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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1.30 글은 독백이다
  2. 2023.01.07 빙하가 녹았다
  3. 2023.01.07 시간
  4. 2023.01.03 페르소나
  5. 2023.01.03 침묵 - 짧은 소설
  6. 2022.07.27 새순 (1)
  7. 2022.06.14 놀이터
  8. 2022.04.12 침묵과 침묵 사이
  9. 2022.02.18 먼지
  10. 2021.09.07 낮꿈 (2)
수필-기고2023. 1. 30. 07:30

 

글은 독백이다

 

 

 

    글은 독백이다. 듣는 사람 없이 홀로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행 하는 영혼들,* 그 누군가가 홀로 말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소통의 균형이 깨어져서다. 들려오는 소리의 범람 속에서 말하기가 어렵다. 생각을 소리로 내는 일, 그것이 어렵다. 아주 어렵다.

 

     누구에게 말하는가, 어디에서 말하는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맘 편하게 말 할 수 있는가. 한국 평균인, 나이는 대강 45세, 그가 남자 또는 여자라고 가정하자. 173센티미터 또는 160센티미터쯤 되는 키를 하고, 직장에 다니기도 안 다니기도, 결혼을 하기도 혼자이기도 한 어떤 사람. 그는 못해도 하루 여남은 시간을 어디에선가 누군가와 부딪고 살아 갈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서 말을 하는가. 세상은 말의 대양이고, 그의 뇌는 포만감으로 이미 멍하다. 그는 실패적 순간들에 맞닥뜨린다. 다행히 머리가 좀 좋고 이성적이라면 그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낸다. 페르소나는 상대가 희망하는 말을 할 줄도 알고 그만큼 행복하게 하루를 산다. 그의 페르소나가 열심히 말을 하는 동안, 그러나 그, 그의 인격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의 인격은 벽에 갇힌다.

 

     언어에 관해서라면 아직 읽기와 쓰기가 남아있다. 읽기에 몰입할 수도 있다. 동서고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글들을 쏟아내었는지, 인쇄되어 남아있는 서책들을 한꺼번에 모아놓는 일은 상상을 불허한다. 온라인 시대가 되고 보니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 열리는 글들의 세계는 망망대해 아니 블랙홀, 과문한 나는 설명할 표현을 찾지 못한다. 꼭 물병자리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작정 단호하고 확고해서 한번 무엇인가에 빠지면 귀를 베어가도 모른다는 단점투성이 물병자리 사람이 아니더라도, 읽기만큼 사람을 훼손하기도 어렵다. 읽기는 시간을 죽이고 몸과 머리를 감염시킨다. 책에 쓰인 것은 진리요, 책이 삶일 것이라는 부실한 맹신으로 자라난 탓이리라.

 

     이제 하나 남은 쓰기, 그것은 우리를 구할까. 심장에서 스멀스멀 또는 쿵쾅쿵쾅 시작된 말이 긴 긴 핏줄을 돌고 돌아, 믿거나말거나 지구를 세 바퀴를 다 돌아 입술 끝에 매달려도 뱉어낼 수 없을 때, 글이다. 그때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기 시작할 수 있다.

 

     누구에게 쓰는가. 그건 말을 못하는 사정과 다르지 않다. 그는, 나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글을 쓸 수 없다. 홀로 쓴다. 그것이 어쩌다 지면에 얹히면 작품 발표가 되고, 그는, 나는, 작가라고 불린다. 독자, 언감생심 독자를 향하여? 진심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다. 독자는 허상일 뿐이다.

     안도현이 「땅」 이란 시를 썼다. 내게 땅이 있다면 /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 [……]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 다만 [……]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 아들에게 땅 대신 꽃씨를? 누구는 감동해서 눈물 젖은 눈으로 나팔꽃을 심으리라 한다. 누구는 설마 진정일까 반문한다.

 

     보라! 글은 독백, 홀로 쓰는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외로움에 잠겨서, 마침내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쓰는 것이다. 바보같이 어떤 사명감으로, 또는 예술의 길이라는 착각으로, 그러다가 다 놓고 그냥 쓴다.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내놓을 뿐이다. 글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나선 글은 무심코 제 갈 길을 간다. 행여 많은 독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글은 그대로일 뿐, 더 중해지지 않는다. 외면당한다 하더라도 헐해지는 것도 아니다. 글은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잠시 누군가의 기억에, 서가에, 그러다가 잊히고 휴지조각으로 소멸되기까지. 그렇게 글은 독백으로 시작되어 독백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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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광주문학 제 104호 특집 <나의 문학> 46~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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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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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기고2023. 1. 7. 08:12

 

빙하가 녹았다

 

 

     빙하가 녹았다. 초여름 폭염으로 알프스 산의 빙하가 무너져 내렸다. 산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고,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눈과 흙이 쏟아져 내렸다. 얼음 덩어리가 산비탈을 타고 내려가며 눈사태를 일으켰다. 맙소사, 산골 부락은 아니었지만 등산로까지도 덮쳤고, 사람들이 숨졌고 실종되었다.

     등산객 몇 사람이 숨진 일에 지구인들은 꿈쩍도 안한다. 몇 사람의 사망사고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날마다 더 많은 죽음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우와 토네이도 할 것 없이 변화된 지구 환경으로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간다. 자연재해라고 치부하는 이 사고들도 엄밀하게 보자면 지구인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역작용이다. 하물며 인재는 어떠한가.

 

     먼 데 말고, 작년 한 해 우리나라의 산재사고 사망을 보자. 3월에 KDI(경제정보센터)가 내놓은 자료다. 산재 사망자가 연간 828명이라고 하니, 하루에 두세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했다. 이러저러 산재 통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죽음을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말을 하다 보니 죽음을 숫자로 말하는 자체가 죄송스럽다. 숫자에 애도를 곱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빈다. 다행인지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즈음하여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고사망 사례는 감소했다고 한다. 공동생활에서는 엄격한 법이 필요한가 보다.

     재해 유형으로는 떨어짐과 끼임 등 재래식 사고가 여전히 많다고 한다. 건설업의 기계와 장비에 의한 사고들이다. 밥 벌러 나갔다가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영안실로 조퇴 당하는 사람들이다. 왜소한 몸으로 구릿빛보다 더 붉게 탄 얼굴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죽음도 간간히 보고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아니면 그 이전부터 사탕수수 농장 등에 홀려서 떠났던 우리들 누런 얼굴들의 수모를 새삼 일깨운다.

 

     순간에 저승으로 떠난 이 사람들은 마지막 그 순간에 힘들었던 삶을 원망했을까. 증오심을 지닌 채 죽었다면 천국에 가지 못할까. 어느 지옥으로 갈까.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 편을 보면 형벌은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되돌려 받는 형식이다. 콘트라 파소 – 정반대의 고통이란 이 말은 인과응보와 통한다. 지상에서의 악행과 똑같이 대응하는 지옥의 형벌이라면, 떨어짐이나 끼임으로 죽어간 그들은 결코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죽음으로 방치한 위인들이 받을 형벌이다. 기도교적 의미에서 신을 몰랐다 하더라도, 예수 탄생 이전의 선인들처럼 천국에는 갈 수 없으되 지옥의 천국이라 할 림보에 평화롭게 머물 것이다. 지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림보에서 시작하여 음욕 지옥 - 식탐 지옥 – 탐욕 지옥 – 분노 지옥 - 이단 지옥 - 폭력 지옥 – 사기 지옥 – 배신 지옥으로 깊어지는 층을 보면서 마지막 최악의 지옥에 들어가 있다는 위인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최종지옥인 코키투스 호수의 쥬데카에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와 더불어 카이자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롱기누스가 악마 루시퍼의 발아래 눌려있다. 쥬데카라는 이름은 이스카리옷 유다에서 유래했으니, 말 그대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간들이 가는 지옥이라고 한다. 다만 신성모독죄보다 더한 죄가 배반과 배신이라는 점이 기이하다. 21세기 자본의 시대에 생명을 배신한 죄, 안전에 무감각한 기업과 제도의 담당자들을 단테라면 최종지옥에 보낼 것이 분명하다. 상상으로나마 이처럼 복수 같은 것을 꿈꾸는 글은 ‘시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용서가 될까.

 

     우리나라에도 콘트라파소 같은 것이 있었다. 인과응보라는 개념으로 있어 왔다. 전생에서의 행위의 결과로서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행위의 결과로서 내세에서의 행과 불행이 생긴다고 믿는 태도이다. 인과응보 개념이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의 원리가 되며, 덕 또는 업보와 연관된 실천철학에 가깝다. 악한 행위는 업보가 되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므로, 참회하고 덕을 쌓아 업을 없애면 비로소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아무도 믿지 않는다. 우선 내세에 대한 믿음이 줄고, 무엇보다도 정의라는 개념조차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라고 하면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이거나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의는 예로부터 왜곡되어 왔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견해는 이미 플라톤의 『국가』에서 트라시마코스가 주장했다. 정권이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피통치자에게 정의로운 것이라고 공포하고, 이것을 어기는 자는 부정의한 자로 간주하여 처벌한다고. 물론 대화의 상대편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변호했지만, 글쎄다. 유사 이래 법도 정의도 늘 강자의 편이 아니었던가. 약자는 비겁한 채로 강자의 선의(?)에 기댈 뿐이고.

     강자가 어찌 약자의 설움을 알랴.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은 곱잖고, 권선징악도 헛일, 선하면 바보짓이고 악해야 겨우 사는 모양새를 내는 것만 같다. 경쟁과 대결에서 어떻게 선하냐고! 내 팔꿈치는 억수로 강하게 뻗도록만 훈련되었는데!

 

     S대학교는 만일 내가 거기 들어가면 누군가 한 사람은 못 들어가는 것이네여…….

 

     그렇게 중얼거리던 중3 아이, 그의 아이가 중3이 되도록 세상은 여전히 살벌한 경쟁터다. 아니, 더 공포스럽다. 무감각이라는 바이러스가 공기 속 무서운 전파력으로 온 세상을 뒤덮고 있어서, 우리는 다만 유능한 기능인을 흠모하며 살아가고 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커녕 무참히 사라지는 생명조차도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는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안톤 슈낙의 글에서 끝났다. 사무실에서 때 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도 이제는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는다.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 이런 이미지에 슬퍼했었다니!

     알프스에서 빙하가 녹았고, 눈사태가 등산로를 덮쳤고 사람들이 죽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푸집에 노동자가 끼었다. 외국인이었다. 결국 죽었다. 그것들은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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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빙하가 녹았다」, 『마음이 머문 순간들』, 이대동창문인회, 206~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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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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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3. 1. 7. 07:35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돌아오지도 않는다. 어느새 그런 어른들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 나도 어른이 된지 오래다. 법으로야 스무 살이면 어른이라지만, 결혼을 하고 애기엄마라 불릴 때부터는 확실히 어른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순백이의 할머니가 되었다. 이 시간까지 살면서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일들을 비슷하게 겪었다.

     코로나도 비껴가지 못했다. 남편이 먼저 직장에서 감염되어 왔고, 양성 판정을 받자마자 바로 농막으로 퇴근해서 혼자 지내겠다고 했다. 남편이 혼자서 일주일을 지낼 일은 걱정할 일이 1도 없다. 나더러 살기 싫으면 언제든 떠나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혼자 사는 일은 걱정 없는 남자다. 부지런하고 아는 것도 많다. 나는 아직 음성이었지만 조심하느라 복지센터에 알리고 일을 쉬었다.

     그렇게 집안에서 혼자 뒹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도 오랜만에, 생전 처음인 것처럼, 며칠을 그렇게 낮밤 없이 혼자 지냈다. 눈을 뜰 때도 혼자, 잠을 청할 때도 혼자였다. 조금 이상했다. 적막 같은 낯선 무엇이 방안 가득했다. 낮엔 텔레비전 볼륨을 크게, 채널도 마음대로 돌렸다. 수다 떠는 모임들이 그립긴 했지만, 핸드폰은 무제한이다. 세탁소며 편의점이랑은 틈만 나면 떠들고, 젓가락 언니랑도 딸네 문제가 해결되어서 맘 놓고 수다를 떨었다. 언니는 여전히 징징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신장이식 후유증에 더해서 이런저런 의학지식들을 다 전해주었다. 간호조무사 경력이 어딘가. 그래도 심심해서 살짝만 입었던 옷들도, 이불도 세탁기에 넣어 돌릴까 했다. 아냐, 그냥 아무것도 안 할래! 그러고서 뒹굴기로 했다.

 

     문제는 그 뒹구는 시간이었다. 덩그러니 시간만 있으니 어리둥절했다. 밤에는 적막감이 한없이 부풀었다. 느닷없이 사과나무 묘목이 벽보다 더 높이 다가왔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내가 꽂힌 그곳, 딱 발목만큼의 자리에 뭉툭한 접목부분이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뿌리에서 발목까지 잘린 대목은 잊혀진 채로, 그 윗동강 접수라는 우수품종이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나는 어딘가 잘렸다가 접붙여진 곳이 없을까. 발과 몸통과 얼굴이 다 같이 하나일까. 발과 몸통은 그런대로 맞는 것 같은데, 내 얼굴이 문제였다. 늘 다른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니. 왜 그들이 우선인데? 그런데 그들이 우선이었다. 내가 그들을 더 조심하고 살아왔으니까. 왜냐고? 왜 그랬냐고?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일찍이 그렇게 세뇌되었나 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그 말은 좋은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학교에선 그렇게 가르쳤다. 착하게 맘먹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보상이 따른단다. 괜찮은 믿음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믿음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믿음과 쾌활함을 무기로 물 흐르듯 살아온 내가 왜 갑자기 고민녀가 되나. 나는 처음 생각대로 좋은 사람이 되었나. 좋은 사람이라면 통째로? 내 몸통과 내 얼굴은 하나일까 서로 다를까 궁금해, 라고 하면, 그게 말이 돼? 남편에게 이런 기분을 흘린다면 당장의 반응이 그럴 것이다. 그게 말이 돼?

 

     그래, 깜깜 밤중에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냥 나야. 평범하게 사는 나. 단순한 나. 시간을 넘나들며 나와 우리 가족, 남편, 딸, 손녀를 생각했다. 아차, 지난해 어머니를 여의었을 때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초상을 치르고 다시 일을 시작했던 첫날 오전 수급자 할머니는 유난히 쌩쌩했다. 방문요양서비스가 없는 날에도 가까이 사는 딸이 둘이나 있어서 실은 큰 걱정 없이 지내신다. 이 집 엄마는 살아계시는구나. 눈물이 살짝 돌았다. 오후 어르신 집에서는 보호자 할머니가 이상한 말을 했다. 지 선샘 이제 고아가 되었네요, 무조건적으로 지 선샘 믿어줄 사람은 이제 없으니. 듣고 보니 너무도 옳은 말이었다. 부모가 다 떠나셨으니 고아다. 더 이상 기댈 데가 없구나. 현실적으로는 친정에 별로 기대지 않고 살아왔지만,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줄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기에 그날 밤에는 한없이 울었다. 어머니 잘 보내드리고 와서 새삼스레 왜 우느냐고, 남편은 달래려다 말았다. 그냥 슬쩍 피해버렸다.

     고아가 되었네요! 그 시간이 도망가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다. 남편이란 서로 피를 나눈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확실하다. 지금도 두근거리게 좋다가도 더럭 겁이 난다. 주변에 보면 이혼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을 보면 남편과 아내 사이란 찰떡일망정 용접까지는 아닌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자녀라는 끈이 있는데도, 그래서 완전히 끊어질 것 같지 않은 인연인데도, 마음은 끊어지면 그만인 것 같아 보였다. 시간이 범인일까.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자를 수도 없어 보이는 그것이 어느 순간 가장 예리하게 잘린다.

 

 

     잘리고 쪼개진 마음을 되새김질하다 보니 주변의 이해하기 힘든 여러 사정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혼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에, 이혼을 했다가 합친 집도 있다. 시간은 그 중에서도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경우에 멎었다. 남편이 갓 퇴직한 직장 상사의 모친상에 다녀와서는 이상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썰렁했어,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하는 남편은 침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쉽사리 감성팔이를 하는 적이 없는 남편인지라 조금 의아했다. 상사의 모친상이라면 젊어 요절한 상가도 아닐 텐데 웬 유난일까. 그런데 그럴 만했다. 그 모친이 요양병원에 계신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돌아가셨다 했다. 웬 일로 밤중에 멀리 계단에 넘어진 채, 한참만에야 병원으로 옮겨서. 남편은 요양병원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침울해 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내 마음도 그건 그렇다.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는 내가 시부모님을 돌보지는 못하니까.

     우리 노인복지센터의 동료직원들도 대부분 친정 시댁 부모님들이 계신다. 부모님이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그렇더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방문요양서비스를 스스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따로 사는 부모님을 일반 수급자들에게 하듯이 방문요양서비스로 맡는 경우는 더러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친정 부모뿐이다. 시부모님 관련해서 돈 받기가 어색해서일까. 그건 아니다. 급여야 복지센터로부터 받는 것이니 무슨 상관인가. 아무튼 시부모님을 방문요양으로 돌보는 동료는 못 보았다. 세상이 다 그래! 이것이 변명이 될까.

     남 말을 해서 뭣하나. 나는 그럼 왜 못하는가. 웬만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에 약한 나는 왜. 처음 그 시간으로 돌아가 보더라도 답은 마찬가지다. 일단 어머님 상태가 심했다. 변명이 아니다. 뇌졸중 후유증이 심해서 음식을 콧줄에 의존하는 상태인데 누가 선뜻 집에서 맡을까 말이다.

     나야 물론 콧줄급식에 능숙하다. 옛날에는 간호조무사가 일반주사도 다 놓았다. 그러니까 위관 뚜껑을 열어 주사기를 연결하거나 미리 공기를 주입하여 새는 소리 등을 점검하는 일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레빈튜브를 최소한 3주 4주마다 교체하려면 그때마다 진짜 병원에 모셔가야 한다. 그 때마다 자잘한 소동이 날 수도 있다. 만일 배에다 경피위루술을 받으면 콧줄 대신 뱃줄을 달게 되고, 교체 시기도 1년 정도니까 시간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경피위루술이라는 시술은 대형병원에 가서 해야……. 이유를 들려면 한정 없다. 더구나 간호조무사 경력 중 후반 십여 년은 건강관리과에서 지내다보니, 치료 중인 환자를 실제로 간호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건강검진 보조를 주로 하다보면 점점 사무직이나 비슷해졌는데 뭘.

 

     냉장고에 가서 찬물을 들이켰다. 찬물 마시고 맘 돌릴 일은 아니다. 이제 와서 집으로 모셔와 돌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집에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어머님을 모셔 온다는 말은 아버님까지 오셔야 한다는 말인데 어떻게. 사는 지역이 다르니 우리가 이사를 들어갈 수도, 맞벌이를 그만 둘 수도 없는 걸 어떻게. 막상 모시겠다고 살림을 통째로 바꾸고 나섰다가 무한 책임을 질 수도 없잖아. 모두들 마음 불편한대로 현실을 그냥 견딘다. 어머님은 몇 년을, 놀랍게도 몇 년 동안을 침대에 누워만 계신다. 그러는 사이 아버님도 함께 같은 요양병원에 가 계신다. 아들 5형제 누구 하나 부모님을 모셔가진 못한다. 나이 드신 부모란 살짝 금이 간 계란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옮기려고 만지면 깨져버릴 것 같아서 망설이며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또 온전한 계란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조만간 깨지고 말.

 

 

     다시 그 시간이다. 남편이 문상 다녀와서 쓸쓸해하던 날, 남편은 밑도 끝도 없이 상사에게 욕을 해댔다. 남자 새끼도 아냐! 친하게 지냈던 형 같은 사이라면 한 대 칠 뻔 했어.

     세상에나, 욕이 나올 만도 했다. 집안 속사정 같은 것은 다들 모르고 지냈었는데, 누군가 슬쩍 수군거리더란다. 사모님이 사모님이 아녀, 라고. 상복을 입고 단출한 장내를 장악하고 있는 사모님이 사모님이 아니라면, 고인의 다른 며느리란 말일까. 그게 아니라 그 선배랑 같이 살고 있는 사모님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야, 못 왔겠지. 더구나 아직 현직에 있는 직원이라잖나. 그러니까 직장 내에서 눈이 맞아 여자 집으로 옮겨 산 것이 십 수 년, 몇 년 정도가 아니라 십 수 년이라잖나. 몸만 옮겨갔다는 게, 말이 돼? 요번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본집에 냅두고 나왔다지 뭔가. 바람나서 나오면서 어머니랑 각시를 한 집에 두고 나오다니! 말이 돼?

     남편의 십팔번이 오랜만에 연속으로 터져서 우선 픽 웃음이 났다. 바람피운 남편이 아예 새 여자랑 합쳐서 그 집 애들이랑 살고, 아내더러 애들과 살라 했다니. 그것도 웃겼다. 웃을 일이 아닌데 웃겼다. 웃는다고 핀잔 들을까 봐 삼키려던 웃음이 목에 걸렸다.

     잠깐만, 바람나서 집 나가면서 자기 어머니를 그냥 내버려두고 나갔다고? 얼른 아무 말이나 했다. 아니, 그러니까 바람나서 나간 남편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라고? 그게 살아질 일이야? 스물 네 시간 남편이 원망스러울 일인데, 그 어머니랑 한 집에? 허구한 날 어떤 얼굴로! 어머니도 제 명에 못 사셨겠다!

     글쎄, 90 다 되셨다던데. 속이 문드러져도 생명과는 무관한 것인지. 설마 내가 살아있는데 지가 곧 돌아오겠지, 그런 심정일 수도 있나. 바람기도 삼 년이면 꺾인다는 말이 있더만, 것도 아니데. 십 년도 훌쩍 넘었다니. 장례식장에 애들 다 있더만. 다 큰 딸들도 보이고 아들도 있더라고. 애들한테 무슨 본이 되겠어!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애들 결혼한다는 청첩은 못 들었던 것 같네. 애들이 결혼 같은 걸 하고 싶겠나. 직장에서는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부부가 부부가 아니라니, 참. 초상집이 냉랭하더만.

 

     내가 별 대꾸를 하지 않자, 남편도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남의 이야기이고. 그 순간 장례식장에서 사모님이라 불리는 사람, 고인의 며느리의 얼굴이 다가왔다. 본 적이 없는 얼굴이지만 얼굴은 있었다. 내 상상력 부족인가, 평범한 얼굴이 떠올랐다. 찢어진 마음과는 다른 좋은 얼굴로, 어머님! 계속 그렇게 부르면서 살았을까. 밥상에 마주 앉아서 시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얼굴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그 시간들을 견디면서, 마찬가지로 호적에만 남았다는 시어머니라는 여자에 대한 연민을 나누었을까. 어머님 또한 시골 본가에는 새색시 때 잠시 살았을 뿐이랬으니. 직장 따라 도시로 나와 살던 몇 해도 되지 않아, 본가에 새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 눌러앉은 남편. 누가 아내일까. 호적에 버젓이 살아 있는 아내, 나 몰라라 본가에서 살고 있는 아내. 흑역사의 시간.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던데, 실제로는 콩 심은 데 콩 나는가 보다. 시어미 생과부도 모자라 며느리 생과부까지. 아파트 평수가 넓어봤자 그게 그거지, 어떻게 이 구석 저 구석으로 피해 다니면서 살았을까. 며느리 마음으로는 마지막 몇 달을 못 견디고 요양병원에 모셨던 것이 후회스럽겠지. 누구나 그러지. 다 먹은 밥 조심!

     임종은 코로나 시대의 병원 상황으로 아무도 못 했을 터. 이런 분은 하느님이 천국을 예비하셨겠지.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간 사람. 속 좋은 사람. 모르지, 그 세월 내내 아들을 원망했을지도. 아니, 이런 아들을 낳아두고 일찍 도망가 버린 남편을 죽어라 더 원망했을지.

 

     사실 그 요양병원은 내가 아는 언니가 팀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계단에서 넘어진 후유증으로 며칠 못 가서 돌아가신 환자 때문에 병원이 좀 힘들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입원 사나흘부터 시도 때도 없이 고함을 질러대서 보호자랑 상의해 수면제 처방도 했었는데. 어떻게 밤중에 복도 끝 계단까지 나가서 넘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랬다. 그런데 그 환자가 바로 그 환자였다니! 내색 않고 모르는 척 했지만 좀 놀랐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세상은 좁다.

     요양병원은 코로나 첫해에 환자들이 여럿 감염되어 사망까지 나오는 바람에 운영이 어려워지기도 했더란다. 병원 내 의료진들 사이도 감염이 퍼졌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도 바뀌고, 이제는 다시 입원이 늘어 넘쳐서 직원들을 계속 뽑아야 한단다. 나한테도 맨날 들어오라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알바가 좋다. 말은 쉽게 알바라고 하지만, 이 일은 알바가 아닌 정식 직장이다. 4대 보험이 되는 일자리다. 다만 꼬박 8시간 근무가 아닌 알바 개념이라서, 그 또한 내게 알맞다. 에이, 혼자서 자유를 누리는 시간에 일터 생각이라니! 시간은 시간의 꼬리를 먹는가 하면 다시 내어놓는다. 지루한 시간이었다.

 

 

     올 것은 반드시 온다. 그것 또한 어김없는 시간의 작용이다. 자가키트에서 양성반응이 떴다. 피씨알 검사를 받았고, 보건소에 등록되었고, 복지센터에도 다시 알렸다. 목소리가 엉뚱하게 변해서 핸드폰 수다도 끊어야 했다. 목이 긁힌 듯 아팠고, 기침을 하면 멈추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열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코로나 처방 대상은 아닌 것 같았다. 미각장애, 설사나 두통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팍스로비드나, 역시 설사나 오심 그리고 어지러움이 동반될 수 있다는 라게브리오 같은 본격 치료제를 미리 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 건강에는 자신 있는 편이다.

     나도 따라 걸리고 나니까 남편은 맘 편하게 집으로 왔다. 환자 같지 않은 얼굴이었다. 둘이서 집안에 24시간 격리, 그것은 생각 외로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다. 반가울 줄 알았는데 왜 그럴까. 평소에 야근이나 빈 저녁이면 썰렁하니 심심했고, 남편이 보고 싶지 않았나. 바로 엊그제만 해도 적막감으로 헛것도 보였고. 그런데 나갈 수 없이 갇혀 있어야한다는 생각,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불편감을 주는 것 같았다. 24시간 동안 또 얼굴 하나를 만들어야 했다. 뭐라더라, 페르소나! 얼굴이 여러 개인 나,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좋은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은 어김없이 제 갈 길을 간다. 그렇게 법적인 격리기간이 끝났지만, 근무는 우선 반쪽만 시작했다. 오전 수급자 할머니는 원래도 씩씩하시고 또 자녀들도 곧 바로 와달라고 해서 곧 바로 나갔다. 하지만 오후 어르신 집에서는 일주일을 더 쉬자고 했다. 여러 가지로 고위험군이니까. 그렇게 조각난 일상들이 완전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거의 3주가 걸렸다.

 

 

     고생 많았어요, 지 선샘!

     오후 보호자 할머니의 인사였다.

     고생이라뇨! 그냥 놀았어요, 별로 많이 아프지도 않았고요. 3주나 쉬어서 죄송해요!

     3주, 그러네요. 3주면 병아리가 알 깨고 나오는 시간이니, 어때요, 알 품은 동안 잘 자랐나요?

     자라다뇨? 지은이가 지은이죠. 그간 어르신은 좀 어떠셨나요?

이 양반, 심심해했어요. 점심 동무도 없고 산책 동무도 없으니까. 산책은 이런저런 핑계로 안 나갈 때가 더 많았어요. 그런데 좀 놀라운 일, 말이 좀 늘었어요.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 떠나버린 친구들은 이제 못 만난다는 것도 알고, 더러는 혼동해도 꽤 많이 기억해요. 뉴스에도 좀 집중하고.

     다행이시네요.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으니까 어르신 생각이 나더라고요. 웃을까 말까 그런 표정도 떠오르고.

     지 선샘,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 노인들 생각을 다 하고. 나 좀 봐! 우선 밥부터 먹읍시다. 어서 모시고 와요!

 

     어르신은 언제나처럼 거실에 있었다. 들어오면서 바로 인사를 했지만, 그뿐. 식탁에 가자고 해야 식탁에 오신다. 앗, 어묵볶음이었다. 동그란 어묵을 어슷 썰고 생표고와 간단한 야채를 넣어 볶았다. 케첩 뿌리면 더 좋아한다고 했죠? 그렇게 묻는 것을 보면, 어묵 좋아하는 나를 위한 반찬이었다.

     어르신이 식사 후 살짝 낮잠을 청하는 습관은 3주가 지났다고 달라졌을 리가 없다. 그 사이 할머니랑 커피타임이다. 주전자에 들어있는 아메리카노를 함께 따라 마시려다가 부러 믹스커피를 털어 부었다. 믹스커피는 나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할머니가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나를 위한 배려다. 작은 일이지만 기분 좋은 일이다.

 

     계란도 사야하고……. 할머니는 시장에 가련다고 장바구니를 들고 일어서 나갔다. 어르신 머리맡 쪽 의자에 가서 앉아 잠이 깨기를 기다리면 된다. 스르르 자는 잠이니 내 기척을 느끼시면 곧 깨어나실 것이다.

     소파 옆으로 에어컨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우리 집에 비하면 더 넓은데도 에어컨은 하나뿐이다. 노인들은 더위를 덜 타는지, 이 집은 여름에도 에어컨을 켜는 일이 별로 없다. 우리 집에는 에어컨 문제가 생겼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에어컨이 필수인 것 같다. 우리도, 그러니까 주인집도 거실 에어컨 하나로 사는데, 전월세로 내놓은 앞집, 그러니까 3층 한쪽을 보러 왔던 젊은 부부가 안방에 에어컨이 없다고 투덜거리다 그냥 갔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저기 안방에 에어컨 들여 놔야 하나? 내가 구시렁거렸지만 남편은 들은 체 만 체였다. 전기세는 자기들이 낼 것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모르는 체. 그렇게 에어컨이 필요하면 제 집 사서 온 데 방방마다 에어컨 놓고 살지 뭣 하러 셋집을 보러 다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더위를 못 견디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만일 내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자기 속맘을 들은 것 같아서 무안해할 것이다. 내가 남편과 맞비교를 하자면 여러 면에서 훨씬 미련한 편인 것을 안다. 하지만 세월이라는 시간은 내가 남편의 속맘도 웬만큼은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차, 이 무슨 자뻑!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다아! 결국 남편의 속마음도 모르는 것인데.

 

     할머니는 계란만 사 들고 곧 돌아왔다. 어르신의 낮잠은 길어지고 나는 다시 계란을 따라 식탁으로 갔다.

     우린 부러 큰 계란을 사는데요. 유난히 작은 꼬마 계란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크건 작건 계란 고르는 건 완전 맘대로네. 좋은 세상이야.

     좋은 세상까진 모르겠고요, 보호자님 좋은 분이세요. 저 오랜만에 온다고 어묵 해주시고! 점심 너무 많이 먹었어요.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다이어트는 무슨. 사람이 통통해야 보기 좋죠, 성격 넉넉해 보이고. 허벅지 근육이 건강 바로미터라고 맨날 선전에…….

     아, 근육. 그건 그렇다더라고요. 저는 근육은 좀 돼요. 남편이 운동 엄청 좋아하다 보니까. 전엔 둘이서 탁구도 치고 그랬어요. 건물 지하실에 탁구대랑 운동기구 많아요. 그런데 보호자님은 병원이랑 시장 말고는 아예 나가는 일이 없으니, 언제 걷고 언제 근육량을 늘리죠? 저 왔을 때라도 나가셔서 아파트라도…….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고, 모르죠? 젊은이들이라서.

     비육?

     넓적다리에 살이 붙는 것을 탄식한다는 말이죠. 사람이 일 없이 무위도식하면서 살만 찐다는 한탄. 세상이 변해서, 요새는 죽어라 운동을 해서 살은 빼고 근육을 키운다죠. 운동이나 무위도식이나.

    그러니까 찌라고요, 찌지 말라고요? 참, 어르신은 생각 보다 잘 드시는 편인데 살은 좀.

     노인들은 살 안 찌나 봐요. 좋다는 음식은 해주려는데도 역부족.

     무슨 말씀, 충분히 좋은 음식들인데요. 진짜 좋은 사람이세여!

     순진한 우리 지 선샘!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갑작스런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좋은 사람 그런 건 없다는 말일까. 설마.

 

 

     좋은 사람 궁금해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 《좋은 사람》 영화도 있던데요. 최근 영화.

     어머, 영화관에도 가세요? 실로 궁금해서 물었다. 어느 틈에 갈까. 완전 붙박이면서.

     꼭 보고 싶은 건 보러 가죠. 《oo의 시간》은 개봉되자 예약부터 했는걸요.

     맙소사. 말문이 막혔다. 더러 영화관에도 간다고? 이 꽉 막힌 시간을 살면서? 대체 우리는, 나는, 영화관에 가 본 것이 언제인가. 노인들보다 못한 삶이네. 이미 노년에 접어들고서도 맨날 노후대책 걱정이나 하면서.

     《좋은 사람》 그게 무슨 영화제에 나왔던 작품인데, 제목 땜에 궁금했어요. 기다려도 넷플리스에는 안 뜨고, 그냥 유튜브 영화로 봤는데…….

