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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21
소설-시2020. 6. 21. 00:28

 

숨이 막힌다, 잠결에 전화기를 집으려다 숨이 멎는다.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다시 조용하다. 누구였을까. 손이 떨리는 만큼 가슴은 쿵쾅거리는데 정작 입이 열리지 않고 숨이 입술에 걸려있다. 왜 전화기를 집어 들었을까. 꿈결이었을까. 무슨 소식을 기대하는가. 기다릴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 일 없이 이 어둑새벽에 전화할 리가 없다. 시간대가 다른 도희였나. 어머니가 시간에 좀 어눌해지셨다지만, 설마. 다시 울리지는 않는다. 불길한 생각을 미리 꾸어다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숨을 다시 크게 들이킨다. 크게 내쉬어 본다. 숨은 코로 쉬어야 건강하다고 했지만 사실일까, 결정적인 숨은 입으로 쉰다. 음파, 음파 하면서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숨법을 익혀야 수영을 배우는데,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들숨보다는 날숨이 더 어려웠다. 평상시에도 가만있으면 들숨이 되지만, 날숨은 힘을 들여야 공기가 빠져나온다. 물속에서 날숨은 물의 힘을 거슬러 내뱉어야하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입을 여는 순간 물이 들어와 버렸다.

 

 

입을 여는 순간 -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 입술을 열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입술을 열고 싶었다. 열렸나. 어스름이었지만 교정이었고, 교정은 열린 공간이었다. 직박구리가 울어대는 은목서 아래, 그는, 선배는 나를 안았다. 선 채로였다.

아니, 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 라고 말하기도 전에. 입술이 포개어지는 상상은 아직 빨랐다. 내가 느렸나.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목소리에 귀가 울고 있었고, 그 팔 안에서 떨리기만 했다. 고개를 살짝 쳐들게 된 것은 나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정지되었다.

달콤했었나, 여러 표현들처럼 또는 상상처럼. 아니, 모르겠다.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 말은 거짓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면서 기억이 없다니.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말이 옳다. 일 초, 이 초…… 시간에 관해서도 말할 수 없다.

나랑 결혼해, 괜찮겠지? 그렇게 가까운 소리를 흘려들으면서 나는 나무 위 새 소리를 듣고 있었다. 괜찮겠지? 너 나랑 결혼하자고! 난 정말 못 들었다. 나무 아래 함께 서 있었던 선배의 목소리는 못 들었다. 하늘을 향해 내지르던 새 소리만을 기억한다. 나뭇가지 꼭대기, 먼 데 새소리만 시끄러웠다. 입은 얼어붙어 있었다. 숨도 얼었다.

우리는 헤어졌고, 내가 도망쳤고 숨었다. 마음은 그 자리에 못 밖아 두고 숨었다. 한 치도 따라 오지 못하는 마음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 바위가 되었다. 되는대로 얌전을 떨며 교실 주변만 오갔다. 가까운 친구들도 잠깐 의아한 눈초리로 보다가 말았다. 다들 무엇엔가 바쁘고 충만했다. 미래를 꿈꾸면서 부산한 친구들에 비해, 또는 갑자기 물벼락 같은 배신감에 아파 우는 친구에 비하면, 나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잘 지내야 했다. 참 어려운, 무서운 시절이었지만, 비겁하게 눈 반쯤 감고 코앞 50, 60cm만 보고 다니며 졸업을 했다. 이 아니 평정심인가.

결혼도 했다. 신혼여행도 다녀왔고, 신혼살림을 차렸다. 부엌에 가면 어려운 것이 많았지만 차츰 극복했다. 무엇보다 물고기의 눈알들이 무서웠었다. 아냐, 이건 물고기가 아니고 생선이야. 밥상을 위해 태어난 것들. 생선의 배를 가르고 내장 손질도 하고 이등분 삼등분해서 끓였다. 끓이고 나면 반찬이 될 터였다. 채를 썰면 몽둥이가 나왔고, 미나리 다발에서 깜짝 놀랄 뭉클한 어떤 생물을 떼어내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너무 데쳐서 누런 죽이 되어 나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대로 연속극이었다. 세상에 어려운 소금과의 숨바꼭질은 여태도 어렵다. 하지만 다들 말하는 것처럼 보금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다 잘 될 것이었다. 다들 하고 사는 평범한 생을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결혼 1년차였다. 봄이었고, 만물은 초록으로 소생하고 있었다. 알맞게 익은 토마토가 갑자기 메스꺼웠다. 그러고 보니 뭔가 신호가 있은 듯 했다. 달력의 숫자를 보면서 미소와 불안이 한데 밀려왔다. 어라? 그렇게 어색한 며칠이 지났다. 설마, 제2막의 인생이 시작되려나.

