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11. 1. 1. 11:11

2011 신묘년 - 핑크빛으로 시작하고 싶은 모양이다.
흔히 말하는 어울리지 않는 색깔인 것을 고치고 싶나?
하루에도 몇번씩 울리는 새소리 벨은 서울에 사는 아들 며느리 손녀들의 인사다.
주말이 겹친 이번 새해에는 더 먼 곳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에서도 전화가 떠들썩하다.
6885마일 (11080킬로미터) 멀리에서 세배 동영상이 도착한다. 신기하다.

바로 그만큼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이 잠시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새해를 연다.
가솔들이 함께는 오지 못하지만, 딸아이 생일과 어머니 생일 사이에 다녀간단다.
뉴욕에 1월 21일 딸아이 생일을 함께 지내고, 광주에서 1월 31일 어머니의 생일을......
수빈 Chelsea는 자신이 할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한다.
"머리카락이 똑같아요. 팔도 똑같아요, 이렇게 길고, 부드럽고...... 똑같잖아요."

원래 그 아이, 손녀 수빈이 잉태되고 태어날 절기는 한치의 오차없이 할머니와 같았다.
아이의 출산예정일은 음력으로나 양력으로나 일치한 (그런 일은 평생 드물다) 할머니의 생일날이었다.  그래서 일순간 알았다, 아들의 첫아이는 딸일 것이라고.
왜?  1896년 생 어머님께서 첫 아들에게서 첫 손녀를 당신 생일에 보셨었다.
남편은 어머님의 막둥이로, 막내며느리인 내가 첫 아들에게서 첫 손녀를 생일에..... 볼 예정!
행복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내 며느리는 왕성한 활동 덕분에 예정일보다 미리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생일은 손녀가 며칠 더 빠르다.

미인인 엄마보다 아빠를 좀 더 닮은 수빈은 엄마보다는 할머니의 모습 쪽이라고들 한다

대신 엄마를 좀 더 닮은 그래서 외할아버지를 닮은 남동생 형빈 Charles에게 터를 팔았다.
형빈을 보고 있으려면 매 순간 심장이 덜컹거린다.

우빈은 날마다 할머니랑 함께 산다, 전화로.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곁에 감기는 아이다.
늘 엄마를 바라보았는데 다행히도 유치원을 좋아한다. 유치원에서 씩씩해졌다. 
쉬는 날을 싫어한다. 무엇인가 하고 있어야 된단다.

잘 생긴 아빠를 더 닮은 우빈은 그래서 할아버지를 닮았다.
기분이 조금 언짢을 때 살짝 찌푸리는 미간까지 닮았다. 살짝 찌푸릴 때도 예쁘다.
대신 엄마를 더 닮은 발랄한 동생 성빈이와 다른 듯한 얼굴로 함께 깔깔거린다.

수빈-우빈-형빈-성빈,
네 손자손녀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늘도 어쩌면 대문을 열어보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아침에 경향신문을 꼭 오프라인으로 보고싶어하는 할아버지가 신문을 들여놓으면서 한 번 열었다.
오늘, 미리 생일축하 선물을 사러가자는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말린다.  
모처럼 큰(?) 액수를 생일선물로 내놓았으니 신사임당의 초상화 다발(?)로 간직해두련다고,
참 촌스런 희망사항을 말했다. 실은 무엇도 사고싶은 것들이 없어서다. 넘쳐서가 결코 아니다.
그냥 충분하다는 느낌은 무엇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맘도 어른이 되었나 싶다.
                                                                                                 (11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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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자료2010. 12. 31. 23:00

출판물 목록   1975~2010                                      
...................................... 이렇게 뭔가를 쓰면서 살아왔네!  
                                       사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 쓰기 위해 읽는 시간을 살아왔네!  
                                       헛살았네!  
   

  

I. 논문

- 석사학위논문:

   R. Musil에 있어서 Ulrich의 “가능성” 문제, 이화여자대학교, 1975, 43쪽.

- 박사학위논문: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구현된 시대의식, 이화여자대학교, 1986, 167쪽.

