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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9.07 사피엔스의 언어
  2. 2021.07.10 초겨울
  3. 2021.06.04 봄, 사순절
  4. 2020.12.27 날마다 시작
  5. 2020.12.27 겨울, 바닷가
  6. 2020.12.04 한참 무모한 사람 -
  7. 2020.11.25 장편소설『숨』
  8. 2020.11.25 겨울 바닷가, 북해
  9. 2020.11.05 순수에의 강요 - 한국작가교수회
  10. 2020.06.21 험지의 유토피아
수필-기고2021. 9. 7. 02:10

사피엔스의 언어

 

 

장편 『숨』이 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늦은 가을이었다. 하루에 한 매를 썼을까. 과작이 아닐 수 없다. 과작이라도 다행이다. 필을 놓고 있는 것 보다는, 그렇게 위안을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무엇을 썼을까. 무엇하러 썼을까. 아무 소용없는 짓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아무 쓸모없는 것을 내놓았다. 선배 또는 동료 소설가들이 말한다. 이번엔 더 좋았어요. 이런 친절은 선의의 거짓일 것이다. 누구나 다 그래요, 바닥에 내려가야 올라올 수 있어요. 이런 위로가 더 진실하다.

외도를 저지르기도 했다. 당연히 단편 청탁일줄 알고 예스! 했다가 덤터기를 썼다. 「순수에의 강요」라는 제목으로, 장르문학의 세상에서 순수문학의 일에 관한 고찰이라니! 주문대로 쓰고서도 허탈했다. 논문을 손 놓은 지 십여 년, 그 세월엔 강산도 변한다거늘, 숙제를 맡으면 되돌리지 못하는 바보이다 보니 정말로 바보 같은 글을 내놓게 되었다. 시간을 또 얼마나 죽였는지. 달리 할 대단한 일도 없지만, 죽인 시간과 결과물을 보면 한심해서다. 그런 생각이 엄습하여 오래도록 짙은 우울감에 짓눌려 헤어나지 못한다.

 

눈을 밖으로 돌려 보아도 마찬가지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미래가 있을까. 전염병의 창궐로 우울해진 우리의 일상이 회복될까. 생태환경이 변해가는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라는 양대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이 인간이기가 가능할까. 일자리는커녕 할 일조차 없어질 무용지물의 인간이 생존의 위협 앞에서 문학을 예술을 탐할까. 탐해서 뭣할까. 다시 한 번 소설이야 말로 무용지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때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책들은 도착한다.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을 다 못 읽은 터에 어쩌자고 『고대근동문화』를 주문했고, 느닷없이 『희망의 원리』 여러 권을 서재 깊은 안쪽에서 꺼내다 놓았다. 꼭 읽고 싶은 『도동 사람』 이라는 632쪽짜리 소설도 왔다. 또 시집들 수필집들이 도착한다.

책을 꼭 읽어야 됩니까? -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안과에 갔더니 안과의사가 하는 말이다. 이쯤 나이가 들면 책을 읽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말인가 보다. 널려 있는 매체들에서 정보며 오락을 다 누리는 세상인데 굳이 책을 보려 하느냐, 시력을 더는 교정할 안경이 없다. 그런 얘기였다. 정이 책을 읽으려면 수정체를 바꾸는 수술을 하세요! 큰 병원으로 가셔서 상담을 해 보세요, 저는 이제 수술 안 합니다. 이상하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안과의사가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이 사람도 시력이 엉망이 되었다는 말인가. 늙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책을 덮으라고? 눈을 바꾸거나? 책을 보는 대신 다른 곳들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찬장이며 싱크대는 세월의 때가 앉아서 닦아도 닦아도 반짝임을 되살려내지 못한다. 젓가락을 넣어 다닐 왜소한 주머니들을 만들다 둔 바느질 상에는 천 쪼가리며 실밥들이 어수선하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시력이라는 안과의사의 말이 맞기나 한 것일까. 보이느니 먼지뿐이다. 글자는 보이지 않고 먼지만 보는 눈이 되다니. 회전근개 어쩌고 수술대에 잡혀갈 뻔했던 어깨가 다시 빠질 판이다.

밖을 바라보자, 창밖을 내다본다. 아, 또 유리창의 얼룩들. 애써 외면하며 베란다 밖으로 향한다. 모기장으로 어두운 서재의 창밖에 나팔꽃 송이들이 피어난다. 심지도 않은 곳에서 피어나는 분홍 나팔꽃. 베란다 천정까지 자라더니 창틀 위까지 뻗어나가던 줄기들을 더 어디로 보낼까 걱정하려던 참에, 줄기 뻗는 것을 멈추고서 꽃을 피운다. 신기하다. 요 며칠을 눈만 뜨면 분홍 나팔꽃 송이를 세러 베란다로 나간다. 한 두 송이가 피었다가 지면서 새로 두어 송이가 피어나는 줄기를 따라 넋을 놓는다. 스물 하나, 스물 둘……. 그래, 꽃들을 보라는 눈이구나. 두 줄기를 따라서 나란히. 초록색 포장노끈으로 만들어둔 길이 호강을 한다. 그런데 줄기가 자라는 것을 멈추고서 꽃송이를 피워내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아이를 낳는 나이가 되면 더는 키가 크지 않듯이.

아차, 내 안경! 이번에는 안경을 찾아서 쓰고 핸드폰을 가지고 다시 나간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 창틀 위 꽃송이들을 담을 수 있다. 날짜별로 컴에다 저장을 해둘 까 싶다. 돌아서다 보면 몇 년을 쉬다가 올해 피어난 소철의 새 잎들을 경탄한다. 소철의 나이 40대인데 – 우리가 이 집에 이사 올 때 그러니까 1986년 봄, 이미 상당히 무겁게 자란 화분을 어느 지인이 낑낑거리며 들여놓았으니까 – 그 모양새가 그리 많은 물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물주는 일에 등한했었다. 그것이 올해는 하필 어디서 묻어온 나팔꽃 씨가 소철 분 가장자리에서 잎을 띄웠기 때문에 충분한 물을 만났나 보다. 소철도 놀랄 만치 예쁜 새순을 함께 틔웠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햇빛을 받지만 물이 그리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도 물이 생명이라더니, 정신은…….

 

그렇게 글 쓰는 일과 관련해서는 바닥으로 가라앉아서 다른 짓만 하고 지낸다. 병원에 갈 일이 자주 생겨도 시집 한 권 들고 가지 않는다. 진료실 앞 의자에서는 아예 조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서 시간을 때운다. 바닥으로 가라앉는 거야, 바닥으로!

그렇게 바닥에 부딪다 보니 어느 순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특징이 허구성이라던 문장이 떠오른다.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은 많지만,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 바로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21세기를 살아갈 상당한 정보를 주는 책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쓴 말이다. 이 자체가 허구일 리는 없다고 믿으면, 허구를 창조하는 언어가 진정 인간의 언어라는 말이 된다. 기대고 싶은 말이다. 함부로 기대지 말라는, ‘기댄다면 그건 의자 등받이뿐’이라던 이바라리 노리코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픽션을 쓸 수 있는 언어를 지녔으니 픽션을 써야하지 않을까. 흔들리는 이 마음 갈대와 같다.

 

 

_____________________
2021 이대동창문인회 「사피엔스의 언어」 , 『바람의 눈과 문 』, 이대동창문인회, 열린출판, 241~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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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1. 7. 10. 22:35

 

초겨울

 

 

 

초겨울이다. 느낌으로는 초겨울이 제일 춥다. 한낮인데도 쌀쌀함은 누그러지지 않는다. 뺨이 더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은 오늘 시작할 새 일자리로 인해서다. 요양보호사 – 명칭은 길지만 하는 일은 짧다, 시간제 돌봄이다. 첫날은 조건 때문에 밀당도 해야 한다. 흔하디흔한 아파트 대문 앞에서 숨을 고르는 찰나, 첫 번째 시험은 초인종이었다. 하필 초인종이 두 개가 있을 게 뭔가. 첫 동작부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 신경이 곤두선다. 염려는 기우였다. 띵 똥 한 번에 재빠른 답이 온다. 예에, 하는 소리와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가 함께 다가온다. 대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얼굴은 - 누굴까? 돌봄 어르신은 80대 남자라던데, 그러니까 보호자인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오시는 거죠?

아, 네. 오늘 저 혼자 오게 되었어요.

아무려나, 어서 오세요. 아파트 쉽게 찾으셨지요?

네, 뭐.

 

첫 인상은 푸른 나무들로 계절이 겨울인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집이었다. 넓지도 않은 거실인데 한쪽으로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창 쪽으로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즐비했다.

밖에선 얼겠지, 겨울 추위에. 그런데 환자 있는 집에 무슨 화분들을! 하긴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튀어나오는 것 보단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는 흔한 아파트 풍경이었다. 텔레비전, 소파 그리고 탁자. 좁은 거실에 탁자는 크고, 탁자 위에는 신문 잡지들이며 뭔가가 수북하다. 노인들이라니! 소파에 누워있는 사람이 내가 돌 볼 어르신일 게다. 소파에 누운 채, 낮인데, 그래서 아픈 거로구나,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 들락거려도 반응이 없다.

저, 그런데 태그는 어디다가, 출근부 말예요.

일단 집에 들어왔으므로 출근부에 태그를 해야 시간이 기록될 테니까 그것부터 물었다. 여자가 가리키는 곳은 신발장이었다. 뭐야, 날마다 신발장부터 열어야 한다고? 하필 냄새나는 신발장을! 하긴 어떤 집은 환자가 이 낯선 물건을 훼손하곤 해서 싱크대 문짝 안쪽에 붙여놓기도 한다더라. 싱크대고 신발장이고 냄새는 피할 수 없는 자리다. 뭐, 찌든 담배 냄새만 없어도 다행이다.

 

올라오세요. 오늘 이 양반 꿈쩍을 안 하네요. 점심 다 식는데도.

그러고 보니 식탁이 차려진 채다.

집안은 음식 때문이었을지 아늑할 정도로 따뜻하다. 아, 다행이다!

그럼 어르신이 오늘 특별히 아프신 거예요? 치매 5등급, 1939년생, 남자, 그 외엔 별 특이사항 말 없었는데요.

아뇨. 뭐랄까, 반응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지요. 원래도 말이 적은 사람인데, 최근에는 아예 입을 닫고 살지요. 하고 싶은 말은 겨우 눈으로 해요.

눈으로 말을 해요?

예, 그런 셈이에요. 뭔가 필요하면 그 쪽을 쳐다봐요. 그럼 냉큼 집어다 주면 또 말없이 받아들고. 그러니까 탁자 위 신문을 쳐다보면 신문을, 리모컨을 보면 리모컨을 집어달라는 것이고, 저쪽으로 멀리 냉장고를 쳐다보면 물을 달라는 식이지요.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이 집 보호자는 내가 환자 상태를 체크를 하는데도, 내 이름이 뭐냐, 오기로 확정한 것이냐 등을 묻지도 않고, 내가 온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다.

예상 외로 젊은 분이 오셨네요. 나이 지긋한 분 부탁했었는데요. 헌데 진짜 젊은 분이 오니까 집안이 갑자기 팔팔 살아나는 것 같은데요.

 

이건 또 뭐야.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것보다 한참 많이 젊은데, 그런데도 통과라고? 아무튼 이 할아버지 서비스를 맡으려면 조건은 미리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저, 그런데 여기 서비스 와달라는 시간이…….

아, 시간요. 시간이 왜요?

저랑은 딱 맞지는 않은데, 과장님이 일단 가보라고 해서요. 저는 1시에 오는 것이라야 맞거든요.

1시라야 된다고요? 그럼 1시 반이면 못 오시나요? 그런 거예요?

그게 좀, 오전 끝나고 중간에 시간이 많이 떠서요.

어쩌나. 1시부터면 4시에 끝날 것인데, 내가 가끔 4시 좀 지나서 집에 오게 되니까 4시 반까지는 봐주셔야 하는데. 참, 선생님 이름이 지은이 씨라고? 차 과장님이 전화했어요. 지 선생님은 추가시간은 안 하실 거라고도.

네, 저는 해당 서비스 시간만 봐드리고는 끝이에요. 저는 아무래도 1시부터면 좋겠는데요.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갔다가 오기는 너무 멀고, 그냥 오자면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서요.

…….

저쪽에서 말을 쉰다. 생각이 길어지나 보다. 아쉬우면 나한테 맞추겠지 뭐. 난 쉽게 생각했다. 일단 세게 나가자 싶었다. 초면인데 알게 뭐야, 아니면 말고.

시간이 정 맞지 않으시면, 그게. 아무튼 오늘은 제가 일단 왔으니까 세 시간은 해드리고 갈 거고요.

아니, 잠깐만. 뭐, 1시 반부터면 못할 수도 있다고요? 그럼 서로 15분씩 양보하면 어때요? 1시 15분부터, 난 혹시나 늦어도 4시 15분엔 돌아오고.

 

이번에는 내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밀린 것이다. 스스럼없이 시간을 정하고 만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인데 15분을 밀렸다니!

그렇다면 나머지라도 확실히 못을 박아야 한다. 우리 요양보호사가 해드리는 것들 서비스 범위는요, 라고 말을 뺐는데 그것도 쉽게 통과였다. 환자 아닌 가족을 위한 생활지원은 금물이라는 것부터, 책에 써진 것 외우듯이 다 읊어댔다. 내가 놀라는 눈빛을 하자, 센터에서 보낸 파일 안에 다 있어서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부엌에서는 점심 설거지만 부탁한다면서, ‘설거지만’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환자 밥 챙겨 먹이는 것 - 만들고 먹이고 설거지하고 - 그것과 2인분 설거지만 하는 것의 노동량을 따져보려다가 말았다. 음식 만들기가 더 까다로울 테니까. 엉거주춤, 그것도 밀린 사이에 보호자는 말을 이어갔다.

것보다 문제는, 뭐냐면 우리 양반이 말을 잘 안 들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신청도 안한다니까요. 그게 좀 힘드실 거요.

네에, 그거야 우리 일이니까요. 그런데 또 하나, 우리가 움직이는 반경은 멀리는 안 되는 것 아시지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쐐기를 박았다.

멀리요? 산책은 멀리 안 가시는데, 못 가는데.

심부름 같은 것 말이죠, 혹시라도 무슨 심부름이나.

심부름이요? 심부름 무슨?

심부름을 이해 못하는 것이 이 집에선 심부름은 없나 보다. 잘 되었다. 보통 혼자 사는 어르신들 돌 볼 때에는 이것저것 해달라는 부탁들이 많다. 마트며 반찬가게 들르라는 것은 기본이고, 가끔은 엉뚱한 부탁도 한다. 진짜 엉뚱한 심부름 말이다. 심지어 폐지나 병 같은 것, 모아놓은 고물을 팔아다 달라는 부탁을 해서 고민이라는 동료도 있었다. 고물을 모을 정도인데 재가방문요양 서비스라고? 잠깐 의아했지만, 아서라! 복지사회는 좋은 것, 긁어 부스럼 낼 일은 아니다 싶기도 했다.

아, 물론 병원 가실 때는 함께 모시고 가죠! 병원엔 멀리 가더라도 환자의 진료 기록이 컴퓨터에 뜨니까요. 우리 요양보호사 행동반경과 환자가 함께 있으니까요.

엄격하군요. 그래야 하겠지만요. 암튼 그럼 되었네요. 1시 15분에 오시는 걸로.

우물쭈물 일은 결정이 났다. 이 보호자는 일을 너무 쉽게 결정한다. 내가 그만 그 페이스에 밀렸다. 평상시 내 일은 아니다. 뭐, 정 아니면 한 달만 하고 말지. 아쉬운 건 언제나 노인들, 내가 갑이면 갑이지 을은 아니다. 일 할 데는 널려있다. 뭐, 잠시 안하고 쉬면 쉬는 거다. 나는 결코 생계형 노동자는 아니니까.

 

이쪽으로 와 보세요. 여기 안방이 환자가 쓰는 방. 여기 욕실 쓰고. 그런데 주로 거실에 저러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도 자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우선 점심 먹을 수 있게 해야겠어요.

여기요, 일어나 보세요. 오늘 새로 지 선생님이 왔어요. 말동무 해드릴 거요. 손잡고 산책도 하고. 나는 비틀거리잖아요! 어디, 일어나 봐요!

눈치를 보니 내 차례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지은이라고 하는데요. 오늘부터 어르신 돌봐드리러 왔답니다. 어르신, 일어나 보세요. 점심시간이 늦었거든요.

…….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눈매가 촉촉하다. 계속 감고 있어서 물기인가? 아니, 80대라고 했는데 소년 같은 눈망울이네. 백발의 소년이네.

어르신, 저는 지은이고요. 이제 일어나셔요, 식사하시게요. 식사하시고 나서…….

뭐? 지 - 은 - 이? 지은이라? 책을 썼다고? 지은이라면 내가 지은인데, 이게 대체?

입을 연 것은 반가우나, 하필이면 내 이름이 귀에 걸렸나 보다. 인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렸다. 어르신이 벌떡 일어나더니 탁자에서 신문이며 책들을 주섬주섬 치우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아니, 내 책이, 책이 어디로 갔나.

무슨 상황인가. 무슨 책을 찾을까. 부엌 쪽에서는 내색이 없다.

엄마아, 준이 엄마, 내 책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아내를 찾는 모양인데, 그런데도 보호자는 무반응이다.

아니, 어르신, 뭘 찾는 건 나중에 하시고요. 우선, 인사드릴게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이 지은이라고요. 이름이 지은이.

아하, 지가 은이라고. 지씨라. 어디 지씬가?

충주 지씨예요. 어르신은 이름이,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 나는……, 에이, 애들이 어른 함자를 묻나. 내가 내 이름을 모를까 봐?

아유, 어르신, 죄송해요. 어서 일어나셔요. 식사시간이에요.

 

그렇게 해서 점심 식탁에 모여 앉는 데까지 또 십여 분이 흘렀다. 그 상황에 더해서 손을 씻고 오느라고 그런 것이다. 노인들이 화장실에 가면 십분은 기본인 경우도 많은데, 이 어르신도 그런 건가 보다. 대소변 문제는 없나? 화장실 쪽으로 따라가면서 직업적인 걱정이 섞인다. 그 사이 냄비들이 가스레인지 위로 다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었다. 밥과 국이 올라온 뒤에도 한참을 레인지 앞에 서 있던 보호자가 숭늉과 누룽지를 내온다.

