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시2011. 3. 31. 22:00


 

도마뱀


‘나는 도마뱀이다.’ 또는 ‘나는 자장면이다.’ 하고 글의 제목을 쓰거나 글을 시작하면 우선 독자의 첫 반응은 거들떠도 안보는 것일 게다. ‘나’처럼 흔한 단어도 식상하지만, 거기다 ‘도마뱀’이나 ‘자장면’같은 엉뚱한 개념을 끌어다 대어 무슨 이야기를 엮어 가겠는가. 식자층이라면 이런 글에 대한 비호감은 말할 나위가 없어진다. 우선 비문으로 보일 테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러니까 안 선생이 우연히 털어 놓은 말로 인해서다. 문단 어디 겨우 끼어 들어온 새내기들이 듣게 되는 비평가운데 비문이라는 지적이 가장 수치스럽다고 한다. 게다가 작가가 자신의 일상적 언어 습관에 의해서 서술하게 되면 독자는 제각기 자기 식의 어법을 지니고 있어서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길수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단다. 친절한 작가라면 객관화된 문법체계를 따르며 정확하고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서 친절한 서술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참 친절한 지적이다. 장래 지망생은 물론 어찌 비집고 들어간 이라 해도 가슴 깊이 새겨둘 말이다. 뭘 모르는 나도 동감이다.

그런데 늘 그 도가 문제이다. 비문을 피하고자 문장마다 멈칫거리기 시작하면 한발도 못나가고 마는데, 그것은 어쩌면 오보만도 못할지도 모른다. 잘못 내딛은 걸음은 뒷걸음이나 선회를 통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이고 있다면 살아있고, 살아있다면 무엇인가는 끼적거려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한발도 못 내딛는 졸렬한 그가 문제였다.


                                        *


그가 처음 우리 교무실로 걸어 들어왔을 때가 지금도 역력하다. 보통 때와 다름없이 그 삼월에도 두어 명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는 처음 어딘가에 들어오는 사람의 일상적인 파르스름한 긴장감을 모르는 사람모양 스스럼없음에 외려 눈에 띄게 교무실로 들어섰다. 벌써 조회가 시작되었고, 마침 교감선생이 새로 온 다른 두 사람을 소개하는 순간이었다. 그 둘은 벌써 교무실을 들렸다가 교장실에서 인사를 마쳤고, 이제 다시 공식적인 인사를 하는 참이었다. 신참은 아직 아주 늦지는 않은 것이 다행인 듯 비교적 태연한 걸음으로 교감을 향했다. 인사에 합류 하겠다는 몸짓이었을까? 당황한 것은 오히려 교감으로, 어어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무례하다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그렇게 중간 쯤 오다만 자리에 서서 인사를 시작했다. 동서남북으로 네댓 번 45°는 굽혀서 절을 하더니, 안 진숩니다 그랬다. 말을 할 때 눈을 천정 쪽으로 향한 것은 마땅한 방향을 찾지 못해서였을 것이나, 다른 시선들과 키를 맞추는 효과도 있어 보였다. 고개를 다시 제자리로 하자 내 눈과 부딪쳤는데, 내 옆자리 책상이 비어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냥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다행이 조회가 중단되지는 않았다. 이상한 짧은 정적을 마침 주번교사가 깼다. 그는 하필 첫날부터 지각생들 문제에 열변을 토했고, 이어 새 학년부장들이 자신이 학년부장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각각 한 말씀들을 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곧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눌해 보이는 새 등장인물에 조금 쿡쿡거리며.

부임 첫날 지각하는 양으로 보아 이 신참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괜찮았다. 더는 지각하는 일도 없었고, 도드라지지 않으니 잘 하는 것이다. 첫 순간부터 이마를 찡그렸던 교감 눈에는 영 벗어났다고 해도, 그는 그런 것을 별로 모르는 듯 했다. 그가 개의치 않으니까 교감도 신경을 껐다고나 할까. 전체적으로 - 이 말은 참 미안하지만 -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게 보통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의 부서가 문제였다. 수업계라니, 우선 나이에 걸맞지 않았으니 보기에도 그랬고, 보기보다도 더 꼼꼼하질 못했다. 곁눈으로 그 고생을 보는 내가 마음이 약해질 때, 그는 극구 사양하지 않고 슬며시 내 도움을 받았다. 아무튼 고개를 쳐들고 다녀서 강해보이는 인상하고는 많이 달랐다.


그러다 한번 일이 났다.

퇴근 시간에 퇴근을 해야 합니다.

이 무슨 망발인가. 2학년 담임 한 사람이 병가를 냈고, 담임이 없던 그가 그 자리에 투입되는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첫날 하루는 자율학습 시간까지 남아있더니 이틀 째 되는 날 그가 대놓고 불평을 하며 이른 퇴근을 감행한 것이다.

다들 피식 웃었다. 일정한 시간, 그러니까 비담임이 퇴근하는 그런 시간에 퇴근하는 것은 주류에서 밀린 현상에 불과하니까. 그가 보통만 되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기회를 이용해야 맞다. 때는 이때다 싶게, 어쩌면 담임보다도 더 나은 인상을 학생들에게나 주위 동료들에게 심어두었다가 이듬 해 담임을 맡는 일에 신경을 써야할 판이다. 그런데 퇴근해야 한다고? 이유도 밝히지 않는 그의 말을 교감이 들어줄 리도 없다. 여전히 영․수․국이 아니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 학교다. 그런데 사회과 중에서도 정치․경제도 아닌, 하다못해 국사도 아닌 세계사, 그러니까 선택과목 결정에서 아예 저만치 밀리는 과목이면서 큰소리를 치다니. 너무 예상 밖이라 다들 멍했을 것이다.

그렇게 대체교사 없이 넘긴 다음날엔 교감이 드디어 역정을 냈다.

안 선생이 잡다한 과목이라 다행이오. 영․수․국이라 한들 담임 맡기겠소, 어디.

그런데 교감이 단어를 잘 못쓴 건 맞았다, 내 생각으로도. 그 순간 그가 폭발했다.

잡다한 과목이라 하셨소? 잡다한? 정확하고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신 거 맞습니까? 친절한 말씀까진 아니라 해도 객관적인 말씀을 하셔야죠. 이건 또 바로 비문입니다. 안 선생이 잡다한 과목이다, 나는 도마뱀이다…… 뭐 그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화를 낼 계제가 아닌데 화를 내는 일이라거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일로 어처구니 없어하는 것은 다른 동료들의 몫이었다.

아니, 저 사람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교감이 한 말에 대해서, 중요과목 아니라고 사람 무시하지 마시오, 뭐 그런 식의 대응이야 그럴 수 있다고 기대되었지만, 비문이란 말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교감의 말이 그냥 말이지 무슨 문서가 아니질 않는가. 그러더니 더욱 가관이었다.

잡다한 과목, 잡다한. 잡스러운 것이 한데 섞이어 너저분하다는 말씀이죠. 세계사에 잡스러운 것이 섞였다. 세계사가 너저분하다. 인간의 역사, 그렇지요, 인간의 역사란 것이 너저분한 것이죠. 여러분의 역사가 너저분하다 그 말입니다. 누구 나와 보세요, 너저분하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여기 자신 있게 나설 분……, 교감 선생님 당신……

사태가 심각하게 번질까 두려운 순간 내가 나섰다.

아니, 고깝게 듣지 마쇼, 안 선생님. 영․수․국 아니면 나머지 통틀어서 잡다한 과목들이라고 하지 않소. 뭐 저 또한 그런 잡다한 과목이니 맘 놓고 말합니다만. 그러니 침소봉대할 것 까진 없소, 자 자아.

이렇게 중재랍시고 그를 끌고나오다 보니, 우리는 슬리퍼를 신은 채로 운동장 쪽 담벼락으로 나가 있었다. 해는 벌써 건물 뒤쪽으로 향해서 하늘은 뿌옇게 떠 있었다. 다행히도 기대어 선 붉은 벽돌은 아침나절 햇볕을 받아 아직 따스했다. 그는 털썩 주저앉았고, 나도 따라 그렇게 했다. 우리들 양복바지의 일그러진 모습이 우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잡다한 과목을 맡아 자존심 구겨진 교사들. 보도블록 사이로 돋아난 풀들도 우리 같은 신세로 보였다. 나는 특별히 그를 달랠 생각도,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냥 풀이 짓이겨져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습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식의 감상은 - 이건 욕된 말이지만 진실이다. 나는 가끔 누군가를 감상하면서 내 생에서 순간이나마 도피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있을 때면 나는 순간이 정지하는 느낌과 더불어 내 삶이 아닌 다른 어떤 곳 먼 데로 떠나가 있는 나를 발견하며 도리어 편안함을 느낀다. 아니, 내가 아예 없는 느낌으로, 뭐랄까, 희뿌연 공간의 편안함이다. 물기도 없어 보이는 풀을 쥐어뜯기를 몇 분간, 그러다 말문을 열었다.

제가 한국어과정에 다닙니다. 정말 놓치고 싶지 않는 공부고, 또 출결이 엄격해서 결석을 하면 수료를 할 수가 없어요.

나는 아직 뿌연 공간에서 떠나오고 싶지 않은 채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단 말입니다. 국어과 교사가 부러워서가 아니라, 국어과 교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한국어를 공부한다고요.

한국어? 국어면 국어지 무슨 느닷없이 한국어요! 이렇게라도 대꾸를 했어야 하는데 아직 내 입은 열리지 않았다.

첨엔 어디에서 국어공부를 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방송대? 그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졸업장 같은 것이 제게 필요할까 싶더라고요. 물론 제가 국문과 출신도 아니라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겠지만, 결국 국문과 졸업장도 별 것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문창과 사람들에 비하면 국문과 사람들도 외도라면 외도인거라. 문제는 제 문장인거죠.

외도라니 누가, 뭐가요?

내 질문에 이번에는 그가 침묵으로 답했다. 다시 아래로 떨어뜨리는 눈빛에 아차 하는 표정이 섞였다.

어라, 안 선생님 글 쓰시나요? 교과서는 아닐 것이고…… 거야 유명 출판사를 업어야 시작이라도 한다는 것이니까.

이번에도 조용했다. 아까 교무실에서 트집하듯 한다면 교과서는 왜 아니냐고 라도 덤빌 판인데. 오히려 내가 뭔가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은 내 특기는 아닌데.

아니, 교과서는 은근히 좀 태들을 내고 하는 일이라서. 건 그렇고 선생님 혹시 진짜 글 쓰세요? 시인이세요? 단어에 민감하신 걸로 보아……

단어에 민감하면 안 됩니까, 소설가는.

소설가? 아니, 안 선생님, 소설가세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옆 자리 벌써 몇 달짼데 깜깜했소, 미안하게.

이런 참. 예, 맞습니다. 어디 내놓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이 나라에서는 일단 관문을 통과하면 그렇게 부르더군요. 천 일을 넘게 단편 하나 발표하지 못하고 있어도 소설가.

대단하시네요, 세계사 선생님에 소설가라면. 그럼 역사소설 쪽을? 건 그렇고 사학과는 안 선생이 선택……

바로 그거요. 사학과는 내가 정했지요.

말꼬리를 싹둑 자르면서 내게 덤비다시피 그가 계속한 말은 대충 세계사 교사가 된 내력이었다. 국사에서 세계사로, 세계사에서 세계문학사 쪽으로,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까 문학이 더 매력적이더란다. 역사와 문학, 두 갈림길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완전히 흔들리는 몇 년을 보냈다. 연애와는 담 쌓으니 (내가 설명을 했었던가? 그의 아쉬운 키꼴을?) 유난히 밤 시간은 길었고, 최근세사를 그 나름대로 정리하기도 하고, 습작을, 습작이라기보다는 뭔가를 끼적거리는 습관이 생기더라고. 언젠가 쓸 단 한편의 역사서의 자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는 자신의 도덕성을 이마에 새기면서, 언젠가는 단 한편이라도 발표할 수 있을 소설작품의 일부분을 쓴다는 생각일 때는 가슴에 진실성을 물으면서.

헌데 통킹 만 사건이 뇌리에서 계속 맴도는 겁니다. 북베트남 해군 어뢰정 두어 척이 미해군 구축함 매독슨가 머독스 호를 공격했다는 사건 말입니다. 전상자 한 명 없었던 사건이 미국한테는 베트남 참전의 구실이 되었잖습니까. 그러다 나중에 뉴욕 타임슨가 암튼 유력 신문에서 그건 베트남 전쟁도발을 정당화하려고 미국 측이 조작한 사건이라고 밝혀냈잖습니까. 결국 인간세상에서는 그래서 언제나 최소한 두 개의 정의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두 개의 정의?

그러니 역사 기술은 불가능하다, 이거죠. 역사는 거짓인 것이, 왜냐, 그럴듯한 진실을 내놓으려고 의도하니까 그렇지요. 차라리 소설이 진실인 것이, 소설은 있는 그대로의 결핍과 고통과 긴장을 드러내려고 의도하니까요.

나는 그의 말이 어디서 들었던가 읽었던가 그런 느낌에 빠져들었다. 눈만 껌벅거렸다.

의도에 있어서 진실한 쪽이 더 진실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역사는 쉽게 버려지더군요. 소설을 쓰기로 덤볐다 해도 쉽지는 않은 것이 소설작법 한 강좌도 듣지 않았으니까요. 암튼 때늦게 엉겁결에 내었던 소설이…… 그런데 문제는 소설가이구나 싶으니까는 이젠 쓰려는 문장 하나하나가 다 맘에 걸리는 겁니다. 비문, 문법에 맞지 않은 문장을 피하려면? 먼저 주술관계, 주어는 반드시 서술어의 의미적 논항이 실현된 것으로 표현하기. 영어에서처럼 주어와 서술어 간에 단수 복수만 맞추라 해도 별 문제가 아닙니다. 영어보다 더 어려운 것이 한국업니다. 최대한으로 비문을 피했다 칩시다. 그 다음 정확하고 적절한 단어선택은 뭡니까. 어떤 문장에서 어떤 단어가 가장 정확하고 적절한지, 그것을 누가 압니까. 더더구나 친절한 서술은 뭡니까. 숨이 막혀서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등장시켜놓고 어찌 친절한 달변을 하라 합니까. 그가 말을 우물거리면 작가라면 오히려 그를 따라 우물거려야 정직한 것 아닙니까? 친절과 정직 중에서 작가가 선택해야하는 덕목이 하나뿐이라고 가정합시다. 선생님 같으면 어느 쪽이십니까?

거야 작가가 아닌 나로서는……

관두시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건 또 뭡니까. 제가 이참에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말이 원래 어렵더군요. 중주어나 중목적어가 우리말의 특징이라고요. ‘이 책들을 반을 선생님을 드릴까요?’ - 내가 그렇게 목적어를 셋 씩 그냥 쓴다고 비문인가요? 아까 말대로, ‘사학과는 내가 정했다.’ 그렇게 말하면 주어가 둘인가요? 무엇이 주어인가요. 도식으로만 되지는 않는다 말입니다. ‘나는 자장면임다. - 난 짬뽕이오.’ 두 사람이 이러한 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비문인가요 아닌가요, 예? 주어와 서술어의 의미적 논항이…….

그가 나를 정색으로 쳐다보며 말을 할수록 나로서는 해줄 말이 더 없었다. 이 친구는 그러니까 여차여차 등단 과정에서의 호의적 충고를 보약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좀생이였다. 보약은커녕 그것이 맹독이 되었나 보다. 한 작품도 더 이상 발표하지 못한 채 다듬고만 있다니 원.


그날 밤 나는 가만히 컴퓨터 세계에서 그의 이름 석 자를 쳐볼까 하는 유혹에 빠졌다. 간단히 쳐보면 될 일을 왜 망설이는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나는 가끔 다른 찾기를 하다가 실수로(?) 걸려 올라오는 시나 산문들에서 재미보다는 공포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청산유수처럼 심지어 화려한 또는 서글픈 배경음악과 함께 드러나는 글들은 공포 그 자체다. 거기에 널브러진 수많은 글들을 위해서는 ‘수많은’ 보다 더한 수가 있어야 한다, 그 수많은 글들의 수를 안 선생의 말대로 ‘정확하고 적절한 어휘’를 찾아 표현해야한다면. 나는 언제부턴가 원고지에다 직접 손으로 쓰기까지는 않더라도 일단 컴퓨터에서 한글작업으로 쓴 원고를 프린트해서 출판사에 보내는 그런 작가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물론 독자를 만나며 살아가는 것은 완성되어 떠나간 문학작품의 제 운명이라지만, 발행부수가 너무 많다거나 인터넷에 친절하게도 온 몸을 드러내버린 작품들을 대하면 겁이 난다. 이런 표현은 신성모독일지 모르지만, 그럴 땐 손님이 많은 창녀를 떠올리게 된다. 창녀가 직업이면 벗어 보일 손님이 많아야 하듯이, 작가가 직업이면 당연히 읽어줄 독자가 많아야하는 철칙도 외면한 채.

사실 남의 말해서 안됐지만, 작가들의 수입이 원고료에 의존되어 있는 구조는 벌써 살인적이다. 많은 직종이 일을 하면 일의 결과에 관련 없이 보수를 받지 않는가 말이다. 어느 식당의 보조라고 치자, 그가 눈코 뜰 새 없이 설거지를 한 하루나 우연히 파리 날린 하루나 같은 보수를 받는다. 우리 교사들의 수업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월급은 하나의 호봉에 준한다. 어제는 잘 했다고 더 받고, 오늘은 덜 잘했다고 덜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소설을 쓰며 하루를 보낸 소설가에게는 아무런 보수도 없다. (‘소설’을 ‘시나리오’로 바꾸어도 같은 구조다.) 다만 그것이 팔려야 돈 비슷한 것을 만져볼 수 있다. 이렇게 매섭게 결과주의를 강조하는 구조는 소설가들을 죽인다, 그 본성에서. 소설가는 돈벌이를 따로 해야 한다, 본성을 반쯤, 아니 더 많이 내어다 팔아가며. 소설가는 몸이 살기 위해서 본성을 죽여 간다. 물론 천재적인 몇 예외는 논외로 하고. 뒤집어 말하면 그런 천재들 몇 사람만 소설가가 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존경해야 마땅할 다작과 출세작에 대해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구라도 하필 손님 많은 창녀와 비교했다고 화를 낸다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직업에 대한 편견을 가진 그가 문제일 것이다. 상당수의 저열한 포르노 작가들도 버젓이 예술가 행세를 해도 되는 세상이다. 안 선생이 들으면, ‘저열한’이 ‘포르노’에 걸리는가 ‘포르노 작가들’에 걸리는가 따질 것이다. 포르노가 특별히 저열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것만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우기는 포르노 작가들의 태도는 확실히 저열한 짓이다. 그들이 위선이라고 밀어붙이는 클래식 애호가가 소수이듯이 포르노 취미도 일정한 독자에 한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 포르노가 특별히 저열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나도 실은 비겁하다. 정말은 그것은 저열하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결정적으로 죽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독서도 영화도 점점 멀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너무 적나라한 그것들에게 내 겨우 남아있는 상상력을 노략질당하고 무시당하기 싫어서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안 선생이 소설가라는 말에서 감탄보다는 걱정이 먼저 일었다. 그래도 그가 무슨 소설을 썼는가 하는 궁금증이 걱정을 이긴다. 흔치 않은 성에 이름도 썩 편한 발음이 아니어서인지 인터넷 세상에 곧 그가 모습을 드러났다. 모든 것이 내 손 안에 있었다. 갑자기 온 세상의 무게가 엄습했다. 나는 그를 찾지 못했어야 했다. 그러면 나는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오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엔 인터넷이 나를 중도에 배신한다. 단 한 편 제목뿐이다. 「도마뱀」. 그가 「도마뱀」으로 입상한 신인공모에서 당연히 기관지가 발행되고 있었는데, 호수별로 제목만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을 읽을 수는 없었다. 도마뱀과 관련해서 다른 데 하나 둘 사이트를 보다가 그냥 말았다.


몸길이는 47mm 정도, 꼬리길이는 44mm 정도이다. 몸통 중앙부에는 28줄의 넓은 비늘이 덮여 있다. 꼬리는 원통모양이며 끝이 뾰족하다. 산간 초원이나 묵은 밭에서 살면서 주로 개구리, 거미, 물고기, 곤충, 지렁이, 노래기 따위를 잡아먹는다. 천적으로는 때까치 등이 있다. 위험에 부딪치면 꼬리를 흔들어 적을 유인한 다음, 꼬리를 잘라 적이 당황하는 동안에 도망쳐 숨는다. 꼬리는 바로 다시 생기지만 꼬리뼈는 생기지 않고 대신 연골 비슷한 흰색 힘줄이 생긴다. - 도마뱀은 적이 나타나면 꼬리를 잘라 버리고 도망을 친다. 도마뱀의 꼬리는 다시 자라고, 도마뱀은 자기의 꼬리를 원할 때 다시 자를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자른 후에 나는 꼬리는 원래 있던 뼈와는 달리 물렁뼈로 이루어진다. - 두 백과사전들에 보니까 서로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갑자기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고개를 흔들어 버리고 잠을 청했다. 자른 꼬리를 또 자를 수 있는지, 그 부분이 문제였다. 그것이 꼭 알고 싶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나의 은근한 기대와는 달리 그는 조용했다. 한발 가까이 다가갔다고 느낀 것은 나 혼자였다 싶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는 그냥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다만 그는 부담임 노릇을 확실히 사양하고 제 시간에 교무실을 나섰다. 할 수 없이 교감이 그 시간을 지키는 모양이었고, 실제로 그런 것이 교감의 임무 중에 포함 될 것이었다. 은행에도 가보면 맨 첫줄의 행원이 자리를 비우거나 손님이 많거나 하면 중간에 있는 상관이 빈자리를 메우지 않던가. 우리는 실제로 인해전술이라는 작전도 들어본 민족이다.

며칠 후 나는 교감에게 그의 이야기를 귀띔했다. 사실은 등단한 소설가이고, 꼭 필요해서 국어 관련 강의를 듣는 모양이더라고. 한국어라는 말은 피했다. 복잡해지기만 할 것이 뻔했으니까. 소설가? 하며 놀라던 교감은 이내 승복이랄까 포기랄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설가를 포함해서 미술이다 뭐다 뭔가 예술 쪽으로 관계된 사람들은 조금은 규범을 모르고 방자한 경향이 있으려니 하고 치부하려는 듯한. 그것이 교감으로도 편할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그를 분류하고 해석해서 감정에 마감을 지어야 했을 것이니까. 진짜 예술가라면 승진이다 점수다 하는 것에 관심을 덜 치대니까 경쟁대열에서 빠져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근평을 손에 쥔 상관으로서 편해지는 점도 있을 테니까.

시간은 생각보다 잘 흘러간다. 벌써 여름방학이 왔다.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늘 부럽다고 말한 방학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상당수 교사들에게는 그렇게 쉬는 방학이 아니다. 승진을 위한 연수나, 그에 따른 교육대학원 공부들도 심심찮지만, 무엇보다 보충수업이다. 영․수․국 이외에도 여러 과목들이 보충수업에 편성되지만, 세계사가 거기에서 빠진 것은 순전히 안 선생 때문이었다. 그는 완강히 방학동안의 수업을 거부했다. 방학동안의 수업을 희망한 교사들은 방학동안의 수업을 거부한 안 선생을 오해했다. 안 선생이 수업을 하지 않음으로서 아무런 손해를 볼 이유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그런 심리에 대해서 무어라 말해야 될까, 괜스레 옆자리의 내가, 작가도 예술애호가도 아닌 내가 한참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그가 잠적했다.



그해 가을학기였다. 그동안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을 만끽했을 시점에서 그는 오히려 보릿고개에 누렇게 뜬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침부터 졸고 있는 태에 순간 겁이 나기도 했다. 어디가 몹시 아픈가? 그는 시간만 나면 의자를 뒤로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해를 등지고 앉았으니 해를 보려는 것인가 했다. 초추의 양광이라, 누구든 따스함이 그리운 것 아닌가. 이 햇볕이 가고나면 몇 달 동안 파르스름한 해로 만족해야 하는 계절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자세히 보았더니 그는 해가 아니라 길게 난 창문들 사이 회칠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면을 바라보며 가늘게 입술을 딸싹거리고 있었다. 무서웠다. 갑자기 헛소리를 준비하는 것일까? 정말 무서워지기 시작할 때, 그를 방해해보기로 했다.

안 선생, 거 1학기 총 수업일수가 몇이라 했소? 어디 적혀있을 것인데 어느 파일인지 원……

그는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수업일수 파일이 어떤 거요? 요즘엔 좀 깜빡깜빡하는 게……

그는 영 딴 세상에 가 있었다. 더 이상 방해할 명분도 안서기에 그냥 입을 닫고 마는데, 그가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뭐라 하신 것 같았는데요, 제가 좀.

아니, 되었소.

되었소가 아니라, 제 이야기 좀 들어보실래요? 제가 지금 고시준비를 해야 한단 말씀입니다. 이 나이에, 웃으시겠지만, 자격검정시험을 보려고요. 그래서 지금 책을 꼭 열한 권을 사놓고 이것들을 읽어가며 외워야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말문이 막혔다.

선생님, 느닷없이 이런 황금 같은 시간에 그동안 그렇게 터덕거리던 글이 쓰인다 말입니다. 책의 중요도와 두께에 따라 10월 초 시험 일자에 맞춰 계획표를 짜두었죠. 시험은 연 1회 뿐이라요. 해서 저녁이면 동학들이 함께 공부방을 빌리는데, 공부방 아시요, 노래방, 피시방만 있는 게 아녀요, 요즘 대학가엔 공부방이 있어요. 저녁시간은 한 시간에 각자 2000원이니까, 서너 시간 하다보면 김밥 한 줄까지 한 사람당 만원은 써야 해요. 아, 그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맡은 범위를 공부해가서 발표를 해야 하고, 꼭 대학 때 그룹스터디 하는 식이죠.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인지, 책상에만 앉으면 공부해야할 책으로 눈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자판이 유혹을 해대는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에서 배운 한두 가지 사실에 그만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새 글> 폴더를 열고 글을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벌벌 떨고 쓰지 못했던 무수한 문장들, 또 비문이나 아닐까 해서 겁냈던 산더미 같은 문장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겁니다. 어째야 되는 겁니까? 그 샘솟는 글들을 시험 공부한다고 막아놓아요? 그렇다고 스터디에 가서 발표해야 할 분량은 따로 있는데 그걸 소홀히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나이 더 드신 분도 섞여 있고, 젊은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명색이 저는 교사 아닙니까. 국어과는 아니라 해도 암튼 교사라고 해서, 암튼 스터디 사람들이 저를 상당한 실력가로 오인한단 말입니다. 말이 됩니까? 수학선생이나 사회과선생이나 한국어문법과 무관한 건 마찬가지 아녀요? 더구나 한국문화 과목에선 훨씬 잘 아는 줄 알고요. 비보이가 한국에서 특출한 이유는 사람들 다리가 짧아서 어쩌고 하는 문제가 나오는 판인데, 그게 역사하고 무슨 관계라고! 암튼 놀랍게도 일반인들 생각에 교사는 어느 정도 전지전능한 거예요. 하긴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예쁜 여선생님은 화장실도 안가는 존재일거라고 생각했잖아요. 암튼 이 유능해야할 교사인 내가 맡은 분량의 공부도 해가지 못하면 큰일인데, 몇 년을 터덕거리던 글이 왜 하필 지금 줄줄 나오느냐고요. 겁이 달아나서일까요? 그러니까 비문을 쓰게 된다거나 하는 겁이. 바로 이 공부, 이상하시겠지만, 한국어 공부를 하다보니까 비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비문이 아닌 거예요. 보세요,

그해 영어말하기 대회는 우리 학교에서 이겼다. 일등공신은 아무개, 고장 난 형광등이었다. 수업시간이면 늘 고개를 처박고 앉았던 녀석이 영어이야기를 그 긴 문장들을 그리 술술 외울 줄이야.


잠깐, 그게 단편소설 중에……

아니고요. 그냥, 예컨대. 전 같으면 이런 문장 하나하나에 주눅이 들었을 것이죠. 주어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우선 주격조사 ‘이, 가’ 있는지 점검하고, 주어와 서술어는 제대로 의미 논항이 되어있는지 검토하고. 선생님, 저는 그동안 거의 한 문장도 영구저장을 할 수 없었단 말입니다.

영구저장?

그 말은 좀 이상합니다만, 예, 이제 더는 고치지 않겠다고 저장해서 <영구저장> 폴더로 보내는 일말입니다. 저는 <영구저장> 폴더에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시집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철직을 만들어 두었지요, 신인상을 받은 그날 밤 결심이었죠. 이제부터 엉성한 글들을 남발해서는 늦깎이 신인의 도리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으니까요. 그래서 책상에……

후훗.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소리를 감추며 얼른 안 선생이 내 웃음에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둘러대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좀 꼴통이다 싶었다. 좋은 말로 편집병. 신인작가가 뭐라고 완벽한 문장생산에 목을 매나? 가소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말은 심각했다.

예, 뭐. 카프카의 책상입니다. 이 시대 누구라도 카프카에서 자유롭진 못하죠.

난 아닌데. 사실 이런 장난말은 내뱉지는 못했다. 그가 너무 진지했고 또 실은 비집을 틈도 주지 않았다.

그가 일찍 병든 것은 아시죠. 그가 여행을 포기할 때 병 때문이라고들 생각했겠죠. 그는, 제가 정확한 말은 외우지 못하지만, 암튼 이렇게 변명했어요. ‘여행에 대한 내 공포심에는 심지어 내가 적어도 며칠간을 책상에서 떨어져 있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 역할을 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생각이야말로 실제로는 유일한 바른 생각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현존재는 실제로 책상에 의존해 있으니까. 작가는 본래 정신착란에서 벗어나려면 절대로 책상을 멀리해서는 안 되고, 이빨로 꽉 물고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1)

줄줄 외우시네요! 그 말도 나는 못 건넸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닌 무명은 당연히 책상에 붙어 앉아야죠. 하지만 죽어라 책상에 붙어있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썼다가는 고치고, 고치고는 다시 쓰는 소모성 질병의 연속, 그것이 글쓰기였습니다. 습작 때가 아니라 오히려 등단 후에. 그러니까 ‘강한 실험정신에 토대를 둔만큼 사건 전개나 사색적 언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거기까지는 인심 좋은 서두였겠지요, ‘신인들이 항용 빠지기 쉬운 몇 가지의 단점’ 거기서부터……

정말 외우시네요! 이제 그를 방해하고 싶어 끼어들었다. 소용없었다.

거기서부터 저를 옥죄는 시금석이 된 겁니다. 첫째가 친절하지 못한 서술로, 작가의 관념에 의해 대충 넘어가는 식의 서술은 그 작품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한 독자로 하여금 작품 이해에 큰 장애가 된다는 점. 둘째는 자주 발견되는 비문으로, 작가는 자신의 일상적 언어 습관에 의해서 서술하지만 독자는 제각기 자기식의 어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객관화된 문법체계를 따라야 한다는 것. 셋째, 이것도 무척 자괴감이 들게 된 동기인데, 어휘의 정확하고 적절한 선택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죠.

그러니까 심사평을 줄줄이 외우고 있느라……

당연하죠. 그러고는 글쓰기가 아예 어렵게 되었죠. 보세요, 한 문장을 채 다 쓰기도 전에 내가 쓴 단어가 정확하고 적절한가, 한 문장을 마치면 이것은 비문이나 아닐까, 이런 글은 친절한가 아닌가…… 더하고 빼고 앞으로 보내고 뒤로 보내고…… 그러니 어떻게 진전이 됩니까. 나중에는 컴퓨터 자판에서 편집질 하는 것을 피해보고자 옛날처럼 원고지에, 그러니까 이제는 대신 공책에 써보려고 했지요. 그건 기가 막히는 고통이었습니다. 우선 제목보터 쓰고 시작을 한다고 칩시다. 제목의 폰트는 당연히 다른 거죠, 그렇게 컴퓨터에서 써왔으니까요. 그런데 크기는 그렇다 치고, 볼드체가 손으로 써집니까? 그건 또 제목 몇 글자니까 시커멓게 덧칠하며 썼다고 치죠. 이 서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제게 글씨가 남아있지 않더란 말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공책에 소설을 쓴다?

예, 그런데 공책에 써보니 맞춤법이 더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컴퓨터에서는 붉은 줄이 나오거나 뭐 너무 이상한 오자는 저절로 잡아지고 그러지 않습니까. 다 쓰고 나서 <도구>에 들어가서 맞춤법 잡으니까 그때 고쳐도 되고. 하긴 그래도 어휘 자체의 적절성 여부는 컴퓨터가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오자에는 큰 신경을 안 쓰고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공책에 쓰려니 매번 맞춤법이 의심스러워 지는 겁니다. 아니오. 또는 아니요. 그걸 써 놓고도 구분이 안 가면, 선생님 같으면 글을 쓰시겠어요?

내가 왜?

암튼 제2외국어과목이라고 한글 안 쓰시오? 여기서는 ‘쓰시요’ - 하면 틀리지요. 틀리지요는 틀리지요가 맞고. 일단 정확한 맞춤법에 하나하나 고민을 하다보니까, 비문이 되는지 여부는 그 다음이더라고요. 결국에……

결국에 가서는 글을 못 쓰신 이유가……

예, 컴퓨터에서 안 되니 공책에다가, 거기선 더 막히고. 암튼 일단은 국어공부를 제대로 하자 그런 거였지요. 이름이 한국어공부가 되었는데, 조금 빗나간다고나 엇나간다고나 그런 점이 있긴 해도. 암튼 어문규범이다 음운론이다 제대로 한국어공부를 하는데 그걸 제가 빠지고 담임 대타로 바우처 같은 것을 담당해야 하느냔 말입니다. 방학 내내도 시험 준비를. 참 열에 한 맛도 없는 변명이겠지만.

열에 한 맛도? 안 선생, 역시 말이 감칠맛이……

감칠 맛 가지고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사생결단이오, 사생결단. 무어랄까 위기의 순간에서 꼬리를 자르고 도망쳐 살아나는 도마뱀 같은.

앗, 드디어 도마뱀이 튀어 나왔구나. 나는 그 제목을 모르는 척 내숭을 떨어보았다.

난 또. 세상 피해 글 쓰러 들어간다는 말도 아니고, 도마뱀 몸통 자르듯이 글을 써요? 거 도마뱀이 잘라낸 것이 몸통 아니요? 몸통을 자르고 뭣이 더 남아서?

그러기에 사생결단이라 하지 않았소. 꼬리든 몸통이든 자르고 도망쳐야지요.

진짜로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 도마뱀은 그 피투성이 기록으로 작품을 남기는 것입니다. 몸통을 살려낸 도마뱀은 꼬리만 물고 허탈해하는 독사에 대해 승리감을 가질 것이고. 꼬리를 자른 선택에 관해서 의미부여를 하며.

도마뱀에게라면 위기 탈출이 절대적 선택이겠지만.

겠지만? 아뇨, 그 이상입니다. 천적을 만났을 때 꼬리를 자르고 도망칠 수 있는 건 분명 비장의 무기이고, 예컨대 살모사가 아직 꿈틀거리는 도마뱀의 꼬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틈을 타서 도마뱀은 목숨을 건질 수 있으면 되었지요. 이제 거기에 그 경험을 잘 다듬어서.

다듬어요? 죽다가 살아온 경험을 쓰면 된다는 말씀이군요. 아하, 일단 꼬리 잘린 도마뱀은 그런 처절한 경험이 없는 다른 도마뱀들에 비해 아픈 만큼 성숙한다, 뭐 그런? 더구나 잘라진 꼬리는 나중에 다시 돋아난다고 하니까요.

나도 조금 아는 척을 해보았다. 그의 눈이 샐쭉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좀 다른 문젭니다, 제 생각엔.

다른?

도마뱀을 노리는 적이 주변에 많을수록 꼬리를 재빨리 자르고 도망치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 되었지 뭐 또요. 게다가 그것을 가공하여…….

그래도 꼬리를 자르는 건 도마뱀에게 큰 부담입니다. 꼬리가 없는 동안에는, 그러니까 그 험한 경험을 작품으로 가공할 수 있다 해도 일단 잡아먹힐 위험이 커집니다. 새 꼬리를 만드는 동안에는 몸통 자체도 자라지 못합니다. 동작도 굼떠지고, 심지어 동료들 사이에서 지위도 떨어집니다. 어차피 소설가의 지위야 꼬리 잘린 도마뱀 수준이지만요. 더구나 이제 그 새 꼬리라는 놈은 더 이상 자를 수가 없답니다.

뭐요? 도마뱀 박사가 따로 없네요.

새로 돋아나는 꼬리는 척추가 아닌 연골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더는 못 자르죠. 소설 한 편 떴다가도 평생 태작만 내놓다 마는 소설가와 다름없지요. 도마뱀으로서도 평생 꼬리 잘라먹은 놈이라는 꼬리표를 함께 달고 사는 것이겠지요. 새 꼬리는 원래 것보다 색깔도 안 예쁘답니다.

예쁘고 안 예쁘고가 중요 하겠습니까? 소설작품은 어찌되건 일단은 살아남아야 쓰는 것이니까 저라면 꼬리든 몸통이든 자르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그렇겠지요. 꼬리를 조금만 물려도 그게 독사라면 금방 독이 퍼져 죽을 것이니 잘라야겠지요, 싹둑.

아니 안 선생, 정말 뭐 싹둑 잘라낼 원망 같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쇼? 그저 따라서 해보는 소립니다. 무엇인가를 끊어내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닌지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아마 누군가는 그냥 그 독으로 죽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제 일부를, 이를테면 마음, 심장, 가슴 뭐 그렇게 불리는 어떤 것을 잘라내고도 살 수 있을지, 그것을 가공하여 작품화하는 강심장을 가질 수 있을지, 그건 꽤 어려운 선택입니다. 아니 선택이기 이전에 운명입니다.

그냥 죽거나 그것을 쓰거나?

예, 실존과 방법의 갈림길입니다. 삶인가 글쓰기인가 하는.

도마뱀과 갈림길이라. 안 선생은 지금 우리가 오늘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고 말하려는 군요.


                                        *


이렇게 안 선생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새삼 혼란스러워진다. 그에게서 뭔가 전염이라도 된 느낌이다. 나의 위상이라는 것도 내가 담당한 과목의 세력과 같이 바닥이다.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 택일의 운명에다가 수능에서는 한문까지 합쳐져서 8대 1의 관문을 뚫어야 한다. 학생들의 선택 이전에 학교장의, 사립학교라면 설립자님의 인생관에 따라 정해지는 운명을 살아갈 뿐이다.

다음 학년도에는……

교장 교감은 누구라도 염려다. 들으라는 듯이 곁눈질을 해가며 영어가 아닌 외국어 문제를 고민한다. 아무리 사춘기라지만 어쩌자고 무턱대고 서양문학에 정신을 팔았을꼬. 더구나 아무도 그때는 너의 뿌리를 기억해라 그런 식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서양이 희망이었다. 우리 것은 천년 묵은 신앙까지도 타파해야할 미신이었다. 그럴 때 영어와 불어로 자유자재로 아리송한 작품들을 발표한 괴팍한(?) 작가는 충분히 우상이었다. 상상 만으로도 드높은 무엇인가에 이르는 듯 착각이었다. 『내가 아니다』에서 독백하는 여배우의 커다란 입…… 신에게서 벌을 받으면서도 이유도 모르고, 기쁨을 몰랐듯이 그 벌에서 고통도 모르는, 혼란과 매력, 아, 그만두자.

이제 와서는 대놓고 맞장을 뜨자는 여자애들의 입이 더 두려운 나. 기껏 딸보다도 어린 애들이 버겁다니. 내 수업 시간에 다른 참고서를 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덤빈다. 학원에 숙제 해가야 되거든요.

와, 죽을 일이다. 교실은 난장판, 선생은 죽을 판 뭐라 뭐라 하더니만. 내가 학생 때 수업시간에 몰래 소설책이나 읽었던 벌을 그대로 받는다. 물론 그땐 선생님에게 대들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쥐어 박히면 죽는 시늉이 전부였는데.


또 슬리퍼만 신은 채 빠져나온 교정의 담벼락 아래에서 나는 그의 말대로 무명작가 안 진수의 넋두리를 안주삼아 빈손으로 빈 술잔을 들이킨다. 너는 도마뱀, 나는 그러면 빈대다. 네 글에 빌붙어 쓰는 빈대. 진짜 쌉쓰름한 한잔이 그립다, 아니 쌉싸래한. 방언을 썼다간 꼼꼼한 성격의 등장인물인 도마뱀이 화를 낼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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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대> 19호, 한국작가교수회,  2011.3.31. 136-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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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0. 11. 15. 23:30

[소설시대 18호 권두언]


불모지에서 더 성한 나무, 문학

 

유난히 무덥고 지루했던 장맛비 속의 여름이 갔습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벌써 여름을 잊습니다. 잊은 체합니다. 오늘을 살아야 하고 내일을 맞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잊은 체하는 어제가 오늘을 결정하기에 우리는 한 발자국도 못 내디디거나 아예 가슴을 부여안고 주저앉습니다. 밖으로는 씩씩하게 걷고 있어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미소까지도 지으며.

