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6. 12. 18. 23:06
不義·不正 휩쓸려간 교수들…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17. 인식과 행동 사이
2016년 12월 01일 (목) 10:44:49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옛날에, 청소년기에, 가슴을 떨게 했던 한 문장이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생각, 즉 사유의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개념은 순수존재로서의 순수의식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라는 의식은 존재하지만, 그 문장이 완전하지 않음은 한참 뒤에야 터득하게 됐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다는 의미로서 의식에 가깝다는 것.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 오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인식에 가까운 이 의식은 의식할 무엇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 즉 대상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의 육신이 우리가 섭취하는 것의 총체이듯이, 우리의 정신은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의 집합이다. 그러다보니 먹고 싶은 것을 좇아 먹이를 구하듯이, 인식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서 인식하려는 본능이 발동하게 된다.

자유의 개념에 걸면, 우리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무한 자유에 내맡겨진 존재다.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라는 카테고리를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되는 일, 심지어 생물학적인 질서를 거스르는 동성애자가 되는 일도 가능하다. 이슬람이 될 수도 이슬람을 저주하는 십자군이 될 수도, 아예 무신론자가 될 수도 있다. 되어도 좋다. 다만 무엇이 되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안과 더불어 그 책임도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뺀 그 극단에 가면 곡학아세의 상태가 되는가 보다. 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 세상 사람에게 아첨하는 학자가 많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오늘 한국의 수치스런 민낯을 만들어낸 장본인들 중에는 학자 출신이 적지 않다. 폴리패서라고 불리는 모두가 그러할 리는 없지만, 상당수의 빼어난 폴리패서들이 정치권력 앞에서 곡학아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사전에서 설명하는 '정치'란?

정치의 속성이 학자를 삼켰나? 궁금하면 사전을 찾는 버릇대로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집 서재에 최초의 영어사전이라는 로버트 코드리의 『알파벳 순서로 된 단어일람표』(1604년)는 아니지만 새뮤얼 존슨의 『영어사전』(1755년) 사본이 있다. 언젠가 ‘귀리’ 항목에서 너무도 쓰라진 진실을 발견하고 씁쓸하게 웃었던 일이 생각났다. ‘잉글랜드에서는 주로 말에게 먹이는 곡물,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람의 생계를 담당한다.’ 그래, 18세기에는 그랬구나. 어휘를 정리해주는 사전이야말로 시대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정치’란 옛날에는 어떤 뜻이었을까 찾아보기로 했다.

정치적이라는 단어 ‘political, politic’의 뜻에 ‘artful, cunning’이라는 의미가 있고 보면, 예로부터 정치란 교묘하고 교활한 어떤 것을 포함하는가 싶다. 그래서 고결하게 학문에 정진하던 학자들도 정치판에 가면 교묘하고 교활한 면모를 갖게 되나 보다. 그러니까 고결성을 지켜내는 첩경은 아예 정치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학자로서 정치적 야망이 있다면 자신의 고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촌철의 수행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권의 과잉 호의에는 검은 그림자가 따라오게 돼 있다. 불의와 부정의 블랙홀로 휩쓸려 들어간 일부 교수들의 행태를 신자유주의의 덫이라고 이데올로기 탓만 할 수는 없다. 이데올로기의 타당도와 선악도를 생각하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일이 바로 학자요 교수의 책무이거늘. 

