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07. 6. 30. 23:30


조 사

 

                                  소설시대 2007

 


오늘 길 떠나시는 시인을 찾아 서둘러 날아온 ‘쑥국새 울음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봄날, 우리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하는, 존경해 마지않았던 OO OOO 선생님, 제자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잃은 마당에 감히 조사를 읊어 바치고자 하니, 서러운 마음 그지없어 눈앞이 깜깜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단발머리 소녀들로 스승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솔방울만 굴러도 깔깔 웃고, 낙엽이 떨어지면 눈물 떨군다는 소녀시절. 바로 이런 봄날, 뻣뻣한 검은 말총머리를 휘날리시며, 휘날리는 머리카락 따라 고개를 끄덕이시며 들어서신 국어 선생님. “아야!” 그렇게 정겨운 목소리로, 그러나 완벽하게 우리말 우리글 공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 


우리가 이 영어 세상에서 우리말을 사랑하며, 이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 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은 스승님께서 우리들 때 묻지 않은 영혼에 심어주신 ‘우선은 국어 사랑의 정신’과 나아가서는 ‘자중자애의 숭고한 가치’ 덕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친구들을 서로 사랑하고,  심지어 사투리까지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타인이 나보다는 자신을 사랑함을 이해하고, 행여 자신을 사랑하는 타인을 못해도 자신만큼은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자신에 걸맞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 외에는 세상살이에 달리 첩경이 없다고 깨우쳤습니다.


스승님은 우리의 꿈을 높게 이끄셨고, 많은 제자들이 보다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자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람이 적다.” ― 세상을 아시기에 미리 한탄하셨던 스승님. 우리 “보람이 적은” 여자제자들의 삶 속에도 스승님의 가르침은 면면히 흐릅니다. 서울에 가서 살건 미국에 가서 살건 전라도 아낙인 것 부끄러워한 적 없고, “툭시발 갓의 된장 맛”이라고, 구수한 인생살이에서 가정과 자녀의 인생에 알뜰한 간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빛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소금은 될 양으로 ―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조사는 그런데 읽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지들의 조사 틈에 여자제자들의 차례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우리 쪽 차례가 오면!” 준비는 해두자고, 공인으로 활동하는 동창이 하룻밤을 조르는 데 못 이겨 난생 처음으로 써 본 조사였다. 그럴 일이 생긴다면 읽기는 목청도 담도 좋은 동창이 잘 읽을 터였다.


허옇게 서있는 키다리 조화들은 즐비했다. 막상 발인은 예상보다 조촐했고, 선생님 살아생전에 모이던 제자들 수만큼은 어림없는 인파였다. 


*


문학 월간지에서 무명의 나에게 청탁이 왔다. 청탁이다, 적어도. 등단 몇 년이라고는 하지만 고료를 받고 쓴 작품이 몇이던가. 그 동안 썼다가 구겨둔 원고들을 서둘러 훑어 볼 일이다. 그때마다 중단된 글들도 처음엔 절실한 심정으로 시작했었던 것들이니까. 그 옛날, 윗목의 낮은 교자상 앞에 구부려 앉아 쓰고 또 쓰다가 구겨둔 원고지들은 다 사라졌다. 버리고 또 버려도 쌓이는 파지들을 자꾸 치운 까닭이다. 그런데 컴퓨터 속은 도둑놈 계집 치마폭이다. 켜켜로 쌓아두면 버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지 작업이나 사진 작업이 거의 없는 ‘우리의’ 노트북은 죄 한글문서들뿐이어서, 용량에선 넘칠 염려가 없다. 이런 무궁무진한 창고 덕에……


아니 그런 모든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미진한 몸이 청탁을 받으면 목욕재계를 하고 선을 하고 앉아서 명상에 잠겨도 모자랄 일인데, 대뜸 창고 속을 후비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 도는 문서들도 없지 않다. 적게는 8KB짜리에서 많게는 1,126KB까지 분량 또한 제멋대로이다. 드물게는 ‘열려라 참깨!’를 잃어버려서 바윗돌처럼 닫혀버린 파일도 있다. 노트북을 공유한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파일들이 있고, 암호를 걸어두었다가 그리된 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트북에 대한 권리에서 함께 쓰는 그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는 밥을 벌고 나는 밥을 벌지 않는다. 그는 아무 시간이나 일을 하고, 나는 그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서야 노트북을 연다. 그러니 항상 서두르는 버릇이 있다. 집히는 대로 작업을 하다말다 그러는 것이 버릇이 되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바로 어젯밤에 쓴 「조사」가 들어있는 파일에 쓰기 시작하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싶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글이다. 격식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 글쟁이라니 한심하다. 상투적인 감상의 찌꺼기는 또 뭔가. 그러면서 엉뚱하게 사투리 배운 것을 감지덕지하다니, 듣는 이들이 황당하다 했을 것 같다. 읽혀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문자화 되어 마음만 여기에 남으면 되니까. 이렇게 잘 표현되지 못했더라도 속에 담긴 의미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보다도 크게 봐서 인생은 어느 구석을 돌아도 비슷한 쳇바퀴란 건방진 생각이 들 때면,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은 어차피 누군가가 살다가 죽는 이야기의 한 단면일 것 같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그 이상의 범위를 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초라한 글쟁이도 그저 그 지평 안에서 몸살을 앓을 것이다.


파일들은 생각보다 분류가 되어 있질 않다. 어쩌다 눈에 띄는 파일 중에 마찬가지로 ‘옛 스승’과 관련된 짧은 글 토막이 있다. 모교 동창회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추억담을 올려달라는 성화에 적어두었던 모양이다.


모교의 OOO 선생님은 가정과 선생님에서 교감, 교장 선생님을 두루 다 거치셔서 동문 모두에게 잘 알려진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동기의 ‘홈커밍’ 행사에 불참하실 때 노환이 깊으시다는 소식에 마음들이 무거웠지만, 그것도 벌써 옛일, 이젠 이승을 떠나신지 오랩니다.


선생님은 떠나셔도 의미 있는 한 순간의 기억은 영원 속에 박힙니다. 저는 아직도 아주 적나라하게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비누에 엉키는 머리카락을 쉽게 떼어내는 방법은 그분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속옷 서랍을 정리하는 일 하나도 참 숙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너절하게 두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사소한 것에 감동하느냐고요? 인생은 사소한 것의 총계라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목표 달성을 위해 사소한 행복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홈커밍 행사 날 한 친구가 유난히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친구는 모교에 부임한 초년 교사로 스승님은 교감선생님으로 잠시 함께 재직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젊은 ‘애 엄마’ 여교사들에게 교감선생님은 감시 대신 시원스레 말미를 주셨다고요. 가능하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재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잠깐이라도 꼬옥 껴안아주고 오라’는 충고. 당신께서 여덟 자녀를 기르시며 후줄근한 숙직실에서 젖을 물렸던 기억에 아파하시며, 젊은 여교사들에겐 가능하면 아이에게 밀착된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던


거기에서 중단된 이 글은 홈페이지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새삼스레 추억에 잠기면서 운명의 불공평한 대우에 분노가 인다. 그분이, 마지막 몇 년을 지독한 치매상태에서 고통 받아야 했다는 뒷소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고 - 그저 단순한 가사노동이나 혹은 유한마담의 삶을 살아간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무엇을 그리 잘못 했다는 말인가? 치매를 행여 젊은 시절의 방만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 단순논리를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 삶을 살고서 그 마지막 몇 년이 치매라면, 이것은 뭔가 아니다 싶다.


“고매하신 창조자의 섭리 따위는 없다는 증거야.” 내가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은 심하다. 그 선생님 시절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양쪽에서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리 되셨겠어. 게서 창조주 이야기는 왜.”

“창조주란 말 안 썼다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 그게 그거다 원.”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내겐 항상 편이 적다. 그래도 우긴다.

“양심 없는 쪽이 양심 있는 쪽보다 훨씬 더 잘 산다면, 그게 이 세상에 고귀한 섭리 따윈 없고 우연이 지배한다는 것 아니냐고.”


다 말하지는 못했다. 실은 안팎으로 죽어라 일만 하시다가 치매로 고생 끝에 돌아가신 우리 선생님과 대비해서, 아파트 우리 라인에서 제일 멋있게 늙어가는 노부부 이야기를 할까 했었지만.


이런 이야기다. 남편은 겉은 영국신사에 속으로는 향교에서도 알아주는 식자에, 아내는 젊어 이래 폐백음식에 불려 다녔다는 솜씨를 자랑한다는 부인이다. 산보길이며 외출하는 양이며, 최고로 여유 있고 한가롭게 여생을 즐기는 모습이다. 할머니는 아예 노인 축에도 안가는 팽팽한 얼굴이다. 근심 걱정이라고는 평생 없었다고 말하는 피부. 고운 자태. 고운 옷.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내막은 주말 연속극 감이었다. 남자는 고향에 처자가 있는 유부남, 여자는 처녀 때 만났던 사이라는데, 내가 그것으로 놀랐다면 호들갑이다. 속내는 더 기가 막혔다. 처녀 쪽에서 마음 고쳐먹고 시집을 갔으니, 일은 제자리로 돌아간 듯 했더란다. 그런데 여자가 한두 해만에 딸을 하나 낳고서는 그걸 버리고 다시 이 남자에게로 왔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는 제 아들을, 어머니는 제 딸을 버리고서, 그렇게 다시 시작해서 ‘우리 자식’ 몇을 더 낳아 온갖 정성 다 쏟고 호의호식으로 키우면서 살아왔다니.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는 큰아들 선 자리를 말 그대로 백번도 더 보았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버린 자식들 ‘내 자식, 네 자식’이 잊혔을까? 요새 말로 그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있었을까? 마음속이 그러고서도 저리 화평한 노년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까지 모두 이야기 했더라면 친구들은 내 말을 믿었을까? 스트레스가 치매의 원인은 아니다. 양심의 고통으로 늙는 것도 아니다…… 라고 우기는 말을.


생․로․병․사는 정말 오로지 유전자 탓인가. 아니 유전자 더하기 우연이라는 장치의 역할일까. 그렇게 우연히 찾아든 치매 바이러스. 우연히 비껴간 혹은 우연히 침투한 박테리아. 우연히 고꾸라진 버스. 우연히 날아든 바윗돌. 우연히 심장을 뚫은 파편.


*


유난히 문상이 겹친 주간이었다. 아스라이 먼 시간에 끊어졌던 추억들을 불러오는 초상 자리. 대형화된 장례식장은 문상객들을 서로 부딪지 않게 할 만큼 넓어서, 사람 사이에 가면 노련치 못한 나 같은 부류에게는 다행스럽다.


검은 저고리 치마의 여자들은 조금 생소했고, 그런데 처량함을 덜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평상복 위에 대충 걸친 허연 상복의 구겨지고 초라한 몰골을 조금 더 단정하게 보여준다. 향년 OO세가 주는 이상한 안도감에 문상객들은 덜 미안해하며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바로 앞선 문상객이 ‘호상’이란 말을 써서 언짢은 일이 있었나 보다. ‘호’자와 ‘상’자는 이를테면 모순형용법에 속한다. 모든 상은 상이다. 상은 잃어버리는 것, 끝이고, 영영 이별이다. 그것이 어찌 좋을 것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주들이 영영 고아가 되는 것인데.


친구는 일찍이 반쪽 고아가 되었고, 집에는 단출하게 어머니만 계셨다. 어머니만 계시는 것이 특별나지 않기 때문에, 그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어차피 아버지들은 낮 시간 동안에는 집에 계시지 않았으니까. 친구네가 특별히 더 조용한 것은 아마 적산가옥의 구조였을 것이다. 한 줄로 나란히 펼쳐진 한옥과는 다르게, 좁은 복도를 낀 여러 겹의 방들은 작은 네모들의 미로였다. 한옥에서처럼 줄줄이 햇빛 받는 툇마루가 없으니 더 침침하고, 어둑한 공기 따라 분위기도 더 가라앉았을까. 고즈넉한 집과 친구어머니의 단아한 자태는 서로 어울렸다. 우리 배달민족은 또한 백의민족이라고 책에는 쓰였지만, 우리 집에선 백의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인상은 하이얀 무명이었다. 우리들 교복의 풀기 선 칼라와 표백한 흰색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흰색. 함초롬히 옷감이 안기는 자태. 작고 고운, 무엇보다도 드문 말씨. 나는 어쩌면 그런 절간 같은 고요함에 이끌리어 친구 집엘 드나들었나 보다.


오늘 어머니를 여읜 친구는 그러니까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했다고 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 중 많은 아버지들이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엄청난 손실의 수치로 변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서 말하기로는 강제동원 피해자로 정부 당국에 신고한 사람은 22만 명 정도라 한다. 한국전쟁의 국군 피해자는 사망만 13만을 넘고, 부상과 실종 그리고 포로를 합쳐 62만 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그런데 수학적 통계나 확률은 큰 의미가 없다. 두 형제가 참전하기로 똑같았던 우리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고 살아남지 못했다. 체감 확률은 해당자에겐 언제나 1/2이다.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한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당시에 젊은 장교로 사단 참모장쯤 되었던 아버지는 군사혁명 때엔 별을 달고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30명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거나, 어느 부처의 장관이 되어 프랑스 혹은 서독을 방문, 한국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맺어 1억 마르크도 넘는 장기차관을 약속받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었다. 실미도 사건 같은 때에 하필 책임 있는 위치에서 우왕좌왕 발표를 하다가 그날로 사임을 한다거나,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은 물론 나아가 의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총알이 하필 심장에 박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일 아직까지 건강하다면……. 케네디가의 맏형 조셉 패트릭이 2차대전에서 실종된 것과 비슷하게, 형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동생은 그러니까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누구나 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하긴 대통령이 뭐 그리 좋은가. 케네디 대통령은 너무 높이 태양 가까이 날다가 짙푸른 에게해에 빠져버린 이카로스처럼 추락했다. 그러니까 살아남은 동생이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로만 올라갔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일찍 최고에 이르러 죽느니보다는 최고 비슷한 데까지만 가고 사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대로만 된다면. 조금 아쉽지만, 대통령 처조카사위의 동생의 장인의 매제의 모함(?)으로 비리에 연루되어 퇴직을 해도 괜찮다. 넉넉히 평균수명을 넘기고 혹시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대회’ 같은 묘한 계제가 있다면, 대한민국이 이미 공산화 되었다고 걱정하는 원로들에 가담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런 예상은 너무도 픽션이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휴전과 함께 그대로 군복을 벗어던지고, 상과대학 출신답게 경영으로 입신했을 것이다. 재벌총수에게 휘둘리지 않는 전문경영인의 길을 갔다. 코트라 초창기를 살려내고 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온 가족이 외국에 나가서 살았고…… 아니다, 내 친구로 미루어 학구적이었을 아버지는 군복을 벗자마자 계속 학문에 전념하여 경제학박사가 되어 경제학교수가 되어……


이것도 정말 아니다. 내가 지금 쓸데없이 젊은 채로 남은 많은 아버지들의 가상의 전기를 쓸 일이 아니다. 다만 인생은 냇물을 따라 사는 것인지 냇물을 건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생에 징검다리가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 하나의 돌이 나에게는 그 어머니가 있는 집이었다. 다다미방 저 쪽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하건 별 간섭이 없으셨던 어머니. 사실 조용한 어머니가 먼저였는지, 다 반듯해 보인 언니 오빠들이 먼저였는지 모를 일이다. 동창들 가운데에서 지금도 최고로 요조숙녀가 바로 이 친구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좋을 일을 구별하고, 그 구별에 따라 행동하는 일. 그 어려운 일에 친구는 어려운 티를 모른다. 말도 조신하고 행동도 조신하다. 그렇다고 막힌 것도 아니다. 운동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모르겠다, 살사나 벨리댄스를 배우지나 않는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친구는 합창단에 들고 배드민턴인가 탁구인가를 선수만큼 잘 할 수 있어도, 춤 같은 건 외면할 수도 있다. 학창시절 모범생의 연속일 텐데, 우리의 학창시절엔 지덕체라고 말은 하면서도 지와 덕에만 치중했고, 체육까지는 몰라도 무용은 조금 색안경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끼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저급할 것까진 아니나 조금 위험한 어떤 끼가. 체육이나 무용을 못하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으니, 웰빙 세대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내 글은 이렇게 「조사」에서 빗나가고 있다.


*


글쓰기는 무진장 어렵다. 사투리까지 사랑하게 가르쳐 주셨던 국어 선생님은 내 첫 작품을 받아 읽어보신 뒤 내게 단 한마디를 하셨다. “소설은 박완서처럼 쓰거라!” 그리고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겨우 보름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5미터 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음악과 문학이 어우러진, 꽤 유명한 분의 성대한 문학인생 기념회 비슷한 자리였다. 난생 처음 그런 자리에 끼게 되어 얼핏 주눅 든 내가 저 건너 테이블에 살며시 들어와 앉는 그 얼굴을 첫눈에 알아본 것도 용했다. 소설책에 나와 있는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덕일까? 작은 얼굴에 작은 체격 ― 거미줄 나오듯 누에가 털실 뽑듯 끊임없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짜내는 물레. 피란길 허기 속에서 동생 오목이의 손을 놓아버린 수지의 줄기찬 저항을, 함께 사랑하고도 혼자서 나락에 떨어진 문경과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혁주의 상을…… 내 기억 속에 박힌 작품만 해도 부지기수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즈음에는 헤쳐 모이는 얼굴 얼굴들.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하고 스쳤다. 박완서처럼 글쓰기.


글쓰기, 글 쓴다고 나서기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국문과 졸업도 더더구나 문창과 출신도 아닌 내가, 글쓰기공부를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도 가 본적 없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한 길에 서 있었다. 무지가 용맹이라는 증거 하나가 내 첫 장편이다. 수필집 원고를 청탁받은 그가 정색을 하고 대신에 나를 들이밀며, ‘서랍을 위해 쓴’ 내 원고들을 가리켰다. 처녀림에서 무작정 베어낸 나무들은 그러나 품종에서나 영양에서나 밀렸다. 인생의 맛을 모르는 내 척박한 토양 때문이었으리라. 그나마 이름만 걸어 놓고 개점휴업 상태. 내놓은 물건들도 별 볼일 없는 태작들이지만, 팔릴 일은 없는 것이, 누가 이만한 원고를 사겠다고 덤비겠는가. 심지어 거간꾼도 없는 것이 이 바닥이다. 하긴 내가 발이 미치지 않아서이지, 거간꾼 없는 세계나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


왜 그리 스산한가. 기업의 냄새가 풍기는 장례식장은. 능률적으로 ‘치르는’ 영결의 장은 그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평생에 한두 번 겪는 일일 것인데, 어느 초상에 가보아도 사람들은 놀랍도록 역할을 잘 수행한다. 슬퍼할 때 슬퍼하고, 곡을 할 때 곡을 하고, 대개는 밥을 먹을 때 밥을 먹는다. 밤샘을 위해 화투판도 벌인다, 아주 요절한 마당이 아니라면.


한 분 떠나시고 나니까 다시 한 사람 만나게 되네요…….


문상객들 틈으로 만난 그 사람의 말이었다. 한 열흘 후 쯤 전화가 왔다. 월요일이었다. 저 시간이 좀 나는지? 왜 아니라고 잘라 말하지 않았나? 해가 기울자 겁이 났다.


저녁엔 안 되겠어요. 저녁 외출이 일상적이 아니라서요. 연결된 것만 기뻐하지요.


그렇게 문자메시지 보내놓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앓았다. 흔한 감기 몸살에 흔한 소화불량이지만 정도가 심했다. 머리 속에 맴도는 말. 미리 도망친 벌(?)로 24시간 앓고 있어요……


수요일, 다시 온 전화는 옛날을 생각나게 한 단어 때문에 길어졌다. 누가 먼저였을까, 아무 것도 아닌 옛 일을 끄집어 낸 것이? 아직도 손톱을 물어뜯는지? 지금도 노래를 잘 하는지? 그런 질문들은 애초에 어리석다. 어른이 되어 여전히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노래는 한번 잘하는 사람은 계속 잘한다. 


“들어봐요, 어머니가 남기신 메모예요. 머물을래야 머물 수 없고 붓잡을래야 붓잡을 수 없는 세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시간 천금보다 귀하도다. ” 평생 간직할 소중한 글은 또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읽은 간단한 조사:


노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어머님,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엿함을 보여주신 어머님, 첫 만남에서 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어머님,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신 분이십니다.


이 아리도록 아름다운 글을 내가 들어도 되는가? 그리고는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벌써 금요일이었다. 아니다, 이 사람은 상중이다. 상중이 아니면? 그것도 아니리라. 한참 시간이 흐른 듯 했지만 겨우 일주일이었다.


거짓말 실토하는 게 낫겠어요. 다음날 전화 알고서 선뜻 못 받은 건 빚이 늘 것만 같아서요.


메시지가 원래 더 편하다. 상대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서. 다시 금요일, 비슷한 번호라서 잘못 알고 받은 전화. 그 사람은 정말로 봄나들이 권유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까? 어떻게 그런? 전화를 받고나서 곧 바로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열을 동반한 몸살감기로 변했다. 그것은 바이러스성이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


현대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덕이 아닌 풍조다. 이를테면, 독서 중에 ‘웃기는’ 숫자를 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부부가 혹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있는 기간은 평균 3년하고 167일 2시간이란다. 그것도 도시 중심부 3,40대 남녀는 이 수치를 낮추지만, 다행스레 나이든 시골 사람들이 평균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주고 있단다. 물론 전문서적이 아닌 ‘소설책’에서 읽은 소리이니 신빙성 있는 자료는 아니다. 소설은 신빙성을 담보하고도 남을 위인 ― 예컨대 미국의 무시무시한 대학의 교수이자 무시무시한 학력의 소유자 ― 이 쓰더라도 신빙성과는 상관이 없다. 이름 하여 픽션이니까. 그래서 소설책에서는 융의 할아버지가 괴테의 손자라나 뭐라나 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도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괴테는 손자 대에서 확실하게 후손이 단절되었으니까. (그가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한 주인공은 “소설이란 인생처럼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작가의 자만심을 죄는 말의 반죽”일 뿐이라고, “요설”뿐이거나.


내 주인공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할까? 우선 내 주인공은 박완서의 주인공들처럼 자연스러운 이름도 갖지 못한다. 아직 ‘ㅂ’자 첫 획에도 못 미친다. 내 소설은 며칠째 방치된다. 그가 노트북을 점령한 것이 변명으로 통할까?


*


뷔리당의 당나귀, 귄터 드 브로윈, 동베를린 1968년.

자서전적 분위기로 도서관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랑, 여성, 결혼, 도덕, 풍속, 현대, 동베를린이 결부된 소설로, 통상적인 삼각관계의 구도 속에서 실제로는 순응 메커니즘, 허위, 모순들의 가면을 벗기는 작업을 시도한다. ‘뷔리당의 당나귀’를 원용하여, 두 여자 사이에서 동일하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설명해보려는 시도 가운데, 60년대에 이혼율이 세계 최고였던 사생활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개인적 불행과 소외적 상황을 극복하게 해준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왜 개인들은 사적인 행복을 방해받고 있는가? 이러한 주제는 상당히 정치적일 수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당나귀보다는 조금 윗수이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필연에 지배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뷔리당이 말한 당나귀는 극심한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다가 굶어죽는다. 귀리와 물통을 곁에 두고서도 말이다. 그 철학자의 설명은 하필 귀리와 물통 사이 한가운데에 당나귀가 위치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먹고 싶은 욕망과 마시고 싶은 욕망이 똑같은 크기일 경우, 당나귀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나귀가 필연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자유의지의 덕으로 제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물부터 먹든지 귀리부터 먹든지 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원인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필연’에서의 해방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는 원인도 동기도 없는 성격에서 발원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어떤 행위를 수행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동기도 없고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행위를 수행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노트북에 그가 쓰고 있던 파일이 떠있다. 갑자기 그를 방해하고 싶다. 나는 그럴 때 문자메시지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한다. 한달에 100건까지는 무료이고, 무엇보다 저장이 된다. 


SOS: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 주는 건 다름 아닌 동기 없는 행위”라고 말한 게 지드?


맞아, 『잘못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인들 해석에서 자유롭겠나? 신들에게서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준 공적이 기독교 세상 중세엔 철저히 잊혀졌다가, 차츰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라거나 일체의 권위에 맞서 항거하는 양심의 상징으로 부활되더니, 루소쯤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선구자로 해석된 것이지. 그러나 진보가 또 하나의 미망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여기 지드처럼. 진보가 필연이라면, 필연에서 해방된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여전히 동기도 없고 불합리한 행동을 자행할 일 아닌가.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 그는 글 숨이 길어서 E메일을 택한다.


한 세월 지나서 카뮈가 “동기 없는 행위”로서의 살인을 제시한 건 처음이 아니었네?


처음이라니. (가)설엔 처음도 끝도 없어. 언어를 소유한 태초의 인간들이 다 말해버렸거든. 누군가 그랬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캄파넬라? 태양 아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없다고, 보르헤스? 아니 이미 벌써 전도서에 있었던 말이야. 1장 9절: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그러니까 지드와 달리 카뮈는 자유의지보다는 부조리 개념으로 설명한 것. 부조리 극복의 유일한 길은 간단없는 반항이라고. 오늘은 끝.

추신: ‘뷔리당의 당나귀’도 뷔리당이 처음이 아냐. 벌써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도 언급했던 개념.


그가 바쁘구나. 아님 피곤했을까? 그런데 간단없는 반항? 반응이 아니고 반항? 넌 매사에 행동이 아닌 반응뿐이라고 비난당하지. 반응에서 단 한 걸음 더 나가 행동하기에도 저어하는 주제에 반항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런데 반항하는 인간이 우수하다 그건 맞는 말인가? 반응에 그치는 것이 저열한 인격이라면, 그러니까 나는 당나귀 수준인가?


참, 당나귀는 노새와 버새 사이에서 어떤 반응일까? 나중에 말해줘.


웬일로 계속 당나귀 타령! 헌데 너, 필요 없는 걱정이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암말이 당나귀 새끼를 낳긴 쉬운지 노새는 번성했지만, 암탕나귀가 말 새끼를 낳자면 난산이어서인지 버새는 드물거든. 그러니까 그건 이론적으로 기 싸움이다. 물이냐 귀리냐? 노새냐 버새냐? 아니, 노새․버새 틀은 순 네 상상이구나. 아내냐 연인이냐,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이지? 당나귀보다 월등히 지능이 높은 인간은 ― 도이치 말에서는 답답한 바보 멍청이를 당나귀라 그러는 것만 봐도 당나귀가 멍청한 것은 사실일 것이야. ―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두 유혹 사이에서 굶어죽는 대신 교묘히 둘 다를 누리려 들지.


연인과 아내 사이에서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죽는 인간은 더 이상 없다. 3년은커녕 일년도 못가서 거덜나는 경우가 희귀한 일도 아니다. 습관을 가치와 혼동하여 어정쩡 결혼에 이른, 그 나름대로 지적인 남녀가 있다고 치자! 누군들 결혼이 가치에 속한다고 확신하기까지 섣불리 자신을 결혼에 내놓겠는가.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춘 두 단독자의 삶. 그것도 영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라는 친절. 남편이나 아내는 아내나 남편의 결점 때문에 연인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장 에르프처럼 한 남편이 아름답고 경제적으로 배경을 지닌, 게다가 합당한 일에 충실한, 개성은 없지만 그냥 좋은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 치자! 부족함이 없는 것도 부족함이다. 그에겐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지적으로 단호하고 개성 있고 확고한 견해를 지닌 연인이면 족하다. 뭔가 정신적 에너지를 북돋우는 자극이면 그만이다. 브로더 양은 젊고 지적이다. 단호한 개성의 매력에 불안도 괴팍함도 멋스럽다, 잠시 동안. 그리고 자극성 향취의 단물은 쉽게 고갈난다. 무맛이라도 풍성한 온수에 푹 담기고 싶을 때 남편은 슬그머니 아내를 찾는 것이다.


그의 말투가 내게 향하는 2인칭이 아니고 3인칭을 향하기 시작하면 나는 침묵해야 한다. 이제 그의 장광설 논리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를 직업으로 산다. 30쪽 되는 작품에서 뭔가를 풀어내어 300쪽 가까운 책을 쓰기도 한다.


나는 다른 생각에 골몰한다.


4월이 산 너머로 지고 있네요. 실제였나? 꿈결 같이 짧았던 시간이 함께 지네요.


이 메시지를 그 사람에게 보내는가 아닌가, 문제는 그 자유의지이다. 휴대전화 멜로디와 함께 번호가 뜬다. 아아~ 여전히 조용한 시각 다시 소리가 부른다. 그 번호. 폴더를 열어본다. 부재중 전화, [화]10:39A, [화]12:05P.


전화 - 집어 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5월에도 6월에도 아름다운 꽃들과 즐겁게!


부재중 전화, [수]12:26P, [수]6:44P. 계속 전화를 받지 않으려면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 하나? 


*


그 사이 가벼운 지인과 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


죄송. 4월의 초대장을 건너뛰었었죠. 죽어라 일해야 했거든요.


‘죽어라 일’하는 일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아니고 정말 죽어라 싫은 일이라면 미련 없이 때려치워야겠지요.


