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06. 5. 30. 23:30

 

행복한 수요일 아침

                                                  <소설시대 10호> 2006


수요일 아침이면 인희는 눈물을 머금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곤 한다. 남편의 출근이 일정해진 이 근년에 생긴 버릇이다. 눈물을 머금고 앉아서 주문처럼 되뇐다, 넌 참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세상에 저리도 많은 생이별 가족들이라니! 보고 싶은 사람 그리워하면서 사무친 세월의 대가들 앞에서, 누군가를 이별한 기분에 빠진 자신을, 상대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이별을 이별이라는 자신을 나무란다.


그런 인희가 오늘 절대적으로 행복하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요일도 아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무 것도 아닌 어느 평범한 날이다.


인희는 편집자에게서 받아온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나란히 놓고 앉아있다. 얼마만인가.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왼손을 들어 종이뭉치 위를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아본다. 그의 원고 교정 작업을 처음 시작했던 때의 막연한 불안감이 되살아난다.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어떻고요?


처음 그를 만난 자리는 언쟁에서 언쟁으로 끝났다. 편집자는 불을 붙여놓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교적 큰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번역 교정에 외주자들을 사용한다. 번역자가 다소 불쾌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우리 인간은 실로 나약한 존재지요. 한 줄을 통째로 지나치거나 단어를 잘못 보는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실력 여하에 관계없이요. 비슷한 단어만 혼동하는 게 아니지요, 엉뚱한 단어로 튀는 수가 많아요. 편집자의 융통성 있는 발언은 번역자들의 인격에 흠을 줄 필요가 없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번역이란 어차피 없는 것이고, 그럴 바엔 이름이 교수라야 그냥 애송이 강사들보다 책에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번역자로서 교수를 선호한다. 교수의 원고를 외주자에게 줄 때는 직접 현직 강사들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 누가 누구의 원고를 보았는데....... 하는 것도 좁은 세상에서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교수의 원고가 ‘아무것도 아닌’ 인희에게 왔던 것이다.


인희로서는 그의 원고가 처음 작업은 아니었다. 남편이 그녀의 무기력에 질린 표정으로 아예 둔감증을 운운하던 시절, 그녀는 뭐라도 일감을 찾아 출판사를 기웃거린 터였다. 아직 어린 아이가 조기유학을 떠난 직후였다. 아이는 아이 큰아버지의 소망대로 빈의 음악원 입학을 목표로 호된 훈련 길을 떠났다.


큰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의학박사의 기로에서 의학을 선택해야 했고, 어딘가에서 그 보상을 찾아야했던 모양이다. 큰아버지의 아이들, 그러니까 아이의 사촌남매는 바이올린에서 멀었다. 음악의 고장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은 완벽한 언어 정복을 위해 표준 독일어와 표준 프랑스어를 듣기에 진력을 하는 동안 음악적 귀가 닫힌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버지가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 조카애들은 둘이 너무도 달라서 이상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가까운 아들은 노랑 곱슬머리고, 아버지를 닮은 딸은 밤갈색 생머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정식으로 한국어코스 강좌를 받겠다고 이곳에 오래 머문 적이 있었다. 생머리가 긴 딸아이는 먹을거리부터 서울풍경에 섞여들었지만, 아들애는 낯설었다. 아이들은 “제3국에 산다”는 부모의 결정대로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살지 않기 때문에 세 나라 말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의 말, 어머니의 말, 제 3국의 말, 그러니까 그들의 모국어 독일어. 그 중에서 가장 잘 하는 말이 당연히 그들의 모국어이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말이란다. 긴 여름 방학을 프랑스 남단으로 휴가 떠나거나 외가에 머무르는 동안에 저절로 얻은 수확일 것이다. 세계어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저녁, 아이들은 “숙부”와 “숙모”만은 열심히 한글로 말했는데, 발음은 “죽부”와 “죽모”였다. 아버지의 말에 서툰 아이들은 아버지의 바이올린과도 서툴러 아버지를 서운케 했다.


그런 터에 인희의 아들은 음악을 가깝게 하면서 자라났다. 남편이 아끼는 재산은 LP판들을 포함한 CD무더기다. 형이 유학 떠날 때 남겨둔 것들도 함께 고이 보관중이다. 다른 집들처럼 거실에 오디오를 두지 않고 “아빠 방”에서 음악을 들었다. 보통 서재라고 할 방에 책보다 많은 음악들. 그래서 아빠 방이다. 아들아이는 아빠 방에서 어린 시절의 저녁을 보내곤 했다. 제 엄마가 두 번째에도 자연 유산을 계속하던 시절이라서, 엄마 근처를 보호하던 몇 년 말이다. 네댓 살짜리 사내아이가 엄마에게 와락 달려드는 자연스러운 동작에도 엄마는 가능한 동생을 잃곤 했으니까. 달려와서 덜컥 보듬기는 일이 뭔가 금지된 일이라 알게 되었는지, 조금 철이 들면서 아이는 저라서 엄마 곁을 뱅뱅 돌다가 아빠 방으로 향했다. 남편 또한 “아내 보호차원에서” 밖으로 돌았다. 음악회들도 날로 수준급이랬다.


처음엔 보통으로 시작한 유치원 시절의 피아노교습이 어느 새 바이올린으로 바뀌었고, 아들애는 제 방의 책상에 앉기 보다는 바이올린을 들고 아빠 방으로 향했다. 그 동안 아빠 방은 방음벽으로 바뀌었다. 방음벽은 부자를 결속시켰겠지만, 이상한 단절감이 존재했다. 인희는 늘 혼자였다.


인희의 기억 속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따로 사랑채 남자들이었다. 안채의 마당을 빙 돌아 기웃거리면 사랑채 뒤쪽이 나오고, 세월에 무거워진 문짝을 다 걷어 올린 대청마루는 교교했다. 사람 소리는 멀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낀 남동생은 낮에는 안채에 저녁이면 사랑채에 속했다. 왜 난 저기에 가면 안 되는가.


인희는 언니들 따라하기 보다는 동생 인석이 가진 것들을 부러워했다. 쪼끄만 아이가 따로 책상을 가진 것, 따로 서랍을 가진 것이 가장 그랬다. 퇴락한 안채에는 어디에도 책상이 없었다. 교자상이 늘 방 가운데 있었고, 밥상이고 책상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어른들을 끼어서 여럿이 되는데, 왜 공부할 때는 아이들만 해도 안 되는가. 이 책과 저책을 다 꺼내놓을 수 없게 되자, 인희는 하루에 한 가지씩만 책을 보기로 했다. 숙제가 여러 과목이어도 그냥 한과목만 하기로. 책을 펼쳐 놓아야하는 과목보다는 그냥 들고 있을 수 있는 과목으로. 중학교에 가자 언니들 방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언니들의 짐 속에서 인희는 귀퉁이 참이었다. 묘안이 떠올랐다. 여자이면서 유일하게 사랑채에 속하는 사람, 할머니였다. 사랑채 옆쪽으로 달린 상하 방이었다.


어머니는 안 될 말이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알고는 인희를 데려갔다. 비밀들이 드러나선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의 작은 책상은 인희로서는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인희는 이제 작지만 진짜 책상에서 숙제를 했다. 강경애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빛바래고 닳은 책이 꽂혀 있었던 판자 책꽂이. 『예술과 인생』이란 표지는 한 뼘을 넘은 두께였다. 세로줄로 쓰인 윤곤강의 시집 『살어리』, 두꺼운 시집이었다. “모오파썅”이라고 이상하게 적힌 시선집은 50년대의 번역이었고, 그보다 더 오랜 『이희승 시집 박꽃』은 붉은 물주전자가 붉은 대접에 얹혀진 누런 표지였다. 하지만 문청 기질은 할머니의 방을 나오면 곧 집안의 모두에게 철저히 금기였다. 하나 뿐인 고모가 역시 “글이나 끌쩍거리던” 문학청년에 홀려 시집갔다가 영 이별이 되었기 때문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분단 때문보다는 문청기질이 그 이별의 원흉이라고 믿는 때문이었다.


인희 또한 글쓰기와 관련된 “병든” 이상을 싹틔우지는 않았다. “소용없는” 할머니와 “소용있는” 어머니 사이의 낯설음은 조금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안방에 끼이면 해소되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는 자연스러움이 자질구레한 불협화음쯤은 흩날려버리곤 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인희의 “무난한” 몰개성적 성격의 근원일 게다. 어머니는 셋째 딸이 “하필이면 독문과”에 지원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을 때에도, “좋은 대학에 가려는” 이유 정도면 통과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하필 독문과를 진학한 것은 순전히 영문과에 못 미치는 성적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이 소일과 자긍심을 좀 더해 준다. 영문과였더라면 단순 대졸의 주부에게 번역교정일이 들어올 차례가 아닐 것이다. 하긴 독일어 분야도 만만치 않지만, 오스트리아라는 거점을 배경에 지닌 덕일까? 그 배경 또한 순전히 “대학 간판으로 건져 올린” 결혼 때문 아니겠는가? 평범한 결혼 생활 16년 째 나선 일이 기껏 번역교정일이나 받아오는 것이었지만, 뭔가 책과 더불어 하는 일은 예상보다 더 정서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할머니의 책상이 허전하지 않아서 안도감도 느끼면서. 초고층 아파트엔 참 어울리지 않은 낡은 책상을 그녀는 아직 간직하고 있다. 결혼 전에 병석에 있던 할머니가 굳이 물려주신 몇 권의 책과 책상이다. 어머니는 한두 번 이사 때 도와주러 오셔서는 그때마다 것 좀 치우지 않느냐고 성화셨다. 어머니는 큰 소용이 안 되는 옛 물건에 집착하거나 그러시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명색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는 별말씀 없으시다. “할머니 피가 섞인 건 확실한거라......”


인희는 처음 그의 원고를 받아들면서, 철학자가 쓴 문예 이론서를 번역한 사람은 당연히 철학과이거니 했다. 철학과 교수였다면 철학용어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있어서 양보를 위한 자리는 필요 없었겠다. 그런데 철학과가 아니라 문예창작과라 했다. 문창과 교수라면 작가가 먼저일까, 그냥 교수일까? 초벌교정을 들고 나간 날, 젊은 편집자는 비좁고 북적대는 사무실을 피해 근처 커피숍에 나이든 교수와 나이든 외주자를 간단히 대질시켜놓고 사라졌다. “번역물이 효자죠, 나름대로 바빠 죽겠어요. 제발 좀 직접 조정해 주세요.” 그러니 남은 둘의 입씨름이 시작되었을 밖에.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또 어떻고요?


어설픈 외주자의 의문에 자존심을 다쳤을 전문가를 너무 의식하지 못했었나 보다. 독일어에서 같은 어원은 우리말에서도 같은 어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억지에 가까운 현학적 고집은 일을 점점 뒤엉키게 했다. 몇 번의 씨름 속에서도 일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더구나 그는 워드 작업을 겨우 해낼 뿐, 이메일은 물론 그때 벌써 꽤 흔한 휴대전화도 불통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만나야하는 일이 늘어났다. ‘시간 많은’ 그녀를 고르고 골라 일을 맡긴 편집국장은 공동작업의 불편함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시간 없는’ 교수 때문에 작업은 터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오월이었다. 그는 그동안의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종일이라도” 시간을 내준다면 좋겠다고 했다. 스승의 날 행사로 여유가 생겼노라고, 변명을 덧붙이면서. 그 수요일 아침이 되자 인희는 명치 아래가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간헐적으로 올라왔다. 막상 그를 만나서, 그가 “오늘은” 일 대신 다른 무엇을, 그런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동안에는 위경련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율리시즈의 시선》같은 영화에 대해 뭐라 말하기 시작했지만, 어두운 영화관 같은 곳에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둘이서 들어갈 용기를 가진 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로 무작정 차를 타고 나가게 되었다. 차가 한참을 달려 나가자 고통은 서서히 줄었다. 대신 아스라이 멀미가 일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마침내 산자락의 풀을 밟았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그러나 내용은 참으로 애매모호한 몇 마디의 말을 흘렸다. 예상 밖의, 소년들 사이에서나 가능할 비현실적인 단어들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청각기관을 지나서 폐부로 들어가자면 해석이 필요할 단어들....... 그냥 남편 또는 아내 아닌 사람과의 드라이브가 낯설었던 만큼, 그만큼 낯선 일탈은 꼭 그만큼의 긴장을 묻혀왔을까? 차가 시내로 들어오면서 다시 일상의 공기가 밀려왔다.


일은 차차 순조로웠다. 인희로서는 단어에 토를 다는 일이 줄었다. 그의 진지함에 압도되어서, 그가 심각한 고투를 겪어서 내놓았을 우리말 단어를 빨간 펜으로 칠할 수 없어서. 속내를 알지 못하는 편집자는 예상보다 빠른 탈고에 대해 그녀 쪽에 고마워했다. 나중에 <옮긴이>에 보니, 그는 철학과 졸업 후 대학원을 국문과로 옮겼다고 되어 있었다. 문학은 철학보다 한 수 아래라고 배웠던 인희는 그런 경력이 특이해 보였다. 그의 우리말을 긁어놓은 교정자 인희에게 처음에 그가 그렇게 적대적이었음이 이해되었다. 교수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가 아니라, 국문학 전공자가 비전공자에게 갖는 적대적 우월감.


여름 방학에는 아들 애 곁에 다녀오느라 일을 쉬었다. 학교는 쉬지만 독일어도, 바이올린 레슨도 쉴 수 없는 것이 아이의 상황이었다. 남편은 처음 동반길만 함께 했다. 일주일 이상을 비울 수 없어 한다. 대리의사를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라도. 아들 곁에 남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고국의 음식을 먹이려 애쓰지만, 아들은 생각 보다 서양식에 잘 적응해 있다. 부엌의 주인, 서양인 형님은 요리에 능하고 힘차다. 인희는 별 할 일이 없었다.


여름이 고비를 넘길 때야 돌아와서 출판사에 들렀을 때, 그녀 앞으로 작은 책이 든 봉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공동번역을 제안하며 검토해보라고 맡겨둔 책이라는, 편집국장의 말이었다. 봉해진 봉투를 일부러 뜯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집안일들은 겹치면 겹친다.


첫가을 날이었다. 아직은 햇볕이 따가운 오후, 밝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인희는 할머니의 작은 책상에 앉았다. 그와 공동번역을? 작가 이름을 얼핏 편집국장에게 들었는데, 잘 모르는 이름이었다. 봉투를 열어보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산도르 마래, 마라이? 독문과 졸업이 부끄러우리만치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인데, 표지는 귀족 저택의 초상화에 나옴직한 미녀 초상에 초록 옷자락이 살짝 풀잎처럼 내비치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작은 쪽지가 떨어졌다. 대략 5㎝ 크기의 정방향의 종이에 희미한 글씨의 토막글. “그 동안........” 그 동안이라니? 대체 왜? 그렇지만 그런 글을 읽고서도 곧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함으로 뒤덮인, 그런데다 지나치게 짧은 글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해에 골몰하려는 동안, 일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아예 잊혀졌다.


대신 믿기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인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혹시 “메디슨카운티 증후군”이라 할 상태일까 걱정이었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 그의 딸, 그렇게 가능한 모두를 시샘할 정도였다. 인희는 아무리 앞서도 그의 네 번째 여자였다. 쓸쓸했다. 아니 네 번째라도 좋았다. 희미한 글 한 조각에 온갖 의미를 걸게 되다니. 평온한 나날들이 혼란의 시간들로 바뀌었다. 안과 밖의 불일치에 초점이 흐려갔다. 그런가하면 폐부로부터 밀려 올라오는 열감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입술의 열감은 영화 속에서나 보는 불가항력적인 입맞춤의 뒤끝처럼 스멀거렸다. 선문답 같은 대화의 파편이 구슬처럼 입안을 맴돌았다. 눈과 귀, 귀와 입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더니, 본 것과 들은 것, 들은 것과 말한 것, 나중에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들이 혼동되어서 함께 떠 있었다.


계속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다. 너무 많이 상상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말로 그와 바다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지중해, 알함브라, 지브랄탈 해협에서부터 북해까지 온갖 바다를 유영했다. 섬이 연결된 ‘질트’나 ‘퇴닝’ 같은 지명은 그가 더욱 꿰뚫고 있었다. 전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그러나 실재하는 오두막을 빌릴 수 있는 곳.


바다는 많이 광활하고 그 광활한 만큼 바람을 몰고 와서 그들을 내몬다. 적어도 환영은 아니다. 해가 곧 질 것이었으므로, 아니 이미 지고 있다. 바람은 지는 해를 두고서 무섭게 폭풍을 동반해 왔다. 십분 전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변해 버린다. 바람은 그들을 매우 세차게 내몰아서 발을 떼어도 밀려 나갈 정도가 된다. 도망치듯 그것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한없이 서운하다. 그녀는 그에게 ‘증명사진’을 부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추억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가. 체험은 길이가 중요하지 않지요, 순간이 영원할 수도 영원이 순간일 수도 있음을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몰아치는 장대비를 맞으면서 이리저리 헤매며 따뜻한 불빛을 찾는다. 그가 담배 가게를 찾아 갔다가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의 15분에서 20분 사이가 영원처럼 길다. 그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균열이 생긴다. 그것은 그들이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어떻게 그들이 그들의 바다를 정당화할 것인가!


그러다가 그가 떠났다. 충전기간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동안 동독이 개방된 후로 유럽에 가보지 못한 것을 그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곳을 통로로 동유럽을 그리워했다. 쾨니히스베르크 때문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 건너기 문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논리를 지나 수학적 사고를 주제로 대화가 되는 것에 그녀는 조금 흥분하곤 했다.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가 아닌 것이 증명되기나 하는 듯이. 아무튼 지금은 리투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가 전공했던 이성중심 철학의 본고장인 그곳에 가보고 싶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의 대답은 달랐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어딘지 모르게 처녀지인 곳, 동유럽에 몰려 있다고 했다. 잘 알려진 카프카도 그렇지만, 산도르 마라이도 그 하나라 했다.


“파스칼과 횔덜린 그리고 니체를 파괴했듯이,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를 무덤 속에 내던질 이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런 실패나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그것이 마라이의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말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잠시 두려웠다. 절대 고독을 꿈꾸는 사람, 그런 그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구하는가? “혼자 남아서 대답하는” 조용히 들어주는 친구를? 상대적으로 넓어서 더 높은 아파트 벽 속에 갇혀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타던 그녀로서는 그런 지적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신비했다. 생은 더 이상 진부한 것도,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인희는 그가 가려는 곳이 혹시 빈에서 가까운 남쪽이기를 바랐다. 그녀 또한 아이를 만나러 한두 번 갈 것이니까.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머물기, 그것이면 될 것 같았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지중해, 그 동쪽 소아시아 반도와 크레타 섬들에 얽힌 숱한 신화들은 그들의 단골 화제였다. 다이달로스가 추락한 짙푸른 바닷물, 그런 바다에도 그들은 벌써 몇 번을 다녀온 터다. 하지만 실제로 그 물살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가 구동독 깊숙한 대학도시로 간다고 했을 때 인희는 조금 실망했다. 떠날 날을 정한 뒤로는 뭔가 슬며시 엷어지는 기운마저 돌았다. 그는 시간이 없어했다. 작은 눈을 반짝이는 통통한 여학생이 대신 원고 심부름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별은, 이별이란 말도 가당찮은 이별은 벌써 서러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떠났다. 추운 겨울이었다.