이것은 그 나름대로 영향력을 가지는 작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최근에야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칠레의 밤』을 읽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상이라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 수상연설에서 “암흑 속에 머리를 들이밀 줄 알고, 허공으로 뛰어내릴 줄 알고, 문학이 기본적으로 위험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글”만이 그 품격을 말할 수 있다고 해서 흠칫 놀란 적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첫 페이지에서 말한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언행에 책임을 질 도덕적 의무가 있다. 심지어 자기 침묵, 그래 그 침묵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공부했던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생각났다. 볼라뇨에 비하면 반세기 전인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권력자에게 굽히며 자신을 바치는 작가는 강도보다도 살인다도 더 악랄한 수법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강도나 살인에는 명백한 법조항이 있고, 선고받은 죄인에게는 법이 속죄의 길을 열어준다. 결국 산수 계산문제처럼 딱 잘라서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그런대로 얼마만큼은 죄의 정산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반을 자행한 작가는 그의 언어가 말하는 모든 전체를 팔아넘기는 것이며, 불문율 앞에 던져진 까닭에 처벌도 불가능하다. 작가는 오류를 범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비록 나중에 가서는 오류였음이 밝혀질지도 모를 무엇인가를 발설하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순수한 진실임을 믿고 있어야 한다.”

교황의 무오류성을 예외로 하면, 모든 인간은 많건 적건 오류 덩어리다. 오류란 사유의 혼란이나 감정적인 동기 때문에, 또는 부주의나 태만의 결과로서 발생한다. 선의의 당의정을 입힌 악행은 악행일 뿐이다. 자신의 속성을 배반하는 것은 거짓이다. 어미가 어미임을, 의사가 의사임을 배반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정치가, 학자, 작가, 예술가 등이 자신을 배반하는 일은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파장이 크다. 소위 폴리패서들이 학자의 본성을 포기하는 순간 곧 ‘교묘하고 교활한’ 정치가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검은 세상의 블랙리스트

그렇게 학자들이 정치판에 묶여있는 동안 후안무치의 일들이 온 나라를 삼켰다. 문학예술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과 함께 믿거나말거나 명단마저 돌아다닌다.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작가들을 존중한다. 세상이 검을 때는 블랙리스트에 들어가야 하얀 사람이라는 증명이 된다. 블랙리스트에도 못 들어간 나 같은 회색분자가 가장 비열할지도 모른다. 문학이 세상의 고결성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문학이란 기본적으로 위험한 직업이라는’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식과 행동 사이 불안한 공간을 뚫고 나가는 의지를 갈구할 일이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는 생각한다.’ 비판은 누구나 한다. 인식이 아니라 행동에 이르렀을 때만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벌써 옛날에 괴테의 파우스트는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라고 외쳤지 않은가.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3230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6. 11. 22. 01:22

대학마저 집어삼킨 권력 … 악명 높던 공평 다 어디갔나?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16.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

2016년 11월 16일 (수) 12:18:53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알 수 없는 것이 선거인가 보다. 부도덕의 집합으로 보이던 인물도 자유 천국이라는 국가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 지난 대선에서 우리나라도 국정원 관련 엄청난 의혹 속에서 가까스로 이긴 대통령을 낳았다. 가까스로 이겨도 권력은 통째로 주어지는데, 아뿔싸, 우리는 “개인사도 홀로 챙길 줄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을 뽑았었나 보다. 그러니 국사와 역사를 어찌 감당했겠는가.

예쁜 옷 갈아입혀주면 입고, 우아한 미소 지으라면 짓고, 가끔 레이저 광선 쏘라면 쏘고. 나머지는 개인사와 국사를 통틀어 전권을 위탁했으니,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그들이 권력을 쥐었으렷다. ‘권력이란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의사소통이 갖는 합의를 통해 나오는 힘’(한나 아렌트)일진대, 저들의 손에 바쳐진 권력은 온 국민들을 향한 폭력이 되어버렸다.

 

이화여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 위탁정치의 전횡은 방방곡곡에서 깃발을 날렸다. 그 하나, 대학입시에서 휘두른 폭력은 모든 청소년과 그 부모들을 슬픔과 한탄에 빠뜨렸다. 대통령이야 자녀가 없으니 부모 마음을 몰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 상상을 절하는 국정농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2013년 5월,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여자대학 체육과학부에서 체육특기자 종목을 갑자기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승마가 포함됐다. 한 특정 여학생이 전국 승마대회에서 2위를 한 다음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2위에 불만을 품은 여학생 측의 명령(?)으로 승마협회가 곤욕을 치르고, 문체부 공무원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지목돼 경질됐다. 이상한 촌극이었다.

