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15. 3. 16. 21:37

 

다리 밑

 

 

거기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문화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 썰렁한 극장에 옛 영화보기 프로젝트가 있어 갔다가 무심코 공원 쪽으로 향했더니 곧바로 천이 흐르고 있었다.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하천은 상당한 넓이라서 강 같았다. 큰 다리를 건너 공원으로 가 볼 수도 있었는데, 다리 밑으로 내려서는 앙상한 계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계단 아래로는 상부 도로를 따라 나란히 양쪽으로 천변 길이 펼쳐져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틈새로 푸르스름한 하늘은 스크린에서 본 다니엘 오테이유의 차가운 눈빛 그대로였다.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얀 페인트로 길바닥에 그려놓은 자전거 표식에 금지표시가 뚜렷했다. 그런데 사람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다. 우측통행 화살표도 그려져 있다. 유치원 때부터 사람은 좌측통행을 하라 배웠다가 우측통행으로 바뀐 것은 5년이 채 안 된다. 그러니 좌측통행을 하던 누군가를 뒤에서 자전거가 건드렸나 보다.

아이쿠, 할머니, 조심하셔야지. 따르릉 해도 못 알아들음 어떡해요!

자전거 위의 사람은 노인을 부축하기는커녕 핀잔부터 내린다.

미안해요. 내가 못 들었나요?

할머니의 어디로 보나 굼뜨고 푸석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표준 존대어가 귀에 띈다.

난 괜찮으니 가세요.

깜짝 놀랐네, 그냥!

자전거는 씩씩거리며 서둘러 두 다리를 굴렸다. 나는 벌써 자리에 서버렸고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괜찮으세요?

네에. 괜찮답니다. 내 귀가 나빠서 그런걸요.

그냥 앞장서서 걷는 할머니를 따라 몇 발짝 걷는데 할머니가 멈춰 선다.

암, 임신이면 그렇게 앉혀야지요. 잘 생각했어요. 차가운 돌벤치에 그냥은 안 되지요.

그 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빽 하고 내지르는 고함이 돌아온다.

뭐예요? 무슨 임신! 웬 참견인지, 나 원.

아이고, 내가 뭘 착각했나요? 무릎에 고이 안고 앉아서 기특해서 그만.

기특이고 뭐고 그냥 가세요! 별꼴이야 참.

이 험난하고도 우스운 대화에서 난 또 다시 멈추고 말았다.

 

자, 이쪽으로요.

나는 할머니의 팔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일행이 되어주고 싶었다. 말없이 잠시 걷던 할머니가 나무벤치가 나오자 쉬려는 몸짓을 했다.

난 여기서 좀 쉴 테요. 젊은이, 아까는 고마웠어요.

뭘요. 그런데 말씨가 좀, 여기 분 아니세요?

엉거주춤 옆에 앉으며 건네는 질문에 아무 응대가 없다.

걸으시면서 바지도 안 입으시고. 좀 특이해서요.

아침에 입은 그대로 집에 있다가 나오니까요. 우리 어머니는 일상 한복에 흰 고무신 신고도 산장까지도 가셨다던 걸요. 물맞이라나, 동네 사람들 큰 나들이셨겠지만.

무등산장도 아시면 이곳 분이신데, 말씨가 여기 분이 아닌 듯…….

말씨야 평생 아이들 가르쳤으니 사투린 적게 쓰는 편이지요.

아, 선생님이셨군요. 저도 선생이긴 해요, 비정규직.

비정규직. 젊은 사람들이 다 그 모양이니. 우리 애도 그렇다오. 제 못나서 그런 거지만. 서울에 비집고 들어가려니 좀 힘들어요. 내가 부러 명퇴해서 힘을 보탰어요. 어미 마음에. 따로 버팀목이 없으니까 어미라도 올인 해야죠. 결국 집을 다 내줬지요.

어머나.

상관없어요. 살림 정리할 나이니까 점점 줄여가다 보니 짐이 별로 없답니다. 혼자 사는 데 뭐 필요한 게 있어야지요. 어쩌다 이런 말을. 아, 선생은 앞서 가 보세요.

밀어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뭉그댔다. 어떻게든 말동무를 하면서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좀 전에 왜 느닷없이 임신 이야기를 꺼낸 것이냐고.

여긴 어떻게, 매일 나오세요? 여기 가까이 사세요? 저도 여기서는 혼자 지냅니다. 부모님은 평택에 사시고요, 팽성읍에.

평택이라뇨? 저 위네.

여기선 좀 멀죠. 서울 가면서 케이티엑스는 지나쳐 버리는 곳이죠.

그런데 선생은 어떻게……. 선생은 그래 서울로 안 가고 내려왔네요. 이곳에 와선 정이 좀 들었나요?

사오 년, 아직 정들 시간은. 여기 산책로도 처음 와 봤어요. 모처럼 영화관 갔다가요.

요샌 극장에도 잘 안 다녀서요. 영화도 무섭고…….

무서우세요, 요즘 영화가?

좀 그래요. 이런 말 하면 노인네라 그런다 하겠지만, 폭력도 성문제도 심하고. 그뿐 아니죠, 상상도 무섭게 심해서 못 따라가요.

상상이…….

스타워즈다, 이티다, 그때까진 괜찮았지요. 지금은 타임 슬립이라나 뭐라나 시공을 넘나드니까. 사람인지 로봇인지도 구분도 안 가는 존재에다…….

사실성 떨어지는 것 싫어하세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에요. 팅커벨이 사실성이 있나요 뭐, 그래도 아름다웠죠.

오늘 영화는 <금지된 사랑>이라고, 보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90년대 영화니까요.

<금지된 사랑>, 모르겠네요. 그 무렵에도 영화관 가고 그러지 못했어요. 사는 게 다 다르지요. 학교 그만둔 지도 십 년도 넘고, 거의 혼자 지내고 해서 아는 게 없어요. 더 옛날에 멈춰 있죠. 나 좀 봐, 별 이야기를 다. 이제 그만 가 보세요.

아, 예. 그럼 안녕히 가세요.

 

엉거주춤 일어서 발걸음을 떼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드립니다, 그런 말이지요. 이런 만남도 인연이고. 잠깐만, 저 그런데 여기 혹시 오려거든, 내 선생한테 일러둘 게 있어요.

나는 다시 슬며시 앉아야 했다.

여기 산책 나오려면 아침 일찍이는 다니지 말라고 말해두려고요.

아침 일찍은 왜요? 저 아침 일찍 산책 다닐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요. 또 여긴 집에서 멀기도 하고요.

집이 멀군요. 아무튼 아침 일찍 다니지 말라는 것은…….

할머니는 멈칫거리며 주위를 돌아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저기, 저쪽 광고 설치대가 죽 늘어선 곳 있지요, 그 근처엔 사람이 있어서 놀랄지 몰라요. 그 사람들을 놀래킬지도 모르고.

사람들이라뇨? 사람은 맨날 있지 않나요?

여기 운동 다니는 사람 말이 아니라, 저기 저 위 교각 틈새에 사람들이 자고 있어요. 낮에도 올려다보면 이불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어요. 낮에도 가슴이 아파요. 내 처지는 저보다 낫다고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다가…….

저 시멘튼가 돌 틈에서 사람들이 잠을 잔다고요? 그러니까 노숙…….

가만, 누가 듣겠어요. 낮엔 근처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원래는 아침잠이 없으니까 일찍 나와서 걷곤 했어요. 그러다가 거기에서 내려오는 어떤 사람을 딱 마주쳤지 뭐예요. 어찌나 무안하던지. 그건 정말 무안함이었어요, 절대로 무서움이 아니라. 무서움은 천천히 박혀왔죠, 지금은 좀 무서워요. 저 지경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할 텐데 하는 것.

선생님 하셨으면서 노후를 걱정하세요? 저희들 보따리장사는 나중에 어쩌지요? 우린 연금은커녕 방학 땐 월급도 없어요.

이 나이 되면 먹고 살 걱정이 아니라 죽을 걱정이죠. 죽어서 오래 발견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노인 자살률이 더 높다는 뉴스를 봐도 그렇고. 힘들어서겠지, 외로워서겠지. 결국 고통이에요, 산다는 것이. 시작부터 마감까지.

시작은 어렵지 않잖아요, 저절로 태어나지는 것 아녜요?

그야 그렇지요. 환경이 문제죠. 열이면 열 다 축복 속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라오. 혼외자가 드물지 않다는 말이오.

요샌 비혼모도 있잖아요, 의식적으로 아이만 낳는. 결혼은 못해도요 아이는 갖고 싶다는. 미토콘드리아의 복제를 위해서.

무슨 소리, 엄마의 욕심이지. 지브란 이야기 명심해요,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당신의 사랑은 줘도 생각을 주어서는 안 되는 존재’ 그런 말. 아이는 정상적인 가정이 있어야 해요. 아버지가 없다, 그건 매우 곤란한 일이에요. 난 그런 사정 때문에 친정도 멀리하고 살았어요. 이래저래 위장된 삶이었지요.

위장이라뇨. 누구나 지난날의 무엇인가는 드러내지 않고 살지요. 어차피 오늘만 있는 걸요.

오늘만이라고? 젊은이가 그렇게 말하다니요. 내일을 보며 살고 그러는 것 아닌가요?

우리 세대는 내일이 없다니까요. 눈을 뜨면 오늘인 거죠. 오늘이 힘들어서 노후 같은 단어는 감이 안 오죠. 날마다 바뀌는 맘 때문에 더더욱요.

맘이 날마다 바뀌다니요?

예. 맘이 바뀝니다. 전 날마다 맘이 바뀌어요. 뭔가를 끝냈다 했는데 어느 날 여전히 생각을 하거나…….

아, 맘에 둔 사람 말이군요.

아아니요, 맘에 두기는요. 그냥 맘에 없었는데 마음에 있다거나.

그게 그런 말이네요. 아직 젊어서 가능성이 있을 때는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구려.

아아니요, 전 좀처럼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제 맘이 그냥 변하는 거죠.

참, 그 말이 그 말이라니까…….

 

예, 저는 그래요. 맘이 늘 바뀌어서 이러고 살죠. 하도 바뀌니까 종잡을 수 없어서, 뭘 원하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요. 정말 아기를 갖고 싶다가도 겁이 나고요.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는데요.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 만난 노인과 교집합이 그리 있을 리도 없다.

 

저 그럼 가봐야 해서요.

다시 일어서려다가 생각이 났다. 아차, 그 임신 이야기다.

그게, 제가 궁금해도 머뭇거리고 있었는데요. 좀 전에 임신 이야기를 왜…….

이번에는 내가 이야기를 다시 이었다.

네, 그게 좀 이상했어요? 간단해요. 저 둘이 그렇게 앉아있는 모습이 떨떠름하다 그 말입니다. 내가 아들 엄마라고 남자애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다 큰 처녀들 요즘 다이어트들 한다 해도 몸무게는 몸무게지. 쌀 20킬로도 번쩍 못 드는 것이 요즘 남자애들 아뇨. 비실비실하기는 여자애들 똑같고. 그런데 그렇게 뭉개고 앉아서 욕보이지. 내가 멀리서부터 한참을 보고 왔어요. 그래서 거꾸로 말했죠, 임신이 아니라면 내려앉아라, 뭐 그런. 하긴 요새는 돌려서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도 있고 아니기도 하고.

남자 무릎에 앉은 여자애가 미우셨군요. 저라면 부러운 편인데요?

부럽기는. 저렇게 밖에서 유난떠는 남자들치고 성격 더 불량하기 마련이에요.

보이는 친절이 별로다, 예 뭐. 저 그럼. 다음에 혹시 만나게 되면 이야기 더 들을게요. 안녕히 가세요!

여자애가 미우셨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정말로 뛰기 시작했다. 풀밭을 예상했지만 길은 좁은 포도였다. 조깅화와 러닝화의 구별 없이 신은 운동화 바닥이 아스팔트 느낌을 그대로 전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섰다. 무엇을 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선생님 할머니도 보이지 않게 멀리 뛰어왔나 보다.

 

 

저녁가끔 일기를 쓴다. 쓰는 날이 많아졌다. 일기까진 아니고 일단 뭔가를 메모해 놓는다. 날마다 변하는 나를 알기 위해서,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써 두는 것이다.

 

1) <금지된 사랑>을 보았다. 1992년 작, 프랑스 원제로는 ‘겨울의 심장’이다. 다니엘 오테이유, 아니 스테판의 겨울처럼 차가운 심장이겠지. 앵 쾨르 앙 이베르, 향수에 젖는 프랑스어 발음. 향수라니, 이건 좀 미친 감정이다. 프랑스 문화는 부러 외면하고 싶은 억하심정이 들 때도 있다. 푹 빠져서 공부할 때는 언제고. 변덕이 죽 끓는다.

‘관중 속에 한 명이 감명을 받아 인생이 변한다면 연주자로서 만족을 느낀다.’ 그 비슷하게 바이올리니스트가, 여자가, 에둘러 말한다. 남자를 유혹하는 말이었다. 나는 내 소설이 단 한 명의 독자에게 감명을 준다고 만족을 느낄까? 아니다. 소설이 원칙적으로 소통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말만 한다. 만족이라면 이상한 말이겠지만, 나는 내 글이 문자화되어, 그러니까 살아서, 나를 떠나는 것으로 만족한다. 글은 문자화되면 제 생명으로 살 것이다. 출판사 창고에서 바로 죽든지, 중고 책으로 떠다니든지, 언감생심 누군가의 책장에 남게 되든지.

영화는 아주 절제된 사랑의 형식으로 감동을 준다. 다만 이런 섬세한 게임은 21세기엔 어림없다. 지금의 우리는 황량한 바다에서 살고 있음으로 해서 사랑으로 섬세할 여유가 없다.

사족: 영화에서 오테이유의 큰 눈은 멀건 공간을 바라보았지만, 실 인생에서는 에마뉘엘 베아르와 함께 살았다. 결혼식도 하고. 열세 살 나이 차 같은 것은 서양인들의 경우, 아니 우리나라도 이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 후엔 헤어진다. 딸도 있었던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이혼에 장애가 되지 않는 시대다. 참 자기중심적인 시대. 참 솔직한 시대. 참 현대적인 시대. 인간이 모노가미라는 환상, 그 거짓을 공공연히 법적으로 실행한다.