     뭐야, 넷플릭스니 유튜브 영화니, 이 할머니는 별 걸 다 한다 싶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좋은 사람, 좋은 선생님이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 되는 보통 사람 이야기더군요. 진정이랍시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뭐 그런 피상적인 말을 학생들에게 하죠. 본인 스스로 그렇게 사는지는 관객의 눈으로는 의문이고요. 알코올 문제로 이혼했고…….

     거기도 이혼…….

     학생 지도가 꼬여버린 날 하필 아내가 키우는 딸아이를 잠시 맡았는데, 맙소사, 딸애가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 결말이니, 살면서 이것저것 안 되는 이야기들 투성이더라고요. 부모에게서 버려진 학생을 교사로서 믿어주지도 못했고, 불행한 결혼생활은 상대를 탓하고, 딸아이의 사고도 남 탓을 하고. 사람들은 다 비슷해. 따로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결론. 그럴 줄 알았어요. 아, 주인공은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생각은 하는 사람이지만.

 

     이혼 말이 나올 때부터 알았다. 제목은 좋은 사람이었고, 결말은 좋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었다. 영화 이야기를 들었으니 뭐라고 대꾸는 해야 했다.

     좋은 사람 되기가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요.

     지 선샘은 좋은 사람이라니까요. 일단 남의 일들 성근지게 봐주기도 하고, 남편도 사랑하고.

거야.

     하지만 진짜 좋은 사람이려면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신을 돕는 일을 해야죠. 의기소침하거나 불행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죠.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면, 바깥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힘이 날 리 없으니까요. 나는 그런 긍정 에너지가 부족해서 좋은 사람 틀렸어요. 우선 행복하지 않거든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았다는 후회감이 젤 크죠.

     후회라면.

     우리 때는 자기 자신이 되라! 그런 가르침은 없었어요.

     사람이 되라고, 그건 다른가요? 

     다르죠! 사람 중에서도 너 자신이 되라고! 그랬어야죠. 너는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일지라도 다른 모래알들이 너는 아니다. 너 모래알 하나. 세상에 하나뿐인 고유한 모래알. 다른 모래알들이 멋있어 보여도 힘 세 보여도 그 다른 모래알이 될 수가 없단다. 너는 그냥 너 모래알이야. 너 모래알을 사랑해. 너 모래알을 존중해. 너 모래알을 너만큼 사랑하고 존중해 줄 다른 모래알은 없어.

     모래알이 모래알이…….

     그러니까 자신이 진정 원하는 무엇인가를 위해 돌진하면 욕먹기 일쑤였어요. 무조건 희생하기, 우선 집에서부터 다른 형제들에게 희생하기를 덕목으로 배웠으니, 자기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로 생각되었죠. 겹치면 등록금도 먼저 포기해야 좋은 사람이고, 많이 버릴수록 좋은 사람. 옛날에는 밥부터도 포기했고.

     하긴 옛날 배경 드라마 보면, 자기 밥 안 먹고 남동생에게 먹이는 누나…….

     문제는 배가 고프고서는 자존감이 안 생긴다 그거죠. 그렇다고 지금 잘 사는 세상엔 배고픔이 없냐, 그건 아냐. 또 다른 배고픔이 사람을 죽도록 괴롭히죠. 절대로 채울 수 없는 배고픔, 상대적 박탈감이요. 공허감이라고 할지.

     공허감, 무슨 말일까. 듣고만 있을밖에.

     있어도 있어도 없는 느낌말이에요. 일테면 명품 백에 꽂혔다! 아끼고 아끼며 적금까지 들어가면서 그 하나를 위해서 몇 년을 살았다는 처녀, 그런 뉴스도 있더만요. 하필 그것을 편취당했다나, 뭐 그런. 그 문제가 아니라, 그 하나를 그 백을 마침내 가졌다 치고, 그 다음에 고픔이 그칠까 그게 문제죠. 다른 사람들 보면서 다른 또 하나에 꽂히고…….

     뭐야, 나도 딸애가 결혼할 때 명품 백을 선물 받았다. 원채 명품을 모르니까 실은 그 상표도 잘 모르지만, 어디 결혼식장이나 부부 모임 때는 꼭 들고 나갔다. 일단 명품이니 알아들 봐 주겠지, 뭐 그 정도였다. 딸애도 최근에 명품 백을 샀다고 기뻐했다. 시동생 상견례를 앞두고 면을 세우고 싶었겠지. 결혼 때랑 그 다음은 기간제 그만 둘 때 실업급여를 받았으니 아예 제 수입이 없는 건 아니니까. 무엇보다 윗동서인데 그럼! 그런 일들에 신이 났다. 남들 하는 만큼 하고 사는 게 어때서!

 

 

     혼잣말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향한 욕심이 부글거리는 동안은 늘 고픈 것. 치맥을 삼겹을 킹크랩을 배불리 먹더라도, 식탐을 놓지 않는 한 늘 고파요. 식탐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보면 음욕보다 더 아래 지옥에 가는 죄라요.

     식탐이 죄라고요? 지옥편이라면…….

     내 말은 거기서 끊겼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대꾸할 말이 없었다. 희한하다. 노래도 아니고 무슨 신곡, 요즘 세상에 시시콜콜 이름도 모를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딨냐. 나도 그래도 2년제 대졸인데 저 할머니는 4년제라 쳐도 할머닌데, 참. 알뜰신잡에나 내보낼 사람이다. 난 그런 프로도 정신없어서 잘 안 보지만.

     거기엔 지하 9층으로 지옥들이 있는데, 식탐은 지하 3층, 탐욕은 지하 4층 그래요. 암튼 나는 죄다 뭐다 그런 건 잘 모르고, 죄 보다도 공허감이 문제예요. 좋은사람콤플렉스에 걸린 우리들, 다른 사람들한테는 미소를 띠고서도 속으로 공허감은 여전하죠. 남과 비교하고, 부족감에 그 불행을 남 탓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그런 느낌으로 자신을 미워하는데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나. 좋은 사람 코스프레죠.

     코스프레, 좋은 사람 가면이란 말인가 싶었다. 아니다, 가면은 페르소나라 했었지. 흉내라는 말인가. 난 특별히 부족감도 불행감 같은 것도 없고, 그저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뭐가 문제인가. 아리송하다. 모르는 채로 수긍이 갔다. 이 할머니 말은 설득당하기 쉽다.

     진정으로 욕심을 줄이면, 엷어지면 좀 좋아. 탐욕은 헛것이고 허망임을 느껴야 줄겠죠.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에요. 우린 좋은 사람이 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그냥 태어났고, 그냥 사는 거예요. 편한 마음으로. 쉽게 말하면 그래요.

     어렵게 말하면요?

     무위진인(無位眞人) 그런 말도 있죠. 지위의 상하나 귀천 없이, 궁극적인 경지를 깨달아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절대자유인 같은 것. 좋은 사람 되라는 가르침에서도 자유로운.

     정말 어려운 말이네요. 암튼 사람 사이 어떻게 차별이, 아니 차이가 없나요. 세상에 이웃이 넘치고 사람 천지인데. 사람들 속에서 돋보이진 못해도 무시당하면서 살아선 안 되죠. 좋은 사람이다, 사람이 좋다는 말 정도는 듣고 살아야죠.

     대꾸를 하면서도 말들에 체한 것 마냥 속이 부글거렸다. 나더러 좋은 사람이라던 이 할머니는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다니! 좀 갖춰서 살면서 남들에게 친절하며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게 말이 돼지! 좋은 사람 되라는 것 말고 무슨 가르침이 더 좋을 수 있어!

 

     사람이 좋다 - 그게 진정 좋은 건 아녜요. 좋은 거짓 같은 것. 가끔은 까칠하게, 맘 가는대로.

     네? 까칠하게 살라구요?

     아, 젊은이는 그대로 쭈욱 좋은 사람 해요! 난 좀 맘 가는대로 살겠다는 거죠. 다른 눈들의 기준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아깝다는 말. 우리 지 선샘이 나중에 나중에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암튼 까칠한 것이 어때서. 다른 사람들 불편할 일 아니면 맘대로 까칠하게. 까칠한 진실, 이미 까칠한 시간에 접어들었어요.

     까칠한 진실이라니. 좋은 사람 포기하고? 아니, 까칠한 좋은 사람. 그게 말이 돼? 속으로 남편 흉내를 내봤다.

     여전히 참아야 할 때도 있겠죠. 옛말에, 종이 어질기를 기대해선 아니 되고 주인이 어진 것이 가상타 했대요, 울 아부지 말씀!

     엥? 이 정도에 이르면 도망쳐야 할 때였다.

     어머나, 왜 이리 오래 주무시나? 어르신 열을 좀 재볼까……

 

 

     어르신, 어르시인! 그 동안, 저 안 오는 동안 낮잠만 주무셨어요? 슬슬 일어나 보셔요. 오늘은 첫 날이니 요 앞에 살짝만 나가보시게요.

      …….

     말은 없으신데 손이 꼬물거렸다. 들릴 정도가 되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자몽 좀 까드릴까요? 자몽 좋아하시잖아요. 잠도 달아나실 거고. 잠은 밤에 주무세요.

     팔목을 살짝 잡아 흔들 때서야 눈을 뜨셨다. 다섯 손가락을 다 움직여 일으켜 달라는 신호를 보내셨다. 따뜻한 등을 일으켜드리니 곧장 일어나셨다. 턱을 드시는 것은 물을 달라는 신호다. 차가버섯 끓인 물이다. 반 컵을 드셨다. 사기그릇이나 유리그릇을 쓰는 이 집에서 어르신 물 컵은 등산용 스테인리스다. 떨어뜨려도 깨지지 말라고. 평소 출입이 많았던 시절에 등산배낭에 달고 다니셨다는 그런 컵이 여럿이다. 종이컵 안 쓰고 스테인리스 컵을 쓰려는 그런 주의가 무슨 소용, 인지기능 문제는 위생관리와는 무관하다. 암튼 쉽고 어렵고, 가볍고 무겁고, 집안일은 온전히 할머니 몫인 것 같았다. 인지기능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이 어르신의 사는 일은 그게…… 종일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켜놓고 듣는 둥 마는 둥. 신문 잡지도 보는 둥 마는 둥. 서재에 잠시 가서도 늘 닫힌 노트북은 지나치고 창밖을 내다보거나, 얇고 두꺼운 책들을 만지작거리거나. 또 무엇이 있을까. 아, 산책!

 

     나 가 보 시 게 요.

      …….

     날 씨 가 참 좋 아 요.

​     두 눈을 끔벅이면 그렇다는 신호이다. 그런데 신호 대신 입을 여셨다.

     지 선생, 어디 갔었나?

     아, 그게요. 예.

     예가 무슨 답인가. 어르신은 채근하는 눈을 크게 뜨셨다.

     산 책, 산책 하시면서 이야기하시게요.

     그렇게 산책 준비에 들어갔다. 안방으로, 화장실로, 침대에 앉아서 옷 매무새 갖추기, 아직은 얇은 바람막이를 하나 더 걸치고, 모자를 챙겨 쓰면 그 다음에 마스크 챙기기. 다른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습관, 흰 장갑을 집어들었다. 코로나 전부터도 외출 때는 면장갑을 꼈더란다. 산책이나 병원 출입이 아니라, 일반 외출 때에도. 노인 치고 위생 관념이 높다. 티비에서 손 씻는 6단계가 자주 나오니까 그 6단계를 꼬박 지키면서 손을 씻는다. 병원이라도 다녀왔을 때는 욕실로 직행, 샤워다. 갈아입을 옷들이야 누군가 챙겨 내놓겠지, 하는 심사다. 가만 보면 두 분 다 세밀하다. 두 사람이 다 세밀하면 피곤할 텐데. 이 두 분이 평소에 서로 피곤했을까. 무슨 망상? 뭣 때문에 내가 이 분들에 관해서 관심을 갖나. 퇴근 태그를 찍고, 몸조심하셔요! 하고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면, 필연적으로 다시 만날 관계는 아니다. 물론 당분간, 특히 내일이야 다시 만나겠지만, 상황은 언제라도 달라질 것이다. 산책하면서 장갑 위로 잡는 손의 결속력은 이 시간만 유효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잎 무성해진 나무들을 올려다보면서 느린 산책을 했다. 산책을 도왔다. 오른손에 힘을 주시려고 내 왼손에 기대는 힘을 기꺼이 받으며 걸었다.

     저 그동안 코로나 걸렸어요. 그래서 못 왔어요. 죄송해요.

      …….

     못 들으셨나, 크게 말했는데. 나더러 어디 갔었냐고 묻던 생각에서는 벌써 멀어졌나 보다. 코로나란 단어를 일부러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5분 전의 생각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큰일은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 그 시간은 옛날이나 같다.

 

     내가 다른 생각으로 해찰하는 것을 느꼈는지, 어르신이 담장 쪽으로 심어진 찔레꽃 앞에서 멈추셨다. 한창 어우러져 꽃을 피우고 있는 찔레꽃은 찔레꽃이다. 누군가 찔레한테 장미를 접목하지 않아서, 찔레는 찔레로 사는 것이다. 장미 얼굴을 갖지 않음 어때! 찔레는 찔레일 때 온전하고 행복한 거야. 이 어르신을 만난 이삼 년의 시간 동안에 담벼락 아래 찔레는 상당히 넓게 퍼졌다. 향기는 외려 저쪽 담장 끝 치자나무에서 건너왔다. 멀리서는 보이지도 않는 자잘한 꽃잎에서 무슨 향기가 저리 뿜어나올까. 향기로 사는 치자꽃은 향기로 목소리를 냈다. 나도 답했다.

     어르신, 저기 저쪽 치자꽃 보러 가실래요? 오라고 부르는데요.

     둘이서 손을 잡고 걸었다. 부녀 같아 보일 게다. 노인과 데이트하게 해서 미안해요, 어르신이 농담을 하셨다. 데이트? 그래, 이 시간의 데이트에 충실하자. 이 어르신의 시간에 진심으로 함께 하자.

 

     갑자기 주말이 기다려졌다. 농막에 가면 애처로운 사과나무도, 흐드러져 있을 작약들도 만나겠지. 무엇보다 높게 자란 모감주나무 아래를 남편과 손을 잡고 걸어야겠다. 그 시간에 가서는 내가 오른손으로 남편의 맨살 왼손을 잡고서.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에게 내 손이 필요한 시간인가 알아보고 싶다. 알아야 한다. 내 시간의 의미를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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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국제PEN광주 20호, 338~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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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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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3. 1. 3. 11:48

 

 

     페르소나, 두 번째의 나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사과나무를 심던 날이었다. 시작은 단순 명쾌한 멋진 날이었다.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린애 같은 결심이 실제 이루어지다니. 예상보다 잘된 일이었다. 예상보다? 그것은 내 생각이 늘 관철되지는 못하는 일상에 비추어 나오는 말이다.

     사과나무 묘목은 가까이에도 있었다. 옥천까지 가자고 했으면 남편이 나섰을까. 모를 일이다. 200킬로가 안 된다지만 두 시간은 걸릴 것이고, 왕복이면 기름이다 통행료다 해서 10만 원은 족히 든다. 사과나무 묘목 값과 점심을 더하면 큰 지출이 될 터다. 자랄지 말지도 모를 사과나무 묘목을 사러 가자고? 왜, 뭣 하러? 그런 반응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를 의심에 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나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남편은 웬일로 넉넉했다. 막상 다섯 그루씩이나 어린 사과나무 묘목을 사들고 오는 기쁨은 컸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옛날의 이 격언을 말 그대로 실행하다니. 세상에 얼마나 좋은 말씀들이 많은가. 하지만 누가 그런 격언들을 실행하는가 말이다. 모범생도 아닌 평범한 내가.

 

     내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 먹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떨린다. 유기농 어쩌고 뽐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먹을 것을 가지고 유난 떠는 것을 남편은 제일 싫어한다.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는 이유에서다. 아니, 어린 시절의 고픔을 몸서리치는 것이라 짐작해 본다. 형제자매가 많았던 시절, 넉넉지 못했던 살림에 대한 절망의 말을 내비치기도 했다. 자라서 독립을 해 나가서는 다들 밥걱정은 안 하고 살게 된 것, 둘씩이나 공무원이 된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오죽하면 딸애에게도 공무원만을 강조했을까. 딸애를 예뻐하다가도 그 일로 해서 찡그린다. 지금도, 딸애가 결혼을 했고 애 엄마가 된 후에도 가끔씩 투덜거린다. 둘 다 합격했음 좀 좋아…….

     뭐해? 사과나무 안 고를 거요? 남편이 웬일로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우리가, 남편이 고른 것은 부사 품종이었다. 3년생 분달이로 다섯 그루, 25,000원씩인데 120,000원에 샀다. 분털이는 값은 좋아도 10개씩 묶음으로 사야하고, 무엇보다 잘 심을 수 있을지 걱정이기도 했다. 분달이 묘목에는 흙이 두툼히 묶여있었지만, 그래도 비닐로 잘 덮어서 뒷자리에 싣고 출발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밭으로 향하던 나는 언덕배기 아래쪽으로 저만큼 미리 드문드문 파 둔 구덩이들에 놀랐다. 남편은 일을 너무 완벽하게 해서 질리게 한다. 스스로 완벽함을 알아서, 농막의 일에 관한 일만이 아니라 어떤 일에서건 어떤 의견도 듣지 않는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배추 농사! 하지만 그것은 약과다. 언제 어떻게 집을 사는가, 심지어는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도 난데없는 결정이었다. 그의 고향은 나에게는 아스라한 시골이었고, 결국 고향 가까운 이곳으로 왔다. 너무나도 갑자기.

     남편은 묘목들을 내려서 펌프가 있는 쪽으로 가져가더니 커다란 물통에 나누어 담고 있었다. 사과나무는 햇빛과 양분보다도 유독 물을 좋아한단다. 그러고서 창고로 향하더니 농약 포대를 가지고 나왔다. 고추 탄저병 때 썼던 톱신엠인가 그런 살균제다. 두 시간 정도 소독 겸 물통에 그대로 둘 것이니 점심을 먼저 먹자며, 아뿔싸, 집안으로 향했다. 쉬기도 하고!

     뭐야, 나무 심고 나서 밥 먹으러 가는 것 아니었어? 냉장고에 뭐가 있을까, 아찔했다. 어쨌거나 바깥 샤워장에서 손을 씻고 들어갔더니, 남편은 놀랍게도 삼겹살을 꺼내고 있었다. 언제 사다가 넣어 두었을까. 혼자서도 너끈히 살 사람이다. 익어가는 삼겹살에 봄이 되면서 시들해졌던 김장김치가 그리 맛있을 줄이야. 순쌀밥 햇반도 스르르 녹았다.

     배가 불러서 커피 잔을 들고 느릿느릿 밭으로 나갔다. 미리 파놓은 구덩이는 양동이를 묻었다가 파낸 만큼의 깊이였다. 깊이로도 살짝 더, 넓이로도 더 넓게 파더니, 상토를 서너 삽 부어넣었다. 마사토 같은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구나 싶었다. 막상 묘목을 세우는 것은 절대로 혼자서는 안 되는 작업이었다. 남편이 삽질을 더 하려고 한 손을 놓으면 중심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지대를 세워둘 걸! 어차피 박아야지, 뭐. 남편은 중얼거렸고, 내가 묘목을 힘껏 잡고 있는 동안 뿌리와 흙을 뭉쳐 둔 끈을 조심스레 풀었다. 뭉툭한 접목 부분을 조심조심 땅 위로 한 뼘 길이 되게 올려놓고는 나머지 흙을 덮었다.

     어라, 흉측한 접목 부분을 왜 완전히 묻지 않을까. 멍청하긴! 거기까지 다 묻으려면 처음부터 통째로 심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렇게 뿌리와 발목만 남은 나무 동강, 지금도 나무라고 해야 할까, 그 몸통은 어디로 갔을까.

     과실수의 뿌리와 몸통을 잇는 데 성공한 인간들이 머리 이식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통 이식이라는 생체이식 프로젝트는 끔찍한 뉴스였는데, 다행히도, 다행인가, 아무튼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 머리 따로 몸통 따로면, 대체 누구란 말일까. 심겨진 뿌리는 그냥 대목이란 이름으로 남고, 그것은 이름도 아니다. 몸통 부분 접수가 부사니까, 내 사과나무는 후지도 홍로도 아닌 부사 품종이다. 뿌리는 살아서 무엇을 하는가. 살아있기는 하지만.

     어느새 남편은 물을 가지러 갔다. 길게 길게 호스째 가져온 물줄기, 호스를 아예 흙 속에 묻다시피 하고 물을 틀었다. 아주 천천히 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리면서 다른 나무들로 옮겨 다니는 동안 물은 정말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 틈에 양동이를 들고 저만치 갔던 남편이 흙을 수북이 퍼 담아 온다. 정작 땅 위로 북돋는 작업도 한참 걸렸다. 두툼히 올라온 흙을 신호로 그제야 마무리다.

     언제부터 사과가 열릴까. 이삼 년 안에 죽는 경우가 많다는 글들도 있었다. 뿌리가 잘 내린 뒤에, 잘린 가지에서 순이 나올 것이고, 어린 나뭇가지들을 잘라주어야 한단다. 순이 정말로 자라나올까. 수형을 잡아줘야 한다는 말은 지금은 사치다. 일단 자라기만 해라! 이삼 년을 기다려 어느 해 이른 봄이 되면, 그러니까 날이 풀리자마자 적과를 해야 한단다. 꽃눈적과도 있고 꽃적과도 있다니, 외국어 같은 말이다. 꽃눈이 가지에 생길 때부터, 아니면 꽃눈에서 생겨나는 꽃도 따버린단다. 애당초 버림받는 꽃눈들이 애석하다. 하지만 인간들도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하는데, 뭘. 사람들이 참 비정한 동물이다.

 

 

     정말로 내가 사과나무를 심다니, 행복감을 느꼈다. 사실 남편은 돈을 쓰는 일에는 많이 민감하다. 근검절약도 좋은 말이지만, 빨래 줄이자고 하얀 옷도 입지 말자던 사람이다. 옛날 같으면 자린고비라 했을 것이다. 같이 살기는 어려운 사람 같다고, 친한 사람들은 아예 그렇게 말한다. 요구하는 것, 기대하는 것이 많고 높기 때문이다. 내가 거기에 충족될 리도 없지만, 나는 그냥 산다. 또 주변 사람들이 나더러 어떻게 참고 사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좋아서, 좋아하니까 산다고 말한다. 좋아한다, 뭘까. 정말 잘 모르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그에게로 이끌었을까. 한참을 멀리 온 이제 와서는 살짝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을 마다 않던 젊은 남자에 대한 신뢰감, 그것은 변함이 없다. 나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 누군가를 원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빈 공간 때문이었을까. 집이, 어머니만의 집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 시골 태생이지만,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고등학교까지는 당연히 다녔으니까.

     남편 저이는 왜 내게로 왔을까. 여리여리한 여자애들에게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그때, 새로 온 직원, 임상병리사 겸 원무과 직원이었던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스카라 가루가 날리는 속눈썹에 새빨간 립스틱, 어리광 목소리만으로도 접수부 김양은 사람들을 홀렸다. 삐삐 마른 손가락들에 그 요란한 손톱이라니! 쌀이나 씻을 수 있으려나, 그것은 여자들의 생각이었다. 남자들에게는 깨질 새라 살포시 잡아주고 싶은 손이었겠다. 높다란 뾰쪽 슬리퍼는 어쩌고! 매 순간 넘어질까 불안하게 만들었고, 보듬어주고픈 남자들로 줄을 세웠다. 나이는 내가 더 어렸지만 덩치 큰 여자, 지금 생각하면 나는 매력이라고는 1도 없었다. 그냥 매사에 열심히, 되려던 간호사가 못 되었지만 병원은 내 직장이니까 즐겁게 일하려고 했다. 이상한 억지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래, 집 떠난 외로움도 있었겠다.

     아무튼 놀랍게도 우리는 어느덧 함께 어울렸고, 함께 어울리는 우리를 어머니는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서둘러 결혼 날을 받으셨다. 작은언니처럼 어느 순간 폭탄선언으로 결혼에서 도망칠까 걱정하셨을 지도 모른다. 수녀님 작은언니는 남들 눈에는 자랑이겠지만, 어머니 맘속으로는 아픈 손가락이었겠다. 딸의 성스러운 삶을 이해하기에는 어머니의 삶은 너무 작았다.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그중에서도 순 산골 석달마을에서 태어난 여자애, 해방 몇 년 어느 날, 스무 여 가구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의 비극, 그 끔찍했던 상실감을 안고 엄마와 평지로 평지로 도망치듯 멀리멀리 떠나와서 정착한 여자애 – 울 어머니의 삶은 단순 소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무탈하게 자라서 어른 되어 시집가고, 부부가 함께 애들 낳아서 튼실하게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고, 떡두꺼비 같은 손주들을 안아 보고 죽는 것, 그것이면 될 일이었다. 아부지도 안 계시넌데 느들 식이라도 빨리 혀야……. 작은언니의 결혼 불발이 아버지가 안 계신 탓이었다고 생각하셨을까? 어머니의 걱정 때문에 우리의 결혼은 빨랐다. 좋은 일이었다.

 

     사과나무를 심다가 웬 결혼 이야기?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라던가. 나무를 심으면서 열매가 벌써 눈에 보였나 보다. 언젠가 열릴 탐스런 사과에도 벌레는 있을 것 아닌가. 우리의 결혼생활은 크게는 벌레에 먹히지 않고 잘 자란 사과다. 살짝 색 바랜 부분이나 반점들은 있겠지만 온전한 사과다, 맞다. 한 명이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자식도 낳았고, 딸애가 자라서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딸의 딸, 외손녀다. 태명을 동백이라 하더니만 순백이라니. 순백이 할머니, 민지 엄마다. 만족스러운 일들이다. 우리가 옮겨 심은 이 사과나무들도 벌레를 아예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섯 그루 달랑, 그것도 아마추어 밭에서 자라다 보면, 탐스런 사과가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벌레가 사과를 온통 다 먹는 일만 없으면 성공이겠지. 매사에 내가 너무 낙관적일까.

 

      자 자, 이만하면 되었겄제? 마눌님 비위 맞추기 힘드네. 사과나무는 당신 나무니까 알아서 잘 돌봐! 지지대까진 내가 세워줄 테니까. 아, 다른 작목들도 잘 좀 봐주고. 저 많은 작약 꽃들, 곧 피어날 거구만.

여보 당신은! 작약만인가! 내가 뭐 다 사랑하잖아. 배추만 빼고!

이 마지막 배추 말은 속으로만 했다. 배추는 정말 싫다. 김장을 많이 해야 하니까.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다. 작약은 꽃만 예쁜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말리면 얼마나 좋은지. 마를 때의 향기며, 차를 끓일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여름에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면 일품이다. 민지가 결혼 후 곧바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에도 작약뿌리 차를 진하게 마시게 했다. 위에도 좋지만 특히 여성 건강에 좋다니까. 내가 따뜻한 점심을 함께 먹는 오후 수급자 어르신 집에도 가끔 이것저것 갖다 드린다. 작약뿌리는 물론, 뇌 건강에 좋은 초석잠은 처음 본다면서 엄청 좋아하셨다. 부지런한 남편 덕에 인기가 올라간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앗, 말하려다보니 낯간지러워서 갑자기 목에 뭔가 걸린다.

 

 

     때마침 핸폰이 울었다. 왜 방정맞게 우는 소리로 들었을까. 폰에서는 정말로 우는 소리가 났다. 젓가락 언니였다.

     어쯔끄나. 어째야 쓰겄냐. 야들 코로나 포도시 지나가고 낭께 참말로 더 난리다. 전에 말했잖여, 사우가 신장이식할라 근다고. 둘이 앞서고 뒤서고 서울 올라가부렀다. 첨에는 즈그 동생이 딱 맞응께 띠어준다등만, 멋헌다고 각시헌티.

     언니, 어쩌나, 나 지금 밖에요, 신랑이랑. 좀 있다가 내가 전화할게, 네?

     우선 피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40살 된 애들이 신장 이식이란다. 일단 투석으로 좀 버텨 볼 것이지. 나중에는 어쩌려고. 아니, 무슨 나중 생각. 젓가락 언니는 지금 당장 딸애가 문제인 것을. 생체 신이식이라니!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의학적으로는 신장 하나로 살아가는 일이 문제가 없다지만, 만일…….

 

 

     사람은 어쩌면 직업적으로 병원 근무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 초짜 간호조무사 시절은 아득히 깊게 남아있다. 조무래기 월급쟁이로 반지하를 탈출하는 꿈을 키우는 일상은 힘들어도 뿌듯했지만, 병원의 인상은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금에는 주인이 따로 있었고.

     어떤 기억들은 어떤 뜻에서는 지우고 싶을 지경이었다. 90년대 초 산부인과는 탄생의 축복을 앞세운 한편, 뒤로는 지옥의 문턱이기도 했다. 그런 일들로 병원들은 건물을 높일 수 있었겠지만, 그 와중에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간호조무사 학원에서는 초음파 감별법이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배웠는데, 병원 현장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우리 병원장이 장로님 사위이고, 직원들에게 교회 다닐 것을 권장하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태아의 생명권이냐, 낙태를 희망하는 여성의 권리냐. 창과 방패의 싸움은 늘 한쪽으로 기울었다. 성 감별을 확인하고 나서 낙태를 원하면 상황은 더 끔찍했다. 거기 깊은 안에다 미리 작은 막대를 둘씩 셋씩 박아두고 억지로 늘려서 문이 열리기를 며칠씩! 거의 완력으로 태아를 꺼냈다. 남안교? 우야노! 무조건 장손을 원하는 풍토에 죄의식 같은 단어는 설 자리가 없었다. 지금에 비해 의료 상식이 낮아서도 그랬겠지만, 태아도 생명체라는 의식이 아예 없었다. 수술대와 여러 도구들 사이에서 태아는 생명줄에서 끊겨 나왔다. 심하면 7개월이 넘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면 적출물들을 함께 받아내는 검은 비닐봉투 안에서 아기가 울면 어쩌나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물고 귀를 닫았다. 다행히 울음소리는 없었다. 울지 않았으므로 생명이 아니었고, 부분부분 긁어낸 조각조각들과 마찬가지로 비닐봉지째로 냉동실에 넣어지면, 나중에 적출물 폐기 때 함께 버려졌다. 하루에도 몇 개씩 늘어나는 검은 봉지들은 그 숫자가 열 개가 넘을 때도 있었다. 이제 농막 주인의 아내가 되어 흙을 파다가 호미에 끊긴 지렁이나 벌레들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혹독한 경험으로 훈련이 된 탓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토악질이 나오려 할 때도 있다. 그때 참 소중하고 귀했던 돈을 벌려고 참았던 어지럼증이 오랜 세월 동안 어느 구석엔가 똬리를 틀고 있었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벌써 그 무렵에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에 눌리기도 했다. 성남의 끝자락, 그래도 수도권의 주공아파트에 입주한 뒤였다. 반지하를 떠나 온 우리에게 42㎡ 공간은 넓기만 했고, 낙원이었다. 24시간 놀이방에 보내면서 키웠지만 민지가 어느 정도 자라는 동안 동생을 더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잘 키우려면 하나만! 완강한 남편을 졸라서 잠시 뜸을 들였는데, 일 년이 다 되어가도 소식이 없었다. 그때 나는 그 무시무시한 살생을 거들었던 죄로 불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다. 병원에서도 죄를 안 짓는 임상병리에 사무를 겸했던 남편이 부러웠다. 남편은 그 사이 공무원으로 계급을 바꾼 뒤였지만 말이다. 계급? 맞다. 계급이다. 남편은 최소한 개인에게, 돈 많은 개인에게 종속될 필요는 없었다. 병원들은 주인 마음 대로였다. 그때 우리 병원은 원장이 장로님 사위라서 일요일을 다 찾아서 쉬었지만, 일요일도 격주만 휴무인 곳도 있었다. 나는 우리 민지가 자라서 절대로 간호조무사 그런 것은 되지 말았으면 했다. 간호사도, 의사도 말고! 뭔가 생명과 직접은 관계없는 고상한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랐다.

 

     어쨌거나 그 병원이 더 큰 병원과 합치려고 폐원하자 나는 직장을 옮겼고, 교회에는 출입을 끊었다. 너무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었겠지만, 우리에게 십일조는 거의 상처였다. 물론 독실한 신앙을 갖지 못한 것이 십일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선 게을렀다. 나중에 작은언니가 수녀님이 된 후에는 가족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가 되는 길을 걸었지만, 게으른 것은 여전하다. 주중에 죽어라 일을 하는 우리들이 주말에 따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형체가 없으시다면 어디에서 어느 시간에건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느님 아버지, 오늘 저희가 심은 이 사과나무들 푸르게 자라도록 밤낮으로 함께 지켜주시고, 바람에 비를 내리시어 뿌리에 물을 주소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다가 눈이 떠졌는지 내 발이 보였다. 운동화 속에 들어있지만 예쁜 발, 내 생각에 내 발은 예쁘다. 안 예쁜 얼굴에 무거운 몸통을 힘들게 싣고 다니는 발. 그래도 여기 밭두렁까지 온 것은 발이 아니라, 애초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이 한 일이었다. 내 머리로 생각한……. 순간 내 생각 속에는 젓가락 언니가 있었다. 전화를…….

 

     여보, 뭐해요. 오늘 아주 사과나무에 빠졌네.

