메모를 옮겨 적는 역할에만 충실한 필사자에게로 넘긴 마당에서 작품은 저자의 죽음을 외치던 롤랑 바르트를 연상하게 한다. 더욱이 배승한이 수집한 여러 인물의 회고와 기억의 파편들은 통해 20세기 독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산업화 이후의 한국 역사를 기록한다는 기획 역시 기억을 통한 역사의 구성이라는 포스트모던적인 발상을 따라가고 있다. 이것이 진리의 총체라는 권위적 언설 대신 개인적 기억의 단편들의 얽어놓은 과정에서 진실을 복원시키기 위해 한 발짝 다가서려는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 ‘배달민족’이라는 고릿적 냄새가 나는 표제와는 달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것을 관통하면서 흐르는 혈통에 대한 관념에 대한 통찰이 빛나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요하네스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가 유대인의 핏줄과 아리안 핏줄 사이의 흔적을 지우려던 모습에서 유럽 문명의 저변에 존재하던 인종적 편견을 건드리고 있다. 나치스 협력, 친미, 사회주의의 선택 등 요하네스의 아버지가 보여준 복잡한 행적을 통해서 독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펼쳐진다. 한편 배요한의 경우 배오한의 아버지 요하네스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독일 역사 속에 내재되어 있던 고통을 한국의 역사와 결부시키고 있다. 배요한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설정된 파독 노동자의 외화벌이는 곧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한 일종의 거울로 작용한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배요한의 부모들은 이제 이주노동자들을 수용하여 부리는 지위가 되었고, 과거의 유대인이나 한국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처지를 망각하게 되었다. 요하네스의 아버지, 요하네스, 배요한 세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지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여전히 유럽을 떠도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행적은 고스란히 아직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은 ‘배달민족’의 신화에 대해 의미심장한 문제 제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작품은 당혹감에서 시작하여 당혹감으로 끝난다. 문득 배승한이 보낸 메모들을 받게 된 ‘나’가 “그것을 머릿속에서 정렬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배승한은 어떠한 의도에서 메모 뭉치를 보냈을까. 당혹감에도 불구하도 ‘나’는 숙제를 시작한다. 메모가 하나씩 정리되는 동안 계속해서 당혹감은 밀려온다. 입양아로 여겨지던 배요한이 사실은 배승한의 친형이었다는 것을 예감한 배승한의 당혹감, 독일 혈통으로 알려졌던 요하네스의 아비가 유대혈통을 버리고 숨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요하네스의 당혹감, 그리고 배달민족이라는 정체성의 신회가 나치의 정통성으로의 강조와 닮아있다는 사실은 알게 된 독자들의 당혹감, 나아가 그러한 ‘상상된 공동체’를 향한 신화에 침윤되어 있던 우리들이 앞으로 받아들이게 될 이방인들에 대한 태도의 준비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 우리 스스로를 향한 당혹감 등이다. 근대적 분류 체계에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들의 관념에서 혈통 문제에 관한 그들의 고통이 너무나도 소홀히 취급되어왔음을,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고통으로만 남겨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느끼는 당혹감은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공백은 너무 길었다.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갑자기 전기가 나간 것처럼 내 손가락의 작동이 멈췄다. 애초에 이 기록은 뿌리 없는 나무에 물 주기였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구상도, 가닥도 없이. 흩어진 메모조각에서 무엇인가를 건져 올리기. 나는 무슨 알갱이를 향해서 이 종이부스러기를 헤집고 있었을까. 벌써 스산한 계절의 축축함이 벤다.(252면)

작품의 서술을 마무리하는 대목에 삽입된 ‘나’의 고백은 작품을 다 읽은 독자가 느끼는 당혹감과도 닮아 있다.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읽은 듯하면서도 한 편의 묵직한 역사서를 완독한 느낌이 곧 둔중한 무게로 머리 한 부분을 짓누른다. 기억의 파편을 모으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당혹감을 통해 목직한 여운을 감기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우리가 쉽게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던진 화두에 대해 명쾌한 답안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바람에 불과하다. 개인사적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민족사적, 세계사적 고통에 대한 이해로 발전될 수 있다는 ‘당혹감’을 선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였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한 당혹감은 곧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개인사적 고통을 집단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능숙한 필치에 감탄하게 된다.

................................................................................................

*『한국소설』 11월호 (통권 148호), 292~295,
                    장두영, 월평 : '고통의 상상력', 285~295 중에서.

* 장두영 : 2009년 <문학사상> 평론 부문 신인상 당선 등단.

           현재 서울대 기초교육원 전임대우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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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 20. 23:30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글을……

                                                                      
제7회 국제펜클럽광주문학상 수상소감

 

감사합니다.

소설가 경력도 일천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안겨주신 국제펜클럽광주광역시위원회 선후배 동료 문인들께서는 제가 연구실 떠나서 완전히 손 놓고 게으름 피울까봐서 글 더욱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이 상을 주신 것으로 압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되니까 두 개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 듭니다.

첫째는 왜 소설을 쓰느냐? 둘째는 어떤 소설을 쓰려느냐?

옛날부터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소설책이나 읽고 상상의 시계에 빠져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경계하는 것이었지요. 21세기 한국사회에서는 아예 언어예술인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뭣 하러, 왜 글을 쓰냐고? 저는 말과 글의 생명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선 우리 인간은 진실로 소통을 하지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각각의 자아들은 반드시 충돌하게 마련이니까요. 말에서 충돌은 더욱 심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동을 전하는 시문학이나, 지혜를 전하는 수필문학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저로서는 어려워서 쓸 수도 없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소설 쓴다고 하고, 소설도 못 쓰는 사람이 비평한다 하고, 비평도 못하는 사람이 교수한다고 - 조정래 선생이 저희 대학에 언제 강연 오셔서 그러시더군요.)

그래도 소설 쓰는 변명을 하자면, 소설가는 소설 속에 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소통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장치는 삶의 현장에서 비겁한 저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소설가가 쓰는 모든 것은 픽션이요 이미지이니까요.

인생은 이미지입니다. 이미지가 아니고서는 숨이 막혀 살아갈 수가 없지요.

그동안 “지식산업의 대열에서 살아남느라 정신에 대한 죄악이라고 홀대했던 이미지에 들려 외치고 싶었습니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어딘지 산만한듯하면서도 응집력을 지닌 소설쓰기에 몰입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차례입니다. 어떤 소설을 쓰려느냐? 제가 배운 것이, 아는 것이라고는 독문학 한 조각이니 거기서 인용하겠습니다. 카프카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것이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것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친구 오스카 폴라크에게)

 

인생은 어찌 보면 깁니다. 무려 7년/10년에 달하는 유충기를 보내고 태어나서 열흘 남짓 살다가 가는 매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평균연령 80은 29220, 근 3만 번의 낮과 밤을 사는 일이니 참 긴 세월입니다. 그 수많은 낮과 밤을 살아내는 일에서, 우리의 내면을 외면하고 산다면 그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진솔한 내면을 위하여, 내면에게만 토로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가는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을 즐거운 상상의 유희로 데려가건, 뼈저리는 고통의 면모를 들이밀건, 소설가의 선택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하나, 소설이, 문학이, 예술이 세상을 쥐고 흔드는 권력의 시녀가 되는 일은 거부합니다.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가 말했습니다. 대중에게는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고. 풍부한 물질과 매력적인 볼거리만 있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현대의 권력자들도 이것을 이용하고, 대중을 즐겁게 해줄 볼거리는 돈의 위력을 앞세운 연예와 스포츠를 망라합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한 채 즐거움에 빠진 대중은 비판의식이 없어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도 무관심합니다. 행여 문학이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일만은 삼가야 된다고 믿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입니다. 저는 시인이건 소설가건 작가가 특별히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문학의 본성이 죽지 않기 위해서 저항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문학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자를 위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결국은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문학의 본성입니다. 내면을 일깨운다는 것은 바로 타성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타성은 우리로 하여금 다수가 정의라고 믿게 하고 강자가 옳다고 고개 숙이게 하는 무서운 복병입니다. 이 타성의 벽을 깨고 진정 자신과 소통할 때, 문학은 희망하건대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국제펜클럽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상호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국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 그 반대 방향의 일 모두가 매우 보람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누군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류보편의 문화가치를 매개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매개보다는 창작이 생명입니다.

“저는 그동안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면서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쳤습니다.”

그런 순간이면 서툴더라도 제 글을 쓰면서 다시 살아나고자 했습니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연인, 내 나라 말, 내 글로 쓰는 소설이라는 이름의 추상적인 연인을 향해서 썼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하이에나가 표범이 되기는커녕, 이도 저도 아닌 박쥐신세임을 통감했을 때 “저는 저로서 살기를 망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장 정직한 일이 독문과 교수직을 그만 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 말고 온이 소설가로서의 첫 해, 이 뜻 깊은 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 자유인으로서의 첫해 농사는 외면상으로는 더할 수 없는 풍작입니다. 내면에서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너는 아직 너의 내면을 일깨워내지도 못했노라고!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글”을 쓰기엔 아직 멀었다고!
   이제 저에게 (겉으로는) 영광이자
(실제로는) 채찍인 이 상을 주신 국제펜클럽광주광역시위원회 선후배 동료 문인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글 더욱 열심히 쓰며 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1년 1월 20일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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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 6. 23:59

한국문인협회 - 우편투표용지를 발송해야하는 시기이다.

광주문인협회 - 총회와 차기 회장 선거가 있는 날이다.
                      두 후보는 다들 쟁쟁한 분이시라고 하고, 나랑은 일면식도 없는 점에서 같다.
                      고향의 문단에 무심하단 이야기를 면하고자 얼음 위를 달려갔다.
                      정해진 시간보다 약간 늦었을 뿐인데 들어설 틈이 없다.
                      열성으로 훈훈해서인지 난방이 없는 듯한 방인데 후덥지근했다.
                      총회가 끝나고 찬조연설, 후보연설, 찬조연설, 후보연설을 들었고,
                      우루루 몰려가는 줄에 애를 쓰고 섞이어 귀중한(?) 표를 행사했다.
                      끝까지 참여할 생각이었다면 뭣하러 서둘렀을까?  
                      집에 손이 계신다는 핑계로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왔다.
                      집에는 친정어머니의 백년손이 있다. 손이 따뜻한 저녁을 들었는지 확인하고
                      혼자서 늦은 저녁으로 라면을 먹었다.
                      2011년 1월 6일 목요일의 저녁풍경이었다.