 

2) 처음으로 광주천변에 내려가 보았다. 어쩌다 처음 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칠십 세 정도,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할머니. 아들 하나, 아마 서울에. 유행을 따르지 않은 차림새에 표준어를 쓴다. 조금은 괴팍할까? 관심은…… 모르겠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대신 진짜 글감을 건졌다. 혹시 천변에 다시 나가보기. 산책이 아니라 누군가를 확인하고 싶다. 실제로 모두 ‘다리 밑에서’ 태어난 우리들. 더러는 초호화 초고속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다리 밑에서’ 살고 있는지 찾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우연인 것처럼 마주치기.

 

 

차가운 남자는 오테이유의 얼굴이 아닌 내 얼굴로 나타난다. 나는 남자이고 차가움을 가장해야 하는데 실은 매사에 참을성이 없다. 그가 - 절대로 여기에서 또 설명하고 싶지 않은 그가 - 나에게 비판적으로 내뱉었던 단어 ‘조급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가 남자다. 그러니까 남자인 것만 다르다. 나는 여전히 비정규직인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가 번갈아 나타난다.

내 몸은 세상에서 외면 받는 상처로 뱀처럼 휘었다. 척추측만증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이올린의 몸통이 되어 줄과 활을 버티고 있었다. 줄과 활은 힘겨운 싸움 속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내가 줄이든 활이든 능동적인 무엇이 될 확률은 얼마였을까. 활에 닿은 줄이 하나 터져버린 어느 날 나는 허리를 펴고 곧게 걷게 되었다.

누군가로 빙의되어 꿈을 꾸는 일은 두통과 더불어 겨우 깨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남자는 좀 그렇다.

 

 

실제로 나는 천변에 나가 보기로 했다. 설마를 확인하는 일, 그리고 누군가를 만난다면, 다리 밑에서 살아가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찬찬히 살펴보거나 가능하면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쪽이 훨씬 생생한 체험이고 글감일 터였다. 여러 명일까. 노숙 인구가 서울역 근처에만 200명도 넘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믿기지 않지만.

한번은 정말 한 남자가 있었다. 흐르는 물을 향하고 앉아 있어서 등만 볼 수 있었는데, 옆에 두고 있는 가방이 조금 컸기 때문에 눈에 띄었다. 크다는 말은 일상 산책하는 짐이랄 수 없는 부피였으니까. 눈에 띄지 않게 속도를 줄이며 흘겨보았더니, 그는 입성이 우선 말끔해서 노숙인일 리가 없어 보였다.

 

이렇게 노숙인의 존재를 꼭 확인하고자 하는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글감으로 생각했었던 일은 죄로 갈 거라는 마음이 일었다. 그런데도 지나칠 수 없는 무엇 때문에 매달렸다. 몇 번 시간대를 바꾸어 나가 보았는데, 정말 밤이면 사용했을 얄팍한 이불이나 골판지 쪼가리들이 교각과 위쪽 도로 밑 틈새 여기저기에 끼어 있었다. 중간 높이의 단에는 그을음 흔적이 눈에 띄었는데, 일정 시간 지속적으로 불을 피운 것이 분명했다. 어딘가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틈새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구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교각 구조를 탓하려다가 멈칫 놀랐다. 틈새가 있어서 노숙인이 양산되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들이 생기다 보니 틈새가 이용되는 것을. 그렇다면 다리 공법의 구조가 아니라 사람을 노숙하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탓해야 맞다. 사람이 떠돌 것이라면 기술 부족으로 더러 틈새를 남겨둔 것이 오히려 잘 한 일 아닌가.

 

그러다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생겼다. 그날은 조금 덜컹거리는 창에 바람막이 정도 뭔가 천이 필요해서 복개상가엘 먼저 들렀던 터다. 베이지색 옥스퍼드 천 두 마를 떠서 수선 집에 시접을 박아 달라고 맡겨 놓고 천변으로 내려서는 순간이었다. 징검다리가 시작하는 자리에 이상한 자세로 앉아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잘못 오해하면 거기에 실례를 하려고 앉은 모양새여서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아니고,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서는 검은 비닐봉투를 물에 흔들며 무엇인가를 씻고 있었다. 차갑고 더러운 물에 뭘 씻어?

징검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거의 스치듯 여자를 지나쳐야 했는데, 내 눈은 탐색하듯 씻는 물체에 고정되었다. 여자는 놀랍게도 하얀 밥알들과 큼직한 무김치 조각들을 분리하고 있었다. 무 한 조각이 50cm쯤 물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내용물이 확연히 보인 것이다. 흐르는 개천에 음식을 헹구다니, 마치 먹다 버린 봉지에서 쓸 만한 무 조각을 건지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주체는 사람이었다, 여자 사람. 넓어진 가르마로 보아 오십은 훨씬 넘었을, 그렇지만 곱게 앞머리를 잘라서 앞으로 내린 모습, 절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친’ 여자는 아닌 듯 했다. 짐작으로 키는 작은 편에 몸집은 꽤 있어서 굶기에 말라 지친 몰골도 아니고.

그러는 사이 나는 징검다리를 다 건너와 버렸다. 여자가 아무리 씻는 데 골몰해서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다시 돌아가 확인을 할 만큼 여자를 무안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정말로 여자의 허기가 그런 행동을 하게 했음을 확인하기가 무서워 도망친 것이라 해야 옳았다.

 

오후 서너 시 경이었다.

어쩌면 좋을까. 그렇다면 저 여자는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잠든단 말인가.

원래 예정했던 산책길은 중앙대교 아래까지 편도 15분, 거기서 뒤로 돌아 맡겨둔 천을 찾으러 다시 온다면 산책으로는 충분할 터였다. 그런데 발이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지를 않았다.

그렇게 어설피 걷던 나는 슬그머니 뒤로 돌아섰다. 서려다가 발견했다. 여자는 어느새 건너편 길섶에 앉아 있었다. 원래 그쪽은 자전거 길인데 더러 사람들이 오가는 좁은 산책로가 있었다. 여자는 산책로를 뒤로 하고서, 그러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 피해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얼마 전에도 건너편으로 그 여자를 본 것 같았다. 뚱뚱해 보이는 모습은 있는 대로 옷을 다 입어서 그랬으리라. 그때도 양 옆에 짐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좋을까.

아이쿠. 그렇게 멍청하게 돌아서는 바람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

에이. 버럭 화를 내는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고, 바로 직전에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간 여자를 잡으려고 쫓아가는 모양새였다. 다시 돌아다보니 그 여자도 꽤 무거운 가방을 팔에 걸고 있었다. 웬 여자들의 수난이람. 보퉁이를 싸들고 도망치려는 여자는 뭐고, 돌보는 이 없어 저리 하수구가 섞여 흐르는 물에 무김치를 씻는 여자는 뭐람. 머리가 빙글 돌았다. 씩씩거리는 남자와 나도 모르게 재차 부딪쳐서 걸고 넘어졌다. 도망치는 여자가 시간을 벌면 좋겠다. 사람들이 어디서 금방 에워싼다.

 

그렇게 그날의 탐색은 끝났다. 웅성거리며 수군대는 사람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눈에 들어왔을 때는 벌써 현기증은 끝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발목이 시큰거릴 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징검다리 저편을 찬찬히 보니 여자는 작은 소동에도 이쪽으로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멀리에서도 팔이 움직이는 동작이 보였다. 다행히 - 다행히? - 무엇인가를 먹는 가벼운 동작이 아니었다. 왼손을 비껴 옆으로 폈다 오므렸다 반복하는 것이 긴 실로 바느질이라도 하는 동작 같았다. 바느질? 상상력치고는 빈곤했다. 여자가 게서 무슨 바느질을 할 것인가. 햇볕 드는 거실에서 탁자를 치워놓고 식구들을 위해 보송보송한 이불 홑청을 깁는 여자?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이렇게 빈곤한 상상력으로 무슨 소설을 쓸 것인가.

 

 

집에 돌아와 보니 창은 여전히 덜컹거렸다. 바느질까지 맡겼던 천을 찾아오는 것을 잊었다는 생각이 났다. 발이 좀 삐었기로서니 그렇게 줄행랑을 치다시피 곧바로 택시를 타야 했을까?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진실을 마주치는 일이 더 무서웠을까. 나는 이튿날도 그 다음 날도 바람막이 천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 천을 찾으러 가면 천변 산책로를 외면할 수 없고, 그래서 가지 않았다는 설명이 옳다. 날은 갑자기 더 추워졌고 창문은 더 세게 덜컹거렸지만 나는 가능하면 창 쪽을 외면했다.

그 전에 나는 최소한 내가 왜 그 여자를, 그런 노숙인을 찾아서 확인하고 싶어 했는지 알아야 했다. 단순한 글감? 그것은 실은 매우 모독적인 발상이다. 여자를 대상화하고 있으니까. 샤덴프로이데? 나라말에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에서도 번역을 못하고 독일어를 그대로 쓰는데, 서울 시절 함께 사무실을 썼던 독문과 강사의 설명으로는 ‘타인의 고통을 보는 기쁨’ 비슷한 말이라 했다. 그러자 통째로 백과사전인 사학과 이순규가 러시아엔가 중동엔가 더 재미있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한 농부가 우연히 램프를 하나 주웠는데, 무심코 문지르자 램프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주겠단다. 농부가 하는 말이, 옆집에는 램프가 아니라 젖소가 한 마리 생기더니 온 가족이 먹고 남을 우유를 내어 곧 부자가 되었다고. 꼭 그런 젖소를 원하면 아예 두 마리라도 구해줄까요? 요정이 물었는데, 농부가 싫다고 했더란다. 아뇨, 난 그런 젖소 필요 없소. 이웃이 다시 가난해지는 것이 내 소원이요, 그러니 이웃의 젖소를 죽게 해 줘요! 동서고금 비뚤어진 심보.

 

이건 빗나가는 말이지만 가끔 독일어에 정곡을 찌르는 단어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영미권처럼 경쟁사회를 ‘활력 있는 자유경쟁사회’라는 의미로 그대로 쓰는데, 독일에서는 ‘팔꿈치사회’라고 쓴다고 들었다. 얼마나 적나라하고 정확한가. 영락없이 다리 밑 길바닥에 나 앉아 열심히 팔꿈치를 흔들고 있던 여자, 거기 그렇게 앉아서 그 팔꿈치로 누구를 제칠 수 있단 말인가.

팔꿈치사회에 더욱 만연하는 샤덴프로이데 - 그래서 내가 노숙인을 찾는 건 절대로 아니다. 많은 단점에 허점투성이, 하지만 그렇게까지 저열하지는 않다. 혹시라도 다리 밑 사람들의 고통을 나누고 싶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을 뿐이다. 그래, 어떻게 된 사회에서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다. 왜 일인당 평균소득은 해가 다르게 치솟는데 탈락자들은 날로 더욱 늘어나는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 어떤 순간에, 얼마나 아래로 내몰리면 죽기로 하는가. 이 화려 장관의 세상 속 그런 어두움을 누군가는 써야 한다고 믿는다. 독자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출판사만 구하면 된다. 출판사도 못 구하면? 그건 일단 쓴 다음의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와 뒤뚱거리는 발걸음으로 잽싸게 천변 산책로를 빠져 나와서 택시를 타고 도망쳐온 나는 둘인가, 하나인가, 샴의 쌍둥이. 진실을 맞닥뜨릴 용기도 없이 싸구려 감상에 젖은 얼치기.

 

그것이 열흘도 넘은 일이다. 발목은 처음에는 상당히 부어올랐지만 그런대로 가라앉았고, 나는 충분히 걸을 수 있다. 그러고도 나는 특별히 다른 일들에 몰두할 일도 없으면서 천변을 외면하고 있다. 며칠 전 그 할머니는 영화도 무섭다 했는데, 나는 현실이 먼저 무섭다.

날마다 변하는 나. 나는 날마다 나를 배신한다.

 

 

꿈자리는 여전히 뒤숭숭했다. 이번에도 나는 남자인 것만 다르고 불발인 채로. 느닷없이 고준생, 고시 준비생. 다음 순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이었다. 표정은 밝았다. 인문계 쪽에서 이만한 자리는 완전히 로망이니까.

우린 일곱이다. 아래 셋은 안에서는 그냥 비서로 불린다. 끼리끼리 팔꿈치 다툼도 있다. 주군에 더 가까운 자리에 가기 위해서다. 충성도 경쟁이랄까. 우린 기간제이기는 하지만 별정직 공무원이다. 제대로 실력만 갖추면 하루살이 신세를 쉽게 면한다. 인맥으로 인해 대기업에서도 눈독을 들여 빠져나갈 수도 있다. 의원님의 연설문도 쓰다가 더 잘나가면 의원이 되고 더 잘나가면…… 언감생심. 하지만 소규모 회사처럼 의원님 맘대로 생사여탈권이 있다. 금세 괴로운 얼굴이 된다. 아, SSKK 신세!

 

외치다가 눈을 뜬다. 무슨 약자더라? 어디선가 봤었는데, 그래, 시시까까. 더 풀어 쓰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

다시 눈이 감기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금실아, 웬 일?

순간 늘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 옆방 여성 보좌관이 날 불러 세운다. 누구라서 어떻게 내 이름을 부르는가?

소스라쳐 놀랐는데, 제대로 깨어나 보니 천정에 그 얼굴이 박혀 있다. 성글어진 가르마에 앞머리를 통째로 잘라 빗어 내린 여자, 천변의 여자다.

왜?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도 모순적인 맥락에 짜증이 난다. 의원 보좌관과 천변의 여자가 어떻게 뒤섞이는가? 들고 다니는 가방의 크기로 해서?

 

큰 가방 곁에는 작은 가방도 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너른 서너층 돌계단을 만들어놓은 한쪽에, 두 가방 사이에 앉은 여자는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를 열심히 고르고 있다. 오른손 왼손이 제법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쪽에서는 절대로 알아 볼 수 없는 동작으로. 나는 오던 길을 반대로 후퇴해서 징검다리를 건넌다. 이번 징검다리는 곡선을 이루어 그쪽 돌계단과 어울려 모양이 좋다. 내 눈은 멀리에서부터 여자에게로 고정되지만, 가던 길을 돌아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나를 여자가 거들떠보지 않아 다행이다. 무엇인가를 먹는가? 그저 보는가? 자전거 전용로 옆으로 억지로 난 좁은 길에선 여자를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다. 어쩌면 여자는 장갑 같은 작은 무언가를 뜨는 손동작을 하고 있다. 뜨개질을? 그 순간 여자가 고개를 든다. 미셸?