그런데 시만 쓰시는 게 아니고 노래를 잘하신다는 것을 몰랐네요. 저는 무반주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무지 약한데, 해서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쬐끔 휘둘리고 있는데…….


*


휘둘린다고? 너 요새 휘둘린다는 단어를 쓰는 거냐?


그가 당장에 태클을 걸어왔다. 놀랐나 보다, 토막 글로 나무라는 것이. 나는 모처럼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무엇이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을 북돋아 주는 메일 탓이었는지 용기가 났다. 나는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어쩌다가 완강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도 도리가 없음을 안다. 내 위에 있건 내 옆에 있건, 내 안에 있건, 나 보다 우선하는 건 없으리라.  


미안해요. 전화 받기가 뭘까 조금 부끄러운 느낌? 암튼 어려워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 그것이 내 심정이다. 감정이다. 감성이 크게 발동할 때면 이성은 숨죽인다. 때를 아는 것도 이성이다. 그는 이성이다. 그는 나를 내버려 두어야 할 순간을 안다. 나는 그에게 노트북을 내어주지 않고 내 젊은 날에 대한 「조사」를 쓴다.


잘 가라,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인생은 비록  만나는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먼데나마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땅에서 땅으로. 반환점을 훨씬 넘기고서야 네 청춘에 때늦은 조사를 쓰는구나. 머리는 허접 쓰레기 지식욕으로 천만근 무거웠고, 가슴은 송곳 자존심으로 외로웠던 너! 생각으로 들끓는 네 머리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을, 생각한 것과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구별 못했구나. 반응은 행동이 아니라서 삼갔고, 행동은 행동이라서 삼갔다. 실 인생에 뛰어들어 본 적이 없었던 너. 못 이룰 꿈을 꾸지도 않았고, 아니, 아예 꿈을 몰랐구나. 못 이룰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시작도 하지 않는 비겁함의 덕으로. 두 개의 가치를 좆아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도 없었다.


잘 가라, 달지도 쓰지도 않았던, 맹물처럼 무맛의 청춘이여! 시리거나 뜨겁지도 않았던, 치열하지도 아리지도 않았던 청춘이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청춘도 아니었던 청춘……


*


봄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말처럼 행복한 주말되시길……


산인데요. 만산의 꽃들이 절규하듯 모양을 뽐내고 싱그런 연초록이 색상을 자랑하는 기를 보냅니다.


고맙게도 위로는 며칠 사이로 예상치 않았던 방향에서 왔다. 내 친구가 아니라 그의 친구에게서.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 그렇게 산뜻한 오늘이면 되나보다. 열린 창으로 어디선가 초록빛 기운이 밀려든다. 청춘에 대한 「조사」라니, 우선 관습에도 어긋나고 뒤돌아보는 관점 이란 비생산적이다. 어쩌나, 그런데 오늘의 나는 기억의 총계다. 망각은 나를 부인함이다. 하지만 생산이 최고의 가치인 이 세상을 살자면, 이번에는 픽션에 들리어 막무가내인 내가 숨을 죽이고 사라질 차례다. 이성적인 그에게 온 생을 양보하면 된다. 인간이라면, 감성과 이성 한가운데서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이 없다. 숨 쉬고 밥 먹고 태양 아래로 나가자. 태양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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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5. 30. 23:30

마리아 막달레나

2007 월간문학 5월호


 

아직 이른 아침이다. 목소리가 행복으로 구르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딸 둘을 공주처럼 키워낸 친구는 인생에 단 하나 부족한 아들을 기어이 낳아, 할 일을 다 한 사람의 만족감으로 늦둥이의 돌잔치를 준비한다. 이런 저런 일에 나를 부르는데, 내가 솜씨나 안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겐 중학생이 된 아들아이 뿐, 다른 식구가 없어 종일 시간이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애처럼 생에 충일감으로 사는 사람들은 나처럼 뭔가 공연히 엇박자를 세느라 여가라곤 없이 들끓는 나날을 꿈에도 알지 못한다.


*


친구와 나는 기숙사에서 만났다. 알고 보니 같은 고향이라서 내내 단짝으로 지냈다. 그래 그녀는 내 비밀을 조금은 눈치 챘을 것이다. 비밀이라야 그저 통속적이지만. 여자대학 기숙사는 그 시절 많은 남학생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방문을 뭔가 진지한 감정이라 치부하고 깔깔대곤 했다. 모두의 관심인 오월 축제도 실은 싱거웠다. 메이퀸행사는 성의 상품화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없어진지 몇 해이고, 같은 방 3학년 언니 말로는 지난해엔 법대생들이 ‘OO민국 모의국회’를 열어 ‘여성부’의 탄생논의를 벌였단다. 그러면 4학년 언닌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들은 틈새에서 어리둥절했다.


그러던 시월의 마지막 날, 향우회 소풍이었다. 동향인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우리들은 행색만큼이나 초라한 교외선 열차를 타고 그만그만한 이름 모를 작은 역에서 내려서 푸르름이 사라져가는 산야를 어슬렁거렸다. 처음 머쓱하던 대화들도 서둘러 점심 보따리들을 풀어놓았을 쯤엔 제법 풀려 있었다. 누군가의 제의로 빙 돌아 소속과 이름 석 자를 대기 시작했고, 더러는 순간의 장기를 부리기도 했다. 유난히 소리가 흩어져서 오히려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람, 그가 그였다. 법학과 아무갭니다, 그렇게만 소개한 사람이. 옆의 친구가 “이 놈은 꼭 학교는 뺀답니다, 자명하다나 뭐라나….” 그 말에 그는 “아니, 학교는 무슨.”이라고 잘랐다. 굳이 명문을 감추려는 모양새에서, 내 첫인상은 그가 겸손하다 못해 조금 꼬였나 싶은 정도였다.


“잠깐만,” 부산히 나무젓가락들을 부러뜨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기도를 자청했다. 서울 생활 반년 남짓에 배운 예절은, 물론 우리가 기독교학교를 다니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기도를 시작하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덩달아서 기도를 하랄 법은 없었고, 그냥 남의 기도를 막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니, 그게 기도라는 것이…” 하고 나섰다. 기도란 강요할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는데, 모두가 어색하게 느낄 만큼 딱딱한 투였다. 그쯤은 대충 넘어가줘도 좋을 듯한 향우회 점심자리에서. 그 법대생은 법은 몰라도 상식에선 외려 부족한 부류인가 싶었다. 식사는 첫 순간에 흥을 잃었지만,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호기들을 번뜩이며 대화들은 씩씩했다. 내 귀에는 심심찮게 그가 “아니”라고 말하는 소리가 박혀왔다. 그럴 때면 모두가 썰렁하게 서로를 보곤 했다.


“자아, 그럼 일단 십팔번 노래를 한 곡조 씨익…” 누군가 노래라는 물꼬를 트자, 가무에 능한 민족성이 발휘되었다. “말없이 건네주고~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에 이어, “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난 그만 울어버렸네”라고 울음을 울더니만,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절규도 했다. 입만 열면 사랑타령들이다. “말 한번 붙여봤으면 손 한번 잡아봤으면~ ”하는 애교도 부렸다. 여학생들은 꽁무니를 빼다가 누군가 물색없이 “세모시 옥색치마~”를 불러서 좌중의 열기를 식혔다. ‘아니 씨’의 차례가 왔는데, 그건 노래도 뭣도 아닌 중얼거림이었다.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이번엔 다들 숨을 죽였다.


얼렁뚱땅 오페라 『순교자』 이야기가 나왔다. 초여름, 국립오페라단 창단 20주년에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공연이라고 떠들썩했던 터라 다들 아는 척 했다. 그러자 다시 ‘아니’가 끼어들었다. “아니, 그 작가가 오페라에 동의했단 말여? 그 양반 마침 영문과에 들어와서 강의한다더라고. 노벨상 후보지명이면 사건은 사건이제. 아니, 그 작품이 오페라에 가당해? 아니, 그 심오한 주제를 연극도 아니고 노래로 불러댄다고? 그것 희화아녀?”


밑도 끝도 없이 그가 사용하는 접속어는 모두 “아니”였고, 그는 그것 없이는 말을 시작하지도 이어가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오페라라는 그 어려운 것을 아는 체 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허영이고, ‘아니 씨’가 정직한지도 몰랐다.


“녀석, 기독교라면 왜 흥분을 하냐? 너 불교야 뭐야 무신론자?”

“아니, 기독교를 진지한 주제라 하믄 무신론자냐? 난 분명 무신론자도 아니고, 교회 반대자도 아니야. 아니, 우리 동네 보면, 제사 안 지내려면 교회가면 되니 편리하고 좋제. 아니, 우리 집은 제사가 많진 않아도 우리 어무니도 은근히 교회에 솔깃하셨제, 할무니가 막으셨고. 할무니 이론이 재밌어. 당신은 천당 갈 날 얼마 안 남았으니 교회를 나가시겄대. 대신 젊은 사람들은 제사를 받들고 교회엔 얼씬 말라.”

“신소리들 집어치웁시다. 여그가 종교 논쟁자리도 아니고, 여그 기독교학교 학생분들도 계시고….”

“신소리, 그렇네요.” 엉뚱한 소리들을 듣자니, 기독교학교 학생으로서 한 마디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나섰다. “기독교학교 다닌다고 다 기독교인은 아니죠. 반대로….”


소용없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해 본다. 예컨대 야구원년의 스타들 이야기 도중에도 무슨 이유로 그 많은 “아니”가 쏟아져 나와야 했는가를. 그리고 바로 그 주술에 내가 걸려버렸다는 것을.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아니 돌아오는 길에 태능역까지 갈 사람들도 함께 신촌역에 내려 근처에서 어중간히 마셔댄 알코올과 잡담들 사이에서도 그의 “아니” 소리를 변별해서 듣고 있었다. 어떤 질문 어떤 말을 해서 그에게서 “아니”가 나오지 않게 할까를 골몰하느라 다른 대화들은 건성으로 들었다. 점호시간이 가까워 오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친구들이 일어섰다. 한 친구는 조금 취기도 있고 해서 사감선생님 꾸지람이 겁난다고, 이모집에 가기로 눌러 앉았다. 아무튼 밤길을 동행해줄 남학생이 필요했고, 누군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하자, 그가 선뜻 나섰다. 어차피 술을 잘 안하는 그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낫겠다고,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을 말렸다. “아니, 지금 짝짓기도 아닌데 두 사람씩 뭣하러.”


우리는 이미 반쯤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잘은 몰랐지만, 귓결에 들려오는 대로 ‘짝짓기’라는 단어는 너무도 격에 맞는 말이 아니었다. 아마 그는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기껏 ‘짝을 맞추어 나갈 계제가 아니다’ 그런 뜻이었겠지만, 순간 불쾌감이 일었다. “무슨 그런 흉측한 말을 하세요?” - “예, 무슨?”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종일 기다렸던 반응을 하필 이제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옆의 친구도 까닭을 몰라 했는데, 내가 너무나 웃었나 보다. 그가 화를 버럭 내면서 내 웃음을 조롱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이건.’ 나는 속으로 답답했다. 친구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교문 쪽을 바라보고 종종걸음을 시작했고, 나는 그만 눈짓 손짓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씩씩거리고 있는 사람을 떨치고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간단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친구는 걱정보다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자꾸 뒤돌아보며, 그러나 이내 교문 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저, 우리 맥주 한잔 더 할까요?” - “저, 맥주…” 이번에도 그가 나를 웃겼다. 그렇지만 웃지 않았다. ‘아니’코드가 잠시 빗나간 모양이다. “제가 웃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잖아요.”


“아니, 좀 걸읍시다.” 그는 앞장섰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휘돌아 따라 걸으니 곧 큰 나무들 사이로 오솔길이 나왔다. 이어 인근 대학의 캠퍼스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았다. 어둠이 아니라 그의 침묵이 무서웠다. 나는 할 수없이 ‘아니’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 종일 ‘아니’가 아닌 다른 말머리가 나올까 귀를 쫑긋하고 들었노라고. 듣고나 있는지 그는 여전히 침묵이었다. 내가 그만 벤치에 앉아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슬그머니 무서워지기 시작했을 때 그가 돌아와 앉았다. 먼데 하늘을 보며 그가 말했다.


“우리 누난 YH 김OO의 친구였습니다. 야당당사에서 사흘을 농성하다가 죽은 김OO 말입니다. 누이들은 그때 칠팔월 더위에 200명이나 모여 있었답니다. 요구조건이 무엇이었냐, 그저 공장문만 닫지 말라.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 그렇게 써 붙여 놓고. 가발사업 - 끔찍하지요. 어무니들 누나들이 눈물을 머금고 내다판 긴 머리채, 가발을 만들었으면 수출로 부자가 되고 좀 좋은 일이요. 헌데 결과는 뭡니까, 죽은 누나 친군 말할 것도 없고, 병신되어 돌아온 우리 누난 또 뭐고. 죽은 친구가 한 살 더 어렸다던가, 꽃다워야 할 열아홉, 아부지는 일찍 돌아가, 어무니는 행상, 배곯아가며 일만 하다가 죽었대요.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어린 나이부터 일판에 나섰더라요. 그러다간 죽어서도 순식간에 화장되어버렸다니, 불길과는 무슨 원한이라요? 어려서 화상으로 치마 한 번도 못 입어봤답니다. 우리누나도 그때 다친 허리를 제대로 치료만 받았어도 저 지경은 아닐 것을, 입원하면 체포될까 걱정,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이라서, 칼잠 자는 셋방서 견디다 못해 병신 되고서야 내려왔지 뭡니까. 집에 돌아온 누난 기독교 물이 들었다고 혼만 났지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어서지도 못하는 누나가 교회에 갈 일은 없지만요. 아무튼 누난 교회 쪽 인사들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또 용기를 내어 노조를 만들고 하는 힘을 얻었다고 하대요. 나한테 이번 방학 내내도 설교를 해요. 그런데 난 누나의 신 같은 건 믿지 않아요. 그런 절대자가 있다면 이 세상을 이렇게 창조했을 리가 없지요, 또 실수로 그랬다면 곧 바로 잡았을 것 아니요? 희생자와 희생자를 내는 세상을 이리 버려두는 것이 누나가 말하는 신의 섭리라면 난 수긍할 수 없고요.”


그가 뜸을 들이며 힘들게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일종의 마비를 경험했다. 안개 속에 들어선 망망한 느낌. 누군가의 손을, 누군가의 아픔을, 분노를 보듬어 안고 싶은.


“내가 『순교자』이야기 때 정말 분노한 것은, 내겐 왜 두루마기 걸친 목사님들의 신앙과 배신의 정체는커녕 그 상도 떠오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나는 왜 예술에 대해선 그 이미지도 그리지 못하냐, 아니 진짜 분노하는 것은 바로 오늘의 나 자신이요. 인생관에도 생활원칙에도 어긋나고, 나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점은, 단지 죄짐 모르고 순수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그쪽의 인상에 흔들리어….”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어색해진 나는 얼결에 찬송가 구절을 읊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갖는 채플의 습관이었다.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예수의 품이라? 아니요, 그건 아니요. 지구상의 인간들을 죄다 품어주련다는 예수에게 무슨 품? 성육신이고 뭐고, 육신이란 원래 단 한 사람을 품을 품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


그것이 신호였다. ‘품’에 대한 언급은 그들의 서로 다른 머리의 아픔을 오직 몸으로 품고자하는 갈망의 폭발로 이어졌다. 연초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서 뜻도 모르고 대한민국의 통금해제를 환영했던 두 사람은 이번엔 그 실질적인 자유를 누렸다. 12시 바늘이 넘어가는 순간, 목양신 팬의 시간, 패닉의 시간이었다. 휘영청 둥근 달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밖에선 상당히 쌀쌀했다. 어색한 몸짓으로 서로의 얼굴을 비껴 안고서 오들오들 날 밝기를 기다린 그들은 엉뚱하게도 다음 일요일에 대학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약속으로 헤어졌다.


그 일요일, 며칠 전 소풍날의 벌판보다 더 싱싱해 보이는 교정의 나무들은 더러는 상록수들 사이에서 아름답게 색을 내고 있었다. 일요일마다 교회로 쓰이는 중강당 건물은 보기에도 육중한, 그래서 심오한 종교성을 풍기고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의 음악은 천장이 아닌 천상에서 내려앉는 아늑함이었다. 그는 누이가 말했던 신앙의 힘이 공기방울 속에 녹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난 내가 여기에 와 앉은 것을 상상이나 할까?’ 갑자기 그리움이 복받쳤다.


무오성 - 그날은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말씀이 있었다. ‘성경’과 ‘성서’의 차이도 모르는 그에게는 심오하면서도 난해한 말씀이었다. 목사님이 읽으신 요한복음은 정확히는 몰라도 이런 뜻이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 하심이요, 또 너희가 그 믿음에 힘을 입어서 생명을 얻게 함이다.’ 영혼을 구하려는 중차대한 목적이므로, 불확실하거나 오류투성일 수 없는 것!


‘아, 아니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목적이 숭고한 것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아직 논리학입문에도 가보지 못한 그의 논리로도 이건 아니었다. 세상에 숭고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오류투성이의 일들을 이 한 마디로 덮을 수 있다고? YH의, 수많은 공장의 숭고한 목적도 우선 제 굶주리는 가솔들을 먹이고 노동자를 고용해 그들의 굶주리는 가솔들을 먹이는 일 아니었나?


그러는 사이에 아름다운 선율의 찬송이 울려 퍼졌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모든 만물 신선해,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어둔 세상 지날 때… 아, 나는 여기에서 뭣하고 있는가? 못 배운 누나들이 여전히 어두운 세상을 헤맬 때.’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 그는 영생을 갈구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무엇인가 지금 이승의 어두운 삶을 위해 살아야 할 각오가 틀어 올랐다. 그는 이 사람들과는 한참 격이 다른, 그저 척박한 땅, 열악한 현세의 사람이었다. 그의 예의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앉아서 그녀를 기다려주고, 그리고 기숙사 앞까지 동행해주는 일이었다. 걷다보니 지난 소풍 때와는 달리 깨끗하게 잘 차려 입은 옷매무새가 눈에 들어왔다. 참 어여쁜 여자구나. 그러나 그는 그 성장을 교회를 위한 의식으로 간주했다. 짧은 오솔길을 돌아 기숙사 앞 잔디밭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가 고개가 떨어졌다. 두 번째 약속은 없었다.


잠시 뒤 그녀는 조금 과장된 당당한 발걸음으로 바로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선 기도시간이 막 끝난 참이었다. 그녀는 교회나들이 차림으로 단정한 얼굴을 하고서 점심을 먹었다. 어느 때 보다 열중하여.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리라. 숟가락으로 밥알을 모아서 퍼 올리고 얌전히 입으로. 국물은 숟가락의 2/3쯤 뜬다, 곱상하게. 반찬을 집어 들 땐 턱이 반찬을 향하지 않도록 시간적 여유를 둔다, 가능하면 미소와 함께. 주말 나들이로 여기저기 빈자리들 때문에 그녀의 꼿꼿한 자세가 더욱 돋보였다.


바로 그런 반듯한 얼굴로 그녀는 나머지 대학생활을 마쳤다. 절박한 조율이, 치유의 힘이 본능적으로 솟는 것에 자신도 놀랐다. 맑고 깨끗한,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보였고 스스로도 그리 믿을 만큼 단아한 젊은 나날이었다. 노력 끝에 성공한다는 말이 사실인 듯, 그녀는 졸업하면서 공립중학교에 부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슴 아리게 많은 것을 배웠다. 열서너 살 소녀시절엔 몰랐던 것들을. 그렇게나 철부지 얼굴 아래 가려진 그늘을 짐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 종일 깔깔 웃다가 지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는 왜 월요일이면 결석이나 지각을 해야 하는가, 누구는 왜 졸린 눈으로 멍하니 옆 사람을 지나쳐 보고 있는가.


*


그렇게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바로 손아래 여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문제가 거론되자, 집에서는 서둘러 언니인 내가 먼저 선을 보아야 한다는 성화가 일었다. 괜찮은 학교를 졸업하고 괜찮은 직업을 가진 남녀가 어색한 자리에서 만났다. 처음엔 매개에 대한 거부감으로 어색해했지만, 곧 교양 있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온통 의사집안의 막둥이라는 그 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뚫고 신방과에 진학한 자유주의자였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호와 연극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직업적인 전문분야 탓도 있겠지만, 단 한 번도 지루할 수 없는 알찬 시간들을 만들어주었다.


곧 남부러울 것 없는 약혼식이 있었다. 그러나 순탄치 않은 행로는 어정쩡한 파혼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내 몸의 불발에서 비롯되었다. 약혼식 이후 서너 번째 데이트에서 약혼자가 약혼녀에게 할 수 있을 입맞춤을 해왔을 때 난 너무나도 놀랐고, 놀람은 심각했다. 왜 그리 혼쭐나게 놀랐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갑작스러워서였을까? 상황이 나빴을까? 그대로 굳어버린 내 몸은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약혼 행세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각각 집에다 “결혼 후의 계획에 의견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대기로 했다. 집에선 동생이 먼저 결혼하기로 결정 났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선한다고,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지닌 어머니가 우기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일 년이 훨씬 넘었을 때, 옛 약혼자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엔 잘 될 것이, 그의 집안에서는 “의사공부만 하겠다면 어떤 여자라도” 된다 했다는 것. ‘파혼했더라도?’ - 이 말은 모욕적으로 들리기도 했는데, 아무튼 참 엉뚱한 발상이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리처드 버튼과 두 번 결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떠올렸던 것 같다. 한 여자와 두 번의 약혼을 두 번의 파혼으로 끝낸 카프카 생각은 접어두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나이 들어 의사공부가 한국보다는 미국에서가 더 용이하다고 했을 때, 집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아버지의 반대는 “미국”보다도 “한 번 깨진 그릇”이라는 원칙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머니는 대찬성이셨다. ‘아이들 하나쯤 미국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유행 따라서. 결국 파혼을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다시 약혼식을 하고 이번엔 곧 이어 결혼식을 치렀다. 시댁에 걸맞은 격을 갖춘 서울에서의 결혼식을 어머니는 정말로 만족해하셨다. “둘째 먼저 시집보내믄 큰 딸은 어렵다더니 웬걸….” 그런데 그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누구나 결혼한 여자는 결혼 당일의 피로를 잊지 못하리라. 떠들썩하고 벅찬 긴 하루가 지나고, 다소 과장된 한 껍질의 미모를 지우고 제 얼굴로 돌아올 때, 그것은 몸도 마음도 나신을 의미한다. 비행시간을 멀미기운으로 보낸 나는 숙소에 들어서면서야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이 신혼여행지로구나. 우리는 밤이 되면 신혼부부가 하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저녁 시간 내내 나는 우리가 영화나 텔레비전에서와 똑같이 서로 각각 샤워를 해야 하는 순간에 이를 것을 걱정했다. 누가 먼저? 나는 가장 덜 어색한 쪽으로, 그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기까지 가만히 내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자아, 신부님, 취침 시간이오. 레이디 퍼스트!” 하고 그가 가리키는 것은 욕실이었다. 순간 그 문제가 정해져버렸다. ‘신랑님 먼저…’라는 말은 목에 걸려버렸고, 나는 머뭇거리다 말고 욕실로 들어갔다. ‘밖에 있는 그는 그냥 의자에 앉아있을까? 설마 벌써 침대에 누었을까? 반쯤 벗고 와인을 마시고 있을까?’ 비누 거품을 내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 갑자기 나는 나의 나신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불현듯 제대로 샤워도 하지 않은 알몸을 누구에게 온통 주어버렸다는 생각에 경기가 났다. 그런 기억이 왜 송두리째 사라졌었던 것일까? 신입생 때의 먼 기억. 어쩌면 불의의 사고와도 같았던 한 날 한 밤의 기억. 그것이 아리게 되살아났다. 욕실 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신랑’과 함께 신혼의 첫날밤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신랑은 나에게 “침대에 누워서” 기다려주기를 청하고 욕실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서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는 그러나 더 이상 없었다. 그 대신 첫 남자를 배반하고 이제 간음을 행하려는 창녀만이 있을 뿐이었다. 안락한 미래의 결혼생활을 위해서 제 몸을 팔 준비를 갖춘 창녀. 누가 하루하루 몸을 팔아 살아가는 창녀만을 나무랄까? 이렇듯 마땅한 조건을 따라 결혼하는 여자는 모두가 창녀다. 그렇다 해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자신을 팔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가상키나 하다. 이날 밤, 과거의 첫 남자를 떠올리고 있는 것 자체가 참 악랄한 창녀성이다. 나는 그렇게 꼬옥 눈을 감고 있었다.


신랑이 점점 밀착되어 왔다. 그는 내 무감각을 그리 탓하지 않았다. 우리는 약혼-파혼-약혼-결혼의 대단원을 존중해야 했다. 나는 더 꼬옥 눈을 감았다. 내 몸을 잊고 먼 데 시간과 공간으로 날았다. 갑자기 그 옛날의 ‘그’가 내 몸 속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랜 망각 속의 그가 뜨겁게 내 몸 속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고,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밤새 나는 옛날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서투른 허영에 들뜬 철부지 여대생, “아니”를 연발하는 그의 무서운 실존의 고백을 듣고 당황한 어린 영혼이었다. 나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이상한 공존으로 시작되었다.


신혼의 우리는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댁에서 마련해준 아파트는 의외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가까웠다. LA 같진 않아도 사는 일엔 우리말만으로도 불편이 없지만, 공부를 하자면 영어를 수준급으로 습득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둘이서 같이 하면 잘 안된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내가 운전을 못해서 그냥 같은 대학의 어학코스에 등록했다. 그러다 내가 결석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를 포기한 나는 집안의 일상으로 돌아와 무료함에 던져졌다.


신혼 기간을 사람들은 임신 전까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기는 천천히 갖는 추세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적당한 몇 달이 흐른 뒤 아기가 생겼다. 어느 밤 ‘그’의 아스라이 그러나 불같이 뜨겁고 엄청난 압력이 온 몸을 꿰뚫는 희한한 느낌에 숨이 막히도록 떤 다음이었다.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난 나른한 봄날 나는 가만히 욕실로 들어가 배를 안았다. 나신은 차마 부끄러워 아랫배만을 드러내고 만져보았다.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엇이 일렁였다. 나는 그가 내 몸 속에 영원히 들어왔음을 느꼈다. 그날로 나는 남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임신이라고, 핑계는 그것이었다. 아기를 보호하고 싶다고. 남편은 기쁨과 혼란이 뒤범벅된 얼굴이었다. “어마 거참 잘 되었네. 병원 가서 확인해야지!” 친근하게 말하던 남편은 잠자리에서는 펄쩍 뛰었다. “아기를 보호해? 누구로부터? 제 아비가 누군데 보호 하느냐고!” 그러나 나는 창녀가 되는 느낌을 갖지 않고서는 남편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임신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그 동안 남편은 완전히 토라져 있었다. 처음엔 임신 히스테리치곤 별나다는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저었다. “어떤 별난 자식을 가졌기에”라는 으름장에서 “어느 놈의 자식인지 두고 보겠다, 검둥이가 나올지 흰둥일지 두고 보고야 말겠다!”는 악담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는 회복할 수 없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주역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뱃속의 아기가 부모를 함께 원하지 않는 경우라 했을지. 배는 불러왔고, 만삭이 되었다. 고향 떠난 이역만리에서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나, 시간은 정지한 느낌으로 해가 지고 또 해가 떴다. 눈이 흩날리는 날, 아기가 태어나려고 했다. 한국에서와 달리 남편들을 산실에 들여보내는 관습인 나라에서, 나는 펄펄뛰며 남편의 입실을 거부했다. 하얀 강보의 아기는 눈밭에 파묻힌 듯 쌕쌕거렸다.


남편은 내 “병”이 심하기는 해도 해산과 더불어 끝날 것이라 기대했었다 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해산을 통해 아기 이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저력을 잃었다. 이 새로운 꼬마신사와의 관계만으로도 버거웠다. 칠칠을 집는 관습대로라면 아직 큰 대문에 금줄이 걸릴 기간이었다. 결혼에 이른 “히스토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라도” 이혼만은 보류하자는 남편의 논리에 특별히 반박할 이유도 나는 갖지 못했다. 남편은 여전히 약간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있는 집의 조금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무엇도 아주 오래는 참지 못해했다. 남편은 내가 진자리에서 일어날 즈음에 말없이 아기의 여권을 만들어왔다. 떠날 수 있다는 신호였다.


아기와 함께 상당한 무게의 짐 가방을 찾아 들고 비행장을 나서는 기분은 이상하게도 안도감이었다. 늦은 봄, 하늘하늘 봄바람을 타고 소문이 빨리 흩어질까 걱정이었다. 우선은 친정나들이처럼 고향에 내려갔지만, 아기 주변의 부산함 속에서도 얼마큼 시간이 흐르자 이실직고를 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따로 나와서 직장을 갖고 아기를 기르는 삶을 생각하자면 고향에 머무를 고려도 해보았지만, 우선 어머니가 당신의 삶을 포기하고 딸네 집에서 아기젖병과 씨름하실 분이 아니었다. 나는 부지중에 어머니의 자존심을 좀먹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우선은 고향 멀리 서울 근교로 살 집을 찾았다. 언젠가 직장에 복귀할 궁리도 한 이유였다. 사표를 내고서 결혼했으니 새로 임용고사를 보아야 할 것이고,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 겁도 났다.


