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시2022. 7. 27. 17:50

    새순이 움트려나 보다. 텅 빈 나뭇가지들 끝에서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렇게 움틀 때를 알고 움을 틔울 준비를 할까 신기하다. 이 아파트에는 나무들이 꽤 많다. 옛날 아파트라서 동 사이가 넓다. 지상뿐인 주차 공간은 많지 않아 라인에서 먼 데다 차를 세운다. 그것도 그대로 좋은 것이, 낮 시간에는 그리 춥지도 않고 마스크 사이로 살짝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는 몇 미터가 시원하기까지 하다. 고층아파트 사이의 공기가 무에 대단할까만, 공기는 공기다. 공기가 그립다니.

    요즈음은 격리가 남의 일 아닌 것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죽 같다. 엊그제 설날 아침에 18,000명이던 확진자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 곧바로 20,000, 그리고 22,000을 훌쩍, 오늘 아침에는 27,000을 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대로 2주를 더 연장해서 사적 모임은 6인까지다. 거리두기 때문에 자영업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수당을 받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에게도 생계형 문제가 닥치고 있다. 우선 우리들이 확진되거나 밀접접촉자가 되어 일을 쉰다. 감염 위험 때문에 방문요양서비스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는 더 낭패다. 수급자들이 기저질환이 많다 보니 불안해서 그런다. 그렇다고 방문요양을 중단하면, 중단할 수 있다는 말은, 평소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말인가.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는 수급자들도 있긴 하다. 몸은 좀 불편해도 정신은 말짱한 경우도 있다. 이런 할머니들은 시시콜콜 감독성 멘트를 날려서 힘들다. 우리 센터는 규모가 큰 편이고 시영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보니, 수급자 할머니들이랑 뭔가 한 동아리로 돌아간다. 일정한 수급자 숫자를 유지해야 하는 센터가 저자세이고, 수급자들의 투정도 각가지다. 따쑨 물 쓰지 말어, 한 데도 아니고 아파트 안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다. 심한 경우는 화장실도 막는단다. 여서 물 쓰고 휴지 쓰고 할 일 있당가, 얼릉 코앞에 복지관 갔다 올 일이제. 그런 묘안이 어디에서 나올까.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서 이런 요령이랄까 꼼수만 남은 것일까.

    센터의 어려움도 확실해 보인다. 방문요양을 끊는 집이 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사회복지사가 월 2회 상황을 점검하러 다니는 일도 월 1회로 바뀌었다. 모든 부분에서 감축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평상심을 유지하고 잘 살아간다. 이 상쾌한 공기를 느끼는 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따뜻한 밥 냄새도 좋다. 나를 위해 짓는 밥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지은 밥 같기도 하다. 들어서는 순간 준비되어있는 갓 지은 밥이라니! 훈훈한 냄새를 기대하며 계단을 오른다.

 

    어? 대문에 새 종이가 붙어있다. 오늘이 입춘인가 보다. 입춘대길은 알겠는데 다른 복잡한 한자가 왼쪽으로 붙어있다. 작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번엔 무슨 글자인가 물어봐야지.

    우선 밥부터 먹고! 그런데 난데없는 달래무침이다. 통새우와 동그랑땡을 야채들과 볶아서 내놓는 이름 없는 이 접시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메뉴인데, 상치가 아니라 달래를 곁들여? 보호자 할머니한테 듣고 보니, 입춘에 영순위로 먹는 채소가 달래란다. 저녁에는 부추전을 부칠 거란다. 향 진한 채소가 입춘 음식이라고, 별것을 다 챙긴다. 하긴 노년의 일상이 밥 먹는 것 말고, 아니 약 먹는 것까지 해서 먹는 것 말고 더 있을까. 수급자 어르신이 식사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면서 함께 먹는 일이 이젠 일상 같이 느껴진다. 내가 아직 학생 때 돌아가셔서 내 먼 기억 속에 훨씬 젊게 남은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우리 아버지는 이 어르신처럼 완전히 흰머리가 되어보신 적이 없다. 흰머리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 머리카락이 아버지를 닮아서 살짝 곱슬이라는데, 아직은 검고 윤기 나는 이 건강한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할까, 변하겠지. 아버지에게서 보지 못했던 하얀 곱슬머리는 어떤 느낌일까.

    보호자 할머니는 누룽지까지 내오고서야 자리에 앉는다. 누룽지도 어르신 몫이다. 할머니는 사실 대충 먹는 느낌인데, 점심 후에는 큰 잔으로 커피를 마신다. 나도 커피 잔을 들고 마주 앉는다.

 

    아, 대문에 쓰인 한자를 물어야지. 입춘대길 옆엔 무슨 말이에요? 건양다경이라고 한다. 세울 건, 햇볕 양, 많을 다, 경사 경이니, 맑은 날 많고, 좋은 일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는 뜻이란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경사죠. 다른 말들도 있는데,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라고 써 붙이기도 해요.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는 뜻인데, 노인들 집에는 욕심 사나워 보이죠.

    노인들이라고…….

    이제 창문을 자주 열고 해를 들여야죠! 겨우내 유리창 햇볕이라도 길게 들어와서 다행이었죠. 할머니는 말 돌리기 선수다. 말을 하면 그렇다.

    기다리는 마음에서나 말에서나 봄은 시늉이라도 오고 있다. 아니, 아파트 거실 안은 겨우내 봄이다. 어르신은 거실에 들인 화분들 중에서 좋아하는 딱 두 개만을 베란다 유리창 쪽으로 옮겨 놓는다. 둘은 오늘도 그렇게 해를 바라고 있다. 나무들은 흙에 심겨서 물을 받아먹으며 가끔 해를 맞는 것만으로도 새순을 낸다. 나는 화분들에 별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닌데, 덩굴 식물들을 보면 신기하다.

이 덩굴에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별사탕들을 한 움큼 쏟아놓은 것 같아요! 할머니는 은근 꽃을 기다리는 눈치인데, 내가 온 이후로 2년여, 꽃이 핀 것을 본 적이 없다. 상상이 가지 않는 꽃 모양에 슬그머니 폰에서 인터넷을 열어본다. 이름이 호야? 이렇게 엉뚱하게 예쁜 꽃이 덩굴 사이에서? 정말 꽃이 피어봤음 좋겠다.

 

 

    점심 후면 으레 소파에 앉아있는 어르신이 비스듬히 스르르 눈을 감고 낮잠에 빠진다. 딱히 할 일이 없다. 유난히 밝아진 베란다에 나가보니 대청소가 되어있다. 벽에 말라붙어 있던 팥죽 흔적도 말끔히 사라졌다. 팥죽은 지난번 동짓날 사건이었다. 베란다에 내어놓았던 죽을 거두어 오면서 벽에다 뿌렸다 했다. 정월 보름에 장독대나 대문 밖에 차려진 오곡밥을 먹으러 동네를 누빈 기억이 아스라했다. 밥은 집마다 달랐고 아이들은 그것을 재미있어 했다. 아파트 성냥갑 안에서 21세기에도? 웃긴다. 더구나 하얀 내벽에다 뿌릴 것까지야.

    그냥 재미죠. 할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변명처럼 말했다. 그냥 괜찮은 습속이었다 싶어요. 팥이 귀신을 쫓는단다, 동지죽을 밖에다 퍼다 내어놓고 복을 빌어라! 그러니까 복을 비는 마음으로 죽을 내다 놓았겠지요. 죽을 내다 놓아야 먹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고. 요즘에야 밥이 귀하지 않으니까 미신으로 보이는 거라.

    하긴 누구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야 뭐 미신인들 어떠랴 싶었다. 이 시시콜콜 구식 할머니는 그때 동짓날 말이 옛날엔 동지를 새해의 시작이라고 했단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마음 든다는 것이니, 땅 밑에서 움트려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네요.

    아니, 푸성귀들이 꿈틀거려요? 겨울잠 자던 동물들도 아닌데?

    동물처럼 꿈틀거리기야 하겠어요, 어차피 붙박이들인데. 하지만 움직이는 다리가 없다고 해서 풀들을, 식물들을, 무시할 일은 아녜요, 뒤틀든 꼼지락거리든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씨앗도 껍질을 깨뜨려야 싹이든 움이든 틀 것 아니겠어요. 제 몸을 깨뜨리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자라나죠. 가만있음 어떻게 살아나느냐고요. 봐요, 나뭇잎들. 이 시시한 덩굴들. 볕을 못 보면서도 날마다 자라잖아요. 초겨울 들여올 때는 고무나무 잎들도 텔레비전을 이렇게나 가리진 않았었는데.

    맞아요, 이거 작년 겨울에 비해서 엄청 자랐어요. 지난 봄 베란다에 내놓을 때는 몰랐었는데 이번 봄에는 못 나가요, 보세요, 두 팔 다 벌려도 모자라는데 베란다에 못 들어가요. 가지들 잘라야죠.

    우리가 훨씬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든가.

하하, 봄 되기 전에 이사를 가요? 이사 같은 건 완전 접었다 하시더니만. 이제 와 고무나무 내놓을 넓은 베란다를 찾아서 이사를 가시게요?

    말이라도, 자르기 아까우니까 말이라도 그냥 그렇게.

 

 

    이사 말을 꺼낸 건 살짝 놀라웠다. 노인들에게 이사란 쉬운 일이 아닌, 어쩌면 금기다. 십여 년 전엔가는 이분들도 이사 맘을 먹은 적이 있었더란다. 어르신 은퇴 후 무료한 도시생활에 염증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다들 그런다. 요즘엔 은퇴 후 농막을 갖는 것이 로망이라고들 한다. 일찌감치 농가주택을 가진 우리를 부러워하는 이웃들이 참 많다. 남편은 생각이 앞서는 사람 같다. 아무튼 어르신네는 새 환경에서 적응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어 차일피일, 그러다가 기회는 아예 사라졌단다. 할아버지한테 갑자기 인지문제가 생길 것을 예감이나 했을까. 이미 크고 작은 혼동을 겪게 된 노인들이 언감생심 무슨 이사인가.

    이 할머니는 안전안내 문자가 오면 실종신고만 본단다. 나는 수급자 어르신들 집에 가면 습관적인 인사처럼 확진자 숫자를 말해준다. 근년 들어 그게 뉴스 일 순위다. 좀 보세요, 광주 오늘 800명을 넘었어요, 829명이라고요, 라고 해도 이 할머니는 신청도 안 한다. 설날만 해도 500명이던 것이 하루에 100명씩도 더 넘게 계속 계속 올라간다니까요, 금방 두 배예요, 라고 해도, 전염성을 어쩌겠어요, 그러고 만다. 대신 실종신고 문자를 보면 숨이 멎는단다.

    여기 보세요! 경찰청 안내, 서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79세)를 찾습니다. 157cm, 57kg, 분홍색 내복, 꽃무늬 조끼, 검정바지. 그러니까 이 겨울에 겉옷도 잠바도 안 입었네! 여기 또, 북구에서 실종된 이oo(남, 82세)를 찾습니다. 162cm, 53kg, 파랑색 잠바, 검정 바지. 뭐야, 남자가 키도 작네, 마르기도 하고……. 지 선샘, 정말 내가 왜 이럴까. 실종신고를 계속 계속 모아두거든요, 찾았다는 후속 소식이 올라올까 싶어서. 그게 꼭 한 번, 일 년 내내 두고 보아도 찾았다는 소식은 단 한 번뿐이었어요. 다들 어디로 사라져서 어떻게 끝나는 걸까.

    실은 온 나라가 마스크를 배급처럼 요일별로 사러 다니던 시절, 그때는 내가 이 댁에 다닐 때가 아니었다. 이분들이야 외출할 일들이 별로 없으니까 몇 번은 요일을 지나치다가, 할머니가 큰맘을 먹고 약국에 가려다가 진짜 난리가 났었단다. 아파트 마당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관리실 쪽에서 큰 소란이 나서 돌아다보았더니, 경비아저씨가 바로 이 어르신을 붙잡고 있었단다. 어르신이 비틀 걸음으로 뒤따라 나왔던 모양인데, 외투도 안 걸친 모습을 경비아저씨가 곧바로 보고 붙들었으니 망정이지……. 사고는 순간에 일어난다. 대문 안쪽에는 ‘집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문구와 예쁜 집 그림이 붙어있다.

 

    이거 좀 보세요, 여기! 할머니는 여전히 실종신고에 가 있다. 광주경찰청, 광산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91세)를 찾습니다. 150cm, 45kg, 티셔츠, 몸배바지, 밤색 슬리퍼. 이 정도면 그냥 울고 싶어. 추운 겨울이에요. 입춘이라 해도 밤엔 영하의 날씨가 며칠째 계속인데. 밤을 잘 이겨낼까? 어려서, 우리가 아주 어려서는 거의 아버지 혼자서 신문을 보셨지요. 밥상에서 한마디씩 하시는데, 어느 겨울날, 저런 저런,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하시는가, 어젯밤에도 다리 밑에서 행려병자가……. 우리는 그다음 말을 듣지 않았지요. 잽싸게 자리에서 피해버리거나, 그러지 못하면 머리를 쥐가 날 만큼 경직시켜요. 그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죠. 그렇게 소리를 듣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기술은 학교에서도 써먹기 좋았어요. 듣기 싫은 수업 시간 있잖아요. 가끔이지만 어떤 싫은 말들, 애들이 조른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어요. 그럴 땐 머리를 쥐가 나도록 웅크리는 거예요. 그럼 소리들을 안 듣고 지나가죠. 그냥 멀쩡하게 앉아서요. 나중에는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대충 그대로 말해주는 선생님 앞에서도 귀를 닫았죠. 심심해서요. 대신 다른 나라에 가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라니. 이 할머니는 가끔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귀를 닫고 소리를 일부러 안 듣는다고? 소리라는 게 저절로 들리는 것인데 그걸 안 들을 수도 있다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흘려듣는 학생들이야 많지만, 일부러 안 듣는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고 내가 우긴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를 어떻게 닫느냐고. 할머니는 웃고 만다.

 

    어르신은 미동도 없다. 깨워야 할 시간이다. 다 같이 거실로 자리를 옮긴다. 텔레비전은 거의 소리가 없는 채로 늘 켜져 있다. 오늘은 어제의 대선후보들 토론에 관한 이야기로 뒤범벅이다. 앗, 속보다. 화재다. 내 고향 충청도다! ‘충’자만 봐도 고향 생각인가, 아니, 화재란 이곳 현장이 공포다.

    생활 쓰레기 처리장이니 주택 동네보담 훨 낫네요. 나는 안심해서 말한다.

    그러네. 새벽이라 사람도 안 다쳤고! 불이 꼭 나야 한다면 참 다행이네요! 아니, ‘꼭 나야 한다면’이란 말 참 우습네. 오늘은 죽는 뉴스가 아니어서 넘 고맙네요. 아침에 일하러 나갔다가 일터에서 죽어 돌아오는 젊은이들, 아, 그런 뉴스 나오면 안타깝지, 거의 살해당한 거니까 정말 원통하지. 어디서더라, 일 년이면 일터에서 죽는 사람이 몇이라 했는데. 하루에도 다섯 여섯 사람이 죽는다던가. 일터에서 죽어 퇴근을 무덤으로. 지 선샘, 인터넷 한번 찾아봐요!

    뭣 하러요, 맘 아프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가만히 네이버를 열어본다. 2021년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숫자…… 아, 설마, 설마가 사람 죽인다더니, 설마 2,146명이다. 사람으로 200을 넘으면 상상이 안 가는 숫자다. 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운 숫자?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죽는다. 병도 아니고 그냥 사고로, 교통사고도 아니고 일터에서 일하다가. 추락사만 305건이라고 나온다. 날마다 한 사람이 추락하여 죽는다. 아뿔싸! 이 숫자를 말해? 말해서 뭐 해? 모르는 척하자.

    휴우, 그나마 산재사고에는 보상금이 있긴 하다. 그래봤자 보상금도 차별이 너무 심한 나라다. 하지만 케이 팝, 케이 문화에 케이 방역까지. 수출도 잘 되고, 심지어 수출 강국 운운하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맞잖아. 모르겠다.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니까 상황이 바뀐다. 산책 나가실까요? 오늘 바람 안 불어요. 그리 춥지도 않고요, 네? 어르신은 살짝 웃을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낸다. 이런 순간에는 말보다 표정이 더 중요한 소통이 되는 것 같다. 잘 듣지 못하면 말 대신 표정이 발달하나? 일단 산책이다. 할머니로부터 도망가자. 오늘은 입춘대길 좋은 날이라면서 계속 우울한 이야기에 빠져있다.

 

 

   에는 언제나처럼 몇 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나란히 앉아있기도 걷고 있기도 하다.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이 할아버지는 무관심이다. 우선 청력이 안 되신다. 천천히 걷는 걸음을 함께 걷다 보니 온갖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새순들이 정말 보인다. 망울들이다. 어떻게 공기 중의 온도를 알고 반응을 할까. 나는 아직 추운데, 내가 추위를 좀 타는 편이긴 하다. 더러는 오래된 나무들인데, 나무껍질로 보아서는 죽어 보이는 나무들에게서조차 새순들이, 새순의 징후들이 보인다. 금목서는 늘푸른잎을 지니고 있지만 오히려 푸석해져 있고 봄 준비가 늦다. 눈비가 적어서인지 지난해 직박구리가 깃들어 살며 배설해놓았던 흔적들까지 말라붙어 있다. 황홀한 향기를 주던 꽃을 피우던 시절이 아득하다. 하지만 곧 변화를 탈 것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일는지.

    그러다 보면 할아버지는 집 쪽을 향한다. 산책은 시늉이다. 시늉도 다행이다. 바깥옷을 챙겨 입는 것도 운동이고, 덧입는 순서가 문제랴. 장갑이며 마스크는 물론, 머플러며 모자까지도 둘렀다 벗었다 그 자체도 운동이다. 노인들에게는 움직임이 그대로 운동이다.

 

    텔레비전도 꺼져있는 거실에 할머니가 그대로 앉아있다. 시장에라도 나갔나 싶었는데 아니다.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손을 꼼꼼히 씻고 옷을 다시 갈아입고는 그대로 방에서 쉬겠다고 침대에 눕는다. 간식은 좀 있다 챙기기로 하고 다시 거실로 나간다. 오늘 살짝 좀 많이 걸으셨는지 방에서 쉬겠다시네요. 근데 뭐 하셨어요? 티비도 안 보시고, 그렇게 그냥.

    또 들어왔어요. 안전 문자! 영하에 티셔츠 바람으로 사라지는 노인들 너무 불쌍해요. 사망은 사망인 줄 알기나 하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라지느냐 말이에요. 근데 60대도 있었어요. 60대에도 치매가 있나? 집에 혼자 있다가 사라지는 거겠죠? 어떻게 살던 동네에서도 길을 잃나.

    다시 또 걱정은 길 잃는 노인들로 옮아간다. 과민할 정도이다. 어떻게 달랠까. 하긴 이 할머니는 수급자가 아니라 수급자의 보호자일 뿐이다. 내 소관이 아니다. 내게 좀 친절한 할머니라고 해서 내가 어쩔 도리도 의무도 없다. 아니다, 걱정을 좀 덜어주자는 묘안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노인들은 어쨌거나 집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까, 요양원에 보내져서 갇혀있는 노인들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말해줄까 보다. 남편 친구들만 봐도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 경우가 꽤 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근무하는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판검사도 심지어 의사도 부모를 시설에 의탁한단다. 누구라도 자신의 일상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데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볼 수 있는가 말이다. 요양원에 있으면 적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잘 재운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 시절이 되어서 요양원은 출입금지 시설이니까 감옥 그대로다. 오래 사는 것이 감옥 갈 일이다. 감옥 갈 일이면 죄다. 무기수. 먹을 것이 있고 깨끗한 잠자리가 있는 것만 다를 뿐, 고려장이다. 산속에 버려져 빨리 끝나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다. 요양원 이야기는 상황을 더 나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이 할머니는 요양원 노인들까지 걱정할 것이니까. 하등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들, 산재사고며 아무튼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에까지 목을 맨다. 실질적인, 뭔가 해결 가능한 염려가 아니다.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걱정을 해도 올 것은 오고, 걱정을 안 해도 올 것은 온다. 평을 하긴 좀 그렇지만, 굳이 말하자면 뭔가 생산적인 것이라곤 없다. 아파트 생활 몇 십 년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살고 있으니 재테크도 꽝이었겠고. 이제 와서는 온전치 않은 남편에 대한 배려 때문에 이 낡은 집을 고수한다니.

    아무튼 재테크는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해둔다는 것이 남편과 나의 원칙이다. 그래서 기어코 건물주가 되었고, 편한 아파트 대신 3층 한편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또 집에서 3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농가주택은 너른 밭이 주무기이다. 처음 그 밭에 서 있던 감격, 감격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코와 눈은 정직한 기억을 알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대한 실망감보다 더한 것은 축사가 있었던 자리에서 넘실대는 지독한 냄새였다. 냄새만이 아니었다. 발아래 땅은, 그 흙은 짐승들의 배설물 흔적으로 뒤범벅이었다. 환경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사람이라, 이제는 곧 감자 도랑을 골라주고, 계란껍질이며 좋다는 것 다 가져다 쌓아둔 비료도 흩뿌려야 할 때임을 안다. 멋대로 자란 봄동이라도 캐오면 이집 저집 나누어서 좋다. 집은 며칠 잠을 자도 좋을 만큼 보수되었고, 무엇보다 큰길에서 멀지 않은 지리적 조건은 언젠가는 크건 작건 복덩이가 될 것이 확실하다. 지금이야 불편한 것이 많지만, 참자, 견디자. 아직은 베이스를 넓히는 데에 몰두하는 거다! 최소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노인이 어떻게 살든 흉볼 일은 아니다. 나도 우리도 노인들이 되어가는 것을 어쩌지는 못한다. 노인이 되어 죽는다, 그것이 진리다. 그것도 다행스러운 코스일까. 갑자기 닥치는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일 것이다. 간호사의 남편도 또는 부모님도, 의사의 아내도 또는 부모님도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고, 더러는 의사 자신도 세상을 뜬다. 엄마의 담도암도 엄마나 우리들 탓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미리 절망을 말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의 이 말은 여러 선생님들한테서 들었다. 특히 고2 때 담임 선생님 말로는 ‘종말이 온다 해도’ 안 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된다고 믿고 사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고! 이익! 종말을 믿고 탕진해버리면 종말이 오지 않았을 때 어떡하느냐고! 수긍이 가는 말씀이었고, 우리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그리 알고 살아간다. 그런데 최근에 잠깐 그 해석이 너무 시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익이란 결과를 말하는데, 어쩐지 이 격언은 태도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멋있는 철학적 문장이 세속적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명언은 명언이지만.

    게다가 그 사과나무 명언은 낭패감을 불러온 적이 있다. 내가 언젠가, 무슨 경우였더라? 아무튼 내가 좀 아는 척을 하고 싶었을 때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슬쩍 말했다가 딱 걸렸다. 이 집 할머니가 다른 말을 했다. 그게 스피노자가 아니라 루터의 말일걸요. - 루터요? - 예, 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가톨릭에서 파문당한 사제요!

   아는 것이 병이다! 이 할머니는 가끔 그것을, 아는 것이 병임을 상기시켜 준다. 사과나무가 스피노자의 말이면 어떻고 루터면 어떤가.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 루터라는 이름을 콕 짚어서 알려줘야 했는가 말이다. 나는 순간 반박할 말을 찾았다. 사과나무를 루터가 말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누가 말했거나 좋은 말은 좋은 말이죠. 하지만 루터는……. 얼른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계속했다. 그래요, 누구면 어떤가. 루터가 직접 그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도 없잖아요. 다만 고향에, 독일 어디 시골 ‘루터의 집’에 그리 새겨져 있다고 하니까. 애초에 엄청 인기 있던 신부였잖아요. 성서 강독 교수로서도 완벽했었고, 무엇보다 어려운 라틴어 대신 쉬운 독일어로, 우리나라 같으면 한문이나 영어를 안 쓰고 순 우리말로 설교를 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신부님이 어찌 결혼을 하고, 그것도 파계한 수녀님과…….

    결혼, 그거야 나중 일이었죠. 세속의 아버지에게 손자들을 안겨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대요. 파계했더라도, 파계했으니까, 수녀들도 인간적 권리는 있는 것이고. 어쨌거나 루터가 하느님의 구원을 의심한 적은 없었으니까. 임종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되뇌었다는 성경 구절 아세요? 하느님께서 세상에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으리라, 그런 비슷한 구절인데, 난 잘은 모르잖아요.

    네, 그거 있어요, 요한복음에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그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다, 비슷하게라도 어떻게 아세요? 신자도 아니라면서요.