퐁네프의 연인 미셸이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붉은 노을빛 하늘을 바라보면서, 연인이 주문한 대로 ‘하늘이 하야네.’라고 말하는 미셸의 얼굴. 시력을 잃어가는 비련의 화가, 왜 홀로인가? 구름 맑은 날이지만 약속대로 ‘하지만 구름은 검은색이네.’라고 말하는 알렉스가 없다. 미셸을 찾는 전단지도, 전단지를 죄다 떼어 숨기는 알렉스도 없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연인들을 숭고함으로 비춰주는 불꽃놀이도 없다. 이곳은 파리의 퐁네프가 아니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

내가 마주친 것은 키가 작은 나무에 걸린 검정색 아웃도어와 알록달록 색깔의 바지. 나뭇가지를 휘면서 거기 걸려 있는, 아직 물이 뚝뚝 듣는 빨래다. 여자는 이른 새벽 얼음장 같은 하천 물에서 빨래를 했겠다. 현실의 냉기에 도망치듯 징검다리를 다시 건너온다. 여자는 추위도 아랑곳없이 발목을 드러낸 채, 양말이 없었나, 느긋하게 너른 돌계단을 통째로 차지하고서 유유자적하고 있다. 조급하고 안달이 난 쪽은 나다. 휴우, 내 한숨 소리에 다시 또 잠에서 깨어난다.

 

 

이렇게 잠이 깬 날엔 다시 잠으로 돌아가면 더 뒤숭숭한 꿈에 시달리게 된다. 아직 새벽은 멀었고 불 켜진 방에서 할 일은 책상에 앉는 일뿐이다. 지금은 방학이고 기껏 학기마다 계약서를 쓰는 신세이지만, 프랑스문학은커녕 언어교육원의 프랑스어 강의도 아슬아슬하지만, 논문을 써야 한다. 만일을 위해서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에 게재 판정을 받도록 힘써야 한다. 내가 아직도 순진한 건가. 8만이 넘는 우리 회색인간들, 특히 지방시, 지방대 시간강사에게 빛줄기는 희귀종이다. 한 줄기 빛도 아직 새어 들어오지 않는다.

노트북 화면이 느리게 잠에서 깨어난다. 최적화 프로그램을 돌린 지 한참 되었나 보다. ‘한글’에 들어가서 ‘최근작업문서’를 연다. 뜨는 파일명은 논문 제목이 아니라 옆길로 샌 「다리 밑」이다. 그래, 다리 밑에 가 볼 일이 기다리고 있다. 창밖이 밝아오면 나는 무슨 마음일까. 내일 나는 누구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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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스프리』2015. 봄 4권 1호 통권 제13호 190-205쪽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5. 1. 23. 01:58

「유예된 시간」

 

다시 여름이 되자 가슴이 묘하게 조여 왔다. 지난여름 이맘때 물속에 빠졌던 기억이 문제였다. 봄, 수백 명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뉴스로 아수라장이 된 봄날 이후 더 나빠졌다. 나 또한 돌아오지 못하고 검은 바다 멀리로 떠내려가는 꿈이 계속되곤 했다.

언어교육원 휴가기간은 원어민 강사들의 귀향을 배려해서 꼬박 3주다. 나도 평택 집에 머물기로 했다. 가끔은 지치고, 엄마 밥이 그립기도 했으니까. 마침 미국에서 잠시 다니러 온 막내 옥실이랑 몇몇 친척들이랑 남쪽 바다로 휴가를 떠났다. 하필 바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옥실이 굳이 담양의 원조 대통밥을 먹어보겠다고 하고 - 옥이는 수습이지만 맨해튼의 꽤 유명한 식당 요리사다 - 다른 사람들은 땅끝의 의미를 내세웠다. 나는 뭐, 어른스럽게 그 일을 잊은 듯이 처신하면서 물만 피하면 될 일이었다. 거기서 뜻밖에 물 밖으로 나온 게 한 마리와 조우하게 되었다.

놈을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식당, 정확히는 식당의 밥상에서였다. 일은 아직 떡갈비가 나오기 전에 일어났다. 한참 접시들이 들어와서 밥상 위 교통정리를 하는 순간이었다. 승연이 벌떡 뛰면서 일어났다. 까악, 다른 아이들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소동의 진원지는 집게발이 유난히도 꿈틀거리는 접시였다. 대여섯 마리의 사나운 게들이 비명을 지르며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정말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게들에게 입혀진 양념은 색깔로 미루어 간장과 고춧가루 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잘리지도 않은 통째의 게들이 단말마의 춤을 추고 있었다. 인간들의 이빨 사이에서 부서지지 않는다 해도, 진한 양념 탓에 그대로 몇 분이 지나면 생명을 부지할 길은 없을 것이다. 누구도 그 쌩쌩한 게들을 집어서 씹을 용기들은 없어 보였다. 서둘러 사람을 불러서 접시를 물리려는데 재경이 소리쳤다. 저 하나 주세요.

재경인 이종매의 아들이다. 은실의 아이들인 승연이 승주와는 달리 재경은 외동이라서인지 어려서부터 제 주장이 강했다. 재경에게 한 마리를 준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순간은 다들 어리둥절해서 별 생각 없이 그래라 하고 말았다. 재경인 빈 접시에 옮겨진 게 위로 제 컵의 물을 부었다. 마치 양념을 씻는 동작이었다. 침착한 재경의 행동에 다들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놈은 재경이 일단은 자신을 숨 쉬게 해준 장본인임을 알 리가 없는 모양으로 그에게 덤볐다.

어쨌거나 게장 파동은 가라앉았고 떡갈비와 양념갈비가 반씩 담긴 접시들이 나오자 화기애애한 식사시간의 일상이 되살아났다. 대통밥을 본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문제는 밥이 끝나고 디저트 과일까지 다 먹을 때까지도 놈이 씩씩하게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모두들 재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재경은 이마를 찡그렸다.

승주가 갑자기 일어서서 복도로 나가더니 종이컵을 들고 왔다. 여기 넣어서 가져가면 될 걸. 그러면서 종이컵에 게를 조심스레 옮겨서 재경에게 내밀었다. 재경은 이번에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흥미가 떨어졌는지, 아무튼 염려하는 낯빛이었다. 재경이 뒤로 물러서자 승주가 나섰다. 그럼 내가 가져가야지. 승주는 물까지 조금 넣었다. 누군가 소금을 좀 넣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금도 얻어서 넣었다. 완벽한 집이 지어졌다. 도망갈까 봐서 지붕까지 종이컵으로 씌우니 좁고 불편한 집이었다. 승주는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늘어선 둑을 따라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컵을 조심히 들고 다녔다.

 

우리 모두는 일단 다 같이 평택 집으로 가는 차들에 나누어 탔다. 나는 승연이 승주랑, 그러니까 게랑 함께 아버지 차를 탔다. 은실은 성수대교 ‘아차’사고 이후로 많은 것에 적응을 하지 못하므로 운전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퇴임 후에는 큰 차를 가지고 다니신다. 순전히 은실네 때문에.

뒷좌석의 승연은 할아버지의 스마트폰을 가져다가 게의 종류를 찾는다고 야단이다.

엄마, 컨이모, 울나라 게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아셩? 18종이네용.

말 좀 예쁘기 하시지! 우리나라!

았써요. 그게…….

알았어요!

예, 알았어요. 여기 봐, 이 사진, 요게 농게래요, 농게!

논게? 논에서 살아?

엉뚱한 승주는 누나에게 핀잔을 듣는다. 논게라니, 농게라니까. 딱 이 분홍색 집게발이 농게야. 게 발이 몇 갠 줄 알아, 너?

그야 여섯 개!

뭐야, 게가 곤충이니? 집게발 두 개 빼고도 여덟 개야. 들어 봐. 집게발가락은 길고 숟가락 모양이어서 개펄에서 먹이를 긁어먹기에 알맞다. 수컷의 한쪽 집게다리는 암컷과 같으나 다른 한쪽은 커서 집게길이가 50mm에…….

언니, 이 게가 살까? 아이들 떠드는 데는 아랑곳없이 은실이가 걱정스레 말한다.

살아 있으니 걱정 마.

언니, 난 좀 무서운데. 이게, 이 게가 지금 무섭지 않을까? 난데없이 컵 속에 갇혀서…….

컵인 줄 알 리 없잖아. 집에 도착해서 넓은 데 놓아주고.

어떻게 살아?

걱정 마, 일단 살아 있잖아. 잠을 청해 봐, 너 깨어있음 멀미하잖아.

은실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다. ‘아차’사고란 우리가 서울 고모네 집에서 강 건너로 학교 다닐 때, 고1 은실이 늦장부리는 나랑 같이 나서서 지각하는 바람에 성수대교 사고를 비껴갔던 일을 말한다. 하지만 친한 친구를 잃은 은실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되었고, 그 이후 은실의 삶은 뭐랄까, 그리다가 반쯤 지워서 뭉그러진 수채화 같다. 아래 절반쯤을 손바닥으로 지워버린. 나무도 집도 살아있는 풍경이기는 하지만 아랫도리는 뭉그러져 불안한, 덧그릴 수도 없이 여전히 물감들이 흐르고 있는 그림.

은실이 농게 걱정을 놓아두고 스르르 잠이 든다. 아이들은 벌써 다른 주제로 깔깔대고 있다.

아버지, 일단 천당의 문턱에서 살아나왔으니 다행인 거죠?

그럼.

아버지, 이 게는 운이 좋아 살았다고 생각할까요, 아님…….

아서라, 생사의 문제 어쩌고 은실이 들을라.

아니, 아버지, 자기가 맹렬하게 탈출을 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고 믿을까 궁금…….

그만 두래도. 게가 무슨 철학을. 아버지 운전하잖냐. 여보, 한박사 좀 말려요!

‘한박사’는 아버지가 나를 부르시는 이름이다. 어머니는 뒤만 한번 돌아다보신다.

그날 저녁에도 아직 헤어지지 않고 다들 집에서 북적대느라 부산한 휴가의 연속이었다. 안방은 여자들…… 그런 식으로 분류된 잠자리는 불편해도 다들 즐거워하는 편이었다. 옥실과 은실을 가운데 두고 나와 어머니가 바깥으로 끼어 누운 잠자리에서 눈은 더 말똥말똥해지는 밤이었다.

올핸 모기도 별로 없어 다행이구나.

예, 엄마. 맘도 한번 오면 좋은데.

옥이는 엄마와 맘으로 엄마와 큰엄마를 구별한다.

그렇게 여름휴가가 끝나 갔다. 며칠 후 옥이가 돌아가자 나도 바로 내 굴로 돌아왔다.

 

철학이 다시 떠오른 것은 애들이 거의 날마다 농게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개학 전이라서 다른 재미있는 일은 없는 듯 보였다. 분홍 집게발 농게라서 ‘분농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다시마도 넣어줘 보고, 물속에 돌도 넣어주었다고. 제법 의식주가 갖춰져 가고 있었다. 그러니 게라고 철학을 하지 않겠는가.

밥이 없으면 죽지만 밥만으로는 살지 못하는 인간처럼, 생명체인 게도 그 나름의……. 아직 수업이 없어 빈둥대니까 이불 속에 누워서도 잠이 헛들곤 했다. 그러면 물에 빠지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눈을 버럭 뜨고 온갖 상상에 매달린다. 분농이는 행동에 점수를 주어 자유의지론자 쪽으로 분류해 두었다. 그 순간 아주 우연히 그 반대가 떠올랐다. ‘진드기 철학자’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가, 배승한 교수가, 단 한번 함께 했었던 언어교육원 회식자리에서 읊어대던 이야기였다. 대충 소맥이 한 두 바퀴 돌았을 때였다.

술, 좋군요. 아, 현세는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다, 옳소! 더 나은 세계가 있다면 신은 인간을 위해 반드시 그 더 나은 세계를 주셨을 거라, 가라사대 라이프니츠! 세계에는 무엇보다 완전한 신이, 이 세계질서를 보장하는 선한 신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니까…….

말씀은 선한 신이라면서 어감은…….

아니, 모든 생물체며 자원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믿음이 오늘날 더 확고해지고 있잖슴까.

거야,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과 지능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니, 그건 인간을 상대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로 보았다는 뜻이죠. 빌헬름 베클린이라고, 라이프니츠에 비하면 달걀로 바위치기도 안 되는 위인이, 물론 라이프니츠 사후였지만 재밌는 글을 썼어요. 내용인즉슨, 치즈에 생긴 진드기도 철학을 한다 이 말씀.

치즈 진드기?

어라, 저도요 덩어리 치즈 속에서 시꺼먼 날벌레를 본 적 있어요. 날개랑 더듬이도!

눈 좋으시네요. 하지만 곤충학 말고 철학이라잖아요. 계속해 보시죠, 배 교수님.

제가 아니라 베클린이요. 진드기 철학자 말씀이…… 읊어요? 아, 이 치즈의 향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맛은 낙원과 같구나! 얼마나 영양가 있는 음식인가! 내 집은 편안키도 하여라! 헤아릴 수 없이 온통 먹을 것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여! 치즈를 만드신 그분, 우리 진드기를 위해 치즈를 창조하신 그분은 얼마나 전능하고 훌륭하신지! 우리의 존재는 그분의 의지요, 우리의 행복이 그분의 목적이다…….

그때 나는 배승한이 아니라 진드기 철학자라는 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라이프니츠에 대해 나는 피상적으로만 알았을 뿐인데, 당대에도 프랑스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디드로가 그를 플라톤만큼 치켜세우자, 볼테르는 철학소설 『캉디드』를 써가면서까지 드러내놓고 그를 비아냥댔다. 베클린은 철자도 모르는 생경한 이름이라서 찾는 데 한참 걸렸다. 제목은 「에담 치즈의 8층에 사는 진드기의 독백」이었다. 에담 치즈라면 진드기에게는 타워팰리스 정도는 되는 명품 집이다 싶었다.

은접시 위에 에담 치즈가 한 덩이 놓여 있고, 그 가까이에 촛불이 비추고 있다. 진드기는 치즈의 유기성분들이 내부에서 발효하여 생성된 생물체다. 꼭 그렇게 본문에 쓰여 있었던 것 같다. 분명 대혁명 이전의 글이었고, 그러면 다윈을 한참 앞서는데도 ‘생성’을 말하다니 놀랍다고 생각했었다. 진드기들 가운데 한 철학자가 치즈와 진드기의 근원과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는데, 그때 은접시째로 치즈의 주인이, 한 신사가, 이 치즈를 먹으려는 찰나에 진드기 철학자의 독백을 엿듣게 된다, 그런 식의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어디엔가 내가 저장해 두었었는데? 못 말리는 조급증을 어쩌지 못하고 그만 일어나서 노트북의 폴더를 뒤져냈다. 파일 명 에담 치즈.