인희는 현실에서 숨을 쉬면서 상념은 다른 궤도로 흐를 수 있는 인간의 불가해성에 머리를 내저었다. 멀리 떨어진 거리와 관계없이 치열한 교감 속에서, 분류되지 않는, 정의되지 않는 상태에 혼란해하면서, 아리지만 풍요로운 순간들을 부여안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오월, 풀냄새에 놀라 봄을 탄식했다. 그는 어쩌면 오월을 피하기 위해서 떠나야 했구나! 곧 그녀는 균형을 잃어 갔다.


그의 철 이른 카드가 출판사로 날아들었다. 편집국장 친구에게 보낸 카드와 똑같은 카드였다. 그쪽에는 그렇다 치고, 다들 외주자인 인희에게까지 카드를 보낸 교수를 예의바른 사람으로 치부했다. 미려한 외관을 유지하는 것까지도 그다운 일이었을까? 인희는 그의 마음이 어딘지 부담감으로 차있음을 행간에서 느꼈다. 여름에 합류한 대가족과 함께 휴가여행을 떠난다는 그에게 지중해 혹은 그리스로는 가지 말기를 바랐던 인희의 마음을 그는 과잉으로 읽었을까? 두꺼운 카드 사이에 접어 넣은 얇은 종이는 글씨마저 얇게 느끼게 했다. 내용은 더욱 얇았다.


돌아온 그를 다시 만난 것 역시 출판사에서였다. 그가 번역 가능한 책 몇 권을 가져오기로 한 날, 편집국장이 인희에게도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그를 바라보면서 인희는 갈비뼈가 금갔을 때처럼 아픈 것을 느꼈다. 너무도 큰 숨을 내어쉬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안 좋으신가요? 저 다시 안 들어가도 되니까 데려다 드리지요. 가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도 할 겸.” 인희는 편하게 기댈 양으로 뒷좌석에 탔다. 다음 블록에서 그가 차를 세웠다. 앞자리로 옮겨 탔다. 그는 오른 손을 가만히 내밀어 인희의 왼손을 잡았다. 괜스레 상처입고 오므라들었던 가슴이 펴질 새도 없이 아프기만 했다. 아픈 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아니 제 안의 마음이 커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공간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행여 열정 같은 것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정석이다.


이번 작품들도 마라이였다. 그녀는 처음에 받았던 작품을 여전히 읽고 있었다. 제목부터 “열정”과 “정열” 중 선택하기가 어려웠기에 내버려둔 채 그냥 독서에 빠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형제처럼 붙어 지냈던 두 친구가 헤어져야 했고, 그 후 40년도 더 지나서야 만나서 하룻밤 동안 나누는 대화형식”이라는 그의 설명은 정말 궁금증을 자아냈다. 실제 독서는 사전을 찾느라 더듬거렸지만, 부분 부분이 몇 곱절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일부나 다름없던 우리 두 남자의 침묵으로 그녀가 죽었네. 여자로서 참아낼 수 있는 이상으로 비열하고 거만하고 비겁하고 오만하게 침묵했기 때문이지.”


“여자가 참아낼 수 있는 그 이상의 침묵”이란 무얼까? 구절구절에 빠져있는 동안 번역 작업은 멈췄다. 대신 편지 같은 것을 쓰고 또 썼다. 전달될 가능성이 없는, 그래서 뒤틀려도 좋은 글을 무작정 써내려갔다.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캠퍼스로 가서 서성이며 전화를 할까 말까 궁리하다가 지쳐 돌아온다. 난생 가보지 못한 그의 학교가 상상으로는 완벽에 가깝게 지어져있다. 돌바닥의 현관, 그가 오르는 층계, 걸어가는 복도, 오른쪽으로 휘면서 연구실 문을 열고, 방문이 열리면 순간 바람이 세게 밀려온다. 10cm 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밀리는 거야. 상상이 발광 직전에 이른 날엔 미장원으로 내닫곤 했다. 혼자서 들어가도 좋은 곳, 오랜 시간 혹사당하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는 곳.


그는 차츰 멀어져갔다. 그러나 뭔가 시작당한(?) 사람은 끝을 당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억울했다. 마음 흔들렸던 마음이, 눈을 바라보았던 눈이, 손바닥에 닿았던 손바닥이. 배반을 배반당했음이.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계속 겨울이 왔다. 마침 세상은 21세기를 향해 막연한 환호를 보내는 중이었다. 인희는 책상에 앉아 또 편지를 썼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싶은, 그래야 할 것 같은, 이 늦은 마물음의 시간, 저에게도 한 가지 소원은 있습니다. 다음 날에는, 다음 봄에는, 다음 해에는, 다음 세기에는 저 같은 사람 다시는 만나는 일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쉽게 깊게 상처 입어서, 스스로의 고통은 그렇다 치고, 당신께 배가된 고통을, 배가된 짐을 드렸었던 저 같은 사람일랑 다시는, 행여 비슷한 사람이라도 다시는 만나시지 않기를....... 물론 쓰기만 했다.


송구영신의 모임들은 어느 해보다도 떠들썩했다. 남편은 겨울 골프를 떠나는 일행에 합류했다. 방콕은 일교차는 커도 겨울 평온이 25도나 되는 따뜻한 곳이라고. 겨우 며칠의 휴가를 따로 쓰는 것을 미안해하는 남편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다. 약간의 휴가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남편도 알면서 하는 소리일까. 아들아이도 집에 올 겨를이 없다 했다. 학업과 연주와 그곳 생활에 열중하여, 집에 연락하는 일도 잊는다. “형님이 당신 아이들보다 듬뿍 관심을 부어주니 그 녀석 참 복이지.” 그렇게 해서 200년 역사의 음악학교에 입학하는 외국인들이 많을까? 여러 사람의 걱정을 잠식시키고, 아이는 특히 큰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성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희는 깊이 침잠했다. 여러 의미의 반성과 더불어, 제발 자신을 어여삐 여길 수 있을 다가오는 새 봄을 소망하면서.


봄은 왔다. 여전히 “잔인한 사월”이란 구절이 맴돌았다. 다시 오는 오월이 매번 두려웠다. 그날의 산자락으로 가서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오자고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 자리, 그 무심하게 다른 풀이 자라고 있을, 어중간한 돌들이 구르고 있을 그 자리에 가서, 풀은 풀일 뿐, 나무로 자라지 않음을 확인하고 오자! 드라이브를 즐기는 친구를 불러내면 탄성을 지르며 와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돌멩이들을 바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수줍게 그러나 단호하게 무엇인가의 시작을 신호했던 그 목소리를 망각 속에 묻을 수가 없다. 밥 딜런의 노랫말이 맴돌았다. “잇 에인트 미, 베이브, 아임 낫 디 원 유 원트, 아임 낫 디 원 유 니드.......” 그의 입술에서는 다른 버전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우리의 한계는 이것입니다.” 밥 딜런을 들으면, 그는 딜런 토머스를 앞세운다. “녹색 퓨즈를 타고 꽃을 몰아가는 그 힘이 / 내 푸른 시대를 몰아간다....... 나는 시든 장미에게 바보처럼 말한다 / 내 청춘이 똑같이 차가운 열병으로 시들었다고.” 인희가 난해한 시에 고개를 갸우뚱하면,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열여덟 잔을 마시고 다음 날 죽어간 시인을 누군들 이해하겠소, 하고 그는 말끝을 흐린다. 흐린 말끝 따라 인희의 마음도 흐려지곤 했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친밀함에 대한 그리움을 덮는다. 이 사회의 구조가, 관습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존재”하게 한다. 관습에 굴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 세상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존재한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사무친다. 그렇구나. 세상에 ‘혹시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예외는 없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 달도 차면 기운다.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자고, 목욕을 같이 하고 ― 사람 사이 친해지는 비결로 통했는데. 그건 구식이다. 현대생활은 가족끼리도 밥을 같이 먹기 어렵게 한다. 단출한 아침식사에 굼뜬 그녀가 식탁과 싱크대 사이에서 어물거리다보면, 남편은 벌써 일어선다. 남편의 점심 저녁은 밖에서가 대부분이다. 산부인과의 사양길을 일찍 예감하고서 건강관리협회로 옮겨 앉은 이래, 저녁 시간이 더 바쁘다. 더 한가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아이는 먼 데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군대 문제로 한번은 들어와야 한다는데, 염려 말라고, 잘 하고 있다고, 큰아버지는 한껏 만족스런 기별만 보내온다. 가만히 숨쉬고 숨쉬는 동안 세월은 간다. 20세기가 그녀에게 유수와 같았다면, 21세기는 쏜살같다. 다른 유수한 출판사에서 마라이의 전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열정』을 위시해서 줄줄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권했던 작품들의 번역일랑 몇 년을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단순한 교정 외주자의 일이 맘 편했다. 것도 겨우 간헐적으로.


책상에 앉는다고 잡념이 줄지는 않는다. 가끔은 긴 버스 혹은 기차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옆자리에 앉아서 멀미에 시달리며 잠시 잠들었다 깨곤 하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 밤바다의 바람을 막아 그녀를 감싸주던 그. 그런 그가 정말 존재했을까? 그냥 꿈이었을까? 상상과 회상이 뒤범벅되는 나날들.


그렇게 가을이 오고 또 가을이 왔다. 구월이 가고 시월이었다. 출판사는 외빈내화, 불경기 중에도 하나 둘 히트가 나왔다. 문광부 선정도서에 인희가 교정에 참가한 책도 하나 걸렸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인희도 단합대회에 끼었다. 문청들에 애증으로 얽힌 출판사 사람들의 술자리엔 문청들이 밥이다. 모두들 혼 빠지게 매운 낙지볶음에 소주들을 들이 붓고 나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했다. 2차는 맥주 집이었지만 사람들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묘령의 아줌마까지 엮여든 것으로 보아 썩 마셨다 싶었다. 그는 실로 오랜 만에 합류했다. 그러니까 모처럼 초벌원고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친구인 편집국장과 더불어 저쪽으로 섞여 앉았다. 그녀는 그런 그를 차라리 존중했다. 그는 그녀의 아무것도,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먼발치로도 약간의 무게가 느껴졌던 그의 원고뭉치는 아직 출판사 책상에 놓여 있었다. 뭔가 하긴 했구나. 하기야 친구에게 졸려서 하는 번역일이 전업이 아닌 담에야 몇 년 걸려 내어놓는 원고도 미진한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그는 작가도 아니다. “시를 못 쓰면 소설을 쓰고, 소설을 못 쓰면 평론을 쓰지요. 것도 못쓰는 사람들이 교수하구요.” 이 시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소설가 ㅈ씨가 어느 강연에서 했다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문창과 교수인데 창작대신 문예이론가라고? 위대한 소설가 ㅈ씨는 그의 직업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는 진지함의 대명사일 따름이다.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그에게로만 상념이 흐르는 것이 들킬까 문득 겁이 났다.


그 순간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봄엔가, 또 『이혼전야』도 출판되었더군요. 대 출판사답게 확실한 번역권을 가졌으니 그랬겠지만, 박인희씨, 제가 드린 원전을 펼쳐보기는 했나요? 게으름 때문에, 아니 망상 속을 헤매느라고 좋은 기회를 다 놓친 그녀에게 대한 힐난일까? 하긴,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는 남자들이 어디 소설 속뿐이던가요? 그는 다시 말꼬리를 내렸다. 말 적은 그가 갑작스런 돌출 발언이라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일까? 혹은 남자로서의 동일시일까?


교수님이 다 읽으신 줄은 몰랐어요. 그럼 직접 번역 하시지 그랬어요. 남편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면서 이혼 직전에 이르러서야 그 사랑이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아내 또한 그림자 인생의 표본 아닐까요?


그건 남편이나 아내의 문제가 아닐 것 같소. “사랑한다는 건 단지 안다는 것 이상일 것. 우주에서 똑같은 궤도를 도는 두 개의 별이 존재하는 것처럼 엄청난 우연일 것. 그런 우연은 결코 없을 것. 삶도 사랑도 모두 동일한 박자로 움직이는 우연! 그런 만남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비한 환영 같은 것....... ” 그 왜 약간 뒷부분에 나오던데, 게까진 읽지 않았나요? 책 내용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녀만을 향해 뱉는 말이었다.


뭐라 대꾸하려고 입술을 연 인희는 단어를 얼른 토해내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 탓이기도 했다. 그렇겠지요. 한쪽이 빠르면 다른 쪽은 느리고, 한쪽이 소심하면 다른 쪽은 용감하고, 한쪽은 뜨거운 반면 다른 쪽은 미지근....... 속으로만 어느 구절을 외울 뿐이었다.


대강 파하고, 더러는 노래방으로 향했고, 누구는 대리운전을 불렀고, 우왕좌왕이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그의 초벌원고를 챙기러 돌아왔다. 상당한 부피였다. 원고를 만지려니 왼손이 먼저 나아갔다. 여기서 그의 오른손이 느껴질까? 순간 소스라쳐 놀랐다. 다시 꿈인가? 정신없이 방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등 위에 그가 있었다. 현관께로 다른 아무도 없는 찰라. 그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를 등 뒤에서 안았다. 갑작스런 몸짓이었다, 놀랐을까? 의외라서 놀랐을까? 너무도 기다렸던 일이어서 놀랐을까? 기다리다 못해 지쳤고 절대로 더 이상은 꿈도 꾸지 않아서 놀랐을까? 아, 인희씨, 제가 정말, 아 이렇게 참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그 비슷한 말, 흉내 낼 수도 더 이상 기억해 낼 수도 없는 단어들, 단어 몇 개. 그런 단어들은 왜 허공 속으로 빨려 흩어지는지 모르겠다. 높지도 않은 천정에 붙어있다 어느 순간 다시 내려오면 안 되는가. 어두운 밤 시간에, 몇 시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시간에, 단어들은 빛처럼 빠르게 사라져갔다. 다시 깜깜했다.


왜 뒤돌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까? 뒤돌아보기에도 짧은 시간이었을까? 뒤돌아 볼 수 없을 만큼 온갖 동작이 정지된 순간이었나? 자동적으로 발을 내디디면 앞으로 나간다. 인희는 바보같이 발을 움직였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떻게 그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을까? 인희는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은 더욱 더 뒤로 빨려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인희는 앞으로 발을 움직였고, 그렇게 멀어졌다. 그 현관에 그가 일이초간 더 서있었을지, 인희로선 알지 못한다.


*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면서 알았다. 해가 환히 비쳤다. 제법 가을인데도 이중 커튼 사이로 햇살이 깊이 박혀왔다. 머리카락부터 따듯함이 베어나서 발아래로 스쳤다. 그렇게 상쾌한 아침을 언제 기억하는가. 수요일도 아닌데 충분히 행복한 아침이었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펼쳐놓고 앉아서,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왼손을 들어 종이 위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는다.


그의 원고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을까? 출판사에 별 일이 없었는데도 자꾸 들렀다. 뭔가를 핑계 삼으면 핑계는 있었다. 번역물 팀장 쪽에 영어담당 외주자가 우연히 와 있었다. 그 여자는 약간 들린 턱에 상당한 자존심이 고여 있는 유형인데, 사회적 미소를 한껏 띠면서 말했다. 웬 좋은 일이세여, 별안간에 환해지셨네여. 제가 눈치가 좀 되거든여.


눈치가 된다니 무슨 말인가. 눈치에도 급이 있나요, 좀 되시게?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미소가 번지는 데는 스스로도 놀랐다. 나도 침묵이 좀 되거든요? 그런 말도 다 침묵했다. 행복하면 말하는 일도 아깝게 된다. 열린 입을 통해서 순간 행복감이 새 나갈지도 모른다.


순간 눈앞 여자의 얼굴이 살짝 가렸다. 이마 한쪽이 가려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다시 어딘가 막히는 영상이었다. 일정하게 왼쪽 윗부분에 물체가 고정된 것 같았다. 왼쪽 위라면 혹시라도 그의 차를 얻어 탈 때에 그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이다. 계속 그의 머리를 의식하는가? 글씨는커녕 책이 통째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둥근 물체는 아예 눈꺼풀의 안쪽에 있는 듯 시야를 가렸다. 사물이 일그러져 보인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슬그머니 겁이 났다. 신체검사 때마다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상한 점들이 아무렇게나 모인 검사용 그림책은 항상 두려웠었다. 색맹이라는 판정이 나올까 하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우선 그 어른거리는 색의 잔치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추상해 내야하는 그 일 자체, 그 순간의 길이가 두려웠었다. 게다가 수년 전 너무도 완벽한 건강한 모습의, 그러나 멍한 눈의 노인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깨끗한 차림, 무엇보다도 깨끗한 표정, 거의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도, 눈꺼풀 하나로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삶의 한 순간을 목격한 기억이 오싹했다.


시력이 떨어져서 오셨나요? 가볍게 시작된 안과의의 질문은 어느 특정 병원으로 소개받은 후엔 집요해졌다. 글자체가 흔들려 보입니까? 직선이 굽어 보인가요? 시야 가운데가 흐릿하거나, 시야 중심에 검은 부분이나 반대로 텅 빈 부분이 있나요? 한쪽 눈을 가리고 바둑판 가운데 점을 보세요. 점 주위의 선이 물결치거나 휘어져 보이면, 황반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어디, 아직 변색증은 안 보이지만, 변시증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새 혈관이 생성되어 망막 후극부 황반에 변성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진행? 행진처럼 들리는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가 계속 나빠진다는 뜻인가. 조만간 시력을 잃게 된다는 말인가?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변성? 망막이 목소린가, 변성기가 오게?


이어지는 온갖 검사들. 확대 렌즈는 기본에, 약을 넣겠다, 바둑판 검사지를 보며 이리 저리 답하랬다, 종당에는 형광색소를 주사하고서 안저를 촬영한대나. 알아듣고 싶지도 않은 검사들이 쏟아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구나.


사람들은 흔히 비싼 검사비용 내면서 고생고생하며 검사를 하더라도,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기대하며 검사에 임한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기를 바라고 시작했던 초심을 망각하고는 괜히 검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더러 “신경과민에서 오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좀 부끄럽기도 해서, 뭔가 조금 나왔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어 웃고 만다.