마침 남편이 여름방학이 되어 잠시 들어왔을 때, 함께 시댁에 불려갔다. 말없는 내게 시아버지는 아이이름의 통장을 건네주셨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끈이라는 것이구나. 시댁 근처로 이사하라는 ‘명령’에는 불복했지만, 대신 아이를 잠시 잠시 시댁에 데려다 주어야했다. 그것뿐이라면 내게는 과다한 행운이었다. 생활전선을 위해 내 아이를 다른 어머니에게 맡겨야하는 불행을 면했으니 말이다. 출입이 없는 생활, 종일 종알대는 아이와 보내는 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길었다. 밤은 깊어지지를 않았다.


그러는 사이 추상적으로는 세기가 바뀌고, 구체적으로는 강산이 변하는 십년이 흘렀다. 나는 고운 태를 훌렁 벗은 사십 세가 되었다. 그러고서 후다닥 놀랐다. 나는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낭비해버렸다. 내 시간은 정지한 채로 세상이 휙휙 지나가버렸으니까.


아이는 4학년. 이른 봄날 펼친 책에서 ‘억’이라는 수의 개념을 보고 나도 함께 놀랐다. 혼합연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니 3학년 때 세 자릿수 곱셈 때부터인가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아이는 대체로 시무룩했었다. 그제야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가 절실함을 깨달았다. 수학과 과학은 아빠가 챙긴다는 주변의 말들에도 신경이 쓰였다. 결국 아이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적지답사도 그렇다. 경복궁이야 데려 간다지만, 공주의 공산성이나 부여의 낙화암 등을 어찌 데려갈지. 『교과서를 만화로 공부해요』시리즈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빠의 역할과, 아빠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들아이를 이대로 어쩐다? 최소한 수학과 컴퓨터를 지도할 필요가 생겼다. 한참 큰 대학생선생님을 어려워하던 아이가 차츰 자연스럽게 ‘형’과 어울렸다. 아이가 배우는 틈에 나도 까마득한 기억을 되살려 컴퓨터 사용을 익혔다. 내 기호는 단연 ‘검색’이었다. 단순한 작동으로 이 무궁무진한 보물 길을 열면서, 가라앉았던 삶이 솜털처럼 부풀려 날았다. 하긴 내 관심이라야 기껏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폐부에 와 닿는 김현식도 임희숙도, 애절한 오현란도 몇 달을 넘기기 못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 옛 친구들의 이름을 검색 창에 쳐보았다. 동명이인이 줄줄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지만, 더러는 그 사이 시인이, 치과의사가, 그리고 또 무엇이 되어 있었다. 마흔 나이가 그런 것이었다. 가만히 그 이름이 떠올랐다. 무서운 유혹이었다. 그러기를 수십 번, 마침내 유혹에 굴했다. 서너 사이트가 떴다. 유전공학 전문, 혹은 근대영미소설 전공의 교수, 외국에서 활동하는 목사… 어느 누구도 그와의 관련성이 희미했다. 내과병원은 더더욱 아니리라. 뭘하고 살까, 그는?


그해 화창한 오월이었다. 컴선생이 약속을 미루었다가 왔다. 무슨 일인지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고 있었다. “늦게서야 신부님이 되셨는데, 우리 신부님이 그만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요, 그래갖고 일주기 추모미사 끝나고 몸이 성찮은 누님을 고향에다 모셔다 드리느라고요. 저희 한 동네 분이셨어요.”


나는 순간 고향말투를 듣고 있었다. 평소엔 무심히 들었는데, 지금 이 학생은 내 고향 말을 했다. ‘몸이 성찮은 누님?’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여 그 이름을 물을 수가 없었다. “향년 몇이나?” “향년이랄 게, 40대 초반요. 성당에서 어버이날 행사로 함께 운동하시다가 쓰러졌고요, 알고 보니까 지병이 있으셨답니다. 운동권으로 잡혀가 고생….”


‘그만, 그만 해라.’ 나는 그가 분명 법대생이었다는 확실한 기억 쪽에 매달렸다. 혹시라도 세상과 화해할 수가 없어 미리 피안을 살고자 성직자가 되었다 쳐도, 꼭 그 사람이 그 사람일까? 아니다. 김대건 신부님 이래 사제서품 받은 신부의 숫자가 4000을 넘는다는 구절을 어디서 본 생각이 났다. 그럼 확률은 1/4000이다. ‘미쳤구나, 과거의 모든 신부님들과 함께 확률을 셈해?’ 마음속은 점점 지옥이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자리에 들지 못한 나는 무심코 ‘마리아 막달레나’를 자판으로 치고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창녀가 되었던 여자의 내면은 암흑이었다. 내 속의 일곱 마귀는 누가 있어 쫓아내줄까? 나는 누구의 발에 향유를 부어야 할까?


화면에 티치아노의 <막달레나> 초상화가 떴다. 광야에서 참회하는 막달레나라는데, 모습은 죄인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염의 상징이다. 순 알몸에 늘어뜨린 긴 머리타래는 육욕을 증거할 뿐, 종교적 감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막달레나 시스터즈>라는 영화도 있다. 1960년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녀원의 일상. 거기 수용되는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위험한’ 여자들. 강간을 당한 뒤 아버지의 고발로, 얼굴이 예뻐서 남자들을 유혹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혹은 아기를 뺏기고 쫓겨난 미혼모 등이다. 수녀원부설 세탁소에서의 노동착취와 성희롱 - 왜 이런 것은 인종차별이 아닌가. 러시아의 수용소군도를,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애석해하고 비판하는 세력들은 뭘 했나?


막달레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찾는 강박관념은 어떤 욕망보다도 강했다. 나는 아메바의 세포분열과도 같이 거기서 파생된 단어들까지를 한없이 쫒아가는 중병에 걸렸다. 그것이 몇 년 째,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킨 적이 있다. 들켰다기보다는 의아심을 샀다. “너 갑자기 교회 다니기로 한 거야?” 그 다음해인가 『다빈치 코드』가 번역되었을 때는 일도 없이 『다빈치 코드의 진실』까지 사전편과 해설편 모두를 통독했다. 이상한 안도감으로 정신이 없던 몇 달, 친구는 또 걱정했다. “너 이제 반교회파야 뭐야?”


그 뒤로는 내가 말을 더 아낀다. 아직 누구도 모르는 자료들도 많다. 최근엔 프리드리히 헤벨이란 극작가의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작품을 찾아냈다. 표면적 도덕률 앞에서 파멸하는 인간들. 신부의 지참금에 대한 탐욕과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염려하여 약혼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는 약혼자, 그의 아이를 잉태하고서 유년시절의 연인을 사랑하는 클라라 - 옛 연인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임신사실을 알고는 뒷걸음친다. “그것에 관한한 어떤 남자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남자의 변명이 당시에 유행어였다니, 남자들의 고전임에랴!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었다. 제목은 막달레나라 하고서 왜 막달레나가 나오지도 않는가? 작가의 전기라도 훔쳐보아야 했다. 1818년 생 작가는 스물두 살에 함부르크에 나와서 곧 8년 연상의 후원자이자 연인이 된 엘리제 렌징을 만났지만, 빈에 머무는 동안 연극배우 크리스티아네 엥하우스와 결혼했다. 아내가 데리고 온 아들은 엘리제가 양육했다. 게서 18년을 자란 아들은 엘리제가 죽자 칠레로 이민 갔고, 28년 뒤 친모를 만나고자 귀국 길에 빈의 중앙역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니, 진정 친모자간의 연은 없었던 것! - 아니 이런 것을 찾고자 한 건 아니다. 기막힌 인생들에 매료되어 헛것에 심취할 뿐이다.


물론 이런 특별한 자료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폴더에 모아두었다. 서툰 영어와 더 서툰 독일어 사이트에서 뒤져내서 몇날 며칠에 한 단락 씩 읽어 모은 정보다. 엉뚱한 제목의 유래는 겨우 찾았다. 원래는 주인공을 따라 “클라라”라고 명명될 예정이었는데,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출판사의 희망에 따라 성서의 문제적 인물을 가리키게 되었단다. 출판사들의 상업성, 그것은 서적출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로구나. 글쟁이도 아니면서 괜히 허탈하다.


*


“부우부우 부우우우.” 휴대폰이 돌다 돌면서 이쪽으로 흐른다. 폰을 집어 들며 고개를 드니 느릿한 햇살이 밀려든다. “아직도 집이냐고? 그래, 간다니까. 아니, 뭘 좀 하던걸 마저. 그래 알았어.”


일단 컴퓨터를 닫고 미궁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언젠가는 이 폴더를 아예 벗어나야 하리라. 서둘러 머리를 빗으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 왜소한, 마른 장작개비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교인도 아니다. 정염과 신성을 공유한 막달레나 증후군? 말도 아니다. 나는 그냥 죄인이다. 비뚠 결벽증으로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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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6. 12. 3. 20:43

 

내적 자유

                                                                                    『 만남』2006 (이화에세이)

 

 

 

“자유로” -

 이것이 올해의 에세이 주제로 추천된 단어이다. 그 동안의 특정 주제 “모교” 또는 “어머니” 등에 비해, 자유로운 주제에 대해서 첫 순간 자유를 느낀다. 자유는 사전적인 의미로,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대로 행동할 수 있는” 어떤 상태를 말한다. 그것이 피상적으로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나 자유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권을 누리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자유선거도 하고, 자유언론을 누린다. 자유교육을 받았고, 자유연애를 통한 자유결혼에 이르렀으니 사적으로도 자유로워 마땅하다. 나는 내적 자유에 따라 글을 시작하면 된다.


 

그럼 나의 내적인 자유 지수는 어떠한가. ‘정신이나 마음으로 누리는 자유’를 말하자면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움츠러든다. 예컨대 국공립학교의 교원은 학문연구와 강의에서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정치범 혹은 파렴치범이 아닌 다음에야 퇴출될 일이 없으니까. 사적으로도 느긋한 가족 구성원들 덕택에 자유를 제한당할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무엇인가가 나를 옥죈다. 조금 더 많이 연구하고, 조금 더 잘 가르치고, 조금 더 신망을 얻고, 조금 더 사랑받기 위해서 부단히 내 자유를 감춘다. 쉬고 싶은, 잠자리에 들고 싶은 유혹마저 뿌리치면서 책상에 앉아 있게 되지만, 그것은 자유의 이름으로 그렇다. 누가 꼭 그만큼을 강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탈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일탈을 꿈꾸지만, 꿈은 늘 추상적인 안개에 다름 아니다. 인간관계의 역할강제에서 거의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것 또한 자유의 이름으로 그렇다. 자유의 대단한 능력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 목욕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선다. 오랜만의 목욕 준비에 빠진 것이 많기도 하고, 또 이메일만 보고 가려다가 혹시나 학내문서까지 체크를 하려니 여러 번 들락날락 하다가 정말 집을 나선다. 모퉁이를 돌면 큰길이다. 벌써 골목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친다. 그때 손 안에 진동이 온다. 마지막 순간에 집어 들고 나오느라 전화기가 아직 손 안에 있었나 보다. 아차, 어제 이맘때 출근길에 받았던, 같은 이의 전화다. 두어 번 만난 소설가로, 누군가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물었는데, 집에서 쓰는 컴퓨터에 저장된 때문에 말해주기가 불가능했었다. 저녁에 전화해 주기로 했었는데…….

“아 네에, 안녕하세요. 저 오늘은 마침 집입니다.”

거짓말이 술술 나오다니 스스로 놀란다. 순전히 답전화를 하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이다.

“저 지금 컴퓨터를 켜놓지 않아서요, 제가 지금 열어 보고 곧 전화 드릴게요.”

이 말은 참말이다. 거짓말에 근거한 참말.

밖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어미의 발걸음으로 집안으로 쫒아 들어가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최근 들어 작동이 늦어진 컴퓨터가 안타깝다. 저쪽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으레 전화 담당은 나지만, 마음이 급한 김에 그냥 있어 본다. 남편의 목소리가 받는다. 이쪽에서는 누님에게 느린 위로의 변이다. 누님에게 단 하나 혈육이 미국에서 다니러 왔다가 다시 떠난 하루 이틀째 시간이었다. 이야기 끝에 나를 찾으시나 보다.

“집사람? 목욕을 가는가 싶던데요…….”

나로서는 그냥 숨죽이고 이 급한 일을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다. 거실 전화에 신경을 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바보는 손을 번쩍 들고 거실로 나간다.

“저 여기 있어요, 아직 안 갔어요.”

무슨 자랑인가.

“아니 여태 안 나갔소?”

그러고서 달려가 전화를 받으니, 딸이 미국 제자리에 도착할 시간이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소식이 없으니, 그쪽에 전화를 해보라는 당부이시다.

“제 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니, 본원에다 전화를 해야 하고, 그러자면 꼬부랑말을 알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자네가 좀…….”

“예, 예, 그런데 제가 지금 급히 하던 일이 있으니 잠시 후 다시 전화 드릴게요.”

사실 본원의 전화번호를 내가 알고 있을 리 없으니까. 여차여차해서 도착시간이 정확하게 언제쯤인가도 미리 알고서 전화를 해야 하니.

그러고서 서재로 달려와 컴퓨터에서 전화와 이메일주소를 찾아서 답전화를 한다. 내 급한 사정과 팔순 노인네의 더 급한 사정을 알 리 없는 그녀에게, 가능하면 바쁜 목소리를 내지 않고서 축하 말까지를 잊지 않는다. 작가가 책을 내는 일을 산고에 비하면 산모에게 모독이 될까? 어쨌거나 축하를 받아 마땅한 그녀였으니까.

그러고서 다시 누님에게서 미국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뇌의 코드를 얼른 바꾸고 혀를 꼬부려서 여전히 부자연스런 통화를 시도한다. “프롬 코리어”라는 키워드에 금방 느리고 똑똑해지는 친절한 상대 덕에, 누님의 외동딸이 “아직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지금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상황을 듣고 전해드릴 수 있게 되기까지. 숨을 적게 쉬면서 서둘렀지만, 목욕바구니를 들고 회항을 한 시점에서부터 쉬이 2,30분이 지나갔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던 이마에 어느새 미세한 땀이 배어나 있다. 이 땀만 아니라면, 그냥 바구니를 풀고 싶다. 다시 일어서서 대문을 나가거나 아니면 주저앉거나, 이 작은 망설임에 갑자기 자유의지가 멍해진다. 어느 쪽을 내가 원하는가.


살아간다는 것은 크고 작은 갈림길의 순간순간의 합계이다. 가도 안 가도 좋을 목욕이었으니 가도 안 가도 괜찮지만, 가다가 핸드폰에 돌아온 일, 와서도 그냥 있으면 없는 줄 알 것을 있다고 설쳐서 기어코 집 전화를 받은 일, 그런 순간의 선택이 하루아침을 숨차게 만들었다. 길에 서서 집이라고 거짓말을 했으니 집으로 내달려야 했고, 그 3,4분의 속도를 낸 것만으로 내 심장은 한참을 쉬기를 주장한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은 것 ― 그 이후로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자유의지가 작용한다고 믿는다. 필요한 일도 하지만 괜스런 일도 하고, 잘한 선택도 있지만 후회스런 경우도 많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다면 후회 따위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도. 더구나 후회스런 경우들은 꼭 기억에 남아서 다음의 선택들을 무겁게 하고, 그 때문에 또 자유라는 이름으로 감정적인 선택을 하게 한다. 하지 않아야 했던,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일들이 가슴을 조인다. 하지 않았던, 했어야 했던 어떤 일들이 가슴을 조인다.

그날 아침의 혼란스럽지만 나름대로 친절한 일들은 어쩌면 과잉이었다. 가던 길을 돌아와서까지 전화번호를 그 시간에 꼭 알려주어야 할 만큼 급박한 이유는 없었고, 시누의의 전화를 꼭 그 순간 자청해서 받을 일도 아니었다. 누님의 외동딸은 한 시간 남짓 지나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 모양이다. 그럴 걸,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며,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줄로 알고 산다. 그러니까 그 과잉은 옛날에 했어야 했던, 그러나 하지 않았던 어떤 일에 대한 평생의 보상 심리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리라.


과거의 시간들이 기억으로서 현재에 존재하는 한, 현재의 시간에 자유의 공간이 줄어든다. 미래의 시간이 기대로서 현재에 존재하는 한, 그 또한 자유의 공간을 줄인다. 과거 때문에도 미래 때문에도 자유롭지 못한 인간 존재가 여기에 있다. 나의 내적 자유여 ― 자판 위를 열에 들떠 떠도는 열 손가락들은 한 조각 자유를 토로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이름 석자의 피복 속에서 자유를 꾸며대고 있을까?

그렇다고 자유의지대로 되는 일도 썩 없다. 특히 창작의 경우, 그 노력과 고통만큼의 결과는 미지수다. 사람이 예술과 학문에서 완전한 독창적인 자유로 창작을 할 수는 없다던 에.테.아. 호프만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영감이란, 그 영감 속에서만이 창작이 가능한 법인데,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우리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보다 높은 원칙의 영향”이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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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6. 10. 1. 23:30


오늘
이별하다



제법 따스한 기운이 스미는 시간, 낮이 겨워서야 깨어난 그녀는 우선 창가로 간다. 고목이 된 호야 줄기는 마른 등나무같이 완강했다. 창 아래 여린 연둣빛 봄이 지나도록 그는 새 순을 거부했다. 좁은 창으로 빨아먹는 햇볕에도 초록 잎을 나름대로 번득이던 지난 여름의 기세와는 사뭇 달랐다. 잎사귀 형상만을 간직한 채 드문드문 매달린 그것들은 플라스틱 모조 잎에 다름없었다. 아예 톡 부러지지 않을 만큼의 물기가 남아있기나 한 것인지, 겨울을 버티어낸 것만으로 고맙기도 했다.

그녀로서는 그렇게 식물 따위에 뭔가 주술을 걸어둔 자신이 야속했다. ‘해마다 꽃을 피워다오, 그러면 어쩜…….’ 막연한 기대요, 맹세였다. 혼자서 새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강아지도 금붕어도 없는 집에서, 그녀 말고 생명을 가진 것이라곤 이 작은 화분뿐이었다. 꽃은 없어도 맹목적으로 뻗어 나가는 줄기가 막연한 희망에 이르게 할 것처럼, 마치 누군가와의 수 미터 수백 미터의 거리를 단축해 줄 수 있을 것인 양 기분 좋은 식물. 그것이 그 초여름에 형언할 수 없는 귀한 꽃을 피워냈었다. 호야꽃이 피었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건 그저 덩굴식물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듯 화분에 갇혀 아무렇게나 자라는 식물에도 환상이 숨어 있었다니! 누군가를 집에 불러서 증인을 세워야 했을 일이다. 그 첫 해에, 그때는 도무지 안팎으로 흥분상태에서 꽃들이 지는 줄도 몰랐다. 간신히 매달린 잔 꽃대들 몇 개를 두고서 괜히 주술을 걸었을 뿐이다. ‘해마다 꽃을 피워다오, 그러면 어쩜…….’

천천히 씻고 아무 거나 요기를 한다. 그래도 시간은 남는다. 말을 나누지 않고 움직이다보면 시간이 참 많이 남는다. 문화센터에 가는 요일도 아니다. 그녀에게 일이 시작되는 저녁까지는 길다. 정사각형 작은 식탁 겸 책상에 앉아서 초소형 노트북을 펼친다. 그녀의 재산목록에 드는 품목이자 친구다. 여러 가지 물음에 꽤 친절한 응답을 해주는, 이만한 상대가 또 없다.

“호야. 용담목 박주가리과 호야속 식물. 덩굴성이며 늘푸른 여러해살이 풀. 줄기는 갈색이고,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다육질이며 광택이 있다. 꽃은 5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꽃자루가 나와 산형꽃차례를 이루고 반구상으로 달리며, 향기가 있다.”

‘것 봐, 꽃이 피잖아.’

“꽃잎은 흰색으로 별 모양이고, 중심부는 담홍색이며 광택이 있으므로 아름답다.”

‘아닌데, 연한 분홍색이었는데.’

상관할 바는 아니다. 백과사전을 어쩌지는 못한다. ‘책에 써 있다’ 하면 모든 근거가 되는 법인데, 하물며 백과사전의 글인데. 보통은 흰색 꽃이겠지만, 그녀의 호야는 연하디 연한 분홍빛일 수도 있다. 그렇게 큰 꽃대 끝에 잔 꽃대들이 살만 남은 우산대 모양으로 뻗어 내리고, 그 끝마다 별 사탕보다 작은 꽃들이 하나씩 붙어 피어나서 스물 서른씩이 어울려 한 송이를 이루는 것도 처음 보았다. 그것을 산형(繖形)이라 하는 것도 처음 듣는 소리다.

오늘의 걱정은 꽃이 아니다. 그 늘푸른 여러해살이 풀이라는 게 아예 새 잎 하나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식물이 땅속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소생하는 것을 그는 신비한 ‘오시리스의 신화’로 이야기 해 주었다. 식물의 동면은 여동생이자 아내인 이시스가 죽은 오빠이자 남편을 찾아 지하로 내려가는 기간으로 설명된다고. 난생 처음 듣는 먼데 신화 이야기에 감동한 그녀가 그만 호야꽃이 피는 것에 그 마음의 부활을 걸었나 보다.


*


“어쩌다 끝나는 거야, 언제 어쩌다가, 왜?”

불안에 들뜬 영혼들은 의심에 들려 허우적거린다. 내 가게에서 보게 되는 그녀들은 대개가 그런 의심에 들린 때쯤이다. 사람 사이를 의심하고 괴로워하기 시작할 때다. 언젠가 한두 번 그녀들은 내 가게에 남자와 함께 들렀을 것이다. 남녀가 그렇고 그렇게 다닐 때에는 내가 특별히 주시하지 않는다. 흔한 것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사랑한다고 느끼며 팔짱을 끼고 혹은 팔짱을 끼지 않고 다니는 남녀이니까.

나는 그러니까 흔한 말로 카페 마담이다. 내 경험으로 보아, 언제부턴가 차를 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남녀는 흔치 않다. 대개가 옆자리를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가운데 오뚝한 테이블과 의자들은 멀쩡한데, 가장가리 쪽 소파들만 더러워지고 꺼지기 시작했다. 때 국물이 찌든 소파를 당목으로 대충 씌워놓아 허옇게 볼품 사나워도, 역시 그쪽이 인기였다. 등 뒤로 걸린 싸구려 액자 속의 그림들도 그들에겐 별반 트집잡히지 않았다. 연필로 확대해서 그린 얼굴 부분이나 아무렇게나 드로잉된 나체들의 곡선은 오히려 가끔 칭찬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것이 실제로 미대에 입학도 해보지 못한 내 솜씨라는 것을 안다면 어떨지? 그걸 밝힐 이유도 틈도 없이 날은 오고 날은 갔다. 대관절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사람들은 관대하다. 마담이 평범할수록 드나드는 여자들이 좋아한다. 장사는 그런 틈에서 되어 간다. 물장사라니,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밥장사보단 일단 편하다. 아니 나는 반찬냄새를 많이 싫어한다.

돈을 벌면서 내가 굳이 독한 취미를 가져서 그들의 속내나 들여다보려는 건 아니다. 그냥 오랜만에 나타난 그녀들이 처음엔 맥주 한 병 쯤으로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 시들해 한다. 짐짓 염려스런 표정의 친구는 기실은 반질반질한 눈빛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고통의 주인공이 이런 저런 것을 개의치 않고 있으면, 그때 난 알아차린다, 벌써 심각한 상태로구나. 앞에 앉아 귀 기울이는 친구나 건성으로 보이는 마담에게서, 그러니까 상대의 본성에서 비뚤한 기쁨을 읽어낼 여력이 없는 것이 그 시기의 특징이다. 아니 그들의 특징이다. 멍청한 것들!

“사랑? 그런 것에 들리거나 환상을 갖는 사람들은 열등하다.”

한번은 한 남자가 그런 섬뜩한 발언을 해댔다. 비슷한 또래 어중간한 남자들 셋에 여자가 하나 섞인 그런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추가 카프리를 들고 가던 참이었다.

“핑카라는 언어학자 말이, 우리의 심리적 모듈은 차에 치여 네 다리를 쑥 뻗고 나자빠져 있는 죽은 동물의 부어오르고 갈라진 뇌의 틈새보다 더 뒤죽박죽이라오.”

핑크, 또는 핑커 그 비슷한 이름이었지만 그건 대수가 아니다. 내가 들은 건, “나자빠져” 어쩌고 할 때부터야 분명했다. 어려운 단어 “모듈”도 나중에 채워 넣어 알게 된 단어다.

“그게 마인드라는 것인데, 왜 사내들은 서로 결투에 도전하는가, 왜 사내들은 전처를 살해하는가, 다 그 탓이라오.”

아니 이 남자가 웬 말을? 전처를 살해한 과거를 가졌을 리 없는, 아니 전처라는 단어를 모를 법한 이 남자가. 처와 마찰 중?

그러면서도 나는 실은 그 이상한 논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인드’는 뭔가 어렵고 애매했지만, 일단 전체적으로 은근히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해볼 계획도 없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한 몸 멀쩡한 듯 살아가기도 힘들다. 사랑 같은 것은 시간 남고 배부른 사람들이 찾는 진한 양념이다. 밥냄새도 반찬냄새도 싫은 내게 자극적 양념은 더더욱 필요 없다.

나는 근처에서 얼쩡거리려고 옆 테이블의 냅킨그릇을 들었다 옮겼다 했다. 말하던 사람은 하이네켄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 그 상표를 들었을 때, 혹시 하이네 이름을 따서 지은 캔 맥주인가 생각했던 어리석은 기억이 늘 따라다녔다. <로렐라이> 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를 지었다는 하이네. 누군가 하이네켄을 찾으면 그 사람도 혹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게다가 제대로 못 배운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난 자꾸 이 유식한 남자에게로 신경이 쏠렸다. 아니다, 꼭 그건 아니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유식하기로 치면 너나 할 것 없으니까.

차츰 알게 된 것으로, 그 말을 내뱉은 사람도 언어학자라 했다. 언어학자라면 국문과 교수와 다른지, 국문과 교수는 소설가와 다른지, 어느 것도 잘 모르던 나에게는 그것이 그것이었다. 온통 유식한 사람들. 그들의 낮 세계와 동떨어진 나는 그들의 밤의 틈새를 훔치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쨌거나 인형가게에 들르는 호들갑스런 대학생들 보기보단 낫고, 왠지 영화나 브라운관이 내게 가까이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후후, 낄낄거리는 소리에 저 쪽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근처에서 몇이 내는 소리였다. 비껴 옆의 여자를 흘끔거리는가 싶다. 여럿의 눈길이 머무는 쪽은 여기선 꽤 단골에 속한다. 동그란 얼굴에 단발머리를 고집하고 앞머리까지 동강 잘라서 내린 여자로, 사랑병에선 꽤 중증이다.

여자는 홀에 들어서면 곧 왼쪽으로 굽으면서 제 자리를 훔친다. 실은 ‘거기’로 출입하는 길목이라서 별 인기 없이 늘 비어있는 자리인데도. 여자는 앉으면 의자 등부터 쓰다듬는다. 등의자를 통째로 씌운 희멀건 당목은 몇 번이고 세탁한 나머지 제 남자의 체취는 온데간데없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가 행여 뭔가 호주머니의 먼지 부스러기라도 떨쳐놓고 갔다 해도, 내가 아직 세탁을 안했다 해도, 의자를 스쳐간 숱한 여자들의 머리카락도 함께 묻어있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슬며시 웃어주면, 여자는 자신을 알아주어 고맙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아니면 알아보는 것이 무색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리곤 곧 멍하니 고개를 떨군다.

여자가 주문하는 것은 남자랑 마시던 버드와이저에서 이런 저런 칵테일로, 다시 데낄라로 바뀐 지 오래다. 앞자리에 앉아 고민을 들어 줄 친구도 있다 없다 한다. 친구의 수는 술잔과 반비례한다. 마스카라가 번진 한 쪽 눈두덩이 때문에 저쪽 테이블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나 보다. 여자는 아랑곳없다. 손등의 소금을 핥다가 뭉개진 검붉은 입술이 영 서글픈 정취를 발산한다.

“자 얼른 일어서지! 오늘은 더는 안 되겠어요. 알바들도 다 퇴근해야 하고, 이제 곧 셔터맨이 올 시간이야. 내 남자는 여자 이런 꼴 못 보는 신사거든요. 업어다주려다가 동티나게? 장군아, 아니 멍군 네가 이 손님 좀…….”

그녀들이 뜸한 날엔 장군과 멍군이 심심해한다. 알바 아이들이다. 하나는 장 뭐라는 아이가 맞다. 나중에 온 녀석이 내가 선임더러 “장군아” 부르는 소릴 듣더니 저는 멍군으로 부르라 해서 그냥 그리 되었다. 이곳에선 호적상의 이름 같은 건 아무도 관심 없다. 이런 곳 이런 시간에는 얄팍한 거짓이 일상이다. “내 남자는 신사”라고, 후후? 혼자 사는 여자 행색이 이런 곳 이런 시간에 어울리지 않아서 멋대로 창조된 남자일 뿐이다.