진드기철학자는 촛불을 찬미한다. 이 빛은 진드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로구나! 행복한 진드기들이여! 너희들이야말로 세계의 모든 구성체들 가운데 중심이며 궁극의 목적이다. 빛은 너희의 기쁨을 위해 빛나고, 치즈는 너희를 위해 향을 풍기며, 치즈의 지방질 성분은 너희를 환락으로 초대하는구나! 바야흐로 이 연설가는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할 참이다. 미래에 그 일부를 뜯어먹으면서 살게 될 치즈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진드기 형이상학의 수많은 기본개념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신사는 이 철학자를 그가 서 있던 강단과 함께 입안에 넣어 삼켜버리고 만다. 이 진드기 철학자는 교살자의 이빨 사이에 씹히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보존과 행복이 자연의 궁극 목적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푸훗. 그때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가 무슨 뜻으로 진드기 철학을 읊었을지 궁금한 내 꼴은 뭐냐 싶었다. 완전한 신은 그 행위에 있어서도 완전하고, 신은 항상 최선을 지향한다는 최선의 원리를 비웃는 그는 자유의지론자?

파독 광부와 간호원으로 돈 모아서 돌아온 착실한 부모, 어머니의 비밀 아닌 비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입양해야 했던 아픔, 그 아픔을 품어주고 첫아들로 키워낸 아버지. 유난히 키들도 작은 시골마을에서, 동네 사람들과 판박이인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서 훤칠한 서양아이로 자라나면서 느꼈을 형의 혼란. 멋모르고 순진했던 자신의 유년시절. 있을 수 있는 최상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세상을 일찍 간파했을까, 형은. 친아버지를 찾아 독일로 떠난 형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지만……. 형은 아직 떠돈다, 무소식인 채로. 형을 찾아 형 따라 독일로 간 그는 독문학 박사가 되도록 형을 찾지 못했다. 그는 지방대학에 전임이 되었고, 언교원에 왔고, 그래서 만났고, 다시 독일로 떠났다. 그런 뒤에야 나는 그의 독일 해바라기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는 독일에 가서는 얼마 지나서부터 내게 우편물을, 주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그러나 꾸준히. 그러니까 자유의지로. 그가 찾는 형의 흔적은 브레멘에서 베를린으로, 다시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까지 뻗쳤다. 그 또한 형을 찾아 거기까지. 그곳에서 형의 행적은 수상해졌다. 남미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형은 뉴욕에 두 번의 족적을 남겼지만 그 다음은 사라졌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형과 그가 차례로 찾아간 뉴욕의 한인은 서독 간호원 계약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취업해서 건너간 아주머니였다.

그 아주머니가 늦은 나이에 결혼한 사람이 다름 아닌 우리 큰아버지였다는 우연을, 옥이가 자식 없는 큰아버지의 양녀로 미국인이 되었다는 더 거짓말 같은 우연을 그는 아직 모른다. 의지의 결과가 우연이라니. 그는 이 아이러니에 굴할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전근대적인 극이나 소설에서 가망 없어 보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엉뚱한 힘이거나 돌발사건이라고 비웃음 받을 우연은 또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독일을 거쳐 귀국한다고 말하고는 우편물을 하나 놓아둔 채 떠났다. 내 주소만 써둔 작은 소포를. 그것을 발견한 옥이는 수신인으로 기록된 내게 보냈다, 착실하게도.

내용물의 주인과 소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했다. 첨엔 이 장난스러운 혼란에 개봉을 미루었지만, 나는 곧 그에게서 연락이 있을 것을 믿었던 것 같다. 우연은 자신에게 발생하면 필연이 된다.

 

유예된 시간은 그의 침묵에서 비롯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돌아와 말이 없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어떤 마음으로 떨어져 있는 동안 이메일이나 우편물을 계속 보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돌아와서는 이토록 침묵일까. 물론 그것들은 그냥 첨부파일이었다. 보관할 곳이 없는 물건을 퍼내듯이 보낸 메모 뭉치들에, 본문은 없었다. 그것은 그랬다. 모년 모월 모일, 모처에서, 아무개. 그 이상은 뭔가를 써 보낸 적은 없었으니까. 그 자신에 대해서 혹은 나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없어왔다. 아직 아닌, 유예된 관계는 한편으로는 유예된 삶이었다.

배승한이 떠났고, 메모들을 보냈고, 메모들이 쌓였고, 나는 그것들을 엮었다. 첨부파일들은 내 프린터에서 종이로 바뀌었고, 내 침을 발라서 종이들을 넘겼고, 내 손때를 묻혀서 글을 확인하고 다듬었다. 자판기의 비닐 커버가 구멍이 나서 버렸을 정도로 매달렸다. 원작자(?)와는 상의도 없이.

내 글이 혹여 『어둠의 자식들』처럼 성공하면 그가 저작권 문제를 거론할까. 하긴 그럴 염려는 없다. 그것이 단편으로 나간 지는 이태도 넘었고, 또 장편으로도 묶여 나갔지만 어느 중앙지 단 한줄 언급도 되지 않은 채 해가 지날 모양이니까. 또 그는 이철용이 황석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소설 그런 것 나도 쓰겠다 싶어서 써가지고 완성된 원고를 통째로’ 윤문을 부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아무런 설명 없이 ‘조사된’ 글들의 파편을 보내왔을 뿐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들을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정리했을 뿐이다. 누구라도 아무런 맥락 없는 파편들을 보면 정리하고픈 생각이 났을 것이다. 시간차도 있었고, 시간 배열도 아니었다. 쉽지 않아서 심혈을 기울였고. 그러는 사이 글들은 나의 것이라 여겨졌다. 내가 여러 단어들을 배열했고, 내가 문장을 문단을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아마 알고서도, 발표된 글들을 보았음에 틀림없지만, 아무런 말이 없다. 발표된 글 때문에 시작을 못하는 것일까.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발표된 글 때문에 시작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들에게 유예된 시간?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 것 같아서 움찔한다. 그런 구절을 들었다. 생각해 보니 학부 때였다. 우리 과에는 아직 없던 여성문학 강의가 독문과에 있었다. 그때 담당 여교수는 이름부터 전투적인 『계급과 사랑』 같은 작품들은 간략한 소개로 끝내고는, 잉에보르크 바흐만이라고 하는 작가에 몰두했다. 「유예된 시간」으로 혜성처럼 나타난 독일어권 최초의 매체용 작가라고, 전후 50년대에 문학계의 스타였다고. 그러나 시는 시작 줄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교수님이 더 많은 설명을 곁들인 바흐만의 후반기 소설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스타처럼 사적인 불행과 비극적인 죽음이 곁들여진 - ‘곁들여진’은 되돌릴 말이다, 이렇게 모독적인 단어들은 지워 마땅하다 -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졸업 후 파리로 직행한 나는 센 강을 보면서 가끔은 바흐만의 첫사랑 첼란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가 그 강물에 몸을 던졌다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루마니아 태생으로 파리에 살며 독일어로 쓰는 시인 - 시는 심오하다 못해 해독 불능이라고들 했다. 두 시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죽었다. 따로 먼 데 떨어져서, 자살 그리고 자살 같은 죽음으로.

그런데 막상 시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인터넷을 뒤진다. 유명한 시라서 금방 나온다.

훨씬 모진 날들이 온다, / 이의신청에 의해 유예된 시간이 / 지평선에 뚜렷이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제와 그 시의 제목이 갑자기 떠올랐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시를 표절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배승한의 메모들을 표절한 것도 아니었고. 다만 내 글의 출발이 그의 가족사를 정리하는 데서 비롯된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내 손이, 머리가, 그의 메모들에 사로잡혀 있을 동안 그는 멀리에 나와는 무관한 세계에 있었다. 내 곁에는 교양한국어를 듣는 학생들과 가끔 전화를 하거나 불쑥 나타나는 이순규가 있었을 뿐이었다.

세상에!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쓰다니. 난 정말 혼자였음을 실감한다. 나는 일자리를 이유로 가족들과도 멀리 떨어져 홀로 혼자서 살아왔다. 홀로 혼자서 - 이런 개념은 파리의 유학생활 이후로는 퍽 자연스럽다. 어떤 연관에도 불구하고 삶은 홀로 혼자서다. 어떤 의미에선 구원을 갈구하면서. 결과적으로 불가능한 구원. 부재의 구원을.

 

구원 같은 것, 사실 우리는 그것을 이웃에서 찾지 못한다. 그 이웃도 구원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멀리 있는 타락한 - 노동도 질서도 모르고 때로는 가족도 모르는 - 어쩌면 조금은 미친 사람들의 예술에서 구원을 찾는다. 정상적인 삶 속에서 예술혼이 불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외도 있었지만 그건 옛말이다, 폴 클로델이나 괴테나. 실제로는 광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던 경우가 더 많다. 물감이나 테레빈유를 먹는 정도는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귀를 자른 이야기에 이르면 으스스하다. 여행 혐오증은 취미라 볼 수 있지만, 씻기 혐오증은? 예술가들에게서는 도덕 또한 평가를 비켜간다, 다분히. 랭보에 집착한 베를렌, 수많은 카사노바 행각들. 그들의 광기는 비난받기보다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예술로 인해서. 예술이란. 예술이란.

광기 한 톨, 앙 그랑 드 폴리 - 그것은 예술에 있어서 최고의 것이라고, 고호가 동생 테오에게 그렇게 썼다. 폴 망츠의 <살롱 전> 비평문에서 비슷하게 인용해서. 그때가 서른두 살, 그리고는 겨우 5년 간 미친 듯 그렸고 가슴에 총을 쏘았다. 미쳐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도 귀를 잘라버린 이듬해 봄까지 그렸다.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 밤을.

안락하고 안정된 삶을 위한 정직한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먹이는 데 그친다. 우리를, 인류를, 구원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안락하고 안정된 삶은 이론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안락하고 안정된 삶을 방해하고 얻는다. 재화가 한정된 이 세상을 떠올리면 그렇다. 또한 그 과정의 살얼음판, 그 외나무다리는 늘 불안하고, 그만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기는 웬만한 철학으로도 어렵다. 뛰어내림은 자살이다. 그 사이에 광기가 자리한다. 조심조심 인내심을 가지고 걷기 아니면 그냥 뛰어내리기. 그렇다면 광기는 예술이다. 다음 발걸음을 좁은 길 위에 조심조심 내려놓기와 넓은 공간으로 몸을 던지기, 그 사이의 시간. 유예된 시간. 예술의 시간. 시의 시간.

순간 갑자기 그 이해하지 못했던 시구가 해명된다. 훨씬 모진 날들이 온다. / 이의신청에 의해 유예된 시간이……. 그건 별로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판결이 완료되지 않았을 뿐, 처벌은, 힘든 날은, 예료되어 있다는 상황 아닌가. 물론 그 시에서 ‘모래가 연인의 죽음을 묻어버리는’ 혹독한 시련의 삶에 관한 이해도 부족했었다. 하지만 ‘유예된 시간’이란 단어를 어찌 그리 오래도록 이해할 수 없었던가. 혹독한 처벌의 운명, 이라고 했다면 쉬웠을 것을. 유예된 시간이란 참 고상하면서 어려운 말이었다. 시는 어려운 말로서 사람을 매어두는구나.

예술의 시간은 아니되, 내게도 그러한 유예된 시간이 와 있었다. 나는 소포의 개봉과 소포 발신자와의 만남 사이 유예된 시간을 왜곡된 자학으로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먼저 봉투를 뜯을 것인가. 그가 먼저 연락을 할 것인가. 정당한 게임은 아니다. 그는 소포의 존재를 아마 모르니까.

유예된 시간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자 매력이 사라졌다. 해치우자.

저 한금실이예요. 소포가 저에게 …….

저 한금실이예요. 보내시려던 소포가 저에게 …….

저 한금실이예요. 뉴욕에 버려두고 오신 소포가 저에게 …….

‘보내려’ 했었는지 ‘버리려’ 했었는지를 모르니 단어를 고르기가 어렵다.

저 한금실이예요.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래도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소포라는 단어를 피해서 썼다. 이번에는 <전송> 위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어쩌자는 말인가. 입력된 문자들을 주르륵 지우고 만다.

 

금세 가을이 깊어졌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9월이 사라지고 말았다. 가을은 경계의 계절이다. 더위와 추위의 권력 다툼 덕에 일교차는 있더라도 보통 상쾌한 날들이 이어진다. 유래 없는 청백 하늘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쪽은 완전 흰 구름으로 다른 한쪽은 완전히 파란 하늘색이었다고. 하늘까지 양분돼서는 안 될 터다. 그렇게 양분된 땅의 세상은 이미 고정되어 석회로, 시멘트로 굳어 있는데.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은 완전 늦잠이다. 먹지 않으려고 일어나지도 않은 채 노트북을 끌어다가 뉴스를 뒤적인다.

국내 최고가의 아파트 값이 나온다. 면적은 192.86㎡로 가격은 65억 원. 단위환산에 넣으니 58평이다. 한 평에 일억 원이 넘는다고? 나는 내 셈이 틀리기를 바란다. 그 비싼 너른 집들에 누가 살까? 그런 곳에서는 부모 모시고 대가족이 사는 일이 드물다. 불효여서가 아니라 그들 차원에서는 아무리 넓어도 한 공간에서 부모 자식 세대가 겹쳐서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생활이 더 있는지도 모른다. 세련된 감각도 보통사람들 보다 훨씬 더 예민해서 서로를 더 존중해서 따로 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는 90평도 있다. 런던에는 2,500억 펜트하우스도 있다. 일억 원 하는 집 2,500채와 맞먹는 한 채. 이런 기사들에 아픈 나는 좌빨이 아니다. 이 구조와 셈법을 의아해하는 멍청이일 뿐이다.

보자, 최저가 아파트도 있다. 통째로 500만원이 못된다. 최저가 아파트 스무 채가 최고가 아파트 단 한 평 값만 못하다. 이 무섭게 저열한 인생이 차라리 부끄럽다.

