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17. 10. 7. 01:15

2017. 9.17.

‘부정한 미녀’(질 메나주) - 한글문학 세계화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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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여자와 비슷하다. 정숙하면 볼품이 없고 아름다우면 부정하다.’라는 르네상스 이래의 여성혐오성 격언(?)에도 불구하고, 번역문제에서는 형용사에만 집중해서 말하자.

“한국시의 걸작들”이 세계화를 위해서는 번역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 “규범”적인 작품들은 국가주의적인 가치나 학생들이 본받아야 할 아름다움과 인간의 가치를 담아냈다고 간주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이 예컨대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한국스러움을 강조하고 한국어처럼 들리기를 고집하면, 시를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보는 미국에서 청중이나 독자들이 전혀 유머를 접하지 못해서 반응이 거의 없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한 마디로 감상적인 목소리로 말을 거는 한국시는 미국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다고. (이 단락은 2017 세계한글작가대회,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의 발표 발췌.)

 

어찌할꼬. 문학의 세계화가 입에 올릴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상당한 경험과 능력을 겸비한 전문가의 입으로 번역의 딜레마에 관해 들으면서 느낀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국 시인들은 자신의 시가 정직한 추녀가 되더라도 꼼꼼히 충실히 번역되기를 원하는데, 정작 시를 들어줄 사람들은 부정한 미녀를 원한다니! 세계화는 무리인가, 정말 필요한가. 서양 사람들의 이해 구미에 맞는 번역을, 또는 아예 번역되기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한글문학의 세계화는 한글문학의 부분적 변화 또는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서양 사람들의 의식주 따라잡기에 급급한 한국인들의 의식에 더해, 문화 예술 차원에서까지 세계화를 위해 서양 흉내내기에 나서야 하는 것인지. 당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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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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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2013. 1. 9. 21:31

손잡이 없는 찻잔의 운명

 

 - 하인리히 뵐

 

  이 순간 나는 창문턱 밖에 서서 천천히 눈으로 뒤덮이고 있다. 지푸라기 대롱은 비눗물 속에 얼어붙어 있고, 참새들은 내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사람들이 흩뿌려준 빵 부스러기를 놓고 싸우는 거친 새들, 나는 내 목숨 걱정에 떨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늘 떨어야 했었지만. 이 살찐 참새들 중의 하나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창턱에서부터 아래의 콘크리트바닥으로 떨어져 - 비눗물은 얼어붙은 타원형 뭔가로 남겠고, 지푸라기는 꺾이고 - 내 조각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저 맥이 빠져서 나는 뿌옇게 변한 창유리를 통해서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들이 가물거리는 것을 보고 있다. 안에서 부르는 노래를 겨우 나직이 듣고 있다. 참새의 야단법석 소리가 모든 소리를 뒤덮고 만다.

 

  물론 안에 있는 저들 누구도 내가 정확하게 스물다섯 해 전에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것이 단순한 커피 잔의 나이로는 대단한 나이임도 알지 못한다. 우리들 종족의 피조물들이라 하여도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유리진열장 속에서 그저 가물거리고 있는 놈들은 우리들 수수한 찻잔들보다는 엄청 오래 산다. 아무튼 내가 확신하건대 우리 가계에서는 단 하나도 더 살아남지 못했다. 양친, 형제자매들, 심지어 내 자식들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는데, 그 반면에 나는 함부르크의 창틀위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참새들을 동무삼아 내 스물다섯 살 생일을 보내야 한다.

 

  우리 아버지는 케이크 접시였고 우리 어머니는 귀한 버터 통이었다. 내겐 형제자매가 다섯으로, 찻잔이 둘, 받침접시가 셋이었다. 허나 우리 가족은 겨우 몇 주간 함께 지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찻잔이라는 게 어려서 갑자기 죽는다. 그러다 보니 내 두 형제와 사랑하는 누이 하나는 벌써 두 번째 크리스마스 날 식탁에서 깨져 버렸다. 곧 이어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지와도 헤어져야 했다. 받침접시인 내 누이 조세피네와 함께 어머니를 동반하고서 우리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신문지에 둘둘 말려서 잠옷과 때밀이 수건 사이에서 우리는 로마까지 갔다. 거기서 우리 주인어른의 아들, 고고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아들에게 봉사하게 된 것이다.

이 생애의 시기는 - 나는 나의 로마시절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 내게 흥미진진했다.

 

  우선 율리우스가 - 그 학생의 이름이 율리우스였다. - 날마다 나를 카라칼라욕장, 그러니까 거대한 공중목욕탕의 잔훼로 데리고 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나와 내 주인을 일터로 늘 동반했던 보온병과 곧 친구가 되었다. 그 보온병은 훌다라는 이름이었고, 율리우스가 삽을 들고 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몇 시간이고 풀 속에 함께 누어 있곤 했다. 나는 나중에 훌다와 사랑에 빠져서 로마시절 두 해째에 그녀와 결혼했다. 물론 내가 보온병과 결혼하는 것이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어머니는 참으로 기이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담배통으로 쓰인다는 사실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누이 요제피네가 재떨이로 강등된 것에 대해 극도의 모멸감을 느낀 것과 비슷했다.

 

  나는 아내 훌다와 몇 달을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는 함께 모든 것을 배웠다, 율리우스가 배우는 것들 말이다. 아우구스투스 영묘, 아피아 가도, 포로 로마노 - 그러나 그중 마지막 것은 내게 슬픈 추억으로 남았다. 거기에서 내 사랑하는 아내 훌다가 로마의 불량소년이 던지 돌팔매에 맞아 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훌다는 비너스 여신상에서 나온 주먹만 한 돌멩이 조각으로 인해 죽어버렸다.

 

  계속해서 내 생각을 따라올 마음이 있는 독자님 - 손잡이 없는 찻잔에게도 고통과 생의 지혜가 있음을 시인해줄 마음이 있는 독자님에게라면 나는 참새들이 벌써 빵부스러기들을 쪼아 먹어 버렸으므로 내게는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음을 말씀드릴 수 있다. 또한 그 사이 뿌옇던 유리창에 스프접시 정도 크기의 매끄러운 부분이 생겨서 내가 방안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분명하게 보고 있고, 또 코를 유리창에 박고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내 친구 발터의 얼굴도 보고 있음을. 발터는 아직 선물을 나누기가 시작되기 전 세 시간 전에 내 몸에다 비눗방울에 쓸 물을 만들었었는데, 이제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고, 그 애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는 발터가 선사받은 완전 새로 뽑은 장난감기차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도 발터는 고개를 젓고 있고 - 그리고 창유리에 다시 김이 서리는 동안에 나는 안다, 내가 적어도 반시간 후에는 따뜻한 방안에 있게 되리라고…….