이듬해 그 속편은 경악의 수준을 넘었다. 우리들 가슴에 지금도 현재형으로 가라앉고 있는 잔인한 4월의 세월호 참극이 공교롭게도 그 여학생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의혹의 와중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대통령께서 세월호 난 그 다음날, 체육개혁 확실히 하라고 오더(지시) 내려왔다”는 차관의 전언이 드러났다. “세월호 난 그 다음날”, 아직도 에어포켓에 살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을지도 모를 수백명의 생명들을 버려둔 채, 최고 권력자가 ‘조카’를 위해서 체육개혁이나 명령하는 이런 세상에선 아무도 살아서는 안 된다. 아니, 그 폭력에 우리 모두 이미 죽었다.

무소불위의 폭력이 된 권력은 대학마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한 산학협력의 한 부품으로 전락시켰고, 이화여대 집행부도 굴했나 보다. 2015년도 체육특기자 모집 요강 중 어떤 자격도 없던 학생이 면접일에 금메달을 걸고 입장한다. 월등한 면접점수는 정성평가 항목이니 법적 책임을 면한다고 치자. 그 메달은 원서접수 마감일 이후의 단체전에서 받은 것이라서 입시 요강에 명백히 어긋나지만 ‘승마공주’는 버젓이 입학한다. “돈도 실력이야…”라고 거들먹거리는 못된 아이, 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폭력 속에서 잘못 키워진 아이.

그 아이(?)가 짓밟아 뭉갠 결과는 참담하다. 하긴, 입학 후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않은 것, 차마 서술하기 곤란한 행동들이 사실이라고 해도, 일탈 그 자체는 개인의 자유요 권리다. 그에 합당한 결과를 인정하고 정규교육을 박차고 나가면 그만이다. 젊은 모두에게 꿈틀거리는 욕망일 수도 있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예술가들 중에는 상식에서의 일탈을 승화해 인류를 구원하는 예술작품을 남기기도 했지 않은가. 문제는 그 지저분한 일탈을 만회한답시고 권력을 이용해 학원을 난도질해 입시고 성적이고 뭣이든 “대박”을 터뜨리려는 짓거리다. 우리는 그 폭력의 저열함에 분노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옛날의 이화여대는 정직성이 생명인 곳이었다. 1960년대 학부에서는 심지어 무감독시험이 가능했던 곳이다. 교수는 시험지를 나누어주고 나간다. 학생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독하면서 감독교수가 없는 채로 시험을 마친다. 커닝을 정직성 훼손으로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번 부정직하다고 낙인찍히는 일이 벌어지면 그 다음 학교생활은 끝이었다.

사무적으로도 봐주기 없는 경직에 가까운 공평성으로 유명했다. 거의 악명 수준이었다. 예컨대 1980년대, 지방에 거주하는 졸업생이 취업을 위해 증명서들을 떼러 간다. 방학 동안의 관례라고, 신청서를 써서 제출하면 다음날 아침 일괄 결재가 나기 때문에 다음날 받으러 가야한다. 지방에서 온 사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한 사람만 편의를 봐 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다른 사립대에서도 비슷한 서류를 떼는데, 사정을 듣더니 시간을 정해주며 다시 오란다. 그런데도 모교를 원망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을 믿었으니까.

지금은 마땅히 사라졌지만, 금혼규칙도 누구에게나 공평했었다. 같은 동기인 인문대 다른 학과 학생이 4학년 2학기를 마친 겨울에 현직 교수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총장 왈 “O교수님, 부인 졸업장 어디 쓰실 일 없으시죠?”라고 농담처럼 던졌다는 말이 법이었단다. 학칙에 결혼하면 퇴학이었고, 결혼식은 졸업식 이전이었다.