하필 고흥이다, 이순규의 고향. 고흥 어디일까. 고흥도 넓다. 도화면이라고, 네이버 지도에 보니 도화면은 섬이 아닌 본토에 속한다. 이순규의 고향은 그보다 더 오지, 섬이다. 섬을 지나서 다시 섬. 연륙교와 연도교로 이어졌으니 섬 아닌 마지막 섬. 어쨌거나 나는 지금이라도 이 원룸 보증금을 들고 그곳에 가면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이상한 뿌듯함이 비굴함을 덮는다. 하지만 두 번 씩 시도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간다는 것을.

적나라하지만 아기를 상상했을까, 그때? 아기는 실체다. 실체를 향한 유예된 시간. 아뿔싸. 아기를, 아기 갖기, 아기 낳기가 유예된 상황이라니. 유예된 아기. 전제가 텅 비었지 않나. 내 난자가 어떤 정자를 잡아야 내 아기를…….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수학공식에 대입하면 정자는 뜬구름이 된다. 뜬구름으로서의 정자. 정자는 뜬구름이다. 은유법. 대표, 내 마음은 호수다. 내 마음은 은유다. 내 마음은. 그렇게 그에게 갔었다.

마음 다져 먹고 - 표현이 좀 이상한가? - 배승한의 소포를 닫아둔 채로 이순규를 향했던 것은 아마도 조바심 탓이었을 것이다. 여자에게 불혹은 불임과 동의어다. 그런데 그날, 밝다 못해 뜨거운 대낮에, 나는 자발적으로, 자동적으로 물에 빠졌다. 한 팔랑거리는 여자아이의 치맛자락을 따라서. 그리고 그가 오기 전인지 그맘때인지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둘 다 변을 면했다. 멀쩡했다는 아이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내가 의식이 없는 채로 앰뷸런스에 누워 큰 병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후로 이순규는 좀 어눌해졌다. 역사를 줄줄이 외던 달변은 어디로 갔을까? 섬에 살면서 어부를 하지 않는 집안 내력이 되살아났을까? 분명 자신에게로 오고 있던 여자가 만나기도 전에 물에 빠졌다는 상서롭지 못한 일에 짓눌렸을까?

무솨서 다시고롬 올라고 허지도 않겄제.

어른들의 말씀을, 이순규는 내게 그렇게만 전했다.

이태 전에 그가 작심하고 낙향했을 때에도 근심 반 걱정 반으로 대했더란다.

뭔 일이랴, 느그들이라도 나가서 터를 잡고 살어야 하는디.

여그서 어짤라고. 누가 여그까정 와서 산다고 그랴.

나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들의 걱정을.

뭔 마전이다냐. 처녀가 왔다믐서.

오면 뭔 소용이여, 지대로 왔어야 말이제.

뭔가 인연이 가당찬흔게 그랬겄제.

그려, 없던 일로 해사제.

근디 약혼자였당가?

아니 거까장은 모리고.

집안이며 동네 어른들은 겁을 냈을 것이다. 사고를 듣고서 하늘이 막는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우린 약혼자도 아니었고, 사랑은 더욱 아니었다. 선을 보는 문화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결혼 시장이 공공연한데, 왜 꼭 사랑과 결혼을 엮는지 모르겠다. 아이 낳아 기르는 데는 결혼만한 좋은 장치가 없다. 성적 충동과 겹치면 금상첨화겠지만, 건강한 젊은 남녀가 서로 웬만하면 가정을 이루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차피 오랜 사랑 기간을 거쳐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변함없는 나 - 그것부터 허구다. 하물며 누군가를 믿어 의지한다는 것은 치기다. 따뜻하고 듬직한 이순규는 참 괜찮은 후보감이었는데.

미운사위국이라는 매생이국, 우리 섬 특산인데요.

미운사위국?

안 이쁜 사위놈 오면 뜨거운 매생이국 끓여서 골탕 먹인다, 그 말이요.

사위가 미워요? 우리 제부는 아닌데.

요샌 더하지요. 사위는 그저 돈 잘 벌어다 앵기고, 집안일 잘 거들고. 뭣보다 마누라 말에 꺼뻑 죽어야하는데, 백점 만점 사위가 흔컸나요? 암튼 우리 섬엔 미운며느리국은 없으니까 안심하시요.

그는 이런 이야기들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했다. 산이며 숲이며 그 나무들, 300년도 넘은 잣밤나무 몇 백 그루, 둘이 팔을 벌려야 안는다는 동백나무들. 나는 어느새 나로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 봉래면에 발을 딛고 나서야 내가 난생 처음 이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배가 고파서 점심이 급했다. 잔치국수에 고춧가루 듬뿍……. 그제서 전화를 했고, 곧 물에 빠졌다.

 

금줄 - 산모가 있는 집에 쳐놓은, 숯과 가끔 고추도 달린 금줄 앞에 선 느낌이 이럴까. 나는 거부되었다, 그것이 그 느낌이었다. 금이 그려져 있으면 기어코 넘어가고 싶은 호기심도 욕구도 없는 나는 늙은이일까?

깨어났을 때, 다시 삶이 지속됨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래도록 색 바랜 병실에서 몇 년 전에 보았던 천지의 검푸른 물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회복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돌아서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환생의 기쁨보다는 책임감 같은 것, 또 한참을 살며 결정하며 그런 일을 되풀이해야 하리라는 막연한 지루함 같은 것이었다.

설마 내게 남은 다른 가능성으로서 곧 바로 배승한의 낡은 소포를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나는 스스로 우긴다. 몸이 거부되었다고 곧바로 맘을 쫓을 만큼 내가 양손에 떡을 쥐고 저울질하는 인간은 아니고 싶었다. 내가 남자를 찾아 섬에 갔다가 사고로 죽을 뻔했다는 것 - 그것을 풍문으로라도 그는 알고 남을 터였다. 작년 가을학기를 접었는데 모를 리 없다. 흉한 소문만 남기고 사라졌던 나를 두고 그는 어쩌면 일종의 마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개봉 못 하고 있는 소포뭉치를 감싼 아우라가 맴돈다. 황동규의 ‘어제를 동여맨 편지’같은 것일까? 단순히 유예된 시간일까?

우연히 마주친 농게로 하여 나는 나의 유예된 시간을 보았다. 농게와 내게 똑같은 의미의 유예된 시간을. 간장게장 속에서 살아나온 농게와 물속에서 살아나온 나. 대야 속의 농게와 원룸 속의 나. 나는 농게다. 농게는 나다.

사실 올 여름 농게는 사건이었다. 승연이 승주는 처음 얼마 동안은 거의 날마다 분농이 소식을 전했다. 바닷물 농도를 맞추려고 책을 찾아서 3.5% 소금을 넣었다는 자랑이 생각난다. 제부는 3.5%를 정확히 맞춰줄 사람이다. 주먹보다 큰 돌도 두 개나 넣어주었다고 그랬다. 숨기도 하고 또 물에서 나오고 싶을 때 나와 있으라고.

내게 필요한 산소 농도를 맞추려 애쓰는 사람은 없다. 내 방에 들어오는 공기에는 가깝게는 아래층 남자의 담배와 누군가의 찌개 냄새가 묻어든다. 창문 아래 자동차 매연의, 멀리는 가축농장의 오염물질로 적셔진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산소 농도에 무심하다. 그러니 분농이만큼도 보살핌을 못 받는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그보다 우리 모두가 은접시 위 치즈 덩이 속에서 생성된 진드기들의 운명은 아닐까? 지구 째로 우리를 삼켜버릴 거인은 원전 폭발일까? 억눌린 사람들의 자폭일까? 오늘날 잘나가는 신자유주의 자유시장경제 맹신자들도 포함될까? 우리에게 유예된 시간은 얼마일까? 유예된 시간이 있기나 할까? 나는 불혹이 되도록 살아보지도 못한 나의 삶에 대한 염려를 넘어서 인류를 걱정하는 오지랖으로 빠져든다. 비혼여성세입자, 대한민국 400만 넘는 1인가구의 한 사람으로 최저생계비 월 61만7281원을 벌어야 하는 코앞의 사실을 잊다니.

아서라, 자기연민은 최악이다. 털고 일어나자. 살아있음에 탄식도 한다. 살아있음에 먹이를 탐한다. 기상을 하지 않아도 깨어있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 나는 더위와 추위와 배고픔 등 감각의 총체에 불과하다. 흄의 말이던가.

바깥의 흐릿한 해가 따뜻한 빛으로 변해있다. 시간이 한참 되었다 싶다. 그만 이불 속에서 나와서 아점을 해결하려다 분농이 생각이 난다. 다시마를 정말 먹을까? 두 달인데, 아직 살아 있을까? 독감방에서 교도관이라도 그리울 완벽한 홀로서기, 아니 홀로 기기. 일단 사형집행에서 풀려났으니 행복해할까? 유예된 시간을 설마 원망할까? 물도 먹이도 있으니까 지루한 시간에 사색도 철학도 하지 않겠는가.

물을 끓이면서 안부문자나 넣을까 싶어 폴더를 연다. 아차, 거기엔 오다가 만 문자가 들어있다. 한금실 샘, 저 배승한입……. 단 한 줄만 뜨다가 사라진다. 뭣 하러 이름 부르느라 이름 소개하느라 겨우 보이는 한 줄을 다 써버린단 말인가. 메모리관리자가 말한다, 메모리가 부족합니다…….

풀더폰이라서 문자 수신 못 했슴다. 설마 그런 답을 쓸 수는 없다, 이 유예된 시간의 끝에. 무심한 폰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푸른빛을 내뿜다 사라진다. 또 하나의 금줄을 느낀다.

 

『한국소설』 2015-1-186호 139-156쪽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12. 21. 12:01
2014년 겨울 - 광주문학상

 

광주 사람으로 뒤늦게 광주문단에 들어와서 한껏 기쁜 상이어야 한다.

하필 헌재의 비민주적인 판결이 있는 날이 아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니, 하필 2014년에는 아무 것도 마음 놓고 즐거워할 수 없다.

 

주눅이 들고 문학이 뭘하랴 싶어서 불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준비해 간 소감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사진들 : 시상식 (시인 이보영이 찍어 준), 시인 이보영과 함께,

            그리고 뒷풀이 카페에서 소설가 김다경과. 

 

수상소감 

 

무작정 문학소녀이던 시절, 중3때 교지에 시를 발표한 것이 첫 작품이었습니다. 멋을 부려 「무제」라고 썼는데 내용은 백지처럼 하얗게 바래버렸습니다. 소녀의 눈으로 보아도 너무 유치했기 때문에 시인이 될 자질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할 일없이 닥치는 대로 소설들을 읽다보니 결국 소설들을 파먹는 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내몸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 순간에 -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글을 쓰자.

정신이 그곳으로 쏠리다보니 나머지 정년을 기다릴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내 나라 우리들의 이야기를 쓰자고.

그런데 우리들 세상이 점점 녹록치가 않습니다. 위방불입, 난방불거 -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거주하지 말라시던 공자님의 가르침은 무용지물입니다.

우리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이 팔꿈치사회에서 - 독일어로는 경쟁사회를 팔꿈치사회라고 합니다 -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들의 뇌세포는 주판알을 튕기느라 피범벅이 되어가고, 초등학교 아이들도 불행하다는 나라에서 글쟁이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다만 꿈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한, 인생은 늘 불발입니다. 그러니 더욱 씁니다. 불발에 대해 성찰하고자, 성찰이 오히려 발을 묶는 모래주머니가 되어 실인생을 더욱 무겁게 짓누를지 모르는 일이라 해도 씁니다. 제가 쓰는 소설도 계속 불발입니다.

예술적 성취를 포기하더라도, 함께 불발인 인생들과 공감하는 방식으로서 쓰겠습니다. 그러라고 이 상을 주신 것으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준비해 갔는데 말하지 못했다.

그저 오늘, 하필 오늘,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십니까... 만 되풀이 하다가,

예술적 성취를 포기하더라도, 함께 불발인 인생들과 공감하는 방식으로서 쓰겠습니다... 만 말하고 말았다. 위방불입, 난방불거 - 이런 말을 못했다.

어디서 이나라를 어지러운 나라라고 하느냐! 그렇게 누군가가 위에서 호통을 칠 것이 무서웠다.

비겁했다. 무엇이고 해내는, 자의적으로 해내는 나라가 무서웠다. 아이들이 사는 나라가 무서웠다. 어디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무서웠다. 권력은 미래가 크게 걱정 없는 늙은이들도 주눅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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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12. 21. 12:01

2014 PEN 겨울 이야기 3 -

제30회 PEN문학상 문학활동상 수상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다.

내가 수상자가 된 PEN한국본부 일이다.

기분 나쁘고 좋은 상, 언감생심 PEN소설문학상이 아니므로.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가 PEN문학활동상이다.

부산과 광주 공동 수상으로 영호남 문학인 교류가 큰 이유일 것이고

광주는 한영대역으로 작품을 싣는 연간집과 PEN광주 올해의 작품상 신설 등이 이유일까. 

 

아래는 멋진 붓글씨로 대신한 상금:

 

 

 

 

 

 

소감 - 국제PEN한국본부 (제출용)

 

PEN - 어줍잖은 외국문학 공부로 헤매던 시절부터, 뒤늦게 내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자마자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문인들의 품 PEN에서 상을 받습니다.

이 느낌은 처음 공식적으로 소설가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의 느낌 그대로입니다. 다만 그때는 무더운 여름 하늘에서 내리는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 같았고, 이번에는 포근한 눈송이 같음이 다를 뿐입니다.

고백하자면, 마음은 처음부터 PEN회원임을 즐겼습니다. 78차 경주 국제PEN대회에는 소잉카를 만나려고, 오지도 않은 파묵을 만나려고 달려갔습니다. 시인도 아니면서 영시낭송에 억지로 끼었습니다. 그것들을 정열로 오해받아 광주지역위원회 회장에 떠밀려 허둥댔던 시간이었습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주연배우가 다리를 삐어 느닷없이 대역을 하게 된 배우처럼 겨우 고향 문단에서도 벅찹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니 기쁨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PEN광주 회원들의 따뜻한 협심입니다. 『국제펜광주』 12호에 시와 수필 전 작품을 한영대역으로 싣는 일에도 정성을 모아주었습니다. 올해로써 11회가 되는 ‘국제PEN광주문학상’에 더해서, ‘국제PEN광주 올해의 작품상’을 신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오늘의 모든 영광을 전임 회장단을 비롯한 PEN광주 회원 여러분에게 돌립니다.

나마스테!