 

  로마시절 향유했던 기쁨은 아내의 죽음뿐 아니라 그보다도 어머니의 괴팍함과 누이의 불만으로 흐려졌다. 둘이는 우리가 장 속에 함께 앉아있는 저녁이면 그들의 사명을 오해받는 데 대해 불평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내게도 자의식 강한 찻잔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굴욕이 닥쳐왔다. 율리우스가 내 몸으로 화주를 마시다니! 어느 찻잔에 대해 ‘그 찻잔으로 술을 마셨다네!’라고 하는 것은 마치 인간에게라면 ‘그 인간 나쁜 데 출입했다네!’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이젠 엄청 많이 술을 마셔대는 잔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는 굴욕의 시절이었다. 그 시기는 매우 길었고, 마침내 케이크 한 상자와 내 사촌들 중 하나인 달걀 담는 컵과 그 덮개와 더불어 뮌헨에서 로마로 보내졌다. 그날부터는 술은 내 사촌이 담당하게 되었고, 율리우스는 나를 한 여인에게 선사했다. 그녀 또한 율리우스와 같은 목적으로 로마에 온 사람이었다.

 

  내가 삼년 동안 우리의 로마 거실의 창틀을 통해서 아우구스투스 영묘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이제 이사를 했고 나머지 이년 동안은 새로운 거실에서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 교회를 바라다보았다. 이 새로운 삶에서 나는 또 어머니로부터 떨어지긴 했지만, 내 원래의 생의 목적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커피를 마시는 잔이 된 것이다. 나는 하루에 두 번 깨끗이 닦여서 예쁘고 작은 장 속에 서 있곤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역시 굴욕은 모면되지 않았다. 그 예쁘고 작은 장 속에서의 동무는 후르츠였다니! 온 밤을 그리고 많은 낮 시간 동안 - 그리고 그 2년간 내내 - 나는 후르츠와의 동무를 견디어야 했다. 훌레방 종족이고, 그녀의 요람은 휘르체니히의 훌레방 선조대대로의 저택에 있었다. 그리고 아흔 살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아흔 해를 제대로 산 것은 아니었다.

 

  내 질문, 왜 그녀는 항상 장 속에 서있는가 하는 것에 그녀는 거만스럽게 대답했다, ‘후르츠로 무언가를 마실 수는 없지 않아!’라고. 후르츠는 아름다웠고, 부드러운 회백색으로, 자잘한 녹색 점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놀라게 할 때마다 그녀는 창백해져서 녹색 점들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특별한 악의가 없이도 나는 그녀를 자주 놀라게 했다. 우선 프러포즈를 함으로써. 내가 그녀의 가슴과 손을 잡으면 그녀는 너무도 창백해져서 나는 그만 그녀의 생명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녀가 다시 약간의 색깔을 되찾기까지는 몇 분이나 걸렸고, 그러면 그녀는 속삭였다, ‘그런 소릴랑 다시는 하지 말아요. 내 신랑이 에어랑엔에서 유리 진열장 안에 서 있다오, 나를 기다린다오.’ ‘대체 얼마 동안을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십 년 되었어요. 우리가 1914년 봄에 약혼을 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우린 여태 떨어져 있답니다. 나는 프랑크푸르트의 안전금고에서 전쟁을 살아남았어요. 그는 에어랑엔에 있는 우리 집 지하실에 있었고요. 전쟁 후에 나는 유산상속 논란의 결과 뮌헨의 유리 진열장으로 가게 되었고, 그는 같은 유산상속 논란의 결과 에어랑엔의 유리 진열장으로 가게 되었지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디아나가’ - 그게 우리 주인님 이름이었다. - ‘에어랑엔의 유리 진열장 여주인의 아들 볼프강과 결혼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에어랑엔의 유리 진열장 속에서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된다오.’

 

  나는 그녀를 다시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침묵했다. 왜냐하면 나는 물론 오래 전에 율리우스와 디아나가 서로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디아나는 폼페이 탐사여행 중에 율리우스에게 말했었다, ‘아, 이 보세요, 내게 찻잔이 하나 있는데요, 그걸로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되는 것이랍니다.’

 

  율리우스가 말했어요, ‘아, 제가 그런 곤경에서 당신을 도와드려도 될는지요?’

나중에는 내가 더 이상은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 않았기에 후르츠와 서로 잘 이해하며 지내게 되었다. 우리가 저녁에 함께 장 속에 있을 때면 그녀는 항상 말했다, ‘아, 내게 뭐라도 이야기 해봐요, 하지만 가능하면 너무 평범한 것 말고요.’

 

  내 몸으로 커피, 코코아, 우유, 포도주, 물 등이 마셔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충분히 알아차렸다. 그러나 내가 율리우스가 나를 가지고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다시 발작을 일으키고는 감히 (내 겸손한 의견으로는) 불가한 표현을 하곤 했다, ‘바라건대 디아나가 이런 평범한 녀석에게는 빠지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러나 모든 것은 마치 디아나가 이 평범한 녀석에게 빠져버린 것 같아 보였다. 디아나의 방에 있는 책들은 먼지가 쌓여갔고, 타자기에는 몇 주 동안 단 한 장의 종이가 끼어져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겨우 반 쪼가리 문장이 쓰여 있었다, ‘빙켈만이 로마에 갔을 때…….’

 

  나는 너무도 성급히 씻기곤 했고, 심지어 세상일이라곤 어두운 후르츠까지도 예감하기 시작했다, 에어랑엔에 있는 그녀의 약혼자와의 재회가 점점 불가사의한 일이 되고있다는 것을. 왜냐하면 디아나는 에어랑엔으로부터 편지들을 받기는 하지만 이 편지들을 답장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기 때문이었다. 디아나는 이상해졌다. 그녀는 - 이 사실은 사실 머뭇거리면서 기록하는데 - 내 몸으로 포도주를 마셨고, 내가 저녁에 그 이야기를 이 후르츠에게 했더니 그녀는 거의 기절을 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는 말했다, ‘나는 찻잔으로 포도주를 마시는 짓을 해대는 여성의 소유로 남을 수 없어요.’라고.

 

  그녀는, 착한 후르츠는 자신의 소원이 얼마나 빨리 성취될 수 있을지 모르고 있었다. 후르츠는 전당포업자에게로 넘어갔는데, 디아나는 ‘빙켈만이 로마에 갔을 때…….’라고 시작된 문장이 있는 종이를 타자기에서 빼버리고 볼프강에게 편지를 썼다.