 

대통령이라는 ‘허명’

 

공평할 때 우리는 불편함이나 억울한 정황도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 이 수치스러운 현상들은 공평과 정직과는 몇 광년은 떨어져있다. 다만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낳은 결과일 뿐이라서, 온 나라가 치를 떠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범죄, 딱히 살인을 하지 않았다지만 보통사람들 전부를 ‘혼’을 죽여 버린 그 죄상들은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또 수백 번 죽어야하니까.

그 폭력의 정점에서 도덕적 권위와 국정 장악력을 다 잃어버린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한다.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아니요. 용서란 그 잘못에 합당한 구체적인 행동으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옷이 아무리 화려한들 그 옷이 맞지 않으면 벗는 것이 옳지요. 이름이 아무리 높은들 그 이름이 허명이라면 마땅히 내려놓아야지요.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6. 11. 22. 01:16

진짜 구중궁궐은 따로 있었으니… 모멸감의 폭발력을 진정 모르는가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15. 레미제라블
2016년 11월 01일 (화) 11:30:36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굳이 ‘불쌍한 사람들’ 또는 ‘비참한 사람들’이란 설명 없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레미제라블』은 지난한 소설읽기를 힘들어하는 대중들에게도 뮤지컬과 영화를 통해 깊이 각인돼 있다. 옛날엔 불쌍한 장발장이 감옥을 탈출해 더 불쌍한 코제트에게 꿈과 같은 인생을 선물하는 줄거리만으로도 감동을 주었고, 오늘도 브로드웨이는 소설 『레미제라블』 초판에서의 삽화를 내걸고 공연을 진행한다.

실제 인생이라면 막다른 사창가의 판틴이 꿈을 꿀 수나 있는가, 흙수저 에포닌에게 사랑이 가능이나 한가. 실제 인생에서라면 그릇된 규율에 반기를 든 장발장이 시대적 정의감의 화신 자베르 경감의 대립에서 반드시 승리할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왜 시대를 초월하는 감동을 주는 것일까.

빅토르 위고는 젊은 시절에는 전형적인 근왕파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나 1848년 혁명을 정점으로 확실한 공화파가 됐다. 혁명의 열매로 탄생한 제2공화국 의회에서 위고는 선출직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의 실용적 개혁주의에 적극 찬동했다. 그 대통령이 스스로 쿠데타를 통해서 황제임을 선언하는 일을 상상이나 했었겠는가. 실제로 혁명을 ‘물러버린’ 대통령의 쿠데타는 억지로 나폴레옹의 가계를 잇겠다던 그 황제는 그렇게 역사를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그 지점에서 위고의 반대는 시작됐고, 시민군을 조직해 투쟁하다가 체포돼 추방당했다. 

『레미제라블』은 그렇게 스무 해 가까운 추방 생활 중에 쓴 역작이었다. 그의 공화주의 사상은 더욱 심오해졌고, 민중과 민중의 실패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졌던 것이다. 작품 속 민중봉기 장면은 성공한 1848년 혁명이 아닌, 단 이틀 만에 진압돼 실패해버린 1832년 파리의 6월 봉기다. 바로 그 실패로 인해 더욱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리라. 

그대 듣고 있는가 / 분노에 가득찬 노래 / 굴종의 삶을 거부하는 / 우리들의 노래를 / 너의 심장소리와 / 북소리 울려 퍼지면 / 어둠 뚫고 새날이 / 밝아 오리라…… 

영화와 뮤지컬에서의 원제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혁명을 선도하는 학생회 지도자 앙졸라가 선창하고 학생회 회원들과 군중이 함께 부르는 노래다. 이 노래를 육성으로 들은 것은 아직은 여름의 혹서를 예감하지 못했던 초여름, 광주 5월의 달거리 공연에서였다. 어둠에 쌓인 무대를 손에 든 촛불만으로 밝히며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를 노래하는 김원중과 작은 시민합창단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환하게, 장엄하게. 이 마지막 곡이 끝나고도 한참을 무대며 객석은 움직일 줄 몰랐다. 