 

-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에 있어서의 순간과 현실에 대한 의미분석,『사대논문집』,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2, 제 8집, 31-51쪽.

-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에 있어서 대위법적 구성의 기능과 효과. 『사대논문집』,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3, 제 9집 41-58쪽.

- Heinrich Böll의 『Gruppenbild mit Dame』: 성취거부의 생활원칙. 『사대논문』,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4, 제 10집, 53-74쪽.

- Peter Weiss의 『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 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s zu Charenton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 연구: 시민사회의의 억압하에서 예술의 표현자유를 위한 실험 I.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4, 제 33집, 121-148쪽.

- 동 II.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4, 제 34집, 129-146쪽.

- Heinrich Böll의 『Das Brot der frühen Jahre』에 있어서 “Aussteigen”의 의미.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6, 제 36집, 123-149쪽.

- 페터 슈나이더의 『렌츠』연구 - 개념과 인지의 불일치, 『정천 강희영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삼영사 1989, 279-313쪽.

- 독일의 전후 상황에서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등장하는 부적응의 인물들의 기능,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0, 제 45집, 161-186쪽.

- 기구화된 사회 속에서 원시기독교정신의 회복: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 「무르케 박사의 침수집」,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2, 제 49집, 462-485쪽.

- 하인리히 뵐의「흔적없는 사람들」의 사제의 침묵: “소수에 대한 이해”,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4, 제 52집, 197-230쪽.

- 하인리히 뵐의 유토피아의 가능성,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6, 제 60집 (37권 2호), 247-267쪽.

- 하인리히 뵐의 「검은 양들」과 47동인의 정신,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7, 제 64집 (38권 3호), 230-250쪽.

- 하인리히 뵐의 작가 정신: 예술가-시민간의 정체성문제,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9, 제 71집 (40권 3호), 288-321쪽.

- 에.테.아. 호프만의「모래귀신」의 서술자, 『텍스트언어학』, 한국텍스트언어학회, 2000, 제8집, 103-134쪽.

- "Was ist der Mensch ohne Trauer?" Heinrich Boells Stimme klingt weltweit.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1, 제1집, 21-40쪽.

- 인도주의와 미학의 긴장: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에서 본 서술전략, 『독일문학』,서울: 한국독어독문학회 2002, 제 84집 (43권 4호), 214-234쪽.

- 행동으로서의 부적응 - 하인리히 뵐의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이병애(편), 『독일문학의 장면들: 문학, 영화, 음악 속의 여성』, 문학동네, 2003, 361-386쪽.

- 창작과 사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나타난 언론보도의 문제,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5, 제5집,  169-194쪽.

- 길항작용에서 정체성 추구로 - 하인리히 뵐의 『어느 광대의 견해』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 주는 남자』에서 세대 간의 문제,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2008, 제 108집 (49권 4호), 119-143쪽.

- 「하인리히 뵐과 쾰른」,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9, 제9집, 13-28쪽.


II. 논저

- 『하인리히 뵐 연구』, 한신문화사 1989, 290쪽.

- 『텍스트 언어학적 분석에 의한 에.테.아. 호프만의 「모래귀신」』, 한국문화사 1999,

                             454쪽. [공저: 브루노 로스바흐]

- 『도이칠란트 • 도이치문학』, 전남대학교출판부 2008, 1198쪽.

                                   * 2008 문화관광체육부 우수도서 선정

- 『창작과 사실』,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509쪽.

III. 역서 

- 「가난한 시절의 빵」 (원작: 하인리히 뵐), 『언어의 세계』 제 4집, 청하 1985, 255-348쪽: 『닫힌 시절의 사랑』(도서출판 삼문, 1994)으로 재발행.

-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원작: 하인리히 뵐), 삼성출판사, 1986, 289쪽.

- 『문둥병』 (원작: 하인리히 뵐), 전남대학교 출판부, 1986, 98쪽.