          뒷소식 : 젊은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한다.            
                      요즈음의 추세는 어디서나 더 젊은 쪽이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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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0. 12. 21. 22:09

•• 믿거나 말거나, 참 뜻밖의 소식 -
   
무슨 문학상을 받게 되는 것이란다. 2010년도 OOO문학상.

12월 21일, 아침 일찍 운전석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나로서는 이른 시각에.
의례적인 검사이기는 하지만 병원행이었다. 병원행이라 일찍 나선 길이었다.
두번 연속 울린 전화가 미안한 맘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OOO 회장으로 있는 K교수님의 전언이었다.

아무튼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에 대해서.
아무튼 하이에나 짓 멈추기 위해 첫소설 내느라 미쳤던 것이 꼭 10년 전 그 겨울날이다.••
차가운 땅 속의 아버지, 병원의 어머니! 고집덩이 딸이 이젠 소설장이 맞나 봅니다.
상이든 질책이든 소설가로서 취급됨을 전제로 하니 기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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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0. 12. 9. 23:56

 

 



 

거울 앞에서 입 꼬리에 힘을 주어 웃음기를 흘려 본다. 몸과 맘이 수고로울 일을 앞에 두면, 집을 나서기 전에 꼭 거울을 본다. 아직 쓸쓸한 봄, 할아버님의 기제사가 마침 주말에 걸리다보니 여느 때보다는 맘 편하게 집을 나선다. 형님네 대문은 빼곡히 열려있고, 부엌 쪽에서는 벌써 생선 익어가는 냄새가 먼저 내달아와 코를 맞는다.


잘 계셨어요, 숙모님. 일찍 나선다는 것이 늘 늦고 마네요, 형님.

어서 손 씻고 와 앉소. 자네 형님만 뭔 죈가.

형님이 대꾸할 틈도 안 주시고 가닥을 잡으실 양이니, 오늘도 숙모님이 주인공이시다.


동서, 빨리 왔구먼. 오늘은 시간 넉넉하겠어.

고구마 색이 곱네요.

채반에 노랗게 익어있는 얇은 고구마 조각들이 내 손을 기다린다. 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 젖혀놓아도 수건 사이로 머리카락 올올이 기름 냄새로 범벅이 될 하루가 시작된다.


어디 쓰겄는가, 밀가루를 되직하게 하소, 뽀얗게 색 내려며는. 고구만가 호박인가 너무 노랗잖은가.

소생이 없어 늘 외로우신 숙모님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런 날이면 더 외로움을 타신다. 다행히 음식 솜씨며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단정한 맵시로 젊은 여자들을 누르신다. 형님의 입장에서는 어머님이 안계시고 보니 숙모님께 상의도 하고 도움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둘이서 조금 엇박자 느낌이 든다. 숙모님은 이말 저말을 섞어 하시고 형님은 그저 시늉만 대꾸를 한다.

식혜 솥 열어볼 때 되었네. 밥풀 서너 개 떴는가.

예.

이 꼬막은 씻은 건가 아닌가. 뻘이 그냥 붙어있네.

예.

그런데 참 늦네. 몇 시야, 지금. 여섯시가 되가는데 왜들 안 와?

이번엔 내가 놀란다. 아니 웬 여섯시 말씀을. 여기 아직 육전도 안 끝났습니다. 고추전쯤 마치고 점심 상 보잖아요. 아직 점심도 안 드시고 여섯시라뇨!

박실이는 또 안 오겄지? 숙모님은 엉뚱한 말씀으로 둘러대며 자리를 뜨신다.


형님, 오늘따라 왜 저러셔요? 이 제사 때면 애기씬 시어르신 일이 겹쳐서 언제나 시골에 가잖아요. 설마 다 아시면서.

아마 기다리는 사람 생각에 시계를 헛보신 게지.


그렇게 점심상을 차리고 치운다. 다시 번철이 열을 낸다. 벌써 두부 조각들이 기름에 지글거리고 있다. 점심 후로는 숙모님이 속이 불편하시다고 소파에 누워 계시니 우리만의 부엌에 능률이 더 나는 느낌이다. 실제로 거들어주는 손이 빠졌는데도.


갑작스레 집안에 활기가 차며 숙모님이 몸으로도 부산해지신다. 드디어 서울 사는 시동생 내외가 들어선 까닭이다. 오매, 우리 원장님 오느라 애썼네. 차는 안 막혔나? 답은 거의 듣지 않으시고 바쁘시다. 술참 때가 겨웠으니 시간이 애매하지만 일단 밥상이다. 오래 서울 물 먹다보면 냄새가 너무 진하다고 할 진짜 굴비하며, 홍어, 토속적 음식이 든 접시들로 손이 바쁘다. 부엌은 이제부터는 완전히 조용할 터다. 원장조카 턱 앞에서 음식 먹이는 맛에 푹 빠지신 동안. 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진설 시간이 될 때까지다. 해마다 기제사 때 되풀이 되는 훈계가 시작되면, 할 말은 아니지만 숙모님 입엔 작은 게거품이 돋는다. 게거품은 싸울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안다. 신바람이 나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진설을 위해서, 심지어 상에 올리는 순서까지 정하시는데 어쩌랴. 그것이 이 근년에는 순서가 조금씩 섞이는데, 그걸 종잡을 수가 없다. 좀 있으면 핀잔의 시선이 전자빔처럼 따갑게 공간을 가를 것이다.


아니, 그런데 큰 변형이 생긴다. 오늘따라 진설 시간이 되어서도 원장조카 시선만 붙잡고 계시는 것이 이상 일이다. 제기들이 죄 닦이어 줄을 서 있어도 소용이 없다. 고개는 아예 비뚜름히 고정되어 있다. ‘한 시 오 분 전’이란 별명의 여학교 때 선생님 생각이 난다. 다른 점이라면 그 선생님은 ‘한 시 오 분’과 ‘오 분 전’을 가끔 바꾸셨던 것이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조카 쪽으로 굳은 고개. 주름만 빼면 표정이랑은 영락없이 연인을 바라보는 드라마 주인공의 모습이다. 숙모님이 오 분 전이면 조카는 계속 오 분을 유지해야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라 그것이 썩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뉴스 시간이라도 되면 좋겠다 싶다. 


형님이 그냥 알아서 하세요. 조금 아까부터 부엌으로 섞인 막내동서가 조바심을 낸다.

숙모니임, 저희들이 대충 올려 보아요? 기다리다 못해 형님이 묻는다.

대충이 무에야. 자네들 할아버님 들으실라. 시간이 이르잖아.


서너 시간 서울사람 곁에 앉아계시더니만 신기하게도 서울 말씨에 가까운 억양이 나오신다. 심지어 모음들이 바뀐다. ‘이거 묵어보소’ 라고 할 계제면 ‘요거 먹어 봐’가 된다. 입술을 동그랗게 하면 나이 불구하고 조금 더 귀엽다. ‘응’ 할 자리에는 ‘잉’이라 하시며 웃음기를 흘린다. 원순모음과 평순모음이 둘 다 귀여운데 사용되니 이상하다. 이 말은 순전히 내 직업병에서 온다. 국어선생 기질이 어디 가랴.


신기하셔. 형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들으시려고요.

하긴. 귀도 참 밝으시니 조심하자.

형님 그런데 요즈음 좀 힘드신 일 있어요?

뭐 그냥. 사는 것이 쇼 같아서.

아무 일 없어 보이는 안정감을 특징으로 하는 형님의 입에서 조금 놀라운 단어가 튀어 나온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왠지 조금 뜨끔하다.

아니 내 말은 누구나. 조금은 억지로 참기도 하고.

그럼 속내 다 내놓고서야 어떻게 매끄럽나요? 기름칠을 좀 하는 거죠. 입가에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여기는 시댁이다. 불편해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 사이.

그 정도가 아니라 내 말은. 숙모님 어제 오셨잖은가. 여전히 사뿐 걸음이시긴 한데, 뭔가 조금. 뭐라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암튼 근년 들어 느닷없이 가리는 음식들 땜에 옆에서 손을 못 쓰니 참.

거야, 티비가 범인이죠 뭐. 소가 농약 묻은 풀을 뜯어 먹는다니 우유 못 마셔, 허리둘레를 줄여야, 탄수화물을 줄여야 장수한다는 뉴스에 떡도 뭣도 못 먹고. 막내는 범인을 따로 정한다.

하긴, 내가 괜한 걱정이네. 총하시니까 뉴스 따라 사시지.


찜솥이다 냄비들이다 번철 가에서 눈을 들어 잠시 숨을 쉰다는 게 어째 말들이 샌다. 숙모님 쪽에선 반응이 없다. 막무가내로 당신 조카만 올려다보고 계신다. 살짝 미소 짓다가 조금 찡그리다가. 몇 미터 거리에서, 식당과 거실 사이 커튼 사이로 건너다보니 표정일랑은 그대로 영화다. 디카든 셀카든 등장해야할 판이다.


평소에도 저러세요?

동서는 새삼. 당신 감정에 솔직하신 거지. 지난번엔 며칠 화장실 출입 못한다고 자네한테 전화하셨다며?

거야 내 차로 움직이실까 해서……. 

그래도 오밤중에는 심하시지.

겁을 내셨더라고요, 응급실 가야하는가 싶어서. 가진 않았고요.

겁이란 것이 무서움일까 욕심일까? 암튼 오늘은 우리끼리 그냥 해보세.


사실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조율시이로 시작해 첫째 줄을 다 놓아도 여전히 꼼작 않고 조카만 쳐다보시다니. 시동생의 입장에선 숨이 막힐 지경이라. 손을 끌로 내려와서 진설을 도와달라고 하자 숙모님은 갑자기 깨어나신 듯하다.


감이 곶감이제 뭣들 하는가?

