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08. 9. 1. 23:30

[한국소설 2008년 9월호]

번째의 죽음


                     

라우렌츠: 앉아서 써 봐. […]

여자는 질문을 받으면, 질문으로 대답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질문을 받으면, 즉시 대답해야 한다.

여자는 라우렌츠의 생각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는 심한 말로 라우렌츠의 문장을 끊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적당한 장소에서 말할 줄 알고 또 침묵할 수 있어야 하고 라우렌츠를 사랑하고 착하게 대해야 한다, 그가 비록 거칠더라도 말이다.

이걸 자주 읽는 거야, 알았지.

 


이 글의 마지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극중의 라우렌츠(남자)와 여자는 작가죠. 집에 들어앉은 여자는 혼란과 무기력에 빠져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결국 여자는 “이젠 결코 다시는 잡아먹히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며 남자를 떠납니다. 글을 쓸 수 있었냐고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썼죠. 적어도 남자의 글보다는 훨씬 의미 있게 언급이 되는 작품들이었죠. 그러니 근 한 세기 전 서양의 이 작품이 여기에서 인용되겠죠. 


제 이야기를 할 차례군요.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얼핏 골빈 여자들에 속합니다. “적당한 장소에서 말할 줄 알고 또 침묵할 수 있어야 하는” 틀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죠. 더구나 순간의 감정에 잘 휩쓸려서 조급하다는 핀잔을 듣곤 하죠. 조급하다 - 그 말이 내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그것을 하필 나와 가장 가까운 그가 모릅니다. 그는 나랑 생일이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남성들의 전유물인 이성과 합리성과 또 모든 명철함을 가졌기 때문에 늘 잘난 체를 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일찍 서로를 발견한 셈이지만, 마찰은 자라면서였죠. 중학교 때, 여전히 잘 넘어져 팔꿈치와 무릎에 거즈와 반창고를 대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죠. 난생 처음으로 팔꿈치나 무릎이 아닌 속옷 깊은 곳에서도 피가 흐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란 어느 날, 그는 퍼렇게 날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비웃음을 머금은 채, 휑하니 돌아서 나가는 그는 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빠져나가서 차가운 공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여름날이었는데도 그가 떠난 자리로 창문을 통해 전해오는 공기는 얼음장 같았으니까요.


나: 이 첫 작품에 난 제목을 붙일 수가 없었어.

그: 제목이 없음 무슨 시. 제목이 없이 주제가 나오며, 주제가 없이 시를 쓸 수 있다고!

나: 처음이라서.

그: 넌 그냥 시를 쓴다는 폼을 사랑해서지! 생각부터 가다듬어야 했어. 생각이 있어야 글이 나오지. 글쓰기 과정은 단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문장구성과 단락 나누기 등에서…….


제목이 있을 자리에 “무제”가 뭐냐 라는 질책에서 시작하여 그는 정말로 내 첫 작품을 난도질했답니다. 그 버릇이 평생가게 된 거죠.


그: 자 시작해보자. 단어들을 준비해. 핵심단어들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을 것 아냐. 그것들을 문장으로 연결해 내는 거야. 문장의 유형을 결정해, 서사와 묘사를 구분해야지. 원인과 결과는 소설이라 해도 개연성을 위해 필수적이지.

나: 지금 시를…….

그: 담엔 소설도 쓰겠달 것 아냐! 개연성이라면 우연에서 필연을 볼 수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꼭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하리라고 생각되는 만큼의 가능성 말이야.

나: 참인 것 같은 거짓말?

그: 뭐 그 정도로 이해하든지. 논리학에서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수량적으로 잴 수 있는 경우만을, 철학적으로는 확실성의 정도를 말하니까. 개연성은 어떤 논증의 전제와 결론 사이의 특별한 관계라…….


어렵사리 “개연성”의 고개를 넘었지만 아직 멀었죠. 그는 아는 것도 많았거든요. 문장들을 멋대로 자라게 내버려둬선 안 되지. 단락이라는 큰 그림을 구상해 둬. 섣불리 정의를 내는 것은 문학작품에선 금물……. 

그는 세계문학사에 남은 명작들을 독파하며 은근히 여유를 부렸죠. 그래도 난 그가 고시 쪽을 택할 것이라 믿었어요. 사법이건 행정이건 또는 외무이건. 어쩌자고 문과대학엘 진학했는지, 그건 지금도 모를 미궁이랍니다. 허영이었을까요? 뭐 정신적인 일에 탐닉한다는. 일직선의 성공을 얕잡아 보는 허영? 다음 몇 토막글은 우리의 숨 막히는 이야기랍니다.


*


독서


그: 독서로 우정을 깨긴 싫구나.

친구: 독서란 원래 우리 머리통을 깨부숴야 되는 거라며. 네 입으로 안 그랬어? 대단한 작가의 말이라고.

그: 건 지금 상관없고. 넌 그러니까 “반항적 인간”을 비난하는 거잖아.

친구: 그럼 넌 가차 없는 혁명제일주의를 단순무식하다고 내몰겠다?

그: 카뮈작품이 그런 말 아닌 것 너도 알잖아, 왜 억지야? 한 발 물렀다고 혁명 끝내자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 봐, 볼셰비키혁명의 정당성을 위해서도 그런 반항적 인간이 더욱 요청되는 것 아니었겠냐고.

친구: 언제부터 카뮈로 돌아섰나. 혁명 대신 반항? 부조리? 웃기시네. 극한상황에선 정당한 목적만이 정의로운 것.

그: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순 없어.


이건 『정의의 사람들』을 두고 벌어진 틈이었다. 이런 대화는 흔했다. 난 사실 대학시절만 해도 그를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충분히 지적이고 게다가 사려 깊었다. 섣불리 연애한다고 마음을 내놓지도 않았고, 이슈에 따라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데모에도 동참하지 않을 만큼 줏대도 있었다. 그가 정과 혈기에 넘치는 친구들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난 걱정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친구란 원래 남이고, 남이란 다른 존재이고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이 없는 점에서는 우리는 무척 닮았다 싶었다.


독서목록에 스따브로긴이 등장했을 때 친구들과의 상황은 몹시 나빴다. 친구 하나가 그를 사실은 말 뿐인 퇴폐적 스따브로긴에 빗대어 비난했을 때, 독서회의 우정은 송두리째 위기에 처했다. 항상 굿이나 보던 나의 생각으로도 그 부분에선 친구들이 좀 심했다 싶었다. 그가 얼마나 금욕적인가를 친구들이 모르는 것 같았다. 그가 기름진 맛있는 음식을 죄스러워 하는 것, 그가 검소한 차림을 중시하는 것들을 다들 몰랐다. 스따브로긴은 그에겐 상처였다. 그는 한 동안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그는 누구이어야 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오히려 무신론의 상태,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감행했던 끼릴로프에 가까운 결벽증의 인물이었다. 자아의지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회복불능의 행위도 불사하리라 믿은 끼릴로프. 하긴 그것은 그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어떤 인간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 후 『악령』은 우리들의 터부가 되었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읽어치우는 소설들 모두를 어느 정도는 이해했냐고? 천만의 말이다. 줄리앙 소렐의 터무니없는 성공집착이나 애정행각은 물론, 레날 부인의 진정한 사랑도 도저히 알지 못했다. 에마 보바리의 충동은 차라리 저열하다고, 별 증오심도 없이 남편에게 비소를 먹인 테레즈 데께루의 무감각은 어불성설이라 간주했다. 난 소설들을 그저 읽어치우기에만 급급했다. 사람이 쓴 글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못 참는 것에 불과했나? 책도 중독이 된다.


독서 때문에 그와 티격태격하는 것은 늘 일상에 속했다. 『죽음의 방식들』 3부작을 놓고는 한참 심각했다. 여자들이 남자들로 “인해서” 죽는다는 내 생각에 그는 화까지 냈다.


그: 뇌진탕과 폐렴이라는 사망진단은 뭔데! 세 번째 죽음은 죽음도 아니야, 승복일 따름이지.

나: “그것은 살인이었다.” - 이 마지막 문장은 뭔데?

그: 여자가 스스로 사라진 장면에서 어떻게 그 자구만을 고집해? 그만 왈가왈부하고 네 것을 써보라니까. 평생 주어 읽은 모든 것들을 버릴 때라야 네 글 한 줄 쓸 수 있을 걸.

나: 악담은.

그: 악담이면 어때서, 바른 말이면 바른 거지.

나: 바르고 바르지 않고, 그게 그리 쉽나?

그: 내 말이 아냐, 그건 정설이지.

나: 정설을 누가 만들었는데? 것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을 것 아냐?

그: 정설과 사설도 구별 못해? 사설, 사삿사람의 의견이나 중요시하는 버릇이 어쩌자고!

나: 나도 사삿사람이니 그렇겠지.

그: 글을 쓰겠노라 늘 꿈을 꾸는 건 뭔데? 마냥 읽어대기만 하고, 여차하면 이런 저런 글귀나 끄집어내고…….


그렇게 무작정 읽은 것은 사실이다. 세상의 이름 있는 소설들을 섭렵하고서야 내 글을 시작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막연한 준비심에 불과했을까? 부수적인 효과도 짭짤했는데, 그땐 책 좀 읽는 애라면 괜찮은 프리미엄이 따라붙는 시대였었다.


글쓰기


정작 글다운 글쓰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는 신들린 듯이 진력을 다했다. 하지만 학보사에서 거절당했고, 신춘문예도 두어 번 탈락했다. 그러더니 또 후다닥 글쓰기를 중단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카프카도 아니라면 누구도 더는 글을 써서는 아니 된다고. 이 무슨 황당한 궤변인가. 그래서 내가 슬며시 끼어들기 시작했다. 박경리, 박완서는 왜 아냐? 수지와 수인(오목)의 이야기만으로도? 라고 반문하면서. 나는 어쩌면 그의 탈락을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 충실했을 그의 글은 이 시대의 문단에서 한편으론 요청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두들기는 문은 정반대의 색깔이었으니 말이다.


색깔? 그런 것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빛도 아닌 회색이었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세월은 흘렀다. 밥을 해결할 직업도 갖게 되고, 연애(?)랑 결혼도 하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오늘 하려는 이야기와 무관하다. 생략법은 특히 그가 좋아한 화두였으니, 그 또한 이런 생략에 찬성일 것이다. 진부함으로 이루어진 일상의 보고를 생략한다는 것.


어쨌거나 생이 더 이상 진부해질 수 없을 만큼 아스팔트바닥 위를 맴돌고 있을 때, 내가 옛날의 종이들을 헤집어 내기 시작했다. 책상으로 썼던 낡은 교자상아래 밀려들어간 먼지투성이의 원고들은 가장자리가 열 번 백 번의 물걸레질에 밀려 짓이겨 졌지만, 용케도 누렇게 뜬 내용물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치기어린 글들인지 쑥스럽다 못해 우습기까지 한 것들. 누구라도 제 글을 읽는 것은 고문이다. 어쩌면 살인이다. 내 경우엔 심했다. 어떤 글에 비해 보아도 내겐 독창성이라곤 없었다. 너무 많이 읽은 탓에(?) 못 쓰는 나. 그가 옳은 것 같다.


처음엔 내가 빛바랜 원고지들을 넘겨보다 지쳐서 일이 그만 시작도 없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세상 따라서 완전히 생경한 원고지, 줄도 없고 마음대로 변하는 백지화면에 글을 “삽입/수정”하게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우선 원고지에 대고 훈수 놓던 일을 못하게 되었다. 내가 <내 글>을 암호로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신나는 세상.


그가 또 모르는 일로서 이 이야기를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고백할 것이 있답니다. 나는 누군가 내게 보낸 보배 같은 글귀들을 싸구려 감상적 픽션에 섞어 짜 넣고 있었죠. 곧 사라져버릴 듯이 연필로 쓰인 것, 또박또박 예쁜 팝글씨로 쓰인 것, 편지지도 아닌 화면으로 도착한 것, 더 작은 지우개만한 화면에 떠오른 것들까지, 순간 되살아나는 타인의 글들. 타인의 글을 내 글에 섞어 쓰는 짓거리. 그 짓에 대한 가능한 변명은 오직 하나,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그 몇 짧은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픈, 내가 죽은 다음에까지도 세상에 흔적으로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악마다. 그 조각글들의 주인에게는 악마다. 나는 소설을 시작한다면서 마음 한 구석으론 기껏 일기를 쓰는 수준에 머물었나 보다. 픽션 또는 팩션에 관련한 괴로움은 여전하다. 나는 물론 내 주인공을 창조하여 실존인물과 섞어 놓는다든지 해서 실존인물을 모욕하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실존인물의 한 작은 조각을 잘라내어 창작된 인물의 어느 부분에 끼워 넣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실존인물은 그렇게 됨으로써 생명 한 조각을 도난당하고, 창작된 인물을 독창성을 잃는다. 윈-윈 게임이란 말이 유행어가 된 세상에서, 둘 다 망하자는 싸움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싸움


너 죽고 나 죽자! -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도 그건 그냥 하는 말이다. 마음속으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싸운다. 그와 나는 죽자 사자 싸우는 사이는 아니다. 그저 그가 좀 잘난 체를 하는 편이라서, 내 우정이나 사랑의 장면에까지도 끼어들곤 한다. 그의 충고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의문이다. 이렇다 할 우정도 사랑도 쌓아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남편을 또는 아내를 버려두면서 까지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갈 인사가 있는가? 세상 친구들의 우정을 다 버리고라도 아내 또는 남편의 사랑에 매달릴 것인가? 어느 쪽도 경우의 수에 해당하지 않으니 모순이다.


쪽지의 글자들이 춤을 추듯이 살아난다. 퍼즐조각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풍선처럼 바람을 먹은듯하다. 그것들이 다시 한꺼번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검은 바늘들이 되어 내 가슴으로 향한다. 그렇게 무수히 쏘아져 내게 꽂혀버린 바늘 끝에는 독이 묻었을까? 헤집어 뒤집어 보아도 보이지는 않으나 녹아버린 내 가슴 한 자락.


그가 읽을 수 있었다면 당장에 태클을 걸 것이다. 네 이야기를 쓰라는 게 아니잖아. 네가 창안한 이야기라야 한다니까. 그런데 지금은 암호 때문에 읽지 못한다.


헤어지기 30초 전, 어두운 밤길. 차에 타려는 동작으로 몸을 구부리려는 찰나, 그 손이 내 팔을 잡는다. 가볍게도 아니고 너무 무겁게도 아니게. 알맞은 무게로 알맞은 온기로 팔을 잡는 손. 5초, 10초…… 나는 그대로 좌석으로 몸을 내린다. 아 아까운 10초. 또는, 그 오른 손 바닥 2/3쯤이 내 왼쪽 손등에 머문 3초, 언젠가의 3분을 30분을 불러내는 마술……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 손의 주인과 팔의 주인, 또는 오른손의 주인과 왼손의 주인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누가 15%쯤 실존인물이고 누가 30%쯤 창작인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그는 내 글을 보지 않고서도 내가 뭘 쓰고 있었는지 아는 게 참 희한하다.


그: 그 순간의 그 마음의 활자화를 당사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잊지 마. 넌 차라리 화석화될지라도 기념물을 원했으나, 마음이란 것이 살아서는 화석이 되는 게 아니지.

나: 알고 있어, 주어 담을 수 없는 물인 줄.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채로 누군가가 누군가의 산소가 된다면, 그게 그리 나쁜 일이겠어?

그: 아니지, 네가 산소라고 들여 마시는 그것이 네겐 일산화탄소야. 일산화탄소중독.

나: 연탄가스 중독?

그: 그래,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중독.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두통에서 시작하여 현기증과 이명.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누군가를 생각하면 두통이 일고 현기증이 인다. 희미한 한 두 마디가 귓속에서 웅얼거림이 되어 이명 현상이 생긴다. 무슨 말인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 그 사람의 면전에서 홍조가 생기지 않았으리라는 법이 없다. 내가 나를 보지 못할 뿐. 일산화탄소중독 증세 중엔 홍조에 이어 발적도 따른다고 했다. 마음처럼 축축한 날, 이 두드러기가 발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호흡은 가늘고 불규칙해진다.


누군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부정맥이신가요?

(속으로만) 부정맥이라고요? 그래요, 가슴이 제 템포에 맞춰 뛸 수 있을 리 없죠.


코를 골게 되는 증상을 제외하곤 영락없는 일산화탄소중독 그대로다. 저체온도 그렇다. 누군가 앞에서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피어난 홍조도 아무 소용없다. 누군가의 냉기는 상상을 절한다. 몇 미터 밖까지도 유효하다. 평소의 체온을 유지할 수도 없을 만큼 그 냉기는 사람을 얼리고 만다. 그러다가 호흡곤란이 오는 줄도 모르는 사이 호흡이 멈춘다. 일산화탄소중독에서처럼, 정지된 감정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다가…….



정신과 육신은 하나라고 한다. 평소에 의사는 연령에 비해 많이 촘촘한 젖이 오히려 약간 불안한 형국이라 그랬다. 의례적인 정기검진에서 젖이 아닌 갑상선에 문제가 발견되었다. 1㎝에 못 미친다지만 기분 나쁜 이상한 물체임엔 틀림없다.


의사: 조직검사 소견은 괜찮습니다. 콜로이드갑상샘종이라고.

나: 괜찮다면, 수술 그런 것…….

의사: 아 그 염려는 안하셔도 되겠습니다.


이듬해 봄엔 간헐적이지만 참을 수 없는 두통이 계속되었다. 고개를 숙여 밥상을 내려다볼 수도 없었다. 검사는 아프고 길어만 갔다. 접형골이상정체낭종. 두통은 간헐적이지만 멈추지 않는다. 또 한 해가 가도 통증은 여전하다. 서울로 검사를 옮겼다. 똑 같다. 곧 죽는 건 아니란다.


다시 이태만의 초봄, 무서운 꿈에 놀라 종합검진을 받기로 했다. 갑상선기능저하. 위가 가진 대여섯 가지 병적 증상. 담낭의 용종 두세 개. 간의 물혹. 왠지 불안했던 췌장은 아니었지만, 우와! PET 검사를 했다. 죽고 싶지 않구나. 두 해 봄이 지났지만 그 상태를 유지한다. 매번 검사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냉대를 받는다. 예약용지를 가져가지 않았거나 무턱대고 이름을 대려다가 그런다. 종합병원에선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몰라서다. 병원의 나는 여섯 자리인가 일곱 자리의 숫자다. 숫자가 인격적인 감정을 가지면 곧 불쾌한 일을 당한다. 서라면 서고 가라면 가고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한다.


가장 금기는 왜? 라는 질문이다. 그 답은 미리 나 있다. 아프니까. 아픈 죄인이니까.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죄인. 무엇보다 자신의 주인공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하는 죄인. 그는 병이란 건강을 해치는 생활습관 탓이라고 나를 나무라는 눈빛을 한다.


죽음


병의 다음 단계는 죽음이다. 물론 병과 관련 없는 죽음도 더러 있다. 대량죽음들이 그렇다. 예기치 못하기로는 교통사고가 가장 흔한 죽음이고, 아니 자연재해도 있다. 쓰나미와 지진들. 그건 내가 감히 기술할 범위를 넘는다. 그 의미와 무의미를, 그 우연성과 필연성을 기술할 위인들은 따로 있다. 글을 쓴다고 다 같지는 않은 법이다.


규칙들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는 인간은 몰취미하거나 질 나쁜 작품을 내놓지는 않겠지, 법규나 복지를 모델로 삼는 자가 참을 수 없을 이웃이나 특별한 악인이 될 리가 없듯이. 그렇지만 규칙이란 자연의 진실한 감정들과 그 진실한 표현을 망치고만다고 말해도 될 게야. 


그렇게 말한 위대한 작가가 있었다. 벌써 200년도 전에, 그것도 스물 몇 살에 쓴 작품 속에서 그런 말을 했다. 그러니 위대함의 크기는 글쟁이들 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렇게 말한 주인공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실연과 자살이라는 세기적인 유행의 틀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정말 200년쯤 지나서도 지치지 않고 죽음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우리가 정말 심하게 싸운 건 앞에 말한 『죽음의 방식들』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 여자는 뇌의 부상으로, 다음 여자는 폐렴으로 죽는다. 처음 여자는 정신과의사인 남편과의 불화와 증오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웃음, 부드러움, 기쁨의 능력들을 박탈당한 채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을 받았다고 느낀다. 여자는 이전의 다른 여자들이 왜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을지 놀라워하면서, 자신이 세 번째 아내로서 자신을 수정해가는 일에 더욱 놀란다. 결혼은 양성간의 투쟁이다. 아랍 어딘가를 거치는 힘든 여행 중에 여자는 뇌를 심하게 다쳐서 죽는다.


나: 그건 단순한 뇌진탕이 아니야. 죽음으로 “밀려간” 것이지.

그: 그러니까 일부러 넘어져서 뇌를 다쳤다고?

나: 생각해봐, 이건 패러디야. 같이 살다 헤어진 유명작가의 유명작품에서도 아리따운 여자애가 그리스여행 중에 뇌를 다쳐서 죽지 아마? 여자는 어린애 같고 그러니 열등하고, 그리고 죽는 거야. 너흰 실제로도 작품에서도 여자를 죽인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그: 그럼 두 번째 여잔 어때? 폐병을 남편인가 애인이 옮겼어?

나: 그건 아니지만. 애인이란 작자가 여자를 발가벗겨 작품을 썼으니 그게 간접살인 아냐? 그것도 “영원히 고상하고 아름다운 여성”이길 바라는 남자들의 헛칭찬에 노심초사하는 미숙한 여자를. 여잔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주는데 남자들은 여자를 문자화한다면, 대상화된 여자는 연인에 의해 “도살된” 것처럼 느낄 밖에. 자기 고유의 역사를 박탈당한 채 한낱 소재가 되어 대중 앞에서 진열되고 있는 것처럼. 그 기분에 공감이 안 돼?

그: 그럼 처음 여잔 정신분석가인 남편이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 그것에 가장 상처를 입었단 말이야 참? 작품 이야기 말고 한번 가정해 봐, 여자들은 만일 피부과의사인 남편이 실험적으로 젊어지는 시술을 해줘도 그렇다 할 건가?

나: 난데없이 피부과는? 픽션과 사실을 혼동한다고 나를 나무랄 땐 언제고!

그: 그 부분 취소할게. 이제 넘어 가자.

나: (어라, 양보할 때도 있네!) 좋아, 세 번째 죽음을 “살인”이라고 인정한다면.

그: 또 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세 번째 여자는 M이라는 이름을 가진 확실한 제 자신 속으로 스며들었잖아. 이름도 없이 “나”라던 여자는 M에서 빠져나왔던, 비정상적으로 감수성이 많은 여성성이었을 뿐이야.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자.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작가. 그런 여자가 이제 제 정신을 차리고 원래의 제 자신, 이성적인 M으로 되돌아갔을 뿐인 것. 여기서 살인이라? 게다가 네 진짜 문제는 뭔 줄 알아? 이 작가의 죽음마저 세 번째 소설의 죽음 넘어 네 번째 죽음이라 떠드는 것이지. 꼴페 나부랑이들!

나: 꼴페? 꼴통페미니스트는커녕 그냥 페미니스트도 못된다!


다만 내게서 창작이란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보상을 위해 외부에서 유발된 상처들을 속절없이 치유하는 과정이다. 나는 그 네 번째 죽음을 흉내 내기로 했다. 세 죽음의 작가가 그 세 번째 죽음을 실 인생에서 실연했듯이. 그가 끼어든다. 아니지, 그 여잔 골초였어. 침대에 누운 채 담배를 피우다 불을 낸 것이라니까!


나는 흉내보다는 패러디를 준비한다. 그렇담 그가 사라져야 한다.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는 나를 무시하면서 군림해 왔고, 나는 그에게 종속되어 그에게 결정권을 유보한 채 공존해왔다. 그를 사라지게 하는 일에 내가 실패한다면 남은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다.


다른 이야기 하나. 교도소에 선행(?)을 하러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교도소에는 일반인의 예상대로 남자수인들이 훨씬 더 많단다. 그 친구가 이야기하기 전에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 살인 등 중죄인 비율은 예상을 뒤엎는단다. 남자죄수들이 살인자일 비율을 그냥 대충 10%도 안 된다고 한다면, 여자죄수들이 살인자인 경우는 그 몇 배란다. 살인자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상과는 너무 다르다.


친구: 걸 여태 몰라? 여자들은 가정에서 대개는 억압을 당하는 관계에 놓여 있잖아. 부당한 일들, 억울한 일들을 참도록 길러졌으니까. 헌데 쥐가 완전한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 않았어? 극한상황에 내몰리면, 억수 밀리던 여자가 상대를 죽이고 만다는 것이지. 평생 기세등등했던 강한 종족을, 자신의 남편을, 애인을, 아무튼 가까이서 그녀들을 억압해온 강한 남자를. 


나도 여자다. 내가 연출할 죽음의 패러디를 분류하자면 자살보다는 살인의 가능성이 높다. 그는 언제나 옳았고, 언제나 강했다. 멋모르고 피아노연주의 추상적 음체계에 빠져들려는 순간에는 타인의 체계를 답습하는 무의미성을 강조하여 제동을 걸었다. 지하의 미술실에서 바다그림을 연습하면서도 행복했던 순간에는 구경하지도 않은 바다를 모사한답시고 그것도 덕지덕지 물감을 발라서 바닷물을 더럽히는 맹목을 조롱하여 붓을 놓게 만들었다. 소설책을 읽고 또 읽어 외우다시피 하는 밤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긴 긴 남의 나라 이름들을 외우는 바보천치 같은 짓을 책망했다. 이름이 대수냐고. 실존한 적도 없고 그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태어났을 뿐인 인물들의 이름이 대체 뭐냐고.


그래도 나는 때때로 소설의 인물이 실제 사람들 보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오래 살아? 오래 산다고 착각하는 너 때문이지. 그건 오래 산다기보다는 그냥 환영이야. 살아본 적이 없는 환영.

나: 환영은 무의미한 거야? 왜 내겐 그 환영이 실제로 살았을 많은 사람들보다 더 실제 같을까? 내가 쓰려는 이야기도 실제 같을까, 환영 같을까? 실제 같을 때 오래 사는 걸까, 환영 같을 때 오래 사는 걸까? 내 말은 이야기가…….

그: 넌 아니야. 넌 안 되겠어. 내가 할게. 네 이야기를 내가 쓸게. 약속해, 꼭 쓰겠다고. 아무리 글을 쓸 시간이 없어도.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네 이야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네, 내가 쓰겠어.

나: 왜 그렇게 선선히 봐주려는데?

그: 봐주고 싶어서가 아냐. 넌 안 된다니까. 이거 보아. 여기 네가 써 놓은 글들은 기껏 세 죽음의 양상이 무슨 학습과정처럼 기술되어 있을 뿐이야. 여전히 독후감 수준이네, 안 그래?

나: 정리해 본 거야. 그 다음에 이어서 내가 쓰려고, 네 번째 죽음 이야기를.

그: 아니 수십 년을 두고 싸워도 우린 아직 여기야? 남의 글 읽는 건 그만 하라니까. 네 뜻 가는 대로 글 나오는 대로 네 이야기만 창작하는 거야. 그게 안 되면 그만 두든지. 아이, 애초에 너랑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넌 그냥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넌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것이 암호였다. 우린 상대에게 그 암호를 말하는 순간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다. 암호를 내뱉은 건 내가 아니었다. 여성성은 늘 도태된다. 네 번째 죽음의 패러디도 픽션에서와 같은 패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살인이었다.”