뭐야, 숭늉을 먹는 집도 있어? 의외이기도 하고, 이러다가 된통 힘든 집에 걸린 것이나 아닌가 하는 불안도 스멀거렸다.

지 선생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네.

보통은 1시 반까지는 밥상이 끝나요. 오늘은 늑장을 부려서는.

상관없어요. 어떻게 드시나 볼게요. 근데 엄청 골고루 차리셨네요.

뭘 먹을지 몰라서요. 아무튼 이제 말 좀 걸어 보세요! 그것이 문제랍니다. 말을 들어야 뭘 골고루 먹게 하거나 말거나.

맞다, 내 차례다.

어르신, 맛있는 것 많이 차려주셨네요. 여기 동치미, 이 국물부터.

내 목소리는 원래 큰 편이다. 또 여기 사람들과는 다르게 서울말투를 쓴다. 그래서일까? 말을 듣지를 않는다던 어르신이 뜻밖에 반응을 보였다. 비뚤게 앉은 자세도 ‘달래서’바로 잡았다. 그런데 먹는 일에 조금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것 드셔보세요, 그러면 그것을 그릇째로 다 비우려고 한다. 저것 드셔보세요, 그러면 그것을 또 그릇째로 다 비우려고 한다. 아, 얼핏 보기에는 정상인데 인지문제가 있기는 있구나.

 

 

아주 엉뚱하게, 혼자 단출하다 못해 초라한 밥상 앞에 앉아있을 어머니가 아른거린다. 일하는 중에 다른 쪽으로 빠지는 일은 드문데, 스스로 갑작스럽다. 어머니는 아예 밥상을 차리지도 않는 끼니가 많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챙기는 대신에, 돈을 번답시고 생면부지 ‘어르신’의 밥 시중을 들고 있다.

내갈비도 여적이고마 또 도가니탕을 보냈디야. 그리 보내쌓면 뭘햐. 느그덜이나 노나 먹지야. 느그 아부이가 계심사…….

홈쇼핑에서 갈비탕을 사서 보내드렸더니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는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서 아버지 생각을 하신 거다. 그러고서 냉장고에 그냥 쌓아둔다. 누가 집에 찾아가서 함께 굽거나 끓이거나 해서 드려야 드신다. ‘내’갈비라고 하시는 것은 LA를 ‘내’라고 읽으시기 때문이다. 에이자 위쪽이 넓게 쓰여서 그리 보이기도 한다. 아무려면. 드시기만 한다면. 그런데 아버지 말씀 꺼내시는 것이 수상타. 아버지가 고기반찬을 좋아하신 것은 맞지만, 돌아가신 것이 대체 언제 적 이야기인가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신다. 장롱 속에서 모자로도 살아있고, 화장대 서랍 속에도 살아있다. 이 참빗이야, 느그……. 여전히 아버지를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고 사시는 통에, 우리는 어머니 앞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가 언제 되살아나서 우리랑 섞여 앉아계실지 모르는 일이니까.

점심은 드셨을까. 요즈음 엄마한테는 둘째언니가 챙겨 보내는 뉴케어가 답인가 보다. 연명은 되실 테니까. 아버지부터 우리 형제자매들, 그러니까 온통 거구들인 지씨들에 비하면 어머니는 원래 작은 체격이다. 나이 드시면서는 더더욱 작아져서 아기 같다. 아기 같은 어머니는 유난히 추위를 탄다. 내가 엄마를 닮았다. 이런 겨울 날, 추워서 방문일랑 열지도 않고 방안에서 무얼 하실까. 전화라도 하고 지낼 형제자매도 없으시다. 손위 외삼촌 한 분은 돌아가셨고, 다른 식구들은……. 어머니는 문경 외가 말씀을 극히 삼간다. 문경을 떠난 것이 하도 오래전 일일 뿐 아니라,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잠기신다. 문경의 채씨 세거지의 비극, 아니 참상, 아니 학살은 - 멍해 있는 사이 점심이 대충 끝난다.

 

점심 뒤처리를 하는 동안 - 오늘은 첫날이라고 함께, 주로 주인이 치웠다. - 어르신은 다시 거실로 나가서 소파에 ‘제 자리’하고 있었다.

커피 하죠? 점심 후엔 일단 피곤을 덜기 위해서 한 모금. 잠깐 이리 오세요.

저는 가지고 왔는데요. 두 잔째 커피를 따르던 보호자의 말을 내가 막으며 에코백에서 보온병을 꺼내왔다. 꺼내 입으려했던 오리털 조끼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이집은 정말 따뜻하다.

예? 커피를 가지고 다녀요? 우리 집에 오면서 커피를 들고 왔다고요?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겠어요.

아니, 서비스 다니다 보면 커피를 전혀 안 드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또 제가 원래…….

원래고 뭐고, 집에 커피 둘 다 있어요, 아메리카노도 양촌리도.

양촌리요?

아, 밀크설탕커피, 왜 옛날 농촌드라마에서 달달하게 마시던 커피요. 거기가 양촌리였나 뭐 그래요. 아무렇거나, 오늘은 우선 이 양반 병력을 보실래요? 가만, 건강메모 - 여기 맨 앞에는 평생 큰 병 앓은 내력이고, 그 다음으로는 올해 이 요상한 발병부터 간간히 메모 해 둔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내민다. 갤럭시 노트다.

그러니까 지병이 꽤 있었다가, 아, 네, 약간의 인지문제 그거야 보통 그러지만, 루이소체? 이런 종류는 처음인데요. 가만, 환시와 악몽이 문제라고요?

엠알아이며 브레인페트까지 다 검사 했어요. 환시라는 것 첨엔 무섭더라고요. 심한 착각, 착시 그런 거죠. 가끔씩 엉뚱한 질문에 놀라곤 해요.

어떤…….

조용히 앉아 있다가, 우리 지금 둘이만 있는 사는 거 맞아? 이러는 거예요. 누군가랑 셋이서, 어떤 때는 여럿이서 함께 살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의사선생님 말로는 실제로 보여서 그렇다니, 좀 섬뜩할 때가.

그러시겠네요. 그럼 처음보다 더 나빠지신…….

내가 아나요, 병원에서도 검사를 해서 수치가 나와야 알던데요 뭐. 아무튼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을 좀 시켜 보세요. 소뿔은 단 김에 빼랬다고, 1라운드가 중요할 것 같아요. 이리 오세요.

 

등을 떠밀리다 싶게 거실로 나온다. 뒤따라 나오던 보호자는 다시 한 번 우리를 소개한다. 상황을 확실하게 해두려는 것 같다.

저기요, - 남편한테, 저기요? - 조금만 앉아서 쉬다가 누우세요! 오늘 지 선생님, 여기 지 선생님 만나서 반갑지요? 우리 애들 또래 같아요. 먼 데 사는 딸이 왔구나, 그리 생각하세요! 자, 지 선생님!

공이 내게로 넘어 왔다.

어르신, 오늘 저 만나서 기쁘시죠?

대뜸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던 보호자는 자리를 뜬다. 큰일이다. 첫 번째 펀치에서 성공해야할 텐데……. 은아, 힘내자! 할 수 있어!

 

환자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나에게로 집중시키기 위해 내가 가진 기술을 발휘할 때다. 어르신들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혀 먹히지 않는다. 빤히 쳐다보기만 할뿐 입은 꽉 다문 상태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유리창 쪽 제법 큰 화분들 앞쪽으로는 자잘한 다육식물들과 선인장들이 있었다. 촘촘한 가시들이 불안하다. 어찌 보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눈앞에 보이는 화분들로 화제를 옮겨 보기로 한다.

어르신, 아파트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나무를 키우셨을까? 이 키다리, 아니 이렇게 잎들 무성한 것도 있네요. 이 가지는 제 키만 하겠어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어르신, 그런데 이것들 이름 좀 가르쳐 주실래요? 제가 처음 본 것들이라서 궁금하거든요. 요것들은 다육이라죠? 다육이라도 따로 이름이 있다던데. 이 솜털만 많은 꼬맹이 선인장들, 이것들은 또…….

이런 것들 처음 보나? 뭐가 그리 궁금하나?

옳거니. 선인장에서 끌려왔다. 계속 선인장으로 가보자.

이렇게 어찌 보면 못 생긴 것들인데, 죄송해요, 근데 귀하게 귀하게 키우시네요.

갑자기 눈을 들어 이리저리 돌린다. 사람을 찾는가 보다. 보호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아까 방문 소리가 나더니 어느 방에 들어가 있는지 아무 기척이 없다. 어르신이 턱을 들어 부엌 쪽을 가리킨다. 보호자를 오라는 건지, 보호자를 가리키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뜻을 모르겠다.

보호자분요? 할머니요? 안 보이시는데요. 왜요?

저 사람 거요.

아니, 여기서 주인이 따로요?

그것만 중하게 보듬는다 말이요.

보듬어요? 선인장을?

아, 보듬어 키우다시피 한단 말이지. 물어봐요. 밖에도 끔찍이 챙기는 것들 있어.

베란다 쪽으로 턱을 들면서 말한다. 옳거니, 화초들에 관해서 이견이 있구나. 호불호가 다르다 이 말이겠다.

밖에 또 화분들 많아요? 그러네요. 밖에도 많네요. 그럼 어르신은 어떤 것들을 좋아하시나요? 밖에 내다보고 올게요. 같이 보실래요?

아이쿠, 성공이다. 화초를 뭐라 가르쳐줄 게 있는지 부스스 일어난다.

이쪽으로, 예. 자, 가시게요.

정말 베란다에는 놀라울 정도로 크게 자란 선인장들이 고개를 꺾고 있었다. 천장에 닿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리고 자란 것들이다. 불쌍타. 이 추위에 너른 창이 반쯤 열려 있는데도 베란다 볕이 좋은 듯 했다. 아예 온실처럼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넝쿨로 자라는 것들도 여럿 걸려있다.

우와, 선인장들, 소철인가, 아예 꽃집 같은데요. 어르신은 어떤 걸 젤 좋아하세요?

해피트리, 요거 해피트리야.

아, 그런 이름도 있었군요. 해피……. 그럼 이 엄청 큰 나무는요? 나무 가지 요거 젤 큰 거는 제 팔 길이만 하네요. 고무나문가요?

맞아, 요거 잎 끊어지면 그 자리에서 하얀 고무액이 흘러요. 눈물같이 뚝뚝.

눈물 같이요? 어머나 시를 쓰시는 분 같아요.

시를?

예, 시인 같으세요.

시만 쓰면 다냐, 살림이 기우는데…….

네?

몰라, 다 잊었어. 나는 다 잊었어.

입을 다시 꼭 다문다.

어르신, 어르신?

다 잊었어, 다.

그것뿐이었다. 눈을 다시 반쯤 감더니 그런 채로 소파로 향한다. 키 큰 등의자에 부딪지 않게 하려면 손을 잡아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정적이 감돌았다. 사뿐 발자국 소리와 함께 보호자가 나타났다. 뭐라고 부르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울 어머니 또래는 한참 아닌데 어머님이랄 수도 없고. 보호자님이라고 하자니 너무 딱딱하고. 이래서 독거노인 돌봄이 속 편한 것이구나. 이게 뒷북이다,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하다니. 돌봄 대상과 단 둘이가 아니라 보호자와 삼각관계가 되나 보다. 삼각관계라는 것이 연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 돌봄 시간 내내 보호자가 함께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불편감이 확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말아? 집을 나서면서, 아니 나서기 전 5분 전에 조용히 말하면 된다.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요, 저한테는 시간이 아무래도 맞지 않아서요. 이렇게 말하면 감정 섞이지 않은 허물없는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다. 일단은 호칭 없이 말만 하자.

어르신이 다시 주무시려나 봐요. 정말 말씀 없으시네요. 시만 쓰면 다냐, 어쩌고 그러시던데, 무슨 말씀이셨을까요? 어르신 시인이세요?

…….

아무 대꾸 없는 것이 노부부가 똑 같네, 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무슨 반응이 저러나. 보호자는 말은 없이 무슨 주머니 같은 것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잠 잘 것 같다는데 부엌엘? 정적이 괴롭다. 부엌에 따라 들어가 보니 구석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그것을 돌리고 있다. 구수한 향기가 피어난다. 꺼내 온 것을 보니 핫백이다.

낮잠 청하니까 발 따뜻하게 해주려고요.

아, 네, 핫백 냄새가 좋으네요. 뭐예요?

현미 자루. 몇 년 쓰면 알게 모르게 점점 타버려서 바꿔줘야 해요. 한 번 바꿔 넣었어요. 이건 안심이죠. 전기방석은 온도조절 잘 못하면 큰일 나겠더라고요.

아, 그래요. 그러네요. 냄새 너무 좋아서 저절로 잠이 올 것 같네요.

정말 그랬다, 잠에 취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따뜻함! 향기!

 

 

서울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벌써 30여 년 전, 서울 살이 첫 해, 봄여름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고 갑자기 겨울이 닥쳤다. 갓 상경한 젊은 애들을 위한 방은 하나같이 딱 한 뼘 마루, 얄따란 방문, 그리고는 방이었다. 반대쪽에 달랑 봉창이 있었지만, 황소바람은 냉돌까지 내려꽂혔다. 시골 고향을, 따뜻한 아랫목을, 더 따뜻한 엄마 품을 떠올리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면 눈까지 얼굴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우리가 결혼을 했을 때, 그해 겨울에는 따뜻한 몸이 옆에 있었다. 아, 사람도 따뜻하구나. 엄마가 아니어도 따뜻하구나. 처음에는 나보다 더 따뜻한 몸이 내 차가운 몸을 차갑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어느 날이었을까. 애기 기저귀가 모자라서 자다가 밤 빨래를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잠들어 있던 그이가 내 손에 깜짝 놀라 움찔했을 때서야 깨달았다. 내 손이 차가울 때마다 얼마나 차가웠을까. 깨달음이란 언제나 늦게 온다. 그 뒤로는 그이가 내 손을 잡아줄 때라도 손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방안을 따뜻하게 해놓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 맞다. 보일러 더 올릴까? - 뭣 하러, 충분하잖아! 정 추우면 옷을 더 입지! 혹시 이런 대답이 두려워서 추위를 그냥 견뎠다. 지금은 보일러 더 올릴까 물어보지 않고 더 올린다. 춥지 않아도, 춥기 싫어서, 추웠던 날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어디에서나 따뜻해야 몸이 풀리고 마음이 풀린다. 이 집은 일단 따뜻하다. 그것은 합격점이다!

 

지 선생님, 잠이 온다고요?

아아니요!

핫백 같은 것, 이이는 전엔 뜨거운 걸 참 싫어하더니. 나이 들면서 바뀌네요, 사람이. 시만 쓰면 다냐, 그랬다면, 그거 「넋두리」란 시예요. 젊어서 술을 마냥 마시고 다닐 때면 내가 놀렸어요. 시만 쓰면 다냐 / 살림이 기우는데 / 시만 쓰면 다냐 / 공자 말씀에 토나 달고 앉아서 / 술잔에 코를 박고 졸기나 하고, 그런 비슷한 시요. 그땐 못들은 척 하더니만, 그걸 어찌 기억하냐. 소싯적 이야기구만,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그런데 사람이 엄청 변해요. 먹는 것도 완전 달라져서, 게다 새우다 먹는 시늉만 겨우 했던 것들을 지금은 엄청 좋아해요. 평생을 살고도 속마음은커녕 좋아하는 음식도 짐작을 못하네요. 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사람이 늘 한결같던가요?

 

사람이 한결 같은 존재인가, 나이 들어 또는 어떤 상황에서 성품이 바뀌기 마련인가.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이 할머니, 사람을 통째로 연구할 일 있나.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걸까. 인지문제가 생겨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일까. 그래도 생뚱맞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철학을 하재? 그래도 대꾸는 해야 했다.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그래도 사람이 변하는 거라서, 애들 두고도 이혼도 하고.

아무리 얼결이라도 그렇지, 갑자기 내 말이 왜 이혼으로 튀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내 인생에 이혼은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이다. 자라난 곳 청원의 시골 정서에 더해서 가톨릭 신자이다 보니, 한 번 맺어진 인연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배웠다. 요란하게 연애하다가 달리 결혼하는 일들도 가까운 주변에는 없었다. 그런 내 입에서 느닷없는 이혼 소리가 튀어 나오다니.

아니 제 말은요, 연애결혼 해놓고도 싸우기도 하고 혹시 이혼도 하고 그러는 걸 보면요.

 

그렇게 말하면서 정순이 생각이 났다. 일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동갑이라서 친구하는 사이다. 세상에나, 시어머니 중풍 간호를 8년씩이나 해냈다는 착한 정순이. 그때는 요양병원이 흔치도 않았고, 입원한다 해도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겠지. 뇌졸중이 중풍으로 끝나도 온전히 가족의 몫이었다. 그랬던 정순이 이혼을 했다. 이혼을 당했다. 일찍 정년을 한 남편이 단란주점 여자한테 빠졌더란다. 어찌 보면 너무 뻔하고 흔한 스토리인데, 그런 일이 드라마가 아니라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양심은 있었던지 당시 1억5천쯤 하는 너른 집을 팔아서 5천인가를 아내에게 위자료로 줬다는 소문이었는데, 쌤통, 지금 시가로는 15억도 더 간다 했다. 정순은 노총각 동창생을 만나서 재혼도 했으니 덜 불쌍하다. 그래도 흠은 흠이다, 이것이 나 꼴통의 생각이다.

우리는, 나는,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상하게도 그이에 대한 내 감정은 여전히 처음의 설렘에서 퇴색되지 않았다. 불만이 있어도, 내가 싫어하는 일을 그이가 하더라도, 내가 싫은 일을 내게 하게 하더라도, 결국 다 이해해버리고 마는 나는 바보 멍청이다.

그래도 천성이라는 것도 있고, 글쎄요. 얼른 말을 바꾸었다.