요즘 세상엔 시절이 좋아 감과 곶감이 늘 함께 있다 보니 문제다. 평상시에 숙모는 감이 있어도 곶감자리 다음에 반드시 배를 올려 ‘법에 맞게’ 하라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곶감 다음이 나란히 감이라신다.

어머나, 생선 배들이 왜 이쪽인가? 거 산적이 빠졌구먼, 마저 좀 하지. 어머나, 꼬막 색은 왜 이래, 새꼬막을 샀던가?

산적은 닭찜이 있다고 말라시고, 꼬막 껍질은 덜 깨끗하다고 몇 번을 물리셨잖아요.

어머나, 오늘 내가 그랬어? 내가 요새 이러네. 통 기억이 읎어서는.

거야 저희들도 그럽니다. 숙모님 건강 염려는 마세요. 아까 보니 손도 따뜻하시고, 혈색도 아주 좋으시고요.


혈색 - 그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시동생의 입에서 의사의 전문용어로 혈색이란 말이 튀어 나오자 그것이 울타리를 넘는 신호였나 보다.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키시다 말고 숙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눈을 이상스레 치뜨시는 듯, 새침해져 말없이 작은 방으로 들어가신다. 우리는 또 어린양이 시작되셨나 보다 하는 생각에 별 신경을 안 쓴다. 무엇보다 나머지 진설을 마쳐야 하고, 우선이라도 부엌 정리를 하고 또 저녁 밥상 차릴 준비를 해야 하니까. 우리 집은 제사 중에 진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다 진설해놓고 진찬 때는 메만 올린다. 그리고 초헌 절차가 끝나면 그대로 음식을 드시리라는 여유 시간에 자손들도 저녁을 먹는다.


진지 드시지요.

식사들 하세요.

거실에 큰상 펴고 남정네들이, 부엌 식탁에는 여자들이 이런저런 의자들 보태서 둘러 끼어 앉는다. 숙모님은 어른대접으로 거실 상에 자리한다. 늘 시동생 옆자리다. 아니면 반찬 얹어주시느라 다른 사람들이 수저질하기가 불편할 정도가 되니까. 요거 맛있어, 요거도. 그런데 안 나오신다.


자네가 좀.

형님의 말 따라 숙모님 모시러 들어가 보니 그만 말이 안 나온다. 당신의 빨간 색 바바리를 내려놓고 - 원래 놀라운 옷 치례를 하신다. - 웬 잔잔한 꽃무늬치마에 발을 꿰려는 몸짓으로 버둥거리고 계시니. 형님이 오늘 무색으로 갈아입느라고 벗어 둔 모양인데.


형님, 아니 원장님 좀 와보세요.

급히 물러난 나는 우선 시동생을 불렀고, 밥상에 막 앉아있던 사람들이 방으로 내달으려 하자 시숙이 말렸다. 뭐 별일이시겠나. 다들 저녁을 먹어야 마저 제사를 지내지. 원장도 식사나 하고 들어가 보소.


숙모님은 완전히 정신을 놓으신 것 같다.

이그, 이그 내 농이 어디 간 거야? 난데없이 애들 옷장을 보며 탓을 하신다. 앉은걸음으로 농을 미는 시늉을 하니 겁이 날밖에.

숙모님 농이라뇨. 여기 애들 오면 쓰는 방이잖아요. 숙모님 댁 아니고, 저희 집.

자네네? 내가 그럼 왜 왔어?

할아버님 기일에 오셨잖아요.

그랬어? 그런데 왜 안와? 우리 김 원장 왜 안와?

다시 또 시작이시다. 거의 성화다. 그렇게 몇 번씩을 묻는데 시동생이 들어와 우릴 내보낸다.

걱정 마시고 우선 식사들…….


그렇게 성급해진 마음으로 저녁을 해치우는 동안 귀는 거실로 쏠린다. 물소리 그릇들 소리 사이로 남정네들 이야기가 심상찮게 건너온다. 시동생이 서둘러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일어서는 모양새를 보니 일단 응급실로 가야한다고 결정하나보다. 하필 제삿날 숙모님이 이러셔서 좀 뭣하지만 별 수 있나, 뭐 그런 논리인가 보다. 그리고 산 사람이 우선인 것은 맞다. 숙모님 입장으로는 시아버님 기일에 무슨 동티인가. 어쨌거나 산 며느리가 우선이다. 시동생이 숙모님을 모시고 응급실 행이다. 이곳 의대 출신이라 병원이야 훤하겠지만, 노인 모시고 혼자서는 힘들 것이니 부부동반이다.


크게 도움이 안 되기는 동서가 나보다 더하다. 설거지는 늘 내 차례다. 막내동서가 서열 잘 안 지키는 데 대해서는 숙모님이 이상하게 너그러우시다. 여전히 부엌에서 물소리 그릇소리로 실제인가 이명인가 혼동하고 있을 때 전화소리가 크게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라 더 크게 들리는가. 시숙이 전화 받는 음성만 들어도 일이 예상보다 안 좋은 것 같았다.


거 병원 상황이 썩 안 좋다네. 엠알아이도 해야 할 거라요. 원장 네는 오늘 못 올라가려나 보오.

그건 잘 되었네요. 한 밤중에 차 몰고 가느니.

당신도 참. 시동생 걱정하길 이녁 애들 걱정 같소.

거야 누구라도 밤운전은 좀.


자시에 시작한다는 제사지만, 어머님 살아계실 때 벌써 일찍 차리기 시작한 내력이다. 숭늉이 올라간 지도 한참이고 자정이 되기 전에 벌써 철상이다. 사실 시동생이 의사로서 의심하는 대로 심각한 그 증세의 초기라면 큰일이다. 요조숙녀의 경우에 치매 가능성이 더 많다던 설이 맞나? 그런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함부로 내던져지는 그릇들만 불쌍타. 수저 젓가락이며 국자 등 쇠붙이들을 따로 걷어 내다말고, 컵이나 잔들은 왼쪽으로, 오른 쪽은 사기그릇이라는 규칙도 오늘따라 우왕좌왕이다.


저 여보, 그런대로 일단 퇴원하실 것 같다는 군요. 그러니까…….

다시 시숙의 전갈에 형님은 시동생 내외까지 재울 잠자리 준비에 정신이 없고, 나는 한없는 그릇과 씨름한다. 손아래 동서는 이 대단원이 끝날 즈음에나 숙모님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나머지는 나중에 형님에게 들은 대로다. 밤이 늦었다고 형님이 자꾸 밀어내는 바람에 병원 간 사람들을 채 기다리지 않고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밤으로 일단 퇴원은 하셨단다. 입원실이 마땅찮고, 또 응급상황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분명 뇌파에 뭔가는 있더란다. 그래서 숙모님은 김 원장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서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는 거란다. 형님은 마리오네트마냥 김 원장이 김 원장 친구에게 가라는 대로, 김 원장 친구가 또 어디로 가라는 대로 여차 여차 날을 받아서 숙모님을 모시고 가면 되는 거란다.


*


숙모님이 나흘 밤을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그곳을 찾을 시간이 절대로 없었다. 금요일엔 잠시 시간이 났지만 숙모님 핸드폰 구입을 내가 맡아서 그 일로 시간이 빠듯했다. 토요일이 되어서야 면회시간 맞춰 찾아간 나에게 환자의 첫마디는 완강하시다.


이 바보들, 더러운 것들과 여기서 못 지내.

그렇게 까진 예상을 못했던 터라 말문이 막힌다.

자네들 귀찮게 안할 것이니 나 여기서 나가게 해줘. 내나 같이 말하다가 ‘당신 누구요’ 그러는 바보가 없나, 밥 먹다 토하고, 기저귀에…….


우선 나는 핸드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시동생과 통화하시라고 핸드폰을 건넨다. 1번 하나만 누르시면 시숙, 2번은…….

그러는 순간 내 핸드폰이 울리더니 시동생이다. 여기 숙모님, 마침 김 원장이네요.


전화를 바꿔드리고 나니 머리가 어지럽다. 목소리를 금세 바꿔서 저리 나긋나긋 통화하는 숙모님은 멀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쩌면 이것도 내 의무일까. 시동생이기 전에 의사인데, 의사에겐 그러니까 실상을 말해주어야 한다. 숙모님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첫째, 너무도 깔끔하시다. 둘째, 우리들 모두 생활에 균형이 무너진다. 요 며칠 사이 형님은 숙모님이 평소에 드시던 약 갖다드리랴, 다음날은 성당의 월보 갖다드리랴 정신없었을 것이다. 왜 한꺼번에 부탁을 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어렴풋이 안다. 그것이 숙모님의 방식이다. 이태 전에도 어지럽고 몸이 가라앉는다고 요양병원에 한 스무날 계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날마다 무슨 핑계로 사람들 오게 하시고, 병실 내에서 공주다 각시다 하는 별명을 들어가며 사뿐 걸음으로 병원생활을 즐기셨다. 누군가 해온 음식을 다음 찾아온 누군가에게 자랑하시며 나누어 드시면서. 그러니까 장기입원으로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풀죽어있는 다른 할머니들을 더 풀죽이면서 숙모님은 기세가 살아나셨다.


세상의 기운은 온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에겐 모자라다. 기운을 돈이나 권력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에겐 모자라다. 욕심 중에 기운 욕심이 제일 큰 욕심 같기도 하다. 호주에선가 인류의 수명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수명에도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고 하더니. 하지만 퇴원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비겁하게도 의무를 접는다. 아예 둘째네 의견은 없는 편이 낫다. 애들 아버지가 일 년이면 파견근무 나간 날이 더 길기 때문이다. 또 집안 장손과 의사의 결정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몇 달이 흐른 지금 이 유난한 더위 속에서 숙모님은 어떻게 사시는가. 심기증이라고 하는, 쉬운 말로 건강염려증이라는 병 때문만으로 저리 되신 양반. 병이 아니기에 약도 없는, 아프지 않기 때문에 낫지도 않는 병, 마음의 병. 거식증에 가깝게 몸을 말려가며 어린양이 조금 과했던 숙모님. 십여 년 전과 비교하면 20 킬로그램은 족히 줄었을 몸무게가 더 줄었을까 무섭다.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진짜 의사들에게 ‘걸려서’ 환자복을 입고 지내노라면, 옷맵시도 음식 솜씨도 다 무슨 소용인가. 그 ‘더러운’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되면 숙모님의 어린양은 과녁을 빗맞힌 셈이다.