*


남편은 평상시처럼 늦은 저녁을 마치고 귀가한다. 아내가 저녁시간에 집에 없기는 드문 일이라서 의아했지만, 전혀 없는 일도 아니어서 그냥 씻고 쉬고 그러다가 시계를 본다. 메모도 연락도 없이? 한 밤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희한한 일이로군. 별 일이야.


이튿날은 처형에게 전화를 한다. 꺼져있다. 둘이서 어딜 갔을까? 점심이 기운다. 서둘러 아내의 흔적을 뒤진다. 허나 아내의 뒷방문은 닫힌 채다. 쓰다 둔 메모지들, 원고지들 때문이라며, 아내는 외출하려면 늘 방문을 닫아건다. 연락이 된 처형이 흠칫 놀란다. 처형은 풀냄새와 흙냄새를 풍기며 들이 닥친다. 썬 캡에는 낮에 묻은 햇살이 아직 박혀 있다. 경쾌한 바지에 시원한 셔츠 차림이지만 귓불은 도톰한 풀빛 보석으로 묵직하다. 처형은 생각보다 덜 염려하는 표정이다. 얘가 또 병이 도진 거예요? 제부, 애초에 저런 작업을 말렸어야…….


다 저녁이 되어 방문이 안에서 열린다. 아내가 나타난 것이다. 한 5분 전에 방안에 들어갔다는 듯 당당한 표정이다. 왜들 그렇게 봐? 라고 묻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욕실로 간다. 외출해서 돌아왔을 때처럼 욕실로 직행한다. 그 버릇은 예외가 없다. 나설 땐 오히려 준비 시간이 짧지만, 귀가해선 화장실을 오래 쓴다. 한참 만에 말끔해진 얼굴로 소파를 기웃거리고는 곧 부엌으로 향할 태세다.


아내: 여보, 미안해요. 얼마나 잤는지. 언니, 공치다가 왔구나. 배고픈데 뭘 빨리 만들지?

처형: 나 일어서야 해, 이리 좀 와 앉아. 어쩌자고 제부 걱정하게 만들어?

남편: 어디 걱정 정도인가요? 어떻게 꼬박 하루를 게 박혀있어? 뭘 좀 먹기는?

아내: 그냥. 일은 진척이 안 되고, 주말이 되었나 싶고, 실컷 잠 좀 자려던 게. 사실 비몽사몽으로, 그래도 한결 개운해요.

처형: 그래도 그렇지, 방에 틀어박혀 있더라도 알리긴 해야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말없이 사라진 줄 알았지 모두.


*


내가 가끔 완전히 변덕인 것을 동기간의 정으로 언니가 제일 못 참아 한다. 혼란된 나와 그의 싸움을 어렴풋이나마 아는 건 사실 언니뿐이다. 언니는 부엌으로 향하는 내 꽁무니를 따르며 눈을 치켜뜨며 묻는다.


언니: 그런데 너 누구야? 어느 쪽으로 갔느냐구, 그 장난 때문에 내가 다 아슬아슬해 죽겠다. 네 남편 좀 그만 괴롭혀라.

그(나): 남편을 괴롭혀요? 직장 다니고 깔끔하게 의식주 마련하고, 틈틈이 내 일하는 것이 누굴 괴롭히는 건 아니죠.

언니: 아 또 논리 시작이구나. 그럼 그쪽으로 가버린 게야? 너 그럼 제발 그대로 살아. 더는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나도 그쪽이 훨씬 편타. 반듯하고 질서 있고…….

그(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염려마세요.

언니: 왜 염려가 안 돼? 너 보면 뻔해, 네가 어질러 놓은 것. 사람이 방구석에 들어서 그리 지내다니. 종이쪽지들에 벗어던진 옷가지에 슬리퍼는 또 왜 이리 짝으로 굴러. 아무리 너 혼자 쓰는 방이라지만.

그(나): 됐거든요. 그냥 택배 방쯤으로 해 둬. 택배 받은 것, 택배 보낼 것……. 아직 완전히 내 것이 되기 전의 물건들이 쌓여 있는 창고.

언니: 게서 네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노라고 눈물 글썽일 땐 언제고! 택배는 또 무슨 암호야?

그(나): 그게, 물질이란 게 나의 소유라는 것이 좀 애매하죠. 내게 온 선물도 상자를 열어서 내가 나와 관련시킬 때만 내 것이 되죠. 기차가 서울 부산을 아무리 오가도 서울 것도 부산 것도 아니듯이 말이야. 내 밖에 있는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택배처럼 왔다가 갔다가 그러는 것이죠.

언니: 뭐야, 그 궤변들 보니 정말 본업에만 충실하기로 작정한 것이구나. 잘 되었네.

그(나): 아니 뭐. 남아있는 저 작업들은 잘 마무리할 거요. 다음 일은 모르겠어, 저 창고를 저리 놔둘 일이 있을지. 회사일로도 벅찬 시간에, 저기 태반은 불필요한 일들이었고.

언니: 회사라고? (아니, 본업을 회사라고 에둘러 말하는 저 말투. 이 애가 이젠 그 애가 되었구나. 내가 걱정할 필요 없는 오달진 애.) 그래, 사람이 온갖 일을 다 할 순 없지. 너 좀 정신이 개운해진 듯하니, 하루 이틀 잠에 빠져도 좋은 구석이 있네.


뒷방 서랍 속에 갇혀버린 원래의 나는 사람들이 있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언니는 염려와 다르게 당찬 내 현재의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안심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 집을 나서는 언니는 나의 네 번째의 죽음을 서러워해주지도 않습니다. 나이고 싶은 나는 다만 네 번이 아니라 열네 번을 스물네 번을 죽었지만, 언니는 물론 아무도 더는 알지 못합니다.(끝)

 


...................................


작가의 말 (창작노트)


글을 읽고 또 읽다가 겨우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부지중에 대선배 작가들의 글을 훔칩니다. 동서고금 위대한 작가들의 모범은 남성들이 태반입니다. 새내기가 만일 여자라면 더욱더 모범들에서 탈피하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형편없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것이고 싶어서죠. 그러나 오랜 관습의 눈에 비추어지는 자신이 초라해져서, 번번이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의 현란한 모범에 휘둘리고 맙니다. 언어의 구조조차도 합리적이거나 분석적인 가치로 해부된 세상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려는 일은 늘 좌절에 부딪습니다. 작가로 살자면 자칫 여성성을 포기해야할 위기에 듭니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0) 2010.02.25
쪽지 붙였음 - <PEN>  (0) 2009.10.14
콩나물 - <문학저널>  (0) 2007.11.01
조사 - <소설시대>  (0) 2007.06.30
마리아 막달레나 - <월간문학>  (0) 2007.05.30
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08. 5. 8. 02:10

머니날 -  어버이날!

다 커버린 아이(?)들은 제 아이들에게 어버이날 인사를 시킨다.

덕택에 4살4개월 손녀로부터 아마 그 아이의 첫 편지를 받았다.

천재다! 할머니들을 다 그렇게 생각한다?

 

 

'사사로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엽 - 가을의 노래  (0) 2010.11.11
아이들 - 아이들이 오면 천국이 된다!  (0) 2009.07.15
어제 그리고 오늘  (0) 1998.01.31
어린 시절  (0) 1986.01.31
인사  (0) 1985.03.01
Posted by 서용좌
독문학2008. 2. 28. 11:56

                 ∣ 머리말                     ...............................             005

제1장   ∣ 신성로마제국 도이칠란트  .......................             021

제2장   ∣ 저무는 중세                  ..........................            052

제3장   ∣ 각성의 시대                    ........................            104

제4장   ∣ 이상의 시대                    ........................            161

제5장   ∣ 도이칠란트연방            ...........................            234

제6장   ∣ 도이칠란트제국           ............................            287

제7장   ∣ 바이마르공화국           ............................            414

제8장   ∣ 제3제국-망명의 시대     .........................            468

제9장   ∣ 전후 도이칠란트           ............................           521

제10장 ∣ 도이칠란트민주공화국    ...........................           571

제11장 ∣ 도이칠란트연방공화국    ..........................            663

제12장 ∣ 통일 도이칠란트            ...........................           846

           ∣ 맺 는 말                       ..........................           980

           ∣ 참고문헌                     ...........................           984

           ∣ 주   석                         ..........................          1014

           ∣ 찾아보기                     ............................         1166



 

표지의 글


“세상에서 가장 울림이 그득한 언어는 도이치


“독서는 다른 낯선 두뇌를 가지고서 생각하는 것”이라 했던 보르헤스는 특별히 도이치를 예찬했다. “세상에서 가장 울림이 그득한 언어는 도이치”라고 해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도이치문학은 유럽의 문학이자 세계문학의 흐름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왔다. 르네상스, 각성의 시대, 이상의 시대를 지나 근대성을 획득하는 동안 꿈을 통한 예시로서 “다른 상황”, 즉 상상력에 의해 제안된 세계를 창출해왔다. 그러면 도이치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기록하는가?                                           - 머리말 중에서

.........................................................................................

 

8세기에 있었던 그리스도교화 이전에 도이치권에서 게르만 작가들이 있었던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은 360년 서고트의 불필라주교가 성경을 게르만어로 번역한 일, 9세기경에 풀다의 수도사가 썼을 『메르제부르크 주문』이나 작자 미상의 『니벨룽의 노래』에서부터 천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의 작품들을 가능하면 많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인류의 영원한 미궁이라 할 괴테의 『파우스트』 등 무궁한 걸작들을 거쳐, 2006년 세계를 놀라게 한 “고백”이 들어있는 그라스의 자전적 소설 『양파껍질 벗기기』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 작품들을 다시 천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가 기억하게 될 것인지는 예감도 못하는 채로.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7. 12. 1. 01:55

 

멍난 옷

                                            내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2007 (이화에세이)

 

 

구멍이, 저기 이 옷에 구멍이 나버려서……


저물녘에 세탁소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초인종을 누르고서 어물거린다. 예고 없이 오가지 않는 것이 수년 간 이 세탁소와의 자연스런 일상인 터라 의아했다. 손에는 종이 가방을 꼬옥 움켜쥐고 있다. 부뚜막에는 국이 얹어져 있어서 나는 조금 성가셨다. 더듬거리는 말로는 옷에 아예 구멍이 나서 못쓰게 되었다는 말이고, 그 때서야 꺼낸 옷은 내 하얀 블라우스다.


그제야 감이 잡히면서 난감해졌다. 와이셔츠나 블라우스 정도는 세탁소에 보내지 않은 내가 하필 처음 보는 천이라서 드라이를 맡겼던 옷이다. 면섬유인줄 알고 샀는데, 그것도 상황 때문에 어쩌다 ‘비싼’ 옷 집에서 구입한 것인데, 잘 보니 순면이 아니라 뭔가가 코팅되어 재킷 대용으로도 될까 싶은, 아무튼 얼른 보아도 복잡한 천이라서 자신이 없어 세탁소에 보낸 것이다.


여자는 계속 중얼거렸다. 다른 집 와이셔츠들 다리고 나서 같은 것인 줄 알고 다리렸는데, 다리미 대자마자 눌어가지고 그만. 보니까 새 옷 같아서…… 대신 사보려고…… 그래서 텍에 붙은 전화번호를 돌렸는데. 그런데 폐업이라니까……


처음 빨아야 했던 블라우스가 어찌하여 폐업이 된 상표인가의 내력은 좀 그렇다. 단벌을 샀기 때문에 적당히 맞춰 입기도 그랬고, 또 일터에 나다니는 경우엔 모양만 갖춘 단출한 옷들을 입기 때문에 구입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선뜻 입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몇 년 사이 폐업이라니 의아했지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었다. 올 봄에는 아예 누렇게 헌 옷이 되는가 싶어서 몇 번 살짝 입은 것이다.


눋다 못해 구멍이 뻥 뚫려버린 옷을 받아들고 보니 짜증이 난다. 그러기에 과하게 비싼 옷은 내 것이 아니로구나! 부엌 쪽에서는 국물 냄새가 진동한다. 끓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럼 불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가만, 교양 있게 굴자. 이까짓 블라우스 하나가 뭔가. 나에게나 비싼 옷이지, 남편의 와이셔츠들을 줄줄이 세탁소에 보내는 여자들의 옷들에 견주면 이게 대술까. 기껏 블라우스는 블라우스지. 진정하자, 진정 해. 20년 넘게 살아온 아파트에서 이깟 일로 속보이면 되나…….


제가 지금 얼떨떨하네요. 일단 주세요, 주고 가세요. 불에 뭘 얹어 놓았고…… 좀 생각해볼게요.


다른 것으로 사시기라도 하라고……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요. 뭘 어쩌겠어요. 일단 주고 가시라니까요.


빼앗다시피 옷을 들여오고 여자를 내몰았지만 마음은 양편으로 무겁다.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비싼 블라우스를 망친 내가 밉고, 저자세로 굽실거리는 여자가 밉다. 국은 벌써 끓어 넘치고 있다. 넘친다, 넘친다…… 그때 생각이 났다. 내 그릇에 넘치는 복은 됫박을 넘치면 굴러버리는 콩되모양 넘치게 마련이다. 이건 내 옷이 아니다. 저 여자는 하필 나 때문에 저자세가 되었다. 평생 해온 세탁 보조가 느닷없이 엉뚱한 실수를 한 건 보조 탓이 아니라 옷 주인 탓이다. 그러다 짜증이 일면 또 다른 이유를 댄다. 그런 것 때문에 옹졸함을 보인다면 자신이 짜잔해져서 안 된다. 애써 좋은 마음으로 생각하려니 그런대로 별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세탁소여자의 처지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운명에서 궂은 역할을 내가 아니라 그 여자가 맡아 간 것이다.


*


엄마, 제가 꼭 S.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우리나라 누군가 한 사람은 S.대학에 못 가게 되는 거네요! 큰 아이가 중 3 적에 했던 말이다. ― 아니 뭐, 숫자로 따지면 그렇기는 하다만, 그럼 넌 그 다른 한 사람을 위해서 S.대학을 갈 수 있어도 포기해야 된다 그 말? ― 아니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 너 그렇게 이타적인 건 좋다만, 매사를 그렇게 살자면 무진장 힘이 들게다. ― 엄마, 그게요, 이 세상에 전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을 드물걸요. 이타적 행동으로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이기적인 셈이지요 뭐.


기술시간의 숙제라나? 나무판자로 작은 책꽂이를 완성해 가는 숙제를 하느라 페이퍼 질에 팔려있던 아이는 대충 해가라는 이 어미의 말에 웃음기를 띠고 정색했다. 누가 알아요, 또 목수를 해먹고 살아야 될지도 모르니 미리 잘 배워둬야지요! 그것은 아이의 상투어였다. 누가 알아요, 또 양복장이를 해야 될지도 모르니 가위질도 잘 해야지요! 누가 알아요, 또……


아이들은 대강 물렁하게 자랐다. 남을 때리고 들어오면 나쁜 사람이고, 남에게 얻어맞고 오면 바보다! 나쁜 사람과 바보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형제간이라고 다툴 수도 없었겠다. 그래 겉보기엔 별 탈 없이 자랐다. 속으론 그렇게 한 말을 지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그런 걸 꼭 마음에 담아두어서라기 보다는 천성이 좀 무를 것이다. 해서 특별히 똑똑하게 자라진 못했지만, 이기적, 투쟁적으로 자라진 않았다. 어미인 내가 늙어간다고 자제심을 잃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 애들 보기 민망할 일이다.


*


세탁소 아주머니의 당황함에 빨리 면죄부를 주지 못하고 덩달아 곤혹스러워했던 몇 분간이 부끄러워진다. 서둘러 싱크대 아래 여닫이문을 열어본다. 거기 과일가게 전화 옆에 세탁소 전화 스티커가 붙어있다. 저 201홉니다. 지금 막……. ― 아 예……. 저쪽은 말을 잇지 못한다. 뭔가 호령을 기다리는 듯 숨마저 죽인다. 저, 그 옷 일 잊어버리시라고요. 생각 말고 편안히 주무세요. 그냥 걱정 마시라고요. ― 그래도 …….


아예 말을 잇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되풀이해서 걱정 말라고 말하고 나니까 내 맘이 비로소 편했다. 그런 일은 십여 분을 애탈 일이 아니다. 집에 처음 왔을 때 선뜻 걱정 말라 말하지 못한 내가 옹졸했다. 배웠다는 여자가 치졸했다. 다음 세상에 세탁소여자로 태어나서 다림질을 잘 못해서 누군가의 문간에서 고개를 숙이는 벌을 받을 일이다.


사실 누구라도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내 경우엔 이제 몇 번 입지 않은 새 옷은 오래 입어 내게 친숙한 그저 그런 옷보다 오히려 덜 아깝다. 작은 장신구 하나라도, 장신구라면 거창하지만, 실오라기로 짠 팔찌가 내게 소중한 만큼 진주귀걸이가 귀하지는 않다. 둘 다 각각 여행 기념으로 샀던 소품이긴 하지만, 특히 실오라기 팔찌는 해변의 포장집에서 산 싸구려 중에 싸구려다. 하지만 그 짙푸른 바닷물을 기억하며, 소금기 젖은 손과 입으로 ‘겨자’가 영어로 생각이 나질 않아서 순간 ‘섬씽 옐로’를 달라고 해서 핫도그를 사먹던 일을 추억한다. 나중에 특급호텔의 비치로비에서 마신 알 수 없는 음료와는 또 다른 맛을. 바가지나 쓰는 관광객이 아니라는 자존심과 굳이 핫도그를 들고 청승을 떠는 합리성의 속내에 대한 한심을.  


멀쩡한 블라우스가 못쓰게 되었지만 미련은 없다. 아무런 추억하나 없는 헝겊의 모임. 내가 좋아하는 연한 청록색의 한 줄 장식이 조금 아깝기는 하다. 소매 부분에 구멍이 났다면 반팔로 자르기라도 하지 싶다. 하지만 등 한 쪽이 아기 손 크기만큼이나 눌어붙고 아예 손바닥만큼은 구멍이니, 이제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좋은 기회가 온 것 같다. 너절한 옷걸이들이나 삼층장 속을 뒤져서 쓰레기들을 분류해 낼 일이다.


고등학교 때 가정과 선생님 한 분이 3년 째 입지 않는 옷은 죄다 버리라고 하셨다. 20년 넘게 같은 곳에서 사는 나는 이사 때면 저절로 살림이 정리되는 기회도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데이트 때 받은 스카프, 청혼 무렵 받은 머플러, 출장 다녀올 때 선물해준 핸드백들…… 30년에 몇 번 썼을까 말까 하는 소품들을 그냥 넣어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선물한 것들은 더욱 못 버린다. 유치원 때 만들어준 목걸이, 처음으로 접어준 여러 마리 종이학, 머리핀 세트, 손수건, 향수…… 손수건은 잃어버릴까 쓰지도 않고 보관하고, 향수는 빈 병이 되어도 포장지까지 간직한다. 합리적인 눈으로 보자면 포장지 정도는 이제는 버려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이들이란 성장하여 갈수록 (정신적으로도)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록 ― 내가 꼭 그랬으니까 ―, 작은 추억거리는 눈물겹게 귀하다. 이제는 여기저기 쌓이는 사진들까지, 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내게는 그렇게나 소중한 것들로 넘친다. 어떤 우아한 옷을, 훌륭한 장신구를 걸쳐도 더 이상은 멋이 나올 수 없는 몸에게 이제 어떤 물건도 소중치 않다. 몸을 위한 물건들보다는 맘을 위한 추억들이 귀하다. 구멍 난 옷을 버려야 하듯이, 옷가지들 등속은 좀 솎아 내야겠다. 물건들이 비워진 자리에 더 소중한 추억들이 들어올 수 있게시리. 길어 내도 길어 내도 줄지 않는 샘물처럼.

'수필-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자 도시 - 개성 방문기  (0) 2009.03.28
눈이 있었던 것  (0) 2008.11.20
내적 자유  (0) 2006.12.03
움직이는 긴 그림자 - <문학공간>  (0) 2006.09.20
내 딸의 어머니  (0) 2005.11.03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11. 1. 23:30
나물


 문학저널 2007

 

맛있겠다, 정말. 

뿌리도 채 덜 다듬어서 아무렇게나 무쳐낸 콩나물 그릇으로 젓가락을 길게 내뻗으며 은미가 말했었다. 나도 덩달아 콩나물 가닥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이 깔깔대고 웃었을 때야, 나는 은미가 순 장난으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맛있다는 콩나물무침 쪽으로 몰릴 때, 혼자서 진짜 맛있는 것을 먹는 수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제일 하찮은 것이 콩나물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정말 그늘에 큰 콩나물이란 별명처럼 콩나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콩나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맛을 좋아할 뿐이다. 맛있는 것, 맛없는 것의 차이를 배울 나이에 나는 귀한 것과 귀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가치를 혼동하게 된 것 같다. 많은 식구들이 좋아하지만 아끼는 음식접시가 할머니의 손을 거쳐 내 앞쪽으로 오면, 나는 그만 맛을 잃었다. 다져 구워서 다시 간장에 졸인 소고기처럼 진한 맛이나, 고기완자가 들어있는 버섯볶음 같은 기름진 것들은 왜곡된 애정의 표시이자 내게는 독이 되었다. 나는 비뚤게도 아무 것도 아닌 맛을 좋아할 의무를 느꼈다. 어린 시절의 의무는 습관이 되어 굳어버리나 보다. 사람들이 맛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내게는 맛이 없는 것이고, 사람들이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내게는 맛있는 것이다.

그래서 은미가 콩나물을 맛있다고 할 때 나는 동지를 만난 줄 알았다. 물론 그 장난기에 다들 깔깔대며 손을 놓고 주 메뉴를 기다렸다. 모처럼 섬진강변 나들이이다 보니, 둥근 그릇 속에서도 여전히 펄펄 뛰고 있는 은어쌈과 은어튀김이었다. 은미는 유난히도 펄펄 날며 날은어를 삼켰다. 난 정말 콩나물만 먹었다. 튀김은 먹을 것 같았지만 옆에서 퍼덕거리고 있는 날은어의 시체만 같아서 그것도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은미는 동지이기에는 사실 사뭇 달랐다. 우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여고 시절에는 - 아마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를 다녔겠지만 특별한 사건으로 부각되지 않는 한 어찌 동창들을 다 알고 지낸단 말인가 - 그 시절에는 은미가 단연 압권이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훔쳐보고서 곧 바로 흉을 낸다는 춤 솜씨. 원래부터 존 트라볼타의 엉덩이 같이 튀어나온 톡 튕기는 뒷모습과 그에 어울리는 발걸음은 바람소리를 일으켰다. 가발을 쓰고 디스코텍에 출입한다는 뜬소문에 놀랐던 우리들은 은미가 회장인지 이사장인지의 고명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때 아버지들은 잘해야 회사원 아니면 가게나 농업에 종사했으니까.

우리가 정말 놀란 것은 은미가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였다. 웬만큼 아파도 입원 같은 것은 드물던 시절이었다. 자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 땐 지금처럼 무감각한 세상이 아니었기에, 우리들은 감히 앞 음절은 발음도 하지 못하고 “미수래, 미수”라고만 입소문을 옮겼다. 병원에 입원한다는 그것만으로도 대 사건이었던 때였으니. “미수”의 원인을 두고서 (헛)소문은 바오밥나무처럼 부풀어만 갔다.

바오밥?

그래. 실제로 높이는 20미터도 넘고, 가지의 길이가 10미터도 넘는대. 구멍을 뚫으면 사람이 살 수도 있다니까.

지금 생물 시간이야?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말이지. 교회만큼 큰 바오밥나무는 별을 다 덮어버리고, 장미나무가 자랄 자리를 안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게 암적 존재라는 거지. 거대한 자본 같은 것. 지구의 외면을 깔아뭉개는 자본이 결국 지구의 내부까지도 좀 먹겠지. 환경 파괴로.

저애, 뭐야. 너도 그런 것 학습한거야? 야학에 다녀? 거대한 자본이 어때서. 난 기어코 열대를 구경하고 말거야. 거대한 바오밥나무의 숲, 거대한 풍요……


평소에 바오밥나무를 입에 걸고 다닌 것은 정작 은미였었다. 열대여행이라니, 특별한 집의 특별한 아버지들 말고는 그 당시에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감히 여자애 주제에 열대여행이라고? 말을 잘 섞지 못하는 나는 속으로만 은미를 비웃었다. 비웃으면서도,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부러울 것이란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부러웠다고 해야 정직하다. 나는 여행은커녕 움직임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움직임 속에는 은미의 걸음걸이며 그에 걸맞은 디스코라고 하는 춤도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몸치의 눈으로 은미를 관찰하는 것은 미움이자 경이였다.

아무튼 나는 병문안 친구들 틈에 끼어 가게 되었다. 우선 예쁜 과일과 통조림이 섞이어 담긴 바구니를 사서, 서로를 앞세우며 들어간 병실. 은미는 ‘슈미즈 차림으로’ 벌떡 일어났다. 지금처럼 환자복이었으면 더 놀랐을지, 그건 모른다. 우리는 학생 티가 아닌 ‘새색시’ 같은 야한 차림에 놀라고, 그것이 부잣집이나 아무튼 앞서 나가는 집의 여름 잠옷이라고 아는 대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하얀 속옷 위로 드러난 살빛은 얼굴처럼 가무잡잡했다. 그래서 이빨만 허연 얼굴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어쩌다 이러니. 왜 병이 난거야.

응 뭐, 유전이지. 울 엄마 일찍 돌아가셨잖냐.

어머니가 무슨 병인지를 오래 앓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초등학교부터 함께 다닌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집은 커도 침침하고, 그 애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했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계속 하거나 울거나 할까봐서. 다행하게도 은미는 침대에 앉은 채 몸을 흔들며 말했다. 난 좀 달라, 시집을 안갈 거니까.

시집을 안 가면 어머니와 다르다? 맞는 말일 성싶기도 했다. 어머니가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다 거친 뒤에 무슨 병인지 발병했다면. 그렇지만 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는 말은 3대 거짓말이라던 걸. 그 말도 나는 삼켰다. 애매한 미소만 흘렸다. 말을 내뱉기에 언제나 알맞은 시점을 놓치기 때문이다. 기껏 생각해서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어느새 화제는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가 있다. 그러니 뚱딴지 소리를 듣게 되거나 힐난의 눈빛을 받지 않으려면 함구다. 그냥 알지도 모르지도 않는 듯한 미소가 쉽다. 평판도 따라오니까 일석이조다.

넌 한상 열대지방을 여행하고 싶댔잖아, 바오밥나무 무성한. 그 힘으로 가겠어? 어서 나아.

그래. 우선 졸업을 해야지. 외국어대학에 진학할 거야. 여행을 하려면 외국어가 필수지.

은미, 또 너 말을 앞세워!? 다른 친구들이 놀렸다.

꿈은 자유야. 꿈이 있어야 실현이 되고 말고 하지. 난 적어도 서너 개 외국어를 마음대로 구사하며 세계 곳곳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삶을 살 거야. 정 안되면 스튜어디스가 있잖아! 키 되지, 이거 - 두 손을 펴서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똑똑히 보았다. - 되지! 아아, 날고 싶어.