 

  나중에 볼프강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디아나는 내 몸으로 유유를 마시면서 아침을 먹는 중에 편지를 읽었다. 나는 그녀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겐 내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단지 저 얼빠진 후르츠가 문제였어.’ 나는 그녀가 『고고학 입문』이라는 책에서 전당포영수증을 꺼내어 그것을 봉투 안에 넣는 것을 보았다 - 그래서 나는 그 착한 후르츠가 그 사이 에어랑엔에서 신랑과 합쳐져서 유리 진열장 안에 서있게 됨을 예견해도 좋았다. 그리고 나는 볼프강이 품위있는 아내를 발견했으리라 확신한다.

 

  나에게는 묘한 해들이 이어졌다. 나는 율리우스와 디아나와 함께 독일로 돌아왔다. 그들은 둘 다 돈이 한 푼도 없었고, 나는 그들에게는 값진 소유물로 간주되었다. 나를 가지고 물을 마실 수도 있었으니, 사람들이 기차역의 샘에서 마실 수 있을 그런 맑고 깨끗한 물말이다. 우리는 에어랑엔으로도 프랑크푸르트로도 가지 않았고 함부르크로 갔는데, 그곳에서 율리우스는 은행에 일자리를 얻었다.

 

  디아나는 더 아름다워졌다, 율리우스는 창백했다. -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맙소사 약간 더 만족스러워 했다. 내 어머니는 우리가 저녁에 부뚜막에 서로 나란히 서있을 때면 말하고 했다, ‘그래 뭐, 어쨌거나 마가린이니까……,’ 그리고 누이는 심지어 약간 교만해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시지 접시로 사용되었으니까. 그러나 내 사촌 계란 컵은 계란 컵에게는 드물게 마련된 것 같은 이력을 쌓아갔다. 그는 화분으로 사용된 것이다. 데이지꽃, 민들레, 꼬마 마가렛들에게 그는 잠깐 체류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디아나와 율리우스가 계란을 먹을 때면 그들은 계란을 받침접시 가장자리에 놓아두곤 했다.

 

  율리우스는 점점 말이 줄었고, 디아나는 어머니가 되었다 - 전쟁이 닥쳤다. 그리고 나는 가끔 지금쯤 다시 은행의 안전금고에 들어가 있을 후르츠를 생각하곤 했다, 비록 그녀가 내게 가끔씩 모욕을 주긴 했을지라도, 나는 그녀가 안전금고 안에서라도 그녀의 약혼자와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디아나와 함께 또 가장 큰 아이 요한나와 함께 나는 전쟁을 뤼네부르거 하이데에서 보냈다. 나는 율리우스가 휴가차 왔다가 내 몸을 오랫동안 젓고 있을 동안이면 그의 사색적인 얼굴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디아나는 율리우스가 커피를 그리 오래도록 젓고 있는 것을 보고서 가끔 놀라기도 했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뭘 하는 거예요 - 당신 지금 몇 시간 째 커피를 젓고 있잖아요.’

 

  디아나도 율리우스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했는지를 망각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참 묘한 일이었다. 그들이 나를 여기 이렇게 밖에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고양이 때문에 위협을 받으면서 꽁꽁 얼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니 - 반면에 발터는 나 때문에 울고 있는데. 발터는 나를 좋아했다. 그 애는 내게 이름까지 붙여주며, ‘이반처럼 마시기’라고 불렀다 - 나는 그 애에게 비눗방울 만드는 통이 되고, 그 애의 동물들을 위해서 먹이그릇이 되고, 꼬마 목각인형들의 욕조가 되어준다. 나는 그에게 물감이나 풀을 섞는 그릇이 되고…… 나는 그가 지금 선사받은 새 기차로 나를 실어 나르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발터는 격하게 운다. 나는 그 애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날 저녁 그들에게 보장해주고 싶었던 가정 평화가 걱정이다. - 그렇지만 인간이란 얼마나 빨리 늙어버리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율리우스는 손잡이 없는 찻잔 하나가 갓 나온 장난감기차보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그는 망각했다. 그는 완고하게 발터에게 나를 다시 꺼내라고 말린다. - 나는 그가 야단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발터만이 아니라 디아나까지 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디아나가 우는 것은 내게 편치 않다. 나는 디아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게서 손잡이를 깨뜨린 것이 바로 그녀였다. 뤼네부르거 하이데에서 함부르크로 이사하려고 나를 포장할 때 그녀는 그만 내 몸을 두껍게 싸는 것을 잊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손잡이를 잃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값어치가 있었다. 당시에는 손잡이 없는 찻잔 하나도 여전히 값어치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살 만한 찻잔들이 널리게 되었을 때 나를 버리려고 했던 것은 율리우스였다. 그러나 디아나가 말했다, ‘율리우스, 당신 정말로 이 찻잔을 버리려고 - 이 찻잔을?’

 

  율리우스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미안!’ - 그렇게 해서 나는 살아날 수 있었고 씁쓸한 여러 해를 면도용 비누통으로서 봉사하게 되었다. 우리 찻잔들은 면도용 비누통으로 낙착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나중에 도자기로 된 머리핀 그릇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 이 두 번 째 아내는 게르트루트였는데, 그녀는 내게 친절했고 현명했으며, 우리는 꼬박 2년 동안 욕실 유리선반 위에 나란히 서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아주 갑자기. 안에서는 여전히 발터가 울고 있고, 나는 율리우스가 감사할 줄 모르는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 나는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이 인간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곳 바깥은 고요하다. 눈이 내리고 - 고양이는 진작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깜짝 놀란다. 창문이 열리더니 율리우스가 나를 집어 든다. 나는 그 손의 악력에서 그나 얼마나 화가 났는지 느낀다. 나를 깨부수려는가?

 

  그런 순간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누구나 찻잔이 되어보아야 한다. 자신이 벽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을 예감하는 순간이 어떤지를. 그러나 디아나가 마지막 순간에 나를 구했다. 그녀는 나를 율리우스의 손에서 빼앗아 들고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 이 찻잔을 당신은…….’ 그러자 율리우스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미안, 나는 그만 너무도 흥분해서…….’

 

  발터는 진작 울음을 그쳤다. 율리우스는 진작 신문을 들고 난롯가에 가 앉았다. 발터는 율리우스의 무릎에 앉아서 내 몸에서 아까 얼었었던 비눗물이 다시 녹는 것을 보고 있었다. 빨대는 벌써 꺼냈다. - 그리고 나는 손잡이도 없이 얼룩투성이에 낡아빠진 채로 수많은 갓 새로운 물건들 틈에 서있다. 나는 평화를 다시 가져온 장본인이 나라는 사실에 자부심에 휩싸인다. 비록 그것을 방해했었던 존재가 나였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지만,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이란 말인가, 발터가 새 기차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

 

  나는 일 년 전에 죽은 게르트루트가 아직 살아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아 보이는 율리우스의 저 얼굴을 그녀가 봐야만 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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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 : Schiksal einer henkelosen Tasse (1952), Heinrich Böll: Werke in 10 Bänden. Hrsg. v. Bernd Balzer. Köln 1977/78. (Romane 2: S. 57-63)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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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2011. 8. 26. 23:12

<그리운 친구여. 카프카의 편지 100선> 번역이 출판되었다. 
                                                          - 아인북스 411쪽.( 2011. 8. 15.)