다 저녁에 전화다.

낼 숙모님 모시고 나와서 계곡에나 잠깐 가볼까 하는데 자네 시간이…….

예, 그러죠. 아직 방학이니까요. 수박이나 미리…….

준비는 되었고. 쇼는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녀.

수더분하기만 한 형님이 전화기를 놓으며 흘리는 말에 흠칫 놀란다.


광주문학 2010겨울호, 186-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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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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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0. 8. 15. 23:58

병든 고향

 

 아따 거 뉴스 한번 징허데.

징헌 뉴스 한 두 번가.

아 거 즈 각시 죽이고 목매단 놈 말여.

그런 놈 한 둘가.

그래도 이거는 참 험채, 으째 그랄 수가. 친딸 아니던가, 친딸. 친딸을 그래놓고 형살고 나와서는 각시를 차로 밀어?

무슨 일인데들 그러우?


마침내 미아리가 나설 때까지 공능과 월곡 두 여자가 뉴스가지고 죽일 놈 살릴 놈 재판을 한다. 이 청소아줌마들이 잠시 만나는 것은 점심시간이 고작이다. 지하 4층, 그것도 계단 아래. 퀴퀴한 냄새. 바닥은 물이 듬성듬성 고여 있다. 하지만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한 귀퉁이에 이불을 괴어놓았다가, 지난 번 대청소 때 어느 방에선가 내다버린 소파를 가져다 놓았으니 지금은 부러울 게 없다. 이곳은 대학교 평생대학원 건물. 누가 밖에서 들여다본다면 떡 하니 ‘접근엄금’이라는 푯말이 적힌 전기실 맞은편 이 계단아래가 섬뜩하겠지만 대순가.


어마 저거 또 쥐 아이가?

설마, 요샌 아니드만.

나가 그라므 헛소리라?

아니 뭐 헛소리라니. 그냥 당신 겁이 안 많소! 각시 죽인 놈 야그도 벌벌 떨고…….

그기사 암데 가치도 없는 거라서리.


거야 공능이 이해해요, 월곡 저이가 남정네 얘기람 원래……. 미아리가 끼어들어서야 둘은 입을 다물고 김치를 깨문다. 총각김치는 소파 아래 넣어둔 통속에서 익다 못해 쉰내가 나지만 맛있다.


요건 이래 뵈도 중국산 김친 아닌기라.

당신 어깨고 허리고 아파 죽겠다면서도 김친 꼭 해먹나 봐.

그거라도 해 줘야지 어메가 어디 해주는 거이 있어야 말제.

우린 덕분에 돈 안들이고도 웬만한 식당밥보단 낫게 묵네.

그럼 우리가 단돈 86만원 월급 챙기며 식당밥 묵겄어, 미쳤제.


다시 숨을 죽이고 사각사각 총각무우 깨무는 소리만 울려퍼지는 사이 월곡동아줌마는 눈을 감는다. 미쳤제, 하모 미쳤제. 결혼식을 해준다니까 미쳤었제.


친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는 연속극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자리가 국군이었는지 도망친 인민군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 많았다는 피난민 중 하나였는지 가르쳐줄 수 있기도 전에 어머니를 잃기도 하니까. 그렇게 자란 여자애는 더러 밥이다. 남들의 밥이자, 그것이 내 밥이었다. 한 물 두 물 갔을 때서야 뜻밖에 배가 불러왔지만, 반가움 반. 미래가 깜깜한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이었을까? 이리 키울 거라면 말이다.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던 나날. 정말 상처한 사람이 정말 구원처럼 다가왔었다. 처음으로 들어 앉아 살림이라고 차렸고, 처음으로 따뜻한 나날이었다. 따뜻한, 멍청한 나날은 짧게 끝났다. 무섭게 끝났다. 못된 의붓아비는 연속극 말고도 널렸다. 점잖게 생겨도 소용없다. 악마는 원래 여러 얼굴인 것을. 코앞의 홍당무에 팔렸던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세상 모든 귀신들에게 빌어서 그날 이전으로 땅덩어리를 돌려놓을 수는 없을지. 밤이면 밤마다 하도 용을 쓰다가 그것이 빠지고 말았다. 그것이 빠진 여자들은 원통한 여자들이다. 그것이 빠져도 내 딸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내사 외롭다 못해 불행을 자초했건만, 내 딸은 어밀 두고서도 요모양이라니. 죄인 어미한테 해죽이 웃으려고 애쓰며 시들어가는 내 딸을 어쩔꼬. 딸 데리고 시집가는 죽일 년! 딸 놓아두고 죽을 수도 없는 죽일 년!


고향을 멀리 떠나왔음 머하노.

밥 묵다말고 갑재기 무슨 소리요?

게서 고향 이야기가 왜 나와, 누구 울리고 싶으우?

고향이 어데면 머고. 그래, 고향이 머라.

......................................................

2010 <흐름 위에 멈춰 선 시간>  한국여성문학인회 6.25 60주년 기념 특집, 246-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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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0. 5. 25. 12:21
정체성


 

벌써 이태전인가. 그해 겨울에는 제법 매서운 날씨 덕이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찾아든 손님들이 괜찮았다. 코앞에 닥친 선거도 뭔가 흥분과 기대와 어순선함으로 발길들을 부산하게 했을 것이다. 선거 담엔 다음대로.


그날도 점심이 약간 겨워서 대처에서 왔음직한 여자들 일행이 들었다. 다섯이서 도착하는 모양새가 차 한 대를 꽉 채워서 나들이 나온 상이었다. 홀에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내실로 안내하고 나오려니 신발들에 눈이 갔다. 점심에 몰려다니는 여자들이 어디 한 둘이 오는가만, 여자들 신발을 보면 대개 부류를 안다. 여자들은 크게 두 부류다. 오자마자 사이다 한 병 안 시키고 냅다 삶은 꼬막부터 시켜내다 까먹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제법 맥주부터 시끌벅적하게 시키는 여자들이다. 처음 여자들이 벗어 놓고 들어간 신발들은 보통 구두인데 비해, 나중 여자들은 여름 겨울 없이 발목까지 올라온 구두들을 신고 다닌다. 보통 신발의 여자들은 입성도 수수한 편이고, 발목구두를 신고 다니는 여자들은 줄줄이 화려한 안경테에 렌즈에도 색을 깐 안경들을 쓰고 다닌다.

물론 꼬막밥장사로 살아가는 나로선 어느 쪽 할 것 없이 반가운 돈줄들이다. 술을 시킨대야 그저 그런 정도, 반찬만 더 주문해대는 여자들 손님이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내겐 여자들 손님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근동에서 나는 유자다 모과다 하는 것들을 설탕에 재워서 파는 부수입으로도 한 몫 하기 때문이다. 식사 후에 한 잔씩 돌리면, 잘 나가는 날엔 한 상 손님 중에서 두어 명은 뭔가를 사들고 간다. 근년에는 집에서 손가는 일들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식당에 왔다가 사가는 여자들이 늘어 그 수입이 짭짤한 편이다. 봄에 재워둔 매실로는 진짜 한 몫 건진다. 또 음식에 단맛을 내기 위해 매실엑기스를 당분 대신 사용한다는 입소문 때문에 텔레비전 방송에 두 번이나 뽑혔고, 방송 한 번 나갔다 하면 뜨는 것이 우리 밥장사들 세계다.

그날 팀은 보통 구두와 발목구두가 셋과 둘로 섞이어 있었다. 얼핏 보아도 둘은 입성이 화려하고 나머진 수수한 모양새였다. 그렇게 되면 사이다 한 병 안 시키고 냅다 꼬막부터 까먹을 부류일지 아닐지 순간 점이 안 찍힌다. 그런데 꼬막부터다. 그렇게 삶은 꼬막을 통째로 까먹는 여자들에게 그다음 정해진 전채로 매생이전에 곁들여 꼬막전을 내가면 풍경이 우스워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사실 내가 밥장사를 하긴 하지만 삶아 까먹는 꼬막하고 꼬막전하고는 맞지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좋아하고, 또 그만그만한 식당들에서 거기까지는 정해진 메뉴인걸. 우리 세계에서 승부수라면 첫째가 꼬막 맛이다. 그 다음이 밥반찬인데, 놀라운 말이겠지만 내가 김치를 담그지 않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저 맛있게들 먹는 입이 어떻게 찌그러들지. 하지만 뭔 수로 중국김치 써대는 식당하고 경쟁해서 밥을 벌어먹는단 말인가.


아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할 판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보통과 멋쟁이가 섞여 내실에 든 여자들이 중국김치도 속 모르고 맛있다며 밥을 다 먹었다. 거기까진 남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식후엔 뜨거운 맹물을 달라고 했다. 유자차나 모과차 대신에 그냥 물만 달라는 것이 특이했다. 시간이 좀 되었는지 홀에나 다른 방에는 밥상들이 다 끝난 참이었다. 그래서 물주전자를 들고 간 김에 나도 내실 한쪽에 주저앉았다. 가져온 보자기를 푸는 걸 보니 찻그릇에 찻주전자까지 꺼내놓고 호사를 하는데, 그때부턴 사람들이 좀 달라 보였다. 공짜로 주는 좋은 유자차를 마다는 것이 우선 그랬고, 아무튼 주전자에 끓는 맹물을 붓더니 헹궈서 다시 버리고 하는 품이 일 없는 여자들인가 싶기도 했다. 호사를 하려거든 어디 호텔 비싼 식사나 먹으러 갈 것이지, 밥은 이런 데 와서 겨우 꼬막정식 시켜먹고는 뭔 호산가. 한 여자가 물을 보물모양 여기다 저기다 부었다 덜었다 하는 통에 다른 여자들은 다 그 모양새를 따라 보느라 조용하다. 찻잔이래야 술잔만 한 크기다. 그 잔에 보약처럼 물을 조심조심 따르더니, 한적한 시간인줄 알았는지 나더러도 앉아 함께 차를 마시잔다. 잔이 모자라는 듯, 또 모양이 별 것도 아닌 성 싶어서 복분자회사에서 선전용으로 가져다 놓은 술잔을 가지고 가니까 비슷한 찻잔이 되었다. 하긴 여자들이 칭찬해 마지않던 원래의 찻잔들과 그 찻주전자까지도 여자들 중 하나가 직접 구웠다니 보통내기들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장롱 옆 한쪽으로 벗어둔, 그저 그렇게 보였던 반코트가 실은 털을 깍은 밍크쯤으로 보였다. 비싼 밍크의 털을 왜 깎아서 버리는지는 몰라도 깎은 밍크털이 더 비싸다는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러나 또 어떤 여자의 코트는 너무나도 평범한 모직으로, 고등학교 다니는 내 딸애 거나 비슷해 보일 지경. 그러니까 돈들이 달라 보였다. 또 돈들이 같은 여자들끼리만 다니라는 법도 없으니까.