나는 아무래도 흑백으로 나누어서 답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다. 딱 잘라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하고 정해본 일이 드물다. 정식으로 이유를 대면서 이 일은 해야 하니까 한다 라거나, 하지 말아야 해서 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서지 않는다. 물론 손익은 반드시 따진다. 계산이, 예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로 쏠리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한다. 그뿐이다. 이런 대화는 머리 아프다.

 

 

익은 멜로디,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내 것이다. 죄송해요, 라고 하면서 얼른 집어 들었다.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일단 어색한 대화에서 빠져나왔으니까.

응, 데레사 언니. 나 지금 일하고 있어서. 아니, 괜찮아요. 좀 있다 저녁에 내가 전화할게, 으응.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데레사, 세례명인가 보다. 엿듣게 되네요, 들리니까. 지 선생님 성당 다니요?

아, 네. 집안이 다요. 얼른 알아들으시는 것 보니까, 여기 어르신들도 혹시?

아니요. 우린 아니에요. 사람은 결국 평생 장님이라는데, 신앙도 없고.

장님요? 평생?

예, ‘사람은 평생 장님이다.’ 괴테라던가, 어디서 본 명언이요. 산다는 게 뭘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니까 장님이라는 거죠.

 

괴테고 뭐고, 평생 장님이라니. 이 아줌마, 사람 멍 때리게 하네. 미래를 설계하고 참고 견디면서 준비하면 보람된 내일을 맞을 것이라고, 그렇게 의심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듣기 허망한 말이다. 기도하고 노력하고 주님의 인도에 따르고. 그런데 이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라니 의지할 데가 없겠다 싶었다. 일 없이 나는 신앙을 권면하는 역할놀이에 들어갔다.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 라고 무조건 시작해보시라고, 피라클리토 성령에 관해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들은 척 마는 척이었다. 이 집 사람들은 노부부가 다 내숭이다. 보호자랑 맞을 필요는 없겠지만, 뭔가 영 엉뚱하다.

지 선생님, 면전에서 좀 그렇지만,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 참 좋으요. 거기다가 신앙까지, 복 받은 사람이요.

제가 복을? 복을요? 웬 복?

전복을! 농담! 지 선생님은 전혀 50대로 안 보이요. 해맑고 건강한, 몸과 맘 둘 다 건강한 사람 인상이라서 너무 좋으네. 잘 살아왔다는 증거인가.

무슨 소리야. 언제 봤다고 농담씩이나! 요양보호사나 하고 있는 나더러 잘 살아온 것 같다고? 보통은 내가 이래 뵈도 어엿한 건물주라는 것을 알 리 없으니, 다들 그저 도우미나 알바 취급 아니던가. 물론 나는 잘 살아왔다. 당장 돈 아쉬워서 일 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시내에는 3층 건물을, 시골에는 농가주택을 가지고 안정적인 노후를 기대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맘 추슬러가며 일하고 모으고 일하고 모으면서 살아왔는데. 곁눈 팔지 않고, 곁눈 팔지 않으려고 맘 잡고, 맘 잡고, 맘 잡고! 그러니까 잘 살아왔는데, 잘 살아왔을 거라고 남이 말하니까, 갑자기 잘 살아오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건 또 뭔가. 지금 어쩌자고 두 타임씩이나 일을 하려는 것인지. 이 자체가 잘 살아왔다는 말과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정말 이상하다. 인상 좋다는 말, 어색하긴 해도 듣기 좋은 말들이라서 이 집을 거절하고 갈 이유가 적어진다. 당장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붙잡으려는 뻥튀기는 아니겠지, 설마. 그런데 이 할머니, 날 언제 봤다고 의심 없이 믿는 눈치네. 어쩐다?

 

보호자는 순간 어르신 쪽으로 다시 가더니 들여다본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는데 그냥 살핀다. 살짝 건드리면서 깨운다.

보세요! 여기 지 선생님이랑 사귀어 봐야지요. 무슨 말이든 해 봐요. 심심하면 지 선생님이 내일 우리 집에 안 올지도 몰라요.

협박 아닌 협박이다. 그런데 그 말에 움찔 반응을 보인다. 어르신이 몸을 일으킨다.

아, 다행이네. 지 선생님, 이쪽으로, 여기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세요. 우리 둘만 있으면 정말 심심해요. 그동안 할 말을 죄다 해버려서 새로 할 말들이 없거든요.

정말 내 차례다.

어르신, 네, 그렇게 앉아서 기지개도 켜시고, 자리에서 운동도 하고 그러시게요. 자, 우선 두 손을 쥐었다 폈다! 이렇게요. 팔도 흔들어 보시고, 어깨도 들썩!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걸음은 잘 걸으시는지. 자, 일어나서 조금 걸어보실래요?

보호자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어르신이 일어나 앉았다. 어깨도 들썩들썩 해 보인다. 아, 다행이다. 반응이 너무 없었더라면 사실 할 일이 없으니 어색할 노릇이다.

자, 이렇게요! 으샤, 으샤! 그런데 혹시 밖에 나가보실 생각 없으세요? 오늘 쌀쌀해도 바람 별로 없어요, 지금 햇볕이 너무 좋아요. 조금 있음 해가 사라지잖아요.

어르신이 두리번거린다. 아내를 찾는다. 아내는 어느 새 반코트를 가지고 나온다. 체크 머플러도 함께다. 더러 산책을 나가곤 했는지, 어르신 혼자서 천천히 겉옷을 입고, 장갑도 끼고 마스크까지 챙긴다. 아내가 머플러를 고쳐 매준다. 예쁘게 매만져주기를 기대하는 소녀처럼 얌전하게 내맡긴다.

마스크까지 중무장이시네요, 요기 아파트 마당만 갈 거 아녀요?

아, 황사를 싫어해서 마스크를 꼭 끼고 나가신대요. 겨울엔 따뜻해서 좋으니 일석이조죠, 그렇지요?

아내도 겉옷을 챙겨 입고 나선다. 자, 그럼, 오늘은 셋이서 함께 산책을 나가 보죠.

오늘 셋이서 함께.

어르신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갑자기 즐거운 기운이 감돈다.

대문을 열자 찬 기운이 확 밀려든다. 좁은 대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켜서 나서면서 나는 이들과 함께 다시 이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한다. 어쩌면 내일도 그 다음 날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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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21 여름호 통권 64호, 208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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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1. 6. 4. 08:39

 

                                                                              감정이 종교의 근본적인 기관이라면 신의 본질은

                                                                              감정의 본질 이외의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 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에서

 

 

 

    지레 겁먹은 듯 소리 없이 와 있었다. 봄이라고 들킬세라. 그럴 것이, 봄눈 녹는 물소리며 아지랑이 일렁이는 계절이 봄이라면, 2020년 이 봄은 봄도 아니었다. 사람들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채 겨울 언저리에서 멎어버렸다. 계절로는 우수도 경칩도 지났지만, 사람들은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어깨로 바닥을 향한 자세로 코앞만 보고 걸었다. 좌우 곁눈질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이상한 동질감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다 같이 발가벗고 공평하게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사순절도 사순절이 아니었다. 쌩쌩한 겨울이 녹고 봄이 파릇파릇 자태를 드러내는 그 40일 동안이 연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올해는 첫날부터 재앙이 생겼다. 하필 재의 수요일 미사가 금지되다니!

재의 수요일 미사 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사이다. 일년 동안 십자고상에 걸어두었던 편백의 성지는 불태워져서 재가 되고, 신부님은 ‘하느님 …… 저희 머리에 얹으려는 이 재에 강복하소서.’라고 기도하시고는 재를 이마에 찍어 주신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 신부님의 목소리는 성당의 높은 천장을 넘어 하늘까지 퍼져나간다. 내 머릿속에서는 ‘나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의식으로 구체화된다. 흙은 내 어린 시절부터 나를 에워싼 환경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세월 지난 대도시 생활에도 주말이면 농막이 딸린 작은 농지에 가서 흙을 만지는 일이 좋다.

 

    재의 수요일 미사가 있을 그날이 2월 26일, 그날 아침 1,14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 중 사망자가 11명이나 되었다. 대구 하나의 도시에서만 700명 정도라니 눈이 휘둥그려진다. 전염성이 무섭다고, 일본,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등, 한국인의 입국을 금하는 나라가 속출했다. 그런데 발생지라는 우한에서 교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좋은 나라다.

    코로나? 그 역병의 이름이 그랬다. 처음에는 웃었다. 그것은 완전 유명한 멕시코산 맥주 이름이다. 아사히, 칭타오 등 수입맥주들이 들어 올 때, 레몬이랑 끼어서 마신다는 코로나맥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워낙 애국자(?)인 남편은 수입맥주 하나 사는 것도 큰일 날 일이라서, ‘우리 라거’면 됐지, 하고 만다. 그래서 그 맛은 보지 못했지만, 코로나가 맥주인 것은 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이 봄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코로나라는 발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공포를 일으켰다. 이를테면 아직도 코로나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설마 있을까?

    사실, 처음 들어본 이름의 이 전염병은 사소한 보도로 몸을 드러냈었다. 마침 설날이 1월 25일 토요일이어서 대체연휴까지 줄줄이 쉰다고 설레던 때였다. 인천 공항에서 기이하면서도 애매한 정보가 나왔지만, 다들 스치 듯 지나가는 뉴스인 줄 알았다. 이착륙 대형사고나 쿠알라룸프르공항 독살 사건쯤 되어야 눈에 띄는 세상이니까. 그런데 곧 그 기이한 낯선 것의 정체는 걷잡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공포의 씨앗으로 드러났다.

 

    교황님마저 감기 때문에 사순절 피정에 불참하신다는 뉴스가 떴다. 괜스레 불안했다. 교황님은 청년 때 폐를 심하게 앓아서 일부를 잘라냈다고 들은 것 같았다. 때가 때이니만큼 뒤숭숭한 소문도 있었다. 모든 일상이 멈춰선 가운데, 성당은 멀기만 했다. 일찌감치 이번 사순절 행동지침으로 나왔던 탄소금식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기후회복을 위한 40일의 실천 운동이라 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기’, ‘플라스틱 등 일회용 제품 안 쓰기’, ‘전등 끄고 기도의 불 켜기’, ‘종이 금식’, ‘고기 금식’ 등이다. 그러니까 수요일엔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목요일엔 전구 한 개 빼기, 다음날엔 금요일이니까 금육을 실행하면 된다. 아, 어려운 금육! 본당 신부님께서 언젠가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소고기 1파운드는 곡물 7파운드, 돼지고기는 곡물 3파운드로 만들어진다고. 세계의 곡물 1/3이 육류생산에 소비되고 있으니,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곡물들을 부자들의 소, 돼지, 닭들이 다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 말씀이 생각나면 늘 거북해진다. 신부님도 아마, 사실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육식을 좋아할 것이라고 혼자 변명도 하면서. 그래도 신부님 말씀은 신부님 말씀이다. 신부님은 날마다 한 가지씩 실천할 일을 생각하기가 힘들면 일주일 단위로 해보라고도 하셨다. 첫째 주는 아무것도 사지 않기……, 그런데 벌써 여기에서 걸렸다. 말이 쉽지, 한 주간 아무 것도 사지 않기는 어렵다. 언텍트라는 단어가 화두에 오르면서 쇼핑이나 시장보기가 어려워진 것과 반비례로 인터넷쇼핑이 너무 쉬운 일상이 되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 모두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다. 나는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나는 절약의 달인이다.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살아 넘긴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쉰다. 이 시절에 다 같이 무서워하고 힘들어 한다고 해도, ‘다’라는 말에는 언제나 구멍이 있다. 이런 시대에도 확실히 더 힘든 사람들이 있고, 더러는 누가 들을세라 볼세라 남몰래 속으로 웃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맥주가 망하면 다른 맥주는 살아나고, 또 쉬운 말로 마스크다 택배회사다 그런 곳은 예외 아닌가. 어쨌거나 이런 때에는 대박보다는 쪽박이 더 많기 마련이다. 나도, 우리 요양보호사들도, 더 힘든 축에 속한다. 재가방문요양의 경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료들은 일자리 끊긴 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디서 감염될지 모르는 터에 버스타고 전철타고 여기저기 일 다니는 우리들을 위험한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문제에서는 조금 낫다. 모닝이라도 내 몫의 차를 가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매사에 아끼고 또 아끼는 남편을 인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 차를 사준 것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에이, 그것은 잘 모르겠다. 간단히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일정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 오전에 일 년 조금 넘게 다녔던 방문요양 수급자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고령이긴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고관절 부상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전염병과는 무관했으니까. 나는 일단 오전을 쉬게 되었다. 입원 일정이 길어질 것 같으면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한다. 4대보험을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고용이 되려면, 한 달에 일해야 하는 최소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수급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그 순간 재가방문을 딱 끊어야 한다. 실은 한 요양보호사가 병원에 입원한 수급자를 돌봐드리다가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것이 부정수급으로 간주되었고, 그동안 받았던 급여의 몇 배를 벌금으로 냈다던가, 그런 내용이었다.

    아무튼 처음에 그 노할머니가 입원한 동안에는 조금 쉬는 것이야 별 일 아니니까 싶어서 오전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고 기다렸다. 오랜만에 시간 여유가 생기니까 느긋하기도 했다. 남편이 절대로 안 보는 채널의 트롯 재방송들도 보았다. 텔레비전에서는 ‘기생충’이 징그러운 단어가 아니라 환희와 축복의 단어가 되어서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서 넉넉히 점심을 챙겨먹고 오후 방문요양 집에 시간 맞춰 도착하면 되니까 오히려 편했다. 입원 며칠 후에는 노할머니 면회도 다녀왔는데, 예상대로 병원이 온통 코로나 방역이라고 어수선했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입원 기간이 늘어났지만, 다른 자리를 찾아보기가 어쩐지 망설여졌다. 이렇게 뒤숭숭한 시절에는 두 집을 방문다니는 것보다는 한 집만 맡는 것이 안전할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요양병원 근무를 택하지 않았던 것도 새삼 다행으로 여겨졌다.

    한 달은 족히 쉬었을까. 그때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병원에 계시던 노할머니가 알 수 없는 열감이 고열로 이어져 중환자실로 옮겼다 했다. 불안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갈이었다. 마지막까지 코로나19 확진은 아니고, 그냥 신장염인가 무슨 염증이 갑작스런 패혈증으로 이어져 그렇게 되었다 했다. 하긴 나이가 들어서 잠시 병원 신세지다가 떠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심지어 괜찮은 운명이다.

 

 

     시골집에 혼자 남은 어머니들은 할머니가 되어도 혼자서 살아간다. 그것도 건강할 때 말이다. 밤새 안녕인 것이 노년의 삶이라서 쓸쓸한 죽음을 맞기도 한다. 그것이 무서워서(?) 또는 건강 때문에 요양병원 신세가 많다. 자녀들이 어머니를 아버지를 위해서 함께 살거나 그들의 집으로 모셔가는 일은 드물다. 드물다 못해 엄청난 예외다. 요양병원 생활의 실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대는 거의 없는 채 그저 영원히 갈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고려장 다름없다. 따뜻한 밥 먹을 수 있고그 나름 깨끗한 침대에서 자는 일만 해결된 고려장. 외적인 평온은 수면제 덕택이라는 해괴한 풍문들도 떠돈다. 설마 그럴까. 나는 요양병원 근무를 해보지 않아서 정말 모른다. 자신의 집이라 해도 고려장은 마찬가지다. 멋대로 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도, 먹기 싫은 약을 억지로 먹게 되지는 않는다 해도, 먹는 것이고 이부자리고 부실하기 그지없고, 들여다보는 자식들 없이, 혼자 이럭저럭 끓여먹다가 간다. 30년 후 내 모습은 어디에 속할까. 아니, 울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 어쩌고 계실까.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서 눈을 뜨고 혼자서 눈을 감으신다. 이런저런 병력은 좀 있으시지만 정신이 아직 바르시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종일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실까. 전화는 받으시겠지.

 

    나는 거그 안 갈텨. 하느님께 기도혀, 지는 알아서 갈 테니께 아프지만 말게 해주셔유, 그려. 그닝께 거그는 안 갈 텨.      어머니는 무조건 그렇게 말하신다.

    누가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대?

    수녀님 내색이 그랴. 어무이 혼차 놔 두느니 오디께냐 거그 즈그 동네 가차이 둠사 맘 편타는 겨. 모탱이 돌면 거그라고. 그런 딸도 없긴 혀, 저는 아덜도 읎음서.

 

    수녀님이라면 둘째 딸 말씀이시다. 딸이라도 꼭 수녀님이라 부르신다. 둘째언니는 왜 수녀가 되었을까. 큰언니와 다르게 둘째언니는 야무지게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둘째언니가 수녀님이 되리라는 것을 몰랐다. 본인은 예감했을까? 그야 아무도 모른다.

    언니가 성소(聖召)라고 설명했을 때에도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풀어 말해줘도 어려웠다. 알 수 없는 어떤 소리가 들렸고,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너는 수녀로서 살라는 메시지였고, 아니, 그런 소리라고 들었고……. 그러면 수녀가 된다. 소리는 어디에서 생겨나서 들려오는가. 귀 밖에서부터인가, 안에서인가, 안이라면 머리에서인가 심장에서인가. 아무튼 어떤 소리에 큰 의미가 들어있다. 의미가 원래부터 있었는지, 의미를 싣는 것은 듣는 사람인지. 소명(召命)이라는 말이 대단한 뜻을 가진 단어인지는 언니가 수녀의 길을 선택할 때서야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가 몇 년 투병으로 돌아가신 후 남겨진 가족들, 큰 고생을 몰랐던, 준비 없던 어머니와 우리들은 맥없이 남겨졌다. 각자 살아남을 길을 도모해야 했던 시절에, 작은언니는 장학금을 받을만한 대학을 골라서 진학을 했다. 성당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가끔 보는 작은언니의 얼굴은 일찍 결혼을 해서 어려운 살림에 풀기를 잃은 큰언니와는 다르게 환했다. 눈은 웃음기로 인해서 더 가늘어 졌지만 얼굴은 점점 더 예쁘게 빛났다. 큰 눈이 아름답다는 선입견도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언니, 연애하는 거야? 내가 물으면 언니는 그냥 웃었다. 그런 질문에 그냥 웃으면 긍정한다는 신호였을 게다.

