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6. 9. 6. 21:10

       
‘좋은 게 좋은 것’하다 무기력에… ‘노년의 복병’은?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12. 자기방어
2016년 09월 06일 (화) 10:22:58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퇴임 한참 지난 선생을 선생이라고 가끔 찾아주는 제자들이 눈물 나게 고맙다. 퇴물을 통해 소유를 늘릴 가능성이 전무한데도 말이다. 집에 저녁밥이 끝나야 나서는 것을 알고 이해하기에 약속 시간과 관계없이 늦게 나타나도 반겨주는 것은 더욱 고맙다. 

문제는 의사소통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가 너무 딸린다. 귀엽게 혹은 무자비하게 줄여서 꼬아서 쓰는 어휘 때문이 아니라, 생각을 따라잡지 못해서다. 젊은이들은 멀리 본다. 이렇게 말하면 다른 늙은이들이 발끈할지 모르겠지만, 나이 들어 현명하리라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감상에 젖어서는 그것을 인간적이라고 착각하기 십상인 것이 늙어가는 증거 중의 하나다. 누군가는 부모를 비극적으로 잃었으므로 그저 짠하다거나, 설마 그것이 자식에게 평생 면죄부라도 된다는양 하면서 스스로 인간적이라고 믿는다. 감상적이면서 또한 편파적이다. 잘 된 사람에게만 너그럽고, 못난 사람에게는 부모 없이 커서 그런다고 버럭 핀잔이다. 

물론 사람은 다소 감상적인 면도 있어야 사람이다. 잣대로 재는 것처럼 사는 건 로봇이지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좋은 것이 좋지…’ 하고 넘어가려는 비겁함이 노년의 복병인지 몰랐었다. 요즘 내가 바로 그런 무기력한 상태이다가 젊은이들을 만나면 화들짝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러고는 기가 죽는다. 좀 더 공부해둘 걸, 공부하는 것을 놓지 말 걸. 새로운 일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귀를 쫑긋해야하나 보다.

“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성공을 보면 사드가 필요한가 싶어.”

“사드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용이죠. 그게 왜 우리나라에 필요해요? 북한은 만일의 경우 스커드 미사일이나 장사정포로 우릴 공격합니다. 우리에게 사용될 것은 그런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아니라고요.” 

“뭐, 뭐? 무슨 미사일?”

“참, 선생님은. 아무리 군대 안 갔다고 그걸 몰라 물으세요. 300km, 400km짜리 스커드미사일이면 한반도 평정이죠, 맘만 먹는다면. 것도 600발이 넘는다는데. 북한이 만일 기어코 장거리 미사일을 남쪽에다 대고 쏠 거라면 아주 고각으로 발사해야 할 텐데, 사드라는 장비는 그 보다 훨씬 저각으로 요격을 하는 놈이라서 쓸 데가 없어요. 사드 40~50발 정도로 600발을 다 막을 수도 없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죠. 사드를 미군부대에 설치해놓고 미군이 중국과 러시아를 감시하는 형국이라서, 중국도 러시아도 자신들을 위해 반대하는 거죠, 북한 편을 드는 게 아니고요.”

“거참.”

“전쟁 중이었죠, 우리 군의 작전지휘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넘어간 것이.”

“그거야 전쟁 중이었으니. 하나의 적을 염두에 두고서 작전지휘권이 통합될 필요가 있었겠지.”

“바로 그 말이죠. 휴전이 언젠데, 여전히 유엔군사령관이 최고 명령권자라니까요. 전쟁이 끝나고, 끝난 건 아닌가, 암튼 1953년 가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그대로 굳힌 것이 문제였겠죠. 몇몇 대통령들의 노력으로 평시작전통제권이라도 가져온 게 1994년, 우리들 입학한 해였어요. 그게 다예요, 전시작전통제권까지 가져오려는 대통령이 있었는가 하면, 줄다리기 있잖아요, 고싸움, 그래요, 고싸움하다 아랫동네 줄패장이 윗동네 편들어 살짝 줄을 놓아준 꼴이잖아요.” 

“고싸움 말 나오니 한번 보고 싶다. 지금도 보름날 하는 거지?”

“예, 칠석동에요. 줄패장이 그날 책임지는 사람이 삼사백 명이예요. 고를 메는 멜꾼은 마을 장정들이죠. 거기에 꼬리 잡고 나대는 여자들 각각 칠팔십은 매달리죠. 거기에 농악대도 서른은 되고 횃불 든 횃불잡이도 여남은…… 수도 없어요. 또 깃발들 기수들도 댓 명. 그런데 줄패장이 명령한 번 잘 못 내리면 그냥 패하는 거죠.”

“그런데 왜 여기서 고싸움이?”

“줄패장이 작전권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그 말입니다. 2007년 양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우리 군이 전시작전권도 회수한다고 합의를 했었지요, 2012년 4월 날짜까지 잡아서. 그러던 것이 2010년 한미정상회담에서는 2015년으로 미루어졌어요. 그나마 2014년 안보협의회에서는 도로 아미타불, 또 한없이 연기되고 만 것이니 분통 안 터져요? 안보환경이라니, 한국군의 군사능력이라니, 북한 핵에 대한 우리의 대응능력이라니…. 말이 좋지요, 어느 세월에? 누가 그것을 판단해서?” 

“전시작전권 회수하겠다는 대통령은 어찌 되었나요? 날짜 받아 연기하자는 대통령은 누구며, 아예 영원히 연기하자고 도로 갖다 바친 대통령은 누군가요?”

젊은이들을 만나면 기가 죽는다. 내 등이 굽기 시작함을 안타까워하면서 자꾸 등을 펴주려 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아는 게 없이 늙었다. 많은 늙은이들이 아는 게 없이 늙어서, 오래 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진짜 자기방어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젊은이들 살기만 더 팍팍하게 생겼다.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