른쪽 아랫배에서 둔탁한 통증을 느꼈다. 맹장은 아닐 터. 내게는 맹장이 일찍이 치워지고 없었으니까. 그때는 어리기도 했었지만 무서움이 더 컸던지,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아파서야 엄마에게 말했다. 바로 큰 병원 응급실로 업혀갔고, 그리고는 맹장을 떼어냈다 했다. 물, 물 물……. 며칠 계속되었던 사막의 체험은 지금도 아스라이 남아있다. 그때의 통증에 비하면 이번엔 참을만한 동통이었다. 게다가 임신이라는 경험은 처음이다 보니, 그게 혹시 이렇게 불편한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있었다. 순간 출혈이 있었다. 피는 붉다, 그런데 붉은 선홍색이 아니었다. 불길함과 무서움을 불러일으키는 거무스레한 피였다. 망설이다가 급한 대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어쩌죠, 보호자랑 얼른 다시 오세요! 그것이 그것이었다.

자궁외임신이라고? 자궁 바깥에 무슨 임신? 자궁강 내 임신의 경우에도 유산이 가능했겠지만, 자궁외임신이란 아주 묘한 상황이었다. 앉을 자리를 잃은 아이. 직장과 자궁 사이에 존재하는 복강의 일부분인 막힌 주머니에 비응혈성 혈액이 고였단다. 그러니 100% 자궁외임신, 그리고 난관 파열이랬다.

남이 씨만 괜찮으면 일 없어요. 우린 아직 신혼이고.

…….

고 녀석이 어쩌다 난관에 앉아버렸네 그만, 성미 급하게 시리.

…….

하지만 난관은 둘이니까, 난소도 다 괜찮고. 걱정 말아요, 일단 푹 쉬고.

…….

미처 울 수도 없이 숨 가쁘게 지나간 날들이었다. 어려서 했던 맹장 수술의 상처를 상상해 보았다. 뱃속 어딘가에 울툭불툭한 흔적이 있어 아이의 순항을 가로막았을까, 설마. 아무튼 아기가, 아기가 될 어떤 것이 제 자리를 찾아 내려가다가 무슨 턱 같은 데에 걸렸단다. 어느 순간 더는 자랄 수 없어 온통 파열하고 말았단다. 활화산처럼 분출했을까. 아팠을까. 아직 통감은 자라지 않았을 것이야.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미가 내어준 자리가, 착상의 자리가 불안정했다니, 더는 자랄 수 없는 자리였다니. 그러고도 어미일까. 잘 못 내어준 자리에 멋모르고 앉은 태아는 세상을 보지 못했다.

내게 잉태되어 자라던 생명체가 제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떠났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어려운 악몽이었다. 울었다. 미안해서 울고 무서워서 울었다. 무조건 한없이 미안했다. 열린 창 너머로 병원 밖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한 봄 공기가 들어오는 대신 시끄러운 새소리만 건너 들어와서는 천장까지 흩뜨려 놓았다. 병실 안이 확성기를 틀어놓은 듯이 시끄러웠다. 무어라고 힐난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누군가에게서라도 질책을 듣고 싶은 심정이라서 그리 들렸을 것이다.

 

나 나름대로는 누구의 아내가 되려고 노력했었다. 꽤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남자, 정확하게는 울 오빠 친구인 환희 오빠가 남편이 되었다. 괜찮았다. 따뜻한 손에 따뜻한 마음을 다 가진 좋은 남자였다. 좋은 남자다. 내 멍청한 짓거리도 다 알고 있었다. 아무 소리나 듣고 아무 소리도 못 듣는, 병도 아닌 병을 가진 나를 꺼려하지 않았다. 꺼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나를 위해서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되었다. 오랫동안 똑같은 거리로 떨어져 있었다가 결혼으로 한 발짝 다가온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의 아내 노릇,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소한 한두 가지를 빼면.

사소한 한두 가지는, 이 말을 해도 되려나, 잠자리에 동시에 가는 것을 피하는 것 등이다. 함께 자리에 들고 함께 깨어나는 환상적인 잠자리는 모든 부부에게서도 어려울 것이다. 좋은 사람인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인 것이, 신혼의 첫 밤을 혼자 잠들게 배려해준 일로 증명된다. 평생 고마워한다. 처음으로 한 낯선 방 네모 공간에 내팽겨진 남녀, 그 상황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신부를 먼저 자리에 들어 쉬라고 배려해준 사람이었다. 그 처음 상황이 어색해서 오래도록 잠이 들진 않았지만, 하릴없이 혼자 앉아있던 실루엣을 실눈으로 바라보면서, 좋은 아내가 되어야지, 그렇게 마음먹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