    성경 공부야 젊었을 때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기억에 남은 구절도 있는 것이고.

    맞아요,  신자 다 되셨네여.

    말을 하다 보니 부끄러워졌다. 내가 신자라서, 신자라고, 이 할머니를 좀 아래로 보며 말한 것 같았다. 고백하지만 나는 C학점도 받기 어려운 신자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나도 모르게 성호가 그어지곤 했다. 늘 반성의 마음은 있다. 수녀님의 형제자매이면서 게을러터졌음에 부끄럽다. 알면 무엇 하는가.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을 때, 돌아가셨을 때, 그런 때나 기도에 매달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도 작은언니가 수녀님이니까 기도를 잘하실 테지, 하는 의타심이 컸다. 그러다가 곧이어 막상 우리 수녀님이 아팠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늘 실천이 부족하다. 밥을 먹을 때,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정도다.

    습관적으로 판에 박은 기도문이 튀어나온다고 해서 내가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흔한 보통 사람, 현실적인 사람이다. 스스로 현실적이라고 말하다 보면 삭막한 느낌도 든다. 현실의 반대는 꿈인데, 꿈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내 꿈은 현실적이었던가. 남편에게 홀렸을 때 무엇보다 그의 무한 생활력을 보고 매력이라 느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기도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한에서 현실적으로 유불리를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어때서. 그런데 남이 말하면 이기적이라고 흉보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말은 어렵다. 말의 뜻은 말하기에 따라 듣기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때문에 느닷없이 가벼운 다툼도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설 며칠 전이었다. 남편이 저녁에 늦는대서 게으름을 부리고 뭐 적당히 사 먹고 말지 싶어 편의점에 갔다가 세탁소 언니를 만났다. 웬일로 안쪽 한편의 옹색한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누구랑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더니만, 핫바만 들고나오려던 나를 불러 앉혔다. 웬 맥주, 추운데, 하면서도 나도 의자를 당겨 앉았다.

    동네 사람이 아닌지, 처음 보는 아줌마는 이런 시절에 화장기가 좀 과했다. 그런데 그 빨간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라는 게 가관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지 그럼. 세상사 안 그래? 당근 제 식구들 감싸게 되는 거지! 아무려나, 집값이 고공행진이야. 세금 폭탄은 어쩌구…….

    먼 말이 그래? 집값 올라서 누가 싫어하간디? 가만 안거서 5억이 10억 돼서 나쁘달 사람 누구여? 집값은 올라라 올라라, 세금은 아깝다, 건 아닌겨. 세금 덕에 늘그막에 가용돈 걱정 줄잖여. 기초 받는 노인들 은근 많더만. 우리도 곧 노인이여! 세탁소는 지원금을 편들었다.

    어느새 내가 끼어들고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거라니, 좀 어폐가 있소. 힘 가진 사람덜이 팔이 굽는 대로 즈그 편 부자덜만 감싸불먼 된다요? 힘없는 가난뱅이덜은 어짜라고! 긍께 우덜은 부정식품이라도 묵어야제이. 여그 편의점에 부정식품 싼 놈으로 조까 없으까?

    3층, 왜 그래, 그만 혀! 가난하도 안한 사람이 왜 흥분혀! 세탁소가 달랬다. 둘 다 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바 아줌마도 힐끗거렸다. 머쓱해진 나는 냉큼 일어났다.

 

    한 블록도 안 되는 거리, 바깥바람이 찼다. 그나저나 내가 세탁소와 편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순 전라도 말이 튀어나온 것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말 때문에 나를 서울 출신으로 아는데 웬일이었을까. 이제 서울 가면 순 전라도 아짐씨라 하게 생겼다.

    보도의 돌멩이가 발끝에 걸렸다.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구르는 돌멩이 같은 인생, 밑바닥 인생이 최근의 화두였다. 극빈에다 못 배운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그런 게 필요한지 그조차 모른다고, 티비에서 그런 말 때문에 한 며칠 술렁였다. 어쩐지 불편했다. 고졸 간호조무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던 시절, 못 배운 채 극빈했던 나는 자유를 알았을까. 24시간 돌봄 놀이방에 백일 된 아기를 맡기고 출근하던 가난한 엄마는 자유를 알았나. 중간에 야간이라도 대학을 다녔고 경차라도 내 차를 끌고 다니는 지금은 자유를 알까. 자유가 뭘까. 아리송했다. 가난한 자는 모르는 자유! 맞다, 이것이 명언이다. 밤중에 무지개 타령을 말자. 애꿎은 보도블록을 쿡쿡 찼다. 쓸쓸한 마음으로 집에 올라오니 빈 방이 유난히 텅 비어있었다.

 

    남편은 그리 늦지는 않았고, 오도카니 앉아있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왜 저녁도 안 먹은 폼으로 그러고 있어, 좋아하는 티비도 안 보고? 그리 묻는 남편이 그날따라 맹맹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여보 당신은 자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뜬금없이 대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둘이 함께 일했던 병원의 원장이 큰 병원으로 들어가는 통에 순간 실직을 맞았었다. 첫 직장에서 그리 쉽게 실직이라니, 엄청 충격이었다. 곧 다른 병원에 취직을 했지만, 남편은 투잡 대신 저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해냈다. 철밥통으로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니까 자유로울까. 직장에는 사다리가 있잖은가. 남편은 기껏 집에서 채널 독점이나 하면서 자유를 누리는지도 몰랐다. 퇴근할 때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프로라도 보고 있으면 남편은 화들짝 채널을 바꾸곤 했다. 그런 델 왜 보냐고! 신문 방송이란 대중이 비판적 생각을 못 하도록 서커스를, 예능이다 트로트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입만 열면 ‘정치에, 공공의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더 악한 놈들한테 지배당한다고’, 누구랬더라, 난 참 외국사람들 이름에 약하다, 암튼 고대부터 내려온 불변의 진리라고 했다. 둘이 사는 집안에서도 자유는 구겨지기 십상이었다. 남편은 이런 내 기분을 모르는 거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모른다. 밖에서고 안에서고 구겨진 밤이었다.

 

 

    오늘따라 세 시간이 좀 지루하다. 잠깐의 산책이 움직임의 전부였다. 땅 위를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둣빛 기운들을 바라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새순이 꿈틀거리는 봄날들엔 일단 대문을 열어야 한다. 나야 정해진 시간이 되면 훌쩍 일어서서 나가면 끝이다. 몸조심하세여! 낼 봬요! 아님, 담 주에 봬요! 그다음은 정적일 것이다. 집안에 활기라곤 없는 노년. 보도 듣도 않는 텔레비전이나 틀어져 있는 답답함을 어쩌고 살까. 코로나도 일상이 되어가면서 무디어지고 있고, 무디어진 만큼 무서움이 덜해간다. 무서워져 가는 것은 정치판 뉴스들이다.

    요즘 참 어지럽네. 하늘 높은 거드럭거림에 업신여김에 이런 저런 분노에. 하지만 이것은 내 생각인데요, 분노는 힘이 되지 못해요. 자조에 빠지게 되거든. 지금 머릿속에서 맴도는 시, 옛날 시인데, 눈이 컸던 김수영, 들어볼래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이 할머니는 심심하면(?) 시다. 눈 큰 옛 시인을 내가 어찌 알아. 근데 시가 뭐 이러나. 왕궁, 왕궁의 음탕함? 난데없이 왕궁?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다. 아까처럼 길 잃은 노인들 걱정이 백번 낫겠다. 할머니에게 들킬세라 속으로 기도문을 왼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하느님은 우리를 유혹과 악에서 지켜주실지 모르나, 뉴스는 구덩이로 도배된다. 단순한 불운으로 무너지는 건물 아래에, 아님 필연적인 일, 밥벌이를 하던 중에 느닷없이 펄펄 끓는 용액 속으로, 기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뉴스를 바꿀 수 있는 기도가 있다면 좋겠다. ‘야훼여, 모르는 체 마소서. 나의 힘이여, 빨리 도와주소서.’

    그렇게 억울하게 속절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저절로 여물어 내린 토지에서와는 딴판으로 양분이 없어요. 울분만 쌓여있을 걸요.

    울분만 쌓여있는 땅이라고? 그럼 어떻게 새순이 나랴. 가슴이 덜커덩, 이내 의기소침해짐을 느낄밖에. 이건 내가 아니다. 어려움을 참고 노력하면 분명히 대가는 온다고 믿으며, 단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내가 왜 흔들리는지. 나는 현실에 뿌리내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가르침은…… 이제는 무용지물인가.

    아냐, 울분보다는 분뇨, 그래 소똥이 쌓인 게 백 번 천 번 낫다. 올봄엔 우리 소똥 밭에 사과나무를 심자고 해야지. 웬 사과나무? 남편이 물으면, 아침마다 사과를 따먹는 상상이 즐거워, 라고 말해야겠다. 산림조합에 사과나무 묘목이 나올까. 옥천 묘목시장까지 가야 하려나.

 

    드디어 태그 시간이다. 몸조심하세여! 담 주에 봬요! - 주말 잘 지내요, 지 선샘!

아, 이 신선한 바깥 공기. 차로 바로 가지 않고 큰 나무 둥치에 기대어 본다. 나무 아래는 달콤한 수액의 향기가 섞여 코끝이 촉촉해진다. 눈이 사르르 감기며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온통 연두다. 이 봄에 우리 농막에는 새 식구들이 늘 것이다. 사과나무 묘목은 두서너 그루 흙 많이 붙은 분달이로 사다가 돋아놓을 테다. 덩달아 고목나무에서도 새순이 날 것이다. 죽은 나무에서는 어떤 순도 움틀 수 없다는 너무 확실한 사실을 비껴가는 달콤함. 그래, 그 달콤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거야. 누가 뭐래도 봄에는 새순이 움트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백목련은 우아한 자태로 시선을 모을 것이고, 개불알꽃들은 그 푸르스름 작은 몸으로 여럿이 함께 마른 풀잎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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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 『월간문학』 641호 (2022년 7월호), 183~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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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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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2. 6. 14. 11:17

 

 

놀이터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 신광철 사람

 

 

    

 

    놀이터가 쓸쓸하다. 그려놓은 것처럼 정적인 것이, 그네 줄에 미세한 흔들림도 없다. 바람도 없나 보다. 11월은 무엇이든 쓸쓸해 보이는가. 하긴 평상시에도 놀이터는 옛날 같지 않더라. 그네를 좀 타 보고 싶었지만 세력 좋은 언니들이 오빠들이 좀처럼 틈을 내어주지 않던 어린 시절이 아스라하다. 동네 앞 공터에 색색 미끄럼틀이 생기고 시소가 생기고 나서야 여기저기 조금 놀 수 있는 구멍들이 늘었다. 그래도 그네 아래에는 늘 줄이 길었다. 손을 입에 넣고 빨다가 집에 들어오면 얼굴이 먼지투성이라고 핀잔을 듣곤 했었다. 세월이 마냥 속절없이 흘러버린 지금, 아이들 숫자가 엄청 줄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민지세대라나, - 왜 하필 민지야? 그냥 엠제트라고 해도 알아들을 터인데, 엠지든가, 일 없이 남의 딸 이름을 거기다 부르냐고! - 암튼 신세대 아이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해도 애들을 낳지 않을 거라고 한다니까 놀이터가 점점 텅 빌밖에. 코로나도 덧붙여 이유가 된다. 전에는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한쪽에 노인들이 있곤 했다. 놀이터 옆에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고, 거기서 노인들이 뭔가를 해보거나 더러는 그냥 앉아있기도 했었다. 이제 그 노인들도 주눅이 들어서 집에 꼼꼼 숨은 것이리라. 숨어야지 그럼, 살고 봐야지.

 

    그런 어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고발을 당했다. 우리 동네는 아니지만 어디가 대순가. 그 자체로 충격스러운 뉴스다.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웃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그런데 채널이 슬쩍 지나가고 만다. 오전 재가요양돌봄 할머니 어르신 집에서다. 오전 할머니는 뉴스를 잘 틀지 않는다. 바로 다른 채널로 돌려버린다.

    네이버를 뒤져보고 싶었지만, 할머니 어르신은 좀처럼 틈을 주지 않는다. 내가 출근하면 대부분은 교회에 가시는 날이 많고, 집만 아무렇게나 나를 맞는다. 잠깐, 어떤 때에는 의아하다. 혼자서 교회를 다니실 정도면 요양등급에서 흔히 말하는 경도인지장애 정도일까. 그건 치매 전 단계를 말한다. 그래도 거동이 되시는데 돌봄 서비스라고? 물론 혈액암을 앓고 있는 환자이시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 과정은 실제로 돌봄일을 하는 우리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재가요양돌봄 등급이 나왔으니까 서비스를 받는다. 아직은 경증이라서 출입이 가능하시겠지.

    대문을 열면 첫 냄새는 고기냄새다. 치료를 위해서 고기를 드셔야한다. 일단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방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는 빨랫감인지 구분이 가지 않으니까 일단 치워놓고 나중에 물어봐야 한다. 청소가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교회에서 돌아온 할머니의 눈초리는 매섭다. 당신이 없는 사이 뭔가 말끔하게 치워져 있기를 바란다. 오늘따라 더 이것저것을 살핀다. 느닷없이 청소를 의심하는지 말소리가 뾰쪽해진다.

    오늘은 청소도 안 했네이. 멋 했데.

    어르신, 저 오자마자 청소부터 하는걸요.

    아니, 걸레도 쩌렇게 물도 안 묻었구만, 먼 청소를 했다근데.

    아차, 내 실수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 보니까 별로 닦을 것이 없어서 냉장고 앞과 싱크대 밑만 물티슈로 닦았는데, 이도 저도 큰일이다. 이제 와서 걸레질을 안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청소했다고 했으니 거짓말이 되니까. 그렇다고 물티슈로 닦았다는 말은 더더욱 큰일 날 소리다. 설거지할 때 온수를 틀어 쓰는 지 그것도 염려하는 할머니 앞에서 물티슈를 쑥쑥 뽑아서 바닥을 닦았다고 하면 이해를 하겠는가.

    아, 이런 민망함은 생각도 하기 싫다. 사실 이 할머니가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기 전에, 그러니까 작년까지는 치매안심센터에서 물티슈를 충분히 나누어 주었다. 치매환자들에게는 한 달 치라면 모자라기는 해도 일정 양의 기저귀도 제공했다. 그렇다 보니 요양보호사들 입장에서는 사실 집에서는 그리 쑥쑥 뽑아 쓰지 않던 물티슈를 척척 쓰는 습관들이 생겼다. 물티슈가 썩지도 않아서 지구를 망친다거나 몸에도 해롭다느니 그런 것은 호사가들의 말이고, 일선에서야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말이다. 아기용이라고 특별히 따로 나온다고는 하지만, 엄마들이 제 아기들 엉덩이도 닦아주는 것이 물티슈인데. 암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없어서 우물쭈물 넘기고 점심 준비를 하려는데, 이번엔 밥도 먹기 싫다고 하신다.

    솥에 밥 없으까. 새로는 허지 마. 홍시감 쩌렇게 나두고 어째쓰가. 묵어부러야제. 이빨 없다고 홍시만 묵가니, 꼭 요런 것들만 보냉께는.

    자녀분들이 일단 어머니가 임플란트하시느라 고생하시니까 일부러…….

    그런 줄은 알제만, 고기로는 국물이 없간디. 어째 속이 허한 것이.

    그럼 더더욱 밥을 드셔야죠, 홍시는 너무 달아서.

    그람 고구마를 찌제. 고구마도 썩어나간디.

    네, 그러시게요. 홍시도 고구마도 넘쳐나니까 복 받으신 거죠.

    복은 무신…….

 

    아뿔싸, 엎친 데 덮친다더니, 고구마 냄비에서 탄 냄새가 난다.

    아니, 먼 냄시랑가. 냄비 다 태와묵는갑네이.

    아아뇨, 별로 안 탔어요. 살짝 좀 눌었어요.

    머시 그래, 다 타부렀구만.

    부엌으로 쫓아와서 들여다본 할머니는 성화다 성화. 염려마시라, 잘 닦아 놓겠다를 연발하며 고구마를 식탁에 챙겨드리고는 나도 모르게 핸폰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 동작을 보셨는지, 또 뭐라고 그러신다.

    오매, 커피 좀 타 봐, 물이라도 조까 떠 줘보던지. 그냥이사 묵겄어, 목 맥혀서 원. 요리 와서 좀 묵제.

    커피 가루를 컵에 털어 넣고 물 끓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커피가 땡긴다. 참는다. 첨엔 내가 사다놓고 같이 타 마셨는데, 이번에 할머니가 사다놓고는 달라졌다. 이렇게 먹으믄 금세 다 먹어불겄네,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통에 아차 싶었다. 오후에 가서 마시자. 그 집에선 내가 첫날 갔을 때 가져간 보온병의 커피를 보고, 집에 온 손님이 커피를 싸들고 다니면 어떻게 되느냐고 깜짝 말렸다. 그래서 커피는 내가 알아서 마시지만, 가까운 손님이나 친척이 된 기분이다. 주인네가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믹스커피는 손님용, 아니, 아예 나를 위해서 사다놓는 것 같다. 나는 특이한 취미가 없는 것이 편하다. 커피도 아무거나 다 마시지만, 특히 믹스가 땡길 때가 있다. 우리 집이 아닌데 나를 위한 커피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빨리 가자. 그렇게 오전 시영아파트 할머니 집을 나선다.

 

 

    차에 앉아서 시동을 켜고 보니, 서둘러 나와서인지 오후 출근시간까지 시간이 널널하다. 아차, 그 놀이터 뉴스, 기막힌 뉴스를 찾아보자. 다시 시동을 끈다. 놀이터, 아이들, 고소 그렇게 치자 바로 뉴스가 뜬다. 인천 어디, 어디면 어떠랴,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다른 아파트 어린이들이 고발조치 되었다는 뉴스다. 그러기도 하는가, 초등학생 아이들을? 뉴스라지만 무지막지했다. 아이들을 고발한 사람은 아파트 관리소장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견을 따라야 관리소장 직이 유지되는 사정을 생각하면, 고발자는 아파트 입주민들이다. 아니, 입주민 대표자 회장이란 사람이 시켰단다. 시작은 이랬다. 입주민 대표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고는 대뜸 혼을 냈다. 너희들 어디 사냐? - oo에요. - 아니, oo 살면서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 오면 도둑인 거 몰라? 그러고는 가방들을 다 빼앗고 관리실에 억류하라고 데려왔단다. 기물 파손죄로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과 함께. 이웃 놀이터에 가면 도둑? 도둑? 세상에 아이들을! 초등학교 애들을!

    이런 것이 ‘그릇된 정의’인가? 지난번에 조선 천주교 박해 때 이야기를 예를 들어서, 그릇된 정의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를 낳았다던 말이 떠올랐다. 오후 보호자 할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애매했던 그릇된 정의라고 하는 말의 뜻이 이 순간 갑자기 분명히 다가온다. 남의 땅에 들어왔으니 도둑이다, 그러니 고발한다? 아, 이런 것이 바로 그릇된 정의야. 이런 것뿐일까. 권력형 비리 죄목으로 수사하다가 안 되면 사기죄로, 그것도 안 되면 자녀 입시비리로, 아니면 또……. 아무튼 나쁜 놈이 분명하니까 반드시 잡아넣을 테다. 이런 것, 최근에 남편이 속 터져하는 검찰 발 뉴스들도 생각해보니 정의는 허울이다. 남편한테 ‘그릇된 정의’라는 말을 해보고 싶다. 남편은 어떤 사건은 공소시효가 임박했으니까 수사를 안 한다던 뉴스에도 싸늘하게 화를 냈었다. 지난 것도 아니고 임박했다고? 나에게는 별로 화를 내는 적이 없지만, 티브이를 보면서 화를 낼 때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화를 내서 무서울 때가 있다. 누군가가 차갑게 화를 내는 것은 정말 무섭다. 열을 내면서 화를 내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열이 식으면 화도 식으니까. 그래, 세상엔 그릇된 정의가 판치고 있어…… 라고 말해 보자. 내가 이런 어려운 말을 하면 놀라겠지, 아마. 뭐야, 이러다가 늦겠네.

 

 

    오후의 아파트에 들어서면서도 당연히 놀이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싸늘하기는 이곳도 매한가지다. 저렇게 텅 빈 놀이터에 이웃 아이들이 와서 논다고 경찰을 불러? 아직도 그 뉴스가 따라다닌다. 아이들이 없어서 텅 비어있고, 아이들을 오지 못하게 해서 텅 비어 있다. 요즈음은 할아버지 어르신도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신다. 전에는 산책을 나오신 날이면 놀이터 옆 운동기구에서 어깨돌리기와 다리 폈다 오므리기 정도는 하시곤 했는데, 올해 들어서 여름부터는 산책을 아예 기피하신다. 어쩌다가 산책을 나오셔도 놀이터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신다.

 

    내 출근이 살짝 늦었는지, 점심 식탁은 다 차려져 있다. 작은 그릇들에 감자샐러드가 각각 담겨있는 것이 아침 식탁에서 남았나 보다. 어쩌다 그렇게 조금씩 먹으면 맛있다. 내가 집에서 절대로 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직장 일을 했으니 손 가는 음식은 꽝이다. 재빠르게 차려 먹고 설거지는 남편이 거의 맡는다. 새로 만든 상치 겉절이에는 흰 깨가, 메밀묵 무침에는 검은 깨가 뿌려져 있다. 요새 두고 먹는 연근조림에는 잣도 듬뿍 들어있다. 간장에 졸여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언젠가, 전라도 사람들은 깨나 잣을 많이 쓰는 것에 내가 놀랐다는 말을 했더니, 그것도 식재료라고 생각하고 일단 무엇이든 많이만 먹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큰 냄비에는 국이, 작은 냄비에는 맹물이 끓고 있다. 밥을 차리고 나서 누룽지를 끓일 물이다. 달걀 물에 파가 송송 썰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북엇국일 것이다. 나를 보더니 그제야 국에 달걀 물을 푼다. 역시 북엇국이다. 기본 영순위인 물김치만 시원하게 내오고 밥을 차리면 된다. 요즈음엔 나도 새로 지은 밥이 더 맛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이어트는 저녁에 하면 된다. 점심 후 설거지는 내 당번이다. 그리고 커피 타임. 오늘따라 오전부터 마시고 싶었던 커피가 달달하고 맛있다. 핸드폰 소리다.

 

 

    딸아이다. 아이는 아니지, 임신 6개월인 딸아이가 아이는 아니다. 이 시간이면 근무 중일 텐데 웬 전화일까. 엄마가 일하고 있는 것도 모르지 않을 텐데. 애가 전화를 하는 시간이 아니다. 방정맞게 염려가 먼저 스친다.

    엄마는 방정맞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염려가 사실이 된다. 딸애가 점심을 먹고 다시 근무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으로 가는 중이란다. 병원으로, 임신 6개월 된 임산부가! 어쩌면 좋을까. 임신 6개월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기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는 시기다. 열이 나거나 두통이 아니라 배가 아프다고? 다른 방법이 없다. 무조건 딸애를 보러 가야한다. 오후 돌봄 집에 들어오면서 출근 태그를 찍은 것이 겨우 한 시간 남짓이다. 지금 찍고 나가면 오후 근무 전체가 무효다. 그렇다고 시간을 다 채우고 갈만큼 내가 배짱이 있는 엄마가 아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먼저 한다. 식탁에 함께 있던 할머니는 뭔가 다 알아들었겠다.

    운전 조심해서 먼저 내려가요. 근무 끝나고 나도 곧바로 갈게. 남편은 언제나 정답을 말한다. 전화를 끊기가 바쁘게 할머니를 쳐다본다. 할머니도 나를 보고 있다. 말이 필요없다. 알았어요. 지 선샘, 놀라지는 말고 어서 가 봐요. 운전은 천천히…….

 

    유산은 자궁 내막이며 내벽을 상하게 할 수 있어서 문제다. 더구나 6개월 이럴 때 라면 출산과 똑같이 관절이며 자율신경 균형이며 모든 것이 깨질 거다. 간호조무사 생활 첫 시작이 바로 산부인과였다. 나는 아무 탈 없이 임신 9개월을 보냈고, 원장도 산후 2개월이나 쉬도록 해주었다. 역시 산부인과였다. 내 딸은 그런데……, 태동도 한참 전에 느꼈다는데……. 말도 안 돼, 첫 유산은 다음을 장담할 수 없기도 하다. 조기 출산이어도 애매하다. 생존 가능성이 너무 낮다. 잘 해야 25퍼 정도. 몸무게가 2.0은 되어야 한다. 무조건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한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딸애는 건강한 편이니까…….