    생기발랄 작은언니와 내가 닮은 것은 긍정마인드다. 나는 꼭 간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아프시면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엉뚱하게 친구 따라 상경은 했지만, 언니와는 길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알바를 뛰고 뛰어도 간호전문대학에도 들어갈 여건이 되지 않았고, 미리 팍 숨을 죽이고 간호학원으로 간호조무사로 실팍하게 출발했다. 그런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언니의 꿈은 높아만 보였다. 내가 현실주의자라면 언니는 이상주의자였나? 현실과 이상 차이가 아니라 능력 차이였나? 뭐, 사람은 능력별로 사는 것이니까. 능력에 따라서, 라고 하면 기분은 좀 꿀꿀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배우면서 자라났다. 경쟁해서 능력이 좋으면 돈이든 지위든 더 큰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그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나다. 작은언니에게서는 대졸이니까 우리 고졸 인생과는 다를 무엇인가가 환하게 빛나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언니가 갓 들어간 직장을 덜컥 그만 두고 수녀가 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예상 밖의 말은 거의 반란이었다. 태생이 순하디 순한 어머니는 하얗게 질렸다. 추석이라서 다 함께 모여 있던 우리들은 어머니가 쓰러지실까 봐서 더 놀랐다. 그런데 곧 몸을 가다듬은 어머니가 말했다.

    딸내미덜 핵교 댕기는 동안 내내 맘 안 졸인 역사가 읎어. 인저 때려치우면 오째, 늘 그랬으니깨. 츠음으루 월급 탔다구 뭐시랑 사 왔을 적으 천상 받아들고 눈물부텀 났지야. 근디 그 모탱이 막 돌고나서, 그만 혀겄다!?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눈들을 피했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람 그만 혀야지야. 그리혀서 낯색이 이랴?

    그러고 보니 언니의 낯빛이 영 아니었다. 윤기는커녕 부석한 느낌에 내가 다 괜히 울컥해졌다. 무슨 맘고생이 있었을까. 결정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속없는 나는 한창 연애질에 세상모르고 맘만 두근거리고 살던 때였다. 그렇게 언니는 다른 세상으로, 성스러운 세상으로 갔다. 살아서 천국이나 비슷할 그런 세상으로.

 

    수도자 생활 – 그래, 나의 나약함과, 심지어 죄에도 기뻐 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거야.

    언니가 우물거렸다.

    죄까지 기뻐한다고……요?

    내가 잘 못 할 수 있고, 그럼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이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말도 안 돼!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속으로 저항했다. 저런 궤변이라니!

    나의 죄,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의 나약함을 하느님 안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하느님을 따라나는 길 – 그것을 선택한 거야. 은아,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야.

 

    그러니까 소명은 언니가 수녀가 된 것 같은 일을 말한다. 부르심이란 뜻이란다. 하필 죄인을 불러주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은 무엇일까. 수녀님이 된 언니가 말하는 죄의 정체는 내가 어렴풋이 느끼는 그것일까? 갈림길 앞에서의 갈등. 한쪽은 집안 좋은 그러고도 꾀나 똑똑한 사람, 다른 한쪽은 외롭고 빈한한 가정의 로맨티스트. 그 비슷한 구도다. 이것은 순전한 나의 상상이다. 빈곤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도식. 돈 없는 로맨티스트와 돈 많은 모범생을 평형저울에 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단순 무게를 비교하는 것이 아닌 동안에 저울추는 늘 흔들리게 마련이다. 선택이란 하나를 두고 할까 말까를 정할 때에도 힘들다. 하물며 무엇인가 둘을 두고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큰 고통일 것이다.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구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그때 처음으로 다시 한 번 가슴이 아픈 것을 경험했다. 작은언니가, 나랑은 비교할 수 없게 똑 부러진 언니가 무엇인가를 접었거나 무엇엔가 꺾였으리라는 상상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물론 순전히 엉뚱한 상상일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첫 직장에서의 내 꿈, 가슴 덜컹거리게 한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게 될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라서, 간절한 꿈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언니의 꿈은, 적어도 그때 언니의 얼굴을 빛내던 첫 번째 꿈은 접힌 것일 게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다른 꿈들로 채워졌기를 바란다. 그랬으리라 믿는다. 근년에는 사람들이 수녀님들에게서 기대하는 맑은 윤기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의젓한 위엄까지를 갖춘 존경스러운 수녀님이 되어 있다. 우리 가족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어 신앙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수녀님을 통한 부르심이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딩 때, 그땐 가족들 아무도 신앙을 모를 때였다. 그저 아버지 아프셔도 그 고통에도 아무 것도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간호사가 가장 소중한 사람 같았다. 겨우 간호보조사가 되어서도 그 선택을 후회한 적 없는 걸 보면, 그때가 소명, 부르심이 맞았을까! 내 말은, 사명감이나 의무감, 뭐 책임감 같은 것으로 선택한 직업이 소명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니는 고귀한 성소에 순종했고, 나는 그저 순진한 소망을 이루었다. 언니를 젖히고(?) 결혼에 성공한 내가 그 일로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을 차마 소명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나의 순진해서 평범한 그 선택이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 길이었는지는 수녀님은 영영 모르리라. 그런 의미에서 경제생활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수도자들이란 인생을 반 밖에 살지 않는 사람들 아닐까. 이런 말 언니가 절대로 듣지는 않을 테니까 혼자서 하는 말이다. 또 우리 어려서 동네 미장가 노총각에게 사람들이 왜 말을 놓았는지 알 것도 같다. 결혼은 환상에서 시작하고 현실로 지속된다. 환상은 짧고 현실은 길다. 긴 현실 속에서 나는 철부지에서 어른으로 자란 것 같다. 우리 수녀님은 자랐을까? 한 번의 절망으로, 큰 좌절로 다 자라버린 것일까? 현실을 미리 다 건너뛰고 현실 밖, 현실 위, 반쯤 천국에서 사는 것일까? 혹시 현실에서 도망쳤다면? 그렇다면 아예 자라지 않은 상태로 몸만 어른이 되고 늙어갈까? 정말 더 순수한 영혼일까?

    대학에 가기 전부터도 언니가 성당에 가기를 좋아했지만, 그것은 수녀님에게 가서 피아노를 배우고 오는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정식 레슨이 아니고 그냥 비어있는 피아노를 치거나 수녀님을 만나서 이야기 하고 온다고, 그렇게 말할 때에도 나는 따라가 볼 생각은 없었다. 대학에 간 언니는 집에 잘 오지 않았고, 집에 오면 성당에 가 있기를 좋아했다. 결국 언니는 우리가 모르는 잠깐의 흔들림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궁극적으로는 수녀원을 집으로 정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까, 수녀원으로 들어간 것도 결혼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의 집에서 다른 일상의 집으로, 이것이 보통의 결혼이라면, 수녀가 되는 일은 일상의 집에서 성스러운 집으로 옮기는 것이리라. 성스러운 집 – 그곳은 어떤 곳일까. 성스럽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활의 죄를 뒤집어쓴 우리랑은 좋아하는 성가도 다를까?

 

 

     아차, 엄마가 아무 소리 없으시다!

    엄마, 그래 이젠 수녀님 걱정일랑 말어요.

    그랴. 우게 딸 둘이 달버도 참 많이 달버. 큰성이사 집이만 오면 안 쓰넌 그럭들도 다 끄잡아 내서 치워야. 살림 오지게 살다 봉개 그라겄제만, 사람이 살아서는 곰패기 실문 안된다 그리 생각을 한댜.

   엄마, 식사는? 혼자라도 잘 챙겨 드시져?

   암만. 아래께 큰성이 다 봐놓고 갔디야. 나 좋아허는 돌가지랑 쭐거리 하나 없이 혀 놨어야. 비가 끈첬나? 나 회관 나가볼 텨. 인저 끊고 들어가, 어여, 출근 아니여?

   안죽 아니랑개요.

    어머니 말로 대꾸를 하다보니 와락 어머니가 그리웠다. 건강 챙기시고…… 잘……, 우물쭈물 전화를 끊고는, 나도 모르게 큰언니한테 전화를 한다. 큰언니가 어머니랑 가장 지근에 있다.

 

    큰언니, 나, 은이. 별일 없으시져?

    어, 그려. 은아! 느그네도 별 일 없지야? 오늘은 너무 일찍 일어났나벼, 하루가 길어져서 어쩐디야.

    무슨 말? 하루가 길어지다니.

    남은 하루가 너무 길잖여. 한 두 시간 빨리 일어나믄 그랴.

    언니는 일부러 어리광부리듯이 사투리를 느려대었다.

    그람 더 주무셔라.

    나도 사투리로 답한다.

    너 언제부텀 전라도 사람 거진 다 된겨. 전라도 사투리배끼 안 나오잖여.

    왜 그래, 큰언니.

    승질은, 니가 원채 이뻐서여. 어무이랑은 아랜가 통화하고 인저…… 니가 혀, 조옴.

    자주 해, 한다고. 엄마, 전화로는 괜찮으시던데. 모르지 난.

    그려, 자석들은 모르지야. 혀 봐.

    알았어, 방금 했다니까. 언니. 언니도 매사 조심하고!

    그려, 워디든 조심히 댕겨!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더 길고, 하루가 길수록 더 지루하다고? 어라, 하루가 길어지면 이제는 더 위험하겠네! 하루가 길면 길수록 노출이 길어진다. 노출이 길면 길수록 위험도가 올라간다.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잠들고, 한마디로 덜 살아야 덜 위험하다. 그럼 뭐야, 아주 살지 말아야 가장 위험하지 않다고? 그건 아니다.

 

 

     오후 일과는 지루하지 않다. 아니, 이상한 말이지만 약간 신이 나는 정도이다. 기분 좋은 일터다. 요양보호사 일을 한 이래 사람들이 이만큼 나를 좋아해주다니! 말을 잃었다던 수급자 어르신은 살그머니 옛날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시작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한참을 이야기한다. 내가 잘 못 알아듣는 내용이어도 대강 끄덕이며 알아 듣는 양 기다려주면 된다. 가벼운 운동도 곧장 같이 하고, 산책도 날마다는 아니지만 하는 편이다. 우리가 첫 산책을 나갔던 지난겨울에도 어르신 혼자서 꼭꼭 마스크를 했던 습관이 천만 다행이다. 봄이 오기도 전에 마스크는 온 나라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는데, 이 고집스런 어르신에게 그걸 새로 따라하게 하려면 너무 힘들었을 뻔 했다. 황사를 끔찍이도 싫어해서 마스크를 박스째 사 놓았다더니, 정해진 날에만, 그것도 신분증이 있어야 마스크를 사는 배급 세상이 되었어도 이 집은 걱정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어르신과 둘이 다 마스크를 쓰고서 산책을 하는 동안에는 별 말을 하지 못한다. 집에 들어와서는 대화가 잘 된다. 청력이 문제되지는 않는 정도다. 그동안 못 알아들은 것은 청력이 아니라 관심을 껐기 때문임을 알았다. 관심을 끄면 청력도 꺼진다, 그런 셈법이다.

    보호자는 점심이 끝나고 나면 거의 날마다 외출을 한다. 그러니까 첫날 모두 함께 산책을 나갔던 일은 단 한번으로 끝났다. 보호자가 함께 있어 좀 불편할까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어르신을 혼자 있게 두지 않으려면, 어르신을 나에게 맡겨놓을 때만 나간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런데 무슨 외출을 날마다 할까? 하긴 그것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내가 번호 키를 알아서 누르고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내뱉는 말이다. 문간에서 출근부 태그 때문에 지체해야 하므로 일단 큰 소리로 인사를 들여보낸다. 예, 어서 오세요. 먼 데서, 그러니까 부엌에서 나는 소리다. 곧 거실로 올라가면서 왼쪽을 본다, 어르신이 누워 있을 곳이다. 첫날과 거의 다름없이 대부분 그 시간까지 누워서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서 신호를 보내고 부엌으로 향한다. 여기까지는 로봇이나 같다.

    점심시간이 차츰 늦어져서 이제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보호자 혼자서는 식탁에까지 오게 하는 것이 점점 힘들다고, 이젠 아예 내가 식탁으로 모셔온다. 그러고서 세 시간, 즐겁게 지내는 편이다. 일인데 즐겁냐고? 일이지만 즐겁다. 집에 혼자 있어도 별 일도 없이 무료할 테고, 여기 오면 나를 반기는 노인들 틈에서 즐겁다. 이들에게 내가 힘이 되어, 이들이 나를 의지한다고 느낄 때의 기분, 그것은 세 시간의 수입에 비할 바 아니다. 겨우 최저임금보다는 살짝 높은 수당에 플러스알파가 너무 좋다. 돈이 아닌데도 좋다.

 

    점심 직후 커피를 마시는 시간동안이나, 어르신이 낮에도 ‘졸립다’는 눈빛으로 잠을 청할 때는, 보호자랑 잠깐 어르신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할머니랑 잠시 떠드는 것도 재미있다. 재미있다고? 그렇다. 떠든다고? 떠든다. 내 목소리가 기본적으로 크니까 떠드는 것이고, 또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까 떠드는 것 맞다.

이 할머니는 요양보호사 일에도 관심을 보인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직접 하려고 그러나? 설마. 자격증 따시게요? 그리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다른 동료들의 경험에 대해서도 궁금해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체험한 일도 다른 동료가 겪은 일처럼 둘러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일들에 관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판단을 하게 된다. 이 할머니에게는 독특한 점이 있다. 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한다. 방문요양 첫날 대뜸 사람이 한결같더냐는 질문을 해서 멈칫 놀라게 했던, 바로 그런 연속이다. 나는 그 뒤로 무심코 사람들을 대하다가도, 이 사람은 한결같은가, 한결같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새 사순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내 머릿속이 성가로 가득 차 있을 때, 설거지를 하던 내가 나도 모르게 콧소리로 성가를 불렀나 보다. 성가가 새어 나왔다는 말이 맞겠다. 영원을 생각 않는 인간일진대 제 몸을 죄악에다 묶고 말거늘 ~

    미미파솔 솔파미 레레미파미레~ 성가인가 봐요. 무슨 가사예요?

    뭐예요? 아시는 노래예요? 신자 아니시라면서!

    간단한 계명이니까, 반복도 되고 해서. 아무튼 가사는 어떤가요?

    아, 〈빛의 하느님〉이에요, 저는 3절을 젤 좋아해요. 영원을 생각 않는 인간일진대 제 몸을 죄악에다 묶고 말거늘 이 영혼 무거운 짐 벗어던지고 고마운 생명 안에 살게 하소서

    가사가 감동이네요. 겸손한 신자로서…….

    그렇지요. 우린 기본적으로 죄인이니까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에 순종해야죠.

    글쎄요. 나도 좋은 말씀들 좋아해요. 카톡카톡, 건강건강, 건강하게 오래 살기, 그런 몸보신 종류 좋은 말씀들이 머리 아프게 넘치는 톡세상에서, 신앙 관련 말씀들은 진짜 좋은 말씀들이죠.

    어떻게 그런 것들도 와요? 신자도 아니…….

    친구가요, 신부님의 말씀을 전달해 줘요, 거의 매일.

    아, 그런 신앙 깊은 친구가 있으시군요. 곧 신자 되시겠네요.

    교회랑 성당 합치면 아는 신자들이야 많지요. 좋은 말씀들 풍년이고요. 한번은 그런데 내가 믿지도 않은 신앙을 통째로 의심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전달, 또 전달된 건데, 그 신부님 본명도 세례명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대체 무슨 말씀이길래.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그랬는데요, 세상에나,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언니가 너무나 부러웠던 여섯 살짜리 아이의 이야기랬어요. 수녀님이 ‘넌 나이가 어려서 안 돼!’ 이렇게 딱 잘라 말했음 좋았을 걸. ‘첫영성체는 넌 아직 젖니가 있으니까 안 되고, 이 젖니가 다 빠지면 그때 할 수 있단다!’라고 예쁘게 돌려서 말을 했대요. 헌데 그 결과는 너무 끔찍했대요. 애가 집에 가서는 짱돌인가 뭔가로 젖니를 모두 빼버리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 수녀님한테 와서 첫영성체를 졸랐다는.

    아이쿠머니나.

    나는 그때, 어떤 신부님이 쓰셨다는 카톡, 전달이니까요, 그 글머리에 ‘찬미 예수님’이란 단어도 그날만은 끔찍했어요. 지선샘, 이빨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겠지요?

    …….

    신부님은 이 피 흘리는 아이에게 감동해서 첫영성체를 허락하셨대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규칙보다 더한 사랑으로. 헌데 이 이야기를 길고도 자세하게 써서 일반 신도들에게 전하는 신부님은 뭘까. 잔인함이라는 단어만 떠올랐어요. 신자들에게 ‘당신들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무엇을 봉헌할 수 있느냐’고 채근하는 말씀이 이어졌다니까요!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어린아이의 고통을 이용해도 되는지. 다른 철없는 아이들에게 본받으라는 이야긴지. 아니, 젖니를 깨부수는 멍청한 짓이 칭찬할 일이냐고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가능하다고?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잔인한 일도 해도 된다고? 사람의 생각은 늘 올바른가 말이에요.

    쉴 틈도 없이 말하는 할머니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혼란스러웠다. 이 말에 공감이 갈 듯 하지만, 신부님 말씀이라는데 그걸 비판한다? 신부님은 신부님 아닌가! 신앙적으로나 무엇으로나 공동체 안에서 으뜸이신 신부님들……. 나, 세례교인인 나를 인도하시는 신부님.

 

 

     세례성사,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음성과 더불어 이마에 느꼈던 물기, 아니 그 냉기를 잊을 수 없다. 정신이 난다? 식구들이 여럿이서 세례를 받았고, 각자 선물을 받았다. 나는 분리형 ‘성 가정상’을 선물로 받았다. 성요셉이 서 있고, 성모마리아가 아기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조각상이다. 그러니까 10센티미터 조금 더 될까, 그런 키의 성요셉이 따로 분리되는 형상이다. 둘을 분리해 세웠다가 또 앞뒤로 나란히 세워보곤 했다. 나뭇결도 참 좋아서 사랑스러웠다.

    어차피 아이와 아버지가 무관하니까 분리된 것이라고!

    그때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세례성사를 보러 왔던 오빠가 불쑥 말했다.