그리고 포유동물인 우리 사이에도 도파민 작용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어났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잠자리라고 하는 일도 점차로 자연스러워졌다. 여자인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다. 수동적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남자들은 그 점에서 고민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예컨대, 입술은 포함인가, 아닌가, 포함이면 어느 순서에 어느 만큼이 가장 어울리는가. 그런 것들은 어떻게 시도해야하는지, 태어나서부터 알았을 리는 없고, 어디에서 어떻게 배워서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

입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로선 그 부분이 문제였다. 잘 호응하고자 하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게 잘못을 했다. 무심코 고개를 너무 강하게 돌려버렸다. 거의 반사작용이었다. 더 내밀한 부위들, 예컨대 늘 옷으로 가려지는 부위들, 항상 노출되어 있는 입술에 비해서 더 부끄러운 부위들도 결국 내려놓았다. 내려놓았다는 표현이 좀 그런가, 아무튼 감정을 실어서 호응하려했고 아마 감정이 실렸다. 그러다가도 남편의 입술이 얼굴 쪽으로 향하면 긴장감이 치밀었고, 목도 귀도…… 그러나 입술만은. 입술과 입술이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입술은 나만의 것이다. 두 번째로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무엇이다.

머피의 법칙은 어김없이 이어졌다. 또 다른 봄이 왔고, 이번엔 왼쪽으로 통증이 왔다. 공평함이란 이런 때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되지 못했다. 오른쪽 왼쪽의 균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절름발이가 되어도 좋았으니, 왼쪽만큼은 튼튼해야 했다. 하지만 왼쪽 길로 등장하던 두 번째 태아도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우리를 떠났다. 다들 하고 사는 평범한 생을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생기고 말았다. 정성이 부족했었나. 아이를 잉태하는 순간의 정성이, 사랑이 그리 부족했었다고 자책할밖에 없었다.

 

 

메아 꿀빠.

온 몸으로 온 맘으로 잉태를 향해 두 팔을 벌리지 않은 죄였습니다. 맘은 보이지 않는다 치고, 온 몸을 통째로 다 내어주면서 새 생명을 받았어야 합니다. 입술만은 제발…… 그렇게 몸을 사리고서 너를, 너희를 잉태하고자 했다니. 나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두 아이는 신실하지 못한 엄마에게서 잉태되어 온전한 생으로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길도 없는 깜깜한 벽에 눌려 온몸이 부스러져 터져 나올 땐 얼마나 아팠을까요? 물어볼 새도 없었습니다. 젖이 나오는 부드러운 주머니를 만지작거려보지도 못했고, 오옹, 으엉, 옹알이도 한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음마, 엄마, 라는 단어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시소에 슬쩍 엉덩방아를 찧어보지도 못했고, 그네에서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도 몰랐습니다. 아, 숨이 막힙니다. 이런 몹쓸 어미라니요.

남편은 평정심을 유지해 보였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만 하루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깊은 침묵의 색깔과 침묵의 소리와 침묵의 움직임들을.

정지된 어둠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이는 놀랍도록 빨리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이렇게 자발적으로 여피족 합시다!

…….

여피, 둘 다 고등교육을 받고 도시나 도시 근교에 거주하며,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그 나름대로 고소득을 올리는 젊은 부부라면 여피라 한다지만, 우린 그건 아니었습니다. 우선 내가 전문직은커녕 아무런 직업도 없었으니까요. 전업주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녀를 기르지 못하는 전업주부란 대체 뭐란 말인가요.

딩크, 더블인컴노키즈! 나중에 딩크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때도 소용없었습니다. 반쯤 겨우 살아가는 여자를 분류하는 이름이, 특정 명사가 없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누구 엄마도 아닌 것이, 직업도 없었으니까요.

아파트 뜰에서 유모차에 앉은 아이, 우유병을 빨고 있는 아이를 봅니다. 젖을 먹이는 상상을 해봅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애틋한 액체, 눈물 콧물 더러운 액체가 아닌 생명의 액체. 젖을 먹이는 어머니, 아아. 위층에서 아이들의 사근사근 발자국 소리가 나면 눈은 감기고 귀가 쫑긋,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죠. 싫어 싫어 - 내 꺼야 - 엄마아 형아가 - 요오놈들이…….