    집에 가서 뭐라도 챙겨가야 하나 하는 마음과 곧장 딸애에게 가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 집에 다녀간다는 말은 거의 한 시간 차이를 낸다 싶어서 그냥 맨몸으로 고속도로로 향한다. 얼굴을 일단 보자, 그래, 만나 보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고, 운전 중엔 어떤 전화도 받지 않는 원칙 같은 것도 아무 소용없다. 사위 번호가 뜨자, 정신없이 받는다. 어떤가, 나 지금 내려가고…….

    아, 장모님, 어머님, 민지 괜찮아요. 일단 누워서 안정 찾고 있어요. 천천히 오…….

차의 속도 때문에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전화기는 하필 시트 어딘가로 빠져버린다. 하느님 맙소사. 아니,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그동안 하느님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지 않았었는지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소리로 불렀다. 주님, 온 마음으로 기도하오니 또 하나의 생명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위대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셨음을 압니다. 하찮은 저를, 저의 딸과 그 딸애를 가엽게 여기시어……. 눈물이 쏟아져서 갓길로 차를 댄다. 숨을 고르며 찻길을 보니, 말이 고속도로이지 이른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차들의 왕래가 번잡하지는 않다. 내가 겁이 많은가. 좀처럼 다시 노선으로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마음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주시듯

    헤아릴 길 없는 권능과 자애로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바닥까지 낮추시는 분.

 

    언젠가 들었던 신부님의 기도 소리가 귀를 울린다. 마음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 그래 꼭 구해주실 것이다. 별들에게 이름 지어주시듯……. 맞아, 우리 아기 이름도 지어주시고.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엉? 가난한 우리를 일으키시고, 그런데 악인을? 가난하지 않으면 악인? 반지하에서 신혼을 보냈던 나는 충분히 가난했지만, 지금은 임대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받고서 살아간다. 세 든 사람들이 가난하면 나는 그럼 악인? 이런 내용이 이해가 안 된 채로 걸려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묻지도 못한다. 나는 시원찮은 신자니까. 나는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문제다. 신부님의 기도들을 100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 새삼 이 어려운 기도를 되새김할 때인가. 어서 가자.

 

 

    병원에 도착해서도 민지를 만나기는 수월치 않았다. 코로나 검사를 해놓고 근처 분식집에 앉아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오후 늦게야 애 얼굴을 보았다. 지금은 웬만한 상태로 회복되어서 링거액을 꼽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지금은 아이마냥 배시시 웃기까지 한다. 태중의 제 아이를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웃음기를 돌게 하나 보다. 이삼일 외근이 좀 있었다는데, 그 피로가 쌓여서 그리 된 것 같다고.

    임신부가 웬 외근인가 싶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한 민지는 평소에 사회생활에서도 여물기까지 하다. 대학을 일류대학 일류학과로 진학한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하자마자 꽤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과 더불어는 사표를 냈다. 엄마로서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표를 내는 것이 생활을 남편 직장 있는 지방으로 합치는 것이라서 실업수당을 받았다나? 실업수당이라니…… 참 좋은 나라다. 그러더니 어느 기간 후에는 다시 임시직이지만 비교적 안정된, 정직으로 전환되어도 좋을 직장엘 들어갔다. 기본적으로는 사무직이지만 가끔 외근이 있다고 했다. 허니문 베이비까지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해도,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들인데 아기 소식이 없는 것만 살짝 걱정이었다. 그러다 기다림에 지치기 직전에 임신이 되었으니 그 또한 마음대로 되는 듯 했다. 계획도 다 서 있는지, 출산 직전에 그만 둘 예정이란다. 그러면 또 실업수당을 받는 것인지. 아직 나이도 어린데 매사에 믿음성 있게 처신한다. 나는 그 나이에 엄마가 되었었지만, 세상 물정은 잘 몰랐다. 남편에게 처음부터 의존적으로 살았다. 무조건 절약만 하면 되는 줄 알았었다.

    딸애도 혜택을 누렸지만, 그래서 좋은 것이라 느끼지만, 실업수당 제도는 좀 묘한 데가 있다. 요즘엔 간호조무사들만 해도 1년 미만 퇴직금과 거기에 더해서 1년 미만 연차 수당을 받고 퇴직한 다음에, 이제 6개월인가 실업급여 챙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했다.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몰라도, 규정에 맞춰 설계를 한대나? 요즘 젊은 아이들 똑똑한 것이 바보 같은 내 눈으로는 살짝 무섭기도 하다. 나 젊었을 때는, 스무 살 나이로 간호조무사 노릇을 시작했을 때는, 그 일은 병원에선 바닥을 기는 일이었다. 내가 없음 간호사들이 힘들다, 의사들도 힘들어진다. 결국 환자들에게 처음 필요한 사람은 나다. 얼마나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지나온 시절이었나. 요즘 아이들은 똑똑하다. 똑똑해도 불운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민지는 이번에 태아를 지켜냈다.

 

    사돈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녁 때 두 분이서 함께 다녀가셨다. 맏며느리가 첫 임신 중 입원했다는 소식에 얼마나들 놀라셨을지, 다행이다, 다행이고말고. 뭔 일 있겄냐. 시어머니가 애를 붙들고 하도 설레발을 치니까 시아버지가 말릴 지경이었다. 사돈이 저녁을 사셨으니 내일은 점심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올라가야겠다.

    사돈네는 들어가시라 하고 다시 병실에 올라왔더니, 안정을 찾은 민지 얼굴과 대조로 외려 사위 얼굴은 파란 채로다. 저녁도 아직 못 먹고. 해서, 낼 출근할 사람은 좀 쉬라고 집에 들여보냈다. 병실엔 어차피 보호자 1인으로 제한이다. 남편은 내려오지 않기로 했다. 딸이 안정된 후 사위가 곧장 장인어른에게 안심하시라는 전화를 했더란다. 나는 오전 수급자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하루 쉬어야 한다고 말해두었다. 오후 집은 헐레벌떡 떠나올 때 벌써 아셨으니까 일 없다.

 

 

    엄마 나 괜찮아, 잠깐 지나간 일이니까 조금도 걱정 마셔! 엄마도 가서 좀 쉬시지.

    언제 왔다고 쉬러 가냐. 아직 괜찮다. 그나 백이 아빠가 많이 놀랐겠다.

    엄만 동백이보다 백이가 더 예쁘게 들려?

    동백 필 때 첫 나들이 가자고 동백이랬다며? 그렇다고 꼭 동백 동백 해야 되냐? 너도 민지 보다는 민아 민아 해버릇해서 민이라고 먼저 나와. 것보다, 너희 입주 예정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잘 꾸며져 있겠지?

    엄마는 무슨 놀이터 걱정을 벌써 하셔.

    아니, 애는 낳기만 하면 금세 자란단다. 내가 너를 낳아서 이 세월이 흘렀다고? 안 믿겨. 넌 돌도 되기 전에 걸음마를 했어. 말도 빠르고. 어린이집엘 오래 다녔지, 엄마가 일했으니까. 건 미안해. 유치원, 초등학교……. 놀이터에선 어땠을지.

    그만 하셔. 엄마가 일하는 애들 많았어. 그렇다고 아직 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놀이터 걱정이세여? 방안에서 가지고 놀 장난감 걱정부터 해주셩!

    얘가 어리광은! 다 나았나 보네. 장난감이야 엄마 아빠가 오죽 잘 준비하겠어. 할머니는 애기이불부터 해줄게. 애기이불이라고 말하면서 조각이불이 떠올랐다. 오후 돌봄집 할머니가 손바느질로 만들고 있는 조각이불 말이다. 최근에 얼핏 보아도 100조각도 넘어 보이는 조각들을 잇고 있었다. 대학에 간, 그래서 기숙사로 독립한 손녀딸에게 보내줄 조각이불이란다. 난 바느질은 절대로 못한다. 생각만 해도 미리 온 몸이 쑤실 듯 아프다. 할 일 없이 그런 걸 꿰매고 있는 할머니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얼핏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서라, 부러워할 걸 부러워해라. 모처럼 마트 말고 백화점 신생아코너에 가서 예쁜 아기이불을 사면된다.

    엄마, 그럼 장난감은 안 사줄 거야? 내가 멍하고 있었는지, 딸애가 다시 묻는다.

    사주고말고!

    그러니 놀이터 걱정은 말아요! 아파트 입주하고 나서 아기 나오니까 좋잖아. 입주하면 예쁜 놀이터는 당근 따라오는 것이니까요.

    그래, 그렇구나.

    엄마, 난 아이들 더 가질 거야. 놀이터에서 혼자는 외로워. 외로웠어. 이웃 애들은 언니든 오빠든 동생이든 누구라도 있었어. 나만 혼자였지 뭐야. 애들 여럿 함께 놀이터 가서 소리 지르고…….

    어머나, 이 이이가 외로웠구나. 언니 동생들 사이에서 자랐던 나로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이다. 나도 남편도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5분의 1, 7분의 1의 혜택만으로, 오히려 무엇인가에 굶주린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나랑 남편은, 빠듯한 살림 일구면서 올인해서 기를 수 있으려면 자녀는 하나면 된다고, 하나라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딸 하나에 최대한 지원하기, 대학까지 아무 걱정 없게 쭈욱! 그런 것이면 최고일 줄 알았다. 대체 무엇이 좋은 조건이란 말인가!

    애를 여럿 갖겠다고?

    그래 엄마, 나 실은……. 나 초등 2학년 때 같은 반 수희 기억나? 같은 동 살던 정수진.

    수진이는 뜬금없이.

    걔네 민수 오빠 있었잖아. 오빤 상급반이라 놀이터에서 마주치진 않았지만 아침 학교 갈 때는 다들 함께 나가곤 했었지. 그런데 놀이터 애들은 수진이가 아니라 내가 민수 오빠 동생인 줄 알았었나 봐. 이름 땜에. 그걸 수진이가 알고서는 화가 났었는지 날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내가 그런 말 한 적 절대 없는데! 요샛말로 그때 왕따였어. 애들은 나만 보면 ‘민지는 민수 오빠 동생 아냐!’ 이렇게 떼창을 했다니까.

    아니, 그런 일이. 근데 왜 엄마아빠한테 암말 안했어?

    오빠를 어떻게 낳아주나. 지나가버렸는데.

    지나가?

    오빠는 차례가 지나가버렸잖아. 민수 오빤 수진이 오빠가 맞고.

    없는 오빠 타령을 여태 품다니. 많이 외로웠구나 싶다. 애들 여럿 낳아서 놀이터에서 언니오빠동생 있다고 자랑하게 한다? 어린 시절의 아픔은 작은 것이라도 오래 가는구나. 또래들 중에는 결혼이고 육아고 다 필요 없다는 말도 서슴찮는데. 화제를 돌린다.

    너 일은 안 하려고?

    아니, 해야지. 애 낳는 건 맘먹기야. 출산지원금부터 시작해서 육아휴직이다 뭐다, 아빠들도 그게 가능하거든. 다자녀 혜택으로 분양아파트 청약도 유리할 것이고.

    다행이다. 이렇게 미래를 설계하는 신혼이 예쁘기만 하다. 이웃 놀이터에서 놀다가 쫓겨나고 도둑이라고 고발된 아이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냉정하다 못해 야비하고 잔인한 뉴스는 태교에 절대로 좋지 않다.

    엄마, 애들 놀이터는 진짜 염려 마세요. 우리 들어갈 아파트 말고도요, 순천 기적의 놀이터 안 들어보셨어요? 엉뚱방뚱이라던가, 엉뚱발뚱이라던가, 그런 놀이터인데, 그 흔한 미끄럼틀이며 그네며 시소 같은 것이 전혀 없대요. 그저 넓은 모래밭과 잔디 언덕에 고목나무들만 늘어선 곳에 개울도 있대요. 『놀이터는 위험해야 안전하다』 그 비슷한 책들을 펴낸 아동전문가가 기획한 것이라고, 벌써 유명해요. 아,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놀이터’ 그런 것도 있대요. 시-가-모-노! 그런 곳에 애 걸음마 잘 하면 데리고 가서…….

    그래 알았다. 엄마가 김칫국부터 마시며 안심하마. 애들 다 데리고 가자꾸나.

    엄마는, 김치도 안 좋아하면서.

    그래, 그래. 엄마가 나가도 너무 나갔구나. 어서 눈 좀 붙여.

 

    아예 하루를 꼬박 더 보내고 집에 돌아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퇴근 시간되기 전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반나절하고도 하루내 쉬고 나니까 공기가 좀 변한 것 같다. 엷어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숨을 크게 크게 쉬어본다. 곤하다.

    퇴근한 남편은 민지 민지 어떠냐를 연발 하더니, 한참 후에야 고생했다며 저녁을 나가서 먹자고 한다. 하지만 이미 씻은 뒤라서 외출이 귀찮을밖에. 대충 시켜먹자고 하고는 아이들처럼 치킨을 시켜서 치맥을 한다. 몇 끼 대충 먹었더니, 배가 불러도 맛이 있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인데, 아침에 얼굴이 붓게 생겼다.

 

 

    아침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는다. 꽤 늦은 시간 젓가락언니의 전화가 밤을 흔든다. 동네 언니다. 최근 들어서는 시절이 시절이라서 잘 만나지 않았고, 잘 만나지 않으면 할 말도 별로 없는데, 언니는 평소의 헤실 거리는 웃음기 대신 목이 멘 소리로 말한다.

    희선이가, 희선이가 잡혀갔어야.

    잡혀가다니! 언니, 그래, 무슨 일인데?

    어즈께 낮에, 사람들이 오더니 잡아갔단다. 애기들만 놔두고, 세상에 그럴 수도 있다냐, 애기들만 놔두고.

    무슨 말이야? 왜 그런 거냐고!

    갸 신랑이 아프잖냐. 저번에 민지 엄마한텐 말 했잖어, 신랑이 심각하게 아프다고, 사구체가 뭐여, 암튼 신장이 어쯔고 돼서 투석을 시작한다고. 이 속없는 가시나가 지가 나서서 그새 이식 어쩌고 하면서 적합도랑가 멋인가 검사하러 갔잖어, 즈그 둘이서 지난주에 서울을. 애기들은 즈그 시엄니가 올라와서 봐주고. 근디 그 유명 병원에서도 방역이 뚫리다니 먼 그런 일이 난다냐. oo대 병원있잖어, 여그는 병원이 없가니, 거까지 가 갖고는. 암튼 간에 보호자 한 명은 병실에 들어갈 수 있응께, 보호자도 당근 코 쑤시고 나서야 들어갔었겄제. 근디 내려 와서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는 거야, 금욜날 잡힌 추가 검사가 취소된 것은 물론이고. 아예 식구대로 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말만 듣고도 무서웠겄제. 그래도 실실 웃더라고, 갸는 2차까지 다 맞었응께, 나도 큰 걱정 안 했제. 근디 글쎄, 식구대로 다 받었는디 가시나 저만 양성 나왔다고. 저만 나온 것은 다행이지만 애기들 놔두고 어쩌냐고, 그냥 펑펑 울더라고. 신랑이나 성한 사람이어야 말이지. 우물쭈물 그러고 있는데, 낮에 사람들이 와서 데려가 부렀다네. 애기들 앞에서, 애기들만 놔두고. 애기들만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서 얼마나 무섭겄어. 외할매라고 가 볼 수도 없는 일이고, 전화통에만 매달려 있제. 애들이라 속이 없긴 하네, 할무니 머 먹고 싶다고 그런 소릴 하고 있응께. 부랴부랴 멋 쫌 만들어서 들고 갔더니만, 아차 싶어서 문도 못 열어보고 문 앞에다 놓고 내려와서 전화를 하는디, 눈물 안 나고 베겨? 대문 밖에서 전화하면 애기들이 문 열고 나와불까 봐서 내려와부렀제. 짠해서 나도 모르게 안아불고 그럴 것인게. 울고불고 난리일 꺼 아니겄어.

    어쩌냐, 언니. 그래도 언니가 정신 차려요. 누군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이런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나 보다. 뉴스에서 백신 접종률이 80퍼에 육박하지만 총 누적확진자는 40만에 다다른다고 해도, 우린 모두 설마 하며 뉴스는 뉴스일 것이라고, 남의 일일 것이라 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40만 가정에 날벼락이 떨어지다 보니 어느 날 어느 집에도 일이 닥친다. 코로나는 사람들을 가른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언니가 안쓰럽다.

 

    속수무책이면서 엉뚱하게도 그 언니가 젓가락언니로 불리게 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젓가락이나 빼빼로처럼 말라서가 아니라, 좀 마른 편이긴 하지만, 젓가락으로 밥 먹다가 날벼락이었단다. 결혼 몇 년 안되었을 때 이야기라지만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이 동네에서 살며 만났을 때다.

    복달임한다고 동네 아줌마들 여럿이서 닭죽을 먹던 때였다. 젓가락언니는 못 말리겄소이, 하고 누군가가 이 언니를 놀렸다. 이 언니가 젓가락으로 살코기를 집어먹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모두 깔깔대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줌마들은 우스개 섞어가면서 그 이야기를 서로 해댔지만, 나는 귀를 의심했다. 몇 십 년 전이라면,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다시피 하고 있는 며느리가 예쁠 리 없는 시어머니가 한말 할 수 있었겠다. 그렇게 젓가락으로 밥을 묵으면 복 달아난다. 숟가락으로 푹푹 좀 떠묵어라. 그러면 며느리의 정답은 하나뿐이다. 네, 네. 그러고서 숟가락을 드는 것이다. 그런데 철부지 언니는, 대박, 오답을 터뜨렸더란다. 그럼,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푹푹 드시니까 이렇게 잘 사시는 거예요? 이 무슨 망발. 너무 순진하다고도 너무 버릇없다고도 어딘가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을 노릇이었다. 내 벌어진 턱은 굳어버릴 뻔했다.

    암튼 그 이야기의 결말은 최악에 가까웠다. 그 길로 시댁에서는 친정어머니 오시라 해서, 친정어머니가 시댁에 가셨고, 시어머니 말씀은 단 하나, 딸 데리고 가시쇼! 물론 나중에나중에 남편이랑 알콩달콩 살면서 들려준 이야기이니까 어디만큼 사실인가는 가늠할 길이 없다. 일단 친정어머니를 따라서 친정으로 갔다가, 여차여차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댁으로 들어갔고, 어느 시간이 흘러 독립했고, 뭐 그런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아는 동네 아줌마들은 그 언니한테 젓가락여사님이라고 놀리곤 한단다. 아이큐에 관한한 정말 나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왜냐하면 언니가 인간관계에서 1퍼도 이익을 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퍼다 먹이기를 좋아하고, 양념을 아끼지 않아서인지 음식들이 맛도 좋다. 암튼 실제보다, 실제를 모르기는 하지만, 아낌없이 퍼주는 스타일이다. 전혀 되받을 길 없는 상황에서도 그리 잘 하니까, 당근, 누구나가 다 좋아한다. 그런데 사는 일은 그리 잘 풀리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일도 그렇고, 언니 자신도 돈벌이라거나 뭔가 그런 쪽으로 생산성은 꽝으로 보인다. 얼마나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고 있을까. 민지 때문에 잠시라도 애 탔던 뒤끝이라서, 엄마 마음이 더 절실히 느껴진다. 젊은 아이들이니까 별 일 없을 게다, 제발.

 

 

    이상한 일이다. 오늘 출근길에는 오전부터 마음이 편하다. 놀람 속 힘든 상황들을 지난 안도감 때문일까. 삶이 힘들고 아슬아슬한 시간들임을 새삼 느낀 뒤라서 그럴까. 까다로운 오전 할머니 그냥 봐 드리자. 평생 아랫사람 없다가 내가 만만해서 까탈 부리는 노인이니 봐주자. 나이에 맞지 않게 미장원 가서 염색하는 돈은 아깝지 않아도, 온수라면 벌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하자. 평생 습관인 것을 할 말 없지 않은가. 물티슈는 정말 아껴 쓰자. 걸레를 한 번 쓰고 버리다니! 그 할머니 세대의 기준으로 말이 되는가! 아니 썩지 않는 쓰레기니까 내 아이의 기준으로 미래의 기준으로 아끼자! 오후에 커피 한 잔이면 오전 피로는 싹 가실 것이다.

    오후 보호자 할머니는 보자마자 딸애의 상황을 묻는다. 물론 그날 병원 도착해서 바로 전화로 안심이라고 알렸다, 유산기인가 걱정하실 것이 뻔하니까. 그래도 만나자마자 또 걱정을 하니까 또 안심을 시켜드린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순천에는 놀이터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이 들며 내려앉은, 전혀 동그랗지 않은 눈이 정말 동그래진다. 자연스럽게 나는 말을 이어간다. 애들이 분양 받아 들어갈 아파트 이야기인데요, 애를 키우려면 놀이터가 좋아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근교에 아주 멋진 놀이터들도 있다고 하네요. 할머니는 그 말에도 고개를 갸웃 기울이더니 금방 웃음기를 흘린다. 지 선샘, 엊그제 그 놀이터 뉴스 때문에 그러는구나. 그러면서 염려 말란다. 그 뉴스의 후속은 아파트 주민들이 사과하고 대표를 경질하고 그런 쪽으로, 바람직한 쪽으로 흘러간다고.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머쓱해지면서도 안심이 된다. 그래도 들킨 김에 계속한다. 말이 너무 끔찍했어요. 그건 너무 심했어요. 이웃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더러 도둑이라뇨! 이웃인데!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한다. 흥분한 탓에 동네 아는 언니네가 코로나에 습격당했다는 이야기도 나와 버린다. 애들이라 해도 밀접접촉자가 되어 격리에 들어가면 놀이터에도 못 나간다고. 그대로 감옥이라고. 아니, 할머니고 외할머니고 음식을 만들어 가도 대문도 못 열고 문 앞에 두고와야 한다고. 이 할머니하고 무슨 상관이길래 이야기를 꺼내는가. 그 집은요, 먼저 딸애가, 제 남편 투석을 시작했는데, 이식 문제에 나서서 같이 적합성 검사받으러 갔다가 서울 유명 병원 병실에서 걸려왔다더라고. 투석 환자도 양성이 나오면 어떡하느냐고. 아, 아이들만 남은 집, 상상도 안 되는 아이들의 무서움을, 시시콜콜, 아니 울먹울먹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더니 혼잣말처럼, 아니 시를 읊는 것처럼 말한다.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뭐예요? 또 시예요?

    예, 또 시예요. 크게는 이름 없는 노 시인의.

    이름 없는 시인들까지 읽나. 시가 밥 먹여 주나요? 라고 묻고 싶다. 아니, 순간 물었나 보다.

    예, 시가 밥 먹여줘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밥을요?

    그러면서 생각한다. 사람이 눈물로 사는구나. 눈물로 사는 것을 알면, 울면서도 밥을 먹는 것이구나. 시가 밥을 먹여주는구나.

 

    언제나처럼 칼퇴근이다. 문을 나서면 바로 계단이다. 계단으로 들어서는데,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가 힘들게 입구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거운 유리대문은 겨우내 미끄럼 방지라고 써붙여놓고 한쪽 문만 열어두고 있다. 둘 다 열어두면 두 배로 더 미끄러운가? 바깥공기는 아직 차갑다. 퍼덕이는 비둘기 떼도 외면한 놀이터를 돌아보며 저만치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한다.

 
------------------

「놀이터」, 『전남여고문학 』 8호, 2022.5. 241~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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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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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2. 2. 18. 22:43

 

먼지라니, 사람을. 사람이 다 먼지인가…….

읽던 책을 덮고 일어나면서 보호자가 뭐라고 중얼거린다. 오후 재가요양돌봄 ‘어르신’의 보호자 말이다. 이 시간, 보통 때 같으면 당근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고 있었을 텐데 웬일일까. 책을 읽다가 밥시간을 놓치다니, 드문 일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더 쉬고 월요일에 출근했을 때다. 밥은 준비 되어 있었고, 차리는 일만 남아서 조금 서둘러 상을 차린다. 내가 오전 집에서 오후 집으로 바로 이동하는데, 점심은 오후 집에서 어르신을 돌보면서 함께 먹는다. 점심 후에는 보호자랑 둘이서 커피를 마신다. 보호자는 할아버지랑 이야기하고 놀아달라고 한다.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니 깨워보란다. 할아버지는, 어르신은, 점심을 드시자마자 그새 또 잠 속에 빠진 자세다. 이 어르신은 요즘 들어서 밥숟가락을 빼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잠에 빠진다. 내가 청소기를 돌려도, 청소기 소리가 시끄러워도 개의치 않는다. 보호자는 별로 어질러 놓은 것도 없으니 청소는 하루 걸러서 하란다. 실제로 청소기 먼지 통에 올라오는 것도 별로 없다. 그렇다 해도 내게도 3시간 일의 리듬은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그보다 궁금한 말이 입에서 맴돈다. 사람을 먼지라 어쩌고 중얼거린 것, 무슨 말이었을까. 물론 말은 추석 연휴부터 꺼낸다.