     여전히 엉거주춤 앉아있는 내게 남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무슨 이 생각 저 생각! 말만 하면 내가 다 들어주잖아. 사람이 생각이 많음 못 써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무슨 생각! 생각을 하지 말란다. 남편은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사과나무를 심었으면 되었지, 사과나무 생각을 하면 뭐하느냐! 늘 그런 이유였다.

 

 

     생각이 많은 게 사람이죠. 어차피 불안한 거지만.

     그래, 생각이 많은 게 사람이야. 생각을 편드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가 오후 수급자 어르신네 보호자 할머니의 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눈을 껌뻑거리지도 않고 앞만 보고 말했었다. 말을 하지 않거나 말을 많이 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생각을 한다고 한다고 해 봐야 다람쥐 쳇바퀴고. 지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고방식, 인식의 문제거든요. 어차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니.

     생각을 하란 말이야, 하지 말란 말이야. 어렵다. 가끔, 아니 늘 어렵게 말했다.

마음에 빗장을 걸어놓았으니, 생각이라고 해 봐야 아집? 내 틀 안에 갇히는 거 당연하죠. 틀 안에서 생각하면 뭣하나요. 어차피 고집이 발목을 잡는 것이고, 결국엔 …….

     그럼 남편은 고집쟁이일까? 주장이 늘 너무도 확실하다. 어렵게 생각 말어, 내가 다 준비하고 분석하고 결론 낸 것이야, 라는 투로 나에게 말해놓고는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렇게 딴 생각에 빠져도 이 할머니와의 대화는 상관없다. 나를 내버려 두고 혼잣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이 아예 둘 또는 셋인 사람도 있죠.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페르소나?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원래의 인격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거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니까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를 만들어 그 얼굴로 사는 것이죠. 사람들 사이에서 필요한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쓴 가면 같은 것, 변신한 또 다른 인격이죠. 집에서도, 그래요, 남편 역할 아내 역할도 페르소나로 버티는 거죠. 다만 페르소나가 원래의 인격에서 멀어지면……

     멀어지면……, 그 뒷말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너무 멀어지면 분열이랄까, 무너지는 거죠. 옛날에야 무자기(無自欺)를 삶의 철학으로도 여겼다니까 편했겠죠.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 홀로 있는 곳에서 자신을 속이지 마라.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 같은 말이죠.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속이지 말고 살아라! 실은 너무도 어려운 주문이죠. 지금 우리를 봐요! 도처에서 요구하는 인격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필요하고, 상황 따라 얼굴들마다 그것들에 맞는 행동을 매번 생각해 내야하니까 생각도 힘들어요. 어떤 내가 나인가, 그 나에 맞추어서 생각을 지어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꾹꾹 참으면서 내보낸 얼굴이 가면으로 굳어지고 말테니. 이 가면, 가짜 자아가 인격으로 굳어져…….

     무자기? 자기가 없어? 그 대목에서 아리송했지만 그냥 듣고 있었다. 듣다 보니까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랬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속이고 시시때때로 다른 얼굴들을 만들어 내느라 생각 자체가 힘들어 진다고. 마치 거짓말하기가 힘들다는 말로도 들렸다. 아니, 쉽다는 말인가. 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나 헛갈렸다.

 

     인격에 거짓 꾸밈이 들어 있을 밖에. 마음을 열고 햇빛을 받아들여야 해. 너 자신을 폐쇄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필요하다면 거절도 하고. 아니,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출발이지. 마음에 거부감 있는 채로 무언가를 받아들여서는 안 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고, 다 무의미하지. 세상이 너 아닌 다른 너를 칭찬하면 뭐해. 네가 너를 칭찬 할 수 있어야지. 못났으면 못난 대로 너는 너다. 못난 너를 그대로 인정해 다독여줘. 안 되는 것을 세상을 향하여 얼굴 바꿔가면서 가면을 쓰고서 애쓸 필요는 없는 거다.

     아니, 이 대목에서는 말투까지 바뀌니까 살짝 무서웠다. 그때의 장면, 그때의 생각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때의 의심까지 함께. 남의 말처럼 저렇게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할머니는 정체가 뭘까 하는 의심 말이다. 저 아리송한 혼잣말을 왜 할까. 단 하나의 얼굴로 살겠다는 다짐인가, 그것이 어렵다는 말일까. 남편에게 올인하는 모습은 마치 사람이 아닌 기계인데, 원래의 하나의 인격일까.

     맨날 새 밥에 새 반찬 만들고, 시간도 식재료도 엄청 드시겠어요, 내가 말하면, 환자잖아요, 또 둘이니까 가성비 괜찮아요, 라고 한다. 주간보호를 보내면 보호자는 좀 쉴 수 있어요, 그래도 고개를 흔든다. 청력장애라 단체생활 하루도 못해요, 그뿐이다. 환자를 혼자 두면 안 됩니다, 신경과 의사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다고 24시간을 지킨다. 외출은 내가 있는 동안에만 한다. 사는 일이 숙제인가, 단순한 초등학생들이 숙제니까 숙제하듯이.

 

     한번은 내가 어르신한테 물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약 처방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사모님은 젊어서 뭘 하셨나요? 혹시 한문 선생님?

     그 사람은 하기 싫음 안 해요. 사표 냈어요. 공부도 사표 냈지.

     공부를 어떻게 사표 낼까 의아해 하는데, 어르신이 계속했다.

논문 막바지에 지도교수 면전에다 뭘 다 던져버리고 나왔다고들 하더라. 본인은 암 말 안했어. 옆에 사람들이 술렁댔지. 에피소드로 넘기고 계속할 줄 알았었는데. 저 사람은 싫으면 안 해요, 암 것도 못 해. 결혼도 안 할걸, 아무 때고.

     말이 참 애매했다. 결혼을 안 하다니, 무슨 말일까. 아하, 싫으면 결혼생활을 그만 둘 것이라는 말인가 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아내 편에서 싫어하지 않아서라고 믿는, 후훗, 근자감인가. 그런데 무엇이든 싫으면 안 하는 그것이 가능할까. 학교 사표야 그렇다 치고, 다 쓴 논문을 포기하고 망쳤다니. 믿어지지 않지만 믿는다. 헛소리를 하실 어르신이 아니니까. 어쨌거나 그 이후로 나는 사람들에게 인격이 몇 개씩일까 하는 의심을 갖는 버릇이 생겼다.

 

 

     맞다, 젓가락 언니네 딸, 남편에게 신장을 주기로 한 40살 여자는 오직 진심이었을까. 거절을 안했을까, 못했을까.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엄마니까 살아야할 의무. 만에 하나 죽어서 없는 엄마는 엄마도 아닐 것. 신장이식 가능성일랑 모른 척하고서 투석환자의 아내로 살아갈 얼굴. 남편 얼굴을 계속 보려면 신장을 떼어주고서야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얼굴. 장기를 사랑과 바꾸려는 얼굴. 얼굴들.

     남편이라면,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남편에게 신장을 떼어줄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남편이라면 내게? 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A형과 B형으로 만나게 하셨도다! 인생에 가정은 없다! 가정이라면, 남편은 나에게……아니, 가정을 해서 괴로울 필요도, 가정을 해서 행복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

 

     남편이 부르건 말건 핸드폰을 꺼내들고 일어났다. 위로가 될지 말지, 전화는 해야 될 것 같았다.

     언니, 나예요, 3층. 아까 밭에서 뭘 하고 있어서. 언니, 어떻게 해요. 그런 결정은 본인에게 맡길 밖에요.

     아니, 긍께, 첨에 지가 꼭 띠준다던 친동생도 물러나 부렀는디. 그 집 아덜은 더 어링께 쉽잖겄제. 허기사 우선 투석함서 살믄 됭께, 쌔고 쌨잖여. 그람 될 일을 기연치 가시나가 나서등마는. 초등학생 중학생 놔두고 엄마가 되갖고, 그라다 지가 덜컥 죽기라도 허먼 어짤라고. 얼굴 수술 하다가 죽기도 허는디, 세상에나 쌍까풀 허다가도 갔잖여.

     무슨 소리! 사실 신장 이식쯤은 옛날 맹장수술 같은 정도래요. 요즘에는 일 년이면 2,000건도 넘게 하는 수술이래요. 이식을 하면 받은 사람도 80, 90퍼센트는 다 건강하게 살고……

     뭔 소용!

준 사람도 신장 둘 다 갖고 사는 사람들이랑 비교해서 건강에 별반 차이 없대요. 사랑에 넘치는 정말 용감한 사람들인데 무슨 일 있을라구요.

     사우 고놈이사 지가 아파서 긍께 어쪄! 해필 AB형이여 갖고, 누구 것이등가 다 맞다고 띠어간당께 도둑놈 따로 없제. 기연치 이식을 한다고만 항께, 생때같은 내 자석이 먼 죄여!

     언니, 진짜로 둘 중에서 더 튼튼한 신장을 남겨 둔다니까요. 아마 복강경으로 할 거예요. 웬만한 수술은 배에 칼 안 댄다니까요. 일주일 안에 퇴원해요. 딸애가 원래 튼튼하다며, 이번에 온갖 정밀검사 다 했을 거고, 완전 건강하니까 결정 났을 거고, 맘 편하게 더 행복하게 살 거예요. 병원에서 일러준 대로 조심할 것 있음 조심하면 되죠. 아무 일 없어요.

     그래도…….

     언니, 내가 병원 근무 오래 해서 좀 알잖아요. 정말 우리나라 의료실력 대단해. 미국에서도 신장이식 하러 온다구요. 나 아는 사람 친척 언니, 벌써 몇 년 전인데 거꾸로 형부가 언니한테 준 거래요. 미국에선 형부 나이 많다고 수술 못 한댔는데, 서울 나와서 잘 하고 갔대요. 그 형부는 세스나기라던가 뭐라던가 몇 억짜리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완전 멋쟁이라는데, 수술 후에도 조종이고 뭐고 끄떡도 없대요.

     그래도…….

뭐야, 언니. 왜 그래. 신장 하나로 살아도 비행기 조종도 한다니까요. 언니가 마음을 다잡아야지. 서울 병원서야 빨리 퇴원시킬 것이고, 집에 오면 못 쉬는데. 내려오면 한 2주 쉴 병원을 알아보던가, 바이탈 체크도 매일매일 하고…….

     그래, 그럴까. 언니는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민지 엄마, 근디 정말 괜찮겄제? 신장 하나 갖고 살아도 암시랑 않다는 말 도저히 못 믿겄는디. 어떻게 똑같이 괜찮냐고. 하나로도 괜찮으먼 하느님이 왜 둘씩 만드셨겄냐고. 둘이 필요항께 둘을 만드신 것 아녀?

     급할 때 하나 선물해도 좋다고 둘 주신 것이지 뭐. 언니가 맘 단단히 먹어요. 당분간은 딸애를 봐 줘야잖아. 아버지가 딸 뭐라 하는 것도 이제 좀 말려요. 사는 게 매 순간 선택이잖아. 연애결혼 했겠지,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어쩌고 맹세하고 결혼들 했잖아요. 신장 하나 주고나면 대신 더 많은 것들을 받겠죠. 뭘 받으려고 준단 말은 아니고. 딸애한테 자부심 같은 것 생기겠죠, 할 일을 다 했다고. 아니, 다른 사람이라면 못할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 몸은 손해 보고 맘은 이익 보는 것이야. 딸이 현명한 결정을 했어, 언니! 딸 그냥 안아주기만 해요.

 

     언니는 그예 훌쩍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하니 내가 너무 너스레를 떨었다 싶었다. 어떻게든 위로해주고 싶어서. 참, 이식수술하면 검사나 수술 비용 일부를 환급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걸 알까. 젓가락 언니 그런 쪽으론 은근 바보던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당장 수술하는 것을 반대했던 장인을 대하는 사위의 꼬락서니다. 고생 되더라도 몇 년 만 투석을 하면서 기다리라고, 애들이나 좀 더 키워 놓고 하라고, 충분히 그런 말을 하고도 남을 장인 생각은 1도 않고, 믿었던 처가에 대해 서운하다고 실망했다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는 사위. 그게 가능한 일일까. 딸의 신장을 받아가면서, 그 부모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 근데 좀 괘씸하네요. 사위 진짜 밉네요, 닫았다는 마음의 문에다 못질해버리겠다고 하세요. 이 말은 차마 못했다. 남의 사위지만 정말 괘씸하다. 무릎을 꿇고 이해를,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그 뻔뻔함은 자신의 인격만을 주장하는 똑똑함일까. 뻔뻔하더라도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걸까. 이 생각 저 생각하면 패자가 되나.

 

 

     아니, 다른 사람 생각을 말자. 나는, 나 자신은 어떤가. 나라면 신장을 달라고 말할 수 있고, 신장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또 신장을 주겠다는 생각이나 했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내 생각이 있고, 생각을 말하고, 말 한대로 행동하는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고 그 나름 사람들의 호감을 받고 살아간다고 치자. 그것들은 그냥 지나쳐 가는 것들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직접 내 삶과 관련된 일이다. 우선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확실히 내 생각으로 의견을 내고 존중받는가. 나 혼자 있을 때, 그때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나에게도 친절한가. 마음이 느슨해지고 몸이 풀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렇게나 어질어진 것도 내버려 두고, 흐트러진 소파에 벌렁 눕는다. 안 예쁜 모양새면 어떤가. 예쁘려고 태어났나. 남편과 있을 때 긴장하는 나와 혼자 있을 때 펑퍼짐하게 풀어진 나, 어느 것이 나인가. 이 무슨 잡념인가.

 

     지금도 남편을 좋아하죠, 당근 좋아하니까 함께 살죠, 라고 말하는 너. 너는 진정 남편을 지금도 100퍼 좋아하고, 좋아하니까 함께 사는 것이냐. 은이 씨, 함께 살기 힘들고 살기 싫으면 그만 살아도 좋아! 남편은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뭔가 콕 짚는 말을 장난쯤으로 흘려듣고 마는 너. 남편에게 네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그 말, 당신 없음 못 살아! 라고 말해도 시원찮을 때. 떠나고 싶음 떠나라? 깊이 따지면 무서우니까 지나쳐버리는 너. 늘 진지한 생각을 피하고, 대신 모두가 편한 방향으로 그렇게 모서리를 갈고 닦아온 얼굴. 둥근 얼굴.

 

     백일 산후 휴가 끝에 아기를 24시간 놀이방에 맡기고 출근했던 너, 물론 퇴근 때는 아기를 데려와서 보살폈고, 밤새 아기 케어를 잘 해주던 남편이 고맙기만 했어. 아기를 좀 더 오래 품어 키우고 젖도 먹이고 싶었던 너의 본능은 남편과의 인생계획과 늘어나는 잔고로 덮였던 게야. 간호조무사 생활 30년쯤 되어갈 때 3층 건물 주인이 되었고, 이쯤이면 임대료로 생활하고 병원 그만두라던 남편의 말에 무한 감동했던 너. 너무 갑작스런 말이라서 놀랍기도 했지만, 좋기만 했지, 그만두라는데!

     하지만 막상 퇴직했을 때 너는 쉬지 못했어. 편하게 실업수당을 받던 기간에도 맘은 켕겼지. 사지육신 멀쩡한데! 너는 곧장 알바를 시작했어. 가정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남편을 거들어야지, 암! 착한 은이 콤플렉스! 남들처럼 좀 쉬고, 문화센터도 나가고, 다이어트 운동도 하러 다니고. 무엇보다 가끔 청주 가서 엄마랑 버섯탕 먹으러도 가고. 그런 느긋한 생활은 생각만으로도 죄로 갈 일이었어. 마침, 아주 마침, 야간으로 다녔던 사회복지과에서 따 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생각났어. 실업급여 기간 끝나자마자 그걸 들고 노인복지센터를 찾았지. 다시 주말에만 쉬는 직장인이 된 너. 너의 결정들은 언제나 너의 것이었는지. 무심코 남편의 희망들에 맞춘 것 아냐!

 

     사실 나는 어떤 결정 앞에서건 늘 흔들린다. 학위논문을 버렸다는 사람, 신장을 떼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다니. 나는 결정 앞에만 서면 흔들렸다. 이건 경솔한 생각일 수도 있어. 오랫동안 고민을 한 다음에 결정해야 해. 고민을 하면서 두리번거린다. 나는 또한 의심에도 빠진다.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면 차라리 낫겠다. 나는 나 자신을 많이 의심한다. 자신이 없으니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얼굴로 사는가 보다. 착한, 좋은 사람이고자. 남편 앞에서는 남편이 원하는 얼굴……

 

     은아, 뭐해! 불러도 모르네!

     내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를 남편이 아예 다가와서 나를 불렀다. 이름만으로 불렀다. 사과나무를 잘 심어주었으니 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기 싫다. 무슨 일인가.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하기 싫다. 내가 말을 하면 내 말일까. 내 생각일까. 나에게 생각이란 것이 있을까. 틀려도 내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 그것을 생각해 보았을까. 갓 심은 사과나무 아래서 일어난 혼란, 갑작스러운 이 불편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뭉툭한 접목 부위가 계속 눈에 밟힌다. 발목에서 잘린 대목은 얹혀살고 있는 접수를 온전히 제 몸으로 받아들일까. 얹혀사는 놈이 주인 행세일 텐데. 평생 한 뼘 남짓으로 햇살과 공기를 느끼며 토막으로서만 사는 삶, 죽어라 빨아들인 물이며 양분을 다 올려주는데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이름 없는 존재. 아뿔사, 내 발목은 괜찮나. 두 손은 무사한가.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으며 내 손 같은 느낌이 아닌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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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작가교수세계 25호, 5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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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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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3. 1. 3. 11:29

사랑, 지나고 나면....... 김윤아


침묵

 

 

 

     침묵만이 위대하다. 다른 모든 것은 유약함이다. ‘유약하다’도 아니고 ‘유약함’이라고 한다. 했다. 「늑대의 죽음」이라는 시다. 죽어가는 늑대가 말한다, 쉼 없는 사유와 노력을 통해 영혼이 스토아적인 긍지의 드높은 경지에 이르라.

    스토아 좋아하네! 알프레드 드 비니, 잘 모르는 시인이다. 비니인가. 드 비니가 더 프랑스 사람 같은……

 

    띵똥. 띵똥 소리가 난다. 이제 막 집중했는데, . 그는 일어서려다가 앉는다. 무슨 상관, 침묵을 깰 수는 없다.

 

    뭐더라, 드 비니 - 그의 일생은 환멸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정열 때문에 이상을 단념할 수 없었고, 그 이상을 믿기에는 너무도 투명한 의식을 가졌다. 절망의 딜레마 속에서…….

어딘가에서 읽은 누군가의 글이다. 하도 여러 곳을 서핑했었기 때문에 누가 어디에 썼던 글인지 알 수가 없다. 양심이 찔린다. 표절이니 도용이니 얼마나 무거운 단어인가. 기껏 잡문이지만 글은 글이다. 드 비니가 침묵을 예찬했다면 그것으로 끝이지, 일생까지 곁들여야 할까. 신빙성을 높이려면 그 정도는 필수려나.

     환멸의 연속 – 친가 외가 모두 귀족이자 군인 가문이었으되, 어라, 1797년생, 귀족으로 태어나려거든 한 세기 전에 태어날 일이지. 운은 운이다. 부르봉 왕가는 곧 권좌에 복귀했고,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의 젊은이는 스무 살도 안 되어 근위대 소위가 되었다. 군인이면서 시를 쓰던 드 비니는 위고가 발행하는 문학지 《뮈즈 프랑세즈》에 기고했다. 하지만 차츰 위고와는 다른 길로 갔다. 그는 상아탑으로, 위고는 민중 속으로.

     그때 1852년, 어떻게 혁명으로 추대된 대통령이 셀프쿠데타로 황제가 되나. 어머니가 남긴 장원에 은거해 있던 드 비니는 상아탑에서 살아갔다. 가난을 감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유로울 능력이 없다! 라던 위고는 쿠데타를 공공연히 반대하여 추방되었다. 근 20년을 섬으로 떠돌던 망명자는 『레 미제라블』 같은 엄청난 보따리를 안고…….

     그는 위대함에 압도당하는 자신의 속물성을 반성한다. 너는 시인의 위대성에 관해서가 아니라 침묵에 관하여 쓰고 있는 거야! 침묵은 위대한 위고가 아니라 잊힌 드 비니의 몫!

     사는 것은 하인들도 한다. 사실 그는 이 시건방진 말 때문에 드 비니를 피하고자 했었다. 정치적 염세주의는 이해가 되었다. 신념으로 충성을 바치려던 왕정의 무가치성을 목도했으니 그럴 밖에. 드 비니는 심지어 자살에 관한 명상을 쓰기도 했다. ‘엘레바시옹’이라던 시 작품들에서다.

     솟구쳐 올라 죽으라? 자살하라고? 인생이 발레라면 자살이 상위 동작이네. 아니, 침묵 속에 죽으라? 자연은 무정하다.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침묵할 뿐이다. 침묵하는 신에게 애원하지 말고 너도 침묵하라. 운명을 감수하라. 말없이. 결정적 순간의 고독을 받아들이라.

 

     아니, 고독은 처음부터였다. 침묵도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우리 애가 글쎄 우리나라에 처음 추기경이 임명되신 날 태어났어요! 터무니없이 그의 탄생을 축복으로 여겼다던 어머니 루시아는 지쳐갔다. 신에게 애원하다 지쳤을까. 말을 잃어갔다. 사람들은 귀머거리라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서는 침묵했지만, 다른 말들은 했다. 그의 말도 알아들었다. 아버지를 모르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알랴. 침묵은 그런 뜻이었을까.

     어린 시절도 시국을 탄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서 칭찬받는 짝꿍 계집애 때문에 속상했지만, 그는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 약진이 뭔가는 설명을 들어서 좀 알았지만, 우리의 처지는 뭘까. 담임 선생님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 자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권리는 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자유라면 광덕 아제가 목을 매단, 봉덕 아제가 저수지로 들어가 버린 그런 것일까. 자유로 땡볕에서 땅을 파고 자유로 소똥과 씨름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그리 생각했다. 아제들 얼굴은 온통 시퍼렇게 흙빛으로 그을렸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구릿빛으로 익은 보람에 찬 자랑스러운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은 글이 아니다. 다시 쓰자.

     어딘가 서핑 동안에 인간은 자신이 나왔던 침묵의 세계와 자신이 들어갈 또 하나의 침묵의 세계, 곧 죽음의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되므로,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이라고. 왜냐. 침묵은 말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어렵다. 많은 독서는 혼란을 준다. 잠깐, 글은 말이 아닌가. 말이다. 말 안에 글이 있다. 글은 정지되어 있는 말이다. 침묵에 우선권을 주려면 침묵에 관해서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 글은 더더욱……

 

    띵똥. 아니 무슨 띵똥 소리야. 짜증이 그를 압도한다. 뭡니까? 라고 소리치며 문을 열려다가 멈춘다. 이 시각 대낮에 무위도식자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 글값이 쌀값에 미치지 못함에 부끄럽다. 시인 축에 들기는커녕 강의 시간마저 달랑거린다.

 

     ‘내 주장, 그것은 세상이 시인에게 주지 않는 빵이다. 내 주장, 그것은 시인이 부득이 할 수밖에 없는 자살이다.’ 귀족 시인 알프레드 드 비니의 주장이었다.

     내 주장은, 그는 단호하다, 사람은 직업을 가진, 직업을 못 가진 부류로 나뉜다. 돈으로 말해도 같다. 돈을 가진, 돈을 못 가진 부류. 아니, 권력으로 말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권력을 못 가진. 권력이 가장 센 단어다. 직업도 돈도 있더라도 비굴해 지는 것은 순간일 터.

     늑대는 말한다. 탄식하고, 눈물 흘리고, 간청하는 것은 한결같이 비겁하다. 운명이 그대를 부른 길 위에서…… 나처럼, 아무 말 없이 고통을 견디며 죽으라.

 

     띵똥! 소리는 고집스럽다. 대문께가 아니라 머릿속인가. 그가 반응이 없자 다른 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사랑 빛나던 이름 그리운 멜로디 아련히 남은 상처~~ 빨간색 여자가 빨갛지 않은 서늘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웬 사랑! 침묵이라니까! 그는 고개를 젖는다. 소리는 계속된다. 아무것도 아닐 그 마음의 사치에 가진 모든 것을 다 소모해버리고 그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

남지 않았지, 그는 되뇐다. 멜로디 없이. 그날 이후 나는 죽었소. 눈물대신 말을 그는 토하고 피도 살도 영혼도 내겐 남지 않았소. 죽지 않은 것은 나의 허물 뿐~~

 

..........................................................
계간문예 2022 가을호 69,  248-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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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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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2. 7. 27. 17:50

    새순이 움트려나 보다. 텅 빈 나뭇가지들 끝에서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렇게 움틀 때를 알고 움을 틔울 준비를 할까 신기하다. 이 아파트에는 나무들이 꽤 많다. 옛날 아파트라서 동 사이가 넓다. 지상뿐인 주차 공간은 많지 않아 라인에서 먼 데다 차를 세운다. 그것도 그대로 좋은 것이, 낮 시간에는 그리 춥지도 않고 마스크 사이로 살짝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는 몇 미터가 시원하기까지 하다. 고층아파트 사이의 공기가 무에 대단할까만, 공기는 공기다. 공기가 그립다니.

    요즈음은 격리가 남의 일 아닌 것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죽 같다. 엊그제 설날 아침에 18,000명이던 확진자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 곧바로 20,000, 그리고 22,000을 훌쩍, 오늘 아침에는 27,000을 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대로 2주를 더 연장해서 사적 모임은 6인까지다. 거리두기 때문에 자영업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수당을 받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에게도 생계형 문제가 닥치고 있다. 우선 우리들이 확진되거나 밀접접촉자가 되어 일을 쉰다. 감염 위험 때문에 방문요양서비스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는 더 낭패다. 수급자들이 기저질환이 많다 보니 불안해서 그런다. 그렇다고 방문요양을 중단하면, 중단할 수 있다는 말은, 평소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말인가.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는 수급자들도 있긴 하다. 몸은 좀 불편해도 정신은 말짱한 경우도 있다. 이런 할머니들은 시시콜콜 감독성 멘트를 날려서 힘들다. 우리 센터는 규모가 큰 편이고 시영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보니, 수급자 할머니들이랑 뭔가 한 동아리로 돌아간다. 일정한 수급자 숫자를 유지해야 하는 센터가 저자세이고, 수급자들의 투정도 각가지다. 따쑨 물 쓰지 말어, 한 데도 아니고 아파트 안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다. 심한 경우는 화장실도 막는단다. 여서 물 쓰고 휴지 쓰고 할 일 있당가, 얼릉 코앞에 복지관 갔다 올 일이제. 그런 묘안이 어디에서 나올까.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서 이런 요령이랄까 꼼수만 남은 것일까.

    센터의 어려움도 확실해 보인다. 방문요양을 끊는 집이 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사회복지사가 월 2회 상황을 점검하러 다니는 일도 월 1회로 바뀌었다. 모든 부분에서 감축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평상심을 유지하고 잘 살아간다. 이 상쾌한 공기를 느끼는 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따뜻한 밥 냄새도 좋다. 나를 위해 짓는 밥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지은 밥 같기도 하다. 들어서는 순간 준비되어있는 갓 지은 밥이라니! 훈훈한 냄새를 기대하며 계단을 오른다.

 

    어? 대문에 새 종이가 붙어있다. 오늘이 입춘인가 보다. 입춘대길은 알겠는데 다른 복잡한 한자가 왼쪽으로 붙어있다. 작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번엔 무슨 글자인가 물어봐야지.

    우선 밥부터 먹고! 그런데 난데없는 달래무침이다. 통새우와 동그랑땡을 야채들과 볶아서 내놓는 이름 없는 이 접시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메뉴인데, 상치가 아니라 달래를 곁들여? 보호자 할머니한테 듣고 보니, 입춘에 영순위로 먹는 채소가 달래란다. 저녁에는 부추전을 부칠 거란다. 향 진한 채소가 입춘 음식이라고, 별것을 다 챙긴다. 하긴 노년의 일상이 밥 먹는 것 말고, 아니 약 먹는 것까지 해서 먹는 것 말고 더 있을까. 수급자 어르신이 식사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면서 함께 먹는 일이 이젠 일상 같이 느껴진다. 내가 아직 학생 때 돌아가셔서 내 먼 기억 속에 훨씬 젊게 남은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우리 아버지는 이 어르신처럼 완전히 흰머리가 되어보신 적이 없다. 흰머리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 머리카락이 아버지를 닮아서 살짝 곱슬이라는데, 아직은 검고 윤기 나는 이 건강한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할까, 변하겠지. 아버지에게서 보지 못했던 하얀 곱슬머리는 어떤 느낌일까.

    보호자 할머니는 누룽지까지 내오고서야 자리에 앉는다. 누룽지도 어르신 몫이다. 할머니는 사실 대충 먹는 느낌인데, 점심 후에는 큰 잔으로 커피를 마신다. 나도 커피 잔을 들고 마주 앉는다.

 

    아, 대문에 쓰인 한자를 물어야지. 입춘대길 옆엔 무슨 말이에요? 건양다경이라고 한다. 세울 건, 햇볕 양, 많을 다, 경사 경이니, 맑은 날 많고, 좋은 일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는 뜻이란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경사죠. 다른 말들도 있는데,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라고 써 붙이기도 해요.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는 뜻인데, 노인들 집에는 욕심 사나워 보이죠.

    노인들이라고…….

    이제 창문을 자주 열고 해를 들여야죠! 겨우내 유리창 햇볕이라도 길게 들어와서 다행이었죠. 할머니는 말 돌리기 선수다. 말을 하면 그렇다.

    기다리는 마음에서나 말에서나 봄은 시늉이라도 오고 있다. 아니, 아파트 거실 안은 겨우내 봄이다. 어르신은 거실에 들인 화분들 중에서 좋아하는 딱 두 개만을 베란다 유리창 쪽으로 옮겨 놓는다. 둘은 오늘도 그렇게 해를 바라고 있다. 나무들은 흙에 심겨서 물을 받아먹으며 가끔 해를 맞는 것만으로도 새순을 낸다. 나는 화분들에 별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닌데, 덩굴 식물들을 보면 신기하다.

이 덩굴에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별사탕들을 한 움큼 쏟아놓은 것 같아요! 할머니는 은근 꽃을 기다리는 눈치인데, 내가 온 이후로 2년여, 꽃이 핀 것을 본 적이 없다. 상상이 가지 않는 꽃 모양에 슬그머니 폰에서 인터넷을 열어본다. 이름이 호야? 이렇게 엉뚱하게 예쁜 꽃이 덩굴 사이에서? 정말 꽃이 피어봤음 좋겠다.

 

 

    점심 후면 으레 소파에 앉아있는 어르신이 비스듬히 스르르 눈을 감고 낮잠에 빠진다. 딱히 할 일이 없다. 유난히 밝아진 베란다에 나가보니 대청소가 되어있다. 벽에 말라붙어 있던 팥죽 흔적도 말끔히 사라졌다. 팥죽은 지난번 동짓날 사건이었다. 베란다에 내어놓았던 죽을 거두어 오면서 벽에다 뿌렸다 했다. 정월 보름에 장독대나 대문 밖에 차려진 오곡밥을 먹으러 동네를 누빈 기억이 아스라했다. 밥은 집마다 달랐고 아이들은 그것을 재미있어 했다. 아파트 성냥갑 안에서 21세기에도? 웃긴다. 더구나 하얀 내벽에다 뿌릴 것까지야.

    그냥 재미죠. 할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변명처럼 말했다. 그냥 괜찮은 습속이었다 싶어요. 팥이 귀신을 쫓는단다, 동지죽을 밖에다 퍼다 내어놓고 복을 빌어라! 그러니까 복을 비는 마음으로 죽을 내다 놓았겠지요. 죽을 내다 놓아야 먹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고. 요즘에야 밥이 귀하지 않으니까 미신으로 보이는 거라.

    하긴 누구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야 뭐 미신인들 어떠랴 싶었다. 이 시시콜콜 구식 할머니는 그때 동짓날 말이 옛날엔 동지를 새해의 시작이라고 했단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마음 든다는 것이니, 땅 밑에서 움트려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네요.

    아니, 푸성귀들이 꿈틀거려요? 겨울잠 자던 동물들도 아닌데?

    동물처럼 꿈틀거리기야 하겠어요, 어차피 붙박이들인데. 하지만 움직이는 다리가 없다고 해서 풀들을, 식물들을, 무시할 일은 아녜요, 뒤틀든 꼼지락거리든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씨앗도 껍질을 깨뜨려야 싹이든 움이든 틀 것 아니겠어요. 제 몸을 깨뜨리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자라나죠. 가만있음 어떻게 살아나느냐고요. 봐요, 나뭇잎들. 이 시시한 덩굴들. 볕을 못 보면서도 날마다 자라잖아요. 초겨울 들여올 때는 고무나무 잎들도 텔레비전을 이렇게나 가리진 않았었는데.

    맞아요, 이거 작년 겨울에 비해서 엄청 자랐어요. 지난 봄 베란다에 내놓을 때는 몰랐었는데 이번 봄에는 못 나가요, 보세요, 두 팔 다 벌려도 모자라는데 베란다에 못 들어가요. 가지들 잘라야죠.

    우리가 훨씬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든가.