위층 여자, 아이엄마는 상냥합니다. 만나면 미소 짓고, 죄송해요, 애들 땜시…… 귀여운 사투리를 흘립니다. 애들이랑 함께일 때는 애들한테 인사도 시킵니다. 인사해, 아랫집 이모셔. 이모 아냐! 똘똘한 녀석이 말합니다. 응, 아랫집 아줌마! 안넝하세요이! 에이, 예쁘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오! 통탕거리며 앞서 가면서 큰 소리로 인사합니다. 곧 쿵쾅거리겠지, 곧 목소리가 변하겠지. 그러니까 다 옛날 일입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되어 꼬맹이들을 데리고 나다니는 시간입니다. 길에서 이웃 엄마 아이들을 만나면, 할머니야, 인사해! 그런 인사를 받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을 해보려 했을지, 어떻게 그 수많은 날들을 살아왔는지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살기.

10년 전쯤이었죠. 은혼식을 기념하자고, 다시 제주엘 가보자고 하더군요. 부끄러웠습니다. 우선 신혼여행 때의 미안했던 기억을 불러내고 싶지도 않았지만, 결혼 스무 다섯 해 동안 무슨 기여를 했다고 은혼식 선물을 받는답니까. 후손을 낳은 것도 재산을 불린 것도 아닌 아내란 - 심각한 정체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무엇인가를 하자. 돌이켜보니 적극적으로 뭣 하나 도전하거나 그런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왜 못했을까요. 미리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다못해 운전면허시험에도 두 번 떨어지자 더는 시도할 맘이 없어졌고, 그래서 운전도 못합니다. 코스 중에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대목에서 똑같이 또 떨어졌으니 말입니다.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 왜 특별히 어려울까요. 처음 출발 때처럼 하면 될 일이다, 마음을 먹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순간 멈추었다가 다음 순간 곧 다시 출발한다는 작동이 아니 되는 것을 어떡합니까. 그때 카세트 라디오처럼 이것 누르다 저것 누르다 하면서 채널 바뀌는 것이 불편했더라도, 시험에 나가서는 불편 따윌랑 잊었어야 하는데요.

그래, 뭔가 자격증에라도 도전하자. 미선의 정보 덕택에 놀라울 경험을 하긴 했습니다. 한국어교사양성과정 - 한국어교사란 국어교사만큼 탁월한 실력을 갖추지 못해도 괜찮겠다는 어설픈 안심도 살짝 있어서 덜컥 등록을 했습니다. 여름방학 낮 시간 동안의 교육이었기 때문에 굳이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어쨌거나 다시 캠퍼스에 간 것입니다. 새삼 국어를 공부하면서 놀란 일, 그렇게나 잘 못 쓰는 단어들이 많았다니요. 습관적으로 열쇠 자물쇠를 열쇄 자물쇄로 쓰는 버릇 등, 그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오류들이라니, 누가 한글을 쉽다고 했나요? 아무튼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에 외래어 표기법까지 A4 반쪽으로 출력해서 묶어가지고 다니면서 외울 때의 경험은 특별했답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30시간뿐이니, 일반언어학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론을 합쳐서 거의 60시간에 가까운 것과 비교하면 너무 적었습니다. 또 교수법이란 참 어려운 것이, 예컨대 비계 - 그것은 건축에서 쓰는 용어인줄 알았더니만 교수법에서 등장하면 전혀 엉뚱한 느낌이었어요. 아무튼 장 의존(Field Dependence)적 인간과 장 독립(Field Independence)적 인간이 있다는 것, 유형에 따라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배웠으니까요. 뭔가 유식해지는 느낌도 있었는데, 난 그럼 어떤 유형이냐고요? 그것 하나는 독립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하지도 못하면서 길을 찾아야할 때 간판보다는 방향을 고집하는 것이 그런 예라더군요. 세상 간판을 어찌 다 아느냐, 동서남북으로 느끼는 것이 편하다, 늘 그랬었는데.

그건 그렇고, 결과적으로 교육이론에 매우 약했던 내 시험결과는 뻔했습니다. 거의 6:1이라던 그해 응시율로 보아 합격할 확률은 없었던 거죠. 비싼 수강료에 더해서 수험료까지 함께 날린 것입니다. 양성과정 동기들은, 나이는 정말 천차만별이더군요, 한 번 더 응시 기회가 있다고 했지만,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지요. 국어교사자격증을 가지고도 임용고시에 매번 안돼서 한국어교사 쪽으로 왔다는 젊은이도 함께 떨어졌으니까요.

속상해 하지 마. 다들 떨어지고 그러는데 뭐. 네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래.

그럼, 젊은 애들이나 붙지. 못 붙어도 수료증으로 취업이 된다면서.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어 인기 짱이래.

내가 무슨 외국에를 간다고…….

이런 불발도 친구들은 잘 달래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누구 엄마고, 미선인 싱글이지만, 해서 누구 엄마는 아니지만 선생님입니다. 박미선 샘!