아무튼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가 나왔다. 역시 황반변성에 의한 신종혈관이 문제입니다. 겁을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광역학 치료법은 종전의 방사선치료법과는 차원이 달라서.......


확실하게 치료는 됩니까?


확실하다는 말씀은....... 그러니까 완치에 재발이 안 되는 것을 물어보신다면, 솔직히 대답은 “노우”입니다. 재발률은 높은 편이지만, 사모님은 마침 황반 주변부에만 신생혈관이 나타나 있어서, 조기에 치료를 실시하면 진행속도를 늦춥니다. 시술 시간도 극히 짧아서 고통스럽지 않은데다, 미리 염색된 비정상조직만 골라서 파괴하는 것입니다. 베르테포르피린이라고, 광자극 물질이죠. 이 물질을 팔뚝 정맥에 투입하면, 얘가 몸을 돌다가 잘못 생겨난 신생혈관만 염색시키고 나머지는 배설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다음 빛을 쪼이면 되는데, 얘는 에너지가 약해서 정상조직엔 전혀 손상이 없죠. 미리 염색시켜놓은 딱 고 부분만을 얘가 파괴하는 겁니다. 딱 83초 동안에 끝나죠. 입원요? 그냥 이렇게 여기 앉으신 채로, 안압 검사 같은 것 할 때처럼 앉아서 합니다. 그러나 생활 중에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증상들이 다소 더 악화될 수도 있으며, 재발의 가능성도 높은 것이....... 지금 저의 병원에선 일년에 4회를 시술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물론 일회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만.


말씨는 다시 엄숙하게 바뀌어 있었다. “얘는” 어쩌고 하는 식의,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다스런 패널들의 수다처럼 변하던 말씨가 다시 엄숙해진 것이다. 이제 비용을 말할 차례가 된 것이리라.


우선 인희 자신의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의사들 가운데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의학에 관한 무조건적 신뢰형, 그리고 제 식구들은 병원에 잘 보내지 않고 아이들이 감기가 들어 콧물이 줄줄 흘러도 내버려두게 하는 회의형. 남편은 긍정적 부류다. 기본이 선량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온갖 정보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정보는 겁을 몇 제곱했을 뿐이다. 섬세한 그물과 같은 신경조직 망막 중에서도 황반부는 중심 약 0.5cm정도, 겨우 녹두알 아님 완두콩 크기란다. 하지만 글을 읽거나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고, 색을 구별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이 바로 이 꼬맹이 덕이었다니.


이제 글 읽기나 근거리 작업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불가능할 수도?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의 일년이 시작되었다. 그 후론 수요일 아침이 되어도 눈물을 머금고 행복해 할 수 없게 되었다. 텔레비전처럼 눈으로 함께 보는 대신 귀로 듣는 행복을 구해야 했지만, 남편의 차원높은 음악은 처음부터 인희에게 멀었다.


예약된 병원 복도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통계에도 65세 이상의 노인 10% 이상이 걸린다는 높은 유병률이었다. 그녀 또래는 드물었다. 눈을 혹사한 탓일까? 그녀의 망막이 상대적으로 많이 혹사당했을까? 혹사의 역사는 절로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간다. 재래식 화장실의 침침한 불빛 아래 쭈그린 채 동화책을 넘기던 시절로. 언니들은 왜 하필 그곳에 책을 들고 가느냐고 의아해 하곤 했다. 할 수만 있음 빨리 나오고 싶은 데가 아니냐고. 하지만 그곳의 시간을 참기에 읽을거리만한 것도 없음을 그녀는 알았다.


남편의 눈 꼬리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누가 당신 눈을 혹사하라고 해서 이런 일이....... 그렇게 말하는 눈이었다. 당장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지만, 하던 작업을 중단하기는 어려웠다. 바로 그의 원고였다. 그의 원고를 설명 없이 중간에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습관적으로는 책상의 스탠드만 켜는 것이 집중을 위해 좋았었지만, 이제 천정의 등도 함께 켰다. 모니터를 19인치로 바꿀까 했다 말았다. 이 작업이 끝난 뒤 더는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니까. 대신 글꼴 기본을 12폰트로 올렸다. 곧 14포인트로 넘어갔다. 13을 쓰지 않은 것은 13징크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10-12-14 그런 습관 때문이었다.


이게 황반이 산화되는 것 비슷하다니까. 남편은 드디어 한 마디 했다. 당신은 인스턴트 음식도 안 먹고 술 담배도 안 하지, 대체 어디서 유해산소가 나온 걸까? 골프는 힘드니까 그렇다 치고, 음악회 한번 따라 나서지 않을 만큼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뭐요 대체?


그냥 고도근시 때문에 올 수도 있다 했잖아요?


글쎄, 당신이 원래 허약체질이라 해도, 스스로 몸을 돌보는 데 소홀한 건 틀림없어. 뭐 다른 일에 시달릴 것도 없이 이런....... 남편은 뒷방 쪽을 흘겼다. 할머니 책상이 놓인 곳이다. “쓸데없이” 눈을 혹사하는 짓거리에 파묻혀 그리되었다는 힐난을 담아서. 아이 입시문제로 시달릴 일 없겠다, 시댁문제로 힘든 것도 아닌 안락한 세월을, 어디 걸맞은 일 없어서 “남의 글 교정이나” 하겠다는 여자라니, 남편의 평상시 지론이다. 아들이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도통 음악회도 마다하는 어미라니. 정작 의사 남편이 아내가 사람 북적대는 곳에서는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것을 성격 탓으로만 돌린다.


인희는 가슴으로 운다. 미안해요, “쓸데없이” 혹사한 것은 눈만이 아니었어요. 좋은 남편의 보통 아내이기에도 벅찬 그녀의 속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쓸데없이” 한 곳으로만 향하는 좁아터진 그녀의 시야를 비웃듯이, 정말 시야가 가리기 시작한 것이니까.


일년. 그 일년 사이에 그를 만난 적이 없다. 두 번째 시술 날을 잡아 놓고 일차 교정 분을 단번에 다 넘겼을 뿐이다. 그 사이 그가 유비쿼터스 세상으로 한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꼭 만나지 않아도 일의 전달에는 충분했다. 아니 무서워서 못 만났다. 그 후론 교정도 번역도 완전 중단이다. 그가 원전을 건네준 『결혼의 변화』도 다른 곳에서 출판되었다. 말로는 감정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인 아내, 욕망을 피하려는 구실로 경직된 규율로 도피한 이성적인 남편, 그런 가운데 “내레이터의 시각이 일품일 것”이라 추천했던가? 이제는 다 옛말이다.  번역서로나 읽을 수 있을지, 단순한 독서도 겁난다. 먼 데 초록을 보며 눈을 쉬자고, 한 친구는 나인 홀이라도 한번 따라나서 보라지만, 골프장의 햇빛인들 좋겠는가. 두더지처럼 아파트의 서늘한 그림자 안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 행복한 수요일 아침도 외면한다. 대신 눈을 반쯤만 뜨고 지내는 연습을 한다.


눈을 내리 감으면 감을수록 상념은 높이 높이 나른다. 파스칼도 횔덜린도 그리고 니체의 독서도 힘든 평범한 누구라도, 고독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는 데서 예외가 아니겠지, 그녀는 생각한다. 그가 마라이의 말을 인용했을 때, 렌츠의 이름을 거기에 추가하지 않은 것이 느닷없이 후회스럽다. 그 말을 들려줄 일도 영 없을 것이다. 괴테의 친구로, 친구의 그늘에 가린 채, 10년도 채 못 되는 창작기간, 그보다 훨씬 긴 정신착란의 세월 속, 모스크바의 길거리에 쓰러진 천재. 그 일생만으로도 가슴을 울렸던 렌츠가 갑자기 생각난 건 마음에 와 닿은 한 작가 때문이다. 일면식은 있는 사이다. 그와 더불어 이 작가에 관해서도 이야기 할 틈이 없었다. 아니, 그와 더불어 나눈 시간 자체가, 그와 나눈 대화를 통째로 녹음해서 편집했더라도 몇 시간의 길이나 될까? 그 시간이 내 수십 년 인생에 무슨 영향을 준다는 거야? 인희는 허망한 정답을 깨닫고는 숨을 죽인다.


오늘은 일년에서 마지막이라는 네 번째 시술 약속이 된 날이다. 세 번째부터는 남편 대신 큰 언니가 동행한다. 시술 자체엔 위험부담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아는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 83초를 견딜 때 작정을 했었다, 뭔가 꿈을 꾸리라고. 83초에 그러나 긴 꿈을 꾸리라고. 봉숭아 손톱물을 첫 눈송이에 대고서 소원 빌던 길이보다 훨씬 짧은 동안에. 흐르는 별똥별에 대고 소원을 비는 일에 비하면 엄청 긴 시간 동안에.


이제 한두 시간 후면 하염없이 82초, 81초 ....... 하고 헤아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다이달로스가 다다르고 싶어 했던 태양이 통째로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신 83초 동안 어둡게 꿈틀거리며 되풀이될 꿈속에서, 여전히 그의 네 번째 여자이기를 소원할 것인가? 바로 그 부정한 소망 때문에 계속 병변이 재발되는 것은 아닐까? 흠칫 오한이 인다. 그녀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아무 것도 모르는 넉넉한 언니의 얼굴이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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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5. 11. 3. 22:45

내 딸의 어머니


                                                                『눈물향기의 어머니』2005 (이화에세이)

 

 

내 가능한 딸에겐 내가 어머니일 것이다.

내 딸의 어머니에게도 물론 어머니가 계신다.

그 어머니에게도 또 어머니가....... 

                                                                     ※


누구나 사춘기에는 자신의 평판에 예민하다. 그 시절 평판의 첫 가름은 얼굴 생김새다. 그녀는 천하미인 소리를 듣는 예쁜 여동생과 짧은 터울로 고민이었다.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할 수 있고 말 수 적은 표정으로 넘기며 할 일없이 책상에나 붙어 지냈지만, 속으로는 세상이 불공평했다. 물오리란 별명을 들으리만큼 씻고 또 씻는 습성에도 돋아난 여드름은 참을성을 폭발시켰다. 예쁜 여동생은 정말이지 상대적으로 말하면 잘 씻지도 않지만, 그 매끈한 피부마저도 동네는 물론 학교에서도 제일을 뽐냈다. 여드름이 이마에만 송기송기 돋을 때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이마에 나는 여드름은 누군가가 당신을 좋아하는 증거다 하는 속설 때문에. 하지만 볼에까지 빨간 뾰루지가 돋기 시작했을 때는 심각했다. 게다가 예쁜 여동생은, 어마, 언니도 누굴 좋아하는 거야, 그러네, 하면서 예쁘고 까만 눈을 흘겼다. 그런 어느 날 그녀는 유난히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어머니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어머닌 정말, 첫째는 조물주 실패작품을 낳았더니만 둘째는 예술작품을 낳았어요?


조물주 실패작품?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한참을 더 자라서 어머니가 되어서야 느낀 것이지만, 어느 어미가 제 자식을 낳아놓고 실패작품이라 느끼랴?


그녀의 첫 아기도 갓 때어났을 때 도저히 미남이 아니었다. 포도같이 검고 호수같이 깊은 눈동자를 지닌 둘째와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작은 눈에 남달리 푸른 눈매가 오히려 신기하기만 했다. 아무려나, 아이들은 제 어미를 힐난할 좀생이로 자라지는 않았다. 아들들은 딸들에 비해 적어도 자신의 외모에는 관대한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 일반론보다는, 아이들이 제 어미보다 좀 더 관대한 품성을 지닌 것이리라.


어머니 ―

첫 아이 실패작품을 낳았냐는 딸의 공박에 어안이 벙벙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의외로 당당하셨다. 너희들 시집가서 나만큼만 아이들 반듯하게 낳아 보거라! 어머니로서 큰소리 치실만큼 어려선 제법이었던 자식들이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훨씬 넘긴 지금. 자식들 모두 제 아이들이야 어떻건 사는 형편들이 어머니처럼 큰소리 낼 계제가 못된다. 물질의 권능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기를 보낸 아이들은 자라서는 분명 그 물질에 굴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인가 보다. 물질의 중요성을 너무도 늦게 깨닫거나,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산다. 농본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세상이 바뀌었으되, 사업공식에 접근하지 못하고 유아적 신뢰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건지는 것이 없다. 철없는, 더러는 기고만장하던 자식들이 재력의 손상과 함께 권위는커녕 자칫 품위도 상실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어머니. 그 아린 가슴에도 습관은 추억을 버리지 못하시는.


소도시에서 방학을 맞은 딸이 어머닐 뵈러 올라온 날이다. 실패작품과 예술작품 다음으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들 낳으시고 얻은 셋째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맛있는 데 가서 점심이나 하시지요.

점심은 무슨, 맨 날 먹는 것이 밥 아니냐.

그래도 어머니.......

누가 운전이나 하면 어디 물가에나 다녀왔음 싶구나.


물가.

그렇다. 물가에도 가지 않고 여름을 난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어머니다. 젊은 시절, 어린 아이들 살필 사람 많으니 봄가을 몇 차례씩 설악산으로 제주도로 관광 일 세대를 자랑하시던 가락이 여전하신 것. 해외여행 붐이 터지자 관광 목적지는 넓어갔다.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 꼭 이민 가서 살겠더라!” 뉴질랜드의 경관에 감탄하신 것이 칠순 무렵이시니, 정신적인 에너지는 차치하고 건강 또한 그만하면 되신다. 그런데 팔순을 넘기신 지금, 이 근년에는 사정이 다르시다.


특히 올여름은 실패작품 큰 딸네도 고장이 나 있다. 모처럼 막둥이 생일을 핑계 삼아 모두들 며칠 쉬자는 ― 어머니의 관점에서는 며칠 사는 것처럼 살자는 ― 땅 끝 콘도 예약도 틀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며칠 전 다녀온 예술작품 둘째네 전원생활의 품은 양에 차지 않으신 것이다.


썬 크림도 안 바르는 여자가 어디 있다더냐!

어머니는 둘째네 도자기골을 가실 때마다 썬 크림을 사들고 가시지만 매번 퇴짜다.


그렇게 예쁜 딸을 낳아서 그렇게 예쁘게 길러서 ― 이 예술작품도 이화인이다 ― 시집보내 놓으니, 이제 와 시골생활이라니. 시커먼 고무신에 그보다 더 시커멓게 탄 발등을 하고, 뭣이 좋아서 저 아줌마들하고 종일 살거나. 다른 자식들에게 푸념이시다.

그 아주머니들 단체로 난생 처음 제주도 여행도 데려 갔대요. 제 신랑 말이 “몽강리 여자주민 탐라국원정대” 대장노릇 했다나요?

참 할 일도 없구나.


어머니는 “제주도”라는 지점에서 특히 속이 상하셨을 것이다. 어느 자식 하나 어머니모시고제주도 다녀올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핑계라면, 자식들 누구도 어머니는 젊어서 충분히 제주도를 가셨다는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터다.


어쨌거나 시커먼 얼굴로 흙 속에서 살아가는 예쁜 딸이 일본식 미인 기준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로서는 통탄할 일이다. 어머니는 항상 “살빛 그을린다고” 한여름에도 얇은 긴팔만을 고집하셨다. 그렇지만 이제 팔순도 넘기시지 않았나! 그것은 딸들의 착각이다. 지금도 차라리 덥고 말지 반팔을 못 입으신다. 지난 번 집에 잠깐 오실 때 과일가게에 들려 수박짐 뒤따라 몇 발 걸으시며 땀을 흘리셨기에, 더운데 좀 짧은 팔 입고 다니시라했더니 답은 의외였다. “팔꿈치가 다 늙어서야.......” 어머니도 참. 누가 어머니 팔꿈치 보고 다닐까 봐서요? 제 나이도 밖에 나가면 아무도 안 쳐다보는걸요.


그때도 어머니는 마음이 상하셨을까? 가까운 냇가에라도 드라이브를 하려던 그날, 어머니는 “지나치게 꼼꼼하게” 화장을 하시더란다. 파운데이션을 꼼꼼하게 펴 바르고 그 앞인지 뒤인지 또 썬 크림을 꼼꼼하게 펴 바르고....... 드라이브 다녀와서 해 안에 다시 소도시로 내려가야 하는 딸의 입장에선 바쁘기도 하고, 해서 튀어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그냥 대충대충 하세요, 누가 본다고요!” 어머니는 막 바르려던 립스틱을 홱 던져버리시더란다. 며칠 전 큰애가 했던 말이 생각나셨을까?


저녁 늦게 멀리 전화로 후일담을 나누던 두 딸은 웃고 말았다. “우리도 나이 들면 더 열심히 단속을 하게 될지 알겠어? 또 깔끔한 것이 백번이나 낫지 뭐.” 허나 웃음은 곧 썰렁함으로 바뀌었다. 화려함의 끝에 서있는 어머니의 삶이 걱정이었다. 그렇게 파운데이션을 꼼꼼하게 펴 바르고도 외출할 곳이 점점 줄어드는 어머니. 세상은 바뀌어 전체가 업그레이드다. 그냥 멈춰선 자리매김에 혼돈스러워 추억 속에서나 자신감을 붙들고 계시는 어머니가 안타깝기만 하다.


아카시아 향기 ― 어머니는 라일락 향이라고 하시지만 ― 그 아련한 어머니의 체취가 특정 화장품을 평생 고집한 덕택인 것을, 그녀는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어쩌다 아이들이 용돈 모아 선물한 이상한 크림일랑 뚜껑도 열지 않으신 결과인 것을. 그런데 그녀는 모든 브랜드를 무시하고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로션을 집어 든다. 나중에 제 아이들이 선물할 모든 화장품을 쓰겠다는 시위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머니에게 화장품을 선물하고 싶어 하거나 예쁘게 낳아주지 않았다고 불평할 딸이 없다. 딸의 귀감이 되어야할 의무가 면제된 삶은 한편 자유스러웠다. 하지만 딸의 시선이 의식되지 않은 삶에는 비판의 시금석이 빠졌을까 겁도 난다. 그 딸의 어머니로서, 딸아이가 제 어머니와 공통분모를 찾아 분석하는 일이 이제서 궁금하지만 그건 꿈이다. 사람은 꿈속에서도 논리를 지닐 수 있을까? 가능한 딸의 분석에 평균점은 되는 어머니고 싶은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듯, 큰 부채로 손을 뻗는다. 바랜 창호지 부채살이 몰고 오는 시원한 바람에 상념은 더 높이 난다.(2005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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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5. 10. 15. 23:30

 

교집합과 합집합  

 

<문학사상> 2005년 11월호


 

“수학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형은…….”

첫 강의시간에 운을 떼자마자 학생들의 얼굴이 굳어지려 한다.

