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시2019. 9. 1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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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교수신문>으로부터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30회 걸쳐 가벼운 칼럼을 쓴 일밖에 한 것이 없는 나에게.
2년이 지나서,  <방송통신대학 위클리>에 역시 가벼운 글 하나를 쓰고서 생각이 난다.

장편 <흐릿한 하늘의 해>가 출판되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으로 "놀랍게도" PEN문학상을 받았을 때......

 

‘글쓰기’ 절실해 떠난 강단 … “오늘 가능한 일에 몰두할 뿐” - 교수신문

때로는 한 국가의 지식인으로서 냉철하고도 날카롭게, 때로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이 나라, 이 사회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교수가 있다. 현재 에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을 연재하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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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분하고 기적 같은 受賞 … 쉽지 않지만 예술의 길 계속 갈 것” - 교수신문

2017 PEN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의 영예는 서용좌 전 전남대 교수에게 돌아갔다.에 인기 연재칼럼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을 집필했던 서 명예교수는 이화여대 독문학과 1회 졸업생으로, ‘글쓰기’에 좀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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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6. 1. 4. 18:50
‘적은 것이 곧 많은 것’ 비워야 채운다는 것을…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⑩ 닫는 문, 여는 문

2016년 01월 04일 (월) 15:24:23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행복이란 원하면 늘 불행하다. ‘그 누군가에게서도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기에 행복하다’는 셰익스피어는 새해를 맞아 하나의 돌파구를 준다. 밖에서 열어줄 문을 닫음으로써 안에서 열 수 있는 문이 생김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 하나, 밖으로부터의 문을 기꺼이 닫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에서는 대도시를 탈출해 농촌으로 향하는 이들을 본다. 그들은 광고가 소리치는 소비유혹을 ‘사뿐히 즈려밟고’ 땅으로 향한다. 늘 그들이 부럽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을 못 채우고 학교를 떠날 때 막연하게나마 그런 꿈이 있었다. 사람은 1차 생산에 종사할수록 의미가 있다고 믿고. 물론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믿음과 실천 사이의 거리는 하늘과 땅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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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5. 12. 26. 23:32
내눈엔 은혜, 남눈에는 특혜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⑨ 평가의 계절
2015년 12월 23일 (수) 13:08:01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12월’은 12월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살아온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12월은 살벌하다. 한 학기의 긍정적 열매가 아니라, 지옥문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성적평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의 입장에서도 평가란 피를 말리는 주제다.

 

그해 가을학기는 악몽으로 시작됐다. 개강 전날 오른쪽 귀가 먹통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찾은 이비인후과에서는 그것을 응급상황이라고 했다. ‘우측돌발성감각신경성난청’(한국질병번호 H91.2) 그 병은 학교를 탈출(!)하는 일로 이어졌다. 2주 입원하고 2주 순연하면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 막상 학기말이 되니까 숨이 막혔다. 

성적제출 기한이 임박해서야 기말시험을 치렀고 그날, 세 과목의 답안지 봉투를 모아들고 어둑해진 3층 복도를 빠져나오는 동안 갑자기 방망이 하나가 내 머리를 쳤다. 무슨 쓸모 있는 강의를 했다고 이 학생들을 줄세워 평가해서 그들 인생에 복과 화를 더하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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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5. 12. 9. 18:14

 

끊임없이 지배하려 ‘세뇌’ … 자신 위해 ‘맞설 용기’ 가져야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⑧ ‘사페레 아우데’ 감히 알려고 하라
2015년 12월 09일 (수) 14:05:05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유난히도 빨리 가을이 저물었다. 사라져가는 가을 꼬리를 잡고 매달리면 수많은 가을들이 딸려 나온다. 1968년 베를린의 늦가을, 서른 살짜리 여성이 공식 석상의 단상에 걸어 올라가서 현직 수상의 뺨을 때리는 장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만세 삼창처럼 ‘나치, 나치, 나치’를 외쳤다. 숨은 나치 전력자들을 찾아내어 진상규명(?)에 전력을 기울이는 활동가였다. 

당시 독일의 수상은 나치 12년 통치기간에 당원이자 전쟁 중엔 외무부 라디오 정책국 부국장으로 활동했었고, 패전과 더불어 체포돼 18개월간 수감된 전력이 있었다. 전후 독일, 서방측의 온건한 탈나치화 프로그램에서 4급 ‘단순 가담자(Mitlaufer)’ 판정을 받아 면책증명서를 지니고 새 인생을 시작한 식자층은 넘쳐났다. 