 

그러고는 다른 시험에 도전은 안 했다니까요. 무엇엔들 엄두가 나질 않아서지요. 낮 동안에는, 아니 거의 쉬고 있는 컴퓨터를 열면 무궁무진, 거의 블랙홀이더군요. 장욱진의 가로수 그림을 컴 화면에서 보고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이 있었지요. 예술성? 그런 건 아예 모르지요. 집들을 수관 꼭대기에 이고 서있는 나무들이라니요, 네 그루의 나무들. 그림은 말이구나, 그리는 사람이 소통하는. 그래, 민화를 해볼까? 민화라고 접근이 쉬울까? 주위엔 민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연필 스케치를 다녀보았죠. 선부터 어려운 것이, 손이 바들바들 떨려요, 딱히 죄 지은 것도 없이 말입니다. 아무튼 준비물이 많은 것도 싫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도 싫고, 이것저것을 피하다보니 나다닐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는 겁니다. 이런저런 취미도 없으니 맹물 인생입니다. 취미가 아닌, 어떤 보람을 찾아서 생산적인 일을 해 본 경험은 아예 없었지요.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까요. 일 년 삼백예순날, 십년, 이십년…….

 

 

그날도 그저 그렇게 모여 앉아 커피를 차를 홀짝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는 것 허무하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왜 내가 신소리를 했을까요.

나는 뭐 별다르게 산 줄 알아? 너 보담 좀 나았나? 싸돌아다니기라도 했으니까.

그러던 정인이 갑자기 시무룩해집니다. 동글한 얼굴로 동글게 웃고 동글게 말하는 그 애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니까 나도 따라 시무룩해집니다.

왜 그래, 정인아. 안 어울리게 왜 그래!

어울리는 게 어딨어! 나 우울하고 싶어, 폼 잡고 우울하고 싶다고!

왜 그래, 왜 그래. 다들 눈이 커집니다. 휘둥그레집니다. 설마 얘네도 무슨 문제가? 다들 놀라서 눈에만 힘이 들어갑니다.

아들이 없잖냐. 요즘 들어 우리 그인 은근히……. 아냐, 나 좀 봐.

아들은커녕 딸도 없는 내가 눈에 들어오는지 정인이 순간 멈칫 합니다. 곧 표정을 바꾸더니 득달같이 내뱉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좀 나와! 나오라고! 어디서 허무를 읊어대느냐고! 쏘셜 싫으면 라인댄스는 어때? 누구 붙잡고 그런 것 없어요, 이 결벽증 아줌마야!

정인인 회복이 빠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좋아 하는가 봅니다.

힘들다는 말도 하지 마! 그래 누가 너더러 히말라야를 오르재냐, 산티아고를 걷재냐. 그냥 좀 나와.

아, 히말라야!

히말라야라는 단어에 꿰인 성주가 한탄스럽게 말합니다. 히말라야를 가보고 죽을 수 있을까…….

여기서 웬 히말라야! 너무 멀리들 간다. 미선이 궤도를 다잡습니다.

그래, 갑자기 웬 걱정들이야. 나 너희랑 가끔 만나잖아. 봄나들이도 꼭 하고. 벌써 몇 년째인데 우리도 참 대단하다. 꾸준히, 무슨 약속처럼 봄이면 캠퍼스를 다시 가서 확인하고. 나무들 잘 있었어? 그런 인사도 하고.

얘 좀 봐, 캠퍼스 이야기 나오니 평상심 찾네. 남아, 넌 유난히 학교 나무들 좋아해, 응.

오, 그래, 봄나들이. 봄마다 캠퍼스 다시 돌아보는 사람들도 흖진 않겠구나. 우리 봄나들이 몇 년째냐, 누가 좀 세어봐라. 남이가 기억하는, 기대하는 모임도 있구나, 참.

기대가 아니라, 기다려. 저절로 기다려지네.

기다려? 정말? 신기하다. 왜? 그런 말 잘 안 하더니.

 

응, 그 사람, 이태 전이던가, 우리 가던 카페에서 믿어지지 않은 파면 이야기를 하던 여자 말이야. 이젠 안 오나 봐. 이런 말은 절대로 못합니다.

파면이었어요, 파면되었다고요. 당신은 이 순간 부로 파면이요. 그러니 교무실로 소지품도 가지러 가지 말고 그대로 현관으로 나가서 이 학교 근처에 얼씬도 말라…… 그랬어요. 아무리, 설마. 하지만 난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숨을 멈추면 다른 데로 먼 데로 갈 수 있다니까요. 지금도 그리로 간 거죠.

파면 - 그 사람 다시 한 번 봤음 좋겠어.