그런 뒤 곧 우리는 명색 고3이 되었고, 그 나름대로 입시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정작 대학에 진학했던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급우들이 대학을 포기했는지, 그것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서울의’ 대학생활에 젖어들기에 어리둥절했다. 첫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 기차역에 내린 순간에야, 그 특권의 표시가 부끄러워 예컨대 배지나 가방 등에서 무슨 표지물들을 떼어내 감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 대학 친구들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아니 대학에 별 마음을 두지 않았다.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포기했었던 부모님을 위안해드려야 한다면, 졸업은 잘 할 계획이었다. 그 나머지는 대학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다보니 같은 서울의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은미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통틀어 향우회 등이 있었겠지만, 내가 잘 안 나갔거나, 참석했더라도 구석 참이었던 내게 별 기억이 없던가 그랬다. 은미가 정말로 스와힐리어 - 이름도 외우기 힘든 어느 아프리카 언어를 공부한다는 사실에 우린 차라리 웃었다. 그 실력이면 영어과를 가고도 남았을 앤데, 정말 『어린왕자』를 읽고 바오밥나무를 보러 가겠다는 그건 치기였을까. 대충해도 있는 집 아이들의 사치나 기껏해야 응석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문이 밀려 다녔는지 모른다. 긴 겨울이 끝난 뒤엔 더했다. 한 번은 은미가 봄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는데, 그것이 휴학을 하고서 “남자 집에서” 쉰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로 되어 떠다녔다.

입소문의 상대는 시골에선 제법 내노라하는 집안이었다. 큰 먹칠의 과거로 실제보다 더 유명했는지도 모른다. 사건사고를 잘 기억하는 사람들은 딸의 비극적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긴 했더란다. 반도 남단 하잘 것 없는 해수욕장에 지금 같은 인파도 아닌 한가한 때, 땡볕의 낮 시간. 총성과 함께 쓰러진 남녀. 누구는 쓰러진 사람이 셋이라고도 했다. 누구는 그냥 다같이 바다로 떠내려갔다고도 했다. 신문보도도 간결하고, 말하거나 듣는 사람들도 스스로 쉬쉬한 일. 믿기 어려운. 믿고 싶지 않은. 괜히 부풀려진?

아무튼 그 집안의 외아들은, 죽은 누이도 미인박명이라 했었지만, 정말 미남이었다고 했다. 그는 위 아래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는데, 당당한 은미에게로 일단락이 되는가 싶었더란다. 그러던 차에 그 민망한 소문이 돌았다.

아서라, 세상에 그런 일이!

아니야, 그 애 엄마가 안 계시잖아.

그 애 엄마 돌아가신 것하고 이게 무슨 상관인데?

뭘 몰라요. 여대생이 갑작스레 휴학하고 몸을 추스르는 것이 뭔데? 누가 들을까 싶은 말이다 뭐.

그럼 왜 떠벌이는데?

떠벌이긴. 그게 정말……

소설 쓰지 마라 느들.

소설은 은미가 스스로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런 해괴한 소문의 실제 주인공은 다른 선배인가 후배이고, 은미는 다시 그 “미수”를 저질렀다고도 했다. 실연의 고통 때문이라고도, 떠난 남자를 위협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아니, 복수의 방법이랬다. 글쎄. 이 모두를 나는 직접은 들은 적이 없어서 어느 것도 다 소설만 같았다. 상상이 잘 안되는 일들을 왜 소설이라 했을까? 지어낸 이야기라는 뜻이었겠지만, 세상에 지어낼 것이 없어서 처녀가 총각 집에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지어낼까? 요즘 같으면 악플로 사람을 죽음에까지 몰고 간다니 그렇다지만, 그 옛날엔 그리들 심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눈사람 붓듯 불어난 이야기 정도였을 것이다. 구를 때마다 엄청나게 커져버리는데, 처음 알갱이는 아예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어쨌거나 휴학으로 인해 은미는 우리보다 일 년 늦게 졸업을 했다. 그리고 곧 은행에 취직했다는 소식이었다. 은행은 은미완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동색조합으로도, 보색관계로도, 어떤 식으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얼음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 대학 시절 학과별 합창 경연에서 우리가 슈베르트의 <숭어>를 연습하는 동안 갑자기 은미가 떠올랐던 때가 있었다. 숭어는 도약력이 뛰어나 수면 위 매우 높은 곳까지 뛰어오른다. 뛰어오를 때에는 꼬리로 수면을 치면 거의 수직으로 뛰어오르며 내려올 때는 몸을 한 번 돌려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진다는 날쌘 물고기다. 공으로 말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다. 이 곡의 경쾌한 멜로디와는 달리 노랫말은 권력자와 음모에 대한 아린 비판을 담고 있다. “얼음 같은 강물에 뛰노는” 이 날쌘 숭어를 낚시꾼이 영 낚을 길이 없자, 꾀를 내어 물을 흐리게 해서 낚아 올린다는 내용이다. 숭어는 주로 연안에 서식하다가 강물에도 들어간다지만, 이렇게 흙탕물이 된 강물에서 잡힌 숭어가 안쓰럽기만 했다. 우린 합창연습을 했던 4월 5월 내내 이 숭어를 불쌍타 하면서도, 일단 노래를 하게 되면 화음에 고개를 맞추며 즐거워했다. 나도 가끔 은미의 경쾌한 발걸음을 떠올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니까 은미가 제복을 입은 직장인이라는 영상은 아무래도 어색했다. 똑같은 디자인의 제복에 갇혀서, 그 톡톡 튀는 엉덩이를 의자에 죽치고 앉아 돈을 세고 있을 장면이 떠오르자, 퍼뜩 강물에 밀려올라와 파닥이는 숭어 생각이 떠올랐다.

그 펄펄 나는 애가 은행에? 그것도 좁디좁은 고향에서?

왜, 은행이 어때서? 미모도 한 몫 했겠지만, 집안도 한 몫 했겠지.

그래, 직장 내에서도 사람들 다 휘어잡고 웃기고 그럴까? 유머 하나는……

여자애들에겐 대학을 졸업하고도 교사 아니면 별로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던 때라서, 더러는 은미를 부러워했다. 은행원들은 보통 소심하고 단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은미는 이런 저런 내기로 남자직원들을 골탕 먹이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마침 친구의 친구가 같은 은행에 다니게 되어서였다. 그러다가 서로 전근이 되었던지 잠시 소식이 끊겼다. 다들 결혼으로 갑자기 연락이 안 되거나, 심심찮게는 이민으로 소식이 아예 없어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은미의 결혼소식이 뒤늦게 날아왔다. 그냥 결혼을? 미모에 매력덩이 여행원에게 어떤 고객이 반하기라도 했담? 그러나 신랑은 서울의 어느 지점에서 동료 행원으로 만난, 너무도 평범한 상대였다. 뭔가 우리 보통 아이들에게 특별한 연애를, 특별한 인생을 보여줄 듯했던 은미의 수월한 결혼에 우리는 괜히 허탈했다. 평소에 은미의 기발한 행각에 실었던 우리의 일탈의 소망이 함께 사라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워낙 근엄하시니 별 수가 있었겠나, 그 정도로 이해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물며 신랑이 얼마나 근검절약형 행원인지, 그것도 뉴스거리였다. 사보에 싣는 토막글도 오직 원고료 때문에 쓴다는 위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비상한 머리에 통이 대통인, 재즈와 디스코의 여왕이자 유머의 고수가 푼돈에 쓰기 싫은 글을 쓰는 자린고비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단하고 미래를 걸 수 있을 남편감일지 모르나, 은미에겐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당시엔 여행원은 결혼과 동시에 퇴직이었다. 이제 은미가 시할머니 층층에서 시집살이를 한다? 해방의 선두주자를 놓친 우리들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그 신랑을 존경어린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인물이면 은미를 들여앉혀서 살림을 하게 하나, 것도 시집살이를?


우리들 중에 시집살이로선 가장 마지막 후보였던 은미가 소도시의 한옥지구에서 시커먼 가마솥에 물을 끓여 시할머니 목욕을 시키고, 밥상은 시할머니 따로 시아버지 따로 시어머니 따로, 그리고 나서야 아이들끼리.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다 한두 번 은미가 고향에 다니러 오면 급조한 동창모임에서, 콩나물무침에 젓가락을 쑤셔대며 우리를 놀리던 그런 자리에서, 드문드문 은미의 생활상이 내뱉어 나왔다. 몇 친구들이 펄펄 뛰는 은어를 어렵게 상추에 몰아넣으며 식당에서의 상추가 위생이 어쩌고 하던 때였다.

상추? 난 집에서도 다 안 씻어. 그걸 언제 다 씻냐고. 어른들 밥상엔 대충 해서 올리고, 아이들 줄 것만 제대로 씻는다니까.

상추를 다 안 씻어? 아니 너……

어때. 너희도 식당에서 그냥 잘들 먹잖아. 한 끼에 밥상이 몇 갠데, 그것 다하고 언제 우리 방에 들어가. 애들하곤 놀아야 하는데.

놀아?

그래. 문 닫아 걸고, 아이들 하고 디스코 추지 뭐. 갓 투비 데어…… 패러독스!

난데없이 패러독스는! 아무튼 너 몸매 하나 잘 가꾼 거구나. 얘 날은어 삼키며 파닥거리는 것 좀 보라니깐. 여전히 애들 똑 같네! 우린 모두 ‘배둘레햄’이야. 봐, 이 뱃살을 어쩌냐. 넌 우리 몇째 동생 같구나. 얘 또 이 옷 입는 것 좀 봐!

옷차림은. 총대처럼 붙은 청바지에 총대같이 붙은 청조끼라니. 그것도 아무리 보아도 작아질 대로 작아진, 아무리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고 또 날씬해 보이려고 꼭 끼게 입는다 해도 그건 아니었다. 이 옷차림은 그나마 골목 어귀의 구멍가게 주인여자에게 보관했다가 살짝 몰래 입는 것이랬다. 집에서나 보통 시장 출입 때에는 ‘월남치마’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회장인가 이사장집 외동딸로, 반장, 부반장 뭐든 다 하고서, 뭐든지 입고, 누가 보든지 엉덩이를 제 마음대로 흔들고 다녔던 은미가. 우수한 인간의 뛰어난 적응력일까?


결국 은미 같은 날렵한 튀는 자태에서 왜소한 처량한 몰골로의 변화란 십년 남짓으로 족했다. 불쑥 나타나서 여전히 기발한 유머를 날릴 법한 은미의 표정이 점점 서늘해갔다. 우리들이 점점 덜 웃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세상에 코미디 프로가 퍼진 탓이었나? 우리들의 재미가 달라졌을까? 우리는 무엇을 향해 살았을까?

어쩌다 나타나도 항상 은미가 중앙무대의 상석을 휘어잡던 분위기가 언제부터인가 차츰 달라져 갔다. 아니 역전되었다. 말에 힘을 싣는 쪽은 새 귀족이었다. 혈통(?)귀족 대신 나타난 새 귀족. 그들은 아무래도 냄새를 풍겼지만 막강한 실세였다. 향수와 돈 냄새의 묘한 뒤범벅이었지만, 누구도 조금 고약한 그 냄새를 그리 탓하지 않았다. 우선 넉넉하고, 또 편했으니까. 가끔 새 귀족이 양반자리까지 넘보고 교양의 고지마저 점거하려들면 조금 마찰이 있긴 했다.

아니 와인 잔을 그렇게 들면 어떻게 하니. 여기 손잡이를 이렇게 들어야지! 다 마시는 법이……

우리가 움찔하면서 손을 고쳐 잡으려고 하면, 한 괴팍한 친구가 태클을 건다.

어디를 잡으면 어떻고. 내 잔 내 맘대로 들지 뭐. 서양 술 얼마나 마신다고 법석이야. 따지자면 와이트는 그래. 하지만 레드는 특별히 차갑게 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래도 되는 것 아냐?

이도 저도 모르는 우리들은 머쓱해도 좋지만, 은미가 쥐죽은 듯해서 맘에 걸렸다. 이젠 은미가 확실히 마이크를 뺏겼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러고는 정말 더 멀어갔다. 그래도 일단 은미네가 다시 서울로 전근을 간 남편을 따라 분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는 괜히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제 삶에 부대끼면서 동창의 삶쯤은 잊어갔다.

일찍 결혼 한 친구들은 벌써 아이들의 입시에 들어갔고, 그러자 우리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대입’이었다. 매일이다 싶게 차 마시며 오가는 같은 아파트 이웃들도 ‘자녀들의’ 학교에 관해서는 서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대화 자체가 멎었다. 잦은 이사들로 이웃이 자꾸 바뀐 때문이기도 했다. 동기 친구들도 신축 아파트 따라 이사하는 속도가 다르다 보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800미터 달리기 할 때 속도가 한참 달라서 누가 세 바퀴째인지 네 바퀴째인지 구별이 되지 않던 때처럼, 누가 어디쯤 서 있는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서로 모르게 되었다. 수준 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급격했다. 점심은 백배, 시계는 천배로 갈라졌다. 누군가의 연봉을 한 번에 통째로 입고 두르고 있는 명품 친구 앞에서, 은미의 여전히 총대 같은 청바지는 날씬한 몸매와 상관없이 초라했다. 이제는 민물고기같이 잽싼 몸놀림보다는 약간의 나른한 굼뜬 동작에 화려한 장신구가 더해지면 그대로 우아미를 발산했다. 어떻게 가꾼 것인지, 충분한 영양 탓인지, 피부들도 엄청 차이가 났다. 볼이 톡톡 튀던 은미의 표피는 앙상한 싸구려 파운데이션으로 뒤범벅되어 있었고, 속까지 비치는 부들부들한 살결들 사이에서 아무래도 이물질 같았다.

은미 너! 몸매 하난 여전히 끝내 준다만 웬 파운데이션을 그리 발랐어! 논바닥처럼 갈라지네, 너무 두껍게 발라놓으니 말야.

아닌데, 나 파운데이션 많이 안 발라, 진짜 아껴. 여기 봐, 이마 쪽은 안 발라, 안 보이잖아. 그리고 볼도……

놀라워라. 단발처럼 눈썹까지 내린 앞머리를 걷어 올리니 정말로 위아래가 다른 이마가 나타났다. 우리들은 깔깔 웃었다. 못 말린다, 못 말려.


여고 때에도 이런저런 기발한 착상과 뉴스들로 우리를 웃기고 놀리던 은미였다.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뉴스들을 퍼왔었을까? 아무래도 덩치 크고 잘 나가던 오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갓 투비 데어, 갓 투비 데어, 인 더 모닝 웬 쉬 새즈 헬로 투 더 월드 / 갓 투비 데어, 갓 투비 데어, 빙 허 굿 타임즈 앤 쇼우 허 댓 쉬즈 마이 거얼 / 오 왓 어 필링 데얼 비 더 모우먼트 아 노우 쉬 럽스 미 / 코즈 웬 아 루크 인 허 아이즈 아 리얼라이즈 아 니드 ……

잘 들어야 겨우 알아들을 노래와 함께 문워크래나 뭐래나 뒤로 걷는 춤은 일품이었다. 독특한 것은 우리가 “아이”라고 발음해야한다고 믿는 것을 꼭 “아”로만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누구도 미국사람의 발음을 제대로 아는 일이 없었으니, 잘 나가는 은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은미는 학교도 가끔 불신했고, 특히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란 “콩글리쉬”라고 우겼다. 그것도 우리가 덩달아 “콩그리쉬”라고 하면, “콩글리쉬”라고 다잡았다.

페임 / 암 고나 리브 포레버 / 암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암 고나 메이크 잇 투 헤븐 / 라잇 업 더 스카이 라이크 어……

결혼들을 하고도 한 참 뒤였을까. 큰 동창회 행사에서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신곡’으로 혼자 목청을 뽑을 때에도 우리가 “아이”라고 발음해야한다고 믿는 것을 꼭 “아”로만 발음하는 건 여전했다. 알라뷰! - 요란한 박수소리에 깜짝 응답으로 손을 쳐들고 무대에서 뛰어내려오던 모습은 숭어든 망둥이든 이름 하여간에 펄펄 나는 물고기였다.


천천히 그러나 어느새 세월이 갔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아예 잊혀갔다. 이웃에 살아도 서로 다치지 않고서 말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점점 서로 말 주고받음 없이 제 이야기만 하는 텔레비전에 익숙해갔다.

코미디. 난 코미디 프로를 가장 슬퍼한다. 그래서 싫다. 슬픈 영화는 괜찮지만 코미디가 슬픈 건 참지 못한다. 내가 틀리는 지도 모른다, 코미디가 우습지 않고 슬프다고 말하면.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우습다고 말하는 코미디가 제일 슬프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정말로 웃게 되고, 웃으면 그때마다 젊어진다고 해도 싫다. 나는 코미디를 보면 슬프고, 슬프기 때문에 더 늙을 것이다.

시트콤. 그것도 아니다. 단편집을 읽을 때처럼 지속적인 줄거리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웃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 방해가 된다. 무엇보다 웃음은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고, 관객이 따로 있고, 그 다음에 내가 그것들을 함께 보는 상황이 정리가 잘 안되는 것이다.

딱히 일정한 취향은 없었지만, 연속극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그 다음 장면 그 다음 발전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밉살스럽게 꼭 궁금증을 유발할 때쯤에 끝을 내고 다음 시간으로 넘기는 수작에 성가시지만, 가능하면 다음 시간에 눈을 대게 되었다.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이야기”에 정신을 판다고, 유익할 것이라곤 조금도 없는 프로나 기다린다는 식의 남편의 시선엔 익숙해졌다. 그가 보는 뉴스는 인생에 도움을 주는가? 하긴 날씨는 하루 일을 조금 편케 해줄지 모른다. 교양강좌 시간? 더 이상의 교양과 지식이라 해도 내 인생을 바꿀 리 없다. 업그레이드? 무엇을 향해서? 나는 그저 드라마라고 하는 남의 인생살이 모형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살아가는가, 살아 갈 가능성이 있는가 따라갈 뿐이다. 이웃이 있는 느낌이고,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착각에 든다. 나는 그냥 “어떤 다른”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이웃의 그렇게 서러운 더러는 힘든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기분에 빠지려는 것이다. 그러면 서러워지지 않고 진지해진다. 감정이입이라고, 어렵게는 그리 말한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여자인 내가, 드라마 속의 남자에게도 그런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자: 어머니가 나를 버렸다. 어머니가 버린 딸 -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서 죽고 싶다.

남자: 너 살아 있는 것이 내 의미야. 이렇게 고운 네가 자학에 빠지다니. 내가 너를 지켜주겠어.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다른 남자: 아버지가 실수로 비천한 가운데 뿌린 씨앗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부정하는 아들 -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서 죽고 싶다. 여자가 위로한다, 오빠 태어난 것이 기뻐요.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여자가 심장에 박힌다.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다.


어쩌냐. 원래 큐피트의 화살은 한 방향으로만 난다. 여자와 남자의 결속은 다른 남자가 여자를 심장에 박아두고 있는 한 온전치 못할 운명이다. 누군가의 심장 속에 박힌 여자는 언젠가는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가 여자와 남자의 행복을 위해한다. 행복은 깨진다. 여자는 남자를 가슴에 품고도 떠나야 하고, 그런데도 여자 시청자인 내가 극중의 다른 남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향해 연연하듯이 다른 남자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이해한다. 나도 덩달아 사랑을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물론 영화가 가장 편할 것이다. 후속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압축된 인생이 거기 있으니까. 그러나 영화관도 아니고 방에 박혀서 여기 저기 채널을 돌리다 보면 그것이 어차피 토막인 채다. 프로그램을 미리 찾아보고 특정 영화를 찾아 볼만큼 광도 못되고, 무엇보다 게으른 탓이다. 뒷부분 절반만 보았던 것을 조금 더 앞서부터 보게 되거나, 계속 그런 뒤쪽만 보다가 오래 지나서야 그 앞쪽을 보는 일도 있으니 뭔가. 시간이 나면 낮밤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이나 보고 사는 내 인생이 어찌 보면 더 한심하다. 사람이 실 인생에 무관심하고서 그리 픽션을 탐하게 될까? 저 거짓 타령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사는 난 무엇인가. 무용지물. 남편 밥상 차려주고, 함께 먹고, 설거지하고, 손 씻고, 물기 닦고, 로션 바르고. 그것을 세 번 되풀이 한다. 그것을 두 번만 하는 날은 그 변형을 즐긴다. 아무렇게나 한 끼 먹고, 그릇을 조금만 씻고, 손 씻고, 물기 닦고, 로션 바르고. 하긴 그게 그거다. 안 먹고 건너뛰어야 진짜 변형일 텐데. 나는 굶거나 폭식을 싫어한다. 배고픈 것도, 배부른 것도 싫다. 이렇게 오직 적당히 먹기 위해서 사는 날이 부쩍 늘었다.


매형, 뉴스 시간이네요. 동생이 뉴스 쪽으로 채널을 바꾼다. 제 댁이 몸을 풀고 친정집에 가 있는 동안 아예 우리 집으로 - 우리 집은 무엇보다 빈 방과 밥이 있다 - 퇴근하는 막둥이가 말한다.

논픽션의 단골 메뉴, 중동에서의 폭탄 테러, 이미 벌어진 다음 어쩌란 말이냐. 이래서 난 뉴스를 싫어한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되풀이이다. 하긴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도 이미 낡은 이분법이 되었다지. 창조론을 믿는 유전과학자,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줄기세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특별한 신앙인-과학자 또는 과학자-신앙인이 그에 속하리라. 하지만 검고 흰 것이 따로 없다면? 기름과 물이 구별이 안 된다면? 모든 가치의 종말이리라. 가치, 가치.

지난여름엔 지상 최강대국 수장이 지적설계론 교육문제에 개입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미친 놈, 현대판 십자군전쟁의 주범이 실전이 모자라 이론영역까지 침범해? 남편이 난데없이 뉴스에 흥분했다.

뭘 먼 나라 뉴스 가지고 그래요?

힘을 가진 놈들의 맹신은 아주 무서운 거야. 히틀러의 반유대주의하고 한 개인의 반유대주의가 같냐고. 지적설계론이란 우회적이지만 분명 사기적인 표현이오. 신앙의 영역을 들고서 과학을 침범하겠다? 부시의 보수개신교가 문제라, 착한 늙은이가 보수개신교도라면 도덕적이고 선할 뿐이겠지마는.

것도 가부장제도만 빼고요? - 참, 애기아빠야, 너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그림 봤어? 그것으로……. 뇌관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싶어서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건 또 뭐라는 거요? 아니 그보다, 뉴튼도 창조론을 신봉했던 것 몰라요, 누님?

뉴튼이 신앙인이건 아니건 중력은 기적이 아니라 실체로서 살아있는 거지.

누난 참. 과학의 뭘 안다고 진화론 옹호자가 된 거요?

그보다, 넌 어떻게 초음파로 사람 들여다보며 사는 사람이 진화론을 의심해? 그러고도 자연과학자야?

누님, 그러네. 내가 내과라 그런가. 아니 외과 친구들 중에도 가톨릭의사모임에 열성인 경우가 많아. 확실히는 무엇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약을 처방해야 하고, 같은 약물로도 반응이 다르고, 한 알이냐 한 알 반이냐 정해야할 때 내가 무슨 수로 나를 의지한단 말이오. 나는 도구고 하느님이 역사하신다는 생각의 틀이 도움이 돼. 내가 훨씬 덜 힘들어.

자신이 없기는. 그건 네 영혼을 위한 네 신앙이지, 환자를 치료하는 과학적 사고는 아니다.

그래도, 내겐 힘이 되고 있어.

거야 좋은 일이겠다. 믿음이 널 지켜주는 한. 하지만 나 같은 무용지물은 전체 그림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 우연적으로 발생한, 그러나 유일무이한 생명체, 그 자체로서 의미가 담겼다고 해야 겨우 살아가지. 생명 말고는 내가 무슨 가치가 있어 살아.


아니 잠깐, 이번엔 투신자살이다. 자살은 요사이 뉴스다운 뉴스도 아니다. 엽기적 연쇄살인에 밀려 제 죽는 것이 무슨 뉴스랴. 자살사이트가 어쩌고 젊은 연예인들이 어쩌고 하면서, 자살이 놀이처럼 번져가는 낌새도 수상쩍긴 하다. 열악한 환경에, 실연의 고통에…… 진부하다면 진부한 이유들. 보통 사람이라면 열 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못 만져볼 재산을 두고서 목을 맨, 보통 사람이라면 올라가보지도 못할 성공에 이르러서 죽은 …… 사치라면 사치스런 이유들.

사람들은 때론 악랄하리만치 잔인하다. 여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목을 매는 것은 약을 삼키는 것과 비교해서 의지가 얼마큼 강한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약을 삼키려다 말거나, 삼켰다가 토해내거나, 목을 맨 줄을 다시 풀 확률과, 풀려 했는데 못 푼 상태에서 발이 미끄러져버리는 비극적 경우까지 죄다 노닥거렸다. 칼로 베는 방식은 아예 제외였다. 웬만해선 죽게 베지는 못한다고. 가장 강력한 의지는 투신일걸, 누군가 그러면, 이번에는 다리 난간에서 강물에 투신하는 것과 옥상에서 투신하는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였다. 제1의 강자 자리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추락하는 방식이 차지했다. 기울기가 잡힌 순간 되돌릴 수가 없다는 점. 누군가 함께 뛰어들어 구해줄 수도 없다는 점. 한 마디로, “쇼가 아닐 다름에야” 고층옥상이 가장 완벽한 선택이라고. 상처만 입고 병신 되어 살아날 가망도 없이. 그러니 얼마나 완벽한가. 하늘을 향해 한 번 비상하는 것. 그것으로 끝이다.

뉴스란 그러나 이래저래 소용이 없다. 이미 떨어져버린 사람에 대한 소식 - 그것으로 어쩌겠다는 말이냐. 떨어진?

그러니까 이번 소식이란 바로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진 여자에 관한 것이다. 한 때, 아이 엠 에프로 몰락한 한 가족이 고층 옥상에서 투신했는데, 다 고스란히 살아났더라는 우스개 뉴스가 있었다. 애비는 제비족, 어미는 날라리, 자식은 비행청소년이었으니까. 저 여잔 날라리가 아니었군! 잘 좀 날아 보시지! 나는 법을 안 배워뒀나? 갑자기 아이린 카라의 불타는 눈매가 떠오른다. 가무잡잡한 피부까지 닮은 은미의 불같은 눈매가 겹친다.

페임 / 아임 고나 리브 포레버 / 암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영원히 살겠다,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겠다? 갑자기 등줄기에 찬물이 인다. 설마.


하긴 은미는 한동안 조용했다. 아예 동창회 네트에서 사라진 것이다. 삼삼오오 필드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늘고, 산악회다, 해외여행이다 몰려다니기 시작할 때, 은미가 사라지고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누군가 오전 10시에 집에 전화했을 때 전화를 받는 여자는 병든 년, 돈 없는 년, 그리고 또 하나 성질 나쁜 년, 세 종류뿐이라는 우스개가 돌았다. 은미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나는 어디일까?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에 자존심을 건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 생각이 난다. 여름철 휴가를 못갈 형편이면, 앞문을 잘 잠그고서 휴가 떠난 빈집처럼 해놓고 뒷문으로 드나든다나. 그러다가 빈집털이 좀도둑에게 들키면, 제발 다 가져가도 좋은데, 휴가 못 떠난 사람이 있더라는 소문만 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나. 그러니 나는 10시경에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으면 되겠다. 은미도 그럴까.