이 숙명적인 굴레 - 선택의 오류와 그 결과의 회환에서 오는 결핍의 감정은 그러나 우리들 작가에게는 유일무이한 출발점이 됩니다. 아마 신(들)처럼 무오류성의 성질에 인간이 근접이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애당초 문학이고 예술이고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향한 우리의 내면의 충동 뒤에는 블로흐Ernst Bloch가 말한 ‘전혀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이 숨어 있습니다. 이 동경은 우리들 대부분에 내재해 있는 것이, 인간은 일반적으로 평형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조화의 감정은 지속적인 상황으로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 결핍에서 도피하고자 몰두하며, 이 결핍은 배고픔과 아픔 같은 육체적 유형일 수도 있지만, 고독이나 권태라는 정신적 ․ 영적 유형일 수도 있습니다. 삶의 필수적 소여가 아닌,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향한 달랠 길 없는 동경은 아마도 오늘날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소위 문화산업의 동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을 생의 단조로움으로부터 기분 전환시키는 일이 수요에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로부터의 도주에 있어 그 강도가 격심한 경우는 아마도 작가가 되고야 말 숙명적 요인일까 싶습니다. 때로는 그가 중심에서 너무나 떨어진 곳에 서 있음으로 해서 정상인과의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라 해도, 바로 그 비정상적인 격렬한 사고가 이 사회를 자극해서 정신이 들게 하기도 하는, 그 이상한 숙명 말입니다. 그러기에 문학은 오히려 불모지에서 성장합니다. 작가 스스로 어느 중심에 안주하기보다는 경계인이라고 느끼는 동안 더욱 무서운 기세로 중후한 작품들을 내놓는 증거가 세계문학사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가까운 예로는 우리의 신문학 운동만 해도 국권피탈의 역경 속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학, 특히 내용적으로 응집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모든 소설은 다음의 세 요소로 약분될 수 있습니다. 하나와 둘의 기본 대립, 예컨대 개인/사회, 시민/예술가, 덕/악덕, 선/악, 자유/부자유, 빈/부, 현세/내세 등을 일컬을 수 있는 대립, 그리고 이 대립의 결과로써 생겨나는 제 3의 요소. 한 소설에서 기본 대립은 적어도 한 사람의 등장인물로부터 불평등, 장애 내지는 결핍으로서 받아들여진 것들입니다. 그리하여 이 결핍은 줄거리를 전개시키고, 계속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종결 상황에까지 밀고 나아갑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소설은 유일한 프로그램을 지니고 있으니, 결핍의 지양입니다. 이러한 결핍의 지양을 위한 투쟁이 드라마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해설자/서술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소설의 장르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간접적’ 접근은 이 적극적 시대에 매우 시대착오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는 이 소설쓰기가 점점 난항에 부딪힘을 우리 모두 실감합니다. 김현 선생은 언젠가 사물을 해석하는 힘의 뿌리가 욕망이라고 전제하고, 세계는 세계를 욕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생생해지고 활기 있게 되며, 특히 소설은 그 욕망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엔 우선 소설가의 소설 쓰는 욕망마저 그가 구하는 다른 욕망들에 눌려 변질된 것은 아닐까요? 거기에 소설가의 욕망, 소설 속의 인물들의 욕망에 자신의 욕망을 실어 참여하는 독자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 세상 독자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양식은 고도로 발전하여 독자란 그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고 만 것 같습니다. 인문학 일반이 인류의 정신세계를 위한 지도적인 힘을 상실해 간다는 염려가 식상할 만큼의 언어로 아우성이면 그럴수록, 그래도 우리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 문학이 무엇인가를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정보오락의 시대는 우리가 본래적 의미의 인간성을 기억하며 그저 인간답게 사는 일조차 실로 어렵게 하고 있음이 사실이니까요. 우리 인류가 거대 우주를 품기 위해서라면 우선 그 작은 파편인 이 지구와 먼저 화해하고 섞이는 일부터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쉬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첨단과학기술을 자연정복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하나 되게 하는 데 써야함은 우리 모두 깨닫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공룡처럼 화석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인류는 몸을 낮추고 키를 줄이며 자연 속으로 흡수되어 살아남기를 모색해야 합니다. 다만 그 첩경은 무엇보다 우리 몸뚱이[재산]를 부풀리고 무한정 먹어대는[소유] 공룡이 되라고 부추기는 파괴적 세력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항할 힘을 꿈꾸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꿈을 꾸는 한, 인생은 늘 불발입니다. 유토피아는 아무데고 없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이 불발을 성찰하고 이 결핍을 생채기 나도록 파헤집는 문학, 문학 활동이 인류의 꿈을 위한 마지막 보루임을 자각합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어딘가를 향합니다. 어딘가를 향해서인가 용케 우리가 방향키를 잡았다 하더라도 바다는 비웃듯이 늘 풍랑을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행여 편한 대양이더라도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은 잠시, 한시적 삶에 갇힌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뭔가 애써 소용돌이를 만들거나 다시 폭풍우를 호려내고 맙니다. 잔잔함은 뱃사람을 늘보로 만들 것이고, 정지해있는 한 우리는 살아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한국작가교수회>는 소설 창작과 그 교육에 관한 연구와 정보를 교환하며 후진을 양성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2000년 2월 25일 창립총회를 가지며 정식으로 출범했으니, 이제 온이로 열 살을 먹었습니다. 집필과 강단의 활동으로 온 힘을 소진하는 것, 한 방울의 에너지라도 남아 있다면 잠을 청할 수 없을 정열에 떠는 것 - 우리 한국작가교수회에서 지켜내고자 하는 가치, 온갖 소여의 현란한 폭풍적인 기세에 맞서는 증거로서 또 한 권의 『소설시대』를 내놓습니다. 늘 그렇듯이 편집을 맡아 무진 애를 쓴 편집위원들께, 그리고 원고청탁에 마다않고 좋은 글들 보내주신 여러분께 진정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것이 미미하게나마 사람들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기를 이 책을 펴든 여러분과 함께 꿈꾸렵니다.

 

 

 2010년 때마침 한글날을 기리며,

다시는 ‘언문, 암클, 아햇글’ 등으로 폄하되는 일 없기를,

 ‘그랜드 바겐’을 내놓는 지도층부터 한글사랑의 마음을 일깨우기를 하늘에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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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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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10. 5. 25. 12:21
정체성


 

벌써 이태전인가. 그해 겨울에는 제법 매서운 날씨 덕이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찾아든 손님들이 괜찮았다. 코앞에 닥친 선거도 뭔가 흥분과 기대와 어순선함으로 발길들을 부산하게 했을 것이다. 선거 담엔 다음대로.


그날도 점심이 약간 겨워서 대처에서 왔음직한 여자들 일행이 들었다. 다섯이서 도착하는 모양새가 차 한 대를 꽉 채워서 나들이 나온 상이었다. 홀에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내실로 안내하고 나오려니 신발들에 눈이 갔다. 점심에 몰려다니는 여자들이 어디 한 둘이 오는가만, 여자들 신발을 보면 대개 부류를 안다. 여자들은 크게 두 부류다. 오자마자 사이다 한 병 안 시키고 냅다 삶은 꼬막부터 시켜내다 까먹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제법 맥주부터 시끌벅적하게 시키는 여자들이다. 처음 여자들이 벗어 놓고 들어간 신발들은 보통 구두인데 비해, 나중 여자들은 여름 겨울 없이 발목까지 올라온 구두들을 신고 다닌다. 보통 신발의 여자들은 입성도 수수한 편이고, 발목구두를 신고 다니는 여자들은 줄줄이 화려한 안경테에 렌즈에도 색을 깐 안경들을 쓰고 다닌다.

물론 꼬막밥장사로 살아가는 나로선 어느 쪽 할 것 없이 반가운 돈줄들이다. 술을 시킨대야 그저 그런 정도, 반찬만 더 주문해대는 여자들 손님이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내겐 여자들 손님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근동에서 나는 유자다 모과다 하는 것들을 설탕에 재워서 파는 부수입으로도 한 몫 하기 때문이다. 식사 후에 한 잔씩 돌리면, 잘 나가는 날엔 한 상 손님 중에서 두어 명은 뭔가를 사들고 간다. 근년에는 집에서 손가는 일들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식당에 왔다가 사가는 여자들이 늘어 그 수입이 짭짤한 편이다. 봄에 재워둔 매실로는 진짜 한 몫 건진다. 또 음식에 단맛을 내기 위해 매실엑기스를 당분 대신 사용한다는 입소문 때문에 텔레비전 방송에 두 번이나 뽑혔고, 방송 한 번 나갔다 하면 뜨는 것이 우리 밥장사들 세계다.

그날 팀은 보통 구두와 발목구두가 셋과 둘로 섞이어 있었다. 얼핏 보아도 둘은 입성이 화려하고 나머진 수수한 모양새였다. 그렇게 되면 사이다 한 병 안 시키고 냅다 꼬막부터 까먹을 부류일지 아닐지 순간 점이 안 찍힌다. 그런데 꼬막부터다. 그렇게 삶은 꼬막을 통째로 까먹는 여자들에게 그다음 정해진 전채로 매생이전에 곁들여 꼬막전을 내가면 풍경이 우스워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사실 내가 밥장사를 하긴 하지만 삶아 까먹는 꼬막하고 꼬막전하고는 맞지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좋아하고, 또 그만그만한 식당들에서 거기까지는 정해진 메뉴인걸. 우리 세계에서 승부수라면 첫째가 꼬막 맛이다. 그 다음이 밥반찬인데, 놀라운 말이겠지만 내가 김치를 담그지 않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저 맛있게들 먹는 입이 어떻게 찌그러들지. 하지만 뭔 수로 중국김치 써대는 식당하고 경쟁해서 밥을 벌어먹는단 말인가.


아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할 판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보통과 멋쟁이가 섞여 내실에 든 여자들이 중국김치도 속 모르고 맛있다며 밥을 다 먹었다. 거기까진 남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식후엔 뜨거운 맹물을 달라고 했다. 유자차나 모과차 대신에 그냥 물만 달라는 것이 특이했다. 시간이 좀 되었는지 홀에나 다른 방에는 밥상들이 다 끝난 참이었다. 그래서 물주전자를 들고 간 김에 나도 내실 한쪽에 주저앉았다. 가져온 보자기를 푸는 걸 보니 찻그릇에 찻주전자까지 꺼내놓고 호사를 하는데, 그때부턴 사람들이 좀 달라 보였다. 공짜로 주는 좋은 유자차를 마다는 것이 우선 그랬고, 아무튼 주전자에 끓는 맹물을 붓더니 헹궈서 다시 버리고 하는 품이 일 없는 여자들인가 싶기도 했다. 호사를 하려거든 어디 호텔 비싼 식사나 먹으러 갈 것이지, 밥은 이런 데 와서 겨우 꼬막정식 시켜먹고는 뭔 호산가. 한 여자가 물을 보물모양 여기다 저기다 부었다 덜었다 하는 통에 다른 여자들은 다 그 모양새를 따라 보느라 조용하다. 찻잔이래야 술잔만 한 크기다. 그 잔에 보약처럼 물을 조심조심 따르더니, 한적한 시간인줄 알았는지 나더러도 앉아 함께 차를 마시잔다. 잔이 모자라는 듯, 또 모양이 별 것도 아닌 성 싶어서 복분자회사에서 선전용으로 가져다 놓은 술잔을 가지고 가니까 비슷한 찻잔이 되었다. 하긴 여자들이 칭찬해 마지않던 원래의 찻잔들과 그 찻주전자까지도 여자들 중 하나가 직접 구웠다니 보통내기들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장롱 옆 한쪽으로 벗어둔, 그저 그렇게 보였던 반코트가 실은 털을 깍은 밍크쯤으로 보였다. 비싼 밍크의 털을 왜 깎아서 버리는지는 몰라도 깎은 밍크털이 더 비싸다는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러나 또 어떤 여자의 코트는 너무나도 평범한 모직으로, 고등학교 다니는 내 딸애 거나 비슷해 보일 지경. 그러니까 돈들이 달라 보였다. 또 돈들이 같은 여자들끼리만 다니라는 법도 없으니까.


더는 궁리할 것도 없이 차나 한 잔 얻어 마시려니 심심해졌다. 손님들이야 점심장사로는 벌써 파장이고 주방아짐이 있으니 나 볼 일로는 없을 것이라. 가만히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마침 증권뉴스가 나온다.

오메 쬐끔 다시 올랐네.

무심코 한 말에서 꼬투리를 잡혔다. 한 여자가 따라 붙었다. 아주머니 증권 하시는가 보네요. 잘 하세요?

잘 한다기 보담. 아따, 저 OO카드가 OOO카드 아니요. 그래서 샀던 것인디.

뭔 말씀이오? 거 당……. 

쉿, 입 밖에 낼 말이 있지. 암튼, 그걸 어찌 알며. 아니 그거 참말이래요?

우린 모르지요. 그렇다고들 허니께. 아니 내가 뭐 어디서 들은 풍월이지라.

큰일 날 소리요. 이 세상은 동영상에 나온 것도 아니라면 아닌데. 아줌마, 그런 소리 썸뻑썸뻑 하지 마세요.

갑자기 다른 여자가 나를 향했다. 주식이요? 돈 놓고 돈 먹기를 하신단 말요? 주식에서 아주머니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것 아니요. 거기다 중간 구전 챙기는 증권회사들이 저리들 잘 먹고살고 있으니, 결국 주식하는 사람들이 증권회사 먹이죠. 어떻게 주식해서 돈을 벌어요? 번 것은 순간, 잃을 때가 더 많은 것이 답이요.

나는 머쓱한데, 그러자 갑자기 여러 소리들이 섞였다. 차만 점잖게들 마셔서 조금 다른 줄 알았지만, 말들도 달랐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처음 여자, 그러니까 둥근 머리가 말했다. 지금 주식시장 자체를 원론적으로 말하긴 무리다, 참아라. 두 번째 여자, 물고기 눈이 나무라듯 계속한다. 저 아주머니 같은 경우 그러니까 거기다 찍는 거야. 그쪽 주식 샀으니 함께 부자라도 될 것이다 싶어서.

또 다른 여자, 안경이다. 그러게. 어찌 거의 다 들여다보이는 진실을 못 본 척 은폐하고 거기다 투표를 몰아주는 국민이라니 대운하도 뭔가 신선한 것처럼 사람을 홀린 것이야.

찾잔 가져온 여자가 말린다. 그건 좀 심한 말이…….

안경이 고집한다. 심하대도 사실이야. 인간은 자연을 너무나 학대하고 있어. 유용성이라고 해도 그래. 전국이 일일생활권인데 물류 운운하는 운하는 낡아도 한참 낡은 꿈같은 이야기지. 지금 옛날 뱃길 복원해서 풍류 즐길 때냐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서. 우리나라 땅 어디에서도 시간 남짓 운전하면 바다 아냐?

다시 찻잔주인이다. 참아, 정치는 좀. 바다……. 그래 이 바다를 어쩐다니? 그때 안면도 우리 함께 갔었지? 거기서 거긴데.

이제 화제는 그 무서운 태안사고 쪽으로 옮겼다. 사실 태안 기름이 여기 남녘까지 내려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서안으로는 벌써 어디까지 내려왔다지 않은가. 우리 꼬막장사도 문제가 있긴 있을 것이다. 귀가 더 쫑긋 해졌다.

둥글이 여자다. 그래, 그 긴 해안들이 그렇게 몰살했으니, 어떻게 말로 다 해.

순한 눈에 조용하던 마지막 여자까지 거든다. 결국 자원봉사 팀에 못 끼어본 우리가 뭔 말을 해.

둥글이다. 사실, 집 팽개쳐놓고 나설 상황들은 안 되지.

물고기 눈이다. 1박 2일쯤은 문제없던 것 아냐? 안면도 여행엔 다들 갈 수 있었잖아.

찻잔이다. 그때도 다 쉽진 않았지. 예정된 것이라서, 또 안면도란 새로운 고장에 대한 관심에 무진 애들을 써서 시간들을 맞춘 것 뿐.

둥글이다. 뭐야, 넌 그럼 안면도 여행갈 땐 잘 가고 태안 방제작업 안 따라나섰다고 우릴 나무라는 거야?

물고기다. 나무라기는. 그냥 사람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나부터 이 겨울바람에 게 가서 뭔가 하련단 말이 안 나오지. 우리가 젊기를 하냐! 그래 결국 거기 현지까지 어떤 경로로든 자원봉사 떠난 사람들은 존경 받아야 된다는 거지.

안경인가. 아니 글쎄, 이런다고 뭔 수가 있어. 누가 들을까 말인데, 난 딴 걱정이더라. 그 기름 묻은 부직포들은 어디로 간대냐?


말들을 하는 것이 남편이다 시댁식구들이다 흉보고 까부는 여자들은 아닌데, 어쨌거나 무슨 말들이 좀 무겁다 싶었다. 돈벌이에도 관심이 없는지 원. 주식투자다 부동산투자다 안하는 여자들이 어디 있다고. 아니면 통 크게 다들 해놓고 딴소리들인지 원. 어쨌거나 차 얻어 마시며 뭔 말이라도 들어볼 말이긴 했다.


안경: 너희 《불편한 진실》 혹시들 봤지? 나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물고기: 진실이야 원래 불편한 게 더…….

안경: 그런 게 아니라, 환경 이야기야. 거기 앨 고어 있잖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족 정치인이 아니더라고. 원래 학생 때부터 환경론자였고, 그러니 그런 영화에 나섰겠지. 아무튼 근년에 킬리만자로나 알프스 어딘가 빙하와 만년설이 엄청 녹아내린 이유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거야 만날 들은 소리지. 그런데 온난화란 게 말뿐 아니라 그 진행 속도가 심각하다는 거야. 인간의 소비행태가 CO₂를 증가시켜 북극의 빙하를 1년에 1%씩 인가 녹여내는데, 20년 내에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의 대도시 등 해변도시들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어쩜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거야.

찻잔: 설마…….

안경: 설마가 사람 잡지. 오늘 이렇게 모처럼 잘 먹고 여유를 즐긴다만, 우린 사실 날마다 샤워도 해선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어. 운동해서 죽어라 땀 빼고 씻고. 개인적으로는 무병장수하겠다는 것이지만, 하긴 계산상으로 하루 죽어라 운동해서 수명 하루 늘리면 그 하루는 다 써버린 것 아냐, 운동하느라. 그럼 피장파장이지. 그래 장수한다고 쳐, 장수도 말하자면 공해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어. 인구과잉은 곧 재앙의 시작이니 말이야.

둥글이: 심각한 주제로 가네. 오늘 너 머리 좀 쉬라고 데려오니까.

안경: 아니, 그 사람 말이 우린 이 지구에 용서를 빌어야 한대. 그런 판에 이 좁은 나라에서 잘 있는 물길 놔두고 인공운하라니. 자연은 남용될 대로 남용되어서, 현재 미개발지역이라고 우리가 깔보는 그런 지방에서나 미래가 남아있을 것이래. 운하사업의 일자리 창출 홍당무에 넘어가면 안 되지. 세계경제공황 이후 히틀러가 일자리 창출한 방식이 뭐였게. 성한 사람은 군대나 군속으로 징집하고, 열등하거나 불온하면 수용소로 이송시켰지. 넝마주이나 우범자들이라고 어디 교육대에 쓸어다 넣고 나서 도시 정화했다고 떠들었던 독재도 다 같은 오류를 범한 것 아니냐고.

물고기: 글쎄 공청회 어쩌고 하던 말들도 쏘옥 들어가 버리네.

안경: 하면, 어느 편에 가담해서 진지하게 지원할 수 있어 우리가?

둥글이: 뭐 우리 중에도 운하 지지하는 사람 있단 말이야?

물고기: 모르지, 아니 당연하지. 친구들이라 해서 매사 같은 의견일 순 없으니까.

안경: 이치로는 무슨 일에건 찬반이 있고, 운하계획이 다수당 의견이면 찬성이 많다는 논리가 맞아.

순이: 하긴, 나도 사실 맨손으로 사업가로 성공한 일꾼이 나을 거라 생각했었어. 그건 지금 좀 흔들리지만.

물고기: 누가 인신공격하자는 거 아니잖아. 우리 같은 한물 간 여자들이 무슨 공격의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경: 그러니까 어려운 것 빼고 줄여서 대운하 말야, 그건 안 된다 그런 거지.

물고기: 아니 그보다도 진짜 문제는 우리 인간이 이 우주의, 자연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 그 주인이란 말이 큰 문제지. 누가 어디의 주인이냐고. 결국 우리는 지극이 미미한 객으로서 이 자연 속에 잠시 몸을 의탁하는 것뿐인데. 주인이 아니라 객이라고. 내가 객인 것을 확실히 인정하면 내 것 못 찾아먹어 안달할 것이 하나도 없지. 권리가 하나도 없거든. 그냥 내게 오는 모든 것이 고마울 뿐. 오늘 이 맛있는 꼬막을 포식까지 하고, 거기다 이 멋스런 차를 마시고. 이 찻잔이며 주전자를 내 친구가 손수 구워서, 그 손으로 차를 끓이고 그 손으로 잔에 부어서……, 이런 호사 평생에 한 번 하는 것이 이 무슨 복이냐.

둥글이: 어쩌냐, 이 아줌마가 또 철학 한다!

찻잔: 냅둬라, 글쟁이 말쟁이 본업을 어쩐다냐. 생긴 대로 살게 둬라.

물고기: 왜 껄끄럽냐? 나 오늘 속말 좀 하고픈데. 진짜 복에 겨워서 하는 소리야. 우린 세상으로부터 큰 선물을 누리며 살고 있다구. 생명으로 태어난 것…….

순이: 그래, 몸과 맘을 섞은 남자도 선물이요, 게서 나온 새끼들은 얼마나 더 큰 선물! 그 말 하려고?

안경: 아, 새끼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즈음 젊은 애들 어쩌면 좋으냐. 저번 선거 말이야, 청년들에게 결혼하면 현금으로 얼마 주고 애 낳으면 얼마 준다니까, 그런 후보에게 찍었다고,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는 거야.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걸 올바른 정신으로 한 말이라 믿어? 이익을 준다면 찍는 거냐 말이야? 후안무치. 우리들이 아이들 그리 가르친 것이지만, 해도 너무하지. 결국 눈빛만으로 에이즈도 치료한다는 허풍을 잘 해야 교회가 넘치고…… 종교건 뭐건 광신이상 뭐라 받아들여?

물고기: 그러게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이라니까.

순이: 무슨?

물고기: 내가 무엇인가. 동물 - 인간 - 남자/여자 - 이어서 신분…… 그렇게 좁혀 들어가서 나를, 내가 어디에 속하는 생명인지는 알아야지. 그래야 ‘내가 누구인가?’에 가까운 답을 알 것.

순이: 알면?

물고기: 그다음엔 ‘나는 누구이니까 어떻게 사느냐?’ 그런 질문이 오겠지. 물론 거기까진 다 살고 죽어도 모르겠지만 말야.

둥글이: 그럼 해보자, 우린 뭐냐. 동물 - 인간 - 여자 - 거기까진 같다.

찻잔: 또 있네. 아내요, 어머니요, 이제 곧 장모요, 시어머니요…….

물고기: 아니 그건 역할이고.

순이: 역할이 아님, 뭐가 정체성인데?

물고기: 아니 우리가 각자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출발이지. 우리가 속한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이지. 여성이다 하면, 여성이 정당한 취급과 대우를 받는지, 여성의 정체성이 억압되고 있는지를 인식하자는 것이지. 지금 정체성 정치에선 비단 여성의 정체성이 아니라, 이를테면 우리가 속한 경제적 집단, 서민층, 중산층 하는 구별 말이지. 최근 우리나라 정치는 확실히 최빈층에 초점을 두었거든. 최저 기초생활을 사회가 책임 나눈다는 것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웠지 왜 무능정치야.

순이: 것도 문제가 없진 않아. 독거노인이라 해도 멀쩡한 사지육신으로, 의료비면제니까 요양병원에서 아예 눌러 살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다더라. 기초생활비 한 푼도 들 일 없이 병원에서 먹고 자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고, 가끔 영양제도 맞고. 병원 측에서도 침대 놀리느니 이문이고.

찻잔: 것도 그래. 나 지난 번 장항아리 옮기다 허리가 끔뻑해서 물리치료를 다녀야 했는데, 병원 다니기가 더 피곤해 죽을 일이었어. 우리도 곧 할머니다만, 웬 할머니들이 병원 하나 가득인 거야. 아예 누워서 뒹굴다가 자다가, 치료 끝나고 쉬어가는 방이라던데. 그러니까 할머니들이 전철로 다니면 차비도 안 드니까, 그 폭 대고 차비 정도만 내면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물리치료해주고 말 걸어주니까 날마다 출근인 거야. 노인들 날궂이 한다고 어떤 자식들이 집에서 다리 주물러주느냔 말야, 함께 살지도 않는데. 날궂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저녁때면 다리 붓잖아, 좀 많이 쓴 날은 밤에도 뒤척거리고.

안경: 사실 어떤 제도에도 구멍은 있지 뭐. 그보다 그런 부담을 월급쟁이들이 다 한다는 게 더 문제지. 재벌들 부자들이야 세금을 월급에서 안 떼니 이리 저리 감출 수 있지. 그러니 중산층이 끌려서 내려갔다고 불평하게 될밖에. 내 의료보험료 생각하면 너무 화나. 나야 죽을 때나 병들 때나 일인분 아냐? 그런데 기혼맞벌이면 의료보험 상으로는 독신으로 되어 남편이랑 이중으로 내는 거야.

순이: 뭔가 이상하다 좀.

안경: 그뿐이야? 그럼 우리 애들 가족수당이나 교육비도 이중으로 준다면 말이나 못하지. 그건 아버지한테서만, 그러니까 한쪽에서만 해당된다니까. 주는 것은 중복으로 안 해주고, 떼어가는 건 당연히 이중이지. 그래서 일 없이 요양병원에서 놀며 축내는 비용을 다 부담해주고 말이야. 외로운 노인들이 덕 좀 보는 것이라면 또 참아야겠지. 그런데 부자 병원들이 왜 내가 고생하면서 이중으로 내는 의료보험에서 이득을 챙기느냐 그 말이지.

물고기: 불평은 우리보단 최상위 1%에서 5% 사람들이 더하지, 아예 빼앗긴 10년이라잖아.

둥글이: 그래 누구나 그 나름대로 찬반에 이유가 있나봐. 좀 들어봐, 우리 외당숙이야, 직접. 웬만한 공직에서 은퇴하고서 서울교외로 이사를 가셨는데, 결혼해서 사는 애들도 드나들 것이니 집을 못 줄이시겠더래. 그래서 산 집이 집값이 저절로 오르다보니 종부세가 터진 거야. 기삼백이 아니라 기천이 나오는데 연금생활자가 그런 목돈이 어디 있어. 집을 팔아서 세금을 내야한단 말이야?

안경: 글쎄 여기 무슨 경제학자가 끼인 것도 아니고. 난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 해. 종부세다 양도세다 그런 부자세금 좀 많이 내고 살아봤음 좋겠네. 가진 부동산들에 세금이 많이 부과된다는 것, 그것 대단한 것 아니냐고. 인구 몇 명 이하 섬에는 완전히 온갖 세금이 면제라 그러던걸. 그럼 그런 세금 안내는 섬생활이 세금 많이 낼 것 고민인 사람보다 질적으로 나은 삶이란 거야 뭐야?

찻잔: 딴은 그러네. 세금 많이 내고 사는 팔자가 훨 낫제.

물고기: 괜히 무능정부다 뭐다 그게 언론정치야. ‘무능정치 10년에 대한 반감’ 운운하는 설문은 그 자체로서 선동적이지. 단순히 ‘정부에 대한 불신’ 정도이면 될 문항을 싸잡아서 10년 무능정치 그렇게 몰아가는 거야. 불만 층이 그쪽에 응답을 하면 이제 10년 무능정치는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이지. 그러니 언론이라는 것이 긴가민가 하는 설에 입각해서 뭔가를 주장하면, 설문을 통해서라도 말야, 그럼 그것이 정설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기준삼아 또 적당한 가설을 만들어낼 반석이 되어버리는 것이지. 그 구조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신문방송에 귀기우릴 필요가 없어질 거야.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 교양당하는 것이 인간이지. 코미디 한 줄에서도 교양당하고 말고.

안경: 그래서 펜은 칼보다 무섭다고 했던 거지.

물고기: 그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도 죽이지. 개인이면 또 피해가 작지만, 체제도 펜이 죽이는 거야. 인간의 비판적 정신의 뇌관빼기는 식은 죽 먹기야. 쇠귀에 경 읽기라고? 아니야. 이 매체시대엔 사람들 유도하기가 개 끈에 매인 개 끌기보다 쉽지.


그 다음 이야기들은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분명 이 여자들은 그냥 놀고먹고 몰려다니는 여자들은 아닌 성 싶었다. 하긴 화투짝 달란 말도, 노래방기계 찾는 말도 없고 보면 싱겁디  싱거운 것이 다르긴 달랐다. 나는 양심에 한 가지 찔리는 일이 있어 그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다. 내가 바로 주식 투자해놓고 거기다 표 찍은 그런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난 그래도 표 찍으러 갈 때 까지는 사람이 일단 부자로 살아봐야 되지 않겠냐던 통장 박씨의 말에 수긍이 갔었다. 정말 부자 세상이 한 발짝 다가온 느낌이었다.

박씨는 꼭 그렇게 말했었다. 대통령이 뭐라요, 우리 같은 사람 잘 살게 해주면 그만 아니요. 후보가 워낙 부자니까 더 이상 부정을 안 해먹을 것 아니요.

나는 의아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 속 알기나 한다요.

박씨는 뭔가 확신했다. 아따, 가진 재산이 몇 백억도 넘는다는데, 뭘 더 꿍쳐 묵겄소. 가진 재산 다 내놓겄다 하지 않았소!

쬐금 수긍이 갔다. 그런 양반들이야 뭣 누러갈 때 올 때 맘 다르고, 그러든 않겄지라.


그런데 상을 좀 치울까 들어가서 다시 듣게 된 이야기는 더욱 불안한 내용이었다. 여자들이 여자들 알기를 매서웠다. 아니 남녀 간에 사람들 알기를 알알했다. 누가누가 한 말인지 이젠 분간이 안 섰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짝을 두고도 정분이 나는 일이 왜 생기느냐. 그래서 짐승만도 못한 것이란 욕이 있지.

아니 짝짓기 본능이 뭐 나빠. 본능인데. 본능이 단혼제가 아닌 것을 유독 기독교도덕이 신도 하나요, 남편도 아내도 하나라고 가르쳐서 그렇게 못 밖아 두니까 본성이 발동하는 것이지.

게서 기독교가 왜 나오냐? 그럼 일부다처를 은근히 인정해온 유교가 나았단 말이냐?

종교는 빼, 제발. 문제는 본능보다 더한 데에 있어. 거기에 권력과 지배가 들어가니 문제지.

웬 권력?

권력이지. 여자가 왜 약자이게, 권력이 없어서 그렇지. 가정에서 권한이 적으니 항상 눌렸지만, 지금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잖아. 고개 숙인 남자, 그 정도는 곰팡스런 말이지. 요샌 여자들이 집장사다 주식이다 큰돈을 만지잖아. 그래 남편들이 죽 쑤고 살기도 하나봐.


이 대목에서 난 움찔했다. 밥장사는 아무래도 내 주관이다. 남편이야 가게 문열어주고 문단속하는 일 말고는 모른다. 기껏 셔터맨 신세다. 장부 간섭도 못하게 내주장이 되었고, 주식이다 은행관리도 내주장이다. 돈 얻어다 쓰는 셔터맨. 남편도 그래서 점점 무력해지는 걸까. 밤이고 낮이고 남편더러 느림보 다름 아닌 꼴이라고 나도 제법 잔소리 큰소리 아닌가.


가만 보니 물고기 눈이 말이 젤로 많았다. 돈과 권력은 한 칼의 두 날일뿐이야. 어느 경우나 돈 많은 집에서 며느리 들이면 아들이 처갓집 종 되는 것 시간문제지. 아내의 부정? 그런 것 챙기는 것도 권력이 있을 때 말이라니까. 전에 우리 어머니들 세대에 행주치마에 눈물 찍어 바르며 밖으로 도는 남편 돌아오기 학수고대하던 것? 영화에서나 볼 걸. 지금 어떤 아내가 그래? 아내가 하다못해 남편월급통장이라도 돈줄을 쥐고 있으니, 여자들 세상이지. 남편이 아내의 남자친구를 봐줘야 하는 세상이라고.

설마.

있는 층에서야 제각기 사생활 존중한다는 미명으로 서로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서로 모르는 척 살고.

그럼 없는 층은?

없는 사람들은 서로 참지. 그나마 날품이라도 들여오는 서방이 안 들어오면 뭘 먹고 살까 해서 참고, 또 그나마 각시 나가버리면 어떤 여자가 와서 밥이라도 해주랴 싶어서 참고.

설마.

그래 설마야, 설마 아내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지. 호스트바가 번연이 성업이고, 그곳에 꼭 남편 없는 여자들만 드나든다는 법 있어? 왜 그 유명한 한 때의 황태자, 돈 많은 권력층 남자야 그렇다 치고, 그 귀부인 여자가 따로 호스트바 단골이라 소문났었지. 물론 뜬소문일 수도 있고. 하긴 지난 세대 여자들이 당했던 설움을 복수라도 하는 행태인가 봐. 아직 물론 그런 독기가 다 퍼진 건 아니고. 여전히 선량하고 가족밖에 모르는 바보 현모양처들이 많지만. 또 맞벌이여잔 더하지, 바람날 시간이나 있어?

시간 있다고 바람이야? 그만들 해. 왜 그리 희망 없는 소리들을.

여전히 여성에게만 윤리적 잣대가 까다롭다는 거지.

하긴 사시나 붙고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어야 동등한 대우지, 일반 급여는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제라니 어림없지. 불평등고용에서 시작하니까 야침 찬 젊은 여자애들이 묘한 수들을 쓸 밖에. 그 쩡아사건도 남자들 일각에선 전혀 다르게 말한대잖냐.

전혀 다르게?

그래, 전혀 다르게. 그 사건에선 박사학위만 고장이었다는구나. 그것만 가짜가 아니었으면 아무 일도 아닌 거래. 그래서 심지어 억울하겠다고 동정한다는 게야, 세상 남자들이. 그만한 일, 권력층 중년과 미모의 젊은 여자 이야기는 밥 먹고 차 마시고 운동하는 일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렇고 그런, 아예 이야기 거리도 안 되는 일상인데 그랬다는 거야. 그 높은 양반의 불운은 하필이면 교수자리 탐낸 여자와 엮인 것뿐이라는 거지. 그걸 빼면 어떤 범죄적 요건이 아니라, 그저 좀 쏠쏠한 일상이라는 거야.

뭔 말이 좀 이상하네. 남자들 입장에선 전혀 흥분도 분노도 할 일이 못된다고?

그러니까 결국 들어맞네. 여자가 두뇌가 크면 가슴이 없다고 했던 말. 남자에겐 가슴이 큰 여자면 된다, 두뇌가 큰 여자는 재앙을 가져 온다 뭐 그런 말. 젊은 여자가 보석이나 명품만 탐했으면 실컷 사 줄 수 있었는데, 사회적 지위까지 탐해서 골치 아파진 것이로군.

아니 뭐, 그리 의기소침해 할 것 있어? 대다수의 선량한 우리 남편들은 그렇지 않지. 그건 특권층 이야기야. 특권이 많아지면 반대로 단점도 많아지게 돼있어. 평범한 우리들이야 무슨 억하심정으로 세상 남자 여자를 다 욕해?


정리하자면 이랬다. 우리네가 좀 심하다. 우리나라가 너무 좁아서 냄비방이다. 정치인이면 정치인, 연예인이면 연예인, 하고 사는 것들이 다를 텐데. 그런 사람들은 특별히 행복해야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삶이 모양새는 달라야 마땅하다. 그런 사람들의 행태가 여과 없이 일사천리로 평범한 가정에 전달이 된다. 돈과 권력이 되면 되는 만큼, 부치면 부친대로, 똑같은 모양새로 다 하려든다. 각각의 정체성을 지닌 고유의 문화가 없다. 청소년이 즐길만한 문화, 중년이나 노년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따로 없다. 20대 처녀들에게 반팔 반바지가 유행이면 중년도 똑같이 한다. 딸들이 사다준다는 핑계로 다 따라한다. 딸들이야 부모보다 훨씬 크게 날씬하게 자라서 부풀린 칠부소매를 입어도 나실나실 예쁘다. 그걸 어머니가 따라 하면, 세월 따라 툭 벌어진 어깨에 짜리몽땅한 팔에 짧은 소매기장이 통장수 칼만 같다. 또 요즈음 아이들은 얼굴이 길다보니 꾸냥처럼 앞머릴 잘라도 귀엽다. 하지만 원래 보름달 얼굴에 주름 없앤다고 바람 넣어 볼 살 미어지게 부푼 아줌마들이 앞머릴 똑 잘라 놓으면 얼굴이 그만 반 토막이다. 키까지 더 작아 보인다. 젊은 연예인들이 새까만 머리염색들을 하고 나타나면, 흰머리 염색도 다 새까맣게 따라 해서 가짜인 것만 더 들통난다.


머리를 쓰다듬다 보니 정말 내가 그랬다. 미장원 가니 앞머리 몽땅 잘라서 펴고 뒷머리만 파머하래서 그랬다. 그래서 내 키가 전보다 더 작아 보일까? 반코트도 팔을 두 동강 내어 주름잡은 게 멋있어 보여서 장만했는데. 난 딸 아이 흉내가 아니라 증권회사에서 만난 여자가 멋있어 보여서 그만. 헌데 이 여자들은 먹은 밥알보다 쏟은 말들이 더 많겠네.


외양만 그런 게 아냐. 그렇게 해서 젊은 멋도 노숙한 맛도 구별이 없이 섞인 세상이야. 가치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니까.

뭐 그래도 유행 무시할 수 있어?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무시 ‘해야 해!’ 아님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되지, 점점. 우린 종일 교양당해서 문제야. 정말 너절한 것들 그만 배워야 해. 텔레비전에선 배우얼굴도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서 여기서 저기서 태어난 악연들이 얽히고설키어 부정한 일가친척으로 드러나는 꽈배기 연속극에 정신 팔지. 억지 코미디를 들여다보며 교양당하지. 어디 어디가면 뭐뭐 맛있는 것이 있다는 호들갑에 그런 음식 못 먹는 내 밥상만 초라하고, 고장마다 명소마다 찾아다니며 맛있는 외식을 하지 못해서 불행하게 느끼게 만들고…….

하긴, 휴대전화 없음 사람 축에도 못 끼지,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런 것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삶을 깡그리 잊어버렸나 봐 우린 지금.

방송이라고 다 나쁘냐, 진짜 교양프로도 있잖아.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나 좋은 책에 대한 토론도.

그래도 진짜 교양프로는 한 밤중에나 하더라.

것도 만날 재탕이야. 내가 정말 존경하는 여자, 화가 김점…….

그래, 너 화가되려던 때도 있었지?

무슨 딴 소리!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또 보고 또 보면 식상한데, 하긴 아마 그만한 극적인 인물들이 없다보니 재탕이겠지.

누군데? 

그만 두자. 말이 길어, 김치도 못 담가 먹으면서 그림만 그렸다는, 거지꼴에 좀 미친……. 그냥 내가 많이 좋아해서. 그런데 너희들, 선거전이고 뭐고 대강 말하는 사람 이야기 들어보면 무슨 신문을 구독하는지 냄새 안 나던?

냄새? 하긴, 만날 같은 논조를 읽다보면 그대로 동화된다니까. 정체성이 길들여진다고 말하려는 거지 너?

그래, 때가 때이니만큼. 민주주의체제에선 적어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하지 않아? 대의정치가 뭔데? 내 뜻을 대신해줄 정당이 필요하잖아? 아무튼 그때, 그래도 대의를 따른다고, 지역당을 탈출하련다는 그 대의를 믿기로 하고, 그쪽을 따라 정체성을 옮겼거든. 그러더니 이번에 봐. 또 그 변신의 주역들 중에서 날랜 기수를 앞세우고 무리지어 그 정당을 또 떠나는 거야. 그럼 이번에 또 어쩌라는 것이냐고. 난 분명 두 번의 배신은 참지 않았지. 선거 끝나고 헤쳐모이고, 또 선거 앞두고 헤쳐모이면, 어디에 정체성을 기대느냐고. 그래서 아깝지만 버렸어. 그렇게 탈바꿈을 하는 정당은 버리려고. 누에도 아니고 계속 탈을 벗어야해? 그런다고 나방이 호랑나비가 되나? 난 나방이 나방대로 살 제 길을 보지 못했어. 방황하는 나방이 신세? 그것이 선거를 치르는 심정이었어.

뭐야 그럼 넌 우리 쪽에서 보면 이탈표였네. 그럴 수 있어?

그래 이탈이지. 맹목과 맹신으로부터의 이탈이지. 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해. 정체성 정치의 의미에선 늦어도 총선 전까진.

너 말투가 이미 대선에서 그 싹을 보았다는 말 같이 들린다.

그래 그런 것 같아. 지금의 선택으로서는 환경에 기댈 밖에.

환경? 바로 그거야. 환경을 보듬는 정책에 최우선 점수를 줘야 해. 《불편한 진실》 찾아서들 봐, 꼭. 뭔가 영화다 뭐다 예술이 영향력을 가진다면 그런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존경해. 그 한편을 진정으로 본다면 사람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이 바닷가 마을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미래를 경고해주니 말이야.