내가 만일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은 벌집처럼 일어날 것이 뻔합니다. 무슨 파면, 무슨 소리야. 누가 있었다고? 그때 언제 누구? - 옆 자리에 두 사람? 어떤 두 사람? - 아니, 어느 봄날 어느 카페에서 스쳐 지난 사람을 무슨 수로 또 어느 봄날 어느 카페에서 같은 시간에 마주치느냐고! 그런 확률이라면, 너 수학 좋아하면 한번 계산해 보시지요! 아니, 미선아, 네가 좀 계산해 주라. 얘 정신 좀 들게. 그렇게 쏘아댈 장면이 무섭습니다. 미리 무섭습니다.

나이 들어가나 보다 뭐. 옛 것이 그리워지네.

그렇게 말을 돌립니다. 정답입니다. 사람은 꼭 해야 할 말을 꼭 해야 할 순간에 잘해야 예쁩니다. 그 정도는 압니다.

나 이쁜 것 아냐?

얘 좀 봐, 점점.

그래, 이쁘디이쁘다. 근데 왜 이리 요상한 유머를 떤다냐, 너 무슨 말 감추고 있지?

감추기는. 말 하면 한다고 나무라면서, 안 하면 안 한다, 못하면 못한다니!

그렇게 그만 주눅이 들고 맙니다. 그런 하루도 지나갑니다.

 

 

저녁입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이 사람이 더러 늦습니다. 간단히, 아주 간단히 저녁을 먹습니다. 얼마나 간단하냐고요? 햇반 130g, 오이 반 개와 고추장 티스푼 하나, 무김치 두 쪽, 다른 아무 것이나 조금. 뭔가 조리를 하지 않으면 냄새가 별로 없어 좋습니다. 살짝 추운 느낌은 뜨거운 보리차로 해결합니다.

창은 닫았고, 또 다른 창들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엔 영화관에도 잘 안 가지만 텔레비전 열기가 겁이 납니다. 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격한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픽션이 아닌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마다 전대미문, 보도 행태도 서로 질 새라 무섭습니다. 손바닥 꼬마 창은 늘 닫혀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톡톡 노크가 들어오거나 울리기 전에 스스로 여는 일은 드문 것 같습니다.

 

하릴없이 생각에 잠깁니다. 어쭙잖게 거창한 말 같지만, 사람들은 시대 속에서 삽니다. 일제 때를 피했고, 전쟁도 넘어갔고, 사랑들이 넘쳐서 아이를 제일 많이 낳았다는 그해 태어난 우리는 복이 많은 편이죠. 90만 명이 땅! 하는 신호 소리에 맞춰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에 나온 것이랍니다. 숫자를 상상하기는 너무 어렵죠. 90만도 상상하기 어려운 바글바글 많은 숫자인데, 뉴스에서 1조원 어쩌고 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대체 1조원은 얼마나 많은 돈일까요. 하루에 100만원을 모으면 100만 날이 걸리는 돈이 1조입니다. 100만 날은 대체 얼마나 될까, 나눗셈을 찍어보니 2,740년쯤이더군요. 하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하루에 1,000만원을 모은다 해보았더니 그래도 274년이 걸립니다. 세상에,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서 모았다 해도 될까 말까 하는 돈입니다. 사람은 살아생전에 1조를 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1조는 널려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 모았을까요.

숫자란 정말 가장 머리 아픈 것들 중 하나입니다. 아무튼 생선알처럼 무수히 태어난 우리는 기억하는 한 뼈저리게 가난하지는 않았고, 깔깔댔고, 대나무 밭에 대 자라듯이 빼꼭하게 자랐습니다. 오빠만 해도 중학교 들어갈 때 시험을 봐서 힘들었다지만, 우린 중학교 고등학교도 편하게 들어갔지요. 물론 갑자기 대학 문턱에 이르러서야 경쟁률 덕에 혼쭐났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이 너네가 대입 경쟁할 때 아예 예비고사를 포기한 사람이 얼마였는지나 알아? 셋 중 두 명은 대학을 생각하지도 않았어. 꿈도 못 꾼 애들이 더 많았다고.

경쟁에 참여하지 못한 나머지 60만 동기들에 대한 부채감을 심어준 사람은 온갖 풀 이야기를 나무이야기를 들려준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큰 소리로 혼자서 이야기를 할 때의 진지함이라니. 선배는 아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장애였으니까 말소리가 컸지요. 머쓱해서 소리를 줄이곤 하던 선배는 그렇다고 청각장애를 심각하게 장애로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어요.

내가 숨바꼭질처럼 숨어버린 뒤, 나 또한 엉뚱하게 듣고 엉뚱하게 못 듣는 일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익살맞은 - 익살인지 샤덴프로이데인지 - 도희는 걱정인 듯 위로인 듯 내 마음을 찔렀습니다.