얼마나 공을 들였나, 100편을 선정하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번역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만큼 점점 더 공을 드리게 되었다, 원고지 1400장.
출판사가 믿음직스러웠다, 꼼꼼한 교정과정에서 참으로 신뢰감이 무르익었다.

표지를 여기에 올리고 싶지 않다. 사실은 울고 싶었다. 조금 울었다. 억울하다.
표지보다 무거운 알찬 내용을 자부심으로 느끼기에는 표지가 너무 가볍다.
나는 중 2 때도 무거운 책들만 읽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읽었다.
이렇게 가벼운 표지에 내 이름이, 그것보다 카프카의 이름이 들어있다.
아이러니다. 아니, 수치다.
젊은 출판인에게 울고싶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할 말을 잃었다.
젊은이는 젊은이다. 늙은이는 늙은이다.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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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2010. 12. 30. 23:30

내가 정녕 독문학 교수이기를 멈췄는가.
나는 여전히 도이치의 느낌과 글의 마력에 빠져있다.
10권의 전집 중 단 4쪽 분량의 이 단편을 보라. 글쓰는 이,
소위 작가라는 정체성을 지닌 모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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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인리히 뵐 1954 -



   내 친구는 묘한 직업을 가졌다.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가 정서법의 몇 잠재적 지식을 소유하고, 문장론의 몇 규칙들을 막연하게 마스터하고, 이제 타이프 한장 한장을 문체의 연습들로 점유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런 한 뭉치를 만들자마자 그것을 그는 원고라고 부른다.

그는 수년 간 이 문화의 황야에서 예술의 마른 풀만을 겨우 뜯어먹고 살았다가 마침내 출판사를 찾아냈다. 그의 책이 출판된 뒤에, 나는 최고로 낙담해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 기가 꺾일 만했다. 출판사의 정산에 따르면, 반년 내에 350권이 비평을 부탁하려고 무값으로 배포되었고, 몇 우호적인 비평도 나왔고, 13권의 책이 실제 팔렸단다. 그로써 내 친구에게는 5,46마르크의 대변이 발생했단다. 그런데 그는 800마르크를 선지급 받았기 때문에, 같은 비율로 셈하자면 이 선지급금은 대략 150년이 되어야 상쇄될 수 있는 것이란다.

이제 문제는 한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이 평균적으로 그만 못하다는 점이다. 그게 대략 몇몇 거의 전설적이다 싶은 터키인들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한 70을 본다. 더러 우리 잃어버린 세대의 기념비적인 신고를 생각할 때 위안적으로 한 십년을 더 칠 수도 있다.

나는 친구에게 두 번째 책을 쓰라고 충고했다. 그 책이 출판되자 전문가 권에서는 기쁘게 환대를 받았다. 비평용 샘플은 400권으로 급등했고, 반년이 지났을 때 판매고는 29권. 나는 친구에게 담배 두 개비를 말아주고는 어깨를 도닥거리며 제안했다, 이제 세 번째 책을 쓰라고. 그런데 친구는 그 말을 아이러니로 이해하고는 모욕을 당한 듯이 물러서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투명작가 비트”라고 문학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에 관한 평전 한 권이 나오자 평전이 그의 작품들 전체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근 반년동안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는 다시 고독한 천재성의 영역에서 내닫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내게 와서는 후회막급하다고, 그래 아무튼 세 번째 책을 쓰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에게 이번에는 헥토그래프 등사본으로 30에서 50부쯤을 출판사에 넘겨주라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선지급금을 받았다. 그의 둘째 아이가 태중에 있었고, 그는 말하자면 몇몇 식자공과 인쇄업자, 포장이나 발송담당 여직원들의 실직에 협조하는 죄를 짓기는 싫었노라는 주장을 폈다. (그의 사회적인 감각은 항상 정말 강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에 관한 근 100편 정도의 호의적인 비평이 나왔고, 두 권을 합친 판매부수는 90권을 넘었다. 출판사는 스스로  “독자 구하기”라 명명한 작전에 돌입했다. 곧 각 서점마다 쪽지가 발송되었는데, 내용인즉, 비트-구매자를 확보해놓고 곧 출판사에 알려달라고, 그러면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을 개시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작전의 결과는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시작해서 4주 만에 저 위쪽 북부에서 한 남성이 나타나 내 친구의 책에 대해서 묻고 그것을 사고 돈을 지불했음에 틀림없었다. 서점 주인은 곧 전보를 보내왔다. “비트-구매자 출현 - 다음 지침은?” 그러는 사이에 서점주인은 구매자를 대화로 붙잡아 놓고 커피를 따라주고 담뱃갑을 권하고 그랬다. 이 모든 행동들이 구매자를 놀라게 했지만, 그는 조용히 그러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러자 번개처럼 빨리 출판사의 답변이 왔다. “구매자 이쪽으로 보낼 것 - 전 비용 이쪽 부담.” 다행하게도 구매자는 교사였고 마침 방학이어서 남독으로의 공짜여행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는 첫날은 쾰른까지 갔고 그곳에서 하루저녁 좋은 호텔에서 묵고, 이튿날 아름다운 라인 강변을 따라서 남쪽으로 향하며 여행을 즐겼다.

이틀째 오후 4시경에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역에서 출판사까지 택시로 이동했고, 출판사에까지 가서는 출판업자의 매력적인 부인과 더불어 좀 흥분된 시간을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면서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새로 여행경비를 받아 챙겨서 다시 역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2등 열차로 내 친구가 뮤즈에 봉사하고 있는 그 소도시로 갔다. 그곳엔 그 사이 둘 째 아이가 태어난 지 한참이 되었고, 친구 아내는 영화관엘 가고 없었다. - 작가들의 아내들에게라면 어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허해서는 아니 되는 휴식 아닌가. 구매자는 그러니까 내 친구를 마침 그가 아이들에게 저녁우유를 데워서 그들을 달래려고 막 노래를 부르고 있던 참에 만나게 되었다. 그 노래란 게 하찮은 어휘들로 구성되었을 밖에. 아무튼 이 말이 최근 도이치문학에 언짢은 빛을 던졌으니…….