 


실제 소감 -

소설을 쓰는 서용좌입니다.

언감생심 PEN소설상은 아닐지라도 PEN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상을 받게 되어 무한히 기쁩니다.

제가 소설을 쓰기까지는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중 3때 교지에 시 한편 발표해놓고 너무 시시해서 일찍이도 펜을 접었으니 말입니다. 너무 일찍 유화를 배우다가, 화집에 나오는 유트릴로의 하늘색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음을 절망하여 붓을 꺾은 다음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릴없이 소설들을 읽다가 그것이 전공이 되었습니다.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몸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글을 쓰자.

PEN은 어줍잖은 외국문학 공부로 헤매던 시절부터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문인들의 품 이었습니다. PEN에서 상을 받는다는 느낌 - 그것은 처음 공식적으로 소설가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의 느낌 그대로입니다. 다만 그때는 무더운 여름 하늘에서 내리는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 같았고, 이번에는 포근한 눈송이 같음이 다를 뿐입니다.

고백하자면, 마음은 처음부터 PEN회원임을 즐겼습니다. 78차 경주 국제PEN대회에는 나이지리아의 소잉카를 만나려고, 오지도 않은 터키의 파묵을 만나려고 달려갔습니다. 시인도 아니면서 영시낭송 프로그램에 억지로 끼었습니다. 그것들을 정열로 오해받아 PEN광주지역위원회 회장에 떠밀려 허둥댔던 시간이었습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주연배우가 다리를 삐어 느닷없이 대역을 하게 된 배우처럼 겨우 고향 문단에서도 벅찹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니 기쁨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PEN광주 회원들의 따뜻한 협심입니다. 『국제펜광주』 12호에 시와 수필 전 작품을 한영대역으로 싣는 일에도 정성을 모아주었습니다. 올해로써 11회가 되는 ‘국제PEN광주문학상’에 더해서, ‘국제PEN광주 올해의 작품상’을 신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오늘의 모든 영광을 전임 회장단을 비롯한 PEN광주 회원 여러분에게 돌립니다. 나마스테!

 

 


 

이렇게 하지 못했다. 열 네 번쨰 수상소감은 어정쩡했고, 추웠고, 모두가 끝을 기다리고 있었다.  "듣기 좋은 노래도 석자리 반이라는데.... 라고 한 다음에 언감생심 PEN소설상은 아닐지라도 PEN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상을 받게 되어 무한히 기쁩니다.... 그 다음엔 왜 PEN광주냐 라고 의아해 하실 분들을 PEN광주 소개로 그쳤다.

이사장은 소설이나 시 본상은 아니라 해도 두 회장 모두 창작에 진정으로 임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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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12. 21. 12:01
2014 PEN 겨울 이야기 2 -  PEN광주 문학상 

 

수상자: 오인철 희걱작가, 김정희 시인

신설 올해의 작품상: 정태헌 수필가 

 

12월 12일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있었던 이 문학상 시상직을 주관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 하나:

신설된 올해의 작품상은 전 회장 김영관 교수(희곡작가)의 상금 출연으로 시작되어,

초대회장 김종 교수(시인, 화가)의 그름 출연까지 아름다운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프로그램:

 

 

 

 

 

 

 

 

  사진: 축사를 하는 강만 광주문협 회장, 오인철 김정희 정태헌 수상자들,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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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12. 21. 12:01

2014 PEN 겨울 행사가 이어졌다  - 『국제펜광주』 제12호 탄생

 

엄청 대단한 편집국장: 서연정 시인

표지 그림 : 김종

출판사: 디자인 감

 

시와 수필 46편 한영대역이 특징이다.

번역과 윤문은 주로 전남대학교 언어교육원 '원어민영어회화' 담당 선생님들이 맡았다.

특집으로는 고 범대순 시인 조명, 문순태 교수, 김종 교수, 박연성 대우교수의 글이 실렸고,

그리고 언제나처럼 류명선 회장을 포함한 펜부산 회원 작품들.

 


 

 

 

 

 

 

 

2014. 10.18. 서구문화원, 편집회의

서연정 편집국장, 김정희 사무국장, 나, 박판석 부회장님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12. 21. 12:01

 

화학반응

 

널따란 침대 이쪽저쪽으로 링거 줄이 걸려있다. 훤한 낮 시간에 침대에 누워서 링거액을 맞고 있었을 노부부는 평범하고 유복한 노년의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 다르다면, 노인들의 안방이라고 하기에는 꽤 너른 공간에 가구 또한 세월을 묵힌 때가 없이 성글다.

영감님이 손님들을 맞아 안내하는데, 그 얼굴을 아내 쪽으로 향하면서는 입이 귀에 걸린다.

임자, 팔은 안 아프고? 여기 이종동생네 가족들, 또 고향에서도 모두 왔소!

…….

아내 쪽은 대답도 않는다.

임자, 괜찮으냐고?

그래도 대꾸가 없자 살그머니 아내의 몸을 흔든다.

자, 어디 이쪽으로 좀……. 친척분들 오셨는데 눈인사라도 좀…….

그제야 눈을 슬며시 뜬 아내는 느닷없는 하품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왜, 어디 소화가 안 되나?

할아버지의 극진한 보호를 받는 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이종언니시다. 오늘 이 댁을 방문하게 된 건 순 억지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는 이 할머니의 고향사람 두 분을 터미널에서 어머니가 만나서 이리로 와야 하는 일인데, 내가 덤터기를 쓰게 된 것이다. 한번 안 올래? 혹시 올라올 일 없냐고!

자잘한 말씀을 별로 안 하시는 어머니가 모처럼 원하신 일이었다. 우리 금실이 그쪽 사람들 함께 성남에 내리면 엄마가 얼마나 수월할까. 금실이라고 부르시는 소리에 마음이 움찔했다. 그래, 핑계 만들지 말자!

나는 동행할 두 사람을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안내데스크 앞 9시! 어머니가 주시는 번호로 미리 전화를 걸어서, 무슨 접선마냥 내가 새파란 배낭을 지고 있기로 했다. 파란 배낭요, 아주 새파란!

성남 터미널엔 어머니가 미리 와 계셨다.

오시느라 애쓰셨네요, 새벽부터 나서셨겠네요!

아이고, 사돈양반, 제가 금월서 온 질부예요. 우리 어머님이 못 오신다고, 대신 자세히 만나보고 오라셔서.

첨 뵙는디, 선상님 모녀간 신세를 지네요잉. 지는 순창 매우리서 온…….

예, 뭐. 우선 간단히 식사들을…….

어머니가 반가운 전화를 받으셨나보다. 조금 싱글거리시며 택시가 아닌 주차장으로 향하신다.

아버지가 오셨다, 생각도 안 했는데. 인사 겸 함께 가시겠다는구나. 넌 집으로 바로 갈래?

대답 대신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아버지가 보였다. 한박사, 애썼구나. 자, 한박사가 옆에 타라!

판교 집은 부자들이면 찬란한 아파트에서 살리라고 무심코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냥 깔끔하고 너른 주택이었다. 어색한 수인사를 마치고 여자들은 할머니의 침대 곁에, 아버지는 주인 할아버지를 따라 거실로 나가셨다. 나도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방에 남았다.

이 판교할머니는 어머니와 왕래는 거의 드물었다고 한다. 한참 떨어진 나이도 그렇지만 어머니의 큰이모,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큰언니가 멀리 떨어진 담양이라는 곳으로 혼인을 했으니 그럴 밖에. 그 딸인 이 할머니는 거기서 자랐고 가까운 순창이라는 곳으로 시집을 갔고 한평생 무탈하게 거기서 살았었는데……. 그런데 어찌 보면 다 살고 나서 느닷없이 기이하게 이사를, 정확히는 엉뚱하게 신도시 판교에 새살림을 냈다고 하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간에 누구라도 다녀와서 속내나 알아두자고.

개가라고요? 개가는 무신!

그럼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네가, 아무리 혼자됐다지만. 자식들은 어떻게, 뭔 생각들을…….

첨엔 말들이 뒤숭숭했지라. 큰딸이 즈 어머니 모셔갈 사람 없으믄 막지 말고 내부두자 그랬다요. 가들도 거자 환갑 줄에 안겄제, 즈 자석들 치다꺼리에 심들 때 아녀라.

그렇다고 어머니를 팔자 고치라고…….

무슨 팔자를 고쳤다 그라요. 그냥 두 양반이 모타 산다요.

그래도 정식으로 모셔 갔으니까는.

허기는 나라도 늑발에 첫사랑이 손 내밀믄 따라 가겄소. 게다가 여 양반이 정신이 온전허들 못허잖소. 온전치 못헝께 판사아덜도 각시 눈치보니라 못 데리가고 딸들도 막상 친정 어메 못 데리가제. 그 참에 딱 허니…….

여기 사장님은 진작 혼자되셨던가요?

암만, 그짝도 상처허고 혼장께 가당체. 거그도 큰아덜은 공장인가 회산가 다 대물려 허고 둘짼가 셋짼가 또 뭐시냐 의사아덜도 있고 다 잘 되얐다요. 그래도 아부지가 첫사랑 아픈 양반 데리다 산다는디 먼 말 없었당께 효자들이제. 허기사 돈 있으믄 다 효자 받어라. 즈그도 홀아부지 모시다가 아부지가 아부지 돈으로 새 세상 산다는디 뭐시라 하겄소. 긍께 우리가 와보기를 잘 했소안. 솔직히 말혀서 고향서는 긴가민가 허는 사람들도 있었어라. 가문 말허는 사람들도 있고, 안 그러겄소? 다 묵은 밥에 코 빠친다고들도 허고.

이웃에서 일도 봐주고 오래 살아서 ‘참 형지간같이 살었어라’ 하는 매우리 할머니가 속내를 잘 안다고 하는 말에 다들 좀 어리둥절했다.

이야그가 길어라. 여그 김 사장님이 일 년에도 몇 번 씩은 그짝 고향에 들리고 그랬다요. 글다가 여 양반 소식을 듣고는 그냥 자석들한테부텀 상으를 혀갖고. 아, 요양병원 안 가고 여그로 왔응께, 우리가 한번은 꼭 봐야헝께. 글고 나보담은 올라올 수 있으먼 올라와서 함께 살자고 허는디 참. 여그 시방 일허넌 아짐은 낮에만 오고 밤엔 봐줄 사람이 없디야. 나도 자석들하고 상의를 혀야…….

영문도 모르고 들은 긴 이야기엔 첫사랑 소리만 있었지 내용은 없었다. 매우리 할머니로선 결혼 이후의 그쪽 생활만을 아는 때문이었으리라. 이른 저녁을 준비해 내놓고 부를 때까지 무슨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정작 마나님은 링거액이 끝나자 뽀얀 얼굴로 일어나더니 아장아장 화장실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고모님, 저예요. 순석이 각시, 금월 조합장 동생네 큰며느리라고요.

언니, 저 명순이, 박실이 이모네 명순이 모르겠어요?

…….

가늠이 안 되는 양 반응이 없자 순창서 온 할머니가 얼굴을 들이 밀었다.

지 성구어메라우, 매우리 사는 방촌댁, 성구어메.

성구…….

시상에. 성구어메를 모리면 진짜 암껏도 모리는구먼. 워쩌다가 이려.

콧잔등을 씰룩거리는 품이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 저리 사람을 몰라본다면 치매라는 말이 맞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빤히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깨끗한 노인네가 그렇게 고약한 증상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러더니 몸을 앞뒤로 흔들며 자장가 같은 무슨 곡조를 흥얼거렸다, 콧소리로.

에고, 옛날에 금잔디가 다 뭐라냐…….

옛날에 금잔디는 저녁상에서도 여전했다. 노마님은 밥을 먹다 말고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곁에 앉은 영감님이 손을 잡아주면 잠시 그쳤다.

두 손들은 너른 그 집에 짐을 풀었다. 당일로 다녀가기엔 힘든 거리였으니까.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머니는 이종언니의 옛날이야기를 흘렸다.

소문이 나자마자 난리가 났었다 하더라고. 오죽하면 단김에 시집을 보내버렸을까. 학교 다니던 중에 그냥, 것도 산 너머 순창으로 보내버렸다더라고. 저 김 사장 어른이 그땐 볼품없는 집안에서, 아버지가 없음 다 그렇지 뭐, 무지 고생하고 살았다지 아마. 나이도 더 어리고.

첫사랑이 뼈아픈 이별로 끝났다고 해서 한 세월 다 살고서도 그게 유효할까요?

보고도 그러냐, 금실아. 정이 뭔지, 한번 진짜를 줘버리면 그 구멍이 평생 가는가 보다. 아버지가 불쑥 말하셨다.

상대가 잘 몰라도요? 치매든 아니든 어쨌든 잘 기억도 못하고……. 설마 죽어버린 뒤에도요?

거기까지야 알겠냐. 한박사가 연구해 보렴.

 

 

나머지 이야기는 연구가 아니라 아버지를 통해서 얻어들은 파편들이다. 오후에 두 분이 나눈 이야기들의 조각을 맞춰 본다.

그렇지만 맘이 두 갭디다. 향연이 아프단 이야기 듣고는 내가 홀애비 된 게 천만다행이다 했으니 몹쓸 놈 아뇨?

그렇게까지야.

옛날에 금잔디는 잊을 수 없는 가락이요, 나한테는. 그 옛날, 단 한번 용소까지 함께 산길을 걸었던 날. 바위 위에 앉은 향연이 이상한 노래를 부릅디다. 북망산 수풀은 고요타 매기, 영웅호걸이 묻힌 곳, 흰 비석 두러서 적힌다 매기, 아 우리가 놀던 곳, 고운 새들은 집을 짓고 어쩌고. 나중에 알게 된 그 노래는 다른 가사던데. 한선생도 아시다시피.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 아 내 희미한 옛 생각 지금 우리는 늙어지고 매기, 머린 백발이 다 되었네, 그렇게.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향연은 북망산 어쩌고 라고 불렀으니.

그건…….

예. 윤심덕이 그리 불렀답디다. 윤심덕도 매기도 죽고 없지만, 어쨌거나 향연은 살아 있잖았소. 고향 갈 때마다 바람결에 듣는, 들어 모아지는 향연의 소식, 소식들. 이른 나이에 시집갔지만 넉넉한 집안에서 아들 딸 잘 낳고 잘 길러서 성공들 하고……. 멀리서 부는 훈풍이거니 하다가도 아린 솔잎처럼 쑤셔댔다가. 그러다가 연전에 혼자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커덩했지요. 그래도 차마…….