하하, 봄 되기 전에 이사를 가요? 이사 같은 건 완전 접었다 하시더니만. 이제 와 고무나무 내놓을 넓은 베란다를 찾아서 이사를 가시게요?

    말이라도, 자르기 아까우니까 말이라도 그냥 그렇게.

 

 

    이사 말을 꺼낸 건 살짝 놀라웠다. 노인들에게 이사란 쉬운 일이 아닌, 어쩌면 금기다. 십여 년 전엔가는 이분들도 이사 맘을 먹은 적이 있었더란다. 어르신 은퇴 후 무료한 도시생활에 염증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다들 그런다. 요즘엔 은퇴 후 농막을 갖는 것이 로망이라고들 한다. 일찌감치 농가주택을 가진 우리를 부러워하는 이웃들이 참 많다. 남편은 생각이 앞서는 사람 같다. 아무튼 어르신네는 새 환경에서 적응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어 차일피일, 그러다가 기회는 아예 사라졌단다. 할아버지한테 갑자기 인지문제가 생길 것을 예감이나 했을까. 이미 크고 작은 혼동을 겪게 된 노인들이 언감생심 무슨 이사인가.

    이 할머니는 안전안내 문자가 오면 실종신고만 본단다. 나는 수급자 어르신들 집에 가면 습관적인 인사처럼 확진자 숫자를 말해준다. 근년 들어 그게 뉴스 일 순위다. 좀 보세요, 광주 오늘 800명을 넘었어요, 829명이라고요, 라고 해도 이 할머니는 신청도 안 한다. 설날만 해도 500명이던 것이 하루에 100명씩도 더 넘게 계속 계속 올라간다니까요, 금방 두 배예요, 라고 해도, 전염성을 어쩌겠어요, 그러고 만다. 대신 실종신고 문자를 보면 숨이 멎는단다.

    여기 보세요! 경찰청 안내, 서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79세)를 찾습니다. 157cm, 57kg, 분홍색 내복, 꽃무늬 조끼, 검정바지. 그러니까 이 겨울에 겉옷도 잠바도 안 입었네! 여기 또, 북구에서 실종된 이oo(남, 82세)를 찾습니다. 162cm, 53kg, 파랑색 잠바, 검정 바지. 뭐야, 남자가 키도 작네, 마르기도 하고……. 지 선샘, 정말 내가 왜 이럴까. 실종신고를 계속 계속 모아두거든요, 찾았다는 후속 소식이 올라올까 싶어서. 그게 꼭 한 번, 일 년 내내 두고 보아도 찾았다는 소식은 단 한 번뿐이었어요. 다들 어디로 사라져서 어떻게 끝나는 걸까.

    실은 온 나라가 마스크를 배급처럼 요일별로 사러 다니던 시절, 그때는 내가 이 댁에 다닐 때가 아니었다. 이분들이야 외출할 일들이 별로 없으니까 몇 번은 요일을 지나치다가, 할머니가 큰맘을 먹고 약국에 가려다가 진짜 난리가 났었단다. 아파트 마당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관리실 쪽에서 큰 소란이 나서 돌아다보았더니, 경비아저씨가 바로 이 어르신을 붙잡고 있었단다. 어르신이 비틀 걸음으로 뒤따라 나왔던 모양인데, 외투도 안 걸친 모습을 경비아저씨가 곧바로 보고 붙들었으니 망정이지……. 사고는 순간에 일어난다. 대문 안쪽에는 ‘집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문구와 예쁜 집 그림이 붙어있다.

 

    이거 좀 보세요, 여기! 할머니는 여전히 실종신고에 가 있다. 광주경찰청, 광산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91세)를 찾습니다. 150cm, 45kg, 티셔츠, 몸배바지, 밤색 슬리퍼. 이 정도면 그냥 울고 싶어. 추운 겨울이에요. 입춘이라 해도 밤엔 영하의 날씨가 며칠째 계속인데. 밤을 잘 이겨낼까? 어려서, 우리가 아주 어려서는 거의 아버지 혼자서 신문을 보셨지요. 밥상에서 한마디씩 하시는데, 어느 겨울날, 저런 저런,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하시는가, 어젯밤에도 다리 밑에서 행려병자가……. 우리는 그다음 말을 듣지 않았지요. 잽싸게 자리에서 피해버리거나, 그러지 못하면 머리를 쥐가 날 만큼 경직시켜요. 그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죠. 그렇게 소리를 듣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기술은 학교에서도 써먹기 좋았어요. 듣기 싫은 수업 시간 있잖아요. 가끔이지만 어떤 싫은 말들, 애들이 조른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어요. 그럴 땐 머리를 쥐가 나도록 웅크리는 거예요. 그럼 소리들을 안 듣고 지나가죠. 그냥 멀쩡하게 앉아서요. 나중에는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대충 그대로 말해주는 선생님 앞에서도 귀를 닫았죠. 심심해서요. 대신 다른 나라에 가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라니. 이 할머니는 가끔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귀를 닫고 소리를 일부러 안 듣는다고? 소리라는 게 저절로 들리는 것인데 그걸 안 들을 수도 있다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흘려듣는 학생들이야 많지만, 일부러 안 듣는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고 내가 우긴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를 어떻게 닫느냐고. 할머니는 웃고 만다.

 

    어르신은 미동도 없다. 깨워야 할 시간이다. 다 같이 거실로 자리를 옮긴다. 텔레비전은 거의 소리가 없는 채로 늘 켜져 있다. 오늘은 어제의 대선후보들 토론에 관한 이야기로 뒤범벅이다. 앗, 속보다. 화재다. 내 고향 충청도다! ‘충’자만 봐도 고향 생각인가, 아니, 화재란 이곳 현장이 공포다.

    생활 쓰레기 처리장이니 주택 동네보담 훨 낫네요. 나는 안심해서 말한다.

    그러네. 새벽이라 사람도 안 다쳤고! 불이 꼭 나야 한다면 참 다행이네요! 아니, ‘꼭 나야 한다면’이란 말 참 우습네. 오늘은 죽는 뉴스가 아니어서 넘 고맙네요. 아침에 일하러 나갔다가 일터에서 죽어 돌아오는 젊은이들, 아, 그런 뉴스 나오면 안타깝지, 거의 살해당한 거니까 정말 원통하지. 어디서더라, 일 년이면 일터에서 죽는 사람이 몇이라 했는데. 하루에도 다섯 여섯 사람이 죽는다던가. 일터에서 죽어 퇴근을 무덤으로. 지 선샘, 인터넷 한번 찾아봐요!

    뭣 하러요, 맘 아프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가만히 네이버를 열어본다. 2021년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숫자…… 아, 설마, 설마가 사람 죽인다더니, 설마 2,146명이다. 사람으로 200을 넘으면 상상이 안 가는 숫자다. 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운 숫자?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죽는다. 병도 아니고 그냥 사고로, 교통사고도 아니고 일터에서 일하다가. 추락사만 305건이라고 나온다. 날마다 한 사람이 추락하여 죽는다. 아뿔싸! 이 숫자를 말해? 말해서 뭐 해? 모르는 척하자.

    휴우, 그나마 산재사고에는 보상금이 있긴 하다. 그래봤자 보상금도 차별이 너무 심한 나라다. 하지만 케이 팝, 케이 문화에 케이 방역까지. 수출도 잘 되고, 심지어 수출 강국 운운하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맞잖아. 모르겠다.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니까 상황이 바뀐다. 산책 나가실까요? 오늘 바람 안 불어요. 그리 춥지도 않고요, 네? 어르신은 살짝 웃을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낸다. 이런 순간에는 말보다 표정이 더 중요한 소통이 되는 것 같다. 잘 듣지 못하면 말 대신 표정이 발달하나? 일단 산책이다. 할머니로부터 도망가자. 오늘은 입춘대길 좋은 날이라면서 계속 우울한 이야기에 빠져있다.

 

 

   에는 언제나처럼 몇 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나란히 앉아있기도 걷고 있기도 하다.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이 할아버지는 무관심이다. 우선 청력이 안 되신다. 천천히 걷는 걸음을 함께 걷다 보니 온갖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새순들이 정말 보인다. 망울들이다. 어떻게 공기 중의 온도를 알고 반응을 할까. 나는 아직 추운데, 내가 추위를 좀 타는 편이긴 하다. 더러는 오래된 나무들인데, 나무껍질로 보아서는 죽어 보이는 나무들에게서조차 새순들이, 새순의 징후들이 보인다. 금목서는 늘푸른잎을 지니고 있지만 오히려 푸석해져 있고 봄 준비가 늦다. 눈비가 적어서인지 지난해 직박구리가 깃들어 살며 배설해놓았던 흔적들까지 말라붙어 있다. 황홀한 향기를 주던 꽃을 피우던 시절이 아득하다. 하지만 곧 변화를 탈 것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일는지.

    그러다 보면 할아버지는 집 쪽을 향한다. 산책은 시늉이다. 시늉도 다행이다. 바깥옷을 챙겨 입는 것도 운동이고, 덧입는 순서가 문제랴. 장갑이며 마스크는 물론, 머플러며 모자까지도 둘렀다 벗었다 그 자체도 운동이다. 노인들에게는 움직임이 그대로 운동이다.

 

    텔레비전도 꺼져있는 거실에 할머니가 그대로 앉아있다. 시장에라도 나갔나 싶었는데 아니다.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손을 꼼꼼히 씻고 옷을 다시 갈아입고는 그대로 방에서 쉬겠다고 침대에 눕는다. 간식은 좀 있다 챙기기로 하고 다시 거실로 나간다. 오늘 살짝 좀 많이 걸으셨는지 방에서 쉬겠다시네요. 근데 뭐 하셨어요? 티비도 안 보시고, 그렇게 그냥.

    또 들어왔어요. 안전 문자! 영하에 티셔츠 바람으로 사라지는 노인들 너무 불쌍해요. 사망은 사망인 줄 알기나 하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라지느냐 말이에요. 근데 60대도 있었어요. 60대에도 치매가 있나? 집에 혼자 있다가 사라지는 거겠죠? 어떻게 살던 동네에서도 길을 잃나.

    다시 또 걱정은 길 잃는 노인들로 옮아간다. 과민할 정도이다. 어떻게 달랠까. 하긴 이 할머니는 수급자가 아니라 수급자의 보호자일 뿐이다. 내 소관이 아니다. 내게 좀 친절한 할머니라고 해서 내가 어쩔 도리도 의무도 없다. 아니다, 걱정을 좀 덜어주자는 묘안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노인들은 어쨌거나 집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까, 요양원에 보내져서 갇혀있는 노인들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말해줄까 보다. 남편 친구들만 봐도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 경우가 꽤 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근무하는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판검사도 심지어 의사도 부모를 시설에 의탁한단다. 누구라도 자신의 일상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데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볼 수 있는가 말이다. 요양원에 있으면 적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잘 재운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 시절이 되어서 요양원은 출입금지 시설이니까 감옥 그대로다. 오래 사는 것이 감옥 갈 일이다. 감옥 갈 일이면 죄다. 무기수. 먹을 것이 있고 깨끗한 잠자리가 있는 것만 다를 뿐, 고려장이다. 산속에 버려져 빨리 끝나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다. 요양원 이야기는 상황을 더 나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이 할머니는 요양원 노인들까지 걱정할 것이니까. 하등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들, 산재사고며 아무튼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에까지 목을 맨다. 실질적인, 뭔가 해결 가능한 염려가 아니다.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걱정을 해도 올 것은 오고, 걱정을 안 해도 올 것은 온다. 평을 하긴 좀 그렇지만, 굳이 말하자면 뭔가 생산적인 것이라곤 없다. 아파트 생활 몇 십 년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살고 있으니 재테크도 꽝이었겠고. 이제 와서는 온전치 않은 남편에 대한 배려 때문에 이 낡은 집을 고수한다니.

    아무튼 재테크는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해둔다는 것이 남편과 나의 원칙이다. 그래서 기어코 건물주가 되었고, 편한 아파트 대신 3층 한편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또 집에서 3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농가주택은 너른 밭이 주무기이다. 처음 그 밭에 서 있던 감격, 감격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코와 눈은 정직한 기억을 알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대한 실망감보다 더한 것은 축사가 있었던 자리에서 넘실대는 지독한 냄새였다. 냄새만이 아니었다. 발아래 땅은, 그 흙은 짐승들의 배설물 흔적으로 뒤범벅이었다. 환경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사람이라, 이제는 곧 감자 도랑을 골라주고, 계란껍질이며 좋다는 것 다 가져다 쌓아둔 비료도 흩뿌려야 할 때임을 안다. 멋대로 자란 봄동이라도 캐오면 이집 저집 나누어서 좋다. 집은 며칠 잠을 자도 좋을 만큼 보수되었고, 무엇보다 큰길에서 멀지 않은 지리적 조건은 언젠가는 크건 작건 복덩이가 될 것이 확실하다. 지금이야 불편한 것이 많지만, 참자, 견디자. 아직은 베이스를 넓히는 데에 몰두하는 거다! 최소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노인이 어떻게 살든 흉볼 일은 아니다. 나도 우리도 노인들이 되어가는 것을 어쩌지는 못한다. 노인이 되어 죽는다, 그것이 진리다. 그것도 다행스러운 코스일까. 갑자기 닥치는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일 것이다. 간호사의 남편도 또는 부모님도, 의사의 아내도 또는 부모님도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고, 더러는 의사 자신도 세상을 뜬다. 엄마의 담도암도 엄마나 우리들 탓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미리 절망을 말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의 이 말은 여러 선생님들한테서 들었다. 특히 고2 때 담임 선생님 말로는 ‘종말이 온다 해도’ 안 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된다고 믿고 사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고! 이익! 종말을 믿고 탕진해버리면 종말이 오지 않았을 때 어떡하느냐고! 수긍이 가는 말씀이었고, 우리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그리 알고 살아간다. 그런데 최근에 잠깐 그 해석이 너무 시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익이란 결과를 말하는데, 어쩐지 이 격언은 태도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멋있는 철학적 문장이 세속적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명언은 명언이지만.

    게다가 그 사과나무 명언은 낭패감을 불러온 적이 있다. 내가 언젠가, 무슨 경우였더라? 아무튼 내가 좀 아는 척을 하고 싶었을 때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슬쩍 말했다가 딱 걸렸다. 이 집 할머니가 다른 말을 했다. 그게 스피노자가 아니라 루터의 말일걸요. - 루터요? - 예, 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가톨릭에서 파문당한 사제요!

   아는 것이 병이다! 이 할머니는 가끔 그것을, 아는 것이 병임을 상기시켜 준다. 사과나무가 스피노자의 말이면 어떻고 루터면 어떤가.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 루터라는 이름을 콕 짚어서 알려줘야 했는가 말이다. 나는 순간 반박할 말을 찾았다. 사과나무를 루터가 말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누가 말했거나 좋은 말은 좋은 말이죠. 하지만 루터는……. 얼른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계속했다. 그래요, 누구면 어떤가. 루터가 직접 그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도 없잖아요. 다만 고향에, 독일 어디 시골 ‘루터의 집’에 그리 새겨져 있다고 하니까. 애초에 엄청 인기 있던 신부였잖아요. 성서 강독 교수로서도 완벽했었고, 무엇보다 어려운 라틴어 대신 쉬운 독일어로, 우리나라 같으면 한문이나 영어를 안 쓰고 순 우리말로 설교를 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신부님이 어찌 결혼을 하고, 그것도 파계한 수녀님과…….

    결혼, 그거야 나중 일이었죠. 세속의 아버지에게 손자들을 안겨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대요. 파계했더라도, 파계했으니까, 수녀들도 인간적 권리는 있는 것이고. 어쨌거나 루터가 하느님의 구원을 의심한 적은 없었으니까. 임종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되뇌었다는 성경 구절 아세요? 하느님께서 세상에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으리라, 그런 비슷한 구절인데, 난 잘은 모르잖아요.

    네, 그거 있어요, 요한복음에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그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다, 비슷하게라도 어떻게 아세요? 신자도 아니라면서요.

    성경 공부야 젊었을 때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기억에 남은 구절도 있는 것이고.

    맞아요,  신자 다 되셨네여.

    말을 하다 보니 부끄러워졌다. 내가 신자라서, 신자라고, 이 할머니를 좀 아래로 보며 말한 것 같았다. 고백하지만 나는 C학점도 받기 어려운 신자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나도 모르게 성호가 그어지곤 했다. 늘 반성의 마음은 있다. 수녀님의 형제자매이면서 게을러터졌음에 부끄럽다. 알면 무엇 하는가.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을 때, 돌아가셨을 때, 그런 때나 기도에 매달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도 작은언니가 수녀님이니까 기도를 잘하실 테지, 하는 의타심이 컸다. 그러다가 곧이어 막상 우리 수녀님이 아팠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늘 실천이 부족하다. 밥을 먹을 때,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정도다.

    습관적으로 판에 박은 기도문이 튀어나온다고 해서 내가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흔한 보통 사람, 현실적인 사람이다. 스스로 현실적이라고 말하다 보면 삭막한 느낌도 든다. 현실의 반대는 꿈인데, 꿈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내 꿈은 현실적이었던가. 남편에게 홀렸을 때 무엇보다 그의 무한 생활력을 보고 매력이라 느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기도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한에서 현실적으로 유불리를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어때서. 그런데 남이 말하면 이기적이라고 흉보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말은 어렵다. 말의 뜻은 말하기에 따라 듣기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때문에 느닷없이 가벼운 다툼도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설 며칠 전이었다. 남편이 저녁에 늦는대서 게으름을 부리고 뭐 적당히 사 먹고 말지 싶어 편의점에 갔다가 세탁소 언니를 만났다. 웬일로 안쪽 한편의 옹색한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누구랑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더니만, 핫바만 들고나오려던 나를 불러 앉혔다. 웬 맥주, 추운데, 하면서도 나도 의자를 당겨 앉았다.

    동네 사람이 아닌지, 처음 보는 아줌마는 이런 시절에 화장기가 좀 과했다. 그런데 그 빨간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라는 게 가관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지 그럼. 세상사 안 그래? 당근 제 식구들 감싸게 되는 거지! 아무려나, 집값이 고공행진이야. 세금 폭탄은 어쩌구…….

    먼 말이 그래? 집값 올라서 누가 싫어하간디? 가만 안거서 5억이 10억 돼서 나쁘달 사람 누구여? 집값은 올라라 올라라, 세금은 아깝다, 건 아닌겨. 세금 덕에 늘그막에 가용돈 걱정 줄잖여. 기초 받는 노인들 은근 많더만. 우리도 곧 노인이여! 세탁소는 지원금을 편들었다.

    어느새 내가 끼어들고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거라니, 좀 어폐가 있소. 힘 가진 사람덜이 팔이 굽는 대로 즈그 편 부자덜만 감싸불먼 된다요? 힘없는 가난뱅이덜은 어짜라고! 긍께 우덜은 부정식품이라도 묵어야제이. 여그 편의점에 부정식품 싼 놈으로 조까 없으까?

    3층, 왜 그래, 그만 혀! 가난하도 안한 사람이 왜 흥분혀! 세탁소가 달랬다. 둘 다 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바 아줌마도 힐끗거렸다. 머쓱해진 나는 냉큼 일어났다.

 

    한 블록도 안 되는 거리, 바깥바람이 찼다. 그나저나 내가 세탁소와 편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순 전라도 말이 튀어나온 것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말 때문에 나를 서울 출신으로 아는데 웬일이었을까. 이제 서울 가면 순 전라도 아짐씨라 하게 생겼다.

    보도의 돌멩이가 발끝에 걸렸다.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구르는 돌멩이 같은 인생, 밑바닥 인생이 최근의 화두였다. 극빈에다 못 배운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그런 게 필요한지 그조차 모른다고, 티비에서 그런 말 때문에 한 며칠 술렁였다. 어쩐지 불편했다. 고졸 간호조무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던 시절, 못 배운 채 극빈했던 나는 자유를 알았을까. 24시간 돌봄 놀이방에 백일 된 아기를 맡기고 출근하던 가난한 엄마는 자유를 알았나. 중간에 야간이라도 대학을 다녔고 경차라도 내 차를 끌고 다니는 지금은 자유를 알까. 자유가 뭘까. 아리송했다. 가난한 자는 모르는 자유! 맞다, 이것이 명언이다. 밤중에 무지개 타령을 말자. 애꿎은 보도블록을 쿡쿡 찼다. 쓸쓸한 마음으로 집에 올라오니 빈 방이 유난히 텅 비어있었다.

 

    남편은 그리 늦지는 않았고, 오도카니 앉아있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왜 저녁도 안 먹은 폼으로 그러고 있어, 좋아하는 티비도 안 보고? 그리 묻는 남편이 그날따라 맹맹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여보 당신은 자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뜬금없이 대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둘이 함께 일했던 병원의 원장이 큰 병원으로 들어가는 통에 순간 실직을 맞았었다. 첫 직장에서 그리 쉽게 실직이라니, 엄청 충격이었다. 곧 다른 병원에 취직을 했지만, 남편은 투잡 대신 저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해냈다. 철밥통으로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니까 자유로울까. 직장에는 사다리가 있잖은가. 남편은 기껏 집에서 채널 독점이나 하면서 자유를 누리는지도 몰랐다. 퇴근할 때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프로라도 보고 있으면 남편은 화들짝 채널을 바꾸곤 했다. 그런 델 왜 보냐고! 신문 방송이란 대중이 비판적 생각을 못 하도록 서커스를, 예능이다 트로트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입만 열면 ‘정치에, 공공의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더 악한 놈들한테 지배당한다고’, 누구랬더라, 난 참 외국사람들 이름에 약하다, 암튼 고대부터 내려온 불변의 진리라고 했다. 둘이 사는 집안에서도 자유는 구겨지기 십상이었다. 남편은 이런 내 기분을 모르는 거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모른다. 밖에서고 안에서고 구겨진 밤이었다.

 

 

    오늘따라 세 시간이 좀 지루하다. 잠깐의 산책이 움직임의 전부였다. 땅 위를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둣빛 기운들을 바라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새순이 꿈틀거리는 봄날들엔 일단 대문을 열어야 한다. 나야 정해진 시간이 되면 훌쩍 일어서서 나가면 끝이다. 몸조심하세여! 낼 봬요! 아님, 담 주에 봬요! 그다음은 정적일 것이다. 집안에 활기라곤 없는 노년. 보도 듣도 않는 텔레비전이나 틀어져 있는 답답함을 어쩌고 살까. 코로나도 일상이 되어가면서 무디어지고 있고, 무디어진 만큼 무서움이 덜해간다. 무서워져 가는 것은 정치판 뉴스들이다.

    요즘 참 어지럽네. 하늘 높은 거드럭거림에 업신여김에 이런 저런 분노에. 하지만 이것은 내 생각인데요, 분노는 힘이 되지 못해요. 자조에 빠지게 되거든. 지금 머릿속에서 맴도는 시, 옛날 시인데, 눈이 컸던 김수영, 들어볼래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이 할머니는 심심하면(?) 시다. 눈 큰 옛 시인을 내가 어찌 알아. 근데 시가 뭐 이러나. 왕궁, 왕궁의 음탕함? 난데없이 왕궁?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다. 아까처럼 길 잃은 노인들 걱정이 백번 낫겠다. 할머니에게 들킬세라 속으로 기도문을 왼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하느님은 우리를 유혹과 악에서 지켜주실지 모르나, 뉴스는 구덩이로 도배된다. 단순한 불운으로 무너지는 건물 아래에, 아님 필연적인 일, 밥벌이를 하던 중에 느닷없이 펄펄 끓는 용액 속으로, 기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뉴스를 바꿀 수 있는 기도가 있다면 좋겠다. ‘야훼여, 모르는 체 마소서. 나의 힘이여, 빨리 도와주소서.’

    그렇게 억울하게 속절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저절로 여물어 내린 토지에서와는 딴판으로 양분이 없어요. 울분만 쌓여있을 걸요.

    울분만 쌓여있는 땅이라고? 그럼 어떻게 새순이 나랴. 가슴이 덜커덩, 이내 의기소침해짐을 느낄밖에. 이건 내가 아니다. 어려움을 참고 노력하면 분명히 대가는 온다고 믿으며, 단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내가 왜 흔들리는지. 나는 현실에 뿌리내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가르침은…… 이제는 무용지물인가.

    아냐, 울분보다는 분뇨, 그래 소똥이 쌓인 게 백 번 천 번 낫다. 올봄엔 우리 소똥 밭에 사과나무를 심자고 해야지. 웬 사과나무? 남편이 물으면, 아침마다 사과를 따먹는 상상이 즐거워, 라고 말해야겠다. 산림조합에 사과나무 묘목이 나올까. 옥천 묘목시장까지 가야 하려나.

 

    드디어 태그 시간이다. 몸조심하세여! 담 주에 봬요! - 주말 잘 지내요, 지 선샘!

아, 이 신선한 바깥 공기. 차로 바로 가지 않고 큰 나무 둥치에 기대어 본다. 나무 아래는 달콤한 수액의 향기가 섞여 코끝이 촉촉해진다. 눈이 사르르 감기며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온통 연두다. 이 봄에 우리 농막에는 새 식구들이 늘 것이다. 사과나무 묘목은 두서너 그루 흙 많이 붙은 분달이로 사다가 돋아놓을 테다. 덩달아 고목나무에서도 새순이 날 것이다. 죽은 나무에서는 어떤 순도 움틀 수 없다는 너무 확실한 사실을 비껴가는 달콤함. 그래, 그 달콤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거야. 누가 뭐래도 봄에는 새순이 움트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백목련은 우아한 자태로 시선을 모을 것이고, 개불알꽃들은 그 푸르스름 작은 몸으로 여럿이 함께 마른 풀잎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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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 『월간문학』 641호 (2022년 7월호), 183~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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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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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2. 6. 14. 11:17

 

 

놀이터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 신광철 사람

 

    

    놀이터가 쓸쓸하다. 그려놓은 것처럼 정적인 것이, 그네 줄에 미세한 흔들림도 없다. 바람도 없나 보다. 11월은 무엇이든 쓸쓸해 보이는가. 하긴 평상시에도 놀이터는 옛날 같지 않더라. 그네를 좀 타 보고 싶었지만 세력 좋은 언니들이 오빠들이 좀처럼 틈을 내어주지 않던 어린 시절이 아스라하다. 동네 앞 공터에 색색 미끄럼틀이 생기고 시소가 생기고 나서야 여기저기 조금 놀 수 있는 구멍들이 늘었다. 그래도 그네 아래에는 늘 줄이 길었다. 손을 입에 넣고 빨다가 집에 들어오면 얼굴이 먼지투성이라고 핀잔을 듣곤 했었다. 세월이 마냥 속절없이 흘러버린 지금, 아이들 숫자가 엄청 줄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민지세대라나, - 왜 하필 민지야? 그냥 엠제트라고 해도 알아들을 터인데, 엠지든가, 일 없이 남의 딸 이름을 거기다 부르냐고! - 암튼 신세대 아이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해도 애들을 낳지 않을 거라고 한다니까 놀이터가 점점 텅 빌밖에. 코로나도 덧붙여 이유가 된다. 전에는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한쪽에 노인들이 있곤 했다. 놀이터 옆에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고, 거기서 노인들이 뭔가를 해보거나 더러는 그냥 앉아있기도 했었다. 이제 그 노인들도 주눅이 들어서 집에 꼼꼼 숨은 것이리라. 숨어야지 그럼, 살고 봐야지.

 

    그런 어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고발을 당했다. 우리 동네는 아니지만 어디가 대순가. 그 자체로 충격스러운 뉴스다.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웃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그런데 채널이 슬쩍 지나가고 만다. 오전 재가요양돌봄 할머니 어르신 집에서다. 오전 할머니는 뉴스를 잘 틀지 않는다. 바로 다른 채널로 돌려버린다.

    네이버를 뒤져보고 싶었지만, 할머니 어르신은 좀처럼 틈을 주지 않는다. 내가 출근하면 대부분은 교회에 가시는 날이 많고, 집만 아무렇게나 나를 맞는다. 잠깐, 어떤 때에는 의아하다. 혼자서 교회를 다니실 정도면 요양등급에서 흔히 말하는 경도인지장애 정도일까. 그건 치매 전 단계를 말한다. 그래도 거동이 되시는데 돌봄 서비스라고? 물론 혈액암을 앓고 있는 환자이시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 과정은 실제로 돌봄일을 하는 우리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재가요양돌봄 등급이 나왔으니까 서비스를 받는다. 아직은 경증이라서 출입이 가능하시겠지.

    대문을 열면 첫 냄새는 고기냄새다. 치료를 위해서 고기를 드셔야한다. 일단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방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는 빨랫감인지 구분이 가지 않으니까 일단 치워놓고 나중에 물어봐야 한다. 청소가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교회에서 돌아온 할머니의 눈초리는 매섭다. 당신이 없는 사이 뭔가 말끔하게 치워져 있기를 바란다. 오늘따라 더 이것저것을 살핀다. 느닷없이 청소를 의심하는지 말소리가 뾰쪽해진다.

    오늘은 청소도 안 했네이. 멋 했데.

    어르신, 저 오자마자 청소부터 하는걸요.

    아니, 걸레도 쩌렇게 물도 안 묻었구만, 먼 청소를 했다근데.

    아차, 내 실수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 보니까 별로 닦을 것이 없어서 냉장고 앞과 싱크대 밑만 물티슈로 닦았는데, 이도 저도 큰일이다. 이제 와서 걸레질을 안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청소했다고 했으니 거짓말이 되니까. 그렇다고 물티슈로 닦았다는 말은 더더욱 큰일 날 소리다. 설거지할 때 온수를 틀어 쓰는 지 그것도 염려하는 할머니 앞에서 물티슈를 쑥쑥 뽑아서 바닥을 닦았다고 하면 이해를 하겠는가.

    아, 이런 민망함은 생각도 하기 싫다. 사실 이 할머니가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기 전에, 그러니까 작년까지는 치매안심센터에서 물티슈를 충분히 나누어 주었다. 치매환자들에게는 한 달 치라면 모자라기는 해도 일정 양의 기저귀도 제공했다. 그렇다 보니 요양보호사들 입장에서는 사실 집에서는 그리 쑥쑥 뽑아 쓰지 않던 물티슈를 척척 쓰는 습관들이 생겼다. 물티슈가 썩지도 않아서 지구를 망친다거나 몸에도 해롭다느니 그런 것은 호사가들의 말이고, 일선에서야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말이다. 아기용이라고 특별히 따로 나온다고는 하지만, 엄마들이 제 아기들 엉덩이도 닦아주는 것이 물티슈인데. 암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없어서 우물쭈물 넘기고 점심 준비를 하려는데, 이번엔 밥도 먹기 싫다고 하신다.

    솥에 밥 없으까. 새로는 허지 마. 홍시감 쩌렇게 나두고 어째쓰가. 묵어부러야제. 이빨 없다고 홍시만 묵가니, 꼭 요런 것들만 보냉께는.

    자녀분들이 일단 어머니가 임플란트하시느라 고생하시니까 일부러…….

    그런 줄은 알제만, 고기로는 국물이 없간디. 어째 속이 허한 것이.

    그럼 더더욱 밥을 드셔야죠, 홍시는 너무 달아서.

    그람 고구마를 찌제. 고구마도 썩어나간디.

    네, 그러시게요. 홍시도 고구마도 넘쳐나니까 복 받으신 거죠.

    복은 무신…….

 

    아뿔싸, 엎친 데 덮친다더니, 고구마 냄비에서 탄 냄새가 난다.

    아니, 먼 냄시랑가. 냄비 다 태와묵는갑네이.

    아아뇨, 별로 안 탔어요. 살짝 좀 눌었어요.

    머시 그래, 다 타부렀구만.

    부엌으로 쫓아와서 들여다본 할머니는 성화다 성화. 염려마시라, 잘 닦아 놓겠다를 연발하며 고구마를 식탁에 챙겨드리고는 나도 모르게 핸폰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 동작을 보셨는지, 또 뭐라고 그러신다.

    오매, 커피 좀 타 봐, 물이라도 조까 떠 줘보던지. 그냥이사 묵겄어, 목 맥혀서 원. 요리 와서 좀 묵제.

    커피 가루를 컵에 털어 넣고 물 끓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커피가 땡긴다. 참는다. 첨엔 내가 사다놓고 같이 타 마셨는데, 이번에 할머니가 사다놓고는 달라졌다. 이렇게 먹으믄 금세 다 먹어불겄네,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통에 아차 싶었다. 오후에 가서 마시자. 그 집에선 내가 첫날 갔을 때 가져간 보온병의 커피를 보고, 집에 온 손님이 커피를 싸들고 다니면 어떻게 되느냐고 깜짝 말렸다. 그래서 커피는 내가 알아서 마시지만, 가까운 손님이나 친척이 된 기분이다. 주인네가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믹스커피는 손님용, 아니, 아예 나를 위해서 사다놓는 것 같다. 나는 특이한 취미가 없는 것이 편하다. 커피도 아무거나 다 마시지만, 특히 믹스가 땡길 때가 있다. 우리 집이 아닌데 나를 위한 커피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빨리 가자. 그렇게 오전 시영아파트 할머니 집을 나선다.