더는 궁리할 것도 없이 차나 한 잔 얻어 마시려니 심심해졌다. 손님들이야 점심장사로는 벌써 파장이고 주방아짐이 있으니 나 볼 일로는 없을 것이라. 가만히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마침 증권뉴스가 나온다.

오메 쬐끔 다시 올랐네.

무심코 한 말에서 꼬투리를 잡혔다. 한 여자가 따라 붙었다. 아주머니 증권 하시는가 보네요. 잘 하세요?

잘 한다기 보담. 아따, 저 OO카드가 OOO카드 아니요. 그래서 샀던 것인디.

뭔 말씀이오? 거 당……. 

쉿, 입 밖에 낼 말이 있지. 암튼, 그걸 어찌 알며. 아니 그거 참말이래요?

우린 모르지요. 그렇다고들 허니께. 아니 내가 뭐 어디서 들은 풍월이지라.

큰일 날 소리요. 이 세상은 동영상에 나온 것도 아니라면 아닌데. 아줌마, 그런 소리 썸뻑썸뻑 하지 마세요.

갑자기 다른 여자가 나를 향했다. 주식이요? 돈 놓고 돈 먹기를 하신단 말요? 주식에서 아주머니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것 아니요. 거기다 중간 구전 챙기는 증권회사들이 저리들 잘 먹고살고 있으니, 결국 주식하는 사람들이 증권회사 먹이죠. 어떻게 주식해서 돈을 벌어요? 번 것은 순간, 잃을 때가 더 많은 것이 답이요.

나는 머쓱한데, 그러자 갑자기 여러 소리들이 섞였다. 차만 점잖게들 마셔서 조금 다른 줄 알았지만, 말들도 달랐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처음 여자, 그러니까 둥근 머리가 말했다. 지금 주식시장 자체를 원론적으로 말하긴 무리다, 참아라. 두 번째 여자, 물고기 눈이 나무라듯 계속한다. 저 아주머니 같은 경우 그러니까 거기다 찍는 거야. 그쪽 주식 샀으니 함께 부자라도 될 것이다 싶어서.

또 다른 여자, 안경이다. 그러게. 어찌 거의 다 들여다보이는 진실을 못 본 척 은폐하고 거기다 투표를 몰아주는 국민이라니 대운하도 뭔가 신선한 것처럼 사람을 홀린 것이야.

찾잔 가져온 여자가 말린다. 그건 좀 심한 말이…….

안경이 고집한다. 심하대도 사실이야. 인간은 자연을 너무나 학대하고 있어. 유용성이라고 해도 그래. 전국이 일일생활권인데 물류 운운하는 운하는 낡아도 한참 낡은 꿈같은 이야기지. 지금 옛날 뱃길 복원해서 풍류 즐길 때냐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서. 우리나라 땅 어디에서도 시간 남짓 운전하면 바다 아냐?

다시 찻잔주인이다. 참아, 정치는 좀. 바다……. 그래 이 바다를 어쩐다니? 그때 안면도 우리 함께 갔었지? 거기서 거긴데.

이제 화제는 그 무서운 태안사고 쪽으로 옮겼다. 사실 태안 기름이 여기 남녘까지 내려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서안으로는 벌써 어디까지 내려왔다지 않은가. 우리 꼬막장사도 문제가 있긴 있을 것이다. 귀가 더 쫑긋 해졌다.

둥글이 여자다. 그래, 그 긴 해안들이 그렇게 몰살했으니, 어떻게 말로 다 해.

순한 눈에 조용하던 마지막 여자까지 거든다. 결국 자원봉사 팀에 못 끼어본 우리가 뭔 말을 해.

둥글이다. 사실, 집 팽개쳐놓고 나설 상황들은 안 되지.

물고기 눈이다. 1박 2일쯤은 문제없던 것 아냐? 안면도 여행엔 다들 갈 수 있었잖아.

찻잔이다. 그때도 다 쉽진 않았지. 예정된 것이라서, 또 안면도란 새로운 고장에 대한 관심에 무진 애들을 써서 시간들을 맞춘 것 뿐.

둥글이다. 뭐야, 넌 그럼 안면도 여행갈 땐 잘 가고 태안 방제작업 안 따라나섰다고 우릴 나무라는 거야?

물고기다. 나무라기는. 그냥 사람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나부터 이 겨울바람에 게 가서 뭔가 하련단 말이 안 나오지. 우리가 젊기를 하냐! 그래 결국 거기 현지까지 어떤 경로로든 자원봉사 떠난 사람들은 존경 받아야 된다는 거지.

안경인가. 아니 글쎄, 이런다고 뭔 수가 있어. 누가 들을까 말인데, 난 딴 걱정이더라. 그 기름 묻은 부직포들은 어디로 간대냐?


말들을 하는 것이 남편이다 시댁식구들이다 흉보고 까부는 여자들은 아닌데, 어쨌거나 무슨 말들이 좀 무겁다 싶었다. 돈벌이에도 관심이 없는지 원. 주식투자다 부동산투자다 안하는 여자들이 어디 있다고. 아니면 통 크게 다들 해놓고 딴소리들인지 원. 어쨌거나 차 얻어 마시며 뭔 말이라도 들어볼 말이긴 했다.


안경: 너희 《불편한 진실》 혹시들 봤지? 나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물고기: 진실이야 원래 불편한 게 더…….

안경: 그런 게 아니라, 환경 이야기야. 거기 앨 고어 있잖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족 정치인이 아니더라고. 원래 학생 때부터 환경론자였고, 그러니 그런 영화에 나섰겠지. 아무튼 근년에 킬리만자로나 알프스 어딘가 빙하와 만년설이 엄청 녹아내린 이유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거야 만날 들은 소리지. 그런데 온난화란 게 말뿐 아니라 그 진행 속도가 심각하다는 거야. 인간의 소비행태가 CO₂를 증가시켜 북극의 빙하를 1년에 1%씩 인가 녹여내는데, 20년 내에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의 대도시 등 해변도시들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어쩜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거야.

찻잔: 설마…….

안경: 설마가 사람 잡지. 오늘 이렇게 모처럼 잘 먹고 여유를 즐긴다만, 우린 사실 날마다 샤워도 해선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어. 운동해서 죽어라 땀 빼고 씻고. 개인적으로는 무병장수하겠다는 것이지만, 하긴 계산상으로 하루 죽어라 운동해서 수명 하루 늘리면 그 하루는 다 써버린 것 아냐, 운동하느라. 그럼 피장파장이지. 그래 장수한다고 쳐, 장수도 말하자면 공해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어. 인구과잉은 곧 재앙의 시작이니 말이야.

둥글이: 심각한 주제로 가네. 오늘 너 머리 좀 쉬라고 데려오니까.

안경: 아니, 그 사람 말이 우린 이 지구에 용서를 빌어야 한대. 그런 판에 이 좁은 나라에서 잘 있는 물길 놔두고 인공운하라니. 자연은 남용될 대로 남용되어서, 현재 미개발지역이라고 우리가 깔보는 그런 지방에서나 미래가 남아있을 것이래. 운하사업의 일자리 창출 홍당무에 넘어가면 안 되지. 세계경제공황 이후 히틀러가 일자리 창출한 방식이 뭐였게. 성한 사람은 군대나 군속으로 징집하고, 열등하거나 불온하면 수용소로 이송시켰지. 넝마주이나 우범자들이라고 어디 교육대에 쓸어다 넣고 나서 도시 정화했다고 떠들었던 독재도 다 같은 오류를 범한 것 아니냐고.

물고기: 글쎄 공청회 어쩌고 하던 말들도 쏘옥 들어가 버리네.

안경: 하면, 어느 편에 가담해서 진지하게 지원할 수 있어 우리가?

둥글이: 뭐 우리 중에도 운하 지지하는 사람 있단 말이야?

물고기: 모르지, 아니 당연하지. 친구들이라 해서 매사 같은 의견일 순 없으니까.

안경: 이치로는 무슨 일에건 찬반이 있고, 운하계획이 다수당 의견이면 찬성이 많다는 논리가 맞아.

순이: 하긴, 나도 사실 맨손으로 사업가로 성공한 일꾼이 나을 거라 생각했었어. 그건 지금 좀 흔들리지만.

물고기: 누가 인신공격하자는 거 아니잖아. 우리 같은 한물 간 여자들이 무슨 공격의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경: 그러니까 어려운 것 빼고 줄여서 대운하 말야, 그건 안 된다 그런 거지.

물고기: 아니 그보다도 진짜 문제는 우리 인간이 이 우주의, 자연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 그 주인이란 말이 큰 문제지. 누가 어디의 주인이냐고. 결국 우리는 지극이 미미한 객으로서 이 자연 속에 잠시 몸을 의탁하는 것뿐인데. 주인이 아니라 객이라고. 내가 객인 것을 확실히 인정하면 내 것 못 찾아먹어 안달할 것이 하나도 없지. 권리가 하나도 없거든. 그냥 내게 오는 모든 것이 고마울 뿐. 오늘 이 맛있는 꼬막을 포식까지 하고, 거기다 이 멋스런 차를 마시고. 이 찻잔이며 주전자를 내 친구가 손수 구워서, 그 손으로 차를 끓이고 그 손으로 잔에 부어서……, 이런 호사 평생에 한 번 하는 것이 이 무슨 복이냐.