봄이, 가을이 올 때마다 우리 선생들은 새 학생들과 만난다. 학생들과 세대간 거리가 더해갈수록 앞으로의 상호이해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기만 한다. 강단에 선 사람은 소통을 터야할 의무를 갖지만, 시작은 항상 이렇게 어렵다. 첫 시간의 단골메뉴가 하필 수학에서 차용된 것들이라 더욱 낭패다.

수학은 성년이 된 이들에게는 학창 시절 골치만 아픈 존재였다고 기억되곤 한다. 졸업 후 바로 실 인생에 뛰어든 경우도 그렇지만, 인문계열에 진학을 해 보아도 수학은 쓰임새가 없다.

아예 인문계열에 수학을, 자연계열에는 국어를 면제하고, 영어만을 공통입시과목으로 택하는 대학도 있다. 대한민국은 가히 영어-정보화 대학들로 넘쳐있다. 그에 걸맞게 동영상으로 맞이해야할 젊은이들에게 분필로 그리는 삼각형이라니. 그것도 밑변에 해당되는 선분 하나만 달랑 그려놓고 잔소리에 들어간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이 밑변을 그리는 시기에 있습니다…….”

밑변을 최대한 넓히는데 힘쓰라는 당부를 위해, 카프카의 빈둥거리기 예찬까지 들먹인다.

“최소한 25세가 되기까지 잠시라도 빈둥빈둥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참 안 되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갈 것은 벌어 놓은 돈이 아니라 빈둥거린 시간, 바로 그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오.”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아 확고한 성취동기로 무장하고 앉은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찬물을 끼얹어야 할까. 산학연계 학습과정을 개발하라는 사회적 독촉에도 어긋나고……. 해서 그것이 요즈음엔 점점 벤다이어그램 쪽으로 기운다. 교집합과 합집합을 인간관계에 비유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교집합은 쉬운 말로 공통의 원소를 가지는 집합이다. {김, 이, 박, 최, 정}과 {최, 정, 강, 조, 윤}이라는 두 집단이 있을 때, 교집합은 {최, 정} 두 사람으로 좁혀진다. 그러나 합집합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으로 여덟 사람이 된다. 여기에 성씨 대신 나의 특성과 타인의 특성을 대입하면, 교집합은 공통점을, 합집합은 두 사람의 합을 드러낸다. 합집합의 크기는 교집합과 반비례하므로, 큰 합집합을 위해서는 교집합이 작아야 한다. 물론 가장 큰 합집합을 위해서는 교집합이 없어야겠지만, 그것은 무의미하다.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교집합은 필수적이니까. 장황한 설명보다도 동그랗게 원 두 개로 벤다이어그램을 그리면 모두에게 순간 확연해진다. 땅 따먹기라 해도 합집합을 늘리기 위해선 교집합을 줄여야 함이.

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인식의 출발을 결정한다. 그 중요하다는 영어를 배울 때의 어려움 중 하나도 단수 복수 구별이었다. 물질은 셀 수 없기 때문에 많아도 단수다. 하나 둘, 세어지는 사물은 둘 이상이면 복수다. 거기에 또 집합적 단수. 얼마나 힘든 개념이었던가. 개와 고양이는 합쳐서 말하면 ‘동물들’이고 복수로 ‘데이 아’인데, 여러 ‘사람들’인 가족은 복수가 아니라 집합적 단수라 했다. 우린 참 형제자매가 많은 가족이었으니 더 혼란스러웠을까.

그래 우리가 영어나 독일어로 말하면서 복수 쓰기를 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말에서 ‘우리’와 ‘우리들’을 굳이 구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내 고향에서는 “나는 매운 것을 무척 좋아해서”라고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운 것을 원칸 좋아해서”라고 하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도통 요새 영화는 범벅이요”라고 하면, “나는 요즈음의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무남독녀인 우리 어머니도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라 하신다. 서울 중심의 사람들이 쓴다는 표준어에서도 ‘나의’ 아버지 대신 ‘우리’ 아버지다. 심지어 ‘우리(!) 집사람’임에랴.

왜 ‘나’ 대신 ‘우리’를 즐겨 사용할까? 언어에서 연원하는 문학을 전업으로 사노라니, 진작 언어 일반에 대한 철저한 고찰을 소홀히 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무심한 세월은 흘러, 소설가 ‘ㅂ’이 한껏 조롱한 늙은 교수들에 속하게 되었다. “명성이라는 더러운 스타킹을 뒤집어쓴 부패한 관료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물론 그 명성도 없이. 그러면 차라리 학생들도 그 소설책에서처럼 모두 “독학자”가 되겠다고 캠퍼스를 버리는 상상을 한다.

첫 강의를 마친 저녁에 낯선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실명대신 별명으로도 스팸메일을 걸러내는 전산시스템에 통과된 것이다.

‘1학년에겐 점수를 잘 안 주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알고 계시느냐. 또 첫인상으로 보아 자기주장이 강하신 교수님 같은데, 하고 싶은 말 있어도 못하게 되면 어떡할지, 이것들이 괜한 걱정임을 밝혀주셨음 좋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빠른 반응에 대한 기쁨 한편으로 숨이 막혀 왔다. 그러나 숨 막힘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인상을 여태 못 벗어났단 말인가?

실은 지루한 강의 사이에 우스갯소리를 그리워하는 학생들을 내 나름대로 이해한다. 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학생들은 결석할 자유가 있어서 좋겠소!” 정도다. 일단 학생들은 웃는다, 출결석에 까다롭지 않은 교수를 만나서 다행일까 하는 기대로.

말을 이어가자면, 자유시장경제에서 살고 자유결혼도 해봤지만 그리 자유로울 것이 없는 것이 삶인데, 한 학기 한두 번 결석조차 못할까 보냐! 그쯤에 이르면 웃음을 거둔다. 거 봐요, 이 사람은 우스갯소리 해보아야 썰렁해지니 아예 기대하지 마시오!

결석할 자유, 졸업하지 않을 자유! 이론상으로 인간에겐 자신의 진리를 고안해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유는 우리를 미결정의 상태로 놓아둔다. 자유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자유는 변화를 갈구하는 프로메테우스적 본성이다. 모든 것을 알고자 언제나 다시 새로운 체험을 추구하는 파우스트적 충동이다. 자연으로, 곧 너의 본성 안으로 돌아가라! 너에겐 너의 진리를 고안해낼 자유가 있다. 그 자유를 보편화하고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관철시키려 하지 않는 한, 이 자유는 다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다치지 않아도 될 아주 작은 자유를 꿈꾸는 나는, 그러니까 소인배였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인간을, 인류를 사랑하고 그래서 선의를 행동하려는 역동적인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발견한 진리들을 사회에 적용시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삶에도 영향 주고 싶어 한다. 사회적인 장치가 인간의 본성에 합당하게 조직되지 못했다는 역사 인식에서 출발하는 이들은 과감히 새로운 원리를 들고, 특히 소외된 계층의 구원이라는 입장에서 소유의 평등한 분배를 향해 사회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론적으로는 정치가나 사회운동가나 참 이타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차이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합일에 대한 소망은 참담한 결과를 부르기도 한다. 사회가 공감으로 채워져 있는 공동체로 변화하는 루소의 꿈을 멋대로 끌어들이면 로베스피에르의 ‘덕에 의한 테러리즘’으로 왜곡되기도 했으니.

그런가 하면 소유의 분배 이전에 아예 소유를 초월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산업사회의 소비주의를 탄식하며 소유가 아닌 존재를 지향하는 삶을 꿈꾼다. 인간에게 소유욕으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주어서 본래적 존재로 되돌려 놓을 사명을 지닌 듯하다.

본래적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여러 단수의 복수들인 인간에게라면 이 본래적 존재 또한 무수한 변형으로 파악불능에 이른다. 인간을 집합적 단수로 볼 때라야 그들의 사명이 실현 가능해 보인다. 위대한 진리들로 인간을 치유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여러 이론들은 매번 교집합의 확대를 꿈꾼다.

혼란스러운 단수와 복수. ‘나’와 ‘우리’의 조화는 뫼비우스의 띠를 맴돈다. 그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정작 분열적 환상에 시달린 사람들은 자기 안에 서로 다른 집합들을 가진 경우다.

나 역시 뭔가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다. 남의 글들을 공부할 때, 자판 위를 날아다니는 손가락들이 먹다 남은 먹이를 파헤치는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으로 변하는 환상에 떨 때가 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나머지 손가락 하나씩을 위한 나의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글 공부와 글쓰기 ― 두 성분은 필연적인 분리를 지향한다. 궁극적 확장을 위해서 파괴되기 직전까지의 분리를 향하여. 미쳐버린 렌츠와 횔덜린에 이르지 않을 만큼만. 자신과 타인 사이, 자신과 사회 사이, 아니 제 자아들 사이에서 한 점 교집합이 없이 터져버린 이 영혼들을 새삼 보듬고 싶어진다.

교집합을 동경하면서 합집합의 확장을 꿈꾸는 모순이 먹안개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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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독문학2005. 4. 3. 23:30

   Ingeborg Bachmann  소설 : 히스테리적 여성인물 중심으로    

 

I. Bachmann (1926-1973)                                  
                                         

 
    - 오스트리아 출신
    - "Heidegger 철학의 비판적 수용"에 관한 연구로 학위.
    -  시집『유예된 시간』에서부터 방송극, 단편집 등 작품마다 성공.
    -  후반에는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죽음의 방식들 Todesarten』구상.
    -  화재 후 치료 중 사망.

                                                                     
  ≪ (59-63) :  Max  Frisch! (1911-91) ≫
 

 

『죽음의 방식들 Todesarten』3부작:
             80년대 페미니즘 문학연구의 기폭제
             장편 『말리나 Malina』
             미완 『프란차의 경우 Der Fall Franza 』
             단편 『파니 골드만을 위한 진혼곡 Requiem fü r Fanny Goldmann』

          * 이들의 죽음은 예고된 죽음이요, 예고 방식은 암시라기 보다는 명시적으로........

바흐만은  자신이 계획한 삼부작 소설에...... 죽음의 방식이라는 제목을 달고자 하였다.
바흐만은 세 여성 주인공들의 죽음의 원인이 모두 "타살"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들에서
묘사하고자 하였다. 마리안네 슐러가 나타낸 바 있듯이, 만일 바흐만이 이러한 죽음을
서구의 상징화 과정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밝히고자 한다면, 여기에서 살해의
끔찍함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그러한 살해는 여성적인 것에 가해진,
사회적으로 인정된 범행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바흐만의 텍스트들을 통해서 우리는
후기구조주의에 의해 열렬히 받아들여진 바 있는 여성적 주체성의 비실존이 바로 이것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참기 힘든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Lindhoff)

☆  Ingeborg Bachmann 연구: 2 계열                                                      

- Marlis Gerhardt, Rückzüge und Selbstversuche (1983):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 - 『말리나』의 여성적 자아 대비:
      『말리나』의 여성적 자아와 남편과의 노예화된 생활에 결별을 고하는
       노라의 결단을 대치시킨다.

- Marianne Schuller, Wider den Bedeutungenswahn. Zum Verfahren
                              der Dekomposition in "Der Fall Franza". (1984)
            프로이트의 『히스테리분석의 단편 Bruchst ck einer Hysterie-Analyse』(1905)
            에서 공개한 환자 도라, 이 전조된 징표를 드러내는 히스테리 연구
            "도라의 경우"에 비추어서『 프란차의 경우 Der Fall Franza』를 해석.

         * 프란차의 남편은 그녀를 자신의 창조물로 만들려고 하고 그녀 안의 "타자"를
            죽이려고 시도, 프란차는 정신분석학자인 남편에 의해 병에 걸리게 된다.
            프란짜의 히스테리는 그녀로 하여금 이러한 가부장적 "의미의 망상"이 가지고
            있는 명백한 자기동일화들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게 해주면, 추방된 타자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Schuller, 153)

히스테리 여성환자들에게 특징적을 나타나는 것은 여성적인 대면 상대자의 결여인데,
....... 엘리자베스 브론펜은 쥴리엣 미첼의 규정, 즉 모든 여성작가는 확실히 히스테리
여성 환자라고 하는 것을 인용한다:

                    "히스테리적인 목소리로서 이것은 여성적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성의 남성적 목소리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남성적 담론에 대한 모방을 가리키고 있다. 서술전략이 비유어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건, 양가적인 태도의 의미를 명확히 드러내건, 혹은 문화적인
공동 장소의 배후에 숨겨진 전제들의 정체를 벗겨 던지건 간에, 이러한 것들은 전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어쨌든 간에 히스테리적 목소리의 패러디나 탐닉은 텍스트의 테마
층위에서나 수사적 층위에서나 여성들이 처해있는 딜레마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이다.
                                                                                               (Bronfen, 583)

뒤라스와 바흐만의 텍스트들은 아마도 여성적 경험의 정교화가 패러디를 지시하기도
하고 탐닉을 지시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들일 것이다......
이들의 남성 화자들은 ..... 주체일 수 없는 여성 자아와 남성(화자) 주체 사이의 분리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일찍부터 전적으로 희생당하는 프란짜의 몸짓에서, 정신은 육체와의 공동행위
속에서 도피처를 발견함으로써 육체와 결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그녀의
육체로 인도하는 이 같은 작업은 어떻게 이러한 문화를 입증하고 사물화시키는가 하는
한에서만 문화를 초월한다. ..... 바흐만이 이 여주인공에게 부여하는 절망적인 논리는
.... 문화가 자신의 딸들을 미리 매장한다면, 딸들은 스스로를 매장시킴으로써만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Bronfen, 614)


[참고]
- 레나 린트호프: 페미니즘 문학이론, 인간사랑 1998.
- Elisabeth Bronfen: Nur  über ihre Leiche. Tod, Weiblichkeit und  Ästhetik. 1994

Posted by 서용좌
서평2005. 4. 1. 23:30

http://cafe.daum.net/novelworld


카페 소설시대   류경빈

 

 서평 ...............................<춤꾼> 서용좌


처음에는 춤꾼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듯 했으나, 춤꾼을 통해서 주인공의 삶과 연관 시키고 있는 내용으로 발전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딱히 어떤 비평으로 해야 할지 그 구분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심리적인 측면이 더 드러난 것 같아서 심리주의 비평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 작품 속에는 춤꾼을 바라보는 정식의 관심사가 자신의 삶과 비추어 보았을 때, 흐른 세월 속에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한다. 춤꾼이 남자라고 생각했었지만,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는 외모로만 보고 판단했던 자신의 의식 속에 여자라는 사람은 생김새가 예쁘고 머리도 길고, 화장을 하는 등을 생각했기 때문에 춤꾼의 모습에서는 짧은 머리와 헐렁한 셔츠 등이 남자라고 확신 하게 되어, 그 모습은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서 회의감에 젖어 든다.

아내를 처음 보았을 때 얼굴빛이 도화 빛의 얼굴 이었고 지금의 아내는 누렇게 변해 버린 얼굴과 화장이 다르므로 춤꾼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아닌 중성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주인공은 남자이지만, 작가는 주인공의 입장, 곧,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그 시선이 어떠한지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 작가 의식 속에서는 아내의 세월이 나성의 눈으로 보았을 때, 여성이 아닌 중성 인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모습만이 남아 있고, 남편이 집에 돌아 왔을 때, 여자로써 매력이 없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이 된다.

남편인 정식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와 이야기 거리가 없이 홀로,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 정신없이 앞을 향해 왔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하고 ,중년의 나이에 자식도 있지만, 어느 정도 빠른 시간을 보냈다면 ,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지위, 그리고 가정에서의 위치가 곧, 가정의 살아남기 작전이 되어 불안감을 갖고 있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상태가 달라서 감성과 이성의 충돌이 아내에 대한 불만족스런 생각들로 아내 흉보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춤추는 것과 아내의 흉보는 것 중에 아내의 흉보기가 더 좋다는 생각은 아내에 대한 불만족이 춤추는 몸의 동작이 즉, 행동으로 나타내기 보다는 그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덜어내고자 하는 자신감이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짐작 하게 한다.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5. 3. 25. 23:30

펼쳐두기..

 

                                                                                                        소설시대 2005

 

춤꾼을 말해 춤을 업으로 하는 인사렷다, 장사꾼이 장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듯이. 춤이란 곡조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서 팔다리와 온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사전적 정의다. 그날 밤 그 사람은 그러니까 춤꾼인가 싶었다.


처음 그 사람이 눈에 띈 것은 한 사람이 통기타를 치고 누군가가 드럼을 했다가 말다가 하면서 노래만 부르는 사람 합해서 서너 명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맥주가 있는 그런 곳에서였다. 눈에 선 것은 한 손님이 그룹의 멤버이기나 하듯이 딱 달라붙어 앉아서 그들의 연주를 바라보는 모양새였고, 그런데 얼굴은 해맑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추운 겨울 밤, 손 한 마디도 안 되는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서 노래패 옆에 달라붙어 앉아있는 모습은 교교했다. 홈쇼핑에서 두어 벌 함께 샀음직한 그저 그런 체크무늬 셔츠는 그냥 몸을 가리는 일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가리개였고, 그것도 엉성한 크기 때문에 형님이거나 좀더 크고 뚱뚱한 사람에게서 얻어 입은 몰골로, 멜로디 하나하나에 그저 감탄을 하고 있는 표정은 혹시 이 사람이 정말로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세상 노래 스타일에 온통 감탄하고 있나 싶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날 정식은 오랜만에 동창생 몇 만나서 송년의 술을 했다. 만으로 쳐도 40이 넘어가는 송년의 밤은 숨이 막혔다. 40년 세월, 누가 인생은 40부터란 실소를 하게 하는가. 이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는 밤, 그것이 사십인 게다. 그들 중 하나는 대학에 있는데, 그 친구가 젊은 선생님들하고 몇 번 와보았던 소위 “7080 문화를 만끽하지” 하면서 이끌었던 곳이다.


처음 그 대충 까까머리를 보면서는 거의 불안한 느낌에 맥주를 마셔도 몸이 풀리기는커녕 오도카니 앉아 그 모양새를 관찰해야 했었다. 그래, 나잇살 들어 보이는 얼굴로 미루어 제대한 군번은 아니었고, 교도소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감정은 여전히 풍부하다 그건가 참. 쪽지들이 가끔 건네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청곡들을 적는 모양이었다. 정식네 팀에서도 뭔가 말하라는데 정식은 여전히 건성이었다. 저 진지한 얼굴, 악사들이 클래식도 또 유별나게 감동적인 그룹사운드도 아니련만, 저 진지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주객이 전도라더니, 정식은 음악보다는 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볼수록 어디에선가 만난 적이 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드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어떤 특징도 없는 얼굴이 더욱 기이했다. 적당히 작은 눈, 적당히 낮은 코, 적당히 누런 얼굴 색, 무엇보다 적당히 나이든 얼굴이 오히려 이상했다. 저쯤 행동하는 사람이면 뭔가 좀 눈빛이라도 달라야 하지 않은가.