나는 카페에 오는 멍청한 남녀들의 어리석음을 적당히 비웃는다. 그리고는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은 나는 내 비밀을 푼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숲에 나가 소리칠 데가 없는 세상에 살자면, 그런 세상을 미치지 않고 살자면, 이런 컴퓨터란 이름의 대숲 창고가 참으로 다행이다. 암호만 걸어두면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내 글〉. 그것은 내 고백성사요 어쩌면 종부성사가 될 것이다. 누구라도 열지 못하는. 물론 해커인지 뭔지 엄청 대단한 기술을 가진 아이들은 누구의 어떤 파일도 다 연다지만, 누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인재들을 동원해서 시답잖은 나의 〈내 글〉을 열어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안심이다.

나는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자유 그 자체다.’

‘거짓말, 그건 외로움이야.’

내가 한 마디 적을 때마다 허수가 토를 단다. 나는 정해수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었지만, “해수애비”로 통하는 아버지 때문에 늘 ‘허수아비’라 놀림 받았다. 어렸을 때 나는 내 이름이 정말 허수인가 할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왜 ‘정 선생’도 ‘정 씨’도 못되고, 늘 그렇게만 불렸을까? “해준에미야” ― 할머니가 그렇게 부르는 엄마는 다른 아이들인 해정이 해은의 어머니였다.


나는 그냥 내 이야기만 하기로 한다. 허수도 조용하다.

내 처음 직업은 경리였다. 경리직원 정양이 사장님과 사모님에게서 도망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피스텔은 실제로 그들의 체모로는 슬그머니라도 나타날 수 없는 곳이었다. 빌라 아니면 대형 아파트 단지 또는 호화로운 호텔의 로비가 그들의 세계였으니까. 돈이 적은 대로 단독 2층을 세 들어 살 수도 있었겠지만, 제대로 된 살림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내 생활 또한 오피스텔의 생리에 맞았다. 어딘가에서 김치찌개나 감자 넣고 비릿한 생선 끓이는 냄새가 넘어 들어오지 않을 잠자리 ― 그건 건 바로 이런 종류였다.

내 자신의 몰골을 이곳에 맞추려고 무진 애를 쓴다. 어디에 살건, 누군가가 삽을 들고 나와서 퍼 내 버리고 싶은 개똥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물론 처음 바로 술집을 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빵집을 내서 빵을 가져다 판다거나, 액세서리 집을 내어볼까 궁리에 궁리를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던 경리직원 생활을 접은 순간, 제발 아침엔 늦잠을 자고도 살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 어린 시절 이래 늦잠 한번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서 어머니, 그러니까 해준엄마를 거들어야 했던 건 순전히 할머니 때문이었다. 그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할머니가 참 고마웠다 싶었지. 붓기를 잘하는 해준엄만 조그만 내게 많은 것을 의지했고, 그래서 나를 미워하지 않았을 거야. 쓸모 있는 딸을 미워할 계모는 없어, 아주 심성이 비뚤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은 제 할 탓이다.”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아무데서고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그랬다 난. 그렇지만 일찍 철들어 살림을 도맡았던 어린 시절은 내게 찌든 찬장냄새도 심지어 밥이 익어가는 냄새도 다 싫어하는 괴벽만을 남겼다. 난 정말 음식냄새가 싫다. 사람이 음식냄새를 싫어하면 뭔가, 반은 죽은 목숨이다.


야간 상고에 진학한 것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새벽부터 집안일과 아이들 챙기는 일 끝나고 나면 다시 집안일. 새엄마는 부성한 발등을 하고 겨우 앞마당 뒷마당으로 뒤뚱거리기 일쑤였고, 한낮이 겨워야 숨을 돌리고 마주 앉은 밥상에서 내겐 항상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학교엘 못 가 어쩐데냐, 야간이라면 또 모른데, 하긴 야간은 또 집이 멀어 통금되게 생겼고…….”

“늦는 건 안 무서운데,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렇게 해서 일년 늦게 야간 공부가 가능했다. 천장이 높고 썰렁한 교실은 참 고상했다. 우선 퀴퀴한 음식냄새와 멀었다. 누군가의 피아노 연습 소리도 서툰 대로 고상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짓고……. 그러다가 어두워진 저녁 시간 교실만 밝은데, 노래공부는 교실을 천상으로 바꾸었다. 영어를 읽어도 잘은 모르지만 무슨 신기한 노래 같았다. 그 대신 답이 확실한 산수와 수학시간이 즐거웠던 나는 정작 상고 시절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의무가 되고 수단이 되려니까 그랬을지.


그나마 제대로 졸업을 했더라면 이보다는 나은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새엄마는 내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새엄마가 인생에 썩 도움이 된다는 이야긴 들어 본적이 없으니 크게 억울할 거야 없다. 어쩌면 새엄마가 병만 처지지 않았어도……. 새엄마는 그 살림으로는 죽느니 비슷한 병을 앓았다. 살아서 피를 걸러내야 하는, 일주일분 온 식구의 생활비를 혼자서 다 써야 하는 병을.

남은 한 학기를 못 마치고 학교를 접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담임선생님이 알선해준 경리 자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듬해에 복학해서 남은 한 학기를 졸업하게 해주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고도 직장을 옮기는 배은망덕한 꿈은 감히 꾸지 않았다. 웬걸, 대학에는 내가 책임지고 보내주마 하던 사장님.

사장님은 친절했고 그리고 도둑이었다. 어려서 죽은 딸만 같다고, 공부하라고 마련해준 뒷방은 분에 넘치게 감사했지만, 수능시험 준비를 할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밤낮없이 일감을 들고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난 어느새 나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나쁜. 머리는 썩지 않았다. 사모님과 결산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믿었다.

“절대로 나타나지 않겠어요, 마침 결혼하자는 남자친구가 있으니.”

거짓말은 서로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전 그냥 아무 내색 없이 시집가겠어요, 사모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나름대로 목돈을 가지고 궁리를 하면서 준비한 것은 봉제 인형들을 들여다 파는 작은 선물의 집이었다. 대학을 그렸던 마음이 대학동네를 흘끔거리게 했다. 그러나 대학가 길목은 너무 비쌌고, 한두 블록 떨어진 미용실과 PC방 사이, 딱 한 팔 너비의 가게는 장소를 잘못 고른 셈이었다. 미용실에서 내다 널어놓는 수건 빨래걸이와 PC방 앞의 두들겨 패는 놀이판들 사이에서, 내 흰곰들은 누렇게 변해갔다. 너무 심심하면 나는 그놈들을 스케치했다. 그도 심심하면 바깥에 스쳐가는 사람들을 그리곤 했다. 가끔 점심 먹으러 가는 떡볶이 아줌마는 차라리 소주방을 하라 했고, 미용실 아가씨들은 빠를 하라고 했다. 떡볶이 아줌마는 다시 새벽 해장국집을 권했다. 모두가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는 세상이랬다.

“대학가에서 곰인형이 뭐야. 그런 건 요샌 초등 애들도 별로야.”

“생긴 것과는 참 다르네여…….”

이건 미용실 아가씨 말이었다.

“내 생긴 게 왜 어때서여?”

말꼬리를 흉내 내자 모두들 피식 웃었다.

“머리를 더 길러서 확 층을 내고, 앞과 옆은 과감히 흩트려서 볼륨을 넣고 좀 섹시하게 연출한다면!”

“한다면?”

“한다면, 영락없는 카페 마담 스타일이지여.” 젊은 것 같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그런 분위기가 여러 층의 사람들을 사로잡는다고! 미용실 아가씨는 모처럼 전공을 살리게 되어서인지 말에 기운을 얻었다.


그들은 내가 인형들에 집착했던 이유를 알 리 없었다. 아버지 없는 아일 상상하기 무서워서,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내 스스로가 무서워서 미리 포기해버린 내 미래의 아기. 난 인형들에서 사라져간 아기의 영혼의 파편들을 만난다. 동그란 눈도, 찌그러진 눈도 가능했을 내 아기. 눈웃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갈색 곰, 놀란 토끼 눈처럼 만들어진 아기 곰. 앞치마까지 차려 입은 엄마 곰. 곰 가족, 내 인생에는 있을 수 없을 가족, 엄마와 아빠와 아기.

할머니는 처음 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는 내게 당부하셨다.

“여자는 버스를 타거나 어쩌거나 항상 양 무릎을 떼어선 안 되느니.”

그 “어쩌거나”가 무슨 의미였는지는 이미 무릎이 젖혀진 뒤에서야 깨달았다. 강요가 있었지만 뭔가 자포자기적인 충동과 얼버무려진 혼돈. 누구든 치를 것에 대한 겁 없는 대처이기도 했다. 대학의 꿈을 접지 못한, 겨우 스물한 살 때였다. 가벼운 행동의 결과는 증폭되어 나타났다. 규칙적인 피흘림을 단 한 달 걸렀을 때, 난 미련 없이 아기의 가능성을 차단하기로 결심했다. 평상시 뭉클하게 쏟아지던 행사 정도에 그칠 그냥 피의 덩어리일 뿐일 그것을. 어디에서도 제대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 그것을.

“내참, 의사 생활 몇 년인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긴가민가 하는 상태에서 떼 달라 조르는 아가씨도 다 있구먼. 새파란 나이에 뭐야.”

“병적인 순결집착증 아닐까요, 원장선생님?”

“쉿, 들릴 지도 몰라. 대충 마취한 거잖아, 별 꺼낼 것이 있기나 한지 원.”

‘미친 것들! 순결집착증이 있는 여자가 이 모양 이 꼴로 여기 누워 있겠냐! 미친 것!’ 그렇게 속으로 속으로 이를 악물고 외쳤다. 치욕은 자진해서 다리를 벌린 그곳에서 더욱 심했다. 월급을 주는 남자와 월급을 받는 여자 사이를 통째로 의심하던 나에게 그들 또한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미친 것!’ ― 이 말은 내 입버릇이 되고 말았다. 저기 저렇게 술병을 앞에 두고 너덜거리는 군상들을 보면, 아무에게나 그렇게 내뱉었다, 미친 것!


오늘도 그녀다. 반듯한 외모에 강사씩이나 된다는데, 여기 와서 만날 넋두리다. 대학에서 선생을 하는 여자라니, 내 처지로 보면 하늘이다. 그런데 밤에 보면 별 것도 아니다.

“같이 보따리장사 시절 동병상련 가까워 졌었지…….”

보따리장사란 여기 오는 사람들 용어로 시간강사다. 남자가 신임교수가 되자마자 여자가 채였단다. 어지간히 뻔한 일이다. 박식한 박사들이 널린 세상에서 결정적인 것은 ‘전임’이라고들 했다. 첨엔 나도, 시간강사는 하루 한두 시간만 하고 전임강사는 온종일 하는 강사인줄 알았었다. 대학가 근처에선 배워지는 것도 많다. 또 강사와 교수가 무엇이 다른지, 다같이 대학교의 선생님들 아닌가. 한번은 두 비슷한 남자 둘이 앉아서,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교수님”이라 호칭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에게 꼭 “선생님”이라고 해서 의아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 쪽은 시간강사이고 교수님 쪽은 전임강사란다. ‘선생님’이 가장 높여 부르는 것인 줄 알았던 나는 매번 놀랬다. 어느 고장에선 ‘전(前)대통령’보다 ‘선생님’이라고 해야 존경심을 나타내는 줄 알기도 하는데.

아무튼 “결정적인 순간에 이 남자가 좋은 혼처에 안착해버렸다”는 것이다. 남자는 결혼 후로도 “마음만은……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는 오직……” 하면서 여자에게 기댔더란다. 습관에서 탈피하지 못하듯이 꼭 그렇게 그녀는 그의 곁에 남았고. 그가 원하면 달려갔고. 완벽하지 못한 그의 결혼에 마지막 화룡점정이 되어도 좋다고 느껴질 만큼 그는 그녀를 간절하게 원했었다고. 그러더니 코가 비뚤게 술을 마신 어느 날 느닷없이 그러더란다, 날 좀 놔주지 왜 이러느냐고, 알고 보니 여잔 다 같은 수준이더라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 자식, 논리가 대단했어.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내가 그를 원한다, 유부남을.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을 나에게 내어주느라 죽을 지경이다. 반대로,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하지 않겠는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원이니 내가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것도 술 핑계로 그런 논전을 걸어왔다니까.”

‘그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겠구나, 너, 미친 것아!’

밖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소리가 나온다.

“어마 그럴 리가……. 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요. 어쩜 예민한 아내 쪽에서…….”

나는 마음에 없는 말로 사회적 웃음기를 흘린다.

“야아 그놈의 말장사, 보따리장사. 누가 그 말장사를 따라가겠어. 나요? 나도 강사 아니냐구요? 그래요, 저나 나나 같이 보따리장사였죠. 하지만 난 화학이요. 우린 말장사라기보다는…….”

알만 하다. 마담 퀴리가 되려는 듯이 화학과에 진학하는 여학생들. 공부는 잘 해도 인간미 없을 확률이 높은 똑똑한 부류. 보아하니 땅딸보도 아니고. 공부도 잘하고 예뻐서 같은 반 친구들 꽤나 마음 다치게 했었겠다!

그런 여자들은 죄 없이도 좀 당해도 싸다. 왜, 공부도 잘하고 예쁜 부잣집 딸이면 더욱 뒤틀린다. 그 중 하나도 갖지 못한 열여섯 살짜리 여자애들을 그들은 모른다. 중학교 졸업 후 희망이 끊어진. 갈아입을 여러 벌을 다 포기하고서도 제대로 된 옷 한 벌을 만져보지도 못하는 열여섯 살 여자애를. 함부로 청바지를 입고 싶지 않고,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서 무통 다리에 스커트를 입고 싶어 하는 스무 살짜리를. 애매한 미소 속에 술을 팔아 살아가느라 겉 나이 먹어가는 여자를. 서른도 전에 마음 닫아 건 여자를.

어쩌나, 난 그 병을 지금도 못 버렸다. 대학가 가까이 집을 구하고, 요조숙녀에 가까운 대학원생쯤으로 보이기 위해서 살짝 긴 컷을 고수하는 것 하며, 향수도 레이스 치장도 피하고, 가능하면 직선 라인을 선호하여 몸매의 곡선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며……. 올빼미족을 상대로 술을 팔아서 먹고사는 여자가 사무실 분위기의 오피스텔에는 어떻게 맞추느냐고? 그건 간단했다. 오후 출근길에 노출 없는 깔끔한 옷과 맨얼굴이면 통과였다. 밤늦은 시간에는 보는 사람들이 적다. 또 술을 팔되 술은 아예 하지 않는 원칙이다. 바보들이 사랑에 빠지듯이, 바보들이 술을 마시니까. 난 바보가 되고 싶지 않다.


‘저 바보는 또 왜 이리로 오는 것일까?’

이번엔 굵은 웨이브의 긴 머리. 어디선가 술에 젖어 온 그녀는 들어오면서 바로 주인인 내가 왜 그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이 그림 아래, 여기서 그가 나를 무릎에 뉘인 적도 있었는데.”

그때 실은 많이 취해서는 아니고, 그들은 술은 많이 하지 않고 토론을 즐겼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은…….”

그녀가 말끝마다 내뱉는 유럽 사람들 마냥, 그 둘은 한 잔 놓고 앉아서 오래 떠드는 부류였다고 기억된다. 그녀의 남자 또한 기억한다. 왜, 무처럼 희멀건 얼굴에 안경테는 검은, 상투적 샌님. 다만 잘 코디도 안 된 채 입는 캐주얼한 복장이 얼핏 자유의 냄새를 풍겼을 뿐이다. 그 정도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인물은 실로 널려 있다.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그녀가 사랑에 빠졌을 뿐이다. 멍청한 것!


나는 멍청한 남녀들의 어리석음을 한껏 비웃어준다. 지열이 가시면서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은 나는 내 비밀을 푼다.

비밀? 비밀이라 할 밖에 없는 것은, 세상에서 알 리 없고, 그 사람마저 알 수 없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다. 일층 편의점에서 햇반을 집어 들다가 만난 사람을 스물 네 시간 안에 다시 마주치면 누구라도 일순간 가슴이 움직인다. 역시 일층 문방구 계산대에서 부딪친 그의 바구니에는 말갛게 비치는 홀더 뭉치와 작은 집게 한 통, 그리고 연둣빛 형광펜 옆에는 놀랍게도 연필과 지우개가 들어 있었다. 연필? 요새도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딱풀과 크레용 그리고 작은 가위. 그 사람 역시 나를 따라서 내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어쩌나, 나를 초등학교 학부형쯤으로 보았으면 어쩌나? 내 가능한 아기가 만일 태어났다면 초등학생쯤일까?’

무슨 대수였을까? 어떤 남자가 연필로 연애편지를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곤 하거나 말거나. 처음으로 마주친 그가 그 가벼운 차림의 몰골로 미루어 같은 오피스텔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피스텔의 생리가 무엇인가? 옆방에서 통절한 싸움이 나도 모르도록 되어있는 구조를 즐기려는 것 아니었나? 홀더와 작은 집게들,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를 사서 햇반을 먹으며 일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나 또한 딱풀을 사서 얇은 화장지로 부챗살을 덧바르고, 종이가 완전히 마르면 파스텔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 넣을 참이었지만, 낡은 부채를 버리지 않고 붙이려는 나를 누가 관여한단 말인가. ‘어머나, 대단하다, 말끔히 새것이 되었네!’ 혹은, ‘처음보다 더 예쁜데!’ 하고 감탄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괜한 짓 하고 있구나, 거 뭐한다고 헌 부채를 가지고 몸살이냐!’ 그렇게 핀잔할 사람마저도 없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대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혼자다. 혼자라서 이곳에 산다. 이렇게 좁은 공간을 선택한 것이 돈이 적은 이유에 겹쳐서, 마치 사람들이 싫어서 반드시 혼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시위하려는 몸짓들 같다.


난 정말이지 다시 집으로 갈 순 없었다. 떠나올 때와 너무 달라진 나 자신 때문이기도 했고, 생모도 생부도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집이 집은 아닌 것 같았다. 독립을 위해서 야멸차게 받아낸 큰 돈도 있었다. 물론 내 경우로 큰 돈. 그 돈으로 수고로운 몸을 뉘일 작은 집과 밥을 벌어먹을 가게를 꾸린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내가 이쯤이면 스스로 대견하다. 그 나름대로 대도시, 이런 곳에서 누군가에게 생활을 의탁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난 혼자서 잘 산다. 무엇을 특별히 기대하지 않으며, 그래서 무엇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야간에서 만난 친구들이 보통 그랬다. 기쁨과 슬픔의 표현이란 인문계 고교로 진학한 순진한 아이들, 있는 집 아이들의 것이었다. 우리에겐 미래의 꿈은 먼 것이었다. 우리에겐 우선 현실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 또한 지독한 현실에 내팽겨졌다가, 겨우 이리로 숨어들었다. 상의할 형제도 없이, 친구도 없이, 난 한 격랑을 탈출했다. 내가 만일 이제와 그들을 찾는다면, 만일 그런다면, 그들 중 누구라도 내 이상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길 것이다. 더한 불행들이 부도덕한 소문쯤을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내 불행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정말 힘들어지면 누군가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나만큼 외롭고 무미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다들 성공(?)해서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 또한 가슴 아플까?

나에게 더 아플 가슴은 없다. 처음부터 잘 발달되지 못한 내 정서다. 애정 없이, 아니 증오심과 함께, 상당기간 몸을 버렸고, 내 몸은 굳었다. 피기 시작하지도 않고 시드는 꽃.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감동적인 안치환의 목소리로 들은 노래가 가슴을 저몄다. 고향의 옛 시인이 쓴 가사라 해서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내 고향엔 내 이른 죽음을 서러워할 사람도 없다.

꽃봉오리들이 다 피는가? 다 못 필 수도 있기 때문에 피어난 꽃들을 아름답다고 할 게다. 연거푸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갓난애조차 업은 채 강에 뛰어들었다는 내 어머니. 누가 크게 구박도 안했는데 무엇이 혼자 서러워서였는지, 스물두 해도 넘기지 못한 여자. 그 주검이 달구지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고서도 그 자리에 시집온 새엄마. 반은 넋 나간 남편과 아이들과 병마와 얽혀 들어간 여자. 누구도 피어본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할밖에.

내 생채기? 회오리바람은 도처에 있는 법이다. 그만하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산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잘 안배하며 산다. 내 어머니처럼 돌아버리지 않게, 새엄마처럼 병들어 처지지 않게. 그냥 할 수 있는 일로 밥을 벌고…….


그러다 그 스물네 시간 안에 누군가를 세 번째 조우하기에 이르면, 누구라도 뭔가 운명적이라는 환상에 빠지기 쉽다. 내가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천천히 문 쪽을 향할 때, 서둘러 계단에서 올라온 걸음걸이가 나를 지나쳐 내 방문을 잽싸게 열고 들어갔고, 그것이 그였다. 곁을 밀치듯이 지나친 뒤에도 나를 별 의식하지 않던 그가 방문을 닫기 전엔 살짝 돌아다보았다. 내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나 보다. 그래도 조금 고개를 까닥하고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그 순간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속도로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은. 누가 내 면전에서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아거는가? 한두 발 더 걸어가서 확인한 방문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4층이었다. 5층에서 내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 우연한 실수에 멍해진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기가 멋쩍어 계단으로 5층을 향했다.

‘아차, 그러니까 4층에 사는 남자였구나! 내가 잘못 내린 거네 뭐!’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그를 스물네 시간 안에 세 번씩 만나려고? 그런데 어디서 보았더라? 홀더와 작은 집게들,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를 사서 햇반을 먹으며, 나와 천장두께만큼 떨어져서 일하고 있을 이 사람을?

그것은 경이이자 슬픔이었다. 인생의 시작부터 망가진 채, 이제는 사람 사이를 초월해서 살리라,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살기 시작한 그때, 하필 그때 그 무심한 맑은 시선과 마주친 것은.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깨끗한 눈빛. 그것이 다른 사람의 원과 소망을 자아낼 수 있음을 그땐 사실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무려나 일상은 계속되었다. 다시 하이네켄을 찾는 언어학자가 나타나는 일도 일상에 속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그였다. 언어학자라던 그 남자, 그 남자가 그였다. 그 남자의 일행은 갑자기 자주 들렀고, 온갖 외국어에서 비슷한 공통점인가를 찾아 연구하는 팀이라 알려졌다.

‘혹시 하이네도 강의하시나요?’

하이네켄을 계속 들고 가면서 묻고 싶은 말이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그럴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슈퍼에서 문방구에서 오피스텔에서 마주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핑계가 되어 가까이 앉으면 알아볼까? 알아보는 것이 좋을까 아닐까? 그래서 망설였다.


그쪽 테이블에서 돌연 큰 소리가 들려왔다.

“글의 주제? 아니, 난 그저 인생의 주제를 말하는 거요. 내 인생에 주제가 뭔가……”

나는 그의 목소리만을 크게 듣는다. 내 귀의 기능에는 최신 디지털 보청기들처럼 그의 목소리만 가려서 크게 듣는 장치가 되었나 보다.

‘인생의 주제? 주제라는 게 대체 뭐라는 것일까?’

그렇게 나도 덩달아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주제’가 들어간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주제도 모르고…….’ ‘옷주제가 뭐다냐?’ ― 그런 뜻과는 다른 무엇인 듯했다. 하지만 ‘인생의 주제라…….’ 아무래도 ‘중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중심을 가지고 사는 일, 그런 것을 말했을 것도 같았다. 인생의 주제를 두고 논할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술파는 여자는.


나는 술을 팔아 살아가는 내 신세를 비웃게 되었다.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으면, 나는 내 멍청하고 슬픈 비밀을 푼다. 들킬세라.

나는 당신을 향해 오감을 열었습니다. 여럿이서, 그것도 드물게 나타나시는 당신은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으십니다. 하이네켄을 파는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병을 들고 테이블 주위를 도는 여자를. 그러다 당신은 마침내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공휴일이 끼어서 한가한 오후였지요. 진한 커피도 듣지 않고, 아스피린도 한 알 밖에 남지 않아 약국을 향하던 나를 알아보셨습니다. 단화를 신고, 그러나 옷은 산보 차림은 아니었던 저에게 그랬습니다. “산보 가십니까?”

나는 아스피린도 잊고, “예”라고 말했습니다. 유식하고 멋스러운 당신과 산보길이라면 어떤 것도 접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가 물장사 몇 년 만에 대학 내를 산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빠른 산보 걸음을 쫒아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당신은 벤치에 함께 앉았습니다. 감히 옆에 앉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땅바닥에 앉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메마른 땅바닥에 섞여 있는 돌과 돌가루 틈새로 풀잎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풀잎으로 보아 오월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이름을 묻고는, “해수 또는 허수”라는 말에 너무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허수라고요, 시니컬합니다. 좋습니다.” 그리고는 술자리에서 내가 한두 번 대화에 낄 때 속으로 놀랐다고, 산문적 현대에서 뭔가 시적인 세계 같은 순수를 보았다고. “특히 그 분위기에 맞지 않게.”

“그” 분위기는 술집 분위기겠지요. 그러니까 오피스텔에서 마주친 여자하고 술집여자하고를 동일시하기가 어려웠었다는……, 그런 고백이어도 좋았습니다. 한껏 높은 세계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이면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보지도 못하고 대학가에서 술을 파는 나에게. 대학생도 과한 나에게 모든 것을 졸업한 대학교수라니. 알게 모르게 유린당한 내 몸뚱이가 부끄러웠을 뿐입니다. 실전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뚫린 방패, 꺾인 창.


며칠 후 다시 일행과 함께 온 당신의 모습. 그 며칠 후. 그 며칠 후. 그러나 곧 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가의 여름이 그렇지만, 그해 여름은 참 길었습니다. 여전히 가시지 않은 더위 속에, 그러나 저녁이면 시원해지는 어느 날 밤, 당신이 다시 가까이 있음에 나는 돌아버릴 만큼 행복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붕 뜬 것, 아니 어지러운 멀미 같은 이것을 무어라 한답니까?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려 가게 문을 못 열면 어쩌나 걱정되었습니다. 혹시 폐렴에 걸려 죽을까 더욱 겁났습니다. 더는 당신을 못 보고 죽을까 겁났습니다. 절대로 날마다 오실 리 없는 당신을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오신 것은 두 학기의 공동프로젝트 때문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8개월, 7개월…… 3개월. 줄어드는 숫자의 의미를 당신은 모르십니다. 어차피 당신이 한시적으로 있습니다. 멀찌감치라고 해도 공기를 통해 섞일 수 있는 시간을 탐하는 내 욕망이 꿈틀거렸습니다. 그것을 오래지 않아 들켰습니다. 죽을 죄였습니다. 당신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왜냐하면 당신이 곧 멈췄으니까요. 아니 찬물을 끼얹으셨던 것, 압니다.

“어련히 알아서 마실까봐서요.”

어느 날 저녁, 그날도 자꾸 당신의 테이블을 맴도는 나를 향해서, 바라보지도 않고 내뱉으신 말. 퍼뜩, 부끄러워서, 카운터 뒤로 도망쳤습니다. 아예 두통을 핑계로 알바들에게 뒤를 맡긴 채 가게를 뛰쳐나왔습니다. 콧물 핑계로 계속 울었습니다. 마음에선 어쩌면 그렇게 차갑지 못하실 것이라 생각도 해봅니다. 어쩌다 일행들과 오시면, 이제는 내가 없는 것처럼 완전히 무시하시는 당신. 당신의 무심함에 죽어갑니다. 더 빨리 죽고 싶습니다. 이사를 떠날 수는 없어, 아니 떠나지 못합니다. 떠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당신의 시간이 정해졌으니까요. 시간이 가면서 나는 점점 미치는 게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한 계단 내려가서 오른 쪽으로 굽는다. 정확히 열네 걸음이면 손에 잡히는 손잡이.’

몇 번씩 초인종을 눌러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나를 미치게 합니다. 수돗물을 밤새 틀어 놓아 물이 넘치고 넘쳐서, 당신의 천장을 스며, 혹은 당신의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상상을 합니다. 물은 쉽게 당신에게 이릅니다. 이 바보는, 정신 나간 바보는, 수돗물을 부러워합니다. 속을 썩힐 대로 썩혀 다 녹으면, 그게 물이 될까요?

일에 빠지자는 처방도 잘 듣지 않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야 가게 문을 여니, 긴긴 낮 시간을 잠이라도 자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수면제를 먹었다가는 가게 문을 열고서 졸게 되어 안 됩니다. 시간을 보내려고 문화센터를 기웃거립니다. 초상화반에 등록도 했습니다.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되려고. 당신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되려고. 떠나신 뒤에 그리는 초상을 보고서 누가 뭐라겠습니까? 떠나신 뒤 걸려있는 초상화를 보고서 누가 뭐라겠습니까? 그러나 아주 떠나시기 전에, 몇 분간만 함께 있을 수는 없겠습니까? 한번만 버스 정류장 혹은 기차역까지 함께 가면 안 될까요? 당신은 나를 살게 하는 약이고, 나를 살 수 없게 하는 독이십니다. 나의 독, 나의 약이시여! 몇 분만 함께 할 수는 없나요? 몇 분의 약이면 몇 년은 버틸 것 같습니다. 아니 영원히 간직해 두고 조금씩 꺼내보겠습니다. 알사탕은 보기만 해도 그 단맛을 느끼듯이. 사탕이 닳을세라 그렇게 보기만 하면서, 달콤함을 조금씩 핥아가면서.