둥글이: 어쩌냐, 이 아줌마가 또 철학 한다!

찻잔: 냅둬라, 글쟁이 말쟁이 본업을 어쩐다냐. 생긴 대로 살게 둬라.

물고기: 왜 껄끄럽냐? 나 오늘 속말 좀 하고픈데. 진짜 복에 겨워서 하는 소리야. 우린 세상으로부터 큰 선물을 누리며 살고 있다구. 생명으로 태어난 것…….

순이: 그래, 몸과 맘을 섞은 남자도 선물이요, 게서 나온 새끼들은 얼마나 더 큰 선물! 그 말 하려고?

안경: 아, 새끼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즈음 젊은 애들 어쩌면 좋으냐. 저번 선거 말이야, 청년들에게 결혼하면 현금으로 얼마 주고 애 낳으면 얼마 준다니까, 그런 후보에게 찍었다고,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는 거야.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걸 올바른 정신으로 한 말이라 믿어? 이익을 준다면 찍는 거냐 말이야? 후안무치. 우리들이 아이들 그리 가르친 것이지만, 해도 너무하지. 결국 눈빛만으로 에이즈도 치료한다는 허풍을 잘 해야 교회가 넘치고…… 종교건 뭐건 광신이상 뭐라 받아들여?

물고기: 그러게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이라니까.

순이: 무슨?

물고기: 내가 무엇인가. 동물 - 인간 - 남자/여자 - 이어서 신분…… 그렇게 좁혀 들어가서 나를, 내가 어디에 속하는 생명인지는 알아야지. 그래야 ‘내가 누구인가?’에 가까운 답을 알 것.

순이: 알면?

물고기: 그다음엔 ‘나는 누구이니까 어떻게 사느냐?’ 그런 질문이 오겠지. 물론 거기까진 다 살고 죽어도 모르겠지만 말야.

둥글이: 그럼 해보자, 우린 뭐냐. 동물 - 인간 - 여자 - 거기까진 같다.

찻잔: 또 있네. 아내요, 어머니요, 이제 곧 장모요, 시어머니요…….

물고기: 아니 그건 역할이고.

순이: 역할이 아님, 뭐가 정체성인데?

물고기: 아니 우리가 각자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출발이지. 우리가 속한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이지. 여성이다 하면, 여성이 정당한 취급과 대우를 받는지, 여성의 정체성이 억압되고 있는지를 인식하자는 것이지. 지금 정체성 정치에선 비단 여성의 정체성이 아니라, 이를테면 우리가 속한 경제적 집단, 서민층, 중산층 하는 구별 말이지. 최근 우리나라 정치는 확실히 최빈층에 초점을 두었거든. 최저 기초생활을 사회가 책임 나눈다는 것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웠지 왜 무능정치야.

순이: 것도 문제가 없진 않아. 독거노인이라 해도 멀쩡한 사지육신으로, 의료비면제니까 요양병원에서 아예 눌러 살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다더라. 기초생활비 한 푼도 들 일 없이 병원에서 먹고 자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고, 가끔 영양제도 맞고. 병원 측에서도 침대 놀리느니 이문이고.

찻잔: 것도 그래. 나 지난 번 장항아리 옮기다 허리가 끔뻑해서 물리치료를 다녀야 했는데, 병원 다니기가 더 피곤해 죽을 일이었어. 우리도 곧 할머니다만, 웬 할머니들이 병원 하나 가득인 거야. 아예 누워서 뒹굴다가 자다가, 치료 끝나고 쉬어가는 방이라던데. 그러니까 할머니들이 전철로 다니면 차비도 안 드니까, 그 폭 대고 차비 정도만 내면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물리치료해주고 말 걸어주니까 날마다 출근인 거야. 노인들 날궂이 한다고 어떤 자식들이 집에서 다리 주물러주느냔 말야, 함께 살지도 않는데. 날궂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저녁때면 다리 붓잖아, 좀 많이 쓴 날은 밤에도 뒤척거리고.

안경: 사실 어떤 제도에도 구멍은 있지 뭐. 그보다 그런 부담을 월급쟁이들이 다 한다는 게 더 문제지. 재벌들 부자들이야 세금을 월급에서 안 떼니 이리 저리 감출 수 있지. 그러니 중산층이 끌려서 내려갔다고 불평하게 될밖에. 내 의료보험료 생각하면 너무 화나. 나야 죽을 때나 병들 때나 일인분 아냐? 그런데 기혼맞벌이면 의료보험 상으로는 독신으로 되어 남편이랑 이중으로 내는 거야.

순이: 뭔가 이상하다 좀.

안경: 그뿐이야? 그럼 우리 애들 가족수당이나 교육비도 이중으로 준다면 말이나 못하지. 그건 아버지한테서만, 그러니까 한쪽에서만 해당된다니까. 주는 것은 중복으로 안 해주고, 떼어가는 건 당연히 이중이지. 그래서 일 없이 요양병원에서 놀며 축내는 비용을 다 부담해주고 말이야. 외로운 노인들이 덕 좀 보는 것이라면 또 참아야겠지. 그런데 부자 병원들이 왜 내가 고생하면서 이중으로 내는 의료보험에서 이득을 챙기느냐 그 말이지.

물고기: 불평은 우리보단 최상위 1%에서 5% 사람들이 더하지, 아예 빼앗긴 10년이라잖아.

둥글이: 그래 누구나 그 나름대로 찬반에 이유가 있나봐. 좀 들어봐, 우리 외당숙이야, 직접. 웬만한 공직에서 은퇴하고서 서울교외로 이사를 가셨는데, 결혼해서 사는 애들도 드나들 것이니 집을 못 줄이시겠더래. 그래서 산 집이 집값이 저절로 오르다보니 종부세가 터진 거야. 기삼백이 아니라 기천이 나오는데 연금생활자가 그런 목돈이 어디 있어. 집을 팔아서 세금을 내야한단 말이야?

안경: 글쎄 여기 무슨 경제학자가 끼인 것도 아니고. 난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 해. 종부세다 양도세다 그런 부자세금 좀 많이 내고 살아봤음 좋겠네. 가진 부동산들에 세금이 많이 부과된다는 것, 그것 대단한 것 아니냐고. 인구 몇 명 이하 섬에는 완전히 온갖 세금이 면제라 그러던걸. 그럼 그런 세금 안내는 섬생활이 세금 많이 낼 것 고민인 사람보다 질적으로 나은 삶이란 거야 뭐야?

찻잔: 딴은 그러네. 세금 많이 내고 사는 팔자가 훨 낫제.

물고기: 괜히 무능정부다 뭐다 그게 언론정치야. ‘무능정치 10년에 대한 반감’ 운운하는 설문은 그 자체로서 선동적이지. 단순히 ‘정부에 대한 불신’ 정도이면 될 문항을 싸잡아서 10년 무능정치 그렇게 몰아가는 거야. 불만 층이 그쪽에 응답을 하면 이제 10년 무능정치는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이지. 그러니 언론이라는 것이 긴가민가 하는 설에 입각해서 뭔가를 주장하면, 설문을 통해서라도 말야, 그럼 그것이 정설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기준삼아 또 적당한 가설을 만들어낼 반석이 되어버리는 것이지. 그 구조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신문방송에 귀기우릴 필요가 없어질 거야.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 교양당하는 것이 인간이지. 코미디 한 줄에서도 교양당하고 말고.

안경: 그래서 펜은 칼보다 무섭다고 했던 거지.

물고기: 그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도 죽이지. 개인이면 또 피해가 작지만, 체제도 펜이 죽이는 거야. 인간의 비판적 정신의 뇌관빼기는 식은 죽 먹기야. 쇠귀에 경 읽기라고? 아니야. 이 매체시대엔 사람들 유도하기가 개 끈에 매인 개 끌기보다 쉽지.


그 다음 이야기들은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분명 이 여자들은 그냥 놀고먹고 몰려다니는 여자들은 아닌 성 싶었다. 하긴 화투짝 달란 말도, 노래방기계 찾는 말도 없고 보면 싱겁디  싱거운 것이 다르긴 달랐다. 나는 양심에 한 가지 찔리는 일이 있어 그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다. 내가 바로 주식 투자해놓고 거기다 표 찍은 그런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난 그래도 표 찍으러 갈 때 까지는 사람이 일단 부자로 살아봐야 되지 않겠냐던 통장 박씨의 말에 수긍이 갔었다. 정말 부자 세상이 한 발짝 다가온 느낌이었다.

박씨는 꼭 그렇게 말했었다. 대통령이 뭐라요, 우리 같은 사람 잘 살게 해주면 그만 아니요. 후보가 워낙 부자니까 더 이상 부정을 안 해먹을 것 아니요.

나는 의아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 속 알기나 한다요.

박씨는 뭔가 확신했다. 아따, 가진 재산이 몇 백억도 넘는다는데, 뭘 더 꿍쳐 묵겄소. 가진 재산 다 내놓겄다 하지 않았소!

쬐금 수긍이 갔다. 그런 양반들이야 뭣 누러갈 때 올 때 맘 다르고, 그러든 않겄지라.


그런데 상을 좀 치울까 들어가서 다시 듣게 된 이야기는 더욱 불안한 내용이었다. 여자들이 여자들 알기를 매서웠다. 아니 남녀 간에 사람들 알기를 알알했다. 누가누가 한 말인지 이젠 분간이 안 섰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짝을 두고도 정분이 나는 일이 왜 생기느냐. 그래서 짐승만도 못한 것이란 욕이 있지.

아니 짝짓기 본능이 뭐 나빠. 본능인데. 본능이 단혼제가 아닌 것을 유독 기독교도덕이 신도 하나요, 남편도 아내도 하나라고 가르쳐서 그렇게 못 밖아 두니까 본성이 발동하는 것이지.

게서 기독교가 왜 나오냐? 그럼 일부다처를 은근히 인정해온 유교가 나았단 말이냐?

종교는 빼, 제발. 문제는 본능보다 더한 데에 있어. 거기에 권력과 지배가 들어가니 문제지.

웬 권력?