    아버지가 아이와 상관이 없어서라고?

    없지 그럼! 예수는 인간 요셉의 자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식이라잖아!

    그야…….

    오빠가 내뱉은 말에는 진정이 아닌 빈정거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속상하기도 하고 뭐가뭔지 혼란스러웠다. 정말 성요셉은 아기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로서 따로 조각된 것일까. 하긴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하긴 우리가 어렸을 때, 까치헌티 동생 하나 물어다 달라 혀 봐라! 하는 소리도 들었고, 동네입구의 큰 은행나무 아래 물 떠놓고 삼신할무니헌티 아들하나 점지해주라 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까치도 삼신할머니도 아기를 가져다 주는데, 성령으로 잉태하는 일이 불가능할 리가 없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엔 알에서 깨어난 왕도 있었고, 서양 어딘가에는 뱀에게서 태어난 왕도 있었던가, 그냥 이야기였던가. 믿음은 사실보다 더 믿을만한 것이기도 했다. 믿음 –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골고다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수녀님의 사순절은 어떨까. 사생활은 금기어라서 우리는 수녀님의 일상을 모른다. 다만 수녀님이 권할 때 우리도 따라서 성지순례를 함께 다녀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특별히 지루한 사순절이면 성지의 추억 속에 잠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수녀님은 수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에 닳을 대로 닳은 돌계단을 올라 주님의 성묘교회, 거룩한 무덤 성당으로 갔던 감회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맹세코 그 사람을 모르오!’라고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너는 나를 사랑 하느냐?’라고 하셨던 바로 그곳이란다.

    아, 그래, 그거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예수님이 물으신다. 여섯 살 아이에게 물으신 것이다. 아니, 그 여섯 살 아이가 사랑을 보여드린 것이다.

 

    저기, 그 젖니 이야기를 너무 맘 아프게만 보시지 마세요! 사랑의 표시니까요!

    예?

    많은 신자들이 그 이야기에 감동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정진할 수 있잖아요.

    예?

    내가 한참이나 지나서 느닷없이 말한다고 느끼는지, 이 할머니는 두 번을 짧게 반문하고는 입을 닫았다. 커피만 천천히 홀짝 거린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말을 하기 싫든가. 나는 이런 침묵이 참 싫다. 오늘은 기쁘다가 말았다. 틈이 있어야, 한 가닥 올이라도 풀려야 대화가 가능하다. 아니면 말지! 신자가 아닌 사람하고 무슨 신앙 이야기를 해! 누가 시작했었지? 그러고 보니 콧노래 성가 때문이었으니 빌미를 준 것은 나였다. 하지만 말을 꺼낸 것은……. 치이!

신적인 본질이란 우리 인간의 감정의 본질이랍니다. 그 자체로 황홀해지고 스스로에 도취된 감정, 신의 본질이란 감정의 본질을 표현할 뿐이라고요. 의식의 무한성을 의식하는…….

    불쑥 입을 열던 보호자는 그대로 멈추고 만다.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일어선다. 혼잣말이었나? 싱겁기는.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머쓱해서다. 어르신은 화장실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혼자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에는 노란 옷들을 입은 사람들만 그득했다. 확진자는 10,000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가, 세상에나, 200명이라니. 성고난의 금요일이었다. 사순절은 극도의 우울감 속에서 그 끝을 향하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인생은 없으며, 이 고난과 고통이 저절로 구원과 은총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압니다. 다만 우리의 고통이 침묵과 순명의 시간을 지나서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드리옵니다.’ 신부님의 기도를, 사목말씀을 되뇌어 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가장 귀하게 만드신 인간이 이런 바이러스니 세균이니 하는 미물에 정복당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두려움의 바이러스에게 정복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을 굳건한 믿음으로 무장하십시오. 신앙만이 구원입니다…….’
    맞아, 바이러스 같은 미물이 인류를 멸망시키기야 하겠어? 우리 신부님, 평소에도 과장은 안 하신다! 믿자!

 

    하지만 사망자 숫자는 날로 는다. 세계적으로는 무서우리만치 많은 숫자다. 사망 – 자꾸 자주 들으니까 무감각한 그냥 단어로 들린다. 병원 밑바닥 근무를 오래 했던 직업병인가. 최근의 팬데믹 때문인가. 하긴 세상이 냉혹해진 때문이다. 냉혹한 죽음이 많아서다.

    남편이 엊그젠가 뜬금없이 말했다, 해마다 산업재해 사망이 몇 건인지 알아? 노동자 2천명이 파리 목숨이라고. 교통사고 사망도 3천명이 넘을 걸.

    그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생각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죽음이 보통 단어다. 죽음이 일상이다. 열 개의 생명 끝에는 열 개의 죽음. 그러니까 세상은 생명으로 뒤덮여 있기도 하고 그만한 숫자의 죽음으로 덮여 있기도 하다. 생명을 살짝 걷어내면 죽음인가. 아주 살짝만. 죽음? 갑자기 주위가 서늘해진다.

 

    지선생! 뭘 보나?

    내가 멍때리고 서 있었나 보다. 안방 문으로 나오던 어르신이 바짝 내 코앞에 있다.

    아, 네, 네에! 양치 하셨군요! 어머, 면도도 하셨네요! 에이, 여기 살짝 피가 묻어나는데요. 밴드 가져올게요, 이리 오세요. 이리로…….

    어디로 향할까 망설이는 어르신을 일단 소파로 이끈다. 약상자가 어딨더라? 연고를 발라? 밴드만 붙여드릴까? 머릿속이 바쁘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살면서 죽어간다지만, 그동안 나는 잘 살고 있다. 주님부활대축일미사가 코앞이다. 온라인으로 할 것이란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죄가 없어지니 사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신의 본질이니 의식의 무한이니, 그런 어려운 말들이 무슨 상관이람. 

 

_______________________ 전남여고문학 7호,  19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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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0. 12. 27. 15:10

날마다 시작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 법정스님

 

 

날마다 시작이야, 은아, 다시 시작이다. 힘 내, 아자!

일곱 번째 시작이다. 대부분 그렇듯이 아파트다. 차에서 내려 12월의 매서운 바람을 느끼며 단지 내를 둘러본다. 전체적으로는 낡은 느낌이지만 바깥 인상이 깨끗한 편이다. 동과 호수를 확인하면서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안온한 기운이 돈다. 계단을 오르면 작은 대문이 기다리리라. 초인종을 누르면 어떤 사람들과 만날까. 오늘도 우리 집 대문을 나서기 전부터 스케줄을 확인했다. 내가 대단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그 반대, 일자리가 자주 바뀌고 또는 여럿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투잡은 아닌 것이, 한 가지 일인데 근무 시간과 일자리가 달라서다. 일자리에 따라서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지금처럼 복지관 소속으로 재가방문요양을 맡으면 지 선생님이 되고, 요양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지 여사님이 된다. 직업군의 이름은 요양보호사, 나는 요양보호사이다.

 

나를 설명해야 할까, 입을 열자면 아마도 그렇겠다. 지은이예요, 그렇게 내 이름을 말하면 처음 듣는 사람들은 대개 조금 이상해한다. 어렸을 때는, 특히 학교에서는 꽤 성가셨다. 책가위에다 내 이름 지은이 석자를 쓰고 나서 책을 열어보면, 책마다 진짜 지은이가 있다는 사실에 나도 혼란스러웠다. 지금이야 유투브가 책들을 온통 삼켜버린 세상이라서 지은이가 어떤 뜻인지 아무도 별반 상관하지 않는다. 지은이라는 뜻으로 쓸 곳에도 언제부턴가는 저자나 작가라고 하니까 뭐. 물론 내 이름이 지은이인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도 영이와 순이 아래 또 낳은 딸을 은이라 이름 지었을 뿐으로, 내가 태어났을 1966년 당시에 우리 부모님이 지은이가 책이나 노랫말을 짓는 사람을 일컫는다는 것을 의식했을 턱이 없다. 자라면서 여전히 어린 내가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왜 농사짓는 사람은 지은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 정도였다. 밥 짓고, 옷 짓고, 약 짓고……, 여기저기 지은이가 더 많은데.

 

다시 오늘이다. 오늘 처음 방문하는 집에는 조금 어색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보통 때라면 우리 복지관의 과장이나 담당 복지사가 함께 방문하여 나를 소개해줄 것이다. 오늘은 이 집에 혼자 오게 되었다. 혼자 들어가서 자기소개를 한다? 오랜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그건 좀 쑥스럽다. 누군가 소개를 해주면 편하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이쪽은 지 아무개 선생님이세요! 어때요, 새 선생님 좋으시지요? 이제 날마다 댁을 방문해서 어르신을 도와드릴 거예요! - 지 선생님, 앞으로 어르신 잘 돌봐드리세요! 이렇게 말함으로써 요양보호사를 절대로 아줌마라 부르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는 다짐도 시켜둔다.

그런데 오늘은 일이 꼬였다. 사회복지사 정 대리가 하필 연가를 낸 날이라서 차 과장이 동행키로 했었는데 그것도 틀린 것이다. 나는 벌써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전화가 떴다. 운전 중이라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어쩌나! 아무캐도 지 선생 혼자 가줘야 겠네여! 나 사고났어여. - 엥, 다친 거예요? - 아니, 아녀요. 살짝 인데 시끄럽네여. 미안해여, 그 집 오늘 꼭 가야 해여! 복지관을 나서며 차를 후진해 돌리려다가 화단 턱에 걸렸는데, 급히 뺀다는 것이 들어오던 작은 트럭과 스쳐서 실랑이가 벌어졌단다. 그렇다고 일주일 째 돌봄서비스가 끊긴 집이라서 미루기는 미안한 일이라고, 오늘 복지관에서 새 선생님이랑 방문한다고 알려놓았으니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아무튼 그냥 혼자서 방문하랬다. 나 또한 이만한 일로 마음먹은 스케줄을 바꾸긴 싫었다. 자라서는 거의 꾸준히 직업을 가지고 살아온 나로서, 무엇이든 처음 하는 일이 한두 번이었을까. 이쯤은 약과다,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대문 앞이다. 아파트는 어디나 역시 작은 문이다. 건물 중에서 가장 초라한 곳이기도 하다. 이 대문에는 교회나 성당 표시 대신, 입춘대길 그리고 또 하나 사자성어가 붙어있다. 입춘이 언제 적인데! 입춘은 보통 2월 4일이다. 한 해가 다 가서 낼모레면 동지고 다시 새해의 입춘이 다가올 시절인데 봄 여름 가을 지나도록 여태껏 입춘대길이란다. 이 새로 만날 어르신이 고리타분한 노인일까, 살짝 걱정이 올라온다. 그런데 아무튼 와버렸다. 초인종을 찾는다.

초인종으로 가르는 세상은 많이 다르다. 내가 일을 망치고 나온 여섯 번째 집이 눈에 선하다. 그 어르신은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재가장기요양급여를 받는, 곧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돌봄을 받는 대상은 할아버지들 보다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는 아내가 있을수록 여자는 남편이 없을수록 장수한다더니. 하긴 이 말도 참 우습다. 앞뒤가 이렇게 맞지 않는 말이면 창과 방패라는 모순인가. 신상정보를 요약하자면, 70대로 시영아파트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할머니 - 거기까지는 우리 복지관 담당에서는 흔한 조건이었다. 이처럼 보호자가 없는 경우도 흔하고, 어떠한 염려도 없었다. 그것보다 실은 신체적 조건이 문제다. 처음 소개받을 때 다행하게도 치매는 아니라 했다. 거동도 휠체어에 의존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전임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곧장 그만두곤 했다는 점이었다. 할머니인데 뭐 어떠랴, 그렇게 시작했는데 곧 심상치 않은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이 일에 자신이 있는 편이다. 우선 간호사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정확히는 간호조무사다. 간호전문대에 합격을 해 놓고도 사정은 도저히 안 되고, 간호사는 되고 싶고. 나 같은 간호사 지망생은 간호학원을 거쳐서 간호조무사가 된다. 전문대를 마치고 간호사가 된다 해도 간호대학 졸업생과는 병원에서 처우가 다르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무엇보다 승진이 없다. 수술실에 오래 근무를 해봐도 마찬가지, 수간호사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간호조무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소규모 개인병원에서 자잘한 온갖 일을 하거나, 큰 병원에 가면 평생 3교대 근무다. 그러다 보니 만 나이로 50이 되었을 때, 아니 그 전부터, 남편 말이, 50까지만 일하고 그 다음엔 좀 쉬고 살라 했었다.

남편을 만난 것은 1986년, 내 나이 스물한 살, 난생 처음으로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산부인과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때는 병원의 규모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작은 병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원무과에 새로 직원이 왔는데, 이 조그만 병원에서는 원무과 직원이면 상관이었다. 더구나 임상병리를 겸하는 것을 알고는 살짝 존경스러웠다. 공식명칭으로 임상병리사이니까 그것도 간호조무사보다는 한 단계 위다. 게다가 첫눈에 그 야무진 인상에 믿음이 갔다. 곧 소문에 의하면 출근 전에 새벽에 가락시장에 가서 한 타임 일을 하고 온다고 했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표정이나 동작에서는 지치거나 그런 기색도 1도 없었다. 날씬한 몸매도 근사했고, 가뿐한 걸음걸이도 멋있었다. 나이도 적당히 위로 보였다. 오빠라고 부르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괜히 설렜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생활력 때문에 나를 나의 미래를 걸어도 될 것이라는 신뢰감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일등 남편감은 첫째도 생활력, 둘째도 생활력이 탁월해야 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을 때, 순하디 순한 어머니는 물론 우리 형제들 모두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멍청한 몰골들이었다. 밥은 그냥 넉넉했었고, 한 말씀 하시던 아버지의 자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남일면 은행리는 집성촌이었기에 그런대로 도움은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변화된 생활전선에서 강하지 못한 어머니는 농사를 다 내주었고, 당연히 소출은 확 줄었고, 우리에게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 아니, 그보다 이전에, 어머니가 우울한 얼굴로 어렵게 어렵게 진통제를 놓아드릴 즈음부터는 평화로웠던 어린 시절은 사라지고 없었다.

고향 청원에서도 남일면 쪽은 중등학교가 아예 없었다. 지금은 고향도 청주시가 되었지만, 당시로는 어렵사리 청주의 여고를 졸업한 나는 서울로 향했다. 낮에는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면서 야간에는 간호전문대학 진학을 꿈꿨다. 나는 무엇보다 주사를 잘 놓고 싶었다. 아버지가 조금 더 살아계셨다면…… 기꺼이 주사를 놓아 드리고 싶었다. 만일 어머니가 아프시게 된다면 놀라지 않고 겁먹지 않고 주사를 잘 놓아 드리고 싶었다. 간호사는 희망사항이었을 뿐, 나의 현실은 불가능으로 점철되었다.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길은 까마득했다. 그렇다면 일단 간호학원에 다니자! 겁 없이 절친을 따라 미리 서울에 살고 있던 친구 언니만을 달랑 믿고 상경한 여자애로서는 일 년짜리 간호학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교육비만 해도 엄청난데, 실습기간 중에도 학원비를 몽땅 내야 하다니! 무엇보다도 다섯 시 반이면 시작하는 수업시간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 끝나는 알바가 있는가 말이다. 주말은 그래서 쉴 틈이 없이 일과를 짜서 일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간호보조사란 이름으로 병원에 근무하는 꿈을 이룬 때였다. 그 남자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푸른 신호등인 것 같았다.

그가 내 마음에 쏙 들어온 것은 그 사람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가만 보니 그는 여리여리하고 나비같이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말 그대로 여자애 같은 여자애들 취향인 듯 했다. 카운터 김양의 뼈다귀 같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쳐다보면서 슬쩌슬쩍 말을 건네곤 했다. 자꾸 그쪽으로 귀를 쫑긋거리게 되는 내가 불쌍했다. 내 손을 내 몸을 살펴보았다. 나는 살랑거리는 맵시랑은 거리가 멀었다. 우선 나는 손도 크고 키도 컸다. 키가 크다고 해서 다 날씬한 것도 아닐 테고, 나는 아닌 쪽에 속했다. 식구들 대부분 크고 건장한 우리 집에선 누가 그리 몸매에 신경을 쓰고 그러지 않았었다. 이제 와서 어쩐다? 갑자기 다이어트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어느 세월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 벙어리 냉가슴인가 하면서 내가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어느 순간 그가 나를 보기 시작했더란다. 내가 무심코 명절에 고향에 다녀오면서 보따리에 날라 온 음식들을 병원에 가져가서 나누어 먹었을 때, 나중에 그의 말로는 그것이 가장 예뻤다고 했다. 아, 어머니 - 울 엄마는 애들이 집에 들르면 말 대신 무엇이든 싸주는 옛날 엄마였다. 하나 둘 집을 떠나 각 살림을 시작할 때도 묵묵히 보시기만 했고, 다니러 가도 특별히 반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손에는 꼭 무언가를 들려주셨다.

내가 예뻤다고? 예뻐? 이 여자 살림 잘 하겠다, 생각했을지. 하지만 그도 점치는 데는 틀렸다. 내가 알뜰주부들처럼 살림 예쁘게 하는 짓은 잘 못하니까. 하지만 크게는 그의 생각이 옳았다.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도 벌써 노후 준비하자는 그의 말을 신앙처럼 믿고 살 것을 알아챘으니까. 실제로 나는 소비라거나 하는 단어를 아예 몰랐고, 사치라거나 그런 욕구도 텅 비어 있었다.