따르릉. 아침 정리가 대충 끝나고 막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 참이다. 이 시간에 집에 있는 나를 사람들은 어떤 부류라 취급할건가. 몹쓸 병이 든 것도 아니고, 돈이 아주 없지도 않고, 그럼 성질이 나쁜? 나쁜 사람이 스스로 나쁜 줄을 알랴마는, 난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럼 그만 두자. 나도 나다니는 척 하자. 전화는 끊겼다가 곧 다시 요란스레 울렸다. 설마 중요한 일이?

나는 작정을 하고 윈덱스 병과 마른걸레를 들고 앞 베란다 쪽 유리창으로 향한다. 해가 비치는 오전 이른 시간이라야 창에 난 손자국들이 선명해서 잘 보이고, 또 자국들은 한낮보다는 아직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야 잘 닦인다. 몇 개의 화분들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풀냄새가 아련히 졸음을 불러온다. 따르릉 따르르릉.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게 끈질기게 울려댄다. 전화 숨이 긴 것이 조금 불안하다. 아서라, 양쪽 집안에 노인들 계시는데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배짱은 또 뭐람. 스스로를 나무라며 문을 젖히고 수화기 쪽으로 내닫는다.


*


서울에 올라갈 수야 있겠냐.

서울 친구들은 그럼 다들 가 봤대냐?

다들은 뭐. 요 근래엔 통 소통이 없었대. 애 유학 보내놓고 마찰이 많았었다네. 은미는 애 따라 나갈 계획이었고, 남편은 결사반대고.

조기유학도 아니었다며 애 따라 나갈 건 왜. 집에서 합의가 안 되면 못가는 거지 안 그래.

남편이 못 가게 한다고 못 떠나? 이 나이에?

이부자리 보고 발 뻗는다잖냐. 아예 손발이 묶이면 꼼짝 못하는 거지.

손발이 묶이다니. 옥상 그거 아니었어?

아니 뭐 손발이 묶였다는 게 그게 아니라.

아님 뭐?

경제권이 아예 없었단 얘기지. 평생 시장비 타 쓰는 형국을 참고 살았다는 거야. 몇 대째 있는 집에서 자라, 남편이 이재에 밝아 한 재산 해 놔두고 말야.

설마. 남편 통장 고스란히 받아 챙겨 관리하는 것이 한국형 경제 아냐? 처녀 때 성 쓰지, 통장 갖지, 선진국보다도 여권이 신장된 나라에서 웬 말!

훨훨 떠난 사람 두고 무슨 뒷말들이야. 결국 날아갔네 훨훨. 아임 고나 리브 포레버 아임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비보를 전해 들으며 어안이 벙벙했던 우리들은 일단 모였다. 어라? 급한 대로 연락이 잘 안된 모양인지 평소의 반도 안 되었다. 더구나 다들 제 형편 따라 문상 갈 처지가 아니고 보니, 대표로 누구에겐가 짐을 씌울 셈으로 모인 것이다.

밥이 벌써 나온다, 어쩌냐. 우리 아직……

어쩌긴, 산 사람은 먹어야지. 먹고 이야기 하자. 인생이 그리 녹녹하다더냐. 아무튼 우리 더 단단히 맘 다져먹고 살자. 아이들 어중간하게 참 어쩌라고. 짝들은 맞춰줘야 부모책임을 다하는 거지.

암 고나 리브 포레버 / 베비 리멤버 마 네임 ……

실팍한 친구의 다독거림 사이로, 어디선가 환청일까 ‘아이’를 ‘아’로 고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정말 날고 싶었던 거야? 날아서 바오밥나무를 보러 간 거야?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 애가 해외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지 않았다. 아프리카는커녕 아무데로도 못 떠났었나, 설마? 나가면 나가고 떠나면 떠나지, 뭣 하러. 논픽션에 등장하면 어떻게 해, 바보같이……. 어디라고 할 데 없는 곳을 향해서 속으로 뇌이고 있다.

뭐해, 어서 먹지 않고.

무심코 한 친구가 콩나물 그릇을 내 가까이로 옮겨준다. 풋마늘무침과 자반무침 사이에서 노란 콩나물이 오늘따라 애처롭다.

그래, 맛있겠다. (끝)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쪽지 붙였음 - <PEN>  (0) 2009.10.14
네 번째의 죽음 - <한국소설>  (1) 2008.09.01
조사 - <소설시대>  (0) 2007.06.30
마리아 막달레나 - <월간문학>  (0) 2007.05.30
오늘과 이별하다 - <PEN>  (0) 2006.10.01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6. 30. 23:30


조 사

 

                                  소설시대 2007

 


오늘 길 떠나시는 시인을 찾아 서둘러 날아온 ‘쑥국새 울음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봄날, 우리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하는, 존경해 마지않았던 OO OOO 선생님, 제자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잃은 마당에 감히 조사를 읊어 바치고자 하니, 서러운 마음 그지없어 눈앞이 깜깜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단발머리 소녀들로 스승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솔방울만 굴러도 깔깔 웃고, 낙엽이 떨어지면 눈물 떨군다는 소녀시절. 바로 이런 봄날, 뻣뻣한 검은 말총머리를 휘날리시며, 휘날리는 머리카락 따라 고개를 끄덕이시며 들어서신 국어 선생님. “아야!” 그렇게 정겨운 목소리로, 그러나 완벽하게 우리말 우리글 공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 


우리가 이 영어 세상에서 우리말을 사랑하며, 이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 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은 스승님께서 우리들 때 묻지 않은 영혼에 심어주신 ‘우선은 국어 사랑의 정신’과 나아가서는 ‘자중자애의 숭고한 가치’ 덕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친구들을 서로 사랑하고,  심지어 사투리까지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타인이 나보다는 자신을 사랑함을 이해하고, 행여 자신을 사랑하는 타인을 못해도 자신만큼은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자신에 걸맞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 외에는 세상살이에 달리 첩경이 없다고 깨우쳤습니다.


스승님은 우리의 꿈을 높게 이끄셨고, 많은 제자들이 보다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자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람이 적다.” ― 세상을 아시기에 미리 한탄하셨던 스승님. 우리 “보람이 적은” 여자제자들의 삶 속에도 스승님의 가르침은 면면히 흐릅니다. 서울에 가서 살건 미국에 가서 살건 전라도 아낙인 것 부끄러워한 적 없고, “툭시발 갓의 된장 맛”이라고, 구수한 인생살이에서 가정과 자녀의 인생에 알뜰한 간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빛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소금은 될 양으로 ―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조사는 그런데 읽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지들의 조사 틈에 여자제자들의 차례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우리 쪽 차례가 오면!” 준비는 해두자고, 공인으로 활동하는 동창이 하룻밤을 조르는 데 못 이겨 난생 처음으로 써 본 조사였다. 그럴 일이 생긴다면 읽기는 목청도 담도 좋은 동창이 잘 읽을 터였다.


허옇게 서있는 키다리 조화들은 즐비했다. 막상 발인은 예상보다 조촐했고, 선생님 살아생전에 모이던 제자들 수만큼은 어림없는 인파였다. 


*


문학 월간지에서 무명의 나에게 청탁이 왔다. 청탁이다, 적어도. 등단 몇 년이라고는 하지만 고료를 받고 쓴 작품이 몇이던가. 그 동안 썼다가 구겨둔 원고들을 서둘러 훑어 볼 일이다. 그때마다 중단된 글들도 처음엔 절실한 심정으로 시작했었던 것들이니까. 그 옛날, 윗목의 낮은 교자상 앞에 구부려 앉아 쓰고 또 쓰다가 구겨둔 원고지들은 다 사라졌다. 버리고 또 버려도 쌓이는 파지들을 자꾸 치운 까닭이다. 그런데 컴퓨터 속은 도둑놈 계집 치마폭이다. 켜켜로 쌓아두면 버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지 작업이나 사진 작업이 거의 없는 ‘우리의’ 노트북은 죄 한글문서들뿐이어서, 용량에선 넘칠 염려가 없다. 이런 무궁무진한 창고 덕에……


아니 그런 모든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미진한 몸이 청탁을 받으면 목욕재계를 하고 선을 하고 앉아서 명상에 잠겨도 모자랄 일인데, 대뜸 창고 속을 후비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 도는 문서들도 없지 않다. 적게는 8KB짜리에서 많게는 1,126KB까지 분량 또한 제멋대로이다. 드물게는 ‘열려라 참깨!’를 잃어버려서 바윗돌처럼 닫혀버린 파일도 있다. 노트북을 공유한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파일들이 있고, 암호를 걸어두었다가 그리된 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트북에 대한 권리에서 함께 쓰는 그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는 밥을 벌고 나는 밥을 벌지 않는다. 그는 아무 시간이나 일을 하고, 나는 그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서야 노트북을 연다. 그러니 항상 서두르는 버릇이 있다. 집히는 대로 작업을 하다말다 그러는 것이 버릇이 되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바로 어젯밤에 쓴 「조사」가 들어있는 파일에 쓰기 시작하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싶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글이다. 격식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 글쟁이라니 한심하다. 상투적인 감상의 찌꺼기는 또 뭔가. 그러면서 엉뚱하게 사투리 배운 것을 감지덕지하다니, 듣는 이들이 황당하다 했을 것 같다. 읽혀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문자화 되어 마음만 여기에 남으면 되니까. 이렇게 잘 표현되지 못했더라도 속에 담긴 의미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보다도 크게 봐서 인생은 어느 구석을 돌아도 비슷한 쳇바퀴란 건방진 생각이 들 때면,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은 어차피 누군가가 살다가 죽는 이야기의 한 단면일 것 같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그 이상의 범위를 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초라한 글쟁이도 그저 그 지평 안에서 몸살을 앓을 것이다.


파일들은 생각보다 분류가 되어 있질 않다. 어쩌다 눈에 띄는 파일 중에 마찬가지로 ‘옛 스승’과 관련된 짧은 글 토막이 있다. 모교 동창회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추억담을 올려달라는 성화에 적어두었던 모양이다.


모교의 OOO 선생님은 가정과 선생님에서 교감, 교장 선생님을 두루 다 거치셔서 동문 모두에게 잘 알려진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동기의 ‘홈커밍’ 행사에 불참하실 때 노환이 깊으시다는 소식에 마음들이 무거웠지만, 그것도 벌써 옛일, 이젠 이승을 떠나신지 오랩니다.


선생님은 떠나셔도 의미 있는 한 순간의 기억은 영원 속에 박힙니다. 저는 아직도 아주 적나라하게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비누에 엉키는 머리카락을 쉽게 떼어내는 방법은 그분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속옷 서랍을 정리하는 일 하나도 참 숙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너절하게 두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사소한 것에 감동하느냐고요? 인생은 사소한 것의 총계라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목표 달성을 위해 사소한 행복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홈커밍 행사 날 한 친구가 유난히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친구는 모교에 부임한 초년 교사로 스승님은 교감선생님으로 잠시 함께 재직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젊은 ‘애 엄마’ 여교사들에게 교감선생님은 감시 대신 시원스레 말미를 주셨다고요. 가능하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재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잠깐이라도 꼬옥 껴안아주고 오라’는 충고. 당신께서 여덟 자녀를 기르시며 후줄근한 숙직실에서 젖을 물렸던 기억에 아파하시며, 젊은 여교사들에겐 가능하면 아이에게 밀착된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던


거기에서 중단된 이 글은 홈페이지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새삼스레 추억에 잠기면서 운명의 불공평한 대우에 분노가 인다. 그분이, 마지막 몇 년을 지독한 치매상태에서 고통 받아야 했다는 뒷소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고 - 그저 단순한 가사노동이나 혹은 유한마담의 삶을 살아간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무엇을 그리 잘못 했다는 말인가? 치매를 행여 젊은 시절의 방만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 단순논리를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 삶을 살고서 그 마지막 몇 년이 치매라면, 이것은 뭔가 아니다 싶다.


“고매하신 창조자의 섭리 따위는 없다는 증거야.” 내가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은 심하다. 그 선생님 시절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양쪽에서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리 되셨겠어. 게서 창조주 이야기는 왜.”

“창조주란 말 안 썼다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 그게 그거다 원.”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내겐 항상 편이 적다. 그래도 우긴다.

“양심 없는 쪽이 양심 있는 쪽보다 훨씬 더 잘 산다면, 그게 이 세상에 고귀한 섭리 따윈 없고 우연이 지배한다는 것 아니냐고.”


다 말하지는 못했다. 실은 안팎으로 죽어라 일만 하시다가 치매로 고생 끝에 돌아가신 우리 선생님과 대비해서, 아파트 우리 라인에서 제일 멋있게 늙어가는 노부부 이야기를 할까 했었지만.


이런 이야기다. 남편은 겉은 영국신사에 속으로는 향교에서도 알아주는 식자에, 아내는 젊어 이래 폐백음식에 불려 다녔다는 솜씨를 자랑한다는 부인이다. 산보길이며 외출하는 양이며, 최고로 여유 있고 한가롭게 여생을 즐기는 모습이다. 할머니는 아예 노인 축에도 안가는 팽팽한 얼굴이다. 근심 걱정이라고는 평생 없었다고 말하는 피부. 고운 자태. 고운 옷.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내막은 주말 연속극 감이었다. 남자는 고향에 처자가 있는 유부남, 여자는 처녀 때 만났던 사이라는데, 내가 그것으로 놀랐다면 호들갑이다. 속내는 더 기가 막혔다. 처녀 쪽에서 마음 고쳐먹고 시집을 갔으니, 일은 제자리로 돌아간 듯 했더란다. 그런데 여자가 한두 해만에 딸을 하나 낳고서는 그걸 버리고 다시 이 남자에게로 왔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는 제 아들을, 어머니는 제 딸을 버리고서, 그렇게 다시 시작해서 ‘우리 자식’ 몇을 더 낳아 온갖 정성 다 쏟고 호의호식으로 키우면서 살아왔다니.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는 큰아들 선 자리를 말 그대로 백번도 더 보았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버린 자식들 ‘내 자식, 네 자식’이 잊혔을까? 요새 말로 그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있었을까? 마음속이 그러고서도 저리 화평한 노년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까지 모두 이야기 했더라면 친구들은 내 말을 믿었을까? 스트레스가 치매의 원인은 아니다. 양심의 고통으로 늙는 것도 아니다…… 라고 우기는 말을.


생․로․병․사는 정말 오로지 유전자 탓인가. 아니 유전자 더하기 우연이라는 장치의 역할일까. 그렇게 우연히 찾아든 치매 바이러스. 우연히 비껴간 혹은 우연히 침투한 박테리아. 우연히 고꾸라진 버스. 우연히 날아든 바윗돌. 우연히 심장을 뚫은 파편.


*


유난히 문상이 겹친 주간이었다. 아스라이 먼 시간에 끊어졌던 추억들을 불러오는 초상 자리. 대형화된 장례식장은 문상객들을 서로 부딪지 않게 할 만큼 넓어서, 사람 사이에 가면 노련치 못한 나 같은 부류에게는 다행스럽다.


검은 저고리 치마의 여자들은 조금 생소했고, 그런데 처량함을 덜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평상복 위에 대충 걸친 허연 상복의 구겨지고 초라한 몰골을 조금 더 단정하게 보여준다. 향년 OO세가 주는 이상한 안도감에 문상객들은 덜 미안해하며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바로 앞선 문상객이 ‘호상’이란 말을 써서 언짢은 일이 있었나 보다. ‘호’자와 ‘상’자는 이를테면 모순형용법에 속한다. 모든 상은 상이다. 상은 잃어버리는 것, 끝이고, 영영 이별이다. 그것이 어찌 좋을 것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주들이 영영 고아가 되는 것인데.


친구는 일찍이 반쪽 고아가 되었고, 집에는 단출하게 어머니만 계셨다. 어머니만 계시는 것이 특별나지 않기 때문에, 그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어차피 아버지들은 낮 시간 동안에는 집에 계시지 않았으니까. 친구네가 특별히 더 조용한 것은 아마 적산가옥의 구조였을 것이다. 한 줄로 나란히 펼쳐진 한옥과는 다르게, 좁은 복도를 낀 여러 겹의 방들은 작은 네모들의 미로였다. 한옥에서처럼 줄줄이 햇빛 받는 툇마루가 없으니 더 침침하고, 어둑한 공기 따라 분위기도 더 가라앉았을까. 고즈넉한 집과 친구어머니의 단아한 자태는 서로 어울렸다. 우리 배달민족은 또한 백의민족이라고 책에는 쓰였지만, 우리 집에선 백의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인상은 하이얀 무명이었다. 우리들 교복의 풀기 선 칼라와 표백한 흰색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흰색. 함초롬히 옷감이 안기는 자태. 작고 고운, 무엇보다도 드문 말씨. 나는 어쩌면 그런 절간 같은 고요함에 이끌리어 친구 집엘 드나들었나 보다.


오늘 어머니를 여읜 친구는 그러니까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했다고 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 중 많은 아버지들이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엄청난 손실의 수치로 변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서 말하기로는 강제동원 피해자로 정부 당국에 신고한 사람은 22만 명 정도라 한다. 한국전쟁의 국군 피해자는 사망만 13만을 넘고, 부상과 실종 그리고 포로를 합쳐 62만 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그런데 수학적 통계나 확률은 큰 의미가 없다. 두 형제가 참전하기로 똑같았던 우리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고 살아남지 못했다. 체감 확률은 해당자에겐 언제나 1/2이다.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한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당시에 젊은 장교로 사단 참모장쯤 되었던 아버지는 군사혁명 때엔 별을 달고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30명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거나, 어느 부처의 장관이 되어 프랑스 혹은 서독을 방문, 한국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맺어 1억 마르크도 넘는 장기차관을 약속받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었다. 실미도 사건 같은 때에 하필 책임 있는 위치에서 우왕좌왕 발표를 하다가 그날로 사임을 한다거나,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은 물론 나아가 의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총알이 하필 심장에 박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일 아직까지 건강하다면……. 케네디가의 맏형 조셉 패트릭이 2차대전에서 실종된 것과 비슷하게, 형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동생은 그러니까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누구나 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하긴 대통령이 뭐 그리 좋은가. 케네디 대통령은 너무 높이 태양 가까이 날다가 짙푸른 에게해에 빠져버린 이카로스처럼 추락했다. 그러니까 살아남은 동생이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로만 올라갔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일찍 최고에 이르러 죽느니보다는 최고 비슷한 데까지만 가고 사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대로만 된다면. 조금 아쉽지만, 대통령 처조카사위의 동생의 장인의 매제의 모함(?)으로 비리에 연루되어 퇴직을 해도 괜찮다. 넉넉히 평균수명을 넘기고 혹시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대회’ 같은 묘한 계제가 있다면, 대한민국이 이미 공산화 되었다고 걱정하는 원로들에 가담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런 예상은 너무도 픽션이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휴전과 함께 그대로 군복을 벗어던지고, 상과대학 출신답게 경영으로 입신했을 것이다. 재벌총수에게 휘둘리지 않는 전문경영인의 길을 갔다. 코트라 초창기를 살려내고 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온 가족이 외국에 나가서 살았고…… 아니다, 내 친구로 미루어 학구적이었을 아버지는 군복을 벗자마자 계속 학문에 전념하여 경제학박사가 되어 경제학교수가 되어……


이것도 정말 아니다. 내가 지금 쓸데없이 젊은 채로 남은 많은 아버지들의 가상의 전기를 쓸 일이 아니다. 다만 인생은 냇물을 따라 사는 것인지 냇물을 건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생에 징검다리가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 하나의 돌이 나에게는 그 어머니가 있는 집이었다. 다다미방 저 쪽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하건 별 간섭이 없으셨던 어머니. 사실 조용한 어머니가 먼저였는지, 다 반듯해 보인 언니 오빠들이 먼저였는지 모를 일이다. 동창들 가운데에서 지금도 최고로 요조숙녀가 바로 이 친구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좋을 일을 구별하고, 그 구별에 따라 행동하는 일. 그 어려운 일에 친구는 어려운 티를 모른다. 말도 조신하고 행동도 조신하다. 그렇다고 막힌 것도 아니다. 운동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모르겠다, 살사나 벨리댄스를 배우지나 않는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친구는 합창단에 들고 배드민턴인가 탁구인가를 선수만큼 잘 할 수 있어도, 춤 같은 건 외면할 수도 있다. 학창시절 모범생의 연속일 텐데, 우리의 학창시절엔 지덕체라고 말은 하면서도 지와 덕에만 치중했고, 체육까지는 몰라도 무용은 조금 색안경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끼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저급할 것까진 아니나 조금 위험한 어떤 끼가. 체육이나 무용을 못하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으니, 웰빙 세대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내 글은 이렇게 「조사」에서 빗나가고 있다.


*


글쓰기는 무진장 어렵다. 사투리까지 사랑하게 가르쳐 주셨던 국어 선생님은 내 첫 작품을 받아 읽어보신 뒤 내게 단 한마디를 하셨다. “소설은 박완서처럼 쓰거라!” 그리고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겨우 보름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5미터 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음악과 문학이 어우러진, 꽤 유명한 분의 성대한 문학인생 기념회 비슷한 자리였다. 난생 처음 그런 자리에 끼게 되어 얼핏 주눅 든 내가 저 건너 테이블에 살며시 들어와 앉는 그 얼굴을 첫눈에 알아본 것도 용했다. 소설책에 나와 있는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덕일까? 작은 얼굴에 작은 체격 ― 거미줄 나오듯 누에가 털실 뽑듯 끊임없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짜내는 물레. 피란길 허기 속에서 동생 오목이의 손을 놓아버린 수지의 줄기찬 저항을, 함께 사랑하고도 혼자서 나락에 떨어진 문경과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혁주의 상을…… 내 기억 속에 박힌 작품만 해도 부지기수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즈음에는 헤쳐 모이는 얼굴 얼굴들.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하고 스쳤다. 박완서처럼 글쓰기.


글쓰기, 글 쓴다고 나서기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국문과 졸업도 더더구나 문창과 출신도 아닌 내가, 글쓰기공부를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도 가 본적 없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한 길에 서 있었다. 무지가 용맹이라는 증거 하나가 내 첫 장편이다. 수필집 원고를 청탁받은 그가 정색을 하고 대신에 나를 들이밀며, ‘서랍을 위해 쓴’ 내 원고들을 가리켰다. 처녀림에서 무작정 베어낸 나무들은 그러나 품종에서나 영양에서나 밀렸다. 인생의 맛을 모르는 내 척박한 토양 때문이었으리라. 그나마 이름만 걸어 놓고 개점휴업 상태. 내놓은 물건들도 별 볼일 없는 태작들이지만, 팔릴 일은 없는 것이, 누가 이만한 원고를 사겠다고 덤비겠는가. 심지어 거간꾼도 없는 것이 이 바닥이다. 하긴 내가 발이 미치지 않아서이지, 거간꾼 없는 세계나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


왜 그리 스산한가. 기업의 냄새가 풍기는 장례식장은. 능률적으로 ‘치르는’ 영결의 장은 그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평생에 한두 번 겪는 일일 것인데, 어느 초상에 가보아도 사람들은 놀랍도록 역할을 잘 수행한다. 슬퍼할 때 슬퍼하고, 곡을 할 때 곡을 하고, 대개는 밥을 먹을 때 밥을 먹는다. 밤샘을 위해 화투판도 벌인다, 아주 요절한 마당이 아니라면.


한 분 떠나시고 나니까 다시 한 사람 만나게 되네요…….


문상객들 틈으로 만난 그 사람의 말이었다. 한 열흘 후 쯤 전화가 왔다. 월요일이었다. 저 시간이 좀 나는지? 왜 아니라고 잘라 말하지 않았나? 해가 기울자 겁이 났다.


저녁엔 안 되겠어요. 저녁 외출이 일상적이 아니라서요. 연결된 것만 기뻐하지요.


그렇게 문자메시지 보내놓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앓았다. 흔한 감기 몸살에 흔한 소화불량이지만 정도가 심했다. 머리 속에 맴도는 말. 미리 도망친 벌(?)로 24시간 앓고 있어요……


수요일, 다시 온 전화는 옛날을 생각나게 한 단어 때문에 길어졌다. 누가 먼저였을까, 아무 것도 아닌 옛 일을 끄집어 낸 것이? 아직도 손톱을 물어뜯는지? 지금도 노래를 잘 하는지? 그런 질문들은 애초에 어리석다. 어른이 되어 여전히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노래는 한번 잘하는 사람은 계속 잘한다. 


“들어봐요, 어머니가 남기신 메모예요. 머물을래야 머물 수 없고 붓잡을래야 붓잡을 수 없는 세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시간 천금보다 귀하도다. ” 평생 간직할 소중한 글은 또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읽은 간단한 조사:


노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어머님,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엿함을 보여주신 어머님, 첫 만남에서 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어머님,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신 분이십니다.


이 아리도록 아름다운 글을 내가 들어도 되는가? 그리고는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벌써 금요일이었다. 아니다, 이 사람은 상중이다. 상중이 아니면? 그것도 아니리라. 한참 시간이 흐른 듯 했지만 겨우 일주일이었다.


거짓말 실토하는 게 낫겠어요. 다음날 전화 알고서 선뜻 못 받은 건 빚이 늘 것만 같아서요.


메시지가 원래 더 편하다. 상대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서. 다시 금요일, 비슷한 번호라서 잘못 알고 받은 전화. 그 사람은 정말로 봄나들이 권유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까? 어떻게 그런? 전화를 받고나서 곧 바로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열을 동반한 몸살감기로 변했다. 그것은 바이러스성이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


현대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덕이 아닌 풍조다. 이를테면, 독서 중에 ‘웃기는’ 숫자를 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부부가 혹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있는 기간은 평균 3년하고 167일 2시간이란다. 그것도 도시 중심부 3,40대 남녀는 이 수치를 낮추지만, 다행스레 나이든 시골 사람들이 평균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주고 있단다. 물론 전문서적이 아닌 ‘소설책’에서 읽은 소리이니 신빙성 있는 자료는 아니다. 소설은 신빙성을 담보하고도 남을 위인 ― 예컨대 미국의 무시무시한 대학의 교수이자 무시무시한 학력의 소유자 ― 이 쓰더라도 신빙성과는 상관이 없다. 이름 하여 픽션이니까. 그래서 소설책에서는 융의 할아버지가 괴테의 손자라나 뭐라나 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도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괴테는 손자 대에서 확실하게 후손이 단절되었으니까. (그가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한 주인공은 “소설이란 인생처럼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작가의 자만심을 죄는 말의 반죽”일 뿐이라고, “요설”뿐이거나.


내 주인공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할까? 우선 내 주인공은 박완서의 주인공들처럼 자연스러운 이름도 갖지 못한다. 아직 ‘ㅂ’자 첫 획에도 못 미친다. 내 소설은 며칠째 방치된다. 그가 노트북을 점령한 것이 변명으로 통할까?


*


뷔리당의 당나귀, 귄터 드 브로윈, 동베를린 1968년.