변호사, 기민연 연방의원을 거쳐 수상 직에 오른 65세의 거물 정치인에게 모욕을 가한 동기는 간단했다. 독일민족 일부는(특히 청년층은) 나치가 독일의 정상에 서있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함이었다고. 순간 세상이 들끓었다. 

오늘 이 이야기는 그 정치적 동기와 파장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작가가 그 여성에게 파리까지 붉은 장미다발을 보냈고, 다른 한 작가는 그 일을 비난했던 일을 말하고자 함이다. 꽃다발을 보낸 이유는 “작가로서의 행동의 철저한 연속선상에서, 1944년 공습에서 죽은 어머니, 나에게 나치를 증오하라고 심어주셨던 어머니 때문에, 또한 나의 세대, 살아남았지만 교사, TV편집자, 출판편집자 등의 직을 잃을까 염려해서 ‘꽃의 힘’으로 그 여성에게 공감을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세대 때문”이었다고 했다.(하인리히 뵐, <Zeit> 196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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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5. 12. 7. 23:56

王命 앞에 눈이 다 따갑구나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⑦ 적상산 단풍
2015년 11월 25일 (수) 10:47:48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가을은 깊었는데 기차여행이라는 꼬드김에 넘어가서 단풍 구경을 나섰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대체 이런 나들이가 얼마만인가 아득하다는 생각을 했다. 몇 번 안 되는 여행 중에 인상 깊기로는 단연 개성 방문이었다.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 수속을 하던 일, 짐을 엑스레이로 통과시켜놓고 ‘녀자출구’에 섰던 기억이 새롭다. 검색대에 서면 사람들은 무조건 불안하다. 카메라는 따로 들고 서있어야 했는데, 배율을 확인받은 디카만 허용됐다.
언니 뭐해, 긴장되는 거야?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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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5. 12. 7. 23:54

출석체크 만만히 봤다가 큰코 다친 사연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⑥ 출석부
2015년 11월 09일 (월) 15:00:09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검열도 모자란 것인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라는 화두가 온 나라를 집어 삼키는 블랙홀이 돼있는 동안에도 수능일은 어김없이 닥쳐오고 대학 입시지옥은 아가리를 한껏 벌리고 있다. 정작 대학은 재정지원이라는 홍당무를 든 국가(정부)의 위력에 떠는 초라한 신세로 위축되고 있다. 대저 대학의 감사와 관련해서 출석부까지 회자되다 보니, 학문의 위상이란 것이 어디까지 내려가야 멈출 것인지 그 끝이 있기나 한지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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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5. 11. 5. 10:47

교수신문

 

 

역사왜곡의 유불리, 따져나 봤나?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⑤ 새옹지마
2015년 10월 26일 (월) 13:11:44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나는 사람들이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말할 때마다 싫었다. 매사를 결과적으로 유불리로 따져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내 인생 새옹지마 한 줄기가 떠오른다. 때는 아주 옛날로 거슬러 간다. 

   
  ▲ 일러스트 돈기성  
 

제1공화국 시절, 어떤 포병장교의 졸업식에 오는 대통령을 위해 화동들이 동원됐다. 열 명쯤으로 기억에 남은 여중생 아이들이 꼬까옷 한복을 특별히 차려 입고 큰 군용차를 타고 비행장에 도착했다.

 

[계속]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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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5. 9. 22. 22:13

보따리 꽁꽁 봉해버리고 ‘고려장’ 택했다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② 보따리장수
2015년 09월 15일 (화) 13:24:53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최근 대학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의실이 ‘취업준비반’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평가지표들이 강의실을 꽁꽁 옭아맨 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강의현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원로급 교수의 생생했던 강의실 풍경을 재조명해 고등교육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평가와 경쟁 속에 대학이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본다.

 

   
  ▲ 일러스트 돈기성  
 

여름의 정점에서 산업수요에 맞게 학사구조를 조정하는 대학에 정부가 많게는 300억원까지 지원하겠다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 나왔다. 무슨 종합선물세트도 아니고, 명실공히 대학은 취업준비과정이 될 모양이다. ....[계속]

둘, 보따리장수

 

 

여름의 정점에서 산업수요에 맞게 학사구조를 조정하는 대학에 정부가 많게는 300억 원까지를 지원하겠다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 나왔다. 무슨 종합선물세트도 아닌 것이, 명실 공히 대학은 취업준비과정이 될 모양이다. 대학생은 취준생의 다른 이름이다. 대학과 교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기준이란 곧 취준생의 취업률이다.