추석 연휴 힘드셨지요? 근데 아까 먼지 어쩌고 하신 말씀은 뭐예요?

힘들 것까지야. 지 선샘은 잘 쉬었어요?

먼지 이야기는 잊었나, 그냥 흘려버린다. 나도 그냥 딸네가 왔다 간 이야기, 사위가 오니 확실히 음식 신경이 쓰이더라는 이야기로 대꾸할밖에. 보성 시댁에서 동서들이랑 모였던 이야기도 덧붙인다. 내가 모이자고, 딱 네 집만, 여덟 명 거리두기 숫자는 지켜서 모였었다고. 말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난다. 명절이면 꼭 찾았던 친정집이 하늘이라는 사실, 아니면 땅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판다.

 

이 보호자는 나에게 잘 대해주는 편이다. 꼬박 ‘지 선샘’이라 부르고, 딱히 요구사항도 없다. 나더러 곧잘 ‘이쁜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번에도 맏이도 아니라면서 식구들 불러 밥 먹이고 그랬다고 칭찬이다. 이 보호자 할머니도 추석 연휴에 힘들었을 것이다. 명절이면 인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사실 환자 어르신은 연휴 지나고 더 밝아진 느낌이다. 아까도 꽂히는 음식이 있어 잘 드셨다. 그때그때 어떤 특정한 반찬에 집중하시는데, 그걸 예측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어르신이 연휴기간에 컨디션은 괜찮았고, 산소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놀랍다. 물론 함께 부축할 요량으로 사람들 여럿이 모시고 갔겠지만, 산소에 가는 것은 큰 외출인데. 이 할머니야 사람들 밥 챙겨주느라고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밥이 중한 집이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할머니가 베란다로 나간다. 그동안 물주는 걸 잊고 있었다고 놀라면서. 나도 할 일이 없어서 따라 나간다.

 

나팔꽃 다 치우셨네요, 어머나!

예, 영원한 것이 있나요.

뭐야, 갑자기 철학은! 하긴 이 할머니한테는 나팔꽃이 구원 같았다. 그러기도 한다. 여름 내내 그것을 보았다. 나팔꽃은 저절로 자라고 꽃을 피우는데, 열, 스물, 꽃송이를 세는 할머니는 당황스레 좋아했다. 이제는 허전하리만치 깨끗하게 비워진 공간이 쓸쓸하다 못해 이상하다. 저쪽 넝쿨장미들은 잎들이 여전하다. 할 말이 없어서 장미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어르신이 백장미를 젤 좋아하신 게 아니었다고요? 근데 왜 그걸 사오라 하셨을까요?

예, 느닷없어서 놀랐다 그랬잖아요. 평생 저 붉은 넝쿨장미를 끼고 살더니만, 어쩌다가 백장미 생각을 했을지. 저것들이 죽다 살다 했지만 수십 년 전에 본가 앞마당에서 가져온 것이거든요. 서너 번 이사할 때마다 들고 다녔고.

애지중지하시던 넝쿨장미를 잊으셨다고요? 수십 년 된 걸요?

예. 우리 집에 있는 것들은 거의 다 그러죠. 낡을 대로 낡은, 늙을 대로 늙은.

아, 맞다! 지난해 꽃 피었던 선인장도!

에이, 놀리지 마요! 그건 내 엉뚱한 착각이었구만. 말도 꺼내지 마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그 이야기는 싱겁기는 하다. 작년, 가을이 깊은 때였다. 점심 후 밥상을 널어놓은 채로 이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거실로 들여놓은 화분들이 있는 쪽이었다. 꽃기린, 문주란, 산세베리아 그리고 선인장 종류들을 먼저 들여놓은 참이었다. 거기 뭉툭한 선인장 하나를 가리키면서 더듬거렸다. 키가 다 해도 10~15센티쯤 되는 작은 선인장인데, 침들만 무성하지 볼품도 없는 모양새였다.

여기 꽃 좀 보세요! 이 작은 미세한 꽃, 꽃잎, 보이죠?

꽃잎이라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돋보기를 꺼내서 쓰고 들여다보았다. 이런 게 무슨 꽃이라고, 꽃인들 이런 보이지도 않는 작은 꽃이 뭐라고! 그런데 꽃이었다.

어, 어라? 정말 꽃이네요. 작은 꽃잎이 넷이네. 어떻게 딱 한 송이가 이런 가시들 사이에서 핀 걸까요? 근데 이게 왜요?

그러니까 꽃 맞는 거죠? 꽃이죠? 이게 그러니까 40년 된 선인장이라서.

아무리, 설마요.

맞아요. 울 아부지.

…….

아부지가, 우리가 처음으로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그때 1980년 가을에 가만히 들고 오셨어요. 이게 잘 안 큰다. 그래서 금강석이라 그러지, 변함이 없다고. 오래는 가니까 잘 키워 봐라! 그러시고는…….

그러시고는? 괜스레 조바심이 나서 나도 모르게 채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거든요. 선인장으로 남은…….

뒷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40년 전이라 해도 어른이었네, 뭐. 아직 중학생일 때 아버지를 여읜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되잖아. 이 할머니, 이런 나이에도 감상에 젖나! 아버지 이야기라니! 하긴 나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버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은이 니가 아부지 젤로 좋아혀서 그랴. 아니라고 내숭 뵈지 말어야. 자석이 아부지 좋아혀서 나쁘가니.

청소기를 돌리면서 다른 상념들은 곧 잊었다. 그쪽으로 청소기를 밀고 갔을 때까지도 할머니는 여전히 선인장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해서 또 할 수 없이 듣는 시늉을 했다.

여기저기 몇 시간째 찾아보았는데, 아부지가 말한 금강석이라는 선인장은 없더라고요. 바른 이름은 ‘금강산 선인장’이래요. 군산에선가 60대 누군가가 식물원에 금강산 선인장을 기부했다는 사진이 있더라고요. 여기 캡처, 이것 보세요. 비슷하죠? 이게 아기 세살 때부터 37년간 키운 것이라고 했어요. 암튼 이 종류 선인장이 30년, 40년을 문제없이 살아 있는 거예요. 인터넷 판매도 하는데, 10센티 그 정도. 또 다른 이름들은 암석주, 암석사자…….

할머니는 두서없는 말들을 암기 숙제하듯 내뱉고 있었다.

이제 좀 일어나세요, 여기 청소기 밀게요.

사라져버릴까 걱정 돼서요. 이것 꽃 정말 맞지요? 앗, 지 선샘, 이리 와 보세요. 여기 이쪽엔 두 송이가 피었네요. 너무 작아서 안 보였나봐. 오늘 해가 안 나니까 실내가 어둡네. 이쪽은 두 송이니까 꽃이 분명해. 휴, 살았다. 착각인가, 환시인가, 은근 걱정했거든요. 환시가 무엇인지 알죠,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오늘따라 저이는 내가 들락날락거려도 신청도 안 하네요. 어제 오후에 내 커피를 반쯤이나 슬쩍 마시더니 밤새 잠을 전혀 못 잤다고, 아침부터 아예 누워만 있더니. 지 선샘, 여기 좀 봐요. 이쪽은 두 송이라니까요.

좀 솔깃했다. 세상에 저렇게나 작은 꽃도 있으려나. 그런데 있었다. 어떻게 이리도 작은 꽃이 이쪽 하나 저쪽 둘, 자리도 예쁘게 어울리게 피어났을까.

정말 그러네요. 정말 꽃이에요. 아깐 훅 불어 보려다가 혹시나 해서 못했는데, 이젠 불어볼까요?

에이, 뭣하게 불어요.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40년 동안 한 번도 피지 않았던 꽃이 오늘 피어 나냐고요.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으신 것 아녜요?

무슨 따로 좋은 일이 있겠어요. 좋은 일이라면 어제? 저녁에 외출했던 일, 일이 있었으니까. 근데 어제 우리 할아버지 정말 웃겼지요?

둘이는 그 생각에 깔깔 웃었다.

 

보호자 할머니가 전날 저녁 외출을 했었다. 어쩌다 그럴 때면 내가 그냥 단순 시간 알바로 베이비(?)시터 노릇을 한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일단 안방 이부자리를 살펴주고 있는데, 어르신이 아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줘야 하는데, 내가 남자인데 혼자 집에 못 있는다고 지 선생 붙잡아 놓고, 여자는 밤늦게 돌아다니고! 그 순간 마침 들어온 할머니랑 다 같이 깔깔 웃었다. 밤늦게 아니라고, 일찍 오신 거라고, 내가 대신 변명을 했다.

환갑이 넘으면 남자도 여자도 남자 여자가 아닌 거예요. 그냥 사람이죠.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젊은이가 덜 젊은 사람을 보호해야지요.

할머니가 늙었다는 말을 빼려고 어렵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또 웃음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서 하다가 늙었다는 말에 이르고 말았다. 내가 덜 젊다는 말이냐, 그러다가 그게 더 늙었다는 말인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는, 보호를 해야 하는 쪽이 더 젊은 쪽이니 보호를 받는 덜 젊은 쪽이 낫다는, 할머니의 이상한 우김질로 끝났다.

할머니가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또 선인장 꽃이 피어나서 설레고 있었다. 나도 따라 설렐 일은 아니지만, 워낙 함박웃음 없던 할머니가 확 밝아진 얼굴하고 있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떤 일은 너무 쉽게 무너져버린다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이튿날 만난 할머니는 유난히 퍼렇게 얼어 있었다. 집 안에서도 꽁꽁. 그러니까 꽃이 꽃이 아님을 알았더란다.

잠깐 착각으로 천국과 지옥이네요. 어제는 종일 내가 혼쭐이 나갔었나. 저녁 먹고 나서는 전등불이 밝은데도 것도 모자라 가까이 랜턴까지 들고 가서 들여다보았어요. 또 확인하려고. 그런데 불빛에 자세히 보았더니, 세상에나, 사방에 조금 큰 꽃가루 같은 것들이 널려있는 거예요. 금목서 마른 꽃들이 흩어져서요. 그 지난 주 금목서 가지들을 여기 꽃아 놓았었잖아요. 뒷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놈들 한두 가지 잘라다가. 그때 마르면서 흩날렸던 것을. 그 깨알같이 작은 낱송이 하나만 보고서 전체로 풍성한 금목서 꽃을 상상도 못했지.

네? 꽃이 아니라고요?

꽃은 꽃이죠, 말랐어도, 부분이라도. 그게 선인장꽃이 아니란 거죠. 그 전날 외출했을 때요, 내가 나름 중요한 일을 마무리 짓고 왔었거든요. 이래저래 맘이 들떴었나 봐요, 헛것이 보이게.

헛것이라뇨, 그저 착각을 좀.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아니, 그냥 시시한 일. 것보다 문제는 그 여파죠. 어제 주책을 떨었단 말예요. 근년에 친구가 된 젊은이한테 선인장꽃 이야기를 떠벌렸죠. 톡으로 구구절절, 사진까지 보냈으니. 그리 방정을 떤 것이 넘 부끄럽단 말이에요. 나잇값도 못하고.

나는 차마 말을 섞을 수 없었다. 그래도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 했다.

나쁜 의도로 거짓말 한 게 아닌데요, 뭐.

그런데 그 친구 하는 말이요 – 나이는 딸과 손녀의 중간쯤인데 - 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마지막 잎새」도 가짜였지만 진짜였잖냐고! 그러니 진짜인 거래요. 가짜라도 진짜라고!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이었어요. 위로 받고 싶었었는지.

그러네요, 마지막 잎새!

어제 아침엔 눈물까지 찔끔거리다가, 온종일 들떠서 40년의 절반은 젊어진 느낌이었는데. 얼어 죽을까 노심초사 겨울도 오기 전에 들여놓고를 40년을 반복했지만 키도 그리도 안 자라더만, 언감생심 꽃은.

알았어요, 자, 이제 안심하시고! 추억만으로도 감사, 캄사! 또 누가 아나요? 언젠가는 정말로 꽃이 필지.

 

그렇게 극적인 선인장꽃 에피소드는 애석한 사연을 지닌 채로 짧게 끝났다. 그런데 올여름 어르신의 백장미 사랑은 그 반전의 전개를 알 길이 없다. 빨간 넝쿨장미에 대한 평생의 사랑이 어떻게 잊혔을까. 보호자는 아예 영문을 몰라 하고, 어르신에게서 긴 줄거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노인들을 보면 과거는 곧잘 끊기기도 한다.

 

 

입은 채 그대로 보호자가 나간다. 슈퍼나 코 앞 시장에 나가나 보다. 나는 어르신을 깨우려고 소파로 가 본다. 어르신은 여름 내내 산책이라면 고개를 가로 젓고, 소파에서도 늘 이렇게 누운 자세다. 요즘에는 그래도 재미있는(!) 책을 읽느라고 반쯤 기대어 있는 날도 있다. 깨어나면 책을 읽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책을 좀 읽고 싶다고 하시니까, 보호자가 들지도 못하게 생긴 아주 두꺼운 책 하나와 그 반쯤 되어 보이는 책을 내왔다. 이집에 책들은 많다. 노인들 집인데 엄청 많다. 처음에 읽기 시작한 것은 더 얇은 쪽이었는데 제목이 엄청 길었다. 『천 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의 이별은 있다』 - 그러고 보니, 어머니 상을 마치고 처음 왔을 때 보호자가 했던 말이 이 책의 제목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별 연습 책인가? 어르신은 그 책을 곧 치우고는 더 두꺼운 쪽을 시작했는데 열심이시다. 제목은 우습기까지 하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그 비슷하다. 책에 너무도 관심이 없는 나는 제목을 금방 잊곤 한다.

어르신은 내가 탁자 위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꿈쩍도 안 하신다. 너무도 깊이 잠들어 계신다. 낮잠도 이렇게 깊을 수가. 탁자에 덮여있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이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글씨라 오히려 궁금해져서 읽어보고 싶다. 정말 작은 글씨다. (먼지의 말)이라니, 괄호 속에 쓰인 제목은 정말 먼지 같은 글자로 쓰여 있다. 어르신은 눈을 뜨고서도 움직이지도 않고 대꾸도 없다. 가만히 책을 들어본다. (없지 않은 존재들의 목소리) 라고도 표지에 쓰여 있다. 차례를 펼쳐 보니 ‘이상한 점’, ‘죽었다 아니 죽였다’ 등 조금 무서운 말들이 들어있다. ‘돌연사’, ‘우리들의 죽음’ 그런 제목도 있다. 이렇게 작은 글자들에 너무 엄청난 이야기들이 들어있나 보다. 두 번째 페이지를 넘기려니 손이 떨린다. 서둘러 책을 덮는데 보호자가 들어온다.

 

아, 지 선샘, 책 보려고요?

아아뇨, 저 책 별로 안 읽어요. 그냥 제목이 궁금, 잘 안 보이니까.

먼지라니 놀랬죠? 거기 쓰여 있잖아요, 없지 않은 존재들, 그것이 먼지 같은 인생들 말인가 봐요. 먼지 취급당하는,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말이죠. 약자들에게도 목소리가 있다고, 더 작은 목소리들을 대신해서, 먼지 같은 목소리라도 말 하련다고.

그러니까 아까 먼지 어쩌고 하신 말씀이 이 책에? 왜 하필 먼지라고?

사람을, 약자를 먼지 취급하니까, 먼지만도 못한 없는 존재로 아니까. 해서, 먼지 같은 존재도 ‘없지 않은 존재’라고 항변하는 거요.

없지 않은 거면, 있는, 있는 존재네요.

예, 없는 존재들도 말을 하네요. 작가가 대중들한테 민주주의 강의를 하다가 ‘부자가 왜 나쁜가요?’ 물었더니, 어떤 할머니가 스스럼없이 그랬다네요. ‘나쁜 짓을 안하몬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모은대.’ 누구라도 터무니없이 많이 돈을 모았다면, 필시 남한테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했을 것이라는 거죠. 그 할머니 생각으로.

네?

그런 큰돈이 나온 곳에서라면 다른 누군가는 필시 울고 있다는 말. 평생 살아보고 깨우친 이치가 그렇다는 거죠. 이 사람, 저자 채oo 선생도 해고당한 인문학자고요.

인문학자요?

대학강사 말이죠. 언제부터인가 교육이 완전 실용주의가 되어갔으니 인문학자는 발붙일 자리가 없는 거죠. 인문학은 교수도 인원을 줄이는 판에, 강사들 자리는 풍전등화니까.

대학강사면 그래도, 우린 다 교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야간대학 다녔을 때 말예요, 우리보다 젊은 강사님들, 얼마나 부러워했었는데요.

지식이 돈이 안 되면 쓸모없다고 말하는 거죠. 쓸모없다고 해고된 강사가 ‘먼지로서 먼지에게’, ‘마음이 견디지 못해, 가슴에서 돌멩이 하나를 빼내듯이’ 썼다네요.

고약한 책이다. 대꾸할 엄두도 나지 않고, 가슴만 무거워진다.

고전 철학 때부터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견해가 있었지요. 정확히는 ‘강자의 우위일 뿐’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상대 편, 트라시마코스라고. 이름이야 뭐든.

네, 저 외국 이름들 엄청 약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 핑계를 두리번거린다.

잠깐만요! 어르신 눈 뜨신 건가?

 

어르신 쪽으로 가서 살펴보고 있는 동안에도 보호자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지 선샘, 우리 천주교 신자님! 천주교의 정의를 봐요! 초기 천주교 박해 때요, 죽음을 감수한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정의의 이름이었죠. 칼 든 쪽 정의가 정의인 거죠, 나쁜 정의였지만. 그릇된 바름이 문제죠, 하물며 신앙까지도, 미안!

나쁜 정의, 그릇된 바름, 그런 말이 어딨어요. 더러운 순백색 그런 말이 어딨냐고요! 그렇게 반박하고 싶지만 말이 짧으니 가만있을밖에. 도망칠 기회를 기다리자. 속도 모르는 할머니는 진지하게 말한다.

저 책 『잠들면……』 은 기독교 정의를 실천하러 아마존에 들어간 선교사가 쓴 거예요. 가서 보니까 원주민들은 이미 평화로운 정의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걸 감탄하게 되었으니 선교는 그냥 손들고 말았다는 이야기예요.

…….

선교가 잘 먹힌 것이 우리나라 천주교였지만, 처음 피해는 엄청났죠. 내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나? 천주교 박해니 그런 말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목숨까진 아니라도, 불이익, 느닷없이 해고되고 그런 사람들 숱하게 봤겠죠.

우리가 결혼 초에 근무하던 병원이 급히 문을 닫게 되었던 그때 일이 떠올랐지만 가만있기로 한다. 나는 곧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남편은 밤에 알바로 뛰던 병원에만 나갔고, 곧바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던 기억이 새롭다.

책 거기 스티커 꼽아진 데 펴보세요. 해고된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 강사법 시행에 해고된 대학강사가 거기 ……

아 네, 7,834명이라고. 도살된 돼지 4,700마리와 다를 바 없다네요. 왜 하필 돼지에다 비교를…….

다른 책에 보면요, 신문이었나, 출근 했다가 죽는 노동자가 매일 10명이래요. 이런 현실은 총알 없는 전쟁이라고. 실습 나간 고등학생도 죽었잖아요. 여기 보면, 5년간 건설현장에서만 사망자 숫자가 3,400. 먹고 살려고 일하러 가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죽다니요. 돈 만들어 내는 구조가 죽인 거잖아요.

돈 만드는 구조라고? 점점, 불편한 말들이 속사포로 쏟아진다. ‘죽었다 아니 죽였다’에 쓰여 있는 말인가 보다. 말을 좀 돌리고 싶어진다.

죽인 게 아니라 안전불감증 땜에 그런 거잖아요. 저번 주택재개발사업 현장에서 5층 건물이 길 쪽으로 붕괴된 그런 사고 말이에요. 조심을 안 해서.

바로 그 안전불감증이 범인이라니까요. 하도급 또 또 하도급을 왜 주는데요. 경비 절감이잖아요. 이 책에서는 ‘노동을 갈아 넣고 주식이 버는 돈, 자본의 탐욕이 범인’이라고 하네요. 또 망각이 공범이죠, 무서운 공범들.

공범?

김용균 죽으면 잠시 화들짝 눈물짓다가 돌아서면서 잊어버리죠.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아닌 사람들이 지뢰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꼴이죠. ‘누가 돈을 가져가느냐?’ 사람들이 그것을 묻기 시작했다고. 여기 그렇게. 시작은 희망이겠지요. 무엇인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먼지 같은 존재들도 알고는 있다고.

저, 그런데, 이런 책들을 왜 읽으세요? 사망 그런 것 뉴스에 다 나오는데?

뭐, 다 읽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이런 책을 일단 사는 것이 그저 응원 같아서.

응원요? 읽지 않을 책을 산다고요? 그래서 집에 책들이 많은 거예요?

우스운가요? 입지 않을 옷을, 먹지 않을 음식물을 사는 것 보단 낫지 않나. 어렵거나 맘 불편해서 못 읽는다 해도, 그 글 쓴 사람들에…….

이 집에 있는 책들이, 그러니까 읽지 않은, 읽지 않을 책들도 있어요?

어느 정도는, 예.

어의상실! 이런 할머니가, 병원비다 뭐다 돈이 남아돌아갈 리가 없는 노인이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산다고?

책은요, 책을 쓴 사람 생각으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어차피 누구나 진리를 쓰진 못할 것이고. 결과물이 미흡해도 오류는 사람의 것! 하지만 뭔가 애쓴 노력이, 그 진지함이.

그래도요. 버릴 거면 뭐 하러 책을 사나요. 책도 공해란 말 있잖아요, 카세트처럼.

버려진들 책은 크게 나쁜 쓰레기도 아니네 뭐. 흔적 없이 썩으니까.

오늘은 어째 나쁜 것 이야기를 많이 하시네요.

쓰레기도…….

 

띵똥 – 엄청 반가운 문 소리다. 또 ‘이쁜 쓰레기’ 이야기를 하려나 머리가 아프던 순간에 알맞은 방해다. 어? 부엌 환기통 청소를 하란다. 비대면 시대에 이런 방문도 있나? 하긴 일감이 없으니 방문 청소라도 하러 다니는가 보다. 이집은 청소 전문인걸요, 완전 새것처럼 얼룩 하나 없네요. 안녕히 가세요! 어수룩한 청소업자를 돌려보내고는 서둘러 부엌을 향한다. 일단 도망이다.

 

 

먼지의 목소리, 먼지의 이야기, 이 책은 안 버리겠네요. 우리가 다 먼지인데. 먼지에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인생…….

보호자는 여태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저 불신자의 버릇이 또 나온다. 신을 믿지 않으니까 죽네 사네를 저리 함부로 말한다. 아니, 잠깐만.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바로 창세기에 그런 구절도 있지 않은가. 내가 젤 좋아하는 재의 수요일 미사 때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 순간 신부님의 목소리는 성당의 높은 천장을 넘어 하늘까지 퍼져나가고, 나는 땅에 묻혀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깨달음을 새기곤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다시 보호자 쪽으로 향한다.

저, 그런데 흙은 먼지가 되는 거지요?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여기서 흙이 왜?

아니,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하시고.

못 말리는 우리 지 선샘. 맞아요, 흙으로 빚어졌으니 망가지고 부서지면 먼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걱정 마요. 지 선샘은 영혼을 믿는 신자니까 영혼이 하늘나라로, 해서, 먼지가 될 일은 없겠네요. 안 믿는 나는 아마도 흙이나 먼지가 되고 말겠지만. 괜찮아요, 세상 만물이 다 먼지가 되는 것이니까요.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무섭다니요! 무엇이든 받아들이면 무서울 것이 없답니다. 가난도 병도 받아들이면 덜 무서워요.

가난하지도 병든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이 말도 당근 속으로만 했다. 이상한 말을 잘하는 할머니랑 말씨름 할 일이 뭔가. 하지만 세상에는 살아서도 먼지 같은 인생이 많다는, 탁자 위의 저 글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가만, 떠돌아다니는 카톡에 좋은 말도 많더라. 자기 집 있고, 밥 든든히 먹을 수 있고, 깨끗한 물 마시고, 휴대전화며 인터넷을 하면, 그럼 극소수 특권층이라고! 옳다, 이것이다. 이것으로 대꾸해 보자.