권력이지. 여자가 왜 약자이게, 권력이 없어서 그렇지. 가정에서 권한이 적으니 항상 눌렸지만, 지금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잖아. 고개 숙인 남자, 그 정도는 곰팡스런 말이지. 요샌 여자들이 집장사다 주식이다 큰돈을 만지잖아. 그래 남편들이 죽 쑤고 살기도 하나봐.


이 대목에서 난 움찔했다. 밥장사는 아무래도 내 주관이다. 남편이야 가게 문열어주고 문단속하는 일 말고는 모른다. 기껏 셔터맨 신세다. 장부 간섭도 못하게 내주장이 되었고, 주식이다 은행관리도 내주장이다. 돈 얻어다 쓰는 셔터맨. 남편도 그래서 점점 무력해지는 걸까. 밤이고 낮이고 남편더러 느림보 다름 아닌 꼴이라고 나도 제법 잔소리 큰소리 아닌가.


가만 보니 물고기 눈이 말이 젤로 많았다. 돈과 권력은 한 칼의 두 날일뿐이야. 어느 경우나 돈 많은 집에서 며느리 들이면 아들이 처갓집 종 되는 것 시간문제지. 아내의 부정? 그런 것 챙기는 것도 권력이 있을 때 말이라니까. 전에 우리 어머니들 세대에 행주치마에 눈물 찍어 바르며 밖으로 도는 남편 돌아오기 학수고대하던 것? 영화에서나 볼 걸. 지금 어떤 아내가 그래? 아내가 하다못해 남편월급통장이라도 돈줄을 쥐고 있으니, 여자들 세상이지. 남편이 아내의 남자친구를 봐줘야 하는 세상이라고.

설마.

있는 층에서야 제각기 사생활 존중한다는 미명으로 서로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서로 모르는 척 살고.

그럼 없는 층은?

없는 사람들은 서로 참지. 그나마 날품이라도 들여오는 서방이 안 들어오면 뭘 먹고 살까 해서 참고, 또 그나마 각시 나가버리면 어떤 여자가 와서 밥이라도 해주랴 싶어서 참고.

설마.

그래 설마야, 설마 아내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지. 호스트바가 번연이 성업이고, 그곳에 꼭 남편 없는 여자들만 드나든다는 법 있어? 왜 그 유명한 한 때의 황태자, 돈 많은 권력층 남자야 그렇다 치고, 그 귀부인 여자가 따로 호스트바 단골이라 소문났었지. 물론 뜬소문일 수도 있고. 하긴 지난 세대 여자들이 당했던 설움을 복수라도 하는 행태인가 봐. 아직 물론 그런 독기가 다 퍼진 건 아니고. 여전히 선량하고 가족밖에 모르는 바보 현모양처들이 많지만. 또 맞벌이여잔 더하지, 바람날 시간이나 있어?

시간 있다고 바람이야? 그만들 해. 왜 그리 희망 없는 소리들을.

여전히 여성에게만 윤리적 잣대가 까다롭다는 거지.

하긴 사시나 붙고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어야 동등한 대우지, 일반 급여는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제라니 어림없지. 불평등고용에서 시작하니까 야침 찬 젊은 여자애들이 묘한 수들을 쓸 밖에. 그 쩡아사건도 남자들 일각에선 전혀 다르게 말한대잖냐.

전혀 다르게?

그래, 전혀 다르게. 그 사건에선 박사학위만 고장이었다는구나. 그것만 가짜가 아니었으면 아무 일도 아닌 거래. 그래서 심지어 억울하겠다고 동정한다는 게야, 세상 남자들이. 그만한 일, 권력층 중년과 미모의 젊은 여자 이야기는 밥 먹고 차 마시고 운동하는 일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렇고 그런, 아예 이야기 거리도 안 되는 일상인데 그랬다는 거야. 그 높은 양반의 불운은 하필이면 교수자리 탐낸 여자와 엮인 것뿐이라는 거지. 그걸 빼면 어떤 범죄적 요건이 아니라, 그저 좀 쏠쏠한 일상이라는 거야.

뭔 말이 좀 이상하네. 남자들 입장에선 전혀 흥분도 분노도 할 일이 못된다고?

그러니까 결국 들어맞네. 여자가 두뇌가 크면 가슴이 없다고 했던 말. 남자에겐 가슴이 큰 여자면 된다, 두뇌가 큰 여자는 재앙을 가져 온다 뭐 그런 말. 젊은 여자가 보석이나 명품만 탐했으면 실컷 사 줄 수 있었는데, 사회적 지위까지 탐해서 골치 아파진 것이로군.

아니 뭐, 그리 의기소침해 할 것 있어? 대다수의 선량한 우리 남편들은 그렇지 않지. 그건 특권층 이야기야. 특권이 많아지면 반대로 단점도 많아지게 돼있어. 평범한 우리들이야 무슨 억하심정으로 세상 남자 여자를 다 욕해?


정리하자면 이랬다. 우리네가 좀 심하다. 우리나라가 너무 좁아서 냄비방이다. 정치인이면 정치인, 연예인이면 연예인, 하고 사는 것들이 다를 텐데. 그런 사람들은 특별히 행복해야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삶이 모양새는 달라야 마땅하다. 그런 사람들의 행태가 여과 없이 일사천리로 평범한 가정에 전달이 된다. 돈과 권력이 되면 되는 만큼, 부치면 부친대로, 똑같은 모양새로 다 하려든다. 각각의 정체성을 지닌 고유의 문화가 없다. 청소년이 즐길만한 문화, 중년이나 노년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따로 없다. 20대 처녀들에게 반팔 반바지가 유행이면 중년도 똑같이 한다. 딸들이 사다준다는 핑계로 다 따라한다. 딸들이야 부모보다 훨씬 크게 날씬하게 자라서 부풀린 칠부소매를 입어도 나실나실 예쁘다. 그걸 어머니가 따라 하면, 세월 따라 툭 벌어진 어깨에 짜리몽땅한 팔에 짧은 소매기장이 통장수 칼만 같다. 또 요즈음 아이들은 얼굴이 길다보니 꾸냥처럼 앞머릴 잘라도 귀엽다. 하지만 원래 보름달 얼굴에 주름 없앤다고 바람 넣어 볼 살 미어지게 부푼 아줌마들이 앞머릴 똑 잘라 놓으면 얼굴이 그만 반 토막이다. 키까지 더 작아 보인다. 젊은 연예인들이 새까만 머리염색들을 하고 나타나면, 흰머리 염색도 다 새까맣게 따라 해서 가짜인 것만 더 들통난다.


머리를 쓰다듬다 보니 정말 내가 그랬다. 미장원 가니 앞머리 몽땅 잘라서 펴고 뒷머리만 파머하래서 그랬다. 그래서 내 키가 전보다 더 작아 보일까? 반코트도 팔을 두 동강 내어 주름잡은 게 멋있어 보여서 장만했는데. 난 딸 아이 흉내가 아니라 증권회사에서 만난 여자가 멋있어 보여서 그만. 헌데 이 여자들은 먹은 밥알보다 쏟은 말들이 더 많겠네.


외양만 그런 게 아냐. 그렇게 해서 젊은 멋도 노숙한 맛도 구별이 없이 섞인 세상이야. 가치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니까.

뭐 그래도 유행 무시할 수 있어?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무시 ‘해야 해!’ 아님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되지, 점점. 우린 종일 교양당해서 문제야. 정말 너절한 것들 그만 배워야 해. 텔레비전에선 배우얼굴도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서 여기서 저기서 태어난 악연들이 얽히고설키어 부정한 일가친척으로 드러나는 꽈배기 연속극에 정신 팔지. 억지 코미디를 들여다보며 교양당하지. 어디 어디가면 뭐뭐 맛있는 것이 있다는 호들갑에 그런 음식 못 먹는 내 밥상만 초라하고, 고장마다 명소마다 찾아다니며 맛있는 외식을 하지 못해서 불행하게 느끼게 만들고…….

하긴, 휴대전화 없음 사람 축에도 못 끼지,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런 것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삶을 깡그리 잊어버렸나 봐 우린 지금.

방송이라고 다 나쁘냐, 진짜 교양프로도 있잖아.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나 좋은 책에 대한 토론도.

그래도 진짜 교양프로는 한 밤중에나 하더라.

것도 만날 재탕이야. 내가 정말 존경하는 여자, 화가 김점…….

그래, 너 화가되려던 때도 있었지?

무슨 딴 소리!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또 보고 또 보면 식상한데, 하긴 아마 그만한 극적인 인물들이 없다보니 재탕이겠지.

누군데? 

그만 두자. 말이 길어, 김치도 못 담가 먹으면서 그림만 그렸다는, 거지꼴에 좀 미친……. 그냥 내가 많이 좋아해서. 그런데 너희들, 선거전이고 뭐고 대강 말하는 사람 이야기 들어보면 무슨 신문을 구독하는지 냄새 안 나던?

냄새? 하긴, 만날 같은 논조를 읽다보면 그대로 동화된다니까. 정체성이 길들여진다고 말하려는 거지 너?

그래, 때가 때이니만큼. 민주주의체제에선 적어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하지 않아? 대의정치가 뭔데? 내 뜻을 대신해줄 정당이 필요하잖아? 아무튼 그때, 그래도 대의를 따른다고, 지역당을 탈출하련다는 그 대의를 믿기로 하고, 그쪽을 따라 정체성을 옮겼거든. 그러더니 이번에 봐. 또 그 변신의 주역들 중에서 날랜 기수를 앞세우고 무리지어 그 정당을 또 떠나는 거야. 그럼 이번에 또 어쩌라는 것이냐고. 난 분명 두 번의 배신은 참지 않았지. 선거 끝나고 헤쳐모이고, 또 선거 앞두고 헤쳐모이면, 어디에 정체성을 기대느냐고. 그래서 아깝지만 버렸어. 그렇게 탈바꿈을 하는 정당은 버리려고. 누에도 아니고 계속 탈을 벗어야해? 그런다고 나방이 호랑나비가 되나? 난 나방이 나방대로 살 제 길을 보지 못했어. 방황하는 나방이 신세? 그것이 선거를 치르는 심정이었어.