 

그랬다. 우리는 시퍼렇게 젊었던 첫 순간부터 노후를 향해서 살아왔다. 곧바로 신혼 때부터였다. 서둘지는 않았지만 곧 아이가 생겼고, 출산을 앞둔 설렘 속에는 걱정이 섞였다. 출산휴가를 석 달이나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넉넉한 원장님 덕택이었다. 하지만 받아놓은 날은 빨리도 닥쳤다. 어떻게 해, 어떻게 나가? - 은이 씨, 오늘보다는 내일이 중하지, 맘 강하게 먹어! - 그래도 6개월은 젖을 먹여야……. - 마찬가지야, 어차피 뗄 건데. 아기를 위해서 무엇이 현명한가 몰라서 그러나? 우린 빈손이야, 잊었어? 이렇게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며 다독거리는 남편의 선택을 믿어야 했다. 사실 우리의 상황을 워딩 그대로 써보자면 이렇다.‘우린 양가에서 0원도 도움 받지 않았어요! 0원도!’지금에 와서 나는 거의 자랑스럽게 그리 말한다. 괜스레 떳떳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서러움의 기억을 얼굴에 달고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독하게 마음먹은 우리에게 맞벌이라는 단어는 호사 중에 호사였다. 투잡이라는 말도 싱겁디싱거운 보통의 단어였다. 그의 집안에는 아들들이 우리 집에는 딸들이 많은 것 빼고는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양쪽 집안의 형편이 비슷했다. 그의 형제자매들도 각자 알아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풍토였더란다. 이상한 평등이지만, 평등에는 불평이 따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달려왔다. 지금에 와서는 3층 건물이 있고, 작은 아파트도 있고, 또 가까운 시골에 몇 백 평 밭이 딸린 농갓집이 있다. 나를 거절한 여섯 번째 할머니보다는 내 노후가 더 확실하게 준비되어 있다.

 

아차, 막상 대문 앞에 서니 슬그머니 걱정이 인다. 이 집에 다녔던 요양보호사는 왜 그만두었다 했더라? 이 집의 펑크는 어르신이 낸 것이 아니라 우리 측에서 그만둔 경우라 했다. 그것도 갑자기. 얼핏 듣기로 장애아동돌봄으로 바꾸었다고 했는데, 이곳이 아주 만족스러운 환경이었으면 그만두었을 리가 없지 않았겠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뒷북처럼 이제야.

보통은 새로운 ‘자리’가 생기면 문자가 뜬다. 100명도 넘는, 120쯤이라던가, 우리 복지관 직원들에게 공동으로 단체문자가 뜬다. 간단히 띄운 조건을 보고 관심이 있으면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이 앞 근무자는 장애아동돌봄이 뜨자 그쪽으로 옮겼다 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정말 이 집에 문제는 없었을까? 전임자가 자발적으로 그만둔 것이 아무래도 걸린다. 실은 근무시간도 딱 들어맞지는 않아서 좀 그렇다. 이 집은 서비스를 1시 반에 시작해주기 원한다고 떴는데, 반시간 정도가 애매하다. 오전 일을 마치면 12시니까 1시 정도라야 간단한 점심과 이동시간을 따져서 알맞은 시간인 것이다. 거기다가 거리상으로 날마다의 기름 값을 고려해야 할 판에,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맞지 않는데 왜 덜컥 맡아보겠다고 나섰을까. 독거노인이 아니라 보호자가 있다고 했으니, 그것도 어떨지 모르겠다. 첫 방문에서 100% 성사는 아닐 수 있다. 조건을 따져보고, 정히 아니면 말 수도 있다. 지금처럼 오전만 일해도 월 60시간 조건은 채우니까 직장보험은 유지될 것이고.

초인종 보다 번호 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80대 어르신이라던데 번호 키를? 차 과장이 알려준 전화번호 끝자리로 키를 눌러 볼까? 아니다, 처음 방문인데 조신하게 초인종을 눌러야지. 어라, 초인종이 둘이다. 틀리지 않고 초인종을 누르고 싶다. 아직 일을 맡는다는 확정도 되지 않았으므로, 일이 되려면 초인종부터 제대로 누르고 싶다. 왜 초인종이 둘일까?

 

 

사실 내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지 4년이 되어 가는데, 바로 앞 여섯 번째에는 시작부터 터덕거렸었다. 초인종을 누른 순간부터 좋지 않았던 일이 마음에 걸린다. 그때는 정 대리랑 함께 갔었는데,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자 정 선생이 대문을 세게 두드렸다. 사실 정 선생으로서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바뀐다 해도 한 달에 두 번씩 관리 및 점검을 다니는 집이라서 크게 생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오메, 요 사람들, 대문을 아작 낼란가? 벤소도 지대로 못 가게 하네이. 근디 누구다냐, 요참에는? 이렇게 첫 만남의 순간부터 까칠하던 6번 어르신은 - 이렇게 불러도 되려나? 실명 보다는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 매사에 조금 심하긴 했다. 의심 많고 적대적인 것이 세상에서 인생에서 넉넉히 보상받지 못한 노인들의 특성이라 쳐도 유난했다.

요양보호사로서 일하면서 내가 요양병원 근무보다는 재가방문요양을 택한 것은 크게는 전일 근무보다는 파트타임 일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속내는 그러나 바닥에 깔리고 싶지 않아서다. 간호보조사로 근무하던 젊은 시절에 내 나름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을 하고서도 갑을병정 끊임없는 상하관계에 질렸던 터라, 다시 요양병원에 가서 일하면서 여사님이라 불리며 맨 밑바닥에 깔리고 싶지는 않다. 거기 요양병원에서는 여사님이 최하 직급이다. 육*수 여사, 김*숙 여사라 할 때의 여사 하고는 하늘 땅 차원이 다르다. 불리는 이름이 같은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재가방문요양은 일대일 관계이기 때문에, 또 대개는 물심양면으로 어느 쪽으로든 취약한 노인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심리적 어려움이 적다. 자녀들이 없지 않은데도 혼자 그렇게 외로이 살아가며, 정말 우리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말동무도 없이 입술이 말라붙어가는 노인들은 어쩌면 태고 적부터 무표정이었을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내가 큰 소리로 무언가를 떠들썩하게 이야기해주면 가끔은 배시시 미소를 띠기도 한다. 기저귀 실수라도 해놓고는 새색시처럼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살면서 보람이랄까, 보람은 대단한 것이 아님을 느끼며 뭉클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일은 그러나 늘 예상을 빗나간다. 갑은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난다. 여섯 번째 어르신이 그랬다.

여그를 좀 딲어 조 바, 쩌그 거그는 또, 거그를 딲어주랑께!

워째 멋이던가 뿌옇고만! 노인네라고 도통 안 뵈는 줄 아남여!

나 젊었을 적에는……, 이런 것은 입에 달고 사는 화두다.

어르신, 저, 백내장 검사를 한번 받아보심…….

내가 시방도 바늘귀도 뀌는데 먼 병원이여! 돈도 쎄았는갑다!

남의 말은 아예 듣지를 않는다. 그러기를 반복하더니,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드디어 노인이 복지관에다 전화를 걸었다. 나 들으라고 면전에서 걸었다.

거, 복지관이제라. 보쇼이, 나 참 요상해서 못 살 것소.

어르신, 왜 또 그러세요……. 저쪽에서는 그런 소리로 응대를 할 거다.

아니, 긍께, 쓰레기봉토 안 있소, 거, 나오는 거 말요. 아, 긍께 그것이 언 날 봉께 팍 졸아져 부렀당께.

어르신, 왜 또 그러세요……. 저쪽에서는 여전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아따, 요참 여자가 이상허게 꼭 큰 가방을 가지고 다닝께 글제. 안 의심스럽소이. 어짠다고 가방을 고롷게 큰 놈을 갖고 댕긴다요. 글고 쓰레기봉토는 졸아져 불고. 아, 몇 장 없당께. 다 없어져 부렀는디 워쩔 겨?

알만 하다. 배급으로 나오는 관급 쓰레기봉투도 손도 안 대고 알뜰하게 모은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혼자 사는 내가 그 큰 봉토를 쓸 일이 어디 있간디! 그러면서 나더러, 그러니까 요양보호사더러 자잘한 쓰레기들을 나오는 대로 가지고 나가서 버리고 오란다. 어디에? 기가 찰 노릇이다. 쓰레기장에 가면 이미 쓰레기를 담아 버려놓은 관급봉투들이 수북하게 있으니까, 그것을 살짝 열어서 헤집고 ‘요까짓 것’ 쑤셔 넣으면 된다고 우긴다. 실제로 막무가내다. 그렇게 모은 봉투를 손자인가 손녀에게 주련다고. 애들이 오는 것을 보진 못했다. 겨우 3주째였으니까. 아니, 요양보호사가 없는 주말에 다녀갈 지도 모른다. 그 애들 주려고 모아둔 봉투가 없어졌다고 성화였다.

어르신, 여기다가는요, 제가 추위를 타니까 스웨터 넣어가지고 다니잖아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스웨터요, 아시면서! 저 여기 것 봉투는 쓰라고 해도 못 써요. 우리 동네는 이 동네랑 구가 다르니까 여기 쓰레기봉투를 저 주셔도 쓸 수가 없다구요.

멋이 그래, 봉토면 봉토제. 글먼 내 것 봉토가 어디로 가부렀냐, 그 말이제.

우리 동네랑 같으면 저희 것 가져다 드리고 싶네요.

어먼 소리 말고 내 것 봉토나 내놔 보랑께. 집이 갖고 가도 못 쓴담서.

 

그것이 금요일이었다. 그 다음 주중에도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복지관에 들르면 차 과장이 살살 미소로 나를 달랜다. 그런 식으로 계속 선생님들이 바뀌니까 어쩌겠어용! 속 넓은 지 선생이 들은 둥 만 둥 참아 주세요! 사람들은 내 속내도 모르면서 내게 속이 넓다느니 그런 말들을 한다. 듣기 좋은 말일 게다. 어쨌거나 나는 사람들의 불평에는 신경 무디게 지낼 수 있다. 큰 문제만 없으면 특히 직업과 관련해서는 참는 자가 이기는 자다. 참으면 월급이 꼬박꼬박 모인다. 그렇게 살았다. 아니, 기본적으로 세상의 돈을 내 돈이 되게 하려면서 참을성도 없이 될 일인가. 그 정도가 내가 일할 때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이 일을 하면서는 내 간호조무사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생과 사를 가르는 수술실 근무도 견뎌냈고, 온갖 오물들을 맞닥뜨리는 과정도 찡그리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그래, 이 일이 병원 내에서 가장 깨끗한 작업이다. 이 작업이 없이는 병원이 오물들로 넘쳐날 것이니까. 이 더러운 똥오줌과 피범벅이 병원을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일차적인 일이다. 나는 세상에서 세균과 병 따위를 없애는 정화작업의 최전선에 있는 전사다. 이 작업으로 나는 월급을 받고, 내 노후는 보장될 것이다.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버티어 왔다.

요양보호사 일은 수술실 근무에 비하면 거저먹기다. 시급 10,500원을 채워 정확히 계산해준다. 어쨌거나 최저임금 보다는 많고, 일 하는 시간 그동안만큼은 돈을 쓰지도 않을 것이니 두 배로 절약이 된다. 버는 것과 안 쓰는 것을 더하면 갑절의 가치가 된다. 고무줄 같은 신경 줄을 조금 무딘 쪽으로 단련하며 참으면…….

그래도 통하지 않는 때가 닥쳤다. 노인은 하루도 빼지 않고 복지관에다 전화를 해댔다. 복지관에서는 시영아파트 어르신들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까운 위치 때문에 총체적으로 서비스 비용이 절약되고, 무엇 보다 큰 불만사항들이 없는 편이다. 자신들이나 또 주변 사람들도 장기요양보험이니 하는 공적인 사실들에 관해 원론적으로 아는 사람이 드물어 불평불만이 적다. 일단 혜택을, 문자 그대로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들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자질구레한 불평은 오히려 어리광이다. 나 좀 봐주라니까, 심심허다고! 나 죽겄서! 근디 나 요라다 죽는당가? 징허네이, 요라고 못 걸으믄 걍 죽게 놔두제이! 여그, 여그 좀 잡으랑께! 그렇게 저렇게 실랑이를 하면서 세월이 간다. 그런데 쓰레기봉투 민원은 끈질겼다. 나는 시쳇말로 잘렸다. 엊그제 11월 말, 하필이면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직장에서 ‘짤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모처럼 외식을 하는 토요일 - 주말이라서 딸아이도 왔었다. - 해고당한 이야기는 감췄다.

왜, 식욕 떨어지는 일 있어? 식당 잘 못 골랐나? 딸아, 우리 둘이 엄마 것 다 먹자!

속 모르는 남편은 펄펄 날지 않는 나를 의아해 하며 놀렸다. 젓가락 부딪는 소리 사이로 닷새를 계속해서 혼자 내지르던 성난 목소리가 날아다녔다. 즈그 집에서는 안 춥당가. 질가 댕길라먼 얼메나 더 추울겨! 집에서부텀 옷을 입고 댕기제, 멋허러 옷을 들고 다닌다는 거여. 멋한디 울 집에 들어와 갖고사 세타를 입는당가!

사실 복지관에서도 내가 옷을 많이 껴입는 것을 보고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른 체격도 아니면서 한심하다는 투다. 요새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라깽이를 이상형으로 삼는데, 교육 있는 날 모두 함께 밥을 먹다 보면 내가 제일 잘 먹는다. 뭐야, 지 선생은 애기들 같이 먹네, 애들 반찬도 좋아하고! - 아니, 저는 그냥 무엇이든지 잘 먹어요. 살 좀 빼야 할까요? - 알긴 아시네. 해도 지 선생 귀여워요, 먹는 것도 애들 같고, 인상도 애들 같고, 하하. - 애들 같아 뭐하게요! 나도 덩달아 웃고 만다. 멋지다 그런 말은 언감생심 기대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른한테 애들 같다니! 뭐,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여리여리한 여자애들 때문에 속앓이를 했던 것도 옛날 옛적 일이다. 예쁘면 뭣해! 나는 제법 하얀 피부에 비뚠 데 없이 좌우대칭은 된다. 열심히 살았고, 아니,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절약했고, 지금은 마음 편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직도 계획이 있다. 당근 재테크와 관련된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 아직은 일을 더 계속할 것이다. 해야 한다. 하고 싶다.

착실한 재테크는 세상 살아가는 기본이다.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돈 관리는 따로 하지만 투자 때는 함께 한다. 결혼 초에는 다른 커플들처럼 내가 돈 관리를 맡기 시작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이의 월급을 챙겨서 적금 부으러 가던 날, 바로 그날 아침 버스에서 가방을 찢기고 돈을 통째로 털렸다. 평생 단 한 번도 찢기지 않던 가방이 월급이 통째로 들어있던 그 순간에 찢기다니. 그 일은 훔쳐간 그들에게는 마법이었고,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는 그것을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땀방울로 다져진 돈인가 말이다. 그 순간, 그 이후로 나는 돈 관리자 자리에서 데꺽 잘렸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다 싶기도 하다. 그이가 나보다 관리에서나 투자에서 월등하니까. 어느 집이고 아내들이 돈 관리를 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자존심이 묵사발 될까 봐 남들에게 테는 안 낸다. 누가 하면 어떤가,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 한 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남편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당연히 노담인데, 담배는 바로 돈을 말아서 태우는 것이라 생각해서 손을 대본 적도 없을 것이다. 둘이서 내기를 하면, 글쎄, 누가 더 절약의 천재인가 모를 일이다. 아니, 내가 밀리려나? 그 만큼 신뢰를 하기 때문에 그이의 제안이나 결정을 따르게 된다.

 

성남의 끝자락 미금에 청*마을 주공 42㎡ 아파트에 입주하던 날 - 1995년, 그 때도 오늘처럼 매섭게 추운 12월이었다. - 우리는 울었다. 대충 정리하고 딸아이 재워놓고 둘이서 입주파티를 하자고 마주앉아서……, 짠! 하고 잔을 부딪는 대신 그만 울음보를 터뜨렸다. 내가 먼저였나? 모르겠다. 둘이 다 울었다. 울다가 웃었다. 반지하 - 반지하에서 갓난아이를 품고 누어있는 순간, 그것을 표현할 단어는 없다. 그런 우리에게 이 공간 전체가 우리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 작은 36㎡도 아니고 42㎡ 아파트라니. 대출을 끼었다지만 우리 집이다. 요새 와서는 ‘영끌’이란 말이 유행이지만, 그런 말이 생겨나기 전에도 우린 그만큼 다 했다. 그랬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내 집을 샀다. 둘이 벌고 절약을 하며 살 테니까 까짓 대출쯤은 문제없었다.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 집을 마련하다니. 아까워서 발을 크게 떼놓지 못했다. 몸무게가 한쪽으로 잘 못 실려서 바닥이 무너질세라.