내 친구는 자신의 독자에게 감동어린 인사를 하고서 대뜸 그의 손에다 커피갈이를 밀어주고는 재빨리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이행했다. 곧 커피 물이 끓었고, 이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다 수줍은 사람들이어서 서로 묵묵히 감탄하면서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동안을. 그러다가 마침내 내 친구가 외침소리를 토해냈다.

“선생은 천재이시오 - 제대로 자라난 천재이시란 말이외다!”

“아, 아닙니다,” 손님은 유하게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작가선생이 그렇소.”

“틀린 말씀,”  내 친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침내 커피를 따랐다, “천재의 주요 특징은 그 희귀성에 있지요, 그리고 선생이야말로 저보다 더 희귀한 인간계층에 속합니다.”

방문객은 겸손한 이의를 달려고 했지만 혹독한 방식으로 훈시를 받고 말았다. “거 말 마쇼.” 내 친구는 말했다. “책을 쓰는 일은 그게 만들어지는 일에 비해 그저 반쯤 나쁜 일이오, 출판사를 발견하기란 유희이외다. 그러나 책을 산다는 것 - 그것을 저는 천재적 행위라 하는 것입니다. - 그나저나 우유와 설탕을 치시지요.”

그 남자는 우유와 설탕을 치더니만, 수줍어하면서 외투 오른 쪽 안주머니에서 그가 저 위 북쪽 지방에서 샀었던 책을 내밀며 헌정 사인을 부탁했다.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내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단 한 가지, 선생이 제 원고에다 헌정 사인을 해주는 조건이오!”

그는 서가에서 바인더를 꺼내더니 거기서 빼곡히 쓴 원고뭉치를 꺼내더니 손님의 커피 잔 옆에 놓고는 말했다. “부디 저에게 기쁨을 주시오!”

손님은 혼란스러워 만년필을 덜덜 떨면서 원고뭉치 마지막 장 맨 아래 여백에다 머뭇머뭇 썼다. “진정한 존경심을 담아서 - 귄터 슐레겔!”

그러나 내 친구가 잉크를 말리기 위해서 그 원고를 난로위에서 흔들고 있던 한 30초쯤이 지나서 손님은 이번에는 외투 왼쪽 안주머니에서 타이프가 되어있는 종이 다발을 꺼내더니 내 친구에게 청했다, 그가 최근 도이치문학에 대한 기여라고 간주한 이 결과물을 출판사에 감정 의뢰해달라고.

내 친구는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자기는 실망감에서 몇 분간 말을 잃고 있었노라고. 이 남자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 그를 깊은 비통에 빠지게 했었노라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시 몇 분간은 묵묵히 건네다 보고 앉아있었다. 마침내 내 친구가 나직이 말했다. “제발 간청하건대 그만 두십시오 - 선생의 독창성을 잃는 일이외다!”

손님은 고집스레 침묵하고 있더니 자기의 원고를 쓸어 모았다.

“선생께선 여행경비를 받으실 수 없겠습니다,” 내 친구는 말했다, “생크림케이크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요. 출판자의 부인은 찡그린 낯빛을 할 것이구먼요. 선생을 위해서 간청 드리는 것이니, 제발 그만 두시지요!”

그러나 손님은 찡그린 채 고개를 갸웃 둥했고, 내 친구는 한 인간을 구한다는 뜨거운 노력으로 출판사의 정산서를 가져오는 일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슐레겔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여기에서 내 친구는 이야기를 중단하고자 했지만, 나는 그가 방문객과 그만 드잡이를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어쨌거나 여기에서 휴지부가 발생했고, 그 동안 내 친구는 불끈 쥔 주먹을 생각 깊게 내려다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저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들은 것은 슐레겔이 짤막한 인사와 함께 떠났다는 것이고, 그의 원고는 놓아두고 갔었더란다.

그러는 사이 슐레겔의 장편 『슬프도다, 페넬로페여!』가 귀향소설로서 전문가 권에서 상당한 주목을 이끌어냈다. 슐레겔은 교사직을 떠났고, 그러니까 제대로 된 직업을 떠났는데, 말하자면 다른 직에 종사하기 위해서다. 나로서는 여전히 직업도 아니라고 간주하는 그런 직에 종사한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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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구하기 Die Suche nach dem Leser」:

하인리히 뵐 (1954), 함부르크의 ≪일요신문 Sonntagsblatt≫에 게재된 단편.

여기에서는 Böll, Heinrich: Romane und Erzählungen 2. Hrsg. von Bernd Balzer, Köln 1977 본을 번역했다. 

 

국제PEN 광주 2010년, 214-218쪽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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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2004. 12. 1. 21:49

하인리히 뵐: 1967년 뷔히너문학상 수상자로서, 수상연설집
문학은 아직도 고혹한  피의 작업(뷔히너학회편 2004)에 실린 것.

 

                        뷔히너의 현재성


저의 감사하는 마음은 진심입니다만, 저의 연설은 고언을 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 것이 이 상이 “게오르크 뷔히너 상”이라는 명칭을 지녔기에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언에서 생겨날 것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즉 앞서 간 선배의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아래에서 위로 나오는 것도 아니며, 스스로 쉴 수 있을 중심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가장자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저 소란스런 동시대인으로서의 감정이 주는 가장자리요, 바로 그 점이 그의 시대의 동지 게오르크 뷔히너를 이렇게 현존하게 해줍니다.