자서전적 분위기로 도서관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랑, 여성, 결혼, 도덕, 풍속, 현대, 동베를린이 결부된 소설로, 통상적인 삼각관계의 구도 속에서 실제로는 순응 메커니즘, 허위, 모순들의 가면을 벗기는 작업을 시도한다. ‘뷔리당의 당나귀’를 원용하여, 두 여자 사이에서 동일하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설명해보려는 시도 가운데, 60년대에 이혼율이 세계 최고였던 사생활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개인적 불행과 소외적 상황을 극복하게 해준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왜 개인들은 사적인 행복을 방해받고 있는가? 이러한 주제는 상당히 정치적일 수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당나귀보다는 조금 윗수이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필연에 지배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뷔리당이 말한 당나귀는 극심한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다가 굶어죽는다. 귀리와 물통을 곁에 두고서도 말이다. 그 철학자의 설명은 하필 귀리와 물통 사이 한가운데에 당나귀가 위치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먹고 싶은 욕망과 마시고 싶은 욕망이 똑같은 크기일 경우, 당나귀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나귀가 필연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자유의지의 덕으로 제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물부터 먹든지 귀리부터 먹든지 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원인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필연’에서의 해방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는 원인도 동기도 없는 성격에서 발원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어떤 행위를 수행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동기도 없고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행위를 수행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노트북에 그가 쓰고 있던 파일이 떠있다. 갑자기 그를 방해하고 싶다. 나는 그럴 때 문자메시지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한다. 한달에 100건까지는 무료이고, 무엇보다 저장이 된다. 


SOS: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 주는 건 다름 아닌 동기 없는 행위”라고 말한 게 지드?


맞아, 『잘못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인들 해석에서 자유롭겠나? 신들에게서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준 공적이 기독교 세상 중세엔 철저히 잊혀졌다가, 차츰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라거나 일체의 권위에 맞서 항거하는 양심의 상징으로 부활되더니, 루소쯤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선구자로 해석된 것이지. 그러나 진보가 또 하나의 미망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여기 지드처럼. 진보가 필연이라면, 필연에서 해방된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여전히 동기도 없고 불합리한 행동을 자행할 일 아닌가.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 그는 글 숨이 길어서 E메일을 택한다.


한 세월 지나서 카뮈가 “동기 없는 행위”로서의 살인을 제시한 건 처음이 아니었네?


처음이라니. (가)설엔 처음도 끝도 없어. 언어를 소유한 태초의 인간들이 다 말해버렸거든. 누군가 그랬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캄파넬라? 태양 아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없다고, 보르헤스? 아니 이미 벌써 전도서에 있었던 말이야. 1장 9절: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그러니까 지드와 달리 카뮈는 자유의지보다는 부조리 개념으로 설명한 것. 부조리 극복의 유일한 길은 간단없는 반항이라고. 오늘은 끝.

추신: ‘뷔리당의 당나귀’도 뷔리당이 처음이 아냐. 벌써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도 언급했던 개념.


그가 바쁘구나. 아님 피곤했을까? 그런데 간단없는 반항? 반응이 아니고 반항? 넌 매사에 행동이 아닌 반응뿐이라고 비난당하지. 반응에서 단 한 걸음 더 나가 행동하기에도 저어하는 주제에 반항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런데 반항하는 인간이 우수하다 그건 맞는 말인가? 반응에 그치는 것이 저열한 인격이라면, 그러니까 나는 당나귀 수준인가?


참, 당나귀는 노새와 버새 사이에서 어떤 반응일까? 나중에 말해줘.


웬일로 계속 당나귀 타령! 헌데 너, 필요 없는 걱정이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암말이 당나귀 새끼를 낳긴 쉬운지 노새는 번성했지만, 암탕나귀가 말 새끼를 낳자면 난산이어서인지 버새는 드물거든. 그러니까 그건 이론적으로 기 싸움이다. 물이냐 귀리냐? 노새냐 버새냐? 아니, 노새․버새 틀은 순 네 상상이구나. 아내냐 연인이냐,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이지? 당나귀보다 월등히 지능이 높은 인간은 ― 도이치 말에서는 답답한 바보 멍청이를 당나귀라 그러는 것만 봐도 당나귀가 멍청한 것은 사실일 것이야. ―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두 유혹 사이에서 굶어죽는 대신 교묘히 둘 다를 누리려 들지.


연인과 아내 사이에서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죽는 인간은 더 이상 없다. 3년은커녕 일년도 못가서 거덜나는 경우가 희귀한 일도 아니다. 습관을 가치와 혼동하여 어정쩡 결혼에 이른, 그 나름대로 지적인 남녀가 있다고 치자! 누군들 결혼이 가치에 속한다고 확신하기까지 섣불리 자신을 결혼에 내놓겠는가.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춘 두 단독자의 삶. 그것도 영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라는 친절. 남편이나 아내는 아내나 남편의 결점 때문에 연인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장 에르프처럼 한 남편이 아름답고 경제적으로 배경을 지닌, 게다가 합당한 일에 충실한, 개성은 없지만 그냥 좋은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 치자! 부족함이 없는 것도 부족함이다. 그에겐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지적으로 단호하고 개성 있고 확고한 견해를 지닌 연인이면 족하다. 뭔가 정신적 에너지를 북돋우는 자극이면 그만이다. 브로더 양은 젊고 지적이다. 단호한 개성의 매력에 불안도 괴팍함도 멋스럽다, 잠시 동안. 그리고 자극성 향취의 단물은 쉽게 고갈난다. 무맛이라도 풍성한 온수에 푹 담기고 싶을 때 남편은 슬그머니 아내를 찾는 것이다.


그의 말투가 내게 향하는 2인칭이 아니고 3인칭을 향하기 시작하면 나는 침묵해야 한다. 이제 그의 장광설 논리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를 직업으로 산다. 30쪽 되는 작품에서 뭔가를 풀어내어 300쪽 가까운 책을 쓰기도 한다.


나는 다른 생각에 골몰한다.


4월이 산 너머로 지고 있네요. 실제였나? 꿈결 같이 짧았던 시간이 함께 지네요.


이 메시지를 그 사람에게 보내는가 아닌가, 문제는 그 자유의지이다. 휴대전화 멜로디와 함께 번호가 뜬다. 아아~ 여전히 조용한 시각 다시 소리가 부른다. 그 번호. 폴더를 열어본다. 부재중 전화, [화]10:39A, [화]12:05P.


전화 - 집어 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5월에도 6월에도 아름다운 꽃들과 즐겁게!


부재중 전화, [수]12:26P, [수]6:44P. 계속 전화를 받지 않으려면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 하나? 


*


그 사이 가벼운 지인과 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


죄송. 4월의 초대장을 건너뛰었었죠. 죽어라 일해야 했거든요.


‘죽어라 일’하는 일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아니고 정말 죽어라 싫은 일이라면 미련 없이 때려치워야겠지요.


그런데 시만 쓰시는 게 아니고 노래를 잘하신다는 것을 몰랐네요. 저는 무반주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무지 약한데, 해서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쬐끔 휘둘리고 있는데…….


*


휘둘린다고? 너 요새 휘둘린다는 단어를 쓰는 거냐?


그가 당장에 태클을 걸어왔다. 놀랐나 보다, 토막 글로 나무라는 것이. 나는 모처럼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무엇이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을 북돋아 주는 메일 탓이었는지 용기가 났다. 나는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어쩌다가 완강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도 도리가 없음을 안다. 내 위에 있건 내 옆에 있건, 내 안에 있건, 나 보다 우선하는 건 없으리라.  


미안해요. 전화 받기가 뭘까 조금 부끄러운 느낌? 암튼 어려워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 그것이 내 심정이다. 감정이다. 감성이 크게 발동할 때면 이성은 숨죽인다. 때를 아는 것도 이성이다. 그는 이성이다. 그는 나를 내버려 두어야 할 순간을 안다. 나는 그에게 노트북을 내어주지 않고 내 젊은 날에 대한 「조사」를 쓴다.


잘 가라,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인생은 비록  만나는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먼데나마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땅에서 땅으로. 반환점을 훨씬 넘기고서야 네 청춘에 때늦은 조사를 쓰는구나. 머리는 허접 쓰레기 지식욕으로 천만근 무거웠고, 가슴은 송곳 자존심으로 외로웠던 너! 생각으로 들끓는 네 머리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을, 생각한 것과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구별 못했구나. 반응은 행동이 아니라서 삼갔고, 행동은 행동이라서 삼갔다. 실 인생에 뛰어들어 본 적이 없었던 너. 못 이룰 꿈을 꾸지도 않았고, 아니, 아예 꿈을 몰랐구나. 못 이룰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시작도 하지 않는 비겁함의 덕으로. 두 개의 가치를 좆아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도 없었다.


잘 가라, 달지도 쓰지도 않았던, 맹물처럼 무맛의 청춘이여! 시리거나 뜨겁지도 않았던, 치열하지도 아리지도 않았던 청춘이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청춘도 아니었던 청춘……


*


봄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말처럼 행복한 주말되시길……


산인데요. 만산의 꽃들이 절규하듯 모양을 뽐내고 싱그런 연초록이 색상을 자랑하는 기를 보냅니다.


고맙게도 위로는 며칠 사이로 예상치 않았던 방향에서 왔다. 내 친구가 아니라 그의 친구에게서.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 그렇게 산뜻한 오늘이면 되나보다. 열린 창으로 어디선가 초록빛 기운이 밀려든다. 청춘에 대한 「조사」라니, 우선 관습에도 어긋나고 뒤돌아보는 관점 이란 비생산적이다. 어쩌나, 그런데 오늘의 나는 기억의 총계다. 망각은 나를 부인함이다. 하지만 생산이 최고의 가치인 이 세상을 살자면, 이번에는 픽션에 들리어 막무가내인 내가 숨을 죽이고 사라질 차례다. 이성적인 그에게 온 생을 양보하면 된다. 인간이라면, 감성과 이성 한가운데서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이 없다. 숨 쉬고 밥 먹고 태양 아래로 나가자. 태양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하더라도.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번째의 죽음 - <한국소설>  (1) 2008.09.01
콩나물 - <문학저널>  (0) 2007.11.01
마리아 막달레나 - <월간문학>  (0) 2007.05.30
오늘과 이별하다 - <PEN>  (0) 2006.10.01
행복한 수요일 아침 - <소설시대>  (0) 2006.05.30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5. 30. 23:30

마리아 막달레나

2007 월간문학 5월호


 

아직 이른 아침이다. 목소리가 행복으로 구르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딸 둘을 공주처럼 키워낸 친구는 인생에 단 하나 부족한 아들을 기어이 낳아, 할 일을 다 한 사람의 만족감으로 늦둥이의 돌잔치를 준비한다. 이런 저런 일에 나를 부르는데, 내가 솜씨나 안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겐 중학생이 된 아들아이 뿐, 다른 식구가 없어 종일 시간이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애처럼 생에 충일감으로 사는 사람들은 나처럼 뭔가 공연히 엇박자를 세느라 여가라곤 없이 들끓는 나날을 꿈에도 알지 못한다.


*


친구와 나는 기숙사에서 만났다. 알고 보니 같은 고향이라서 내내 단짝으로 지냈다. 그래 그녀는 내 비밀을 조금은 눈치 챘을 것이다. 비밀이라야 그저 통속적이지만. 여자대학 기숙사는 그 시절 많은 남학생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방문을 뭔가 진지한 감정이라 치부하고 깔깔대곤 했다. 모두의 관심인 오월 축제도 실은 싱거웠다. 메이퀸행사는 성의 상품화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없어진지 몇 해이고, 같은 방 3학년 언니 말로는 지난해엔 법대생들이 ‘OO민국 모의국회’를 열어 ‘여성부’의 탄생논의를 벌였단다. 그러면 4학년 언닌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들은 틈새에서 어리둥절했다.


그러던 시월의 마지막 날, 향우회 소풍이었다. 동향인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우리들은 행색만큼이나 초라한 교외선 열차를 타고 그만그만한 이름 모를 작은 역에서 내려서 푸르름이 사라져가는 산야를 어슬렁거렸다. 처음 머쓱하던 대화들도 서둘러 점심 보따리들을 풀어놓았을 쯤엔 제법 풀려 있었다. 누군가의 제의로 빙 돌아 소속과 이름 석 자를 대기 시작했고, 더러는 순간의 장기를 부리기도 했다. 유난히 소리가 흩어져서 오히려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람, 그가 그였다. 법학과 아무갭니다, 그렇게만 소개한 사람이. 옆의 친구가 “이 놈은 꼭 학교는 뺀답니다, 자명하다나 뭐라나….” 그 말에 그는 “아니, 학교는 무슨.”이라고 잘랐다. 굳이 명문을 감추려는 모양새에서, 내 첫인상은 그가 겸손하다 못해 조금 꼬였나 싶은 정도였다.


“잠깐만,” 부산히 나무젓가락들을 부러뜨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기도를 자청했다. 서울 생활 반년 남짓에 배운 예절은, 물론 우리가 기독교학교를 다니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기도를 시작하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덩달아서 기도를 하랄 법은 없었고, 그냥 남의 기도를 막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니, 그게 기도라는 것이…” 하고 나섰다. 기도란 강요할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는데, 모두가 어색하게 느낄 만큼 딱딱한 투였다. 그쯤은 대충 넘어가줘도 좋을 듯한 향우회 점심자리에서. 그 법대생은 법은 몰라도 상식에선 외려 부족한 부류인가 싶었다. 식사는 첫 순간에 흥을 잃었지만,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호기들을 번뜩이며 대화들은 씩씩했다. 내 귀에는 심심찮게 그가 “아니”라고 말하는 소리가 박혀왔다. 그럴 때면 모두가 썰렁하게 서로를 보곤 했다.


“자아, 그럼 일단 십팔번 노래를 한 곡조 씨익…” 누군가 노래라는 물꼬를 트자, 가무에 능한 민족성이 발휘되었다. “말없이 건네주고~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에 이어, “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난 그만 울어버렸네”라고 울음을 울더니만,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절규도 했다. 입만 열면 사랑타령들이다. “말 한번 붙여봤으면 손 한번 잡아봤으면~ ”하는 애교도 부렸다. 여학생들은 꽁무니를 빼다가 누군가 물색없이 “세모시 옥색치마~”를 불러서 좌중의 열기를 식혔다. ‘아니 씨’의 차례가 왔는데, 그건 노래도 뭣도 아닌 중얼거림이었다.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이번엔 다들 숨을 죽였다.


얼렁뚱땅 오페라 『순교자』 이야기가 나왔다. 초여름, 국립오페라단 창단 20주년에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공연이라고 떠들썩했던 터라 다들 아는 척 했다. 그러자 다시 ‘아니’가 끼어들었다. “아니, 그 작가가 오페라에 동의했단 말여? 그 양반 마침 영문과에 들어와서 강의한다더라고. 노벨상 후보지명이면 사건은 사건이제. 아니, 그 작품이 오페라에 가당해? 아니, 그 심오한 주제를 연극도 아니고 노래로 불러댄다고? 그것 희화아녀?”


밑도 끝도 없이 그가 사용하는 접속어는 모두 “아니”였고, 그는 그것 없이는 말을 시작하지도 이어가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오페라라는 그 어려운 것을 아는 체 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허영이고, ‘아니 씨’가 정직한지도 몰랐다.


“녀석, 기독교라면 왜 흥분을 하냐? 너 불교야 뭐야 무신론자?”

“아니, 기독교를 진지한 주제라 하믄 무신론자냐? 난 분명 무신론자도 아니고, 교회 반대자도 아니야. 아니, 우리 동네 보면, 제사 안 지내려면 교회가면 되니 편리하고 좋제. 아니, 우리 집은 제사가 많진 않아도 우리 어무니도 은근히 교회에 솔깃하셨제, 할무니가 막으셨고. 할무니 이론이 재밌어. 당신은 천당 갈 날 얼마 안 남았으니 교회를 나가시겄대. 대신 젊은 사람들은 제사를 받들고 교회엔 얼씬 말라.”

“신소리들 집어치웁시다. 여그가 종교 논쟁자리도 아니고, 여그 기독교학교 학생분들도 계시고….”

“신소리, 그렇네요.” 엉뚱한 소리들을 듣자니, 기독교학교 학생으로서 한 마디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나섰다. “기독교학교 다닌다고 다 기독교인은 아니죠. 반대로….”


소용없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해 본다. 예컨대 야구원년의 스타들 이야기 도중에도 무슨 이유로 그 많은 “아니”가 쏟아져 나와야 했는가를. 그리고 바로 그 주술에 내가 걸려버렸다는 것을.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아니 돌아오는 길에 태능역까지 갈 사람들도 함께 신촌역에 내려 근처에서 어중간히 마셔댄 알코올과 잡담들 사이에서도 그의 “아니” 소리를 변별해서 듣고 있었다. 어떤 질문 어떤 말을 해서 그에게서 “아니”가 나오지 않게 할까를 골몰하느라 다른 대화들은 건성으로 들었다. 점호시간이 가까워 오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친구들이 일어섰다. 한 친구는 조금 취기도 있고 해서 사감선생님 꾸지람이 겁난다고, 이모집에 가기로 눌러 앉았다. 아무튼 밤길을 동행해줄 남학생이 필요했고, 누군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하자, 그가 선뜻 나섰다. 어차피 술을 잘 안하는 그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낫겠다고,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을 말렸다. “아니, 지금 짝짓기도 아닌데 두 사람씩 뭣하러.”


우리는 이미 반쯤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잘은 몰랐지만, 귓결에 들려오는 대로 ‘짝짓기’라는 단어는 너무도 격에 맞는 말이 아니었다. 아마 그는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기껏 ‘짝을 맞추어 나갈 계제가 아니다’ 그런 뜻이었겠지만, 순간 불쾌감이 일었다. “무슨 그런 흉측한 말을 하세요?” - “예, 무슨?”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종일 기다렸던 반응을 하필 이제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옆의 친구도 까닭을 몰라 했는데, 내가 너무나 웃었나 보다. 그가 화를 버럭 내면서 내 웃음을 조롱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이건.’ 나는 속으로 답답했다. 친구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교문 쪽을 바라보고 종종걸음을 시작했고, 나는 그만 눈짓 손짓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씩씩거리고 있는 사람을 떨치고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간단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친구는 걱정보다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자꾸 뒤돌아보며, 그러나 이내 교문 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저, 우리 맥주 한잔 더 할까요?” - “저, 맥주…” 이번에도 그가 나를 웃겼다. 그렇지만 웃지 않았다. ‘아니’코드가 잠시 빗나간 모양이다. “제가 웃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잖아요.”


“아니, 좀 걸읍시다.” 그는 앞장섰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휘돌아 따라 걸으니 곧 큰 나무들 사이로 오솔길이 나왔다. 이어 인근 대학의 캠퍼스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았다. 어둠이 아니라 그의 침묵이 무서웠다. 나는 할 수없이 ‘아니’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 종일 ‘아니’가 아닌 다른 말머리가 나올까 귀를 쫑긋하고 들었노라고. 듣고나 있는지 그는 여전히 침묵이었다. 내가 그만 벤치에 앉아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슬그머니 무서워지기 시작했을 때 그가 돌아와 앉았다. 먼데 하늘을 보며 그가 말했다.


“우리 누난 YH 김OO의 친구였습니다. 야당당사에서 사흘을 농성하다가 죽은 김OO 말입니다. 누이들은 그때 칠팔월 더위에 200명이나 모여 있었답니다. 요구조건이 무엇이었냐, 그저 공장문만 닫지 말라.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 그렇게 써 붙여 놓고. 가발사업 - 끔찍하지요. 어무니들 누나들이 눈물을 머금고 내다판 긴 머리채, 가발을 만들었으면 수출로 부자가 되고 좀 좋은 일이요. 헌데 결과는 뭡니까, 죽은 누나 친군 말할 것도 없고, 병신되어 돌아온 우리 누난 또 뭐고. 죽은 친구가 한 살 더 어렸다던가, 꽃다워야 할 열아홉, 아부지는 일찍 돌아가, 어무니는 행상, 배곯아가며 일만 하다가 죽었대요.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어린 나이부터 일판에 나섰더라요. 그러다간 죽어서도 순식간에 화장되어버렸다니, 불길과는 무슨 원한이라요? 어려서 화상으로 치마 한 번도 못 입어봤답니다. 우리누나도 그때 다친 허리를 제대로 치료만 받았어도 저 지경은 아닐 것을, 입원하면 체포될까 걱정,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이라서, 칼잠 자는 셋방서 견디다 못해 병신 되고서야 내려왔지 뭡니까. 집에 돌아온 누난 기독교 물이 들었다고 혼만 났지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어서지도 못하는 누나가 교회에 갈 일은 없지만요. 아무튼 누난 교회 쪽 인사들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또 용기를 내어 노조를 만들고 하는 힘을 얻었다고 하대요. 나한테 이번 방학 내내도 설교를 해요. 그런데 난 누나의 신 같은 건 믿지 않아요. 그런 절대자가 있다면 이 세상을 이렇게 창조했을 리가 없지요, 또 실수로 그랬다면 곧 바로 잡았을 것 아니요? 희생자와 희생자를 내는 세상을 이리 버려두는 것이 누나가 말하는 신의 섭리라면 난 수긍할 수 없고요.”


그가 뜸을 들이며 힘들게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일종의 마비를 경험했다. 안개 속에 들어선 망망한 느낌. 누군가의 손을, 누군가의 아픔을, 분노를 보듬어 안고 싶은.


“내가 『순교자』이야기 때 정말 분노한 것은, 내겐 왜 두루마기 걸친 목사님들의 신앙과 배신의 정체는커녕 그 상도 떠오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나는 왜 예술에 대해선 그 이미지도 그리지 못하냐, 아니 진짜 분노하는 것은 바로 오늘의 나 자신이요. 인생관에도 생활원칙에도 어긋나고, 나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점은, 단지 죄짐 모르고 순수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그쪽의 인상에 흔들리어….”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어색해진 나는 얼결에 찬송가 구절을 읊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갖는 채플의 습관이었다.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예수의 품이라? 아니요, 그건 아니요. 지구상의 인간들을 죄다 품어주련다는 예수에게 무슨 품? 성육신이고 뭐고, 육신이란 원래 단 한 사람을 품을 품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


그것이 신호였다. ‘품’에 대한 언급은 그들의 서로 다른 머리의 아픔을 오직 몸으로 품고자하는 갈망의 폭발로 이어졌다. 연초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서 뜻도 모르고 대한민국의 통금해제를 환영했던 두 사람은 이번엔 그 실질적인 자유를 누렸다. 12시 바늘이 넘어가는 순간, 목양신 팬의 시간, 패닉의 시간이었다. 휘영청 둥근 달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밖에선 상당히 쌀쌀했다. 어색한 몸짓으로 서로의 얼굴을 비껴 안고서 오들오들 날 밝기를 기다린 그들은 엉뚱하게도 다음 일요일에 대학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약속으로 헤어졌다.


그 일요일, 며칠 전 소풍날의 벌판보다 더 싱싱해 보이는 교정의 나무들은 더러는 상록수들 사이에서 아름답게 색을 내고 있었다. 일요일마다 교회로 쓰이는 중강당 건물은 보기에도 육중한, 그래서 심오한 종교성을 풍기고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의 음악은 천장이 아닌 천상에서 내려앉는 아늑함이었다. 그는 누이가 말했던 신앙의 힘이 공기방울 속에 녹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난 내가 여기에 와 앉은 것을 상상이나 할까?’ 갑자기 그리움이 복받쳤다.


무오성 - 그날은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말씀이 있었다. ‘성경’과 ‘성서’의 차이도 모르는 그에게는 심오하면서도 난해한 말씀이었다. 목사님이 읽으신 요한복음은 정확히는 몰라도 이런 뜻이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 하심이요, 또 너희가 그 믿음에 힘을 입어서 생명을 얻게 함이다.’ 영혼을 구하려는 중차대한 목적이므로, 불확실하거나 오류투성일 수 없는 것!


‘아, 아니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목적이 숭고한 것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아직 논리학입문에도 가보지 못한 그의 논리로도 이건 아니었다. 세상에 숭고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오류투성이의 일들을 이 한 마디로 덮을 수 있다고? YH의, 수많은 공장의 숭고한 목적도 우선 제 굶주리는 가솔들을 먹이고 노동자를 고용해 그들의 굶주리는 가솔들을 먹이는 일 아니었나?


그러는 사이에 아름다운 선율의 찬송이 울려 퍼졌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모든 만물 신선해,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어둔 세상 지날 때… 아, 나는 여기에서 뭣하고 있는가? 못 배운 누나들이 여전히 어두운 세상을 헤맬 때.’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 그는 영생을 갈구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무엇인가 지금 이승의 어두운 삶을 위해 살아야 할 각오가 틀어 올랐다. 그는 이 사람들과는 한참 격이 다른, 그저 척박한 땅, 열악한 현세의 사람이었다. 그의 예의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앉아서 그녀를 기다려주고, 그리고 기숙사 앞까지 동행해주는 일이었다. 걷다보니 지난 소풍 때와는 달리 깨끗하게 잘 차려 입은 옷매무새가 눈에 들어왔다. 참 어여쁜 여자구나. 그러나 그는 그 성장을 교회를 위한 의식으로 간주했다. 짧은 오솔길을 돌아 기숙사 앞 잔디밭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가 고개가 떨어졌다. 두 번째 약속은 없었다.


잠시 뒤 그녀는 조금 과장된 당당한 발걸음으로 바로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선 기도시간이 막 끝난 참이었다. 그녀는 교회나들이 차림으로 단정한 얼굴을 하고서 점심을 먹었다. 어느 때 보다 열중하여.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리라. 숟가락으로 밥알을 모아서 퍼 올리고 얌전히 입으로. 국물은 숟가락의 2/3쯤 뜬다, 곱상하게. 반찬을 집어 들 땐 턱이 반찬을 향하지 않도록 시간적 여유를 둔다, 가능하면 미소와 함께. 주말 나들이로 여기저기 빈자리들 때문에 그녀의 꼿꼿한 자세가 더욱 돋보였다.


바로 그런 반듯한 얼굴로 그녀는 나머지 대학생활을 마쳤다. 절박한 조율이, 치유의 힘이 본능적으로 솟는 것에 자신도 놀랐다. 맑고 깨끗한,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보였고 스스로도 그리 믿을 만큼 단아한 젊은 나날이었다. 노력 끝에 성공한다는 말이 사실인 듯, 그녀는 졸업하면서 공립중학교에 부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슴 아리게 많은 것을 배웠다. 열서너 살 소녀시절엔 몰랐던 것들을. 그렇게나 철부지 얼굴 아래 가려진 그늘을 짐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 종일 깔깔 웃다가 지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는 왜 월요일이면 결석이나 지각을 해야 하는가, 누구는 왜 졸린 눈으로 멍하니 옆 사람을 지나쳐 보고 있는가.


*


그렇게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바로 손아래 여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문제가 거론되자, 집에서는 서둘러 언니인 내가 먼저 선을 보아야 한다는 성화가 일었다. 괜찮은 학교를 졸업하고 괜찮은 직업을 가진 남녀가 어색한 자리에서 만났다. 처음엔 매개에 대한 거부감으로 어색해했지만, 곧 교양 있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온통 의사집안의 막둥이라는 그 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뚫고 신방과에 진학한 자유주의자였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호와 연극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직업적인 전문분야 탓도 있겠지만, 단 한 번도 지루할 수 없는 알찬 시간들을 만들어주었다.