오늘날 합리적이라는 개념은 같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일컫게 되었다. 강의라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강사는 필히 교수가 되어야 한다. 같은 교수로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필히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성과급에는 돈만이 아니라 자긍심도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저자 문제나 표절 논란이 필히 따른다. 합리적인 교수라면 각각 하나씩 논문이 아니라 둘이서 두 개의 공동논문을 제출하는 것이 좋음 - 원래는 ‘선함’인데 여기서는 ‘유리함’이다 - 을 안다. 보직 또한 이타심과 봉사점수라는 두 개의 염기서열이 ‘창조’해낸 가치 중의 하나다.

그래 보았자 그 성공은 표면적 평가요, 잠정적인 판가름일 뿐이다. 강단에 서는 사람들 마음속 저 깊은 곳에는 허무의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교수란 기껏 보따리장수임을 확인한다. 유용한 첨단지식을 파는 경우라 해도, 토플러의 말마따나 그것들은 어느 시점에서 ‘무용 지식(obsoledge)’이 된다. ‘검색’은 살인적 권위로 지식사회를 뭉개고 말았다. 와중에 문학사나 강의하다 보면 이 낡은 물건짝을 팔러 다니는 신세가 처량해지곤 한다. 그걸로 밥을 먹으니 조용해야 하는가, 그건 다른 문제다.

보따리장수라 하더라도 제 물건이 무엇인가는 알려야 할 것 아닌가. 내 고민은 내가 파는 물건이 외국문학이라는 데 있었다. 문학작품은 인류의 최고의 자산들 중의 하나이고 거기에 시대와 국경은 없습니다. 옳다, 그렇게 강의할 수 있었을 동안은. 시금석이란 변한다고, 학생들이 대들면, 시금석은 불변이므로 시금석이라고 우겼다. 학생들은 점점 (독일)문학이 주는 양분을 흡수하지 못했다. 훌륭한 ‘스펙’을 위해 집어 삼킨 유용한 지식들로 영양과잉 상태에 이른 뒤로는, 문학 같은 것은 ‘갈아 먹여도’ 못 먹었다. 독일문학 작품들을 갈아 먹인다는 말은 번역본으로 읽는 것, 정신만 읽어도 되니까. 한국작품을 전채요리로 맛보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다가 또 꼬인다.

“일본이 그렇게 일찍 망할 줄 몰랐었다”라니, 그게 변명이 됩니까? 영원할 줄 알고 충성했다니, 더 기가 막히죠!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하사 우리의 자랑.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깼다”고 칭송을 바쳐요? 가미카제가 되어 승천하라니!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생명파라뇨! 생명이 뭔데요? 그렇게 대드는 학생으로 강의는 그만 삼천포로 빠진다. 그래도 교수를 당황하게 하는 학생들은 훨씬 나았다.

보따리 풀기 사정은 악화일로였다. 1919년 베를린에서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결성 된 이래 ‘프롤레타리아극장’은 노동자의 의식고취를 목적으로 놓고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폴크스뷔네(민중무대)’과 경쟁을 벌였지요. 그 무렵 우리나라에선 ‘카프’라는 약자로 ……. 한국인 독문과 학생들이 카프와 카프카의 구별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은 어떤 정보에도 무감각을 드러냈다. 교수가 풀어놓는 보따리 내용물은 오직 기말고사 답안지 작성에 필요할 뿐임을 그 눈빛들을 보면 안다. 아예 눈빛을 볼 수 없는 시기가 닥쳐왔다. 어떤 보따리를 풀어도 그들의 관심을 돌릴 길이 없었다. “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아란 하늘”이 아니라, 턱없는 환상에 젖어있다. 높은 학점, 최고의 스펙, 빠른 취업이 가져다 줄 무한행복에 목을 맸다. 더러는 ‘열공’한답시고 강의를 녹음하는 강도짓도 서슴지 않았다. 세계가 한 뭉텅이로 글로벌스탠더드에 입각해서 글로벌경제로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나는 그들의 경제마인드를 어찌할 길이 없었다.

결론은 스스로 보따리 싸는 일, 자발적인 고려장이었다. 사형집행일을 앞둔 사형수들에게도 기어코 ‘미리’ 자살하려는 강한 욕망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많은 자살자들은 사회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느낌 때문에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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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4.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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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15. 9. 22. 21:50

 

교수신문에 2주에 한 번 연재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가 아니라

늙은 날의 허망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수를 향한 조소 속에도 고민… ‘나는 왜 강단에 서나’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①하이에나
2015년 09월 01일 (화) 11:32:10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최근 대학구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의실이 ‘취업준비반’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평가지표들이 강의실을 꽁꽁 옭아맨 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강의현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원로급 교수의 생생했던 강의실 풍경을 재조명해 고등교육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평가와 경쟁 속에 대학이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본다.