여기도?

이 바다라고 예외겠어, 완급이 있을 뿐. 공룡들도 그랬을까 싶어. 최강자로서 자연을 장악해서 유용하게 수탈하고 보니, 더 수탈할 자연이 남지 않았을 때 공룡 또한 함께 멸망했을까?

그럼 인간도 외톨이가 되어․…….


멀건 차를 한나절씩 마시며 알쏭달쏭 이야기만 늘어놓던 여자들이 드디어 자리를 떴다. 꼬막들은 시장에 가서 살 양인지, 유자절인 것만 두 통 나갔다. 매실절임은 권해도 다들 담갔단다. 그 나름 부지런한 여자들인가 보다.


*

꼬막식당집 주인여자는 숨을 돌린다. 시간이 점심장사와 저녁장사 정 중간이다. 아까 여자들은 행색도 괜찮고 제법 유식한 것 같은데 주식소문을 모르는 것이 주인여자의 마음에 걸렸다. 여자는 OO카드가 OOO카드라는 소문도 미심쩍어진다. 혹시 허튼 주식을 샀단 말인가? 갈팡질팡. 사실 그 주식이 곤두박질치면 큰일이 난다. 그렇더라도 만일 OOO카드가 사실이라면 뭔가 죄를 짓는 것 까지는 아니라도 좀 껄끄러울 것은 마음이 되기도 한다. 선한 데는 못난 정이 섞여있다.

여자는 안방에서 잠시 뭔가를 추스르더니 슬그머니 가게를 빠져나온다. 가방끈을 어깨에 걸메고서도 가방을 꽉 껴안은 품이 매상 입금하러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가까운 신용금고로 향하지 않는다. 조금 두리번거리면서 네거리를 둘 지나 왼쪽으로 꺾어들자 이상한 열기가 돈다. 증권사 안은 늘 그렇게 덥다. 스팀을 팍팍 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줄타기라는 속성 때문에 사람들이 더운 숨을 내쉬는 때문이겠다.

어라? 남대리, 실눈에 이마가 반질거리는 젊은 남대리가 자리에 없다. 그러고 보니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받은 분홍빛 엷은 공기가 착각이었는지, 뭔가 서늘하다. 사람 하나 자리에 없다고 이러나…… 그런데 왜 과장인지 저 구닥다리가 그 자리에 있나? 아니, 자세히 살피니 잠시 비운 자리가 아닌 듯한 인상을 받는다. 결근이란다. 결근. 이상타. 그냥 오늘은 수선스런 날인가 보다, 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괜히 이상한 여자손님들 잡담에 가슴이 쿵쾅거리더니만, 잘 좀 알아보려고 오니 하필 남대리가 결근이라니. 내일은 나오겠지,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 나온다.


여자는 갑자기 바닷가가 그리웠다. 꼬막으로 밥장사하면서도 실제로 갯벌을 본 것이 언젠가. 밥장사하다보니 계 몇 개도 나가기보다는 계군들이 꼬막식당으로 모이는 편이다. 해외여행간다고 붓는 곗돈은 밥들도 안 먹고 갑장인 일수쟁이여자가 와서 돈만 걷어간다. 만기도 아직 멀었고, 해외가 다 뭔가, 이 수선한 심정으로. 여자는 우선 바다가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꼬막은 많이 나도 이 고장엔 해수욕하는 바다는 없다. 그냥 갯벌이다. 털털대는 버스로 시간 반 쯤 떨어진 여자의 친정 쪽은 툼벙댈만한 바다가 있었다. 원피스만 벗어 깨끗한 돌로 눌러놓고 텀벙대던 시절을 아스라하게 그려본다.

그런데 아까 여자들 이야기 중 바닷가가 가라앉는다는 건 또 뭔가. 친정부모가 묻힌 바닷가가 가라앉으면 어찌될 건가? 여자는 괜스레 불안하다. 지금 바다 끼고 사는 사람들조차 이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가만있어도 그런 날이 닥치리라던데, 무슨 말이 씨 된다고 그런 소리들을 해 대는가 기분이 나빠진다. 난방도 줄이고 물도 아껴 쓰라면, 그런 정도야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겠다 싶다. 우선 세금 덜 물고. 식구들 단속 좀 해야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끔 유식한 손님들이 오면 그 나름대로 이문이 있다 싶어 오히려 안도감이 생긴다. 여자는 버스를 타려다말고 돌아온다. 저녁 장사시간이 닥치는데 무슨 내일 모레 타령이냐 싶어서다. 여자는 고개를 턴다, 나 죽은 뒤에 바다가 가라앉으면 알게 뭐냐. 새끼들이 안타깝지만, 그 여자들 말이 신선님 말도 아닌 것이고. 그냥 잊기로 한다.


여자는 그 다음날 벌써 유난히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 어제의 일은 흘려버렸다. 점심이 워낙 붐벼서 증권회사에 나가볼 짬을 못 냈다. 그리고 저녁 늦게야 뉴스를 들었다. 큰 손 여자들이 사람을 시켜 한 증권사 펀드매니저를 납치해서 감금했는데, 돈을 날려버린 분풀이였다는 것이다. 가만, 분풀이라면, 돈은 영 못 받는다는 거네! 가만, 그건 그렇고, 그 여파로 그 쪽 줄에 선 여기저기 자잘한 직원들이 숨어버리거나 했다는데……. 가만, 남대리도 결근한 것이, 설마, 월차가 겹쳤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만, 설마…….


새해라 해도 아직 꽁꽁 언 겨울밤은 길기만 하다. 언제 날이 밝아올 것인지. 적금이자가 이리 꽝인데, 뽄든가 폰든가 안할 여자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이고나, 겨울밤은 길기도 하다. 시집와 첫 겨울 뜨뜻미지근한 아랫목, 한 번 돌아 누어버리면 뻣뻣한 옆 사람 파고들며 날 밝기를 한탄하던 그 시절은 멀리도 사라졌는데……. 어서 날이나 밝아라.


전 날 휘파람 남대리 대신에 누런 과장이 앉아있던 자리에 오늘은 허연 수염의 신령님이 서있다.

네 돈은 은보따리냐? 금보따리냐?

누가 요 세상에 보따리에다 돈을 싼다요? 제 돈은 짜가라도 구찌가방에 넣었지라.

어허, 구자가방은 첨부터 없었니라. 아까 누가 팔자가방을 찾기에 하나 돌려주었고. 지금 남은 건 요 은보따리와 금보따리 뭉칫돈뿐인데, 어허…….

놀리지 마세요. 사과상자나 케이크상자라면 모를까 요즘에 누가 보따리에 돈뭉치를 싼다고 그러실까.

아따, 사과상자를 금전으로 채웠냐 은전으로 채웠냐 그 말인데, 말귀도 참 못 알아듣는구나. 헌데 보아하니 어쩐 형국이냐, 네가 여기 올 팔자가 되기나 하냐, 꽝!


꽈당 하는 지팡이 소리에 놀라 눈을 드니 시계 바늘은 여전히 칠흑 속에 잠겨있다. 다시 눈을 감으니 신령님 긴 수염이 갑자기 딱 중간에서 여덟팔자로 갈라져 양쪽으로 날린다. 털어버리려고 눈을 크게 떴는데 귓가에서는 여전히 신령님 말소리가 왕모기처럼 따갑게 앙앙댄다. 팔자라, 팔자…….

여자는 이번엔 정말 눈을 뜨고 검은 천장을 바라본다. 내가 잘 못 했을까? 돌아가신 울 아부지, 돈 놓고 돈 묵는 일만은 하지 말라고, 땅 파묵고 살든지 고기 잡아묵고 살라고 하셨는디. 박서방이 밥은 먹일게다, 허니 나서도 말고 살라셨는디. 밥장사 나서서 모은 뭉칫돈, 그 돈은 지금 잃었거나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이미 정해져버렸다. 불안해도 소용없다. 지난 일이다. 돈 따라 찾아나서 마음을 보챌 것이 아니라, 이대로 원래대로 하면서 잘 살자고 참고 나가는 것이 마땅할까. 내 본 모습, 내 본 삶을 보듬는 것이.

정치성, 아니 정체성이라고? 꼬막밥장사나 하다가 그런 희한한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은 실로 우연이었다. 그 점심 손님들,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말이 또 있었을까. 여자는 그래도 그 문제를 파고들기로 했다. 뭉텅이 돈 잃고 미치지 않으려면 거기에라도 매달려야 했다. 나는 본시 돈 놓고 돈 묵을라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하지만 분통이 터진다. 그럼 언제나 사람 같이 살거나. 언제 이 비린내 짠 냄시 다 털고 사람같이 살거나.

내 이름은 숙이, 정숙이, 박실이, 그러다가 은행에 가서는 김정숙이 되었다. 내 이름은 김정숙. 이름 석 자에 돈도 들어 있고, 도장도 서너 개는 된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만일의 경우가 이런 걸까? 아무튼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도장을 은행마다 다른 것으로 팠다. 김정숙, 김정숙, 김정숙……. 정체성이라면 나 자신인 것. 내 돈이 날아가면 나도 날아가는 걸까? 내 돈이 날아가도 내가 날아가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 걸까? 여자는 어둠이 스멀거리며 날이 뿌옇게 새도록 제 이름 석 자를 중얼거린다. 김정숙, 김정수욱…….

 

 

소설시대 17호 80-102쪽, 2010.05. {한국작가교수회}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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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09. 3. 28. 23:30

그림자 도시 - 개성 방문기 
                                                                  
소설시대 15호


개성을 방문하기 위한 10월 그믐께, 가을 내내 기다렸던 비가 하필이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지만 불평을 못한다. 해갈을 기다리는 푸른 잎채소들, 그 걱정에 사로잡힌 농부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마음이 되어서. 들었다 놓았다 가벼운 우산을 꿍쳐 넣고 여차하면 요량으로 반 자락 비옷도 밀어 넣다보니 1박2일 봇짐이 커진다.


전날을 ‘통일’이라는 글자와 관련된 행사를 빌미로 서울에서 보낸 우리 일행은 이튿날 개성나들이를 위해 일찍 잠을 청하게 되었다. 덜렁 텔레비전 밖에는 없는 방에서 종이 한 장 글자 써진 것을 챙겨 넣지 않은 터라 심심하다. 불온한 문서라 분류되는 것, 수상쩍은 것은 집어넣지 않기로 작정했다. 언젠가 요상한 꿈에서도 분명 북한 땅을 떠나오기로 작정은 했었지만 그 끝이 불분명했고, 그 꿈을 꾸고 일년도 넘은 시점에서 느닷없는 개성행이라니 조금 켕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일을 누가 알랴! 돌아온 직후에 있을 사무(의무적인 일이자 나에게 보다 수십 명에게 중요한 것)를 미리 컴에 저장해 놓았다. 그러나 이리저리 뒤척이다 생각해보니 컴에 저장되어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남겨놓고 오지 않았으니 무슨 소용이랴 싶어 허망했다. 그것 때문에라도 꼭 돌아가야 한다. 또 정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알람을 켜두고 잠을 청하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낭패다. 다른 날은 몰라도 단 하루의 개성방문인데 잠을 못자두면 어쩌나. 그러저러 두어 시까지 시계를 본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지,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깬다. 5시 정각이다. 그로부터 10분 간격으로 깨우는 벨소리에 버스출발 50분 정각에는 승차할 수 있었다. 어제의 그 버스이기 때문에 자리는 남아있다. 우등고속으로 말해서 4번 좌석. 둘째 줄 복도 쪽 자리다. 어제는 종일 멀미약 탓으로 졸기만 하느라, 대한민국 명 정치가의 달변 중에도 고개를 쳐 박곤 했다. 오늘은 양을 반으로 줄인다. 평생처음 분단의 선을 넘는 나들이 길에 졸아서야…….


임진각 - 서울에서 임진각까지는 채 50㎞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며칠 전 어느 신문사 주최로 ‘꿈나무통일레이스’가 펼쳐지기도 한 거리이다. 버스 이동은 못다 잔 잠을 청하려다마니 금방이다. 우리 일행은 28인승 버스 둘로 움직이는데, 50명이 채 못 된다 했다. 이제부터 비상이다. 다른 짐들과 함께 우선 핸드폰들을 놓아두고 가야한다. 갈아탄 셔틀버스는 남북출입사무소까지 우리를 실어간다. 누구나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과 입경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대한민국 국적이건 아니건, 방문자나 현대 아산측 안내원이나, 심지어 개성근로자이거나 입출입 때 마다 입출경 수속을 해야 한단다. 출경이란 출국의 다른 말로서, 어쨌거나 남북한이 각각을 국가로 간주하지 않는 데에서 온 해결책이란다. 수속은 일반 외국여행 때의 수속과 같은 2단계를 거친다. 짐을 X레이로 통과시켜놓고 신체만 통과한다. 배율을 확인받은 디카만 허용하기 때문에 카메라를 보이기 위해서 따로 들고 섰으랴, 다소 얼떨떨한 가운데 ‘녀자출구’에 줄을 섰는데 남자들도 섞이어 있다. 주황색 현대직원복을 찾아 물으니 괜찮단다. 여권에 해당하는 관광증에 사증을 찍는 절차는 배당된 차량번호와 일치하는 창구로 가야한단다. 그렇게 사증을 받아 통과했으니 북측인가? 아직 아니다. 정말 번호표가 붙은 차량이 즐비하다. 우리가 10호라 했는데 모두 ‘10-’으로 시작해 이상했다. 그게 총 10대 중 몇 호차라는 신호인가 보다. 그러니까 10호란 10-10호다. 서둘러 승차하고 나니 우리 차 담당 안내원이 오른다. 8시 정각을 조금 넘긴 시간이다.


이제 출발이로구나. 그게 아니었다. 8시 정각 군사분계선 통과 예정과는 다르게 군사분계선 통과 승인을 위한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안내의 말로는 통상 서쪽의 통신장비가 동쪽만 못해서 일어나는 지연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한 차량과 방문객들이 북측 입경을 못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으니 안심하고 다시 내려서 자유로이 기다리라는 안내다. 차량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서울-개성 표지판이며 남북출입사무소 입간판이 보이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여름에 다른 용도로 구입했다가 겨우 몇 장 찍어본 솜씨로 거리조절이니 뭐니 그냥 자동에 놓고 눌러보았다. 이제부터 증명사진을 찍을 양인데 눈에 들어오는 우리 일행은 없다. 어디선가 서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서 첫 증명사진을 찍었다. 입간판들을 증거로 하고서.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다 해도 최소한 남북출입소까지는 다녀온 증명이 되어 줄 것이다.


정말 다들 사무실 건물로 들어갔을까? 서둘러 “온리 설렁탕” - 젊은 사장, 우리일행을 인솔하는 여행사 사장의 말대로 - 설렁탕을 먹고 내려왔던 그 곳으로? 하긴 해가 돋기 시작하니까 껴입은 옷이 불편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순간의 선택이 필요했다. 배낭의 짐이 부풀더라도 위아래 한 겹씩을 벗어 넣기로 작정하니 사무소 건물로 들어갈밖에. 화장실을 나서는 배낭은 정말 불룩 이가 되었다. 저만치 삼삼오오 모여선 일행들이 보였지만 끼이고 싶은 자린 없었다. 골라서가 아니라 전체로 무조건 없었다. 그것이 나이다. 어제저녁 공들였을 뷔페식 저녁 식사 후 색소폰 연주자까지 끼인 여흥시간, 그때에도 나이가 문제였다. 섞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섞이지 말아야 하는 세대의 의무다. 노래를 청하는 사회자의 마이크를 받아 대꾸한 내용이 그랬다. 듣기만 해야 하는 세대의 의무가 있노라고! 내심의 논리가 이랬다. 사람이 열 살까지는 벗을 할 수 있다 했다. 그런데 열 살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싶은 상황에서는 벗을 하지 말아야 미덕이다. 고조된 분위기를 깨느니 그냥 한 곡 부르다 말아도 될 일이지만 그것이 안 되었다. 약간의 취기에 실은 뭔가 노래 부르고 싶은 기분이 왜 아니었으랴.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이 아침도 딱 그런 이치였다. 어디에 끼어든단 말인가. 먼데 벽 쪽으로 의자가 연이어 있었다. 마침 고생하고 있는 다리를 위해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천천히 세상이 사려져 갔다. 혼자 있는 느낌이 되니 그 꿈이 되살아났다. 고층 아파트 위에 또 그만큼 높이의 아파트를 지어서 분배해주겠다는 북한상황의 꿈이. 고개를 흔들다보니 나도 모르게 목운동이 되고, 이어서 어깨운동도 되고 있었다.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쳤다. 꿈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회랑을 울리는 안내목소리와 더불어 서둘러 다시 버스 쪽으로 움직이는 발자국소리들에 천천히 눈을 떴다. 시계가 8시 43분을 가리키고 있을 때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쪽을 향해서, 곧 북쪽으로 선회하겠지. 10여분에 군사분계선에 도착했지만, 다시 북측 입경 수속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주의사항과 일정에 관한 안내가 꼼꼼하다. 그러기도 하겠지. 마침내 9시 7분을 가리킬 때 버스는 다시 움직였고 널찍한 돌에 “평화를 다지는 길……”이라고 새겨진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비무장지대. 1953년 7월에 확정된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에 따라 남북으로 각각 2㎞씩을 포함한다.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도 출입할 수 없다던 그곳에 들어서는 것이다. 248㎞ 중 훼손하는 넓이는 버스의 넓이다. 군사분계선이 옛 베를린장벽 같은 담장이나 철조망이 아니라 200m 간격으로 황색 표지의 블록이 있을 뿐이라는 안내의 말이 생소했다. 그런 그것이 그런 위력을 지녔다니. 9시 10분, 그러니까 경계를 지나자마자 곧 ‘개성’이라는 간판이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로 나타난다. 순간 등장한 인민군 초소와 마침 지나던 초병은 표정도 읽을 사이 없이 스쳐가고 만다.


그렇게 한 이십분 달리고 버스가 서자 북측 안내원 세 사람이 승차한다. 버스엔 처음부터 북측안내원 자리가 노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고, 셋이 타게 되면 맨 뒷좌석 가운데에 앉는단다. 이제 드디어 북측의 안내를 받게 된 것이다. 달변의 안내원은 하루 일정 등에 관한 ‘안내사업’을 시작한다. 처음 보이는 철길 경의선 봉동 역에서부터 봉동리 일대 개성공단에 관한 소개가 길다. 총 200만평 개발계획 중 1단계 사업으로 100만평이 개발되어 피복, 시계 등 70개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고. 놀라운 수치다. 설마 부풀릴 리는 없는데, 그동안 나의 무식함이라니. 패밀리마트 등 편의시설도 들어와 있고, 기술교육센터가 보였고, 그곳에서는 기술적인 용어들의 상이한 부분들을 해결하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파트형 생산업체며 35000명 개성시 근무자들을 위한 푸른 버스도 출퇴근 보장용으로 운영되고 있단다.


약 40분쯤을 달려서 우리 버스가 개성시로 들어서자 정말 자그마한 몸집의 버스에 56번 번호가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물론 정지해 있는. 개성은 우리에게도 흔히 개성상인이란 말로 익숙하다. 북에선 개성깍쟁이라는데 남에선 서울깍쟁이라고! 깍쟁이의 유래를 북에선 ‘가게 방을 가진 사람, 가게 쟁이’에서 ‘각쟁이’로 줄다가 다시 된소리화한 것이 깍쟁이라 한다. 글쎄, 우린 그런 해설은 처음이다. 아무튼 개성 소개는 일품이다. 천년 전 고려 때 벌써 인구 10만이었다니, 유서 깊은 도시임엔 틀림없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들이 시작되고, 그 이름은 ‘해선동’. 38선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으로 그렇단다. 그런데 해방은 되었을지 모르나 푸르른 파주 땅을 지나 개성에 들어선 순간 차창의 푸르름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산들은 거의 민둥산이었다.


시내 쪽으로 오면서 이제 곧 심었을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이 보였다. 안내의 말로는 역병이 들어 완전 벌채를 하고 다시 심고 있는 중이란다. 개성시민은 적어도 산의 나무들을 몰래 베어다 불을 때는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다. 두문동 72인을 낳은 고장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차창 밖의 주민지구, 그러니까 주택지의 집들은 이삼층 공동주책이거나 5층 정도의 아파트이거나 파르르 얇은 종이 같은 인상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창문으로 미루어 보이는 벽의 두께는 마분지 정도. 그것은 스쳐가는 사물에 대한 편견이었을까? 편견이었기를 기도한다, 기도할 데가 있다면. 내가 본 것은 큰 오해이고, 집은 훨씬 더 두꺼운 벽을 하고 훨씬 더 따뜻한 방을 품고 있었어야 한다. 창문 안으로 움직임을 알아보기는 당연히 어려웠을 것이다. 누군가가 살아 돌아다니고 있는 느낌을 받기엔 스쳐가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방에는 분명 학교에 가기 이른 대여섯 살 꼬마가 통탕거리고 있었지만, 키가 작아서 창문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주 난방은 구들난방이고 고층아파트는 온수난방이라는데 설마 사람들이 살지 않으려고? 그러나 거리엔 속도감을 주는 운동이 없었다. 그러니까 차가 없었다. 온 종일 가늘 길에 검은 승용차 한 대, 오는 길에 흰 색 승용차 한대를 보았을 분이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정차해 있을 때만. 질리도록 매연 속의 차량들과 불과 한 두 시간 이별한 후에 이 적막강산이라니. 가치평가의 뇌가 정지된 느낌이었다.


시가지에서 60리, 박연포가 있는 박연지구로 가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이제는 명물 송악산도 잘 보인다. ‘만삭의 여인이 바다 쪽으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을 가슴위에 가지런히 얹고서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어머니산’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산은 지금은 바위산처럼 보인다. 이 도로로 계속 달리면 평양까지 2시간이면 간단다. 박연폭포에 대하 소상한 설명을 하던 안내원은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고는 잠시 마이크를 놓는다. 화담 서경덕과 황진이와 함께 송도 3절이라고 불린다는 박연폭포는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 북한 땅을 처음 밟은 지점이 그곳이기 때문이리라. 주차장에서 폭포까지 500m 정도란다. 10여 미터 왼쪽으로 시작된 건물이 위생실(화장실)이다. 거기까지 그렇다 쳐도 사람들은 방문객들뿐인가? 10대의 버스에서 내린 울긋불긋한 사람들 말고는 짙은 감청색 차림의 북측 안내원 아니면 주황색 배색의 현대아산 안내원뿐이다. 평일이라 그렇다 쳐도 북한 사람들은 정말 관광지보다는 일터에서 열심인 듯 했다. 아까 시가지를 지나면서 보이던 사람들도 그리 열심히도 아닌 보통 걸음걸이로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고, 더러 자전거를 가지고서도 타기보다는 짐을 실어 나르며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로의 드문 나무들의 색깔처럼 짙은 밤색 아니면 짙은 무슨 색 복장의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걷는다는 인상이었다. 물론 멀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겠지만, 걷는 속도로 보아 아예 소리가 없을 걸음걸이였다. 그러니 언제 여기까지 걸어 올라오겠나?


올라가는 돌계단은 작은 돌들을 일정하게 사각형 블록으로 찍어내어 계단길로 만들어 둔 것이다. 은행나무와 참나무 낙엽 사이로 돌멩이 하나 구르지 않는 완벽한 청소에 감탄한다. 어디든 가면 돌 한 조각을 탐내는 남편의 선물을 위해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없다. 그렇다고 정해진 길 밖의 흙길로 나설 수는 없는 일. 물이 넘치면 폭포의 폭이 7,8m라 했는데, 지금은 갈수기라서 한자나 되는 폭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 폭포는 천마산 기슭에서 37m의 낙차로 그 아래 투명한 고모담(姑母潭)이라는 연못으로 떨어져 내린다. 박진사란 사람이 폭포에 놀러왔다가 못 속의 용녀에 홀려 결혼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자 진사의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다 못해 못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에서 박연폭포와 고모담의 이름이 유래한다 했다.


폭포 곁을 돌아 오르니 주변에는 험준한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10㎞ 정도 길이로 고려시대에 쌓은 대흥산성이 있고 그 안에 조선시대 규모를 확장하고 17세기에 개축했다는, 조형미가 뛰어난 관음사가 있다고 하는데, 지난 홍수 이후 도로가 유실되어 관광이 불가능하단다. 대신 폭포를 바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곳까지 아슬아슬 올라가 볼 수 있었다. 박진사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더 위대한 어머니가 계시다는 가르침으로(?) 큰 바위벽에 새겨둔 강반석 조선의 어머니 예찬시보다 신기한 것은 범사정이란 얇은 바위가 있는 지점이다. 고모담에 떠있는 바위들을 그 곳에서 내려다보면 말 그대로 ‘뗏목이 떠있는(범사)’ 광경이 맞다. 개성 모약과 여남 개 담은 비닐 도시락에 두 달러, 인삼차 안 잔에 한 달러, 생수는 두 병에 한 달러란다. 그렇게 네 달러를 쓰고 차오른 숨을 달래고 내려와 보니 위에선 보이지 않던 고모담 안의 널찍한 바위 위에 황진이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거기까지 다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디카에 증명사진만 부탁하고서 들여다보니 알 수가 없다. 황진이가 폭포자락에 반해 머리를 풀어헤쳐 먹물을 묻혀 단숨에 써내려갔다는 시구를 나중에 석공들이 파놓을 것이란다. 대충 ‘삼천 척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 밤하늘 은하수가 흐르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게 하누나.’ 정도의 뜻이란다. 버스들이 주차된 곳에 다시 모인 시간은 11시 40분. 올라갈 때 무심코 지나쳤는지 그 사이에 형성된 것인지 간이 판매소들이 보인다. 유난히 용머리를 조각한 나무지팡이들이 보여서 구경하고 있는데, 설명이 재미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용대가리’란다. 북쪽에서는 사람은 머리라 하지만 동물은 대가리라고 하고 그것이 비속어가 아니란다. 열 달러. 이제 관광 시작인데 짐이 될까 싶어 그냥 물러난다. 그보다도 단체사진 찍는다는 부름 때문에 서둘러 어딘가에 끼워 앉을 곳으로 행했다.


그렇게 조금은 싱겁게 오전관광이 끝나고 11첩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심상을 들러 가는 길이다. 정오를 지나며 버스는 다시 시내 쪽으로 들어오고, 그새 친근해진 안내원에게 이것저것 묻는 일행 덕에 들은풍월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산들이 바위산인 것은 10년 전 소나무 역병 때문에 그리 되었고 지금은 식목을 해 나가고 있는 중이며, 박연지구 쪽으로는 잣나무들이 그 나름대로 싱싱하다. 학교제도는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이 의무무료교육이고, 전문학교 2년과 대학 4~5년은 전체 학생이 국가장학생이란다. 결혼은 부모들의 중매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녀자는 24~6세, 남자는 26~8세에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문화어(표준어)에서 얼음보송이가 빠져 있는데 (우리 일행 중 국어학자의 말), 실생활에서는 여전히 얼음보송이라 쓰고 있고, 아까 용대가리에서 대가리가 비속어가 아닌 것처럼 늙은이도 비속어가 아니라 한다. 오히려 아가씨, 아줌마가 비속어라 느껴진단다. 처녀는 처녀라 하고 결혼한 여자는 아주머니라 부른단다. 한편 남측 여행객들, 특히 처녀들의 옷차림새는 가끔 ‘나체화’라 싶어 눈살이 찌푸려진단다.


점심시간일 이 시간에도 도로근로사업에 부역 나온 사람들이 도로가에 쪼그리고 앉은 동작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멀리라서, 또 특별히 녀자라고 색깔 옷이나 짧은 치마를 입을 것도 아니니까 남녀의 구별이 안 된다. 소년학생궁전이 보이는데, 그것에선 방과 후 다과목 소조로 나뉘어 악기나 체육 등 소질을 연마하고 발표하곤 한단다. 그러는 동안 11첩(?)반상이 기다리고 있는 ‘통일관’에 도착한다. 화려한, 너무 화려해서 억지 같은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 안내원들의 안내를 바고 들어선 대 연회장. 둥근 식탁마다 10인조 11첩반상이 차려져 있다. 반짝이면서도 은근한 빛을 발하는 놋그릇에 뚜껑이 얌전히 덮여있는 10인의 11첩반상 차림을 보라! 버스에서 간단히 내려오면서 카메라를 놓쳤다. 서둘러 뛰어 갔지만 버스 문이 잠겼다니! 이런 곳에 누가 범한다고? 터덜거리며 돌아서는데 현대아산 안내원이 보인다. 그는 손쉽게 꽃혀 있는 열쇄를 돌려 버스 문을 열어준다. 배낭에서 카메라 찾는 시간이 미안하니 그냥 배낭 채 들고 내려온다. 다른 일행들은 벌써 놋그릇 뚜껑을 열고 시작하고 있었다. 열린 곳은? 일단 내 밥상을 뚜껑 덮여있는 모양으로 한 컷, 반찬그릇 열한 개와 밥그릇 국그릇 그리고 덤으로 나온 약식뚜껑까지 열자니 14개의 뚜껑을 열어놓았다. 펼쳐진 그림은 처음만 못했다. 대충 배운 대로 하더라도 김치류 셋, 장류 셋, 찌개 둘, 찜 하나, 전골 하나를 기본으로 두고서 비로소 생채, 숙채, 구이, 조림, 전, 마른반찬, 장과, 젓갈 회 또는 편육을 세어야 양반상 9첩이 될 터인데, 통일관의 점심상에서는 밥과 국을 제외한 모두를 세어서 11첩반상이란 것이 우선 셈이 달랐다. 왼쪽 줄은 숙주나물과 가지나물과 오이나물 등 숙채 일색이고, 앞줄의 묵무침과 가운데 어딘가의 계란찜 조각 그리고 감자와 고기의 조림, 다 마른 생선구이 조각 등으로는 7첩에도 미치지 못했고, 더구나 김치류라고는 향초를 담가서 다들 익숙해하지 않는 물김치 하나에 불과했다. 김치류가 11첩반상에 통틀어 물김치 하나라니! 오래 가물었다 하더니 김치감도 부족한가? 장난감 크기의 술잔에 부어주는 맑은 술이 아니었담 목에 넘어가지 않을 점심상이었다. 최고의 점심상을 이렇게 차려 내놓는다면……


점심으로 한 시간이 할당되었는지 1시 20분까지 승차하면 되고, 그 사이 길 아래로 남대문과 약간 언덕길 위 저만치에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주석의 금빛 동상이 서있다. 의례가 강요되거나 사진촬영이 금지되거나 하는 극단적 제약은 없었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동상이 일부분 가려지거나 잘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가 따랐다. (누군가는 사진 속의 동상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이유만으로 북측 출입소에서 그 사진을 삭제 당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이번 일핸 10대의 버스에서 내란 사람들은 그 동상께로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있는 것을 찍는 것이 뭐가 문제될까 싶어서, 북측안내원에게 나쁘지 않게 찍어달라고 할까 보다라고 혼잣말처럼 하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듣고 말렸다. 긁어 부스럼을 말라고! 그런데 북측안내원에게 사진 부탁할 생각은 왜 하게 되었냐면, 이미 남대문을 그가 찍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남대문이 멀리 보이는 길 아래엔 드문드문 양쪽 안내원이 서있었고, 그 내부에선 앞의 나무에까지 가려서 남대문이 보이질 않았고, 우리 측 안내원의 발끝에 내 발끝을 대고서 길이를 벌어서 애써 그걸 찍으려던 내 모습을 본 북측안내원이 자진해서 자신이 찍어다 준다고 여남 걸음 나가서 찍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아산 직원은 넘을 수 없는 그 ‘경계’를 북측안내원은 넘어도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들은 그곳 소속이니까.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구한 남대문은 북안동에 있는 개성성 내성의 남문으로 국보급 유산이라 한다. 내성을 쌓았던 1391~1393년경에 함께 지은 것으로, 축대 위의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고려사』에 보면 개성성을 쌓는데 목공 35만 명, 장정 24만 명, 기술자 8천 5백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정말 유명한 것은 한석봉의 친필로 쓰인 현판이라는데, 그것을 육안으로 볼 수는 없었다.


오후의 관광은 첫 코스가 선죽교이다. 남대문에서 동쪽으로 약 1㎞ 거리 선죽동에 있는 국보유적 159호라나. 이 돌다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장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역사적 장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도랑물 같은 노계천에 걸쳐있는 이 돌다리는 그 명만큼은 우선 크기에서 사뭇 작다. 길이 6.67m 정도는 홀딱 건너뛸 수 있는 느낌이고, 다리 난간의 너비 2.54m는 양팔을 벌려 품을 만하다. 원래 옛 이름은 선지교(善地橋)였다는데, 고려 태조가 송도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하천정비의 일환으로 축조한 것이 알려지지 않은 다리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1392년 고려 말 포은 정몽주가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해 「단심가」로 대답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가 보낸 조영규 등의 철퇴에 맞아 숨진 사건 이후에야 유명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름이 선죽교가 된 것은 정몽주가 죽은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라났다는 것인데, 물론 대나무가 이 개성의 기후에서 지금 자라고 있을 리는 없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하여가」와 「단심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어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어쨌거나 지금의 다리는 사람이 건널 수 없이 난간으로 둘러있는데, 이것은 1780년 정몽주의 후손인 유수 정호인이 주위에 돌난간을 설치하고 별교를 세워 보호한 때문이란다. 돌다리 동쪽에는 한석봉의 글씨로 ‘선죽교’라는 세 글자가 뚜렷한 비석이 있고, 돌다리 서쪽에는 비각 안에 1740년 영조의 어제어필의 포충비(褒忠碑)와 1872년 고종의 어제어필의 표충비(表忠碑)가 있다. 그 안에 암수 돌거북을 두고 (아들 얻기를 비는) 소원을 빌었다는 그 너머까지는 사람들의 무리를 뚫고 들어갈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늘에서 올려다본 은행나무는 유수한 세월을 증거하고 있었다. 매년 가을이면 노랗게 물이 들면서, 선죽교의 불그스레한 핏자국과 조화를 이루며.


다음에 들린 곳은 4차선 시멘트 길가 주차장에서 빙 돌아 올라간 숭양서원은 조선 중기 1573년 개성유수 남응운이 유림들과 함께 정몽주의 충절과 서경덕의 학덕을 흠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곧 이어 ‘숭양(崧陽)’이라는 칭호를 내려받았고, 개성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 되었다 한다. 후일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견디어 낸 마흔 몇 개의 서원 중에 속한다 한다. 그런데 그 입구에는 개인지 원숭이인지가 부각된 1m 정육면체는 안내가 없었다. 일행들의 추측으로는 말에서 내리기위한 발판으로 쓰인 것일 거란다. 글쎄.


두시 반. 숭양서원을 떠나서 버스는 마지막 코스로 고려박물관으로 향한다. 고려박물관 터의 성균관은 부산동에 자리 잡아 고려 초에 처음 세우고 조선시대에 고쳐지은 교육기관으로, 1089년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을 이곳으로 옮겨 왔으며 1304년 국자감에 대성전과 기타 건물들을 세우며 국자감의 면모를 일신했다고 한다. 그리고 1310년 이름을 성균관으로 고쳤다. 지금의 건물은 1602~1610년경에 옛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란다. 1호관부터 번호를 따라 박물관을 관람하는 데는 시간이 부족할 듯 하다. 여러 가지 놀라운 자료들 가운데도 적나라한 도표가 하나 있었다. 고려시대 「노비를 팔고 사는 값」이다. 어른 녀자종 (15세~50세)은 120필, 남자종은 100필에, 노령이나 어린 녀자종은 60필 50필이다. 녀자종이 값이 더 나가는 이유를 두고 양단으로 한복을 차려입고 하이힐을 신은 안내원은 녀자가 더 많은 노비를 생산할 수 있어서란다. 우리 일행은 아니나 군집한 사람들 중 누군가 남자 목소리가 킥킥거린다, 녀자는 밤낮으로 부리니까 그렇다고! 정말 웃을 일은 그게 아니었다. 그에 나란히 올라간 막대그라프에서 가장 높은 막대는 400필 값의 소 한 마리였다. 소만도 못한 노비의 인생이여.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는 자유를 잠식당하고 산다면 인간은 소만 못한 존재이리라!


이어지는 토기와 자기의 전시실도 볼 만 했다. 처녀청자나 총각청자 등의 자태는 물론 일반적으로 고려청자야 너무도 유명하지만, 토기의 경우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욱 놀라웠다.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 우리 남한 땅에서 출토되어 진열되는 토기들의 모양과 너무 비슷한 때문이었다. 청동거울 등 철제문화도 인상적이었다. 개성은 일찍이 형성된 도시임이 틀림없었다. 간다라 미술의 청동불상이 모셔진 작은 전시실을 뒤로하고 나서니 야외로 통한다.


야외박물관은 문자 그대로 야외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여준다. 눈에 먼저 띄는 것은 현화사 7층탑이다. 1020년에 지어졌다는 탑은 높이는 8.64m로 큰 편에 속한다. 탑신마다 불상과 연꽃을 조각했던 모양인데 조금은 훼손되었고, 기단부에 돌을 마치 벽돌처럼 쌓은 것이 특이하다. 상대적으로 낮은 흥국사탑도 눈에 들어온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탑은 불일사 5층탑이다. 광종이 그의 모후를 위해 951년에 보봉산 기슭에 지었다는 불일사에 세워진 것이나, 1960년에 야외박물관으로 옮겼나보다. 나중에 붙여 올려 조금 어색한 상륜부를 제외하고도 높이는 7.94m라는데, 올려 바라보자니 참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이다. 역광이 되는 해가 들었다 났다 하는 날씨에 서둘러 정원을 돌아 나오는 곳에 개국사 돌등이 서있다. 개국사는 말 그대로 935년 고려 초에 세운 사찰로 고려조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나 조선시대에 몰락했고, 높이 4m의 이 돌등은 193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


아직 우표전시관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시간이 없다. 마지막 남은 관광코스. 북한의 풍물을 조금은 사가지고 가는 일이다. 큰 건물이 두 칸인데, 우선 들어간 곳의 입구에 뽕나무 버섯과 고사리 등 말린 식물을 파는 쪽이 붐빈다. 뽕나무 버섯 한 봉지에 24달러, 고사리는 8달러, 조각호두가 9달러 그리고 잣 한 봉지에 역시 9달러이다. 한국에 비해 싸고 안 싸고는 문제가 안 될 것 같았다. 북한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사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루관광에서 허용된 달러는 200. 박연폭포에서 산 개성 모약과는 그저 양념에 불과하다. 노년의 건강챙기기가 주부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과제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저렇게 챙기니까 양이 많아진다. 그러나 내심 진짜 표적이 있었다. 청심환 종류 하나. 연전에 연길에서 백두산 가는 길에 북한산 물품판매소가 있었고, 거기서 구입한 청심환이 괜찮은 것 같았다. 양도 적고 다 합쳐 200달러 안에서 쓰기도 마땅하다. 우스운 말이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조금 미안한 일일 것 같다. 아서라, 남의 사정 봐주려다가 애 들어설라! - 어려서부터 들은 말인데 어려선 그 뜻도 몰랐다. 제 사정을 망각한 현명치 못한 철부지 행동에 대한 경계였으리라, 다소 성적인 버전으로.


아무튼 버스에 돌아와서는 미리 준비해간 편치는 장바구니에 쓸어 담았더니 들기에 만만한 크기가 되었다. 오늘의 소비행태를 자아비판하자면 재산 상태에 비해 조금 많이 쓴 것 같지만 어쩌랴. 근년 들어 사적인 용도로 물품사기에 더욱 검소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상쇄가 될 듯 하다. 물론 아직도 멀었다. 슬쩍 스쳐간 텔레비전에서 프랑스라고 기억되는 젊은 여성들의 소비철학에 가슴이 뜨끔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자녀들에게 폐지로 만든 공책만 사주는 데도, 그 아이들이 “우리가 새 공책을 사면 나무들이 죽어서 종이가 되어야 되잖아요!”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 젊은 어머니는 “속옷만 빼고는” 새 옷을 사지 않는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있었는데…….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들 시간이 없이 버스는 덜컹거리며 시가지를 지난다. 멀리에서 아이들의 하교시간인지 한 무리가 걸어 나오고 있다. 거무스레한 복장들에 검붉은 스카프들만 눈에 띄게 펄럭인다. 아이들은 목에 나라를 걸고 다닌다. 지나는 사람들도 아침보다 더 늘었다. 운동장으로 보이던 곳에 축구하는 아이들과 곧 이어 다른 운동장엔 네트를 중심으로 갈라서서 배드민턴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조금 더 큰 학생들이 보인다. 자유로운 놀이는 절대로 아닌 것이, 놀이의 낄낄대는 짓궂음이 아닌 훈련의 진지함이 하늘까지 굳게 하는 듯 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이었는지, 저무는 해 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님 내 선입견이 문제였는지.