연주자들이 쉴 시간이 오자 그는 덩달아 가운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건너편에는 여자 둘이 있었다. 여자들은 화장기도 제법 있고 유행하는 모자도 얹어놓고 있었다. 발을 꼬고서. 이상한 트리오다.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고서 마음을 돌린 그들은 제 이야기에 빠졌다. 아따, 그 선생 운도 되게 나쁘네.


이야기의 중심은 이번에도 대학에 있는 동창이 몰고 다녔다. 전공들이 다른 사람들의 느슨한 결합체이다 보니, 흉을 보아도 흉이 되어 돌아갈 리 없는 독특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그날도 한 ‘불운한’ 초임 교수에 대한 성토와 동정이 주제였다. 봄 학기에 발령을 받아서 머슴에서 왕이 된 기분의 전임강사. 그 봄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동티가 나다니.


선생은 그 동안 뒷바라지에 힘든 아내와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둔 가장. 그의 나이 불혹을 넘긴 뒤에서야 시간 딱지를 떼고 전임이 되었다 했다. 거기까지의 고생은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막스 베버가 그랬다던가, 교수가 되고 못되고는 만원인 전철 타고 가다가 앞자리 사람이 내리면 앉을 수 있고 아니면 아닌, 바로 그만큼의 확률과 우연이라고, 대학에 있는 동창은 제법 겸손한 멘트를 섞어서 자신을 지키면서, 그 신임교수의 운명을 보고했다. 3학년 여학생과 동티가 났다는 사건. 기숙사에 들어있는 여학생이 기숙사 통금 넘어서 이상한 카페에서 어떤 ‘교수님’과 단둘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 노출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여학생은 인터넷에 하소연했고, 교수님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는데, 이는 순전히 성적 등을 담보로 뭔가 상납을 요구하는 성폭력이었으니 처벌해달라는 요지였다나. 알고 보니 둘의 이메일 교환에서도 증거가 여실했는데, 교수는 늑대라는 ID를 사용했으므로 노골적으로 한창 물오른 양을 잡아먹었다 등등.


그럼 당시 상황은 살벌했겠네? 세 번째 녀석의 말이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며 조신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 속모를 친구였다. X조교 사건보다 더했네, 그렇제?


뭐야, “정 뗄 칼 없고, 임 잊을 약 없다”는 사랑이야긴가? 그래, 사랑 빼고 뭔 이야기가 있겠나?

 

뒷이야기를 풀어내는 교수는 한참 맥 빠진 소리였다. 그야 살벌했지, 한 동료 교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부인은 탄원서를 들고 학장실을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지만, 실상 대학사회라는 게, 한 동료의 고통과 한 학생의 상처에 무력한 개인들뿐이더군. 사실 스승과 제자라는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우리 중 누가 과연 이런 남녀 문제에 완전 자유로울 수 있겠나? 헌데 어찌되었든 한 지붕 밑에 사는 사람들로서 불행에 빠진 당사자들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니 뭔가. 자넨 그럼 그런 불한당을 가만 둬야 된다는 거야 뭐야. 이 사람 대학교수 되더니, 가재는 게 편이야 뭐야!


아니 내 이런 말의 관점은 그 잘못된 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아쉬웠다는 것이지.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하면 전 우주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잖나. 교수 만들기 뒷바라지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아내는 어떻겠나. 사실인즉, 매력하나로 사는 여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성적 협상차 연구실 찾아들었다가, 거절당하면 스스로 옷을 찢고 고함치며 뛰쳐나가서 성폭행 뒤집어씌우기는 미국에선 벌써 60년대 고전이라지 않은가. 도통 미스 뷰티에 미스 스트롱이야 요새 여자들은.


하긴. 역정을 추스른 종합병원 친구가 딴청을 부렸다. 하긴 요새 여자들 말이야, 계모임에서 며칠씩 여행가기는 일도 아니거든. 전에는 뭐 큰 솥에 곰국 끓이면 마누라쟁이 며칠 나갈 까 안다더니만, 요샌 그것도 아니래 글쎄. 냉장고에 “까불지마” 그렇게 써 붙여 놓으면 그만이라나.


까불지마? 그거 만우절 이야기 같네.


아니 영화제목 아냐, 오지명 최불암 나오는? 참 그런 것도 한다네, 누가 볼 거라고.


내가 봤네 왜. 첫 장면부터 찢어진 청바지에 짧은 잠바 날리며, 터프하게 지프차를 몰고 나타나는데, 믿을 수 없으리만큼 원시적인 수컷 본능을 뽐내고 싶어 하지만, 누군들 그들의 카리스마를 알아줄까? 공격에는 도피가, 위협에는 복종이, 게다가 회유와 텃세 등 갖가지 동물적인 행동들이 난무해 보았자, 글쎄, 덜 떨어지고 늙어버린 건달들은 그저 돌아가신 후에야 찾게 될 애절한 그리움의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메일 뿐. 코너에 내몰린 중년이 외쳐 봤자 뭐, “까불지마.”


참 그런 영화도 보나. 그런데 아내들은 그들에게 먼저 외친다고, “까불지마!”


그런 말 아닐세. 그냥 우스개야. 까스조심, 불조심 시리즈야.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것은 마지막 “마”를 두고서 버전이 두 가지라는군. “마누라만 생각 해!” 그것이 하나고, 다른 것은 “마누라 찾지 마!”라네. 우리 집사람 동창들이 모여서 한다는 이야기가 거기서 두 패로 갈렸다는군. “생각 해!” 쪽을 고집하는 부류는 어쨌거나 아내는 자유를 갖되 남편들은 조심시켜야 한다는 이기적 유형이고, “찾지 마!” 쪽은 개인주의 형인데, 어이, 우리 입장에선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참 별난 선택도 다 있네, 이왕 그리된다면 거야 자유방임주의가 낫지.


무슨 소리야, 그래도 “생각 해!” 쪽은 관심은 있다는 증거 아냐. 요사이 평균 수명 발표를 보면 우리가 살 날도 한참 긴데, 그나마도 무관심이면 어찌 버티나.


이 한심들아, 우린 아직 그런 처지는 아니잖아. 알콩달콩 아이들 귀염 속에서, 아내들 애교도 아직은 괜찮잖아?


이 한심한 가운데 악사들이 돌아왔다. 귀에 익은 〈화〉가 첫 번째 곡이었다. 그들의 팀에서 넣어준 것이 분명했다. 동창 하나가 다른 친구들의 욕구를 언제나 잘 기억하는 장점을 지닌 덕이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 또 하루를 보냈다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애달픈 노래를 흐느끼는 친구가 바로 대학교수다. 국사전공이라서 특별히 유학 갈 시간 돈 투자하지도 않고 일찍 교수가 되어 선망의 대상인데, 노래는 꼭 사연 있는 것으로만 불렀다. 어느 새 다들 알게 된 노래를 정식도 한껏 따라 불렀다. 오늘도 애 태우며 / 또 너를 생각했다 / 오늘도 애 태우며~~ 홀의 누구라도 함께 부르는 분위기 탓이다. 화 안 된다 떠나지 마 / 이대로 이별일 순 없다 /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안된다” 할 때는 반쯤 서서 양팔로 허공을 안았다.


젖은 짚단이 타더라도 다시 불꽃이 인다는 말인가? 그런 상념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그날따라. 예의 반 까까머리가 서서 나오더니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공옥진의 병신춤 비슷한 것이 도통 묘했다. 어이어 어이어~ 벌릴 듯 말 듯한 입에서 소리라도 나는 듯 했다. 물론 음악소리에 묻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동 출소인가?


정식은 공옥진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무슨 행사장이었다. 여흥으로 불려 나오기는 대단한 분인 줄 알았는데 그때가 대단한 행사였는가 싶다. 그때 우리가 본 것은 왠지 ‘부끄러운’ 병신춤이었다. 상당히 노골적인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느껴져 거북스럽기도 했다. 덩달아 박수를 치면서도 단 한번에 이해할 수 있기에는 그의 예술적 감각은 평범 이하였다. 과장은 있으나 교만하지 않는, 꾸밈은 있으나 거짓스럽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비로소 훨씬 뒤 그 장면이 우연히 되새김될 때였다. 소리꾼의 딸로 태어났으니 손잡고 걸음마 뗄 무렵부터도 머리맡에 장고와 북소리가 끊이질 않아 귀 장단을 익혔을 것인데, 살풀이춤을 배우면서도 어쩐지 발 디딤새가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장단 역시 신무용을 먼저 배운 뒤끝이라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배운 대로 잘하는 사람은 밥벌이는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그것을 가르쳐 준 이가 공옥진이다. 배운 대로만 했으면 창무극에서 천재가 나타났을까. 천재는 다름 아닌 진실이다 싶었다. 그런 기억이 왜 그 순간 되살아났는지.


홀은 다시 안개로 자욱해졌다. 들어 올 때 본 “하루만 참아주세요!”라던 금연 표시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굴뚝을 밖으로 세우는 연통 난로 때문인지도 몰랐다. 고구마를 얹지 않아도 이런 저런 땔감 때문에 피어오르는 연기, 아마 그런 때문일 것이다.


연기 사이로 그가 다시 설렁거렸다. 오른쪽 어깨가 들리면 왼쪽은 밖으로 삐지는 기묘한 어긋남. 어긋남과 어긋남 사이 미묘한 조화가 피어올랐다. 괭이가 드러나는 기둥에 원숭이 매달리듯 휘어 감겼다. 그 전에는 그런 기둥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기둥에 감긴 네 발은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나 싶더니 하나씩 다시 풀렸다. 감길 때에도 물론 한꺼번에 감긴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할 것 차례 없이 이렇게 저렇게 감겼었다. 요란한 스트리퍼들이 등장하는 컬트 영화장면의 칙칙한 관능이 묶이는 막대와는 달랐다.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처럼 천연한 얼굴은 나이도 성별도 없었다. 그 짧은 머리모양에도 그는 열 살 소녀 같은 인상으로 고왔다. 기다란 두 팔은 덜 자란 소녀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부조화였다. 안개는 동양화처럼 피어오르고, <라이언의 딸>에 나오는 사라 마일즈처럼, 린치를 당하고서도 온갖 수치와 고통을 극복한 빛나는 얼굴이 되어 있는 그는 이젠 자긍심 강한 처녀였다. 남자들, 더러는 여자들이 섞이어 앉은 테이블 사이로 진출한 처녀는 조금 유혹적인 표정도 지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헐렁한 체크무늬 남방은 등산복처럼 뻣뻣해서 상체는 옷밖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렇게나 입은 짙은 색 바지도 그저 옷일 뿐이었다. 육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육신이 아닌 춤? 그것으로 타인들 사이에서 무엇을 유혹하는 것일까. 보통 남자 하나가 일어나서 박자를 맞추려고 시도했다. 동지애를 발휘하려는 인간적 남자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춤은 아니 되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누구라도 그 춤사위에 박자를 섞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도지방의 곰춤을 아니 설사 용두춤을 추었더라도 그 유일무이한 동작은 그의 것일 뿐이었다. 긴 팔과 막대 같은 다리의 엉성한 조화, 곡이 바뀌면 바뀐 대로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의 춤을 위한 것인 양 했다. 그 순간 음악이 멎었다.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그때서야 느꼈다. 그의 가슴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때서야 뚫렸다.


막 끝나서 여운을 남긴 가사 말이 그때서야 귓가에서 맴돈다.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춤꾼이 멈추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노래를 헛듣고 있었나 보다. 뭐였더라, 그래,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홀로 가슴 태우다 죽어간 가수를 두고, 그의 불행에 대한 뒷소문도 많았었지. 정식은 서른 두해를 채우지 못하고 가버린 그 작자 생각이 났다. 비슷한 또래였기에 그 죽음은 충격이 더했었다. 노래꾼이 “노래가 안 된다고” 갔다는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특별히 슬럼프도 아니었다던데? 정식은 갑자기 저 춤꾼의 무엇인가가 의심스러웠다. 저치는 키도 고만하고 몸매도 고만한 것이 꼭 죽은 가수만 했다. 실제로 가수를 보진 못했지만, “반토막”이라던가, 별명만 들어봐도 그럴싸했다. 춤사위가 바람에 날리는 풀 같고 나뭇가지 사이의 새 같은 사람이, 그래도 혹시 “춤이 안 된다고” 죽어버릴까? 누굴까, 무엇 하는 사람일까? 대체 뭘까? 진짜 춤꾼일까? 긴가민가하면서 정식은 혼자처럼 우물거렸다,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뭘 하는 사람일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또래 같구먼. 아닌데, 다른 누가 말했다.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하나가 그쪽으로 향했다. 연속 내지르는 그의 다그침 때문인가 싶었다. 놀랍다. 더 짙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분명 그 쪽에서 시작되었다. 안개 자욱한 속 잘 보이지 않는 거리였지만 분명 그의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삐죽 보였다. 왼손이었다. 테이블에는 사람들 사이로 세워진 맥주병들이 보였다. 그래 목도 마르겠지. 격렬한 춤은 아니라 해도 온 홀의 시선을 받으며 나중에는 손뼉에 맞추어 몇 곡이나 춤을 추었으니 목이 마를 것이다. 잔을 들었다 곧 놓는다. 정식은 대신 마시려는 듯이 무심코 맥주를 들이킨다. 미지근한 무맛이다. 진작 따라 놓고 넋 나간 듯 춤만 바라보았었나 보다. 저쪽이 친구의 어깨에 가려진다. 정작 입매는 보이지 않는데, 고개를 갸우뚱 끄덕 하는 모양새가 뭔가 말을 하고 있나 보다. 짙은 눈썹과 역시 짙은 눈매가 검정으로 검게 그렸을까 할 정도로 뚜렷했다. 이상하다, 나무토막 같은 얼굴에 화장을 했을 리가.


정식이 기억하는 아내의 처음 얼굴은 분홍빛 그 자체였다. 흔히 도화색 가진 여자를 팔자 사납다고  비하하지만, 첫인상에 도화색 뺨이 예쁜 것은 누구나 안다. 겨울이었지만, 병원이라는 온실에서 쉽지 않은 실습과정을 보내고 있었던 처녀에게서는 홍조가 기본이었을 것이다. 결혼 후 한 지붕 아래서 아내의 얼굴은 누런빛으로 변해갔다. 낮 동안의 화장을 지우는 경대에서 돌아 나오는 얼굴은 쌀뒤주에서 닳은 바가지 색이었다. 고운 가루가 묻어난 바가지를 어머니가 왼손바닥으로 곱게 모셔 닦아 주면 순간 반질반질한 얼굴을 내보였다. 그러면 다시 뒤주에 넣곤 하셨다. 탱탱한 황인종 얼굴이 크림의 여운으로 번득이면 흑인의 표정이 되어 나오는 것이 기이했다. 얼굴색이란 낮밤이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뱃속의 아기를 이기지 못해서 겨우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밤낮으로 누렇게 변해갔었다. 얼굴색이란 시절 따라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복사빛 볼을 하고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겠지....... 그런데 몸을 추스른 아내가 다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는 일은 쉬 오지 않았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학교 때 배운 <승무>에서 유일하게 외어 남은 구절. 허나 아내의 복사꽃 고운 뺨은 그 어디멘가.


정식의 아내는 바빴다. 바빠 버렸다. 아이를 들쳐 업고부터 뭔가 ‘벌어들이자’는 맞벌이 작전에 들어간 이래 아내는 시간이 모자랐다. 변하지 않은 것은 화장을 지우는 경대 앞 5분인데, 돌아선 얼굴엔 옛날의 번들거림이었다. 그밖에는 많은 것이 달랐다. 짙은 눈썹과 눈매는 크림으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바빠서 덜 지우는 것일까? 또한 번들거림은 같아도, 얼굴은 쌀뒤주 속 작은 바가지처럼 탱탱했었던 기색을 잃어갔다. 쪽박이 점점 빨간 호박석을 닮아 간 것과는 다르게, 얼굴은 해 넘긴 밤 껍질을 닮아갔다. 오뉴월 제사에 쓰려고 밤을 칠 때면 물기 말라버린 밤 껍질은 참 고약하다. 달라진 것은 그것 말고도 많아졌다. 분홍 립스틱은 기억에도 없는지, 으깨진 대추 빛을 선호했다. 아내로서는 분홍빛에 대한 정식의 설레임을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말이야, 도예 하는 분이라는구먼. 우리보다도 한참 위라네. 친구가 자리로 돌아와서 간략하게 보고했다. 그래 그렇겠어. 뭐야, 더 위라고? 도예라니, 도자기? 다도 뭐? 느닷없는 질문까지, 서로 다른 기대치 때문에 조용히 듣는 대신 웅성거렸다. 이 지방 사람이 아니고, 태백산 너머에서 이쪽으로 여행 중이라는데. 그럼 춤은? 전문 춤꾼이 아니라고?


춤꾼이 아니라는 말에 서운한 건 누구보다도 정식이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첫 구절이 갑자기 떠올라 그렇게 내뱉고 보니, 저 짧은 머리는 고깔에 딱 이었다. 그럼 파계승? 그 소리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절제된 승무를 전문적으로 추는 춤꾼일까 상상했는데....... 정식의 말에 다들 끄르르 웃었다. 이 보게 너, 요새도 헛꿈이냐? 너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 그 왜, 시인선생님이 신용 좀 준 것 가지고 한 때 시 쓴다고 매달린 것은 알지만. 뭐 짧은 머리 보면 당장 <승무>가 입에서 튀어나오니, 그런 거야? - 아니 그건. 저 사람 춤이 좀 곱고도 서럽지 않았냐, 빛나는 듯 서글픈 저 얼굴. - 사람 참, 저게 무슨 빛나고 서럽고야, 그냥 무표정이구만. 자자, 우리 사람 저만치 놔두고 그만들 하자. - 춤꾼이 아닌 건 확실한데, 공방인지 작업실인지 아무튼 맘 맞은 사람들 모이면 춤도 추고 그런다 하드만. - 그럼 그렇지, 예사 솜씬 아니지. - 혼자 사는 남잘까? 남자들이랑 어울릴까? - 아니 이사람, 혼잔가 아닌가는 아직 못 물어 보았고, 남자라니, 여자야 여자. 한참 누님뻘이라니까. 저기 여자들 일행 셋이 안보이나?


다를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춤꾼이 남자가 아니었어? 멀쩡한 중년 남자들의 눈으로 춤추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남자일거라고 느꼈다니. 그것도 춤을 감탄하면서 동작마다를 따라 보아놓고서. 다음엔 서로 비식거렸다. 남자가 남자보는 눈 있다더니만, 남자라서 여자를 잘 못 보았나? 갑자기 홀 안의 안개도 걷히고 테이블들이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었다. 건너 좌석들을 흘끔거리는 짓은 계속하기 무안해졌다. 다른 화제가 급했다.