뷔히너의 생과 작품을 파악하기는 간단해 보입니다. 그의 생은 너무도 짧았고, 그의 작품은 단편적이자 독창적이며, 매끄럽게 주머니 속에 들어갈 만 한, 단 한권 분량입니다. 그런 사실은 숭배적인 단순화를 낳는데, 시적 통절함을 실은 비문에 어울릴 이상적인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완성되고, 일찍이 사망한, 이별, 결말, 영면. 그렇지만 뷔히너의 생과 작품은 이 영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화의 땅 묘지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서, 아름답고 궁극적인 광고문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뷔히너가 불러일으키는 소란은 놀라우리만큼 현재성을 지녔고, 여기 이 강당에 현존합니다. 다섯 세대를 건너뛰어서 그 소란은 우리에게 다가들며 우리를 덮칩니다. 죽음의 예감으로 명명된, 이 거친 아름다움과, 우리 문학사에 정말 드물었던 어둠의 열정을 간직한 채 말입니다. 이러한 움켜 쥠,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의 확신, 그가 붙잡은 모든 대상에서 보는 이 인간적인 물질의 정의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을 비로소 예술로 만드는, 그렇지만 인위적이어서는 아니 되는, 저 미숙함의 숨결, 또한 조바심의 숨결 말입니다. 바로 그러한 모순 속에 그 정의가 있지요, 그러니까 결코 인위적 조바심, 인위적 미숙함이 아니라, 그냥 현존합니다. 마치 『레옹세와 레나』에서 레나가 설명하는 그런 사람들 같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행하고 구제불능인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예술을 살아있다고 하는 말은 너무 생물학적이며, 아마추어리즘의 나락으로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뷔히너는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저는 그가 두개골 신경에 대한 강의에서 생명체에 대한 생물학도로서가 아니라 표본화된 물질에 대한 해부학자로서 발언한 그 부분에 말을 돌리고 싶습니다. “…… 개인의 육체적 현존재 전체는 철학적 방식으로 보자면 (그는 목적론적 방식과는 반대로 이 방식을 제시했습니다만), 고유 개체의 보존을 위해 내세워진 게 아니라, 태초의 법, 그러니까 아주 단순한 균열과 선들에 의해 최고의 아주 순수한 형태들이 야기되는 그런 아름다움의 법을 고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 형식과 소재는, 그 방식으로 보자면 이 법에 메어있다.” 뷔히너의 작품에 대한 모토로 내세울 수 있을 이 발언에서 그는 자연과학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현재합니다. 제가 또 하나 다만 구전되어 온 사회적 성격의 발언을 덧붙이자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날마다 스프와 야채와 고기 먹을 게 있다면, 훌륭한 사람 되기는 누어서 식은 죽 먹기다”, 그리고 또 하나 사회적 사실주의의 조야한 유형을 독일 드라마 상 최초이자 거의 동시에 마지막 노동자라 할 보이첵의 입으로 들어 봅시다. “우리는 천당에 가게 되면 천둥치는 일을 도와야 할 거라” ― 그러면 저는 한 사람에게서, 한 입에서, 두 사람의 시인을, 두 독일인을 보게 됩니다, 한 세기 후에 나타나 서로를 배제하는 것으로 보였던 벤과 브레히트, 두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뷔히너 안에서 현재합니다.

뷔히너의 정치적 미학적 현재성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뷔히너의 친구이자 대학생이었던 미니게로데가 겪은 지하 감옥에서의 고문을1) 공공 거리에서 공직자들에 의해 자행된 두 건의 살인, 저 베를린 대학생 오네조르크와2) 연방군 병사 코르스텐의 사살과 관련짓자면 말입니다. 둘 다 국가 권력으로 인한 공개 살인이라는 몸서리치는 경우입니다. 또는 「헤센 급전」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거나, 아예 독일어로 팸플릿으로 만들어서 새로이 주석을 붙여서 보급하는 일 말입니다. 물론 박지 인쇄의 고전판 포장을 해선 안 되지요, 그랬다간 게르만 학술원 취급 같은 조짐이 일어나, 거기서 정치적 가시바늘을 뽑아버릴 테니까요. 귀족과 오두막에 대한 풍자는 이 신판에서 변경할 필요가 없겠고, 다만 해석을 달면 될 것입니다. 대연정은 충분히 독재적이요, 더는 작은 투표함을 두려워할 게 없지요.3) 그것으로 우리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면 그래도 우리의 정치적 문맹을 표현해도 될 텐데 말입니다. 보는 눈을 가진 이에게는 히죽거리는 합의와 정말 히죽거리는 독재성이 충분히 보이지요, 두 개의 권력에 익숙해진 왜소한 남자의 새로운 봉건주의가 보입니다. 그는 거의 전권적인 대 정당의 거대한 관료 기구에서 안전을 느끼고 있는데, 그 안전이란 게 어느 여자 가신이 어떤 궁정에서 느낄 수 있을 그런 것보다 더한 정도겠지요. 자신의 양심을 정당에 바친 자들에게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에서 강력한 일절을 인용해 드립니다. “양심이란 원숭이가 그 앞에 놓고 고민하는 거울이다. 각자는 할 수 있을 만큼 씻고 닦으며, 제 고유의 방식으로 제 재미를 찾아 나서는 것. 그건 서로 드잡이해서 쟁취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팸플릿에도 어떤 장례식의4) 묘사가 빠져서는 아니 될 겁니다. 저 마비적인 행사 말인데요, 그것은 반년 전 일로서, 지난 한 시대를 종결하고 새 시대를 위한 표식이 되었고, 거의 일주일 내내 TV 우산을 장악했었지 않습니까. 국내외, 유럽, 그리고 해외 입법자들이며 정부의 수반들의 입성 행진, 제국시대의 십자훈장 수상자들이며 추기경들 사이에 유행에 걸맞게 차려입은 입법자들이 부대 부대를 이루어 입성했습니다. 그것은 현대적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은 ― 어떻든 저에게는 ― 몸서리치게도 전혀 현재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장례의식을 이론의 여지없이 치러내는 이런 마비적인 당연시에 더해, 표정들, 의상들, 자동차들 하며. 현대적 정치가들, 현대적 주교님들, 현대적 정치인들, 그리고 현대적 군대, 그들은 쾰른 대성당을 장악했습니다. 우리를 심사숙고하게 할 것은, 스스로 민주주의라 하는 이 사회에서도 두 계급은 의상의 강요에 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민주주의를 창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해서 입증할 수 있을 만큼 비우호적이었던 두 계급, 곧 성직자와 군대 말입니다. 이 두 계급은 항상 현대적으로, 항상 사회적으로 유능하게 의상을 갖춥니다.

이제 뷔히너를 인용할 때인데요, 「공산당 선언」보다 13년 전에 씌어진 「헤센 급전」에서 입니다. “법은 자신들의 졸렬한 작품으로 지배를 보장하려는 고상한 자들과  학자들이라는 하찮은 계급의 소유물이다. 이 정의란 여러분을 규칙 속에 잡아두어 더 편안히 착취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저들은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법,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원칙,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파악할 수 없는 판결들에 따라서 말한다.”