저 그런데요, 집 있고, 밥 배불리 먹고, 깨끗한 물 마시고, 또 뭐더라, 핸드폰 그런 것 쓰면 특권층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세계인구 7퍼 이내.

그런가, 그 정도라는 말 맞겠지요. 근데 7퍼센트 안에 들면 뭐요?

당근 기쁘죠, 그 정도로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죠.

아니, 100명에 70명 정도가 행복하다면 몰라도 겨우 7명 빼고 나머지 대부분은 어렵다는 말인데. 7명 속에 들었다고 맘 편하게 행복하나. 먹고 사는 걱정은 누구라도 안 해야죠. 누구라도 기본 의식주는 되는 세상, 비굴하지 않게 사람답게 살 정도는 되는 세상, 나는 그래야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영생의 하느님 나라 말고, 여기 땅에서 천국.

다 같이 잘 사는 나라? 그런 말 하면 공산주의자인데. 물론 이 말도 속으로만 했다. 이 할머니가 무슨 정당 그런 데 소속일까. 설마, 이렇게 집 안에만 박혀 있는 사람이 무슨. 아니, 이 전에 이 할아버지가 건강할 때, 할머니 활동이 자유로웠을 때?

저 그런데, 젊어서는 일 하셨지요? 무슨 일을 하셨어요?

…….

직장 그런 것.

배운 만큼 일 못했고, 결혼은 그냥 했고, 그것이 삶이니까 살았지요. 따로 뭘 했겠어요. 우리 세대는, 물론 좀 앞서간 친구들도 있었긴 해도, 그냥 거기 있는 삶을 살았지요. 공부를 조금 더 할 수는 있었는데, 잘 써먹을 만큼은 아니었고. 상황도 좋지 않았고요.

어르신처럼 선생님 하셨더랬어요?

아아뇨. 결혼 전 쬐금 하다가 말았고, 나중에는……. 암튼 불발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기회가 없었던 것이 필연이었다 싶어요.

필연?

어차피 쓸모없는 공부였으니까, 쓸 데가.

네?

청년실업이라 하면 우선 인문대 졸업생이죠! 그러니 대학들이 앞 다투어 인문대 구조 조정들 했고요. 취업 안 되는, 돈이 안 되는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거죠.

아, 그럼 인문학 공부를?

하다 그만 둔 공부가 뭐면 뭐겠어요. 학생들 스스로도 교수들에게 뭔가 쓸 모 있는 것을 달라고, 둥지 안의 새끼 새들이 ‘엄마, 나 쓸모 있는 것! 취업되는 것!’ 하고 입을 벌리는 상상을 해 봐요. 그런 공부를 뭐에 쓰겠어요. 나쁜 공부지.

에이, 아까 그 나쁜 짓과는 다르네요.

무엇이 나쁜 짓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죠. 쓸모없어서 식구들 밥을 굶기는 아버지가 나쁜가. 너무 쓸모 있어서 다 쓰지도 못할 산더미 돈을 쓸어가는 인간이 나쁜가.

엥? 나는 정말 머리가 나쁜가 보다. 이 순간 나는 확실하게 어리둥절해졌다. 쓸모없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러니까 쓸모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무능한 아버지가 나쁘다. 그런데 돈 갈퀴질이 더 나쁜가? 무엇인가 기준이 혼란스럽다.

지 선샘, 이거 리포트 주제 아녜요. 잊어버리세요. 성실하고 예쁘게 사는 우리 지 선샘, 건물주이면서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지 선샘! 충분히 쓸모 있는 사람이면서 충분히 좋은 사람! 남편한테 평생 가슴 설렌다는 사랑스러운 사람!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게 아니라, 모범생 맞죠. 일 밖에 모르고, 일 하면 돈을 벌고, 돈 버느라 놀 시간 없고, 시간 없으니 돈 쓸 시간 없고. 얼마나 좋아요. 다만…….

다만 뭐요?

다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쓸모없어도 보면 어떨지요.

쓸모없는 짓을? 아니, 왜요?

그건 숙제네요, 후훗.

뭔가 찜찜한 채로 그렇게 오후 일이 끝난다. 대문을 나오는데 숙제 같은 화두가 그림자처럼 길게 따라 나온다. 차에 앉아서도 냉큼 시동을 걸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말도 안 돼. 쓸모없는 일로 시간을 버리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왜 생각해야 하는데? 쓸모없어 보라는 헛소리, 뭐라는 거야. 생각할 가치가 어딨어! 하지만 어찌 들으면 ‘나쁜’ 짓은 쓸모 있는 사람들을 빗대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쓸모 있는 누구나가, 모두가, 나쁜 짓을 했다는 말은 말이 안 돼. 헛갈린다. 헛갈리지 말자. 머리를 쓰고 계획을 세우고 어렵더라도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먼지가 될 순 없잖아, 살아서는. 먼지로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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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문학 2022.1,2월호 vol.165  168~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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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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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1. 7. 10. 22:35

 

초겨울

 

 

 

초겨울이다. 느낌으로는 초겨울이 제일 춥다. 한낮인데도 쌀쌀함은 누그러지지 않는다. 뺨이 더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은 오늘 시작할 새 일자리로 인해서다. 요양보호사 – 명칭은 길지만 하는 일은 짧다, 시간제 돌봄이다. 첫날은 조건 때문에 밀당도 해야 한다. 흔하디흔한 아파트 대문 앞에서 숨을 고르는 찰나, 첫 번째 시험은 초인종이었다. 하필 초인종이 두 개가 있을 게 뭔가. 첫 동작부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 신경이 곤두선다. 염려는 기우였다. 띵 똥 한 번에 재빠른 답이 온다. 예에, 하는 소리와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가 함께 다가온다. 대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얼굴은 - 누굴까? 돌봄 어르신은 80대 남자라던데, 그러니까 보호자인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오시는 거죠?

아, 네. 오늘 저 혼자 오게 되었어요.

아무려나, 어서 오세요. 아파트 쉽게 찾으셨지요?

네, 뭐.

 

첫 인상은 푸른 나무들로 계절이 겨울인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집이었다. 넓지도 않은 거실인데 한쪽으로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창 쪽으로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즐비했다.

밖에선 얼겠지, 겨울 추위에. 그런데 환자 있는 집에 무슨 화분들을! 하긴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튀어나오는 것 보단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는 흔한 아파트 풍경이었다. 텔레비전, 소파 그리고 탁자. 좁은 거실에 탁자는 크고, 탁자 위에는 신문 잡지들이며 뭔가가 수북하다. 노인들이라니! 소파에 누워있는 사람이 내가 돌 볼 어르신일 게다. 소파에 누운 채, 낮인데, 그래서 아픈 거로구나,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 들락거려도 반응이 없다.

저, 그런데 태그는 어디다가, 출근부 말예요.

일단 집에 들어왔으므로 출근부에 태그를 해야 시간이 기록될 테니까 그것부터 물었다. 여자가 가리키는 곳은 신발장이었다. 뭐야, 날마다 신발장부터 열어야 한다고? 하필 냄새나는 신발장을! 하긴 어떤 집은 환자가 이 낯선 물건을 훼손하곤 해서 싱크대 문짝 안쪽에 붙여놓기도 한다더라. 싱크대고 신발장이고 냄새는 피할 수 없는 자리다. 뭐, 찌든 담배 냄새만 없어도 다행이다.

 

올라오세요. 오늘 이 양반 꿈쩍을 안 하네요. 점심 다 식는데도.

그러고 보니 식탁이 차려진 채다.

집안은 음식 때문이었을지 아늑할 정도로 따뜻하다. 아, 다행이다!

그럼 어르신이 오늘 특별히 아프신 거예요? 치매 5등급, 1939년생, 남자, 그 외엔 별 특이사항 말 없었는데요.

아뇨. 뭐랄까, 반응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지요. 원래도 말이 적은 사람인데, 최근에는 아예 입을 닫고 살지요. 하고 싶은 말은 겨우 눈으로 해요.

눈으로 말을 해요?

예, 그런 셈이에요. 뭔가 필요하면 그 쪽을 쳐다봐요. 그럼 냉큼 집어다 주면 또 말없이 받아들고. 그러니까 탁자 위 신문을 쳐다보면 신문을, 리모컨을 보면 리모컨을 집어달라는 것이고, 저쪽으로 멀리 냉장고를 쳐다보면 물을 달라는 식이지요.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이 집 보호자는 내가 환자 상태를 체크를 하는데도, 내 이름이 뭐냐, 오기로 확정한 것이냐 등을 묻지도 않고, 내가 온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다.

예상 외로 젊은 분이 오셨네요. 나이 지긋한 분 부탁했었는데요. 헌데 진짜 젊은 분이 오니까 집안이 갑자기 팔팔 살아나는 것 같은데요.

 

이건 또 뭐야.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것보다 한참 많이 젊은데, 그런데도 통과라고? 아무튼 이 할아버지 서비스를 맡으려면 조건은 미리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저, 그런데 여기 서비스 와달라는 시간이…….

아, 시간요. 시간이 왜요?

저랑은 딱 맞지는 않은데, 과장님이 일단 가보라고 해서요. 저는 1시에 오는 것이라야 맞거든요.

1시라야 된다고요? 그럼 1시 반이면 못 오시나요? 그런 거예요?

그게 좀, 오전 끝나고 중간에 시간이 많이 떠서요.

어쩌나. 1시부터면 4시에 끝날 것인데, 내가 가끔 4시 좀 지나서 집에 오게 되니까 4시 반까지는 봐주셔야 하는데. 참, 선생님 이름이 지은이 씨라고? 차 과장님이 전화했어요. 지 선생님은 추가시간은 안 하실 거라고도.

네, 저는 해당 서비스 시간만 봐드리고는 끝이에요. 저는 아무래도 1시부터면 좋겠는데요.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갔다가 오기는 너무 멀고, 그냥 오자면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서요.

…….

저쪽에서 말을 쉰다. 생각이 길어지나 보다. 아쉬우면 나한테 맞추겠지 뭐. 난 쉽게 생각했다. 일단 세게 나가자 싶었다. 초면인데 알게 뭐야, 아니면 말고.

시간이 정 맞지 않으시면, 그게. 아무튼 오늘은 제가 일단 왔으니까 세 시간은 해드리고 갈 거고요.

아니, 잠깐만. 뭐, 1시 반부터면 못할 수도 있다고요? 그럼 서로 15분씩 양보하면 어때요? 1시 15분부터, 난 혹시나 늦어도 4시 15분엔 돌아오고.

 

이번에는 내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밀린 것이다. 스스럼없이 시간을 정하고 만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인데 15분을 밀렸다니!

그렇다면 나머지라도 확실히 못을 박아야 한다. 우리 요양보호사가 해드리는 것들 서비스 범위는요, 라고 말을 뺐는데 그것도 쉽게 통과였다. 환자 아닌 가족을 위한 생활지원은 금물이라는 것부터, 책에 써진 것 외우듯이 다 읊어댔다. 내가 놀라는 눈빛을 하자, 센터에서 보낸 파일 안에 다 있어서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부엌에서는 점심 설거지만 부탁한다면서, ‘설거지만’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환자 밥 챙겨 먹이는 것 - 만들고 먹이고 설거지하고 - 그것과 2인분 설거지만 하는 것의 노동량을 따져보려다가 말았다. 음식 만들기가 더 까다로울 테니까. 엉거주춤, 그것도 밀린 사이에 보호자는 말을 이어갔다.

것보다 문제는, 뭐냐면 우리 양반이 말을 잘 안 들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신청도 안한다니까요. 그게 좀 힘드실 거요.

네에, 그거야 우리 일이니까요. 그런데 또 하나, 우리가 움직이는 반경은 멀리는 안 되는 것 아시지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쐐기를 박았다.

멀리요? 산책은 멀리 안 가시는데, 못 가는데.

심부름 같은 것 말이죠, 혹시라도 무슨 심부름이나.

심부름이요? 심부름 무슨?

심부름을 이해 못하는 것이 이 집에선 심부름은 없나 보다. 잘 되었다. 보통 혼자 사는 어르신들 돌 볼 때에는 이것저것 해달라는 부탁들이 많다. 마트며 반찬가게 들르라는 것은 기본이고, 가끔은 엉뚱한 부탁도 한다. 진짜 엉뚱한 심부름 말이다. 심지어 폐지나 병 같은 것, 모아놓은 고물을 팔아다 달라는 부탁을 해서 고민이라는 동료도 있었다. 고물을 모을 정도인데 재가방문요양 서비스라고? 잠깐 의아했지만, 아서라! 복지사회는 좋은 것, 긁어 부스럼 낼 일은 아니다 싶기도 했다.

아, 물론 병원 가실 때는 함께 모시고 가죠! 병원엔 멀리 가더라도 환자의 진료 기록이 컴퓨터에 뜨니까요. 우리 요양보호사 행동반경과 환자가 함께 있으니까요.

엄격하군요. 그래야 하겠지만요. 암튼 그럼 되었네요. 1시 15분에 오시는 걸로.

우물쭈물 일은 결정이 났다. 이 보호자는 일을 너무 쉽게 결정한다. 내가 그만 그 페이스에 밀렸다. 평상시 내 일은 아니다. 뭐, 정 아니면 한 달만 하고 말지. 아쉬운 건 언제나 노인들, 내가 갑이면 갑이지 을은 아니다. 일 할 데는 널려있다. 뭐, 잠시 안하고 쉬면 쉬는 거다. 나는 결코 생계형 노동자는 아니니까.

 

이쪽으로 와 보세요. 여기 안방이 환자가 쓰는 방. 여기 욕실 쓰고. 그런데 주로 거실에 저러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도 자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우선 점심 먹을 수 있게 해야겠어요.

여기요, 일어나 보세요. 오늘 새로 지 선생님이 왔어요. 말동무 해드릴 거요. 손잡고 산책도 하고. 나는 비틀거리잖아요! 어디, 일어나 봐요!

눈치를 보니 내 차례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지은이라고 하는데요. 오늘부터 어르신 돌봐드리러 왔답니다. 어르신, 일어나 보세요. 점심시간이 늦었거든요.

…….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눈매가 촉촉하다. 계속 감고 있어서 물기인가? 아니, 80대라고 했는데 소년 같은 눈망울이네. 백발의 소년이네.

어르신, 저는 지은이고요. 이제 일어나셔요, 식사하시게요. 식사하시고 나서…….

뭐? 지 - 은 - 이? 지은이라? 책을 썼다고? 지은이라면 내가 지은인데, 이게 대체?

입을 연 것은 반가우나, 하필이면 내 이름이 귀에 걸렸나 보다. 인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렸다. 어르신이 벌떡 일어나더니 탁자에서 신문이며 책들을 주섬주섬 치우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아니, 내 책이, 책이 어디로 갔나.

무슨 상황인가. 무슨 책을 찾을까. 부엌 쪽에서는 내색이 없다.

엄마아, 준이 엄마, 내 책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아내를 찾는 모양인데, 그런데도 보호자는 무반응이다.

아니, 어르신, 뭘 찾는 건 나중에 하시고요. 우선, 인사드릴게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이 지은이라고요. 이름이 지은이.

아하, 지가 은이라고. 지씨라. 어디 지씬가?

충주 지씨예요. 어르신은 이름이,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 나는……, 에이, 애들이 어른 함자를 묻나. 내가 내 이름을 모를까 봐?

아유, 어르신, 죄송해요. 어서 일어나셔요. 식사시간이에요.

 

그렇게 해서 점심 식탁에 모여 앉는 데까지 또 십여 분이 흘렀다. 그 상황에 더해서 손을 씻고 오느라고 그런 것이다. 노인들이 화장실에 가면 십분은 기본인 경우도 많은데, 이 어르신도 그런 건가 보다. 대소변 문제는 없나? 화장실 쪽으로 따라가면서 직업적인 걱정이 섞인다. 그 사이 냄비들이 가스레인지 위로 다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었다. 밥과 국이 올라온 뒤에도 한참을 레인지 앞에 서 있던 보호자가 숭늉과 누룽지를 내온다.

뭐야, 숭늉을 먹는 집도 있어? 의외이기도 하고, 이러다가 된통 힘든 집에 걸린 것이나 아닌가 하는 불안도 스멀거렸다.

지 선생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네.

보통은 1시 반까지는 밥상이 끝나요. 오늘은 늑장을 부려서는.

상관없어요. 어떻게 드시나 볼게요. 근데 엄청 골고루 차리셨네요.

뭘 먹을지 몰라서요. 아무튼 이제 말 좀 걸어 보세요! 그것이 문제랍니다. 말을 들어야 뭘 골고루 먹게 하거나 말거나.

맞다, 내 차례다.

어르신, 맛있는 것 많이 차려주셨네요. 여기 동치미, 이 국물부터.

내 목소리는 원래 큰 편이다. 또 여기 사람들과는 다르게 서울말투를 쓴다. 그래서일까? 말을 듣지를 않는다던 어르신이 뜻밖에 반응을 보였다. 비뚤게 앉은 자세도 ‘달래서’바로 잡았다. 그런데 먹는 일에 조금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것 드셔보세요, 그러면 그것을 그릇째로 다 비우려고 한다. 저것 드셔보세요, 그러면 그것을 또 그릇째로 다 비우려고 한다. 아, 얼핏 보기에는 정상인데 인지문제가 있기는 있구나.

 

 

아주 엉뚱하게, 혼자 단출하다 못해 초라한 밥상 앞에 앉아있을 어머니가 아른거린다. 일하는 중에 다른 쪽으로 빠지는 일은 드문데, 스스로 갑작스럽다. 어머니는 아예 밥상을 차리지도 않는 끼니가 많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챙기는 대신에, 돈을 번답시고 생면부지 ‘어르신’의 밥 시중을 들고 있다.

내갈비도 여적이고마 또 도가니탕을 보냈디야. 그리 보내쌓면 뭘햐. 느그덜이나 노나 먹지야. 느그 아부이가 계심사…….

홈쇼핑에서 갈비탕을 사서 보내드렸더니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는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서 아버지 생각을 하신 거다. 그러고서 냉장고에 그냥 쌓아둔다. 누가 집에 찾아가서 함께 굽거나 끓이거나 해서 드려야 드신다. ‘내’갈비라고 하시는 것은 LA를 ‘내’라고 읽으시기 때문이다. 에이자 위쪽이 넓게 쓰여서 그리 보이기도 한다. 아무려면. 드시기만 한다면. 그런데 아버지 말씀 꺼내시는 것이 수상타. 아버지가 고기반찬을 좋아하신 것은 맞지만, 돌아가신 것이 대체 언제 적 이야기인가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신다. 장롱 속에서 모자로도 살아있고, 화장대 서랍 속에도 살아있다. 이 참빗이야, 느그……. 여전히 아버지를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고 사시는 통에, 우리는 어머니 앞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가 언제 되살아나서 우리랑 섞여 앉아계실지 모르는 일이니까.

점심은 드셨을까. 요즈음 엄마한테는 둘째언니가 챙겨 보내는 뉴케어가 답인가 보다. 연명은 되실 테니까. 아버지부터 우리 형제자매들, 그러니까 온통 거구들인 지씨들에 비하면 어머니는 원래 작은 체격이다. 나이 드시면서는 더더욱 작아져서 아기 같다. 아기 같은 어머니는 유난히 추위를 탄다. 내가 엄마를 닮았다. 이런 겨울 날, 추워서 방문일랑 열지도 않고 방안에서 무얼 하실까. 전화라도 하고 지낼 형제자매도 없으시다. 손위 외삼촌 한 분은 돌아가셨고, 다른 식구들은……. 어머니는 문경 외가 말씀을 극히 삼간다. 문경을 떠난 것이 하도 오래전 일일 뿐 아니라,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잠기신다. 문경의 채씨 세거지의 비극, 아니 참상, 아니 학살은 - 멍해 있는 사이 점심이 대충 끝난다.

 

점심 뒤처리를 하는 동안 - 오늘은 첫날이라고 함께, 주로 주인이 치웠다. - 어르신은 다시 거실로 나가서 소파에 ‘제 자리’하고 있었다.

커피 하죠? 점심 후엔 일단 피곤을 덜기 위해서 한 모금. 잠깐 이리 오세요.

저는 가지고 왔는데요. 두 잔째 커피를 따르던 보호자의 말을 내가 막으며 에코백에서 보온병을 꺼내왔다. 꺼내 입으려했던 오리털 조끼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이집은 정말 따뜻하다.

예? 커피를 가지고 다녀요? 우리 집에 오면서 커피를 들고 왔다고요?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겠어요.

아니, 서비스 다니다 보면 커피를 전혀 안 드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또 제가 원래…….

원래고 뭐고, 집에 커피 둘 다 있어요, 아메리카노도 양촌리도.

양촌리요?

아, 밀크설탕커피, 왜 옛날 농촌드라마에서 달달하게 마시던 커피요. 거기가 양촌리였나 뭐 그래요. 아무렇거나, 오늘은 우선 이 양반 병력을 보실래요? 가만, 건강메모 - 여기 맨 앞에는 평생 큰 병 앓은 내력이고, 그 다음으로는 올해 이 요상한 발병부터 간간히 메모 해 둔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내민다. 갤럭시 노트다.

그러니까 지병이 꽤 있었다가, 아, 네, 약간의 인지문제 그거야 보통 그러지만, 루이소체? 이런 종류는 처음인데요. 가만, 환시와 악몽이 문제라고요?

엠알아이며 브레인페트까지 다 검사 했어요. 환시라는 것 첨엔 무섭더라고요. 심한 착각, 착시 그런 거죠. 가끔씩 엉뚱한 질문에 놀라곤 해요.

어떤…….

조용히 앉아 있다가, 우리 지금 둘이만 있는 사는 거 맞아? 이러는 거예요. 누군가랑 셋이서, 어떤 때는 여럿이서 함께 살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의사선생님 말로는 실제로 보여서 그렇다니, 좀 섬뜩할 때가.

그러시겠네요. 그럼 처음보다 더 나빠지신…….

내가 아나요, 병원에서도 검사를 해서 수치가 나와야 알던데요 뭐. 아무튼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을 좀 시켜 보세요. 소뿔은 단 김에 빼랬다고, 1라운드가 중요할 것 같아요. 이리 오세요.

 

등을 떠밀리다 싶게 거실로 나온다. 뒤따라 나오던 보호자는 다시 한 번 우리를 소개한다. 상황을 확실하게 해두려는 것 같다.

저기요, - 남편한테, 저기요? - 조금만 앉아서 쉬다가 누우세요! 오늘 지 선생님, 여기 지 선생님 만나서 반갑지요? 우리 애들 또래 같아요. 먼 데 사는 딸이 왔구나, 그리 생각하세요! 자, 지 선생님!

공이 내게로 넘어 왔다.

어르신, 오늘 저 만나서 기쁘시죠?

대뜸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던 보호자는 자리를 뜬다. 큰일이다. 첫 번째 펀치에서 성공해야할 텐데……. 은아, 힘내자! 할 수 있어!

 

환자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나에게로 집중시키기 위해 내가 가진 기술을 발휘할 때다. 어르신들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혀 먹히지 않는다. 빤히 쳐다보기만 할뿐 입은 꽉 다문 상태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유리창 쪽 제법 큰 화분들 앞쪽으로는 자잘한 다육식물들과 선인장들이 있었다. 촘촘한 가시들이 불안하다. 어찌 보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눈앞에 보이는 화분들로 화제를 옮겨 보기로 한다.

어르신, 아파트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나무를 키우셨을까? 이 키다리, 아니 이렇게 잎들 무성한 것도 있네요. 이 가지는 제 키만 하겠어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어르신, 그런데 이것들 이름 좀 가르쳐 주실래요? 제가 처음 본 것들이라서 궁금하거든요. 요것들은 다육이라죠? 다육이라도 따로 이름이 있다던데. 이 솜털만 많은 꼬맹이 선인장들, 이것들은 또…….

이런 것들 처음 보나? 뭐가 그리 궁금하나?

옳거니. 선인장에서 끌려왔다. 계속 선인장으로 가보자.

이렇게 어찌 보면 못 생긴 것들인데, 죄송해요, 근데 귀하게 귀하게 키우시네요.

갑자기 눈을 들어 이리저리 돌린다. 사람을 찾는가 보다. 보호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아까 방문 소리가 나더니 어느 방에 들어가 있는지 아무 기척이 없다. 어르신이 턱을 들어 부엌 쪽을 가리킨다. 보호자를 오라는 건지, 보호자를 가리키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뜻을 모르겠다.

보호자분요? 할머니요? 안 보이시는데요. 왜요?

저 사람 거요.

아니, 여기서 주인이 따로요?