나사의 한 연구원 주장이, 이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강진으로 지구가 작아졌다데, 자전 주기도 미세하지만 영구적으로 짧아졌다 하고. 정식은 신문기사를 떠올려 화제를 바꿨다. 그래, 구들장 하나가 다른 구들장 아래로 끼워졌대나 뭐라나.


우연히 이과 출신이 하나 끼었다. 일행은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 그건 그저 계산상의 이론이지, 실제 측정결과가 나오기는 시일이 걸리고 또 그것을 증명하기엔....... 아니 그보다는 이번 방학엔 혜성 구경 가자는 딸아이 때문에 그냥 못 넘어갈 것 같아. 그는 말을 바꾸었다. 맥홀츠혜성인가 그놈은 쌍안경으로도 바로 볼 수 있을 만큼이라니, 1월 내내 이삼일짜리 캠프를 여는 곳도 있다네. 아버지들이 이삼일 나가기가 쉬운가. 서울 근교들일 텐데 지방 사람들은 더 힘들지. 아이들만 보내는 곳 알아보았는데, 데려다주기라도 하려고 목금토, 토일월 반을 인터넷에서 찾자마자 마감되었더라. 이 아버지 통도 크시네, 애들만 어찌 보네. 한국서 애들 살기 무서운 것 모르시나. 아니 그럼 사는 것이 다 그렇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화제는 이리 저리 흐르고, 정식은 고개는 일행 속에서 정중심을 향한 채 오른 어깨 너머 비스듬히 춤꾼의 테이블을 흘끔거렸다. 앞머리를 갸우뚱 내리고서 시선의 방향을 숨겼다. 다시 태워 문 담배가 반짝 불빛을 보였다. 그 ‘여자’가 빠끔거리는 것이리라. 벽에 걸린 “오늘 하루만 금연합시다!”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글씨는 색색으로 분명한 만큼 무안했다. 한글도 못 읽나? 타지사람이라고 안면몰수인가? 다시 아래쪽 시선을 이용해서 바라보니 길게 뻗은 다리가 앙상하다. 상박 하박이 그저 나무젓가락이었던 팔이나 막대 같은 다리나. 우리보다 위라고? 여자도 나이가 들면 성을 초월하나? 어느 나이가 되면 그러나? 하긴 옛날의 어머니들은 그렇다. 아니 그 반대다. 어머니들은 젊어서도 나이 들어서도 한결같은 어머니다, 여성이다. 더 할 수 없이 푸근한, 마르고 작은 체구에도 장작개비 같지 않고 부드러운. 늘상 같은 어머니. 헌데 소녀와 처녀와 심지어 아저씨를 다 아우르는 저 사람은 대체 뭔가. 절대로 어머니는 아닌, 그래도 여자?


그 여자에게서 어머니를 볼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자라 했으면. 밤톨처럼 단단한 아내에게서도 어머니는 있다. 어머니가 전부다. 아내는 송이를 위해 산다. 송이의 행복을 위해 산다. 송이의 성공을 위해 산다. 아내는 어머니로서 산다. 저 여자는 무엇으로서 살까.


정식은 이시자키 어쩌고 하는 일본인이 내놓은 독특한 서적명이 떠올랐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검색하다가 튕겨져 나온 특이한 책이라서 제목만 목차만 대강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가히 성의 세기였다고 할 20세기 말에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 비슷한 책이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똑똑한 여자? 색에 빠져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아예 성의 특징을 무시한다? 하긴 섹스가 남자와 여자를,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최고의 요소는 아니라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송년의 밤을 남자들끼리 모여 앉은 그들도 하나의 예다. 그때 그 책제목을 보면서 잘 팔릴까도 의아했었다.


그 뭐더라,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런 책 있더구먼. 또 다시 정식의 돌연한 말에 이야기는 새로 어수선해졌다. 스스로 똑똑함을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면 만족할 책일까? 뭐 그런 책이 다 있어? 남자들 다 죽겠네. 아니지, 여성들이라 해도 똑똑하면 섹시하지 않다고 들려서 화내지 않을까? 정식은 바로 옆 테이블의 남녀 팀이 들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떤 여자가 학문적 관심을 가지면 보통 그녀의 성적인 면은 뭔가 정상이 아니다고 했다던가, 그것으로 니체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는지 아나 이사람. 대학친구의 말에 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가슴이 크면 머리가 나쁘다, 그 속설이 맞다는 거여 뭐여? 답을 손에 쥐어야만 하는 친구 하나는 갑자기 정색이었다. 내 말은 저 여자, 아니 저 여자 분은 삐쩍 마른 나무토막 같으니까 머리가 좋고 예술가이고 춤도 잘 춘다 그거야 뭐야. 아니 춤추는 것 하고 머리 좋은 것하고 무슨 상관? 야 이부장 목소리 좀 낮춰. 시작은 해놓고 말리는 형국이 된 정식은 도리어 좀이 쑤셨다. 흔한 삼차에 예까지 들른 것인데, 술이 좀 들어갔기로서니 말들이 거칠어진다 싶어 걱정이었다. 엉뚱한 화두를 내놓은 것이 자신이고 보니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허탈한 밤이었다.


하기는, 밤은 대개는 허탈하다. 남보다 이른 결혼으로 딸이 봄이면 벌써 고등학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디만큼 흘러가버린 세월이 아득하다. 아내는 궁리도 많고 튼실해서 남편에게 의존하는 체질이 아니다. 세상을 따라 살며 크게 불평도 없다. 바가지를 앞세우는 형도 아니다. 그런데 왜 밤은 허탈한가.


아이들 알콩달콩 속에서 - 아까 누가 그랬나? 그것이다. 집에 아이들이 없어서일까? 달랑 혼자 크는 송이가 어릴 적은 괜찮았다 싶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뭔가를 열심히 시키는 엄마를 피해서 아빠한테 응석부리느라 깔깔대곤 했다. 요즈음엔 중학생이면 표정이 어른으로 바뀌고 마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에 시달려서일까? 송이 뿐 아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더 큰 처녀인지, 길가는 여자아이들이 구별이 안 될 때가 많다. 아내도 할 일이 많다. 집안 일 틈 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낮엔 사업차, 늦은 저녁에도 컴퓨터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신년을 맞는 그의 계획 속에 근년 들어서 꼭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아내와 대화하기>, <송이와 대화하기>, <가족여행>, 그런 것 들이다. 몇 년 째 잘 안되는 재탕이다.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가정이 왜 문제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기실 아무 문제도 없다. 일감이 줄고  당연히 수입이 기울지만, 다른 건설업자들 사정에 비하면 현상유지는 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밥벌이 되면서 고민하는 놈 사치라 하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겨우 땅 파먹는 두더지 신세인 것이 대순가. 제 식구 잠 잘 지붕 있고 밥 먹고 살면 그만인가. 이 친구들 마음들도 허탈한 구석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순간 파렴치한이 되어 공든 탑을 떠나야했던 동료교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던 친구의 넋두리가 공감이 갔다. 고향을 돌아다보면, 아니 거기까지 아니어도, 힘든 사촌에 재종, 종매........ 아니다.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은 내민 손조차 잡아줄 수 없었던 무능 때문이렷다. 형제고 친구고 빚보증은 안 된다. 단출한 가정의 살아남기 작전은 이렇게 야속함에서 출발한다. 반석위에 집짓기. 문제의 씨앗은 싹부터 뽑아버리기. 그래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도태된다. 어쩌다 TV화면에서 걸리는 동물의 세계가 어른거린다. 영양이건 코뿔소건 무리에서 처지는 놈이 천적의 먹이가 된다. 무리는 생의 법칙,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한다. 인간이라는 동물 또한 그러하다. 송년의 밤을 보내며 일년간 다 못한 일들을 쬐끔 후회할지 모르지만, 날이 새면 다 잊고 희망을 운운하며 새해를 맞는다. 닭띠 해가 밝을 것이다. 고향의 수탉은 여전히 아침을 깨우리라.


정식은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소리를 쳤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 옹기종기 둘러앉아 꽁당보리밥 / 꿀보다도 더 맛좋은 꽁당보리밥~~


저쪽에서 여자가, 그 춤꾼이 맞일어났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정식이 질세라 얼른 받았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애 - 애


와글와글 박수가 터졌다. 악사들이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벌써 무엇인가를 마친 것인가? 아니 ‘꼬꼬댁 꼬꼬 먼동’은 무엇이었나? 내가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었어? 내가 노래를 불렀어? 알 수 없는 상황에 정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앉아 있는 모양새가 좀 전과 다를 바 없었고, 들었던 잔이 왼손에 그냥 있었다. 이상하다. 아니 지금 내가 어찌 된 것일까? 예서 가수들이 때 넘어간 캐럴도 아닌 동요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럼 내가 노래를 했단 말인가? 틈이 없었다. 음악은 서글프면서도 중후한 “그곳이 꿈엔들 잊힐 리이야”로 넘어가 있었다. 정식은 두 손을 펴서 머리에 얹었다, 언젠가처럼 왼쪽 뚜껑만 뜨겁게 달아오르고 오른 쪽은 냉랭한 상태를 느껴서였다. 정말 그랬다. 구들장이 따뜻해졌나. 만져 보듯이 오른쪽 왼쪽을 만져보다가 겁이 났었다. 신경과 전문의는 내로라하는 평판이었는데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검사 결과는 뭐 괜찮습니다. 죽을 병 아니고요. 통풍을 좀 해야 됩니다. 무슨 못하고 살 말 있어요? 여기 와서라도 뭔가 해버리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친구나 직장동료 뭐라 아내 흉을 본다거나 뭐 그런 것. 속내 단속 못해서 발광난 사람 취급하는 데는 오히려 기가 죽었다. 첫 마디에 알 수 없이 눈물이 돌았던 것이 좀 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반쪽만 뜨거운 머리 뚜껑이 겁나서 몇 번 더 찾아 갔다. 아내 흉보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 말 해 봐요,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삐딱이 하고 앉아 있는 의사 앞에서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 더러 있나요? 그렇게 묻고 싶은 충동을 참는 방법은 그만 가는 것이었다. 생각한 말과 말한 것 구별이 혼란스러울 때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한 행동과 행동을 했는지 구분이 안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정작 의사를 보았으면 묻고 싶었던 말들도 다 담고 돌아섰다. 흉보러 오는 대신 막춤을 추러 오라 했으면 계속 갔었을까? 혼자서 추는 춤, 춤을. 


한쪽이 조금 수선스러워 눈을 드니 바로 춤꾼 일행이 일어서고 있었고 친구가 따라 나가고 있었다. 노래 도중이었다. 이상하다. 노래 도중에 일어설 무례한 같지는 않았는데. 문간의 망설임이 한참 걸렸고 친구는 으쓱으쓱 돌아와 앉았다. 명함은 없고, 주인장 하나 줬다는데 나중에 보지 뭐. 내일은 또 더 남쪽으로 갈 거라네, 영 독특했는데 참.


하긴 노총각이야 관심 가져도 되겠지만, 저쪽은 뭐 싱글 이래? 아무래도 도저히 유부녀 같진 않던걸. 우리 모두 첨엔 남자라고 생각했잖아? 하긴 거 누구의 견해대로라면 머리 좋은 여자겠네? 뭐 우리 생각이 다는 아니겠지만. 아니 저쪽이 훨씬 위 같더라며? 앞서가기 잘하는 친구가 나서 떠드는 동안 왠지 다른 사람들은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연주가 끝난 다음 정식네도 다같이 일어섰다. 한 친구는 정말 주인에게서 명함을 받아서 읽어보느라 입구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렸다. 노총각에게 정보라도 주겠다는 몸짓이었다. 정식은 일부러 관심을 끊었다. 춤이 다 뭐라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을, 또 그게 무슨 춤이라고. 춤꾼 생전 안 보았나.


한 시가 넘어 귀가할 때면 아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늘은’ 귀가해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지만, 근년 들어서 더 늦는 남편을 교육하려는 일은 포기한 것 같았다. 그나마 공존의 미덕이다. 초저녁에 집에 있어 둘이서 할 일이 무엇인가. 관심사가 교집합처럼 작은 것을 무시하고 합집합의 크기로 보는 것이 신혼이다. 어긋난 각도는 미미하게 보이는 것이 신혼이다. 어느 날인가는 교집합이 커지는 일보다 어긋난 작은 각도가 벌어지는 일이 꾸준해짐을 알게 된다. 교집합은 불려야 자라는 것이라서 가만있으면 그대로지만, 어긋난 각도는 가만있어도 그냥 벌어진 땅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늘상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하고 싶어 하는 정식과, 하고 싶은 것 다하려는 사람을 일반화하여 얕잡아 보는 아내는 참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아니, 다른 별을 바라고 살아버린 결과일까?


샤워꼭지의 물소리가 미안하다. 아래 집도 미안하고, 가까이 아내도 미안하다. 스킨로션이 욕실에 없는 것이, 아침에 또 들고 나갔나 보다. 욕실에 있어야 할 것이 안방 어딘가에 있는 것을 아내는 싫어한다. 그 반대도 당연히 싫어한다. 무엇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아내가 정하기 때문에 정식으로서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실에서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하나 손에 따르니 향기가 짙게 올라오며 끈적거린다. 하는 수 없이 손에다만 비비고 만다. 깜깜한 방을 거쳐서 거실로 나온다. 커튼 틈새로 비쳐오는 빛, 달빛인가 하지만 하현달인데 이리 밝을 리도 없고, 바깥 방범등인 것을 벌써 알고 있다. 희미하게 비치는 실루엣을 따라 소파에 주저앉는다. 순간 다시 일어난다. 커튼을 조금 젖히자 곧 냉기와 함께 어스름 빛이 따라 들어온다.


달밤에 체조라더니, 어깨를 들먹거려 본다. 팔을 내뻗는다. 무슨 곡조를 떠올려야 하는가? 하나 두울 하나 두울. 아니다. 한 둘 셋 한 둘 셋. 그건 더더욱 아니다. 자다가 봉창 뚫는다? 뚫으려면 뚫으라지. 검게 반사하는 TV 화면을 맞대하고서 자신의 몸을 비춘다. 어깨 팔꿈치 팔목을 차례로 꺾어 본다. 꺾었다 편다. 왼쪽도 똑같이 해보려고 뒤튼다. 춤은 전염성인가. 흥이 없더라도 일단 곡조에 맞춰서 팔다리와 온몸을 움직이면 춤이지. 율동적으로? 그건 알 바 없다. 춤꾼이 따로 있나? 좀 전의 춤꾼 아닌 춤꾼이 생각난다. 안개처럼 피어올랐던 아까의 연기 냄새가 코끝에 남아있다. 영락없이 내 마신 고양이 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니다, 활짝 웃자. 웃어야 한다. 신경과 전문의가 변죽으로 말한 것이 이런 것 아니겠냐. 통풍이다, 통풍. 더구나 희망의 새해가 아니냐.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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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독문학2005. 3. 4. 23:30