우리를 심사숙고하게 할 것은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와 또 독일인들에게 타격을 입은 여타 유럽 국가의 대표자들도, 유행적 변형을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제국 십자훈장을 두르다니, 비록 현대화한, 꾸며 장식한, 민주화한, 게서 갈고리를 빼낸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십자는 어쨌거나 십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는 ― 예술에서나 사회에서나 ― 현대적입니다. 어쩌면 보다 나을 유행적 변형은, ‘사람들이 여전히 십자가를 하고 다닌다.’라고 할런지요. 제 민족들의 고행을 위해 십자가는 표창으로서 수여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 부조리성에서 현대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이 몇날 며칠을 천연하며 공포심마저 자아내는 행사를 현대적으로 만들겠으며, 또 그리 해낼 수 있겠습니까만, 그러면서도 몸서리치게도 현존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로소 영상매체의 우산위에서 엄청난 제곱을 함으로써 그 행사는 능란한 방식의 서양식 픽션, 곧 연극과 편집에서,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의 해설이 아니라, 다만 다시금 그의 신부에게 편지를 쓴 스무 살 뷔히너에게 말을 돌리고 싶습니다. “나는 역사의 소름끼치는 숙명론에 절망감을 느낀다오. 인간본성에서 경악스러운 유사성을, 인간의 제 관계에는 피할 수 없는 폭력을, 그것도 모두에게 부여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개인은 파도 위의 물거품이요, 위대한 자는 다만 우연일 뿐, 천재의 지배권은 인형극이요, 철칙에 거슬리는 우스꽝스런 고투라, 그것을 인식함이 최선의 것이요, 그것을 극복하기는 불가능입니다. 역사의 사열식용 폐마들과 모퉁이에 선 자들 앞에 굽혀서 절을 한다는 건, 저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아요.”

저는 이 새로운 ‘헤센 급전’에 다음 사실의 면밀한 분석을 넣고자 합니다. 곧 이 나라에서 한 요상한 외교문서에 근거하여 국가를 방문하는 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번거롭고 관을 쓴 우두머리들과 압도적인 매력을 지닌 영주 같은 사람들과 더불어 영접 받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만일 새로운 의식이 자라는 대학생들이 이 외교문서에 대항해서 소란을 통해, 그리고 명백히 표명된 거부를 통해서 거역한다면, 누가 게서 놀라겠습니까? 그것만이 유일한 가능한 방식인걸요. 이 요상한 외교문서가 경찰의 폭력을 통해 그들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그런 예절에 그들이 어떻게 의무감을 갖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문서 문제들로 좌절당하고 맙니다. 초대장에 쓰인 간단한 기재, 예컨대 “짙은 색 양복” 또는 “외출용 정장”이란 기재만으로도 꽤나 육중한 압력이 들어 있습니다. 무엇이 짙은 색인지 누가 저에게 말해줍니까? 외출 시에는 제가 무엇을 입나요? “흡연” 같은 육중한 경고문들은 아마 아이러니의 가치도 없겠지요. 누가 우리 위에서 규정하며, 누가 우리를 처리합니까, 누가 우리에게 불문율을 부여합니까? 청년의 항변이 복장과 두발에도 표현되는 것을 누가 이상하게 여긴답니까? 책임이 위임되어야 하고 다른 선택을 허용하지 않을 투표함으로 충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소란과 명백히 표명된 거부를 통해서와 또 다르게, 복장과 두발로 표현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자 스무 살의 뷔히너가 가족에게 쓴 편지 구절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만일 우리 시대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한다면, 그것은 폭력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주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승인했던 모든 것은 필연을 통해 강요된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폭력 사용이 비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한 폭력의 상태에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뷔히너의 미학적 현재성을 그의 정치적 현재성과 분리할 결심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역사에 의해서 놓치게 된 두 독일인의 만남을 한탄해야 할 것입니다. 뷔히너와 그보다 불과 몇 년 젊은 마르크스의 만남 말입니다. 「헤센 급전」의 힘에 넘치고 그렇게나 민속적이며 물질의 정의에 넘치는 언어는 의심할 여지없이 “공산당선언”만큼이나 영향력 넘치는 정치적 문서입니다. 사회적 현실의 인식과 묘사에서 보여준 뷔히너의 꿈같은 확신은 「급전」에서부터 중단 없이 바로 그의 극작품들, 산문, 편지들에 이입됩니다. 시인이자 자연과학자요 동시에 정치적 작가였던 뷔히너가 사회적 현실의 인식과 묘사에서 보여준 꿈같은 확신에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오류와 우회를 문학에 관한 한 면할 수 있을 기회, 그리고 미래의 마르크스주의적 작가들의 고뇌를 탕감할 기회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실제 역사에서는 놓쳐버린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사후에 성사시키게 될 수 있을지, 그러니까 오늘 날 실행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주의적 미학을, 어쨌거나 마르크스의 동시대인이었고 결코 그의 나쁜 동지가 아니었을 뷔히너의 물질의 정의와 대질시키는 것 말입니다. 뷔히너의 작품과 또한 그가 작품에 대하 언급한 모든 글에는 몰인정도 그 반대도 들어있지 않고, 오직 물질의 정의에 대한 소망만 있을 뿐입니다. 『당통의 죽음』에 대해서 그는 사실 경악했던 가족들에게 이렇게 씁니다. “…… 그런데 이 이야기는 맙소사 젊은 여자들의 독서를 위해 창작된 것이 아니어요, 그리고 만일 저의 드라마가 그런 데에 적합하지 않다 해도 불쾌히 여길 것도 없답니다. 저는 당통이란 사람과 그 혁명의 도당들에게서 덕행의 영웅들을 만들 수는 없어요……. 그가 그러한 소재를 선택한 것을 두고 날 비난하려면 하래지요. 그런 항변은 벌써 반박되었어요. 그 항변이 타당하다 하려면, 문학작품 중 정말 위대한 대작들이 비난되어야 하겠지요. 작가는 도덕교사가 아닙니다. 작가는 인물들을 창안하고 창조하지요. 작가는 과거의 시간들을 다시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학습해야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 속에는 너무도 많은 부도덕한 일들이 서술되고 있으니까요. 또 눈을 아예 동여매고 골목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랬다가는 추잡한 짓거리들을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에게 비명을 질러야 할 것이에요, 세상엔 너무도 많은 방탕한 짓거리들이 일어나니까요. 그런데요, 만일 누가 저에게 작가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서는 안 되고 어떠해야 마땅한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면, 전 이렇게 대답하겠어요, 나는 세상을 신보다 더 좋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 신은 이 세상을 틀림없이 어떠해야 마땅한가 그대로 만드셨을 것이라고.”

신사 숙녀 여러분, 게오르크 뷔히너의 이름은 제게 저의 감사말씀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할 의무를 지워줍니다. 동시대 동지의 소란한 변두리에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확신은 부서지기 쉽고, 자기 확신이란 불가능한 그런 입장, 비판적인 것이 격분으로 오해되어 울릴지도 모르는 입장에서 말하라고 합니다. 마치 비판도 자신을 거기에 함께 관련시키는 제안을 포함하지 않은 듯이 말입니다. 뷔히너의 생애와 작품에는 몇몇 현재성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의 편지 왕래 특히 구츠코와의 편지 왕래에서 묘사되었던 망명의 문제, 그리고 「보이첵」에서 표현되듯이 그의 다른 작품 어느 것만 못하지 않은 뷔히너의 의사로서의 현재성 말입니다.