곧 남부러울 것 없는 약혼식이 있었다. 그러나 순탄치 않은 행로는 어정쩡한 파혼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내 몸의 불발에서 비롯되었다. 약혼식 이후 서너 번째 데이트에서 약혼자가 약혼녀에게 할 수 있을 입맞춤을 해왔을 때 난 너무나도 놀랐고, 놀람은 심각했다. 왜 그리 혼쭐나게 놀랐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갑작스러워서였을까? 상황이 나빴을까? 그대로 굳어버린 내 몸은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약혼 행세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각각 집에다 “결혼 후의 계획에 의견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대기로 했다. 집에선 동생이 먼저 결혼하기로 결정 났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선한다고,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지닌 어머니가 우기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일 년이 훨씬 넘었을 때, 옛 약혼자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엔 잘 될 것이, 그의 집안에서는 “의사공부만 하겠다면 어떤 여자라도” 된다 했다는 것. ‘파혼했더라도?’ - 이 말은 모욕적으로 들리기도 했는데, 아무튼 참 엉뚱한 발상이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리처드 버튼과 두 번 결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떠올렸던 것 같다. 한 여자와 두 번의 약혼을 두 번의 파혼으로 끝낸 카프카 생각은 접어두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나이 들어 의사공부가 한국보다는 미국에서가 더 용이하다고 했을 때, 집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아버지의 반대는 “미국”보다도 “한 번 깨진 그릇”이라는 원칙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머니는 대찬성이셨다. ‘아이들 하나쯤 미국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유행 따라서. 결국 파혼을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다시 약혼식을 하고 이번엔 곧 이어 결혼식을 치렀다. 시댁에 걸맞은 격을 갖춘 서울에서의 결혼식을 어머니는 정말로 만족해하셨다. “둘째 먼저 시집보내믄 큰 딸은 어렵다더니 웬걸….” 그런데 그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누구나 결혼한 여자는 결혼 당일의 피로를 잊지 못하리라. 떠들썩하고 벅찬 긴 하루가 지나고, 다소 과장된 한 껍질의 미모를 지우고 제 얼굴로 돌아올 때, 그것은 몸도 마음도 나신을 의미한다. 비행시간을 멀미기운으로 보낸 나는 숙소에 들어서면서야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이 신혼여행지로구나. 우리는 밤이 되면 신혼부부가 하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저녁 시간 내내 나는 우리가 영화나 텔레비전에서와 똑같이 서로 각각 샤워를 해야 하는 순간에 이를 것을 걱정했다. 누가 먼저? 나는 가장 덜 어색한 쪽으로, 그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기까지 가만히 내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자아, 신부님, 취침 시간이오. 레이디 퍼스트!” 하고 그가 가리키는 것은 욕실이었다. 순간 그 문제가 정해져버렸다. ‘신랑님 먼저…’라는 말은 목에 걸려버렸고, 나는 머뭇거리다 말고 욕실로 들어갔다. ‘밖에 있는 그는 그냥 의자에 앉아있을까? 설마 벌써 침대에 누었을까? 반쯤 벗고 와인을 마시고 있을까?’ 비누 거품을 내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 갑자기 나는 나의 나신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불현듯 제대로 샤워도 하지 않은 알몸을 누구에게 온통 주어버렸다는 생각에 경기가 났다. 그런 기억이 왜 송두리째 사라졌었던 것일까? 신입생 때의 먼 기억. 어쩌면 불의의 사고와도 같았던 한 날 한 밤의 기억. 그것이 아리게 되살아났다. 욕실 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신랑’과 함께 신혼의 첫날밤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신랑은 나에게 “침대에 누워서” 기다려주기를 청하고 욕실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서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는 그러나 더 이상 없었다. 그 대신 첫 남자를 배반하고 이제 간음을 행하려는 창녀만이 있을 뿐이었다. 안락한 미래의 결혼생활을 위해서 제 몸을 팔 준비를 갖춘 창녀. 누가 하루하루 몸을 팔아 살아가는 창녀만을 나무랄까? 이렇듯 마땅한 조건을 따라 결혼하는 여자는 모두가 창녀다. 그렇다 해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자신을 팔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가상키나 하다. 이날 밤, 과거의 첫 남자를 떠올리고 있는 것 자체가 참 악랄한 창녀성이다. 나는 그렇게 꼬옥 눈을 감고 있었다.


신랑이 점점 밀착되어 왔다. 그는 내 무감각을 그리 탓하지 않았다. 우리는 약혼-파혼-약혼-결혼의 대단원을 존중해야 했다. 나는 더 꼬옥 눈을 감았다. 내 몸을 잊고 먼 데 시간과 공간으로 날았다. 갑자기 그 옛날의 ‘그’가 내 몸 속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랜 망각 속의 그가 뜨겁게 내 몸 속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고,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밤새 나는 옛날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서투른 허영에 들뜬 철부지 여대생, “아니”를 연발하는 그의 무서운 실존의 고백을 듣고 당황한 어린 영혼이었다. 나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이상한 공존으로 시작되었다.


신혼의 우리는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댁에서 마련해준 아파트는 의외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가까웠다. LA 같진 않아도 사는 일엔 우리말만으로도 불편이 없지만, 공부를 하자면 영어를 수준급으로 습득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둘이서 같이 하면 잘 안된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내가 운전을 못해서 그냥 같은 대학의 어학코스에 등록했다. 그러다 내가 결석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를 포기한 나는 집안의 일상으로 돌아와 무료함에 던져졌다.


신혼 기간을 사람들은 임신 전까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기는 천천히 갖는 추세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적당한 몇 달이 흐른 뒤 아기가 생겼다. 어느 밤 ‘그’의 아스라이 그러나 불같이 뜨겁고 엄청난 압력이 온 몸을 꿰뚫는 희한한 느낌에 숨이 막히도록 떤 다음이었다.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난 나른한 봄날 나는 가만히 욕실로 들어가 배를 안았다. 나신은 차마 부끄러워 아랫배만을 드러내고 만져보았다.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엇이 일렁였다. 나는 그가 내 몸 속에 영원히 들어왔음을 느꼈다. 그날로 나는 남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임신이라고, 핑계는 그것이었다. 아기를 보호하고 싶다고. 남편은 기쁨과 혼란이 뒤범벅된 얼굴이었다. “어마 거참 잘 되었네. 병원 가서 확인해야지!” 친근하게 말하던 남편은 잠자리에서는 펄쩍 뛰었다. “아기를 보호해? 누구로부터? 제 아비가 누군데 보호 하느냐고!” 그러나 나는 창녀가 되는 느낌을 갖지 않고서는 남편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임신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그 동안 남편은 완전히 토라져 있었다. 처음엔 임신 히스테리치곤 별나다는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저었다. “어떤 별난 자식을 가졌기에”라는 으름장에서 “어느 놈의 자식인지 두고 보겠다, 검둥이가 나올지 흰둥일지 두고 보고야 말겠다!”는 악담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는 회복할 수 없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주역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뱃속의 아기가 부모를 함께 원하지 않는 경우라 했을지. 배는 불러왔고, 만삭이 되었다. 고향 떠난 이역만리에서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나, 시간은 정지한 느낌으로 해가 지고 또 해가 떴다. 눈이 흩날리는 날, 아기가 태어나려고 했다. 한국에서와 달리 남편들을 산실에 들여보내는 관습인 나라에서, 나는 펄펄뛰며 남편의 입실을 거부했다. 하얀 강보의 아기는 눈밭에 파묻힌 듯 쌕쌕거렸다.


남편은 내 “병”이 심하기는 해도 해산과 더불어 끝날 것이라 기대했었다 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해산을 통해 아기 이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저력을 잃었다. 이 새로운 꼬마신사와의 관계만으로도 버거웠다. 칠칠을 집는 관습대로라면 아직 큰 대문에 금줄이 걸릴 기간이었다. 결혼에 이른 “히스토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라도” 이혼만은 보류하자는 남편의 논리에 특별히 반박할 이유도 나는 갖지 못했다. 남편은 여전히 약간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있는 집의 조금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무엇도 아주 오래는 참지 못해했다. 남편은 내가 진자리에서 일어날 즈음에 말없이 아기의 여권을 만들어왔다. 떠날 수 있다는 신호였다.


아기와 함께 상당한 무게의 짐 가방을 찾아 들고 비행장을 나서는 기분은 이상하게도 안도감이었다. 늦은 봄, 하늘하늘 봄바람을 타고 소문이 빨리 흩어질까 걱정이었다. 우선은 친정나들이처럼 고향에 내려갔지만, 아기 주변의 부산함 속에서도 얼마큼 시간이 흐르자 이실직고를 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따로 나와서 직장을 갖고 아기를 기르는 삶을 생각하자면 고향에 머무를 고려도 해보았지만, 우선 어머니가 당신의 삶을 포기하고 딸네 집에서 아기젖병과 씨름하실 분이 아니었다. 나는 부지중에 어머니의 자존심을 좀먹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우선은 고향 멀리 서울 근교로 살 집을 찾았다. 언젠가 직장에 복귀할 궁리도 한 이유였다. 사표를 내고서 결혼했으니 새로 임용고사를 보아야 할 것이고,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 겁도 났다.


마침 남편이 여름방학이 되어 잠시 들어왔을 때, 함께 시댁에 불려갔다. 말없는 내게 시아버지는 아이이름의 통장을 건네주셨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끈이라는 것이구나. 시댁 근처로 이사하라는 ‘명령’에는 불복했지만, 대신 아이를 잠시 잠시 시댁에 데려다 주어야했다. 그것뿐이라면 내게는 과다한 행운이었다. 생활전선을 위해 내 아이를 다른 어머니에게 맡겨야하는 불행을 면했으니 말이다. 출입이 없는 생활, 종일 종알대는 아이와 보내는 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길었다. 밤은 깊어지지를 않았다.


그러는 사이 추상적으로는 세기가 바뀌고, 구체적으로는 강산이 변하는 십년이 흘렀다. 나는 고운 태를 훌렁 벗은 사십 세가 되었다. 그러고서 후다닥 놀랐다. 나는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낭비해버렸다. 내 시간은 정지한 채로 세상이 휙휙 지나가버렸으니까.


아이는 4학년. 이른 봄날 펼친 책에서 ‘억’이라는 수의 개념을 보고 나도 함께 놀랐다. 혼합연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니 3학년 때 세 자릿수 곱셈 때부터인가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아이는 대체로 시무룩했었다. 그제야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가 절실함을 깨달았다. 수학과 과학은 아빠가 챙긴다는 주변의 말들에도 신경이 쓰였다. 결국 아이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적지답사도 그렇다. 경복궁이야 데려 간다지만, 공주의 공산성이나 부여의 낙화암 등을 어찌 데려갈지. 『교과서를 만화로 공부해요』시리즈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빠의 역할과, 아빠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들아이를 이대로 어쩐다? 최소한 수학과 컴퓨터를 지도할 필요가 생겼다. 한참 큰 대학생선생님을 어려워하던 아이가 차츰 자연스럽게 ‘형’과 어울렸다. 아이가 배우는 틈에 나도 까마득한 기억을 되살려 컴퓨터 사용을 익혔다. 내 기호는 단연 ‘검색’이었다. 단순한 작동으로 이 무궁무진한 보물 길을 열면서, 가라앉았던 삶이 솜털처럼 부풀려 날았다. 하긴 내 관심이라야 기껏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폐부에 와 닿는 김현식도 임희숙도, 애절한 오현란도 몇 달을 넘기기 못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 옛 친구들의 이름을 검색 창에 쳐보았다. 동명이인이 줄줄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지만, 더러는 그 사이 시인이, 치과의사가, 그리고 또 무엇이 되어 있었다. 마흔 나이가 그런 것이었다. 가만히 그 이름이 떠올랐다. 무서운 유혹이었다. 그러기를 수십 번, 마침내 유혹에 굴했다. 서너 사이트가 떴다. 유전공학 전문, 혹은 근대영미소설 전공의 교수, 외국에서 활동하는 목사… 어느 누구도 그와의 관련성이 희미했다. 내과병원은 더더욱 아니리라. 뭘하고 살까, 그는?


그해 화창한 오월이었다. 컴선생이 약속을 미루었다가 왔다. 무슨 일인지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고 있었다. “늦게서야 신부님이 되셨는데, 우리 신부님이 그만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요, 그래갖고 일주기 추모미사 끝나고 몸이 성찮은 누님을 고향에다 모셔다 드리느라고요. 저희 한 동네 분이셨어요.”


나는 순간 고향말투를 듣고 있었다. 평소엔 무심히 들었는데, 지금 이 학생은 내 고향 말을 했다. ‘몸이 성찮은 누님?’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여 그 이름을 물을 수가 없었다. “향년 몇이나?” “향년이랄 게, 40대 초반요. 성당에서 어버이날 행사로 함께 운동하시다가 쓰러졌고요, 알고 보니까 지병이 있으셨답니다. 운동권으로 잡혀가 고생….”


‘그만, 그만 해라.’ 나는 그가 분명 법대생이었다는 확실한 기억 쪽에 매달렸다. 혹시라도 세상과 화해할 수가 없어 미리 피안을 살고자 성직자가 되었다 쳐도, 꼭 그 사람이 그 사람일까? 아니다. 김대건 신부님 이래 사제서품 받은 신부의 숫자가 4000을 넘는다는 구절을 어디서 본 생각이 났다. 그럼 확률은 1/4000이다. ‘미쳤구나, 과거의 모든 신부님들과 함께 확률을 셈해?’ 마음속은 점점 지옥이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자리에 들지 못한 나는 무심코 ‘마리아 막달레나’를 자판으로 치고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창녀가 되었던 여자의 내면은 암흑이었다. 내 속의 일곱 마귀는 누가 있어 쫓아내줄까? 나는 누구의 발에 향유를 부어야 할까?


화면에 티치아노의 <막달레나> 초상화가 떴다. 광야에서 참회하는 막달레나라는데, 모습은 죄인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염의 상징이다. 순 알몸에 늘어뜨린 긴 머리타래는 육욕을 증거할 뿐, 종교적 감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막달레나 시스터즈>라는 영화도 있다. 1960년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녀원의 일상. 거기 수용되는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위험한’ 여자들. 강간을 당한 뒤 아버지의 고발로, 얼굴이 예뻐서 남자들을 유혹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혹은 아기를 뺏기고 쫓겨난 미혼모 등이다. 수녀원부설 세탁소에서의 노동착취와 성희롱 - 왜 이런 것은 인종차별이 아닌가. 러시아의 수용소군도를,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애석해하고 비판하는 세력들은 뭘 했나?


막달레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찾는 강박관념은 어떤 욕망보다도 강했다. 나는 아메바의 세포분열과도 같이 거기서 파생된 단어들까지를 한없이 쫒아가는 중병에 걸렸다. 그것이 몇 년 째,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킨 적이 있다. 들켰다기보다는 의아심을 샀다. “너 갑자기 교회 다니기로 한 거야?” 그 다음해인가 『다빈치 코드』가 번역되었을 때는 일도 없이 『다빈치 코드의 진실』까지 사전편과 해설편 모두를 통독했다. 이상한 안도감으로 정신이 없던 몇 달, 친구는 또 걱정했다. “너 이제 반교회파야 뭐야?”


그 뒤로는 내가 말을 더 아낀다. 아직 누구도 모르는 자료들도 많다. 최근엔 프리드리히 헤벨이란 극작가의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작품을 찾아냈다. 표면적 도덕률 앞에서 파멸하는 인간들. 신부의 지참금에 대한 탐욕과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염려하여 약혼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는 약혼자, 그의 아이를 잉태하고서 유년시절의 연인을 사랑하는 클라라 - 옛 연인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임신사실을 알고는 뒷걸음친다. “그것에 관한한 어떤 남자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남자의 변명이 당시에 유행어였다니, 남자들의 고전임에랴!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었다. 제목은 막달레나라 하고서 왜 막달레나가 나오지도 않는가? 작가의 전기라도 훔쳐보아야 했다. 1818년 생 작가는 스물두 살에 함부르크에 나와서 곧 8년 연상의 후원자이자 연인이 된 엘리제 렌징을 만났지만, 빈에 머무는 동안 연극배우 크리스티아네 엥하우스와 결혼했다. 아내가 데리고 온 아들은 엘리제가 양육했다. 게서 18년을 자란 아들은 엘리제가 죽자 칠레로 이민 갔고, 28년 뒤 친모를 만나고자 귀국 길에 빈의 중앙역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니, 진정 친모자간의 연은 없었던 것! - 아니 이런 것을 찾고자 한 건 아니다. 기막힌 인생들에 매료되어 헛것에 심취할 뿐이다.


물론 이런 특별한 자료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폴더에 모아두었다. 서툰 영어와 더 서툰 독일어 사이트에서 뒤져내서 몇날 며칠에 한 단락 씩 읽어 모은 정보다. 엉뚱한 제목의 유래는 겨우 찾았다. 원래는 주인공을 따라 “클라라”라고 명명될 예정이었는데,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출판사의 희망에 따라 성서의 문제적 인물을 가리키게 되었단다. 출판사들의 상업성, 그것은 서적출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로구나. 글쟁이도 아니면서 괜히 허탈하다.


*


“부우부우 부우우우.” 휴대폰이 돌다 돌면서 이쪽으로 흐른다. 폰을 집어 들며 고개를 드니 느릿한 햇살이 밀려든다. “아직도 집이냐고? 그래, 간다니까. 아니, 뭘 좀 하던걸 마저. 그래 알았어.”


일단 컴퓨터를 닫고 미궁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언젠가는 이 폴더를 아예 벗어나야 하리라. 서둘러 머리를 빗으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 왜소한, 마른 장작개비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교인도 아니다. 정염과 신성을 공유한 막달레나 증후군? 말도 아니다. 나는 그냥 죄인이다. 비뚠 결벽증으로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나물 - <문학저널>  (0) 2007.11.01
조사 - <소설시대>  (0) 2007.06.30
오늘과 이별하다 - <PEN>  (0) 2006.10.01
행복한 수요일 아침 - <소설시대>  (0) 2006.05.30
춤꾼 - <소설시대>  (0) 2005.03.25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6. 12. 3. 20:43

 

내적 자유

                                                                                    『 만남』2006 (이화에세이)

 

 

 

“자유로” -

 이것이 올해의 에세이 주제로 추천된 단어이다. 그 동안의 특정 주제 “모교” 또는 “어머니” 등에 비해, 자유로운 주제에 대해서 첫 순간 자유를 느낀다. 자유는 사전적인 의미로,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대로 행동할 수 있는” 어떤 상태를 말한다. 그것이 피상적으로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나 자유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권을 누리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자유선거도 하고, 자유언론을 누린다. 자유교육을 받았고, 자유연애를 통한 자유결혼에 이르렀으니 사적으로도 자유로워 마땅하다. 나는 내적 자유에 따라 글을 시작하면 된다.


 

그럼 나의 내적인 자유 지수는 어떠한가. ‘정신이나 마음으로 누리는 자유’를 말하자면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움츠러든다. 예컨대 국공립학교의 교원은 학문연구와 강의에서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정치범 혹은 파렴치범이 아닌 다음에야 퇴출될 일이 없으니까. 사적으로도 느긋한 가족 구성원들 덕택에 자유를 제한당할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무엇인가가 나를 옥죈다. 조금 더 많이 연구하고, 조금 더 잘 가르치고, 조금 더 신망을 얻고, 조금 더 사랑받기 위해서 부단히 내 자유를 감춘다. 쉬고 싶은, 잠자리에 들고 싶은 유혹마저 뿌리치면서 책상에 앉아 있게 되지만, 그것은 자유의 이름으로 그렇다. 누가 꼭 그만큼을 강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탈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일탈을 꿈꾸지만, 꿈은 늘 추상적인 안개에 다름 아니다. 인간관계의 역할강제에서 거의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것 또한 자유의 이름으로 그렇다. 자유의 대단한 능력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 목욕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선다. 오랜만의 목욕 준비에 빠진 것이 많기도 하고, 또 이메일만 보고 가려다가 혹시나 학내문서까지 체크를 하려니 여러 번 들락날락 하다가 정말 집을 나선다. 모퉁이를 돌면 큰길이다. 벌써 골목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친다. 그때 손 안에 진동이 온다. 마지막 순간에 집어 들고 나오느라 전화기가 아직 손 안에 있었나 보다. 아차, 어제 이맘때 출근길에 받았던, 같은 이의 전화다. 두어 번 만난 소설가로, 누군가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물었는데, 집에서 쓰는 컴퓨터에 저장된 때문에 말해주기가 불가능했었다. 저녁에 전화해 주기로 했었는데…….

“아 네에, 안녕하세요. 저 오늘은 마침 집입니다.”

거짓말이 술술 나오다니 스스로 놀란다. 순전히 답전화를 하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이다.

“저 지금 컴퓨터를 켜놓지 않아서요, 제가 지금 열어 보고 곧 전화 드릴게요.”

이 말은 참말이다. 거짓말에 근거한 참말.

밖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어미의 발걸음으로 집안으로 쫒아 들어가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최근 들어 작동이 늦어진 컴퓨터가 안타깝다. 저쪽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으레 전화 담당은 나지만, 마음이 급한 김에 그냥 있어 본다. 남편의 목소리가 받는다. 이쪽에서는 누님에게 느린 위로의 변이다. 누님에게 단 하나 혈육이 미국에서 다니러 왔다가 다시 떠난 하루 이틀째 시간이었다. 이야기 끝에 나를 찾으시나 보다.

“집사람? 목욕을 가는가 싶던데요…….”

나로서는 그냥 숨죽이고 이 급한 일을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다. 거실 전화에 신경을 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바보는 손을 번쩍 들고 거실로 나간다.

“저 여기 있어요, 아직 안 갔어요.”

무슨 자랑인가.

“아니 여태 안 나갔소?”

그러고서 달려가 전화를 받으니, 딸이 미국 제자리에 도착할 시간이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소식이 없으니, 그쪽에 전화를 해보라는 당부이시다.

“제 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니, 본원에다 전화를 해야 하고, 그러자면 꼬부랑말을 알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자네가 좀…….”

“예, 예, 그런데 제가 지금 급히 하던 일이 있으니 잠시 후 다시 전화 드릴게요.”

사실 본원의 전화번호를 내가 알고 있을 리 없으니까. 여차여차해서 도착시간이 정확하게 언제쯤인가도 미리 알고서 전화를 해야 하니.

그러고서 서재로 달려와 컴퓨터에서 전화와 이메일주소를 찾아서 답전화를 한다. 내 급한 사정과 팔순 노인네의 더 급한 사정을 알 리 없는 그녀에게, 가능하면 바쁜 목소리를 내지 않고서 축하 말까지를 잊지 않는다. 작가가 책을 내는 일을 산고에 비하면 산모에게 모독이 될까? 어쨌거나 축하를 받아 마땅한 그녀였으니까.

그러고서 다시 누님에게서 미국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뇌의 코드를 얼른 바꾸고 혀를 꼬부려서 여전히 부자연스런 통화를 시도한다. “프롬 코리어”라는 키워드에 금방 느리고 똑똑해지는 친절한 상대 덕에, 누님의 외동딸이 “아직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지금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상황을 듣고 전해드릴 수 있게 되기까지. 숨을 적게 쉬면서 서둘렀지만, 목욕바구니를 들고 회항을 한 시점에서부터 쉬이 2,30분이 지나갔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던 이마에 어느새 미세한 땀이 배어나 있다. 이 땀만 아니라면, 그냥 바구니를 풀고 싶다. 다시 일어서서 대문을 나가거나 아니면 주저앉거나, 이 작은 망설임에 갑자기 자유의지가 멍해진다. 어느 쪽을 내가 원하는가.


살아간다는 것은 크고 작은 갈림길의 순간순간의 합계이다. 가도 안 가도 좋을 목욕이었으니 가도 안 가도 괜찮지만, 가다가 핸드폰에 돌아온 일, 와서도 그냥 있으면 없는 줄 알 것을 있다고 설쳐서 기어코 집 전화를 받은 일, 그런 순간의 선택이 하루아침을 숨차게 만들었다. 길에 서서 집이라고 거짓말을 했으니 집으로 내달려야 했고, 그 3,4분의 속도를 낸 것만으로 내 심장은 한참을 쉬기를 주장한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은 것 ― 그 이후로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자유의지가 작용한다고 믿는다. 필요한 일도 하지만 괜스런 일도 하고, 잘한 선택도 있지만 후회스런 경우도 많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다면 후회 따위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도. 더구나 후회스런 경우들은 꼭 기억에 남아서 다음의 선택들을 무겁게 하고, 그 때문에 또 자유라는 이름으로 감정적인 선택을 하게 한다. 하지 않아야 했던,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일들이 가슴을 조인다. 하지 않았던, 했어야 했던 어떤 일들이 가슴을 조인다.

그날 아침의 혼란스럽지만 나름대로 친절한 일들은 어쩌면 과잉이었다. 가던 길을 돌아와서까지 전화번호를 그 시간에 꼭 알려주어야 할 만큼 급박한 이유는 없었고, 시누의의 전화를 꼭 그 순간 자청해서 받을 일도 아니었다. 누님의 외동딸은 한 시간 남짓 지나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 모양이다. 그럴 걸,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며,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줄로 알고 산다. 그러니까 그 과잉은 옛날에 했어야 했던, 그러나 하지 않았던 어떤 일에 대한 평생의 보상 심리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리라.


과거의 시간들이 기억으로서 현재에 존재하는 한, 현재의 시간에 자유의 공간이 줄어든다. 미래의 시간이 기대로서 현재에 존재하는 한, 그 또한 자유의 공간을 줄인다. 과거 때문에도 미래 때문에도 자유롭지 못한 인간 존재가 여기에 있다. 나의 내적 자유여 ― 자판 위를 열에 들떠 떠도는 열 손가락들은 한 조각 자유를 토로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이름 석자의 피복 속에서 자유를 꾸며대고 있을까?

그렇다고 자유의지대로 되는 일도 썩 없다. 특히 창작의 경우, 그 노력과 고통만큼의 결과는 미지수다. 사람이 예술과 학문에서 완전한 독창적인 자유로 창작을 할 수는 없다던 에.테.아. 호프만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영감이란, 그 영감 속에서만이 창작이 가능한 법인데,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우리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보다 높은 원칙의 영향”이라던.

 

'수필-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이 있었던 것  (0) 2008.11.20
구멍 난 옷  (0) 2007.12.01
움직이는 긴 그림자 - <문학공간>  (0) 2006.09.20
내 딸의 어머니  (0) 2005.11.03
교집합과 합집합 - <문학사상>  (0) 2005.10.15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6. 10. 1. 23:30


오늘
이별하다



제법 따스한 기운이 스미는 시간, 낮이 겨워서야 깨어난 그녀는 우선 창가로 간다. 고목이 된 호야 줄기는 마른 등나무같이 완강했다. 창 아래 여린 연둣빛 봄이 지나도록 그는 새 순을 거부했다. 좁은 창으로 빨아먹는 햇볕에도 초록 잎을 나름대로 번득이던 지난 여름의 기세와는 사뭇 달랐다. 잎사귀 형상만을 간직한 채 드문드문 매달린 그것들은 플라스틱 모조 잎에 다름없었다. 아예 톡 부러지지 않을 만큼의 물기가 남아있기나 한 것인지, 겨울을 버티어낸 것만으로 고맙기도 했다.