레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은 위고의 작품 도처에 스며있다. 또 다른 작품 『비참한 세월』에서의 광부들의 일상도 비참 그 자체다. “주인은 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빵이 모자라서 석탄을 깨물고 있었다. 우리는 [……] 일을 조금 줄이고 임금을 조금 낫게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총탄이다.”

임금 대신 퍼붓는 총탄! 현대의 한국어로 바꾸면 총탄을 세금폭탄 정도로 바꾸면 될까. 허나 세금폭탄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증세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쓰일 것이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 세금폭탄도 좋으니 제발 모멸감만은 주지 마시오! 21세기 한국의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말합니다! 

모멸감을 견뎌내는 일이 매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일상이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경찰의 물대포 직사와 관련된 실험과 디테일을 제 정신으로 볼 수 있었을까. 철판이 날아가는 방송 제작진의 실험보다는 유리도 안 깨진다는 경찰의 실험을 믿어야 하는가. 물대포 현장에서 쓰러진 응급환자의 수술을 집도한 교수는 ‘단순 외상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을 피력했었다. 결국 300일 넘게 의식불명이던 환자는 사망했고, 사인은 병사라고 작성된다. 의학을 모르는 우리는 의대교수의 전문가적 견해를 믿어야 한다.

경찰은 어떤가. ‘대한민국 경찰이 설정한 15bar는 안전한 수압’이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사망사고가 있어도 사과를 하는 것이 법적으로 어긋난단다. 법을 모르니 경찰의 견해를 믿어야 한다. 믿으라면 믿어야 ‘혼이 정상인’ 국민이 될 터인데!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혼돈의 시간을 견디어야 한다. 

모멸감은 증폭해 망연자실에 이르게 한다. 온갖 재단이다 법인이다 설립하기를 무슨 종이접기 정도로 해대는 ‘실세’는 우리를 모욕하다 못해 돌게 만든다. 오늘날에도 왕자와 공주가 버젓이 존재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시중드는 시종들이 즐비한데, 공주들이 동화에서처럼 순결하고 착한 성품을 지닌 것도 아니라면 어찌 하오리까. 진짜 구중궁궐은 따로 있고 정치는 수렴청정을 거치는 모양새라는데, 이를 차마 어찌 믿으오리까. 아뿔싸,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셨단다! 차라리 절대로 아니라고 부정을 하실 것이지, 그렇게 대놓고 국민을 능멸하시다니! 우리가 위임한 성스러워야 할 국가권력이 길거리에 그리도 너절하게 굴러다니다니!

레미제라블! 국가의 품격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삶의 근간은 불안하기만 하다. 불쌍한 사람들은 여전히 ‘임금을 조금 주더라도 일정한 일자리를 주시오!’라고 절규한다. 밥은 먹어야 하는데, 전망은 어둡다. 한국의 우상인 미국에서 최저시급을 올리겠다는 대선 선거공약에 그 반작용으로 생산비 절감의 묘수가 봇물을 텄다고 한다. 패스트푸드점 직원만 해도 36.5도의 온도를 가진 성가신 인간에서 무감각한 존재인 로봇으로 바뀔 전망이란다. 로봇은 원래 혼이 없으니 혼의 유무를 걱정 안 해도 돼서 좋아할 사람 많겠다. 인간을 로봇보다 저열한 위치로 끌어내리는 갑의 모욕질에 을의 모멸감은 도를 넘는다. 

그런데 ‘돈 있어 실력 있는’ 자들은 불쌍한 사람들의 가공할 힘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모멸감의 폭발력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밀폐된 공간, 썩은 가스의 압력은 철판도 뚫고 폭발하는데. 역사는 「민중의 노래」를 기억하라고 하는데. 무지해서 모를까, 겁이 나서 외면할까. 충분히 불행한 오늘, 그것이 알고 싶다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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