언니야, 알아? 청각상실이 시각상실보다 더 불행하대. 시각상실은 사람을 사물들로부터 고립시키지만, 청각상실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대. 헬렌 켈러 말이니 확실한 거지!

알다마다, 네가 말해준 것만도 몇 번인데. 프럼 띵스, 프럼 피플. 그런데 그건 핑계란다, 도희야. 못 보고 못 듣는 것이 핑계가 될 수도 있어.

핑계라고? 그럼 부러 못 듣고 못 본다는 거야 뭐야.

아예 못 듣고 못 본다기보다는 그냥 피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언니는! 눈이야 감을 수 있다지만 귀를 어떻게 감냐? 사람이 사람을 왜 피해? 그걸 말이라고!

적극적인 도희다운 발상입니다. 적극적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 시절에 국적을 뛰어 넘어 결혼에 이르렀겠어요. 도희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랑은 많이 다릅니다. 어쩌다 엄마 곁에 와 퍼질러 앉아 김치찌개나 장떡을 먹어댈 때는 그냥 사람 같기도 하죠. 우리 딸, 김치 먹고잡아도 못 먹고, 말까지 넘의 말 하면서 어떻게 산다냐. 염려 마세요! 성질나거나 앓아눕기나 하면 우리말 실컷 해요, 엄마. 그래 놓고는 다음 순간 쏜살같이 아줌마 아닌 미세스로 되살아납니다. 가끔은 혼잣말을 한다는 도희, 혼잣말은 말 아니거든, 이라고 쏘아줄까 보다. 아니, 그냥 무조건 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입 다물듯이 눈 감듯이 듣기도 피할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무슨 뜻이었는지는 나도 모르죠. 그냥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그것은 그냥 내가 어느 한 중요한 문제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어서 다른 것들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문제들을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 말입니다.

 

나랑 결혼해, 괜찮겠지? 나랑 결혼하자고!

그 말에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땐 잘 몰랐지만 여러 이유에서였습니다. 우선 말소리가 갑자기 작아져서 잘 못 들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평소엔 목소리가 엄청 컸던 선배가 그날따라 아주 작은 낮은 목소리였거든요. 긴가민가 내용을 이해했을 때에는 그게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낌새도 못 챈 질문이었기 때문에 숨이 멎었지요. 어떤 면접에 나가더라도 최소한 문 밖에서부터 준비는 하잖아요. 전혀 무방비로 질문을 받은 나로서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문제의 핵심에 찔려서 비명을 지를 밖에요. 소리 없는 비명은 목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물리적으로는 입술 때문이었습니다. 내 입술은 무엇엔가 천근 바위 느낌에 눌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답을 할 수 없었지요. 그러니 입술 또한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그 입술에 답을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입술을 받아들였는지 응답을 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몇 십 년을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뒤로는 다른 어떤 질문도 잘 들어오지 않

는 것입니다.

 

 

남아, 이제부터 널 남이 씨라고 부를게. 환희 오빠 하지 말고 환희 씨 해 봐.

…….

울 오빠의 친구 환희 오빠가 갑작스레 나더러 나남이 씨라고 호칭을 바꾼 이래, 더 이상은 남이야 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은 아니라 해도 늘 남아 남아 그렇게 부르던 환희 오빠가 갑작스레 나남이 씨라고 호칭하는 것을 들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요.

남아, 이제 그만 침묵을 깨, 깨라고! - 그래도 놀랐을 것입니다.

남이 씨, 이제는 그만 침묵을 깹시다. 큰 소리로 말하고 큰 소리로 웃고 삽시다. - 이건 더욱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 남이 씨랑 결혼하겠습니다. 많이 말하고 많이 웃게 하겠습니다, 어머님.

울 오빠가 어머니라고 했으니 망정이지, 엄마라고 했더라면 울 엄마에게 엄마라고 했을 환희 오빠가 갑자기 어머님이라 부르는 소리에 울 엄마도 놀라셨겠지요. 그렇게 환희 오빠의 나남이 씨가 되어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결혼반지가 사라졌어요. 커서 헐거워졌다 싶었는데, 한번은 욕실에서 빠져서 깜짝 놀라 다시 끼었죠. 그때 다시 낄 것이 아니라 고이 모셔두었어야 하는데, 금은방에 가서 줄이거나. 그 다음 언젠가는 아예 사라졌어요. 오늘 저녁에도 잠시 또는 멍하니 길게 나를 빤히 쳐다볼 남편의 눈빛에 움찔합니다.