그것만 중하게 보듬는다 말이요.

보듬어요? 선인장을?

아, 보듬어 키우다시피 한단 말이지. 물어봐요. 밖에도 끔찍이 챙기는 것들 있어.

베란다 쪽으로 턱을 들면서 말한다. 옳거니, 화초들에 관해서 이견이 있구나. 호불호가 다르다 이 말이겠다.

밖에 또 화분들 많아요? 그러네요. 밖에도 많네요. 그럼 어르신은 어떤 것들을 좋아하시나요? 밖에 내다보고 올게요. 같이 보실래요?

아이쿠, 성공이다. 화초를 뭐라 가르쳐줄 게 있는지 부스스 일어난다.

이쪽으로, 예. 자, 가시게요.

정말 베란다에는 놀라울 정도로 크게 자란 선인장들이 고개를 꺾고 있었다. 천장에 닿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리고 자란 것들이다. 불쌍타. 이 추위에 너른 창이 반쯤 열려 있는데도 베란다 볕이 좋은 듯 했다. 아예 온실처럼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넝쿨로 자라는 것들도 여럿 걸려있다.

우와, 선인장들, 소철인가, 아예 꽃집 같은데요. 어르신은 어떤 걸 젤 좋아하세요?

해피트리, 요거 해피트리야.

아, 그런 이름도 있었군요. 해피……. 그럼 이 엄청 큰 나무는요? 나무 가지 요거 젤 큰 거는 제 팔 길이만 하네요. 고무나문가요?

맞아, 요거 잎 끊어지면 그 자리에서 하얀 고무액이 흘러요. 눈물같이 뚝뚝.

눈물 같이요? 어머나 시를 쓰시는 분 같아요.

시를?

예, 시인 같으세요.

시만 쓰면 다냐, 살림이 기우는데…….

네?

몰라, 다 잊었어. 나는 다 잊었어.

입을 다시 꼭 다문다.

어르신, 어르신?

다 잊었어, 다.

그것뿐이었다. 눈을 다시 반쯤 감더니 그런 채로 소파로 향한다. 키 큰 등의자에 부딪지 않게 하려면 손을 잡아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정적이 감돌았다. 사뿐 발자국 소리와 함께 보호자가 나타났다. 뭐라고 부르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울 어머니 또래는 한참 아닌데 어머님이랄 수도 없고. 보호자님이라고 하자니 너무 딱딱하고. 이래서 독거노인 돌봄이 속 편한 것이구나. 이게 뒷북이다,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하다니. 돌봄 대상과 단 둘이가 아니라 보호자와 삼각관계가 되나 보다. 삼각관계라는 것이 연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 돌봄 시간 내내 보호자가 함께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불편감이 확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말아? 집을 나서면서, 아니 나서기 전 5분 전에 조용히 말하면 된다.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요, 저한테는 시간이 아무래도 맞지 않아서요. 이렇게 말하면 감정 섞이지 않은 허물없는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다. 일단은 호칭 없이 말만 하자.

어르신이 다시 주무시려나 봐요. 정말 말씀 없으시네요. 시만 쓰면 다냐, 어쩌고 그러시던데, 무슨 말씀이셨을까요? 어르신 시인이세요?

…….

아무 대꾸 없는 것이 노부부가 똑 같네, 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무슨 반응이 저러나. 보호자는 말은 없이 무슨 주머니 같은 것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잠 잘 것 같다는데 부엌엘? 정적이 괴롭다. 부엌에 따라 들어가 보니 구석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그것을 돌리고 있다. 구수한 향기가 피어난다. 꺼내 온 것을 보니 핫백이다.

낮잠 청하니까 발 따뜻하게 해주려고요.

아, 네, 핫백 냄새가 좋으네요. 뭐예요?

현미 자루. 몇 년 쓰면 알게 모르게 점점 타버려서 바꿔줘야 해요. 한 번 바꿔 넣었어요. 이건 안심이죠. 전기방석은 온도조절 잘 못하면 큰일 나겠더라고요.

아, 그래요. 그러네요. 냄새 너무 좋아서 저절로 잠이 올 것 같네요.

정말 그랬다, 잠에 취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따뜻함! 향기!

 

 

서울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벌써 30여 년 전, 서울 살이 첫 해, 봄여름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고 갑자기 겨울이 닥쳤다. 갓 상경한 젊은 애들을 위한 방은 하나같이 딱 한 뼘 마루, 얄따란 방문, 그리고는 방이었다. 반대쪽에 달랑 봉창이 있었지만, 황소바람은 냉돌까지 내려꽂혔다. 시골 고향을, 따뜻한 아랫목을, 더 따뜻한 엄마 품을 떠올리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면 눈까지 얼굴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우리가 결혼을 했을 때, 그해 겨울에는 따뜻한 몸이 옆에 있었다. 아, 사람도 따뜻하구나. 엄마가 아니어도 따뜻하구나. 처음에는 나보다 더 따뜻한 몸이 내 차가운 몸을 차갑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어느 날이었을까. 애기 기저귀가 모자라서 자다가 밤 빨래를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잠들어 있던 그이가 내 손에 깜짝 놀라 움찔했을 때서야 깨달았다. 내 손이 차가울 때마다 얼마나 차가웠을까. 깨달음이란 언제나 늦게 온다. 그 뒤로는 그이가 내 손을 잡아줄 때라도 손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방안을 따뜻하게 해놓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 맞다. 보일러 더 올릴까? - 뭣 하러, 충분하잖아! 정 추우면 옷을 더 입지! 혹시 이런 대답이 두려워서 추위를 그냥 견뎠다. 지금은 보일러 더 올릴까 물어보지 않고 더 올린다. 춥지 않아도, 춥기 싫어서, 추웠던 날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어디에서나 따뜻해야 몸이 풀리고 마음이 풀린다. 이 집은 일단 따뜻하다. 그것은 합격점이다!

 

지 선생님, 잠이 온다고요?

아아니요!

핫백 같은 것, 이이는 전엔 뜨거운 걸 참 싫어하더니. 나이 들면서 바뀌네요, 사람이. 시만 쓰면 다냐, 그랬다면, 그거 「넋두리」란 시예요. 젊어서 술을 마냥 마시고 다닐 때면 내가 놀렸어요. 시만 쓰면 다냐 / 살림이 기우는데 / 시만 쓰면 다냐 / 공자 말씀에 토나 달고 앉아서 / 술잔에 코를 박고 졸기나 하고, 그런 비슷한 시요. 그땐 못들은 척 하더니만, 그걸 어찌 기억하냐. 소싯적 이야기구만,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그런데 사람이 엄청 변해요. 먹는 것도 완전 달라져서, 게다 새우다 먹는 시늉만 겨우 했던 것들을 지금은 엄청 좋아해요. 평생을 살고도 속마음은커녕 좋아하는 음식도 짐작을 못하네요. 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사람이 늘 한결같던가요?

 

사람이 한결 같은 존재인가, 나이 들어 또는 어떤 상황에서 성품이 바뀌기 마련인가.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이 할머니, 사람을 통째로 연구할 일 있나.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걸까. 인지문제가 생겨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일까. 그래도 생뚱맞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철학을 하재? 그래도 대꾸는 해야 했다.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그래도 사람이 변하는 거라서, 애들 두고도 이혼도 하고.

아무리 얼결이라도 그렇지, 갑자기 내 말이 왜 이혼으로 튀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내 인생에 이혼은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이다. 자라난 곳 청원의 시골 정서에 더해서 가톨릭 신자이다 보니, 한 번 맺어진 인연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배웠다. 요란하게 연애하다가 달리 결혼하는 일들도 가까운 주변에는 없었다. 그런 내 입에서 느닷없는 이혼 소리가 튀어 나오다니.

아니 제 말은요, 연애결혼 해놓고도 싸우기도 하고 혹시 이혼도 하고 그러는 걸 보면요.

 

그렇게 말하면서 정순이 생각이 났다. 일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동갑이라서 친구하는 사이다. 세상에나, 시어머니 중풍 간호를 8년씩이나 해냈다는 착한 정순이. 그때는 요양병원이 흔치도 않았고, 입원한다 해도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겠지. 뇌졸중이 중풍으로 끝나도 온전히 가족의 몫이었다. 그랬던 정순이 이혼을 했다. 이혼을 당했다. 일찍 정년을 한 남편이 단란주점 여자한테 빠졌더란다. 어찌 보면 너무 뻔하고 흔한 스토리인데, 그런 일이 드라마가 아니라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양심은 있었던지 당시 1억5천쯤 하는 너른 집을 팔아서 5천인가를 아내에게 위자료로 줬다는 소문이었는데, 쌤통, 지금 시가로는 15억도 더 간다 했다. 정순은 노총각 동창생을 만나서 재혼도 했으니 덜 불쌍하다. 그래도 흠은 흠이다, 이것이 나 꼴통의 생각이다.

우리는, 나는,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상하게도 그이에 대한 내 감정은 여전히 처음의 설렘에서 퇴색되지 않았다. 불만이 있어도, 내가 싫어하는 일을 그이가 하더라도, 내가 싫은 일을 내게 하게 하더라도, 결국 다 이해해버리고 마는 나는 바보 멍청이다.

그래도 천성이라는 것도 있고, 글쎄요. 얼른 말을 바꾸었다.

나는 아무래도 흑백으로 나누어서 답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다. 딱 잘라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하고 정해본 일이 드물다. 정식으로 이유를 대면서 이 일은 해야 하니까 한다 라거나, 하지 말아야 해서 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서지 않는다. 물론 손익은 반드시 따진다. 계산이, 예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로 쏠리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한다. 그뿐이다. 이런 대화는 머리 아프다.

 

 

익은 멜로디,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내 것이다. 죄송해요, 라고 하면서 얼른 집어 들었다.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일단 어색한 대화에서 빠져나왔으니까.

응, 데레사 언니. 나 지금 일하고 있어서. 아니, 괜찮아요. 좀 있다 저녁에 내가 전화할게, 으응.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데레사, 세례명인가 보다. 엿듣게 되네요, 들리니까. 지 선생님 성당 다니요?

아, 네. 집안이 다요. 얼른 알아들으시는 것 보니까, 여기 어르신들도 혹시?

아니요. 우린 아니에요. 사람은 결국 평생 장님이라는데, 신앙도 없고.

장님요? 평생?

예, ‘사람은 평생 장님이다.’ 괴테라던가, 어디서 본 명언이요. 산다는 게 뭘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니까 장님이라는 거죠.

 

괴테고 뭐고, 평생 장님이라니. 이 아줌마, 사람 멍 때리게 하네. 미래를 설계하고 참고 견디면서 준비하면 보람된 내일을 맞을 것이라고, 그렇게 의심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듣기 허망한 말이다. 기도하고 노력하고 주님의 인도에 따르고. 그런데 이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라니 의지할 데가 없겠다 싶었다. 일 없이 나는 신앙을 권면하는 역할놀이에 들어갔다.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 라고 무조건 시작해보시라고, 피라클리토 성령에 관해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들은 척 마는 척이었다. 이 집 사람들은 노부부가 다 내숭이다. 보호자랑 맞을 필요는 없겠지만, 뭔가 영 엉뚱하다.

지 선생님, 면전에서 좀 그렇지만,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 참 좋으요. 거기다가 신앙까지, 복 받은 사람이요.

제가 복을? 복을요? 웬 복?

전복을! 농담! 지 선생님은 전혀 50대로 안 보이요. 해맑고 건강한, 몸과 맘 둘 다 건강한 사람 인상이라서 너무 좋으네. 잘 살아왔다는 증거인가.

무슨 소리야. 언제 봤다고 농담씩이나! 요양보호사나 하고 있는 나더러 잘 살아온 것 같다고? 보통은 내가 이래 뵈도 어엿한 건물주라는 것을 알 리 없으니, 다들 그저 도우미나 알바 취급 아니던가. 물론 나는 잘 살아왔다. 당장 돈 아쉬워서 일 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시내에는 3층 건물을, 시골에는 농가주택을 가지고 안정적인 노후를 기대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맘 추슬러가며 일하고 모으고 일하고 모으면서 살아왔는데. 곁눈 팔지 않고, 곁눈 팔지 않으려고 맘 잡고, 맘 잡고, 맘 잡고! 그러니까 잘 살아왔는데, 잘 살아왔을 거라고 남이 말하니까, 갑자기 잘 살아오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건 또 뭔가. 지금 어쩌자고 두 타임씩이나 일을 하려는 것인지. 이 자체가 잘 살아왔다는 말과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정말 이상하다. 인상 좋다는 말, 어색하긴 해도 듣기 좋은 말들이라서 이 집을 거절하고 갈 이유가 적어진다. 당장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붙잡으려는 뻥튀기는 아니겠지, 설마. 그런데 이 할머니, 날 언제 봤다고 의심 없이 믿는 눈치네. 어쩐다?

 

보호자는 순간 어르신 쪽으로 다시 가더니 들여다본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는데 그냥 살핀다. 살짝 건드리면서 깨운다.

보세요! 여기 지 선생님이랑 사귀어 봐야지요. 무슨 말이든 해 봐요. 심심하면 지 선생님이 내일 우리 집에 안 올지도 몰라요.

협박 아닌 협박이다. 그런데 그 말에 움찔 반응을 보인다. 어르신이 몸을 일으킨다.

아, 다행이네. 지 선생님, 이쪽으로, 여기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세요. 우리 둘만 있으면 정말 심심해요. 그동안 할 말을 죄다 해버려서 새로 할 말들이 없거든요.

정말 내 차례다.

어르신, 네, 그렇게 앉아서 기지개도 켜시고, 자리에서 운동도 하고 그러시게요. 자, 우선 두 손을 쥐었다 폈다! 이렇게요. 팔도 흔들어 보시고, 어깨도 들썩!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걸음은 잘 걸으시는지. 자, 일어나서 조금 걸어보실래요?

보호자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어르신이 일어나 앉았다. 어깨도 들썩들썩 해 보인다. 아, 다행이다. 반응이 너무 없었더라면 사실 할 일이 없으니 어색할 노릇이다.

자, 이렇게요! 으샤, 으샤! 그런데 혹시 밖에 나가보실 생각 없으세요? 오늘 쌀쌀해도 바람 별로 없어요, 지금 햇볕이 너무 좋아요. 조금 있음 해가 사라지잖아요.

어르신이 두리번거린다. 아내를 찾는다. 아내는 어느 새 반코트를 가지고 나온다. 체크 머플러도 함께다. 더러 산책을 나가곤 했는지, 어르신 혼자서 천천히 겉옷을 입고, 장갑도 끼고 마스크까지 챙긴다. 아내가 머플러를 고쳐 매준다. 예쁘게 매만져주기를 기대하는 소녀처럼 얌전하게 내맡긴다.

마스크까지 중무장이시네요, 요기 아파트 마당만 갈 거 아녀요?

아, 황사를 싫어해서 마스크를 꼭 끼고 나가신대요. 겨울엔 따뜻해서 좋으니 일석이조죠, 그렇지요?

아내도 겉옷을 챙겨 입고 나선다. 자, 그럼, 오늘은 셋이서 함께 산책을 나가 보죠.

오늘 셋이서 함께.

어르신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갑자기 즐거운 기운이 감돈다.

대문을 열자 찬 기운이 확 밀려든다. 좁은 대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켜서 나서면서 나는 이들과 함께 다시 이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한다. 어쩌면 내일도 그 다음 날도.(끝)

 

------------

계간문예 2021 여름호 통권 64호, 208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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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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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7. 10. 7. 01:11

2017. 9.8.

 

창작 노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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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나의 심장에서 이웃들의 심장에서 일렁이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왜 우리는 저 혼자서 제 삶을 생경해하는 것일까. 가을 비 차갑게 내리면 더욱.

 

                                              

                                                  *

 

아침에 서평/논문에 대한 페친의 글을 읽다가 글쓰기와 서평/논문의 관계가 생각나서 옛날에 썼던 글을 올린다. 2004년 『한국소설』 11월호(64호)에 단편 「건들장마」를 발표할 때 함께 쓴 글이다. 그때는 ‘창작 노트’를 따로 써달라고 했다.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몇 해 안 되는 때로, 만나는 사람마다 안정된 교수직에서 왜 느닷없는 소설 쓰기로 곁눈질인가 하는 질문을, 최소한 그런 눈초리를 보내던 때였다. 나는 분명 다른 사람들의 소설 파먹고 사는 일에 지쳐 있었다. 결국 정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강단을 떠났다.

지금은 그럼 행복하냐고? 또 그런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슬쩍 비웃으면서. 왜냐하면 여태 완전 무명이니까.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에서 완전 무명이라는 것을 참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이 오니까 그렇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다.

내리는 비는 맞는다는 것, 오명만도 못한 무명의 비라 할지라도 내리면 맞는 것이다. 또 영영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려니.

 

 

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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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3. 11. 25. 21:23

삼포세대 

 

 

 

 

 

솔직히, 나는 정복한 것보다는 패배한 것이 낫고, 영구적  소유의 독점적 고형성보다는 임시성과 불확정성의 느낌이 좋다. - 에드워드 사이드, 『도전 받는 오리엔탈리즘』 중에서

 

   

  삼포세대라네, 삼포!

  삼천포가 아니고?

  삼천포는 무슨, 삼포라니까. 우리 같은 루저를 삼포세대라요!

  삼포? 어디선가 듣긴 들었는데.

  그래요, 쓰리 포세이큰 제너레이션!

  뭐요, 셋을 포기한 놈들이라고?

   쳇, 영어라야 얼른 소통되는 우린 바로 바나나족이지, 무슨 삼포족. 겉만 누런, 속은 허여니 뼛속은 양놈들이지.

   김박은 삼천포로 빠지는 게 특지지. 뭘 포기해서 삼포냐, 그럴 물어야지요!

   뻔한 것 아뇨.

  이박, 그래도 읊어 봐요!

  입에 담기도, 그게. 그러니까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모두 포기한 세대란 말이외다.

하나마나 한 소리. 그게 다 직장 문제, 돈 문제 아뇨.

  그래도 그게 ‘불안정한 일자리, 학자금 대출상환, 기약 없는 취업준비, 치솟은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인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청년층’ 그 비슷한 정의가 있어요. 재작년인가, 신문의 취재팀이 만든 신조어이지만 정곡을 찌를 밖에.

 

  우린 그렇게 삼포세대라 낙인찍혔다. 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공부 때문에 공부에 심취해서, 그러니까 제법 고상한 삶의 방식 때문에 연애도 안하고 사는 줄로 착각했었다. 그러나 나도 그들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꼼짝없는 삼포세대.

 

 

  평균인 - 평균인은 누굴까.

  그날 저녁도 외주둥이 굶는다고 소보로빵 한 개로 끼니를 때웠다. 소주와 냉수를 1:3으로 타서 음료수 대신 마셨다. 왜소한 저녁상을 물리고 - 상에서 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 하릴없이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다. 헤아릴 수 없는 아메바들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나 아메바는 갑자기 이 시대 평균 아메바 상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평균치는 수많은 통계에서 찾아보아 골라내면 될 것 아닌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우리’ 중에서 평균적 수입을 갖고, 평균적 자녀 수, 평균적 기대 수명, 평균적 학력, 평균적 직업, 평균적 취미활동 …… 등을 고려하여 대표적 가정의 대표적 사람을 꼽는 일이다. 무엇부터 찾을까. 잠시 통계의 무시무시한 망망대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어떻게 먹고 사는가가 우선일 것이었다. 우선 가족의 평균 수입, 그런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수치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므로 통계를 찾기도 쉽고 평균이나 적절한 대표를 찾기도 분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중소기업을 가정하자! - 사장을 포함한 직원 전체는 70명이고 이들의 총 급여의 합은 2억 1000만원이다. 그러면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월급은 300만원이다. 이 통계는 산술평균에 의거한 것으로 결코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자. 대부분의 직원들은 월 300만원은 평생 가도 못 만져 볼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한다. 직원 50명이 100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10명의 작업반장들도 겨우 150만원씩 받을 뿐이다. 이들에게 300은 비현실적인 수치이다. 왜 그런 300만원 평균치가 나오는가. 그것은 과장들 3명이 500만원씩을, 부장 5명이 1000만원씩을, 부사장은 2000만원, 사장은 5000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70명 중 50명이나 되는 최빈수가 받는 월급은 고작 100만원, 그러므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통감하는 월급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70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중앙에 있는 35 또는 36번째 높은 월급을 받는 사람을 대표라고 한다면, 대푯값 역시 100만원에 불과하다. 이 회사의 최빈수와 대푯값은 100만원 월급인데, 평균 월급은 300만원이다. 나는 초장에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열이 났다. 좀처럼 찬물 샤워를 못 하는 내가 찬물 샤워를 하고 나왔다.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 있었지만 지나쳐서 창 쪽으로 향했다. 밖은 이미 칠흑처럼 어두웠다. 지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아스팔트의 미세 먼지가 날아오른다. 작은 도로라서 저 아래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보인다. 저들이 평균인일까. 운전자가 평균인일까.

 

  다음 순간, 대한민국 평균인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을 예감이 들었다. 일을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려니 한참을 물러서고 만다. 처음 자리가 아니라 마이너스 어딘가로. 도대체 누가 ‘우리’인가. 우리 국민이라 함은 대한민국 국민을 말한다. 그러나 간단하지가 않다.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선언에서 비롯되어 그 해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현 우리나라의 건국은 참 오래 걸렸다. 1945년 광복을 맞았어도 다시 미군정의 주둔시기를 거쳐서 1948년 8월 15일에야 정부 수립이 선포된 나라다. 독립 선포 후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부 수립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것도 우여곡절 끝에 100,210㎢ 땅에서만. 그러니까 함께 독립선언을 했던 반쪽 123,138㎢를 북에 두고, 이제와 그들의 일인당 국내총생산 1,900달러를 살짝 조롱하면서. 우리는 그들보다 10배 이상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를 우리에 한정한다.

  그 한정된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수출입 선 순위권에 진입했다고 희희낙락이다. 1961년 우리가 여전히 전후의 비참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 탄생한 기구에 30년도 넘게 뒤늦게 합류한 우리가. 하지만 동시에 평균 자살률도 거의 3배나 더 이룩해(?) 냈다. 인구 10만 명 당 11명이 평균인데 우리나라는 서른 명이 넘는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경제 위기로 유럽공동체에서 퇴출 위기에 내몰렸다는 그리스는 세 명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러니 경제가 행복을 절대적으로 지배하지는 않는다. 국민총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된 것과 자살자의 숫자는 비례하여 증가 일로에 있다.  

  왜?

 

  정말이지 평균 수입을 알아보고자 했던 내 의도는 한 순간에 좌절했다. 대신 여러 경제 지표를 조금 알게 되었다. 국민총생산이란 개념은 어느새 국민총소득으로 바뀌었다. 보다 합리적으로 바뀐 것이란다. 국민총생산은 한 국가의 거주자 - 국민 - 가 일정 기간 동안에 생산한 모든 재화와 용역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것이다. 생산과정에서 마손된 고정자산의 소모분을 포함한 개념이고, 또 예컨대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 진출해서 생산한 것도 모두 포함된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의 대외수취소득을 제때에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어,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 이루어진 총생산만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으로 바뀌었단다. 그것이 또 1995년에는 국민총소득으로 바뀌었는데, 한 나라의 국민이 일정 기간 생산 활동에 참여해서 벌어들인 소득의 합계란다. 실질 국민총소득은 실제 재화나 용역을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실제 구매력을 측정하기 위해서 산출한다. 이 지표는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를 보다 잘 반영하기 위해 실질 국내총생산에다 교역조건 변화를 반영한 실질 무역손익을 차감하고 여기에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을 더해서 산출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국민총생산이냐 국민총소득이냐는 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다. 국민총소득이 2만 달러가 넘어도 왜 이렇게 허한가. 2012년 국민총소득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34위, 오매불망 우리가 모델로 삼는 미국은 5만 달러에 육박하면서 12위로, 여전히 우리를 훨씬 앞지른다.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에는 뒤지지만, 34위라면 대단하다. 물론 2007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21,632달러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3만 달러 시대가 멀지 않다고 호들갑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만 달러대로 떨어졌다가 2010년 2만 달러대에 재진입할 수 있었고, 3년째 2만 달러대 초반에 머물고 있지만 후퇴는 아니라는 것.

 

  문제는 불평등 성장이다. 한은에 따르면 1991에서 2011년까지 20년간 국민총소득이 연평균 9.3% 늘어났는데, 그동안 기업소득의 증가율은 11.4%인데 비해서 가계소득의 증가율은 8.5%에 불과했다고 한다. 개개인의 실질적인 주머니 사정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성장의 후퇴 때문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임을 역설해주는 증거가 아닌가.