- 『장벽을 넘는 사람』 (원작: 페터 슈나이더), 도서출판 들불, 1991, 169쪽.

-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카프카의 편지 1900-1924』 (원작: 카프카), 솔출판사 2004,

                      1088쪽.   * 2004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선정


IV. 창작

단행본

- 2001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 도서출판 이유, 272쪽.

- 2004 연작소설집 『희미한 인(생)』, 그림 조윤기, 도서출판 이유, 256쪽.

- 2010 소설집 『반대말 ․ 비슷한말』, 전남대학교출판부, 324쪽.

문학잡지 게제

- 2002 중편 「태양은」, 『소설시대』 4호, 한국작가교수회, 240-282쪽.

                                     * 한국작가교수회 2002년 신인상 수상       

- 2003 단편 「부나비」, 『소설시대』 5호, 한국작가교수회, 65-90쪽.

- 2004 단편 「건들장마」, 『한국소설』 11월호(64호), 한국소설가협회, 150-172쪽.

- 2005 단편 「춤꾼」, 『소설시대』 9호, 한국작가교수회, 174-189쪽.

- 2006 단편 「행복한 수요일 아침」, 『소설시대』 10호, 한국작가교수회, 111-133쪽.

- 2006 단편 「오늘과 이별하다」, 『PEN문학』 가을호(80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185-206쪽.

- 2007 단편 「마리아 막달레나」, 『월간문학』 5월호(459호), 한국문인협회, 166-181쪽.

- 2007 단편 「조사」, 『소설시대』 12호, 한국작가교수회, 190-212쪽.

- 2007 단편 「콩나물」, 『문학저널』 11월호(51호), 문학저널사, 107-124쪽.

- 2008 단편 「네 번째의 죽음」, 『한국소설』 9월호(110호), 한국소설가협회, 230-252쪽.

- 2009 단편 「쪽지 붙였음」, 『PEN문학』 가을호(92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176-196쪽.

- 2010 단편 「정체성」, 『소설시대』 17호, 한국작가교수회, 80-102쪽.

- 2010 단편 「병든 고향」,『흐름 위에 멈춰 선 그늘』 , 한국여성문학인회 6.25 60주년 기념 특집, 246-248쪽.

- 2010 단편 「쇼」,『광주문학』 겨울호,


에세이 등

- 2002 칼럼  「전일시론」, 『전남일보』,

                          성장  5.27.

                          오~필승 코레아 - 신화와 현실 6.25.

                          노블리스 오블리제 7.22.

                          우리의 골목대장들 8.19.

                          한가위 유감-우리를 스산하게 하는 가을 9.16.

- 2002 에세이 「입시지각생의 운동화 끈」, 『우리 어디에 서있어도』, 이대동창문인회,
210-213쪽.

- 2003 에세이 「어머니가 되세요!」, 『FRIENDS 5월호』, 월간프렌즈, 2003.

- 2003 에세이 「천재와의 만남」, 『꿈꾸던 것들은 아직도 꿈인가』, 이대동창문인회, 

                    95-98쪽.

- 2004 에세이 「오프라인」, 『그대 안의 풍경』, 이대동창문인회, 257-260쪽.

- 2004 탐방 「서정인 선생님 서재 탐방기 - 영어로 글읽기와 한글로 글쓰기」,

                   『소설시대  7호』, 한국작가교수회, 9-20쪽.

- 2005 에세이 「내 딸의 어머니」, 『눈물향기의 어머니』, 이대동창문인회, 253-257쪽.

- 2005 에세이 「교집합과 합집합」, 『문학사상』, 11월호, 284-288쪽.

- 2006 에세이 「내적 자유」, 『만남』, 이대동창문인회, 268-272쪽.

- 2006 에세이 「움직이는 긴 그림자」, 『문학공간』, 9월호(202호), 19-21쪽.

- 2007 에세이 「정신의 귀족」, 『123명이 말한다 정연희 - 미운 오리새끼』, 개미출판사,

                       84-87쪽.

- 2007 에세이 「구멍난 옷」, 『내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 이대동창문인회, 211-215쪽.