호야의 스물 서른 작은 꽃봉오리들처럼 수없이 매달려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당신의 마음 한 조각은 귀한 만큼 그러나 여렸습니다. 애당초 열정이었을 리도 없습니다. 그저 나락에 빠졌던 내가 그 여린 줄기를 구원의 밧줄로 믿어버렸던, 초여름의 마파람 한 번이면 흩어져버릴 만큼 가벼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당신에게서 들었던 말을, 뜻도 모르고 되뇝니다. 그것이 다였습니다.


끝은 언제 오느냐고? 그것은 처음부터 병행이다. 다만 너흰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에서야 화들짝 놀랄 뿐이다. 예컨대 CD 같은 하찮은 네 선물을 되돌려 받을 때, 그때도 넌 사실을 믿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댄다. 너를 위해서, 너의 필요를 위해서 돌려준 것이리라고. 그러다 혹시 조금 취한 말로 “너 때문에 힘들어” 라고 중얼거리면 다시 전부를 건다. 그러나 마침내 너는 알게 된다. 예컨대 작은 보시기에 귀한 음식을, 네 생각으로 귀한 음식을 그에게 몰래 두고 나왔을 때, 급해서 네 손가방도 문 밖에 두고, 물론 그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네 방안으로 숨어들었을 때. 그때 그가 그것을 거부할 때. 그것을 다시 들고 와서 고개만 내민 채, “저, 많이 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혹은 정중하지도 않게 말할 때. 손에 닿는 현관 어디 첫 번째 가구 신발장 같은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나갈 때. 나가려다 말고 친절하게 혹은 별 친절하지도 않게, 오히려 칠칠맞음을 나무라듯이, “여기 가방을 이렇게 밖에 놔두고 그래요!?” 하면서, 네가 밖에 잊어버리고 있던 지갑을 디밀어 넣어주고 나갈 때. 문을 닫고 아주 나갈 때.


일상은 평온했다. 사람들이 줄어든 느낌이었을 뿐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좋은 것을 찾으니 술은 덜 마시는 것이다. 아니, 그가 보이지 않는 날은 홀이 텅 빈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자살과 타살이 나오는 책을 읽었다. 순전히 그의 테이블에서 얻어들은 때문에 읽었다. 주인공이 남자냐 여자냐, 뭔가 대단해보여서 읽었지만 오리무중이다. “이반과 함께 행복하게”로 시작해서 “그것은 타살이었다.”로 끝난다. 실제로 죽은 시체는 없다. 실제로 죽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남자 이반이 떠나기 전에 떠나는 여자가 스스로 살해되었다고 규정한다. 사랑에 목숨 건 자신을 죽이고서, 난 죽고 싶지 않았는데, 죽임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이제 남은 사람은 그 여자의 반쪽 아니무스다. 여자는 남자로 살기로 한다. 그는 남자 이반이 걸어온 전화를 ― 아마 이별을 고하고자 ― 받으면서, “이곳엔 여자가 없(었)다.”고 답한다.

남자만이 인간이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벌써 알았어야 한다. 남자가 인간이다. 인간은 남자다. 책 속의 여자는 똑똑하다. 다행히 똑똑하다. 그녀가 온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되어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자였는데 죽었다. 실화인지 방화인지 화재로 죽었다. 책 속에서는 절반 아니마만 죽였는데, 책 밖에서는 통째로 죽었다. 혹시 이별이 아파서 죽었을까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내 검색 실력으로는 ‘1926년생, 1973년 사망’ 정도 겉핥기만 나왔다. 같이 살다가 이별한 남자는 역시 유명한 작가였는데, 15년 연상이었고, 전에도 후에도 여자들을 만났고, 20년 쯤 더 살았다. 하긴 서양의 이야기이니, 서양에선 남자가 더 장수하는지도 모른다. 그쯤이면 되었다. 내가 그런 것들을 찾아서 또 무얼 할 것인가.

그를 알았던 8개월 동안 평생에 읽었던 만큼보다 더 많은 소설책을 읽었다. 그가 떠난 뒤 다시 책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책이 읽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없기 때문에 모른다. 그는 일 따라서 어김없이 한 겨울에 떠났다. 떠났을 것이다. 봄이 되어 대학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다.


*


그를 처음 보았던 5월은 해마다 다시 돌아온다. 4월 뒤에 온다. 그런데 5월이 되도록 호야는 새 순을 낼 줄 모른다. 스물 한 개의 호야 잎이 겨울을 살아남았다. 쌍떡잎이 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살아남기는 했다. 화분들에 물을 주려고 안경을 찾아든다. 스물한 개의 잎들이 조금이라도 푸른 기운을 띠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아,” 하고 어느 날 너는 혼자서 탄성을 지른다. 저 아래 밑둥치 부분에 스물둘 그리고 스물세 번째 쌍떡잎이 나란히 올라와 있다! 그 둘은 옛 줄기에서가 아니라 아예 새 순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둘을 밀어 올리는 새 줄기는 그 작은 잎들마저 무거운지 비틀거리며, 애써 그들을 위쪽으로 볕이 비치는 창쪽으로 들이밀고 있다.

다음 날이다. 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순전히 조금이라도 자라났을 모양새를 보기 위해서 기어간다. 기어간다기보다는 기듯이 간다. 다가가는 속도의 에너지만으로도 놀라서 가녀린 줄기가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시작의 위치가 좋지 않아서인지 볕을 탐해서인지 큰 잎들 쪽으로 너무 기운다. 플라스틱처럼 완강한 늙은 잎들에 다치면 정말 굽을지도 모른다. 줄기인지 잎인지도 아직 구분이 가지 않은 연한 살이 굽다 못해서 아예 찌그러들지도 모른다. 너는 새끼손가락으로 가만히 여린 줄기를 밀어본다. 큰 늙은 잎에서 멀어지도록.

또 다음날 아침이다. 여전히 물을 주는 날이 아니다. 그래도 화분 쪽으로 향한다. 어제보다 더 자란 느낌인데 잎을 펼치는 기세는 그대로다. 해가 덜 나서 그럴까? 종일 창가를 서성댄다. 오후 늦게 방을 나서려다말고 또 한번 창가로 간다. 해는 반대쪽에서 비치고 있고 그리 맑은 날도 아니어서 앞쪽 창가는 어스름하기까지 하다. 너는 새끼손가락을 뻗어 가느다란 줄기를 바로 잡는다.

“조금만 더 바로 자라거라……, 조금만 더 바르게…….”

가만히 주문을 왼다. 아차, 그 순간 미세한 떨림이 네 손끝을 통해 온몸에 전해진다. 무언가 동강나는 움직임이다. 그것이 잘려 나동그라져 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것이 끊어졌다. 그 여린 줄기에 좁쌀만도 못한 크기의 수액으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너는 운다, 여린 줄기와 함께 작은 희망이 잘려나갔음을. ‘바르게’에 사로잡혀서, 네가 그것의 방향을 틀다가 그것을 죽였구나. 그렇다. 그의 방향을 ‘쪼끔’ 고쳐 잡고자 했을 때, 언감생심 네 쪽으로 인위적으로 정향코자했을 때, 아니 그런 소망이 꿈틀거렸을 때, 그때 벌써 그가 ‘절단났다’는 것을 너는 불현듯 깨닫는다.


너는 서둘러 가게로 향한다. 저녁에서 밤사이, 너털거리는 불행한 군상들을 서둘러 위로하고 싶다. 조용히 바라보아줄 사람이라도 그리워하는 안쓰러운 그들. 너는 그 얼굴들을 향해서 되뇌고 싶다. “인생은 끊임없는 이별하기다. 우리는 저녁마다 하루와 이별한다. 가끔은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그러나 가끔은 고통을 느끼며.” 어떤 시인의 글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구절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리카르다 뭐라는 이름으로 보아 여자다.

‘그에게서라면 한두 마디 이 시인에 관해서도 들었을 것을.’

너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를 떠올린다. 아차, 네 마인드는 여전히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나 고통과 함께라도 너는 결국 오늘과 이별하게 된다.

예전에 녹아 굳어버린 네 몸의 층 위로 네 맘이 녹아내린다. 몸과 맘이 함께 상실 속에서 용광로에 든다. 이 소용돌이를 지나면 너는 오히려 단단해진 상처의 유약으로 치장한 어른이 될까? 너는 여태 변방에만 있었고, 네 인생의 무대는 아직 비어있음을 느낀다. 중심이 비어있다. 주제가 비어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죽은 자의 신 오시리스에 덜컥 홀려있었다. 너는 이제 비뚤어진 밤의 관찰자 역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 느낀다.

‘할머니, 다시 밥 짓기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느닷없이 먼데 할머니를 속으로 부르면서, 삶의 중심에 놓인 것이 설마 밥일까 생각해 본다. 따뜻하게 지은 밥 한 그릇이 너의 버려진 듯 초라한 삶과의 이별식이 되어줄까? 너의 발걸음은 정상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어디로일까? 확연하지는 않지만 가게가 종착역이 아닌, 그 너머인 것을 너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끝.
                                           
<PEN 문학>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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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6. 9. 20. 20:52

직이는 림자

 

<문학공간> 2006, 9월호 (202호)


“너는 왜 쓰는가? 너는 왜 쓰지 않을 수 없는가?” ― 젊어서든 아니든, 글을 쓰는 세계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첫 질문이다. “글이 밥 먹여 주느냐? 글이라는 것이 대체 인간사에 무엇이냐?”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의심은 눈길에서 눈길로 아프게 찔러온다. 선뜻 대꾸할 말이 없다. 곰곰 생각해 봐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들여놓는’ 것이 없어 보인다. 글은 홍수로 고립된 계곡 마을에 식수 하나 건네지 못한다. 쓸려 무더기진 쓰레기더밀랑 까딱도 못한다. 커피잔 늘어놓고 줄담배 입에 물고서 책상에 죽치고 있는 문사들이라니, 장맛비 피해를 외면하고 골프나 친 위인들보다 한 치도 더 낫지 않다.

그런데 왜? 인류가 있고 문자가 아직 없던 시대까지 거슬러 가도 ‘문학’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그리고 다시 휴머니즘 ― 도도히 흐르는 인류의 정신사 어느 시대에도 문학은 우리를 동반했다. 제대로 학문도 아닌 그것이, 제대로 예술도 아닌 그것이.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은, 문학이 현실과 꿈 사이의 매개체와도 같은 존재인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은 고달팠고 여전히 고달프다. 방탕에 이르는 부패한 황제 아래서도 고달팠고, 금욕적 수도사가 지배하는 신정정치 아래에서는 신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에도 고달팠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기치 아래 신분제가 철폐되었어도 고달프다. 언제나 다시 태어나는 귀족들. 혈통귀족 양반님네가 사라지기도 전에 돈귀족이 새 양반님 행세다. 지배하는 일부가 있는 한 지배당하는 일부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결핍으로 고통당하는 일부가.

그러나 결핍은 외부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바람직한 사회화는 본래 다양한 개성의 인간을 위축시켰다. 개인은 인류역사의 진보를 위해 본성의 충족을 포기(당)해왔다. 그래서 내면은 늘 ‘다른 현실’을 꿈꾼다. 이 꿈이 언어예술작품으로 빚어나온 것, 그것이 문학작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지리 밥도 못 먹여주는” 문학이 이 첨단과학의 세상에서 명줄이나마 보전하겠는가?

이때 행여 우리는 문학의 효용성 논란에 풀이 죽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쓸데 있고 없는 것이 따로 없음을 성현들은 벌써 알았다. “있는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은 없는 것을 씀으로서라.” 혹은 “땅이라는 것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기껏해야 발이 닿는 지면뿐이요,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재어가지고 그 둘레는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 버린다면 사람들에게 그 땅이 그래도 쓸모가 있겠소?”라고. 디디고 선 땅을 디디고 설 수 있기 위해 무수한 땅이 필요하듯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겐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간이 절실하다. 아니면 우리는 질식하거나 로봇으로 전락할 것이다. 결핍과 갈등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더욱 깊어지게 하고, 이 내면을 끌어내는 것은 상상력의 힘으로서만 가능하다. 상상력은 자신조차도 공감하기 어려운 내면을 개연성으로 설명해낼 줄 아는 힘이다. 상상력이 우연과 혼돈을 필연성으로 바꿔낼 때, 작품세계는 리얼리티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나, 문학에게 이 시대는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글쓰는 이의 열악한 생존조건이 문학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위협은 우리가 현실에 순응하고 꿈을 꾸지 않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더 이상 깊은 내면의 샘을 퍼 올리지 못할 때, 그 파국이다. 상상력은 꼬마아이가 움직이는 긴 제 그림자를 발견하고서 신명이 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문학을 놓아선 안 된다. 읽건 쓰건, 그 차이는 그림자를 몸 앞에 두는가 뒤에 두는가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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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6. 5. 30. 23:30

 

행복한 수요일 아침

                                                  <소설시대 10호> 2006


수요일 아침이면 인희는 눈물을 머금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곤 한다. 남편의 출근이 일정해진 이 근년에 생긴 버릇이다. 눈물을 머금고 앉아서 주문처럼 되뇐다, 넌 참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세상에 저리도 많은 생이별 가족들이라니! 보고 싶은 사람 그리워하면서 사무친 세월의 대가들 앞에서, 누군가를 이별한 기분에 빠진 자신을, 상대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이별을 이별이라는 자신을 나무란다.


그런 인희가 오늘 절대적으로 행복하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요일도 아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무 것도 아닌 어느 평범한 날이다.


인희는 편집자에게서 받아온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나란히 놓고 앉아있다. 얼마만인가.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왼손을 들어 종이뭉치 위를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아본다. 그의 원고 교정 작업을 처음 시작했던 때의 막연한 불안감이 되살아난다.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어떻고요?


처음 그를 만난 자리는 언쟁에서 언쟁으로 끝났다. 편집자는 불을 붙여놓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교적 큰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번역 교정에 외주자들을 사용한다. 번역자가 다소 불쾌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우리 인간은 실로 나약한 존재지요. 한 줄을 통째로 지나치거나 단어를 잘못 보는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실력 여하에 관계없이요. 비슷한 단어만 혼동하는 게 아니지요, 엉뚱한 단어로 튀는 수가 많아요. 편집자의 융통성 있는 발언은 번역자들의 인격에 흠을 줄 필요가 없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번역이란 어차피 없는 것이고, 그럴 바엔 이름이 교수라야 그냥 애송이 강사들보다 책에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번역자로서 교수를 선호한다. 교수의 원고를 외주자에게 줄 때는 직접 현직 강사들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 누가 누구의 원고를 보았는데....... 하는 것도 좁은 세상에서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교수의 원고가 ‘아무것도 아닌’ 인희에게 왔던 것이다.


인희로서는 그의 원고가 처음 작업은 아니었다. 남편이 그녀의 무기력에 질린 표정으로 아예 둔감증을 운운하던 시절, 그녀는 뭐라도 일감을 찾아 출판사를 기웃거린 터였다. 아직 어린 아이가 조기유학을 떠난 직후였다. 아이는 아이 큰아버지의 소망대로 빈의 음악원 입학을 목표로 호된 훈련 길을 떠났다.


큰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의학박사의 기로에서 의학을 선택해야 했고, 어딘가에서 그 보상을 찾아야했던 모양이다. 큰아버지의 아이들, 그러니까 아이의 사촌남매는 바이올린에서 멀었다. 음악의 고장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은 완벽한 언어 정복을 위해 표준 독일어와 표준 프랑스어를 듣기에 진력을 하는 동안 음악적 귀가 닫힌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버지가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 조카애들은 둘이 너무도 달라서 이상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가까운 아들은 노랑 곱슬머리고, 아버지를 닮은 딸은 밤갈색 생머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정식으로 한국어코스 강좌를 받겠다고 이곳에 오래 머문 적이 있었다. 생머리가 긴 딸아이는 먹을거리부터 서울풍경에 섞여들었지만, 아들애는 낯설었다. 아이들은 “제3국에 산다”는 부모의 결정대로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살지 않기 때문에 세 나라 말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의 말, 어머니의 말, 제 3국의 말, 그러니까 그들의 모국어 독일어. 그 중에서 가장 잘 하는 말이 당연히 그들의 모국어이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말이란다. 긴 여름 방학을 프랑스 남단으로 휴가 떠나거나 외가에 머무르는 동안에 저절로 얻은 수확일 것이다. 세계어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저녁, 아이들은 “숙부”와 “숙모”만은 열심히 한글로 말했는데, 발음은 “죽부”와 “죽모”였다. 아버지의 말에 서툰 아이들은 아버지의 바이올린과도 서툴러 아버지를 서운케 했다.


그런 터에 인희의 아들은 음악을 가깝게 하면서 자라났다. 남편이 아끼는 재산은 LP판들을 포함한 CD무더기다. 형이 유학 떠날 때 남겨둔 것들도 함께 고이 보관중이다. 다른 집들처럼 거실에 오디오를 두지 않고 “아빠 방”에서 음악을 들었다. 보통 서재라고 할 방에 책보다 많은 음악들. 그래서 아빠 방이다. 아들아이는 아빠 방에서 어린 시절의 저녁을 보내곤 했다. 제 엄마가 두 번째에도 자연 유산을 계속하던 시절이라서, 엄마 근처를 보호하던 몇 년 말이다. 네댓 살짜리 사내아이가 엄마에게 와락 달려드는 자연스러운 동작에도 엄마는 가능한 동생을 잃곤 했으니까. 달려와서 덜컥 보듬기는 일이 뭔가 금지된 일이라 알게 되었는지, 조금 철이 들면서 아이는 저라서 엄마 곁을 뱅뱅 돌다가 아빠 방으로 향했다. 남편 또한 “아내 보호차원에서” 밖으로 돌았다. 음악회들도 날로 수준급이랬다.


처음엔 보통으로 시작한 유치원 시절의 피아노교습이 어느 새 바이올린으로 바뀌었고, 아들애는 제 방의 책상에 앉기 보다는 바이올린을 들고 아빠 방으로 향했다. 그 동안 아빠 방은 방음벽으로 바뀌었다. 방음벽은 부자를 결속시켰겠지만, 이상한 단절감이 존재했다. 인희는 늘 혼자였다.


인희의 기억 속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따로 사랑채 남자들이었다. 안채의 마당을 빙 돌아 기웃거리면 사랑채 뒤쪽이 나오고, 세월에 무거워진 문짝을 다 걷어 올린 대청마루는 교교했다. 사람 소리는 멀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낀 남동생은 낮에는 안채에 저녁이면 사랑채에 속했다. 왜 난 저기에 가면 안 되는가.


인희는 언니들 따라하기 보다는 동생 인석이 가진 것들을 부러워했다. 쪼끄만 아이가 따로 책상을 가진 것, 따로 서랍을 가진 것이 가장 그랬다. 퇴락한 안채에는 어디에도 책상이 없었다. 교자상이 늘 방 가운데 있었고, 밥상이고 책상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어른들을 끼어서 여럿이 되는데, 왜 공부할 때는 아이들만 해도 안 되는가. 이 책과 저책을 다 꺼내놓을 수 없게 되자, 인희는 하루에 한 가지씩만 책을 보기로 했다. 숙제가 여러 과목이어도 그냥 한과목만 하기로. 책을 펼쳐 놓아야하는 과목보다는 그냥 들고 있을 수 있는 과목으로. 중학교에 가자 언니들 방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언니들의 짐 속에서 인희는 귀퉁이 참이었다. 묘안이 떠올랐다. 여자이면서 유일하게 사랑채에 속하는 사람, 할머니였다. 사랑채 옆쪽으로 달린 상하 방이었다.


어머니는 안 될 말이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알고는 인희를 데려갔다. 비밀들이 드러나선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의 작은 책상은 인희로서는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인희는 이제 작지만 진짜 책상에서 숙제를 했다. 강경애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빛바래고 닳은 책이 꽂혀 있었던 판자 책꽂이. 『예술과 인생』이란 표지는 한 뼘을 넘은 두께였다. 세로줄로 쓰인 윤곤강의 시집 『살어리』, 두꺼운 시집이었다. “모오파썅”이라고 이상하게 적힌 시선집은 50년대의 번역이었고, 그보다 더 오랜 『이희승 시집 박꽃』은 붉은 물주전자가 붉은 대접에 얹혀진 누런 표지였다. 하지만 문청 기질은 할머니의 방을 나오면 곧 집안의 모두에게 철저히 금기였다. 하나 뿐인 고모가 역시 “글이나 끌쩍거리던” 문학청년에 홀려 시집갔다가 영 이별이 되었기 때문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분단 때문보다는 문청기질이 그 이별의 원흉이라고 믿는 때문이었다.


인희 또한 글쓰기와 관련된 “병든” 이상을 싹틔우지는 않았다. “소용없는” 할머니와 “소용있는” 어머니 사이의 낯설음은 조금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안방에 끼이면 해소되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는 자연스러움이 자질구레한 불협화음쯤은 흩날려버리곤 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인희의 “무난한” 몰개성적 성격의 근원일 게다. 어머니는 셋째 딸이 “하필이면 독문과”에 지원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을 때에도, “좋은 대학에 가려는” 이유 정도면 통과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하필 독문과를 진학한 것은 순전히 영문과에 못 미치는 성적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이 소일과 자긍심을 좀 더해 준다. 영문과였더라면 단순 대졸의 주부에게 번역교정일이 들어올 차례가 아닐 것이다. 하긴 독일어 분야도 만만치 않지만, 오스트리아라는 거점을 배경에 지닌 덕일까? 그 배경 또한 순전히 “대학 간판으로 건져 올린” 결혼 때문 아니겠는가? 평범한 결혼 생활 16년 째 나선 일이 기껏 번역교정일이나 받아오는 것이었지만, 뭔가 책과 더불어 하는 일은 예상보다 더 정서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할머니의 책상이 허전하지 않아서 안도감도 느끼면서. 초고층 아파트엔 참 어울리지 않은 낡은 책상을 그녀는 아직 간직하고 있다. 결혼 전에 병석에 있던 할머니가 굳이 물려주신 몇 권의 책과 책상이다. 어머니는 한두 번 이사 때 도와주러 오셔서는 그때마다 것 좀 치우지 않느냐고 성화셨다. 어머니는 큰 소용이 안 되는 옛 물건에 집착하거나 그러시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명색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는 별말씀 없으시다. “할머니 피가 섞인 건 확실한거라......”


인희는 처음 그의 원고를 받아들면서, 철학자가 쓴 문예 이론서를 번역한 사람은 당연히 철학과이거니 했다. 철학과 교수였다면 철학용어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있어서 양보를 위한 자리는 필요 없었겠다. 그런데 철학과가 아니라 문예창작과라 했다. 문창과 교수라면 작가가 먼저일까, 그냥 교수일까? 초벌교정을 들고 나간 날, 젊은 편집자는 비좁고 북적대는 사무실을 피해 근처 커피숍에 나이든 교수와 나이든 외주자를 간단히 대질시켜놓고 사라졌다. “번역물이 효자죠, 나름대로 바빠 죽겠어요. 제발 좀 직접 조정해 주세요.” 그러니 남은 둘의 입씨름이 시작되었을 밖에.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또 어떻고요?


어설픈 외주자의 의문에 자존심을 다쳤을 전문가를 너무 의식하지 못했었나 보다. 독일어에서 같은 어원은 우리말에서도 같은 어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억지에 가까운 현학적 고집은 일을 점점 뒤엉키게 했다. 몇 번의 씨름 속에서도 일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더구나 그는 워드 작업을 겨우 해낼 뿐, 이메일은 물론 그때 벌써 꽤 흔한 휴대전화도 불통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만나야하는 일이 늘어났다. ‘시간 많은’ 그녀를 고르고 골라 일을 맡긴 편집국장은 공동작업의 불편함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시간 없는’ 교수 때문에 작업은 터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오월이었다. 그는 그동안의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종일이라도” 시간을 내준다면 좋겠다고 했다. 스승의 날 행사로 여유가 생겼노라고, 변명을 덧붙이면서. 그 수요일 아침이 되자 인희는 명치 아래가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간헐적으로 올라왔다. 막상 그를 만나서, 그가 “오늘은” 일 대신 다른 무엇을, 그런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동안에는 위경련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율리시즈의 시선》같은 영화에 대해 뭐라 말하기 시작했지만, 어두운 영화관 같은 곳에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둘이서 들어갈 용기를 가진 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로 무작정 차를 타고 나가게 되었다. 차가 한참을 달려 나가자 고통은 서서히 줄었다. 대신 아스라이 멀미가 일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마침내 산자락의 풀을 밟았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그러나 내용은 참으로 애매모호한 몇 마디의 말을 흘렸다. 예상 밖의, 소년들 사이에서나 가능할 비현실적인 단어들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청각기관을 지나서 폐부로 들어가자면 해석이 필요할 단어들....... 그냥 남편 또는 아내 아닌 사람과의 드라이브가 낯설었던 만큼, 그만큼 낯선 일탈은 꼭 그만큼의 긴장을 묻혀왔을까? 차가 시내로 들어오면서 다시 일상의 공기가 밀려왔다.


일은 차차 순조로웠다. 인희로서는 단어에 토를 다는 일이 줄었다. 그의 진지함에 압도되어서, 그가 심각한 고투를 겪어서 내놓았을 우리말 단어를 빨간 펜으로 칠할 수 없어서. 속내를 알지 못하는 편집자는 예상보다 빠른 탈고에 대해 그녀 쪽에 고마워했다. 나중에 <옮긴이>에 보니, 그는 철학과 졸업 후 대학원을 국문과로 옮겼다고 되어 있었다. 문학은 철학보다 한 수 아래라고 배웠던 인희는 그런 경력이 특이해 보였다. 그의 우리말을 긁어놓은 교정자 인희에게 처음에 그가 그렇게 적대적이었음이 이해되었다. 교수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가 아니라, 국문학 전공자가 비전공자에게 갖는 적대적 우월감.


여름 방학에는 아들 애 곁에 다녀오느라 일을 쉬었다. 학교는 쉬지만 독일어도, 바이올린 레슨도 쉴 수 없는 것이 아이의 상황이었다. 남편은 처음 동반길만 함께 했다. 일주일 이상을 비울 수 없어 한다. 대리의사를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라도. 아들 곁에 남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고국의 음식을 먹이려 애쓰지만, 아들은 생각 보다 서양식에 잘 적응해 있다. 부엌의 주인, 서양인 형님은 요리에 능하고 힘차다. 인희는 별 할 일이 없었다.


여름이 고비를 넘길 때야 돌아와서 출판사에 들렀을 때, 그녀 앞으로 작은 책이 든 봉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공동번역을 제안하며 검토해보라고 맡겨둔 책이라는, 편집국장의 말이었다. 봉해진 봉투를 일부러 뜯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집안일들은 겹치면 겹친다.


첫가을 날이었다. 아직은 햇볕이 따가운 오후, 밝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인희는 할머니의 작은 책상에 앉았다. 그와 공동번역을? 작가 이름을 얼핏 편집국장에게 들었는데, 잘 모르는 이름이었다. 봉투를 열어보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산도르 마래, 마라이? 독문과 졸업이 부끄러우리만치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인데, 표지는 귀족 저택의 초상화에 나옴직한 미녀 초상에 초록 옷자락이 살짝 풀잎처럼 내비치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작은 쪽지가 떨어졌다. 대략 5㎝ 크기의 정방향의 종이에 희미한 글씨의 토막글. “그 동안........” 그 동안이라니? 대체 왜? 그렇지만 그런 글을 읽고서도 곧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함으로 뒤덮인, 그런데다 지나치게 짧은 글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해에 골몰하려는 동안, 일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아예 잊혀졌다.


대신 믿기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인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혹시 “메디슨카운티 증후군”이라 할 상태일까 걱정이었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 그의 딸, 그렇게 가능한 모두를 시샘할 정도였다. 인희는 아무리 앞서도 그의 네 번째 여자였다. 쓸쓸했다. 아니 네 번째라도 좋았다. 희미한 글 한 조각에 온갖 의미를 걸게 되다니. 평온한 나날들이 혼란의 시간들로 바뀌었다. 안과 밖의 불일치에 초점이 흐려갔다. 그런가하면 폐부로부터 밀려 올라오는 열감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입술의 열감은 영화 속에서나 보는 불가항력적인 입맞춤의 뒤끝처럼 스멀거렸다. 선문답 같은 대화의 파편이 구슬처럼 입안을 맴돌았다. 눈과 귀, 귀와 입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더니, 본 것과 들은 것, 들은 것과 말한 것, 나중에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들이 혼동되어서 함께 떠 있었다.