꿈결 같은 세월이었다. 어느새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는 말 그대로 똘똘하고 키도 크고 공부도 제법 했다. 부러울 게 없었다. 머리카락은 나를 닮아서 검고 머리숱도 많았다. 머리를 묶어주면서 예쁜 머리핀을 꽂아주면서 생각했다, 나 어린 시절 보다는 더 행복하게 해주어야지. 아니, 이맘 땐 나도 거칠 것 없이 부족함 모르고 자랐었지. 아무튼 뒷받침을 더 잘 해주려면 돈도 모아야 하지만 무엇 보다 부모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된다. 아버지가 일찍 아프시다가 돌아가신 것 말고는 내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는 생각은 없다. 어머니는 책 속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온순하고 또 온순해서 우리들에게 따뜻했다. 내 검은 숱 많은 머리를 감겨주시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젖은 채 안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눗물 때문에 울고 싶었던 눈이 스르르 감기곤 했다. 내 단정한 단발머리는 언제부턴가 약간 곱슬하게 변했지만 그래도 늘 단정한 머리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곱슬이 더 나타나서, 사람들은 파마 값도 안 들게 생겼다면서 부러워한다. 하지만 난 하늘하늘한 노란 생머리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사알짝 흔들어서 뒤로 넘기며……. 하긴 그런 인상은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처녀 적에도 안 어울렸다. 은아, 튼실한 몸과 맘으로 날마다 파이팅!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그이가 뜬금없이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고향이라고? 그러고 보니까 그의 고향은 남쪽이었다. 얘, 조심 해. 걔 라도표야! 연애, 거기까지만! 서울 여자애들이 라도표라고 시집가기를 기피했던 전라도 남자였다. 나는 특별히 전라도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고향 제천에서나 더구나 서울에서 사는 동안에 전라도가 그리 매력 있는 고장은 아니었다. 오빠가, 그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시댁이 전라도인가 어딘가는 안중에 없었다. 외국인이어도, 어쩌면 외계인이어도 좋았을 것이다. 막상 ‘시집가는 날’ 시댁 동네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놀랐던 가슴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곧 잊혀졌다. 신랑은 전라도 출신(!)일 뿐으로, 서울사람이었다. 아들로는 둘째였고 누이들도 있었으므로 집안을 책임질 군번도 사정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고향으로 간다고? 참으로 낯선,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의 고향인 보성 봉*리, 선씨들만 모여 사는 동네, 하나 둘 떠나고 백 가호도 안 되는 마을로 가자고? 내 고향 제천도 우리 마을도 시골이긴 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시골인 시댁 마을은 그동안 잠깐씩 들르긴 했다. 하지만 아주 살 터전으로 받아들이라니, 날벼락이었다. 그는 공무원이니 걱정 없지만, 내가 취업할 수 있는 병원이 있을까? 설마 차밭 농사를? 무슨 말로, 어떤 말로 반대를 하지? 갑자기 눈앞이 깜깜했다. 내가 이 세월 살면서 남편 의견에 반대 한번 안하고 살았었나? 새삼 그것도 놀라웠다. 며칠을 끙끙 알았다. 언제나처럼 아무 말 않고 생글거리며 따라 나설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병원 핑계가 그나마 통할 것 같았다. 내 직장은 어쩔……

그러다가 걱정은 전쟁 없이 사라졌다. 내 속으로는 반대의견을 들고 나서기가 전쟁준비만큼 힘든 터였다. 그런데 그이가 우선은 이곳 광주로 내려오자고 말했다. 고향까지 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랬다. 휴, 나는 늘 운이 좋았다. 이곳에는 그이의 동창생이며 선후배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리 잡고 살고 있었다. 나는 쉬지 못하는 습관에 잠시 알바도 했었지만, 곧 병원에 취직했다. 마침 건강검진을 집중적으로 하는 병원이었고, 광주 전남 여타 지역으로 건강검진 버스를 운영하는 팀에 들어갔다. 조금 늦을 때는 있어도 낮 근무였다. 나로서는 잘 된 일이었다. 그렇게 이곳 대도시 생활은 안정되어 갔다. 전학 온 딸아이도 서울 말씨로 친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신이 나는 듯했다. 그 나름대로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아이가 내 키만큼 자라는 건 정말 시간문제였다. 아슬아슬하게도 아예 고향으로 내려가자는 말은 더는 없었다.

그러자 저녁 쉬는 시간이 뭔가 아까워졌고, 나는 야간대학에 진학을 감행했다. 간호학과는 이과라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벽이 있었고, 차선으로 사회복지과에 ‘등록’을 했다. 간호학전문대학에 간절히 등록하고자 했었던 옛 그 느낌이 살아나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게다가 4년제 대학이었다. 사실 마음 끝 간 데 깊은 속에는 그만큼 깊은 미련이 남아있기도 했었다.

야간대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이런저런 이력들을 가지고서 늦게 대학에 오는 경우가 많아서 친구처럼 가까워진 동료학생들도 생겼다. 그때는 2008년부터인가 시작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이슈가 되어서인지 사회복지과 학생 중에는 복지관이나 돌봄센터를 운영할 마음으로 와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실제로 소규모 센터를 운영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비슷하게는 유아교육과를 해서 어린이집을 차린 이도 있었다. 하나 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복지관에서 일을 하면서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도 만났다. 나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많지만 살짝 철이 없다고 할까. 일은 싫고 돈은 벌어야 해서 우울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 같으면 못 산다 하지, 지 선생! 뭣 하러 그렇게 살어!

뭐가 어떤데요?

아니, 이깟 일 고만 좀 하고 쉴 일이지, 뭐가 아쉬워 그래요. 월세 받아서 쓰니 좀 좋겠어. 그냥 쉬라고 잡아 앉히지, 남편도 참. 짠돌인 게지.

아아니, 남편 탓 아니에요. 젊겠다, 두 손 두 발 성한데 어떻게 놀아요?

남편이 벌어다 주지, 월세 나오지. 그럼 매일 사우나도 가고, 산악회, 거긴 주 1회니 바람 쐴 만한데, 으샤! 그때가 그립다, 나는.

그런 건 취미 없어요!

그럼 일하는 게 취미다요? 세상에 일이 취미인 사람 어딨다고!

힘든 일도 아니고, 살림에 도움도 되고.

못 말려, 바보 같이!

내가 사는 방식이 바보 같은가? 그런 점이 없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남들이 칭찬을 하든 아니든 나는 그냥 그대로 일 테니까. 나이든 동료가 바보 같다고 흉을 보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어느 의심 많은 할머니가 나를 잘랐거나 칭찬했거나 나는 나다. 더구나 어제는 어제다. 일곱 번째 어르신님, 어서 나오세요!

 

아차, 초인종이 두 개! 어느 것을 누른다? 폭발물을 몇 초 안에 해체해야 하는 톰 크루즈식 액션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마지막 남은 두 개의 전선 중에서 어느 것을 자를까, 손이 떨린다. 똑딱똑딱 초시계가 흐른다. 잘 못 자르면 자신을 포함해서 사방이 날아갈 것이다. 그런 기분이다. 가만, 바른 초인종을 찾는 데 힌트는 크기가 아니겠다. 위치가 문제다. 처음부터 제 자리에 있었던 초인종은 고장이 났고, 그래서 새로 달아놓은 것은 좀 엉뚱한 자리에 붙어 있겠다. 옳거니, 요 하얀 녀석인 게로구나. 괜스레 옷깃을 한 번 더 만져본다. 새로운 시작이다. 좋은 인상이 필요해! 초인종을 보면 늘 젖꼭지 생각이 나지만, 검지 끝에는 딱딱한 플라스틱 감촉이 느껴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20.12. 국제PEN광주, 18호, 268-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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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20. 12. 27. 14:37

겨울, 바닷가

 

누가 이곳을 바다라고 하겠는가. 그곳은 바다, 겨울 바다였다.

오늘은 2020년 여름, 하늘에 갇혀 공기에 갇혀 암울한 나날, 길고 긴 장마에 집콕이며 방콕이 새로운 일상이 되자 먼 데 먼 날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해 겨울 - 하필 북해라고 하는 바다를 보고 싶었었지.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대로 얼마나 스산한지 확인하고 싶었었나.

 

1997년이 저물어가는 크리스마스 휴가철이었다. 그때 나는 연구년으로 쾰른에 머물고 있었고, 남쪽에서 온 일행을 만나서 북쪽으로 향했다. 가벼운 여행이었기 때문에 실은 정확한 목적지도 없었다. 북해를 보러 가는 데에만 뜻을 맞췄다. 일단 기차로 국경을 넘어 북해로! 유럽의 기차여행은 안전하기 이를 데 없고…… 천만에. 어떤 사고였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채로 바로 국경 앞 에머리히에서 기차가 멈췄다. 택시로 네덜란드의 아른헴까지, 역에서 제공해주는 버스로 다른 역으로 이동하여 다시 기차로 우트레히트까지. 거기서 내려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그러고서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는 운하를 경험하고, 다음 하를렘에서 잔트포르트 바다까지, 헤아려보니 정말 일곱 번의 우회 내지는 유희를 거쳐 도착한 바닷가였다.

 

바다는 많이 광활하고 그 광활한 만큼 엄청난 바람을 몰고 와서 우리를 내몰았다. 적어도 환영은 아니었다. 윌리엄 터너의, 아니 근처 하를렘과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로이스달의 그림 <폭풍우>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해는 곧 질 것이었으므로, 아니 이미 지고 있었기에, 그에게 ‘증명사진’을 부탁했다. 이 한 장의 사진에 매서운 바람과 어둠의 기억이 박제될 것이다. 바닷가 쪽으로 향하는 뒷걸음이 사뭇 위태로웠다. 바람은 지는 해를 두고서 무섭게 폭우를 동반해 왔다. 십분 전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변해 버렸다. 겨우 몸을 가누고 도망치듯 바닷가를 벗어나야 했지만, 체험은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 싶었다. 순간이 영원할 수도, 영원이 순간 일수도 있음이여!

 

완전한 장대비를 맞으면서 이리저리 헤매다 들어간 곳이 ‘카페 홀란드’, 나는 뜨거운 글뤼봐인을 그는 차가운 맥주를 한잔했다. 날은 아주 어두워 왔고, 푹 젖은 사람들이 가끔씩 들어왔다. 카페는 피난처였다. 그가 담배를 가지러 자리를 떴다. 고향에서 집에서 얼마를 멀리 떨어져 나와서 이 밤 낯선 바닷가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인가! 쾰른을 출발에서 이곳 바닷가에까지 - 하필 여정에서의 우여곡절은 뒤쫓는 사람을 피해서 도망치는 연인들이라 해도 합당할 코스였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의 15분에서 20분 사이가 영원처럼 길었다. 그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균열이 생겼다. 그것은 어쩌다 둘이 함께 있어도 먼 먼 거리감 때문이었다. 아무렇더라도, 나는 그곳을 떠나 쾰른으로 잘 돌아올 것이었다. 다음날 예정대로 잘 돌아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초록별에게 쓰는 편지』, 이대동창문인회, 2020.10.30.,49-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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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20. 12. 4. 18:31

이번 장편 『숨』을 냈는데, 11월 29일 토요일,
89학번 제자가 싸인을 받겠다고 서울에서 내려왔다.
아들과 아버지를 집에 남겨 놓고.....

이런 시절에 “한참 무모한” 아무개에게 라고 했지만 내심은 기뻤다.

함께 인벤을 둘러보며 벼락 맞고 버틴 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2017년 여름 몸통에 벼락을 밪았고,
2017년 1월 눈사태로 가지가 찢겨나갔다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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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0. 11. 25. 22:54

2020.11.16. 장편소설 『숨』, 문학들, 280쪽.

[광주일보]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06950000709657007&search=장편소설

[무등일보]

http://www.honam.co.kr/detail/K4YzjP/63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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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20. 11. 25. 22:45

 

 

 

 

 

   누가 이곳을 바다라고 하겠는가. 그곳은 바다, 겨울 바다였다.

 

   오늘은 2020년 여름, 하늘에 갇혀 공기에 갇혀 암울한 나날, 길고 긴 장마에 집콕이며 방콕이 새로운 일상이 되자 먼 데 먼 날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해 겨울 - 하필 북해라고 하는 바다를 보고 싶었었지.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대로 얼마나 스산한지 확인하고 싶었었나.

 

   1997년이 저물어가는 크리스마스 휴가철이었다. 그때 나는 연구년으로 쾰른에 머물고 있었고, 남쪽에서 온 일행을 만나서 북쪽으로 향했다. 가벼운 여행이었기 때문에 실은 정확한 목적지도 없었다. 북해를 보러 가는 데에만 뜻을 맞췄다. 일단 기차로 국경을 넘어 북해로! 유럽의 기차여행은 안전하기 이를 데 없고…… 천만에. 어떤 사고였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채로 바로 국경 앞 에머리히에서 기차가 멈췄다. 택시로 네덜란드의 아른헴까지, 역에서 제공해주는 버스로 다른 역으로 이동하여 다시 기차로 우트레히트까지. 거기서 내려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그러고서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는 운하를 경험하고, 다음 하를렘에서 잔트포르트 바다까지, 헤아려보니 정말 일곱 번의 우회 내지는 유희를 거쳐 도착한 바닷가였다.

 

   바다는 많이 광활하고 그 광활한 만큼 엄청난 바람을 몰고 와서 우리를 내몰았다. 적어도 환영은 아니었다. 윌리엄 터너의, 아니 근처 하를렘과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로이스달의 그림 <폭풍우>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해는 곧 질 것이었으므로, 아니 이미 지고 있었기에, 그에게 ‘증명사진’을 부탁했다. 이 한 장의 사진에 매서운 바람과 어둠의 기억이 박제될 것이다. 바닷가 쪽으로 향하는 뒷걸음이 사뭇 위태로웠다. 바람은 지는 해를 두고서 무섭게 폭우를 동반해 왔다. 십분 전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변해 버렸다. 겨우 몸을 가누고 도망치듯 바닷가를 벗어나야 했지만, 체험은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 싶었다. 순간이 영원할 수도, 영원이 순간 일수도 있음이여!

 

   완전한 장대비를 맞으면서 이리저리 헤매다 들어간 곳이 ‘카페 홀란드’, 나는 뜨거운 글뤼봐인을 그는 차가운 맥주를 한잔했다. 날은 아주 어두워 왔고, 푹 젖은 사람들이 가끔씩 들어왔다. 카페는 피난처였다. 그가 담배를 가지러 자리를 떴다. 고향에서 집에서 얼마를 멀리 떨어져 나와서 이 밤 낯선 바닷가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인가! 쾰른을 출발에서 이곳 바닷가에까지 - 하필 여정에서의 우여곡절은 뒤쫓는 사람을 피해서 도망치는 연인들이라 해도 합당할 코스였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의 15분에서 20분 사이가 영원처럼 길었다. 그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균열이 생겼다. 그것은 어쩌다 둘이 함께 있어도 먼 먼 거리감 때문이었다. 아무렇더라도, 나는 그곳을 떠나 쾰른으로 잘 돌아올 것이었다. 다음날 예정대로 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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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겨울 바닷가, 북해」, 『초록별에게 쓰는 편지』, 이대동창문인회, 열린출판, 49~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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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논단 - 기고2020. 11. 5. 21:39

[논단] * 36개의 각주가 따라오지 않아서 내릴까 고민 중 -

 

순수에의 강요

 

순수에의 강요 - 라는 구절은 표절은 아닐지라도 전염의 산물이다. 누구든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를 떠올릴 것이다. 소묘를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이 초대전에서 나름 우호적인 평을 받는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흔한(?) 격려성 비평이 비극의 단초가 된다. 자신에게 깊이가 없음을 한탄한 그는 작업을 접고, 미술서적을 섭렵하고 화랑과 박물관을 돌며 미술작품에서의 깊이를 탐구한다. 마침내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가 139미터 아래로’ 깊이를 향해 뛰어내린다.

 

쥐스킨트의 이름은 무엇보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1985)로 기억될 것이다. 발간 직후 49개 언어로 번역되어 곧 2천만 권을 팔았고, 세계판타지문학상(1987)을 받더니, 독일 미국 등 합작 영화(2006)로 폭발적으로 알려졌다. 영화 장르로는 드라마와 스릴러를 표방한다. 스릴러인지 판타지인지 그저 엽기인지, 산문문학에서 장르의 구분선은 녹아버린 지 오래다. 소설의 성공은 백만 천만 ‘관객’을 의미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컨대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55/ 영화 1960)의 원작자 하이스미스는 서스펜스소설의 가장 성공한 작가답게 발칙하게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책 대부분이 만약 오늘 날 발표된다면 서스펜스소설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작가는 예능인’이라고도 단언한다. 쥐스킨트 또한 깊이에의 강요 때문에 몰락한 예술가를 그림으로써, 자신은 깊이에의 강요를, 정통 또는 순수에의 강요를 벗어난다.

 

정통 또는 순수 논란

 

오늘날에는 유서 깊은 가톨릭에서도 새삼스럽게 미사의 정통방식이 논란된다면, 문학에서의 정통이라는 개념이 온전히 존재하는지는 미지수다. ‘예술의 완벽성은 유익함과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것’이라는 호라티우스의 시학적 입장이 정통일까. 이는 거칠게 말해도 프랑스대혁명에서는 뒤집혔다. ‘굶주린 배로는 이상적인 예술작품을 들을 귀도, 볼 눈도 가질 수 없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으니까. 그러나 문학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욕구는 하이네의 ‘책들을 불태우는 그 자리에 결국에는 인간들도 불태운다.’라는 경고로 고조되었고, 그럼에도 100년 뒤 나치는 책도 사람도 불태웠다. 그 어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후에 사르트르는 다시 한 번 혁명을 선언했다. ‘문학은 그 본질상 영구 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주관성이다.’라고.

 

참여문학, 그렇게 우리가 경험한 일종의 사명감으로서의 문학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저물고, 다시 문학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 개념이 고개를 드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문학의 위상 또한 하락한 것은 아이러니다. 크게는 문학을 포함한 인문(humanities, liberal arts) 의식이 신에게서 탈취한 권능을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기계’에게 내주는 세상이 도래한 탓이며, 작게는 실효 중에 있는 글로벌자본의 통치 때문이다. 하여 우선 살아남기에 전전긍긍하는 현실 속에서 순수에의 ‘강요’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이미 ‘순수’에서 떠나고 있다.

 

장르소설의 세상?

 

그 살아남는 소설들이 오늘날 소위 장르소설들로, 이미 출판계 및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2004년 『문학과 사회』에서 「장르문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장르 특집을 내었으니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문화적 환경을 보다 섬세하게 고찰하기 위한다는 기획의도만 보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줄기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은 범주적으로는 대립적이나 실제적으로는 순수문학작품들에서 장르문학적인 설정과 문법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원래 장르(genre)는 예술에서 작품을 양식에 따라 구분할 때 사용되며, 문학예술에서는 서정과 서사 그리고 극문학 정도의 갈래를 말한다. 진부하게 헤아려 보자면, 서사문학의 경우 자서전, 전기, 일기, 우화 등과 구별하여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고, 소설 장르가 더 세분되어, 모험 소설, 아동문학, 판타지, 공포소설, 역사소설, 추리소설, 로맨스소설/연애소설, 과학소설, 스릴러, 무협소설, 라이트노벨, 게임소설, 사극소설 장르로 분류된다.

 

그런데 ‘장르소설’이라고 하면 ‘소설 장르’ 중 그 어느 하나의 장르에만 깊이 집중한 소설을 일컫는다고 한다. 영미권에서는 장르소설을 문학소설과 대비되는 말로 사용하는데, 문학적 픽션과 상업적 픽션(= 장르픽션 또는 대중픽션)으로 나눈다. 그 특징은 플롯 중심으로 넓은 독자를 매료시키는데, 주로 미스터리나 로맨스물, 과학소설 등의 장르에 깊이 빠진,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소설들을 일컫는다.