차마.

내 가정을 되돌아보았지요. 속절없이 새로이 시작했던 인생. 아니 ‘새로이’라는 말은 말이 안 되지. 원래의 인생을 시작한 적도 없었으니까. 더 말이 안 되는 건, 원래의 인생이란 게 대체 뭐겠소? 수수하고 단단한 아내. 깐깐하게 키워낸 자녀들이 눈앞에 얼씬거렸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길다면 길고 단출하다면 단출한 인생이었소.

 

 

아니, 안되겠다. 정리를 삼인칭으로 해서 이야기에 객관성을 주자.

김 할아버지, 김덕숭의 고향 금월마을은 금강수란 이름의 못을 두고 뒷산이 반월형으로 되어 있어서 금월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은 농가마을이었다. 인근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흘러 흘러 황해로 입수될 영산강이 제법 물길을 갖추기 시작한 평지에 있어 농사는 잘 되는 편이었다. 지금은 바로 담양 군청 옆에서 시작된 옛 24번 국도를 따라서 금월교까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조성되어 제법 알려진 마을이었다.

그는 그 길에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진 것이 70년대였다고 기억한다. 그가 사십을 바라볼 때였으니까. 자라면서 나무 몸통은 회색빛에 모양새 또한 부자연스러운 삼각형 모습을 보면서는 왜 하필 이런 수종을 심었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해 가을 불그레한 갈색 단풍을 멀리서 보는 순간 숱 많은 붉은 머리카락의 그녀가 떠오르면서 메타세쿼이아는 어느덧 추억의 시발점이 되곤 했다. 이제 사람 열 길, 아니 스무 길도 넘어 보이는 나무 꼭대기를 보면서 푸른 봄에도 가을의 붉은 단풍 머리카락을 생각하곤 했다. 그의 나이 일흔도 훌쩍 넘어 대머리가 된 걸 아랑곳 않고. 아니, 그녀의 붉은 숱 많은 머리카락도 성긴 백발이 되었을 틀림없을 사실 따위는 그는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다 이른 봄 잎겨드랑이 가지 끝에 달려 밑으로 늘어진 꽃에서 스무 남은 개의 수술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벌써 가을의 붉은 단풍을,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을 떠올리는 형국이었다.

그날도 한식날을 맞아 고향을 찾은 김 옹은 바람결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른 봄이지만 팔각정 경로당에 나앉은 어중간한 늙은이들의 잡담이었다.

금과 마나님이 치매기가 있다네.

여그 참봉 댁 손녀 말여?

엉, 부잣집 며느리되어 갔다가 인자는 판사님모친에 뭣이 부족혀서 참.

설마 그 고운네도 치매라던가.

일흔 넘어 고운네가 어딧당가. 옛 말이겄제.

무슨 소리. 한번 해병대믄 죽을 때꺼정 해병대고, 한번 미녀믄…….

죽을 때꺼정 미녀라 그건가.

그렁께 그것이…….

덕숭을 힐끗 거리며 분위기를 띄우는 양이 소싯적 동티를 나이 들어도 잊는 법이 없는 동네가 맞다. 한마디로 어떤 홀어미 자식과 풋사랑에 빠진 마을 부잣집 고녀생이 억지 혼인으로 산 너머 순창으로 시집을 가게 된 사연 말이다.

덕숭은 가슴을 쥐어 잡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향연이 혼자가 된 것도 모자라 치매에 걸렸다고?

그가 부르르 떨자 중늙은이 하나가 놀린다.

케미. 이건 케미다. 야, 케미에는 나이가 없소 그랴.

케미? 그거이 뭔 소리?

케미도 몰르요, 이 양반들. 나이 묵는다고 테레비도 헛것으로 보남.

긍께 거이 뭐냐고!

그거이 우리말로 하믄 화학이라고, 우들도 농업학교에서 화학이 뭔가는 배웠제. 아니 화학비료다 그라믄 알지 않남.

화학비료 말이 여그서 왜 나와?

화학이라는 것이, 가만있자, 학교에서 말하는 것 말고, 여그 있네, 우리 김 사장 형님 사업해온 것 있잖은가, 화학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것들을 죄다 화학물질이라고 하잖던가.

화학물질 그런 것이 여그서 왜 나오냐고.

참도 급한 사람.

긍께 들어 보자고.

그 화학물질이 서로 붙으거나 떨어지는 - 아니 다시. 한 개 물질이란 놈이 다른 물질하고 작용을 혀서 생판 다른 물질로 변허는 것을 화학반응이라고 허는디.

허는디?

물질이 두 개가 만나믄 서로 파괴허거나 서로 결합혀서 어떤 다른 물질로 변허는디.

파괴허고 결합허고.

조용, 좀 들어 보장께.

요즘 애덜 말로 화학반응이라고 허면 남녀가 죽고 못 살게 붙어서 반응을 일으킨다 뭐 그런 것 말이라네. 케미는 화학이란 영어를 줄인 말인디, 어디 요새 애덜이 제대로 말들 허남.

자네랑 나랑 케미다 그라믄 동티났다 그 말이라고?

왜 자네를 거 갖다 붙이나. 좋게 내 첫사랑 찍어 말하제.

첫사랑 - 그 말에서 모두는 움찔거렸다.

덕숭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첫사랑이라고 말했다.

첫사랑이 요새 녀석들 말로 그 케미일 걸세. 화학적인 변화는 물리적 변화랑은 다르제.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 물리적 셈법이라면, 하나 더하기 하나가 도로 하나 되는 것이 화학적 셈법이네. 나 그거 케미 할라네. 두고 보소들.

그러고서 덕숭은 서둘러 자녀들을 불렀다. 아들 셋에 고명딸. 큰놈은 화학물질 사업 마다않고 이어 받았고, 둘째는 명문대 나와서 행시 준비하다가 안 되긴 했어도 썩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셋째는 지방 의과대학 나와서 의사다. 막내이자 고명딸은 사대를 나와서 선생을 작파했으니 아깝지만 오빠 친구랑 결혼해 잘 살고 있다. 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서 선언을 했다.

아부지가 새로 첫사랑이랑 살고 싶구나.

첫사랑이라뇨?

느그 어무니 삼년상 지난 지도 한참 아니냐. 나 첫사랑이랑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구나. 아프단다. 아파도 좋다. 얼마가 될 지 몰라도 그렇게 할란다. 그리 알아라.

이구동성으로 놀라는 아이들 앞에서 흔들림 없이 말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래, 케미였다.

아이들은,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중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지만,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 원래 자녀에게 부모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그냥 부모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 늙으신 아버지에게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도 믿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그 비슷한 것이 옛날 옛날에 있었다 하더라도 세월이 언제인가. 자녀들이란 그렇게만 생각한다.

그랬다, 덕숭은. 그 옛날 배밭 일 도우며 야간중학에 다니던 시절에 한번 내동댕이쳐진 이래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살아왔다.

단기 4287년 - 1954년이겠으나 그때는 아직 서기를 쓰지 않았다 - 의 일이었다. 그의 나이 열여섯. 아버지는 사오 년 전 전쟁이 날 무렵 벌써 집에서 떠나갔다. 아버지가 떠나신 정확한 날도 알 수 없었다. 여름이 들어 부쩍 바빠지셨던 아버지를 볼 수 없는 날이 많더니, 그해 가을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느낌으로 덕숭은 아버지가 오시지 않으리라 알았다.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아버지 진지를 담아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제사를 지내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한 아버지가 집에서 금기의 대상이라니.

크게 달라진 일은 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 묘가 있는 밭 뙤기에서 짓는 밭곡식으로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국민학교를 마치기 전이었으니 중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도 이 년을 늦게 야간중학교에 라도 가게 된 것은 마을의 대부이자 향연의 조부 참봉님 덕이었다. 참봉의 눈에 든 몇몇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향연은 참봉의 후대라서 그냥 참봉 댁이라 불리는 그곳, 동네에선 대궐집에 살고 있었다. 별표나 거북선표 검은 고무신 하나로 일이 년을 버티던 당시, 그것도 닳아서 맨발로 뛰던 동네 소년들의 눈에는 하얀 동그란 코 구두를 신은 향연은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만 같았다. 어쨌거나 액자 속의 그림이라거나 아무튼 근처에도 갈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이었다.

그러다가 성적표를 받아들고 참봉 댁을 찾아가 인사를 하는 날, 덕숭은 향연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마침 여학교 교복 치마를 날리며 하얀 구두 뒤꿈치를 저으며 안채로 들어가던 뒷모습이었다.

조금만 빨랐더라면 옆모습을 지나쳐 볼 수 있었을 것을…….

덕숭의 걸음걸이가 마을 최고로 빨라진 것이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그날, 참봉 댁으로 향하던 길은 덕숭으로서는 학교에 가는 길이었고, 향연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서부터는 보았어야 맞는데, 어쩌자고 한 발짝 놓쳐서 지나칠 수 없었을꼬. 덕숭은 작은 키와 더 짧은 다리를 원망했다. 아니 범인은 해찰이었을 것이다.

덕숭의 해찰은 유명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속을 썩인 것들이 모두 그 해찰 탓이었다. 심부름을 보내면 갈 때는 곧잘 간다. 하지만 일이 끝나면 천방지축이 되곤 했다. 질퍽한 땅에서 튀는 개구리 한 마리를 따라가다가 물 반 땅 반에 고꾸라져 오거나, 구름 따라 간다고 야산 등성을 넘어가 길을 잃곤 했다. 중학교에 가자 상황은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학교에 지각하는 일은 농사일 때 말고는 없었다. 공부는 하고 싶어 하는 게 맞았다. 그것만이 돌파구요 희망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다가 향연을 만났다. 그녀가 돌아오는 길, 그가 나가는 길. 그 짧은 시간의 불꽃은 타오른 순간마다 전율로 요동쳤다. 다른 표현은 없다. 그런 것이 불꽃 아니라면. 스치기만 하고서, 다만 스치기만 하고서도 가슴은 터졌다.

수요일 하루는 조금 더 늦는 그녀를 길에서 만나고자 그제부터 덕숭은 야간학교 시간을 제 마음대로 맞춰서 나가곤 했었다. 빠르게 빠르게 늦게, 빠르게 빠르게 낮에. 스치고 마는 건 너무 아쉬워서 이내 뒤돌아 멀찌감치 따라가서 그녀가 대문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다시 학교로 향했다.

그랬다. 그러다가 그랬다.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고 떨었다. 눈이 마주치고 떨었고 알았다, 첫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헤어지고 눈에서 멀어졌어도 그 무엇은 타고난 재가 되어서도 불씨가 남아. 덕숭은 쪽지를 준비했다.

- 우리 산책 같이 해요, 누이. 일요일 2시, 용소정류장에서 봐요.

- 누이, 우리 용소에 가요. 일요일 2시, 용소정류장에서 봐요. 저 덕숭이가.

- 향연 누이, 우리 용소에 가요. 일요일 2시, 용소정류장에서 봐요. 저 덕숭이가.

또 쓰고, 또 쓰고……. 네모로 접을까, 연애편지라는 일곱 칠 자 모양으로 접을까.

멀리에서 향연의 모습이 보이면 쪽지를 오른 손에 감출까 왼 손에 감출까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향연이 그의 왼쪽으로 지나치는 날에는 쪽지는 오른손 안에 들어 있곤 했다. 반대로 향연이 그의 오른쪽으로 지나치는 날에는 쪽지는 왼손 안에 들어 있곤 했다. 차마 내밀 수 없어 그가 그리 피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쪽지가 왼손에 들어있고 향연이 왼쪽으로 지나치는 날에도 손을 더욱 꼬옥 쥐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너무 쥔 탓에 한참 후에도 펴지지도 않았다.

 

 

을 좀 돌리자. 하늘은 인간에게 아주 가끔 마약을 허한다.

아무튼 그들도 꿈의 순간을 누렸다. 그가 쪽지를 건네지 않고서도 둘은 용소 나들이를 갈 수 있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폭포 입구에 이르니 오른쪽으로 출렁다리에 이르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이 너무 가파르기도 하고 길기도 했지만 용소를 내려다본다는 욕심으로, 아니 둘이서 함께 한다는 감동으로 둘을 그 많은 계단을 달렸다. 계단이라야 그때는 지금처럼 완벽한 철계단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산길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무서 무서워하며 한숨을 내려가자 앞에 못이 있었다. 안개 같은 물방울이 퍼져 오르는 연못 주변은 춥기까지 했다. 추위에 질린 향연 때문에 용연폭포는 포기했었다. 아니 향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떨린 가슴에, 그저 불안에 행복감에 알 수 없는 떨림에 시간가는 줄 몰랐을 뿐이다. 어느 순간 어스름에 햇기가 떨어져 서둘러 내려와야 했었지. 다음 날, 다음 기회에는 용연폭포까지 함께 가리라는 믿음으로. 소리 없는 믿음으로.

믿음이란 소리가 있었건 없었건 깨어진다.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념, 신앙, 그런 믿음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너무 어려운 문제다. 지금 말은, 그냥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 그런 것은 깨어진다고.

그럼 그것이 사랑? 사랑이 무엇인가 누가 알기라도 하는가? 애틋하게 그리운 것? 그냥 아픈 것?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것,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 남을 이해하고 돕는 것 - 사랑을 말하는 공식적인 풀이는 소용없다. 향연은 사라져버렸고. 대상이 없어졌는데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어디로 향한다는 말인가. 생각 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이 사랑은 아닐 터였다. 그런 설명도 없었다. 지우지 못하는 것은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이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채 알기도 전에 이별이 찾아왔다. 향연이 사라졌다. 동네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향연은 시집을 갔다. 가버릴 줄이야. 산 너머로.

덕숭으로서는 닭 쫓던 개꼴이었다. 애초에 덕숭에게는 꼴이 없었다. 꼴도 끈도 꾀도 끼도 깡도 없던 그에게 꿈처럼 나타난 연이, 향연이. 향연은 꿈처럼 왔다가 꿈처럼 사라졌다.

4288년 이월 말. 그땐 여전히 태양력이 아니라 음력으로 말했다. 하루 내내 감자를 심고 어스름에야 서둘러 돌아오던 길에도 아무런 눈치를 못 챘었다. 참봉 댁에 신랑이 장가들어 잔치가 벌어졌던 그 일을.