그녀로서는 그렇게 식물 따위에 뭔가 주술을 걸어둔 자신이 야속했다. ‘해마다 꽃을 피워다오, 그러면 어쩜…….’ 막연한 기대요, 맹세였다. 혼자서 새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강아지도 금붕어도 없는 집에서, 그녀 말고 생명을 가진 것이라곤 이 작은 화분뿐이었다. 꽃은 없어도 맹목적으로 뻗어 나가는 줄기가 막연한 희망에 이르게 할 것처럼, 마치 누군가와의 수 미터 수백 미터의 거리를 단축해 줄 수 있을 것인 양 기분 좋은 식물. 그것이 그 초여름에 형언할 수 없는 귀한 꽃을 피워냈었다. 호야꽃이 피었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건 그저 덩굴식물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듯 화분에 갇혀 아무렇게나 자라는 식물에도 환상이 숨어 있었다니! 누군가를 집에 불러서 증인을 세워야 했을 일이다. 그 첫 해에, 그때는 도무지 안팎으로 흥분상태에서 꽃들이 지는 줄도 몰랐다. 간신히 매달린 잔 꽃대들 몇 개를 두고서 괜히 주술을 걸었을 뿐이다. ‘해마다 꽃을 피워다오, 그러면 어쩜…….’

천천히 씻고 아무 거나 요기를 한다. 그래도 시간은 남는다. 말을 나누지 않고 움직이다보면 시간이 참 많이 남는다. 문화센터에 가는 요일도 아니다. 그녀에게 일이 시작되는 저녁까지는 길다. 정사각형 작은 식탁 겸 책상에 앉아서 초소형 노트북을 펼친다. 그녀의 재산목록에 드는 품목이자 친구다. 여러 가지 물음에 꽤 친절한 응답을 해주는, 이만한 상대가 또 없다.

“호야. 용담목 박주가리과 호야속 식물. 덩굴성이며 늘푸른 여러해살이 풀. 줄기는 갈색이고,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다육질이며 광택이 있다. 꽃은 5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꽃자루가 나와 산형꽃차례를 이루고 반구상으로 달리며, 향기가 있다.”

‘것 봐, 꽃이 피잖아.’

“꽃잎은 흰색으로 별 모양이고, 중심부는 담홍색이며 광택이 있으므로 아름답다.”

‘아닌데, 연한 분홍색이었는데.’

상관할 바는 아니다. 백과사전을 어쩌지는 못한다. ‘책에 써 있다’ 하면 모든 근거가 되는 법인데, 하물며 백과사전의 글인데. 보통은 흰색 꽃이겠지만, 그녀의 호야는 연하디 연한 분홍빛일 수도 있다. 그렇게 큰 꽃대 끝에 잔 꽃대들이 살만 남은 우산대 모양으로 뻗어 내리고, 그 끝마다 별 사탕보다 작은 꽃들이 하나씩 붙어 피어나서 스물 서른씩이 어울려 한 송이를 이루는 것도 처음 보았다. 그것을 산형(繖形)이라 하는 것도 처음 듣는 소리다.

오늘의 걱정은 꽃이 아니다. 그 늘푸른 여러해살이 풀이라는 게 아예 새 잎 하나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식물이 땅속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소생하는 것을 그는 신비한 ‘오시리스의 신화’로 이야기 해 주었다. 식물의 동면은 여동생이자 아내인 이시스가 죽은 오빠이자 남편을 찾아 지하로 내려가는 기간으로 설명된다고. 난생 처음 듣는 먼데 신화 이야기에 감동한 그녀가 그만 호야꽃이 피는 것에 그 마음의 부활을 걸었나 보다.


*


“어쩌다 끝나는 거야, 언제 어쩌다가, 왜?”

불안에 들뜬 영혼들은 의심에 들려 허우적거린다. 내 가게에서 보게 되는 그녀들은 대개가 그런 의심에 들린 때쯤이다. 사람 사이를 의심하고 괴로워하기 시작할 때다. 언젠가 한두 번 그녀들은 내 가게에 남자와 함께 들렀을 것이다. 남녀가 그렇고 그렇게 다닐 때에는 내가 특별히 주시하지 않는다. 흔한 것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사랑한다고 느끼며 팔짱을 끼고 혹은 팔짱을 끼지 않고 다니는 남녀이니까.

나는 그러니까 흔한 말로 카페 마담이다. 내 경험으로 보아, 언제부턴가 차를 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남녀는 흔치 않다. 대개가 옆자리를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가운데 오뚝한 테이블과 의자들은 멀쩡한데, 가장가리 쪽 소파들만 더러워지고 꺼지기 시작했다. 때 국물이 찌든 소파를 당목으로 대충 씌워놓아 허옇게 볼품 사나워도, 역시 그쪽이 인기였다. 등 뒤로 걸린 싸구려 액자 속의 그림들도 그들에겐 별반 트집잡히지 않았다. 연필로 확대해서 그린 얼굴 부분이나 아무렇게나 드로잉된 나체들의 곡선은 오히려 가끔 칭찬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것이 실제로 미대에 입학도 해보지 못한 내 솜씨라는 것을 안다면 어떨지? 그걸 밝힐 이유도 틈도 없이 날은 오고 날은 갔다. 대관절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사람들은 관대하다. 마담이 평범할수록 드나드는 여자들이 좋아한다. 장사는 그런 틈에서 되어 간다. 물장사라니,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밥장사보단 일단 편하다. 아니 나는 반찬냄새를 많이 싫어한다.

돈을 벌면서 내가 굳이 독한 취미를 가져서 그들의 속내나 들여다보려는 건 아니다. 그냥 오랜만에 나타난 그녀들이 처음엔 맥주 한 병 쯤으로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 시들해 한다. 짐짓 염려스런 표정의 친구는 기실은 반질반질한 눈빛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고통의 주인공이 이런 저런 것을 개의치 않고 있으면, 그때 난 알아차린다, 벌써 심각한 상태로구나. 앞에 앉아 귀 기울이는 친구나 건성으로 보이는 마담에게서, 그러니까 상대의 본성에서 비뚤한 기쁨을 읽어낼 여력이 없는 것이 그 시기의 특징이다. 아니 그들의 특징이다. 멍청한 것들!

“사랑? 그런 것에 들리거나 환상을 갖는 사람들은 열등하다.”

한번은 한 남자가 그런 섬뜩한 발언을 해댔다. 비슷한 또래 어중간한 남자들 셋에 여자가 하나 섞인 그런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추가 카프리를 들고 가던 참이었다.

“핑카라는 언어학자 말이, 우리의 심리적 모듈은 차에 치여 네 다리를 쑥 뻗고 나자빠져 있는 죽은 동물의 부어오르고 갈라진 뇌의 틈새보다 더 뒤죽박죽이라오.”

핑크, 또는 핑커 그 비슷한 이름이었지만 그건 대수가 아니다. 내가 들은 건, “나자빠져” 어쩌고 할 때부터야 분명했다. 어려운 단어 “모듈”도 나중에 채워 넣어 알게 된 단어다.

“그게 마인드라는 것인데, 왜 사내들은 서로 결투에 도전하는가, 왜 사내들은 전처를 살해하는가, 다 그 탓이라오.”

아니 이 남자가 웬 말을? 전처를 살해한 과거를 가졌을 리 없는, 아니 전처라는 단어를 모를 법한 이 남자가. 처와 마찰 중?

그러면서도 나는 실은 그 이상한 논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인드’는 뭔가 어렵고 애매했지만, 일단 전체적으로 은근히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해볼 계획도 없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한 몸 멀쩡한 듯 살아가기도 힘들다. 사랑 같은 것은 시간 남고 배부른 사람들이 찾는 진한 양념이다. 밥냄새도 반찬냄새도 싫은 내게 자극적 양념은 더더욱 필요 없다.

나는 근처에서 얼쩡거리려고 옆 테이블의 냅킨그릇을 들었다 옮겼다 했다. 말하던 사람은 하이네켄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 그 상표를 들었을 때, 혹시 하이네 이름을 따서 지은 캔 맥주인가 생각했던 어리석은 기억이 늘 따라다녔다. <로렐라이> 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를 지었다는 하이네. 누군가 하이네켄을 찾으면 그 사람도 혹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게다가 제대로 못 배운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난 자꾸 이 유식한 남자에게로 신경이 쏠렸다. 아니다, 꼭 그건 아니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유식하기로 치면 너나 할 것 없으니까.

차츰 알게 된 것으로, 그 말을 내뱉은 사람도 언어학자라 했다. 언어학자라면 국문과 교수와 다른지, 국문과 교수는 소설가와 다른지, 어느 것도 잘 모르던 나에게는 그것이 그것이었다. 온통 유식한 사람들. 그들의 낮 세계와 동떨어진 나는 그들의 밤의 틈새를 훔치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쨌거나 인형가게에 들르는 호들갑스런 대학생들 보기보단 낫고, 왠지 영화나 브라운관이 내게 가까이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후후, 낄낄거리는 소리에 저 쪽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근처에서 몇이 내는 소리였다. 비껴 옆의 여자를 흘끔거리는가 싶다. 여럿의 눈길이 머무는 쪽은 여기선 꽤 단골에 속한다. 동그란 얼굴에 단발머리를 고집하고 앞머리까지 동강 잘라서 내린 여자로, 사랑병에선 꽤 중증이다.

여자는 홀에 들어서면 곧 왼쪽으로 굽으면서 제 자리를 훔친다. 실은 ‘거기’로 출입하는 길목이라서 별 인기 없이 늘 비어있는 자리인데도. 여자는 앉으면 의자 등부터 쓰다듬는다. 등의자를 통째로 씌운 희멀건 당목은 몇 번이고 세탁한 나머지 제 남자의 체취는 온데간데없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가 행여 뭔가 호주머니의 먼지 부스러기라도 떨쳐놓고 갔다 해도, 내가 아직 세탁을 안했다 해도, 의자를 스쳐간 숱한 여자들의 머리카락도 함께 묻어있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슬며시 웃어주면, 여자는 자신을 알아주어 고맙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아니면 알아보는 것이 무색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리곤 곧 멍하니 고개를 떨군다.

여자가 주문하는 것은 남자랑 마시던 버드와이저에서 이런 저런 칵테일로, 다시 데낄라로 바뀐 지 오래다. 앞자리에 앉아 고민을 들어 줄 친구도 있다 없다 한다. 친구의 수는 술잔과 반비례한다. 마스카라가 번진 한 쪽 눈두덩이 때문에 저쪽 테이블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나 보다. 여자는 아랑곳없다. 손등의 소금을 핥다가 뭉개진 검붉은 입술이 영 서글픈 정취를 발산한다.

“자 얼른 일어서지! 오늘은 더는 안 되겠어요. 알바들도 다 퇴근해야 하고, 이제 곧 셔터맨이 올 시간이야. 내 남자는 여자 이런 꼴 못 보는 신사거든요. 업어다주려다가 동티나게? 장군아, 아니 멍군 네가 이 손님 좀…….”

그녀들이 뜸한 날엔 장군과 멍군이 심심해한다. 알바 아이들이다. 하나는 장 뭐라는 아이가 맞다. 나중에 온 녀석이 내가 선임더러 “장군아” 부르는 소릴 듣더니 저는 멍군으로 부르라 해서 그냥 그리 되었다. 이곳에선 호적상의 이름 같은 건 아무도 관심 없다. 이런 곳 이런 시간에는 얄팍한 거짓이 일상이다. “내 남자는 신사”라고, 후후? 혼자 사는 여자 행색이 이런 곳 이런 시간에 어울리지 않아서 멋대로 창조된 남자일 뿐이다.


나는 카페에 오는 멍청한 남녀들의 어리석음을 적당히 비웃는다. 그리고는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은 나는 내 비밀을 푼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숲에 나가 소리칠 데가 없는 세상에 살자면, 그런 세상을 미치지 않고 살자면, 이런 컴퓨터란 이름의 대숲 창고가 참으로 다행이다. 암호만 걸어두면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내 글〉. 그것은 내 고백성사요 어쩌면 종부성사가 될 것이다. 누구라도 열지 못하는. 물론 해커인지 뭔지 엄청 대단한 기술을 가진 아이들은 누구의 어떤 파일도 다 연다지만, 누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인재들을 동원해서 시답잖은 나의 〈내 글〉을 열어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안심이다.

나는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자유 그 자체다.’

‘거짓말, 그건 외로움이야.’

내가 한 마디 적을 때마다 허수가 토를 단다. 나는 정해수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었지만, “해수애비”로 통하는 아버지 때문에 늘 ‘허수아비’라 놀림 받았다. 어렸을 때 나는 내 이름이 정말 허수인가 할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왜 ‘정 선생’도 ‘정 씨’도 못되고, 늘 그렇게만 불렸을까? “해준에미야” ― 할머니가 그렇게 부르는 엄마는 다른 아이들인 해정이 해은의 어머니였다.


나는 그냥 내 이야기만 하기로 한다. 허수도 조용하다.

내 처음 직업은 경리였다. 경리직원 정양이 사장님과 사모님에게서 도망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피스텔은 실제로 그들의 체모로는 슬그머니라도 나타날 수 없는 곳이었다. 빌라 아니면 대형 아파트 단지 또는 호화로운 호텔의 로비가 그들의 세계였으니까. 돈이 적은 대로 단독 2층을 세 들어 살 수도 있었겠지만, 제대로 된 살림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내 생활 또한 오피스텔의 생리에 맞았다. 어딘가에서 김치찌개나 감자 넣고 비릿한 생선 끓이는 냄새가 넘어 들어오지 않을 잠자리 ― 그건 건 바로 이런 종류였다.

내 자신의 몰골을 이곳에 맞추려고 무진 애를 쓴다. 어디에 살건, 누군가가 삽을 들고 나와서 퍼 내 버리고 싶은 개똥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물론 처음 바로 술집을 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빵집을 내서 빵을 가져다 판다거나, 액세서리 집을 내어볼까 궁리에 궁리를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던 경리직원 생활을 접은 순간, 제발 아침엔 늦잠을 자고도 살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 어린 시절 이래 늦잠 한번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서 어머니, 그러니까 해준엄마를 거들어야 했던 건 순전히 할머니 때문이었다. 그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할머니가 참 고마웠다 싶었지. 붓기를 잘하는 해준엄만 조그만 내게 많은 것을 의지했고, 그래서 나를 미워하지 않았을 거야. 쓸모 있는 딸을 미워할 계모는 없어, 아주 심성이 비뚤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은 제 할 탓이다.”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아무데서고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그랬다 난. 그렇지만 일찍 철들어 살림을 도맡았던 어린 시절은 내게 찌든 찬장냄새도 심지어 밥이 익어가는 냄새도 다 싫어하는 괴벽만을 남겼다. 난 정말 음식냄새가 싫다. 사람이 음식냄새를 싫어하면 뭔가, 반은 죽은 목숨이다.


야간 상고에 진학한 것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새벽부터 집안일과 아이들 챙기는 일 끝나고 나면 다시 집안일. 새엄마는 부성한 발등을 하고 겨우 앞마당 뒷마당으로 뒤뚱거리기 일쑤였고, 한낮이 겨워야 숨을 돌리고 마주 앉은 밥상에서 내겐 항상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학교엘 못 가 어쩐데냐, 야간이라면 또 모른데, 하긴 야간은 또 집이 멀어 통금되게 생겼고…….”

“늦는 건 안 무서운데,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렇게 해서 일년 늦게 야간 공부가 가능했다. 천장이 높고 썰렁한 교실은 참 고상했다. 우선 퀴퀴한 음식냄새와 멀었다. 누군가의 피아노 연습 소리도 서툰 대로 고상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짓고……. 그러다가 어두워진 저녁 시간 교실만 밝은데, 노래공부는 교실을 천상으로 바꾸었다. 영어를 읽어도 잘은 모르지만 무슨 신기한 노래 같았다. 그 대신 답이 확실한 산수와 수학시간이 즐거웠던 나는 정작 상고 시절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의무가 되고 수단이 되려니까 그랬을지.


그나마 제대로 졸업을 했더라면 이보다는 나은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새엄마는 내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새엄마가 인생에 썩 도움이 된다는 이야긴 들어 본적이 없으니 크게 억울할 거야 없다. 어쩌면 새엄마가 병만 처지지 않았어도……. 새엄마는 그 살림으로는 죽느니 비슷한 병을 앓았다. 살아서 피를 걸러내야 하는, 일주일분 온 식구의 생활비를 혼자서 다 써야 하는 병을.

남은 한 학기를 못 마치고 학교를 접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담임선생님이 알선해준 경리 자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듬해에 복학해서 남은 한 학기를 졸업하게 해주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고도 직장을 옮기는 배은망덕한 꿈은 감히 꾸지 않았다. 웬걸, 대학에는 내가 책임지고 보내주마 하던 사장님.

사장님은 친절했고 그리고 도둑이었다. 어려서 죽은 딸만 같다고, 공부하라고 마련해준 뒷방은 분에 넘치게 감사했지만, 수능시험 준비를 할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밤낮없이 일감을 들고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난 어느새 나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나쁜. 머리는 썩지 않았다. 사모님과 결산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믿었다.

“절대로 나타나지 않겠어요, 마침 결혼하자는 남자친구가 있으니.”

거짓말은 서로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전 그냥 아무 내색 없이 시집가겠어요, 사모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나름대로 목돈을 가지고 궁리를 하면서 준비한 것은 봉제 인형들을 들여다 파는 작은 선물의 집이었다. 대학을 그렸던 마음이 대학동네를 흘끔거리게 했다. 그러나 대학가 길목은 너무 비쌌고, 한두 블록 떨어진 미용실과 PC방 사이, 딱 한 팔 너비의 가게는 장소를 잘못 고른 셈이었다. 미용실에서 내다 널어놓는 수건 빨래걸이와 PC방 앞의 두들겨 패는 놀이판들 사이에서, 내 흰곰들은 누렇게 변해갔다. 너무 심심하면 나는 그놈들을 스케치했다. 그도 심심하면 바깥에 스쳐가는 사람들을 그리곤 했다. 가끔 점심 먹으러 가는 떡볶이 아줌마는 차라리 소주방을 하라 했고, 미용실 아가씨들은 빠를 하라고 했다. 떡볶이 아줌마는 다시 새벽 해장국집을 권했다. 모두가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는 세상이랬다.

“대학가에서 곰인형이 뭐야. 그런 건 요샌 초등 애들도 별로야.”

“생긴 것과는 참 다르네여…….”

이건 미용실 아가씨 말이었다.

“내 생긴 게 왜 어때서여?”

말꼬리를 흉내 내자 모두들 피식 웃었다.

“머리를 더 길러서 확 층을 내고, 앞과 옆은 과감히 흩트려서 볼륨을 넣고 좀 섹시하게 연출한다면!”

“한다면?”

“한다면, 영락없는 카페 마담 스타일이지여.” 젊은 것 같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그런 분위기가 여러 층의 사람들을 사로잡는다고! 미용실 아가씨는 모처럼 전공을 살리게 되어서인지 말에 기운을 얻었다.


그들은 내가 인형들에 집착했던 이유를 알 리 없었다. 아버지 없는 아일 상상하기 무서워서,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내 스스로가 무서워서 미리 포기해버린 내 미래의 아기. 난 인형들에서 사라져간 아기의 영혼의 파편들을 만난다. 동그란 눈도, 찌그러진 눈도 가능했을 내 아기. 눈웃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갈색 곰, 놀란 토끼 눈처럼 만들어진 아기 곰. 앞치마까지 차려 입은 엄마 곰. 곰 가족, 내 인생에는 있을 수 없을 가족, 엄마와 아빠와 아기.

할머니는 처음 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는 내게 당부하셨다.

“여자는 버스를 타거나 어쩌거나 항상 양 무릎을 떼어선 안 되느니.”

그 “어쩌거나”가 무슨 의미였는지는 이미 무릎이 젖혀진 뒤에서야 깨달았다. 강요가 있었지만 뭔가 자포자기적인 충동과 얼버무려진 혼돈. 누구든 치를 것에 대한 겁 없는 대처이기도 했다. 대학의 꿈을 접지 못한, 겨우 스물한 살 때였다. 가벼운 행동의 결과는 증폭되어 나타났다. 규칙적인 피흘림을 단 한 달 걸렀을 때, 난 미련 없이 아기의 가능성을 차단하기로 결심했다. 평상시 뭉클하게 쏟아지던 행사 정도에 그칠 그냥 피의 덩어리일 뿐일 그것을. 어디에서도 제대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 그것을.

“내참, 의사 생활 몇 년인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긴가민가 하는 상태에서 떼 달라 조르는 아가씨도 다 있구먼. 새파란 나이에 뭐야.”

“병적인 순결집착증 아닐까요, 원장선생님?”

“쉿, 들릴 지도 몰라. 대충 마취한 거잖아, 별 꺼낼 것이 있기나 한지 원.”

‘미친 것들! 순결집착증이 있는 여자가 이 모양 이 꼴로 여기 누워 있겠냐! 미친 것!’ 그렇게 속으로 속으로 이를 악물고 외쳤다. 치욕은 자진해서 다리를 벌린 그곳에서 더욱 심했다. 월급을 주는 남자와 월급을 받는 여자 사이를 통째로 의심하던 나에게 그들 또한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미친 것!’ ― 이 말은 내 입버릇이 되고 말았다. 저기 저렇게 술병을 앞에 두고 너덜거리는 군상들을 보면, 아무에게나 그렇게 내뱉었다, 미친 것!


오늘도 그녀다. 반듯한 외모에 강사씩이나 된다는데, 여기 와서 만날 넋두리다. 대학에서 선생을 하는 여자라니, 내 처지로 보면 하늘이다. 그런데 밤에 보면 별 것도 아니다.

“같이 보따리장사 시절 동병상련 가까워 졌었지…….”

보따리장사란 여기 오는 사람들 용어로 시간강사다. 남자가 신임교수가 되자마자 여자가 채였단다. 어지간히 뻔한 일이다. 박식한 박사들이 널린 세상에서 결정적인 것은 ‘전임’이라고들 했다. 첨엔 나도, 시간강사는 하루 한두 시간만 하고 전임강사는 온종일 하는 강사인줄 알았었다. 대학가 근처에선 배워지는 것도 많다. 또 강사와 교수가 무엇이 다른지, 다같이 대학교의 선생님들 아닌가. 한번은 두 비슷한 남자 둘이 앉아서,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교수님”이라 호칭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에게 꼭 “선생님”이라고 해서 의아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 쪽은 시간강사이고 교수님 쪽은 전임강사란다. ‘선생님’이 가장 높여 부르는 것인 줄 알았던 나는 매번 놀랬다. 어느 고장에선 ‘전(前)대통령’보다 ‘선생님’이라고 해야 존경심을 나타내는 줄 알기도 하는데.

아무튼 “결정적인 순간에 이 남자가 좋은 혼처에 안착해버렸다”는 것이다. 남자는 결혼 후로도 “마음만은……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는 오직……” 하면서 여자에게 기댔더란다. 습관에서 탈피하지 못하듯이 꼭 그렇게 그녀는 그의 곁에 남았고. 그가 원하면 달려갔고. 완벽하지 못한 그의 결혼에 마지막 화룡점정이 되어도 좋다고 느껴질 만큼 그는 그녀를 간절하게 원했었다고. 그러더니 코가 비뚤게 술을 마신 어느 날 느닷없이 그러더란다, 날 좀 놔주지 왜 이러느냐고, 알고 보니 여잔 다 같은 수준이더라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 자식, 논리가 대단했어.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내가 그를 원한다, 유부남을.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을 나에게 내어주느라 죽을 지경이다. 반대로,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하지 않겠는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원이니 내가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것도 술 핑계로 그런 논전을 걸어왔다니까.”

‘그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겠구나, 너, 미친 것아!’

밖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소리가 나온다.

“어마 그럴 리가……. 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요. 어쩜 예민한 아내 쪽에서…….”

나는 마음에 없는 말로 사회적 웃음기를 흘린다.

“야아 그놈의 말장사, 보따리장사. 누가 그 말장사를 따라가겠어. 나요? 나도 강사 아니냐구요? 그래요, 저나 나나 같이 보따리장사였죠. 하지만 난 화학이요. 우린 말장사라기보다는…….”

알만 하다. 마담 퀴리가 되려는 듯이 화학과에 진학하는 여학생들. 공부는 잘 해도 인간미 없을 확률이 높은 똑똑한 부류. 보아하니 땅딸보도 아니고. 공부도 잘하고 예뻐서 같은 반 친구들 꽤나 마음 다치게 했었겠다!

그런 여자들은 죄 없이도 좀 당해도 싸다. 왜, 공부도 잘하고 예쁜 부잣집 딸이면 더욱 뒤틀린다. 그 중 하나도 갖지 못한 열여섯 살짜리 여자애들을 그들은 모른다. 중학교 졸업 후 희망이 끊어진. 갈아입을 여러 벌을 다 포기하고서도 제대로 된 옷 한 벌을 만져보지도 못하는 열여섯 살 여자애를. 함부로 청바지를 입고 싶지 않고,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서 무통 다리에 스커트를 입고 싶어 하는 스무 살짜리를. 애매한 미소 속에 술을 팔아 살아가느라 겉 나이 먹어가는 여자를. 서른도 전에 마음 닫아 건 여자를.

어쩌나, 난 그 병을 지금도 못 버렸다. 대학가 가까이 집을 구하고, 요조숙녀에 가까운 대학원생쯤으로 보이기 위해서 살짝 긴 컷을 고수하는 것 하며, 향수도 레이스 치장도 피하고, 가능하면 직선 라인을 선호하여 몸매의 곡선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며……. 올빼미족을 상대로 술을 팔아서 먹고사는 여자가 사무실 분위기의 오피스텔에는 어떻게 맞추느냐고? 그건 간단했다. 오후 출근길에 노출 없는 깔끔한 옷과 맨얼굴이면 통과였다. 밤늦은 시간에는 보는 사람들이 적다. 또 술을 팔되 술은 아예 하지 않는 원칙이다. 바보들이 사랑에 빠지듯이, 바보들이 술을 마시니까. 난 바보가 되고 싶지 않다.


‘저 바보는 또 왜 이리로 오는 것일까?’

이번엔 굵은 웨이브의 긴 머리. 어디선가 술에 젖어 온 그녀는 들어오면서 바로 주인인 내가 왜 그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이 그림 아래, 여기서 그가 나를 무릎에 뉘인 적도 있었는데.”

그때 실은 많이 취해서는 아니고, 그들은 술은 많이 하지 않고 토론을 즐겼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은…….”

그녀가 말끝마다 내뱉는 유럽 사람들 마냥, 그 둘은 한 잔 놓고 앉아서 오래 떠드는 부류였다고 기억된다. 그녀의 남자 또한 기억한다. 왜, 무처럼 희멀건 얼굴에 안경테는 검은, 상투적 샌님. 다만 잘 코디도 안 된 채 입는 캐주얼한 복장이 얼핏 자유의 냄새를 풍겼을 뿐이다. 그 정도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인물은 실로 널려 있다.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그녀가 사랑에 빠졌을 뿐이다. 멍청한 것!