- 2008 에세이 「눈이 있었던 것」, 『맛, 멋, 그리고 향기』, 232-235쪽.

- 2009 기행 「그림자 도시」, 『소설시대』, 15호, 186-209쪽.

- 2009 에세이 「평행선」, 『사랑은 아무나 한다』, 이대동창문인회, 181-184쪽.

- 2010 에세이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사랑에 세든 사람』, 이대동창문인회,

                       200-203쪽. - 2010 에세이 「도마뱀」, 『문학공간』 12월호(253호), 40-42쪽.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0. 12. 31. 16:46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남자는 첫사랑이지만 여자는 마지막 사랑이라고 - 그렇게 남자들이 말해놓고서 여자들의 망각의 묘기를 비웃곤 합니다. 망각은 양심을 접는 것과 같은 의미일 때가 많아서, 여자들은 양심이 덜한 족속으로 폄하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바닷물 한 움큼만큼,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라 해도 파도가 밀려오다 빠져 나가듯이 어느 때는 코앞에 다가와 눈을 떠도 감아도 그 자리에 있다가는, 또 언젠가는 슬며시 핏속으로 숨어드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내가 잊을 수 없는 것들은 당신에겐 아무렇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도 걸러내는 기억들은 제 나름일 테니 말입니다. 고운 차 거르는 체 마냥 촘촘하며 일정한 그물망이라 해도 우리의 기억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누가 들으면 웃을까. 늘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이를테면 아무렇지도 않은 산자락 성긴 돌 틈으로 삐져나온 연초록 풀들 같은 하찮은 것들입니다. 또는 여름이 시작되고 2층 창밖으로 짙푸른 나뭇잎들이 무성해지는 이맘때면, 바로 이맘때 만났던 새 새끼들이 되살아납니다. 정확하게 큰 아이가 약혼식을 위해 잠시 집에 머물었다가 간 다음날이었습니다. 무심코 아이들 방 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발견한 것인데, 날렵한 동작으로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이상한 일이었죠. 어느 결에 둥지를 튼 놈들은 놀랍게도 알을 낳았던 것입니다. 아파트 나뭇가지에. 스무날? 한 달 정도? 유난히 맑은 여름날을 뒤 베란다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그놈들 사는 양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새보다는 큰 것이 그래도 참새 모양이라 참새목 되새과 혹은 멧새과 쯤에 드는 새이리라 추측했답니다. 그렇게 흔한 새이지만 아무도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뒤적여보았던 백과사전에서 일러준 대로라면 3~5개의 알을 낳는다더니만 정말 딱 4개의 알을 낳았더이다. 그 다음은 누군가 정성들여 관찰해서 TV에 올려주는 그런 과정들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것을 덜 화려한 색깔로지만 프레임이 없는 실 공간으로 바라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침조석(!)으로 뒤 베란다 나가기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는 재미라니, 방안 퉁소 서생으로 살던 터에 쏠쏠한 재미였습니다. 사람들은 앉은 자리 뭉개지도록 눌러 앉아있기만 하던 사람이 왼 종일 촐랑대던 일로 즐거워했고, 더러는 놀렸답니다. 하여 그 여름은 더위라거나 짜증 같은 아름답지 않은 단어는 우리 집에서 사라졌더랍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아름다울 수는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정말 상쾌하리만치 서늘한 날 아침 밥상. 밥상이라야 가볍게 풀 썰어놓고 빵 뜯어먹고 그랬을까요? 아님 그날따라 젓가락을 들었던 감촉이 살아납니다. 밖에서 자지러질 듯 하는 새 소리 사이로 알 수 없는 요란한 소리들이 날아와서 우리 모두는 기겁을 했습니다. 후다닥 튀어 일어나서 뒤 베란다로 내달은 나는 정말 기절할 것 같은 광경에 시간이 정지했다고 느꼈습니다. 저쪽 새둥지에서 두 나무 째를 건너온 바로 코앞이 전쟁터였던 것입니다. 그 네 마리 새끼들이 첫 비행을 하면서 그것이 곧 둥지를 떠나는 날인 줄 그때서야 눈치를 챘습니다. 누가 예전에 야생의 새를 키워보기나 했어야 말이지요. 그런데 한 마리씩 한 가지씩 날아오르려는 새끼 새들에게 저승사자가 나타난 것 때문에 어미아비 새들이 단말마의 울음을 울었던 것입니다. 주차된 차량들 사이를, 더러는 벌써 움직이는 차바퀴도 겁내지 않고 기식하던 주인 없는 고양이가 곧 영양식을 발견한 것이지요. 새끼들의 추락을 기다리는, 아니 소리로서 겁을 주어 추락을 유도하려는 고양이와 어미아비 새의 대결장이었습니다.