‘식료품상점’, ‘과실남새상점’, ‘전기기구수리’ 등 상호가 눈에 띄는데, 그것도 독특하다. ‘닭곰집’ 같은 독특한 표현 때문이 아니라 도무지 상호에 고유명사가 없다. 평화식품점이나 개성식품점이 아니라, 그냥 식료품상점인 것이다. 아 하나의 변형이 있었다. ‘결혼식 사진관’과 ‘천연색 예술사진’. 이 두 사진관 간판은 나를 안심시켰다. 사람들은 적어도 사진을 잘 찍고 살구나. 추억해야할 일들이 생긴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판자에 쓰인 ‘종합편의’나 ‘아동백화점’ 입구에도 사실 인기척이 별로 없었다. 주택 지구에 창문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던 내 눈 탓일까? 작은 글씨가 안보이면 급한 김에 돋보기를 두 개 겹쳐서도 보는 내 눈이 눈이랴! 집들의 하얀 칠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회색의 그림자 인상과 미동도 없어 보이는 정적의 흔적은 내 눈 탓이다. 그래서 렌즈가 중요하다. 특히 미지의 미래의 인생을 분홍빛으로 보는 긍정적인 사람과 불안의 잿빛으로 느끼는 못난이들의 차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이 회색 안경의 개성방문기가 순 거짓이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개성공단 내 지역을 버스를 탄 채 설명과 함께 돌아본 우리는 로만손시계나 GS용인전자 등 우리가 흔히 보던 간판의 공장에 가슴이 찡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양쪽 동포들의 땀방울이 어느 공장에서보다 의미있게 다가오면서. 수박 겉핥기라도 개성공단을 돌아보는 것은 좋았다. 어쨌거나 버스는 다시 군사분계선으로 향하고, 그 동안 친숙해진 북쪽 안내원과 우리 측 순수한 한 일행 사이에 주체사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게 되자 깜짝 놀랐다. 문제가 되어 서울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 겁이 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하나다!」라는 대형 플래카드에 대해서인지 - 그건 올 때나 갈 때나 아주 크게 보이는 길목에 걸어두고 있었다 - 동포로서 뭐 좋다! 라는 응수 한 마디를 빌미로, 안내원은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이라고 늦게나마 자신의 할 일을 시작하려는 것이었을 게다. 평소에 명민한 분이라 곧 다른 화두로 빠져나왔지만, 아무튼 우리 일행이 어떤 계급(?)인줄 알면서도 기어코 주체사상을 입에 담은 안내원. 아마 그의 하루 자아비판은 조금 가벼워 졌으리라!


북측 안내원들이 처음 승차 때와 같이 예의를 갖춰 하차하고 나자 곧 버스 기사가 한 마디 했다. 오늘의 안내원은 거짓말 별로 안 했다고. 버스의 일행 구성을 보아서 “거짓말로” 막 해댈 때도 있단다. 그것만 보아도 그렇다. 안내원은 안내원대로 보조임무가 있을 것이다. 체제선전은 모든 체제의 주요사업 중 하나이니까.


우스운 에피소드. 북측 안내원들을 따라 버스기사가 내리지 않았을 때, 그 주체사상 단어에 노출된 일행은 왜 기사님은 왜 안 내리는 거냐고 되물어서 우리 모두를 까르르 웃겼다. 다시 한번 순수성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런 날 북측 남측 구별에 대해 무방비? 그건 아닐 것이다. 얼마나 심오한 학문을 하는 분인데.


마이크를 다시 잡은 현대아산 측 안내로는 문상-개성간 철도 운항에 대한 놀라운 사실이었다. 수송해야할 물자가 있건 없건 날마다 정한 시간에 열차를 운행한단다, 철길이 끊기지 말라고, 조금 씩 조금 씩 더 길게 이어질 꿈을 담아서.


비무장지대 안의 풍경은 교과서처럼 판에 박힌 그대로였다. 다만 이번에는 멀리 바라다 보이는 하얗게 반짝이는 바라크 판문점과 그 판문점을 두고 대치한 높은 깃대들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얼핏 보아도 더 높은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쪽이 북이다. 귀성동, 일명 평화의 마을에 자리한 붉은 인공기의 높이는 자그마치 165m에 달한다고 한다. 자유의 마을 대성동에 위치한 태극기의 높이는 100m에 불과하다고 하니, 우리 측은 그럼 그렇게 높은 깃발을 달 능력이 안 되는가? 설명에 따르면 첨엔 며칠 자고나면 북쪽에서 또 며칠 자고나면 남쪽에서 깃발 높이 올리기 경주가 벌어지곤 했더란다. 그것을 어느 날 우리 측에서 멈춘 것이 이 상황이란다. 웃지 못 할 사실 하나 더. 그렇게 높은 인공기를 게양하고 내리는 작업에 북측 인원은 얼마나 동원이 되어야 할까? 태극기 게양에 필요한 인원이 2명이면…… 그러나 아무도 맞추지 못하였다. 믿거나 말거나, 그 열배인 스무 명도 아닌 사십 명이 아침 조석으로 인공기 게양에 동원된단다. 하늘의 압력이 그런 것인가? 믿지 못할 숫자이지만 가장 믿음직한 소식통이 아닌가.


마지막 북측과의 접촉은 왼쪽으로 보이는 언덕의 인민군 초소이다. 초소로 들어가려는 걸음걸이의 군인을 만나 버스 속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었지만 허무한 짝사랑. 노무현 대통령이 도보로 건너갔던 샛노란 횡단선. 그것은 페인트가 태워진 채 거무스름한 선으로 변해있다. 곧 이어 반가운 파주시 이정표가 다가온다. 5시 정각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이다. 실제로는 북측 용어로 통행검사소 - 우리 측 용어로 남북한출입소를 통과하면서 개성방문은 끝이 나는가 보다.


입경장에서는 카메라를 소지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줄을 구분한다. 짐들을 X레이로 투사하는 과정을 똑 같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카메라들을 북측 요원이 받아들고서 하나하나 촬영된 화면을 검사했다. 내 디카도 마찬가지였지만, 다행히 걸린 것은 없었다. 귀 달린 도기병 등 몇 가지 박물관 내부를 찍은 사진이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실 첨엔 모르고 몇 장을 찍었는데, 실내는 촬영금지라 해서 그만두었었다. 그 보다는 아무렇게나 잡동사니 속에 밀어 넣어둔 박연폭포의 돌멩이 하나가 X레이에 걸리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개성모약과보다도 우황청심환보다도 내심 기다릴 개성돌멩이. 은행잎과 다른 낙엽들 집으면서 하나 겨우 집어든 못난 돌멩이. 일행 중에는 분명 반입금지 품목에 적힌 기준에 맞는데도 아무튼 반입불가 품목으로 분류되어 압류되었던 소니SR12 카메라도, 종교 관련 물품이라 해서 자진해서 맡긴 묵주도 당연히 돌려받는다. 종교도 정치만큼 위력을 갖는다? 사실 우연히 선물 받은 물건에라도 십자가 등이 새겨져 있음 곤란하다는 처음 안내에 많이 마음 졸였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 쪽으로의 검역은 마른 고사리 등 식물과 관련된 물품들이 해당된다고 한다. 물론 거의 형식적이다. 한 두 시간 전에 산 물건을 한 두 시간 후에 압류하고서야 개성관광이 유지되겠는가. 어둑한 사무소를 빠져나온 우리들은 다시 임진각행 셔틀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 걸터앉을 데도 없이 서성거리는 몇 분, 몇 사람과 말을 섞게 되니 조금 후회스럽게 된다. 주거니 받거니, 농담조의 언사들이 다만 상대가 아니라는 자괴감 때문만으로도 고통스럽다. 물론 얼굴은 사회적 표정을 띠고 있었기를 희망한다. 부질없더라도.


정말 해괴한 그 꿈은 다만 일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북한을 다녀온다는 예고에 불과했을까? 형제들을 다 모아 월북을 해서는 난민촌의 덜 지은 창고 같은 시멘트 반쪽 건물에 배당되었데…… 방도 아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샘가와도 같은 축축한 바닥에 어정어정 안고 선 우리 형제들. 하이힐로 종종거리며 뒤따라오던 한 녀석이 반짝이는 지갑을 팔에 낀 채 산들거리는 원피스 치마 자락을 날리며 뒷걸음질을 한다. “언니. 난 안 되겠어. 난 이런 덴 못 살아…….” 나는 어쩜 그리 냉정하고 단호했을까? 그래, 이런 문제는 형제라 해도 강요 못하지, 각자가 결정 하는 거다. 그래 할 수 없다. 뭐 그런 짧음 랄로서 우리는 이별을 했다. (사실 우리는 연초에 오래 누워있던 그 아이와 영영 이별을 한 터였다.) 문제는 꿈이 거기서 중단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앉아있는 난민촌 같은 숙소 저 앞에 검붉은 벽돌로 육중하면서도 높은 아파트 건물이 여러 동 있다. 그런데 책임자인지 담당자인지가 와서 하는 말이, 저 고층 아파트 위에 꼭 저만한 높이의 고층아파트를 또 올릴 계획인데, 그것이 완공되면 우리가 그리고 배치되는 것이라고. 물론 무엇인가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도 없이 정지된 그림인데. 성냥갑 위에 또 하나 이런 성냥갑을 얹어서? 그러한 공법을 물론 아는 바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시멘트바닥의 냉기는 그때 계정이 무엇이었던 간에 황량함 그 자체이고 비전이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엄청난 월북을 감행했는가? 전후 사정은 모르나, 순간 나에게 깊은 후회가 일었다. 평상시에 스스로 기회주의적인 면이 없다 믿었던 내가 - 꿈에서도 그랬다 - 다른 형제들에 대한 책임의식까지 발동하여 넌지시 생각을 바꿨다. 사실 이 엄청난 행보를 학교에서 아직 모른다. 그러니 우리 이대로 돌아가 버릴까? 어때? 어떻게 결정할까? 너희들 결정하는 대로……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꿈이라지만 너무했다. 형제들이 온통 함께 월북을 했는데 재직 학교에서 그걸 여태 모른다? 다시 돌아 올 수가 있다?


참 꿈은 꿈이다. 그리고 꿈처럼 나는 다시 돌아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리는 버스 내부는 활기에 넘쳤다 서태지가 어떻게 데려왔는지 로열필하모니와 협연하는 온 시간 내내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한 소설의 노래도 따라 부를 수도 없었던 내 목이 잠긴 건 버스 안의 열기와 실제 에어컨의 냉기가 범벅되어 내 신경을 자극한 탓이리라. 나는 어떤 온도에 반응해야 하는가를 몰라서 저항력을 잃고 무너진다. 나는 목소리를 잃고 그 대신 지금 글을 쓴다. 꿈만 같은 개성 방문기를. 그림자의 도시 개성을 떠올리며.

 


소설시대 15호, 2009. 3월 186-2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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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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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07. 6. 30. 23:30


조 사

 

                                  소설시대 2007

 


오늘 길 떠나시는 시인을 찾아 서둘러 날아온 ‘쑥국새 울음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봄날, 우리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하는, 존경해 마지않았던 OO OOO 선생님, 제자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잃은 마당에 감히 조사를 읊어 바치고자 하니, 서러운 마음 그지없어 눈앞이 깜깜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단발머리 소녀들로 스승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솔방울만 굴러도 깔깔 웃고, 낙엽이 떨어지면 눈물 떨군다는 소녀시절. 바로 이런 봄날, 뻣뻣한 검은 말총머리를 휘날리시며, 휘날리는 머리카락 따라 고개를 끄덕이시며 들어서신 국어 선생님. “아야!” 그렇게 정겨운 목소리로, 그러나 완벽하게 우리말 우리글 공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 


우리가 이 영어 세상에서 우리말을 사랑하며, 이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 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은 스승님께서 우리들 때 묻지 않은 영혼에 심어주신 ‘우선은 국어 사랑의 정신’과 나아가서는 ‘자중자애의 숭고한 가치’ 덕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친구들을 서로 사랑하고,  심지어 사투리까지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타인이 나보다는 자신을 사랑함을 이해하고, 행여 자신을 사랑하는 타인을 못해도 자신만큼은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자신에 걸맞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 외에는 세상살이에 달리 첩경이 없다고 깨우쳤습니다.


스승님은 우리의 꿈을 높게 이끄셨고, 많은 제자들이 보다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자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람이 적다.” ― 세상을 아시기에 미리 한탄하셨던 스승님. 우리 “보람이 적은” 여자제자들의 삶 속에도 스승님의 가르침은 면면히 흐릅니다. 서울에 가서 살건 미국에 가서 살건 전라도 아낙인 것 부끄러워한 적 없고, “툭시발 갓의 된장 맛”이라고, 구수한 인생살이에서 가정과 자녀의 인생에 알뜰한 간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빛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소금은 될 양으로 ―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조사는 그런데 읽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지들의 조사 틈에 여자제자들의 차례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우리 쪽 차례가 오면!” 준비는 해두자고, 공인으로 활동하는 동창이 하룻밤을 조르는 데 못 이겨 난생 처음으로 써 본 조사였다. 그럴 일이 생긴다면 읽기는 목청도 담도 좋은 동창이 잘 읽을 터였다.


허옇게 서있는 키다리 조화들은 즐비했다. 막상 발인은 예상보다 조촐했고, 선생님 살아생전에 모이던 제자들 수만큼은 어림없는 인파였다. 


*


문학 월간지에서 무명의 나에게 청탁이 왔다. 청탁이다, 적어도. 등단 몇 년이라고는 하지만 고료를 받고 쓴 작품이 몇이던가. 그 동안 썼다가 구겨둔 원고들을 서둘러 훑어 볼 일이다. 그때마다 중단된 글들도 처음엔 절실한 심정으로 시작했었던 것들이니까. 그 옛날, 윗목의 낮은 교자상 앞에 구부려 앉아 쓰고 또 쓰다가 구겨둔 원고지들은 다 사라졌다. 버리고 또 버려도 쌓이는 파지들을 자꾸 치운 까닭이다. 그런데 컴퓨터 속은 도둑놈 계집 치마폭이다. 켜켜로 쌓아두면 버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지 작업이나 사진 작업이 거의 없는 ‘우리의’ 노트북은 죄 한글문서들뿐이어서, 용량에선 넘칠 염려가 없다. 이런 무궁무진한 창고 덕에……


아니 그런 모든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미진한 몸이 청탁을 받으면 목욕재계를 하고 선을 하고 앉아서 명상에 잠겨도 모자랄 일인데, 대뜸 창고 속을 후비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 도는 문서들도 없지 않다. 적게는 8KB짜리에서 많게는 1,126KB까지 분량 또한 제멋대로이다. 드물게는 ‘열려라 참깨!’를 잃어버려서 바윗돌처럼 닫혀버린 파일도 있다. 노트북을 공유한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파일들이 있고, 암호를 걸어두었다가 그리된 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트북에 대한 권리에서 함께 쓰는 그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는 밥을 벌고 나는 밥을 벌지 않는다. 그는 아무 시간이나 일을 하고, 나는 그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서야 노트북을 연다. 그러니 항상 서두르는 버릇이 있다. 집히는 대로 작업을 하다말다 그러는 것이 버릇이 되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바로 어젯밤에 쓴 「조사」가 들어있는 파일에 쓰기 시작하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싶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글이다. 격식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 글쟁이라니 한심하다. 상투적인 감상의 찌꺼기는 또 뭔가. 그러면서 엉뚱하게 사투리 배운 것을 감지덕지하다니, 듣는 이들이 황당하다 했을 것 같다. 읽혀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문자화 되어 마음만 여기에 남으면 되니까. 이렇게 잘 표현되지 못했더라도 속에 담긴 의미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보다도 크게 봐서 인생은 어느 구석을 돌아도 비슷한 쳇바퀴란 건방진 생각이 들 때면,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은 어차피 누군가가 살다가 죽는 이야기의 한 단면일 것 같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그 이상의 범위를 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초라한 글쟁이도 그저 그 지평 안에서 몸살을 앓을 것이다.


파일들은 생각보다 분류가 되어 있질 않다. 어쩌다 눈에 띄는 파일 중에 마찬가지로 ‘옛 스승’과 관련된 짧은 글 토막이 있다. 모교 동창회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추억담을 올려달라는 성화에 적어두었던 모양이다.


모교의 OOO 선생님은 가정과 선생님에서 교감, 교장 선생님을 두루 다 거치셔서 동문 모두에게 잘 알려진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동기의 ‘홈커밍’ 행사에 불참하실 때 노환이 깊으시다는 소식에 마음들이 무거웠지만, 그것도 벌써 옛일, 이젠 이승을 떠나신지 오랩니다.


선생님은 떠나셔도 의미 있는 한 순간의 기억은 영원 속에 박힙니다. 저는 아직도 아주 적나라하게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비누에 엉키는 머리카락을 쉽게 떼어내는 방법은 그분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속옷 서랍을 정리하는 일 하나도 참 숙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너절하게 두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사소한 것에 감동하느냐고요? 인생은 사소한 것의 총계라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목표 달성을 위해 사소한 행복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홈커밍 행사 날 한 친구가 유난히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친구는 모교에 부임한 초년 교사로 스승님은 교감선생님으로 잠시 함께 재직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젊은 ‘애 엄마’ 여교사들에게 교감선생님은 감시 대신 시원스레 말미를 주셨다고요. 가능하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재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잠깐이라도 꼬옥 껴안아주고 오라’는 충고. 당신께서 여덟 자녀를 기르시며 후줄근한 숙직실에서 젖을 물렸던 기억에 아파하시며, 젊은 여교사들에겐 가능하면 아이에게 밀착된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던


거기에서 중단된 이 글은 홈페이지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새삼스레 추억에 잠기면서 운명의 불공평한 대우에 분노가 인다. 그분이, 마지막 몇 년을 지독한 치매상태에서 고통 받아야 했다는 뒷소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고 - 그저 단순한 가사노동이나 혹은 유한마담의 삶을 살아간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무엇을 그리 잘못 했다는 말인가? 치매를 행여 젊은 시절의 방만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 단순논리를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 삶을 살고서 그 마지막 몇 년이 치매라면, 이것은 뭔가 아니다 싶다.


“고매하신 창조자의 섭리 따위는 없다는 증거야.” 내가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은 심하다. 그 선생님 시절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양쪽에서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리 되셨겠어. 게서 창조주 이야기는 왜.”

“창조주란 말 안 썼다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 그게 그거다 원.”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내겐 항상 편이 적다. 그래도 우긴다.

“양심 없는 쪽이 양심 있는 쪽보다 훨씬 더 잘 산다면, 그게 이 세상에 고귀한 섭리 따윈 없고 우연이 지배한다는 것 아니냐고.”


다 말하지는 못했다. 실은 안팎으로 죽어라 일만 하시다가 치매로 고생 끝에 돌아가신 우리 선생님과 대비해서, 아파트 우리 라인에서 제일 멋있게 늙어가는 노부부 이야기를 할까 했었지만.


이런 이야기다. 남편은 겉은 영국신사에 속으로는 향교에서도 알아주는 식자에, 아내는 젊어 이래 폐백음식에 불려 다녔다는 솜씨를 자랑한다는 부인이다. 산보길이며 외출하는 양이며, 최고로 여유 있고 한가롭게 여생을 즐기는 모습이다. 할머니는 아예 노인 축에도 안가는 팽팽한 얼굴이다. 근심 걱정이라고는 평생 없었다고 말하는 피부. 고운 자태. 고운 옷.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내막은 주말 연속극 감이었다. 남자는 고향에 처자가 있는 유부남, 여자는 처녀 때 만났던 사이라는데, 내가 그것으로 놀랐다면 호들갑이다. 속내는 더 기가 막혔다. 처녀 쪽에서 마음 고쳐먹고 시집을 갔으니, 일은 제자리로 돌아간 듯 했더란다. 그런데 여자가 한두 해만에 딸을 하나 낳고서는 그걸 버리고 다시 이 남자에게로 왔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는 제 아들을, 어머니는 제 딸을 버리고서, 그렇게 다시 시작해서 ‘우리 자식’ 몇을 더 낳아 온갖 정성 다 쏟고 호의호식으로 키우면서 살아왔다니.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는 큰아들 선 자리를 말 그대로 백번도 더 보았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버린 자식들 ‘내 자식, 네 자식’이 잊혔을까? 요새 말로 그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있었을까? 마음속이 그러고서도 저리 화평한 노년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까지 모두 이야기 했더라면 친구들은 내 말을 믿었을까? 스트레스가 치매의 원인은 아니다. 양심의 고통으로 늙는 것도 아니다…… 라고 우기는 말을.


생․로․병․사는 정말 오로지 유전자 탓인가. 아니 유전자 더하기 우연이라는 장치의 역할일까. 그렇게 우연히 찾아든 치매 바이러스. 우연히 비껴간 혹은 우연히 침투한 박테리아. 우연히 고꾸라진 버스. 우연히 날아든 바윗돌. 우연히 심장을 뚫은 파편.


*


유난히 문상이 겹친 주간이었다. 아스라이 먼 시간에 끊어졌던 추억들을 불러오는 초상 자리. 대형화된 장례식장은 문상객들을 서로 부딪지 않게 할 만큼 넓어서, 사람 사이에 가면 노련치 못한 나 같은 부류에게는 다행스럽다.


검은 저고리 치마의 여자들은 조금 생소했고, 그런데 처량함을 덜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평상복 위에 대충 걸친 허연 상복의 구겨지고 초라한 몰골을 조금 더 단정하게 보여준다. 향년 OO세가 주는 이상한 안도감에 문상객들은 덜 미안해하며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바로 앞선 문상객이 ‘호상’이란 말을 써서 언짢은 일이 있었나 보다. ‘호’자와 ‘상’자는 이를테면 모순형용법에 속한다. 모든 상은 상이다. 상은 잃어버리는 것, 끝이고, 영영 이별이다. 그것이 어찌 좋을 것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주들이 영영 고아가 되는 것인데.


친구는 일찍이 반쪽 고아가 되었고, 집에는 단출하게 어머니만 계셨다. 어머니만 계시는 것이 특별나지 않기 때문에, 그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어차피 아버지들은 낮 시간 동안에는 집에 계시지 않았으니까. 친구네가 특별히 더 조용한 것은 아마 적산가옥의 구조였을 것이다. 한 줄로 나란히 펼쳐진 한옥과는 다르게, 좁은 복도를 낀 여러 겹의 방들은 작은 네모들의 미로였다. 한옥에서처럼 줄줄이 햇빛 받는 툇마루가 없으니 더 침침하고, 어둑한 공기 따라 분위기도 더 가라앉았을까. 고즈넉한 집과 친구어머니의 단아한 자태는 서로 어울렸다. 우리 배달민족은 또한 백의민족이라고 책에는 쓰였지만, 우리 집에선 백의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인상은 하이얀 무명이었다. 우리들 교복의 풀기 선 칼라와 표백한 흰색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흰색. 함초롬히 옷감이 안기는 자태. 작고 고운, 무엇보다도 드문 말씨. 나는 어쩌면 그런 절간 같은 고요함에 이끌리어 친구 집엘 드나들었나 보다.


오늘 어머니를 여읜 친구는 그러니까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했다고 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 중 많은 아버지들이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엄청난 손실의 수치로 변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서 말하기로는 강제동원 피해자로 정부 당국에 신고한 사람은 22만 명 정도라 한다. 한국전쟁의 국군 피해자는 사망만 13만을 넘고, 부상과 실종 그리고 포로를 합쳐 62만 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그런데 수학적 통계나 확률은 큰 의미가 없다. 두 형제가 참전하기로 똑같았던 우리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고 살아남지 못했다. 체감 확률은 해당자에겐 언제나 1/2이다.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한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당시에 젊은 장교로 사단 참모장쯤 되었던 아버지는 군사혁명 때엔 별을 달고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30명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거나, 어느 부처의 장관이 되어 프랑스 혹은 서독을 방문, 한국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맺어 1억 마르크도 넘는 장기차관을 약속받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었다. 실미도 사건 같은 때에 하필 책임 있는 위치에서 우왕좌왕 발표를 하다가 그날로 사임을 한다거나,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은 물론 나아가 의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총알이 하필 심장에 박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일 아직까지 건강하다면……. 케네디가의 맏형 조셉 패트릭이 2차대전에서 실종된 것과 비슷하게, 형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동생은 그러니까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누구나 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하긴 대통령이 뭐 그리 좋은가. 케네디 대통령은 너무 높이 태양 가까이 날다가 짙푸른 에게해에 빠져버린 이카로스처럼 추락했다. 그러니까 살아남은 동생이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로만 올라갔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일찍 최고에 이르러 죽느니보다는 최고 비슷한 데까지만 가고 사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대로만 된다면. 조금 아쉽지만, 대통령 처조카사위의 동생의 장인의 매제의 모함(?)으로 비리에 연루되어 퇴직을 해도 괜찮다. 넉넉히 평균수명을 넘기고 혹시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대회’ 같은 묘한 계제가 있다면, 대한민국이 이미 공산화 되었다고 걱정하는 원로들에 가담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런 예상은 너무도 픽션이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휴전과 함께 그대로 군복을 벗어던지고, 상과대학 출신답게 경영으로 입신했을 것이다. 재벌총수에게 휘둘리지 않는 전문경영인의 길을 갔다. 코트라 초창기를 살려내고 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온 가족이 외국에 나가서 살았고…… 아니다, 내 친구로 미루어 학구적이었을 아버지는 군복을 벗자마자 계속 학문에 전념하여 경제학박사가 되어 경제학교수가 되어……


이것도 정말 아니다. 내가 지금 쓸데없이 젊은 채로 남은 많은 아버지들의 가상의 전기를 쓸 일이 아니다. 다만 인생은 냇물을 따라 사는 것인지 냇물을 건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생에 징검다리가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 하나의 돌이 나에게는 그 어머니가 있는 집이었다. 다다미방 저 쪽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하건 별 간섭이 없으셨던 어머니. 사실 조용한 어머니가 먼저였는지, 다 반듯해 보인 언니 오빠들이 먼저였는지 모를 일이다. 동창들 가운데에서 지금도 최고로 요조숙녀가 바로 이 친구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좋을 일을 구별하고, 그 구별에 따라 행동하는 일. 그 어려운 일에 친구는 어려운 티를 모른다. 말도 조신하고 행동도 조신하다. 그렇다고 막힌 것도 아니다. 운동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모르겠다, 살사나 벨리댄스를 배우지나 않는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친구는 합창단에 들고 배드민턴인가 탁구인가를 선수만큼 잘 할 수 있어도, 춤 같은 건 외면할 수도 있다. 학창시절 모범생의 연속일 텐데, 우리의 학창시절엔 지덕체라고 말은 하면서도 지와 덕에만 치중했고, 체육까지는 몰라도 무용은 조금 색안경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끼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저급할 것까진 아니나 조금 위험한 어떤 끼가. 체육이나 무용을 못하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으니, 웰빙 세대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내 글은 이렇게 「조사」에서 빗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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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무진장 어렵다. 사투리까지 사랑하게 가르쳐 주셨던 국어 선생님은 내 첫 작품을 받아 읽어보신 뒤 내게 단 한마디를 하셨다. “소설은 박완서처럼 쓰거라!” 그리고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겨우 보름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5미터 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음악과 문학이 어우러진, 꽤 유명한 분의 성대한 문학인생 기념회 비슷한 자리였다. 난생 처음 그런 자리에 끼게 되어 얼핏 주눅 든 내가 저 건너 테이블에 살며시 들어와 앉는 그 얼굴을 첫눈에 알아본 것도 용했다. 소설책에 나와 있는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덕일까? 작은 얼굴에 작은 체격 ― 거미줄 나오듯 누에가 털실 뽑듯 끊임없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짜내는 물레. 피란길 허기 속에서 동생 오목이의 손을 놓아버린 수지의 줄기찬 저항을, 함께 사랑하고도 혼자서 나락에 떨어진 문경과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혁주의 상을…… 내 기억 속에 박힌 작품만 해도 부지기수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즈음에는 헤쳐 모이는 얼굴 얼굴들.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하고 스쳤다. 박완서처럼 글쓰기.


글쓰기, 글 쓴다고 나서기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국문과 졸업도 더더구나 문창과 출신도 아닌 내가, 글쓰기공부를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도 가 본적 없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한 길에 서 있었다. 무지가 용맹이라는 증거 하나가 내 첫 장편이다. 수필집 원고를 청탁받은 그가 정색을 하고 대신에 나를 들이밀며, ‘서랍을 위해 쓴’ 내 원고들을 가리켰다. 처녀림에서 무작정 베어낸 나무들은 그러나 품종에서나 영양에서나 밀렸다. 인생의 맛을 모르는 내 척박한 토양 때문이었으리라. 그나마 이름만 걸어 놓고 개점휴업 상태. 내놓은 물건들도 별 볼일 없는 태작들이지만, 팔릴 일은 없는 것이, 누가 이만한 원고를 사겠다고 덤비겠는가. 심지어 거간꾼도 없는 것이 이 바닥이다. 하긴 내가 발이 미치지 않아서이지, 거간꾼 없는 세계나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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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 스산한가. 기업의 냄새가 풍기는 장례식장은. 능률적으로 ‘치르는’ 영결의 장은 그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평생에 한두 번 겪는 일일 것인데, 어느 초상에 가보아도 사람들은 놀랍도록 역할을 잘 수행한다. 슬퍼할 때 슬퍼하고, 곡을 할 때 곡을 하고, 대개는 밥을 먹을 때 밥을 먹는다. 밤샘을 위해 화투판도 벌인다, 아주 요절한 마당이 아니라면.


한 분 떠나시고 나니까 다시 한 사람 만나게 되네요…….


문상객들 틈으로 만난 그 사람의 말이었다. 한 열흘 후 쯤 전화가 왔다. 월요일이었다. 저 시간이 좀 나는지? 왜 아니라고 잘라 말하지 않았나? 해가 기울자 겁이 났다.


저녁엔 안 되겠어요. 저녁 외출이 일상적이 아니라서요. 연결된 것만 기뻐하지요.


그렇게 문자메시지 보내놓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앓았다. 흔한 감기 몸살에 흔한 소화불량이지만 정도가 심했다. 머리 속에 맴도는 말. 미리 도망친 벌(?)로 24시간 앓고 있어요……


수요일, 다시 온 전화는 옛날을 생각나게 한 단어 때문에 길어졌다. 누가 먼저였을까, 아무 것도 아닌 옛 일을 끄집어 낸 것이? 아직도 손톱을 물어뜯는지? 지금도 노래를 잘 하는지? 그런 질문들은 애초에 어리석다. 어른이 되어 여전히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노래는 한번 잘하는 사람은 계속 잘한다. 


“들어봐요, 어머니가 남기신 메모예요. 머물을래야 머물 수 없고 붓잡을래야 붓잡을 수 없는 세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시간 천금보다 귀하도다. ” 평생 간직할 소중한 글은 또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읽은 간단한 조사:


노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어머님,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엿함을 보여주신 어머님, 첫 만남에서 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어머님,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신 분이십니다.


이 아리도록 아름다운 글을 내가 들어도 되는가? 그리고는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벌써 금요일이었다. 아니다, 이 사람은 상중이다. 상중이 아니면? 그것도 아니리라. 한참 시간이 흐른 듯 했지만 겨우 일주일이었다.


거짓말 실토하는 게 낫겠어요. 다음날 전화 알고서 선뜻 못 받은 건 빚이 늘 것만 같아서요.


메시지가 원래 더 편하다. 상대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서. 다시 금요일, 비슷한 번호라서 잘못 알고 받은 전화. 그 사람은 정말로 봄나들이 권유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까? 어떻게 그런? 전화를 받고나서 곧 바로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열을 동반한 몸살감기로 변했다. 그것은 바이러스성이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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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덕이 아닌 풍조다. 이를테면, 독서 중에 ‘웃기는’ 숫자를 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부부가 혹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있는 기간은 평균 3년하고 167일 2시간이란다. 그것도 도시 중심부 3,40대 남녀는 이 수치를 낮추지만, 다행스레 나이든 시골 사람들이 평균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주고 있단다. 물론 전문서적이 아닌 ‘소설책’에서 읽은 소리이니 신빙성 있는 자료는 아니다. 소설은 신빙성을 담보하고도 남을 위인 ― 예컨대 미국의 무시무시한 대학의 교수이자 무시무시한 학력의 소유자 ― 이 쓰더라도 신빙성과는 상관이 없다. 이름 하여 픽션이니까. 그래서 소설책에서는 융의 할아버지가 괴테의 손자라나 뭐라나 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도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괴테는 손자 대에서 확실하게 후손이 단절되었으니까. (그가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한 주인공은 “소설이란 인생처럼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작가의 자만심을 죄는 말의 반죽”일 뿐이라고, “요설”뿐이거나.


내 주인공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할까? 우선 내 주인공은 박완서의 주인공들처럼 자연스러운 이름도 갖지 못한다. 아직 ‘ㅂ’자 첫 획에도 못 미친다. 내 소설은 며칠째 방치된다. 그가 노트북을 점령한 것이 변명으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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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리당의 당나귀, 귄터 드 브로윈, 동베를린 1968년.

자서전적 분위기로 도서관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랑, 여성, 결혼, 도덕, 풍속, 현대, 동베를린이 결부된 소설로, 통상적인 삼각관계의 구도 속에서 실제로는 순응 메커니즘, 허위, 모순들의 가면을 벗기는 작업을 시도한다. ‘뷔리당의 당나귀’를 원용하여, 두 여자 사이에서 동일하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설명해보려는 시도 가운데, 60년대에 이혼율이 세계 최고였던 사생활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개인적 불행과 소외적 상황을 극복하게 해준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왜 개인들은 사적인 행복을 방해받고 있는가? 이러한 주제는 상당히 정치적일 수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당나귀보다는 조금 윗수이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필연에 지배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뷔리당이 말한 당나귀는 극심한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다가 굶어죽는다. 귀리와 물통을 곁에 두고서도 말이다. 그 철학자의 설명은 하필 귀리와 물통 사이 한가운데에 당나귀가 위치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먹고 싶은 욕망과 마시고 싶은 욕망이 똑같은 크기일 경우, 당나귀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나귀가 필연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자유의지의 덕으로 제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물부터 먹든지 귀리부터 먹든지 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원인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필연’에서의 해방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는 원인도 동기도 없는 성격에서 발원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어떤 행위를 수행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동기도 없고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행위를 수행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노트북에 그가 쓰고 있던 파일이 떠있다. 갑자기 그를 방해하고 싶다. 나는 그럴 때 문자메시지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한다. 한달에 100건까지는 무료이고, 무엇보다 저장이 된다. 


SOS: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 주는 건 다름 아닌 동기 없는 행위”라고 말한 게 지드?


맞아, 『잘못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인들 해석에서 자유롭겠나? 신들에게서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준 공적이 기독교 세상 중세엔 철저히 잊혀졌다가, 차츰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라거나 일체의 권위에 맞서 항거하는 양심의 상징으로 부활되더니, 루소쯤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선구자로 해석된 것이지. 그러나 진보가 또 하나의 미망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여기 지드처럼. 진보가 필연이라면, 필연에서 해방된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여전히 동기도 없고 불합리한 행동을 자행할 일 아닌가.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 그는 글 숨이 길어서 E메일을 택한다.


한 세월 지나서 카뮈가 “동기 없는 행위”로서의 살인을 제시한 건 처음이 아니었네?


처음이라니. (가)설엔 처음도 끝도 없어. 언어를 소유한 태초의 인간들이 다 말해버렸거든. 누군가 그랬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캄파넬라? 태양 아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없다고, 보르헤스? 아니 이미 벌써 전도서에 있었던 말이야. 1장 9절: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그러니까 지드와 달리 카뮈는 자유의지보다는 부조리 개념으로 설명한 것. 부조리 극복의 유일한 길은 간단없는 반항이라고. 오늘은 끝.

추신: ‘뷔리당의 당나귀’도 뷔리당이 처음이 아냐. 벌써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도 언급했던 개념.


그가 바쁘구나. 아님 피곤했을까? 그런데 간단없는 반항? 반응이 아니고 반항? 넌 매사에 행동이 아닌 반응뿐이라고 비난당하지. 반응에서 단 한 걸음 더 나가 행동하기에도 저어하는 주제에 반항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런데 반항하는 인간이 우수하다 그건 맞는 말인가? 반응에 그치는 것이 저열한 인격이라면, 그러니까 나는 당나귀 수준인가?


참, 당나귀는 노새와 버새 사이에서 어떤 반응일까? 나중에 말해줘.


웬일로 계속 당나귀 타령! 헌데 너, 필요 없는 걱정이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암말이 당나귀 새끼를 낳긴 쉬운지 노새는 번성했지만, 암탕나귀가 말 새끼를 낳자면 난산이어서인지 버새는 드물거든. 그러니까 그건 이론적으로 기 싸움이다. 물이냐 귀리냐? 노새냐 버새냐? 아니, 노새․버새 틀은 순 네 상상이구나. 아내냐 연인이냐,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이지? 당나귀보다 월등히 지능이 높은 인간은 ― 도이치 말에서는 답답한 바보 멍청이를 당나귀라 그러는 것만 봐도 당나귀가 멍청한 것은 사실일 것이야. ―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두 유혹 사이에서 굶어죽는 대신 교묘히 둘 다를 누리려 들지.


연인과 아내 사이에서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죽는 인간은 더 이상 없다. 3년은커녕 일년도 못가서 거덜나는 경우가 희귀한 일도 아니다. 습관을 가치와 혼동하여 어정쩡 결혼에 이른, 그 나름대로 지적인 남녀가 있다고 치자! 누군들 결혼이 가치에 속한다고 확신하기까지 섣불리 자신을 결혼에 내놓겠는가.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춘 두 단독자의 삶. 그것도 영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라는 친절. 남편이나 아내는 아내나 남편의 결점 때문에 연인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장 에르프처럼 한 남편이 아름답고 경제적으로 배경을 지닌, 게다가 합당한 일에 충실한, 개성은 없지만 그냥 좋은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 치자! 부족함이 없는 것도 부족함이다. 그에겐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지적으로 단호하고 개성 있고 확고한 견해를 지닌 연인이면 족하다. 뭔가 정신적 에너지를 북돋우는 자극이면 그만이다. 브로더 양은 젊고 지적이다. 단호한 개성의 매력에 불안도 괴팍함도 멋스럽다, 잠시 동안. 그리고 자극성 향취의 단물은 쉽게 고갈난다. 무맛이라도 풍성한 온수에 푹 담기고 싶을 때 남편은 슬그머니 아내를 찾는 것이다.


그의 말투가 내게 향하는 2인칭이 아니고 3인칭을 향하기 시작하면 나는 침묵해야 한다. 이제 그의 장광설 논리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를 직업으로 산다. 30쪽 되는 작품에서 뭔가를 풀어내어 300쪽 가까운 책을 쓰기도 한다.


나는 다른 생각에 골몰한다.


4월이 산 너머로 지고 있네요. 실제였나? 꿈결 같이 짧았던 시간이 함께 지네요.


이 메시지를 그 사람에게 보내는가 아닌가, 문제는 그 자유의지이다. 휴대전화 멜로디와 함께 번호가 뜬다. 아아~ 여전히 조용한 시각 다시 소리가 부른다. 그 번호. 폴더를 열어본다. 부재중 전화, [화]10:39A, [화]12:05P.


전화 - 집어 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5월에도 6월에도 아름다운 꽃들과 즐겁게!


부재중 전화, [수]12:26P, [수]6:44P. 계속 전화를 받지 않으려면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 하나? 


*


그 사이 가벼운 지인과 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


죄송. 4월의 초대장을 건너뛰었었죠. 죽어라 일해야 했거든요.


‘죽어라 일’하는 일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아니고 정말 죽어라 싫은 일이라면 미련 없이 때려치워야겠지요.


그런데 시만 쓰시는 게 아니고 노래를 잘하신다는 것을 몰랐네요. 저는 무반주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무지 약한데, 해서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쬐끔 휘둘리고 있는데…….


*


휘둘린다고? 너 요새 휘둘린다는 단어를 쓰는 거냐?


그가 당장에 태클을 걸어왔다. 놀랐나 보다, 토막 글로 나무라는 것이. 나는 모처럼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무엇이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을 북돋아 주는 메일 탓이었는지 용기가 났다. 나는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어쩌다가 완강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도 도리가 없음을 안다. 내 위에 있건 내 옆에 있건, 내 안에 있건, 나 보다 우선하는 건 없으리라.  


미안해요. 전화 받기가 뭘까 조금 부끄러운 느낌? 암튼 어려워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 그것이 내 심정이다. 감정이다. 감성이 크게 발동할 때면 이성은 숨죽인다. 때를 아는 것도 이성이다. 그는 이성이다. 그는 나를 내버려 두어야 할 순간을 안다. 나는 그에게 노트북을 내어주지 않고 내 젊은 날에 대한 「조사」를 쓴다.


잘 가라,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인생은 비록  만나는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먼데나마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땅에서 땅으로. 반환점을 훨씬 넘기고서야 네 청춘에 때늦은 조사를 쓰는구나. 머리는 허접 쓰레기 지식욕으로 천만근 무거웠고, 가슴은 송곳 자존심으로 외로웠던 너! 생각으로 들끓는 네 머리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을, 생각한 것과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구별 못했구나. 반응은 행동이 아니라서 삼갔고, 행동은 행동이라서 삼갔다. 실 인생에 뛰어들어 본 적이 없었던 너. 못 이룰 꿈을 꾸지도 않았고, 아니, 아예 꿈을 몰랐구나. 못 이룰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시작도 하지 않는 비겁함의 덕으로. 두 개의 가치를 좆아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도 없었다.