금성산에 꼭대기에 올라 그 너머 순창이라는 곳을 눈이 째지라고 쳐다보며 울부짖던 이튿날. 그 다음날, 그 다음날. 이산 저산을 헤매느라고 어려서는 빨치산 항거지 - 그에게는 아버지의 그림자로서 금기였던 그곳 - 라서 눈길도 돌리지 못했던 용추계곡 너머까지를 돌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얼마나 울부짖었던가.

나중에 돌이켜 생각하면 원통하고 원통했다. 원통하다고 할 이유는 아무래도 없었지만, 얼마나 급하면 영동달에 시집 장가를 가는가. 얼마나 급했으면, 얼마나 급히 떼어놓고 싶었으면……. 마음은 더욱 처량해졌다.

좋다. 내가 박사라도 되어 금의환향하면…….

환향하면? 이미 산 너머 시집간 향연을 어쩔 것이냐!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직 열여섯 일곱이던 그가 사랑에 눈을 떴다면 말이 아니다. 이팔청춘, 나이로만 따지면 그 스스로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나이를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언감생심 이몽룡이라고? 부사의 아들도 아닌 것이, 중학교 진학도 제 힘으로는 어려운 홀어미 자식이 어사가 될 몽룡에 빗대다니, 어불성설 아니었나. 향연은 절름발이 양반이기는커녕 올려다보다가 목이 빠질 마을 최고 양반 부잣집의 막내딸 아니던가. 애초에 ‘쑥대머리 구신형용’이라 노래할 향연이 아니었다. 차라리 나무꾼과 선녀 버전이 맞다. 아니다, 그것도 틀렸다. 손 한번 잡아 본 주제에 자식 낳고 살다가도 날아 가버린 선녀에 비교하다니. 용소에 한번 가본 것으로 상팔담에 내려앉았던 선녀라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랬다. 용소에 이르는 길은, 단 한번 향연과 용소까지 손을 잡고 사라졌던 날은 그에게는 정지해 있다. 누가 순간을 사라진다고 했는가. 순간은 영원으로 변한다, 가슴 속에서는.

덕숭은 산중의 호수라면 평생 늘 설렜다. 실제로 선녀 이야기의 상팔담에도 가보았다. 회갑도 한참 넘은 2005년,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기를 산다, 해가 바뀌자마자 육로 금상산관광에 나섰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등록했다. 비무장지대를 버스로 통과한다는 스릴도 의미도 있었지만, 일정 중에 비로봉 동쪽 구룡대 아래 상팔담이 끼어 있다는 것을 보고 몸이 달았다. 안개구름이 있는 날이면 절벽을 휘감으며 피어오르는 실안개 같은 구름들로 신선들이 사는 선경을 보이겠지.

그러나 금강산에 도착하자마자 그 기대는 멀어졌다. 온통 옷을 벗은 벌거숭이 산, 때는 겨울이었으니까. 다섯 길은 되어 보이는 구룡폭포를 지났지만 물이 아닌 얼음만을 보았다. 하류엔 얼음이 얇아서 그 아래 물기를 느끼기는 했다. 더 꼭대기로 향했다가 상팔담을 만났지만, 선녀의 날개옷은 상상이 가지 않는 얼음뿐이었다.

바위와 물의 어울림을 보려했다면 여름에 올 걸, 옥빛 여덟 개 물웅덩이 물이 얼마나 투명했을까. 향연은 선녀처럼 이곳에서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오르고, 나는 하늘에서 물 길러 온 금 물동이 속에 타고서 하늘로 가면 되었을 것을.

 

 

다시 그의 목소리로 쓰자. 그쪽이 더 실감 날 것 같다.

첫 타격은 나를 쓰러뜨렸지만 이를 악물었소. 참봉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면 박사가 될 각오로 공부를 하고자 했소. 사정은 어림없었지. 그 댁 지원도 끊긴 것이, 더는 성적표를 들고 그 댁 문전을 넘을 수 없었으니까. 검정고시로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도 그렇게 마쳤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바빠서 공부나 하고 있을 여력이 없었소. 박사는 무슨. 요새는 박사 위에 밥사라고 합니다그려, 그때도 밥이 하늘이었소. 대학은 뒷전으로 우선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대가 임박했을 때는 군에 못 박을까 하는 고심도 했더랬소. 따로 궁리해 둔 미래도 없었고, 뭣보다 군대 3년 동안 촛불만큼도 희망이 자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선임 중에 박 병장이라고 고무신공장 사장 아들이 있었는데……. 함께 일하게 제대하면 들어오라고.

그렇게 찾아간 고무신공장은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만나게 했어요. 아버지를 몰랐으니 이런 게 아버지를 갖는 것이구나, 그랬어요. 박 병장 자신은 공장 체질이 아니라고 밖으로 돌고, 느닷없이 영화 쪽으로 정신을 빼앗기더니 조연출입네 하고 다닙디다. 사장님은 나한테 화학공학과를 다녀서 제대로 해보라셨으니, 공장을 위한 공부였지만 고마울 뿐이었소.

공장은 때마침 수출이라는 것이 시작되어 그쪽 대형공장들의 주문으로 호기를 맞으며 승승장구했고. 난 공부 와중에 화학산업에 눈을 떴어요. 독일이 후발주자로서 영국의 산업혁명을 따라잡은 것도 과학자들을 앞세운 화학산업인 걸 알았제. 마취제 클로로포름, 수면제 클로랄, 무기질 비료 등 리비히그 한 사람이 기여한 것만 해도 엄청났으니. 한국에서도 화학물질이 미래다 싶었고, 사장님도 새로운 구상을 적극 지원했고요. 본격적으로 화학산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덜컥 사장님이 쓰러졌으니, 그 일은 참 충격이었소. 요즈음 말로 하면 급성 장출혈인데, 그땐 그냥 하루 이틀 새 손을 써볼 시간도 없이 그리 되어갖고는. 결국 곁에서 운명을 지켜본 내가 공장 둘을 다 맡았는데, 고무신공장은 70년대 수출이 괘도에 올랐을 때 좋은 조건으로 큰 회사에 넘겼어요. 사실 그건 박 병장님 몫이었으니까. 아버지 것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요. 일을 했건 말았건, 아들은 아들이니까.

나머지만으로도 나는 충분했소. 화학물질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보물이었으니까. 이미 몇 화학공업사에서 플라스틱 가공제품을 생산하던 때였는데, 플라스틱시대가 열리고 있었으니 틈은 많았어요. 바닥재다 뭐다 건축자재들이나 자동차 공장 등 온통 화학물질 아니고는 어림없었죠. 파라크실렌과 스티렌, 아크릴로니트릴 등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아차, 선생은 화학과목이 아니라했지요.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었지요. 지금이라면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 감시가 세지만, 그땐 그런 기관도 없었고 막말로 때만 안 묻히면 된다, 그러고들 했어요. 지금에야 화평법이다 화관법 등 엄격한 잣대가 있지만 그때 시절은 이현령비현령이 법이었으니까. 어느 업종이나 다 그랬다고 봐도 좋을 거요. 눈 먼 돈이 눈덩이처럼 굴렀고.

염화비닐부터 시작해서 건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종류를 안다면 아마 누구도 대형 주택업자가 지은 집에서 살 생각을 못할 거요. 이들 화학물질에는 발암성, 중추신경 독성 등이 있다는 것을 그땐 누구도 몰랐지요. 집은 더 견고해졌고, 무엇보다 플라스틱 표준화된 자재라서 짓기가 편해졌고. 일하기 편하고 돈이 들어오는데 누가 토를 달았겠소. 석유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화학공업은 승승장구였지. 새 집에 들어가서 두드러기나 비염 증상을 느끼면, 실은 못 느끼더라도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불안감이 조성된다는 건데, 그것들 연구는 요즈음 말이지 그땐 아무도 몰랐소. 우리 같은 업자들은 면죄부를 받아 마땅해요, 그런 위험성을 말해주는 전문가도 행정 지도도 없었으니까. 성장은 좋은 것이었소. 나도, 나라도.

아내, 아내와는 백년해로를 다하지 못했어요. 조강지처 불하당을 어긴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죄책감은 마찬가지요. 마흔이 다 되어 결혼을 하다 보니 아내는 나이 얼마 아니었어요. 순하고 단단하고. 아들 셋에 고명딸을 끼워 4남매를 낳아 기르며 홀시어머니까지 잘 챙기던 사람이었소. 가슴을 내주었던가? 맘이 아프요. 한참 젊었으니 수를 못할 줄 누가 알았나요. 어머니는 무슨 미련이셨을지, 왜 고향을 못 떠나셨는지. 아내도 참 힘들었어요. 버스깨나 타고 시골 내려다니던 아내는 어머니가 세상 뜨고 나서 조금 수월한 삶을 사는가 싶었는데 그만 갑작스레. 입에 올리기도 싫소. 살만하면 긴장이 풀린다던가?

하지만 그랬소, 두 마음입디다. 향연이 혼자되었다는 소식 때에도 뭉클 흔들렸던 마음이었지만. 헌데 아프다니. 요것이 사악한 마음이건 어리석은 마음이건 어떠랴 싶었소. 늘그막에 하늘에서 내려온 마법인데. 향연의 옆에, 곁에 갈 수 있는 기회라. 가슴이 덜컹거려서는…….

 

 

그렇게 오늘의 장면이 연출된 것이란다. 조금 고쳐 써야겠다.

널따란 침대 이쪽저쪽으로 링거 줄이 걸려있다. 훤한 낮 시간에 침대에 누워서 링거액을 맞고 있었을 연인들은 평범하고 유복한 노년의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 다르다면, 노인들의 안방이라고 하기에는 꽤 너른 공간에 가구 또한 세월을 묵힌 때가 없이 성글고. 가만, 어디선가 화학반응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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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대 : 바다에 꽃지다, 예원 2014.11.25. 193-222쪽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7. 6. 16:14

 제16회 영호남 문학인 교류 한마당 (부산, 2014.6.28.~29.)

                  by  PEN광주 박판석 부회장님, PEN부산 이영수 시인님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6. 23. 04:01

유전 때문인가 ... 환경 탓인가

 

소설가 서용좌 '표현형' 펴내

- 광주일보 2014.6.19. 에서 펌

 

 

유전자형인가? 표현형인가?

 

현대사회는 변화무쌍한 시대다. 교유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삶을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처한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질을 발현하며 산다.

 

소설가 서용좌(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 교수가 신작 장편 '표현형'(푸른 사상)을 펴냈다. 생물학 용어에서 차용한 제목 '표현형'은 인간의 개인적 발현에 초점을 둔다.

 

2010년 '반대밀.비슷한말' 출간 이후 4년 만에 펴낸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정체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소설은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전임교수가 되지 못하고 점차 내리막 인생을 사는 지식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남의 지식을 빨아먹는다는 점에서 피를 빠는 박쥐와 다음이 없지요. 그는 날고자 하는 꿈 대신, 이야기를 퍼나르는 데 날개를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요."

 

주인공이자 글을 쓰는 가공의 저자 한금싱늠'샆포세대'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인물로, 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사를 전전한다. 그를 둘러싼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강의 여건은 날로 악화되고 미래는 암울하다. 그럼에도 그가 버릴 수 ㅇ벗는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그의 유일한 '낙'은 소설쓰기다.

 

그는 동류항 인간들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유전자형과 표현형 인간에 데한 관심을 늦추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유전자형과 표현형 사이를 오가는 이들의 모습을 추적하기도 한다.

 

작품은 '배달민족' '한국어' '표현형' '은실' '사포세대' 등 모두 11편의 이야기로 구성되 있다. 각각의 제모깅 붙은 잉기는 따로 존재라는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책 제목인 '표ㅕ현형'으로 수럼되기도 한다. 물론 이야기를 전개해주는 주 인물은 가공의 저자 한금실이다.

 

"주인공을 통해 들여다본 삼포세대의 내면은 표류와 공허로 집약이 가능합니다. 한가으이 기적을 일군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특질이요. 성장이라는 화려한 외피 이면에, 심리적 고통을 앓고 있는 이들이 발현하는 양상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서 작가는 '소설시대'로 등단, 장편 '열하나 조각그림', 연작 '희미한 인(생)'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등을 펴냈고, 이화문학상, 국제펜 광주문학상, 광주문학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6. 11. 11:48

 

가공의 저자 '한금실' 현대인 방황 들춰내다

소설가 서용좌 교수 장편 '표현형' 출간

 

 

2014. 06.08(일) 16:20 확대축소

소설가 서용좌 명예교수

 

   소설가 서용좌 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가 화려한 외관아래 앓고 있는 심층부의 심리적

고통과 정신적 방황을 그린 장편 '표현형'을 푸른사상사에서 펴냈다.

 생물학 용어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 소설은 가공의 저자 '한금실'을 내세워 머리글에서

부터 스토리 전개, 마무리까지 하게 한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다.

 등장인물이자 글을 쓰고 있는 '한금실'은 프랑스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아 금의환향

인 줄 알고 귀국한 이래 내리막을 걷고 있는 소위 삼포세대이다. 비정규직 강사의 신분

으로 직업도, 연애도, 결혼도 포기해야하는 세대. 그러나 인간에 관한 관심은 버릴 수

 없다.

 처음 꼭지 '배달민족'에서부터 디아스포라의 방향으로 세계 도처에 흩어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유전자의 표현형을 추구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인의 한국으로의 엑서더스를 통해 유입된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도 들어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대두돼 인간

 관계의 기본 갈등은 가중된다.

 '배달민족'에서는 서독으로 돈 벌러 떠났던 광부와 간호원 세대, 그에 따른 혼혈자의

정체성 혼돈과 뿌리 찾기를, '한국어'에서는 한국을 꿈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현장을,

 '표현형'에서는 미국으로 입양된 막내의 삶을 다룬다. '은실'에서는 성수대교 사고를

 계기로 공부를 접고 성공의 대열에서 밀려나간 동생의 문제를, '삼포세대'에서는 너무

 많이 배우고도 '루저'인 한금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부모 세대를 다룬

 '초혼장'과 '포이동 266번지'에서는 끝나지 않은 최근 역사의 짐과 무게를 드러내

 보인다.

 마지막 이야기 '물'은 물에 빠지는 아이를 쫓아 무작정 물속으로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서용좌 교수는 2001년 장편 '열 하나 조각그림'을 시작으로, 2004년 연작소설

 '희미한 인(생)', 2010년 소설집 '반대말 비슷한 말'을 펴낸 바 있다. 현재 국제펜한국

 본부 광주시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선주 rainidea@hanmail.net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