 

 

    차에 앉아서 시동을 켜고 보니, 서둘러 나와서인지 오후 출근시간까지 시간이 널널하다. 아차, 그 놀이터 뉴스, 기막힌 뉴스를 찾아보자. 다시 시동을 끈다. 놀이터, 아이들, 고소 그렇게 치자 바로 뉴스가 뜬다. 인천 어디, 어디면 어떠랴,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다른 아파트 어린이들이 고발조치 되었다는 뉴스다. 그러기도 하는가, 초등학생 아이들을? 뉴스라지만 무지막지했다. 아이들을 고발한 사람은 아파트 관리소장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견을 따라야 관리소장 직이 유지되는 사정을 생각하면, 고발자는 아파트 입주민들이다. 아니, 입주민 대표자 회장이란 사람이 시켰단다. 시작은 이랬다. 입주민 대표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고는 대뜸 혼을 냈다. 너희들 어디 사냐? - oo에요. - 아니, oo 살면서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 오면 도둑인 거 몰라? 그러고는 가방들을 다 빼앗고 관리실에 억류하라고 데려왔단다. 기물 파손죄로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과 함께. 이웃 놀이터에 가면 도둑? 도둑? 세상에 아이들을! 초등학교 애들을!

    이런 것이 ‘그릇된 정의’인가? 지난번에 조선 천주교 박해 때 이야기를 예를 들어서, 그릇된 정의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를 낳았다던 말이 떠올랐다. 오후 보호자 할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애매했던 그릇된 정의라고 하는 말의 뜻이 이 순간 갑자기 분명히 다가온다. 남의 땅에 들어왔으니 도둑이다, 그러니 고발한다? 아, 이런 것이 바로 그릇된 정의야. 이런 것뿐일까. 권력형 비리 죄목으로 수사하다가 안 되면 사기죄로, 그것도 안 되면 자녀 입시비리로, 아니면 또……. 아무튼 나쁜 놈이 분명하니까 반드시 잡아넣을 테다. 이런 것, 최근에 남편이 속 터져하는 검찰 발 뉴스들도 생각해보니 정의는 허울이다. 남편한테 ‘그릇된 정의’라는 말을 해보고 싶다. 남편은 어떤 사건은 공소시효가 임박했으니까 수사를 안 한다던 뉴스에도 싸늘하게 화를 냈었다. 지난 것도 아니고 임박했다고? 나에게는 별로 화를 내는 적이 없지만, 티브이를 보면서 화를 낼 때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화를 내서 무서울 때가 있다. 누군가가 차갑게 화를 내는 것은 정말 무섭다. 열을 내면서 화를 내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열이 식으면 화도 식으니까. 그래, 세상엔 그릇된 정의가 판치고 있어…… 라고 말해 보자. 내가 이런 어려운 말을 하면 놀라겠지, 아마. 뭐야, 이러다가 늦겠네.

 

 

    오후의 아파트에 들어서면서도 당연히 놀이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싸늘하기는 이곳도 매한가지다. 저렇게 텅 빈 놀이터에 이웃 아이들이 와서 논다고 경찰을 불러? 아직도 그 뉴스가 따라다닌다. 아이들이 없어서 텅 비어있고, 아이들을 오지 못하게 해서 텅 비어 있다. 요즈음은 할아버지 어르신도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신다. 전에는 산책을 나오신 날이면 놀이터 옆 운동기구에서 어깨돌리기와 다리 폈다 오므리기 정도는 하시곤 했는데, 올해 들어서 여름부터는 산책을 아예 기피하신다. 어쩌다가 산책을 나오셔도 놀이터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신다.

 

    내 출근이 살짝 늦었는지, 점심 식탁은 다 차려져 있다. 작은 그릇들에 감자샐러드가 각각 담겨있는 것이 아침 식탁에서 남았나 보다. 어쩌다 그렇게 조금씩 먹으면 맛있다. 내가 집에서 절대로 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직장 일을 했으니 손 가는 음식은 꽝이다. 재빠르게 차려 먹고 설거지는 남편이 거의 맡는다. 새로 만든 상치 겉절이에는 흰 깨가, 메밀묵 무침에는 검은 깨가 뿌려져 있다. 요새 두고 먹는 연근조림에는 잣도 듬뿍 들어있다. 간장에 졸여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언젠가, 전라도 사람들은 깨나 잣을 많이 쓰는 것에 내가 놀랐다는 말을 했더니, 그것도 식재료라고 생각하고 일단 무엇이든 많이만 먹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큰 냄비에는 국이, 작은 냄비에는 맹물이 끓고 있다. 밥을 차리고 나서 누룽지를 끓일 물이다. 달걀 물에 파가 송송 썰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북엇국일 것이다. 나를 보더니 그제야 국에 달걀 물을 푼다. 역시 북엇국이다. 기본 영순위인 물김치만 시원하게 내오고 밥을 차리면 된다. 요즈음엔 나도 새로 지은 밥이 더 맛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이어트는 저녁에 하면 된다. 점심 후 설거지는 내 당번이다. 그리고 커피 타임. 오늘따라 오전부터 마시고 싶었던 커피가 달달하고 맛있다. 핸드폰 소리다.

 

 

    딸아이다. 아이는 아니지, 임신 6개월인 딸아이가 아이는 아니다. 이 시간이면 근무 중일 텐데 웬 전화일까. 엄마가 일하고 있는 것도 모르지 않을 텐데. 애가 전화를 하는 시간이 아니다. 방정맞게 염려가 먼저 스친다.

    엄마는 방정맞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염려가 사실이 된다. 딸애가 점심을 먹고 다시 근무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으로 가는 중이란다. 병원으로, 임신 6개월 된 임산부가! 어쩌면 좋을까. 임신 6개월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기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는 시기다. 열이 나거나 두통이 아니라 배가 아프다고? 다른 방법이 없다. 무조건 딸애를 보러 가야한다. 오후 돌봄 집에 들어오면서 출근 태그를 찍은 것이 겨우 한 시간 남짓이다. 지금 찍고 나가면 오후 근무 전체가 무효다. 그렇다고 시간을 다 채우고 갈만큼 내가 배짱이 있는 엄마가 아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먼저 한다. 식탁에 함께 있던 할머니는 뭔가 다 알아들었겠다.

    운전 조심해서 먼저 내려가요. 근무 끝나고 나도 곧바로 갈게. 남편은 언제나 정답을 말한다. 전화를 끊기가 바쁘게 할머니를 쳐다본다. 할머니도 나를 보고 있다. 말이 필요없다. 알았어요. 지 선샘, 놀라지는 말고 어서 가 봐요. 운전은 천천히…….

 

    유산은 자궁 내막이며 내벽을 상하게 할 수 있어서 문제다. 더구나 6개월 이럴 때 라면 출산과 똑같이 관절이며 자율신경 균형이며 모든 것이 깨질 거다. 간호조무사 생활 첫 시작이 바로 산부인과였다. 나는 아무 탈 없이 임신 9개월을 보냈고, 원장도 산후 2개월이나 쉬도록 해주었다. 역시 산부인과였다. 내 딸은 그런데……, 태동도 한참 전에 느꼈다는데……. 말도 안 돼, 첫 유산은 다음을 장담할 수 없기도 하다. 조기 출산이어도 애매하다. 생존 가능성이 너무 낮다. 잘 해야 25퍼 정도. 몸무게가 2.0은 되어야 한다. 무조건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한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딸애는 건강한 편이니까…….

    집에 가서 뭐라도 챙겨가야 하나 하는 마음과 곧장 딸애에게 가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 집에 다녀간다는 말은 거의 한 시간 차이를 낸다 싶어서 그냥 맨몸으로 고속도로로 향한다. 얼굴을 일단 보자, 그래, 만나 보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고, 운전 중엔 어떤 전화도 받지 않는 원칙 같은 것도 아무 소용없다. 사위 번호가 뜨자, 정신없이 받는다. 어떤가, 나 지금 내려가고…….

    아, 장모님, 어머님, 민지 괜찮아요. 일단 누워서 안정 찾고 있어요. 천천히 오…….

차의 속도 때문에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전화기는 하필 시트 어딘가로 빠져버린다. 하느님 맙소사. 아니,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그동안 하느님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지 않았었는지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소리로 불렀다. 주님, 온 마음으로 기도하오니 또 하나의 생명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위대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셨음을 압니다. 하찮은 저를, 저의 딸과 그 딸애를 가엽게 여기시어……. 눈물이 쏟아져서 갓길로 차를 댄다. 숨을 고르며 찻길을 보니, 말이 고속도로이지 이른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차들의 왕래가 번잡하지는 않다. 내가 겁이 많은가. 좀처럼 다시 노선으로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마음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주시듯

    헤아릴 길 없는 권능과 자애로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바닥까지 낮추시는 분.

 

    언젠가 들었던 신부님의 기도 소리가 귀를 울린다. 마음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 그래 꼭 구해주실 것이다. 별들에게 이름 지어주시듯……. 맞아, 우리 아기 이름도 지어주시고.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엉? 가난한 우리를 일으키시고, 그런데 악인을? 가난하지 않으면 악인? 반지하에서 신혼을 보냈던 나는 충분히 가난했지만, 지금은 임대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받고서 살아간다. 세 든 사람들이 가난하면 나는 그럼 악인? 이런 내용이 이해가 안 된 채로 걸려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묻지도 못한다. 나는 시원찮은 신자니까. 나는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문제다. 신부님의 기도들을 100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 새삼 이 어려운 기도를 되새김할 때인가. 어서 가자.

 

 

    병원에 도착해서도 민지를 만나기는 수월치 않았다. 코로나 검사를 해놓고 근처 분식집에 앉아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오후 늦게야 애 얼굴을 보았다. 지금은 웬만한 상태로 회복되어서 링거액을 꼽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지금은 아이마냥 배시시 웃기까지 한다. 태중의 제 아이를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웃음기를 돌게 하나 보다. 이삼일 외근이 좀 있었다는데, 그 피로가 쌓여서 그리 된 것 같다고.

    임신부가 웬 외근인가 싶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한 민지는 평소에 사회생활에서도 여물기까지 하다. 대학을 일류대학 일류학과로 진학한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하자마자 꽤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과 더불어는 사표를 냈다. 엄마로서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표를 내는 것이 생활을 남편 직장 있는 지방으로 합치는 것이라서 실업수당을 받았다나? 실업수당이라니…… 참 좋은 나라다. 그러더니 어느 기간 후에는 다시 임시직이지만 비교적 안정된, 정직으로 전환되어도 좋을 직장엘 들어갔다. 기본적으로는 사무직이지만 가끔 외근이 있다고 했다. 허니문 베이비까지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해도,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들인데 아기 소식이 없는 것만 살짝 걱정이었다. 그러다 기다림에 지치기 직전에 임신이 되었으니 그 또한 마음대로 되는 듯 했다. 계획도 다 서 있는지, 출산 직전에 그만 둘 예정이란다. 그러면 또 실업수당을 받는 것인지. 아직 나이도 어린데 매사에 믿음성 있게 처신한다. 나는 그 나이에 엄마가 되었었지만, 세상 물정은 잘 몰랐다. 남편에게 처음부터 의존적으로 살았다. 무조건 절약만 하면 되는 줄 알았었다.

    딸애도 혜택을 누렸지만, 그래서 좋은 것이라 느끼지만, 실업수당 제도는 좀 묘한 데가 있다. 요즘엔 간호조무사들만 해도 1년 미만 퇴직금과 거기에 더해서 1년 미만 연차 수당을 받고 퇴직한 다음에, 이제 6개월인가 실업급여 챙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했다.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몰라도, 규정에 맞춰 설계를 한대나? 요즘 젊은 아이들 똑똑한 것이 바보 같은 내 눈으로는 살짝 무섭기도 하다. 나 젊었을 때는, 스무 살 나이로 간호조무사 노릇을 시작했을 때는, 그 일은 병원에선 바닥을 기는 일이었다. 내가 없음 간호사들이 힘들다, 의사들도 힘들어진다. 결국 환자들에게 처음 필요한 사람은 나다. 얼마나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지나온 시절이었나. 요즘 아이들은 똑똑하다. 똑똑해도 불운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민지는 이번에 태아를 지켜냈다.

 

    사돈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녁 때 두 분이서 함께 다녀가셨다. 맏며느리가 첫 임신 중 입원했다는 소식에 얼마나들 놀라셨을지, 다행이다, 다행이고말고. 뭔 일 있겄냐. 시어머니가 애를 붙들고 하도 설레발을 치니까 시아버지가 말릴 지경이었다. 사돈이 저녁을 사셨으니 내일은 점심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올라가야겠다.

    사돈네는 들어가시라 하고 다시 병실에 올라왔더니, 안정을 찾은 민지 얼굴과 대조로 외려 사위 얼굴은 파란 채로다. 저녁도 아직 못 먹고. 해서, 낼 출근할 사람은 좀 쉬라고 집에 들여보냈다. 병실엔 어차피 보호자 1인으로 제한이다. 남편은 내려오지 않기로 했다. 딸이 안정된 후 사위가 곧장 장인어른에게 안심하시라는 전화를 했더란다. 나는 오전 수급자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하루 쉬어야 한다고 말해두었다. 오후 집은 헐레벌떡 떠나올 때 벌써 아셨으니까 일 없다.

 

 

    엄마 나 괜찮아, 잠깐 지나간 일이니까 조금도 걱정 마셔! 엄마도 가서 좀 쉬시지.

    언제 왔다고 쉬러 가냐. 아직 괜찮다. 그나 백이 아빠가 많이 놀랐겠다.

    엄만 동백이보다 백이가 더 예쁘게 들려?

    동백 필 때 첫 나들이 가자고 동백이랬다며? 그렇다고 꼭 동백 동백 해야 되냐? 너도 민지 보다는 민아 민아 해버릇해서 민이라고 먼저 나와. 것보다, 너희 입주 예정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잘 꾸며져 있겠지?

    엄마는 무슨 놀이터 걱정을 벌써 하셔.

    아니, 애는 낳기만 하면 금세 자란단다. 내가 너를 낳아서 이 세월이 흘렀다고? 안 믿겨. 넌 돌도 되기 전에 걸음마를 했어. 말도 빠르고. 어린이집엘 오래 다녔지, 엄마가 일했으니까. 건 미안해. 유치원, 초등학교……. 놀이터에선 어땠을지.

    그만 하셔. 엄마가 일하는 애들 많았어. 그렇다고 아직 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놀이터 걱정이세여? 방안에서 가지고 놀 장난감 걱정부터 해주셩!

    얘가 어리광은! 다 나았나 보네. 장난감이야 엄마 아빠가 오죽 잘 준비하겠어. 할머니는 애기이불부터 해줄게. 애기이불이라고 말하면서 조각이불이 떠올랐다. 오후 돌봄집 할머니가 손바느질로 만들고 있는 조각이불 말이다. 최근에 얼핏 보아도 100조각도 넘어 보이는 조각들을 잇고 있었다. 대학에 간, 그래서 기숙사로 독립한 손녀딸에게 보내줄 조각이불이란다. 난 바느질은 절대로 못한다. 생각만 해도 미리 온 몸이 쑤실 듯 아프다. 할 일 없이 그런 걸 꿰매고 있는 할머니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얼핏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서라, 부러워할 걸 부러워해라. 모처럼 마트 말고 백화점 신생아코너에 가서 예쁜 아기이불을 사면된다.

    엄마, 그럼 장난감은 안 사줄 거야? 내가 멍하고 있었는지, 딸애가 다시 묻는다.

    사주고말고!

    그러니 놀이터 걱정은 말아요! 아파트 입주하고 나서 아기 나오니까 좋잖아. 입주하면 예쁜 놀이터는 당근 따라오는 것이니까요.

    그래, 그렇구나.

    엄마, 난 아이들 더 가질 거야. 놀이터에서 혼자는 외로워. 외로웠어. 이웃 애들은 언니든 오빠든 동생이든 누구라도 있었어. 나만 혼자였지 뭐야. 애들 여럿 함께 놀이터 가서 소리 지르고…….

    어머나, 이 이이가 외로웠구나. 언니 동생들 사이에서 자랐던 나로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이다. 나도 남편도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5분의 1, 7분의 1의 혜택만으로, 오히려 무엇인가에 굶주린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나랑 남편은, 빠듯한 살림 일구면서 올인해서 기를 수 있으려면 자녀는 하나면 된다고, 하나라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딸 하나에 최대한 지원하기, 대학까지 아무 걱정 없게 쭈욱! 그런 것이면 최고일 줄 알았다. 대체 무엇이 좋은 조건이란 말인가!

    애를 여럿 갖겠다고?

    그래 엄마, 나 실은……. 나 초등 2학년 때 같은 반 수희 기억나? 같은 동 살던 정수진.

    수진이는 뜬금없이.

    걔네 민수 오빠 있었잖아. 오빤 상급반이라 놀이터에서 마주치진 않았지만 아침 학교 갈 때는 다들 함께 나가곤 했었지. 그런데 놀이터 애들은 수진이가 아니라 내가 민수 오빠 동생인 줄 알았었나 봐. 이름 땜에. 그걸 수진이가 알고서는 화가 났었는지 날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내가 그런 말 한 적 절대 없는데! 요샛말로 그때 왕따였어. 애들은 나만 보면 ‘민지는 민수 오빠 동생 아냐!’ 이렇게 떼창을 했다니까.

    아니, 그런 일이. 근데 왜 엄마아빠한테 암말 안했어?

    오빠를 어떻게 낳아주나. 지나가버렸는데.

    지나가?

    오빠는 차례가 지나가버렸잖아. 민수 오빤 수진이 오빠가 맞고.

    없는 오빠 타령을 여태 품다니. 많이 외로웠구나 싶다. 애들 여럿 낳아서 놀이터에서 언니오빠동생 있다고 자랑하게 한다? 어린 시절의 아픔은 작은 것이라도 오래 가는구나. 또래들 중에는 결혼이고 육아고 다 필요 없다는 말도 서슴찮는데. 화제를 돌린다.

    너 일은 안 하려고?

    아니, 해야지. 애 낳는 건 맘먹기야. 출산지원금부터 시작해서 육아휴직이다 뭐다, 아빠들도 그게 가능하거든. 다자녀 혜택으로 분양아파트 청약도 유리할 것이고.

    다행이다. 이렇게 미래를 설계하는 신혼이 예쁘기만 하다. 이웃 놀이터에서 놀다가 쫓겨나고 도둑이라고 고발된 아이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냉정하다 못해 야비하고 잔인한 뉴스는 태교에 절대로 좋지 않다.

    엄마, 애들 놀이터는 진짜 염려 마세요. 우리 들어갈 아파트 말고도요, 순천 기적의 놀이터 안 들어보셨어요? 엉뚱방뚱이라던가, 엉뚱발뚱이라던가, 그런 놀이터인데, 그 흔한 미끄럼틀이며 그네며 시소 같은 것이 전혀 없대요. 그저 넓은 모래밭과 잔디 언덕에 고목나무들만 늘어선 곳에 개울도 있대요. 『놀이터는 위험해야 안전하다』 그 비슷한 책들을 펴낸 아동전문가가 기획한 것이라고, 벌써 유명해요. 아,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놀이터’ 그런 것도 있대요. 시-가-모-노! 그런 곳에 애 걸음마 잘 하면 데리고 가서…….

    그래 알았다. 엄마가 김칫국부터 마시며 안심하마. 애들 다 데리고 가자꾸나.

    엄마는, 김치도 안 좋아하면서.

    그래, 그래. 엄마가 나가도 너무 나갔구나. 어서 눈 좀 붙여.

 

    아예 하루를 꼬박 더 보내고 집에 돌아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퇴근 시간되기 전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반나절하고도 하루내 쉬고 나니까 공기가 좀 변한 것 같다. 엷어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숨을 크게 크게 쉬어본다. 곤하다.

    퇴근한 남편은 민지 민지 어떠냐를 연발 하더니, 한참 후에야 고생했다며 저녁을 나가서 먹자고 한다. 하지만 이미 씻은 뒤라서 외출이 귀찮을밖에. 대충 시켜먹자고 하고는 아이들처럼 치킨을 시켜서 치맥을 한다. 몇 끼 대충 먹었더니, 배가 불러도 맛이 있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인데, 아침에 얼굴이 붓게 생겼다.

 

 

    아침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는다. 꽤 늦은 시간 젓가락언니의 전화가 밤을 흔든다. 동네 언니다. 최근 들어서는 시절이 시절이라서 잘 만나지 않았고, 잘 만나지 않으면 할 말도 별로 없는데, 언니는 평소의 헤실 거리는 웃음기 대신 목이 멘 소리로 말한다.

    희선이가, 희선이가 잡혀갔어야.

    잡혀가다니! 언니, 그래, 무슨 일인데?

    어즈께 낮에, 사람들이 오더니 잡아갔단다. 애기들만 놔두고, 세상에 그럴 수도 있다냐, 애기들만 놔두고.

    무슨 말이야? 왜 그런 거냐고!

    갸 신랑이 아프잖냐. 저번에 민지 엄마한텐 말 했잖어, 신랑이 심각하게 아프다고, 사구체가 뭐여, 암튼 신장이 어쯔고 돼서 투석을 시작한다고. 이 속없는 가시나가 지가 나서서 그새 이식 어쩌고 하면서 적합도랑가 멋인가 검사하러 갔잖어, 즈그 둘이서 지난주에 서울을. 애기들은 즈그 시엄니가 올라와서 봐주고. 근디 그 유명 병원에서도 방역이 뚫리다니 먼 그런 일이 난다냐. oo대 병원있잖어, 여그는 병원이 없가니, 거까지 가 갖고는. 암튼 간에 보호자 한 명은 병실에 들어갈 수 있응께, 보호자도 당근 코 쑤시고 나서야 들어갔었겄제. 근디 내려 와서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는 거야, 금욜날 잡힌 추가 검사가 취소된 것은 물론이고. 아예 식구대로 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말만 듣고도 무서웠겄제. 그래도 실실 웃더라고, 갸는 2차까지 다 맞었응께, 나도 큰 걱정 안 했제. 근디 글쎄, 식구대로 다 받었는디 가시나 저만 양성 나왔다고. 저만 나온 것은 다행이지만 애기들 놔두고 어쩌냐고, 그냥 펑펑 울더라고. 신랑이나 성한 사람이어야 말이지. 우물쭈물 그러고 있는데, 낮에 사람들이 와서 데려가 부렀다네. 애기들 앞에서, 애기들만 놔두고. 애기들만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서 얼마나 무섭겄어. 외할매라고 가 볼 수도 없는 일이고, 전화통에만 매달려 있제. 애들이라 속이 없긴 하네, 할무니 머 먹고 싶다고 그런 소릴 하고 있응께. 부랴부랴 멋 쫌 만들어서 들고 갔더니만, 아차 싶어서 문도 못 열어보고 문 앞에다 놓고 내려와서 전화를 하는디, 눈물 안 나고 베겨? 대문 밖에서 전화하면 애기들이 문 열고 나와불까 봐서 내려와부렀제. 짠해서 나도 모르게 안아불고 그럴 것인게. 울고불고 난리일 꺼 아니겄어.

    어쩌냐, 언니. 그래도 언니가 정신 차려요. 누군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이런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나 보다. 뉴스에서 백신 접종률이 80퍼에 육박하지만 총 누적확진자는 40만에 다다른다고 해도, 우린 모두 설마 하며 뉴스는 뉴스일 것이라고, 남의 일일 것이라 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40만 가정에 날벼락이 떨어지다 보니 어느 날 어느 집에도 일이 닥친다. 코로나는 사람들을 가른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언니가 안쓰럽다.

 

    속수무책이면서 엉뚱하게도 그 언니가 젓가락언니로 불리게 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젓가락이나 빼빼로처럼 말라서가 아니라, 좀 마른 편이긴 하지만, 젓가락으로 밥 먹다가 날벼락이었단다. 결혼 몇 년 안되었을 때 이야기라지만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이 동네에서 살며 만났을 때다.

    복달임한다고 동네 아줌마들 여럿이서 닭죽을 먹던 때였다. 젓가락언니는 못 말리겄소이, 하고 누군가가 이 언니를 놀렸다. 이 언니가 젓가락으로 살코기를 집어먹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모두 깔깔대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줌마들은 우스개 섞어가면서 그 이야기를 서로 해댔지만, 나는 귀를 의심했다. 몇 십 년 전이라면,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다시피 하고 있는 며느리가 예쁠 리 없는 시어머니가 한말 할 수 있었겠다. 그렇게 젓가락으로 밥을 묵으면 복 달아난다. 숟가락으로 푹푹 좀 떠묵어라. 그러면 며느리의 정답은 하나뿐이다. 네, 네. 그러고서 숟가락을 드는 것이다. 그런데 철부지 언니는, 대박, 오답을 터뜨렸더란다. 그럼,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푹푹 드시니까 이렇게 잘 사시는 거예요? 이 무슨 망발. 너무 순진하다고도 너무 버릇없다고도 어딘가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을 노릇이었다. 내 벌어진 턱은 굳어버릴 뻔했다.

    암튼 그 이야기의 결말은 최악에 가까웠다. 그 길로 시댁에서는 친정어머니 오시라 해서, 친정어머니가 시댁에 가셨고, 시어머니 말씀은 단 하나, 딸 데리고 가시쇼! 물론 나중에나중에 남편이랑 알콩달콩 살면서 들려준 이야기이니까 어디만큼 사실인가는 가늠할 길이 없다. 일단 친정어머니를 따라서 친정으로 갔다가, 여차여차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댁으로 들어갔고, 어느 시간이 흘러 독립했고, 뭐 그런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아는 동네 아줌마들은 그 언니한테 젓가락여사님이라고 놀리곤 한단다. 아이큐에 관한한 정말 나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왜냐하면 언니가 인간관계에서 1퍼도 이익을 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퍼다 먹이기를 좋아하고, 양념을 아끼지 않아서인지 음식들이 맛도 좋다. 암튼 실제보다, 실제를 모르기는 하지만, 아낌없이 퍼주는 스타일이다. 전혀 되받을 길 없는 상황에서도 그리 잘 하니까, 당근, 누구나가 다 좋아한다. 그런데 사는 일은 그리 잘 풀리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일도 그렇고, 언니 자신도 돈벌이라거나 뭔가 그런 쪽으로 생산성은 꽝으로 보인다. 얼마나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고 있을까. 민지 때문에 잠시라도 애 탔던 뒤끝이라서, 엄마 마음이 더 절실히 느껴진다. 젊은 아이들이니까 별 일 없을 게다, 제발.

 

 

    이상한 일이다. 오늘 출근길에는 오전부터 마음이 편하다. 놀람 속 힘든 상황들을 지난 안도감 때문일까. 삶이 힘들고 아슬아슬한 시간들임을 새삼 느낀 뒤라서 그럴까. 까다로운 오전 할머니 그냥 봐 드리자. 평생 아랫사람 없다가 내가 만만해서 까탈 부리는 노인이니 봐주자. 나이에 맞지 않게 미장원 가서 염색하는 돈은 아깝지 않아도, 온수라면 벌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하자. 평생 습관인 것을 할 말 없지 않은가. 물티슈는 정말 아껴 쓰자. 걸레를 한 번 쓰고 버리다니! 그 할머니 세대의 기준으로 말이 되는가! 아니 썩지 않는 쓰레기니까 내 아이의 기준으로 미래의 기준으로 아끼자! 오후에 커피 한 잔이면 오전 피로는 싹 가실 것이다.

    오후 보호자 할머니는 보자마자 딸애의 상황을 묻는다. 물론 그날 병원 도착해서 바로 전화로 안심이라고 알렸다, 유산기인가 걱정하실 것이 뻔하니까. 그래도 만나자마자 또 걱정을 하니까 또 안심을 시켜드린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순천에는 놀이터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이 들며 내려앉은, 전혀 동그랗지 않은 눈이 정말 동그래진다. 자연스럽게 나는 말을 이어간다. 애들이 분양 받아 들어갈 아파트 이야기인데요, 애를 키우려면 놀이터가 좋아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근교에 아주 멋진 놀이터들도 있다고 하네요. 할머니는 그 말에도 고개를 갸웃 기울이더니 금방 웃음기를 흘린다. 지 선샘, 엊그제 그 놀이터 뉴스 때문에 그러는구나. 그러면서 염려 말란다. 그 뉴스의 후속은 아파트 주민들이 사과하고 대표를 경질하고 그런 쪽으로, 바람직한 쪽으로 흘러간다고.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머쓱해지면서도 안심이 된다. 그래도 들킨 김에 계속한다. 말이 너무 끔찍했어요. 그건 너무 심했어요. 이웃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더러 도둑이라뇨! 이웃인데!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한다. 흥분한 탓에 동네 아는 언니네가 코로나에 습격당했다는 이야기도 나와 버린다. 애들이라 해도 밀접접촉자가 되어 격리에 들어가면 놀이터에도 못 나간다고. 그대로 감옥이라고. 아니, 할머니고 외할머니고 음식을 만들어 가도 대문도 못 열고 문 앞에 두고와야 한다고. 이 할머니하고 무슨 상관이길래 이야기를 꺼내는가. 그 집은요, 먼저 딸애가, 제 남편 투석을 시작했는데, 이식 문제에 나서서 같이 적합성 검사받으러 갔다가 서울 유명 병원 병실에서 걸려왔다더라고. 투석 환자도 양성이 나오면 어떡하느냐고. 아, 아이들만 남은 집, 상상도 안 되는 아이들의 무서움을, 시시콜콜, 아니 울먹울먹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더니 혼잣말처럼, 아니 시를 읊는 것처럼 말한다.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뭐예요? 또 시예요?

    예, 또 시예요. 크게는 이름 없는 노 시인의.

    이름 없는 시인들까지 읽나. 시가 밥 먹여 주나요? 라고 묻고 싶다. 아니, 순간 물었나 보다.

    예, 시가 밥 먹여줘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밥을요?

    그러면서 생각한다. 사람이 눈물로 사는구나. 눈물로 사는 것을 알면, 울면서도 밥을 먹는 것이구나. 시가 밥을 먹여주는구나.

 

    언제나처럼 칼퇴근이다. 문을 나서면 바로 계단이다. 계단으로 들어서는데,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가 힘들게 입구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거운 유리대문은 겨우내 미끄럼 방지라고 써붙여놓고 한쪽 문만 열어두고 있다. 둘 다 열어두면 두 배로 더 미끄러운가? 바깥공기는 아직 차갑다. 퍼덕이는 비둘기 떼도 외면한 놀이터를 돌아보며 저만치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한다.

 
------------------

「놀이터」, 『전남여고문학 』 8호, 2022.5. 241~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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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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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2. 4. 12. 15:51

 침묵과 침묵 사이 

 

[가만보인다. / 산 것들나무들 꽃들 사람들, / 하나같이 햇빛 어딨어빈자리 어딨어목말라 목을 뺄 때 내색 않고 옆에서 태연히 식던 꽃이 누구였더라? /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
                         
                        황동규 누구였더라?」 중에서

 

 

    침묵이 수다로 바뀌는 일은 가끔은 생각 보다 쉬웠다. 오후 재가요양 ‘어르신’네 집 이야기다. 어떻게 된 게 이 집은 뭔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햇수로는 3년차이지만 속내를 잘 몰라서다. 그런데 여름 들어 이 보호자 할머니가 수다다.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이게 몇 번째 송이인 줄 아세요? 저 가느다란 첫 줄기에서 어쩜, 상상이나 되세요? 이건 확실히 어디서 날아온 꽃씨라니까요. 저쪽 내가 씨 뿌려놓은 나팔꽃은 푸르스름 보라, 애잔하게 몇 송이 피다 말더니. 요놈들은 완전 다른 진분홍, 분명 개량종이죠? 개량종이라 이리 튼실한가!

    이 줄기를 모두 합치면 몇 미터나 될까요? 베란다 천장까지 2미터, 거기서 창틀 위로 건너간 1미터, 또 뻗어나간 줄기는 3미터는 되죠. 그것이 두 줄이다가 한 줄은 다시 돌아왔으니, 10미터는 훨씬 넘죠. 한 줄기에 스무 송이 넘게 피었다니까요. 아니 또 중간에서 돋아난 줄기도 3미터 넘게 뻗었죠. 오고가고 그러다 만나서 이젠 엉클어져 버렸어요. 칠팔십, 아니 백 송이쯤 되나 봐요, 세상에나.

 

    나는 꽃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흘려들을 밖에. 그렇게 혼잣말이 된다. 혼잣말이 되더라도 이 답답한 할머니의 수다는 침묵보다는 낫다. 아니, 말해도 안 들으니 침묵과 뭐가 다른가. 아니, 수다가 훨 낫다. 아무 말 없이 가만있으면 혹시 내게, 요양보호사에게, 불만이 있어 어둡나 살짝 걱정도 된다. 물론 불만을 말한 적은 없다. 신기하게 한 번도 없다.

    아무튼 한두 번도 아니고 여름을 내내 나팔꽃 하나로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꽃이 밥 먹여주나 말이다. 꽃들은 보통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원래 화분 가꾸기를 좋아했었다는 어르신은 베란다로 나가면 닫힌 말문을 열게 하기가 쉬웠다. 어르신도 한번 침묵을 깨면 한참씩은 말을 하신다. 말 대접으로 또는 심부름으로 화분을 사다드리기도 하고, 또 집에서도 한두 개 가져다드리기도 했지만, 그건 나한테는 그냥 인사다.

    어느 날 내가 백장미 화분을 무겁게 사들고 들어갔을 때 보호자는 놀라워했다.

    아니, 무슨 화분이에요? 무겁기도 하겠구만!

    아, 어르신이 사다 달라고 하셨어요.

    예? 화분을 사다 달라고요?