계속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다. 너무 많이 상상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말로 그와 바다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지중해, 알함브라, 지브랄탈 해협에서부터 북해까지 온갖 바다를 유영했다. 섬이 연결된 ‘질트’나 ‘퇴닝’ 같은 지명은 그가 더욱 꿰뚫고 있었다. 전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그러나 실재하는 오두막을 빌릴 수 있는 곳.


바다는 많이 광활하고 그 광활한 만큼 바람을 몰고 와서 그들을 내몬다. 적어도 환영은 아니다. 해가 곧 질 것이었으므로, 아니 이미 지고 있다. 바람은 지는 해를 두고서 무섭게 폭풍을 동반해 왔다. 십분 전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변해 버린다. 바람은 그들을 매우 세차게 내몰아서 발을 떼어도 밀려 나갈 정도가 된다. 도망치듯 그것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한없이 서운하다. 그녀는 그에게 ‘증명사진’을 부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추억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가. 체험은 길이가 중요하지 않지요, 순간이 영원할 수도 영원이 순간일 수도 있음을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몰아치는 장대비를 맞으면서 이리저리 헤매며 따뜻한 불빛을 찾는다. 그가 담배 가게를 찾아 갔다가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의 15분에서 20분 사이가 영원처럼 길다. 그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균열이 생긴다. 그것은 그들이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어떻게 그들이 그들의 바다를 정당화할 것인가!


그러다가 그가 떠났다. 충전기간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동안 동독이 개방된 후로 유럽에 가보지 못한 것을 그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곳을 통로로 동유럽을 그리워했다. 쾨니히스베르크 때문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 건너기 문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논리를 지나 수학적 사고를 주제로 대화가 되는 것에 그녀는 조금 흥분하곤 했다.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가 아닌 것이 증명되기나 하는 듯이. 아무튼 지금은 리투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가 전공했던 이성중심 철학의 본고장인 그곳에 가보고 싶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의 대답은 달랐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어딘지 모르게 처녀지인 곳, 동유럽에 몰려 있다고 했다. 잘 알려진 카프카도 그렇지만, 산도르 마라이도 그 하나라 했다.


“파스칼과 횔덜린 그리고 니체를 파괴했듯이,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를 무덤 속에 내던질 이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런 실패나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그것이 마라이의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말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잠시 두려웠다. 절대 고독을 꿈꾸는 사람, 그런 그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구하는가? “혼자 남아서 대답하는” 조용히 들어주는 친구를? 상대적으로 넓어서 더 높은 아파트 벽 속에 갇혀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타던 그녀로서는 그런 지적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신비했다. 생은 더 이상 진부한 것도,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인희는 그가 가려는 곳이 혹시 빈에서 가까운 남쪽이기를 바랐다. 그녀 또한 아이를 만나러 한두 번 갈 것이니까.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머물기, 그것이면 될 것 같았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지중해, 그 동쪽 소아시아 반도와 크레타 섬들에 얽힌 숱한 신화들은 그들의 단골 화제였다. 다이달로스가 추락한 짙푸른 바닷물, 그런 바다에도 그들은 벌써 몇 번을 다녀온 터다. 하지만 실제로 그 물살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가 구동독 깊숙한 대학도시로 간다고 했을 때 인희는 조금 실망했다. 떠날 날을 정한 뒤로는 뭔가 슬며시 엷어지는 기운마저 돌았다. 그는 시간이 없어했다. 작은 눈을 반짝이는 통통한 여학생이 대신 원고 심부름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별은, 이별이란 말도 가당찮은 이별은 벌써 서러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떠났다. 추운 겨울이었다.


인희는 현실에서 숨을 쉬면서 상념은 다른 궤도로 흐를 수 있는 인간의 불가해성에 머리를 내저었다. 멀리 떨어진 거리와 관계없이 치열한 교감 속에서, 분류되지 않는, 정의되지 않는 상태에 혼란해하면서, 아리지만 풍요로운 순간들을 부여안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오월, 풀냄새에 놀라 봄을 탄식했다. 그는 어쩌면 오월을 피하기 위해서 떠나야 했구나! 곧 그녀는 균형을 잃어 갔다.


그의 철 이른 카드가 출판사로 날아들었다. 편집국장 친구에게 보낸 카드와 똑같은 카드였다. 그쪽에는 그렇다 치고, 다들 외주자인 인희에게까지 카드를 보낸 교수를 예의바른 사람으로 치부했다. 미려한 외관을 유지하는 것까지도 그다운 일이었을까? 인희는 그의 마음이 어딘지 부담감으로 차있음을 행간에서 느꼈다. 여름에 합류한 대가족과 함께 휴가여행을 떠난다는 그에게 지중해 혹은 그리스로는 가지 말기를 바랐던 인희의 마음을 그는 과잉으로 읽었을까? 두꺼운 카드 사이에 접어 넣은 얇은 종이는 글씨마저 얇게 느끼게 했다. 내용은 더욱 얇았다.


돌아온 그를 다시 만난 것 역시 출판사에서였다. 그가 번역 가능한 책 몇 권을 가져오기로 한 날, 편집국장이 인희에게도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그를 바라보면서 인희는 갈비뼈가 금갔을 때처럼 아픈 것을 느꼈다. 너무도 큰 숨을 내어쉬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안 좋으신가요? 저 다시 안 들어가도 되니까 데려다 드리지요. 가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도 할 겸.” 인희는 편하게 기댈 양으로 뒷좌석에 탔다. 다음 블록에서 그가 차를 세웠다. 앞자리로 옮겨 탔다. 그는 오른 손을 가만히 내밀어 인희의 왼손을 잡았다. 괜스레 상처입고 오므라들었던 가슴이 펴질 새도 없이 아프기만 했다. 아픈 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아니 제 안의 마음이 커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공간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행여 열정 같은 것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정석이다.


이번 작품들도 마라이였다. 그녀는 처음에 받았던 작품을 여전히 읽고 있었다. 제목부터 “열정”과 “정열” 중 선택하기가 어려웠기에 내버려둔 채 그냥 독서에 빠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형제처럼 붙어 지냈던 두 친구가 헤어져야 했고, 그 후 40년도 더 지나서야 만나서 하룻밤 동안 나누는 대화형식”이라는 그의 설명은 정말 궁금증을 자아냈다. 실제 독서는 사전을 찾느라 더듬거렸지만, 부분 부분이 몇 곱절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일부나 다름없던 우리 두 남자의 침묵으로 그녀가 죽었네. 여자로서 참아낼 수 있는 이상으로 비열하고 거만하고 비겁하고 오만하게 침묵했기 때문이지.”


“여자가 참아낼 수 있는 그 이상의 침묵”이란 무얼까? 구절구절에 빠져있는 동안 번역 작업은 멈췄다. 대신 편지 같은 것을 쓰고 또 썼다. 전달될 가능성이 없는, 그래서 뒤틀려도 좋은 글을 무작정 써내려갔다.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캠퍼스로 가서 서성이며 전화를 할까 말까 궁리하다가 지쳐 돌아온다. 난생 가보지 못한 그의 학교가 상상으로는 완벽에 가깝게 지어져있다. 돌바닥의 현관, 그가 오르는 층계, 걸어가는 복도, 오른쪽으로 휘면서 연구실 문을 열고, 방문이 열리면 순간 바람이 세게 밀려온다. 10cm 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밀리는 거야. 상상이 발광 직전에 이른 날엔 미장원으로 내닫곤 했다. 혼자서 들어가도 좋은 곳, 오랜 시간 혹사당하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는 곳.


그는 차츰 멀어져갔다. 그러나 뭔가 시작당한(?) 사람은 끝을 당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억울했다. 마음 흔들렸던 마음이, 눈을 바라보았던 눈이, 손바닥에 닿았던 손바닥이. 배반을 배반당했음이.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계속 겨울이 왔다. 마침 세상은 21세기를 향해 막연한 환호를 보내는 중이었다. 인희는 책상에 앉아 또 편지를 썼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싶은, 그래야 할 것 같은, 이 늦은 마물음의 시간, 저에게도 한 가지 소원은 있습니다. 다음 날에는, 다음 봄에는, 다음 해에는, 다음 세기에는 저 같은 사람 다시는 만나는 일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쉽게 깊게 상처 입어서, 스스로의 고통은 그렇다 치고, 당신께 배가된 고통을, 배가된 짐을 드렸었던 저 같은 사람일랑 다시는, 행여 비슷한 사람이라도 다시는 만나시지 않기를....... 물론 쓰기만 했다.


송구영신의 모임들은 어느 해보다도 떠들썩했다. 남편은 겨울 골프를 떠나는 일행에 합류했다. 방콕은 일교차는 커도 겨울 평온이 25도나 되는 따뜻한 곳이라고. 겨우 며칠의 휴가를 따로 쓰는 것을 미안해하는 남편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다. 약간의 휴가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남편도 알면서 하는 소리일까. 아들아이도 집에 올 겨를이 없다 했다. 학업과 연주와 그곳 생활에 열중하여, 집에 연락하는 일도 잊는다. “형님이 당신 아이들보다 듬뿍 관심을 부어주니 그 녀석 참 복이지.” 그렇게 해서 200년 역사의 음악학교에 입학하는 외국인들이 많을까? 여러 사람의 걱정을 잠식시키고, 아이는 특히 큰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성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희는 깊이 침잠했다. 여러 의미의 반성과 더불어, 제발 자신을 어여삐 여길 수 있을 다가오는 새 봄을 소망하면서.


봄은 왔다. 여전히 “잔인한 사월”이란 구절이 맴돌았다. 다시 오는 오월이 매번 두려웠다. 그날의 산자락으로 가서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오자고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 자리, 그 무심하게 다른 풀이 자라고 있을, 어중간한 돌들이 구르고 있을 그 자리에 가서, 풀은 풀일 뿐, 나무로 자라지 않음을 확인하고 오자! 드라이브를 즐기는 친구를 불러내면 탄성을 지르며 와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돌멩이들을 바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수줍게 그러나 단호하게 무엇인가의 시작을 신호했던 그 목소리를 망각 속에 묻을 수가 없다. 밥 딜런의 노랫말이 맴돌았다. “잇 에인트 미, 베이브, 아임 낫 디 원 유 원트, 아임 낫 디 원 유 니드.......” 그의 입술에서는 다른 버전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우리의 한계는 이것입니다.” 밥 딜런을 들으면, 그는 딜런 토머스를 앞세운다. “녹색 퓨즈를 타고 꽃을 몰아가는 그 힘이 / 내 푸른 시대를 몰아간다....... 나는 시든 장미에게 바보처럼 말한다 / 내 청춘이 똑같이 차가운 열병으로 시들었다고.” 인희가 난해한 시에 고개를 갸우뚱하면,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열여덟 잔을 마시고 다음 날 죽어간 시인을 누군들 이해하겠소, 하고 그는 말끝을 흐린다. 흐린 말끝 따라 인희의 마음도 흐려지곤 했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친밀함에 대한 그리움을 덮는다. 이 사회의 구조가, 관습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존재”하게 한다. 관습에 굴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 세상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존재한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사무친다. 그렇구나. 세상에 ‘혹시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예외는 없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 달도 차면 기운다.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자고, 목욕을 같이 하고 ― 사람 사이 친해지는 비결로 통했는데. 그건 구식이다. 현대생활은 가족끼리도 밥을 같이 먹기 어렵게 한다. 단출한 아침식사에 굼뜬 그녀가 식탁과 싱크대 사이에서 어물거리다보면, 남편은 벌써 일어선다. 남편의 점심 저녁은 밖에서가 대부분이다. 산부인과의 사양길을 일찍 예감하고서 건강관리협회로 옮겨 앉은 이래, 저녁 시간이 더 바쁘다. 더 한가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아이는 먼 데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군대 문제로 한번은 들어와야 한다는데, 염려 말라고, 잘 하고 있다고, 큰아버지는 한껏 만족스런 기별만 보내온다. 가만히 숨쉬고 숨쉬는 동안 세월은 간다. 20세기가 그녀에게 유수와 같았다면, 21세기는 쏜살같다. 다른 유수한 출판사에서 마라이의 전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열정』을 위시해서 줄줄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권했던 작품들의 번역일랑 몇 년을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단순한 교정 외주자의 일이 맘 편했다. 것도 겨우 간헐적으로.


책상에 앉는다고 잡념이 줄지는 않는다. 가끔은 긴 버스 혹은 기차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옆자리에 앉아서 멀미에 시달리며 잠시 잠들었다 깨곤 하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 밤바다의 바람을 막아 그녀를 감싸주던 그. 그런 그가 정말 존재했을까? 그냥 꿈이었을까? 상상과 회상이 뒤범벅되는 나날들.


그렇게 가을이 오고 또 가을이 왔다. 구월이 가고 시월이었다. 출판사는 외빈내화, 불경기 중에도 하나 둘 히트가 나왔다. 문광부 선정도서에 인희가 교정에 참가한 책도 하나 걸렸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인희도 단합대회에 끼었다. 문청들에 애증으로 얽힌 출판사 사람들의 술자리엔 문청들이 밥이다. 모두들 혼 빠지게 매운 낙지볶음에 소주들을 들이 붓고 나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했다. 2차는 맥주 집이었지만 사람들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묘령의 아줌마까지 엮여든 것으로 보아 썩 마셨다 싶었다. 그는 실로 오랜 만에 합류했다. 그러니까 모처럼 초벌원고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친구인 편집국장과 더불어 저쪽으로 섞여 앉았다. 그녀는 그런 그를 차라리 존중했다. 그는 그녀의 아무것도,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먼발치로도 약간의 무게가 느껴졌던 그의 원고뭉치는 아직 출판사 책상에 놓여 있었다. 뭔가 하긴 했구나. 하기야 친구에게 졸려서 하는 번역일이 전업이 아닌 담에야 몇 년 걸려 내어놓는 원고도 미진한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그는 작가도 아니다. “시를 못 쓰면 소설을 쓰고, 소설을 못 쓰면 평론을 쓰지요. 것도 못쓰는 사람들이 교수하구요.” 이 시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소설가 ㅈ씨가 어느 강연에서 했다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문창과 교수인데 창작대신 문예이론가라고? 위대한 소설가 ㅈ씨는 그의 직업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는 진지함의 대명사일 따름이다.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그에게로만 상념이 흐르는 것이 들킬까 문득 겁이 났다.


그 순간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봄엔가, 또 『이혼전야』도 출판되었더군요. 대 출판사답게 확실한 번역권을 가졌으니 그랬겠지만, 박인희씨, 제가 드린 원전을 펼쳐보기는 했나요? 게으름 때문에, 아니 망상 속을 헤매느라고 좋은 기회를 다 놓친 그녀에게 대한 힐난일까? 하긴,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는 남자들이 어디 소설 속뿐이던가요? 그는 다시 말꼬리를 내렸다. 말 적은 그가 갑작스런 돌출 발언이라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일까? 혹은 남자로서의 동일시일까?


교수님이 다 읽으신 줄은 몰랐어요. 그럼 직접 번역 하시지 그랬어요. 남편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면서 이혼 직전에 이르러서야 그 사랑이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아내 또한 그림자 인생의 표본 아닐까요?


그건 남편이나 아내의 문제가 아닐 것 같소. “사랑한다는 건 단지 안다는 것 이상일 것. 우주에서 똑같은 궤도를 도는 두 개의 별이 존재하는 것처럼 엄청난 우연일 것. 그런 우연은 결코 없을 것. 삶도 사랑도 모두 동일한 박자로 움직이는 우연! 그런 만남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비한 환영 같은 것....... ” 그 왜 약간 뒷부분에 나오던데, 게까진 읽지 않았나요? 책 내용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녀만을 향해 뱉는 말이었다.


뭐라 대꾸하려고 입술을 연 인희는 단어를 얼른 토해내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 탓이기도 했다. 그렇겠지요. 한쪽이 빠르면 다른 쪽은 느리고, 한쪽이 소심하면 다른 쪽은 용감하고, 한쪽은 뜨거운 반면 다른 쪽은 미지근....... 속으로만 어느 구절을 외울 뿐이었다.


대강 파하고, 더러는 노래방으로 향했고, 누구는 대리운전을 불렀고, 우왕좌왕이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그의 초벌원고를 챙기러 돌아왔다. 상당한 부피였다. 원고를 만지려니 왼손이 먼저 나아갔다. 여기서 그의 오른손이 느껴질까? 순간 소스라쳐 놀랐다. 다시 꿈인가? 정신없이 방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등 위에 그가 있었다. 현관께로 다른 아무도 없는 찰라. 그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를 등 뒤에서 안았다. 갑작스런 몸짓이었다, 놀랐을까? 의외라서 놀랐을까? 너무도 기다렸던 일이어서 놀랐을까? 기다리다 못해 지쳤고 절대로 더 이상은 꿈도 꾸지 않아서 놀랐을까? 아, 인희씨, 제가 정말, 아 이렇게 참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그 비슷한 말, 흉내 낼 수도 더 이상 기억해 낼 수도 없는 단어들, 단어 몇 개. 그런 단어들은 왜 허공 속으로 빨려 흩어지는지 모르겠다. 높지도 않은 천정에 붙어있다 어느 순간 다시 내려오면 안 되는가. 어두운 밤 시간에, 몇 시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시간에, 단어들은 빛처럼 빠르게 사라져갔다. 다시 깜깜했다.


왜 뒤돌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까? 뒤돌아보기에도 짧은 시간이었을까? 뒤돌아 볼 수 없을 만큼 온갖 동작이 정지된 순간이었나? 자동적으로 발을 내디디면 앞으로 나간다. 인희는 바보같이 발을 움직였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떻게 그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을까? 인희는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은 더욱 더 뒤로 빨려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인희는 앞으로 발을 움직였고, 그렇게 멀어졌다. 그 현관에 그가 일이초간 더 서있었을지, 인희로선 알지 못한다.


*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면서 알았다. 해가 환히 비쳤다. 제법 가을인데도 이중 커튼 사이로 햇살이 깊이 박혀왔다. 머리카락부터 따듯함이 베어나서 발아래로 스쳤다. 그렇게 상쾌한 아침을 언제 기억하는가. 수요일도 아닌데 충분히 행복한 아침이었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펼쳐놓고 앉아서,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왼손을 들어 종이 위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는다.


그의 원고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을까? 출판사에 별 일이 없었는데도 자꾸 들렀다. 뭔가를 핑계 삼으면 핑계는 있었다. 번역물 팀장 쪽에 영어담당 외주자가 우연히 와 있었다. 그 여자는 약간 들린 턱에 상당한 자존심이 고여 있는 유형인데, 사회적 미소를 한껏 띠면서 말했다. 웬 좋은 일이세여, 별안간에 환해지셨네여. 제가 눈치가 좀 되거든여.


눈치가 된다니 무슨 말인가. 눈치에도 급이 있나요, 좀 되시게?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미소가 번지는 데는 스스로도 놀랐다. 나도 침묵이 좀 되거든요? 그런 말도 다 침묵했다. 행복하면 말하는 일도 아깝게 된다. 열린 입을 통해서 순간 행복감이 새 나갈지도 모른다.


순간 눈앞 여자의 얼굴이 살짝 가렸다. 이마 한쪽이 가려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다시 어딘가 막히는 영상이었다. 일정하게 왼쪽 윗부분에 물체가 고정된 것 같았다. 왼쪽 위라면 혹시라도 그의 차를 얻어 탈 때에 그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이다. 계속 그의 머리를 의식하는가? 글씨는커녕 책이 통째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둥근 물체는 아예 눈꺼풀의 안쪽에 있는 듯 시야를 가렸다. 사물이 일그러져 보인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슬그머니 겁이 났다. 신체검사 때마다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상한 점들이 아무렇게나 모인 검사용 그림책은 항상 두려웠었다. 색맹이라는 판정이 나올까 하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우선 그 어른거리는 색의 잔치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추상해 내야하는 그 일 자체, 그 순간의 길이가 두려웠었다. 게다가 수년 전 너무도 완벽한 건강한 모습의, 그러나 멍한 눈의 노인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깨끗한 차림, 무엇보다도 깨끗한 표정, 거의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도, 눈꺼풀 하나로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삶의 한 순간을 목격한 기억이 오싹했다.


시력이 떨어져서 오셨나요? 가볍게 시작된 안과의의 질문은 어느 특정 병원으로 소개받은 후엔 집요해졌다. 글자체가 흔들려 보입니까? 직선이 굽어 보인가요? 시야 가운데가 흐릿하거나, 시야 중심에 검은 부분이나 반대로 텅 빈 부분이 있나요? 한쪽 눈을 가리고 바둑판 가운데 점을 보세요. 점 주위의 선이 물결치거나 휘어져 보이면, 황반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어디, 아직 변색증은 안 보이지만, 변시증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새 혈관이 생성되어 망막 후극부 황반에 변성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진행? 행진처럼 들리는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가 계속 나빠진다는 뜻인가. 조만간 시력을 잃게 된다는 말인가?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변성? 망막이 목소린가, 변성기가 오게?


이어지는 온갖 검사들. 확대 렌즈는 기본에, 약을 넣겠다, 바둑판 검사지를 보며 이리 저리 답하랬다, 종당에는 형광색소를 주사하고서 안저를 촬영한대나. 알아듣고 싶지도 않은 검사들이 쏟아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구나.


사람들은 흔히 비싼 검사비용 내면서 고생고생하며 검사를 하더라도,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기대하며 검사에 임한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기를 바라고 시작했던 초심을 망각하고는 괜히 검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더러 “신경과민에서 오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좀 부끄럽기도 해서, 뭔가 조금 나왔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어 웃고 만다.


아무튼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가 나왔다. 역시 황반변성에 의한 신종혈관이 문제입니다. 겁을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광역학 치료법은 종전의 방사선치료법과는 차원이 달라서.......


확실하게 치료는 됩니까?


확실하다는 말씀은....... 그러니까 완치에 재발이 안 되는 것을 물어보신다면, 솔직히 대답은 “노우”입니다. 재발률은 높은 편이지만, 사모님은 마침 황반 주변부에만 신생혈관이 나타나 있어서, 조기에 치료를 실시하면 진행속도를 늦춥니다. 시술 시간도 극히 짧아서 고통스럽지 않은데다, 미리 염색된 비정상조직만 골라서 파괴하는 것입니다. 베르테포르피린이라고, 광자극 물질이죠. 이 물질을 팔뚝 정맥에 투입하면, 얘가 몸을 돌다가 잘못 생겨난 신생혈관만 염색시키고 나머지는 배설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다음 빛을 쪼이면 되는데, 얘는 에너지가 약해서 정상조직엔 전혀 손상이 없죠. 미리 염색시켜놓은 딱 고 부분만을 얘가 파괴하는 겁니다. 딱 83초 동안에 끝나죠. 입원요? 그냥 이렇게 여기 앉으신 채로, 안압 검사 같은 것 할 때처럼 앉아서 합니다. 그러나 생활 중에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증상들이 다소 더 악화될 수도 있으며, 재발의 가능성도 높은 것이....... 지금 저의 병원에선 일년에 4회를 시술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물론 일회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만.


말씨는 다시 엄숙하게 바뀌어 있었다. “얘는” 어쩌고 하는 식의,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다스런 패널들의 수다처럼 변하던 말씨가 다시 엄숙해진 것이다. 이제 비용을 말할 차례가 된 것이리라.


우선 인희 자신의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의사들 가운데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의학에 관한 무조건적 신뢰형, 그리고 제 식구들은 병원에 잘 보내지 않고 아이들이 감기가 들어 콧물이 줄줄 흘러도 내버려두게 하는 회의형. 남편은 긍정적 부류다. 기본이 선량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온갖 정보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정보는 겁을 몇 제곱했을 뿐이다. 섬세한 그물과 같은 신경조직 망막 중에서도 황반부는 중심 약 0.5cm정도, 겨우 녹두알 아님 완두콩 크기란다. 하지만 글을 읽거나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고, 색을 구별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이 바로 이 꼬맹이 덕이었다니.


이제 글 읽기나 근거리 작업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불가능할 수도?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의 일년이 시작되었다. 그 후론 수요일 아침이 되어도 눈물을 머금고 행복해 할 수 없게 되었다. 텔레비전처럼 눈으로 함께 보는 대신 귀로 듣는 행복을 구해야 했지만, 남편의 차원높은 음악은 처음부터 인희에게 멀었다.


예약된 병원 복도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통계에도 65세 이상의 노인 10% 이상이 걸린다는 높은 유병률이었다. 그녀 또래는 드물었다. 눈을 혹사한 탓일까? 그녀의 망막이 상대적으로 많이 혹사당했을까? 혹사의 역사는 절로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간다. 재래식 화장실의 침침한 불빛 아래 쭈그린 채 동화책을 넘기던 시절로. 언니들은 왜 하필 그곳에 책을 들고 가느냐고 의아해 하곤 했다. 할 수만 있음 빨리 나오고 싶은 데가 아니냐고. 하지만 그곳의 시간을 참기에 읽을거리만한 것도 없음을 그녀는 알았다.


남편의 눈 꼬리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누가 당신 눈을 혹사하라고 해서 이런 일이....... 그렇게 말하는 눈이었다. 당장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지만, 하던 작업을 중단하기는 어려웠다. 바로 그의 원고였다. 그의 원고를 설명 없이 중간에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습관적으로는 책상의 스탠드만 켜는 것이 집중을 위해 좋았었지만, 이제 천정의 등도 함께 켰다. 모니터를 19인치로 바꿀까 했다 말았다. 이 작업이 끝난 뒤 더는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니까. 대신 글꼴 기본을 12폰트로 올렸다. 곧 14포인트로 넘어갔다. 13을 쓰지 않은 것은 13징크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10-12-14 그런 습관 때문이었다.


이게 황반이 산화되는 것 비슷하다니까. 남편은 드디어 한 마디 했다. 당신은 인스턴트 음식도 안 먹고 술 담배도 안 하지, 대체 어디서 유해산소가 나온 걸까? 골프는 힘드니까 그렇다 치고, 음악회 한번 따라 나서지 않을 만큼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뭐요 대체?


그냥 고도근시 때문에 올 수도 있다 했잖아요?


글쎄, 당신이 원래 허약체질이라 해도, 스스로 몸을 돌보는 데 소홀한 건 틀림없어. 뭐 다른 일에 시달릴 것도 없이 이런....... 남편은 뒷방 쪽을 흘겼다. 할머니 책상이 놓인 곳이다. “쓸데없이” 눈을 혹사하는 짓거리에 파묻혀 그리되었다는 힐난을 담아서. 아이 입시문제로 시달릴 일 없겠다, 시댁문제로 힘든 것도 아닌 안락한 세월을, 어디 걸맞은 일 없어서 “남의 글 교정이나” 하겠다는 여자라니, 남편의 평상시 지론이다. 아들이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도통 음악회도 마다하는 어미라니. 정작 의사 남편이 아내가 사람 북적대는 곳에서는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것을 성격 탓으로만 돌린다.


인희는 가슴으로 운다. 미안해요, “쓸데없이” 혹사한 것은 눈만이 아니었어요. 좋은 남편의 보통 아내이기에도 벅찬 그녀의 속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쓸데없이” 한 곳으로만 향하는 좁아터진 그녀의 시야를 비웃듯이, 정말 시야가 가리기 시작한 것이니까.


일년. 그 일년 사이에 그를 만난 적이 없다. 두 번째 시술 날을 잡아 놓고 일차 교정 분을 단번에 다 넘겼을 뿐이다. 그 사이 그가 유비쿼터스 세상으로 한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꼭 만나지 않아도 일의 전달에는 충분했다. 아니 무서워서 못 만났다. 그 후론 교정도 번역도 완전 중단이다. 그가 원전을 건네준 『결혼의 변화』도 다른 곳에서 출판되었다. 말로는 감정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인 아내, 욕망을 피하려는 구실로 경직된 규율로 도피한 이성적인 남편, 그런 가운데 “내레이터의 시각이 일품일 것”이라 추천했던가? 이제는 다 옛말이다.  번역서로나 읽을 수 있을지, 단순한 독서도 겁난다. 먼 데 초록을 보며 눈을 쉬자고, 한 친구는 나인 홀이라도 한번 따라나서 보라지만, 골프장의 햇빛인들 좋겠는가. 두더지처럼 아파트의 서늘한 그림자 안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 행복한 수요일 아침도 외면한다. 대신 눈을 반쯤만 뜨고 지내는 연습을 한다.


눈을 내리 감으면 감을수록 상념은 높이 높이 나른다. 파스칼도 횔덜린도 그리고 니체의 독서도 힘든 평범한 누구라도, 고독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는 데서 예외가 아니겠지, 그녀는 생각한다. 그가 마라이의 말을 인용했을 때, 렌츠의 이름을 거기에 추가하지 않은 것이 느닷없이 후회스럽다. 그 말을 들려줄 일도 영 없을 것이다. 괴테의 친구로, 친구의 그늘에 가린 채, 10년도 채 못 되는 창작기간, 그보다 훨씬 긴 정신착란의 세월 속, 모스크바의 길거리에 쓰러진 천재. 그 일생만으로도 가슴을 울렸던 렌츠가 갑자기 생각난 건 마음에 와 닿은 한 작가 때문이다. 일면식은 있는 사이다. 그와 더불어 이 작가에 관해서도 이야기 할 틈이 없었다. 아니, 그와 더불어 나눈 시간 자체가, 그와 나눈 대화를 통째로 녹음해서 편집했더라도 몇 시간의 길이나 될까? 그 시간이 내 수십 년 인생에 무슨 영향을 준다는 거야? 인희는 허망한 정답을 깨닫고는 숨을 죽인다.