아아 안 된다, 아가 힘 내거라, 어서.

이 몹쓸 도둑고양이, 악마! 사라지지 않음 내가 쪼아 줄 테다.

네롱~ 하면서 달콤한 먹이를 향해 불을 뿜는 고양이도 질 기세는 아니었지요. 글로 쓰자니 여러 줄이지만 사건은 불과 몇 초였을까요? 어쩌자고 나는 젓가락을 든 채로 아파트 계단을 내달렸습니다. 아무 신이나 끌고 화단에 내려서선 고양이를 내쫒았지요. 평소라면 기분이나 나빠할 뿐 눈도 주지 않으려했던 그 고양이놈을. 상황이 너무도 아슬아슬했지만, 얕은 가지로 출렁이던 새끼와 뛰어 오르려던 고양이의 서커스가 원안대로 끝나고 상황이 종료되자, 난 그만 털썩 주저 않았지요. 흙에 앉아서 올려다보니까, 마지막 한 놈이 맨 윗가지를 정말로 날아오르더니 저만치 떨어진 큰 나뭇가지로 옮겨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젓가락 한 짝만 들고 계단을 기어올라 들어온 나를 식구들은 더욱 놀려댔습니다. 내가 뛰어나간 뒤로는 내 소리까지 가세해서 정말 한판 굿이었다는군요. 새 소리 고양이 소리야 비록 생사의 투쟁이었다고 하지만 자연의 소리였겠죠. 그러면 내 목소리는? 그렇지 않아도 소프라노로 분류되는 목소리로 정말 무진 악을 다 썼더랍니다. 교양? 평소에 목소리 크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다 새침이었던 게지요. 급하니까 정신이 없더랍니다. 알 수 없는 나라 말로 새 새끼들에게 주문을 거는가, 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새란 놈들은 진정 그들이 태어난 자리를 기억할까요? 그해 여름 어느 날엔 뜬금없이 앞 베란다의 가녀린 창살에 한 놈이 턱 앉아 있었다는 일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그 놈이 그놈일 거라고 수선을 떨며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저만치 담장 쪽에 앉은 놈들도 꼭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기색이었단 말입니다. 더구나 이듬해에도 때로는 해를 걸러서도 심심치 않게 그 예쁘지도 않은 소리로 찌이찌이 울어대는 새들이 우리 집 주변을 날아와 앉곤 한답니다. 창살 안쪽의 꽃잎을 한참 동안이나 쪼고 있을 때도 있답니다. 그러니 그놈들을 잊을 새가 있겠냐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을 새록새록 불러내주지 않더라도 물론 잊지 못할 일들이 늘 있지요. “언어란 꿀이 빠져버린 벌집처럼 거죽뿐인 줄을 알면서도 그 안에 어느 한 순간의 제 마음이라도 담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렵니다.” (오자 포함, 어느 작품의 인용입니다) 같은 쪽지 글을, 아니면 지구 속 마그마로 녹아들고 싶다는 마성적인 언어를. 아니,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요 진실은 언어 이상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던 순간들을. 순간들은 부서지기도 녹기도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순간들을 잠시 버릴 뿐입니다.

......................................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사랑에 세든 사람』, 이대동창문인회, 2010, 200-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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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