  또 1인당 국민총소득 22,708달러 중에서 기업과 정부 몫을 빼고 개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은 얼마일까. 개인의 근로소득과 재산소득을 합쳐서 거기에서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을 뺀 것을 개인총처분가능소득이고 하는데, 우리의 주머니 사정과 가장 밀접한 지표다. 그런데 지난해 1인당 개인총처분가능소득은 1인당 국민총소득의 57.9%에 그쳤다. 한 나라의 소득은 크게 자본에 대한 보수 - 영업 잉여라고도 한다 - 와 노동에 대한 보수 - 피용자 보수라고도 한다 - 로 나뉘는데, 전체 소득 중에서 피용자 보수가 차지하는 비율, 즉 노동소득분배율이 57.9%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미국은 75.3%로 세계 1위, 왜 그 많은 모순을 안고서도 미국이 제일가는 나라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이다. 스페인이나 일본 등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인 62.3%에도 못 미친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총소득이 별로 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정부와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전체에서 40%를 넘다 보니, 우리 개개인의 주머니는 허할 수밖에 없는 일. 그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의 61.1%에 비해서도 낮아졌다. 그만큼 근로자 몫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국민총소득 22,708달러 중 개인총처분가능소득은 13,148달러 - 그러니까 지난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실제로 소비에 쓸 수 있는 돈은 (발표 당시 환율 1,126원으로 환산해서) 연간 14,80,457원으로, 대략 월 123만원에 불과했다.

 

  평균급여 - 월 123만원.

이 통계는 나를 울렸다. 마치 경제를 조금은 아는 사람모양, 나라 전체의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관한 상심 때문에? 그랬다면 그것은 조금은 사치였다. 수치는 통계 속에서 존재했고, 나는 양심적으로 사고하면서 양심적으로 사고한다는 자존감을 지닐 수 있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개인적인 모멸감이었다. 나는 평균 123만원 세대에도 끼이지 못했다. 교양학부의 한국어 강의까지를 내려놓은 지금은 부정기적인 수입이 내 생활을 지탱해 주는 수입의 전부였다.

   『88만원 세대 : 절망의 세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을 감히 들춰 읽지 못하는 것도 자격지심이다. 그 책이 처음 나온 2007년까지도 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영순위 강사의 신분을 누리면서 세상 물정 모르고 인문학에 파묻혀 살았다. 승자독식 게임의 법칙도 예감하지 못한 채. 그러다 곧 닥쳐온 나의 추락은 부끄러움에 무조건 움츠러들게 했다.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 119만을 20대의 평균 소득비율 74%로 곱한 값이 88만원이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 40을 바라보며 88만원 수입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자리를 비집고 든다 해도 - 아직 가능성은 있다. 국립대학은 매 학기 공채가 있기 때문에. - 동료들 사정을 보면 비정규직 평균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일이 있고, 책상이 있고, 동료가 있는 것, 그것이 그들을, 어쩜 나도 그 속에 다시 끼인다면 나를 지탱해 주는 끈이다. 가족들로부터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소원해지는 세월이다.

  지금까지는 전통적으로 가족이 가족의 복지를 떠맡았다. 대학생들은 FM(아버지 어머니)장학금에 기대고, 결혼까지를 부모에게 의존한다. 부모 세대는 어렵게 마련한 집을 자녀들 대학 뒷바라지와 결혼자금으로 다시 팔아야 한다. 그러고도 둘째나 셋째에겐 더 이상 뒷받침할 여력이 없다. 중산층에서 이미 밀려나 내려앉았다. 이제는 가족의 부담이 한계점을 넘어섰다. 가족은 소리 없는 신음 소리를 낸다. 가족의 구조와 성질이 이 시대 한국의 특별한 온도와 압력에 이르러 다른 상태로 바뀌는 임계점에 이른 것이라고.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도 일류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면 루저가 되는 세상, 연애는 사치의 극이요, 결혼 또한 비즈니스이다. 딩크족(더블인컴노키즈)은 삼포세대의 로망이다. 너 자신을 알라, 삼포족. 형언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루저인 나 자신을 향해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엉뚱한 곳으로, 정말로 삼천포로 빠졌다. 잠깐, 삼천포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변명이 필요하다. 옛날에 한 장사꾼이 진주장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한산한, 혹은 장날이 아닌 삼천포로 가게 되어 낭패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시발일 뿐, 나는 삼천포에 아무런 유감이 없다. 발길 가본 적도 없으니 좋고 나쁠 수도 없다. 그래도 그 이름 때문에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 목록에 든다. 진주이건 삼천포이건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데, 종류를 가늠할 수 없는 화가 치민다.

 

 

  화 - 화가 나는 일을 당하여 우리는 주로 화를 참는 것이 인자의 길이요, 인자의 도리를 모르면 화로써 망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주입되었다. 하지만 화를 끓이고만 있으면 병이 된다고도 하질 않는가.

 

  분노는 많은 경우에 백해무익이지만, 사람이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거나 분노를 모른다면 더 큰 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있다. 2차 세계계대전의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을 대변하는 노익장이 남긴 짧은 글, 바로 『분노하라!』는 글이다. 스테판 에셀. 1917년생이니 90을 넘어서 쓴 글이다. 유명한 1917년생들이 다 떠나고 없는 세상에서. 정치라면 러시아혁명도, 케네디도, 박정희도. 문화라면 윤동주도, 윤이상도, 하인리히 뵐도. 에셀은 독일계 유대인으로 일찍 파리에 정착해서 거의 한 세기를 살다간 지성인. 그냥이라도 90 노인의 발언은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이고 그림이고 저작자가 죽으면 값이 올라가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신속하게 번역되었다. 노익장의 분노 예찬 발언은 애늙은이들이 대접받는 동양적인 관점에서는 다소 색다를 수 있다. 아니 온 세계가 난공불락의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무장된 글로벌 경제시스템 하에서는 분명코 내민 돌에 정 박힐 일이다.

  프랑스의 현실에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모양이다. 알제리를 비롯하여 비 코케시언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도 갈수록 산이다. 이건 엊그제의 일이지만 명색 프랑스 하원의원 질 부르둘레라는 인물이 히틀러가 로마족, 그러니까 쉬운 말로 집시족을 충분히 못 죽였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일에는 장-마르크 애로 총리조차 법에 따른 처벌을 운운할 지경에 이르렀다지만. 세상은 금권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권력들이 세포분열을 하는 장에 불과하다. 성실한 근로세 납세자는 없다. 바보들이 있을 뿐이다. 세상은 갑과 을만 존재한다.

 

  을순이 - 내 이름은 한금실이 아니고 통상 을순이가 되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을식이와 을순이들의 하나. 그러므로 거의 무명 씨. 나에게 분노의 여력이 있을까. 어떻게 분노해야 할까.

 

  첫 발걸음은 관심이다. 반세기 전에, 1960년대 유럽의 사회주의대학생연맹의 여대생들은 ‘사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외쳤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의 여학생들은, 여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그들의 관심은 외모와 이력을 통한 개인적인 성공에 있을 뿐이다. 여자 특유의 외모로서 남성 세계를 공략하거나 남성들과 똑같은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 권력에 이르는 길이다. 그 이외는 무관심하다.

스물 세 명인가 네 명인가, 미스코리아 본선 진출자의 외모 사진들이 똑같다고 세계 여론에서 비웃는다. 몇 년 전에는 「한국의 미의 비용」이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유수 저널이 한국의 성형수술 풍토를 대서특필했다. 얼굴에 독을 주입하는 것은 일상이고, 가정주부가 심지어 종아리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곳이라고.

 

  그뿐인가. 얼마 전 폴라 비라운인가 그 비슷한 이름의 화장품 경찰관(?)이란 별명의 전문가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이 바로 화장품 종류였단다. 스킨,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영양크림이라는 필수(?) 코스도 모자라서 앰풀, 트리트먼트, 마사지 제품, 기능성 제품의 홍수들을 보고서 하는 말이, 수많은 종류의 기초 스킨케어 제품들이라야 파격적으로 말하자면 보습제 한 종류란다. 수많은 과정의 덧바름은 오히려 모공을 막아 트러블을 일으킬 수도 있고, 과한 영양분은 타고난 피부 루틴을 방해해서 자연스러운 재생력과 유수분 유지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데……. 나처람 단순 무식한 사람에겐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피부도 인체의 일부이라면, ‘소식하면 장수한다!’라는 말이 적용될지도 모른다, 정말로.

  피부나 외모가 아니지만, 나만의 이력에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나 또한 사회적 무관심자에 속했다. 죽어라, 아니 충분히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그러고도 갑의 근처는커녕 을의 세상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벌이라면 벌이다. 지식을 생보다 우위에 놓는 죄를 범한 일, 지식에 종사함에 우월감을 가졌던 일에 대한 벌. 이 창살 없는 수감생활 중에 나는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제서 무엇에 관심을 가질까. 무엇을 분노해야하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시작, 모든 새로운 시작은 반성이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반성 시작 -

  나는 공부만 했다. 학문이 생을 의미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공부만 했다. 목표를 초월한 학문. 유용성을 생각하는 것은 저열하리라고 믿었다. 쓸모없음 때문에 쓰임이 되는 것이라고, 어쭙잖게 노자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집의 쓰임은 벽이 아닌 빈 공간 때문이라고, 내가 두 발로 설 수 있는 것은 발바닥 크기의 땅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땅, 내가 밟지 않고 있는 너른 땅 때문이라고.

  나는 사치스러웠다. 욕심을, 특히 물욕을 초월한 삶. 그 무슨 사치였는가. 착각 아니면 거짓말. 세 끼 굶으면 군자 없고,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할 놈 없다는데. 취직을 하든지 시집을 가든지 - ‘취집’을 향하여 전진을 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취직을 향한 노력은 적잖이 해왔다. 결과가 없을 뿐이다. 일단 안정된 직장이, 돈이 없으니. 그러면 곧 삼포세대에 속한다. 연애는 무슨. 혹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쳐도 - 그 정도는 생물학적 짝짓기 본능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렷다, 희망하건대. 하지만 결혼에 이르는 것은 사투에 가깝다. 생물체는 살아남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할 것이므로, 남녀 관계라는 것도 다분히 계산적이 될밖에. 생물체의 상호작용에는 다소간 이해의 충돌이 내재한다고, 어디선가 읽었고, 또 동의한다. 자기 복제를 시도하려는 충동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미화되어…….

 

  틀렸다. 나는 반성 대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정작 중요한 반성은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있다. 죽어라 공부하고도 일자리가 없는 것을 내 못난 탓으로만 돌리는 반성은 무의미하다. 부족하다.

  무엇을 더 분노해야 할 것인가. 내 탓은 제 앞가림 못한 데 대한 분노, 제 욕심에서 나온 분노에 불과하다. 애초에 나를, 우리를 대학입시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던 이 사회. 대학정원을 너무 부풀렸던 이 사회에 분노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그것이 에셀이 말하는 분노, 진정한 사회참여에서 오는 분노이다.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이름의 한 줄서기를 주입시킨 교육. 살벌한 경쟁심을 자유라는 당의정을 우리에게 먹였던 교육. 제 앞가림에만 매진하라고, 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평생을 달리라고 가르쳤던 교육 말이다. 그것도 분노해야 한다. 분노해야 바로잡을 것 아닌가.

  어찌 보면 우리가 독문학을, 프랑스문학을 선택했던 대입에서 어른들 - 그런 곳을 진학하게 권했던 담임선생님이나 그런 학과의 대문을 너무 홀짝 열어놓고 우리를 습인했던 대학들 모두 - 그때 어른들은 우리가 바나나족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몰랐다는 말인가.

 

  바나나 - 바나나를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바나나는 병문안과 관련된 이미지였다. 아프면 바나나를 사주셨다. 조금 더 자라서는 해괴한 모양이 눈에 들어온 때문에 싫어하게 되었다. 여자아이가 바나나를 먹기는 뭔가 민망한 노릇이었다. 금방 바나나 송이에 꼬이는 하루살이들도 성가셨다. 하필 그 싫은 바나나로 지칭되는 우리들.

가야금과 거문고의 구별도 모르면서 현악기 종류들은 정확히 배워 알았다. 피아노 연습은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필수다. 자연 단음계, 화성 단음계, 가락 단음계 구별도 배웠다. 자진머리, 휘머리, 중중머리는 구별할 줄 몰랐다. 조금 알았더라도 엇중머리 라고 하면 멍했다.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을 한국어교원양성과정 공부하면서야 제대로 알았으니, 지식분야인들 바나나 타령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 분야가 더했다. 개화기에 생산된 신문학은 어땠는가. 신소설, 신체시, 신파극 범주를 통틀어 서구문학과의 관련 양상이 문제가 되었다. 비록 김현과 김윤식의 자생적 근대화론이 정설로 굳었지만, 해방 직후에는 이식문학론도 만만치 않았다. 신문학을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 문학의 이식이라고 단언했던 임화의 논의는 그의 정치적 이력으로 묵살되고 만 것이니. 정치는 문학이론 위에 존재한다.

 

  쇼와 시대 이전, 그러니까 1870년대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일본 개화기의 서양 추종 문화가 조선에 그대로 수입 또는 주입되었다는 견해는 왜 백안시 되었을까. 메이지유신의 이름으로 서구의 자유주의 이론을 통한 근대화는 한 마디로 문명개화의 기치아래 수행되었다지만, 사실 일본의 경우는 무사들의 충성심과 사회적 조화라는 전통적 가치도 여전했거늘. 오히려 수입을 통한 수입에 해당되는 우리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한 동안 망각했었고, 그 기간은 사뭇 길었다.

  예컨대 무당이나 사당패처럼 홀대받던 것이 풍물이었다. 꽹과리, 징, 장구 그리고·북 어느 것도 손데 대면 천하다고 업신여겼다. 그게 사물놀이라는 새 이름으로 거듭 난 것이 1978년의 일이었으니, 장구재비 김덕수 패거리가 - 정식명칭 김덕수사물놀이패 -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또 돈을 벌자 그때서야 사람들은 풍물도 사물도 돈이 되는구나, 성공이 되는구나 하고서 관심을 보였던 셈이다. 우리 고유의 정서라거나 문화의 발흥이어서가 아니라, 돈이, 성공이 되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가락을 연주는커녕 감상도 할 능력을 잃은 채, 국적불명의 음악에 취해서 산다. 글로벌음악, 글로벌문화.

 

  일찍이 매슈 아널드 같은 고급문화론자들이 세속적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문화’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유럽의 제국주의 문화였음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확실히 깨달았다. 벌써 반세기 전에. 그 반세기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에 종속되어 왔다. 유럽세계와 아시아세계의 차이에 관한 감각을 더욱 경직화시키는 압력에, 동양이 지닌 (서양과의) 이질성을 그 약함에 관련시켜 무시하고자 하는 사고에, 학문적으로 동양 위를 억누르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그런 교의에. 그러므로 (서양)문화에 근접할수록 고급문화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착각에.

  그뿐인가. 바나나족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글로벌문화 창달에 매진하며 산다. 미국 기업과 맞선 우리 기업이 자랑스럽기만 한가. 스마트폰은 주인의 자리를 넘본다. 눈을 뜨면서 스마트폰을 찾고, 머리맡에 놓고서야 잠든다. 그것도 ‘엘티이’라야 하지, 행여 ‘쓰리지’는 큰일이 난다. 여전히 ‘투지’를 쓰고 있다면 영락없이 비사회적 죄인이 되고 만다. 인간은 가까운 장래에 번호와 기호로 분류된 코드를 팔이거나 뇌 어딘가에 이식받아 글로벌하게 통제되어 살게 될 것이다. 인간로봇, 아니 아예 로봇으로 진보하기 전에 아직은 바보 같아도 사람 같은 사람이 남아있는 세상을 음미해야할 것 같다.

 

 

  음미 - 또는 삶을 살아가는 일은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의 몫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도 굶어 죽는다 하질 않는가. 돈을, 성공을 향한 허기는 끝을 모른다. 산비탈을 한번 돌면 사람들 절반이 사라진다는 무서운 동화가 현실이 되어 있다. 한 단계를 지나면 절반이, 다음 단계에선 또 절반이 탈락하고 우량종만 남는다. 우량종들도 피터지게 경쟁하여 궁극에는 일인자만 남는다. 그 한 사람은 무엇을 향해 살리.

  차라리 삼포세대 바닥 헌장으로 삶아 읊어도 좋을 시가 있다. 스물일곱에 요절했다는 천 년 전 당나라의 문인 이하의 작품이다.

 

    장안에 한 젊은이 있어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늙어 버렸네.

    […]

    곤궁하고 못난 인생

    해질 녘이면 애오라지 술잔만 기울이네.

    지금 길이 이미 막혔는데

    백발까지 기다려 본들 무엇하리.

    […]

    서리 맞으면 잡목되고 말지만

    때를 만나면 봄버들 되는 것을,

    예절은 내게서 멀어져만 가고

    초췌하기가 비루먹은 개와 같네.

 

  비루먹은 개. 이삼십 대 젊은 사람들 거의 절반이 이 무기력에 굴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었다. 어느 온라인 취업포털의 설문에. 이제 사람들을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무서운 적응인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자기암시로서 통제하는 적응력. 어찌어찌 결혼에 이른다 해도 출산은 망설인다. 출산율은 2012년 기준으로 1.23명, 사람을 세는 정수로 말하자면 한 명이다. 세계 최하위 수준이란다.

 

  난 그렇게 끝나고 싶지는 않다. 비록 객관적인 눈으로 삼포세대 일원이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으련다. 쓸 돈, 쓸 수 있는 돈을, 주머니 사정을 잠시 잠깐 망각하는 바보이고 싶다. 미래를 계획하느라 미리 겁에 질리고 싶지 않다. 겁에 질리지 않으면 포기가 아니다. 다른 유형의 삶. 신자본주의 이론으로 평가받지 않을 삶도 삶일 것이다. 자본주의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살았다. 자식이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고 믿었던 한참 낙천적인 시절에도.

  낙천적이고자? 설마. ‘모든 것이 부조리함을 의식하는 인간’에게 어차피 실존은 이유도 종극적인 목적도 없을 것이니. 그냥 살 수밖에, 그래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리라, 그래야 한다. 둘이 모여서 여섯을 포기하더라도. 셋이 모여 아홉을 포기하더라도. 허기의 노예가 되지 않고서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는. 봄버들이 되는 꿈을 꾸기 위해서라도. (끝)

 

 

 

 

..........................................................................................

 

 부산펜문학 2013  Vol.9., 2013.11.20. 29-42쪽

 

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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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2. 13. 00:13

 

3일


 

4월의 어느 수요일.

자매는 서둘러 집을 나서면서 둘 다 그것이 그 첫 날의 시작인 줄은 몰랐다. 언니는 자꾸 집을 돌아본다. 혼자 있는 남편이 마음에 걸려서다. 오늘은 그가 외출하는 날이니 점심 염려는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점심 걱정이다. 혼자서는 밥을 챙겨먹지 못하는 남자인 셈. 챙겨먹지 못하기야 할까만, 그러면 슬퍼지는 남자니까,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손수 제 식사준비란 한국남자들에겐 치명적인 설움이요 수치의 근거였다. 동생의 남편은 하루쯤 아내를 언니 집에 두고 갈 만큼은 속이 넓다. 언니 집은 병원 가까이 있으니까, 게서 장모님이 오늘내일 하는 터에.


병원 입구부터 둘은 종종걸음이다. 간호사가 알아보고 웃는다.

뛰지 마세요, 밤새 많이 좋아지셨어요!

밤새 좋아지셔요?

좋아진다니? 불가능한 단어다. 그래도 간호사의 단호한 어조에 작은 안도를 느낀다. 둘은 숨을 돌리며 어머니의 병실로 향한다.


아침 인사.

어머니, 엄마!

그대로다. 급격히 악화된 상태라는 통에 자식들이 밀물처럼 닥쳤다. 몇은 남아서 밤새 곁을 지켰다.


어머니, 엄마!

좀 어떠셔요? 많이 아프셔요?

말을 끊다시피 한 것이 하루 이틀. 다만 무표정의 인사. 인사도 아니다. 듣기는 하실까?


언니가 서둘러 병실을 나간다, 일 때문에. 동생이 따라 나간다.

혼자 괜찮겠어?

걱정 마, 언니. 이따가 또 오빠랑 동생도 다시 들른다는데.

그래, 난 어제 해 줘야 할 일을 못해서.

알고 있어, 해 줄 일은 해 줘야지. 뭔만 안 나면…….

설마 뭔 일이야, 오늘은 아닐 거야.


점심시간이 지났다. 다시 언니와 동생이다, 어머니랑 함께.

어머, 혼자 있어?

아니, 응. 다들 다시 왔었는데, 언니 올 거라고 가라 그랬어. 교대해야지 어떻게.

그래, 너도 오늘은 집에 가 봐.

그래야지. 참 막내가 퇴근해서 오면 7시에는 온다네. 그때까지는, 그때까진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엄마, 저 오늘은 집에 다녀와요, 낼 뵈어요. 언니랑 계셔요.


어머니가 뭐라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으응. 그렇게까지 정확한 단어는 아니지만, 무슨 웅얼거리는 소리, 희미하게나마 알아듣는 척하는 소리인 것 같다.


*


나는 당번이 되어 일지를 쓰는 기분으로 어머니의 병상을 지킨다. 내가 원래 그 모양이다. 숨소리는 고르다, 다만 아침 보다 조금 커진 것 같다. 두 발과 다리는 여전히 부어있고, 가만, 창백한 발이 어쩐지 푸르스름하다. 배 위에 올려놓은 손은 자꾸 미끄러진다. 아예 내려놓는 것이 나을 듯싶다. 두 눈은 감겨있다. 주무시는 걸까?


어머니!

…….

어머니!

눈을 뜨시지도 않는다. 더 좋으실 때에도 나랑은 별 말씀이 없으셨다. 미열이 있는 듯. 혈압은 낮다고, 간호사가 그런다. 원래도 그런 것이, 집안 내력 중 하나인 걸 안다. 어쨌거나 무변화, 무반응.

뭘 하지, 뭔가 뜨개질거리라도 가져올걸 그랬다 싶다.



네 시경.

주렁을 집으신 백모님이 들어오신다. 사촌이 모시고 왔다.

꿈자리가 며칠 너무 안 좋아서야.

그렇다고 고맙게도 어떻게 걸음발을 하셨어요, 큰엄니!

느그 어무니 영 사람 못 알아보는 갑다.

글쎄요. 어째 말씀이 없으시네요, 어제 오늘.

젊어 이래 육덕 좋아, 기운 좋아, 멋대로 쓰며 살더니만. 나이 들어서도 펄펄 날고 다니던 사람이…….

큰엄니라도 건강하셔야 해요!

나가 먼저 가야하는디. 이 망령, 산송장이.

뭔 말씀을.

결국 어머니가 아무런 소리도 못 알아듣는다 싶으니 그냥 나가신다. 멀리 주렁의 여운만 남는다. 여운은 내 마음에 과거를 불러낸다.



어머니야 신나게 사셨지. 문자 그대로. 그렇다고 그렇게나 사사건건 어머니한테 대들었을 건 뭔가. 쌀쌀맞은 큰딸이 서운했을까, 콕콕 찔러대는 불평이? 어머니를 실망시킨 큰아들이 더 서운했을까? 어쩌면 그 배신의 대가로 더 잘 먹고 잘 사는 아들이? 

어머니는 전통적 가정부인의 삶을 일찍이 거부했다. 진부한 집안일 대신 새빨간 매니큐어가 자유부인의 상징이었다. 그래, 난 그냥 어머니를 용서 못했지. 아니, 어머니를, 정상적인 어머니를 원했을 뿐이다. 어머니가 없는 순간에. 어머니는 그렇다고 여성해방론자들과 가깝지도 않았고, 어머니의 삶은 자율권을 가진 여성의 정점에 이른 것 같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그냥 없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냥 삶의 진부함을 잊는 것. 두부와 콩나물을 사고 마루를 훔치는 이미지를 간단히 버렸다. 너무 멋진 어머니는 늘 죄스러웠다, 내가 어렸던 그 시대에는. 난 알고 있었다, 다른 어머니들은 더러 굶고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서. 젊어서 더러 굶었을 어느 어머니가 옆 침대에 누워있다. 그런 상상에, 저 새까맣게 말라빠진 저 손등을 보기가 부끄럽다. 간병 의자에 앉아서 멍한 상념에 빠진다, 점점 더 깊이.