오늘은 일년에서 마지막이라는 네 번째 시술 약속이 된 날이다. 세 번째부터는 남편 대신 큰 언니가 동행한다. 시술 자체엔 위험부담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아는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 83초를 견딜 때 작정을 했었다, 뭔가 꿈을 꾸리라고. 83초에 그러나 긴 꿈을 꾸리라고. 봉숭아 손톱물을 첫 눈송이에 대고서 소원 빌던 길이보다 훨씬 짧은 동안에. 흐르는 별똥별에 대고 소원을 비는 일에 비하면 엄청 긴 시간 동안에.


이제 한두 시간 후면 하염없이 82초, 81초 ....... 하고 헤아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다이달로스가 다다르고 싶어 했던 태양이 통째로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신 83초 동안 어둡게 꿈틀거리며 되풀이될 꿈속에서, 여전히 그의 네 번째 여자이기를 소원할 것인가? 바로 그 부정한 소망 때문에 계속 병변이 재발되는 것은 아닐까? 흠칫 오한이 인다. 그녀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아무 것도 모르는 넉넉한 언니의 얼굴이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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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5. 11. 3. 22:45

내 딸의 어머니


                                                                『눈물향기의 어머니』2005 (이화에세이)

 

 

내 가능한 딸에겐 내가 어머니일 것이다.

내 딸의 어머니에게도 물론 어머니가 계신다.

그 어머니에게도 또 어머니가....... 

                                                                     ※


누구나 사춘기에는 자신의 평판에 예민하다. 그 시절 평판의 첫 가름은 얼굴 생김새다. 그녀는 천하미인 소리를 듣는 예쁜 여동생과 짧은 터울로 고민이었다.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할 수 있고 말 수 적은 표정으로 넘기며 할 일없이 책상에나 붙어 지냈지만, 속으로는 세상이 불공평했다. 물오리란 별명을 들으리만큼 씻고 또 씻는 습성에도 돋아난 여드름은 참을성을 폭발시켰다. 예쁜 여동생은 정말이지 상대적으로 말하면 잘 씻지도 않지만, 그 매끈한 피부마저도 동네는 물론 학교에서도 제일을 뽐냈다. 여드름이 이마에만 송기송기 돋을 때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이마에 나는 여드름은 누군가가 당신을 좋아하는 증거다 하는 속설 때문에. 하지만 볼에까지 빨간 뾰루지가 돋기 시작했을 때는 심각했다. 게다가 예쁜 여동생은, 어마, 언니도 누굴 좋아하는 거야, 그러네, 하면서 예쁘고 까만 눈을 흘겼다. 그런 어느 날 그녀는 유난히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어머니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어머닌 정말, 첫째는 조물주 실패작품을 낳았더니만 둘째는 예술작품을 낳았어요?


조물주 실패작품?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한참을 더 자라서 어머니가 되어서야 느낀 것이지만, 어느 어미가 제 자식을 낳아놓고 실패작품이라 느끼랴?


그녀의 첫 아기도 갓 때어났을 때 도저히 미남이 아니었다. 포도같이 검고 호수같이 깊은 눈동자를 지닌 둘째와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작은 눈에 남달리 푸른 눈매가 오히려 신기하기만 했다. 아무려나, 아이들은 제 어미를 힐난할 좀생이로 자라지는 않았다. 아들들은 딸들에 비해 적어도 자신의 외모에는 관대한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 일반론보다는, 아이들이 제 어미보다 좀 더 관대한 품성을 지닌 것이리라.


어머니 ―

첫 아이 실패작품을 낳았냐는 딸의 공박에 어안이 벙벙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의외로 당당하셨다. 너희들 시집가서 나만큼만 아이들 반듯하게 낳아 보거라! 어머니로서 큰소리 치실만큼 어려선 제법이었던 자식들이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훨씬 넘긴 지금. 자식들 모두 제 아이들이야 어떻건 사는 형편들이 어머니처럼 큰소리 낼 계제가 못된다. 물질의 권능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기를 보낸 아이들은 자라서는 분명 그 물질에 굴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인가 보다. 물질의 중요성을 너무도 늦게 깨닫거나,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산다. 농본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세상이 바뀌었으되, 사업공식에 접근하지 못하고 유아적 신뢰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건지는 것이 없다. 철없는, 더러는 기고만장하던 자식들이 재력의 손상과 함께 권위는커녕 자칫 품위도 상실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어머니. 그 아린 가슴에도 습관은 추억을 버리지 못하시는.


소도시에서 방학을 맞은 딸이 어머닐 뵈러 올라온 날이다. 실패작품과 예술작품 다음으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들 낳으시고 얻은 셋째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맛있는 데 가서 점심이나 하시지요.

점심은 무슨, 맨 날 먹는 것이 밥 아니냐.

그래도 어머니.......

누가 운전이나 하면 어디 물가에나 다녀왔음 싶구나.


물가.

그렇다. 물가에도 가지 않고 여름을 난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어머니다. 젊은 시절, 어린 아이들 살필 사람 많으니 봄가을 몇 차례씩 설악산으로 제주도로 관광 일 세대를 자랑하시던 가락이 여전하신 것. 해외여행 붐이 터지자 관광 목적지는 넓어갔다.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 꼭 이민 가서 살겠더라!” 뉴질랜드의 경관에 감탄하신 것이 칠순 무렵이시니, 정신적인 에너지는 차치하고 건강 또한 그만하면 되신다. 그런데 팔순을 넘기신 지금, 이 근년에는 사정이 다르시다.


특히 올여름은 실패작품 큰 딸네도 고장이 나 있다. 모처럼 막둥이 생일을 핑계 삼아 모두들 며칠 쉬자는 ― 어머니의 관점에서는 며칠 사는 것처럼 살자는 ― 땅 끝 콘도 예약도 틀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며칠 전 다녀온 예술작품 둘째네 전원생활의 품은 양에 차지 않으신 것이다.


썬 크림도 안 바르는 여자가 어디 있다더냐!

어머니는 둘째네 도자기골을 가실 때마다 썬 크림을 사들고 가시지만 매번 퇴짜다.


그렇게 예쁜 딸을 낳아서 그렇게 예쁘게 길러서 ― 이 예술작품도 이화인이다 ― 시집보내 놓으니, 이제 와 시골생활이라니. 시커먼 고무신에 그보다 더 시커멓게 탄 발등을 하고, 뭣이 좋아서 저 아줌마들하고 종일 살거나. 다른 자식들에게 푸념이시다.

그 아주머니들 단체로 난생 처음 제주도 여행도 데려 갔대요. 제 신랑 말이 “몽강리 여자주민 탐라국원정대” 대장노릇 했다나요?

참 할 일도 없구나.


어머니는 “제주도”라는 지점에서 특히 속이 상하셨을 것이다. 어느 자식 하나 어머니모시고제주도 다녀올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핑계라면, 자식들 누구도 어머니는 젊어서 충분히 제주도를 가셨다는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터다.


어쨌거나 시커먼 얼굴로 흙 속에서 살아가는 예쁜 딸이 일본식 미인 기준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로서는 통탄할 일이다. 어머니는 항상 “살빛 그을린다고” 한여름에도 얇은 긴팔만을 고집하셨다. 그렇지만 이제 팔순도 넘기시지 않았나! 그것은 딸들의 착각이다. 지금도 차라리 덥고 말지 반팔을 못 입으신다. 지난 번 집에 잠깐 오실 때 과일가게에 들려 수박짐 뒤따라 몇 발 걸으시며 땀을 흘리셨기에, 더운데 좀 짧은 팔 입고 다니시라했더니 답은 의외였다. “팔꿈치가 다 늙어서야.......” 어머니도 참. 누가 어머니 팔꿈치 보고 다닐까 봐서요? 제 나이도 밖에 나가면 아무도 안 쳐다보는걸요.


그때도 어머니는 마음이 상하셨을까? 가까운 냇가에라도 드라이브를 하려던 그날, 어머니는 “지나치게 꼼꼼하게” 화장을 하시더란다. 파운데이션을 꼼꼼하게 펴 바르고 그 앞인지 뒤인지 또 썬 크림을 꼼꼼하게 펴 바르고....... 드라이브 다녀와서 해 안에 다시 소도시로 내려가야 하는 딸의 입장에선 바쁘기도 하고, 해서 튀어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그냥 대충대충 하세요, 누가 본다고요!” 어머니는 막 바르려던 립스틱을 홱 던져버리시더란다. 며칠 전 큰애가 했던 말이 생각나셨을까?


저녁 늦게 멀리 전화로 후일담을 나누던 두 딸은 웃고 말았다. “우리도 나이 들면 더 열심히 단속을 하게 될지 알겠어? 또 깔끔한 것이 백번이나 낫지 뭐.” 허나 웃음은 곧 썰렁함으로 바뀌었다. 화려함의 끝에 서있는 어머니의 삶이 걱정이었다. 그렇게 파운데이션을 꼼꼼하게 펴 바르고도 외출할 곳이 점점 줄어드는 어머니. 세상은 바뀌어 전체가 업그레이드다. 그냥 멈춰선 자리매김에 혼돈스러워 추억 속에서나 자신감을 붙들고 계시는 어머니가 안타깝기만 하다.


아카시아 향기 ― 어머니는 라일락 향이라고 하시지만 ― 그 아련한 어머니의 체취가 특정 화장품을 평생 고집한 덕택인 것을, 그녀는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어쩌다 아이들이 용돈 모아 선물한 이상한 크림일랑 뚜껑도 열지 않으신 결과인 것을. 그런데 그녀는 모든 브랜드를 무시하고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로션을 집어 든다. 나중에 제 아이들이 선물할 모든 화장품을 쓰겠다는 시위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머니에게 화장품을 선물하고 싶어 하거나 예쁘게 낳아주지 않았다고 불평할 딸이 없다. 딸의 귀감이 되어야할 의무가 면제된 삶은 한편 자유스러웠다. 하지만 딸의 시선이 의식되지 않은 삶에는 비판의 시금석이 빠졌을까 겁도 난다. 그 딸의 어머니로서, 딸아이가 제 어머니와 공통분모를 찾아 분석하는 일이 이제서 궁금하지만 그건 꿈이다. 사람은 꿈속에서도 논리를 지닐 수 있을까? 가능한 딸의 분석에 평균점은 되는 어머니고 싶은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듯, 큰 부채로 손을 뻗는다. 바랜 창호지 부채살이 몰고 오는 시원한 바람에 상념은 더 높이 난다.(2005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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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5. 10. 15. 23:30

 

교집합과 합집합  

 

<문학사상> 2005년 11월호


 

“수학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형은…….”

첫 강의시간에 운을 떼자마자 학생들의 얼굴이 굳어지려 한다.

봄이, 가을이 올 때마다 우리 선생들은 새 학생들과 만난다. 학생들과 세대간 거리가 더해갈수록 앞으로의 상호이해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기만 한다. 강단에 선 사람은 소통을 터야할 의무를 갖지만, 시작은 항상 이렇게 어렵다. 첫 시간의 단골메뉴가 하필 수학에서 차용된 것들이라 더욱 낭패다.

수학은 성년이 된 이들에게는 학창 시절 골치만 아픈 존재였다고 기억되곤 한다. 졸업 후 바로 실 인생에 뛰어든 경우도 그렇지만, 인문계열에 진학을 해 보아도 수학은 쓰임새가 없다.

아예 인문계열에 수학을, 자연계열에는 국어를 면제하고, 영어만을 공통입시과목으로 택하는 대학도 있다. 대한민국은 가히 영어-정보화 대학들로 넘쳐있다. 그에 걸맞게 동영상으로 맞이해야할 젊은이들에게 분필로 그리는 삼각형이라니. 그것도 밑변에 해당되는 선분 하나만 달랑 그려놓고 잔소리에 들어간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이 밑변을 그리는 시기에 있습니다…….”

밑변을 최대한 넓히는데 힘쓰라는 당부를 위해, 카프카의 빈둥거리기 예찬까지 들먹인다.

“최소한 25세가 되기까지 잠시라도 빈둥빈둥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참 안 되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갈 것은 벌어 놓은 돈이 아니라 빈둥거린 시간, 바로 그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오.”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아 확고한 성취동기로 무장하고 앉은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찬물을 끼얹어야 할까. 산학연계 학습과정을 개발하라는 사회적 독촉에도 어긋나고……. 해서 그것이 요즈음엔 점점 벤다이어그램 쪽으로 기운다. 교집합과 합집합을 인간관계에 비유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교집합은 쉬운 말로 공통의 원소를 가지는 집합이다. {김, 이, 박, 최, 정}과 {최, 정, 강, 조, 윤}이라는 두 집단이 있을 때, 교집합은 {최, 정} 두 사람으로 좁혀진다. 그러나 합집합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으로 여덟 사람이 된다. 여기에 성씨 대신 나의 특성과 타인의 특성을 대입하면, 교집합은 공통점을, 합집합은 두 사람의 합을 드러낸다. 합집합의 크기는 교집합과 반비례하므로, 큰 합집합을 위해서는 교집합이 작아야 한다. 물론 가장 큰 합집합을 위해서는 교집합이 없어야겠지만, 그것은 무의미하다.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교집합은 필수적이니까. 장황한 설명보다도 동그랗게 원 두 개로 벤다이어그램을 그리면 모두에게 순간 확연해진다. 땅 따먹기라 해도 합집합을 늘리기 위해선 교집합을 줄여야 함이.

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인식의 출발을 결정한다. 그 중요하다는 영어를 배울 때의 어려움 중 하나도 단수 복수 구별이었다. 물질은 셀 수 없기 때문에 많아도 단수다. 하나 둘, 세어지는 사물은 둘 이상이면 복수다. 거기에 또 집합적 단수. 얼마나 힘든 개념이었던가. 개와 고양이는 합쳐서 말하면 ‘동물들’이고 복수로 ‘데이 아’인데, 여러 ‘사람들’인 가족은 복수가 아니라 집합적 단수라 했다. 우린 참 형제자매가 많은 가족이었으니 더 혼란스러웠을까.

그래 우리가 영어나 독일어로 말하면서 복수 쓰기를 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말에서 ‘우리’와 ‘우리들’을 굳이 구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내 고향에서는 “나는 매운 것을 무척 좋아해서”라고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운 것을 원칸 좋아해서”라고 하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도통 요새 영화는 범벅이요”라고 하면, “나는 요즈음의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무남독녀인 우리 어머니도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라 하신다. 서울 중심의 사람들이 쓴다는 표준어에서도 ‘나의’ 아버지 대신 ‘우리’ 아버지다. 심지어 ‘우리(!) 집사람’임에랴.

왜 ‘나’ 대신 ‘우리’를 즐겨 사용할까? 언어에서 연원하는 문학을 전업으로 사노라니, 진작 언어 일반에 대한 철저한 고찰을 소홀히 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무심한 세월은 흘러, 소설가 ‘ㅂ’이 한껏 조롱한 늙은 교수들에 속하게 되었다. “명성이라는 더러운 스타킹을 뒤집어쓴 부패한 관료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물론 그 명성도 없이. 그러면 차라리 학생들도 그 소설책에서처럼 모두 “독학자”가 되겠다고 캠퍼스를 버리는 상상을 한다.

첫 강의를 마친 저녁에 낯선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실명대신 별명으로도 스팸메일을 걸러내는 전산시스템에 통과된 것이다.

‘1학년에겐 점수를 잘 안 주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알고 계시느냐. 또 첫인상으로 보아 자기주장이 강하신 교수님 같은데, 하고 싶은 말 있어도 못하게 되면 어떡할지, 이것들이 괜한 걱정임을 밝혀주셨음 좋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빠른 반응에 대한 기쁨 한편으로 숨이 막혀 왔다. 그러나 숨 막힘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인상을 여태 못 벗어났단 말인가?

실은 지루한 강의 사이에 우스갯소리를 그리워하는 학생들을 내 나름대로 이해한다. 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학생들은 결석할 자유가 있어서 좋겠소!” 정도다. 일단 학생들은 웃는다, 출결석에 까다롭지 않은 교수를 만나서 다행일까 하는 기대로.

말을 이어가자면, 자유시장경제에서 살고 자유결혼도 해봤지만 그리 자유로울 것이 없는 것이 삶인데, 한 학기 한두 번 결석조차 못할까 보냐! 그쯤에 이르면 웃음을 거둔다. 거 봐요, 이 사람은 우스갯소리 해보아야 썰렁해지니 아예 기대하지 마시오!

결석할 자유, 졸업하지 않을 자유! 이론상으로 인간에겐 자신의 진리를 고안해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유는 우리를 미결정의 상태로 놓아둔다. 자유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자유는 변화를 갈구하는 프로메테우스적 본성이다. 모든 것을 알고자 언제나 다시 새로운 체험을 추구하는 파우스트적 충동이다. 자연으로, 곧 너의 본성 안으로 돌아가라! 너에겐 너의 진리를 고안해낼 자유가 있다. 그 자유를 보편화하고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관철시키려 하지 않는 한, 이 자유는 다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다치지 않아도 될 아주 작은 자유를 꿈꾸는 나는, 그러니까 소인배였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인간을, 인류를 사랑하고 그래서 선의를 행동하려는 역동적인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발견한 진리들을 사회에 적용시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삶에도 영향 주고 싶어 한다. 사회적인 장치가 인간의 본성에 합당하게 조직되지 못했다는 역사 인식에서 출발하는 이들은 과감히 새로운 원리를 들고, 특히 소외된 계층의 구원이라는 입장에서 소유의 평등한 분배를 향해 사회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론적으로는 정치가나 사회운동가나 참 이타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차이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합일에 대한 소망은 참담한 결과를 부르기도 한다. 사회가 공감으로 채워져 있는 공동체로 변화하는 루소의 꿈을 멋대로 끌어들이면 로베스피에르의 ‘덕에 의한 테러리즘’으로 왜곡되기도 했으니.

그런가 하면 소유의 분배 이전에 아예 소유를 초월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산업사회의 소비주의를 탄식하며 소유가 아닌 존재를 지향하는 삶을 꿈꾼다. 인간에게 소유욕으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주어서 본래적 존재로 되돌려 놓을 사명을 지닌 듯하다.

본래적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여러 단수의 복수들인 인간에게라면 이 본래적 존재 또한 무수한 변형으로 파악불능에 이른다. 인간을 집합적 단수로 볼 때라야 그들의 사명이 실현 가능해 보인다. 위대한 진리들로 인간을 치유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여러 이론들은 매번 교집합의 확대를 꿈꾼다.

혼란스러운 단수와 복수. ‘나’와 ‘우리’의 조화는 뫼비우스의 띠를 맴돈다. 그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정작 분열적 환상에 시달린 사람들은 자기 안에 서로 다른 집합들을 가진 경우다.

나 역시 뭔가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다. 남의 글들을 공부할 때, 자판 위를 날아다니는 손가락들이 먹다 남은 먹이를 파헤치는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으로 변하는 환상에 떨 때가 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나머지 손가락 하나씩을 위한 나의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글 공부와 글쓰기 ― 두 성분은 필연적인 분리를 지향한다. 궁극적 확장을 위해서 파괴되기 직전까지의 분리를 향하여. 미쳐버린 렌츠와 횔덜린에 이르지 않을 만큼만. 자신과 타인 사이, 자신과 사회 사이, 아니 제 자아들 사이에서 한 점 교집합이 없이 터져버린 이 영혼들을 새삼 보듬고 싶어진다.

교집합을 동경하면서 합집합의 확장을 꿈꾸는 모순이 먹안개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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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평2005. 4. 1. 23:30

http://cafe.daum.net/novelworld


카페 소설시대   류경빈

 

 서평 ...............................<춤꾼> 서용좌


처음에는 춤꾼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듯 했으나, 춤꾼을 통해서 주인공의 삶과 연관 시키고 있는 내용으로 발전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딱히 어떤 비평으로 해야 할지 그 구분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심리적인 측면이 더 드러난 것 같아서 심리주의 비평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 작품 속에는 춤꾼을 바라보는 정식의 관심사가 자신의 삶과 비추어 보았을 때, 흐른 세월 속에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한다. 춤꾼이 남자라고 생각했었지만,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는 외모로만 보고 판단했던 자신의 의식 속에 여자라는 사람은 생김새가 예쁘고 머리도 길고, 화장을 하는 등을 생각했기 때문에 춤꾼의 모습에서는 짧은 머리와 헐렁한 셔츠 등이 남자라고 확신 하게 되어, 그 모습은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서 회의감에 젖어 든다.

아내를 처음 보았을 때 얼굴빛이 도화 빛의 얼굴 이었고 지금의 아내는 누렇게 변해 버린 얼굴과 화장이 다르므로 춤꾼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아닌 중성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주인공은 남자이지만, 작가는 주인공의 입장, 곧,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그 시선이 어떠한지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 작가 의식 속에서는 아내의 세월이 나성의 눈으로 보았을 때, 여성이 아닌 중성 인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모습만이 남아 있고, 남편이 집에 돌아 왔을 때, 여자로써 매력이 없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이 된다.

남편인 정식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와 이야기 거리가 없이 홀로,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 정신없이 앞을 향해 왔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하고 ,중년의 나이에 자식도 있지만, 어느 정도 빠른 시간을 보냈다면 ,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지위, 그리고 가정에서의 위치가 곧, 가정의 살아남기 작전이 되어 불안감을 갖고 있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상태가 달라서 감성과 이성의 충돌이 아내에 대한 불만족스런 생각들로 아내 흉보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춤추는 것과 아내의 흉보는 것 중에 아내의 흉보기가 더 좋다는 생각은 아내에 대한 불만족이 춤추는 몸의 동작이 즉, 행동으로 나타내기 보다는 그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덜어내고자 하는 자신감이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짐작 하게 한다.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5. 3. 25. 23:30

펼쳐두기..

 

                                                                                                        소설시대 2005

 

춤꾼을 말해 춤을 업으로 하는 인사렷다, 장사꾼이 장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듯이. 춤이란 곡조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서 팔다리와 온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사전적 정의다. 그날 밤 그 사람은 그러니까 춤꾼인가 싶었다.


처음 그 사람이 눈에 띈 것은 한 사람이 통기타를 치고 누군가가 드럼을 했다가 말다가 하면서 노래만 부르는 사람 합해서 서너 명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맥주가 있는 그런 곳에서였다. 눈에 선 것은 한 손님이 그룹의 멤버이기나 하듯이 딱 달라붙어 앉아서 그들의 연주를 바라보는 모양새였고, 그런데 얼굴은 해맑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추운 겨울 밤, 손 한 마디도 안 되는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서 노래패 옆에 달라붙어 앉아있는 모습은 교교했다. 홈쇼핑에서 두어 벌 함께 샀음직한 그저 그런 체크무늬 셔츠는 그냥 몸을 가리는 일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가리개였고, 그것도 엉성한 크기 때문에 형님이거나 좀더 크고 뚱뚱한 사람에게서 얻어 입은 몰골로, 멜로디 하나하나에 그저 감탄을 하고 있는 표정은 혹시 이 사람이 정말로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세상 노래 스타일에 온통 감탄하고 있나 싶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날 정식은 오랜만에 동창생 몇 만나서 송년의 술을 했다. 만으로 쳐도 40이 넘어가는 송년의 밤은 숨이 막혔다. 40년 세월, 누가 인생은 40부터란 실소를 하게 하는가. 이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는 밤, 그것이 사십인 게다. 그들 중 하나는 대학에 있는데, 그 친구가 젊은 선생님들하고 몇 번 와보았던 소위 “7080 문화를 만끽하지” 하면서 이끌었던 곳이다.


처음 그 대충 까까머리를 보면서는 거의 불안한 느낌에 맥주를 마셔도 몸이 풀리기는커녕 오도카니 앉아 그 모양새를 관찰해야 했었다. 그래, 나잇살 들어 보이는 얼굴로 미루어 제대한 군번은 아니었고, 교도소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감정은 여전히 풍부하다 그건가 참. 쪽지들이 가끔 건네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청곡들을 적는 모양이었다. 정식네 팀에서도 뭔가 말하라는데 정식은 여전히 건성이었다. 저 진지한 얼굴, 악사들이 클래식도 또 유별나게 감동적인 그룹사운드도 아니련만, 저 진지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주객이 전도라더니, 정식은 음악보다는 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볼수록 어디에선가 만난 적이 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드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어떤 특징도 없는 얼굴이 더욱 기이했다. 적당히 작은 눈, 적당히 낮은 코, 적당히 누런 얼굴 색, 무엇보다 적당히 나이든 얼굴이 오히려 이상했다. 저쯤 행동하는 사람이면 뭔가 좀 눈빛이라도 달라야 하지 않은가.


연주자들이 쉴 시간이 오자 그는 덩달아 가운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건너편에는 여자 둘이 있었다. 여자들은 화장기도 제법 있고 유행하는 모자도 얹어놓고 있었다. 발을 꼬고서. 이상한 트리오다.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고서 마음을 돌린 그들은 제 이야기에 빠졌다. 아따, 그 선생 운도 되게 나쁘네.


이야기의 중심은 이번에도 대학에 있는 동창이 몰고 다녔다. 전공들이 다른 사람들의 느슨한 결합체이다 보니, 흉을 보아도 흉이 되어 돌아갈 리 없는 독특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그날도 한 ‘불운한’ 초임 교수에 대한 성토와 동정이 주제였다. 봄 학기에 발령을 받아서 머슴에서 왕이 된 기분의 전임강사. 그 봄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동티가 나다니.


선생은 그 동안 뒷바라지에 힘든 아내와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둔 가장. 그의 나이 불혹을 넘긴 뒤에서야 시간 딱지를 떼고 전임이 되었다 했다. 거기까지의 고생은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막스 베버가 그랬다던가, 교수가 되고 못되고는 만원인 전철 타고 가다가 앞자리 사람이 내리면 앉을 수 있고 아니면 아닌, 바로 그만큼의 확률과 우연이라고, 대학에 있는 동창은 제법 겸손한 멘트를 섞어서 자신을 지키면서, 그 신임교수의 운명을 보고했다. 3학년 여학생과 동티가 났다는 사건. 기숙사에 들어있는 여학생이 기숙사 통금 넘어서 이상한 카페에서 어떤 ‘교수님’과 단둘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 노출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여학생은 인터넷에 하소연했고, 교수님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는데, 이는 순전히 성적 등을 담보로 뭔가 상납을 요구하는 성폭력이었으니 처벌해달라는 요지였다나. 알고 보니 둘의 이메일 교환에서도 증거가 여실했는데, 교수는 늑대라는 ID를 사용했으므로 노골적으로 한창 물오른 양을 잡아먹었다 등등.


그럼 당시 상황은 살벌했겠네? 세 번째 녀석의 말이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며 조신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 속모를 친구였다. X조교 사건보다 더했네, 그렇제?


뭐야, “정 뗄 칼 없고, 임 잊을 약 없다”는 사랑이야긴가? 그래, 사랑 빼고 뭔 이야기가 있겠나?

 

뒷이야기를 풀어내는 교수는 한참 맥 빠진 소리였다. 그야 살벌했지, 한 동료 교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부인은 탄원서를 들고 학장실을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지만, 실상 대학사회라는 게, 한 동료의 고통과 한 학생의 상처에 무력한 개인들뿐이더군. 사실 스승과 제자라는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우리 중 누가 과연 이런 남녀 문제에 완전 자유로울 수 있겠나? 헌데 어찌되었든 한 지붕 밑에 사는 사람들로서 불행에 빠진 당사자들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니 뭔가. 자넨 그럼 그런 불한당을 가만 둬야 된다는 거야 뭐야. 이 사람 대학교수 되더니, 가재는 게 편이야 뭐야!


아니 내 이런 말의 관점은 그 잘못된 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아쉬웠다는 것이지.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하면 전 우주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잖나. 교수 만들기 뒷바라지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아내는 어떻겠나. 사실인즉, 매력하나로 사는 여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성적 협상차 연구실 찾아들었다가, 거절당하면 스스로 옷을 찢고 고함치며 뛰쳐나가서 성폭행 뒤집어씌우기는 미국에선 벌써 60년대 고전이라지 않은가. 도통 미스 뷰티에 미스 스트롱이야 요새 여자들은.


하긴. 역정을 추스른 종합병원 친구가 딴청을 부렸다. 하긴 요새 여자들 말이야, 계모임에서 며칠씩 여행가기는 일도 아니거든. 전에는 뭐 큰 솥에 곰국 끓이면 마누라쟁이 며칠 나갈 까 안다더니만, 요샌 그것도 아니래 글쎄. 냉장고에 “까불지마” 그렇게 써 붙여 놓으면 그만이라나.


까불지마? 그거 만우절 이야기 같네.


아니 영화제목 아냐, 오지명 최불암 나오는? 참 그런 것도 한다네, 누가 볼 거라고.