    네, 지난번 산책하다가 동네 화원엘 가자고 하시더니, 거기 백장미가 없다고 낙담하시더라고요.

    백장미를? 백장미를 찾았다고요?

    네, 제일 좋아하시는 꽃이라고. 해서 제가 집 근처 큰 화원에서 사다드릴까 물었더니, 그러라고요. 돈도 주셨어요. 남으면 아무거나 더 사라고요. 이 제라늄도 샀…….

    재밌네. 뜬금없이 백장미라고? 하긴 요즘엔 호·불호가 사뭇 바뀌니까.

    할머니는 다시 혼잣말로 들어갔다, 말을 나누다 말고.

 

    그러고는 여름 내내 어르신은 백장미 화분만 지켜보곤 했다. 겨우 한 두 송이가 피어났을 땐 정말 백장미가 맞다고 좋아하셨다. 어르신에게 다른 화초들은 없었다. 나팔꽃 송이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피어나도 없는 꽃이다. 그러니까 단 두 사람이 살면서 나팔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한 사람은 나팔꽃 보는 일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다른 한쪽은 나팔꽃이 보이지도 않는지.

    두 분 신기하세요. 한 분은 나팔꽃만, 한 분은 백장미만 보시고!

    …….

    불리할 때 입을 닫는 것은 이 할머니의 특기다.

    두 분, 말씀이 너무 없으세요. 서로 말씀하시는 것 못 봤네요. 두 분만 있을 때도 그러세요?

     …….

    싸우지도 않으세요?

    그런 거죠, 뭐. 그저 길손들이니까.

    네?

    길가다 만난 사람들, 길손 몰라요?

    부부를 어떻게…….

    길손이라 해서 섭해요? 어떤 인연이더라도 서로에게 손님, 함께 걸어가는 길손 맞지요.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목말라도 그냥.

    갑자기 삶은 무슨 말씀?

    아, 어떤 시 구절.

    무슨 시씩이나! 머쓱해진 내가 입을 닫았다. 그럴 때가 많다.

    할머니는 에코백을 들고 나간다. 어르신은 아까부터 고개를 비뚠 채 잠들어 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다. 뭔가 모를 답답함에 움직이지 않아도 덥다.

 

 

    여름이라지만 왜 이리 더울까. 참을 수 없는 더위는 없다고, 그리 알고 살았다. 그에 비해서 참을 수 없는 추위는 확실히 안다. 안다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겨울 허허벌판 서울까지 올라가서는. 그때 구들장 따뜻한 엄마의 방을 그리며 눈물이라도 한 방울 찔끔거리면 더 추웠다. 빌딩의 숲은 추운 여자아이에게는 전혀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바람 쌩한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되면 서러움이 덜했다. 원래 더위를 잘 견디었나 보다. 그런데 이 여름에는 덥다. 다이어트를 못해서 살이 찐 때문일까, 추운 방을 떠나 산 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일까.

 

    바깥세상이 코로나로 어지러운 데 비하면 개인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가 덜컥 큰 걱정이 생겼다. 지는 알아서 갈 테니께 아프지만 말게 해주셔유, 라고 기도하신다고, 딸도 수녀님인데 내 기도 안들어주시겄어, 라며 여유를 부리시던 어머니! 다른 어머니들처럼 고향에 홀로 살고 계셨다. 당숙의 오랜 친구가 70대인데도 시골에서 개인병원을 열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병원에 들락날락하시며 이런저런 영양제도 맞으시면서 큰 불평이 없으셨던 터였다. 4월에 시작된 백신접종도 일 없이 마치셨는데 그런 일이 터졌다니. 어버이날 즈음에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소화가 잘 안되아야, 하시는 말씀 따라서 위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별일 없었다. 연세에 비해서는 깨끗하신 편입니다! - 네, 감사합니다. 다음 날엔 버섯전골 집에도 갔었다. 부드러운 팽이를 골라가며 드셨다.

    그러다가, 막상 그러다가 정말로 큰일이 터졌다. 식사를 점점 못하시고 몸은 이상해진다고, 무엇보다 배가 많이 아프시다고. 암튼 가까이 사는 큰언니가 서둘렀고, 오빠랑 대학병원으로 모셔갔단다. 황달기도 있고, 벌써 복수가 생기기 시작하셨다니. 혹시라도 5월에 뵐 때도 황달기? 기억을 해보려 해도 그건 아니었다. 피부가 가렵다고도, 열감도 말씀이 없으셨다. 무엇보다 위내시경에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다들 안심을 한 터였다. 혼자 사는 노인의 전형적인 스토리다. 어제 괜찮으셨으니 오늘도 괜찮으시리라…… 자녀들이란, 나부터도 전화 목소리로 괜찮으시면 괜찮으시다고 생각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오히려 수년 동안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 시아버님이 걱정 일 순위였다. 관으로 미음을 드시는데도 몇 년을 버티시는데, 받아놓은 날이려니 했지만 그렇게 지내고 계시는 터다. 시어머님도 함께 요양병원에 계신다. 경증이라서 시아버님 간병도 되고 동무도 되고 그러신다. 거기에 비하면 엄마는 마실도 나다니고, 성당과 병원에 혼자 잘 다니고 계셨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대학병원에서는 깜짝이나 놀랄 결과가 나왔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복부초음파 검사며 씨티며 엠알아이를 하면 뭣하나. 담도조영술이며 종양표지자 검사도 마찬가지. 처음에 씨티만 찍었어도 침윤 정도를 알았을 것을. 담도암이라니! 담도! 담도!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담도를 통해서 십이지장까지 가는데, 어쩌자고 담낭을 지나서 십이지장으로 가는 담도에 암세포가 생긴 것이냐고! 후회막급이지만, 후회란 때 늦어서 후회다. 간호보조사가 가진 의학상식이 별 것일까만, 일단은 의료계통 자격을 가진 자식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담석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담도염을 앓으신 적도 없는데. 평생을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사셨으니 간디스토마 그런 병에 걸리신 적도 없는데.

    그렇게 어머니는 담도암 선고를 받으셨고, 반년은 버티실 것이라는 의사의 예상과 달리 두어 달을 겨우 넘기고 가셨다. 첨에 큰언니가 언니네로 모셔갔는데, 우리 모두가 아무래도 미안해서 요양병원으로 모실 채비를 하려는 찰나였다. 나 거그는 안 갈텨! 하시던 말씀 그대로 요양병원을 알아보려던 중에 일이 터졌다. 그렇게 마지막에 가까울 때까지 자녀들이 몰랐다니. 선고 이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아무 소용없었다. 닥친 일은 닥친 일이고,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고, 이제 와 철 좀 나니까 어머니가 가셨다.

 

    피를 나누는 것이 무엇일까. 형제자매들이 앉아서 우두커니 장례식장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물게라도 화분들도 도착하고, 또 나가서 조문객을 받고, 옆에서들 감사도 하고……. 놀랍게도 육개장에 밥들도 말아먹었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맞다. 슬퍼도 배는 고프다. 나도 밥을 먹었다. 먹고 나서 울었다. 울고 나서도 먹었다.

    엄마아, 잉잉.

    우리 어무이는 우덜헌티 잔소리 별로 안하셨어!

    그렸나.

    맞어, 잉잉.

    자 좀 달개라.

    아서 엥간히 울어. 울어싸면 못 올라가신댜!

    근디, 잉잉, 천당 가시겄져?

    암만, 수녀님 어무니신데여.

 

    코로나로 옴짝달싹 못하는 통이라지만, 드물게라도 문상객을 맞이했다. 입관하기 전에는 아직 살아계시는 것으로 치고 절을 한 번만 할 때까진 나았다. 염을 하는 중간에 사촌오빠가 등을 돌리고 서 있더니, 누군가 오빠를 아예 밖으로 내보냈다. 나중에 들으니 무슨 회도살이라나, 어머니는 물론 우리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들인데도, 집안 어른들이 그리 시키시는 것 같았다.

    다음날 발인제를 마치고는 잠깐 집에 들러서 간단한 제사를 드리고 나니 정말 끝이었다. 어머니가 산으로 행했다. 사토제니 위령제니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어른이 계셨지만 뭐가 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막상 갓 파헤쳐진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앞에서 딸들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울음을 땅 속으로 가시기 전에 실컷 들으시라는 것인지. 어머니는 듣지도 못하시지만, 고만 울어라 달래시지도 못한다. 영원한 침묵에 들어가신 것이다. 삶의 끝은 침묵이었다.

    세거지라서 일가친척들이 대부분인지라 지관도 계시고 해서, 사실 우리들은 하릴없이 울다 쉬다가를 반복하기만 했다. 관장을 할지 탈관을 할지는 벌써 결정했다고 했다. 흠결이라고는 없으신 어머니지만, 아버지 때도 관장을 했다고 그대로 결정했단다. 우리는 괜스레 위안이 되었다. 집을 지닌 채 들어가시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을 서로 슬쩍 나누었다. 그래도 막상 흙을 올리는 때는 정말 무서웠다. 취토 중간 중간에 왜 노래를 부르는지, 왜 빙빙 도는지 의아했지만 가만있을밖에.

    오호 ~ 에헤야, 산이 높아야 물도 깊지 ~

    그러다가 붉은 천이 내려갈 때는 정말 떨렸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은 무엇인가가 뻥 뚫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집에 가도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문경댁 무르팍 말고는 원체 암말 읎더만 속절없이 갔슈!

    그 구녁으로 간겨? 참말, 독새나 만나지 말어.

    인저 가조로니 누어 잘랑가 물러.

    엥간히 집 배까티 좋아혔으니 인저 원 없겄슈.

    우덜 몸뎅이도 얼매 안 남았제만…….

    뒷산이라서 함께 올라왔던 동네 분들이 한마디씩 탄식을 하셨다. 우리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삼우까지 지낸 다음날에는 다들 흩어졌다.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엄청 허전했다. 어머니랑 함께 살던 집이 아닌데도 집이 쓸쓸했다. 고향집에 간다…… 는 생각에 어머니가 안 계실 것이라는 상상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주 5일 근무는 요일만 세다 보면 금세 지난다. 아직도 숨 막히게 덥다. 세상은 어머니를 잃은 다섯 형제들과 무관하게 여전하다. 여름이라서 덥고, 더워도 날마다 뉴스다. 어디선가는 무슨 일인가 터진다. 무더위 못지않게 숨 막히는 뉴스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이 열리자 세상의 눈들은 그리로 향했다. 양궁 하나만 해도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 족했다. 이 고장에서 양궁 천재가 나왔으니 더했다. 한참 더울 때 선수들을 향한 애정으로 더욱 달아오른 시간들, 그 시간도 곧 지나갔다.

    그 사이 미얀마 쿠데타가 군부의 과도정부 수립으로 막을 내렸다고, 그 뉴스는 오후 보호자의 입으로 들었다. 거기도 전**이 정권을 잡았네요. 군인들이 그렇지 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최근엔 보통 그랬다.

    거실에 어르신과 둘만 남는다. 어르신은 늘 그렇듯 말이 없다. 못 들어서 말을 안 하시는 것인지, 당연히 대답도 없다. 지난겨울 인지검사 때도 – 등급 조정을 위한 의무적인 검사다 - 결과 수치는 더 낮아졌다. 가끔의 환시와 환각을 제외하면 실제로 심각한 증상들은 없어 보이는데. 건망증도 나이 따라서 다들 그런 정도이고. 하기야 하루 세 시간을 보는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

    날마다 텔레비전은 작은 소리로 돌아가고 있다. 어르신이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도, 살짝 잠이 들 때도 그대로 켜져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로는 코로나 뉴스가 다시 화면을 독차지한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서 1차는 40%를 넘었고 2차까지도 20% 가까이 되는데도, 아침마다 불어나는 확진자는 계속 4자리 숫자이고, 누계가 20만 명이라니 놀랄밖에. 거리두기는 수도권은 4단계, 여기도 3단계가 계속된다고. 아니, 이제 이런 발표는 뉴스가 아니고 일상인가 싶다.

 

    어느 날, 재벌 1위 삼성 소유자가 광복절에 사면될 것이라는 뉴스가 떴다. 또 찬반이 엇갈릴 것이고, 양쪽 다 옳은 말이겠지.

    기업이 돌아가야죠, 뭐?

    내가 다른 할 말도 없고 해서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할머니에게 한 마디 했다.

    들은 체 만 체다.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뜬금없었나? 그래도 했던 말인데 뭐라고 대꾸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서 재차 말했다.

    다들 경제가 안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삼성, 그래서 내 주려나 봐요!

    …….

    광복절에는 어차피 사면도 있으니까요.

    아, 지 선샘, 나 정치 경제 어쩌고 하면 정말 잘 모르는데. 누구라도 감옥 나오면 좋겠지만, 누구라도 가벼운 처벌을 받으면 좋겠지만, 거 형평성도 문제요.

    형평성이요?

    무슨 형평성 말일까. 나는 왜 이리 생각이 왔다 갔다 할까. 말을 걸어놓고는 이을 말이 없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계속했다.

    그냥,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누구에게라도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 그거 저 절대 찬성이에요. 짧은 인생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죠.

    어라? 인생 어쩌고 말을 해놓고는 참 쑥스러웠다. 난 이분들에 비하면 애들 아닌가. 크게 거슬리진 않았는지, 할머니가 대꾸를 했다.

    맞아요, 남에게 도움은 되지 못해도 해는 되지 말자, 그런 정도. 그게 좋은 거죠.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 문제지요. 남을 해치는 바이러스들, 해치면서도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 중증 바이러스들…….

    아차, 괜히 말을 잘못 시작했나? 이 할머니가 또 이상한 수다를 시작하면 어쩌나 싶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또 사람이 아니라 책처럼 어려운 말들을 시작했다.

    사는 차이도 너무 나서 그 이질감은 더욱 벌어질 테고.

    이질감이요?

    설이라고 추석이라고 1,000만원을 주는 할아버지가 있다잖아요. 유치원도 안 간 아이가 주택 스무 채를 가진 세상이라니. 뼛속까지 다르게 태어나서 그렇게 다르게 자라니까 함께 살기가 점점 더 어려운 세상이 될까 무서워요.

    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전체가 훨 잘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 우리나라 경제가 50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세계가 대충 60배 성장 할 때 우리나라는 400배나 성장했다고, 남편이 으쓱 말해준 적이 있다. 나도 할 말이 있다. 해야겠다 싶었다.

    저 있잖아요, 우리나라 전체 성장률이 높으면 좋은 것 아녜요? 50년 동안에요, 세계가 60배 성장할 동안에 우리나란 400배 넘게 성장했다고. 작년엔가 그랬다던데요. 미국은 30배, 일본은 100배인가 대충.

     …….

    뭐야, 왜 또 대답이 없어? 이런 성장 발전이 대단한 것 아냐? 전체가 잘 살게 되어서 뭐가 나쁜데? 그러니 엊그젠가 아이돌 가수가 130억 아파트를 샀다는 뉴스도 있었지. 그 청담동 아파트니 펜트하우스니 하는 집들은 집값이 상상도 못할 정도다. 150평 복층 펜트하우스는 300억, 그러니까 평당 2억이라 했다. 내 소유 건물 따위는 건물도 아니다. 이 할머니는 무감각인가?

    우리나라 수준 엄청나다구요. 저, 어떤 아이돌 가수가 최근에 산 아파트가 130억이라고, 혹시 들으셨어요?

    아이돌도 모르고 아파트도 모르요.

    아**라고, 눈 예쁜 여자애, 서른 안 됐을걸요. 십대부터 엄청 잘 나가는 가수죠. 거기 청담동에는 평당 2억 가는 펜트하우스도 있대요, 150평이라니까 300억.

    무슨? 달나라 이야기에요?

    아니, 우리나라요, 서울요.

    평당 2억이라니, 그게 가능이나 하나?

    그게요, 30가구 이상만 안 지으면 분양가 상한제 그런 것 안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29가구만 지으면 집값을 마음대로.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네,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별나라네. 별난 나라네.

    맞아요. 차이가 넘 벌어지져? 세상 요지경이에요. 도쿄에는 평당 3억이 훨씬 넘는 600억짜리도 있대요, 홍콩은 6억이 넘는 아파트도 있고, 평당.

    지 선샘은 역시 건물주답다. 건물들을 쫙 꿰고 있네요.

    세계 최고급 아파트는 2,200억이라고 하는 뉴스도 봤어요. 2,200만원이 아니라 2,200억.

    고만, 고만! 어디에나 최고는 있겠지요. 모든 노력과 운과, 암튼 그런 성공들에 박수를 쳐 줄 일인지.

    당연하죠. 성공이 미덕이라고 하잖아요.

    미덕…….

    미덕이 그런 것은 아니죠! 라고 말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내뱉은 말은 더 썰렁했다.

    헌데, 집은 그냥 집이죠. 작은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크고 넓은 집에서 잠 못 드는 사람도 있겠지요. 둘 다 죽을 것이고.

    죽는 이야기는 왜요.

 

    나는 토라지고 말았다. 이 할머니 밉다. 하필 여기에서 죽는 이야기라니.

    나는 근무 시간인데 아무 것도 않고 가만 앉아있기 뭣해서, 뭔가, 정말 그냥 한 말이었다. 아무리 아이돌이라 해도 애들이 100억도 넘는 아파트에 산다고 하는 것이 뉴스 아니면 뭐가 뉴스인가. 터무니없이 잘 사는 데에 눈이 뒤집혀서 한 말도 아니고.

    나도 살만큼은 산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남편은 공무원이고 퇴직하면 연금을 받을 것이고, 나는 국민연금 제대로 들어있고 내 건물 있으니 기본은 되고 남을 터. 농가주택은 어떤가. 일단 기분 좋은 뜰이고 밭이다.

    어머나, 애호박이 저절로 벌어져 버렸네!

    아무리, 설마.

    설마라고 말하며 다가오던 남편이 놀란다.

    정말이네. 넘 더워서 그런가. 이런 건 첨 보는데? 애호박이 쩍 벌어지다니. 온난화 문제인가…….

    저 그런데, 올해도 까만 나비 날아올까?

    남편이 지구 어쩌고 할까 봐서 나는 얼른 말을 바꾼다. 머리 아픈 건 정말 싫다.

    아녀. 더 있다가 저쪽 방아꽃이 필 때야 날아올 걸. 왜 하필…….

    나는 냉큼 넝쿨콩 쪽으로 향한다. 도망치는 것이다. 남편은 연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방아꽃은 맥문동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게 계속할지도 모른다. 말도 잘 하지만, 실은 훤칠하고 잘 생겨서 예능에도 어울릴 것이다.

아무튼 비타민 넘친다는 풋고추는 여름 내내, 상치, 깻잎, 오이 뿐인가. 양파, 감자, 고구마, 깨, 김장 배추……        남편은 귀한 초석잠이나 마도 심는다. 부지런한 사람이랑 함께 살면 좋기도 나쁘기도 하지만, 일단 마트 갈 일도 줄이는 것이 남편의 살림이다. 물론 김장까지는 좀 심하다고 느끼지만, 어쩌랴. 보람도 있다. 여기저기 퍼 나르면 다들 고마워한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시댁에서 반찬 싸주면 가다가 버린다는 젊은 며느리들 이야기는 말로는 들어보았지만, 내 주변에는 없는 것 같다. 내 땅에서 나는 것들, 이 모두가 평생 노력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좋다. 그래, 조금만 더 열심히 인내하고 모으자. 내 이름은 지은이, 요양보호사!

    예쁜 배우가 요양보호사 공익광고에도 나왔다. 복지센터 이름이 적힌 앞치마를 입고 근무하는 우리들 실정을 모르는지, 빨간 투피스에 긴 긴 머리를 휘날리는 것이 우습기는 했다. 어쨌거나 ‘아줌마 아니에요. 요양보호사예요.’ 라는 문구로 사기를 북돋아준다. 좋은 나라다. 요양보호사에게도 좋은 나라.

 

 

    요양보호사가 실제로 병원과 싸워서 이기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그러니까 큰 병원들의 꼼수를 요양보호사들이 이겨낸 일이 있었다. 이른 봄이었다. 요양보호사 4명이 병원 상대로 임금체불 소송에서 이겼다는 뉴스에 센터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문제된 요양병원은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이라 했다. 깨어서 24시간을? 말도 안 되는 조건이지만 그런 3교대제도 실은 많다. 그 24시간 근무 중에 명색 야간 휴게시간이 5시간 있었다 했다. 하지만 실상으로는 비상상황에 대응하려고 병실 근처에 있었다고 하니까, 그게 무슨 휴게시간이냐고! 야간 휴게시간이란 임금에서 5시간씩을 제하는 꼼수였다고 판결난 것이란다.

    휴우, 간호조무사 3교대 시절 생각이 새삼스럽다. 일일 8시간 교대도 힘든데,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은 살인적 아닐까. 어떻게 24시간을 버틴단 말인가. 나는 확실히 그건 못한다. 더구나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는 계급으로 말하면, 계층인가, 아무튼 바닥이다. 나는 간호보조원 시절부터 사다리가 너무 뚜렷하게 심장에 박혀서인지, 무슨 위치를 설명하려면 사다리가 먼저 떠오른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당연히 맨 아랫자리다. 더구나 ‘선생님’ 아닌 ‘여사님’이라 불린다. 특히 간호사들이 꼭 ‘여사니~임’ 하고 부른다. 그렇다고 내가 뭐 ‘지 여사님’ 보다 ‘지 선생님’ 소리를 듣고자 요양병원 근무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들처럼 집으로 서비스 나가는 재가방문요양의 경우는 내 생각에는 자유가 있다. 수급자 측에서 우리를 ‘자를’ 수도 있지만, 우리도 불편한 수급자의 경우 서비스를 거절할 수 있다. 나도 지난번 오전 고엽제 어르신을 곧 그만두겠다고 센터에다 말했고, 그만 두었다.

    물론 수입 면에서는 약하다. 그러니까 요양병원 근무와 재가방문요양 또는 주간보호센터 근무 등을 우리가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알아서 하는 것은 작은 일이라도 기분이 좋다. 나는 간호조무사 평생 직업을 마치고 일을 쉬기로 결정했을 때도, 아니, 얼마큼 쉰 뒤에 다시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순전한 자유 결정이었다. 그래서 맘 편하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때처럼 전문학원에서가 아니라,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야간이었지만 대학에서 딴 탓에 스스로 뿌듯하기까지 하다. 사회복지과에서 이론강의, 실습연습, 현장실습 각 40시간의 정식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크다. 문제는 그래보았자 근년 들어 간단히 자격증을 딴 사람이건 누구건 임금이나 대우에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또 이상한 것은 5년 차인 나와 신입의 시급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전히 알바 개념인 것이다.

    아무튼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요양보호사들의 결기가 대단했다. 4명이 한 뜻으로 뭉쳐서 가능했겠지. 나 같으면 뭉치자 해도 피했을 것이다. 나는 불평보다는 침묵으로 삭히는 쪽,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식이다. 제도나 현상을 굳이 고치려 힘 빼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그냥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일을 찾는다.

    그런데 어디에나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눈꼴사나운 일도 보게 된다. 누구나 다 꼼수를 쓰기 때문이다. 편의점 등 알바들에게도 주인들의 꼼수가 애를 먹인다. 내 첫 알바의 경험은 - 참 옛날 일이다 - 기억 속에서라도 되돌리기 싫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그때는 확실히 옛날이었다. 친척집이라는 어정쩡한 관계는 정확하게 시간 수당을 따질 처지도 안 되었고, 그냥 주는 대로 용돈만 받은 셈이었다. 그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두 번째 알바부터 혹은 그 다음 어떤 직장에 들어갈 때도 일단 조건부터 분명히 따지고 확인하고 그러기 전에는 일을 시작을 안했다. 그런데 몇 십 년을 지나도 꼼수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간호보조사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일을 쉬었을 때, 그러니까 전업주부가 되려는 찰나, 그때도 한 두주 쉬고는 왠지 좀이 쑤셔서 일단 간단한 알바라도 해보자 했었다. 그때 나는 동네 편의점에서 12시부터 4시라는 점심시간대를 부탁받고, 잠시니까 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4시에 교대하는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로, 자기는 4시부터 11시까지, 그 다음 대학생이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그리고 이른 아침 세 시간을 주인이 직접 챙기고 다시 9시부터 4시까지 다른 여자가 7시간 그렇게 돌아갔었더란다. 그러다가 웬일인지 주인이 오전시간을 더 하고 오후 네 시간만 남겨 놓은 거라고.

    아니, 세 사람 쓰면서 각 8시간이 아니고 7시간씩? 복잡하네요.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저녁시간 여자는 내게 알바 한다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시선을 던졌다. 시급 계산에서 복잡해지는 풀타임 8시간은 절대로 주지 않는 것을 모르냐고! 모든 편의점이며 그 비슷한 알바들이 다 그렇다는 것. 그게 주인들의 꼼수라고. 모르면 바보고.

    옛날에는 꼼수를 쓴다고 하면 일단 쩨쩨하게 군다는 형편없는 뜻이었는데, 이제는 애교 정도인가 보다. 살려면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말에 비해서, 살려면 꼼수도 알아야지, 라고 하면 훨씬 낫지 않은가. 마치 사회생활에서 줄다리기나 숨바꼭질 같은 것, 죄를 짓는 건 아니고도 잘하면 이득을 볼 수 있는 행동들을 꼼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묘수 같은 셈이다. 그런데 대형 병원들조차? 내가 편의점 주인이 된다면? 모르겠다. 어느 만큼의 꼼수부터 죄가 되는지 세상엔 모르는 일 천지다.

 

 

    세상이 어떠하든 나는 열심히 잘 지낸다. 어머니는 청주에 계시다가 하늘나라에 계신다. 아니 지금도 청주에 계신다. 톡 프사에 올려놓고 영상 통화하듯 들여다본다. 소리만 없다. 침묵의 영상통화.

우리 은이는 잘 웃어서 이뻐. 어여, 웃어봐. 이빨도 가조로니 얼마나 이뻐. 노상 그러고 살어. - 주문처럼 어머니의 말이 들린다. 침묵의 말이다.

 

    요즘에는 오전 일도 다시 시작했다. ‘고엽제 어르신’ 집을 그만 둔 한참 뒤부터다. 혼자 계시는 이 까칠한 ‘할머니 어르신’은 까칠한 성격 좀 참아주면 된다. 이 할머니도 그러고 보니 암환자였다. 항암치료 중이었는데, 암 전문병원에 가는 날은 딸이 모셔가므로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저절로 쉰다. 받아온 주사약을 가지고 중간급 병원에 맞으러 갈 때는 내가 모시고 가는데, 택시비 때문에는 매번 불편하다. 택시 값이 들쭉날쭉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기사에게 불평을 늘어놓으신다. 그러면 젊은 내가 무안해지는 것이다. 이럴 땐 수급자를 차에 태워 다니지 않는 내 원칙이 조금 흔들린다. 하지만 아니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같은 센터 요양보호사들의 경우 수급자를 태우고 다니다가 접촉사고도 내고 그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수리비나 합의금은 누가 주어야 맞는가. 그런 복잡한 일을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매번 기름 값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또 이해 못할 일이 있다. 이 오전 할머니는 따뜻한 물도 못 쓰게 할 만큼 절약형인데, 미장원에 가서 염색도 하고 오고, 은근히 이런저런 물건들도 사들인다. 나이로 보면 오전 ‘수급자 할머니’가 오후 ‘보호자 할머니’보다 좀 많아 보인다. 아니, 상당히. 그런데 오후 보호자는 거의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 나도 웬만하면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지 않는 편인데, 나보다도 더한 것 같다. 근처 시장이나 슈퍼 갈 때도 입던 그대로 겉에만 아무 거나 걸치고 나간다. 마스크를 쓰기 때문이겠지만 화장도 없다. 하루에 두 집을 다니니까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된다.

 

    오후 ‘할아버지 어르신’은 지금 독서에 열중해 있다. 독서는 그 자체로서는 뇌 활동에 좋지만, 더더욱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다. 거실이 너무 조용해서인지 보호자가 나온다.

    오늘은 어르신이 책이 재미있으신가 봐요.

    그래도 뭔가 말을 하도록 해야…….

    입 닫으시면 어려워요.

    알아요, 내가 더 잘 알죠. 우린 서로 하는 말이 별로 없어요. 오래 함께 살다 보니까 할 말을 다 해버렸나, 뭐 그런 것. 우물을 다 퍼내서 말라버린……. 그보다, 말 해도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안 해도 아는 것은 알고.

    뭐예요? 말을 해야 알죠. 나팔꽃 이야기를 나한테만 하시니까, 어르신은 완전 모르시잖아요.

    알고도 말 안할 수도 있어요. 말을 꼭 해야 하나요?

    말도 그리 안 하시면, 하루 종일 뭘 하세요, 그럼? 제가 와 있는 시간에나 좀 나가시고 그러세요. 산책이라도 다녀오시고.

    맨날 시장 가잖아요, 병원도 다니고.

    아니, 먹거리 시장 말고요. 산책하신다 하고 시장 줄줄이 상점들 구경이라도.

    살 일이 있어야 말이죠. 지금 있는 것들, 글쎄, 못 다 쓰고 죽을 걸요.

    에이, 또 죽는다는 소리!

    어느 순간 돌아보니까 버릴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오래 살았고 많이 샀다 싶네요. 옷이며 뭐며, 이게 다 쓰레기인데.

    옷은 따로 버리잖아요, 관급봉투 안 쓰고. 무슨 걱정이세요!

    봉툿값 그 말이 아니라. 길어지는데.

    길어도 괜찮아요, 듣고 싶어요. 다들 새 옷을 좀 사잖아요, 요즘은 비싸지도 않고.

    그러게요.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연간 68벌을 산다는 통계도 있던걸요. 그 중 10퍼센트 이상을 입어 보지도 않고 버린다고.

    설마요, 저는 6벌도 안 사는데…….

    알지요, 그래서 내가 ‘이쁜 지 선샘’이라 그러죠. 들어보세요, 재미있는 이야기.

    뭘요?

    동생네 딸 말인데요, 웃지 마세요! 그러니까 조카딸이 엄마랑 쇼핑을 갔는데, 제 엄마가 자잘한 것들 재미로 사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엄마, 또 예쁜 쓰레기 사려고? 그랬다네요. 살 때는 가볍게 사니까 과잉소비라고 생각 안하죠. 하지만 별로 쓰지도 않고 또 한철 지나면 버리고, 그러니까 예쁜 물건이기는 해도 결국은 쓰레기를 사는 셈이라는 거죠.

    예쁜 쓰레기?

    맞아요. 우리가 재활용수거함에 옷들을 버리면 다 누가 재사용하는 줄 알지요? 그런데 5퍼센트 겨우 쓰고, 나머지는 수출이라네요. 인도나 캄보디아 등 그런 데로, 아프리카로도. 가나라던가, 거기 어디 이야기를 봤는데요. 인구 3,000만에 일주일에 1,500만 벌이 들어오면 절반은 쓰레기고, 처리만 곤란하다고. 70억 명 사람들이 지구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옷을,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 내게요?

    상상이…….

    상상 안 갈 걸요. 일 년이면 만드는 옷이 1,000억 벌이래요. 시간 당 1,000만 벌을 생산하고 그 중 300만 벌은 버려진다네요. 연 330억 벌을 버린다고요.

    설마요.

    나 이 숫자 잘 외웠는지, 뭐 틀릴 수도 있겠지만, 암튼 엄청난 숫자의 옷들이 생산되고 버려지고, 지구는 그 쓰레기를 감당할 수가 없고…….

 

    핸폰이 울린다. 넘 다행이다. 머리 복잡해지는 이야기에서 구해준다. 침묵이 답답해서 말을 시키면 이 할머니는 엉뚱하게 해골 아픈 이야기를 하곤 한다. 침묵이 나으려나. 모르겠다.

    퇴근 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출발했나 채근하는 친구가 꼭 있다. 사회복지학과 시절 친구들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야간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나이도 서로 다르지만, 몇몇은 계속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 일에서라면 우승컵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다. 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친한, 사랑하는 남편과가 아니라, 이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면 왜 그리 즐거울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말들, 말들.

    어서 가 보세요!

    네, 뭐! 지금 가면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아직…….

    그러게요, 조금 일찍 나갈 수가 없다면서요.

    네, 태그 찍는 것, 칼이에요.

    앞치마를 벗어 두고 핸드폰을 챙긴다. 마지막 3분 4분이 엄청 길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몸조심하세요! - 이런 인사말은 노인들에게 환자들에게 알맞은 말 같다. 나로서는 습관이다. 한번은 이 할머니가, 예, 밤새 몸조심할게요! 라고 대답해서 조금 이상했다. 하루 사이 몸조심 할 일은 아닌가? 얼핏 놀리는 것 같았지만 알게 뭐냐. 몸조심보다 좋은 인사말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우렁차게, 두 번은 어떠랴.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예, 내일 봐요.

    판에 박은 인사말을 들으며 계단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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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침묵 사이」, 『국제PEN광주』 19호 2021.12. 168~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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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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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2. 2. 18. 22:43

먼지 

 

     먼지라니, 사람을. 사람이 다 먼지인가…….