   노라 와  도라:  해방과 히스테리의  변증법        
~~~~~~~~~~~~~~~~~~~~~~~~~

 노라: 입센 Henrik Ibsen(1828~1906)
                           『인형의 집 Et Dukkehjem』(1897) 의 노라 :
                             "아내이고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살겠다"
                             남편과의 노예화된 생활에 결별을 고하는  해방된 여성

        70년대 및 80년 대 초기 페미니즘의 상징 인물.
          -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적인 규정으로부터 해방되는 인물로 여겨짐.
            (남성문학 경전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재 독해 방향: 보브와르 Beauvoir)
          - 본래적  여성적 글쓰기 전통을 찾아 나섰던 버지니아 울프의 추구 속에서
            표현된 것처럼, 독자적 여성의 동일성이 구체화된 인물.
             (버지니아 울프: 여성문학사 서술)

도라: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
                    『히스테리분석의 단편 Bruchstü ck einer Hysterie-Analyse』(1905)
                      그에 의해 "도라"라고 명명된 18세의 여성환자에 대한 분석

        후기구조주의 진영(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 식쑤, 이리가레이....... )의
        여성성 이론은 히스테리 환자 도라를 상징적인 대표인물로 간주하고 있다.

                                                                                 =[아래]==>
도라 르네쌍스

도라의 근원≪ 

Freud u. Breuer, Studien über Histerie 1895

정신분석의 시작: 여성환자 Anna O. (본명: Berta Pappenheim)가 의사를 놀래주기 위해서
최면생태에서 자신의 무의식적인 기억, 환상, 갈등 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자신의
증상을 사라지게 만들었을 때,  안나 O. 는 자신에 의해 명명된 대화치료라는 치료방식을 발견,
당시 의사는 상담해주는 사람 역할, 브로이어는 그녀의 진술과 토로의 내면적 필요성을 전적으로
따랐으며, 그녀에게 어떠한 자기해석도 강요하지 않았다.
반면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의사는 분석가의 역할을 한다. 의사는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통해
권력관계를 만들어냈다. 즉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 계몽하는 사람 ... 가르치는 사람, 더 자유로운
세계관을 혹은 탁월한 세계관을 대표하는 사람, ....또는 환자가 고해하면 면죄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간주한다. (F/B, S. 299)
                       

................................................................................................................................
 "상상 속의 창녀 - 인류의 구원자"

                         
 Berta Pappenheim(1859~1936):

      
Martin Buber 의 조사: 기지가 뛰어난 사람이나 정열적인 사람은 흔치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기지가 뛰어나면서도
                                      정열적인 사람은 더욱 드물다. 베르타 파펜하임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죽기 3년 전 자신의 추도사를 써 두었던 장난기의 기지.

    <일생> 1899: 사회비판극 『여성의 권리』발표.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여성의 권리 옹호』번역 자비 출판.
               1902: <여성 구제협회> 창설
               1904: <유태 여성협회> 창설
               1907: <위협받는 처녀와 사생아를 위한 집> 자비 설립
                                                                       [38년 나치의 테러로 파괴]

    1912년 친구에게:
    "나는 일 자체나 일하는 방식에서는 물론 인격적으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꼭 필요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무엇에 대해서도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고독하고 금욕적이며 우울한 여자로 만든 것은
             1) 루시 프리만의 추측대로: 이 몽상 체험이 자신의 억압된 성적 욕망
                 때문이었는지
             2) 그루넨베르크의 말대로: 성폭력 경험 때문이었는지......

 ≫ 안나  O: 1880년 21세로 병에 걸렸을 때 ----

                   * 왜  안나  O. 인가?  Kleist의 <후작부인 O.>에서처럼
                      O.가 불러일으키는 외설스런 연상과 관련되었을 것.

     브로이어의 진료 기록 의하면 :
        
 "낮에는 비정상적이며 환각에 쫒기는 환자, 밤에는 명석한 두뇌의 소녀.
          참으로 기이 한 대조를 이룬다."

    브로이어가 더욱 기이하게 여긴 것은 극단적인 <언어 혼돈 > 현상으로,
    처음에는 심한 언어 장애를 보이더니, 나중에는 <모국어>를 완전히 상실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영어만 하다가, 가끔씩 불어와
    이태리어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이야기 치료>를 통한 자발적인 치유로 일년 만에 치료가
    완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수년 뒤에야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짐.[이야기 치료와 모르핀 등 약물 치료를 병행 한 듯]

    브로이어는 몽유병 증상도 심리적 증상도 완쾌시키지 못했고, 환자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환자는 <신경질적>이었다고 탄식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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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 르네쌍스:
              
               
『히스테리분석의 단편 Bruchstü ck einer Hysterie-Analyse』(1905)
                    속칭< 도라 분석>

  
 1900년 18세의 소녀:
                 대 부르조아 집안 출신으로,
                 프로이트는 환자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
                <우선 아버지가 강제로 그녀를 내게 데려왔다>고 진술.
                3개월간 치료 후 환자에 의해서 중단됨.

       아버지, 아버지 친구인 K.그리고 프로이트에 대한 불신으로, 도라는 프로이트의
       해석에 강하게 반발.
 
       예) 도라가 어머니에게 보석상자의 열쇠를 달라고 한 부탁을 프로이트는 곧바로
            생식기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임.
            그가 <보석상자>는 여성의  성기를 가리킬 때 즐겨 쓰는 표현>이라고 하자,
            도라는 즉각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고 조롱했다 함.

  *도라 분석의 문제점:
        환자는 기가 꺽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빼앗긴다.
        정신분석가 프로이트 + 도라의 아버지 + 아버지의 친구가 이 과정에 참가.
        <소유권 몰수과정>은 정신분석가의 해석에 환자가 굴복하게 되는 과정이다.

       ※ 도라의 고집스런 결정으로 프로이트는 <의사가 얼마나 무력하며 무능한지>
           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환자의 협조가 없는 한, 그는 무력하며, 그의 해석
          기술도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라 분석>은 "환자 이야기"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학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히스테리
여성환자는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법"에 구금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드러나 있지 않은 여성적인 자아동일성 및 외디푸스 이전 단계의 억압된 엄마와의 관계 등과
연관지어질 수 있는 욕구불만을 호소한다. 라깡과 이리가레에 따르면, "히스테리"여성 환자의
담론이 서구 문화에서의 여성적 담론 일반이라고 본다면, 히스테리 여성환자의 "치료"라는 것은
또 다른 여성 주체성의 [비본질주의적] 구성과 동일한 의미를 지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이러한 치료에서의 여성적인 것은 히스테리 여성환자에 의해 분열된 자아 경험 속에서 재생산
되는 하나의 "타자"
[낯선 것, 이질적인 것의 담지자로서, 남성적인 자아상으로부터 배제된
자로서의 여성]
와 하나의 "또 다른" 여성[겉보기에는 동일적인 개체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낯설게 된 주체로서, 그리고 남자가 마음대로 다를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여성]
으로 문화적
분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의학적기고 철학적으로 기초가 다져진, 남성적으로 규정된 동일성 개념 및 주체 개념들은
여성적인 것을 하나의 병으로 취급하여 이것을 배제시킨다. 그런 한에서 히스테리는 여성의
병을 특수하게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전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히스테리에 대한 논의에서 말로 여성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Schuller, S. 24)

도라의 무의식적 병인을 재구성하려는 프로이트의 시도의 기저에는 여성의 소망이
수동적이고 매저키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이 놓여있었다. 그래서 도라에게
가해졌던 성폭력을 중요한 발병요소로 관찰하는 것은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다른 한편 도라와 엄마, 또 다른 여성들에 대한 관계가 지니는 의미를 간과하게 했다.


 육체의 글쓰기와 분열된 자아

프로이트/브로이어에 따르면 히스테리 질병의 근원에는 격렬한 감정적 동요 및 정신병적
증세가 있다고 한다. 히스테리 여성환자들은 "회상들"로 인해 괴로워한다. 즉 이들은
육체적인 신경분포를 발생시키는 고통스러운 회상들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바흐만의 프란짜는 자신을 무의식에 빠지게 만드는 "회상들" 때문에
괴로워한다.) 고통스런 기억들은 히스테리 여성환자에게 현존해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기억들은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자리에는 경험된 것을 무의식적으로
기록하고 늘 새롭게 상연하는 수집된 증상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히스테리는
히스테리 증후 형성과정에서 이용되는 상이한 육체의 기능과 감각의 기능을 거의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나의 체험이 자아가 허용하지 않는,
그리고 또한 자아에 의해 행해질 수 없는 강력한 감정의 자극을 일으키게 될 때, 그것은
히스테리적 증후 형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근거는 바로 자아로 하여금
본래의 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게 해주는 내적인 모순 혹은 양심의 갈등이다.
       예)
안나 O.가 치명적인 병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는 동안 들려오는 춤곡에
            사로잡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소망의 정점에서 자신을 질책하게 되었을 때
            히스테리적 기침이라는 증세가 나타났다.... 안나를 여러달 동안 침대에
            묶여 있게한 심한 마비 증세의 원인은 바로 "잠들어 버린 팔" 이었다고 한다.
                                                                                                (F/B, 58)

브로이어는 안나의 경우 질병의 원인과 히스테리 일반의 원인이 결국 채워질 수 없었던
공명심, 즉 여성에 대한 역할규정과 충돌되었던 지적인 관심들 및 쓰여지지 않고 방치된
능력들에 있었다고 보았다:

          " 나중에 히스테리적 증세를 갖게 되는 사람들의 사춘기를 보면, 이들은 .....대부분
            활기 있고 특별한 자질을 소유하고 있으며 풍부한 정신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F/B, 259)

......자신들의 증후들을 통해서 히스테리 여성환자는 그러한 증상들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자신에게 돌리기도 한다. 히스테리적 증후에는 자기 공격, 즉 자기 증오의
특징이 기입되어 있다. 그러한 특징은 그녀를 상당히 이중적인 존재로 만든다.
히스테리는 육체에 효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육체를 파괴하고 손상시키기도 한다.
히스테리 여성환자는 자아에게 자신을 상상적인 환각생태에 빠지게 하는 육체적 만족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안나 O. 는 식욕부진으로 말미암아 아사 상태로 이끌게 될
음식물 혐오증, 심한 시각 장애, 청각 장해, 언어 장해, 팔과 다리의 심한 마비증세,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에 이르는 정신분열증적인 환각으로 인해 고통받게 된다.

히스테리는 자아상실의 병이다:
        예)
도라: 유희에 참가한 사람들과 거의 무한한, 무한히 반복되는 동일화 과정에서
                     동일성 형성을 위한 필사적인 시도.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거울도 발견하지 못한다.
                     가정주부 노이로제의 엄마, 방해받지 않고 K부인과의 관계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 K씨에게 그녀를 넘겨버린 아버지, 그녀 또 다른 여성들을 성적으로
                     위협한 K씨, 겉으로는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사실은 아버지에게만 관심을
                     두었던 엄마의 대체인물들, 가정교사, K부인....... 자신을 희생시켰다고
                     느껴지는 연인들에 대한 불만족스러움과 이러한 배반에 의해서 야기되는
                     도라의 비실존 감정은 정신분열적인 증후로 나타난다.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생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가 된다." (Freud 1905, 204)

[결어]
서구문화의 기저에 놓여있는 상징적 질서 내에 존재하는 여성의 비실존과 대면한
여성적 주체성의 구성:
버지니아 울프의 신비적 시인의 모습(셰익스피어의 여동생?) ... 한 신비주의적 여성작가가
결국 잉태되기를 원하는 여성들 속에서 타자로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
이러한 "자기 이중화"는 거울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즉 주체가 될 수 있기 위해서
여성 자신은 스스로 대상이 되어야 하며, 오직 상호 주관적인 구조 안에서만 여성은 스스로를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여성은 "자기와의 새로운 관계를 오직 다른 여성을 통해서만
발전시킬 수 있다"(Lenk, 1976, 73)
          예) 도라는 이러한 여성적 거울을 K부인 속에서,
               베티나 폰 아르님은 카롤리네 폰 귄더로데 속에서,
               뒤라쓰의 욕망의 자아인 롤은 안네-마리 스트레터 속에서 찾는다.
                                                                 
                                   [참조]  뒤라스
 

노라는 자신을 부정하는 가부장제적 사회 체계의 상징적 기초들을 반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해방시키기는 했지만 그러한 체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반면,
히스테리 여성환자는 상징적 체계 자체를 문제시했다. 이는 담론적 비판의 형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것을 유효하게 만드는 또 다른 행동 논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녀는 남성적 질서에 의해 억압된 것을 재현하는데 자신을 바치며,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상실하게 된다.

그 둘은 개별적으로는 히스테리와 해방 간의 숙명적인 순환 관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이 한 쌍으로서, 즉 하나가 다른 하나의 거울이 됨으로써 그들은 이러한 순환관계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참고]
- 레나 린트호프: 페미니즘 문학이론, 인간사랑 1998.
- Freud/ Breuer: Studien über Hysterie, 1991.
- Elisabeth Lenk: Die sich selbst verdoppelne Frau, 1976.
- Marianne Schuller: Im Unterschied, 1990
.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4. 12. 3. 14:00

                                    제 8 회 이화문학상 심사를 마치고


9편의 후보 작품을 놓고 정연희 선생, 민병삼 선생 그리고 필자가 작품 내용을 검토하며 토의한 끝에 송숙영님의 창작집 『농담』과 서용좌님의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 카프카의 편지 1900-1924』을 공동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카프카의 서신을 번역한 서용좌님의 번역서는 1천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역자가 얼마나 오랜 세월 이 서간집 번역에 매달려 왔는가를 능히 숙고케 하는 노작이다.

20세기 문학에 불안과 고독의 현대인상을 깊이 해부한, 난해한 실존작가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카프카의 서간들은 20세기 지성사의 증언으로 값진 유산이며, 이를 한국에 소개한 서교수의 노고는 이 정도의 상으로 보답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작가 송숙영님은 문단에 등단한지 올해로 44년에 이르며, 그동안 문학 일선에서 꾸준히 작품을 생산해왔다. 이번에 출간된 .... [이하 생략]                            

                                                                                      2004년 12월

                                                                              김원일, 민병삼, 정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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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소감] 이화문학상 / 감사의 말씀

저의 변명이라면,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글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고, 어느 창작노트에 쓴 일이 있습니다. 컴퓨터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내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 겁 없이 장편 <열하나 조각그림>을 들고 이대동창문인회에 참가한 몇 년 세월은 짧지만 가슴 뿌듯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는 순간 하늘은 저의 미련한 열심에 상을 내리십니다. 위대한 카프카가 받아야 할 상을, 그러나 카프카의 독일어에게가 아니라 저의 서툰 한글에 대해서. 이 상은 1296그램이나 되는 책의 무게에 대한 위로의 의미로 받겠습니다. 마음으로는, 위대한 작가들 짝사랑 그쯤 멈추고 같은 열심으로 서툰 ‘내 글’을 쓰라는 이정표로 여기고자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4년 12월 3일 서용좌


 

 

 

이 사진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가장 어린(!) 참석자가 우빈, 둘째 손녀다. 그옆에는 영원한 스승 이병애교수님, 그리고 미뇽, 스터디그룹의 친구, 왼쪽앞은 동기이자 소설가대선배 이재연(춘자),미뇽 살짝 뒤로 윤현자후배, 함께 이병애교수님의 제자이다. 뒤로는 동창회 조행자부회장, 남재은회장. 아기와 스승님 사이는 최민숙교수, 모두 고마운 후배들.   

얼굴이 조금 가린 친구는..... 아! 중고등학교시절 단짝친구. 수원에서 병원문도 일찍 닫아걸고 참석해주었다. 이재연뒤로는 아기의 엄마와 아빠, 둘째아들 내외다.

다른 가족은? 미국에 있는 큰아들 내외와 손녀는 그렇다치고? 나의 동반자는 이 정도의 행사에 호들갑 떨고 상경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조선의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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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독문학2004. 12. 1. 21:49

하인리히 뵐: 1967년 뷔히너문학상 수상자로서, 수상연설집
문학은 아직도 고혹한  피의 작업(뷔히너학회편 2004)에 실린 것.

 

                        뷔히너의 현재성


저의 감사하는 마음은 진심입니다만, 저의 연설은 고언을 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 것이 이 상이 “게오르크 뷔히너 상”이라는 명칭을 지녔기에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언에서 생겨날 것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즉 앞서 간 선배의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아래에서 위로 나오는 것도 아니며, 스스로 쉴 수 있을 중심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가장자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저 소란스런 동시대인으로서의 감정이 주는 가장자리요, 바로 그 점이 그의 시대의 동지 게오르크 뷔히너를 이렇게 현존하게 해줍니다.

뷔히너의 생과 작품을 파악하기는 간단해 보입니다. 그의 생은 너무도 짧았고, 그의 작품은 단편적이자 독창적이며, 매끄럽게 주머니 속에 들어갈 만 한, 단 한권 분량입니다. 그런 사실은 숭배적인 단순화를 낳는데, 시적 통절함을 실은 비문에 어울릴 이상적인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완성되고, 일찍이 사망한, 이별, 결말, 영면. 그렇지만 뷔히너의 생과 작품은 이 영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화의 땅 묘지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서, 아름답고 궁극적인 광고문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뷔히너가 불러일으키는 소란은 놀라우리만큼 현재성을 지녔고, 여기 이 강당에 현존합니다. 다섯 세대를 건너뛰어서 그 소란은 우리에게 다가들며 우리를 덮칩니다. 죽음의 예감으로 명명된, 이 거친 아름다움과, 우리 문학사에 정말 드물었던 어둠의 열정을 간직한 채 말입니다. 이러한 움켜 쥠,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의 확신, 그가 붙잡은 모든 대상에서 보는 이 인간적인 물질의 정의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을 비로소 예술로 만드는, 그렇지만 인위적이어서는 아니 되는, 저 미숙함의 숨결, 또한 조바심의 숨결 말입니다. 바로 그러한 모순 속에 그 정의가 있지요, 그러니까 결코 인위적 조바심, 인위적 미숙함이 아니라, 그냥 현존합니다. 마치 『레옹세와 레나』에서 레나가 설명하는 그런 사람들 같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행하고 구제불능인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예술을 살아있다고 하는 말은 너무 생물학적이며, 아마추어리즘의 나락으로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뷔히너는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저는 그가 두개골 신경에 대한 강의에서 생명체에 대한 생물학도로서가 아니라 표본화된 물질에 대한 해부학자로서 발언한 그 부분에 말을 돌리고 싶습니다. “…… 개인의 육체적 현존재 전체는 철학적 방식으로 보자면 (그는 목적론적 방식과는 반대로 이 방식을 제시했습니다만), 고유 개체의 보존을 위해 내세워진 게 아니라, 태초의 법, 그러니까 아주 단순한 균열과 선들에 의해 최고의 아주 순수한 형태들이 야기되는 그런 아름다움의 법을 고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 형식과 소재는, 그 방식으로 보자면 이 법에 메어있다.” 뷔히너의 작품에 대한 모토로 내세울 수 있을 이 발언에서 그는 자연과학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현재합니다. 제가 또 하나 다만 구전되어 온 사회적 성격의 발언을 덧붙이자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날마다 스프와 야채와 고기 먹을 게 있다면, 훌륭한 사람 되기는 누어서 식은 죽 먹기다”, 그리고 또 하나 사회적 사실주의의 조야한 유형을 독일 드라마 상 최초이자 거의 동시에 마지막 노동자라 할 보이첵의 입으로 들어 봅시다. “우리는 천당에 가게 되면 천둥치는 일을 도와야 할 거라” ― 그러면 저는 한 사람에게서, 한 입에서, 두 사람의 시인을, 두 독일인을 보게 됩니다, 한 세기 후에 나타나 서로를 배제하는 것으로 보였던 벤과 브레히트, 두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뷔히너 안에서 현재합니다.