잘 가라, 달지도 쓰지도 않았던, 맹물처럼 무맛의 청춘이여! 시리거나 뜨겁지도 않았던, 치열하지도 아리지도 않았던 청춘이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청춘도 아니었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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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말처럼 행복한 주말되시길……


산인데요. 만산의 꽃들이 절규하듯 모양을 뽐내고 싱그런 연초록이 색상을 자랑하는 기를 보냅니다.


고맙게도 위로는 며칠 사이로 예상치 않았던 방향에서 왔다. 내 친구가 아니라 그의 친구에게서.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 그렇게 산뜻한 오늘이면 되나보다. 열린 창으로 어디선가 초록빛 기운이 밀려든다. 청춘에 대한 「조사」라니, 우선 관습에도 어긋나고 뒤돌아보는 관점 이란 비생산적이다. 어쩌나, 그런데 오늘의 나는 기억의 총계다. 망각은 나를 부인함이다. 하지만 생산이 최고의 가치인 이 세상을 살자면, 이번에는 픽션에 들리어 막무가내인 내가 숨을 죽이고 사라질 차례다. 이성적인 그에게 온 생을 양보하면 된다. 인간이라면, 감성과 이성 한가운데서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이 없다. 숨 쉬고 밥 먹고 태양 아래로 나가자. 태양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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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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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06. 5. 30. 23:30

 

행복한 수요일 아침

                                                  <소설시대 10호> 2006


수요일 아침이면 인희는 눈물을 머금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곤 한다. 남편의 출근이 일정해진 이 근년에 생긴 버릇이다. 눈물을 머금고 앉아서 주문처럼 되뇐다, 넌 참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세상에 저리도 많은 생이별 가족들이라니! 보고 싶은 사람 그리워하면서 사무친 세월의 대가들 앞에서, 누군가를 이별한 기분에 빠진 자신을, 상대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이별을 이별이라는 자신을 나무란다.


그런 인희가 오늘 절대적으로 행복하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요일도 아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무 것도 아닌 어느 평범한 날이다.


인희는 편집자에게서 받아온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나란히 놓고 앉아있다. 얼마만인가.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왼손을 들어 종이뭉치 위를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아본다. 그의 원고 교정 작업을 처음 시작했던 때의 막연한 불안감이 되살아난다.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어떻고요?


처음 그를 만난 자리는 언쟁에서 언쟁으로 끝났다. 편집자는 불을 붙여놓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교적 큰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번역 교정에 외주자들을 사용한다. 번역자가 다소 불쾌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우리 인간은 실로 나약한 존재지요. 한 줄을 통째로 지나치거나 단어를 잘못 보는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실력 여하에 관계없이요. 비슷한 단어만 혼동하는 게 아니지요, 엉뚱한 단어로 튀는 수가 많아요. 편집자의 융통성 있는 발언은 번역자들의 인격에 흠을 줄 필요가 없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번역이란 어차피 없는 것이고, 그럴 바엔 이름이 교수라야 그냥 애송이 강사들보다 책에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번역자로서 교수를 선호한다. 교수의 원고를 외주자에게 줄 때는 직접 현직 강사들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 누가 누구의 원고를 보았는데....... 하는 것도 좁은 세상에서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교수의 원고가 ‘아무것도 아닌’ 인희에게 왔던 것이다.


인희로서는 그의 원고가 처음 작업은 아니었다. 남편이 그녀의 무기력에 질린 표정으로 아예 둔감증을 운운하던 시절, 그녀는 뭐라도 일감을 찾아 출판사를 기웃거린 터였다. 아직 어린 아이가 조기유학을 떠난 직후였다. 아이는 아이 큰아버지의 소망대로 빈의 음악원 입학을 목표로 호된 훈련 길을 떠났다.


큰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의학박사의 기로에서 의학을 선택해야 했고, 어딘가에서 그 보상을 찾아야했던 모양이다. 큰아버지의 아이들, 그러니까 아이의 사촌남매는 바이올린에서 멀었다. 음악의 고장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은 완벽한 언어 정복을 위해 표준 독일어와 표준 프랑스어를 듣기에 진력을 하는 동안 음악적 귀가 닫힌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버지가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 조카애들은 둘이 너무도 달라서 이상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가까운 아들은 노랑 곱슬머리고, 아버지를 닮은 딸은 밤갈색 생머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정식으로 한국어코스 강좌를 받겠다고 이곳에 오래 머문 적이 있었다. 생머리가 긴 딸아이는 먹을거리부터 서울풍경에 섞여들었지만, 아들애는 낯설었다. 아이들은 “제3국에 산다”는 부모의 결정대로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살지 않기 때문에 세 나라 말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의 말, 어머니의 말, 제 3국의 말, 그러니까 그들의 모국어 독일어. 그 중에서 가장 잘 하는 말이 당연히 그들의 모국어이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말이란다. 긴 여름 방학을 프랑스 남단으로 휴가 떠나거나 외가에 머무르는 동안에 저절로 얻은 수확일 것이다. 세계어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저녁, 아이들은 “숙부”와 “숙모”만은 열심히 한글로 말했는데, 발음은 “죽부”와 “죽모”였다. 아버지의 말에 서툰 아이들은 아버지의 바이올린과도 서툴러 아버지를 서운케 했다.


그런 터에 인희의 아들은 음악을 가깝게 하면서 자라났다. 남편이 아끼는 재산은 LP판들을 포함한 CD무더기다. 형이 유학 떠날 때 남겨둔 것들도 함께 고이 보관중이다. 다른 집들처럼 거실에 오디오를 두지 않고 “아빠 방”에서 음악을 들었다. 보통 서재라고 할 방에 책보다 많은 음악들. 그래서 아빠 방이다. 아들아이는 아빠 방에서 어린 시절의 저녁을 보내곤 했다. 제 엄마가 두 번째에도 자연 유산을 계속하던 시절이라서, 엄마 근처를 보호하던 몇 년 말이다. 네댓 살짜리 사내아이가 엄마에게 와락 달려드는 자연스러운 동작에도 엄마는 가능한 동생을 잃곤 했으니까. 달려와서 덜컥 보듬기는 일이 뭔가 금지된 일이라 알게 되었는지, 조금 철이 들면서 아이는 저라서 엄마 곁을 뱅뱅 돌다가 아빠 방으로 향했다. 남편 또한 “아내 보호차원에서” 밖으로 돌았다. 음악회들도 날로 수준급이랬다.


처음엔 보통으로 시작한 유치원 시절의 피아노교습이 어느 새 바이올린으로 바뀌었고, 아들애는 제 방의 책상에 앉기 보다는 바이올린을 들고 아빠 방으로 향했다. 그 동안 아빠 방은 방음벽으로 바뀌었다. 방음벽은 부자를 결속시켰겠지만, 이상한 단절감이 존재했다. 인희는 늘 혼자였다.


인희의 기억 속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따로 사랑채 남자들이었다. 안채의 마당을 빙 돌아 기웃거리면 사랑채 뒤쪽이 나오고, 세월에 무거워진 문짝을 다 걷어 올린 대청마루는 교교했다. 사람 소리는 멀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낀 남동생은 낮에는 안채에 저녁이면 사랑채에 속했다. 왜 난 저기에 가면 안 되는가.


인희는 언니들 따라하기 보다는 동생 인석이 가진 것들을 부러워했다. 쪼끄만 아이가 따로 책상을 가진 것, 따로 서랍을 가진 것이 가장 그랬다. 퇴락한 안채에는 어디에도 책상이 없었다. 교자상이 늘 방 가운데 있었고, 밥상이고 책상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어른들을 끼어서 여럿이 되는데, 왜 공부할 때는 아이들만 해도 안 되는가. 이 책과 저책을 다 꺼내놓을 수 없게 되자, 인희는 하루에 한 가지씩만 책을 보기로 했다. 숙제가 여러 과목이어도 그냥 한과목만 하기로. 책을 펼쳐 놓아야하는 과목보다는 그냥 들고 있을 수 있는 과목으로. 중학교에 가자 언니들 방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언니들의 짐 속에서 인희는 귀퉁이 참이었다. 묘안이 떠올랐다. 여자이면서 유일하게 사랑채에 속하는 사람, 할머니였다. 사랑채 옆쪽으로 달린 상하 방이었다.


어머니는 안 될 말이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알고는 인희를 데려갔다. 비밀들이 드러나선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의 작은 책상은 인희로서는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인희는 이제 작지만 진짜 책상에서 숙제를 했다. 강경애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빛바래고 닳은 책이 꽂혀 있었던 판자 책꽂이. 『예술과 인생』이란 표지는 한 뼘을 넘은 두께였다. 세로줄로 쓰인 윤곤강의 시집 『살어리』, 두꺼운 시집이었다. “모오파썅”이라고 이상하게 적힌 시선집은 50년대의 번역이었고, 그보다 더 오랜 『이희승 시집 박꽃』은 붉은 물주전자가 붉은 대접에 얹혀진 누런 표지였다. 하지만 문청 기질은 할머니의 방을 나오면 곧 집안의 모두에게 철저히 금기였다. 하나 뿐인 고모가 역시 “글이나 끌쩍거리던” 문학청년에 홀려 시집갔다가 영 이별이 되었기 때문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분단 때문보다는 문청기질이 그 이별의 원흉이라고 믿는 때문이었다.


인희 또한 글쓰기와 관련된 “병든” 이상을 싹틔우지는 않았다. “소용없는” 할머니와 “소용있는” 어머니 사이의 낯설음은 조금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안방에 끼이면 해소되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는 자연스러움이 자질구레한 불협화음쯤은 흩날려버리곤 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인희의 “무난한” 몰개성적 성격의 근원일 게다. 어머니는 셋째 딸이 “하필이면 독문과”에 지원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을 때에도, “좋은 대학에 가려는” 이유 정도면 통과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하필 독문과를 진학한 것은 순전히 영문과에 못 미치는 성적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이 소일과 자긍심을 좀 더해 준다. 영문과였더라면 단순 대졸의 주부에게 번역교정일이 들어올 차례가 아닐 것이다. 하긴 독일어 분야도 만만치 않지만, 오스트리아라는 거점을 배경에 지닌 덕일까? 그 배경 또한 순전히 “대학 간판으로 건져 올린” 결혼 때문 아니겠는가? 평범한 결혼 생활 16년 째 나선 일이 기껏 번역교정일이나 받아오는 것이었지만, 뭔가 책과 더불어 하는 일은 예상보다 더 정서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할머니의 책상이 허전하지 않아서 안도감도 느끼면서. 초고층 아파트엔 참 어울리지 않은 낡은 책상을 그녀는 아직 간직하고 있다. 결혼 전에 병석에 있던 할머니가 굳이 물려주신 몇 권의 책과 책상이다. 어머니는 한두 번 이사 때 도와주러 오셔서는 그때마다 것 좀 치우지 않느냐고 성화셨다. 어머니는 큰 소용이 안 되는 옛 물건에 집착하거나 그러시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명색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는 별말씀 없으시다. “할머니 피가 섞인 건 확실한거라......”


인희는 처음 그의 원고를 받아들면서, 철학자가 쓴 문예 이론서를 번역한 사람은 당연히 철학과이거니 했다. 철학과 교수였다면 철학용어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있어서 양보를 위한 자리는 필요 없었겠다. 그런데 철학과가 아니라 문예창작과라 했다. 문창과 교수라면 작가가 먼저일까, 그냥 교수일까? 초벌교정을 들고 나간 날, 젊은 편집자는 비좁고 북적대는 사무실을 피해 근처 커피숍에 나이든 교수와 나이든 외주자를 간단히 대질시켜놓고 사라졌다. “번역물이 효자죠, 나름대로 바빠 죽겠어요. 제발 좀 직접 조정해 주세요.” 그러니 남은 둘의 입씨름이 시작되었을 밖에.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또 어떻고요?


어설픈 외주자의 의문에 자존심을 다쳤을 전문가를 너무 의식하지 못했었나 보다. 독일어에서 같은 어원은 우리말에서도 같은 어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억지에 가까운 현학적 고집은 일을 점점 뒤엉키게 했다. 몇 번의 씨름 속에서도 일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더구나 그는 워드 작업을 겨우 해낼 뿐, 이메일은 물론 그때 벌써 꽤 흔한 휴대전화도 불통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만나야하는 일이 늘어났다. ‘시간 많은’ 그녀를 고르고 골라 일을 맡긴 편집국장은 공동작업의 불편함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시간 없는’ 교수 때문에 작업은 터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오월이었다. 그는 그동안의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종일이라도” 시간을 내준다면 좋겠다고 했다. 스승의 날 행사로 여유가 생겼노라고, 변명을 덧붙이면서. 그 수요일 아침이 되자 인희는 명치 아래가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간헐적으로 올라왔다. 막상 그를 만나서, 그가 “오늘은” 일 대신 다른 무엇을, 그런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동안에는 위경련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율리시즈의 시선》같은 영화에 대해 뭐라 말하기 시작했지만, 어두운 영화관 같은 곳에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둘이서 들어갈 용기를 가진 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로 무작정 차를 타고 나가게 되었다. 차가 한참을 달려 나가자 고통은 서서히 줄었다. 대신 아스라이 멀미가 일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마침내 산자락의 풀을 밟았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그러나 내용은 참으로 애매모호한 몇 마디의 말을 흘렸다. 예상 밖의, 소년들 사이에서나 가능할 비현실적인 단어들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청각기관을 지나서 폐부로 들어가자면 해석이 필요할 단어들....... 그냥 남편 또는 아내 아닌 사람과의 드라이브가 낯설었던 만큼, 그만큼 낯선 일탈은 꼭 그만큼의 긴장을 묻혀왔을까? 차가 시내로 들어오면서 다시 일상의 공기가 밀려왔다.


일은 차차 순조로웠다. 인희로서는 단어에 토를 다는 일이 줄었다. 그의 진지함에 압도되어서, 그가 심각한 고투를 겪어서 내놓았을 우리말 단어를 빨간 펜으로 칠할 수 없어서. 속내를 알지 못하는 편집자는 예상보다 빠른 탈고에 대해 그녀 쪽에 고마워했다. 나중에 <옮긴이>에 보니, 그는 철학과 졸업 후 대학원을 국문과로 옮겼다고 되어 있었다. 문학은 철학보다 한 수 아래라고 배웠던 인희는 그런 경력이 특이해 보였다. 그의 우리말을 긁어놓은 교정자 인희에게 처음에 그가 그렇게 적대적이었음이 이해되었다. 교수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가 아니라, 국문학 전공자가 비전공자에게 갖는 적대적 우월감.


여름 방학에는 아들 애 곁에 다녀오느라 일을 쉬었다. 학교는 쉬지만 독일어도, 바이올린 레슨도 쉴 수 없는 것이 아이의 상황이었다. 남편은 처음 동반길만 함께 했다. 일주일 이상을 비울 수 없어 한다. 대리의사를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라도. 아들 곁에 남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고국의 음식을 먹이려 애쓰지만, 아들은 생각 보다 서양식에 잘 적응해 있다. 부엌의 주인, 서양인 형님은 요리에 능하고 힘차다. 인희는 별 할 일이 없었다.


여름이 고비를 넘길 때야 돌아와서 출판사에 들렀을 때, 그녀 앞으로 작은 책이 든 봉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공동번역을 제안하며 검토해보라고 맡겨둔 책이라는, 편집국장의 말이었다. 봉해진 봉투를 일부러 뜯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집안일들은 겹치면 겹친다.


첫가을 날이었다. 아직은 햇볕이 따가운 오후, 밝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인희는 할머니의 작은 책상에 앉았다. 그와 공동번역을? 작가 이름을 얼핏 편집국장에게 들었는데, 잘 모르는 이름이었다. 봉투를 열어보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산도르 마래, 마라이? 독문과 졸업이 부끄러우리만치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인데, 표지는 귀족 저택의 초상화에 나옴직한 미녀 초상에 초록 옷자락이 살짝 풀잎처럼 내비치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작은 쪽지가 떨어졌다. 대략 5㎝ 크기의 정방향의 종이에 희미한 글씨의 토막글. “그 동안........” 그 동안이라니? 대체 왜? 그렇지만 그런 글을 읽고서도 곧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함으로 뒤덮인, 그런데다 지나치게 짧은 글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해에 골몰하려는 동안, 일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아예 잊혀졌다.


대신 믿기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인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혹시 “메디슨카운티 증후군”이라 할 상태일까 걱정이었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 그의 딸, 그렇게 가능한 모두를 시샘할 정도였다. 인희는 아무리 앞서도 그의 네 번째 여자였다. 쓸쓸했다. 아니 네 번째라도 좋았다. 희미한 글 한 조각에 온갖 의미를 걸게 되다니. 평온한 나날들이 혼란의 시간들로 바뀌었다. 안과 밖의 불일치에 초점이 흐려갔다. 그런가하면 폐부로부터 밀려 올라오는 열감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입술의 열감은 영화 속에서나 보는 불가항력적인 입맞춤의 뒤끝처럼 스멀거렸다. 선문답 같은 대화의 파편이 구슬처럼 입안을 맴돌았다. 눈과 귀, 귀와 입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더니, 본 것과 들은 것, 들은 것과 말한 것, 나중에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들이 혼동되어서 함께 떠 있었다.


계속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다. 너무 많이 상상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말로 그와 바다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지중해, 알함브라, 지브랄탈 해협에서부터 북해까지 온갖 바다를 유영했다. 섬이 연결된 ‘질트’나 ‘퇴닝’ 같은 지명은 그가 더욱 꿰뚫고 있었다. 전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그러나 실재하는 오두막을 빌릴 수 있는 곳.


바다는 많이 광활하고 그 광활한 만큼 바람을 몰고 와서 그들을 내몬다. 적어도 환영은 아니다. 해가 곧 질 것이었으므로, 아니 이미 지고 있다. 바람은 지는 해를 두고서 무섭게 폭풍을 동반해 왔다. 십분 전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변해 버린다. 바람은 그들을 매우 세차게 내몰아서 발을 떼어도 밀려 나갈 정도가 된다. 도망치듯 그것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한없이 서운하다. 그녀는 그에게 ‘증명사진’을 부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추억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가. 체험은 길이가 중요하지 않지요, 순간이 영원할 수도 영원이 순간일 수도 있음을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몰아치는 장대비를 맞으면서 이리저리 헤매며 따뜻한 불빛을 찾는다. 그가 담배 가게를 찾아 갔다가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의 15분에서 20분 사이가 영원처럼 길다. 그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균열이 생긴다. 그것은 그들이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어떻게 그들이 그들의 바다를 정당화할 것인가!


그러다가 그가 떠났다. 충전기간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동안 동독이 개방된 후로 유럽에 가보지 못한 것을 그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곳을 통로로 동유럽을 그리워했다. 쾨니히스베르크 때문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 건너기 문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논리를 지나 수학적 사고를 주제로 대화가 되는 것에 그녀는 조금 흥분하곤 했다.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가 아닌 것이 증명되기나 하는 듯이. 아무튼 지금은 리투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가 전공했던 이성중심 철학의 본고장인 그곳에 가보고 싶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의 대답은 달랐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어딘지 모르게 처녀지인 곳, 동유럽에 몰려 있다고 했다. 잘 알려진 카프카도 그렇지만, 산도르 마라이도 그 하나라 했다.


“파스칼과 횔덜린 그리고 니체를 파괴했듯이,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를 무덤 속에 내던질 이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런 실패나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그것이 마라이의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말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잠시 두려웠다. 절대 고독을 꿈꾸는 사람, 그런 그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구하는가? “혼자 남아서 대답하는” 조용히 들어주는 친구를? 상대적으로 넓어서 더 높은 아파트 벽 속에 갇혀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타던 그녀로서는 그런 지적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신비했다. 생은 더 이상 진부한 것도,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인희는 그가 가려는 곳이 혹시 빈에서 가까운 남쪽이기를 바랐다. 그녀 또한 아이를 만나러 한두 번 갈 것이니까.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머물기, 그것이면 될 것 같았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지중해, 그 동쪽 소아시아 반도와 크레타 섬들에 얽힌 숱한 신화들은 그들의 단골 화제였다. 다이달로스가 추락한 짙푸른 바닷물, 그런 바다에도 그들은 벌써 몇 번을 다녀온 터다. 하지만 실제로 그 물살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가 구동독 깊숙한 대학도시로 간다고 했을 때 인희는 조금 실망했다. 떠날 날을 정한 뒤로는 뭔가 슬며시 엷어지는 기운마저 돌았다. 그는 시간이 없어했다. 작은 눈을 반짝이는 통통한 여학생이 대신 원고 심부름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별은, 이별이란 말도 가당찮은 이별은 벌써 서러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떠났다. 추운 겨울이었다.


인희는 현실에서 숨을 쉬면서 상념은 다른 궤도로 흐를 수 있는 인간의 불가해성에 머리를 내저었다. 멀리 떨어진 거리와 관계없이 치열한 교감 속에서, 분류되지 않는, 정의되지 않는 상태에 혼란해하면서, 아리지만 풍요로운 순간들을 부여안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오월, 풀냄새에 놀라 봄을 탄식했다. 그는 어쩌면 오월을 피하기 위해서 떠나야 했구나! 곧 그녀는 균형을 잃어 갔다.


그의 철 이른 카드가 출판사로 날아들었다. 편집국장 친구에게 보낸 카드와 똑같은 카드였다. 그쪽에는 그렇다 치고, 다들 외주자인 인희에게까지 카드를 보낸 교수를 예의바른 사람으로 치부했다. 미려한 외관을 유지하는 것까지도 그다운 일이었을까? 인희는 그의 마음이 어딘지 부담감으로 차있음을 행간에서 느꼈다. 여름에 합류한 대가족과 함께 휴가여행을 떠난다는 그에게 지중해 혹은 그리스로는 가지 말기를 바랐던 인희의 마음을 그는 과잉으로 읽었을까? 두꺼운 카드 사이에 접어 넣은 얇은 종이는 글씨마저 얇게 느끼게 했다. 내용은 더욱 얇았다.


돌아온 그를 다시 만난 것 역시 출판사에서였다. 그가 번역 가능한 책 몇 권을 가져오기로 한 날, 편집국장이 인희에게도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그를 바라보면서 인희는 갈비뼈가 금갔을 때처럼 아픈 것을 느꼈다. 너무도 큰 숨을 내어쉬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안 좋으신가요? 저 다시 안 들어가도 되니까 데려다 드리지요. 가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도 할 겸.” 인희는 편하게 기댈 양으로 뒷좌석에 탔다. 다음 블록에서 그가 차를 세웠다. 앞자리로 옮겨 탔다. 그는 오른 손을 가만히 내밀어 인희의 왼손을 잡았다. 괜스레 상처입고 오므라들었던 가슴이 펴질 새도 없이 아프기만 했다. 아픈 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아니 제 안의 마음이 커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공간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행여 열정 같은 것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정석이다.


이번 작품들도 마라이였다. 그녀는 처음에 받았던 작품을 여전히 읽고 있었다. 제목부터 “열정”과 “정열” 중 선택하기가 어려웠기에 내버려둔 채 그냥 독서에 빠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형제처럼 붙어 지냈던 두 친구가 헤어져야 했고, 그 후 40년도 더 지나서야 만나서 하룻밤 동안 나누는 대화형식”이라는 그의 설명은 정말 궁금증을 자아냈다. 실제 독서는 사전을 찾느라 더듬거렸지만, 부분 부분이 몇 곱절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일부나 다름없던 우리 두 남자의 침묵으로 그녀가 죽었네. 여자로서 참아낼 수 있는 이상으로 비열하고 거만하고 비겁하고 오만하게 침묵했기 때문이지.”


“여자가 참아낼 수 있는 그 이상의 침묵”이란 무얼까? 구절구절에 빠져있는 동안 번역 작업은 멈췄다. 대신 편지 같은 것을 쓰고 또 썼다. 전달될 가능성이 없는, 그래서 뒤틀려도 좋은 글을 무작정 써내려갔다.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캠퍼스로 가서 서성이며 전화를 할까 말까 궁리하다가 지쳐 돌아온다. 난생 가보지 못한 그의 학교가 상상으로는 완벽에 가깝게 지어져있다. 돌바닥의 현관, 그가 오르는 층계, 걸어가는 복도, 오른쪽으로 휘면서 연구실 문을 열고, 방문이 열리면 순간 바람이 세게 밀려온다. 10cm 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밀리는 거야. 상상이 발광 직전에 이른 날엔 미장원으로 내닫곤 했다. 혼자서 들어가도 좋은 곳, 오랜 시간 혹사당하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는 곳.


그는 차츰 멀어져갔다. 그러나 뭔가 시작당한(?) 사람은 끝을 당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억울했다. 마음 흔들렸던 마음이, 눈을 바라보았던 눈이, 손바닥에 닿았던 손바닥이. 배반을 배반당했음이.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계속 겨울이 왔다. 마침 세상은 21세기를 향해 막연한 환호를 보내는 중이었다. 인희는 책상에 앉아 또 편지를 썼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싶은, 그래야 할 것 같은, 이 늦은 마물음의 시간, 저에게도 한 가지 소원은 있습니다. 다음 날에는, 다음 봄에는, 다음 해에는, 다음 세기에는 저 같은 사람 다시는 만나는 일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쉽게 깊게 상처 입어서, 스스로의 고통은 그렇다 치고, 당신께 배가된 고통을, 배가된 짐을 드렸었던 저 같은 사람일랑 다시는, 행여 비슷한 사람이라도 다시는 만나시지 않기를....... 물론 쓰기만 했다.


송구영신의 모임들은 어느 해보다도 떠들썩했다. 남편은 겨울 골프를 떠나는 일행에 합류했다. 방콕은 일교차는 커도 겨울 평온이 25도나 되는 따뜻한 곳이라고. 겨우 며칠의 휴가를 따로 쓰는 것을 미안해하는 남편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다. 약간의 휴가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남편도 알면서 하는 소리일까. 아들아이도 집에 올 겨를이 없다 했다. 학업과 연주와 그곳 생활에 열중하여, 집에 연락하는 일도 잊는다. “형님이 당신 아이들보다 듬뿍 관심을 부어주니 그 녀석 참 복이지.” 그렇게 해서 200년 역사의 음악학교에 입학하는 외국인들이 많을까? 여러 사람의 걱정을 잠식시키고, 아이는 특히 큰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성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희는 깊이 침잠했다. 여러 의미의 반성과 더불어, 제발 자신을 어여삐 여길 수 있을 다가오는 새 봄을 소망하면서.


봄은 왔다. 여전히 “잔인한 사월”이란 구절이 맴돌았다. 다시 오는 오월이 매번 두려웠다. 그날의 산자락으로 가서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오자고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 자리, 그 무심하게 다른 풀이 자라고 있을, 어중간한 돌들이 구르고 있을 그 자리에 가서, 풀은 풀일 뿐, 나무로 자라지 않음을 확인하고 오자! 드라이브를 즐기는 친구를 불러내면 탄성을 지르며 와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돌멩이들을 바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수줍게 그러나 단호하게 무엇인가의 시작을 신호했던 그 목소리를 망각 속에 묻을 수가 없다. 밥 딜런의 노랫말이 맴돌았다. “잇 에인트 미, 베이브, 아임 낫 디 원 유 원트, 아임 낫 디 원 유 니드.......” 그의 입술에서는 다른 버전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우리의 한계는 이것입니다.” 밥 딜런을 들으면, 그는 딜런 토머스를 앞세운다. “녹색 퓨즈를 타고 꽃을 몰아가는 그 힘이 / 내 푸른 시대를 몰아간다....... 나는 시든 장미에게 바보처럼 말한다 / 내 청춘이 똑같이 차가운 열병으로 시들었다고.” 인희가 난해한 시에 고개를 갸우뚱하면,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열여덟 잔을 마시고 다음 날 죽어간 시인을 누군들 이해하겠소, 하고 그는 말끝을 흐린다. 흐린 말끝 따라 인희의 마음도 흐려지곤 했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친밀함에 대한 그리움을 덮는다. 이 사회의 구조가, 관습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존재”하게 한다. 관습에 굴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 세상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존재한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사무친다. 그렇구나. 세상에 ‘혹시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예외는 없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 달도 차면 기운다.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자고, 목욕을 같이 하고 ― 사람 사이 친해지는 비결로 통했는데. 그건 구식이다. 현대생활은 가족끼리도 밥을 같이 먹기 어렵게 한다. 단출한 아침식사에 굼뜬 그녀가 식탁과 싱크대 사이에서 어물거리다보면, 남편은 벌써 일어선다. 남편의 점심 저녁은 밖에서가 대부분이다. 산부인과의 사양길을 일찍 예감하고서 건강관리협회로 옮겨 앉은 이래, 저녁 시간이 더 바쁘다. 더 한가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아이는 먼 데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군대 문제로 한번은 들어와야 한다는데, 염려 말라고, 잘 하고 있다고, 큰아버지는 한껏 만족스런 기별만 보내온다. 가만히 숨쉬고 숨쉬는 동안 세월은 간다. 20세기가 그녀에게 유수와 같았다면, 21세기는 쏜살같다. 다른 유수한 출판사에서 마라이의 전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열정』을 위시해서 줄줄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권했던 작품들의 번역일랑 몇 년을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단순한 교정 외주자의 일이 맘 편했다. 것도 겨우 간헐적으로.


책상에 앉는다고 잡념이 줄지는 않는다. 가끔은 긴 버스 혹은 기차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옆자리에 앉아서 멀미에 시달리며 잠시 잠들었다 깨곤 하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 밤바다의 바람을 막아 그녀를 감싸주던 그. 그런 그가 정말 존재했을까? 그냥 꿈이었을까? 상상과 회상이 뒤범벅되는 나날들.


그렇게 가을이 오고 또 가을이 왔다. 구월이 가고 시월이었다. 출판사는 외빈내화, 불경기 중에도 하나 둘 히트가 나왔다. 문광부 선정도서에 인희가 교정에 참가한 책도 하나 걸렸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인희도 단합대회에 끼었다. 문청들에 애증으로 얽힌 출판사 사람들의 술자리엔 문청들이 밥이다. 모두들 혼 빠지게 매운 낙지볶음에 소주들을 들이 붓고 나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했다. 2차는 맥주 집이었지만 사람들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묘령의 아줌마까지 엮여든 것으로 보아 썩 마셨다 싶었다. 그는 실로 오랜 만에 합류했다. 그러니까 모처럼 초벌원고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친구인 편집국장과 더불어 저쪽으로 섞여 앉았다. 그녀는 그런 그를 차라리 존중했다. 그는 그녀의 아무것도,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먼발치로도 약간의 무게가 느껴졌던 그의 원고뭉치는 아직 출판사 책상에 놓여 있었다. 뭔가 하긴 했구나. 하기야 친구에게 졸려서 하는 번역일이 전업이 아닌 담에야 몇 년 걸려 내어놓는 원고도 미진한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그는 작가도 아니다. “시를 못 쓰면 소설을 쓰고, 소설을 못 쓰면 평론을 쓰지요. 것도 못쓰는 사람들이 교수하구요.” 이 시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소설가 ㅈ씨가 어느 강연에서 했다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문창과 교수인데 창작대신 문예이론가라고? 위대한 소설가 ㅈ씨는 그의 직업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는 진지함의 대명사일 따름이다.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그에게로만 상념이 흐르는 것이 들킬까 문득 겁이 났다.


그 순간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봄엔가, 또 『이혼전야』도 출판되었더군요. 대 출판사답게 확실한 번역권을 가졌으니 그랬겠지만, 박인희씨, 제가 드린 원전을 펼쳐보기는 했나요? 게으름 때문에, 아니 망상 속을 헤매느라고 좋은 기회를 다 놓친 그녀에게 대한 힐난일까? 하긴,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는 남자들이 어디 소설 속뿐이던가요? 그는 다시 말꼬리를 내렸다. 말 적은 그가 갑작스런 돌출 발언이라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일까? 혹은 남자로서의 동일시일까?


교수님이 다 읽으신 줄은 몰랐어요. 그럼 직접 번역 하시지 그랬어요. 남편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면서 이혼 직전에 이르러서야 그 사랑이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아내 또한 그림자 인생의 표본 아닐까요?


그건 남편이나 아내의 문제가 아닐 것 같소. “사랑한다는 건 단지 안다는 것 이상일 것. 우주에서 똑같은 궤도를 도는 두 개의 별이 존재하는 것처럼 엄청난 우연일 것. 그런 우연은 결코 없을 것. 삶도 사랑도 모두 동일한 박자로 움직이는 우연! 그런 만남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비한 환영 같은 것....... ” 그 왜 약간 뒷부분에 나오던데, 게까진 읽지 않았나요? 책 내용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녀만을 향해 뱉는 말이었다.


뭐라 대꾸하려고 입술을 연 인희는 단어를 얼른 토해내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 탓이기도 했다. 그렇겠지요. 한쪽이 빠르면 다른 쪽은 느리고, 한쪽이 소심하면 다른 쪽은 용감하고, 한쪽은 뜨거운 반면 다른 쪽은 미지근....... 속으로만 어느 구절을 외울 뿐이었다.


대강 파하고, 더러는 노래방으로 향했고, 누구는 대리운전을 불렀고, 우왕좌왕이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그의 초벌원고를 챙기러 돌아왔다. 상당한 부피였다. 원고를 만지려니 왼손이 먼저 나아갔다. 여기서 그의 오른손이 느껴질까? 순간 소스라쳐 놀랐다. 다시 꿈인가? 정신없이 방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등 위에 그가 있었다. 현관께로 다른 아무도 없는 찰라. 그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를 등 뒤에서 안았다. 갑작스런 몸짓이었다, 놀랐을까? 의외라서 놀랐을까? 너무도 기다렸던 일이어서 놀랐을까? 기다리다 못해 지쳤고 절대로 더 이상은 꿈도 꾸지 않아서 놀랐을까? 아, 인희씨, 제가 정말, 아 이렇게 참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그 비슷한 말, 흉내 낼 수도 더 이상 기억해 낼 수도 없는 단어들, 단어 몇 개. 그런 단어들은 왜 허공 속으로 빨려 흩어지는지 모르겠다. 높지도 않은 천정에 붙어있다 어느 순간 다시 내려오면 안 되는가. 어두운 밤 시간에, 몇 시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시간에, 단어들은 빛처럼 빠르게 사라져갔다. 다시 깜깜했다.


왜 뒤돌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까? 뒤돌아보기에도 짧은 시간이었을까? 뒤돌아 볼 수 없을 만큼 온갖 동작이 정지된 순간이었나? 자동적으로 발을 내디디면 앞으로 나간다. 인희는 바보같이 발을 움직였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떻게 그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을까? 인희는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은 더욱 더 뒤로 빨려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인희는 앞으로 발을 움직였고, 그렇게 멀어졌다. 그 현관에 그가 일이초간 더 서있었을지, 인희로선 알지 못한다.


*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면서 알았다. 해가 환히 비쳤다. 제법 가을인데도 이중 커튼 사이로 햇살이 깊이 박혀왔다. 머리카락부터 따듯함이 베어나서 발아래로 스쳤다. 그렇게 상쾌한 아침을 언제 기억하는가. 수요일도 아닌데 충분히 행복한 아침이었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펼쳐놓고 앉아서,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왼손을 들어 종이 위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는다.


그의 원고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을까? 출판사에 별 일이 없었는데도 자꾸 들렀다. 뭔가를 핑계 삼으면 핑계는 있었다. 번역물 팀장 쪽에 영어담당 외주자가 우연히 와 있었다. 그 여자는 약간 들린 턱에 상당한 자존심이 고여 있는 유형인데, 사회적 미소를 한껏 띠면서 말했다. 웬 좋은 일이세여, 별안간에 환해지셨네여. 제가 눈치가 좀 되거든여.


눈치가 된다니 무슨 말인가. 눈치에도 급이 있나요, 좀 되시게?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미소가 번지는 데는 스스로도 놀랐다. 나도 침묵이 좀 되거든요? 그런 말도 다 침묵했다. 행복하면 말하는 일도 아깝게 된다. 열린 입을 통해서 순간 행복감이 새 나갈지도 모른다.


순간 눈앞 여자의 얼굴이 살짝 가렸다. 이마 한쪽이 가려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다시 어딘가 막히는 영상이었다. 일정하게 왼쪽 윗부분에 물체가 고정된 것 같았다. 왼쪽 위라면 혹시라도 그의 차를 얻어 탈 때에 그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이다. 계속 그의 머리를 의식하는가? 글씨는커녕 책이 통째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둥근 물체는 아예 눈꺼풀의 안쪽에 있는 듯 시야를 가렸다. 사물이 일그러져 보인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슬그머니 겁이 났다. 신체검사 때마다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상한 점들이 아무렇게나 모인 검사용 그림책은 항상 두려웠었다. 색맹이라는 판정이 나올까 하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우선 그 어른거리는 색의 잔치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추상해 내야하는 그 일 자체, 그 순간의 길이가 두려웠었다. 게다가 수년 전 너무도 완벽한 건강한 모습의, 그러나 멍한 눈의 노인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깨끗한 차림, 무엇보다도 깨끗한 표정, 거의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도, 눈꺼풀 하나로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삶의 한 순간을 목격한 기억이 오싹했다.


시력이 떨어져서 오셨나요? 가볍게 시작된 안과의의 질문은 어느 특정 병원으로 소개받은 후엔 집요해졌다. 글자체가 흔들려 보입니까? 직선이 굽어 보인가요? 시야 가운데가 흐릿하거나, 시야 중심에 검은 부분이나 반대로 텅 빈 부분이 있나요? 한쪽 눈을 가리고 바둑판 가운데 점을 보세요. 점 주위의 선이 물결치거나 휘어져 보이면, 황반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어디, 아직 변색증은 안 보이지만, 변시증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새 혈관이 생성되어 망막 후극부 황반에 변성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진행? 행진처럼 들리는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가 계속 나빠진다는 뜻인가. 조만간 시력을 잃게 된다는 말인가?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변성? 망막이 목소린가, 변성기가 오게?


이어지는 온갖 검사들. 확대 렌즈는 기본에, 약을 넣겠다, 바둑판 검사지를 보며 이리 저리 답하랬다, 종당에는 형광색소를 주사하고서 안저를 촬영한대나. 알아듣고 싶지도 않은 검사들이 쏟아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구나.


사람들은 흔히 비싼 검사비용 내면서 고생고생하며 검사를 하더라도,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기대하며 검사에 임한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기를 바라고 시작했던 초심을 망각하고는 괜히 검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더러 “신경과민에서 오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좀 부끄럽기도 해서, 뭔가 조금 나왔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어 웃고 만다.


아무튼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가 나왔다. 역시 황반변성에 의한 신종혈관이 문제입니다. 겁을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광역학 치료법은 종전의 방사선치료법과는 차원이 달라서.......


확실하게 치료는 됩니까?


확실하다는 말씀은....... 그러니까 완치에 재발이 안 되는 것을 물어보신다면, 솔직히 대답은 “노우”입니다. 재발률은 높은 편이지만, 사모님은 마침 황반 주변부에만 신생혈관이 나타나 있어서, 조기에 치료를 실시하면 진행속도를 늦춥니다. 시술 시간도 극히 짧아서 고통스럽지 않은데다, 미리 염색된 비정상조직만 골라서 파괴하는 것입니다. 베르테포르피린이라고, 광자극 물질이죠. 이 물질을 팔뚝 정맥에 투입하면, 얘가 몸을 돌다가 잘못 생겨난 신생혈관만 염색시키고 나머지는 배설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다음 빛을 쪼이면 되는데, 얘는 에너지가 약해서 정상조직엔 전혀 손상이 없죠. 미리 염색시켜놓은 딱 고 부분만을 얘가 파괴하는 겁니다. 딱 83초 동안에 끝나죠. 입원요? 그냥 이렇게 여기 앉으신 채로, 안압 검사 같은 것 할 때처럼 앉아서 합니다. 그러나 생활 중에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증상들이 다소 더 악화될 수도 있으며, 재발의 가능성도 높은 것이....... 지금 저의 병원에선 일년에 4회를 시술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물론 일회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만.


말씨는 다시 엄숙하게 바뀌어 있었다. “얘는” 어쩌고 하는 식의,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다스런 패널들의 수다처럼 변하던 말씨가 다시 엄숙해진 것이다. 이제 비용을 말할 차례가 된 것이리라.


우선 인희 자신의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의사들 가운데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의학에 관한 무조건적 신뢰형, 그리고 제 식구들은 병원에 잘 보내지 않고 아이들이 감기가 들어 콧물이 줄줄 흘러도 내버려두게 하는 회의형. 남편은 긍정적 부류다. 기본이 선량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온갖 정보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정보는 겁을 몇 제곱했을 뿐이다. 섬세한 그물과 같은 신경조직 망막 중에서도 황반부는 중심 약 0.5cm정도, 겨우 녹두알 아님 완두콩 크기란다. 하지만 글을 읽거나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고, 색을 구별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이 바로 이 꼬맹이 덕이었다니.


이제 글 읽기나 근거리 작업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불가능할 수도?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의 일년이 시작되었다. 그 후론 수요일 아침이 되어도 눈물을 머금고 행복해 할 수 없게 되었다. 텔레비전처럼 눈으로 함께 보는 대신 귀로 듣는 행복을 구해야 했지만, 남편의 차원높은 음악은 처음부터 인희에게 멀었다.