침묵, 침묵에서 깨어나요, 깨어나야 해요. 그렇게 말하는 눈빛을 압니다. 평생 압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눈빛, 침묵에서 깨어나요, 깨어나야 해요. 기쁨, 슬픔, 즐거움, 심지어 우울, 후회, 불안 아니면 절망이더라도 말 좀 해요. 말을 좀 하라고요.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귓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하는 소리들, 소리들. 소리들은 바글바글 거품처럼 뭉쳐서 부딪거나 흩어집니다. 말 하라고? 그 청혼을 받아들이려 했었는지, 받아들이고 깨졌는지, 아예 거부했었는지, 말을 하라고? 잘 모르겠는 것을 어떻게 말하라고?

못했습니다. 평생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첫 번째 말을 내뱉을 수 없었으므로 다른 말들도 진솔하지 못했습니다. 바람직한 말들을 고르고 바람직한 말들을 하려고 애쓰면서 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 졌습니다. 내 입은 바람직한 소리를 말하기 위해서 부단히 부단히 노력합니다. 힘이 듭니다. 또 내 입은 다른 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무심코 무심코 반응합니다. 자동적인 움직임이지만 역시 너무도 힘이 듭니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는 것도 아닙니다.

숨은 저절로 쉬게 됩니다. 답답하면 내쉬고 또 어느 결에 들이쉽니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일까요? 아닌 듯합니다. 나 아닌 다른 자동 기계가 내쉬고 들이쉬는 숨, 그것 하고 싶지 않습니다. 숨을 내쉬지 않으렵니다.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숨이 터져 나오려 합니다. 입이 벌어지고…… 다음 순간 물이 밀려들어옵니다. 웬 수영장에 와 있을까요. 필사적으로 물을 들이키지 않기로 합니다. 멈춥니다. 멈추……

 

 

숨을 안 쉬려고 해요? 날숨은 나오는데 들숨을 거부해요? 반댄가? 이런 균형이 깨지는 일은 난생. 어쩌다 이런 상태가…….

숨 쉬죠. 당연히 쉬어지지요. 다만 이 사람이 자기는 숨을 안 쉰다고 믿는 겁니다. 많이 아픕니다. 오래 아프고 있었는데, 얼마 전 결혼반지를 잃어버리고는 더 나빠졌어요. 마르더니, 손가락이 얼마나 말랐는지 그만 반지가 빠져버렸겠지요. 버리고 그럴 사람은 절대로 아니지요. 근데, 어느 날 멍 하니 있더라고요. 나를 보더니 손을 슬그머니 감추는 거예요. 빈 손가락을 손을 계속 감추려니 더는 아무 것도 못하죠. 아픈 마음을 어쩝니까.

그러게요, 뭔가 균형이 깨지면 그게. 그나 유 원장이 힘들어서 어쩐답니까.

아아뇨, 제 인생인 걸요.

하얀 가운의 두 의사가 마주보고 서서 한숨을 쉰다. 다른 한 사람은 나가고 유 원장만 남는다. 닫힌 창문너머로 반쯤 감은 눈길을 보내는 아내의 눈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비자발적 패배였을지도 몰라. 신부로서, 마치 신입사원들처럼 뭔가 잘못해서 질책을 당할까 하는. 어려서도 씩씩한 데는 없었거든. 하지만 신부의 침대가 프로크라테스의 침대가 아닐진대 왜 그리 겁을 먹었을까. 어떻게 더 안심을 주나. 왜 한 발짝도 다가오지 않고 뒤로 뒤로만 물러설까. 밖으로 나오는 건 시늉뿐이었어. 오히려 자발적? 설마 자발적 패배?

 

창문을 가려 놓은 입원실 밖에는 아직 따뜻한 햇살이 낙엽을 싣고 살랑거리고 있다. 두툼한 은목서 잎들도 말라 떨어질 때는 가벼운 모양이다. 이름이 무슨 소용, 금목서일지도 모른다. 모양을 다듬는다고 사람들이 톱질을 해대지만 않는다면 나무들은 더 오래 서 있을 것이다, 살아서. 톱질에 수관들이 잘려나갈 때, 뿌리들도 함께 오므라드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도 빛을 좋아하는 벚나무를 하필 잎 넓고 키 큰 너도밤나무 밑에 심지는 않는다. 하기야 너도밤나무는 병원의 뜰이 아닌, 책 속에나 있다.

마른 잎들은 제 위에 앉아서 사랑의 알들을 낳고 새끼들을 키워 날아간 새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도 흔하고 너무도 시끄러운 직박구리 같은 새들을 기억하는 나뭇잎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너무도 시끄러운 새들 소리에 섞인 짧은 청혼의 말을 기억하는 잎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행여 기억한대도, 떨어진 잎들이 밟히고 으스러져 먼지가 되면 기억들도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아마도, 아니 어김없이, 남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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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1. <한국소설> 251호. 한국소설가협회, 5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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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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