내가 봤네 왜. 첫 장면부터 찢어진 청바지에 짧은 잠바 날리며, 터프하게 지프차를 몰고 나타나는데, 믿을 수 없으리만큼 원시적인 수컷 본능을 뽐내고 싶어 하지만, 누군들 그들의 카리스마를 알아줄까? 공격에는 도피가, 위협에는 복종이, 게다가 회유와 텃세 등 갖가지 동물적인 행동들이 난무해 보았자, 글쎄, 덜 떨어지고 늙어버린 건달들은 그저 돌아가신 후에야 찾게 될 애절한 그리움의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메일 뿐. 코너에 내몰린 중년이 외쳐 봤자 뭐, “까불지마.”


참 그런 영화도 보나. 그런데 아내들은 그들에게 먼저 외친다고, “까불지마!”


그런 말 아닐세. 그냥 우스개야. 까스조심, 불조심 시리즈야.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것은 마지막 “마”를 두고서 버전이 두 가지라는군. “마누라만 생각 해!” 그것이 하나고, 다른 것은 “마누라 찾지 마!”라네. 우리 집사람 동창들이 모여서 한다는 이야기가 거기서 두 패로 갈렸다는군. “생각 해!” 쪽을 고집하는 부류는 어쨌거나 아내는 자유를 갖되 남편들은 조심시켜야 한다는 이기적 유형이고, “찾지 마!” 쪽은 개인주의 형인데, 어이, 우리 입장에선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참 별난 선택도 다 있네, 이왕 그리된다면 거야 자유방임주의가 낫지.


무슨 소리야, 그래도 “생각 해!” 쪽은 관심은 있다는 증거 아냐. 요사이 평균 수명 발표를 보면 우리가 살 날도 한참 긴데, 그나마도 무관심이면 어찌 버티나.


이 한심들아, 우린 아직 그런 처지는 아니잖아. 알콩달콩 아이들 귀염 속에서, 아내들 애교도 아직은 괜찮잖아?


이 한심한 가운데 악사들이 돌아왔다. 귀에 익은 〈화〉가 첫 번째 곡이었다. 그들의 팀에서 넣어준 것이 분명했다. 동창 하나가 다른 친구들의 욕구를 언제나 잘 기억하는 장점을 지닌 덕이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 또 하루를 보냈다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애달픈 노래를 흐느끼는 친구가 바로 대학교수다. 국사전공이라서 특별히 유학 갈 시간 돈 투자하지도 않고 일찍 교수가 되어 선망의 대상인데, 노래는 꼭 사연 있는 것으로만 불렀다. 어느 새 다들 알게 된 노래를 정식도 한껏 따라 불렀다. 오늘도 애 태우며 / 또 너를 생각했다 / 오늘도 애 태우며~~ 홀의 누구라도 함께 부르는 분위기 탓이다. 화 안 된다 떠나지 마 / 이대로 이별일 순 없다 /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안된다” 할 때는 반쯤 서서 양팔로 허공을 안았다.


젖은 짚단이 타더라도 다시 불꽃이 인다는 말인가? 그런 상념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그날따라. 예의 반 까까머리가 서서 나오더니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공옥진의 병신춤 비슷한 것이 도통 묘했다. 어이어 어이어~ 벌릴 듯 말 듯한 입에서 소리라도 나는 듯 했다. 물론 음악소리에 묻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동 출소인가?


정식은 공옥진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무슨 행사장이었다. 여흥으로 불려 나오기는 대단한 분인 줄 알았는데 그때가 대단한 행사였는가 싶다. 그때 우리가 본 것은 왠지 ‘부끄러운’ 병신춤이었다. 상당히 노골적인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느껴져 거북스럽기도 했다. 덩달아 박수를 치면서도 단 한번에 이해할 수 있기에는 그의 예술적 감각은 평범 이하였다. 과장은 있으나 교만하지 않는, 꾸밈은 있으나 거짓스럽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비로소 훨씬 뒤 그 장면이 우연히 되새김될 때였다. 소리꾼의 딸로 태어났으니 손잡고 걸음마 뗄 무렵부터도 머리맡에 장고와 북소리가 끊이질 않아 귀 장단을 익혔을 것인데, 살풀이춤을 배우면서도 어쩐지 발 디딤새가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장단 역시 신무용을 먼저 배운 뒤끝이라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배운 대로 잘하는 사람은 밥벌이는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그것을 가르쳐 준 이가 공옥진이다. 배운 대로만 했으면 창무극에서 천재가 나타났을까. 천재는 다름 아닌 진실이다 싶었다. 그런 기억이 왜 그 순간 되살아났는지.


홀은 다시 안개로 자욱해졌다. 들어 올 때 본 “하루만 참아주세요!”라던 금연 표시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굴뚝을 밖으로 세우는 연통 난로 때문인지도 몰랐다. 고구마를 얹지 않아도 이런 저런 땔감 때문에 피어오르는 연기, 아마 그런 때문일 것이다.


연기 사이로 그가 다시 설렁거렸다. 오른쪽 어깨가 들리면 왼쪽은 밖으로 삐지는 기묘한 어긋남. 어긋남과 어긋남 사이 미묘한 조화가 피어올랐다. 괭이가 드러나는 기둥에 원숭이 매달리듯 휘어 감겼다. 그 전에는 그런 기둥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기둥에 감긴 네 발은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나 싶더니 하나씩 다시 풀렸다. 감길 때에도 물론 한꺼번에 감긴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할 것 차례 없이 이렇게 저렇게 감겼었다. 요란한 스트리퍼들이 등장하는 컬트 영화장면의 칙칙한 관능이 묶이는 막대와는 달랐다.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처럼 천연한 얼굴은 나이도 성별도 없었다. 그 짧은 머리모양에도 그는 열 살 소녀 같은 인상으로 고왔다. 기다란 두 팔은 덜 자란 소녀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부조화였다. 안개는 동양화처럼 피어오르고, <라이언의 딸>에 나오는 사라 마일즈처럼, 린치를 당하고서도 온갖 수치와 고통을 극복한 빛나는 얼굴이 되어 있는 그는 이젠 자긍심 강한 처녀였다. 남자들, 더러는 여자들이 섞이어 앉은 테이블 사이로 진출한 처녀는 조금 유혹적인 표정도 지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헐렁한 체크무늬 남방은 등산복처럼 뻣뻣해서 상체는 옷밖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렇게나 입은 짙은 색 바지도 그저 옷일 뿐이었다. 육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육신이 아닌 춤? 그것으로 타인들 사이에서 무엇을 유혹하는 것일까. 보통 남자 하나가 일어나서 박자를 맞추려고 시도했다. 동지애를 발휘하려는 인간적 남자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춤은 아니 되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누구라도 그 춤사위에 박자를 섞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도지방의 곰춤을 아니 설사 용두춤을 추었더라도 그 유일무이한 동작은 그의 것일 뿐이었다. 긴 팔과 막대 같은 다리의 엉성한 조화, 곡이 바뀌면 바뀐 대로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의 춤을 위한 것인 양 했다. 그 순간 음악이 멎었다.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그때서야 느꼈다. 그의 가슴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때서야 뚫렸다.


막 끝나서 여운을 남긴 가사 말이 그때서야 귓가에서 맴돈다.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춤꾼이 멈추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노래를 헛듣고 있었나 보다. 뭐였더라, 그래,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홀로 가슴 태우다 죽어간 가수를 두고, 그의 불행에 대한 뒷소문도 많았었지. 정식은 서른 두해를 채우지 못하고 가버린 그 작자 생각이 났다. 비슷한 또래였기에 그 죽음은 충격이 더했었다. 노래꾼이 “노래가 안 된다고” 갔다는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특별히 슬럼프도 아니었다던데? 정식은 갑자기 저 춤꾼의 무엇인가가 의심스러웠다. 저치는 키도 고만하고 몸매도 고만한 것이 꼭 죽은 가수만 했다. 실제로 가수를 보진 못했지만, “반토막”이라던가, 별명만 들어봐도 그럴싸했다. 춤사위가 바람에 날리는 풀 같고 나뭇가지 사이의 새 같은 사람이, 그래도 혹시 “춤이 안 된다고” 죽어버릴까? 누굴까, 무엇 하는 사람일까? 대체 뭘까? 진짜 춤꾼일까? 긴가민가하면서 정식은 혼자처럼 우물거렸다,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뭘 하는 사람일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또래 같구먼. 아닌데, 다른 누가 말했다.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하나가 그쪽으로 향했다. 연속 내지르는 그의 다그침 때문인가 싶었다. 놀랍다. 더 짙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분명 그 쪽에서 시작되었다. 안개 자욱한 속 잘 보이지 않는 거리였지만 분명 그의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삐죽 보였다. 왼손이었다. 테이블에는 사람들 사이로 세워진 맥주병들이 보였다. 그래 목도 마르겠지. 격렬한 춤은 아니라 해도 온 홀의 시선을 받으며 나중에는 손뼉에 맞추어 몇 곡이나 춤을 추었으니 목이 마를 것이다. 잔을 들었다 곧 놓는다. 정식은 대신 마시려는 듯이 무심코 맥주를 들이킨다. 미지근한 무맛이다. 진작 따라 놓고 넋 나간 듯 춤만 바라보았었나 보다. 저쪽이 친구의 어깨에 가려진다. 정작 입매는 보이지 않는데, 고개를 갸우뚱 끄덕 하는 모양새가 뭔가 말을 하고 있나 보다. 짙은 눈썹과 역시 짙은 눈매가 검정으로 검게 그렸을까 할 정도로 뚜렷했다. 이상하다, 나무토막 같은 얼굴에 화장을 했을 리가.


정식이 기억하는 아내의 처음 얼굴은 분홍빛 그 자체였다. 흔히 도화색 가진 여자를 팔자 사납다고  비하하지만, 첫인상에 도화색 뺨이 예쁜 것은 누구나 안다. 겨울이었지만, 병원이라는 온실에서 쉽지 않은 실습과정을 보내고 있었던 처녀에게서는 홍조가 기본이었을 것이다. 결혼 후 한 지붕 아래서 아내의 얼굴은 누런빛으로 변해갔다. 낮 동안의 화장을 지우는 경대에서 돌아 나오는 얼굴은 쌀뒤주에서 닳은 바가지 색이었다. 고운 가루가 묻어난 바가지를 어머니가 왼손바닥으로 곱게 모셔 닦아 주면 순간 반질반질한 얼굴을 내보였다. 그러면 다시 뒤주에 넣곤 하셨다. 탱탱한 황인종 얼굴이 크림의 여운으로 번득이면 흑인의 표정이 되어 나오는 것이 기이했다. 얼굴색이란 낮밤이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뱃속의 아기를 이기지 못해서 겨우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밤낮으로 누렇게 변해갔었다. 얼굴색이란 시절 따라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복사빛 볼을 하고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겠지....... 그런데 몸을 추스른 아내가 다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는 일은 쉬 오지 않았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학교 때 배운 <승무>에서 유일하게 외어 남은 구절. 허나 아내의 복사꽃 고운 뺨은 그 어디멘가.


정식의 아내는 바빴다. 바빠 버렸다. 아이를 들쳐 업고부터 뭔가 ‘벌어들이자’는 맞벌이 작전에 들어간 이래 아내는 시간이 모자랐다. 변하지 않은 것은 화장을 지우는 경대 앞 5분인데, 돌아선 얼굴엔 옛날의 번들거림이었다. 그밖에는 많은 것이 달랐다. 짙은 눈썹과 눈매는 크림으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바빠서 덜 지우는 것일까? 또한 번들거림은 같아도, 얼굴은 쌀뒤주 속 작은 바가지처럼 탱탱했었던 기색을 잃어갔다. 쪽박이 점점 빨간 호박석을 닮아 간 것과는 다르게, 얼굴은 해 넘긴 밤 껍질을 닮아갔다. 오뉴월 제사에 쓰려고 밤을 칠 때면 물기 말라버린 밤 껍질은 참 고약하다. 달라진 것은 그것 말고도 많아졌다. 분홍 립스틱은 기억에도 없는지, 으깨진 대추 빛을 선호했다. 아내로서는 분홍빛에 대한 정식의 설레임을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말이야, 도예 하는 분이라는구먼. 우리보다도 한참 위라네. 친구가 자리로 돌아와서 간략하게 보고했다. 그래 그렇겠어. 뭐야, 더 위라고? 도예라니, 도자기? 다도 뭐? 느닷없는 질문까지, 서로 다른 기대치 때문에 조용히 듣는 대신 웅성거렸다. 이 지방 사람이 아니고, 태백산 너머에서 이쪽으로 여행 중이라는데. 그럼 춤은? 전문 춤꾼이 아니라고?


춤꾼이 아니라는 말에 서운한 건 누구보다도 정식이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첫 구절이 갑자기 떠올라 그렇게 내뱉고 보니, 저 짧은 머리는 고깔에 딱 이었다. 그럼 파계승? 그 소리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절제된 승무를 전문적으로 추는 춤꾼일까 상상했는데....... 정식의 말에 다들 끄르르 웃었다. 이 보게 너, 요새도 헛꿈이냐? 너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 그 왜, 시인선생님이 신용 좀 준 것 가지고 한 때 시 쓴다고 매달린 것은 알지만. 뭐 짧은 머리 보면 당장 <승무>가 입에서 튀어나오니, 그런 거야? - 아니 그건. 저 사람 춤이 좀 곱고도 서럽지 않았냐, 빛나는 듯 서글픈 저 얼굴. - 사람 참, 저게 무슨 빛나고 서럽고야, 그냥 무표정이구만. 자자, 우리 사람 저만치 놔두고 그만들 하자. - 춤꾼이 아닌 건 확실한데, 공방인지 작업실인지 아무튼 맘 맞은 사람들 모이면 춤도 추고 그런다 하드만. - 그럼 그렇지, 예사 솜씬 아니지. - 혼자 사는 남잘까? 남자들이랑 어울릴까? - 아니 이사람, 혼잔가 아닌가는 아직 못 물어 보았고, 남자라니, 여자야 여자. 한참 누님뻘이라니까. 저기 여자들 일행 셋이 안보이나?


다를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춤꾼이 남자가 아니었어? 멀쩡한 중년 남자들의 눈으로 춤추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남자일거라고 느꼈다니. 그것도 춤을 감탄하면서 동작마다를 따라 보아놓고서. 다음엔 서로 비식거렸다. 남자가 남자보는 눈 있다더니만, 남자라서 여자를 잘 못 보았나? 갑자기 홀 안의 안개도 걷히고 테이블들이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었다. 건너 좌석들을 흘끔거리는 짓은 계속하기 무안해졌다. 다른 화제가 급했다.


나사의 한 연구원 주장이, 이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강진으로 지구가 작아졌다데, 자전 주기도 미세하지만 영구적으로 짧아졌다 하고. 정식은 신문기사를 떠올려 화제를 바꿨다. 그래, 구들장 하나가 다른 구들장 아래로 끼워졌대나 뭐라나.


우연히 이과 출신이 하나 끼었다. 일행은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 그건 그저 계산상의 이론이지, 실제 측정결과가 나오기는 시일이 걸리고 또 그것을 증명하기엔....... 아니 그보다는 이번 방학엔 혜성 구경 가자는 딸아이 때문에 그냥 못 넘어갈 것 같아. 그는 말을 바꾸었다. 맥홀츠혜성인가 그놈은 쌍안경으로도 바로 볼 수 있을 만큼이라니, 1월 내내 이삼일짜리 캠프를 여는 곳도 있다네. 아버지들이 이삼일 나가기가 쉬운가. 서울 근교들일 텐데 지방 사람들은 더 힘들지. 아이들만 보내는 곳 알아보았는데, 데려다주기라도 하려고 목금토, 토일월 반을 인터넷에서 찾자마자 마감되었더라. 이 아버지 통도 크시네, 애들만 어찌 보네. 한국서 애들 살기 무서운 것 모르시나. 아니 그럼 사는 것이 다 그렇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화제는 이리 저리 흐르고, 정식은 고개는 일행 속에서 정중심을 향한 채 오른 어깨 너머 비스듬히 춤꾼의 테이블을 흘끔거렸다. 앞머리를 갸우뚱 내리고서 시선의 방향을 숨겼다. 다시 태워 문 담배가 반짝 불빛을 보였다. 그 ‘여자’가 빠끔거리는 것이리라. 벽에 걸린 “오늘 하루만 금연합시다!”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글씨는 색색으로 분명한 만큼 무안했다. 한글도 못 읽나? 타지사람이라고 안면몰수인가? 다시 아래쪽 시선을 이용해서 바라보니 길게 뻗은 다리가 앙상하다. 상박 하박이 그저 나무젓가락이었던 팔이나 막대 같은 다리나. 우리보다 위라고? 여자도 나이가 들면 성을 초월하나? 어느 나이가 되면 그러나? 하긴 옛날의 어머니들은 그렇다. 아니 그 반대다. 어머니들은 젊어서도 나이 들어서도 한결같은 어머니다, 여성이다. 더 할 수 없이 푸근한, 마르고 작은 체구에도 장작개비 같지 않고 부드러운. 늘상 같은 어머니. 헌데 소녀와 처녀와 심지어 아저씨를 다 아우르는 저 사람은 대체 뭔가. 절대로 어머니는 아닌, 그래도 여자?


그 여자에게서 어머니를 볼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자라 했으면. 밤톨처럼 단단한 아내에게서도 어머니는 있다. 어머니가 전부다. 아내는 송이를 위해 산다. 송이의 행복을 위해 산다. 송이의 성공을 위해 산다. 아내는 어머니로서 산다. 저 여자는 무엇으로서 살까.


정식은 이시자키 어쩌고 하는 일본인이 내놓은 독특한 서적명이 떠올랐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검색하다가 튕겨져 나온 특이한 책이라서 제목만 목차만 대강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가히 성의 세기였다고 할 20세기 말에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 비슷한 책이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똑똑한 여자? 색에 빠져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아예 성의 특징을 무시한다? 하긴 섹스가 남자와 여자를,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최고의 요소는 아니라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송년의 밤을 남자들끼리 모여 앉은 그들도 하나의 예다. 그때 그 책제목을 보면서 잘 팔릴까도 의아했었다.


그 뭐더라,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런 책 있더구먼. 또 다시 정식의 돌연한 말에 이야기는 새로 어수선해졌다. 스스로 똑똑함을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면 만족할 책일까? 뭐 그런 책이 다 있어? 남자들 다 죽겠네. 아니지, 여성들이라 해도 똑똑하면 섹시하지 않다고 들려서 화내지 않을까? 정식은 바로 옆 테이블의 남녀 팀이 들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떤 여자가 학문적 관심을 가지면 보통 그녀의 성적인 면은 뭔가 정상이 아니다고 했다던가, 그것으로 니체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는지 아나 이사람. 대학친구의 말에 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가슴이 크면 머리가 나쁘다, 그 속설이 맞다는 거여 뭐여? 답을 손에 쥐어야만 하는 친구 하나는 갑자기 정색이었다. 내 말은 저 여자, 아니 저 여자 분은 삐쩍 마른 나무토막 같으니까 머리가 좋고 예술가이고 춤도 잘 춘다 그거야 뭐야. 아니 춤추는 것 하고 머리 좋은 것하고 무슨 상관? 야 이부장 목소리 좀 낮춰. 시작은 해놓고 말리는 형국이 된 정식은 도리어 좀이 쑤셨다. 흔한 삼차에 예까지 들른 것인데, 술이 좀 들어갔기로서니 말들이 거칠어진다 싶어 걱정이었다. 엉뚱한 화두를 내놓은 것이 자신이고 보니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허탈한 밤이었다.


하기는, 밤은 대개는 허탈하다. 남보다 이른 결혼으로 딸이 봄이면 벌써 고등학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디만큼 흘러가버린 세월이 아득하다. 아내는 궁리도 많고 튼실해서 남편에게 의존하는 체질이 아니다. 세상을 따라 살며 크게 불평도 없다. 바가지를 앞세우는 형도 아니다. 그런데 왜 밤은 허탈한가.


아이들 알콩달콩 속에서 - 아까 누가 그랬나? 그것이다. 집에 아이들이 없어서일까? 달랑 혼자 크는 송이가 어릴 적은 괜찮았다 싶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뭔가를 열심히 시키는 엄마를 피해서 아빠한테 응석부리느라 깔깔대곤 했다. 요즈음엔 중학생이면 표정이 어른으로 바뀌고 마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에 시달려서일까? 송이 뿐 아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더 큰 처녀인지, 길가는 여자아이들이 구별이 안 될 때가 많다. 아내도 할 일이 많다. 집안 일 틈 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낮엔 사업차, 늦은 저녁에도 컴퓨터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신년을 맞는 그의 계획 속에 근년 들어서 꼭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아내와 대화하기>, <송이와 대화하기>, <가족여행>, 그런 것 들이다. 몇 년 째 잘 안되는 재탕이다.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가정이 왜 문제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기실 아무 문제도 없다. 일감이 줄고  당연히 수입이 기울지만, 다른 건설업자들 사정에 비하면 현상유지는 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밥벌이 되면서 고민하는 놈 사치라 하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겨우 땅 파먹는 두더지 신세인 것이 대순가. 제 식구 잠 잘 지붕 있고 밥 먹고 살면 그만인가. 이 친구들 마음들도 허탈한 구석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순간 파렴치한이 되어 공든 탑을 떠나야했던 동료교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던 친구의 넋두리가 공감이 갔다. 고향을 돌아다보면, 아니 거기까지 아니어도, 힘든 사촌에 재종, 종매........ 아니다.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은 내민 손조차 잡아줄 수 없었던 무능 때문이렷다. 형제고 친구고 빚보증은 안 된다. 단출한 가정의 살아남기 작전은 이렇게 야속함에서 출발한다. 반석위에 집짓기. 문제의 씨앗은 싹부터 뽑아버리기. 그래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도태된다. 어쩌다 TV화면에서 걸리는 동물의 세계가 어른거린다. 영양이건 코뿔소건 무리에서 처지는 놈이 천적의 먹이가 된다. 무리는 생의 법칙,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한다. 인간이라는 동물 또한 그러하다. 송년의 밤을 보내며 일년간 다 못한 일들을 쬐끔 후회할지 모르지만, 날이 새면 다 잊고 희망을 운운하며 새해를 맞는다. 닭띠 해가 밝을 것이다. 고향의 수탉은 여전히 아침을 깨우리라.


정식은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소리를 쳤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 옹기종기 둘러앉아 꽁당보리밥 / 꿀보다도 더 맛좋은 꽁당보리밥~~


저쪽에서 여자가, 그 춤꾼이 맞일어났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정식이 질세라 얼른 받았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애 - 애


와글와글 박수가 터졌다. 악사들이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벌써 무엇인가를 마친 것인가? 아니 ‘꼬꼬댁 꼬꼬 먼동’은 무엇이었나? 내가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었어? 내가 노래를 불렀어? 알 수 없는 상황에 정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앉아 있는 모양새가 좀 전과 다를 바 없었고, 들었던 잔이 왼손에 그냥 있었다. 이상하다. 아니 지금 내가 어찌 된 것일까? 예서 가수들이 때 넘어간 캐럴도 아닌 동요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럼 내가 노래를 했단 말인가? 틈이 없었다. 음악은 서글프면서도 중후한 “그곳이 꿈엔들 잊힐 리이야”로 넘어가 있었다. 정식은 두 손을 펴서 머리에 얹었다, 언젠가처럼 왼쪽 뚜껑만 뜨겁게 달아오르고 오른 쪽은 냉랭한 상태를 느껴서였다. 정말 그랬다. 구들장이 따뜻해졌나. 만져 보듯이 오른쪽 왼쪽을 만져보다가 겁이 났었다. 신경과 전문의는 내로라하는 평판이었는데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검사 결과는 뭐 괜찮습니다. 죽을 병 아니고요. 통풍을 좀 해야 됩니다. 무슨 못하고 살 말 있어요? 여기 와서라도 뭔가 해버리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친구나 직장동료 뭐라 아내 흉을 본다거나 뭐 그런 것. 속내 단속 못해서 발광난 사람 취급하는 데는 오히려 기가 죽었다. 첫 마디에 알 수 없이 눈물이 돌았던 것이 좀 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반쪽만 뜨거운 머리 뚜껑이 겁나서 몇 번 더 찾아 갔다. 아내 흉보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 말 해 봐요,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삐딱이 하고 앉아 있는 의사 앞에서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 더러 있나요? 그렇게 묻고 싶은 충동을 참는 방법은 그만 가는 것이었다. 생각한 말과 말한 것 구별이 혼란스러울 때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한 행동과 행동을 했는지 구분이 안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정작 의사를 보았으면 묻고 싶었던 말들도 다 담고 돌아섰다. 흉보러 오는 대신 막춤을 추러 오라 했으면 계속 갔었을까? 혼자서 추는 춤, 춤을. 


한쪽이 조금 수선스러워 눈을 드니 바로 춤꾼 일행이 일어서고 있었고 친구가 따라 나가고 있었다. 노래 도중이었다. 이상하다. 노래 도중에 일어설 무례한 같지는 않았는데. 문간의 망설임이 한참 걸렸고 친구는 으쓱으쓱 돌아와 앉았다. 명함은 없고, 주인장 하나 줬다는데 나중에 보지 뭐. 내일은 또 더 남쪽으로 갈 거라네, 영 독특했는데 참.


하긴 노총각이야 관심 가져도 되겠지만, 저쪽은 뭐 싱글 이래? 아무래도 도저히 유부녀 같진 않던걸. 우리 모두 첨엔 남자라고 생각했잖아? 하긴 거 누구의 견해대로라면 머리 좋은 여자겠네? 뭐 우리 생각이 다는 아니겠지만. 아니 저쪽이 훨씬 위 같더라며? 앞서가기 잘하는 친구가 나서 떠드는 동안 왠지 다른 사람들은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연주가 끝난 다음 정식네도 다같이 일어섰다. 한 친구는 정말 주인에게서 명함을 받아서 읽어보느라 입구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렸다. 노총각에게 정보라도 주겠다는 몸짓이었다. 정식은 일부러 관심을 끊었다. 춤이 다 뭐라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을, 또 그게 무슨 춤이라고. 춤꾼 생전 안 보았나.


한 시가 넘어 귀가할 때면 아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늘은’ 귀가해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지만, 근년 들어서 더 늦는 남편을 교육하려는 일은 포기한 것 같았다. 그나마 공존의 미덕이다. 초저녁에 집에 있어 둘이서 할 일이 무엇인가. 관심사가 교집합처럼 작은 것을 무시하고 합집합의 크기로 보는 것이 신혼이다. 어긋난 각도는 미미하게 보이는 것이 신혼이다. 어느 날인가는 교집합이 커지는 일보다 어긋난 작은 각도가 벌어지는 일이 꾸준해짐을 알게 된다. 교집합은 불려야 자라는 것이라서 가만있으면 그대로지만, 어긋난 각도는 가만있어도 그냥 벌어진 땅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늘상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하고 싶어 하는 정식과, 하고 싶은 것 다하려는 사람을 일반화하여 얕잡아 보는 아내는 참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아니, 다른 별을 바라고 살아버린 결과일까?


샤워꼭지의 물소리가 미안하다. 아래 집도 미안하고, 가까이 아내도 미안하다. 스킨로션이 욕실에 없는 것이, 아침에 또 들고 나갔나 보다. 욕실에 있어야 할 것이 안방 어딘가에 있는 것을 아내는 싫어한다. 그 반대도 당연히 싫어한다. 무엇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아내가 정하기 때문에 정식으로서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실에서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하나 손에 따르니 향기가 짙게 올라오며 끈적거린다. 하는 수 없이 손에다만 비비고 만다. 깜깜한 방을 거쳐서 거실로 나온다. 커튼 틈새로 비쳐오는 빛, 달빛인가 하지만 하현달인데 이리 밝을 리도 없고, 바깥 방범등인 것을 벌써 알고 있다. 희미하게 비치는 실루엣을 따라 소파에 주저앉는다. 순간 다시 일어난다. 커튼을 조금 젖히자 곧 냉기와 함께 어스름 빛이 따라 들어온다.


달밤에 체조라더니, 어깨를 들먹거려 본다. 팔을 내뻗는다. 무슨 곡조를 떠올려야 하는가? 하나 두울 하나 두울. 아니다. 한 둘 셋 한 둘 셋. 그건 더더욱 아니다. 자다가 봉창 뚫는다? 뚫으려면 뚫으라지. 검게 반사하는 TV 화면을 맞대하고서 자신의 몸을 비춘다. 어깨 팔꿈치 팔목을 차례로 꺾어 본다. 꺾었다 편다. 왼쪽도 똑같이 해보려고 뒤튼다. 춤은 전염성인가. 흥이 없더라도 일단 곡조에 맞춰서 팔다리와 온몸을 움직이면 춤이지. 율동적으로? 그건 알 바 없다. 춤꾼이 따로 있나? 좀 전의 춤꾼 아닌 춤꾼이 생각난다. 안개처럼 피어올랐던 아까의 연기 냄새가 코끝에 남아있다. 영락없이 내 마신 고양이 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니다, 활짝 웃자. 웃어야 한다. 신경과 전문의가 변죽으로 말한 것이 이런 것 아니겠냐. 통풍이다, 통풍. 더구나 희망의 새해가 아니냐.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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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