제가 다만 암시적으로나마 뷔히너 또는 당통이라면, 이러한 연설을 생략해도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라끄르와는 당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게으름 그 자체로다. 그는 나서서 연설을 행하기보다는 차라리 단두대에 서려는구먼.” 그리고 빌헬름 뷔히너5)에게 쓴 편지에서 뷔히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내 자신 매우 만족하고 있다, 장마 비나 북서풍이 불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럴 때면 난 사실 저녁에 잠자리 들기에 앞서 발에 양말 한 쪽이 걸려있으면 그 순간 방문에 목을 매달고 싶어 하는 그런 부류에 속하게 되는구나, 다른 한 쪽마저 벗을 일이 너무 너무 피곤하니까 말이다.” 그로써 뷔히너가 공공연히 그렇게 지냈던 게으름의 장을 넘어서 그의 유머라는 거대한 장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머는 그토록 난폭하고 또 그토록 부드러울 수 있으며, 그가 그것을 잃었을 때조차 틀림없이 여전히 현존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취리히에서 엘사스의 친구 뵈켈에게서 편지를 받았던 경우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 편지 중 일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독일에서 나는 매우 잘 지낸다네, 자네가 생각하는 절반만큼도 나쁘지는 않다는 말일세…….”

(하인리히 뵐: 번역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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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두막에 평화를! 궁정에는 전쟁을!”이라는 유명한 대목은 1834년 7월자 『헤센 급전. 최초의 전령』에 인쇄되었다. 이를 배포하다가 붙잡힌 대학생 미니게로데에 관한 기록이 1834년 10월 15일자 카셀의 내무부 문서에 나온다. http://www.digitales-archiv.net 2004-4-15

2) 베노 오네조르크는 이란의 팔레비국왕 방문 반대 시위 중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1967.6.2.)

3) 비상사태법 추진 반대투쟁에서 서독 국민들에게 투표용지 무효화 운동을 선동하고 나선 것은 예컨대 마르틴 니묄러목사를 들 수 있다. 투표용지 무효화 운동의 이유는 당시 현실화된 기민·기사연과 사민당 간의 대연정(大聯政)은 “히틀러가 무색할 정도”의 독재체제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4) 1967년 4월에 있었던 아데나워 수상의 장례를 말한다.

5) 뷔히너의 아우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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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2004. 4. 1. 21:12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카프카의 편지 1900~1924솔출판사 1088면, 1296그램


한국의 독어독문학계에서 개별 작가의 연구로 깊이를 더해서 “한국카프카학회”가 구성된 것은 카프카 탄생 100주년 기념인 1983년이었고, 이듬해부터 학회지 『카프카연구』가 발행되었다. 이후 카프카학회의 최우선 과제로 전집번역이 추진되었다.


총 10권으로 계획된 전집 중에서, 원래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중심으로 한《카프카의 편지 1900~1924》는 한국에서 초역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카프카의 작품들과 연인 또는 약혼자에게의 편지들이 이미 번역되어 있는 것을 최종적으로 완역한다는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수신인들은 주로 글쓰는 친구들과 출판 관계 지인들로, 번역의 난관은 이 실존인물들을 파악한 이후에야 한글의 단계별 경칭과 어투를 정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원전은 문우였던 막스 브로트가 펴낸 《프란츠 카프카. 편지 1902~1924》였는데, 1999년 『카프카의 편지 I』비판본이 출판되었다. 완전한 원전은 번역에 커다란 고무가 될 것이었으나, I 권은 1912년까지의 편지만을 포함했고, 나머지 네 권의 출판은 요원했다. 더구나 완전히 새로운 편집으로 인해서 한창 진행 중이던 번역의 체제를 흔드는 일이 되었다. 그밖에 영문판은 브로트판과 날자확인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의 원전은 셋으로 늘어났고, 총 2000페이지를 육박했다. 번역 원고는 80만 글자를 넘어갔다. 


그렇게 해서 여기에 번역된 카프카의 편지들은 620여 통에, 수신인은 50명을 웃돈다. 비판본이 포함하고 있는 1912년까지는 비판본을, 그 이후 1913년부터는 브로트판을 기준으로 번역에 임했고, 심지어는 영문판에서 그 일부 혹은 전체를 번역하는 경우도 생겼다.


기본적으로 독일어 번역에 도움을 준 것은 성균관대의 로스바흐 교수(전남대학의 동료였고, 함께 책을 낼 정도로 형제처럼 일한다), 체코어 발음은 프라하와 뉴욕에서 각각 체코어 사전들을 구해다 외래어 표기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그런 체코어 고유명사들을 한글로 손수 적어준 체코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야로슬라흐 바린까 선생님은 2001년 현재 한국에서 국제학술진흥원의 협력으로 세종대왕 등 우리역사를 공부하는 중이었고, 그 일을 기쁨으로 해주었다.


수신인은 오누이들을 포함한 가족 또는 직장과 출판관련 인사들에게 보내는 몇 장의 편지를 제외하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대부분이다. 일상의 단순한 편지왕래라기 보다는 글쓰는 일에 대한 논의요, 실제 쓰는 연습을 포함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연인들에 가려져 잊혀진 첫사랑 헤트비히 바일러와의 교제, 그 외에도 꾸준히 편지왕래를 계속한 여자들과의 관계도 알게 된다. 환자로서 요양소에서 알게 되어 마지막을 동반한 젊은 로베르트 클롭슈톡과의 독특한 우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무엇보다 막스 브로트의 경우, 1902년 만난 두 사람은 2년 후부터 편지왕래를 시작했고, 그것은 1924년 카프카의 생애 마지막까지 20년간 계속되었으니, 250여 통의 편지로 남은 우정을 누군들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제목《행복한 불행한 이에게》는 카프카가 브로트에 보낸 편지의 일절에서 중에서 골랐다.


하나의 위안은, 카프카의 편지들은 편지들이 줄 수 있을 단순히 정보가 아닌 심오한 감정이입을 동반할 것임에 틀림없다는 기대이다.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이런 편지를 쓰는 사람이 누구인가? “서신으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서신이란 바다를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의 해변 가에 철렁거리는 바닷물과 같은 것이오.”라고 탄식하는 사람... 바로 그곳에 자연인 카프카가 숨쉬고 있으리라.


무수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번역에 4년 출판에 2년이 걸린 세월이 보람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의 난해함이 이 편지들을 읽음으로써 이해의 첩경이 될 수 있다면, 역자로서 초역으로 인한 오류들을 걱정하면서도 그 의미에 마음을 둘 수 있은 까닭이다.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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