읽던 책을 덮고 일어나면서 보호자가 뭐라고 중얼거린다. 오후 재가요양돌봄 ‘어르신’의 보호자 말이다. 이 시간, 보통 때 같으면 당근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고 있었을 텐데 웬일일까. 책을 읽다가 밥시간을 놓치다니, 드문 일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더 쉬고 월요일에 출근했을 때다. 밥은 준비 되어 있었고, 차리는 일만 남아서 조금 서둘러 상을 차린다. 내가 오전 집에서 오후 집으로 바로 이동하는데, 점심은 오후 집에서 어르신을 돌보면서 함께 먹는다. 점심 후에는 보호자랑 둘이서 커피를 마신다. 보호자는 할아버지랑 이야기하고 놀아달라고 한다.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니 깨워보란다. 할아버지는, 어르신은, 점심을 드시자마자 그새 또 잠 속에 빠진 자세다. 이 어르신은 요즘 들어서 밥숟가락을 빼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잠에 빠진다. 내가 청소기를 돌려도, 청소기 소리가 시끄러워도 개의치 않는다. 보호자는 별로 어질러 놓은 것도 없으니 청소는 하루 걸러서 하란다. 실제로 청소기 먼지 통에 올라오는 것도 별로 없다. 그렇다 해도 내게도 3시간 일의 리듬은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그보다 궁금한 말이 입에서 맴돈다. 사람을 먼지라 어쩌고 중얼거린 것, 무슨 말이었을까. 물론 말은 추석 연휴부터 꺼낸다.

추석 연휴 힘드셨지요? 근데 아까 먼지 어쩌고 하신 말씀은 뭐예요?

힘들 것까지야. 지 선샘은 잘 쉬었어요?

     먼지 이야기는 잊었나, 그냥 흘려버린다. 나도 그냥 딸네가 왔다 간 이야기, 사위가 오니 확실히 음식 신경이 쓰이더라는 이야기로 대꾸할밖에. 보성 시댁에서 동서들이랑 모였던 이야기도 덧붙인다. 내가 모이자고, 딱 네 집만, 여덟 명 거리두기 숫자는 지켜서 모였었다고. 말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난다. 명절이면 꼭 찾았던 친정집이 하늘이라는 사실, 아니면 땅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판다.

 

     이 보호자는 나에게 잘 대해주는 편이다. 꼬박 ‘지 선샘’이라 부르고, 딱히 요구사항도 없다. 나더러 곧잘 ‘이쁜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번에도 맏이도 아니라면서 식구들 불러 밥 먹이고 그랬다고 칭찬이다. 이 보호자 할머니도 추석 연휴에 힘들었을 것이다. 명절이면 인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사실 환자 어르신은 연휴 지나고 더 밝아진 느낌이다. 아까도 꽂히는 음식이 있어 잘 드셨다. 그때그때 어떤 특정한 반찬에 집중하시는데, 그걸 예측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어르신이 연휴기간에 컨디션은 괜찮았고, 산소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놀랍다. 물론 함께 부축할 요량으로 사람들 여럿이 모시고 갔겠지만, 산소에 가는 것은 큰 외출인데. 이 할머니야 사람들 밥 챙겨주느라고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밥이 중한 집이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할머니가 베란다로 나간다. 그동안 물주는 걸 잊고 있었다고 놀라면서. 나도 할 일이 없어서 따라 나간다.

 

     나팔꽃 다 치우셨네요, 어머나!

     예, 영원한 것이 있나요.

     뭐야, 갑자기 철학은! 하긴 이 할머니한테는 나팔꽃이 구원 같았다. 그러기도 한다. 여름 내내 그것을 보았다. 나팔꽃은 저절로 자라고 꽃을 피우는데, 열, 스물, 꽃송이를 세는 할머니는 당황스레 좋아했다. 이제는 허전하리만치 깨끗하게 비워진 공간이 쓸쓸하다 못해 이상하다. 저쪽 넝쿨장미들은 잎들이 여전하다. 할 말이 없어서 장미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어르신이 백장미를 젤 좋아하신 게 아니었다고요? 근데 왜 그걸 사오라 하셨을까요?

     예, 느닷없어서 놀랐다 그랬잖아요. 평생 저 붉은 넝쿨장미를 끼고 살더니만, 어쩌다가 백장미 생각을 했을지. 저것들이 죽다 살다 했지만 수십 년 전에 본가 앞마당에서 가져온 것이거든요. 서너 번 이사할 때마다 들고 다녔고.

     애지중지하시던 넝쿨장미를 잊으셨다고요? 수십 년 된 걸요?

     예. 우리 집에 있는 것들은 거의 다 그러죠. 낡을 대로 낡은, 늙을 대로 늙은.

     아, 맞다! 지난해 꽃 피었던 선인장도!

     에이, 놀리지 마요! 그건 내 엉뚱한 착각이었구만. 말도 꺼내지 마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그 이야기는 싱겁기는 하다. 작년, 가을이 깊은 때였다. 점심 후 밥상을 널어놓은 채로 이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거실로 들여놓은 화분들이 있는 쪽이었다. 꽃기린, 문주란, 산세베리아 그리고 선인장 종류들을 먼저 들여놓은 참이었다. 거기 뭉툭한 선인장 하나를 가리키면서 더듬거렸다. 키가 다 해도 10~15센티쯤 되는 작은 선인장인데, 침들만 무성하지 볼품도 없는 모양새였다.

     여기 꽃 좀 보세요! 이 작은 미세한 꽃, 꽃잎, 보이죠?

     꽃잎이라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돋보기를 꺼내서 쓰고 들여다보았다. 이런 게 무슨 꽃이라고, 꽃인들 이런 보이지도 않는 작은 꽃이 뭐라고! 그런데 꽃이었다.

     어, 어라? 정말 꽃이네요. 작은 꽃잎이 넷이네. 어떻게 딱 한 송이가 이런 가시들 사이에서 핀 걸까요? 근데 이게 왜요?

     그러니까 꽃 맞는 거죠? 꽃이죠? 이게 그러니까 40년 된 선인장이라서.

     아무리, 설마요.

     맞아요. 울 아부지.

      …….

     아부지가, 우리가 처음으로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그때 1980년 가을에 가만히 들고 오셨어요. 이게 잘 안 큰다. 그래서 금강석이라 그러지, 변함이 없다고. 오래는 가니까 잘 키워 봐라! 그러시고는…….

     그러시고는? 괜스레 조바심이 나서 나도 모르게 채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거든요. 선인장으로 남은…….

     뒷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40년 전이라 해도 어른이었네, 뭐. 아직 중학생일 때 아버지를 여읜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되잖아. 이 할머니, 이런 나이에도 감상에 젖나! 아버지 이야기라니! 하긴 나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버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은이 니가 아부지 젤로 좋아혀서 그랴. 아니라고 내숭 뵈지 말어야. 자석이 아부지 좋아혀서 나쁘가니.

     청소기를 돌리면서 다른 상념들은 곧 잊었다. 그쪽으로 청소기를 밀고 갔을 때까지도 할머니는 여전히 선인장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해서 또 할 수 없이 듣는 시늉을 했다.

     여기저기 몇 시간째 찾아보았는데, 아부지가 말한 금강석이라는 선인장은 없더라고요. 바른 이름은 ‘금강산 선인장’이래요. 군산에선가 60대 누군가가 식물원에 금강산 선인장을 기부했다는 사진이 있더라고요. 여기 캡처, 이것 보세요. 비슷하죠? 이게 아기 세살 때부터 37년간 키운 것이라고 했어요. 암튼 이 종류 선인장이 30년, 40년을 문제없이 살아 있는 거예요. 인터넷 판매도 하는데, 10센티 그 정도. 또 다른 이름들은 암석주, 암석사자…….

     할머니는 두서없는 말들을 암기 숙제하듯 내뱉고 있었다.

     이제 좀 일어나세요, 여기 청소기 밀게요.

     사라져버릴까 걱정 돼서요. 이것 꽃 정말 맞지요? 앗, 지 선샘, 이리 와 보세요. 여기 이쪽엔 두 송이가 피었네요. 너무 작아서 안 보였나봐. 오늘 해가 안 나니까 실내가 어둡네. 이쪽은 두 송이니까 꽃이 분명해. 휴, 살았다. 착각인가, 환시인가, 은근 걱정했거든요. 환시가 무엇인지 알죠,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오늘따라 저이는 내가 들락날락거려도 신청도 안 하네요. 어제 오후에 내 커피를 반쯤이나 슬쩍 마시더니 밤새 잠을 전혀 못 잤다고, 아침부터 아예 누워만 있더니. 지 선샘, 여기 좀 봐요. 이쪽은 두 송이라니까요.

     좀 솔깃했다. 세상에 저렇게나 작은 꽃도 있으려나. 그런데 있었다. 어떻게 이리도 작은 꽃이 이쪽 하나 저쪽 둘, 자리도 예쁘게 어울리게 피어났을까.

     정말 그러네요. 정말 꽃이에요. 아깐 훅 불어 보려다가 혹시나 해서 못했는데, 이젠 불어볼까요?

     에이, 뭣하게 불어요.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40년 동안 한 번도 피지 않았던 꽃이 오늘 피어 나냐고요.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으신 것 아녜요?

     무슨 따로 좋은 일이 있겠어요. 좋은 일이라면 어제? 저녁에 외출했던 일, 일이 있었으니까. 근데 어제 우리 할아버지 정말 웃겼지요?

     둘이는 그 생각에 깔깔 웃었다.

 

     보호자 할머니가 전날 저녁 외출을 했었다. 어쩌다 그럴 때면 내가 그냥 단순 시간 알바로 베이비(?)시터 노릇을 한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일단 안방 이부자리를 살펴주고 있는데, 어르신이 아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줘야 하는데, 내가 남자인데 혼자 집에 못 있는다고 지 선생 붙잡아 놓고, 여자는 밤늦게 돌아다니고! 그 순간 마침 들어온 할머니랑 다 같이 깔깔 웃었다. 밤늦게 아니라고, 일찍 오신 거라고, 내가 대신 변명을 했다.

     환갑이 넘으면 남자도 여자도 남자 여자가 아닌 거예요. 그냥 사람이죠.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젊은이가 덜 젊은 사람을 보호해야지요.

     할머니가 늙었다는 말을 빼려고 어렵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또 웃음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서 하다가 늙었다는 말에 이르고 말았다. 내가 덜 젊다는 말이냐, 그러다가 그게 더 늙었다는 말인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는, 보호를 해야 하는 쪽이 더 젊은 쪽이니 보호를 받는 덜 젊은 쪽이 낫다는, 할머니의 이상한 우김질로 끝났다.

     할머니가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또 선인장 꽃이 피어나서 설레고 있었다. 나도 따라 설렐 일은 아니지만, 워낙 함박웃음 없던 할머니가 확 밝아진 얼굴하고 있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떤 일은 너무 쉽게 무너져버린다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이튿날 만난 할머니는 유난히 퍼렇게 얼어 있었다. 집 안에서도 꽁꽁. 그러니까 꽃이 꽃이 아님을 알았더란다.

     잠깐 착각으로 천국과 지옥이네요. 어제는 종일 내가 혼쭐이 나갔었나. 저녁 먹고 나서는 전등불이 밝은데도 것도 모자라 가까이 랜턴까지 들고 가서 들여다보았어요. 또 확인하려고. 그런데 불빛에 자세히 보았더니, 세상에나, 사방에 조금 큰 꽃가루 같은 것들이 널려있는 거예요. 금목서 마른 꽃들이 흩어져서요. 그 지난 주 금목서 가지들을 여기 꽃아 놓았었잖아요. 뒷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놈들 한두 가지 잘라다가. 그때 마르면서 흩날렸던 것을. 그 깨알같이 작은 낱송이 하나만 보고서 전체로 풍성한 금목서 꽃을 상상도 못했지.

     네? 꽃이 아니라고요?

     꽃은 꽃이죠, 말랐어도, 부분이라도. 그게 선인장꽃이 아니란 거죠. 그 전날 외출했을 때요, 내가 나름 중요한 일을 마무리 짓고 왔었거든요. 이래저래 맘이 들떴었나 봐요, 헛것이 보이게.

     헛것이라뇨, 그저 착각을 좀.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아니, 그냥 시시한 일. 것보다 문제는 그 여파죠. 어제 주책을 떨었단 말예요. 근년에 친구가 된 젊은이한테 선인장꽃 이야기를 떠벌렸죠. 톡으로 구구절절, 사진까지 보냈으니. 그리 방정을 떤 것이 넘 부끄럽단 말이에요. 나잇값도 못하고.

     나는 차마 말을 섞을 수 없었다. 그래도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 했다.

     나쁜 의도로 거짓말 한 게 아닌데요, 뭐.

     그런데 그 친구 하는 말이요 – 나이는 딸과 손녀의 중간쯤인데 - 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마지막 잎새」도 가짜였지만 진짜였잖냐고! 그러니 진짜인 거래요. 가짜라도 진짜라고!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이었어요. 위로 받고 싶었었는지.

     그러네요, 마지막 잎새!

     어제 아침엔 눈물까지 찔끔거리다가, 온종일 들떠서 40년의 절반은 젊어진 느낌이었는데. 얼어 죽을까 노심초사 겨울도 오기 전에 들여놓고를 40년을 반복했지만 키도 그리도 안 자라더만, 언감생심 꽃은.

     알았어요, 자, 이제 안심하시고! 추억만으로도 감사, 캄사! 또 누가 아나요? 언젠가는 정말로 꽃이 필지.

 

     그렇게 극적인 선인장꽃 에피소드는 애석한 사연을 지닌 채로 짧게 끝났다. 그런데 올여름 어르신의 백장미 사랑은 그 반전의 전개를 알 길이 없다. 빨간 넝쿨장미에 대한 평생의 사랑이 어떻게 잊혔을까. 보호자는 아예 영문을 몰라 하고, 어르신에게서 긴 줄거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노인들을 보면 과거는 곧잘 끊기기도 한다.

 

 

     입은 채 그대로 보호자가 나간다. 슈퍼나 코 앞 시장에 나가나 보다. 나는 어르신을 깨우려고 소파로 가 본다. 어르신은 여름 내내 산책이라면 고개를 가로 젓고, 소파에서도 늘 이렇게 누운 자세다. 요즘에는 그래도 재미있는(!) 책을 읽느라고 반쯤 기대어 있는 날도 있다. 깨어나면 책을 읽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책을 좀 읽고 싶다고 하시니까, 보호자가 들지도 못하게 생긴 아주 두꺼운 책 하나와 그 반쯤 되어 보이는 책을 내왔다. 이집에 책들은 많다. 노인들 집인데 엄청 많다. 처음에 읽기 시작한 것은 더 얇은 쪽이었는데 제목이 엄청 길었다. 『천 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의 이별은 있다』 - 그러고 보니, 어머니 상을 마치고 처음 왔을 때 보호자가 했던 말이 이 책의 제목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별 연습 책인가? 어르신은 그 책을 곧 치우고는 더 두꺼운 쪽을 시작했는데 열심이시다. 제목은 우습기까지 하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그 비슷하다. 책에 너무도 관심이 없는 나는 제목을 금방 잊곤 한다.

     어르신은 내가 탁자 위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꿈쩍도 안 하신다. 너무도 깊이 잠들어 계신다. 낮잠도 이렇게 깊을 수가. 탁자에 덮여있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이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글씨라 오히려 궁금해져서 읽어보고 싶다. 정말 작은 글씨다. (먼지의 말)이라니, 괄호 속에 쓰인 제목은 정말 먼지 같은 글자로 쓰여 있다. 어르신은 눈을 뜨고서도 움직이지도 않고 대꾸도 없다. 가만히 책을 들어본다. (없지 않은 존재들의 목소리) 라고도 표지에 쓰여 있다. 차례를 펼쳐 보니 ‘이상한 점’, ‘죽었다 아니 죽였다’ 등 조금 무서운 말들이 들어있다. ‘돌연사’, ‘우리들의 죽음’ 그런 제목도 있다. 이렇게 작은 글자들에 너무 엄청난 이야기들이 들어있나 보다. 두 번째 페이지를 넘기려니 손이 떨린다. 서둘러 책을 덮는데 보호자가 들어온다.

 

     아, 지 선샘, 책 보려고요?

     아아뇨, 저 책 별로 안 읽어요. 그냥 제목이 궁금, 잘 안 보이니까.

     먼지라니 놀랬죠? 거기 쓰여 있잖아요, 없지 않은 존재들, 그것이 먼지 같은 인생들 말인가 봐요. 먼지 취급당하는,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말이죠. 약자들에게도 목소리가 있다고, 더 작은 목소리들을 대신해서, 먼지 같은 목소리라도 말 하련다고.

     그러니까 아까 먼지 어쩌고 하신 말씀이 이 책에? 왜 하필 먼지라고?

사람을, 약자를 먼지 취급하니까, 먼지만도 못한 없는 존재로 아니까. 해서, 먼지 같은 존재도 ‘없지 않은 존재’라고 항변하는 거요.

    없지 않은 거면, 있는, 있는 존재네요.

    예, 없는 존재들도 말을 하네요. 작가가 대중들한테 민주주의 강의를 하다가 ‘부자가 왜 나쁜가요?’ 물었더니, 어떤 할머니가 스스럼없이 그랬다네요. ‘나쁜 짓을 안하몬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모은대.’ 누구라도 터무니없이 많이 돈을 모았다면, 필시 남한테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했을 것이라는 거죠. 그 할머니 생각으로.

네?

     그런 큰돈이 나온 곳에서라면 다른 누군가는 필시 울고 있다는 말. 평생 살아보고 깨우친 이치가 그렇다는 거죠. 이 사람, 저자 채oo 선생도 해고당한 인문학자고요.

     인문학자요?

     대학강사 말이죠. 언제부터인가 교육이 완전 실용주의가 되어갔으니 인문학자는 발붙일 자리가 없는 거죠. 인문학은 교수도 인원을 줄이는 판에, 강사들 자리는 풍전등화니까.

     대학강사면 그래도, 우린 다 교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야간대학 다녔을 때 말예요, 우리보다 젊은 강사님들, 얼마나 부러워했었는데요.

     지식이 돈이 안 되면 쓸모없다고 말하는 거죠. 쓸모없다고 해고된 강사가 ‘먼지로서 먼지에게’, ‘마음이 견디지 못해, 가슴에서 돌멩이 하나를 빼내듯이’ 썼다네요.

     고약한 책이다. 대꾸할 엄두도 나지 않고, 가슴만 무거워진다.

     고전 철학 때부터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견해가 있었지요. 정확히는 ‘강자의 우위일 뿐’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상대 편, 트라시마코스라고. 이름이야 뭐든.

     네, 저 외국 이름들 엄청 약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 핑계를 두리번거린다.

     잠깐만요! 어르신 눈 뜨신 건가?

 

     어르신 쪽으로 가서 살펴보고 있는 동안에도 보호자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지 선샘, 우리 천주교 신자님! 천주교의 정의를 봐요! 초기 천주교 박해 때요, 죽음을 감수한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정의의 이름이었죠. 칼 든 쪽 정의가 정의인 거죠, 나쁜 정의였지만. 그릇된 바름이 문제죠, 하물며 신앙까지도, 미안!

     나쁜 정의, 그릇된 바름, 그런 말이 어딨어요. 더러운 순백색 그런 말이 어딨냐고요! 그렇게 반박하고 싶지만 말이 짧으니 가만있을밖에. 도망칠 기회를 기다리자. 속도 모르는 할머니는 진지하게 말한다.

     저 책 『잠들면……』 은 기독교 정의를 실천하러 아마존에 들어간 선교사가 쓴 거예요. 가서 보니까 원주민들은 이미 평화로운 정의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걸 감탄하게 되었으니 선교는 그냥 손들고 말았다는 이야기예요.

…….

     선교가 잘 먹힌 것이 우리나라 천주교였지만, 처음 피해는 엄청났죠. 내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나? 천주교 박해니 그런 말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목숨까진 아니라도, 불이익, 느닷없이 해고되고 그런 사람들 숱하게 봤겠죠.

우리가 결혼 초에 근무하던 병원이 급히 문을 닫게 되었던 그때 일이 떠올랐지만 가만있기로 한다. 나는 곧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남편은 밤에 알바로 뛰던 병원에만 나갔고, 곧바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던 기억이 새롭다.

     책 거기 스티커 꼽아진 데 펴보세요. 해고된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 강사법 시행에 해고된 대학강사가 거기 ……

     아 네, 7,834명이라고. 도살된 돼지 4,700마리와 다를 바 없다네요. 왜 하필 돼지에다 비교를…….

     다른 책에 보면요, 신문이었나, 출근 했다가 죽는 노동자가 매일 10명이래요. 이런 현실은 총알 없는 전쟁이라고. 실습 나간 고등학생도 죽었잖아요. 여기 보면, 5년간 건설현장에서만 사망자 숫자가 3,400. 먹고 살려고 일하러 가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죽다니요. 돈 만들어 내는 구조가 죽인 거잖아요.

     돈 만드는 구조라고? 점점, 불편한 말들이 속사포로 쏟아진다. ‘죽었다 아니 죽였다’에 쓰여 있는 말인가 보다. 말을 좀 돌리고 싶어진다.

     죽인 게 아니라 안전불감증 땜에 그런 거잖아요. 저번 주택재개발사업 현장에서 5층 건물이 길 쪽으로 붕괴된 그런 사고 말이에요. 조심을 안 해서.

     바로 그 안전불감증이 범인이라니까요. 하도급 또 또 하도급을 왜 주는데요. 경비 절감이잖아요. 이 책에서는 ‘노동을 갈아 넣고 주식이 버는 돈, 자본의 탐욕이 범인’이라고 하네요. 또 망각이 공범이죠, 무서운 공범들.

공범?

     김용균 죽으면 잠시 화들짝 눈물짓다가 돌아서면서 잊어버리죠.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아닌 사람들이 지뢰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꼴이죠. ‘누가 돈을 가져가느냐?’ 사람들이 그것을 묻기 시작했다고. 여기 그렇게. 시작은 희망이겠지요. 무엇인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먼지 같은 존재들도 알고는 있다고.

     저, 그런데, 이런 책들을 왜 읽으세요? 사망 그런 것 뉴스에 다 나오는데?

     뭐, 다 읽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이런 책을 일단 사는 것이 그저 응원 같아서.

     응원요? 읽지 않을 책을 산다고요? 그래서 집에 책들이 많은 거예요?

     우스운가요? 입지 않을 옷을, 먹지 않을 음식물을 사는 것 보단 낫지 않나. 어렵거나 맘 불편해서 못 읽는다 해도, 그 글 쓴 사람들에…….

     이 집에 있는 책들이, 그러니까 읽지 않은, 읽지 않을 책들도 있어요?

     어느 정도는, 예.

     어의상실! 이런 할머니가, 병원비다 뭐다 돈이 남아돌아갈 리가 없는 노인이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산다고?

     책은요, 책을 쓴 사람 생각으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어차피 누구나 진리를 쓰진 못할 것이고. 결과물이 미흡해도 오류는 사람의 것! 하지만 뭔가 애쓴 노력이, 그 진지함이.

     그래도요. 버릴 거면 뭐 하러 책을 사나요. 책도 공해란 말 있잖아요, 카세트처럼.

     버려진들 책은 크게 나쁜 쓰레기도 아니네 뭐. 흔적 없이 썩으니까.

     오늘은 어째 나쁜 것 이야기를 많이 하시네요.

     쓰레기도…….

 

     띵똥 – 엄청 반가운 문 소리다. 또 ‘이쁜 쓰레기’ 이야기를 하려나 머리가 아프던 순간에 알맞은 방해다. 어? 부엌 환기통 청소를 하란다. 비대면 시대에 이런 방문도 있나? 하긴 일감이 없으니 방문 청소라도 하러 다니는가 보다. 이집은 청소 전문인걸요, 완전 새것처럼 얼룩 하나 없네요. 안녕히 가세요! 어수룩한 청소업자를 돌려보내고는 서둘러 부엌을 향한다. 일단 도망이다.

 

 

     먼지의 목소리, 먼지의 이야기, 이 책은 안 버리겠네요. 우리가 다 먼지인데. 먼지에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인생…….

     보호자는 여태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저 불신자의 버릇이 또 나온다. 신을 믿지 않으니까 죽네 사네를 저리 함부로 말한다. 아니, 잠깐만.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바로 창세기에 그런 구절도 있지 않은가. 내가 젤 좋아하는 재의 수요일 미사 때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 순간 신부님의 목소리는 성당의 높은 천장을 넘어 하늘까지 퍼져나가고, 나는 땅에 묻혀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깨달음을 새기곤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다시 보호자 쪽으로 향한다.

     저, 그런데 흙은 먼지가 되는 거지요?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여기서 흙이 왜?

     아니,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하시고.

못 말리는 우리 지 선샘. 맞아요, 흙으로 빚어졌으니 망가지고 부서지면 먼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걱정 마요. 지 선샘은 영혼을 믿는 신자니까 영혼이 하늘나라로, 해서, 먼지가 될 일은 없겠네요. 안 믿는 나는 아마도 흙이나 먼지가 되고 말겠지만. 괜찮아요, 세상 만물이 다 먼지가 되는 것이니까요.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무섭다니요! 무엇이든 받아들이면 무서울 것이 없답니다. 가난도 병도 받아들이면 덜 무서워요.

     가난하지도 병든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이 말도 당근 속으로만 했다. 이상한 말을 잘하는 할머니랑 말씨름 할 일이 뭔가. 하지만 세상에는 살아서도 먼지 같은 인생이 많다는, 탁자 위의 저 글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가만, 떠돌아다니는 카톡에 좋은 말도 많더라. 자기 집 있고, 밥 든든히 먹을 수 있고, 깨끗한 물 마시고, 휴대전화며 인터넷을 하면, 그럼 극소수 특권층이라고! 옳다, 이것이다. 이것으로 대꾸해 보자.

     저 그런데요, 집 있고, 밥 배불리 먹고, 깨끗한 물 마시고, 또 뭐더라, 핸드폰 그런 것 쓰면 특권층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세계인구 7퍼 이내.

     그런가, 그 정도라는 말 맞겠지요. 근데 7퍼센트 안에 들면 뭐요?

     당근 기쁘죠, 그 정도로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죠.

     아니, 100명에 70명 정도가 행복하다면 몰라도 겨우 7명 빼고 나머지 대부분은 어렵다는 말인데. 7명 속에 들었다고 맘 편하게 행복하나. 먹고 사는 걱정은 누구라도 안 해야죠. 누구라도 기본 의식주는 되는 세상, 비굴하지 않게 사람답게 살 정도는 되는 세상, 나는 그래야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영생의 하느님 나라 말고, 여기 땅에서 천국.

     다 같이 잘 사는 나라? 그런 말 하면 공산주의자인데. 물론 이 말도 속으로만 했다. 이 할머니가 무슨 정당 그런 데 소속일까. 설마, 이렇게 집 안에만 박혀 있는 사람이 무슨. 아니, 이 전에 이 할아버지가 건강할 때, 할머니 활동이 자유로웠을 때?

     저 그런데, 젊어서는 일 하셨지요? 무슨 일을 하셨어요?

      …….

     직장 그런 것.

     배운 만큼 일 못했고, 결혼은 그냥 했고, 그것이 삶이니까 살았지요. 따로 뭘 했겠어요. 우리 세대는, 물론 좀 앞서간 친구들도 있었긴 해도, 그냥 거기 있는 삶을 살았지요. 공부를 조금 더 할 수는 있었는데, 잘 써먹을 만큼은 아니었고. 상황도 좋지 않았고요.

     어르신처럼 선생님 하셨더랬어요?

     아아뇨. 결혼 전 쬐금 하다가 말았고, 나중에는……. 암튼 불발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기회가 없었던 것이 필연이었다 싶어요.

     필연?

     어차피 쓸모없는 공부였으니까, 쓸 데가.

     네?

     청년실업이라 하면 우선 인문대 졸업생이죠! 그러니 대학들이 앞 다투어 인문대 구조 조정들 했고요. 취업 안 되는, 돈이 안 되는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거죠.

     아, 그럼 인문학 공부를?

     하다 그만 둔 공부가 뭐면 뭐겠어요. 학생들 스스로도 교수들에게 뭔가 쓸 모 있는 것을 달라고, 둥지 안의 새끼 새들이 ‘엄마, 나 쓸모 있는 것! 취업되는 것!’ 하고 입을 벌리는 상상을 해 봐요. 그런 공부를 뭐에 쓰겠어요. 나쁜 공부지.

     에이, 아까 그 나쁜 짓과는 다르네요.

     무엇이 나쁜 짓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죠. 쓸모없어서 식구들 밥을 굶기는 아버지가 나쁜가. 너무 쓸모 있어서 다 쓰지도 못할 산더미 돈을 쓸어가는 인간이 나쁜가.

     엥? 나는 정말 머리가 나쁜가 보다. 이 순간 나는 확실하게 어리둥절해졌다. 쓸모없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러니까 쓸모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무능한 아버지가 나쁘다. 그런데 돈 갈퀴질이 더 나쁜가? 무엇인가 기준이 혼란스럽다.

     지 선샘, 이거 리포트 주제 아녜요. 잊어버리세요. 성실하고 예쁘게 사는 우리 지 선샘, 건물주이면서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지 선샘! 충분히 쓸모 있는 사람이면서 충분히 좋은 사람! 남편한테 평생 가슴 설렌다는 사랑스러운 사람!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게 아니라, 모범생 맞죠. 일 밖에 모르고, 일 하면 돈을 벌고, 돈 버느라 놀 시간 없고, 시간 없으니 돈 쓸 시간 없고. 얼마나 좋아요. 다만…….

     다만 뭐요?

     다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쓸모없어도 보면 어떨지요.

     쓸모없는 짓을? 아니, 왜요?

     그건 숙제네요, 후훗.

     뭔가 찜찜한 채로 그렇게 오후 일이 끝난다. 대문을 나오는데 숙제 같은 화두가 그림자처럼 길게 따라 나온  다. 차에 앉아서도 냉큼 시동을 걸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말도 안 돼. 쓸모없는 일로 시간을 버리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왜 생각해야 하는데? 쓸모없어 보라는 헛소리, 뭐라는 거야. 생각할 가치가 어딨어! 하지만 어찌 들으면 ‘나쁜’ 짓은 쓸모 있는 사람들을 빗대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쓸모 있는 누구나가, 모두가, 나쁜 짓을 했다는 말은 말이 안 돼. 헛갈린다. 헛갈리지 말자. 머리를 쓰고 계획을 세우고 어렵더라도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먼지가 될 순 없잖아, 살아서는. 먼지로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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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문학 2022.1,2월호 vol.165  168~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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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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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2021. 9. 7. 02:17

 

낮꿈

 

 

 

 

인간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때문에’ 산다……

-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중에서

낮꿈이란 기이한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그리 덥지도 않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생소한 이름의 병균으로 뒤덮여버린 봄날 하루하루가 초록 빛 냄새도 없이 어물쩍 지나가더니, 여름이라 해도 따가운 햇살이 주는 순간의 행복감도 없이 웬 장마만 내내 찔끔거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마스크 속에 얼굴을 묻고 사는 이 요상한 일상은 기온 따라 더 답답하기만 할 때였다.

서기 2020년 - 팬데믹 세상을 지배하는 신의 이름은 불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비단 확진자 관련뿐만 아니라 온갖 뉴스들이 참으로 믿기 어려운 공포이거나 난해함 그 자체였다. 사건들은 누가 작성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서로 진실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내가 썩 괜찮은 부류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지금처럼 내가 바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 누구는 나 바보에게 이 말을 주입시키고, 다른 누구는 나 바보에게 저 말을 주입시키려는 것 같았다. 환자와, 정확히는 재가요양보호 수급자를 대하는 직업상의 만남 외에는 다른 모임들이 아예 없으니까, 평소처럼 수다 속에서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 나갈 기회도 줄고 있었다. 아, 그리운 수다! 일 할 때 일하고, 간단히 모여서 먹고 떠들고 다이어트 산책을 즐기고……, 이런 단순무식한 행복감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느낌이었다.

 

여름에 들면서 다행히 확진자 수는 줄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서 그럴까. 전쟁 같았던 분위기는 잠시 주춤, 해외에서 들어오는 환자를 빼면 하루 여남은 명 정도에 그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때맞춘 듯 돌발사건이 터졌다. 의협이 파업을 선언하며 ‘의료 4대악’ 철폐를 주장하자, 나 같은 사람, 간호보조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조금은 의아했다. 의료계 밖의 보통 사람들은 더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날도 재가요양보호 서비스를 나가는 날이었다. 점심이 끝나고 식탁에서 막 커피 잔을 들 때 보호자가 말을 꺼냈다.

지 선생님, 의대 정원 확대를 4대악의 하나라고 하네요. 의사 정원 늘리려는 것이 악이다! 공공 의대 증설도 악법이라! 믿을 수 없는 표현이요. 이 불안 불안한 나날, 언제 또 환자수가 폭발할지 모르는 판에, 의사 인력이 많아지면 수월해질 거 아니요!

글쎄요. 그게 아주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예요. 일단 의사 숫자가 갑자기 많이 늘게 되면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나중엔 수입도 보장할 수 없고. 나는 나도 모르게 의료계 편이 된다.

나중이라뇨? 물론 나야 잘은 모르지요, 병원 근무에 관해서는 꽝이니! 근데 기득권자가 신규 의사면허 막는 것은 횡포로 밖에 안 보이네.

어찌 보면 나중 생각해서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긴 하죠. 경쟁사회니까 어쩌겠어요. 꿈을 이루었는데 명예와 혜택을 나누라고 하니까. 의사면허는 꿈의 상징이죠.

꿈…….