뭐야 그럼 넌 우리 쪽에서 보면 이탈표였네. 그럴 수 있어?

그래 이탈이지. 맹목과 맹신으로부터의 이탈이지. 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해. 정체성 정치의 의미에선 늦어도 총선 전까진.

너 말투가 이미 대선에서 그 싹을 보았다는 말 같이 들린다.

그래 그런 것 같아. 지금의 선택으로서는 환경에 기댈 밖에.

환경? 바로 그거야. 환경을 보듬는 정책에 최우선 점수를 줘야 해. 《불편한 진실》 찾아서들 봐, 꼭. 뭔가 영화다 뭐다 예술이 영향력을 가진다면 그런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존경해. 그 한편을 진정으로 본다면 사람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이 바닷가 마을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미래를 경고해주니 말이야.

여기도?

이 바다라고 예외겠어, 완급이 있을 뿐. 공룡들도 그랬을까 싶어. 최강자로서 자연을 장악해서 유용하게 수탈하고 보니, 더 수탈할 자연이 남지 않았을 때 공룡 또한 함께 멸망했을까?

그럼 인간도 외톨이가 되어․…….


멀건 차를 한나절씩 마시며 알쏭달쏭 이야기만 늘어놓던 여자들이 드디어 자리를 떴다. 꼬막들은 시장에 가서 살 양인지, 유자절인 것만 두 통 나갔다. 매실절임은 권해도 다들 담갔단다. 그 나름 부지런한 여자들인가 보다.


*

꼬막식당집 주인여자는 숨을 돌린다. 시간이 점심장사와 저녁장사 정 중간이다. 아까 여자들은 행색도 괜찮고 제법 유식한 것 같은데 주식소문을 모르는 것이 주인여자의 마음에 걸렸다. 여자는 OO카드가 OOO카드라는 소문도 미심쩍어진다. 혹시 허튼 주식을 샀단 말인가? 갈팡질팡. 사실 그 주식이 곤두박질치면 큰일이 난다. 그렇더라도 만일 OOO카드가 사실이라면 뭔가 죄를 짓는 것 까지는 아니라도 좀 껄끄러울 것은 마음이 되기도 한다. 선한 데는 못난 정이 섞여있다.

여자는 안방에서 잠시 뭔가를 추스르더니 슬그머니 가게를 빠져나온다. 가방끈을 어깨에 걸메고서도 가방을 꽉 껴안은 품이 매상 입금하러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가까운 신용금고로 향하지 않는다. 조금 두리번거리면서 네거리를 둘 지나 왼쪽으로 꺾어들자 이상한 열기가 돈다. 증권사 안은 늘 그렇게 덥다. 스팀을 팍팍 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줄타기라는 속성 때문에 사람들이 더운 숨을 내쉬는 때문이겠다.

어라? 남대리, 실눈에 이마가 반질거리는 젊은 남대리가 자리에 없다. 그러고 보니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받은 분홍빛 엷은 공기가 착각이었는지, 뭔가 서늘하다. 사람 하나 자리에 없다고 이러나…… 그런데 왜 과장인지 저 구닥다리가 그 자리에 있나? 아니, 자세히 살피니 잠시 비운 자리가 아닌 듯한 인상을 받는다. 결근이란다. 결근. 이상타. 그냥 오늘은 수선스런 날인가 보다, 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괜히 이상한 여자손님들 잡담에 가슴이 쿵쾅거리더니만, 잘 좀 알아보려고 오니 하필 남대리가 결근이라니. 내일은 나오겠지,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 나온다.


여자는 갑자기 바닷가가 그리웠다. 꼬막으로 밥장사하면서도 실제로 갯벌을 본 것이 언젠가. 밥장사하다보니 계 몇 개도 나가기보다는 계군들이 꼬막식당으로 모이는 편이다. 해외여행간다고 붓는 곗돈은 밥들도 안 먹고 갑장인 일수쟁이여자가 와서 돈만 걷어간다. 만기도 아직 멀었고, 해외가 다 뭔가, 이 수선한 심정으로. 여자는 우선 바다가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꼬막은 많이 나도 이 고장엔 해수욕하는 바다는 없다. 그냥 갯벌이다. 털털대는 버스로 시간 반 쯤 떨어진 여자의 친정 쪽은 툼벙댈만한 바다가 있었다. 원피스만 벗어 깨끗한 돌로 눌러놓고 텀벙대던 시절을 아스라하게 그려본다.

그런데 아까 여자들 이야기 중 바닷가가 가라앉는다는 건 또 뭔가. 친정부모가 묻힌 바닷가가 가라앉으면 어찌될 건가? 여자는 괜스레 불안하다. 지금 바다 끼고 사는 사람들조차 이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가만있어도 그런 날이 닥치리라던데, 무슨 말이 씨 된다고 그런 소리들을 해 대는가 기분이 나빠진다. 난방도 줄이고 물도 아껴 쓰라면, 그런 정도야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겠다 싶다. 우선 세금 덜 물고. 식구들 단속 좀 해야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끔 유식한 손님들이 오면 그 나름대로 이문이 있다 싶어 오히려 안도감이 생긴다. 여자는 버스를 타려다말고 돌아온다. 저녁 장사시간이 닥치는데 무슨 내일 모레 타령이냐 싶어서다. 여자는 고개를 턴다, 나 죽은 뒤에 바다가 가라앉으면 알게 뭐냐. 새끼들이 안타깝지만, 그 여자들 말이 신선님 말도 아닌 것이고. 그냥 잊기로 한다.


여자는 그 다음날 벌써 유난히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 어제의 일은 흘려버렸다. 점심이 워낙 붐벼서 증권회사에 나가볼 짬을 못 냈다. 그리고 저녁 늦게야 뉴스를 들었다. 큰 손 여자들이 사람을 시켜 한 증권사 펀드매니저를 납치해서 감금했는데, 돈을 날려버린 분풀이였다는 것이다. 가만, 분풀이라면, 돈은 영 못 받는다는 거네! 가만, 그건 그렇고, 그 여파로 그 쪽 줄에 선 여기저기 자잘한 직원들이 숨어버리거나 했다는데……. 가만, 남대리도 결근한 것이, 설마, 월차가 겹쳤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만, 설마…….


새해라 해도 아직 꽁꽁 언 겨울밤은 길기만 하다. 언제 날이 밝아올 것인지. 적금이자가 이리 꽝인데, 뽄든가 폰든가 안할 여자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이고나, 겨울밤은 길기도 하다. 시집와 첫 겨울 뜨뜻미지근한 아랫목, 한 번 돌아 누어버리면 뻣뻣한 옆 사람 파고들며 날 밝기를 한탄하던 그 시절은 멀리도 사라졌는데……. 어서 날이나 밝아라.


전 날 휘파람 남대리 대신에 누런 과장이 앉아있던 자리에 오늘은 허연 수염의 신령님이 서있다.

네 돈은 은보따리냐? 금보따리냐?

누가 요 세상에 보따리에다 돈을 싼다요? 제 돈은 짜가라도 구찌가방에 넣었지라.

어허, 구자가방은 첨부터 없었니라. 아까 누가 팔자가방을 찾기에 하나 돌려주었고. 지금 남은 건 요 은보따리와 금보따리 뭉칫돈뿐인데, 어허…….

놀리지 마세요. 사과상자나 케이크상자라면 모를까 요즘에 누가 보따리에 돈뭉치를 싼다고 그러실까.

아따, 사과상자를 금전으로 채웠냐 은전으로 채웠냐 그 말인데, 말귀도 참 못 알아듣는구나. 헌데 보아하니 어쩐 형국이냐, 네가 여기 올 팔자가 되기나 하냐, 꽝!


꽈당 하는 지팡이 소리에 놀라 눈을 드니 시계 바늘은 여전히 칠흑 속에 잠겨있다. 다시 눈을 감으니 신령님 긴 수염이 갑자기 딱 중간에서 여덟팔자로 갈라져 양쪽으로 날린다. 털어버리려고 눈을 크게 떴는데 귓가에서는 여전히 신령님 말소리가 왕모기처럼 따갑게 앙앙댄다. 팔자라, 팔자…….

여자는 이번엔 정말 눈을 뜨고 검은 천장을 바라본다. 내가 잘 못 했을까? 돌아가신 울 아부지, 돈 놓고 돈 묵는 일만은 하지 말라고, 땅 파묵고 살든지 고기 잡아묵고 살라고 하셨는디. 박서방이 밥은 먹일게다, 허니 나서도 말고 살라셨는디. 밥장사 나서서 모은 뭉칫돈, 그 돈은 지금 잃었거나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이미 정해져버렸다. 불안해도 소용없다. 지난 일이다. 돈 따라 찾아나서 마음을 보챌 것이 아니라, 이대로 원래대로 하면서 잘 살자고 참고 나가는 것이 마땅할까. 내 본 모습, 내 본 삶을 보듬는 것이.

정치성, 아니 정체성이라고? 꼬막밥장사나 하다가 그런 희한한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은 실로 우연이었다. 그 점심 손님들,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말이 또 있었을까. 여자는 그래도 그 문제를 파고들기로 했다. 뭉텅이 돈 잃고 미치지 않으려면 거기에라도 매달려야 했다. 나는 본시 돈 놓고 돈 묵을라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하지만 분통이 터진다. 그럼 언제나 사람 같이 살거나. 언제 이 비린내 짠 냄시 다 털고 사람같이 살거나.

내 이름은 숙이, 정숙이, 박실이, 그러다가 은행에 가서는 김정숙이 되었다. 내 이름은 김정숙. 이름 석 자에 돈도 들어 있고, 도장도 서너 개는 된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만일의 경우가 이런 걸까? 아무튼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도장을 은행마다 다른 것으로 팠다. 김정숙, 김정숙, 김정숙……. 정체성이라면 나 자신인 것. 내 돈이 날아가면 나도 날아가는 걸까? 내 돈이 날아가도 내가 날아가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 걸까? 여자는 어둠이 스멀거리며 날이 뿌옇게 새도록 제 이름 석 자를 중얼거린다. 김정숙, 김정수욱…….

 

 

소설시대 17호 80-102쪽, 2010.05. {한국작가교수회}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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