그래, 언제였을까? 희미한 방, 서랍 속의 사진. 왜 그 방에를 갔을까? 그곳이 어머니의 방은 아니었다. 뜰의 샘가에서 가까운 동생들의 방. 집에 수도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우물이 식수의 유일한 원천이었으니까. 샘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어쩌고 - 분명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 무심코 그 방문턱에 앉았다가……. 그게 왜 그 서랍에서 나왔을까? 이상한 사진 한 장. 얼굴을 뒤로 한, 지금 생각하면 누드화의 모델 포즈? 피사체는 어머니? 그 반지, 보석 알이 큰 반지는 분명 어머니임을 알아보게 했다. 분명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다른 보통 어머니답지 않게 발이 넓었다. 어머니에게 화가 친구도 있었을까? 어린 마음에 화가 생각은 못했다. 예술적 시도라고 상상했다면 더 이해하기가 쉬웠을까? 분명 예술작품이었다! 사진을 누가 찍었을까? 그 의문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누가 찍었는지 모를 사진. 사진이 찬미하는 대상은 곧 나의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미움은 더욱 자라나기만 했다.


왜 지금 와요?

응, 조금 전에 나갔다.

미리 나갔다가 우리들보다 먼저 오지 왜. 왜 이제야 오느냐고, 이리 늦게!

몇 신데 그래? 무슨 일인데? 조금 전에 나갔다니까. 저녁들 잘 먹었지, 응?

저녁? 제때 밥이면 다야? 엄마가 날마다 늦게 오는 집이 어딨어! 놀다가!

다른 집 딸들도 이런다냐, 제 엄마한테. 이 쌀쌀아. 오빠동생들도 조용하고만.

다른 집은 딸들이 늦어 야단이지, 뭐 이런 집이 다 있어. 이렇게 사는 것 싫어.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할퀴어댔다. 어머니 나들이에 잔소리를 하는 딸. 어른들에게 말대꾸는 영 버릇없다는 사회에서, 아주 이상한 관계. 출구를 모를 악순환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러므로 온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우울한 세월이었다. 나는 내 삶이 정말로 싫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모른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존재하니까. 어머니는 발이 넓었다. - 아차, 이게 뭐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나는 왜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지? - 반대로 나는 사람들을 피하는 편이다. 내 결혼식에 온 수백 명 손님 중에 내 손님은 단 네 명이었으니, 한 신혼부부와 두 동창생. 나는 집에 집중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언젠가 딸에게 질책당하는 엄마가 되는 것은 싫었다. 어느 정도 성공했을까?



7시 10분 전.

내 눈은 벽시계로 간다. 어머니는 규칙적인 숨소리만으로 살아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과거형으로 말했던 죄책감에 떤다. 어머니는 무표정. 다행하게도 고통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간호사가 고무호스로 코로 죽을 집어넣는 순간마저도 아주 조용하다.

은근히 집 저녁 걱정이 인다.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고 아무런 준비도 안 해 놓았다. 휴대전화 벨 소리.


언니, 어머닌 어떠셔? 나 터미널에 도착했어. 나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 봐. 곧 병원이야.

응 그래, 뭐 아직은. 서둘지 마.

염려는. 다 왔다니까.

그래, 그럼 밤새 고생 하겠구나.

아니 걱정 마, 큰오빠도 올 거라 그러던걸. 



큰오빠도 올 거라니, 정말? 의아해 하면서 어머니를 바라본다. 오빠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을꼬. 병실 생활 7개월째를 접어들면서는 포기하신 줄 알았다. 적어도 말씀으로 그러셨다.


연락할까요? 

…….

연락할까요?

관 둬라.

연락해야죠?


묵묵히 고개만 가볍게 돌리시더란다, 동생 말이었다. 어머니는 오빠가 그 사건이래 모든 상황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줄 다 아시는 게다. 게다가 오뉴월 녹두 깝대기 터지듯 하니, 큰오빠에겐 사실 누가 말을 붙이지도 못한다, 하고 싶지도 않고.


오빠가 온다고?

아무튼 갈 시간이다. 나가려다 말고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또 시계를 본다. 아직 2, 3분이 남았다. 간호사가 그냥 가란다. 하긴 간호사 둘이 번갈아 붙어있다. 그걸 보면 위험하신 상황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막내가 곧 도착한다지 않은가. 


차로 향한다. 계기판에 표시등이 들어온다. - 기름이 바닥이다. 아차, 어제부터였지. 주유소까지 들리다 보니 마음이 더 바쁘다. 막내는 벌써 병원에서 전화다.

엄마 병실에 도착했어. 걱정 말고, 언니나 안심 해.

안심? 

최소한 아무도 없이 운명하시게 놔 둘 수는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 임종 자식이 효자다, 뭣보다 우선하는 효다. 유교에선 부모에 표시하는 최고의 존경이다. 관습이 그렇다. 어떤 탕자도 임종 시에는 용서된다. 아무튼 어머닌 숨을 규칙적으로 쉬고 계시는데. 큰 염려야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점심때부터는 삼키는 기능도 떨어졌다는 생각이 난다. 저녁식사는 호스로 직접 위에다 공급했지 않은가. 간호사는 그랬다, 호스공급은 필요하고 또 꼭 위험하지도 않다고. 그러고도 보통 몇 달을 가는 환자들도……. 왔다갔다 상념 속에 집에 이른다. 늦었다.



어머닌 참 안 좋으시네요. 하필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까지 들르느라고.

누가 늦었다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혼자 중얼거린다, 무언의 고발에 대한 보이지 않은 변명처럼. 그러면서 서둘러 쌀을 앉힌다. 불린 쌀이라 금방 끓어오르고, 뜸이 드는 동안 반찬들을 챙긴다. 김치만큼은 매번 새로 썬다. 간단하면서 전통적 맛내기 방식이다, 톡 쏘는 풍미를 살리려면. 또 그인 그래야 한 젓가락 먹을 것이다. 귀는 전화 쪽으로 향해 있다. 설마 하면서도.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따르릉. 차분하게 전화를 잡을 수가 없다. 갑작스럽게 종점에 다가왔다는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전화 쪽으로 내닫는다. 올 것이 왔단다. 기다리던 것이었을까? 희망 없는 싸움을 끝내는 것.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심각하게 아프셨다. 어머니는 그간 특별한 고통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기적이나 같죠, 의사들이 우릴 위로했다. 그렇다고 그건 어머니 병실을 나선지 겨우 30분만이라는 생각이 났다. 그 30분으로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놓쳤다. 제 식구 저녁식사 준비하느라. 말이나 되는 소린가?


니 언니는 참 쌀쌀해야.

불과 며칠 전 겨우 말하실 때 그러시더라는 동생의 말. 내가 늘 어머닐 비난만 했다는 말씀이시렸다. 그 말이 이젠 귀가 아니라 가슴에 박힌다. 쌀쌀함을 그만 둘 기회가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난 거기에 없었다.



다시 서둘러 사방에서 모여든 자식 손자들은 다들 놀라는 것 같았다.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회복불능 환자의 끝은 예견되던 것이었을 뿐인데, 아니면? 빠르건 조금 느리건 다가온 일. 그래도 놀라웠다. 세상에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 그것은 진정 회복불능의 손실이었다. 아무렇더라도 자식들을 믿어준 존재. 자식들을 어쩌면 과장해서 믿어준 존재. 쌀쌀맞은 놈도, 살가운 놈도, 배신 때린 놈까지도……. 어머니에게는 다 같이 가슴 아픈 암시였을 것이다. 부족한 부분만 보여서. 어머니가 무시하고 싶었던 부분까지를 더해서.

 

다행이다. 살갑지는 않아도 도리를 잘 알던 막내가 있어 임종을 지켰다니. 임종이라야 평화스러운 끝이란다, 말씀 한마디 없고 소리 한 토막 없이 그냥 끝.

숨 안 쉬시네요.

함께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말했는데, 정말 숨이 그치셨더란다. 어쩌면 단 한 마디도.

큰오빠 연락할까요? - 관 둬라.

며칠 전 그것이 마지막 대화셨다. 유언은 없었던 셈.


아니, 유언이 있었다, 오래 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큰살림을 정리하시던 무렵. 나는 그때 울고 또 울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새빨간 손톱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 돌아가셨다고 믿었다. 어머니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했다. 어머닌 아들들에겐 그때 벌써 상당한 유산을 분배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재산 - 상당한 큰 건물은 어머니 사후 전적으로 딸들 몫이라고 공언하셨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상황은 바뀌어 어머니는 건물을 남기시지 못했다. 대부금 상환 때문, 큰아들 때문에 건물은 넘어갔다. 어머니는 난처해하시는 것 같았다, 특히 딸들 앞에서는. 아들 딸 차별 않는 관대함을 노래를 하셨던 평상시의 유세를 못 떨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딸들이 아니라 정작 큰오빠가, 정확히는 큰며느리가 어머니가 재산 잃은 것에 분기탱천했다. 분명 딸들의 몫이라고 천명했던 건물이었지만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용서할 수도 용서되지도 않았을까. 어머니의 유지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자신의 몫이라고 기대했던 터여서? 웃겼다. 그렇게 어머니는 마지막 건물과 더불어 큰아들을 잃었다. 어머니에겐 마지막 몇 년은 행운이 저물어 갔다. 더구나 상상해 보라, 어머니가 가끔은 손수 밥을 지으셨으니! 단 몇 번이라도! 그렇지만 어머니는 결코 두부나 콩나물을 사러 나가지는 않았다, 결코. 그런 건 어머니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시길 잘 했다. 어차피 그렇게 어머니 나름의 자존심을 지니셨기를. 밖으로 향한 허영심이 어머니 몸속으로 들어가서 암세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화려했던 과거와 점차로 고갈되어가는 현재의 불협화음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분명한 것 하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큰오빠를 못 보고. 하지만 이제 장례절차를 생각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차가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문을 나선다. 아, 이젠 정말 끝이다. 다시금 아득하다. 이제는 세상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 이제 우리는 고아다. 쌀쌀맞아도, 배신 때려도 사랑해준 어머니가 없다. 다만 어머니의 미토콘드리아, 세포의 발전소나 같은 그것은 어머니를 사랑할 줄 몰랐던 딸에게도 남아서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가 사랑했던 큰아들에게서가 아니라, 그는 미토콘드리아를 나르는 딸의 계보가 아니니까.


그런데 어쩐다? 몸을 버리는 절차가 남았다. 우리는 갑론을박, 큰오빠에게 연락을 해? 말아? 누가 결정하는가? 작은 오빠 책임이야, 당연히. 원칙적으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 여부라는 단어는 어불성설이다. 만장일치로 알려야 한다는 쪽이었다. 우리 모두 선할 수도 악할 수도 다 가능하니까, 누군가가 흘렸다. 배신 때린 자식이라 해도 마지막 이별의 자리에서 용서를 빌 시간은 있어야 한다는 것.


온대?

글쎄, 일단 알리기는 했으니까.

전화를 받긴 했어?

그러게, 어떻게 어젠 전화를 받데.


소식 있어?

응, 온다고는.

언제?

글쎄, 오겠다고 했으니 오겠지.

설마 싶은데.

설마 안 올까.

다음 하루 종일 화제는 문제의 아들이 초상마당에 오는가 아닌가에 집중된다.


소식 있어?

응, 온다고 했다니까.

언제?

글쎄, 조카 말이 아버지 모시고 온다 했다니까.

어머닌 맏손자를 무척 좋아하셨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이렇다 할 아파트에 새시까지 새로이 해주셨다던 생각이 난다.


그럼 입관 시간을 미룰까?

어떻게 그래?

그래도 와서 어머니 얼굴도 못 보면?

그렇다고 입관 시간을?

하긴 상복을 입으려면 미룰 수도 없고.


얼떨결에 입관 시간이 닥쳤다. 곱게 화장하신 얼굴에 평소에 준비해둔 연분홍과 연하늘의 수의를 입으신 모습은 옛날 궁중의 여인 같았다. 관속으로 내려가기에는 아까운 모습이다, 잠을 자는 듯, 아름답기까지. - 이상하다. 나는 평생 한 번도 어머니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곧 몸이 관 속에 내려진다. 그리고는 못들이 박힌다. 정말 끝이다.


못을 다시 뽑을 수도 있는 거야? 그때 누군가 자신 없이 물었다. 

무슨 못?

아니, 입관 식을 해버려서. 나중에 어머닐 보겠다고 우기면?

글쎄 뭐.

오긴 올까?

온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말없이 그 애가 왜 그런 엉뚱한 질문을 했는가를 느꼈다. 상주가 오기 전에 입관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호통 칠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다들 슬슬 출입문 쪽을 힐끔거렸다. 그렇게 이틀째 하루가 저물었다.



다음날 아침, 발인 식.

장례행렬은 10시에 장례식장을 출발할 예정이다. 조객들로 북적대던 어제에 비해 텅 빈 공간에는 조용하다 못해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피한다.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아무도 어제의 그 질문을 꺼내는 사람은 없다. 둘째오빠가 여전히 두 줄짜리 완장을 여벌로 손에 들고 안절부절못한다. 여차하는 순간에 형의 팔에 끼울 태세다. 시계는 똑딱똑딱 잘도 간다.


종일 비가 내린다. 무심한 봄 녘. 여린 초록빛 너른 들판 한 구석에 두루마기 대신 허연 비닐 비옷들이 춤을 춘다.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그렇게 셋째 날 하루도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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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Three Days」, 『펜광주』 9호, 2011.12.12. 19-32, 33-50쪽.


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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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1. 17. 21:27

그들의 고통과 우리들의 당혹감 - 서용좌, <배달민족> 
                               
                                                                                     장두영
        

 

서용좌의 중편 <배달민족>은 개인사적 고통이 민족사적 혹은 세계사적 고통과 맟닿아 있도록 조직되어 있어 고통의 무게가 육중하다. ‘아비 찾기’라는 전통적인 모티브를 활용하여 과거에서 현재에 걸쳐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굵직한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독일 남자와 한국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배요한의 아비 찾기와 배요한의 아버지 요하네스 베르너의 아비 찾기라는 두 개의 임무를 겹쳐 놓는 자리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배요한과 요하네스의 아비 찾기는 고스란히 배요한의 동생 배승한이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남긴 메모에 담기고, 형식상으로 서술자의 역할을 떠맡은 지방대 불문과 강사는 배승한의 메모를 받아 적은 필사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작가의 권위를 단순히 메모를 옮겨 적는 역할에만 충실한 필사자에게로 넘긴 마당에서 작품은 저자의 죽음을 외치던 롤랑 바르트를 연상하게 한다. 더욱이 배승한이 수집한 여러 인물의 회고와 기억의 파편들은 통해 20세기 독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산업화 이후의 한국 역사를 기록한다는 기획 역시 기억을 통한 역사의 구성이라는 포스트모던적인 발상을 따라가고 있다. 이것이 진리의 총체라는 권위적 언설 대신 개인적 기억의 단편들의 얽어놓은 과정에서 진실을 복원시키기 위해 한 발짝 다가서려는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 ‘배달민족’이라는 고릿적 냄새가 나는 표제와는 달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것을 관통하면서 흐르는 혈통에 대한 관념에 대한 통찰이 빛나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요하네스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가 유대인의 핏줄과 아리안 핏줄 사이의 흔적을 지우려던 모습에서 유럽 문명의 저변에 존재하던 인종적 편견을 건드리고 있다. 나치스 협력, 친미, 사회주의의 선택 등 요하네스의 아버지가 보여준 복잡한 행적을 통해서 독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펼쳐진다. 한편 배요한의 경우 배오한의 아버지 요하네스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독일 역사 속에 내재되어 있던 고통을 한국의 역사와 결부시키고 있다. 배요한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설정된 파독 노동자의 외화벌이는 곧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한 일종의 거울로 작용한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배요한의 부모들은 이제 이주노동자들을 수용하여 부리는 지위가 되었고, 과거의 유대인이나 한국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처지를 망각하게 되었다. 요하네스의 아버지, 요하네스, 배요한 세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지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여전히 유럽을 떠도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행적은 고스란히 아직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은 ‘배달민족’의 신화에 대해 의미심장한 문제 제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작품은 당혹감에서 시작하여 당혹감으로 끝난다. 문득 배승한이 보낸 메모들을 받게 된 ‘나’가 “그것을 머릿속에서 정렬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배승한은 어떠한 의도에서 메모 뭉치를 보냈을까. 당혹감에도 불구하도 ‘나’는 숙제를 시작한다. 메모가 하나씩 정리되는 동안 계속해서 당혹감은 밀려온다. 입양아로 여겨지던 배요한이 사실은 배승한의 친형이었다는 것을 예감한 배승한의 당혹감, 독일 혈통으로 알려졌던 요하네스의 아비가 유대혈통을 버리고 숨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요하네스의 당혹감, 그리고 배달민족이라는 정체성의 신회가 나치의 정통성으로의 강조와 닮아있다는 사실은 알게 된 독자들의 당혹감, 나아가 그러한 ‘상상된 공동체’를 향한 신화에 침윤되어 있던 우리들이 앞으로 받아들이게 될 이방인들에 대한 태도의 준비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 우리 스스로를 향한 당혹감 등이다. 근대적 분류 체계에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들의 관념에서 혈통 문제에 관한 그들의 고통이 너무나도 소홀히 취급되어왔음을,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고통으로만 남겨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느끼는 당혹감은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공백은 너무 길었다.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갑자기 전기가 나간 것처럼 내 손가락의 작동이 멈췄다. 애초에 이 기록은 뿌리 없는 나무에 물 주기였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구상도, 가닥도 없이. 흩어진 메모조각에서 무엇인가를 건져 올리기. 나는 무슨 알갱이를 향해서 이 종이부스러기를 헤집고 있었을까. 벌써 스산한 계절의 축축함이 벤다.(252면)

작품의 서술을 마무리하는 대목에 삽입된 ‘나’의 고백은 작품을 다 읽은 독자가 느끼는 당혹감과도 닮아 있다.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읽은 듯하면서도 한 편의 묵직한 역사서를 완독한 느낌이 곧 둔중한 무게로 머리 한 부분을 짓누른다. 기억의 파편을 모으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당혹감을 통해 목직한 여운을 감기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우리가 쉽게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던진 화두에 대해 명쾌한 답안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바람에 불과하다. 개인사적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민족사적, 세계사적 고통에 대한 이해로 발전될 수 있다는 ‘당혹감’을 선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였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한 당혹감은 곧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개인사적 고통을 집단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능숙한 필치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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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11월호 (통권 148호), 292~295,
                    장두영, 월평 : '고통의 상상력', 285~295 중에서.

* 장두영 : 2009년 <문학사상> 평론 부문 신인상 당선 등단.

           현재 서울대 기초교육원 전임대우 강의교수

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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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 20. 23:30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글을……

                                                                      
제7회 국제펜클럽광주문학상 수상소감

 

감사합니다.

소설가 경력도 일천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안겨주신 국제펜클럽광주광역시위원회 선후배 동료 문인들께서는 제가 연구실 떠나서 완전히 손 놓고 게으름 피울까봐서 글 더욱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이 상을 주신 것으로 압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되니까 두 개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 듭니다.

첫째는 왜 소설을 쓰느냐? 둘째는 어떤 소설을 쓰려느냐?

옛날부터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소설책이나 읽고 상상의 시계에 빠져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경계하는 것이었지요. 21세기 한국사회에서는 아예 언어예술인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뭣 하러, 왜 글을 쓰냐고? 저는 말과 글의 생명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선 우리 인간은 진실로 소통을 하지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각각의 자아들은 반드시 충돌하게 마련이니까요. 말에서 충돌은 더욱 심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동을 전하는 시문학이나, 지혜를 전하는 수필문학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저로서는 어려워서 쓸 수도 없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소설 쓴다고 하고, 소설도 못 쓰는 사람이 비평한다 하고, 비평도 못하는 사람이 교수한다고 - 조정래 선생이 저희 대학에 언제 강연 오셔서 그러시더군요.)

그래도 소설 쓰는 변명을 하자면, 소설가는 소설 속에 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소통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장치는 삶의 현장에서 비겁한 저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소설가가 쓰는 모든 것은 픽션이요 이미지이니까요.

인생은 이미지입니다. 이미지가 아니고서는 숨이 막혀 살아갈 수가 없지요.

그동안 “지식산업의 대열에서 살아남느라 정신에 대한 죄악이라고 홀대했던 이미지에 들려 외치고 싶었습니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어딘지 산만한듯하면서도 응집력을 지닌 소설쓰기에 몰입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차례입니다. 어떤 소설을 쓰려느냐? 제가 배운 것이, 아는 것이라고는 독문학 한 조각이니 거기서 인용하겠습니다. 카프카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것이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것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친구 오스카 폴라크에게)

 

인생은 어찌 보면 깁니다. 무려 7년/10년에 달하는 유충기를 보내고 태어나서 열흘 남짓 살다가 가는 매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평균연령 80은 29220, 근 3만 번의 낮과 밤을 사는 일이니 참 긴 세월입니다. 그 수많은 낮과 밤을 살아내는 일에서, 우리의 내면을 외면하고 산다면 그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진솔한 내면을 위하여, 내면에게만 토로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가는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을 즐거운 상상의 유희로 데려가건, 뼈저리는 고통의 면모를 들이밀건, 소설가의 선택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하나, 소설이, 문학이, 예술이 세상을 쥐고 흔드는 권력의 시녀가 되는 일은 거부합니다.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가 말했습니다. 대중에게는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고. 풍부한 물질과 매력적인 볼거리만 있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현대의 권력자들도 이것을 이용하고, 대중을 즐겁게 해줄 볼거리는 돈의 위력을 앞세운 연예와 스포츠를 망라합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한 채 즐거움에 빠진 대중은 비판의식이 없어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도 무관심합니다. 행여 문학이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일만은 삼가야 된다고 믿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입니다. 저는 시인이건 소설가건 작가가 특별히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문학의 본성이 죽지 않기 위해서 저항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문학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자를 위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결국은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문학의 본성입니다. 내면을 일깨운다는 것은 바로 타성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타성은 우리로 하여금 다수가 정의라고 믿게 하고 강자가 옳다고 고개 숙이게 하는 무서운 복병입니다. 이 타성의 벽을 깨고 진정 자신과 소통할 때, 문학은 희망하건대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국제펜클럽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상호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국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 그 반대 방향의 일 모두가 매우 보람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누군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류보편의 문화가치를 매개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매개보다는 창작이 생명입니다.

“저는 그동안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면서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쳤습니다.”

그런 순간이면 서툴더라도 제 글을 쓰면서 다시 살아나고자 했습니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연인, 내 나라 말, 내 글로 쓰는 소설이라는 이름의 추상적인 연인을 향해서 썼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하이에나가 표범이 되기는커녕, 이도 저도 아닌 박쥐신세임을 통감했을 때 “저는 저로서 살기를 망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장 정직한 일이 독문과 교수직을 그만 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 말고 온이 소설가로서의 첫 해, 이 뜻 깊은 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 자유인으로서의 첫해 농사는 외면상으로는 더할 수 없는 풍작입니다. 내면에서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너는 아직 너의 내면을 일깨워내지도 못했노라고!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글”을 쓰기엔 아직 멀었다고!
   이제 저에게 (겉으로는) 영광이자
(실제로는) 채찍인 이 상을 주신 국제펜클럽광주광역시위원회 선후배 동료 문인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글 더욱 열심히 쓰며 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1년 1월 20일

서용좌

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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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1. 1. 6. 23:59

한국문인협회 - 우편투표용지를 발송해야하는 시기이다.

광주문인협회 - 총회와 차기 회장 선거가 있는 날이다.
                      두 후보는 다들 쟁쟁한 분이시라고 하고, 나랑은 일면식도 없는 점에서 같다.
                      고향의 문단에 무심하단 이야기를 면하고자 얼음 위를 달려갔다.
                      정해진 시간보다 약간 늦었을 뿐인데 들어설 틈이 없다.
                      열성으로 훈훈해서인지 난방이 없는 듯한 방인데 후덥지근했다.
                      총회가 끝나고 찬조연설, 후보연설, 찬조연설, 후보연설을 들었고,
                      우루루 몰려가는 줄에 애를 쓰고 섞이어 귀중한(?) 표를 행사했다.
                      끝까지 참여할 생각이었다면 뭣하러 서둘렀을까?  
                      집에 손이 계신다는 핑계로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왔다.
                      집에는 친정어머니의 백년손이 있다. 손이 따뜻한 저녁을 들었는지 확인하고
                      혼자서 늦은 저녁으로 라면을 먹었다.
                      2011년 1월 6일 목요일의 저녁풍경이었다.


          뒷소식 : 젊은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한다.            
                      요즈음의 추세는 어디서나 더 젊은 쪽이 유리하다.
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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