나는 멍청한 남녀들의 어리석음을 한껏 비웃어준다. 지열이 가시면서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은 나는 내 비밀을 푼다.

비밀? 비밀이라 할 밖에 없는 것은, 세상에서 알 리 없고, 그 사람마저 알 수 없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다. 일층 편의점에서 햇반을 집어 들다가 만난 사람을 스물 네 시간 안에 다시 마주치면 누구라도 일순간 가슴이 움직인다. 역시 일층 문방구 계산대에서 부딪친 그의 바구니에는 말갛게 비치는 홀더 뭉치와 작은 집게 한 통, 그리고 연둣빛 형광펜 옆에는 놀랍게도 연필과 지우개가 들어 있었다. 연필? 요새도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딱풀과 크레용 그리고 작은 가위. 그 사람 역시 나를 따라서 내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어쩌나, 나를 초등학교 학부형쯤으로 보았으면 어쩌나? 내 가능한 아기가 만일 태어났다면 초등학생쯤일까?’

무슨 대수였을까? 어떤 남자가 연필로 연애편지를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곤 하거나 말거나. 처음으로 마주친 그가 그 가벼운 차림의 몰골로 미루어 같은 오피스텔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피스텔의 생리가 무엇인가? 옆방에서 통절한 싸움이 나도 모르도록 되어있는 구조를 즐기려는 것 아니었나? 홀더와 작은 집게들,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를 사서 햇반을 먹으며 일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나 또한 딱풀을 사서 얇은 화장지로 부챗살을 덧바르고, 종이가 완전히 마르면 파스텔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 넣을 참이었지만, 낡은 부채를 버리지 않고 붙이려는 나를 누가 관여한단 말인가. ‘어머나, 대단하다, 말끔히 새것이 되었네!’ 혹은, ‘처음보다 더 예쁜데!’ 하고 감탄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괜한 짓 하고 있구나, 거 뭐한다고 헌 부채를 가지고 몸살이냐!’ 그렇게 핀잔할 사람마저도 없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대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혼자다. 혼자라서 이곳에 산다. 이렇게 좁은 공간을 선택한 것이 돈이 적은 이유에 겹쳐서, 마치 사람들이 싫어서 반드시 혼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시위하려는 몸짓들 같다.


난 정말이지 다시 집으로 갈 순 없었다. 떠나올 때와 너무 달라진 나 자신 때문이기도 했고, 생모도 생부도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집이 집은 아닌 것 같았다. 독립을 위해서 야멸차게 받아낸 큰 돈도 있었다. 물론 내 경우로 큰 돈. 그 돈으로 수고로운 몸을 뉘일 작은 집과 밥을 벌어먹을 가게를 꾸린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내가 이쯤이면 스스로 대견하다. 그 나름대로 대도시, 이런 곳에서 누군가에게 생활을 의탁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난 혼자서 잘 산다. 무엇을 특별히 기대하지 않으며, 그래서 무엇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야간에서 만난 친구들이 보통 그랬다. 기쁨과 슬픔의 표현이란 인문계 고교로 진학한 순진한 아이들, 있는 집 아이들의 것이었다. 우리에겐 미래의 꿈은 먼 것이었다. 우리에겐 우선 현실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 또한 지독한 현실에 내팽겨졌다가, 겨우 이리로 숨어들었다. 상의할 형제도 없이, 친구도 없이, 난 한 격랑을 탈출했다. 내가 만일 이제와 그들을 찾는다면, 만일 그런다면, 그들 중 누구라도 내 이상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길 것이다. 더한 불행들이 부도덕한 소문쯤을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내 불행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정말 힘들어지면 누군가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나만큼 외롭고 무미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다들 성공(?)해서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 또한 가슴 아플까?

나에게 더 아플 가슴은 없다. 처음부터 잘 발달되지 못한 내 정서다. 애정 없이, 아니 증오심과 함께, 상당기간 몸을 버렸고, 내 몸은 굳었다. 피기 시작하지도 않고 시드는 꽃.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감동적인 안치환의 목소리로 들은 노래가 가슴을 저몄다. 고향의 옛 시인이 쓴 가사라 해서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내 고향엔 내 이른 죽음을 서러워할 사람도 없다.

꽃봉오리들이 다 피는가? 다 못 필 수도 있기 때문에 피어난 꽃들을 아름답다고 할 게다. 연거푸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갓난애조차 업은 채 강에 뛰어들었다는 내 어머니. 누가 크게 구박도 안했는데 무엇이 혼자 서러워서였는지, 스물두 해도 넘기지 못한 여자. 그 주검이 달구지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고서도 그 자리에 시집온 새엄마. 반은 넋 나간 남편과 아이들과 병마와 얽혀 들어간 여자. 누구도 피어본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할밖에.

내 생채기? 회오리바람은 도처에 있는 법이다. 그만하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산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잘 안배하며 산다. 내 어머니처럼 돌아버리지 않게, 새엄마처럼 병들어 처지지 않게. 그냥 할 수 있는 일로 밥을 벌고…….


그러다 그 스물네 시간 안에 누군가를 세 번째 조우하기에 이르면, 누구라도 뭔가 운명적이라는 환상에 빠지기 쉽다. 내가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천천히 문 쪽을 향할 때, 서둘러 계단에서 올라온 걸음걸이가 나를 지나쳐 내 방문을 잽싸게 열고 들어갔고, 그것이 그였다. 곁을 밀치듯이 지나친 뒤에도 나를 별 의식하지 않던 그가 방문을 닫기 전엔 살짝 돌아다보았다. 내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나 보다. 그래도 조금 고개를 까닥하고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그 순간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속도로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은. 누가 내 면전에서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아거는가? 한두 발 더 걸어가서 확인한 방문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4층이었다. 5층에서 내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 우연한 실수에 멍해진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기가 멋쩍어 계단으로 5층을 향했다.

‘아차, 그러니까 4층에 사는 남자였구나! 내가 잘못 내린 거네 뭐!’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그를 스물네 시간 안에 세 번씩 만나려고? 그런데 어디서 보았더라? 홀더와 작은 집게들,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를 사서 햇반을 먹으며, 나와 천장두께만큼 떨어져서 일하고 있을 이 사람을?

그것은 경이이자 슬픔이었다. 인생의 시작부터 망가진 채, 이제는 사람 사이를 초월해서 살리라,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살기 시작한 그때, 하필 그때 그 무심한 맑은 시선과 마주친 것은.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깨끗한 눈빛. 그것이 다른 사람의 원과 소망을 자아낼 수 있음을 그땐 사실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무려나 일상은 계속되었다. 다시 하이네켄을 찾는 언어학자가 나타나는 일도 일상에 속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그였다. 언어학자라던 그 남자, 그 남자가 그였다. 그 남자의 일행은 갑자기 자주 들렀고, 온갖 외국어에서 비슷한 공통점인가를 찾아 연구하는 팀이라 알려졌다.

‘혹시 하이네도 강의하시나요?’

하이네켄을 계속 들고 가면서 묻고 싶은 말이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그럴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슈퍼에서 문방구에서 오피스텔에서 마주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핑계가 되어 가까이 앉으면 알아볼까? 알아보는 것이 좋을까 아닐까? 그래서 망설였다.


그쪽 테이블에서 돌연 큰 소리가 들려왔다.

“글의 주제? 아니, 난 그저 인생의 주제를 말하는 거요. 내 인생에 주제가 뭔가……”

나는 그의 목소리만을 크게 듣는다. 내 귀의 기능에는 최신 디지털 보청기들처럼 그의 목소리만 가려서 크게 듣는 장치가 되었나 보다.

‘인생의 주제? 주제라는 게 대체 뭐라는 것일까?’

그렇게 나도 덩달아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주제’가 들어간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주제도 모르고…….’ ‘옷주제가 뭐다냐?’ ― 그런 뜻과는 다른 무엇인 듯했다. 하지만 ‘인생의 주제라…….’ 아무래도 ‘중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중심을 가지고 사는 일, 그런 것을 말했을 것도 같았다. 인생의 주제를 두고 논할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술파는 여자는.


나는 술을 팔아 살아가는 내 신세를 비웃게 되었다.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으면, 나는 내 멍청하고 슬픈 비밀을 푼다. 들킬세라.

나는 당신을 향해 오감을 열었습니다. 여럿이서, 그것도 드물게 나타나시는 당신은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으십니다. 하이네켄을 파는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병을 들고 테이블 주위를 도는 여자를. 그러다 당신은 마침내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공휴일이 끼어서 한가한 오후였지요. 진한 커피도 듣지 않고, 아스피린도 한 알 밖에 남지 않아 약국을 향하던 나를 알아보셨습니다. 단화를 신고, 그러나 옷은 산보 차림은 아니었던 저에게 그랬습니다. “산보 가십니까?”

나는 아스피린도 잊고, “예”라고 말했습니다. 유식하고 멋스러운 당신과 산보길이라면 어떤 것도 접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가 물장사 몇 년 만에 대학 내를 산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빠른 산보 걸음을 쫒아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당신은 벤치에 함께 앉았습니다. 감히 옆에 앉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땅바닥에 앉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메마른 땅바닥에 섞여 있는 돌과 돌가루 틈새로 풀잎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풀잎으로 보아 오월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이름을 묻고는, “해수 또는 허수”라는 말에 너무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허수라고요, 시니컬합니다. 좋습니다.” 그리고는 술자리에서 내가 한두 번 대화에 낄 때 속으로 놀랐다고, 산문적 현대에서 뭔가 시적인 세계 같은 순수를 보았다고. “특히 그 분위기에 맞지 않게.”

“그” 분위기는 술집 분위기겠지요. 그러니까 오피스텔에서 마주친 여자하고 술집여자하고를 동일시하기가 어려웠었다는……, 그런 고백이어도 좋았습니다. 한껏 높은 세계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이면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보지도 못하고 대학가에서 술을 파는 나에게. 대학생도 과한 나에게 모든 것을 졸업한 대학교수라니. 알게 모르게 유린당한 내 몸뚱이가 부끄러웠을 뿐입니다. 실전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뚫린 방패, 꺾인 창.


며칠 후 다시 일행과 함께 온 당신의 모습. 그 며칠 후. 그 며칠 후. 그러나 곧 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가의 여름이 그렇지만, 그해 여름은 참 길었습니다. 여전히 가시지 않은 더위 속에, 그러나 저녁이면 시원해지는 어느 날 밤, 당신이 다시 가까이 있음에 나는 돌아버릴 만큼 행복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붕 뜬 것, 아니 어지러운 멀미 같은 이것을 무어라 한답니까?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려 가게 문을 못 열면 어쩌나 걱정되었습니다. 혹시 폐렴에 걸려 죽을까 더욱 겁났습니다. 더는 당신을 못 보고 죽을까 겁났습니다. 절대로 날마다 오실 리 없는 당신을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오신 것은 두 학기의 공동프로젝트 때문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8개월, 7개월…… 3개월. 줄어드는 숫자의 의미를 당신은 모르십니다. 어차피 당신이 한시적으로 있습니다. 멀찌감치라고 해도 공기를 통해 섞일 수 있는 시간을 탐하는 내 욕망이 꿈틀거렸습니다. 그것을 오래지 않아 들켰습니다. 죽을 죄였습니다. 당신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왜냐하면 당신이 곧 멈췄으니까요. 아니 찬물을 끼얹으셨던 것, 압니다.

“어련히 알아서 마실까봐서요.”

어느 날 저녁, 그날도 자꾸 당신의 테이블을 맴도는 나를 향해서, 바라보지도 않고 내뱉으신 말. 퍼뜩, 부끄러워서, 카운터 뒤로 도망쳤습니다. 아예 두통을 핑계로 알바들에게 뒤를 맡긴 채 가게를 뛰쳐나왔습니다. 콧물 핑계로 계속 울었습니다. 마음에선 어쩌면 그렇게 차갑지 못하실 것이라 생각도 해봅니다. 어쩌다 일행들과 오시면, 이제는 내가 없는 것처럼 완전히 무시하시는 당신. 당신의 무심함에 죽어갑니다. 더 빨리 죽고 싶습니다. 이사를 떠날 수는 없어, 아니 떠나지 못합니다. 떠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당신의 시간이 정해졌으니까요. 시간이 가면서 나는 점점 미치는 게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한 계단 내려가서 오른 쪽으로 굽는다. 정확히 열네 걸음이면 손에 잡히는 손잡이.’

몇 번씩 초인종을 눌러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나를 미치게 합니다. 수돗물을 밤새 틀어 놓아 물이 넘치고 넘쳐서, 당신의 천장을 스며, 혹은 당신의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상상을 합니다. 물은 쉽게 당신에게 이릅니다. 이 바보는, 정신 나간 바보는, 수돗물을 부러워합니다. 속을 썩힐 대로 썩혀 다 녹으면, 그게 물이 될까요?

일에 빠지자는 처방도 잘 듣지 않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야 가게 문을 여니, 긴긴 낮 시간을 잠이라도 자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수면제를 먹었다가는 가게 문을 열고서 졸게 되어 안 됩니다. 시간을 보내려고 문화센터를 기웃거립니다. 초상화반에 등록도 했습니다.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되려고. 당신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되려고. 떠나신 뒤에 그리는 초상을 보고서 누가 뭐라겠습니까? 떠나신 뒤 걸려있는 초상화를 보고서 누가 뭐라겠습니까? 그러나 아주 떠나시기 전에, 몇 분간만 함께 있을 수는 없겠습니까? 한번만 버스 정류장 혹은 기차역까지 함께 가면 안 될까요? 당신은 나를 살게 하는 약이고, 나를 살 수 없게 하는 독이십니다. 나의 독, 나의 약이시여! 몇 분만 함께 할 수는 없나요? 몇 분의 약이면 몇 년은 버틸 것 같습니다. 아니 영원히 간직해 두고 조금씩 꺼내보겠습니다. 알사탕은 보기만 해도 그 단맛을 느끼듯이. 사탕이 닳을세라 그렇게 보기만 하면서, 달콤함을 조금씩 핥아가면서.

호야의 스물 서른 작은 꽃봉오리들처럼 수없이 매달려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당신의 마음 한 조각은 귀한 만큼 그러나 여렸습니다. 애당초 열정이었을 리도 없습니다. 그저 나락에 빠졌던 내가 그 여린 줄기를 구원의 밧줄로 믿어버렸던, 초여름의 마파람 한 번이면 흩어져버릴 만큼 가벼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당신에게서 들었던 말을, 뜻도 모르고 되뇝니다. 그것이 다였습니다.


끝은 언제 오느냐고? 그것은 처음부터 병행이다. 다만 너흰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에서야 화들짝 놀랄 뿐이다. 예컨대 CD 같은 하찮은 네 선물을 되돌려 받을 때, 그때도 넌 사실을 믿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댄다. 너를 위해서, 너의 필요를 위해서 돌려준 것이리라고. 그러다 혹시 조금 취한 말로 “너 때문에 힘들어” 라고 중얼거리면 다시 전부를 건다. 그러나 마침내 너는 알게 된다. 예컨대 작은 보시기에 귀한 음식을, 네 생각으로 귀한 음식을 그에게 몰래 두고 나왔을 때, 급해서 네 손가방도 문 밖에 두고, 물론 그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네 방안으로 숨어들었을 때. 그때 그가 그것을 거부할 때. 그것을 다시 들고 와서 고개만 내민 채, “저, 많이 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혹은 정중하지도 않게 말할 때. 손에 닿는 현관 어디 첫 번째 가구 신발장 같은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나갈 때. 나가려다 말고 친절하게 혹은 별 친절하지도 않게, 오히려 칠칠맞음을 나무라듯이, “여기 가방을 이렇게 밖에 놔두고 그래요!?” 하면서, 네가 밖에 잊어버리고 있던 지갑을 디밀어 넣어주고 나갈 때. 문을 닫고 아주 나갈 때.


일상은 평온했다. 사람들이 줄어든 느낌이었을 뿐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좋은 것을 찾으니 술은 덜 마시는 것이다. 아니, 그가 보이지 않는 날은 홀이 텅 빈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자살과 타살이 나오는 책을 읽었다. 순전히 그의 테이블에서 얻어들은 때문에 읽었다. 주인공이 남자냐 여자냐, 뭔가 대단해보여서 읽었지만 오리무중이다. “이반과 함께 행복하게”로 시작해서 “그것은 타살이었다.”로 끝난다. 실제로 죽은 시체는 없다. 실제로 죽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남자 이반이 떠나기 전에 떠나는 여자가 스스로 살해되었다고 규정한다. 사랑에 목숨 건 자신을 죽이고서, 난 죽고 싶지 않았는데, 죽임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이제 남은 사람은 그 여자의 반쪽 아니무스다. 여자는 남자로 살기로 한다. 그는 남자 이반이 걸어온 전화를 ― 아마 이별을 고하고자 ― 받으면서, “이곳엔 여자가 없(었)다.”고 답한다.

남자만이 인간이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벌써 알았어야 한다. 남자가 인간이다. 인간은 남자다. 책 속의 여자는 똑똑하다. 다행히 똑똑하다. 그녀가 온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되어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자였는데 죽었다. 실화인지 방화인지 화재로 죽었다. 책 속에서는 절반 아니마만 죽였는데, 책 밖에서는 통째로 죽었다. 혹시 이별이 아파서 죽었을까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내 검색 실력으로는 ‘1926년생, 1973년 사망’ 정도 겉핥기만 나왔다. 같이 살다가 이별한 남자는 역시 유명한 작가였는데, 15년 연상이었고, 전에도 후에도 여자들을 만났고, 20년 쯤 더 살았다. 하긴 서양의 이야기이니, 서양에선 남자가 더 장수하는지도 모른다. 그쯤이면 되었다. 내가 그런 것들을 찾아서 또 무얼 할 것인가.

그를 알았던 8개월 동안 평생에 읽었던 만큼보다 더 많은 소설책을 읽었다. 그가 떠난 뒤 다시 책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책이 읽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없기 때문에 모른다. 그는 일 따라서 어김없이 한 겨울에 떠났다. 떠났을 것이다. 봄이 되어 대학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다.


*


그를 처음 보았던 5월은 해마다 다시 돌아온다. 4월 뒤에 온다. 그런데 5월이 되도록 호야는 새 순을 낼 줄 모른다. 스물 한 개의 호야 잎이 겨울을 살아남았다. 쌍떡잎이 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살아남기는 했다. 화분들에 물을 주려고 안경을 찾아든다. 스물한 개의 잎들이 조금이라도 푸른 기운을 띠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아,” 하고 어느 날 너는 혼자서 탄성을 지른다. 저 아래 밑둥치 부분에 스물둘 그리고 스물세 번째 쌍떡잎이 나란히 올라와 있다! 그 둘은 옛 줄기에서가 아니라 아예 새 순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둘을 밀어 올리는 새 줄기는 그 작은 잎들마저 무거운지 비틀거리며, 애써 그들을 위쪽으로 볕이 비치는 창쪽으로 들이밀고 있다.

다음 날이다. 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순전히 조금이라도 자라났을 모양새를 보기 위해서 기어간다. 기어간다기보다는 기듯이 간다. 다가가는 속도의 에너지만으로도 놀라서 가녀린 줄기가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시작의 위치가 좋지 않아서인지 볕을 탐해서인지 큰 잎들 쪽으로 너무 기운다. 플라스틱처럼 완강한 늙은 잎들에 다치면 정말 굽을지도 모른다. 줄기인지 잎인지도 아직 구분이 가지 않은 연한 살이 굽다 못해서 아예 찌그러들지도 모른다. 너는 새끼손가락으로 가만히 여린 줄기를 밀어본다. 큰 늙은 잎에서 멀어지도록.

또 다음날 아침이다. 여전히 물을 주는 날이 아니다. 그래도 화분 쪽으로 향한다. 어제보다 더 자란 느낌인데 잎을 펼치는 기세는 그대로다. 해가 덜 나서 그럴까? 종일 창가를 서성댄다. 오후 늦게 방을 나서려다말고 또 한번 창가로 간다. 해는 반대쪽에서 비치고 있고 그리 맑은 날도 아니어서 앞쪽 창가는 어스름하기까지 하다. 너는 새끼손가락을 뻗어 가느다란 줄기를 바로 잡는다.

“조금만 더 바로 자라거라……, 조금만 더 바르게…….”

가만히 주문을 왼다. 아차, 그 순간 미세한 떨림이 네 손끝을 통해 온몸에 전해진다. 무언가 동강나는 움직임이다. 그것이 잘려 나동그라져 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것이 끊어졌다. 그 여린 줄기에 좁쌀만도 못한 크기의 수액으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너는 운다, 여린 줄기와 함께 작은 희망이 잘려나갔음을. ‘바르게’에 사로잡혀서, 네가 그것의 방향을 틀다가 그것을 죽였구나. 그렇다. 그의 방향을 ‘쪼끔’ 고쳐 잡고자 했을 때, 언감생심 네 쪽으로 인위적으로 정향코자했을 때, 아니 그런 소망이 꿈틀거렸을 때, 그때 벌써 그가 ‘절단났다’는 것을 너는 불현듯 깨닫는다.


너는 서둘러 가게로 향한다. 저녁에서 밤사이, 너털거리는 불행한 군상들을 서둘러 위로하고 싶다. 조용히 바라보아줄 사람이라도 그리워하는 안쓰러운 그들. 너는 그 얼굴들을 향해서 되뇌고 싶다. “인생은 끊임없는 이별하기다. 우리는 저녁마다 하루와 이별한다. 가끔은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그러나 가끔은 고통을 느끼며.” 어떤 시인의 글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구절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리카르다 뭐라는 이름으로 보아 여자다.

‘그에게서라면 한두 마디 이 시인에 관해서도 들었을 것을.’

너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를 떠올린다. 아차, 네 마인드는 여전히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나 고통과 함께라도 너는 결국 오늘과 이별하게 된다.

예전에 녹아 굳어버린 네 몸의 층 위로 네 맘이 녹아내린다. 몸과 맘이 함께 상실 속에서 용광로에 든다. 이 소용돌이를 지나면 너는 오히려 단단해진 상처의 유약으로 치장한 어른이 될까? 너는 여태 변방에만 있었고, 네 인생의 무대는 아직 비어있음을 느낀다. 중심이 비어있다. 주제가 비어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죽은 자의 신 오시리스에 덜컥 홀려있었다. 너는 이제 비뚤어진 밤의 관찰자 역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 느낀다.

‘할머니, 다시 밥 짓기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느닷없이 먼데 할머니를 속으로 부르면서, 삶의 중심에 놓인 것이 설마 밥일까 생각해 본다. 따뜻하게 지은 밥 한 그릇이 너의 버려진 듯 초라한 삶과의 이별식이 되어줄까? 너의 발걸음은 정상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어디로일까? 확연하지는 않지만 가게가 종착역이 아닌, 그 너머인 것을 너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끝.
                                           
<PEN 문학> 2006년 가을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사 - <소설시대>  (0) 2007.06.30
마리아 막달레나 - <월간문학>  (0) 2007.05.30
행복한 수요일 아침 - <소설시대>  (0) 2006.05.30
춤꾼 - <소설시대>  (0) 2005.03.25
이화문학상 2004  (0) 2004.12.03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6. 9. 20. 20:52

직이는 림자

 

<문학공간> 2006, 9월호 (202호)


“너는 왜 쓰는가? 너는 왜 쓰지 않을 수 없는가?” ― 젊어서든 아니든, 글을 쓰는 세계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첫 질문이다. “글이 밥 먹여 주느냐? 글이라는 것이 대체 인간사에 무엇이냐?”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의심은 눈길에서 눈길로 아프게 찔러온다. 선뜻 대꾸할 말이 없다. 곰곰 생각해 봐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들여놓는’ 것이 없어 보인다. 글은 홍수로 고립된 계곡 마을에 식수 하나 건네지 못한다. 쓸려 무더기진 쓰레기더밀랑 까딱도 못한다. 커피잔 늘어놓고 줄담배 입에 물고서 책상에 죽치고 있는 문사들이라니, 장맛비 피해를 외면하고 골프나 친 위인들보다 한 치도 더 낫지 않다.

그런데 왜? 인류가 있고 문자가 아직 없던 시대까지 거슬러 가도 ‘문학’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그리고 다시 휴머니즘 ― 도도히 흐르는 인류의 정신사 어느 시대에도 문학은 우리를 동반했다. 제대로 학문도 아닌 그것이, 제대로 예술도 아닌 그것이.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은, 문학이 현실과 꿈 사이의 매개체와도 같은 존재인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은 고달팠고 여전히 고달프다. 방탕에 이르는 부패한 황제 아래서도 고달팠고, 금욕적 수도사가 지배하는 신정정치 아래에서는 신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에도 고달팠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기치 아래 신분제가 철폐되었어도 고달프다. 언제나 다시 태어나는 귀족들. 혈통귀족 양반님네가 사라지기도 전에 돈귀족이 새 양반님 행세다. 지배하는 일부가 있는 한 지배당하는 일부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결핍으로 고통당하는 일부가.

그러나 결핍은 외부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바람직한 사회화는 본래 다양한 개성의 인간을 위축시켰다. 개인은 인류역사의 진보를 위해 본성의 충족을 포기(당)해왔다. 그래서 내면은 늘 ‘다른 현실’을 꿈꾼다. 이 꿈이 언어예술작품으로 빚어나온 것, 그것이 문학작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지리 밥도 못 먹여주는” 문학이 이 첨단과학의 세상에서 명줄이나마 보전하겠는가?

이때 행여 우리는 문학의 효용성 논란에 풀이 죽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쓸데 있고 없는 것이 따로 없음을 성현들은 벌써 알았다. “있는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은 없는 것을 씀으로서라.” 혹은 “땅이라는 것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기껏해야 발이 닿는 지면뿐이요,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재어가지고 그 둘레는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 버린다면 사람들에게 그 땅이 그래도 쓸모가 있겠소?”라고. 디디고 선 땅을 디디고 설 수 있기 위해 무수한 땅이 필요하듯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겐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간이 절실하다. 아니면 우리는 질식하거나 로봇으로 전락할 것이다. 결핍과 갈등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더욱 깊어지게 하고, 이 내면을 끌어내는 것은 상상력의 힘으로서만 가능하다. 상상력은 자신조차도 공감하기 어려운 내면을 개연성으로 설명해낼 줄 아는 힘이다. 상상력이 우연과 혼돈을 필연성으로 바꿔낼 때, 작품세계는 리얼리티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나, 문학에게 이 시대는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글쓰는 이의 열악한 생존조건이 문학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위협은 우리가 현실에 순응하고 꿈을 꾸지 않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더 이상 깊은 내면의 샘을 퍼 올리지 못할 때, 그 파국이다. 상상력은 꼬마아이가 움직이는 긴 제 그림자를 발견하고서 신명이 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문학을 놓아선 안 된다. 읽건 쓰건, 그 차이는 그림자를 몸 앞에 두는가 뒤에 두는가 일뿐.

'수필-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멍 난 옷  (0) 2007.12.01
내적 자유  (0) 2006.12.03
내 딸의 어머니  (0) 2005.11.03
교집합과 합집합 - <문학사상>  (0) 2005.10.15
오프라인  (0) 2004.11.15
Posted by 서용좌