그동안 주류 문학에서는 소위 순수소설이 암묵적인 권위를 얻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형이다. 현재는 출판사와 서점의 사업방침이 상업지향적 소설들을 장르문학으로 표방하면서 그 영향력은 날로 커간다. 아예 석박사급 연구자와 장르문학 창작자들로 구성된 텍스트릿이라는 연구모임 등도 활발한 옹호에 나선다. 핑계라면 ‘문장구조적 부검’이라도 동원해야 읽어낼 수 있는 난해하거나 심지어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순수문학에 대한 절연이다. 뿐만 아니라 웹소설의 시장 규모는 3,000억을 넘어 2019년에는 4,300억 원에 이른다고 했다. 당연히 웹소설에 대한 편견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여전히 가난하게 살면서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무시하는 위선(?)을 비난, 아니 비판한다.

 

장르소설의 성공은 세계적 추세이다. 무거운 교양소설이 지배했던 독일에서도 2010년에는 무명작가의 미스터리가 알라딘을 강타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30주 넘게 판매 순위 1위에 올랐고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2011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계속 신선한 충격의 미스터리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지만, 그의 장편소설은 불발이다. 아무튼 더 과격한 장르의 관습을 따라서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고 더 충격적으로 살인하고 더 충격적으로 독서대중을 자극하는 일이 성공의 열쇠가 되는가 보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장르소설에서 말하는 ‘관습에의 강요’이다.

 

관습과 이단

 

관습이 무엇인가. 문학적 관습도 역사적 산물이다. 기술적으로 문학 내적인 요인과 사회적으로 문학 외적인 요인이 상호작용을 거듭하면서, 관습은 그 자체로서 생성과 소멸을 거치며 변모를 겪는다. 그런데 그 관습에 충실하게 집요하게 매달리라니! 오히려 예술의 본성은 관습과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니었던가.

모든 관습에는 반항이 따른다. 관습과 반항은 원천적으로 상호보완적이다. 틀을 거부하려는 작가는 독창성으로써 이에 저항하며 관습에 도전한다. 문학은 스스로 낡고 자동화된 관습의 틀을 거부하려는 내적 동력을 통해 낡은 관습의 쇄신을 유도해 나감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머리가 심지어 심장이 터질 때까지 무조건적 예술혼을 불태우며 창출해나가는 새로운 문법, 새로운 관습이 기대되고 심지어 요청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이래 모든 가능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장르 관습을 철저히 따르는 것을 목표로, 그로 인해서 두각을 나타내련다는 장르문학은 예술로서의 문학의 대열에 합류할 생각이 없는 것일까.

 

장르, 그들은 소위 머리 아픈 글을 쓰지 않는다. 독서대중의 입맛을 취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다. 결과적으로 자본시장의 상업성에 편승하는 현실적 결정을 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장르소설이 독서시장의 전권을 장악한 것도 아니다. 2019년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종합은 『여행의 이유』(김영하) 등 에세이 열풍이 지속되고, 실용도서의 판매량은 큰 폭으로 증가했고, 2020년 상반기는 『더 해빙 -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 세계를 강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장르소설도 소설인 한에서 베스트셀러 진입은 힘들다.

그러나 분명 소설계에서는 장르가 상업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최근에는 문학상까지도 장르의 물(?)이 짙게 들었다. 그 한 종류라는 오토픽션 쪽만 보아도 그렇다. 예컨대 일본문단에서 누군가가 스무 살에 『뱀에게 피어싱』같은, 제목부터 무한대로 자극적인 작품으로 무슨 상을 업고 문단을 출렁이게 했다고 치자. 바로 영화도 되었다. 착란과 자해 등, 선을 넘은 가학성과 폭력성으로 독자의 무의식적 가학성에 부응했다고 치자. 그가 『오토픽션』으로 자전과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데, 그 새 바람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상륙하면, 여기도 오토픽션 아류(?)를 써서 ‘젊은작가상’을 흔든다. 하지만 장르 로봇이 되어 독자의 취향에 부응하고 상도 받는다는 성공 신화는 간혹 혼란의 나락이 되기도 한다. 사실이다.

그러니까 성공이 아쉽다고 해서 글쓰는 사람이 글읽는 사람들 즐거워하라고 봉사하는 일로 살 수는 없다. 그 보다는 무엇인가 예컨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난해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을 공유하련다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어떠한가, 살 만한가. 어찌 살까. 그러다 보면 ‘관습 지킴이’와는 정반대로 살게 된다. 김수영 시인의 ‘문학의 불온성’이 떠오르지 않는가.

모든 실험적인 문학은 필연적으로는 완전한 세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학이 문학이면 무엇을 왜 쓰느냐가 관건이다. 따로 순수소설 또는 장르소설이라는 갈래(장르)는 없다. 다만 ‘문화적 교환가치’라는 포괄적인 문화현상은 소설 영역을 확대하여 영화로 성공을 거두게 하기도 한다. 또는 종이책이 아닌 웹소설의 성황, 또 이제는 읽는 문학에서 듣는 문학으로 소화의 패턴이 급변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소위 본격문학, 순수문학, 순문학, 그러니까 원래의 문학은 풍전등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아니 인간의 모든 행동은, 타자에 대한 구애로서는 그 존재의 의미를 훼손시킨다. ‘나쁜 소설이란 독자에게 아첨하여 그의 환심을 사려는 소설이며, 좋은 소설이란 독자에 대한 요청이며 신뢰이다.’ 그뿐이 아니다. 유투브가 삼켜버린 문학 - 아니 문화, 아니 인생, 과한 말도 아니다 - 에서 장르라고 영원히 살아남겠는가.

 

살아남기 - 이단 예찬

 

앞서 말한 대로 호모사피엔스의 미래는 어차피 어둡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라는 양대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문학적 낭만과 순수를 찾는 것은 유아적 사고일 수 있다. 개인의 느낌과 자유 선택에 대한 믿음으로 신에게서 우위를 뽐내고자 했던 인간이 미래에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에게 모든 권위를 양보하게 될 것이다. 일자리는커녕 할 일조차 없어질 무용지물의 인간이 문학을 소설을 탐하겠는가.

그 전까지, 아직 문학이라는 이름의 무엇인가가 살아 숨을 쉬고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독자의 취향에 굴하지 않으며 숨이 끊길 듯 살아남은 예술의 흔적들을 살펴보자. ‘예술이란 맛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예술을 맛을 본다면 예술은 거기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조건이 생명이다. 어떤 강요에도 유혹당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독단, 이단. 그것 아닐 수 없는 무엇, 다른 것일 수 없는 무엇이 바탕이라야 한다. 치환불능성의 어떤 것, <살롱전>의 주문도 그 어떤 세속적 유혹에도 구부러질 수 없는 솟대처럼 솟는, 이름할 수 없는 정체성의 무엇이 새로운 유파를 창출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낙선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 문외한이면서도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낙선이 시작이었다.

 

문학도 마찬가지, 기존의 가치에 대한 진지하고도 집요한 이단이 아니고서는 생명력을 지닐 수 없다. ‘도끼로 머리를 깨는 작품을’ 쓰고자했던 카프카가 살아남은 것은 이단성이다. ‘벗이여, 이제 나는 詩를 폐업처분하겠다. 나는 作者未詳이다. 나는 용의자이거나 잉여인간이 될 것이다. […] 아아, 나는 詩의 무정부주의를 겪었고 詩는 더이상 나의 聖所가 아니다.’ 때론 이렇게 폐업을 선언한 시인이 시인으로 남아서, 시집이 많이 팔려서 걱정도 한다. ‘시로서 존재하기 위한 형식화의 조건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아도’ 세계관으로서 현실을 반영하는 시인이 시인이다.

 

어떻게? ‘선택할 출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출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자신의 출구를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는 존재이다.’라던 사르트르의 말 - 여기에서 ‘출구’를 ‘소설’로 바꾸어 읽자. ‘소설가마다 자신의 소설을 씀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든다.’ 수많은 작가들이 ‘나는 글을 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데카르트를 빗대어 존재를 정의한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작가의 ‘메시지란 결국 대상화된 영혼’이며, 작가는 ‘항의가 아니라 비명, 부패에 반하는 비명’을 지른다. 그러니까 결국 막스 프리쉬의 말처럼 ‘모든 예술작품은 인식되기를 원한다.’ 아무리 독백처럼 보일지라도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슈틸러가 아니오.’ - 막상 프리쉬는 『슈틸러』(1953)의 첫 문장을 이렇게 내뱉는다. 그 처음 문장으로 슈틸러는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프리슈는 독자들에게 언어유희의 첫 장을 연다. 독자들은 낚이는가? 낚였는가?

그 말을 거는 방식으로서의 이단은 예로부터 존재해왔다. 이단은 전통이나 권위, 세속적인 상식에 반항하여 자기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여 거의 고립되어 있는 경우를 이른다. 현존 질서에 대한 반항, 그것은 가끔은 살아생전의 성공도 보장한다.

 

한 이단아의 경우 - 노벨문학상 수상

 

최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가 누구인가? 1966년 스물넷의 그가 ‘47그룹’ 회동에 초대된 자체가 놀라웠던, 그의 독설은 더욱 놀라웠던 이단아다. 동시대 독문학에 대해 통틀어 서술 불능뿐이라고, 언어와 의식에서의 상투성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하여 주체와 세상 간의 소외에 매달린 그는 같은 해 『관객모독』을 내놓았다. 말 그대로 관객을 모독하는, 관객들의 관습적인 관람 형식 자체를 고발하는, 연기는 없고 말만하는, 그것도 험담과 모욕뿐인 극작품이었다. 이어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1970)을 빔 벤더스가 영화로 만들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단아였다.

그런 그에게도 전형이나 표준이 전무하지는 않은 듯, ‘카프카는 나에게 내 글써온 삶 내내 한 문장 한 문장마다 표준이었다.’고 말했다. 적어도 두 작가가 공유하는 점은 개인과 외부세계와의 관계에서 광년만큼 떨어진 거리에 대한 인식이다. 또 하나는 세류와 무관했던 이단아라는 공통점이다. 다만 형식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되, ‘내용에 관해서는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계속 지껄이라’ 했던 김수영, 그런 불온성을 지닌 이단아들이 살아남는다.

‘허구를 말하기 시작한’ 너 글쟁이는 외면당하고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칭찬을 받든 비난을 받든 너 그리고 너의 작품은 그냥 그만큼이다. 순수에의 강요는 누구로부터 또는 어디에서 오는가? 언감생심 장르 관습에의 강요? 너는 미망으로 이끌린다. 하지만 삶도 글도 ‘안녕보다는 진리를 향하여’ 나아갈 뿐이라. 세상 속에서 그러나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너는 너의 독자에게 말을 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할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할 말을, 그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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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 작가교수세계, 통권 23호, 4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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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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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의 쟁점] 코너 -

험지의 유토피아 

 

험지로 가라, 험지에!

너나 가세요! 누굴 뭘로 알고!

 

새해가 밝아왔을 때, 실은 그해가 그해이고 그날이 그날이지만, 아무튼 새해가 되자 험지 타령들이 불거졌다. 짐작하건대 험지란 예상 수확이 나쁜 표밭이다.

소설쓰기 - 몸과 맘을 다해서 숙제에 고심하고 있던 소설가의 뇌리에도 불꽃이 인다. 아하, 험지가 화두로구나. 그렇게 글을 연다. 너는 과연 이 주제를 다룰 능력이 있을까. 정치 경험이라고는 좌우사방 사돈네 팔촌을 뜯어보아도 없다. 그래도 좋다, 해보지 뭐. 세상 화두가 험지인데.

 

화두라면 주제의 영역이다. 무엇을 쓰느냐, 소설쓰기의 시작이다.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에서 형식은 그 다음 다음 일이다. ‘무엇’이 없고서는 ‘어떻게’란 유희에 불과하다. 표현력은 연마의 시간에 달려 있을 터, 그러니 시작을 위해 일단 주제에, 험지에 매달리기로 한다.

 

험지라 - 사람마다 험지는 다르다. 일을 돈과 바꾸는 곳, 밥 먹을 돈을 벌어야하는 곳이 험지 일순위이다. 갑을, 갑을병, 갑을병정……, 끝없는 사다리 관계는 올려다보기도 아찔한 아득한 험지다. 더러는 내 편 아무도 없는 시집에서 정말 남의 편 같은 남편과 한 방에 들어 사는 여자들이라면 그곳이 험지다. 제 몸으로 낳아 처음으로 제 것 같은 아이들도 한길 자라면 남이고, 남은 무조건 험지다. 타인은 험지다. 타인들로 득시글거리는 세상이 험지다. 소설가가 나선다. 험지는 타인의 마음이다. 그런 명제를 잡았다. 눈앞에 숱한 인간관계들이 떠오르며 이번에는 무엇인가 거둘 수 있을 예감이다.

 

그래, 도파민은 누구에게나 다소간에 작용한다. 까닭 없이 마음이 가는 것이 그것이다. 까닭 없이 미운 것도 그 탓이다. 넘치고 모자라는 차이이다. 호르몬이라고 하는 물질은 물질이라서 정서와는 크게 구별된다. 늘 그리웠던 그리운 임을 향해서도 분출이 줄거나 멎기도 한다. 토라지는 것은 애교이고 웬(!)수가 되어 갈린다. 편리하게도 화학물질 때문이라는 변명이 통하는 개명천지가 되었다. 어느 집을 파더라도 파다가 보면 불협화음 한 두 마디는 스며난다. 잘 굴려서 양념을 바르고 뻥튀기를 하자. 아차, 진부하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솔로몬의 말씀.

 

그러다 느닷없다. 봄이 오려는가 싶었더니 난데없는 험지가 태산처럼 솟아올라 앞을 가로막는다. 험지란 어려운 표밭 정도가 아니었다. 기분 나쁜 침묵 속에서 일상이 멈춘다. 처음에는 이웃나라 어느 도시가, 그러다가 얼떨결에 우리나라에서 세력 있다는 도시가 문자 그대로 험지로 둔갑했다. 아니, 세상천지 험지가 아닌 곳이 없다. 바이러스를 품은 폭우가 대지를 위협한다. 비를 멈춰달라는 기도를 해야 하나. 아쉬울 때만 하는 기도를 하늘이라고 들어줄까,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경험에 기대고 꼬리를 내릴밖에. 꼭꼭 숨고 도망다니는 바이러스를 색출하는 정부에 박수를 친다. 누구는 늦었다고 힐난한다. 아서라, 소설가가 나선다. 심판을 보겠다고? 어림없다. 체험이 중요해, 그렇게 결심하고 바이러스 속으로 들어간다. 아니 벌써, 그놈들이 문밖에 코앞에 와 있다.

두문불출, 다문다독다상량이라지. 명저들에 파묻혀 지내는 나날들, 그런데 그것이 심각한 문제다. 글쓰기 장르 중 후순이라는 소설이라 해도 몇 백 년 수를 누리는 동안 명사들이 명저들을 다 써 버렸다. 소설가는 난감하다. 누가 감히 볼콘스키를 라스콜리니코프를 카라마조프를 뛰어 넘은 주인공을 창조할 수 있을까. 누가 마꼰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위선, 아니면 적어도 사기라고 외치는 줄리앙을, 움튼 싹은 머지않아 대지를 뚫고 나오고야 말리라는 에티엔을 또 어떻게 불러올 것인가. 어쩌면 진부한 애정행각들 끝에 팀셀(!) 한 마디로 성서의 무게를 실어내는 작품들에 어떻게 맞선다는 말인가. 그냥 파우스트가 영원한 파우스트로 변신하듯이, 신화 민담 역사 속 인물들에 매달려 볼 일이려나. 아무래도 그것은 창조는 아닌 듯, 아니면 대관절……. 언젠가는 드레퓌스나 무미아 아부-자말을 위한 청원서를 쓸 수 있을 펜의 힘을 갖기 위해서라도 소설쓰기를 멈출 수는 없는데.

 

그렇더라도 의욕만으로는 깜깜한 앞날, 너에게 희망적이게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정도의 플롯이 있다고 한다. 옳거니, 학이시습지, 공부하면 기쁘기만 하랴. 솔깃하다. 좋은 플롯에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긴장이 있어야 한다. 대립인물로 긴장을 창조하여 계속 긴장을 고조시켜라. 인물들은 줄거리가 진행되는 동안 변화를 겪어야 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은……. 아, 다시 기승전결의 법칙인가. 법칙이라고? 생 자체가 우연이고 그 어떠한 법칙이 없거늘, 소설쓰기의 법칙을 배우라니. 법칙을 깨고 싶으면 오히려 법칙을 배우라 한다. 그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깨기 위해서, 버리기 위해서 배우라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지난 시절의 소설가들의 것이었다. 오늘의 소설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소설을 쓰려는 너에게는 빈 종이만이 펼쳐져 있다. 철저히 빈 종이일 때, 과거의 명작들의 어스름 그림자 한 자락 없는 완전한 빈 종이일 때, 너의 첫 단어가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에게 카프카는 말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너는, 너의 책은 기꺼이 도끼이고 싶다. 그렇다고 선혈을 내비쳐서는 아니 된다. 하기야 예술이라는 여러 장르에서 피가 낭자할수록 큰 상을 받는 오늘날, 그렇다면 상을 외면하라. 완강히 외면하라. 다만 험지로 가라, 어떤 색채도 지워내고, 완전한 텅 빈 우주를 마주하고, 너의 험지에 첫 발을 내딛으라. 카프카가 생전에 전적으로 이해되지 못했던 생각을 하면, 너는 너의 작품이 전혀 이해되지 못하고 있음에 위안을 삼아도 좋다.

 

험지, 소설이 이해되지 못하는 그곳에서 너는 소설 쓰기를 시작한다. 생이란 살아내는 것 자체가 주제요 플롯이다. 생을 이야기하는 소설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주제와 플롯을 단단히 살아낼 뿐이다. 문체와 형식미에 이르는 일, 그것은 겸손으로 해내는 일이다. 너의 언어 모국어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담아서 행여 한 톨 누가 되지 않도록 오래 진정으로 너의 언어를 연마하라. 그런 다음 단 하나의 단어, 자음 하나 모음 하나, 네 심장을 토해 낼 실마리의 단초가 될 음절 하나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노려볼 일이다. 소설가, 너를, 네 눈을, 네 마음을.

너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가능성감각’(R. 무질)이다. ‘마찬가지로 좋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는 가능성감각,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은 것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하지 않는 그것.’ 비로소 너는 험지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궁극적으로 다른 삶의 유토피아로 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험지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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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15. 『한국문학인』, 51호, 한국문인협회, 25-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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