예약된 병원 복도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통계에도 65세 이상의 노인 10% 이상이 걸린다는 높은 유병률이었다. 그녀 또래는 드물었다. 눈을 혹사한 탓일까? 그녀의 망막이 상대적으로 많이 혹사당했을까? 혹사의 역사는 절로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간다. 재래식 화장실의 침침한 불빛 아래 쭈그린 채 동화책을 넘기던 시절로. 언니들은 왜 하필 그곳에 책을 들고 가느냐고 의아해 하곤 했다. 할 수만 있음 빨리 나오고 싶은 데가 아니냐고. 하지만 그곳의 시간을 참기에 읽을거리만한 것도 없음을 그녀는 알았다.


남편의 눈 꼬리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누가 당신 눈을 혹사하라고 해서 이런 일이....... 그렇게 말하는 눈이었다. 당장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지만, 하던 작업을 중단하기는 어려웠다. 바로 그의 원고였다. 그의 원고를 설명 없이 중간에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습관적으로는 책상의 스탠드만 켜는 것이 집중을 위해 좋았었지만, 이제 천정의 등도 함께 켰다. 모니터를 19인치로 바꿀까 했다 말았다. 이 작업이 끝난 뒤 더는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니까. 대신 글꼴 기본을 12폰트로 올렸다. 곧 14포인트로 넘어갔다. 13을 쓰지 않은 것은 13징크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10-12-14 그런 습관 때문이었다.


이게 황반이 산화되는 것 비슷하다니까. 남편은 드디어 한 마디 했다. 당신은 인스턴트 음식도 안 먹고 술 담배도 안 하지, 대체 어디서 유해산소가 나온 걸까? 골프는 힘드니까 그렇다 치고, 음악회 한번 따라 나서지 않을 만큼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뭐요 대체?


그냥 고도근시 때문에 올 수도 있다 했잖아요?


글쎄, 당신이 원래 허약체질이라 해도, 스스로 몸을 돌보는 데 소홀한 건 틀림없어. 뭐 다른 일에 시달릴 것도 없이 이런....... 남편은 뒷방 쪽을 흘겼다. 할머니 책상이 놓인 곳이다. “쓸데없이” 눈을 혹사하는 짓거리에 파묻혀 그리되었다는 힐난을 담아서. 아이 입시문제로 시달릴 일 없겠다, 시댁문제로 힘든 것도 아닌 안락한 세월을, 어디 걸맞은 일 없어서 “남의 글 교정이나” 하겠다는 여자라니, 남편의 평상시 지론이다. 아들이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도통 음악회도 마다하는 어미라니. 정작 의사 남편이 아내가 사람 북적대는 곳에서는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것을 성격 탓으로만 돌린다.


인희는 가슴으로 운다. 미안해요, “쓸데없이” 혹사한 것은 눈만이 아니었어요. 좋은 남편의 보통 아내이기에도 벅찬 그녀의 속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쓸데없이” 한 곳으로만 향하는 좁아터진 그녀의 시야를 비웃듯이, 정말 시야가 가리기 시작한 것이니까.


일년. 그 일년 사이에 그를 만난 적이 없다. 두 번째 시술 날을 잡아 놓고 일차 교정 분을 단번에 다 넘겼을 뿐이다. 그 사이 그가 유비쿼터스 세상으로 한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꼭 만나지 않아도 일의 전달에는 충분했다. 아니 무서워서 못 만났다. 그 후론 교정도 번역도 완전 중단이다. 그가 원전을 건네준 『결혼의 변화』도 다른 곳에서 출판되었다. 말로는 감정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인 아내, 욕망을 피하려는 구실로 경직된 규율로 도피한 이성적인 남편, 그런 가운데 “내레이터의 시각이 일품일 것”이라 추천했던가? 이제는 다 옛말이다.  번역서로나 읽을 수 있을지, 단순한 독서도 겁난다. 먼 데 초록을 보며 눈을 쉬자고, 한 친구는 나인 홀이라도 한번 따라나서 보라지만, 골프장의 햇빛인들 좋겠는가. 두더지처럼 아파트의 서늘한 그림자 안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 행복한 수요일 아침도 외면한다. 대신 눈을 반쯤만 뜨고 지내는 연습을 한다.


눈을 내리 감으면 감을수록 상념은 높이 높이 나른다. 파스칼도 횔덜린도 그리고 니체의 독서도 힘든 평범한 누구라도, 고독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는 데서 예외가 아니겠지, 그녀는 생각한다. 그가 마라이의 말을 인용했을 때, 렌츠의 이름을 거기에 추가하지 않은 것이 느닷없이 후회스럽다. 그 말을 들려줄 일도 영 없을 것이다. 괴테의 친구로, 친구의 그늘에 가린 채, 10년도 채 못 되는 창작기간, 그보다 훨씬 긴 정신착란의 세월 속, 모스크바의 길거리에 쓰러진 천재. 그 일생만으로도 가슴을 울렸던 렌츠가 갑자기 생각난 건 마음에 와 닿은 한 작가 때문이다. 일면식은 있는 사이다. 그와 더불어 이 작가에 관해서도 이야기 할 틈이 없었다. 아니, 그와 더불어 나눈 시간 자체가, 그와 나눈 대화를 통째로 녹음해서 편집했더라도 몇 시간의 길이나 될까? 그 시간이 내 수십 년 인생에 무슨 영향을 준다는 거야? 인희는 허망한 정답을 깨닫고는 숨을 죽인다.


오늘은 일년에서 마지막이라는 네 번째 시술 약속이 된 날이다. 세 번째부터는 남편 대신 큰 언니가 동행한다. 시술 자체엔 위험부담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아는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 83초를 견딜 때 작정을 했었다, 뭔가 꿈을 꾸리라고. 83초에 그러나 긴 꿈을 꾸리라고. 봉숭아 손톱물을 첫 눈송이에 대고서 소원 빌던 길이보다 훨씬 짧은 동안에. 흐르는 별똥별에 대고 소원을 비는 일에 비하면 엄청 긴 시간 동안에.


이제 한두 시간 후면 하염없이 82초, 81초 ....... 하고 헤아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다이달로스가 다다르고 싶어 했던 태양이 통째로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신 83초 동안 어둡게 꿈틀거리며 되풀이될 꿈속에서, 여전히 그의 네 번째 여자이기를 소원할 것인가? 바로 그 부정한 소망 때문에 계속 병변이 재발되는 것은 아닐까? 흠칫 오한이 인다. 그녀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아무 것도 모르는 넉넉한 언니의 얼굴이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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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2005. 4. 1. 23:30

http://cafe.daum.net/novelworld


카페 소설시대   류경빈

 

 서평 ...............................<춤꾼> 서용좌


처음에는 춤꾼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듯 했으나, 춤꾼을 통해서 주인공의 삶과 연관 시키고 있는 내용으로 발전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딱히 어떤 비평으로 해야 할지 그 구분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심리적인 측면이 더 드러난 것 같아서 심리주의 비평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 작품 속에는 춤꾼을 바라보는 정식의 관심사가 자신의 삶과 비추어 보았을 때, 흐른 세월 속에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한다. 춤꾼이 남자라고 생각했었지만,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는 외모로만 보고 판단했던 자신의 의식 속에 여자라는 사람은 생김새가 예쁘고 머리도 길고, 화장을 하는 등을 생각했기 때문에 춤꾼의 모습에서는 짧은 머리와 헐렁한 셔츠 등이 남자라고 확신 하게 되어, 그 모습은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서 회의감에 젖어 든다.

아내를 처음 보았을 때 얼굴빛이 도화 빛의 얼굴 이었고 지금의 아내는 누렇게 변해 버린 얼굴과 화장이 다르므로 춤꾼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아닌 중성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주인공은 남자이지만, 작가는 주인공의 입장, 곧,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그 시선이 어떠한지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 작가 의식 속에서는 아내의 세월이 나성의 눈으로 보았을 때, 여성이 아닌 중성 인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모습만이 남아 있고, 남편이 집에 돌아 왔을 때, 여자로써 매력이 없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이 된다.

남편인 정식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와 이야기 거리가 없이 홀로,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 정신없이 앞을 향해 왔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하고 ,중년의 나이에 자식도 있지만, 어느 정도 빠른 시간을 보냈다면 ,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지위, 그리고 가정에서의 위치가 곧, 가정의 살아남기 작전이 되어 불안감을 갖고 있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상태가 달라서 감성과 이성의 충돌이 아내에 대한 불만족스런 생각들로 아내 흉보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춤추는 것과 아내의 흉보는 것 중에 아내의 흉보기가 더 좋다는 생각은 아내에 대한 불만족이 춤추는 몸의 동작이 즉, 행동으로 나타내기 보다는 그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덜어내고자 하는 자신감이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짐작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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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05. 3. 25. 23:30

펼쳐두기..

 

                                                                                                        소설시대 2005

 

춤꾼을 말해 춤을 업으로 하는 인사렷다, 장사꾼이 장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듯이. 춤이란 곡조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서 팔다리와 온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사전적 정의다. 그날 밤 그 사람은 그러니까 춤꾼인가 싶었다.


처음 그 사람이 눈에 띈 것은 한 사람이 통기타를 치고 누군가가 드럼을 했다가 말다가 하면서 노래만 부르는 사람 합해서 서너 명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맥주가 있는 그런 곳에서였다. 눈에 선 것은 한 손님이 그룹의 멤버이기나 하듯이 딱 달라붙어 앉아서 그들의 연주를 바라보는 모양새였고, 그런데 얼굴은 해맑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추운 겨울 밤, 손 한 마디도 안 되는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서 노래패 옆에 달라붙어 앉아있는 모습은 교교했다. 홈쇼핑에서 두어 벌 함께 샀음직한 그저 그런 체크무늬 셔츠는 그냥 몸을 가리는 일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가리개였고, 그것도 엉성한 크기 때문에 형님이거나 좀더 크고 뚱뚱한 사람에게서 얻어 입은 몰골로, 멜로디 하나하나에 그저 감탄을 하고 있는 표정은 혹시 이 사람이 정말로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세상 노래 스타일에 온통 감탄하고 있나 싶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날 정식은 오랜만에 동창생 몇 만나서 송년의 술을 했다. 만으로 쳐도 40이 넘어가는 송년의 밤은 숨이 막혔다. 40년 세월, 누가 인생은 40부터란 실소를 하게 하는가. 이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는 밤, 그것이 사십인 게다. 그들 중 하나는 대학에 있는데, 그 친구가 젊은 선생님들하고 몇 번 와보았던 소위 “7080 문화를 만끽하지” 하면서 이끌었던 곳이다.


처음 그 대충 까까머리를 보면서는 거의 불안한 느낌에 맥주를 마셔도 몸이 풀리기는커녕 오도카니 앉아 그 모양새를 관찰해야 했었다. 그래, 나잇살 들어 보이는 얼굴로 미루어 제대한 군번은 아니었고, 교도소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감정은 여전히 풍부하다 그건가 참. 쪽지들이 가끔 건네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청곡들을 적는 모양이었다. 정식네 팀에서도 뭔가 말하라는데 정식은 여전히 건성이었다. 저 진지한 얼굴, 악사들이 클래식도 또 유별나게 감동적인 그룹사운드도 아니련만, 저 진지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주객이 전도라더니, 정식은 음악보다는 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볼수록 어디에선가 만난 적이 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드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어떤 특징도 없는 얼굴이 더욱 기이했다. 적당히 작은 눈, 적당히 낮은 코, 적당히 누런 얼굴 색, 무엇보다 적당히 나이든 얼굴이 오히려 이상했다. 저쯤 행동하는 사람이면 뭔가 좀 눈빛이라도 달라야 하지 않은가.


연주자들이 쉴 시간이 오자 그는 덩달아 가운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건너편에는 여자 둘이 있었다. 여자들은 화장기도 제법 있고 유행하는 모자도 얹어놓고 있었다. 발을 꼬고서. 이상한 트리오다.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고서 마음을 돌린 그들은 제 이야기에 빠졌다. 아따, 그 선생 운도 되게 나쁘네.


이야기의 중심은 이번에도 대학에 있는 동창이 몰고 다녔다. 전공들이 다른 사람들의 느슨한 결합체이다 보니, 흉을 보아도 흉이 되어 돌아갈 리 없는 독특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그날도 한 ‘불운한’ 초임 교수에 대한 성토와 동정이 주제였다. 봄 학기에 발령을 받아서 머슴에서 왕이 된 기분의 전임강사. 그 봄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동티가 나다니.


선생은 그 동안 뒷바라지에 힘든 아내와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둔 가장. 그의 나이 불혹을 넘긴 뒤에서야 시간 딱지를 떼고 전임이 되었다 했다. 거기까지의 고생은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막스 베버가 그랬다던가, 교수가 되고 못되고는 만원인 전철 타고 가다가 앞자리 사람이 내리면 앉을 수 있고 아니면 아닌, 바로 그만큼의 확률과 우연이라고, 대학에 있는 동창은 제법 겸손한 멘트를 섞어서 자신을 지키면서, 그 신임교수의 운명을 보고했다. 3학년 여학생과 동티가 났다는 사건. 기숙사에 들어있는 여학생이 기숙사 통금 넘어서 이상한 카페에서 어떤 ‘교수님’과 단둘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 노출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여학생은 인터넷에 하소연했고, 교수님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는데, 이는 순전히 성적 등을 담보로 뭔가 상납을 요구하는 성폭력이었으니 처벌해달라는 요지였다나. 알고 보니 둘의 이메일 교환에서도 증거가 여실했는데, 교수는 늑대라는 ID를 사용했으므로 노골적으로 한창 물오른 양을 잡아먹었다 등등.


그럼 당시 상황은 살벌했겠네? 세 번째 녀석의 말이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며 조신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 속모를 친구였다. X조교 사건보다 더했네, 그렇제?


뭐야, “정 뗄 칼 없고, 임 잊을 약 없다”는 사랑이야긴가? 그래, 사랑 빼고 뭔 이야기가 있겠나?

 

뒷이야기를 풀어내는 교수는 한참 맥 빠진 소리였다. 그야 살벌했지, 한 동료 교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부인은 탄원서를 들고 학장실을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지만, 실상 대학사회라는 게, 한 동료의 고통과 한 학생의 상처에 무력한 개인들뿐이더군. 사실 스승과 제자라는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우리 중 누가 과연 이런 남녀 문제에 완전 자유로울 수 있겠나? 헌데 어찌되었든 한 지붕 밑에 사는 사람들로서 불행에 빠진 당사자들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니 뭔가. 자넨 그럼 그런 불한당을 가만 둬야 된다는 거야 뭐야. 이 사람 대학교수 되더니, 가재는 게 편이야 뭐야!


아니 내 이런 말의 관점은 그 잘못된 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아쉬웠다는 것이지.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하면 전 우주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잖나. 교수 만들기 뒷바라지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아내는 어떻겠나. 사실인즉, 매력하나로 사는 여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성적 협상차 연구실 찾아들었다가, 거절당하면 스스로 옷을 찢고 고함치며 뛰쳐나가서 성폭행 뒤집어씌우기는 미국에선 벌써 60년대 고전이라지 않은가. 도통 미스 뷰티에 미스 스트롱이야 요새 여자들은.


하긴. 역정을 추스른 종합병원 친구가 딴청을 부렸다. 하긴 요새 여자들 말이야, 계모임에서 며칠씩 여행가기는 일도 아니거든. 전에는 뭐 큰 솥에 곰국 끓이면 마누라쟁이 며칠 나갈 까 안다더니만, 요샌 그것도 아니래 글쎄. 냉장고에 “까불지마” 그렇게 써 붙여 놓으면 그만이라나.


까불지마? 그거 만우절 이야기 같네.


아니 영화제목 아냐, 오지명 최불암 나오는? 참 그런 것도 한다네, 누가 볼 거라고.


내가 봤네 왜. 첫 장면부터 찢어진 청바지에 짧은 잠바 날리며, 터프하게 지프차를 몰고 나타나는데, 믿을 수 없으리만큼 원시적인 수컷 본능을 뽐내고 싶어 하지만, 누군들 그들의 카리스마를 알아줄까? 공격에는 도피가, 위협에는 복종이, 게다가 회유와 텃세 등 갖가지 동물적인 행동들이 난무해 보았자, 글쎄, 덜 떨어지고 늙어버린 건달들은 그저 돌아가신 후에야 찾게 될 애절한 그리움의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메일 뿐. 코너에 내몰린 중년이 외쳐 봤자 뭐, “까불지마.”


참 그런 영화도 보나. 그런데 아내들은 그들에게 먼저 외친다고, “까불지마!”


그런 말 아닐세. 그냥 우스개야. 까스조심, 불조심 시리즈야.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것은 마지막 “마”를 두고서 버전이 두 가지라는군. “마누라만 생각 해!” 그것이 하나고, 다른 것은 “마누라 찾지 마!”라네. 우리 집사람 동창들이 모여서 한다는 이야기가 거기서 두 패로 갈렸다는군. “생각 해!” 쪽을 고집하는 부류는 어쨌거나 아내는 자유를 갖되 남편들은 조심시켜야 한다는 이기적 유형이고, “찾지 마!” 쪽은 개인주의 형인데, 어이, 우리 입장에선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참 별난 선택도 다 있네, 이왕 그리된다면 거야 자유방임주의가 낫지.


무슨 소리야, 그래도 “생각 해!” 쪽은 관심은 있다는 증거 아냐. 요사이 평균 수명 발표를 보면 우리가 살 날도 한참 긴데, 그나마도 무관심이면 어찌 버티나.


이 한심들아, 우린 아직 그런 처지는 아니잖아. 알콩달콩 아이들 귀염 속에서, 아내들 애교도 아직은 괜찮잖아?


이 한심한 가운데 악사들이 돌아왔다. 귀에 익은 〈화〉가 첫 번째 곡이었다. 그들의 팀에서 넣어준 것이 분명했다. 동창 하나가 다른 친구들의 욕구를 언제나 잘 기억하는 장점을 지닌 덕이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 또 하루를 보냈다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애달픈 노래를 흐느끼는 친구가 바로 대학교수다. 국사전공이라서 특별히 유학 갈 시간 돈 투자하지도 않고 일찍 교수가 되어 선망의 대상인데, 노래는 꼭 사연 있는 것으로만 불렀다. 어느 새 다들 알게 된 노래를 정식도 한껏 따라 불렀다. 오늘도 애 태우며 / 또 너를 생각했다 / 오늘도 애 태우며~~ 홀의 누구라도 함께 부르는 분위기 탓이다. 화 안 된다 떠나지 마 / 이대로 이별일 순 없다 /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안된다” 할 때는 반쯤 서서 양팔로 허공을 안았다.


젖은 짚단이 타더라도 다시 불꽃이 인다는 말인가? 그런 상념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그날따라. 예의 반 까까머리가 서서 나오더니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공옥진의 병신춤 비슷한 것이 도통 묘했다. 어이어 어이어~ 벌릴 듯 말 듯한 입에서 소리라도 나는 듯 했다. 물론 음악소리에 묻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동 출소인가?


정식은 공옥진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무슨 행사장이었다. 여흥으로 불려 나오기는 대단한 분인 줄 알았는데 그때가 대단한 행사였는가 싶다. 그때 우리가 본 것은 왠지 ‘부끄러운’ 병신춤이었다. 상당히 노골적인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느껴져 거북스럽기도 했다. 덩달아 박수를 치면서도 단 한번에 이해할 수 있기에는 그의 예술적 감각은 평범 이하였다. 과장은 있으나 교만하지 않는, 꾸밈은 있으나 거짓스럽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비로소 훨씬 뒤 그 장면이 우연히 되새김될 때였다. 소리꾼의 딸로 태어났으니 손잡고 걸음마 뗄 무렵부터도 머리맡에 장고와 북소리가 끊이질 않아 귀 장단을 익혔을 것인데, 살풀이춤을 배우면서도 어쩐지 발 디딤새가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장단 역시 신무용을 먼저 배운 뒤끝이라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배운 대로 잘하는 사람은 밥벌이는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그것을 가르쳐 준 이가 공옥진이다. 배운 대로만 했으면 창무극에서 천재가 나타났을까. 천재는 다름 아닌 진실이다 싶었다. 그런 기억이 왜 그 순간 되살아났는지.


홀은 다시 안개로 자욱해졌다. 들어 올 때 본 “하루만 참아주세요!”라던 금연 표시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굴뚝을 밖으로 세우는 연통 난로 때문인지도 몰랐다. 고구마를 얹지 않아도 이런 저런 땔감 때문에 피어오르는 연기, 아마 그런 때문일 것이다.


연기 사이로 그가 다시 설렁거렸다. 오른쪽 어깨가 들리면 왼쪽은 밖으로 삐지는 기묘한 어긋남. 어긋남과 어긋남 사이 미묘한 조화가 피어올랐다. 괭이가 드러나는 기둥에 원숭이 매달리듯 휘어 감겼다. 그 전에는 그런 기둥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기둥에 감긴 네 발은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나 싶더니 하나씩 다시 풀렸다. 감길 때에도 물론 한꺼번에 감긴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할 것 차례 없이 이렇게 저렇게 감겼었다. 요란한 스트리퍼들이 등장하는 컬트 영화장면의 칙칙한 관능이 묶이는 막대와는 달랐다.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처럼 천연한 얼굴은 나이도 성별도 없었다. 그 짧은 머리모양에도 그는 열 살 소녀 같은 인상으로 고왔다. 기다란 두 팔은 덜 자란 소녀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부조화였다. 안개는 동양화처럼 피어오르고, <라이언의 딸>에 나오는 사라 마일즈처럼, 린치를 당하고서도 온갖 수치와 고통을 극복한 빛나는 얼굴이 되어 있는 그는 이젠 자긍심 강한 처녀였다. 남자들, 더러는 여자들이 섞이어 앉은 테이블 사이로 진출한 처녀는 조금 유혹적인 표정도 지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헐렁한 체크무늬 남방은 등산복처럼 뻣뻣해서 상체는 옷밖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렇게나 입은 짙은 색 바지도 그저 옷일 뿐이었다. 육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육신이 아닌 춤? 그것으로 타인들 사이에서 무엇을 유혹하는 것일까. 보통 남자 하나가 일어나서 박자를 맞추려고 시도했다. 동지애를 발휘하려는 인간적 남자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춤은 아니 되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누구라도 그 춤사위에 박자를 섞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도지방의 곰춤을 아니 설사 용두춤을 추었더라도 그 유일무이한 동작은 그의 것일 뿐이었다. 긴 팔과 막대 같은 다리의 엉성한 조화, 곡이 바뀌면 바뀐 대로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의 춤을 위한 것인 양 했다. 그 순간 음악이 멎었다.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그때서야 느꼈다. 그의 가슴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때서야 뚫렸다.


막 끝나서 여운을 남긴 가사 말이 그때서야 귓가에서 맴돈다.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춤꾼이 멈추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노래를 헛듣고 있었나 보다. 뭐였더라, 그래,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홀로 가슴 태우다 죽어간 가수를 두고, 그의 불행에 대한 뒷소문도 많았었지. 정식은 서른 두해를 채우지 못하고 가버린 그 작자 생각이 났다. 비슷한 또래였기에 그 죽음은 충격이 더했었다. 노래꾼이 “노래가 안 된다고” 갔다는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특별히 슬럼프도 아니었다던데? 정식은 갑자기 저 춤꾼의 무엇인가가 의심스러웠다. 저치는 키도 고만하고 몸매도 고만한 것이 꼭 죽은 가수만 했다. 실제로 가수를 보진 못했지만, “반토막”이라던가, 별명만 들어봐도 그럴싸했다. 춤사위가 바람에 날리는 풀 같고 나뭇가지 사이의 새 같은 사람이, 그래도 혹시 “춤이 안 된다고” 죽어버릴까? 누굴까, 무엇 하는 사람일까? 대체 뭘까? 진짜 춤꾼일까? 긴가민가하면서 정식은 혼자처럼 우물거렸다,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뭘 하는 사람일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또래 같구먼. 아닌데, 다른 누가 말했다.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하나가 그쪽으로 향했다. 연속 내지르는 그의 다그침 때문인가 싶었다. 놀랍다. 더 짙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분명 그 쪽에서 시작되었다. 안개 자욱한 속 잘 보이지 않는 거리였지만 분명 그의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삐죽 보였다. 왼손이었다. 테이블에는 사람들 사이로 세워진 맥주병들이 보였다. 그래 목도 마르겠지. 격렬한 춤은 아니라 해도 온 홀의 시선을 받으며 나중에는 손뼉에 맞추어 몇 곡이나 춤을 추었으니 목이 마를 것이다. 잔을 들었다 곧 놓는다. 정식은 대신 마시려는 듯이 무심코 맥주를 들이킨다. 미지근한 무맛이다. 진작 따라 놓고 넋 나간 듯 춤만 바라보았었나 보다. 저쪽이 친구의 어깨에 가려진다. 정작 입매는 보이지 않는데, 고개를 갸우뚱 끄덕 하는 모양새가 뭔가 말을 하고 있나 보다. 짙은 눈썹과 역시 짙은 눈매가 검정으로 검게 그렸을까 할 정도로 뚜렷했다. 이상하다, 나무토막 같은 얼굴에 화장을 했을 리가.


정식이 기억하는 아내의 처음 얼굴은 분홍빛 그 자체였다. 흔히 도화색 가진 여자를 팔자 사납다고  비하하지만, 첫인상에 도화색 뺨이 예쁜 것은 누구나 안다. 겨울이었지만, 병원이라는 온실에서 쉽지 않은 실습과정을 보내고 있었던 처녀에게서는 홍조가 기본이었을 것이다. 결혼 후 한 지붕 아래서 아내의 얼굴은 누런빛으로 변해갔다. 낮 동안의 화장을 지우는 경대에서 돌아 나오는 얼굴은 쌀뒤주에서 닳은 바가지 색이었다. 고운 가루가 묻어난 바가지를 어머니가 왼손바닥으로 곱게 모셔 닦아 주면 순간 반질반질한 얼굴을 내보였다. 그러면 다시 뒤주에 넣곤 하셨다. 탱탱한 황인종 얼굴이 크림의 여운으로 번득이면 흑인의 표정이 되어 나오는 것이 기이했다. 얼굴색이란 낮밤이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뱃속의 아기를 이기지 못해서 겨우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밤낮으로 누렇게 변해갔었다. 얼굴색이란 시절 따라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복사빛 볼을 하고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겠지....... 그런데 몸을 추스른 아내가 다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는 일은 쉬 오지 않았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학교 때 배운 <승무>에서 유일하게 외어 남은 구절. 허나 아내의 복사꽃 고운 뺨은 그 어디멘가.


정식의 아내는 바빴다. 바빠 버렸다. 아이를 들쳐 업고부터 뭔가 ‘벌어들이자’는 맞벌이 작전에 들어간 이래 아내는 시간이 모자랐다. 변하지 않은 것은 화장을 지우는 경대 앞 5분인데, 돌아선 얼굴엔 옛날의 번들거림이었다. 그밖에는 많은 것이 달랐다. 짙은 눈썹과 눈매는 크림으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바빠서 덜 지우는 것일까? 또한 번들거림은 같아도, 얼굴은 쌀뒤주 속 작은 바가지처럼 탱탱했었던 기색을 잃어갔다. 쪽박이 점점 빨간 호박석을 닮아 간 것과는 다르게, 얼굴은 해 넘긴 밤 껍질을 닮아갔다. 오뉴월 제사에 쓰려고 밤을 칠 때면 물기 말라버린 밤 껍질은 참 고약하다. 달라진 것은 그것 말고도 많아졌다. 분홍 립스틱은 기억에도 없는지, 으깨진 대추 빛을 선호했다. 아내로서는 분홍빛에 대한 정식의 설레임을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말이야, 도예 하는 분이라는구먼. 우리보다도 한참 위라네. 친구가 자리로 돌아와서 간략하게 보고했다. 그래 그렇겠어. 뭐야, 더 위라고? 도예라니, 도자기? 다도 뭐? 느닷없는 질문까지, 서로 다른 기대치 때문에 조용히 듣는 대신 웅성거렸다. 이 지방 사람이 아니고, 태백산 너머에서 이쪽으로 여행 중이라는데. 그럼 춤은? 전문 춤꾼이 아니라고?


춤꾼이 아니라는 말에 서운한 건 누구보다도 정식이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첫 구절이 갑자기 떠올라 그렇게 내뱉고 보니, 저 짧은 머리는 고깔에 딱 이었다. 그럼 파계승? 그 소리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절제된 승무를 전문적으로 추는 춤꾼일까 상상했는데....... 정식의 말에 다들 끄르르 웃었다. 이 보게 너, 요새도 헛꿈이냐? 너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 그 왜, 시인선생님이 신용 좀 준 것 가지고 한 때 시 쓴다고 매달린 것은 알지만. 뭐 짧은 머리 보면 당장 <승무>가 입에서 튀어나오니, 그런 거야? - 아니 그건. 저 사람 춤이 좀 곱고도 서럽지 않았냐, 빛나는 듯 서글픈 저 얼굴. - 사람 참, 저게 무슨 빛나고 서럽고야, 그냥 무표정이구만. 자자, 우리 사람 저만치 놔두고 그만들 하자. - 춤꾼이 아닌 건 확실한데, 공방인지 작업실인지 아무튼 맘 맞은 사람들 모이면 춤도 추고 그런다 하드만. - 그럼 그렇지, 예사 솜씬 아니지. - 혼자 사는 남잘까? 남자들이랑 어울릴까? - 아니 이사람, 혼잔가 아닌가는 아직 못 물어 보았고, 남자라니, 여자야 여자. 한참 누님뻘이라니까. 저기 여자들 일행 셋이 안보이나?


다를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춤꾼이 남자가 아니었어? 멀쩡한 중년 남자들의 눈으로 춤추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남자일거라고 느꼈다니. 그것도 춤을 감탄하면서 동작마다를 따라 보아놓고서. 다음엔 서로 비식거렸다. 남자가 남자보는 눈 있다더니만, 남자라서 여자를 잘 못 보았나? 갑자기 홀 안의 안개도 걷히고 테이블들이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었다. 건너 좌석들을 흘끔거리는 짓은 계속하기 무안해졌다. 다른 화제가 급했다.


나사의 한 연구원 주장이, 이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강진으로 지구가 작아졌다데, 자전 주기도 미세하지만 영구적으로 짧아졌다 하고. 정식은 신문기사를 떠올려 화제를 바꿨다. 그래, 구들장 하나가 다른 구들장 아래로 끼워졌대나 뭐라나.


우연히 이과 출신이 하나 끼었다. 일행은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 그건 그저 계산상의 이론이지, 실제 측정결과가 나오기는 시일이 걸리고 또 그것을 증명하기엔....... 아니 그보다는 이번 방학엔 혜성 구경 가자는 딸아이 때문에 그냥 못 넘어갈 것 같아. 그는 말을 바꾸었다. 맥홀츠혜성인가 그놈은 쌍안경으로도 바로 볼 수 있을 만큼이라니, 1월 내내 이삼일짜리 캠프를 여는 곳도 있다네. 아버지들이 이삼일 나가기가 쉬운가. 서울 근교들일 텐데 지방 사람들은 더 힘들지. 아이들만 보내는 곳 알아보았는데, 데려다주기라도 하려고 목금토, 토일월 반을 인터넷에서 찾자마자 마감되었더라. 이 아버지 통도 크시네, 애들만 어찌 보네. 한국서 애들 살기 무서운 것 모르시나. 아니 그럼 사는 것이 다 그렇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화제는 이리 저리 흐르고, 정식은 고개는 일행 속에서 정중심을 향한 채 오른 어깨 너머 비스듬히 춤꾼의 테이블을 흘끔거렸다. 앞머리를 갸우뚱 내리고서 시선의 방향을 숨겼다. 다시 태워 문 담배가 반짝 불빛을 보였다. 그 ‘여자’가 빠끔거리는 것이리라. 벽에 걸린 “오늘 하루만 금연합시다!”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글씨는 색색으로 분명한 만큼 무안했다. 한글도 못 읽나? 타지사람이라고 안면몰수인가? 다시 아래쪽 시선을 이용해서 바라보니 길게 뻗은 다리가 앙상하다. 상박 하박이 그저 나무젓가락이었던 팔이나 막대 같은 다리나. 우리보다 위라고? 여자도 나이가 들면 성을 초월하나? 어느 나이가 되면 그러나? 하긴 옛날의 어머니들은 그렇다. 아니 그 반대다. 어머니들은 젊어서도 나이 들어서도 한결같은 어머니다, 여성이다. 더 할 수 없이 푸근한, 마르고 작은 체구에도 장작개비 같지 않고 부드러운. 늘상 같은 어머니. 헌데 소녀와 처녀와 심지어 아저씨를 다 아우르는 저 사람은 대체 뭔가. 절대로 어머니는 아닌, 그래도 여자?


그 여자에게서 어머니를 볼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자라 했으면. 밤톨처럼 단단한 아내에게서도 어머니는 있다. 어머니가 전부다. 아내는 송이를 위해 산다. 송이의 행복을 위해 산다. 송이의 성공을 위해 산다. 아내는 어머니로서 산다. 저 여자는 무엇으로서 살까.


정식은 이시자키 어쩌고 하는 일본인이 내놓은 독특한 서적명이 떠올랐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검색하다가 튕겨져 나온 특이한 책이라서 제목만 목차만 대강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가히 성의 세기였다고 할 20세기 말에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 비슷한 책이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똑똑한 여자? 색에 빠져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아예 성의 특징을 무시한다? 하긴 섹스가 남자와 여자를,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최고의 요소는 아니라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송년의 밤을 남자들끼리 모여 앉은 그들도 하나의 예다. 그때 그 책제목을 보면서 잘 팔릴까도 의아했었다.


그 뭐더라,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런 책 있더구먼. 또 다시 정식의 돌연한 말에 이야기는 새로 어수선해졌다. 스스로 똑똑함을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면 만족할 책일까? 뭐 그런 책이 다 있어? 남자들 다 죽겠네. 아니지, 여성들이라 해도 똑똑하면 섹시하지 않다고 들려서 화내지 않을까? 정식은 바로 옆 테이블의 남녀 팀이 들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떤 여자가 학문적 관심을 가지면 보통 그녀의 성적인 면은 뭔가 정상이 아니다고 했다던가, 그것으로 니체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는지 아나 이사람. 대학친구의 말에 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가슴이 크면 머리가 나쁘다, 그 속설이 맞다는 거여 뭐여? 답을 손에 쥐어야만 하는 친구 하나는 갑자기 정색이었다. 내 말은 저 여자, 아니 저 여자 분은 삐쩍 마른 나무토막 같으니까 머리가 좋고 예술가이고 춤도 잘 춘다 그거야 뭐야. 아니 춤추는 것 하고 머리 좋은 것하고 무슨 상관? 야 이부장 목소리 좀 낮춰. 시작은 해놓고 말리는 형국이 된 정식은 도리어 좀이 쑤셨다. 흔한 삼차에 예까지 들른 것인데, 술이 좀 들어갔기로서니 말들이 거칠어진다 싶어 걱정이었다. 엉뚱한 화두를 내놓은 것이 자신이고 보니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허탈한 밤이었다.


하기는, 밤은 대개는 허탈하다. 남보다 이른 결혼으로 딸이 봄이면 벌써 고등학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디만큼 흘러가버린 세월이 아득하다. 아내는 궁리도 많고 튼실해서 남편에게 의존하는 체질이 아니다. 세상을 따라 살며 크게 불평도 없다. 바가지를 앞세우는 형도 아니다. 그런데 왜 밤은 허탈한가.


아이들 알콩달콩 속에서 - 아까 누가 그랬나? 그것이다. 집에 아이들이 없어서일까? 달랑 혼자 크는 송이가 어릴 적은 괜찮았다 싶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뭔가를 열심히 시키는 엄마를 피해서 아빠한테 응석부리느라 깔깔대곤 했다. 요즈음엔 중학생이면 표정이 어른으로 바뀌고 마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에 시달려서일까? 송이 뿐 아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더 큰 처녀인지, 길가는 여자아이들이 구별이 안 될 때가 많다. 아내도 할 일이 많다. 집안 일 틈 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낮엔 사업차, 늦은 저녁에도 컴퓨터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신년을 맞는 그의 계획 속에 근년 들어서 꼭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아내와 대화하기>, <송이와 대화하기>, <가족여행>, 그런 것 들이다. 몇 년 째 잘 안되는 재탕이다.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가정이 왜 문제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기실 아무 문제도 없다. 일감이 줄고  당연히 수입이 기울지만, 다른 건설업자들 사정에 비하면 현상유지는 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밥벌이 되면서 고민하는 놈 사치라 하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겨우 땅 파먹는 두더지 신세인 것이 대순가. 제 식구 잠 잘 지붕 있고 밥 먹고 살면 그만인가. 이 친구들 마음들도 허탈한 구석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순간 파렴치한이 되어 공든 탑을 떠나야했던 동료교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던 친구의 넋두리가 공감이 갔다. 고향을 돌아다보면, 아니 거기까지 아니어도, 힘든 사촌에 재종, 종매........ 아니다.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은 내민 손조차 잡아줄 수 없었던 무능 때문이렷다. 형제고 친구고 빚보증은 안 된다. 단출한 가정의 살아남기 작전은 이렇게 야속함에서 출발한다. 반석위에 집짓기. 문제의 씨앗은 싹부터 뽑아버리기. 그래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도태된다. 어쩌다 TV화면에서 걸리는 동물의 세계가 어른거린다. 영양이건 코뿔소건 무리에서 처지는 놈이 천적의 먹이가 된다. 무리는 생의 법칙,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한다. 인간이라는 동물 또한 그러하다. 송년의 밤을 보내며 일년간 다 못한 일들을 쬐끔 후회할지 모르지만, 날이 새면 다 잊고 희망을 운운하며 새해를 맞는다. 닭띠 해가 밝을 것이다. 고향의 수탉은 여전히 아침을 깨우리라.


정식은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소리를 쳤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 옹기종기 둘러앉아 꽁당보리밥 / 꿀보다도 더 맛좋은 꽁당보리밥~~


저쪽에서 여자가, 그 춤꾼이 맞일어났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정식이 질세라 얼른 받았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애 - 애


와글와글 박수가 터졌다. 악사들이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벌써 무엇인가를 마친 것인가? 아니 ‘꼬꼬댁 꼬꼬 먼동’은 무엇이었나? 내가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었어? 내가 노래를 불렀어? 알 수 없는 상황에 정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앉아 있는 모양새가 좀 전과 다를 바 없었고, 들었던 잔이 왼손에 그냥 있었다. 이상하다. 아니 지금 내가 어찌 된 것일까? 예서 가수들이 때 넘어간 캐럴도 아닌 동요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럼 내가 노래를 했단 말인가? 틈이 없었다. 음악은 서글프면서도 중후한 “그곳이 꿈엔들 잊힐 리이야”로 넘어가 있었다. 정식은 두 손을 펴서 머리에 얹었다, 언젠가처럼 왼쪽 뚜껑만 뜨겁게 달아오르고 오른 쪽은 냉랭한 상태를 느껴서였다. 정말 그랬다. 구들장이 따뜻해졌나. 만져 보듯이 오른쪽 왼쪽을 만져보다가 겁이 났었다. 신경과 전문의는 내로라하는 평판이었는데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검사 결과는 뭐 괜찮습니다. 죽을 병 아니고요. 통풍을 좀 해야 됩니다. 무슨 못하고 살 말 있어요? 여기 와서라도 뭔가 해버리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친구나 직장동료 뭐라 아내 흉을 본다거나 뭐 그런 것. 속내 단속 못해서 발광난 사람 취급하는 데는 오히려 기가 죽었다. 첫 마디에 알 수 없이 눈물이 돌았던 것이 좀 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반쪽만 뜨거운 머리 뚜껑이 겁나서 몇 번 더 찾아 갔다. 아내 흉보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 말 해 봐요,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삐딱이 하고 앉아 있는 의사 앞에서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 더러 있나요? 그렇게 묻고 싶은 충동을 참는 방법은 그만 가는 것이었다. 생각한 말과 말한 것 구별이 혼란스러울 때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한 행동과 행동을 했는지 구분이 안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정작 의사를 보았으면 묻고 싶었던 말들도 다 담고 돌아섰다. 흉보러 오는 대신 막춤을 추러 오라 했으면 계속 갔었을까? 혼자서 추는 춤, 춤을. 


한쪽이 조금 수선스러워 눈을 드니 바로 춤꾼 일행이 일어서고 있었고 친구가 따라 나가고 있었다. 노래 도중이었다. 이상하다. 노래 도중에 일어설 무례한 같지는 않았는데. 문간의 망설임이 한참 걸렸고 친구는 으쓱으쓱 돌아와 앉았다. 명함은 없고, 주인장 하나 줬다는데 나중에 보지 뭐. 내일은 또 더 남쪽으로 갈 거라네, 영 독특했는데 참.


하긴 노총각이야 관심 가져도 되겠지만, 저쪽은 뭐 싱글 이래? 아무래도 도저히 유부녀 같진 않던걸. 우리 모두 첨엔 남자라고 생각했잖아? 하긴 거 누구의 견해대로라면 머리 좋은 여자겠네? 뭐 우리 생각이 다는 아니겠지만. 아니 저쪽이 훨씬 위 같더라며? 앞서가기 잘하는 친구가 나서 떠드는 동안 왠지 다른 사람들은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연주가 끝난 다음 정식네도 다같이 일어섰다. 한 친구는 정말 주인에게서 명함을 받아서 읽어보느라 입구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렸다. 노총각에게 정보라도 주겠다는 몸짓이었다. 정식은 일부러 관심을 끊었다. 춤이 다 뭐라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을, 또 그게 무슨 춤이라고. 춤꾼 생전 안 보았나.