병원 세계에서 봐요, 아, 무서운 사다리예요. 저 같은 간호보조사 입장에서 보면 의사란 못 올라갈 나무였죠. 그래봤자 의사 위에 판검사, 판검사 위에 장사라지만요!

예? 천하장사 그런 것?

아아뇨! 세상을 돈이, 장사들이 좌지우지하잖아요. 유전무죄!

어, 그러네, 기업이 결국 장사니까. 사농공상 – 봉건시대 서열 순서가 완전 뒤집혔네요, 서열이란 아예 없어져야할 것이지만.

맞아요, 서열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 생겨나요. 암튼 의사는 큰 꿈 중의 하나죠!

그렇겠네요. 그런데 그런 건 꿈이 아니고, 꿈나라 꿈이 꿈이죠. 의사되기 이런 건 낮꿈이라고요, 낮꿈.

거기에서 낮꿈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낮꿈? 낮꿈이라니요? 무슨 꿈이…….

 

그때 이 할머니가 소리 없이 자리를 떴다. 말없이 사라지는 것, 특기다. 낮꿈이라는 말, 무슨 말인가?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와있는 동안 외출이 일상인데 나가버리려나? 다행히 이번에는 외출이 아니었다. 어르신이 안방에 그대로 누운 것을 확인하더니 거실로 나가 앉는다. 마른 빨래를 걷어들고 따라갔다. 빨래는 당근 어르신 것만 내가 한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저 그런데, 낮꿈이 뭔데요? 그런 말 첨 들어봤는데요.

낮에 꾸는 꿈요!

낮잠 자다 꾸는 꿈요? 밤잠이건 낮잠이건 꿈은 꿈이죠!

다르죠. 내가 만든 말 아니고요, 독서죠. 아이 참, 옛날에 읽은 책 이야기를 꼭 하게 만드네. 『희망의 원리』 라는, 많이 어려운 책이요. 다는 못 읽고 시작하다 말았지요, 것도 옛날에.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을 낮꿈이라 했을 때, 그땐 감탄 그 자체였어요. 낮꿈 없이는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고, 오직 낮꿈을 통해서만 냉정한 시각을 소유하고, 직접 삶에 뛰어들게 한다고. 자아의 보존을 넘어서 우리의 저열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개혁의 희망이 들어있다고.

뭐야, 개혁이라니, 설마 운동권 같은 소릴 하네! 말투도 변한다. 이 할머닌 대체 무슨, 뭘 하던 사람일까. 사적인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서, 큰애 둘째라고 하는 아들, 그리고 대화 중에 여자애 이름도 있으니까 딸 하나 있는 정도 외에는 아는 건 없다. 사실 이런 한시적인 일자리에서 가족정보가 필요하지도 않다.

젊었을 때니까 감동도 컸죠. 하지만 그건 옛날이야기라니까요, 지금은 완전히 변질되었죠. 사회적 희망 보다는 개인의 욕망만 하늘을 찌르는 세상. 우르르 몰려가서 서열 정하고, 이긴 쪽은 우쭐하고 진 쪽은 주눅 들고……. 이런 세상에서 낮꿈 꿀 필요가 있나요?

그래도 삶의 목표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꿈요? 글쎄 그건 욕망이라니까요. 내 삶과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담겼던 원래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암튼 낮꿈 보다는 밤꿈이 꿈이죠. 자연스럽게 꿈을 꾸는 것이니까. 참, 밤중에 꿈 잘 꾸나요? 혹시 돌아가신 분을 꿈에 본다거나.

아주 가끔, 슬쩍요.

 

아버지가 어른거렸다. 내가 그리워하는 꿈이라면 딱 한 가지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던 형제자매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나 혼자서 뎅그러니 서 있고, 아버지가 멀리에 서 계시는데 얼굴이 안개에 쌓인 듯 희미하다. 얼굴이 안 보인다. 그래도 아버지인가. 그래도 아버지이다. 놀라서 깨면 꿈이다. 가끔 그 비슷한 꿈을 꾼다.

큰언니는 내가 임종을 못해서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아버지 돌아가신 것이 언제인데, 그만 잊고 털어버리라 하신다. 어머니도 내 꿈 이야기를 언니한테서 들으셨는지, 은이 니가 아부지 젤로 좋아혀서 그랴, 그러신다. 아니라고 내숭 뵈지 말어야. 자석이 아부지 좋아혀서 나쁘가니.

 

 

밤꿈은 갈망의 표현이라지만 허무맹랑하죠, 때론 놀라운 일도.

내가 다른 생각으로 도망간 뒤에도 보호자는 꿈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말을 시작하니까 엄청 잘 한다.

난데없이 돌아가신 은사님이 꿈속에 나타나셨어요. 넘 이상한 모양으로. 그래서 꿈이죠, 그냥 꿈.

…….

늦가을이면 겉이 단단하게 익은 늙은 호박 알아요? 보통은 껍질이 누런 색깔인데 이건 어두운 진초록색이라. 그런 호박 속을 파내고 그 껍질로 베트남 사람처럼 큰 모자를 쓴 모습이라니. 깨어나서는 웬일일까 싶었지만,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 말았어요.

엥? 호박껍질 모자요? 무슨 동화 속 나라예요?

그러게요. 암튼 다음날 아침에도 눈을 뜨면서 그 꿈이 어른거렸고, 그래, 돌아가신 분 생각하느니 살아계신 분 안부나 묻자 싶었죠. 오랫동안 언니 비슷 친구처럼 지내는 선생님이에요, 톡도 하고. 전화를 거니까 깜짝 반가워하시며, 어머나, 나도 전화를 해볼까 했어, 난데없는 꿈 땜에, 그러시는 거예요.

텔레파시?

아니, 그게 믿기지도 않았어요. 내가 꿈에 본 그 은사님 꿈을 꾸셨다니 말이 되요? 두 분은 남녀에 나이 차이도 있으시고, 그냥 냉랭한 동료였을 뿐인데. 암튼, 전화를 끊고도 넘 이상했어요. 제자에게 동료에게 꿈에 나타나시다니, 웬일일까.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10주기라, 딱 그 달에. 내가 떠난 지 10년이다, 기억하거라, 그런 메시지잖아요.

그런 꿈이, 말도 안 되는 게 진짜 꿈이라는 거군요.

그러죠. 내 인생의 계획과는 아무 상관없는, 내 의지와도 아무 상관 없는 것. 헌데, 꿈 땜에 돌아가신 날을 기억해 냈으니, 그건 어찌된 건가! 과학적으로는, 뭐 정신의학적으로는 떠나실 때 못 가뵌 것이 마음에 눌려 있다가 10주기에 무의식이 튀어나온 것이라고 하려나.

그렇게 마음에 남은 분이면 장례식엔 왜 못 가셨는데요?

내가 오늘 따라 오지랖이다. 수급자 일이 아닌 보호자의 일에 시시콜콜 뭘 묻고말고. 하긴 어르신이 낮잠을 자면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이야기나 하는 거다.

그게 울 어머니 49재중이었어요. 죄인이라 다른 초상집엔 못 가죠.

어머나, 그러는 거예요?

종교도 모르면서 부처님 오신 날 지장전에 영가등을 켜드렸어요. 어머니 등 켜러 가서.

뭐예요? 불교신자세요?

아아뇨. 어머닌 맞아, 열심 신자였어요. 등은 그냥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그러고 보니 내가 고아가 됐을 때 은사님도 떠나셨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했어도, 아, 그래, 하셨을, 무작정 믿어주셨던 분인데. 내가 어떤 안 이쁜 짓을 해도 미워하지 않을 사람, 부모님 안 계시면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는 거요.

아니, 남편이랑 가정이…….

우리 이쁜 지선생님, 순진무구하셔라! 남편이란 내가 잘하는 동안, 이쁜 짓을 하는 동안에만 날 이쁘다고 생각하는 존재랍니다.

……?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시장에라도 나갈 폼이다.

피잇, 30년을 넘게도 지금도 설레는 부부간의 사랑을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이런 말은 물론 삼킨다. 하기야 칠팔십 대 부부의 삶이라는 것이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 모를 일, 우리도 나이 들면 저리 될까?

낮꿈이란 이상한 단어가 신경이 거슬리는 채로 안방에 들어가 보니 어르신은 새록새록 꿈나라였다. 낮에도 꿈나라다. 웬 잠을 저리 주무실까? 간밤에 꿈꾸느라 못 주무셨나? 아이들도 아닌데 무서운 꿈을 왜 꾸실까?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갔다.

 

여름 내내 지독한 태풍에 늘 반복되는 수재, 수재민들 뉴스다. 어딘가는 둑이 터지고 도심까지 잠겼다. 섬진강 쪽으로 집지어 갔던 아는 언니는 울상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한옥 마루가 아슬아슬, 댓돌은 보이지도 않게 물에 잠겼다. 황룡강 변에 선산이 있다는 이 댁도 전화 통화로 난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자연환경까지 반란이 났고, 역병의 어려움은 극에 달했다. 봉쇄가 무엇인지 거리두기가 무엇인지 학습할 사이도 없이 낯선 환경들이 밀려닥쳤고, 격리라는 엄청난 단어도 일상이 되었다. 자고 나면 다시 오늘이 되는 영화에서처럼, 판에 박은 일상이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그래도 달은 차면 기울고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이 날리며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겨울이 성큼 닥친 것이다. 정지되었나 했지만 삶은 계속되었나 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요? 365일 노랑 옷 팬데믹에 절망들만 묻혀있네. 지 선생님은 젊으니 좀 나은가?

어느 날 보호자의 한탄스런 말투에 갑자기 나를 돌아다보았다. 집 관리, 세입자 관리, 수급자 서비스, 주말 농부, 이런 것들이 내가 사는 일일까. 그러고 보니 일 년 내내 노랑 옷들이 티비 화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가능성이 없으니 그게 유일한 대면이었고, 그것도 남편이 들어오면 채널은 뉴스로 한정되었다. 가깝고 먼 곳곳에서 드러나는 더 참혹한 죽음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학교에서의 수업 내용 때문에 참수를 당하기도, 다만 얼굴색이 달라서 총에 맞기도, 그런 일들이 선진 문명국가라는 곳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안전사고 소식에는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일터는 지뢰밭이고, 웃음을 잃지 않고 일터에 가는 것이 어려운 시험 같은 시절이었다.

 

우리 은이는 잘 웃어서 이뻐. 어여, 웃어봐. 이빨도 가조로니 얼마나 이뻐. 노상 그러고 살어.

주문처럼 어머니의 말을 외우며 집을 나서곤 한다. 참 어려운 나날이었다. 내가 필요해서 일하는 지금, 이만하면 안정된 조건이다. 입술을 당기자, 씨익. 그래도 겨울은 정말 싫다. 춥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싫다. 아, 다행! 입구 가까이에 주차 라인이 비어있다. 서두르면 2분 안에 따뜻한 아파트에 들어간다.

 

 

몸 파는 스무 살이라고, 들어 봤어요? 머리가 아파요.

밑도 끝도 없이 내뱉는 주인의 말에 흠칫 놀란다. 알아서 대문을 열고 태그를 찍고 들어온 요양보호사에게 내뱉을 첫 말은 아니다. 보호자라면, 어서 오세요! 주말 잘 지냈어요? 이 이는 별 탈 없었답니다. 그런 말이 먼저 나와야 정상이다. 게다가 나로서는 이 집 출근 만 일 년이 되는 특별한 날인데.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일주년은 일주년 아닌가.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르신은 좀 어땠나요? 감기 드신 건 아니구요? 오늘 검사 가실 컨디션 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환자 관련이 아니라면 보호자의 말은 천천히 들어도 된다. 화장실 입구에 가방을 내려놓은 채로 소독젤로 손을 씻고는 어르신에게로 향한다. 거실 소파의 지정석이다.

어르신, 주말 잘 지내셨어요? 오늘 병원 가시는 것 아시지요?

대답 대신 오른 손을 들어올린다. 반가움의 인사다. 그러면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일단, 어서 식사요! 식사 차려 놓아도 지 선샘이 와야 건너오시네. 이제 완전히 습관이 되었나 봐.

부엌에서 보호자가 채근이다.

네에, 갑니다. - 어르신 식사, 식사하시게요. 손 씻으시고!

바쁘다, 바빠. 양쪽으로 답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보호자는 개인적인 요청 사항은 거의 없다. 밥상 앞에서 나는 열심히 어르신을 챙긴다. 잠깐 오전 일을 했을 때는 여기 와서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된다. 보호자는 누룽지까지 챙겨오고서 자리에 앉으면 늘 그러듯이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본다. 어서 드세요! 왜 안 드세요! 그렇게 채근하면, 반찬 준비하면서 코로 이미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식욕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은 20분이면 포만감을 느낀다고. 다이어트를 하려면 천천히 먹는 것이 해결책이겠네여, 라고 말하려다가 참곤 한다. 이 집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대신 오늘은 병원 함께 가시려면 좀 잘 드셔야죠! 하고 만다.

 

인지검사가 있는 날에는 보호자 2인이 함께 병원에 가야한다. 코로나 방역으로 보호자를 줄이지만, 인지검사를 마치고 보호자도 따로 상담을 해야하니까 그 잠깐이라도 환자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검사 시간 동안 속절없이 기다려야 한다. 처음 얼마간은 커피숍에 가 있자고 해서 같이 내려갔다가 놀랐다. 폐쇄된 것이다. 하긴 병원 내에서는 음료수도 마시지 말라고 종이에 써 붙여 놓았다. 검사실 밖 의자에 한 칸을 떼고 앉았다. 그래도 말은 하고 싶었다.

저, 아까 집에서 말씀 하신 몸 파는 스무 살 어쩌고…….

아, 미안해요. 오전에 읽은 기사가 계속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요.

그러니까 젊은 애들이 일자리는 없고 성매매에…….

아니, 몸 판다고 하니까 그렇게 들렸나 보네. 그런 건 곳곳에 곪아 터져 있으니 이젠 놀라지도 않아요. 오늘 읽은 신문기사에 헤드라인이 ‘몸 파는 스무 살……’ 그러더라고요.

뭔데요?

…….

말을 잇지 않던 보호자는 어르신 이야기로 옮겨가버린다.

어제, 그러니까 그젯밤에는 자리에 누워서 오늘 뭘 하고 지냈나 생각이 잘 안 난다고 그러잖아요. 아들애가 왔다 간 것을 잊다니, 이해가 안 되네, 어쩌면 애들 이름을 잊기도 하고. 검사를 잘 할지 모르겠네. 청력 때문에도 고생일 걸, 검사하는 분도.

한 두 번 해 보셨잖아요. 잘 하시겠지요. 건망증인지 뭔지는 참 이해가 안 가는 일 많아요. 저도 요즘 완전 웃겨요, 핸드폰 안 가지고 나와서 시동 걸다가 다시 들어가고, 그런 건 일상이에요. 마스크도 차 안에 몇 장씩 넣어둬야 하구요.

건망증이 뭔지, 사람들을 위로하려다 보면 나도 이미 심각하다 싶어 오싹해진다. 하지만 오늘 나는 ‘몸 파는 스무 살’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꾸 말을 걸게 된다.

 

그런데 아까 집에서요, 그 스무 살은 무슨 말이세요?

아, 참,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네요, 뉴스 땜에. 뉴스니까 거짓은 아닐 테고. 자꾸 걸려서. <8일에 127만원, 하루 18번 바늘꽂는 20대> 그런 기사요. 직장이 폐업하거나 웬만한 알바 자리들 탈락하다보니까, ‘몸 팔러왔다’는 자조로 실험대상이 되는 거 말예요.

아, 마루타 알바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뭣인들 못 참나요? 복제약 만들려면 임상실험이야 늘 있는 거죠. 옛날에도 계속 그랬어요.

나야 그런 일들이 그리 뉴스거리도 아닌데, 이 할머니는 많이 놀랐나 보다.

그 아이 입에서 ‘여긴 자본주의의 끝’이란 단어가 나왔어요. 꿈은 놔두고 우선 생계를 위해서 몸을 파는, 피를 뽑는 20대라니. 삶의 극이야.

극?

예, 극값!

생동성 실험, 그거 안전하게 관리할 텐데요. 죽지는 않아요.

알바하다가 죽는 이야기는 뭣 하러!

말을 꺼냈던 보호자가 외려 외면하고 일어서버린다. 괜히 검사실 문앞으로 가서 안쪽에 귀를 대는 시늉을 한다. 죽는다는 말은 내가 심했나?

 

 

알바 나갔다가 죽는다? 머쓱해진 기분이 되어 생각해 본다. 모처럼 알바 구해서, 아님 늘 하던 대로 아침에 일터에 나갔다가 죽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 일인가. 계산의 시작은 아무래도 본인 몫이다. 감당할만한 일인가. 따져본 다음에 시작해야 한다. ‘아무 기술이 없이 별 고생도 않고’ 라는 조건의 광고라면 다른 보이지 않는 위험을 상상했어야지. 그러니까 수당이 올라도 고민이라던가……. 그러고보니 쿠팡인지 어딘지 등등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는 뉴스를 올해 들어 열 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택배아저씨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니나다를까 엊그제 또 다시 뉴스였다. 올해 들어 열여섯 번째 죽음, 이번에는 34살 젊은이다. 7월부터 일했다고 하니까 택배 반년에 목숨을 잃었다. 새벽 6시 출근해서 밤 9시나 10시에 퇴근했단다.

이 아파트에도 늘 보는 택배 아저씨가 있는데, 실은 최근 2주 3주 보이질 않는다는 생각이 났다. 이 집에서는 띵똥 소리가 나면 가끔 음료도 건네고 추석엔 참기름도 짜주는 걸 보면 임의롭게 지내는 사이 같다. 한번은 더운 여름이었는데, 이모, 이러다 죽으먼 어쩌까요, 돈 다 벌어서 언제 쓰까이! 그러더란다. 올 봄 이후 하루 300개를 주더니 점점 400개로, 어떤 날은 500개 가까이 물건을 싣는단다. 크고 작고 가리지 않고 개당 750원이면 일당이 30만원이 넘는 날도 있단다. 수입이야 짭짤하다. 그런데 그 배달을 다 마치기 위해서는 점심을 거의 못 먹는단다. 굶어가면서 일당 올리는 건 아니라고 일러 줘도 소용없단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괜스레 편치 않았다. 아 참, 이 보호자를 택배 아저씨는 ‘이모’라 부르나 보다. 일년을 매일 보는데도 나랑은 덜 친한가? 이렇게 저렇게 부르라는 말이 없다. 직접 부를 일은 없으니까 우물쭈물 지내지만, 가리켜 말하려면 ‘주인, 보호자, 할머니’를 왔다갔다 하게 된다.

암튼 어르신이랑 산책을 하는 시간에 택배 아저씨랑 마주치면 내가 말을 건다. 점심은 드셨어요? 잘 드셔야죠! 먹으려고 사는데요! 내가 그러면 씨익 웃기만 한다. 처음 볼 때보다 더 말랐다.

 

보호자가 다시 의자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내가 택배아저씨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요. 요즘 아파트 택배 아저씨 안보이던데요. 무슨 일 없겠죠?

왜요, 갑자기?

이삼 주 넘었어요. 전화 한번 해 보실래요, 괜스레 궁금하네요.

어, 그래요? 문 앞에 잘 놓고가니까 그냥 별일 없는가 그러는데. 설마 무슨 일이사…….

물론 설마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괜히 불안했다.

나중에요, 지금 한창 배달할 시간이겠네. 아, 문자나 남겨 놓을까. 사실 요즈음엔 누구라도 밥을 벌기 무지 힘들지. 여자들은 좀 나은가? 노동 강도가 세지 않아서…….

아무래도. 여차하면 취집이면 되니까요. 얼굴 되는 애들은 그게 상책이랬지요.

뭐요? 취집?

예, 취직하거나 시집가거나. 시집을 잘 가면 취직할 필요 없고. 우리들 병원 근무 때 보면요, 간호사들 대부분이 의사한테 시집가는 꿈을 꾸죠. 물론 그때도 이미 의사들은 간호사 차지가 안 되었죠. 아는 언니가요…….

아는 언니도 참 많아! 인정 많게 잘 사나 봐요!

그건 아니구요. 서울서 병원 다닐 때요. 그때도 누구 하나 의사한테 시집가면 로또랬지요. 연애는 해요, 희망적으로다가. 하지만 결혼은 안 되더라고요. 그 남자는, 그 의사는 의과대학도 이름 있는 대학 출신이었는데, 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수간호사 언니랑 서로 의지하며 지냈대요. 보드 딸 때 마지막엔 언니가 남자 집에까지도 도움을 주고 그랬대요. 하지만 곧바로 병원집에서 픽업, 집게로 인형 뽑듯 쫘악 집어가 버렸어요. 결혼 시켜서 바로 미국 유학, 크게 배워와서 병원 운영하라, 뭐 그런 식이었대요. 별반 화제 거리도 안 되고, 올 것이 왔다 그 정도였죠. 그러니까 돈 문제가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건 한참 되었어요. 어제오늘 일이 아녀요.

맞아요, 일찍 알았네요. 돈이 지배하는 세상.

누구든 부~자 되고픈 꿈을 꾸죠. 부~자라야…….

그런 꿈은 낮꿈이라 해야 맞다니까요. 자면서 꾸는 그런 꿈이 아니니까.

아, 네, 그 낮꿈! 언제도 꼭 그렇게 말 하시더니……

그래요, 더 잘 살아보자는 낮꿈요. 낮꿈이 뭐라고 매달려요? 부질 없죠. 게다가 욕망이란 끝간 데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목표에 꽂히면 내일 땜에 오늘을 망치기도 하고요.

낮꿈이, 희망이, 욕망이, 뭐든 간에 그런 것이 오늘을 망쳐요?

내일만 바라보고 걷다보면 오늘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러니 선택의 문제예요. 오늘 사는 쪽으로 또는 내일을 희망하는 쪽으로.

선택…….

그러다가 짓궂게 내가 물었다. 왜 그랬을까.

아니, 어떻게 꿈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어요? 꿈이 좌절된 적 있으세요?

무리한 희망을 갖다가 좌절할 틈이 어딨어요. 피 터지는 경쟁밖에 아닐 텐데, 미리 안 갖는다니까요! 봐요, 내일을 위한 희망을 계획을 가지고 거기 매달린다 칩시다. 그래요, 올인! 그게 자칫 오늘을 좀먹는 거요. 오늘 굶주리면서 죽은 뒤에야 받을 보험을 드는 일, 그게 뭐냐고! 오늘을 충분히 살아야지요. 오늘이라도 찬찬히 충분히.

오늘을 잘 살라고? 내일을 꿈 꿀 나이도 아니구만, 치, 나는 속으로만 틱틱거렸다. 이 할머니의 말은 어느 부분부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꿈을 꾸고 가꾸고 노력하는 일들을 내일에 대한 욕심이라고 하질 않나. 신앙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겠지만, 내일을 믿기는커녕 기대도 하지 않는다니 좀 심했다. 내일이라는 희망으로 계획도 세우고, 계획에 맞춰서 사는 내 삶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러는가. 이 세상에 재테크는 기본이고, 건물주라는 기본 꿈을 이룬 지금도 그 다음 꿈을 향해서 나가는 내가 나는 자랑스럽다. 서로 그렇게 채근하며 동행하는 남편이 믿음직하다.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남편 친구네 하나는 경매물건 전문으로 꽤 잘 나간다. 여자가 더 잘한다고도 그런다. 내가 그 친구네 이야길 슬며서 했더니, 이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흉년에 논 사는 것 아니다, 그런 말 괜한 말 아녀요! 상대가 안쓰러운 경우에 이득 봐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죠. - 경매는 다를 걸요, 직접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차피……. 그쯤에서 말을 끊었다. 말이 잘 안 통한다.

 

 

소통이 잘 될 사이는 아니다. 70대와 50대, 아예 모녀 사이도 아니고. 그러다가 무엇인가 전혀 예상밖의 말을 듣게 되는 재미도 있다. 언젠가 들은 은행계좌 이야기도 그 하나였다. 어르신이 통장이며 카드며 사용 실적이 없다고 은행에서 연락이 왔을 때였다. 주거래은행이 아닌 곳이라나. 그렇다면 그쪽은 그대로 정리를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라고 내가 참견을 했다. 그런 일은 내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 웃기는 일이었다 - 내가 건물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통장을 가지고 얼마나 알뜰하게 저축을 했었는가 좀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다. 빨래 줄이려고 하얀색 티셔츠는 입어보지도 않았다는 그 말도 또 곁들여서. 그랬더니 나더러 참 예쁘게 산다고 하면서, 남녀차별 없는 은행계좌는 한국인의 특권이라는 말을 해서 너무 놀랐다. 친구 큰언닌가 하는 누군가가 서독 간호원 파견 때 독일에 가서 보고 너무 놀랐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내가 더 놀랐다. 그때가 60년대 초였는데, 현지 독일인 간호사들의 사회적 형편이 상상도 안 가는 수준이었다고. 여자가 은행계좌를 만들 수 있던 것이 1958년인가 59년인가. 그 전까지는 여자들은 은행계좌가 없으니, 친정서 결혼 때 가져온 지참금도 남편계좌로 들어가고 당연히 남편이 관리했고. 여자는 직장에 노동계약서 쓸 때도 남편의 승낙이 먼저였다니. 그러고도 서양일까. 우리는 서양은 여성상위쯤으로 알았는데.

시대가 달라졌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숨죽이고 사는 여자들은 별로 없다. 다들 돈도 벌고, 남편보다 더 잘 버는 아내들도 꽤 있다. 돈을 벌지 않으면서도 돈 버는 남편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들 산다. 전에 옆집 살던 아주머니는, 나보다 한참 위였는데, 중학교에선가 아무튼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밥은 이제 당신이 해요, 라고 밥솥을 넘겨버렸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했다. 평생 밥 해줬으니 이제 당신이 할 차례라고 했단다. 그렇다면 이제 여자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인가. 그건 또 아니랬다, 후훗. 우린 그때 놀라면서도 배웠다, 저리 살자!

 

 

멀리 복도 끝 창밖을 보니 눈발이 날린다. 첫눈인가 싶다.

첫눈 오는 날 약속……, 지 선샘, 그런 것 없나요? 올해도 눈이 많이 오려나? 겨울이 더 어렵겠지요? 당장 생활비 걱정으로 머리 아픈 젊은이들 말예요. 몸을 팔다 보면, 이제 곧 영혼을 파는 알바도 나올 것이니.

영혼을 팔아요?

하긴 영혼이 있나, 있어야 팔지.

뭐예요, 영혼을 믿지 않으시나 봐요.

영혼을 믿는다는 일, 그거 쉬운 일인가요, 어디.

영끌이 있잖아요, 영혼까지 끌어다가 집 산다고! 영혼이 있으니까 끌어다가 쓴다는 것인데…….

예, 있다고 해둡시다. 영혼이 있어야 팔 테니까, 있는 쪽으로다가.

우리 맘대로요?

아니 좋은 쪽으로. 무엇이든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영혼을 판 이야기는 엄청 유명한 것 있어요! 이보시오, 살아생전에 하고 싶은 것 다 들어줄 테니, 다시 이팔청춘으로 돌려줄 테니 멋대로 살고, 죽어서는 영혼을 내게 다오 – 뭐 그런 악마의 유혹.

아, 메피스토! 알아요! 남편 친구가 두고 쓰는 말인데요! 너희들 오늘 저녁엔 영혼 내게 팔아, 내 멋지게 살게 해주마! 그냥 재밌게 놀자고 설치는 말인데, 그이 십팔번이예요! 어쨌거나 영혼이 있다는 전제네요!

어, 그런 재미있는 친구가 있어요? 스스로를 악마라고?

그냥 웃자고 그래요!

메피스토펠레스라, 악마이건 뭐건 세계적인 세기적인 인물이네.

네? 메피스토는 그럼 줄인 이름인 거네요. 하긴, 소크라테스 보다 테스형이 완전 유명하잖아요!

그런가. 근데 테스형은 좀 웃겼지. 메피스토펠레스를 메피스토라 줄이지 레스라고 하나? 끝자를 따서 테스라 하다니.

끝자?

봐요, 아킬레우스, 오르페우스, 프로메테우스……, 그런 이름들은 모두 우스라 줄이나? 우스, 테스 그런 건 그냥 끝소리라니까요!

그냥 끝소리라뇨? 우리 순이, 금이, 은이처럼?

지순이, 금이, 은이 – 우리는 자매들은 거의 외자 이름이나 같다. 순아, 금아, 은아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어쩔 땐 은! 그러기만 한다. 그러니까 테스는 뜻 없는 ‘이’나 같다니 맥이 풀린다. 가수는 좀 그래도 ‘테스형’ 노래는 꽤 인기였는데! 하긴 인기 트롯 프로그램도 남편이 끔직해하는 채널에서 해서 거의 못 본다. 고향이 여기라서 그런지 확실히 편파적이다. 직접 대놓고는 그런 말은 삼간다. 여기 사람들은 건드리면 안되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시간 참 지루하다. 검사가 한 시간 반이라더니 두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지 선생님, 그런데 결과가 더 나쁘진 않겠죠? 걱정 한 가지, 저이가 요즘엔 잠을 너무 자는 것 같아서. 낮에도 산책은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잠만 자려고 하잖아요.

보호자 머릿속에는 어르신 뿐인가 보다.

추우니까 그러시겠죠. 그럼 밤에 잘 안주무세요?

밤에도 자는 편이예요. 하루로 치면 너무 많이 자니까 불안하기도 해요. 계속 잠을 자면 언제 사느냐고요.

사는 것 되게 중요시 하세요!

그럼 사람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이지. 살아야 살아있는 것 아닌가.

네, 다들 열심히 살 잖아요, 꿈을 가지고 노력하고! 젊은 시절 그렇게 사셨을 거 아녜요.

무지개가 피었습니다~ 하고서 다 같은 무지개를 쫒아 살면 다 같이 도달하남? 다른 곳으로, 더러는 반대로 향하는 것이 사는 거란 말이라.

꿈의 반대로요? 뭐가 되려고요?

반대가 아니라, 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꼭 그런 힘든 외사다리로 몰려야 하냐고. 성공해서 인정받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가면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건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바보짓’이라고. 것도 어디서 읽은 말이요.

하지만 가치라는 게 대부분…….

대부분 말고요. 남들의 꿈을 따라가면서 어차피 뒤쳐지는 사람들은 우수수 얼마나 불행할지.

그래도. 시작이라도.

남들 따라 같이 할 건 없다니까요. 나는 나죠. 누군가 나를 무시해도 나는 나이고, 누군가 나를 칭찬해도 나는 나이고.

넘 냉정하세요!

냉정? 냉냉, 쌀쌀맞아 죄송하요!

그러고는 일어서더니 복도 끝 창쪽으로 걸어간다. 앉아있기도 힘이 들다면 힘들다. 실은 나도 좀이 쑤신지 한참 되었다.

 

그건 그렇고, 왜 이리 불편한가. 이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무언가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몸 파는 스무 살’ 이야기 때문에 어두운 상념들이 사방팔방에서 밀려왔다. 아까도 알바하다 죽는 이야기를 꺼낸 건 자동적이었다. 맨날 듣는 뉴스가 그러다보니 온갖 사고사들까지 한꺼번에 되살아나서 살이 아파왔다. 전동차 스크린에 끼어서, 들여다 본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 크레인에서 떨어져서, 비계 위에서 함께 떨어져서 아래에서 깔려서, 크레인 기사라 해도 소용없고, 비계 기능사라 해도 그렇다. 자격증들이 무슨 소용! 어라, 자격증들이 죽음으로 이끄는가. 낼 잘 살려고 오늘 죽는다? 그 비슷한 말, 내일을 위해 오늘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저 불편한 말이 맞는 것일까. 어쩌나, 이 동네 말라깽이 택배 아저씨는…… 무사하겠지. 괜한 걱정에 볼에서 열감이 느껴진다.

아니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이다. 도처에 사건도 있고 사고도 있다. 그런 것에 흔들려서 절망하고 그러면 안 된다. 무심하게, 정직하게만 살면 된다. 명사가 못 될 바에야 오직 재테크만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최소한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팔아야 하는 세상, ‘몸 파는 스무 살’ 이야기가 어때서. 가슴이야 좀 아프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영혼을 끌어냈으므로 가난에서 탈출했다. 누군들 영끌이 필수인 것을 어쩌라고.

그런데 어딘가에 지뢰가 묻혀있다. 허기 말이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었는데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란 놈이 으르렁거린다. 오늘을 살았다는 기억이 없이 내일을 위해서 달려왔다는 말이 맞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이 허기의 대가로 노후는 충만할 거야…… 설마. 안락한 노후는 계속 유혹의 손길에 가려져 있는가. 혹시 노후 준비가, 노후 걱정이 낮꿈이란 말인가? 그럼 당연히 낮꿈을 꾸어야 한다. 아니, 노후 준비란 오히려 낮꿈 없애기일까, 손바닥을 펴고…….

 

아, 드디어 검사실 문이 열린다. 어르신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다. 힘드셨을 것이다. 인지검사의 질문이라는 것이 예상되는 말이 아니니까 청력장애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괜찮았어요? 다가온 보호자가 미처 말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안에서 보호자를 부른다. 잠시 또 어르신과 둘이 되어서 진료실 복도에 앉는다. 낮꿈은 잠시 접어 두고.(8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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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작가교수세계 - 한국작가교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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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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