뷔히너의 정치적 미학적 현재성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뷔히너의 친구이자 대학생이었던 미니게로데가 겪은 지하 감옥에서의 고문을1) 공공 거리에서 공직자들에 의해 자행된 두 건의 살인, 저 베를린 대학생 오네조르크와2) 연방군 병사 코르스텐의 사살과 관련짓자면 말입니다. 둘 다 국가 권력으로 인한 공개 살인이라는 몸서리치는 경우입니다. 또는 「헤센 급전」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거나, 아예 독일어로 팸플릿으로 만들어서 새로이 주석을 붙여서 보급하는 일 말입니다. 물론 박지 인쇄의 고전판 포장을 해선 안 되지요, 그랬다간 게르만 학술원 취급 같은 조짐이 일어나, 거기서 정치적 가시바늘을 뽑아버릴 테니까요. 귀족과 오두막에 대한 풍자는 이 신판에서 변경할 필요가 없겠고, 다만 해석을 달면 될 것입니다. 대연정은 충분히 독재적이요, 더는 작은 투표함을 두려워할 게 없지요.3) 그것으로 우리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면 그래도 우리의 정치적 문맹을 표현해도 될 텐데 말입니다. 보는 눈을 가진 이에게는 히죽거리는 합의와 정말 히죽거리는 독재성이 충분히 보이지요, 두 개의 권력에 익숙해진 왜소한 남자의 새로운 봉건주의가 보입니다. 그는 거의 전권적인 대 정당의 거대한 관료 기구에서 안전을 느끼고 있는데, 그 안전이란 게 어느 여자 가신이 어떤 궁정에서 느낄 수 있을 그런 것보다 더한 정도겠지요. 자신의 양심을 정당에 바친 자들에게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에서 강력한 일절을 인용해 드립니다. “양심이란 원숭이가 그 앞에 놓고 고민하는 거울이다. 각자는 할 수 있을 만큼 씻고 닦으며, 제 고유의 방식으로 제 재미를 찾아 나서는 것. 그건 서로 드잡이해서 쟁취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팸플릿에도 어떤 장례식의4) 묘사가 빠져서는 아니 될 겁니다. 저 마비적인 행사 말인데요, 그것은 반년 전 일로서, 지난 한 시대를 종결하고 새 시대를 위한 표식이 되었고, 거의 일주일 내내 TV 우산을 장악했었지 않습니까. 국내외, 유럽, 그리고 해외 입법자들이며 정부의 수반들의 입성 행진, 제국시대의 십자훈장 수상자들이며 추기경들 사이에 유행에 걸맞게 차려입은 입법자들이 부대 부대를 이루어 입성했습니다. 그것은 현대적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은 ― 어떻든 저에게는 ― 몸서리치게도 전혀 현재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장례의식을 이론의 여지없이 치러내는 이런 마비적인 당연시에 더해, 표정들, 의상들, 자동차들 하며. 현대적 정치가들, 현대적 주교님들, 현대적 정치인들, 그리고 현대적 군대, 그들은 쾰른 대성당을 장악했습니다. 우리를 심사숙고하게 할 것은, 스스로 민주주의라 하는 이 사회에서도 두 계급은 의상의 강요에 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민주주의를 창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해서 입증할 수 있을 만큼 비우호적이었던 두 계급, 곧 성직자와 군대 말입니다. 이 두 계급은 항상 현대적으로, 항상 사회적으로 유능하게 의상을 갖춥니다.

이제 뷔히너를 인용할 때인데요, 「공산당 선언」보다 13년 전에 씌어진 「헤센 급전」에서 입니다. “법은 자신들의 졸렬한 작품으로 지배를 보장하려는 고상한 자들과  학자들이라는 하찮은 계급의 소유물이다. 이 정의란 여러분을 규칙 속에 잡아두어 더 편안히 착취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저들은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법,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원칙,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파악할 수 없는 판결들에 따라서 말한다.”

우리를 심사숙고하게 할 것은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와 또 독일인들에게 타격을 입은 여타 유럽 국가의 대표자들도, 유행적 변형을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제국 십자훈장을 두르다니, 비록 현대화한, 꾸며 장식한, 민주화한, 게서 갈고리를 빼낸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십자는 어쨌거나 십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는 ― 예술에서나 사회에서나 ― 현대적입니다. 어쩌면 보다 나을 유행적 변형은, ‘사람들이 여전히 십자가를 하고 다닌다.’라고 할런지요. 제 민족들의 고행을 위해 십자가는 표창으로서 수여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 부조리성에서 현대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이 몇날 며칠을 천연하며 공포심마저 자아내는 행사를 현대적으로 만들겠으며, 또 그리 해낼 수 있겠습니까만, 그러면서도 몸서리치게도 현존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로소 영상매체의 우산위에서 엄청난 제곱을 함으로써 그 행사는 능란한 방식의 서양식 픽션, 곧 연극과 편집에서,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의 해설이 아니라, 다만 다시금 그의 신부에게 편지를 쓴 스무 살 뷔히너에게 말을 돌리고 싶습니다. “나는 역사의 소름끼치는 숙명론에 절망감을 느낀다오. 인간본성에서 경악스러운 유사성을, 인간의 제 관계에는 피할 수 없는 폭력을, 그것도 모두에게 부여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개인은 파도 위의 물거품이요, 위대한 자는 다만 우연일 뿐, 천재의 지배권은 인형극이요, 철칙에 거슬리는 우스꽝스런 고투라, 그것을 인식함이 최선의 것이요, 그것을 극복하기는 불가능입니다. 역사의 사열식용 폐마들과 모퉁이에 선 자들 앞에 굽혀서 절을 한다는 건, 저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아요.”

저는 이 새로운 ‘헤센 급전’에 다음 사실의 면밀한 분석을 넣고자 합니다. 곧 이 나라에서 한 요상한 외교문서에 근거하여 국가를 방문하는 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번거롭고 관을 쓴 우두머리들과 압도적인 매력을 지닌 영주 같은 사람들과 더불어 영접 받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만일 새로운 의식이 자라는 대학생들이 이 외교문서에 대항해서 소란을 통해, 그리고 명백히 표명된 거부를 통해서 거역한다면, 누가 게서 놀라겠습니까? 그것만이 유일한 가능한 방식인걸요. 이 요상한 외교문서가 경찰의 폭력을 통해 그들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그런 예절에 그들이 어떻게 의무감을 갖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문서 문제들로 좌절당하고 맙니다. 초대장에 쓰인 간단한 기재, 예컨대 “짙은 색 양복” 또는 “외출용 정장”이란 기재만으로도 꽤나 육중한 압력이 들어 있습니다. 무엇이 짙은 색인지 누가 저에게 말해줍니까? 외출 시에는 제가 무엇을 입나요? “흡연” 같은 육중한 경고문들은 아마 아이러니의 가치도 없겠지요. 누가 우리 위에서 규정하며, 누가 우리를 처리합니까, 누가 우리에게 불문율을 부여합니까? 청년의 항변이 복장과 두발에도 표현되는 것을 누가 이상하게 여긴답니까? 책임이 위임되어야 하고 다른 선택을 허용하지 않을 투표함으로 충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소란과 명백히 표명된 거부를 통해서와 또 다르게, 복장과 두발로 표현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자 스무 살의 뷔히너가 가족에게 쓴 편지 구절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만일 우리 시대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한다면, 그것은 폭력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주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승인했던 모든 것은 필연을 통해 강요된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폭력 사용이 비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한 폭력의 상태에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뷔히너의 미학적 현재성을 그의 정치적 현재성과 분리할 결심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역사에 의해서 놓치게 된 두 독일인의 만남을 한탄해야 할 것입니다. 뷔히너와 그보다 불과 몇 년 젊은 마르크스의 만남 말입니다. 「헤센 급전」의 힘에 넘치고 그렇게나 민속적이며 물질의 정의에 넘치는 언어는 의심할 여지없이 “공산당선언”만큼이나 영향력 넘치는 정치적 문서입니다. 사회적 현실의 인식과 묘사에서 보여준 뷔히너의 꿈같은 확신은 「급전」에서부터 중단 없이 바로 그의 극작품들, 산문, 편지들에 이입됩니다. 시인이자 자연과학자요 동시에 정치적 작가였던 뷔히너가 사회적 현실의 인식과 묘사에서 보여준 꿈같은 확신에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오류와 우회를 문학에 관한 한 면할 수 있을 기회, 그리고 미래의 마르크스주의적 작가들의 고뇌를 탕감할 기회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실제 역사에서는 놓쳐버린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사후에 성사시키게 될 수 있을지, 그러니까 오늘 날 실행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주의적 미학을, 어쨌거나 마르크스의 동시대인이었고 결코 그의 나쁜 동지가 아니었을 뷔히너의 물질의 정의와 대질시키는 것 말입니다. 뷔히너의 작품과 또한 그가 작품에 대하 언급한 모든 글에는 몰인정도 그 반대도 들어있지 않고, 오직 물질의 정의에 대한 소망만 있을 뿐입니다. 『당통의 죽음』에 대해서 그는 사실 경악했던 가족들에게 이렇게 씁니다. “…… 그런데 이 이야기는 맙소사 젊은 여자들의 독서를 위해 창작된 것이 아니어요, 그리고 만일 저의 드라마가 그런 데에 적합하지 않다 해도 불쾌히 여길 것도 없답니다. 저는 당통이란 사람과 그 혁명의 도당들에게서 덕행의 영웅들을 만들 수는 없어요……. 그가 그러한 소재를 선택한 것을 두고 날 비난하려면 하래지요. 그런 항변은 벌써 반박되었어요. 그 항변이 타당하다 하려면, 문학작품 중 정말 위대한 대작들이 비난되어야 하겠지요. 작가는 도덕교사가 아닙니다. 작가는 인물들을 창안하고 창조하지요. 작가는 과거의 시간들을 다시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학습해야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 속에는 너무도 많은 부도덕한 일들이 서술되고 있으니까요. 또 눈을 아예 동여매고 골목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랬다가는 추잡한 짓거리들을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에게 비명을 질러야 할 것이에요, 세상엔 너무도 많은 방탕한 짓거리들이 일어나니까요. 그런데요, 만일 누가 저에게 작가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서는 안 되고 어떠해야 마땅한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면, 전 이렇게 대답하겠어요, 나는 세상을 신보다 더 좋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 신은 이 세상을 틀림없이 어떠해야 마땅한가 그대로 만드셨을 것이라고.”

신사 숙녀 여러분, 게오르크 뷔히너의 이름은 제게 저의 감사말씀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할 의무를 지워줍니다. 동시대 동지의 소란한 변두리에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확신은 부서지기 쉽고, 자기 확신이란 불가능한 그런 입장, 비판적인 것이 격분으로 오해되어 울릴지도 모르는 입장에서 말하라고 합니다. 마치 비판도 자신을 거기에 함께 관련시키는 제안을 포함하지 않은 듯이 말입니다. 뷔히너의 생애와 작품에는 몇몇 현재성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의 편지 왕래 특히 구츠코와의 편지 왕래에서 묘사되었던 망명의 문제, 그리고 「보이첵」에서 표현되듯이 그의 다른 작품 어느 것만 못하지 않은 뷔히너의 의사로서의 현재성 말입니다.

제가 다만 암시적으로나마 뷔히너 또는 당통이라면, 이러한 연설을 생략해도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라끄르와는 당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게으름 그 자체로다. 그는 나서서 연설을 행하기보다는 차라리 단두대에 서려는구먼.” 그리고 빌헬름 뷔히너5)에게 쓴 편지에서 뷔히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내 자신 매우 만족하고 있다, 장마 비나 북서풍이 불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럴 때면 난 사실 저녁에 잠자리 들기에 앞서 발에 양말 한 쪽이 걸려있으면 그 순간 방문에 목을 매달고 싶어 하는 그런 부류에 속하게 되는구나, 다른 한 쪽마저 벗을 일이 너무 너무 피곤하니까 말이다.” 그로써 뷔히너가 공공연히 그렇게 지냈던 게으름의 장을 넘어서 그의 유머라는 거대한 장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머는 그토록 난폭하고 또 그토록 부드러울 수 있으며, 그가 그것을 잃었을 때조차 틀림없이 여전히 현존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취리히에서 엘사스의 친구 뵈켈에게서 편지를 받았던 경우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 편지 중 일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독일에서 나는 매우 잘 지낸다네, 자네가 생각하는 절반만큼도 나쁘지는 않다는 말일세…….”

(하인리히 뵐: 번역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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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두막에 평화를! 궁정에는 전쟁을!”이라는 유명한 대목은 1834년 7월자 『헤센 급전. 최초의 전령』에 인쇄되었다. 이를 배포하다가 붙잡힌 대학생 미니게로데에 관한 기록이 1834년 10월 15일자 카셀의 내무부 문서에 나온다. http://www.digitales-archiv.net 2004-4-15

2) 베노 오네조르크는 이란의 팔레비국왕 방문 반대 시위 중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1967.6.2.)

3) 비상사태법 추진 반대투쟁에서 서독 국민들에게 투표용지 무효화 운동을 선동하고 나선 것은 예컨대 마르틴 니묄러목사를 들 수 있다. 투표용지 무효화 운동의 이유는 당시 현실화된 기민·기사연과 사민당 간의 대연정(大聯政)은 “히틀러가 무색할 정도”의 독재체제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4) 1967년 4월에 있었던 아데나워 수상의 장례를 말한다.

5) 뷔히너의 아우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4. 11. 15. 21:34

 

라인


                                                                『그대 안의 풍경』2004 (이화에세이)        

 

 

아직도 내겐 아파트 입구 편지함을 둘러보는 버릇이 남아있다. 그러나 건져오는 것은 고지서나 광고성 안내장이기가 쉽다. 하긴 편지가 기이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주고받는 명함에도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로만 표기된 것이 흔하다. 세상은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추월한 지 오래다.


이메일의 편리함은 말해 무엇 하리. 우선 글을 쓰다가 지우거나 구겨버리곤 하던 편지지와 달리, 매번 글자를 고쳐놓는 일이 쉽다. 마음이 변하면 강도도 조절하고 뉘앙스 다른 어휘를 고르면 된다. 상대가 읽었을까 마음 조릴 필요도 없는 것이, “읽음 확인 메일”을 요청하기만 하면 된다. 한마디로, 빠르고 정확한 모든 장점 위에, 가장 중요한 배달사고가 없다. 간직하고 싶다면 보관함에, 그것도 안심이 안 된다면, <내문서>에 옮겨서 다시 <A 플라피>로 옮겨놓으면 거의 영구하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엽서 하나 손수 써 보내는 일도 드물다. 하물며 손으로 쓴 편지를 받는 일은 드물다. 손으로 줄은 친 듯한 편지지에 쓴 편지 하나와 그보다 앞서 그냥 종이에 세로로 쓴 편지지를 받은 적이 있다. 하나는 기념사진 한 장과 예스런 학자의 고결함이 베인, 하나는 인간미가 뚝뚝 묻어나는 선배의 글이었다. 두 분의 편지글에 답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면 틀렸다. 실은 두 분께 전화로 답을 해야 했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의 편리성을 든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전화가 어렵다.


“안녕하셔요, 저 아무갭니다. 선생님, 사진까지 일부러 보내주시고. 그런데 지난 번 뵈었을 때…….”


그러면 저쪽에서 말씀이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그 먼 데를 일부러 올라와서 고마워요. 거 얼굴이 피곤해 보여서 잘 내려갔는지 걱정되었고, 그리고 부군도 잘 계시는지…….”


그러면 또 언제 무슨 말로 대답을 이어나가야 할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팥으로 메주를 쑵니다…… 라고 했더라도, 아 그래! 하고 믿어주셨던 은사님을 고향으로 내려온 이래 몇 번이나 뵈었던가. 겨우 산수(傘壽)연에 다녀온 것을 칭찬하시니 송구스러울 따름이고, 대학생활 전체가 테트리스 조각처럼 한 순간에 내려와 쌓이는 바람에 꼭 드려야 할 말을 놓치고 만다.


선배님에게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초록빛 바다색 아니면 비취색 하늘거리는 가운데 단아한 얼굴모습에 압도당하던 느낌을 전화로는 말할 수 없다. 혹시 모를 내 작은 잘못에, 음색만으로는 조금 노여워하시는 것인지 그냥 넘어가주시려는지 알 수가 없고, 그 순간 어떤 반응도 멈춰 버리는 것이 순발력 없는 내 본바닥이다.


전화보다는 이메일을, 이메일보다는 편지를 선호하는 내 마음 바닥에는 서툰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내가 어느 결에 교사가 되었을 때, 학생 때의 내 자신이 문제학생 사례연구 대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인데, 중 2때 나는 어떤 선생님께 집중적으로 불려가곤 했던 일이 그것이었다. 결석이 좀 잦은 것을 제외하고는, 공부도 어지간히 하고 공납금도 아무 문제없던 내가 왜 문제학생이었을까? 편모, 편부도 아닌, 계모, 의부도 아닌, 정상적인 대가족의 맏이가 무슨 문제를 가졌다고 비쳤을까?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인성검사에서 지배성, 도덕성, 사회성 등 무슨 인성들을 수치로 조사하면서, 모든 성질에서 25~75% 안에 들어가기를 중용의 인간이라고 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사회성 불량으로, 뭔가 15% 미만임을 추궁 당했던 기억이 늦게 서야 떠올랐다. 그래, 나는 사회성 문제아였구나!


그러니까 우선 부모님과의 관계였을 것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달한 어머니를 이해하기엔 어렸고, 나는 소설 속의 전통적 어머니상을 그렸다. 어머니에겐 모든 어머니들의 착각처럼 자식들은 최고가 될 소질이 보였을 것이고, 피아노와 미술은 기본으로, 남자애들은 웅변술까지 과외를 시켰으니, 그때 원조 치맛바람은 우리를 수소풍선처럼 띄워 올렸다. 아마 중학교의 자유는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이었을까? 금지된 장난을 골라서, 부러 내리막길을 달렸던 시절이다. 실습지 토끼장의 토끼를 풀밭에 놓아주긴 쉬웠지만, 오디를 따먹으려면 날쌘 친구가 나섰다. 선생님들 눈밖에 난 친구들 사이로 스며들기는 쉬었다. 토끼들이 토끼장에서 사라지면 범인(?)들은 토끼를 다 몰아넣기 전까지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누렸다. 허리까지 자란 풀밭에서 털썩 누워버리면 하늘은 풀밭과 맞닿게 내려앉고, 우리는 하늘 속에 누었다. 주머니를 함께 털어서 싸구려 꽈배기를 사먹었다. 그 순간에는 네 것 내 것 없는 완전한 공동체가 실현되었다. 불량꽈배기의 밀가루와 기름은 양분인 것이 틀림없으니, 나는 자꾸 쓰러지는 약골로 자랐지만 키가 클 대로 컸다. 가끔은 상표도 없는 아이스케이크도, 어머니가 양잿물이라고 했던 삼각 비닐주머니 속의 색소와 사카린으로 만든 물도 먹었다. 어머니의 금기는 그리 무서운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없이 금기를 내놓으셨다. 금기에 대항하느라고, 책가위를 누구보다 가장 예쁘고 깔끔하게 싸주신, 연필 다섯 자루를 저녁마다 깎아서 키대로 나란히 필통에 넣어주시던 아버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책과 필통은 사랑스러웠지만, 학교에는 어머니를 대신할 여선생님들이 많았다. 요구와 간섭은 어머니를 능가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담을 쌓았고, 사회성이 전현 없는 문제아라고 주목받았을 것이다.


아니 그건 변명이다. 지금도 함께 생활하는 직장동아리에 80가까운 사람들이 한 건물에서 연구생활을 하는데, 그중 얼굴과 이름을 다 알 수 있는 경우는 반이 될까 말까다. 그들은 내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데, 간섭 때문에 사람을 기피한다는 변명이 틀리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대답을 하는 것 - 그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라고. 공부를 해도 해도 그것은 어렵고,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그것은 어렵다고. 마주쳐서는 말이 안 떨어지면 목례라도 무슨 몸짓이라도 하는데, 그것이 정말 어려운 것은 전화라고. 수화기 저쪽에서 대답하는 목소리에다 대고, 처음 무슨 단어로 말문을 열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라고.


그래서 편지가 덜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메일이건 종이편지이건. 그 중에서도 쉽게 PC에 저장되어 무생물 같아지는 이메일보다는, 여간 간직하지 않고서는 곧 사라지는 종이편지가 부담이 없어 좋다. 문제는 여전히 덜떨어진 사회성이다. 더구나 이런 감동적인 편지를 받아본 후에는, 아마 누구도 쉽게 편지지를 펼치지 못하리라. 아니 어떤 단어로도 그 시작을 찾지 못하리라. 나는 그저 저물어가는 오프라인 시대의 추억에 잠긴다.

 

 

튼튼한 몸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당신의 튼튼한 정신이 좋습니다.

아직도 새파랗게 날이 선

당신의 젊은 정신이 좋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정신의 튼튼함이 당신의 육체를 병들게 한다고 해도

나는 결코 ‘몸 생각해서 정신을 쉬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웃는 부드러운 입매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엄격한 입매가 좋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굳은 입매가 싫다고,

당신을 멀리한다면

나는 참 기뻐할 겁니다.

그만큼 당신은 제 것이 될 테니까요.


                                                                       200x년 1월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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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