한 시가 넘어 귀가할 때면 아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늘은’ 귀가해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지만, 근년 들어서 더 늦는 남편을 교육하려는 일은 포기한 것 같았다. 그나마 공존의 미덕이다. 초저녁에 집에 있어 둘이서 할 일이 무엇인가. 관심사가 교집합처럼 작은 것을 무시하고 합집합의 크기로 보는 것이 신혼이다. 어긋난 각도는 미미하게 보이는 것이 신혼이다. 어느 날인가는 교집합이 커지는 일보다 어긋난 작은 각도가 벌어지는 일이 꾸준해짐을 알게 된다. 교집합은 불려야 자라는 것이라서 가만있으면 그대로지만, 어긋난 각도는 가만있어도 그냥 벌어진 땅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늘상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하고 싶어 하는 정식과, 하고 싶은 것 다하려는 사람을 일반화하여 얕잡아 보는 아내는 참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아니, 다른 별을 바라고 살아버린 결과일까?


샤워꼭지의 물소리가 미안하다. 아래 집도 미안하고, 가까이 아내도 미안하다. 스킨로션이 욕실에 없는 것이, 아침에 또 들고 나갔나 보다. 욕실에 있어야 할 것이 안방 어딘가에 있는 것을 아내는 싫어한다. 그 반대도 당연히 싫어한다. 무엇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아내가 정하기 때문에 정식으로서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실에서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하나 손에 따르니 향기가 짙게 올라오며 끈적거린다. 하는 수 없이 손에다만 비비고 만다. 깜깜한 방을 거쳐서 거실로 나온다. 커튼 틈새로 비쳐오는 빛, 달빛인가 하지만 하현달인데 이리 밝을 리도 없고, 바깥 방범등인 것을 벌써 알고 있다. 희미하게 비치는 실루엣을 따라 소파에 주저앉는다. 순간 다시 일어난다. 커튼을 조금 젖히자 곧 냉기와 함께 어스름 빛이 따라 들어온다.


달밤에 체조라더니, 어깨를 들먹거려 본다. 팔을 내뻗는다. 무슨 곡조를 떠올려야 하는가? 하나 두울 하나 두울. 아니다. 한 둘 셋 한 둘 셋. 그건 더더욱 아니다. 자다가 봉창 뚫는다? 뚫으려면 뚫으라지. 검게 반사하는 TV 화면을 맞대하고서 자신의 몸을 비춘다. 어깨 팔꿈치 팔목을 차례로 꺾어 본다. 꺾었다 편다. 왼쪽도 똑같이 해보려고 뒤튼다. 춤은 전염성인가. 흥이 없더라도 일단 곡조에 맞춰서 팔다리와 온몸을 움직이면 춤이지. 율동적으로? 그건 알 바 없다. 춤꾼이 따로 있나? 좀 전의 춤꾼 아닌 춤꾼이 생각난다. 안개처럼 피어올랐던 아까의 연기 냄새가 코끝에 남아있다. 영락없이 내 마신 고양이 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니다, 활짝 웃자. 웃어야 한다. 신경과 전문의가 변죽으로 말한 것이 이런 것 아니겠냐. 통풍이다, 통풍. 더구나 희망의 새해가 아니냐.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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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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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04. 3. 1. 22:15
부나비

   

 

소설시대 2003 

부나비 한 마리가 겨울밤을 마주하고 있다. 9월에야 성충이 된 이놈은 늦둥이에 속한다. 날개를 길이대로 다 늘여 보아야 3, 4 센티미터. 그것으로는 추위에 얼어붙는 몸을 가릴 만큼 넉넉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일정한 길이도 넓이도 아닌데, 그로서는 안의 사람들이 커튼이라는 아름답고 따뜻한 장치로 여러 겹 추위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그래도 새어나오는 빛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나아간다. 미끄러운 유리창은 얼음처럼 차갑고 아린다. 유리가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이제서 알게 되다니, 이러한 지식이 별 소용없음에, 그것으로 슬퍼할 시간도 모자란다.  

 

                                                    *

넌 그 집착 때문에 망할 거야… 꼭 그렇게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는 말한다. 내가 사모하는 그는 통상적인 부류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가 들은 야단이다. 그것은 통상적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라고 내지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모하는 그에 대한 어떤 것도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의 견해를 의식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러니까 내가 사모하는 그와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 사이에서 몸 둘 바를 모른 채 살고 있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에서이건 몸둘 바를 모른다고 하면 요새 세상에서는 엄살이라고 할 것이다. 모두가 당차게 살아간다.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만 해도 확실히 매사에 단호하며, 말도 엄살도 적다. 사람이 말이 적으면 분명 손해가 적을 것이다. 말이 많으면 써먹을 말이 적다고,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는데도, 나는 말을 많이 한다. 결코 사람을 무시하지는 않아요… 라는 표시로서 이런저런 말을 한다. 사실은 신문에 났거나 TV에서 떠도는 말을 또 되풀이하고 있는 얼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난 그냥 얼간이 편을 택한다. 내가 사모하는 그의 말없음에 상처받아, 보상심리로 말의 홍수 속에서 안정을 찾아보려고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나와 그 ― '내가 사모하는 그'라는 말을 그냥 '그'로 단축하기 위해서 상용구를 써야 된다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상용구란 한 글자를 여러 글자로 나타내기 위한 수단인 것을, 나는 어떻게 된 게 입만 열면 '내가 사모하는 그'가 튀어 나와서 그것을 '그'로 줄이느라 상용구를 써야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런데 나와 그는(바로 이곳에서 상용구 단축이 필요했다) 아무 사이도 아니다. 친구('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도 '친구'로 단축한다), 친구는 다만 내가 행여 이번에도 마법에라도 걸린 듯 빠져버릴까 걱정하는 눈치다. 아니 노골적으로 경계한다. 사람이 행여 사람에 빠진다는 것은 친구에겐 실수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열아홉 금값일 때 혼이 나갔던 그일 이후 내내 혹독하다. 게다가 이번에도 눈과 입술이 가느다란 남자라면 무정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라고. 우린 이제 서른 하고도 넷을 넘겼으니 ― 그녀는 절대로 다섯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우리 또래 남자들도 이미 다 혼자는 아닐텐데, 잘못하다간 임자까지 있는 덧에 걸리게 되어있단다.

너 이런 병 처음 아니야, 옛날 그 일을 생각해 봐. 완전히 넋빠진 애, 무슨 핑계로 어떻게든 전화라도 하려고 리포트도 안냈고, 너 정말 기말시험도 안쳤잖아? 지금 돌이켜봐도 그는 널 염두에나 두었어? 이것저것 함량미달, 큰 인심으로 변명 기회를 주어도 아무 말 못하고 지나친 어떤 여학생. 그것말고 너를 알기나 해? 그때가 언제야, 그 봄학기, 넌 왜 봄에 약한 거냐?  

그 후 언제였을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영화관에 가서 보던 날, 친구는 갑자기 "너 혜완아" 라고 나를 불러 세웠다. 너 또한 혼자서 가라. 우리, 책을 직접 사서 읽자. 우리가 돈을 주고 소설책을 산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대학을 그만 두고서도 일이년은 몰래 책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했었지만, 그 뒤로는 이런저런 여유가 없어 책을 사 본 적이 희미했다. 그런데 우린 책을 샀고, 친구는 아예 어디에선가 원래의 경전까지를 찾아냈다. 하긴 내가 지쳐 잠든 밤사이 그 애는 컴퓨터에서 밤을 샌다, 뭔가를 쓰거나 찾거나.

숫타니파아타… 한참 열을 올려서 외웠던 옛 구절을 친구는 새삼 다시 꺼낸다. 비밀스럽기도 하고 또 정말 그냥 염불이라 생각해라. 어쩌자고 넌 또 시작이냐구. 날 따라 해 봐, 물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 (침묵) ― 어서 ― 물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 또한 이미 불이 탄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아니 다시 하자, 좀 더 네가 좋아했던 구절로. 또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넌 그런데 번뇌를 끊는 가르침 중에서도 바람이니 연꽃이니 나오는 구절은 좀 외우고, 냉철한 단어는 다 잊었구나. 넌 아주 물고기 수준이야.

새대가리는 몰라도 물고긴 아냐. 또 물고기가 왜? 물고기가 자전거도 타는데 뭐. 여자는 물고기가 자전거가 필요한 만큼만 남자를 필요로 한다고 큰 소리하던 여자도 어쨌든 결혼했잖아.  

너, 스타이넘이 이제와 결혼을 했다고 그 인생철학이 바뀐 거라 속단하지는 마. 결코 결혼이 필수가 된 건 아니니까. 남편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고 파트너랬어.

파트너? 무슨 다이 하드 시리즈 경찰이냐?. 남편 아닌 파트너랑 결혼하면 물고기보다 나아?

적어도 체로키족 식으로 했다는 거지. 진정 남녀를 평등하게 대접한다는…

그럼 아무나 체로키가 되냐구? 보호구역 오클라호마에 아니 미 전역을 통틀어 만 명 남짓, 그들의 언어가 살아있기나 해? 200년전 다트머스 대학 설립해준 백인들 교육 덕에 그 문화는 끝장났다며? 그런걸 어떻게 아느냐구? 거야 간단하지, 언젠가 컴퓨터 화면 살리니까 떠있던 걸 뭐. 넌 찾고, 난 심심하면 읽고. 너 맨날 PC 켜놓을 땐 나더러 읽으라고 그렇게 두는 것 아니었어?

그랬다 치자, 그게 결코 노선수정이 아냐. 저번 제주에 왔을 때 인터뷰기사도 못봤어? "자궁이 있는 모든 여성이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명제는 성대를 가진 모든 사람이 오페라 가수가 돼야 한다는 말과 같다"해서 좌중이 웃음바다였다구!

웃음? 대중은 명사에겐 관대해, 논리적 비약에도 웃어주고. 성대가 정말 오페라 하라고 있는 거냐, 말하라고 있는 거지. 성대로는 말하고, 자궁으론 애 낳고, 그러는 거야. 늦기 전에.

뭐야, 네 자궁으로 애를 낳겠다? 그저 그 남자 바라만 보면 자궁에 애가 들어오니? 자궁이 원초적 충동으로 애를 낳고 싶다고 쳐, 그게 그리 쉬운 일이야? 이 시대에 어떤 남자가 애나 낳고 싶어하는 바보에게 애를 낳으라 하냐. 거기까지 상상이나 되는 거야? 어떻게 그의 눈에 띄는가… 어떻게 그 눈길을 받을까… 언제 어떻게 해서 마침내 그가 말을 걸고, 데이트를 신청하고, 고백을, 청혼을 하고. 아니 그런 것 생략하는 신세기 인간들이라고 쳐, 어떻게 그에게 다가가며, 어떻게 그 손을 잡으며, 아니 어떻게 그가 손을 잡게, 입맞추게, 그 생명을 네게 주게 만드는데? 네 입 몇 마디 말로서 되는 일이, 언제 어느 세월에 일어나느냔 말야. 그거 그 옛날에 한번 졸업하지 않았어?

하긴 옛 일이지. 올림픽 전의 한국은 옛날이 맞아. 네 말대로 난 마음을 다 퍼주어 버려서 남아있는 조각도 없는 줄 알았지. 알 수 없는 원망도 슬며시 잦아들 지경이었으니. 이상해,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지? 넌 뭐 항상 정답을 가지고 있고, 난 항상 틀렸으니 얘기 해 봐.

뭐 그렇게 빗나갈 일이 아냐. 그때 그 일을 잊진 못하지, 자꾸 거치적거리는 네게 상대는 째진 눈 한번 바로 떠보지 않더라고? 참 희한도 해, 그 연보라빛 편지지에 봉투 묶음 사서 또 쓰고 또 쓴 편지들. 그거 한번 봉투에 넣고 이름이나 적어 봤어? 꼬박 일년은 그렇게 썼을 것이야, 날이나 날마다. 하긴 일년은 안되는 구나, 다음 봄학기 휴학하고는 그냥 접었으니까. 그래도 그 아까운 글들, 지금 같았으면 하드에라도 들어 있겠지. 알다가도 모를 애야, 쳐다보면 피하고, 말을 걸면 아예 대꾸도 없거나 엉뚱한 대답만 하니.

그랬었다. 열아홉 첫 자유의 봄에, 우린 정말 그것이 자유의 봄이라고 믿었다, 우선은 멋있어 보이는 과목만 수강신청을 마쳤다. 영어도 《대학영어》는 얼마나 다른가. 모옴의 수필도 들어있을 지경이니 "달과 육펜스"를 영어로 읽는 느낌에, 거기다 갑자기 승격됨을 만끽하는 《인간과 가치》, 막연한 동경의 《글쓰기 기초》… 얼마나 떨리는 시간이었나. 제목부터 수상쩍은 "악의 꽃"의 시인은 우리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신에게의 상승과 악마에게로의 하강의 기원을 함께 품고있는 인간존재의 영원한 모순, 모순 속의 우울, 파리의 우울… 시인은, 나의 그가 말했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고 배운 우리에게 "유용한 인간이란 언제나 무척 야비한 것으로만 보였다"고 말합니다. 유용한 인간, 야비한 인간…

그 시간이면 나도 모르게 쿵쿵거리던 가슴을, 친구는 죄다 안다. 무슨 단어도 그의 목소리로 들으면 아우라에 쌓여 숭고해졌다. 바로 그 아우라 같은 고귀한 단어를 내 가슴에 심어준 그는 그러나 강의가 끝나면 교실 문을 채 나서기도 전에 일자로 째진 입에 자물쇠가 잠긴다. 액자유리 뒤에서 입을 꼭 다무신 아버지나 똑 같다. 일부러 지각을 해서 출석부 고쳐달라며 이름을 각인시키기를 되풀이하고 ― 각인이라는 단어도 그로부터였다 ― 리포트는 기일을 넘겨서 교수실로 간다. 교수실이라야 젊은 강사들이 함께 쓰는 곳, 여고 때 교무실에 비하면 널부러져  쌓인 책들하며 꾀죄죄하기도 했지만, 뭔가 개성적인 바로 이것이 고차원이구나 믿었다. 강인하게 일자로 다물어진 입은 그러나 3cm 정도의 가벼운 고개끄덕임으로 대신했다. 한 페이지가 빠졌노라고 다시 가져간다, 그럼 아무 말 없이 받아 아무 책 위에나 놓는다. 저기요 지난 시간에 01반 리포트… 이번엔 2cm 끄덕임. 한번도, 왜라거나 자꾸 늦으면 안되어요, 그런 핀잔도 없는, 강의실 밖에서는 도통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는 표정으로 빗장을 내걸고 있었다. 바로 그 빗장에 매료되어… 아니 속이 상해서, 나는 달아올랐다. 부글부글 끓었다.

한번은 바싹 지나치는 시도를 감행했다. 검푸른 잉크냄새와 함께 검푸른 바닷물처럼 냉기가 건너왔다. 오싹했다. 차가운 유리 속 아버지 냄새도 그랬다. 어버이날 다음은 스승의 날이었다. 꽃을 보내고 싶었다. 이름을 쓰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을 것이다. 5월의 저녁은 알맞게 부드럽다. 카네이션은 무슨, 내 마음은 순 장미였다. 장미 열송이는 큰 모험이었다. 빨강색은 부끄러워서 참았다. 바깥에서 보이는 창문에는 불빛이 별로 없었다. 4, 5층엔 몇 개 켜져 있었지만, 그것이 다 꺼지도록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마악 어두워진 복도를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가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 문 앞에 다발을 가만히 놓았다. 아차, 내일 아침 출근길에는 조금 시들겠지. 하지만 지금 직접 부딪친다면 고개를 3cm 끄덕일까, 아님, 장미라니 이게 뭡니까 하고 모처럼의 변형을?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이게 뭡니까? 이게 뭐임?

도망치려던 나는 곧 다시 돌아가 다발을 집어들고는 뛰었다. 크게 흔들리는 통에 꽃잎은 벌써 시들했다. 움켜쥔 왼손바닥에선 풀 냄새가 났다. 오른 손으로 꽃잎을 흩뜨렸다. 부드럽고 촉촉한 온기가 달라붙었다. 열송이 꽃잎을 그렇게 뜯었다. 향기가 서러운 아우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아우라의 독에 빠져들었다. 그때 내가 몇 시간을 밖에서 서성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갔던 날, 친구는 현관 문지방에서 갑자기 튀어 나왔다. 어찌나 갑자기 들이대는지 둘의 코가 맞닿는 줄 알았다. 그녀의 냉기가 아리도록 내 볼을 때렸다.

친구는 꼬박 일년을 나를 힐난했었다, 마침내 내가 제풀에 꺾일 때까지. 나는 그를 폄하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젠가 노교수가 된다… 책 속에 묻히면 좀벌레들과 함께 살리라. 아버지의 누런 콘사이스와 몇 권 남은 동아세계문학전집에도 그런 하얀 벌레가 기어다녔다. 0.3mm 샤프로 찍은 점보다도 더 작은 하얀 벌레들이. 축축한 벌레들과 살아가는 그의 이미지에 내 발등이 다 스물거리며 시려왔다. 나는 그를 지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그 뒤로도 나를 홀대했고, 그 냉기는 지금도 줄지 않고 나를 채근하며 따라다닌다.

가장 심했을 때는 몇 년 전 유치원에서 한 아이에 빠졌을 때이다.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아이들 천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당연히 제일 안움직이는 녀석이다. 반일반 아이들이 더 심하게 딩구는 데 비해, 아이들 절반 이상이 떠나고 난 종일반의 오후는 시무룩해지는 표정이 번지는 게 보통이긴 하다. 그 아인 그런데 아침부터 혼자만 논다. 종이찢기, 마음대로 그리기 시간에는 괜찮다가, 인사하기, 이야기하기, 동시화 외우기 시간에는 입을 다문다. 활발하고 예쁜 달님반 선생님이 달래도 끄덕없다. 달래면 달랠 수록 입만 다무는 게 아니라 아예 긴 눈을 질끈 감는다. 이마가 유난히 넓어서 눈은 얼굴중심 저 아래로 내려간다. 입술과 평행선을 이루며 완강한 수평선 두 개가 그려진다. 눈물이라도 날까 무섭게 질끈 감은 눈에선 정말 파도가 일렁이는 느낌이 온다. 소리내어 울지 않는 아이가 정말 두렵다. 가끔 들르는 외할머니는 손자를 떼놓고 갈 때도 참 교양있지만, 특히 화려한 미소와 알파로 원장을 격려한다. 그땐 내가 아직 보육교사 양성과정에 다니기 전이었고, 그냥 원장의 햇님반 보조였다. 오전 에어로빅에 사우나를 거친 원장이 출근하는 것은 12시 점심식사 시간 직전, 종일반 아이들 식사를 챙기려 온다. 그러나 잦은 점심약속으로 그 또한 내 몫이었다. 그리고 나서 반일반 아이들 물품 정리하는 등 일을 마치면 결국 4시나 되었고, 그때서야 다른 아르바이트를 향하곤 했다. 뒤돌아보면 유리창은 마침 반사되는 빛으로 내부를 비추지 않고 그저 반짝인다. 남겨두고 오는 아이얼굴 아래쪽의 두개의 완강한 직선은 괜히 내 가슴을 두 번 갈라놓는다. 누구의 애일까? 전혀 닮지 않은 외할머니, 그렇담 아빠의 얼굴일까? 혹시 유창한 수사학의 세계에서 갑자기 입을 꼭 다물던 그 선생님?

친구는 그때 내 미친 상상을 어찌나 혹독하게 비난했는지, 난 그만 친구와 이별을 시도했었다.  넌 어떻게 일자 눈만 보면 무조건이야? 조금도 나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친구와 더불어 사는 것은 고문이었다. 이 진드기를 떼어 내려면 내가 죽는 수밖에 없지 싶었다. 아르바이트 카페에서 퇴근 시간을 넘기고 술에 잔뜩 취하기도 했다. 카페가 다 끝나고 주인 언니네가 퇴근할 때서야 나를 데려다 주면 새벽이 다 된다. 놀랍게도 그 시간에 이미 새 날을 시작한 사람들이 거리를 깨우고 있다. 그런 날 초인종을 누르면 어머니는 기겁을 하시는데, 친구는 내색도 없다. 술에 취하면 친구가 나를 상대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취하는 날이 잦아졌다. 난 낮의 일자리를 잃었고, 밤의 카페주방이 전업이 되었다.

순한 영어교사의 딸은 분명 계급하강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로 나를 달래셨고, 답은 보육교사 양성과정이었다. 어머니의 꿈처럼 멋있는 국어선생도 초등교사도 못된 딸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이었다. 일년 과정을 졸업하고는 겨우 낮생활로 돌아왔다. 그러나 식당보조와 정식교사 사이, 그것이 실제 내 직업이었다. 규정에 따르면 소규모 유치원을 운영할 자격이 되었는데, 그만한 돈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저녁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보태도 어림없었다. 게다가 2월 말이면 이동이 잦았다. 폼으로 대학을 다녔던 정식 유아교육과 출신들도 직업 얻기에 관심이 커지자, 양성과정 출신은 밀려나기 십상이었다.

그러다 이런 변화가 왔다. "대우도 못받는" 남의 유치원 보육교사 자리 알아볼 수고말고, 여기 동생네 치과병원 우선 돌보라는… 이모는 원하는 것이면 다 하신다. 동생, 그러니까 이종동생은 모교에 남으려고 "시간만 버렸고", 이제와 개업하는데  진료밖에 모르니 병원 살림을 좀 맡으라고, 이모는 반 강제셨다. 나더러 아예 간호조무사 자격을 따라시며, 후일 산후조리원과 영아원 유치원을 연결하는 비젼 속에 나를 집어 넣으셨다.

아직은 낯선 오피스텔의 아침, 눈을 떴을 때 친구를 발견하지 않은 잠시 순간을 느긋이 즐기고자 난 이불 속으로 더욱 기어 들어간다. 출근이 바빴던 보조 때나 보육교사 시절에도 그랬다. 깨어나지 않아야 친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이 되는 안도감을 느낀다.

우유 한잔 마시자! 친구는 곧 목소리를 높혀 우리의 하루를 시작한다. 제발 흰쌀밥에 조선간장 찍어 김을 덮어먹고 싶어하는 내 기분은 뒷전이다. 요즈음엔 사시사철 구운 김이 있는데도 말이다. 아침부터 간장 된장 김치 같은 무식한 냄새를 풍기면 직장 나가는 여자의 하루는 끝난다는 것이다. 옷에만 베니? 그렇담 갈아입고 나가지. 하지만 머리카락 켜켜에 깊숙이 스며든 냄새는 어쩔 도리가 없어 응?

그렇게 시작하는 잘난 채는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식탁에 놓는 2, 3분 동안에 두서너 가지 뒤따른다. 저런, 그 긴 컵은 안되지, 넌 또 우유처럼 기름진 게 없다고, 아니 우유도 꼭 된장국그릇만큼 씻어야 한다고, 한 나절 컵 씻느라 싱크대 손 담그고 있을 것 아냐! 나는 유리컵이 길고 좁을 수록 예쁘기도 해서 집어 들지만, 좁은 컵에 따라야 우유를 덜 먹을 수 있는 계산이다. 그것을 이젠 잊었나? 엄마 젖꼭지가 우유꼭지로 바뀐 것을 참지 못해 울어대던 그 옛날을?

우유 알레르기에도 내 유년시절은 따뜻한 보호 아래 있었다. 다만 그 시절은 꿈처럼 빨리 지나가 버렸다. 우유를 치즈를 좋아하고 싫어할 계제가 못되는 웅크린 사춘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사진으로만 남은 아버지는 속수무책이셨다. 천장쯤 높이에, 그것도 유리액자 안에 갇혀있는 아버지 얼굴로는 방바닥의 우리를, 길거리의 우리를, 교실의 우리를 어쩌시지 못했다. 해마다 봄빛을 받아도 후줄근한 살은 여전히 피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친어머니 슬하에서도 질펀한 흙덩이 사이를 바지 가랑이 젖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야하는 계모의 아이들처럼 구부정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우리의 등이 미리 굽는 것을 가장 가슴아파 하셨다. 말끝마다, 아가, 등 좀 펴어라 하셨으니까. 한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가난과 수치라는 이상한 쌍둥이가 들어왔다. 이제 가난에 조금씩 적응되는가 싶으니, 수치심이 빠져나간 자리에 상대적 박탈감이 들어왔다. 박탈감보다 무서운 것은 무력감이었다.

하얀 눈 내리는 아름다운 날도 행복하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손이 시려 털장갑을 사러 상점을 기웃거리더라도 속없이 백화점까지 가면 안된다. 그 날은 어쩌다 스포츠센터가 있는 백화점 까지 걸어가게 되었고, 장갑 쪽을 기웃거리다보니 매장은 밝기도 했다. 은은한 눈처럼 하얀 목도리 위에 다소곳이 얹힌 하얀 털모자… 장갑까지 있을까? 가까이 들여다보는 내게 점원이 다가왔다, 뭘 찾으세요? 비싸서 안 사는구나 들킬 새라 실눈으로 안보는 척 들여다본 값은 8천원 남짓, 그까짓 나도 살 수 있겠다. 예상보다는 싼 느낌이었다. 용기를 내어서 이거 좀… 하면서 거의 다 살 뻔했을 때였다. 세트 상품이지만 따로도 되거든요, 처음보다 훨씬 친절해진 목소리가 말했다, 목도리만은 5만… 다음 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동그라미를 잘 못 본 나는 부끄러움에 달아 그렇게 도망쳤다. 그 뒤로는 하얀 목도리가 아닌 아이보리도 베이지도 무턱대고 밝고 깨끗한 옷가지는 무서워졌다.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섭다. 연한 빛깔  깨끗한  빛깔은 부이고 선이며, 후줄근한 내 살은 어두운 빛깔 속에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다.

병원을 처음 둘러보던 날부터 내벽 전체가 하얗게 칠해진 공간은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여기저기 낙서도 있는 알록달록한 유치원들과는 사뭇 달랐다. 드디어 건물 사회 내에 우리병원을 소개하는 날이 왔다. 그런 일은 정서적으로 가까운 피부과 쪽에서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여기에도 동창이라야 통하는지, 동생은 피부과와는 누가 봐도 경쟁관계인 대학 출신이었고, 하긴 같은 대학이라도 치의대와 의대는 그렇고 그렇다나? 동생은 이과에 문외한인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무조건 위아래 층 할 것 없이 문마다 노크했다. 문이 열리면 매번 주춤하는 나. 속으로는 안열리기를 기대하는 나. 그는 바로 그날 청소년연구소인지 심리개발연구소인지 그 쪽 사무실이 줄줄이 붙어 있는 어느 방 하나에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른 나무껍질 같은 어두운 얼굴색에 셔츠도 검게 입은 우울한 어깨너머로 잠깐. 우리를 보고 잠시 일어서는가 했지만, 문까지 인사차 따라 나서지도 않았다. 대개는 그랬다. 졸업하고도 대학병원에 남아서 온갖 경쟁을 겪은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월하게 해 넘기고 있었지만, 거절에 쉽게 상처입는 나는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내가 의사동생을 축하해 줄 수 있는 건 접수창구 유리창 앞에 레이스로 뜬 작은 커튼을 만들어 꾸며준 것이 전부였고, 이제부터 나는 무조건 동생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울고 웃기도 주인 따라 해야 한다. 몇 층을 그렇게 다니던 동생은 OO여자고등학교 동창회 간판을 보더니, 훗훗, 우리도 여기에 동창회사무실 낼까 언니, 하고 웃었다. 언제적 같은 학교? 속으로 의아해도 겉으로는 얼른 따라 웃었다, 그때 내 앞에는, 들어선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입술을 열지도 않고서 냉랭하게, 뭡니까, 네, 알았슴… 정도를 말하던 굳은 얼굴이 다가왔다. 동생을 따라 웃는 내 웃음은 펼친 채 멎어서 한 동안 미키마우스 인상이었을 것이다.

왜, 정말 그러자니까, 여기 치과간판과 나란히.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날, 생글거리며 명함집을 들고 서있는 의사동생과 기정떡 쟁반을 들고 서있는 아무 것도 아닌 나말고는 아무도 없는 어스름 복도에서 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알 수 없는 사람의 알 수 없는 싸늘함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덩달아 싸늘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제 적 기억 끝간데 묻어둔 얼음덩이가 순간 되살아 난 때문일까? 그리고 추우면 사람은 뜨거움을 찾아 갈망한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혼란 가운데 나는 먼 데 기억 속의 차가움과 그때의 혼란을 함께 찾아 헤매며 달아올랐다. 그는 누군가 이기도하고 아니기도 했다. 나는 부지런히 복도들을 기웃거리며, 그의 사무실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뜸한 시간대에 가면 간판은 잘 볼 수 있으나, 대신 안 풍경이 보이지 않아서 긴가민가했다. 처음엔  그의 직업은 출판과 관련되는 무엇이었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으로 출판사 간판 쪽을 기웃거렸다가, 코너에서의 발걸음 수 등을 생각해서 그 옆의 연구소 쪽이 더 맞다고 생각되었다. 결국 그가 있었던 곳은 무슨 연구소이긴 하지만, 특히 그가 책임자가 아님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는 이 건물 상근은 아니라 했다. 방통대 나간다던가, 어디 겸임이라던가? 나는 미아동캠퍼스와 성수동캠퍼스 싸이트에 들어가 그럴싸한 과목들 교수명을 다 찾아 기웃거렸다. 몇날 밤을 새어도 과목명도 교수명도 모르는 어떤 것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언젠가부터는 눈을 들면 사방으로 거기에 있는 마른 나무가지 같은 그의 모습이 색유리처럼 내 시야를 가렸다. 병원 접수실 1평방미터 하얀 벽 사방에 그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겨우내 마른 나무 가지는 이제 조금만 껍질을 벗겨내면 아직 살아 물이 흐르는 연녹색으로 드러날 것이다.

초근목피를 이야기해주시던 아버지는 초근과 목피를 직접 보여주시기도 했었다. 칡넝쿨은 지금은 아카시아만큼이나 아니면 더 심한 숲의 원수가 되어 있지만, "그땐 이게 밥이었단다, 이 보아라, 밥칡을." 추석성묘 다녀오는 길의 칡넝쿨은 그냥 너울너울 푸른 잎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꼭 "그땐 이게 밥이었단다" 하셨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사오신 밥칡은 밥이 아니라 칡이었고, 그 자체로서도 그리 깨끗치도 못한 것이 뭔지 상급은 아니었다. 칼로는 잘 안되어 작은 톱으로 살금살금 썰어 놓으면 금새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되고, 치마 자락에라도 묻으면 영 버리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단 하나, 흥부의 호박도 이런 톱으로, 물론 대톱으로 켰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어서였다. 칡은 톱으로 아무리 썰어도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여기 저기 밥은 빨아먹고 칡만 뱉어놓은 몰골은 흉하기만 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안계셨지만, 하얀 천에 품어놓은 비밀스런 핏자국이 마르면 칡색깔이 떠올라 더 이상 칡을 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럴 때면 친구는 유난스럽다고 눈을 흘기고는 칡그릇을 제 앞으로 당긴다. 밥이야, 밥. 밥.

밥칡은 밥이라 하는 사람과 칡이라 하는 사람으로 사람을 갈라놓았다. 나는 이상하게도 아버지 딸이면서 아버지의 밥 대신 칡을 택했다. 밥칡을 칡이라고 하는 세계는 엉뚱하게도 이모의 세계였다. 어머니는 이모의 손 위 언니이므로 어머니의 세계 또한 그럴 것이나, 어머니는 부실임을 지켰다. 부실?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부실이라 부르시면 웃음이 나곤 했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제주 부을나의 자손이었다.

아버진 4월 10월 삼성전 앞의 춘추제를 한번 다녀오시고 싶어하셨단다… 나중에 어머닌 왜 그 말을 하셨을까. 잔디로 덮혀 무슨 구멍인지 모를 띄엄띄엄 세 구멍에서 사람 선조가 나오셨다니. 그땐 아버지의 여름방학이었지만 날은 서늘했고, 오른 쪽 구멍 언저리에선 정말 안개 같은 속에서 무언가 우리에게 손짓한다는 섬뜩한 기운도 느껴졌다. 나는 하필 원숭이띠인데, 저기 풀 밑에서 신인이 아닌 원숭이가 손을 내미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아빠, 나 저어기 원숭이 안할래, 그거 대신 나비하면 안돼?

아가야, 그래 나비야, 누가 널더러 원숭이 하래? 나는 그 풀 밭에서 유일하게 사랑스런 작은 노랑나비에 빠졌다. 별명이라도 나비가 되어 기뻤다. 실제로는 움직이기를 너무 싫어하는 나는 어떤 양란에 피어난 노오란 꽃잎처럼 줄기 끝에 붙어 흔들거려도 떠오르지 않는 붙박이 나비였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서 난데없이 사전찾기 병에 빠졌을 땐 실망이 너무 컸다. 나비목 불나방과의 곤충. 날개를 편 길이 약 40mm. 온몸에 암갈색 털이 촘촘히 덮여 있으며, 앞날개는 흑갈색, 뒷날개는 오렌지색 바탕에 무늬가 있음. 콩·뽕나무·머위 등의 해충임. 그러니까 부나비는 기분 나쁜 불나방과 똑같이 엄청 나쁜 의미였기 때문이다. 성씨 때문에 나는 화려한 나비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감수성 따라 내 운명에 대한 예감에 무서워 떨었다. 별명을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고 2때 인구조사 통계가 발표되었다. 우리 성씨는 인구 8,565명으로, 순위는 274성씨 중에 108위였다. 이런 기억은 순전히 오기로 일기장에 적어둔 덕이다. 나중에 명부의 강 저편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 그게 가능할까 ― 뭔가 중요한 보고라도 될 듯이 난 그렇게 적어 두고 외웠다. 성씨가 운명이면 하는 수 없다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발음만 같을 뿐 아무 상관없이 간쑤성 지방에 살았다는 티베트계 부씨마저도 남 같지 않다.

하긴 부씨말고도 사람은 어디에나 넘쳤다. 막상 아주 대도시로 나온 뒤, 사람들은 어디에고 꽉꽉 들어찼음을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앞쪽은 높은 건물의 연속이고, 삼겹살 냉면집 실내포장마차와 카페들이 가끔 노래방과 섞여 자리한 도시. 거기에 크고 작은 병원 머리방 드물게 목욕탕도 끼어있으니 아무 구분이 가지 않았다. 밤에 조금 어두운 공간이 있으면 그곳은 은행이거나 관청이거나 그랬다.

그런 어느 한 구석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건물은 평범한 현대식 건물답게 고층에 장방형 구조로, 독특한 점은 돌아가는 층계가 한 귀퉁이에 있다는 것 정도이다. 뉴욕 같은 곳을 영화로 볼 때 밖에 나 있는 비상층계를 건물 안에다 넣어서 지은, 그렇게 해서 지그재그가 아닌 계속 타원형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느낌을 준다. 그의 사무실은 몇 개월이 지나서야 우리 치과 층에서 두 층 위 다른 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내가 들어있는 주거용보다는 한참 아래층인데, 5층까지와 6층 이상은 서로 다른 엘리베이터를 쓰기 때문에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다. 내가 우연히 사무실로 올라가는 그의 뒤를 따라 치과에 가는 척 그 쪽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고 해서, 미리 내리면서 그가 어디에서 내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려야할 치과 층을 지나쳐 더 올라갈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내 주변머리이다. 누구라도 믿지 못해 할지 모르지만, 이론상으로 위층 사람의 정보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아니면 다른 엘리베이터로 사는 형편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 그를 다시 만날까? 사무실 건물의 좁은 복도란 최소한의 이동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층 입주자들이 스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히려 꼭두새벽에 집을 나선 사람들이  영어학원이나 헬스클럽을 거쳐 황급히 아침을 먹으러 몰리는 지하 음식백화점에서 붐비기 마련이다. 아니면 다시 점심을 먹으러 흩어지는 근처 식당가에서나. 나는 그러나 이런저런 출근행렬과 마주치지 않는다. 건물 중간층 이상은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이라서 나처럼 거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X기획 또는 Y출판사 또는 Z칼라인쇄가 사주 철학원과 함께 섞인, 시체말로 주상복합 퓨전이다보니, 드나드는 사람 또한 각양각색이다. 나이로 어림 잡아도 20대에서 60대가 드나든다. 하기야 조금 낮은 층에 들어선 치과와 피부과에 중국한의원까지를 생각하면 한 현대판 면소재지의 축약과도 흡사하다.

결혼을 할 수 있기까지 얌전히 동생네 병원 살림 맡아서 하다 보면… 그것이 내 노처녀시절에 대한 이모의 현명한 처방이었다. 어머니는 속수 무책으로 이모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심약하신 아버지가 살아계셨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심약'은 그저 정서적으로 쓸 때는 미덕이 될 수도 있는 형태소다. 형태소 같은 단어는 내가 일년간 국문과를 전공한 이래 넓어진 내 어휘에 속한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심약은 신체적 심장의 약함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심장판막증인 채 가정을 가지셨지만, 남들 보다 성큼 큰 키로 미국사람이나 되는 듯이 멋진 영어선생님을 하셨다는 아버지. 아버지의 영어는 기억할 수 없지만, 긴 그림자는 기억의 끝에서 아물거린다. 겨우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설까 말까, 그렇게 일찍부터 어머닌 미망인답게 겸손했다. 겸손은 외할아버지의 미덕이었고, 어머닌 다른 방도를 모르는 분이다.

어머니 손아래 이모는 당차고 밝아서, 의대생과 연애라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결혼에 돌입하시고, 그래도 처음엔 너무도 조촐한 시댁 살림 탓에 고생도 많으셨다 했다. 그러나 이재에도 훤해서 대처에 자리잡자마자 적당한 크기의 종합병원을 내셨단다. 누군가 그런 것은 생각도 못할 시절이었다 했다. 지금은 시댁과 친정 온통을 좌지우지하는 실세다. 자녀 또한 계획표대로 잘 되었다. 의대생 아버지에게서 생산된 딸답게 소꼽놀이에서도 의사 역만 했다는 큰언니도 의사다. 내리 딸만 셋을 낳아 슬그머니 겁도 났었지만… 이라고 가끔 입버릇처럼 말하시는 이모는 기필코 아들을 보셨고, 그 모두가 의과대학 아니면 최소한 치과다. 나더러도 약대나 간호과를 가는 한에서 등록금 전액을 제의하셨지만, 어머니는 딸이 의사같은 것 못할 줄 미리 알고 계셨는지 욕심내지 않으셨다. 거기서 약사나 간호사는 이모네 의사자녀들과 너무도 확실한 일직선상의 비교이고 보니, 제하고 싶은 데로 나 둬라 좀, 하는 무덤덤한 반대로 딸 손을 들어 주셨다. 그러니까 학교 신문에 시 한편이 뽑혔던 나는 속없이 국문과에 진학했다. 국어교육과 아니면 교육대학을 갔어야 어머니 체면이 서는 선생님이 되었을 것을, 아니 그보단 대학 자체를 마칠 수나 있었을 것을. 인문대학은 등록금이 사범대학과 비교가 되지 않게 비쌌다. 그런 차이를 알 수 없었던 우리모녀는 이모의 눈총을 받았고, 그 대신 눈총과 함께 오는 돈은 받지 않았다. 첫사랑을 앓던 나는 1학년 성적이 시들했고, 10% 교직 이수자 신청에서 탈락하자 2학년을 포기했다. 물론 처음엔 휴학이었다. 봄날을 을씨년스럽다고 표현하는 작가를 이해하게 되었던 그런 봄날이었다. 을씨년스럼은 계절을 타지 않으리라는 것도 함께 배운 봄, 그 봄에 꿈은 접혔다. 그리고 여름이 가을이 지났다. 겨울에는 아예 두문불출, 이듬해 봄의 재생을 믿기 어려운 긴긴 잠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역시 심약해진 ― 이번에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심약한 ― 어머니랑 조촐하게 사는 데 진력을 다했다. 우리에게는 결정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했고, 그래서 늘 돈이 부족했다. 돈 없이 돈 가진 자 무시하기, 그것 또한 우리의 놀이요 자존심이었다. 가까이는 이모네… 멀리는… 하지만 꿈도 없는 십여년의 세월은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내가 치과에 따라 들어온 것은 어머니가 더 이상 내 밤낮의 일을 참지 못해서 이모의 돈에 굴한 셈이었다. 너도 좀 쉬면서 결혼문제는 이모에게 맡기자, 자신이 없어진 어머니가 안쓰러워 더는 고집을 못했다. 그리고 병원 이삿날… 나는 그를 그렇게 만났다.

누군가의 조금 찡그린 닫힌 얼굴이 왜 그리 떠나지 않는지 모르는 동안, 처량한 신세도 잊은 채 나는 행복했다. 밤중에도 깜깜한 천장에 퍼지는 얼굴에 몰두했다. 천장이 뚫리면 더그매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건물에서 24시간을 산다. 그런데 그를 마주칠 확률이 그리 없다니.