 

   
     

 

 

하나, 하이에나 이야기

 

장례식은 누구의 장례식이거나 슬프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장 잔인하게 짝을 버리는 방식은 죽음으로써 버림이라 하는가. 죽음 앞에서 사람은 진지해진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라도 살아있던 때를 그린다. 그렇게 한 교수의 죽음이 내게 거의 죽어있던 그때 그 대학시절을 떠올려 준다는 건 인생의 흔한 아이러니의 하나일까.

총장직선제 문제가 정말 문제가 되었다. 한 교수가, 시인이 목숨을 내놓고 지키고자 한 것이 어디 그것뿐이었을까 만은 그것이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들 한다. 그가 지키고자 한 가치는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란 원래의 이름으로 숨은 쉴 수 있을 풍토였을 것이다.

300의 대학들에서 이루어지는 기껏 “대중교육”(이해찬)을 위해 취미생활은커녕 마음 편히 밤잠을 자보는 것이 소원일 대부분의 교수들은 거대 자본의 무한권위 밑에서 어떤 정체성을 지닐까. 학사는 난 이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석사는 공부를 더 해보니 모르는 게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 박사는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교수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내가 얘기하니까 학생들이 다 믿더라는 위인이라고 놀리는 글이 교수들의 코앞에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밖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의 생명은 첫째가 공부다. 차원 높은 공부를 위해 연구비를 지원 받는 것은 돈 뿐 아니라 명성의 문제이므로 어떤 재단의 연구비이건 가릴 겨를이 없다. 아니, 만에 하나 의심스러워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 학문과 재단은 무관하다는 성스러운 원칙을 고수하면 된다 라고. 더구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문학 전공자들은 연구비 지원에서 밀리고 따라서 명성에서 밀리고, 그렇게 주눅이 들었다. 기업들이 세운 종합대학들의 ‘총장’과 실력자들은 곧 효율성 제고의 이름으로 효용성 낮은 학과들의 통폐합을 추진했다.

해방 후 대학이 설 때에는 쏟아져 들어온 서양문물의 범람 속에서 외국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은 매우 보람된 일로 여겨졌었다. 누군가는 인류보편의 문화가치를 매개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숭배의 대상은 물질로 한정되어갔고, 부의 축적과 무관해 보이는 학문은 차츰 계륵이 되어갔다. 인문학이란, 독문학은 더더욱, 합리적인 판단 기준들에 위축되었지만 모르는 척,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뿐인 나는 그것에 매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몸서리를 쳤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내 손가락들은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했다. 꼬리가 있음직한 자리에 정말 꼬리가 자라나고 수북이 털마저 돋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순간 의자를 튕겨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울었다. 그렇게 미쳐갈 수도 있다는 공포에 떨며 물을 틀어놓고 울었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숨 쉴 수 있기 위해서 나는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썼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다시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낄 때까지 꼬리 걱정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서 살아남는 일, 행동이 아닌 비겁한 도망이었다.

행동은 다른 형태다. 말을 해도 말이 아니거나 소통 부재로 숨 막히는 오늘, 명색이 지식인 사회의 본산이자 원점인 대학을 관리 통제하려는 국가(실은 정부)의 권력에 맞선 고 고현철 교수는 행동으로 저항했다.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주역’이어야 할 교수집단을 무력화하는 과정”(김명환, 창비)에 죽음으로 맞선, 그런 것이 행동이다. 그의 영결식엔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나는 심각한 의혹에 빠진다. 내 글을 쓴다고 해서, 손가락 다섯이 분명하고 꼬리도 없으니까 안심해도 될까. 학문에서 문학으로 내 식탐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아, 그 ‘표절 사태’ 이후엔 행여 그 생채기에서 흘러나오는 뭔가 부산물 찌꺼기라도 즙이라도 기대하며 침을 흘리는 나는 여전히 하이에나다.

첫사랑 독문학에 꽂혔던 그 하이에나 시절이 오히려 그리운 밤이다. 인간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는 하이에나 짓거리도 일순간 멈추고 함께 세상을 고민했던 그때가 그립다. 공동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었던 ‘촌스런’ 그 시간들엔 하이에나들도 제법 사람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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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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