그를 가까이 오래 보게 될 때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갑작스런 가을 바람에 어깨가 움츠리던 아침, 난데없이 함께 아침 못 먹었다고 지하로 불러낸 동생을 보러 들어갔을 때였다. 해장국과 설렁탕만을 파는 저쪽 코너에 그가 숟가락을 쥔 모습이었다. 유난히 각도를 안으로 구부려 쥔 숟가락은 몸과 평행이었고, 그러자니 고개를 숙인 자세였다. 고개를 숙이고 아침 해장국인지 설렁탕을 먹는 남자. 아 센 머리가 보이던 그가 아직 미혼의 그러니까 확실히 독신이었어?

커피자판기 쪽으로 움직이는 그를 따라, 동생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내 고갯짓은 영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따뜻한 아침을 주는 어머니나 아내가 없는, 그러니까 소유자가 없는 자유인으로 다가온다. 그는 자유인이다. 내 또래 약간 위로 보일까 말까, 그 옆얼굴엔 분명 나이테가 없다. 나 또한 자유인으로서, 조건에 관계없이 적어도 한 남자를 사랑해도 되는 처녀다. 처녀의 자유, 이 자유는 오직 그를 향한 집념이 되어갔다.

이제 그가 내 주문에 걸려 내 코트에 들어오면 된다. 그는 우선 치통을 알아야 한다. 그의 치아가 그 얼굴 생긴 만큼이나 강단있고 영 상하지 않는다면, 그렇담 식당에서 뼈다귀를 잘 못 깨물든, 뭔가 사금파리 조각이라도 들어간 음식을 잘 못 먹다가 이가 부러지든, 아니면 누군가랑 층계에서 냅다 부딪쳐 앞니라도 어긋나야 한다. 살아가노라면 별별 일에 부딪치게 마련 아닌가. 가장 좋기는 퇴근 길 나서다말고 바로 이 근처에서 날깡패에게라도 걸려 쥐어 박히고서 이가 부러지든지. 그는 어쨌거나 치과에 나타나면 되었다. 그 다음 속수무책으로 누워있는 그를 관찰하는 것은 내 일이다. 그가 치과에 나타날 확률이라면 악담도 서슴치 않았다. 속으로 하는 악담이야 누군들 못해.  

어느 날 난 그의 아침 식탁 곁으로 다가간다.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손바닥 안에는 스태플러 침 하나가 구겨진 채 숨어 있다. 그는 너무 가까이 지나가는 사람에 놀라서 고개를 든다. 그 사이 슬쩍 그의 시래기 해장국그릇 속에 쇳부스러기가 떨어진다. 나는 그냥 죄송하다는 투의 우물우물 말을 더듬고 만다. 계속 숟갈질을 하는 그의 입안에서 딸그락 소리와 함께 송곳니가 망가진다. 송곳니가 아니래도 좋다, 어딘가 스태플러 침은 그의 치아를 손상한다. 그는 치과에 올라온다. 그가 올라오기 전에 난 부지런히 접수부를 닦고, 작은 커튼에 살짝 향수를 뿌린다. 짜증난 그가 더욱 찡그린 얼굴로 유리창문을 밀기도 전에 내가 안쪽에서 열어준다. 많이 아프셔요?

아니 어떻게 제가 아픈 걸? ― 아프시니까 오셨겠지요. 우선 등록 하셔야지요. 원장선생님은 아직 커피 마시는 중이네요.

그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나는 조신하게 말한다. 성함은요? 아니 보험 카드를 주셔요. 안가지고 오셨다구요? 그럼 다음에 가져다 주셔도 되어요. 성함이?

그의 이름을 나는 여기 말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 병원을 찾아온 적도, 이름을 기록한 적도 없으니까. 하긴 알더라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단 하나  '그'는 그냥 ㄱ이어도 좋다. 더구나  내 별명의 ㄴ자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ㄱ자와 ㄴ자가 얼마나 오묘하게 어울리는가 너 알고 있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친구에게 묻는다. ― 그거야 ㄱ과 ㄴ이지, 뭐 위 아래로 쓰면 ㅁ자가 되어서 얼마나 안정감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지, 그런 걸 너만 섬세하게 안다고 생각하진 마. 그 위에 ㅅ자를 놓아서 아예 집을 짓지 그러니?

친구는 모르고 있다. ㄱ자와 ㄴ자를 그냥 위아래로 두지 않고 가까이 밀어 놓으면 어떤 형상이 되는지를. 동서남북 어느 편에서 보아서도 완벽하게 끼이는 그 적나라한 포개진 자세를 그녀는 알 리가 없다. 콜비츠의 《사랑하는 사람들》어때? 심오한 의식의 작가에게서 하필 가장 식상한 포즈의 작품을 인용하면 그녀의 표정이 어떨까? 그녀에게 내가 침묵하는 건 내숭이 아니다. 자존심이다. 나의 그를 지키는 자존심. 만에 하나 나의 외설스런 생각을 눈치챘다가는 그녀는 당장에 그를 형이하학적 존재로 단정지을 것이 뻔하다. 그녀는 어떤 경우에는 단견에 가깝게 철저히 속단하고 확고하다. 그는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의 사무실, 그가 있던 사무실 문 위에는 A4 평으로 크기 정도의 작고 위엄있는 간판으로  XX심리문제연구소 라는 간판이 있다. 수 십번 바라본 간판이지만, 그것도 다들 퇴근하고 난 밤중 시간에 올려다보고 가곤 했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로 사람들이 돈을 버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하는 일이 그밖에도 무슨 대학의 무슨 강의를 한다는 것, 그 정도면 내숭을 가장한 채 알아낸 정보치고는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심리학연구소가 아니라 심리문제연구소니까, 간판으로 미루어 대학의 학문보다는 조금 낮은 연구소라 다행이라고 내가 말했을 때, 친구는 정말 깔깔 웃어버렸다. "무슨 학"자가 붙어야 높은 학문이라구? 그래 뭐, 학문연구소가 아니고 문제연구소니까 조금 더 낮다고 치자, 그럼 너하고 되는 수준이라고 상상하니? 방통댄가 어디 겸임교수라 안했어? 꿈도 야물다! 우리가 요샌 소설이라도 읽느냔 말이야. 영화나 뜨면 그런 책 사볼까, 하긴 그 짓도 이젠 안하잖아?

사실은 내 젊은 시절 전부를 테트리스 화면과 살아왔다. 아무 것도 투자하지 않고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시간만 죽는 절대가 마음 편했다. 업보처럼 쌓이는 색색의 조각들, 전사처럼 수평선을 평정하는 내 오기, 다른 게임은 유희요, 다른 취미는 사치였다. 살아 숨쉬는 상대가 없어 비교가 안되는, 비교가 안되어 상처가 없는 화면. 그 추상세계에 매달려 살아온 밤들, 밤들.

하긴 저녁 아르바이트 땐 그것도 어려웠지. 기계적인 시간 배분, 6시 50분쯤 집을 나서서 유치원 7시 반에서 40분 도착 - 5시 반 출발, 레스토카페 6시 반 도착 - 1시 출발, 집에 도착하면 1시 20분. 퇴근은 주인언니 남자가 시켜주니까 빠르다. 하루에 접하는 두 세계는 너무 달라서 처음엔 상쾌했다. 유년에서 성년으로, 천사에서 속물로.

이건 나만이 아는 비밀이라고 생각하는데, 낮에 만나는 눈동자들은 얼굴 절반쯤에 있는데, 저녁에 마주치는 눈들은 이마 쪽으로 훌쩍 올라가 버린다. 하루에 한번씩 그렇게 자주 인간의 눈의 위치가 변하면 어지럼증을 타게 된다, 그래서 야위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 일욕심과 돈욕심 때문으로 생각하시고 '살 안 빠질' 제안을 받아들이셨을 것이다. 출퇴근도 안하는 조건, 하지만 이 치과병원에서 덩달아 가운만 입고 있는 직원신분은 애매하다. 내 나이 때문에 위생사도 보조사도 나를 그냥 언니라 한다, 기공사도 누나 대신 언니라 한다. 또 원장의 손위라는 부가가치가 있으니까 다들 친절한 것 같다. 하지만 유치원 보육교사 자격 외엔 운전면허증도 없는 순 무자격자가 치과접수에 앉아 있기 힘든 실상이 곧 드러났다. 첫 환자와 상담을 잘해야하는 간판인데, 내 하얀 이의 유혹만으로는 부족하다. 난 다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런 내게 무슨 꿈이 소용될까. ― 넌 꿈을 꿀 가치에 미달 아니냐? 나는 훽 친구를 겨냥하고 고개를 돌린다. 친구는 내 반박을 아예 무시할 양으로 그새 어디로 물러났는지 조용하다. 그럼 참 오랜만에 나 혼자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꿈이라면 나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생에 꿈 같은 것을 믿기에는 너무도 생의 왜소함에 길들어 왔다. 누군가를 그리는 것? 그런 것은 꿈 축에 들지 않는다. 그건 정말 테트리스나 같다. 테트리스 화면도 나를 인식한 적이 없다. 그냥 내 삶 죽이기 상대로 적당할 뿐이다. 그 무미에 돌아버릴 것 같을 즈음, 어쩌다 살아있는 대상이 의식되었고, 그것에 추상적으로 목숨을 건다. 친구는 집착이라고, 나는 사랑이라고 우긴다.

아니, 사랑은 알 수 없는 말이다. 그의 그림자 그의 뒷모습 혹은 옆모습이 오피스텔 건물의 좁은 복도를 돌아 지나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아려온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그의 앞모습은 기억할 수도 없는 것이, 단 한번도 그를 바로 쳐다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 그를 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그의 앞모습을 모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모르는 앞모습에 꿈을 담아서 전혀 다른 얼굴을 숭배하는 것, 혹은 옛날 한번 박혀버린 얼굴을 대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좁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단 한번 가까이 섰던 날, 후다닥 자세를 옆으로 틀어서 그의 헐렁한 양복 옆구리만을, 더 헐렁한 주머니만을, 주머니에 반쯤 들어간 손등만을 바라보았음,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내려야할 층에서 내리지도 않고 계속 그러고 있다가 손등과 양복주머니와 양복이 함께 멀어지는 동작을 덜덜 떨며 바라본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문이 다시 닫히자 후우 긴 한숨을 쉬어, 아직 안데 남아있던 한 두 사람을 놀래키고도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함,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어쨌거나 열심히 바라는 건 순간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 우리는 그 대신 무엇을 잃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된다.

그런 기겁할 일이 갑자기 닥쳤다. 불사우나라는 이름의 섬뜩한 목욕탕이 옆 건물의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 새로 생겼는데, 겨울 시즌에 맞춰 개장한 전략에도 불구하고 겨울 초입은 따뜻하기만 했다. 그러자 공짜표들이 이웃에 돌았다. 그러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입시철이 된 것이다. 병원식구들은 퇴근을 서둘러 구경을 나섰다. 불기운은 이상한 돌무더기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옷을 반쯤 입은 채라고는 하지만 남녀가 한 동아리가 되어 멋대로 퍼져있는 공간들이 쉽게 편해지지가 않았다. 차라리 풍덩 함께 들어가는 수영장만 못한 것이, 몸뚱이들은 엉기적 드러나고, 이글거리는 불 때문에 기분 나쁜 배음이 살덩어리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우리 병원 식구들이라야, 위생사는 조무사보다 더 젊고 더 날씬하지만 미용체조인지 몸을 잘 움직여가며 불 곁에도 잘 견뎠고, 조무사는 몸매랄 수도 없는 퍼진 꼴로도 적극적으로 살을 빼려한다거나 땀을 내려는 동작을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이서는 그저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자리조차 밀리고 있었다. 그 인간이 글쎄… 라는 난데없는 타령들도 정말 들어야할 옆 사람에게서만 멈추지 않고, 몇 사람씩을 건너서 뭉근 김 속에 섞여 들어가 멀리까지 떠다닌다. 좋으면 무릉도원이지만 나삐 보자면 연옥의 풍경만 같았다. 뜨거운 불기운에도 뼈마디가 늘어나기는커녕 잔뜩 긴장한 옹색해진 어깨는 앞으로 쏠리기만 했다. 핸드폰이 없는 나는 좋은 핑계가 되어 전화 올 데가 있다고 먼저 샤워실로 물러났다. 겨우 서서 뜨거운 몸을 식히기도 어려운 공간이었지만 찬물이 상쾌했다.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도 구원이었다. 젖은 머리를 손으로 대강 쓸고 유리문을 나서 두어 개 층계를 내려 밟던 나는 그만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가 여자와 함께 바로 코앞에 나타난 것이다, 풋풋한 지성적인 여자와.

젊다 못해 어린아이 인상의 여자는 설마 애인일까? 그새 깜깜해진 사방 속에 뾰얀 얼굴은 창백한 달처럼 빛났고, 몇 발짝 앞이었지만 검은 머리와 어울리는 분홍빛 입술이 도톰했다. 그의 일자 입술과는 전혀 닮지 않은, 그러니까 사람은 자신과 닮지 않은 형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스쳐 지나지 않고 머뭇거릴 수도 없는 터라 아까운 걸음을 떼었다. 뒤돌아 보니 운동화스타일로 젊음을 과시한 여자는 풋풋함이 넘실대는 아예 아이였다. 연구소와 관련될까? 아님 방통대 학생인가?

나도 모르게 나는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도심이 아닌 외곽으로 빠져나가려는지 전철을 이용해서 나로선 다행이었다. 1미터쯤 거리로 가까이에 가 섰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대화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재잘거리며 흔들어대는 머리카락이 그의 코트앞자락에서 뭉개지고 있었다. 그를 올려보는 코는 그의 턱수염 자리에 닿을 듯 했다. 수염이 있었다면 닿을 거리였다. 아니 그냥도 닿았다. 외설스런 감동으로 소름이 끼쳤다. 얼마를 가다 내린 역은 완전히 주택가 가운데였다. 불빛 어두운 한적한 빌라들의 숲 속에 이르자 두 사람의 발소리는 더욱 활기를 띈다. 손을 잡고 거의 뛴다. 사방이 조용하니, 크로스로 맨 가방에서 절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학생이구나, 틀림없이 방통대. 그럼 제자인데 어쩌면? 더 빨리 달려간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누나, 추카추카, 얘야 어서 온, 여보오…

누나 축하해, 내가 만들었다, "축"자 여기 ㄱ자는 엄마가 쬐끔 고쳤다. "하"자는 완전 내가 했어, 엄마 그치? 추카추카! 아빠, 재수하면 두 번씩 말해줘야지? 누나야, 추카추카!

자 우리 딸, 고생했다. 그렇다고 아빠 오늘 차도 안가져 가셨는데 아빠한테 들른 거야? 자 어서 손만 닦아, 저녁부터 먹자, 요 돼지녀석도 배고픈지 귤을 몇 개나 집어다 먹으면서도 누나 기다리자는 구나, 기특하게.

엄마, 아빠, 우리 돼지야… 모두모두 감사해요, 이번에도 수능 모자라 떨어지면 어쩌나 너무 겁났어. 엄마 아빠 때는…

내 사랑은 환상이었다. 대상의 허상. 그가 내 소중했던 대학 초년 때 보들레르를 읽어준 풋나기 강사였을지, 나는 모르고 떠날 것이다. 그 뒤로도 십 수년씩 대학을 몇곱 다닌 엄청난 지식의 소위 해외파에게도 뿌리내리기 어려운 슬픈 현실이 있는지, 나는 모르고 떠날 것이다. 남자에게 아내의 돈은 살 속에 가시인지, 나는 모르고 떠날 것이다. 대도시 현대인의 사랑은 평균 3년하고 167일 두시간 지속된다는 어느 소설책에서 읽은 신빙성 있는 통계도 무색하다. 내 사랑의 봄은 겨울 초입에 산산조각이 났다. 시작도 없던 일, 끝이라는 단어도 우습다. 무엇인가를 쳐다보기만 한 내 젊은 날, 열아홉에서 오늘까지 육천 밤이다.

사랑이 아무리 부실해도, 아무리 속절없어도, 한번 쏜 화살은 그곳을 향해 날아간다, 일직선으로. 그곳에 아무도 없으면 그냥 지나칠 것이다. 지구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둥글다면 내 등뒤에 와서 다시 꽂힐 때까지. 그 살촉에 내가 쓰러지더라도 한 가닥 희망은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늘 쏘아보면서 밀어냈던, 나를 위해 충고만으로 살아가던 내 친구 차례다. 그녀는 아예 내 삶을 ― 원래 그녀의 삶이기도 했던 ― 혼자 통틀어 살기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코멘트만 이 아니라 생으로 뛰어들어, 이성적인 그녀의 방식으로, 이제는 안쪽을 향하여.  

 

                                              *

채찍 모양으로 끝쪽이 가늘어지는 나의 더듬이는 우선 아름다움에서 확실히 나비만 못하다. 끝을 여왕의 가늘게 떠는 황금관 장식처럼 부풀린 호랑나비의 더듬이를 가졌다면 행여 그가 나를 바라보았을까? 굵은 몸은 아니나 몸에 비해 날개가 작다 보니, 화려한 색깔을 뽐내려도 나비에 댈 수 없는 운명이다. 앞 뒷날개 사이의 날개가시도 얼음짱에서 미끌어지는 나를 더는 지켜주지 못한다.

내일 아침해가 떠오르면 늦잠을 자지 않는 그가 커튼을 열어젖히고 하늘을 우러른다. 바닥에 떨어진 나방 하나가 썩은 잎 모양처럼 얼어붙어 있다. 그는 행여 글감 하나를 발견하여 나방의 생태를 생각할까? 어젠 달밤이 아니었던가, 첫눈이 내리기 십상인 음력 시월보름밤? 밤에 나방이 등불에 모이는 것은 온도나 습도 등 조건 따라 빛에 반응하여 날아드는 것이라지만, 이상하군, 달밤에?

그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에 대해서는 정리가 필요한 학자다운 사람이다. 짚신벌레가 열자극에서 물러나며,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 가려하는 것 따위, 그래, 외적인 자극으로 촉발되어 생기는 수동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아니 그건 반사보다는 전신적 반응으로서 주성적 행동이라 했지. 그는 자신의 간단명료한 코멘트에 만족하며 메모를 위해 책상으로 향한다. 그가 PC를 켜기도 전에 나는 벌써 유령이 되어 〈새 글〉에 '부나비'를 올린다. 날개를 편 길이 약 40mm. 온몸에 암갈색 털이 촘촘히 덮여 있으며, 앞날개는 흑갈색…

커튼을 열고 밖으로 나온 사람은 그의 우아한 아내일 수도 있다. 어머나 깜짝이야, 이 겨울에 무슨 벌레지? 난 또, 썩은 껍질이잖아.

그는 오늘 따라 늦잠이다. 밤새 꿈이 뒤숭숭했고, 이상하게도 가슴이 결린다. 가슴을 오므릴대로 오므리다가 갑작스런 후회가 온다. 요사이 담밸 너무 피웠나, 이건 아닌데… 아내를 부르려해도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만지려해도 곁에서 숨소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텅 빈 침상은 나무숲 공터의 밤공기처럼 축축하다. 엉뚱하게도 언젠가처럼 그 낯선 여자가 먼데서 손을 내밀고 있는 것 같다. 찢겨진 젖은 은행잎들 사이에서 연기처럼 솟은 듯, 멀리 펼친 망토 자락은 그물날개의 아늑한 유혹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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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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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04. 3. 1. 21:43

 서정인 선생님 서재 탐방기 
                                      영어로 글읽기와 한글로 글쓰기 

                                                                  
소설시대 7호

심부름


전주시 덕진동, 사람들이 호반촌이라 하는 곳, 전화로 길 안내해주신 호반2길을 찾다보니 아담하고 질서정연한 주택가가 나온다. 오가는 사람 드문데, 길까지 마중 나오신 분이 『달궁』의 서정인 선생님이시리라.


이미 누렇게 찌들은, 87년 초판 열흘 뒤에 나온 2판『달궁』을 들고 선생님을 뵈러온 터다. 실로 십수 년이 지나 작가와 마주앉은 곳, 전기스토브가 막 켜진, 차라리 서늘한 거실이다. 누렁이와 흰둥이가 힘차게 짖던 햇빛 밝은 바깥 풍경과는 다르게 현학의 무게가 내린다. 서재에 쌓여있는 고서들의 무게일 것이다. 난생 처음 하는 숙제를 위해, 마음 다잡고 준비한 말문을 연다. 일천한 역사의 한국작가교수회에서 그나마 새내기인 제가, 평소 말을 안 듣는 사람이지만 이건 기꺼이 하고 싶은 심부름이라서… 더듬더듬. 선생님은 작가와 교직을 겸하는 같은 종의 운명에 일단 우호적이시다. 되었구나!



우선 가장 진부한 수순으로 여쭙는다. 사상계에 발표된「후송」으로 등단하실 때, 이미 대학원에 진학하셨고 또 교직에 계셨다 했는데, 어떻게, 왜, 글 쓰는 일에 투척하셨나요? 보통 말하는 60년대 당시 특유의 미학적 자의식에 관해서는 제 개인적으로는 경외감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문학이라는 것에 기꺼이 자기 삶을 던지고 싶은 욕망, 그 근원적인 생의 충동”을 무한히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왜 썼냐? 그냥 썼다. 그렇게 말씀하실 차례다. 정성들인다고 치장해서 내놓은 우문에 현답으로. 말씀 대신 『달궁가는 길』을 가리키신다. 정년을 기념하여 문단과 학교의 동료와 후배들이 출판한 책이다. “서정인의 문학세계”라는 부제답게, 선생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는 편집이다. 머리글에도 나와 있다. “삶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려던 기획 의도를 방해하고 간섭한 큰 훼방꾼이 바로 선생님이셨다고. 그런데 “술친구 서정인”만 예외로 삶을 들려준다. 글쓴이의 기우와는 달리, 절대로 옥에 티가 아니라 청자연적의 여유다. 여기 부록에 읽어 보세요.


예,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일보에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시리즈로 볼 때보다는, 여기 이 책에 “왜 써?”라는 제목으로 나오니 더욱 선생님 말씀답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평생의 업이 된 글쓰기에 뛰어들었어요. 중학교 때 몰래 읽었던 연애소설이나 삼국지가 재미있어서,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칭찬에 고무되어서. 어쩌면 내가 잘났다는 것을 과시할 방법이, 아니,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나타낼 방법이 달리 없어서, 또는 어떤 갈증 때문에, 어쨌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판이 벌어졌다” 그 비슷하게 말씀하셨지요. 왜 쓰냐? 그동안 그저 글을 써왔다고.


누구는 노름 빛을 깊기 위해, 누구는 혁명가와 그 혁명가가 처형한 왕의 아들 둘 다를 위해서 시를 쓰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며, 심지어 가슴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썼다는 바이런, 목이 잘리는 것같이 느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시를 썼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를 (다들 이름 없이) 예로 들면서도, 자신은 “그냥” 썼다고 하셨다.


그렇습니다. 말을 하래서 하지만, 문학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글 쓰는, 쓰려는 사람들은 이유가 없습니다. 좋아하니까. 갑자기 다소 고조된 어조이시다. 최근에 어떤 상업학교 교장선생님이 말하기를, 자기 학생들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것입니다. 생산성이 높으니까. 문학이 뭐 필요하냐. 시, 소설 그런 것은 뭘 생산해 내는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필요 없다, 그러는 겁니다. 이래서야 되겠어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써야 합니다. 하긴 또 어떤 학생이 그럽디다, 아무개작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쓴다고, 써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정도라야 작가의식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만 합니다. 하지만 주먹을 쥐고 혁명에 나서는 것과, 주먹을 쥐어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것, 그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는 의식의 변화를, 행동가는 행동을 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작가라면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만드는, 볼 눈을 가지게 하면 됩니다. 문학이 왜 필요한가,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선생님께선 무엇을 쓸 것인가를 보기 위해서 눈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눈이 있으되 못 본다. 마음을 비우면 물건의 덧없음이 보인다. 욕심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럼 마음이 욕심입니까?


세상 많은 일들이 별들의 운행처럼 틀림없이 필연일 것이오. 허나 내게는 우발적인 사고들로 여겨져요. 그러니 나는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지요. 왜 쓰느냐는 이 캄캄한 미로를 벗어나기 위해서고, 어떻게 쓰느냐는 그 길을 찾는 것. 이 세상은 그것의 의미를 그것을 볼 눈을 갖춘 사람에게, 그 갖춘 정도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볼 눈”을 우연히 제가 공부하는 독일 작가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보는 눈을 가진 사람에겐 사물이 뚜렷해진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물을 통찰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며, 그러면 언어를 수단으로 통찰하고 그 안으로 꿰뚫어보는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전후 독일 작가로는 처음으로 7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인데, 그는 인간적인 “촉촉한” 눈을 권했습니다. 라틴어의 “유머”가 독일어로는 “습기, 촉촉함”을 의미한다고.


열두시, 아니 『아홉시 반의 당구』, 그 작가 말이군요? 영역된 것을 읽었지요. 누구라도 작가는 우선 자신이 잘 보아야 합니다. 사물을 볼 수 있는 것, 독자에게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쓰는 이유와 또 목적이 되겠지요, 만일 목적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데 어떻게 쓰냐? 이것은 나의 평생 문제입니다. 쓰기는 항상 새로운 실험이다, 이 말은 나로서는 형식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형식? “형식과 신념”이란 제목으로 선생님의 한국문학창작상 수상소감이 있다. “형식과의 싸움은 끊임없는 실험으로 나타나지만, 이때 실험이라는 말은 처음 해 본다는 뜻이고, 그 처음이 마지막입니다.” (“처음의 낙하산도 반드시 펴져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작동한다고 믿는 신념” 아 그런 것을 가질 날은 멀구나. 큰일이네.) “달을 그리되 달을 그리지 않고 구름을 그리는 것은 구름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달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고 인용하신 것이 얼마나 어렵고 오묘한 주문인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구름을 그려 달을 그린다?


형식미라면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강」은 “현대소설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단편소설 중의 하나”로 정평이 났지 않습니까? 절제된 문장, 단일한 인상과 효과, 통일된 구성, 인생의 한 단면을 통찰하는 능력 등으로, 교과서적 단편소설 미학의 최고봉으로 격찬되고 있는데, 그것을 대표작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누구든 떠올릴 『달궁』입니까? 혹은 시기별로 등단작「후송」이나 「강」을 거쳐, 『달궁』의 고지,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등을 통해 어떤 특징과 차이 또는 변화를 의식하십니까? 아니면 그저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미한테 어떤 자식이 제일 예쁘냐는 식이지만.


속으로는 내가 처음 빠져든 『달궁』이라 하시길 기대한다. 그런데 잠시 머뭇거리신다. 그게 굳이 말한다면 「뒷개」, 그리고 「벌판」… 그 언제 목포엘 간 적 있었어요. 종점 분위기, 싸한 비릿내가 늘 코끝에 머무는… 그런 것 잊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뒷개지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읽고 해설해 놓은 것만 따라 읽어요, 다른 것들 좋은 것 많은데….


‘뒷개’는 선생님의 회상에 잠긴 듯한 설명으로 어디 부둣가로 상상이 되지만, ‘벌판’은 어디 멜까. 선생님 작품들도 다 모르면서 여기 선 것이 부끄럽다. 「뒷개」는 『달궁』의 “바다 횟집” 분위기를 떠올립니다, 아닙니까? 그런데 (저부터도) 사람들은 한번 명이 나면 몰리는 경향입니다. 「강」은 아예 학교 숙제의 표적이 되었고, 예컨대 「후송」만 해도 이명증 같은 병리현상이 개인적인 불행의 수준을 넘어서 어떤 사회적, 정치적 성격을 수반하는 고통의 표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사람들은 병약함이나 정신이상을 더 이상 낭만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병의 도덕적, 정치적 알레고리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달궁』의 사설조는 아예 서정인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독창성은 문체만이 아닌 어휘들에서도, 예컨대「무자년 가을 삼일」의 “무자년”, 또는 “움직이는 계단”을 “도롱태”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 “얼음과자”를 빨고, “영상띄”를 감상하는 군상들, 어찌 보면 구태의연한 말들을 자연스럽게 쓰시고.


이번에도 대답 대신 『문화예술』(문예진흥원, 2003년 10월호)에 실린 선생님의 글을 보여주신다. “한글로 글쓰기: 한국말은 한국인의 운명”이라는 글의 시작부분은 이렇다.


“나는 우연히 한국말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운명이 되었다. 나는 한국 땅에 태어나서 한국말과 만났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과 만났다. 그것이 준 것 말고는 나에게 세계가 없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나의 삶을 결정했다. 나중 커서 외국어를 배우고, 제이, 제삼 외국어들과 접하자, 그것들은 나의 첫 말이 만든 세상을  넓혔다. 외국어 하나를 알면, 세계를 하나 더 사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운명으로서의 한국말을 쓰는 사람과 그냥 한국말을 쓰는 사람은 다르겠다 싶다. 부끄럽게도 나는 후자에 속한다. 



글읽기 - 글쓰기


그러기에 영문학 공부와 한국말로 글쓰기를 병행하시는 것이 득인지 실인지, 혹시 상충이 될 것인지, 실로 그것이 궁금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영문학 공부한 것을 나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대학 진학 할 때, 그래요 영문학을 택한 것은 아마 고등학생의 눈으로 읽던 우리 소설에서 뭔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야겠지요. 손창섭의 「비오는 날」같으면 참 좋았는데 (나는 「잉여인간」을 읽었는데), 별로 많지가 않았어요. 지금은 달라요, 연전에 순천대학에 문예창작과에 교환 교수로 갔을 때 박지원의 「호질(虎叱)」 같은 것도 잘 번역되어 나와 있어서 함께 공부했어요. 그러나 50년대 당시엔 국문학은 별로다 그리 생각했었지요. 하여간 노문학과가 있었으면 좋을 걸 그랬어요. 그래 영문과 밖에 없었어요. 독문학, 불문학은 고등학교 때 안 배워서 어렵고. 여담이지만, 참 독일어 그렇게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독일어가 어렵다 하셨습니까? 아주 우연입니다만, 어제 한 밤중도 넘어서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독일어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클레멘스 브렌타노라고, 낭만주의 시인입니다, 영화는 물론 불행한 결혼생활을 다룬 우울한 이야기이지만, 그가 시를 쓰다가 일어서서 읊어 내려가는 독일어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환상적인 한편 내면의 황홀과 고통을 함께 노래하는 시라서 그랬겠지만,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이제 제가 독문학에 대한 평생의 짝사랑을 접고 나의 언어로 나의 글을 쓰겠노라 작정한 이 시점에서. 저의 배신에 대한 시위였을까요? 하필이면 존경하는 소설가를 만나 뵙기 꼭 열두 시간 전에 들려오는 아름다운 독일어.


톨스토이 또한 제대로 원 텍스트로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았겠어요? 어쨌거나 영어로 제정러시아의 소설들, 프랑스 소설들을 읽었지요. 텐느의 불어저서 『영문학사』도 영어로 읽었지요. 제 자신은 전공하는 영시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을 영어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외국문학을 읽어야 합니다. 무엇이건 우선 많이 읽어야지요, 그런데 많이 읽는다는 것은 주체성을 그르칠 우려가 있지요. 그래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 하지 않습니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지요. 학이불사 즉망 (學而不思 則罔)이라….


허나 요새는 내용 없이 떠들기만 하니, 사이불학 즉태 (思而不學 則殆)라는 말씀이시군요. 선생님의 경우, 많이 읽을수록 상아탑에 들지 않고 평범한 인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고, 외국문학을 읽을수록 한국적이 되셨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래요, 내가 영어로 영문학 작품을 넘어 다른 책들까지 읽으니 얼마나 좋아요? 지금은 톨스토이를 노문학하는 분들이 제대로 번역해 놓았더군요.


톨스토이를 좋아하십니까?


좋아하는 작가는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의 두 사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고골이고, 좋아하지 않는 작가는 헤밍웨이입니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보면, 미국 신문 파리 특파원과 함께 피레네 산맥 계곡에서 낚시를 하다가, 국경 너머 스페인에서 투우 구경을 하는 여자가 나오지요. 가만히 세어보니 여러 남자, 마지막에는 아마 투우사와 놀아났습니다. 그게 원 소설인지. (우와, 내가 중학교 때 『해』를 소화 못한 것이 그냥 무식이 아니었구나.) 요즘 잘 팔리는 젊은 여자 작가들, 다들 재치 있고, 너무 멋있고, 세부에 대한 풍부한 자료도 돋보이고, 감각도 세련되어 훌륭합니다만, 집요함, 깊이, 객관성, 자기 아닌 딴 사람 이야기, 폭, 능청떨기나 시침 떼기, 뭐 그런 것이 조금 아쉬운 것 같습니다. (나는 젊지도 않고 잘 팔리기는커녕 이름도 없으니 다행이다. 내게 나무라심은 아니니까.)


그런데 선생님, 저희 미술대학에 오래 전에 화가교수가 역시 화가인 아버지의 훈계로 교수직을 그만둔 경우가 있었습니다. 화가는 오로지 제 그림만 그려야지 무슨 남 가르칠 시간 있느냐는 호통에 고개를 숙였다는 후문이.


화가가 미대에 있었는데 그랬나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교수, 혹은 교수작가를 ‘주말작가’라 그러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시간 없어 못쓴다? 글쎄요, 이점은 확실합니다. 부지런만 하면 가르치면서도 쓰고, 게으르면 시간 많아도 못쓴다. 간결하고 단호하시다.


하긴 다시 독문학 얘기라서 죄송하지만 조금 안다는 게 그거라서, 에.테.아 호프만이란 역시 낭만주의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평일에는 판사요 기껏 약간의 음악가, 일요일 낮에는 그림을 그리며, 저녁이면 깊은 밤까지 매우 위트 있는 작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불안한 사회상황이나 혹은 필화사건으로 법관직을 잃으면 시립극장의 악장을 많았을 수준이었고, 모차르트를 존경해서 세례명을 아마데우스라 개칭까지 했답니다. 아무래도 옛사람들이 전인적인 경우가 더…….



어리석은 질문


선생님 작품을 읽다가 갑자기 느낀 점입니다만,「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에서 미로와 마이욜을 왜 혼동된다 하셨을까 의아했습니다. 마이욜 하면 우선 ‘누드의 조각가’를 떠올리지만, 중요한 것은, 로마 시대 이후 종교적 테마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첫 번째 조각가라는 점 아닙니까? 그가 표현하는 여성은 더 이상 신화 혹은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여성은 그 자체로 여성이었으니까요. 그는 “우리들의 시대는 이미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했습니다. 같은 작품에 이런 구절, “믿음심판은 물론, 기독교가 시들해지고, 종교 자체가 희미해지자, 이상하게도 평화가 왔어요. 종교가 가르친 것이 종교가 없어지자 실현된 셈이지요. 종교가 사랑과 평화를 가르친 것은 그것이 가는 데마다 미움과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종교가 살신성인했어요.”라는 대목도 함께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특히 시대적 초미의 관심사와 관련하여 종교관을 살짝 여쭤 보고 싶어집니다. “대 이라크 전쟁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라 규정하는 이슬람의 관점 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실지? 지금 종교가 성해서 싸움이라고 보십니까?


사실은 선생님께서 최근에 한 신문에 연재하시는 칼럼을 본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다. 선생님은 이 비극을 “크게는 문명의 부딪힘이고, 작게는 종교의 다툼일 것이다. 이 전쟁은 미국의 9.11 때 정해진 것이 아니고, 아주 먼 옛날, 어쩌면 예수와 마호멧이 태어날 때부터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쓰셨다. 가슴이 아프게 공감되는 부분이다.


기독교인인가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신다. 기독교를 우선 우리 정신의 말살 때문에 좋아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영문학교수로서 기독교문화를 열강하곤 했지요. 기독교문화 없이 영문학이 없으니까. 또 기독교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내가 말할 수 없이 존경하는 것, 그것은 겸손과 굴종(사실은 단 한번 영어를 쓰셨는데 ‘휴밀리에이션’이라고, 정확한 번역인지 모르겠다)입니다. 하나는, 온갖 바라는 것 해주십사 기도 후에,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둘은, 무조건적 신 앞에의 굴종.


그러나 이 본질적 기독교는 원시기독교 공동체에서만 가능했다고 보신다. 현대의 타락한 기독교를 배제한 톨스토이의 원시기독교, 혹은 함석헌씨의 무교회주의를 말씀하신다. 현대에는 ‘기독교적’이란 말이 침략적, 자본주의적, 미국적 변주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양심적인 기독교 사회는 존재한다고. 예를 들면 에즈라 파운드, 미국 시인이면서 『사서』를 탐독하고 이탈리아에 살고, 미국 군인들을 일컬어 “루즈벨트와 그의 유태인들," “유태인들과 그들의 루즈벨트"한테 속아서 전장에 나왔다고 반전방송을 했던 노익장에 대해. 역사적으로는 미국 건설 초기의 중농주의에 대한 중상주의의 승리와 그 이후의 주류를 형성한 세력들에 대한 심도 높은 강의가 펼쳐질 기운이 넘치신다.


양심적인 서양인이 하필 매우 동양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파운드 비슷한 연배였던 극작가 브레히트도 노신을, 그의 제자들의 경우에는 『아큐정전』을 개작하기도 하고.  


그건 중국의 고전을 뒤집는 방향이잖아요. 오히려 헤세 같은 반전주의자도 동양사상에.


예 물론, 다른 이데올로기에서도 ‘양심적'이라 할 서양 작가들의 경우 동양을 또는 소위 제3세계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일 뿐입니다. 독일 시인 에리히 프리트는 유태인으로 「들어라, 이스라엘이여!」라는 시를 발표했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을 불시에 사막으로 내몬 이스라엘에게 경고였어요. “우리가 박해받을 때/ 나는 너희 중 하나였다./ 너희가 박해자가 되면/ 내 어찌 그대로 있을 수 있나?// [중략] 패배자들에게 너흰 명령했다/ “신발을 벗어라!”/ 속죄양들처럼/ 그들을 황야로 내몰았다.// 황야의 모래 위/ 그 맨발의 기억은/ 너희들 폭탄과 장갑차의 흔적 보다/ 더 오래 가리라.” 양심적인 서양인들은 사해동포주의로 돌아갈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호전적인 조국에 무조건적 순응하지는 못하는 것이 시인들의 생리입니까? 그렇게 조국에게서 곤욕을 치른 파운드 외에도, 선생님 작품 속에 “현대 영어시인 천오백 명을 상대로 조사해봤더니, 스물일곱인가가 신경파탄을 일으켰고, 열다섯이 자살했고, 열다섯이 술중독됐고, 열넷인가 전사했고, 감옥에 간 사람도 근 스물이…”라는 대목에서도 멍해졌습니다만.


꼭 시인보다도, 의식이 강하다 보면 충돌하는 경우가 흔하지요. 대중매체의 언어와 싸우는 것도 그렇고. 거기 보면….


다시 가리키시는 “한글로 글쓰기”에는, 말을 잘 못하면 방송이나 텔레비전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지론이 쓰여 있다. 예를 들어 ‘피해’는 ‘해를 입다’이니 ‘피해 입다’는 잘 못이다. “이런 글 백 번 써 봤자, 방송매체에서 태풍 매미가 입힌 피해라고 한 번 말하는 것을 당할 수 없다.”


축구 못하면 운동장 안나오는 것이 기본이지요. 그것을 지키니까, 인맥이고 학연이고 다 무시하고, 축구 잘하는 선수만 뛰게 하니까 월드컵 때 일이 되었지요. 그러니 한국말 못하면 방송 안나와야지요. 예상보다 단호한 어조로 한글의 오용을 나무라신다.


그 글에는 ‘미국 들어간다’는 틀렸고, ‘미국 나간다’가 맞다고 쓰여 있다. 맞다. 미국 나가계실 때, 하버드와 털사 대학에 몇 년 씩 계실 때, 영시 공부와 한글로 소설쓰기 두 가지를 다 하실 수 있었나요? 속으로만 물었다. ‘미국 나간다’라는 표현을 써보기 위해서.


그 밖에도 속으로만 물은 것이 많았다. 선생님이 애지중지하시는 오래된 책들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고 싶은 마음도 속으로 접었다. 출입문과 창문을 빼고는 모두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 소장서 중에는 영어권 책은 차치하고라도, 고전의 영역본들이 모두 19세기 책이다. 『오위디우스의 변신과 헤로이데스 선집 축자 행간 번역』(필라델피아 1861년), 『‘에픽테투스 전집』(보스턴 1865년), 『유리피데스의 비극들』(뉴욕 1875년, 1863년), 다 열거할 수가 없다. 텐느의 불어 저서 『영문학사』(뉴욕, 1879년)와 『실러의 생애』(런던 1883년)를 영역본으로 가지고 계신다니. 하지만 무엇을 더 욕심내랴! 『용병대장』의 후속이자 결미부라고 하신 『말뚝』을 선물로 받았지 않은가.


겨울 해는 일찍 진다. 강아지들이 새삼스레 짖는다. 선생님의 배웅으로 문간을 나서도 여전히 이방인이니까. 솜씨 소문난 전주의 저녁밥, 곁들일 소주 한잔을 아쉽게 사양한다. 이름모를 한국 차의 향기가 옷에 베어있으니 되었다. 『달궁』의 산실 그 서재를 혹시 모를 두 번째 방문을 위해 다 헤집지 않고 아껴두길 잘했다. 사람들이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은 그곳에 심장을 떼어놓고 오기 때문이라고 하질 않는가. 믿거나 말거나.          


                                        2003년 12월 30일 화요일


 소설시대 7호 , 한국작가교수회, 평민사 2004. 9-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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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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